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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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이와쿠라 사절단'의 서양순방
2015년 09월 28일 12시 54분  조회:5008  추천:32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74)

“이와쿠라 사절단”의 서양순방

김문학      

 1871년 12월 23일(음력 11월 12일) 탄생한지 3년밖에 안되는 메이지정부는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를 특명전권대사로 하고 키도타카요시(木戶考允), 오쿠보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31세의 젊은 이토 히로부미 등 4명을 부특사로 한 정부 최고 실력자를 포함한 50여명의 견구미사절단(遣歐米使節團)을 파견한다.

  1871년의 세계사년보를 보면 그해 “독일제국”이 탄생하며 파리코뮨 성립 그리고 로씨야가 청국 이리지역을 강점하며 일청수호조약이 맺어지는가 하면 메이지정부가 “페번치현(廢藩置縣)”의 근대적 행정개혁을 감행하는 등 격동(激動)의 한해였다.

  “이와쿠라 사절단”이라 불린 이 구미 여러나라를 순방한 사절단은 40여명의 정부관원외에도 나카에 초민(中江兆民)과 같은 걸출한 준재와 츠다우메코(津田梅子)와 같은 녀자류학생 60여명, 합계 107명의 엘리트로 구성되였다. 수백만 딸라가 소요되는 장기간의(2년) 외국시찰을 서슴없이 추진시킨 메이지정부의 구상의 방대함에 새삼스럽게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흔히 중국과 한국에서는 일본인은 스케일이 작고 째째하다고 선입관을 안고있으나 근대아시아에 로정된 일본인은 섣불리 그런 선입관을 불허하는 장대한 스키일을 소유하고있었음이 발견된다.

  이와쿠라 사절단 파견의 리유는 무엇일가? 목적은 일본의 력사서대로 기술하면 두가지였다. 하나는 당시 구미렬강과 체결한 불평등조약을 수정하며 서양렬강에게 일본도 문명개화를 실행하고있다는 메시지를 발하기 위해서였다. 또 하나는 당시 메이지 엘리트들이 캐치프레이즈로 웨치던 “세계적 콤페티션 에이지(렬강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서양을 배우자”는 철저한 서양문물수용이였다.  
 

  즉 메이지정부가 당시 “급선무”로 한 서양의 법률, 재정, 외교 3면에서 일본이 배워야 할 서양의 실황을 고찰, 학습이 이번 사절단의 주목적이였다. 서양의 근대를 모방, 수용하여 서양과 대등한 파워를 갖춘 근대국가로 탈바꿈함으로써 서양렬강에 의한 식민지화를 저지하고 일본의 독립을 확고화시킬것을 노렸다.

  당초 10개월 정도 예정이였던것이 예상밖으로 시간이 대폭 연장되여 결국 22개월(1년 10개월)의 장기순방에 이르며 이 순방이 결국 근대일본사에 결정적인 전환의 의의를 남긴다.

  사절단의 첫 순방의 나라 미국에서 31살의 부특사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개명을 세계에 알리는 강연을 하게 된다. 20대에 쵸수번의 영국류학생으로서 습득한 영어로 스피치를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숙박지인 그랜드호텔에서 개최된 환영회에서였다.

  “오늘날 우리 일본 메이지정부 및 국민이 열망하고있는것은 구미문명의 최고봉에 달하는것입니다. 이 목표를 위해 우리 나라는 이미 륙, 해군, 학교,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서구방식을 채용하고있으며 무역도 창성하며 문명지식도 도도하게 류입하고있습니다…”라고 일본의 서구문명 학습성과를 자화자찬한 뒤 일본의 서구학습욕에 대해 강조했다.

  “우리 나라 국기 중앙에 있는 붉은 일장형은 편지봉투를 필봉하는 빨간 밀랍이 아니라 명실공히 장래 본래의 의장대로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의 휘장이 되며 세계의 문명제국(諸國)의 행렬에 끼여 앞으로 전진할것입니다.”(《이토 히로부미 전기》 상권) 일명 “히노마루연설”이라 불린 이토의 영어연설은 신흥일본의 기개와 사절단의 목표를 강렬하게 표현, 서양렬강에 대한 선언으로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 늦었지만 그래도 아시아에서는 솔선 서양렬강에 필적한 문명국으로 되겠다는 지대한 자부심을 느낄수 있다.

  사절단은 미국에서 모직물공장을 비롯하여 공장, 전신시설, 학교, 공원 등을 견학하고 난 다음 수부 워싱톤을 향한 대륙횡단 철도려행에서 미국의 개척력사에 감명을 받고 일본을 회고 반추하며 조국의 빈약에 개탄하면서 그 원인을 민력의 차이에서 찾고 일본의 전근대적 “인간으로서 인간의 가치가 없는” 사정을 반성하기도 한다.

  사절단은 미국, 영국, 프랑스, 벨지끄, 화란 등을 사찰하여 선진국의 문화, 산업, 제도를 조사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그 나라의 지도자, 정치가 및 일반 시민들과도 접촉하여 국제정세에 대한 지식, 정보를 입수하였다.

  미국에서 8개월,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서 4개월, 프랑스에서 2개월, 벨지끄, 화란, 독일에서 3주일, 로씨야 2주일, 단마르크, 스웨리예, 이딸리아, 오스트랄리아, 스위스에서 체류했다. 체류기일 순위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인데 역시 당시 세계 최선진국에 지대한 관심을 안고있었음을 알수 있다.

  귀로에서 지중해, 스에즈운하를 거쳐 아시아 각지 싱가포르, 윁남 하노이, 향항, 중국 상해를 방문하지만 서구에서 체제한 기간에 비해 무척 짧았다. 후진국에서 별 배울것이 없다고 판단했기때문이다. 이렇게 1873년 9월 13일, 출발지점이였던 요코하마항구에 도착하여 2년에 걸친 구미시찰을 마치게 된다.

  사절단의 서기관 구메구니타케(久米邦武)가 집필한 《구미회람실기》라는 전 5권의 방대한 보고서가 있는데(1878년 출간) 그에 따르면 사절단은 구미선진국의 여러가지 형태의 통신시스템, 산업, 법률, 재정, 교육, 학예 등에 걸쳐 자세히 조사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들은 《만국공법》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며 “문명”이란 공업과 무역에 의해 축적된 부유의 토대우에 이룩한것임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문명화”를 겨냥한 당시 메이지일본은 중국 유교문화체계의 “례(禮)”의 나라에서 서구문명체계질서의 “부(富)”의 국가로 변하게 된다.

    당시 서양세계에서는 일본의 사절단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이와쿠라 사절단이 미국순람 당시 런던의 《타임즈》신문은 그 소식을 거듭 보도했다. 일찍 1861년 일본의 바쿠후(幕府)견구미사절단 방영시절에도 이에 대해 늘 보도했던것이다. 이번 1871년의 사절단에 대해 영국인은 “아마 이것은 지금까지 아시아나라에서 파견된 가장 주목해야 할 사절단이다”고 평한다. 또한 사절단 단장 이와쿠자에 대한 찬사가 특히 눈에 띈다. 세계는 이렇게 평가한다. “일본은 시찰을 통해 아시아선각자로 부상하는 길을 믿었다. 즉 시찰을 통해 일본은 창조보다는 모방과 개선을 추구하는것을 자각했다. 명치일본은 이같은 리해로 급속히 서구문명을 수용한다. 이런 실례는 다른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일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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