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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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근대 재발견·100년전 한중일》

(37) 100년전 일본의 사회주의운동
2013년 11월 16일 18시 14분  조회:5365  추천:6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37)

100년전 일본의 사회주의운동

김문학
 

   로일전쟁 당시 질풍노도같이 성행했던 일본의 “주전론”,  “로시야징벌론”의 와중에도 전쟁을 정면에서 반대한 “반전론”,  “비전론자”들이 존재했다.
  청일전쟁을 치르면서 일본의 “국민국가”가 형성, 성숙되였으며 따라서 신문, 매체의 저널리즘도 성숙되였다.

  당시 《요미우리신붕》, 《아사히신붕》외에도 특히 유명한것이 1892년 11월에 창간된 《만조보(萬朝報)》였다. 사회적정의를 호소한 사회개량의 중요한 론진을 펼쳤다.

  1902년에서 1903년에 결쳐 일로간의 긴장이 팽창하는시기 사회주의사상가 코오도쿠 슈우스이(幸德秋水),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 기독교신자이며 사상가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등이 만조보에서 전쟁반대의 반전, 비전론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코오도쿠 슈우스이(1871~1911)는 청년시절 저명한 사상가, 자유민권운동가인 나카에 쵸민(中江兆民)의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배우면서 메이지관료국가 권력에 대해 늘 비판적립장을 견지했으며 사회주의 실현을 인생의 목표로 걸어온 인물이다.

  만조보를 퇴사한 그는 1903년 10월 평민사(平民社)를 결성하여 평민주의, 사회주의와 함께 반전, 비폭력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11월 5일 창간한 주간지 《평민신문》은 평균 4,000부 발행, 일본의 본격적인 반전운동은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전개되는것이 특색이였다. 코오도쿠는 인도주의, 평등, 박애로 군국주의를 칼도마우에 올려놓고 비판하면서 효과적인 반전론을 펼친다.

  잠간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 사상에 대해 그 력사의 뿌리를 돌이켜보자. 일본의 사회주의로동운동은 미국에서 로동운동을 체험했던 다카노 후사타로(高野房太郞)가 1897년 4월 동경에서 로동문제에 관한 연설을 하고 로동조합을 결성한데서 시작된다. 그 한달전 일본 사회주의운동의 선각자인 가타야마 센(片山潛)이 다카노와 함께 로동조합기성회를 창설하였으며 1901년 코오도쿠와 같이 최초의 사회주의정단ㅡ사회민주당을 결성한다. 이것은 중국 사회주의정당인 공산당보다 20년 앞선다.

  코오도쿠는 1904년 1월 17일호 평민신문의 “비전론특집”에서 사설 “나는 어디까지나 전쟁을 비인(非認)한다”를 발표, 1904년 12월 18일호에는 “비전론을 멈추지 않는다”를 발표하여 전쟁을 규탄, 반대한다.    

  그뒤 1905년 1월 《평민신문》은 발금처분을 받고 페간된다. 일로전쟁에서 그가 사카이, 우치무라 등과 함께 론진을 펼친 반전평화론은 앞서 말했지만 사회주의사상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괄목된다.

  1904년 3월 코오도쿠는 《평민신문》에 “로시야사회당에 보내는 글”을 발표하여 “제군(諸君)은 우리와 동지이며 형제이며 자매이다. 단연코 싸울 리유가 없다”고 절절히 호소한다.

  이에 대해 로씨야의사회민주로동당의 마루토브파의 기관지 《이스쿠라》는 로씨야의 만주지배와 일본의 조선지배를 반대한 립장에서 “평화만세”를 창도하면서 코오도쿠의 상기 문장을 소개했다. 그뒤 레닌은 로씨야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고난다음 군국주의, 제국주의를 규탄하며 일로가 싸울 리유가 없었다고 결론짓는다.(《전제와 프로레타리아》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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