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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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월드컵을 말하다
2014년 07월 21일 15시 40분  조회:2222  추천:1  작성자: 김룡운

한달동안 온 지구를 뜨거운 도가니처럼 달구던 브라질월드컵이 마침내 아쉽게 막을 내렸다. 월드컵은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대축제이다. 정당도 종파도 리념도 뛰여넘는 월드컵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되여 자기 나라팀의 응원에 열을 올린다.

 

월드컵은 하나의 큰 잔치이면서 또한 하나의 큰 초상이기도 하다. 이긴 팀은 기쁨의 눈믈을 흘리며 미친듯이 환호하고 진 팀은 애통함을 금치 못해 통곡한다. 허나 어찌하랴. 이런것이 바로 월드컵인것을. 모든 팀이 다 이길수는 없다. 무릇 이기는 팀이 있으며 지는 팀이 있기 마련이다. 승부를 두고 투혼을 다 하는 아짜아짜한 대결,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 수만의 관중들, 그러다가 꼴이 들어가는 순간 폭풍처럼 터지는 환호성,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 토지는 절망의 신음소리, 거기다 심판의 오판을 비웃는 야유성, 비신자적인 파울을 하는 선수들에게 던지는 비난성, 여기에 바로 월드컵의 재미가 있다.  

 

축구는 이미 겨루기의 의미를 넘어 한 나라의 이미지와 응집력을 과시하는 상징으로되였으며 때로는 진한 정치색채를 띠기도 한다. 뉴욕 타임스지가 브라질월드컵에 진출한 16개국 국민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월드컵에서 지기를 원하는 국가를 묻는 질문에 한국은 당연히 일본을 꼽았고 일본도 서슴없이 한국이 지기를 원했다. 숙적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우 아르헨티나 관중들은 브라질이 다른 팀한테 지기를 바랐고 브라질 역시 아르헨티나가 상대팀한테 지기를 바랐다. 재미로 보는 축구가  때론 재앙을 불러오기도하고 때론 평화를 낳기도 한다. 19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월드컵 예선전 17일후 전쟁을 벌렸다. 엘살바도르와의 경기에서  온두라스가  지자 온두라스정부는 엘살바도르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고 이에 본노한 엘살바도르는 온드라스를 침공하였다. 그번 전쟁에서 4천여명이 죽었다. 이렇게 죽구가 전쟁을 발발시켰는가 하면 평화를 낳게도 하였다. 코트디부아르가 사상 최초로 얼드컵에 진출한 2006년 코트디부아르팀의 주장 디디에 드로그바가 텔레비에 나와 무릎을 꿇고 우리는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부디 일주일만이라도 전쟁을 멈머취달라고 애원했다. 이듬해 정부군과 반군은 5년간 끌어오던 전쟁을 끝냈다.  

 

브라질월드컵은 력사상 이변(异变)이 가장 많은 축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가장 잔혹한 축제, 악몽과도 같은 축제였다. 무적의 함대라고 불리우던 세계 링킹 1위 스페인이 조예선에서 참패를 당해 16강문턱을  넘지 못하는 수치를 당했고 유럽의 강팀으로 소문난 잉글랜드도 16강문턱을 넘지 못하고 무너지고말았다. 특히 축구종주국이라고 불리우던 영국이 16강에서 탈락하여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8강을 장담하던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이란과 호주도 16강에서 밀려나 아세아축구체면도 여지없이 구겨지고말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이변은 독일과 브라질팀의 격돌이였다. 브라질이 독일한테 1:7로 대패하여 온 세상을 경악케 했다. 브리질의 축구위신이 일락천장하는 순간, 믿기 어려운 참패에 수모와 분노를 참지 못한 브라질국민들이 대성통곡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브라질축구는  죽었다”고 소리쳤으며 분이 극도에 달한 브리질축구팬들이 대소동을 일으켜 4명이 숨지기까지 하였다. 독일은 24년만에 네번째우승을 함으로써 남미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유럽국가가 한번도 우승을 못했던 력사를 바꾸어놓았다.

