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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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단평 <죽여주는 여자>를 보고서
2016년 11월 07일 09시 51분  조회:4401  추천:1  작성자: 김정룡
- 노인의 인생이란? 죽음이란?....
 
‘죽여주다’는 우리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이 있다. 남녀 운우지정을 나눌 때 만족해하는 의미로 잘해주다 혹은 한국인들이 흔히 잘 쓰는 끝내주는 것을 우회적으로 죽여준다고 하고, 또 실제로 사람의 목숨을 죽여준다는 의미에 쓰인다.
 
요즘 대한민국 극장가를 달구고 있는 이재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중견여배우 윤여정이 주연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담겨 있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 주인공 소영(윤여정 역)은 젊어서 주한미군과 얽혀 ‘양공주’로 살다가 남자한테 버림받아 홀로 아이를 도저히 키울 수 없어 입양 보내고 닥치는 대로 이일저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오다가 나이가 들어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자 성매매로 입에 풀칠하며 목숨을 부지한다.
 
서울에 노인들의 성매매가 잘 이뤄지는 곳으로서 탑골공원이 꼽히고 있다. 배우자가 없는 독거 남자 노인들이 공원을 서성이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50~60대 늙은 여자들이 접근한다. 그녀들의 접근 방식이 박카스를 팔면서 수작을 건다하여 ‘박카스아줌마’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박카스아줌마’ 혹은 ‘박카스할머니’라는 호칭은 탑골공원에서 성매매 하는 늙은 여자들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세상에 모든 일에 영역이라는 것이 있는 법. 한국‘박카스아줌마’들이 ‘독점’하고 있던 탑골공원 성매매 시장에 조선족 아줌마들이 나타나 자기네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싸움이 일어났고 경찰에 신고하는 소동까지 생겨나 방송을 탄 적이 있다. 필자는 <죽여주는 여자>에 혹시 조선족아줌마가 등장하지 않나하고 숨죽이고 봤으나 그런 일은 없어 다행이다 싶었다.
 
주인공 소영의 운명이 기구한데다 그녀 주변에 살고 있는 인물들 팔자도 거기서 그거라는 말이 있듯이 모두 사회 소외계층에서 헤매는 사람들이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가난한 성인 피규어작가(캐릭터를 축소한 인형 만드는 사람) 도훈(윤계상 역),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지내는 트렌스젠더인 티나(안아주 역) 셋이서 한 지붕을 이고 사이좋게 살아간다. 거기다 소영이 성매매하다 걸린 임질이란 성병을 치료하러 병원에 갔다가 오고 갈 곳이 없는 코피노 소년(한국남자들이 필리핀에 가서 당지 여성과 불장난하여 낳은 아이) 민호를 데려다 키운다. 속담에 ‘구차할 때 한 입 덜라’는 말이 있지만 소영이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코피노 소년을 데려온 것이 이해되지 않아 한 지붕 식구들이 물으니 장황하고 거창한 인류애적인 치장하고 포장하는 언설이 아니라 아주 소박하게 “나도 몰라, 그냥 그렇게 해야만 될 거 같아 데려왔어.”라고 답한다. 소영의 가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우러나는 약자에 대한 동정심 발로의 행위가 아닌가 싶다.
 
어느 한 번 소영이 성 매수자 남자와 여관에 코피노 소년 민호를 데리고 가서 주인한테 맡긴다. 1~2만원의 화대가 오고가는 성매매도 신고 되면 경찰이 단속한다. 경찰이 들이닥치자 소영은 살그머니 방을 빠져나와 민호를 데리고 유유히 여관을 떠난다. 경찰의 눈에 띄었으나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여자를 성매매녀로 잡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무사하게 탈출하는 스토리도 유머적이다.
 
소영은 남자들 꼬시려고 접근할 때면 “잘해 줄 게.”라는 말을 밥 먹든 한다. 실제로 소영은 잘해주는 것으로 즉 ‘죽여주는 여자’로 탑골공원 일대 남자들 세상에 소문이 자자했다. 노인들도 성욕이 있기 마련인데 해소할 방법은 없고 하여 소영과 같은 대상을 찾아 푼다. 인류역사에 먼저 창녀가 있어 성을 매수하려는 남자가 생겨났는지, 아니면 성을 매수하려는 남자가 먼저 있어 창녀가 나타났는지? 닭과 달걀의 선후시비처럼 알 길이 없으나 어찌되었든 노인들 세계에도 수요가 많으니 소영과 같은 몸 팔아 생계유지하는 늙은 여자(65세)들도 있는 법이다. 아무리 수요니 공급이니 하는 언어로 포장해도 몸 파는 여자를 곱게 보는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소영이도 따가운 눈총을 받기 마련이고 다른 여자들한테 놀림을 당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소영은 기죽지 않고 당당하고 담담하게 대처한다.
 
그렇게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듯’이 보이던 소영한테 심경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섹스로 남자들을 죽이던 데로부터 실제로 남자들의 목숨을 ‘죽여주는 여자’로 변신한다.
 
종수(조상건 역)는 젊어서부터 퇴임까지 사회 직위도 별로였고 경제적으로 가진 게 없이 볼품없는 사나이였다. 가진 게 없다고 해서 성욕까지 없으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그도 소영이와 성적으로 얽혀 있었다. 늙은이의 성적 행위는 잠시적인 기쁨으로 순간적인 고독은 달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삶에 대한 의욕까지 꺼지지 않게 밝히기는 역부족이었다. 종수는 고민 끝에 죽으려고 맘먹었고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본 소영은 말리지 않고 죽게 방관한다.
 
