요지음 시의 모습이 궁금하여 <천지>6호, <장백산>3호, <도라자>3호를 뒤적거려보았다.
우리의 시들은 점차 진정한 자아왕국으로 들어가고있고 그 자아왕국의 대문에 누구도 범접못하게 견고하고도 성스러운 잠을쇠를 잠그려 하고있다. 대부분 시인들이 자신을 그 왕국의 주인으로 임명하고 그 신 ※※ 울리는 당당한 자시와 목소리로 자기중심의 노래를 엮어가고있다.
총적으로 보아 주류를 점하는 밝은 색갈의 시들도 그렇고 지류를 이루는 흐린 색갈의 시들도 그렇고 기쁨이니 슬픔의 뿌리를 시인 자신의 **련결시킬뿐 객관세계와 크게 련력시키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자아중비을 떠나 참여의식으쪽으로 향하려는 시들은 감정의 촉수를 객관세계에로 뻗치며 대결으 양상을 띤다. 시인의 아믕속에서 괴여오르는 아픔이나 불만족 즉 심리불평형이 객관세계의 부조리때문이라고 느껴질 때 그 심리배설이 나무람, 원망, 트집, 한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또 충자와 폭로, 고발과 관계를 맺게 도니다.
세 잡지에 틀고앉은 6월의 시들을 보면 참여의식의 시가 근근히 세수 정도로서 시의 중량이 기본상 <자아해결시>에 쏠리고 참여의식의 시들은 렬세와 위축에 빠지게 되였다.
온갖 소음과 거짓맹세로 떠들썩한
귀아픈 세상에서
쩡쩡 울리는 백마디 말보다
하나의 조용한 미소가 그립다
(<도라지>3호 조룡남 [꽃의 언어])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현실삶의 울타리밖에 서서 추연한 목소리로 순결을넉두리한 옃은 색갈의 참여시다.
눈꿉이 빠지도록
문명세례를 기다리는 곳에
그냥 호미자루가 춤 추고
년년이 두렁감기에 삽자루가 동강난다
([천지]3월호, 리근영<변신을 꾀해본다>)
분명히 문명세계임에도 불구하고 문명밖에서 살아야만 하는 현대농민의 울한을 세상의 턱밑에 바투 다가서서 웨치는 짙은 색갈의 참여의식시다.
시를저울판이라고 하고 세상을 저울대라고 할 때 각양각색의 이름을 가진 모든 시들이 올라타야만 평형이 이룩된다. 저울대는 항상 무변상태이기에 시쪽의 무게가 조금만 적어져도 기울어진다.
세잡지의 6월달의 시들의 경우 참여의식시들의 비중이 너무 적어 저울대가 기울어졌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시인들이 세상과 소원해졌는가,아니면 소원한체 하는건가 혹은 무고나한체 하는건가. 이것이 좋은 현상인가 나쁜 현상인가.한수의 시로써 세상을 바로 잡을수 없고 한편의 평글로써 시를 바로 잡을수 없지만 아무튼 생각은 좀 해봐야 될것이다.
금후 참여의식의 시들이 더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이 본글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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