 

이 기회를 빌어 월드컵의 력사를 간단히 거슬러 보기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을 축구종주국이라고 부르고  영국인들도 이로하여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있다. 1848년에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현대축구가 첫발을 뗐고 1866년에 정식으로 축구규칙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때가지만 해도 문지기가 없다가 1871년에 문지기기 있게 되였다. 그후 영국의 축구가 스페인을 통해 유럽 각국에 전파되였고 축구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였다. 1904년에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스페인,  네들랜드, 스웨덴, 덴마크 등 7개국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처음으로 국제관리기구인 국제축구련맹   즉 피파(FIFA)를 산생시켰다. 오늘FIFA에 가담한 나라가 208개에 달한다. 

 

그런데 사실 축구의 원뿌리를 캐보면 축구의 진정한 종주국은 영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일찍 기원전 2,700 여년전  황제시기에  소박한 축구의 싹이 트기 시작했고 기원전 135년 한무제시기에 중국 장안에서 정식으로  축구가 있게 되였다.  그러나 당시 축구는 게임을 통한 재미가 아니라 군사들의 체력증진을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였다. 공안에 땅땅한 물체를 다져넣어 무겁게 함으로써 군사들이 공을 차는 운동을 통해 하체의 힘을 힘을  증강하게 하였다. 장소는 네개의 벽이 있는 넓은 마당을 택하였는데 각각 12명으로 구성된 두팀이 승부를 겨루었다. 경기를 할 때마다 황제가 구경하였고 이긴 틈에 상을 주었다. 네개의 벽에다 먹으로  일정한 크기의 네모칸을 만들고 그 안에 공을 많이 차넣는 팀이 이겼다. 알고보면 축구는 동양철학의 발현이고 실천이였다. 옛 중국인들은 철학을 운동과 결합시키는 지혜를 갖고있었다. 둥근 공은 태양을 상징하고  네개의 벽면은 사계절을 의미하고 12명의 선수는 1열두달을 의미하였다. 말하자면 자연과 우주의 조화를 념두에 둔 철학적사고의 발상이였던것이다.  손을 쓰지 않고 발로만 하는 운동이였기에 족구(足球)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축구는 오늘의 축구처럼 구체적은 규칙은 없었다. 후에 축구가 중국에서 일반화, 광범화 되지 못하고 근근히 사대부들의 사치한 유희거리로 되다가 점차 중국땅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러다가 1848에 영국캠브리지대학에서 축구가 다시 산생하여 오늘의 세계인의 대축제인 월드컵으로 발전하였다.  

 

우에서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중국이 분명 축구종주국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중국의 축구는 말이 아니다. 금년 브라질월드컵은 물론이려니와 력대의 월드컵에 중국팀은 한번도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13억인구가 월드컵경기장이 아니라 단지 안방에서 텔레비를 통해 남의 잔치를 함께 즐겨야 하는 신세니 참 한심하고도 하고   얼굴이 뜨겁기도 하다.

 

중국의 웅장하고 화려한 꿈에는 중국의 축구도 포함되여있다.  중국은 꼭 중국의 축구꿈을 실현하여 엉망으로 구겨진 축구종주국의 체면을 살려야 한다. 첫단계로 16강을 바라보아야 하고 점차 8강 ,4강을 노리고 최후에는 우승의 월계관을 탈취하여야 한다. 이런 야심을 현실로 만들자면 축구에 대한 전 사회의 관심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어야 한다. 탁구를 중시하듯 축구를 중시한다면 중국축구도 언젠가는 쨍 하고 해뜰 날이 있을것이다.

 

우선 독일처럼 어릴적부터 축구영재를 발견하고 잘 키워야 한다. 다음으로 축구에 대한 정부의 어수선한 관리가 정리되여야 한다.  중국의 축구부진은 정부에도 문제가 있고 감독에게도 문제가 있고 선수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온 사회가 축구를 관심하고 정부가 축구를 중시하고 감독과 선수들이 배가로 분발한다면 중국의 축구꿈은 실현될수도 있을것이다.

 

월드컵에서 중국구팀이 오성붉은기를 휘날리며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그런 날, 월드컵경기장에 중국국가가 우렁차게 울리는 그런 날, 그리고 최종적으로 월드컵에서 우승하여 13억의 마음을  기쁨의  눈물로 흠뻑 적실 그런 날을 기대해본다.



해란강닷컴 201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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