그렇다면 있는 자의 노후는 행복한 것인가? 특히 병들면?
 
세르비송(박규태 역)이라는 노인은 재직 시 소위 대한민국에서 잘 나가는 편이었다. 퇴직하자 연금도 두둑하게 받았다. 자식도 미국 유학 보내고 그곳에 남아 자녀 둘 두고 잘 살고 있어 남부럽지 않는 노인 같았다. 그런 여유작작한 노인도 배우자가 없어 가끔 소영을 찾아 성욕을 해소하곤 했다. 금전적으로 여유도 있고 맘 씀씀이도 좋아 매번 소영에게 팁을 푸짐하게 주었다. 그토록 멋쟁이던 송노인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뇌졸중에 걸려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고 만다. 자녀들은 송노인을 집에 모시지 않고 요양시설에 보내 간병인을 붙여놓고는 가끔 들여다본다.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이 두 자녀를 데리고 문안 왔지만 손자손녀들은 할아버지 냄새 난다면서 코를 가리고 상을 찌그리면서 기겁한다. 의식이 남아 있는 송노인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지라 하루빨리 저 세상에 갈 것을 갈망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런 부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소영이 그토록 잘해주던 송노인이 병환에 계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문병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송노인은 소영을 반갑게 대하면서도 무서운 부탁을 한다. “제발 나를 죽게 해 달라.”는 것이다. 소영은 고민 끝에 송노인의 죽음을 돕는다.
 
마지막으로 소영은 청춘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재우(전무송 역)를 만난다. 재우는 경제적으로 중산층에 가까울 정도로 여유가 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자녀를 앞세운 것이 우울증을 불러왔고 수년 전 동반자 아내마저 저 세상에 가는 바람에 너무 고독하고 여생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재우의 걱정은 혼자서 죽는 것이 가장 두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소영한테 어려운 부탁을 한다. 소영이 어렵게 응하자 고급호텔 방에 가서 깨끗하게 샤워하고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수면제 한 줌 복용한다. 소영한테는 수면제 한 알 먹인다. 결과 재우는 그토록 두렵던 죽음을 ‘기쁘게’ 해결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최후의 남은 소원을 풀었다. 재우는 이렇게 영원히 잠들었고 소영은 이튿날 아침 깨어났고 재우를 남겨두고 호텔을 빠져나온다.
 
호텔을 떠난 소영은 재우가 남간 돈을 절을 찾아 시주하고 얼마만큼 현찰을 남겨 함께 살아온 한집식구 같은 도훈, 티나, 민호를 데리고 고급음식을 먹고 공원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고 티나 공연장에서 경찰에 붙잡힌다.
 
경찰차에 연행되어가는 소영은 “차라리 잘 됐지 뭐.”라고 말한다. 어차피 늙은 여자가 몸 팔아 생겨 유지한다는 자체가 고역이고 사회눈총을 받으며 고달픈 세상살이를 하루하루 중이 종치듯 지내는 것이 지옥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콩밥 신세를 지는 것이 어쩌면 그녀에게 탈출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차라리 잘 됐지 뭐.”라는 말을 남겼을 것이다.
 
영화는 생리상 소토리가 완전 픽션일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사실을 근거로 한 뼈대에 예술적인 살을 붙여 만들 수도 있다. <죽여주는 여자>의 경우 우선 주인공 소영과 같은 인물이 현재에도 서울 탑골공원에서 한창 진행 중에 있는 몸 파는 늙은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므로 주연의 스토리는 완전 허구가 아니라 실제 사실에 가깝다. 단지 세 노인의 죽음을 방조한 이야기는 과장된 장면이지만 죽음에 직면한 세 노인의 처지는 현재 이 땅에서 수없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그러므로 <죽여주는 여자>는 사실에 가까운 스토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다음 세 노인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는 현대사회에서 직면하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다. 전통시대 아니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것은 천륜이었다. 요즘 세태는 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이 대세이고 조금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집에서 모시지 않고 노인들을 요양원에 보낸다. 이쯤해도 그나마 잘하는 편이라 말할 수 있다. 서울달동네에 거주하고 있는 독거노인을 비롯해 전국에 독거노인이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 중에 자녀가 있으면서도 돌보지 않아 홀로 지내는 노인들이 많다. 이 분들은 국가로부터 생계비복지혜택을 받지도 못한다. 자녀가 있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박스 줍고 파지 줍고 하는 것으로 겨우 입에 풀 칠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이 분들은 인생 최후 마지막 길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 노인들보다 더욱 비참하다. 쓸쓸하게 언제 어떻게 죽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죽여주는 여자>를 보고 감상을 말하라면 필자는 한 마디로 요약해서 ‘슬프다’이다. 슬퍼도 너무 슬프다. 어쩌다 인간사회가 요지경으로 변해버렸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보다 더욱 삭막한 사회로 변해갈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예측이다. 지금도 슬프지만 앞을 생각하면 더욱 슬퍼진다. 노인의 인생이란 무엇이며 노인의 죽음이란 무엇인지?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 중에 가장 심각한 병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부유해졌으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사회, 과연 발전인가? 변화인가? 필자는 항상 ‘인류사회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해왔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가 나의 이 명제를 증명하고 있다. 

동북아신문 10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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