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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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상투는 못 잘라” (김문학)
2010년 09월 14일 16시 11분  조회:6442  추천:34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14)

“상투는 못 잘라”


김문학



  “1896년은 조선에 있어서 작년의 깊숙한 우울을 헤여나지 못한채로 다가왔다. 작은 반란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각급 관료가 살해되고 서울까지 쳐들어갈 반란군도 있었다.〞

  국내 전체가 동요되고 몇가진가 심각한 폭동이 일어난데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바로 1895년 12월 30일 정부 칙령에 의한 ‘상투’를 자르는것이였다. 이것이 조선전역을 훨훨 타오르게 했다. 얄미운 일본이 기승을 부려도, 또는 왕비가 암살(189년 명성황후 암살사건)되여도, 국왕이 유페동연한 대우를 받아도 꾹 참아왔던 조선인들이 상투를 자르라는 왕명에는 견딜수가 없었다. 조선인에 있어서 ‘상투’는 청국인에 대한 변발보다 월등 중요한것이다. 청국인의 변발은 정부에 복종함 또는 충성심을 나타낸 징표에 불과하며 머리카락이 자란 유년기부터 태를 땋는다.”

이것은 조선을 여행했던 유명한 영국인 관찰가 이자벨라.비숍여사가 1897년 출간한 《조선기행 》의 한단락이다.

1895년 12월 30일 단발령에 대한 조선민중의 대거 반항을 관찰한 대목이다. 비숍의 글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하지만 조선인에 대하여 ‘상투’는 조선인이라는 상징이며 태고로부터 전해지는 관습이며(500년전 또는 2000년전) 역사가 깊은 까닭으로 신성시했는바 이를테면 실제로 몇살밖에 안되는 아이라 해도 사회적 법적으로 성인이라는 상징이며 또한 성씨와 함께 후세에 남기는 조상의 위패에도 씌여질 두가지 이름을  갖고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조상숭배와 함께 결혼도 ‘상투’와 밀접히 연관돼있으며 혼례에 관한 장에서 얘기하다싶이 ‘상투’가 없는 조선인은 중년이 되여도 이름도 없는 아이로 취급하게 된다. 결혼도 못하고 ‘상투’를 튼 자는 ‘반성인(절반어른)이란 레테르가 붙어졌다.”

  한말 유명한 학자인 황현도 그의 저술 《기려수필》에서 단발령이 내린 시초에는 전국이 분노했고 그래서 의병의 봉기가 우후죽숙마냥 격동되었다고 밝히고있다.

  조선 전통문화의 최후의 심벌이가도 한 상투, 또한 근대화앞에서 그것은 보수적인 상징이였다. 상투의 보존은 전통적인 관습, 생활양식의 보전 그자체였으며 친일내각 김홍집, 유길준 등의 명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또한 민족주체성 그 자체와 상투는 동일시돼 있었다고 해야 할것이다.

  근대를 보면 조선은 이렇게 일본이라는 여과장치를 거쳐서야 서양의 근대와 만나게 되는데 보수적인 투쟁은 따라서 근대에 대한 저항과 함께 “일본”이라는(실질적 식민지지배자) 상대에 대한 저항이란 이중성격을 띄고있다. 그것은 청말 한족이 근대화를 지향함에 있어서 근대 서양에 대한 저항(또는 수용)과 함께 이민족인 만주족에 대한 저항, 제거로 이중적인 성격을 띤것과 류형상에서는 류사한 모습이 있다.

  청나라의 상투는 “번발(辯髮)”로 불린다. 동북아시아 소수민족의 전통습속으로 두발의 일부분만 남기고 깎아버리고 남은 모발을 길러서 태로 땋는 스타일이다. 만주족의 그것은 앞머리부분을 깎고 뒤머리를 길러서 타래로 땋는것이 특징적이다.

  여진족(만주족)이 1644년 청조를 세울 때 순치황제는 한족들에게도 변발을 강요했다. 유교전통에서 모발을 포괄한 신체를 상처내는 일은 터브이므로 한족들은 그 변발에 저항했지만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19세기에는 전국에 변발이 보급되고 점차 “중국적인 풍습”으로서 이미지를 남겼지만 서양인들에게는 “돼지꼬리”로 멸시당하는 끄트머리로 되였다. 일본인도 불과 30여년전에 자기네들도 쵼마게라는 일종의 변발비슷한 상투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국인을 싸잡아 “돈미(豚尾)야로”비하하기도 했지 않은가.

  1911년 신해혁명승리와 함께 단발령이 내렸다. 당시 조선인이 웨치던 “상투는 못잘라!”하는 반항풍경이 여기저기서 빈발했다. “머리는 잘릴지언정 변발은 못자른다”고 근대문명에 반항했던 지식인, 관료들도 많았다. 

   근대화의 도도한 조류앞에서 중국의 변발은 조선의 상투, 일본의 쵼마게와 함께 잘라버려야 할 낡은 보수의 상징이였다.

  중국인의 표상속에서는 세계 모든 야만인종이 변발을 하면서 문명인이 되였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자신들의 변발도 잘려야 할 운명에 처했다. 그것이 바로 근대혁명이다.

  1851년에 발발한 태평천국혁명시기 변발을 푼 홍수전 “장발적”을 탄압한지 불과 60년이 안지나 청나라는 무너지고 그 변발은 잘리우는 비극으로 끝난다. 근대혁명가로서는 청나라를 구축하는 혁명에 투신해온 손문이 솔선 변발을 잘랐다. 변발을 후지산에 빗댄 노신도 일본에서 유학시에는 변발을 잘랐지만 다시 1909년 귀국해서는 가짜변발을 쓰고 다녔다는 일화가 전해지니 변발은 역시 전통의 끈질긴 상징임이 잘 알린다.

일본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일찍 상투(즉 쵼마게)를 자른다. 1871년 9월 23일, 명치정부에 의해 발령된 산발탈도령이 하달되자 절대다수가 리해하고 호응하였다. 따라서 서양복을 착용하고 남녀혼욕금지, 나체금지 등 서양식 생활양식을 제도적으로 급격히 도입하였다. 명치천황도 솔선하여 쵼마게를 잘랐다.

  그때만 해도 육식을 안하던 일본인은 서양인을 따라배워 육식을 장려하고 우유를 먹게 되며 녀성들도 양식 스커트를 입고 모던걸로 활보하게 된다.

  상투, 변발, 그리고 쵼마게.

  각기 동양3국의 전통적머리스타일이 서양문명의 충돌속에서 잘리워야 하는 운명에 아우성치게 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3자의 상투가 잘린 양상과 속도가 근대화를 달성하는 양식과 속도와도 맞먹는다. 근대화는 생활양식의 근대화이기도 한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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