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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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 원조', 향토작가 김유정
2017년 11월 12일 11시 08분  조회:4283  추천:5  작성자: 김정룡

‘뽀뽀’ 원조, 향토작가 김유정


고층건물에 둘러싸인 콘크리트바닥을 밟고 매일 숨 막힐 듯 인파가 북적대는 서울에서 금전을 쫓는 돈벌레마냥 경쟁에 묻혀 사는 삶이 정말 심신이 고달프다. 지친 몸으로 퇴근하여 잠시나마 여유로움을 찾으려고 TV를 켜면 나랏돈을 도둑질하여 쌈짓돈처럼 썼다느니, 어느 정당은 내홍이 심하고 어느 정당은 쪼개지게 생겼고, 국민은 안중에 없고 지들 이권다툼에 혈안이라는 등등 정치판은 온통 실망스런 뉴스로 가득차고, 보험금 노려 가족을 살해하고, 옆집 미성년 여자애를 납치하여 강간하고 죽이고 등등 온통 살벌하다 못해 끔찍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전반 뉴스프로그램은 부정적인 소식으로 도배한다. 드라마는 출생비밀이 단골로 등장하고 재벌가문은 가족끼리 물고 뜯고 직장에서나 친구끼리 서로 해꼬지하고, 참으로 우리는 불행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어 때론 섬뜩한 심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쟁적인 각박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생기를 마시며 시골풍경에 도취되고 옛정취가 살아 숨 쉬는 우리 전통을 찾아다니면 아직도 살맛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느껴진다. 더욱이 지방마다 문화유적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모습을 아빠 엄마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구경 오는 광경을 보노라면 우리민족의 정신문화가 살아있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고 맘으로 받아들여진다.

아~! 이 민족은 아직도 희망적인 민족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불쑥 떠올라 심정이 유쾌하다.

지난 5일 필자는 춘천근교에 있는 ‘김유정문학촌(金裕貞文學村)’을 방문했다. 시골에 자리하고 있는 ‘김유정문학촌’은 입구부터 자동차가 가득한 것을 보니 이곳을 찾는 관객이 엄청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김유정문학촌’이 무슨 매력이 있어 많은 관객을 유혹하고 있을까? 외관상으로 볼 때 하나의 촌이 온통 문학촌으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고 주말이면 상설무대에서 상시 ‘아리랑공연’과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박양순의 유정의 사랑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김유정 작가의 생가에는 그의 일대기를 알 수 있는 전시관이 있고 해설사가 상시 설명하여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절을 보고 신도가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중이 좋아 중생이 모인다는 말이 있다. 문학촌을 잘 꾸며 놓아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것보다 김유정 작가 본인이 우리민족에게 남긴 유산이 크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되었다.

김유정 작가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문학촌까지 건설되었을까?

대한민국에서 윤동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김유정을 모르는 사람은 꽤 많다. 필자도 글 쓰는 신분이지만 솔직히 김유정을 이번 방문 전까지만 해도 몰랐다.

김유정이 윤동주보다 문학적인 가치가 떨어져서 그럴까? 필자는 그렇다고 여기지 않는다.

김유정은 1908년 태어나서 1937년 사망, 윤동주는 1917년 태어나서 1944년 사망했으니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났고 거의 비슷한 나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적인 작가들이다.

필자가 생각하건대 김유정이 윤동주보다 덜 알려진 이유는 윤동주는 일제에 맞선 저항시인(필자는 이런 평가를 인정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객관적인 주장을 따르는 맥락에서 하는 말)이고 김유정은 순수 향토작가이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윤동주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알만치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언급하지 않고 김유정의 생애와 그의 문학작품을 살펴보고 문학적 가치를 조명해보자.

김유정의 본관은 청풍(淸風). 강원도 춘천 출신 아버지 김춘식(金春植)과 어머니 청송 심씨의 8남매 중 막내이다.

김유정의 가문은 조선팔도 100대 부자에 속할 만큼 어마어마한 갑부집안이었다. 김유정의 부친 대에 해마다 3천석 내지 6천석의 소작료를 거둬들였다. 춘천 실례마을이 본가인데 당시 서울에 99칸짜리 집을 짓고 살 정도로 대부자였다. 그러나 김유정은 막내여서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9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였다. 오늘날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전신을 다녔으나 졸업하지 못하고 모두 중퇴였다. 김유정 자신이 밝힌 이유는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만날 여자를 쫓아다니느라 수업시간을 채우지 못해 퇴학 맞았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김유정은 서울생활에서 미색에다 지식이 있고 판소리 예술에 뛰어난 박록주란 처녀에게 빠져 30여 차례 편지를 쓰기도 하고 스토커처럼 미친 듯이 쫓아다녔다고 한다. 실로 풍류적인 사나이이었다. 결국 사랑은 혼인으로 이뤄지지 못해 정신적으로 좌절에 빠지기도 하였다.

한편 유복하던 집안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큰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는데 주색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여 김유정은 이래저래 실의에 빠져 한때 방탕생활로 세월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1932년에는 고향 실레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한때는 금광에 손을 대기도 하였다. 이것도 저것도 실패하고 고민에 빠져 있던 와중에 친구의 권유에 의해 서울에 올라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35년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그 뒤 후기 구인회(九人會)의 일원으로 김문집(金文輯)·이상(李箱) 등과 교분을 가지면서 창작활동을 하였다.

김유정은 등단하던 해에「금 따는 콩밭」·「떡」·「산골」·「만무방」·「봄봄」 등을 발표하였고, 그 이듬해인 1936년에 「산골 나그네」·「봄과 따라지」·「동백꽃」 등을 발표하였으며, 1937년에는 「땡볕」·「따라지」 등을 발표하였다.

그는 불과 2년 남짓한 작가생활을 통해서 30편 내외의 단편과 1편의 미완성 장편, 그리고 1편의 번역소설을 남길 만큼 왕성한 창작의욕을 보였으나, 29세에 결핵병으로 요절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김유정의 소설은 그의 체험적 소재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고향 실레마을 사람들의 가난하고 무지하며 순박한 생활을 그린 「봄봄」·「동백꽃」 등의 계열로서 그의 작가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일면이다.

다음은 그의 금광 체험에서 얻어진 것으로, 민족항일기의 가난 속에서 일확천금의 꿈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들의 생태를 그린 「노다지」·「금 따는 콩밭」 등의 계열, 그리고 도시에서의 가난한 한 작가인 자신의 생활을 투영시킨 「따라지」·「봄과 따라지」 등의 계열이 그것이다.

그의 문학세계는 본질적으로 희화적(戱畫的)이어서,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감각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게 특징이다.

등장인물들의 우직하고 순진한 모습,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의 구사 등으로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었다. 어리숭한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다룬 것은 그의 애상적인 성격에 대한 반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대표작 「동백꽃」은 사춘기 남녀가 애정과 개성에 눈떠가는 과정을 전원 서정 속에 특유의 해학적 수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품집으로는 1938년에 나온 『동백꽃』이 있고, 1968년에 『김유정전집』이 출간되었다.

‘김유정문학촌’ 해설사의 해설에 의하면 김유정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첫째 짧은 시간에 32편의 단편소설, 12편의 수필, 1편의 미완성 장편, 1편의 번역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둘째 김유정의 32편 단편소설은 순수 한글로 창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시는 명사, 동사 등 한문, 조사와 조동사 등을 한글로 쓰는 것이 보편적이고 한문을 쓰지 않으면 천박하게 보이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김유정은 한글 일색으로 썼다는 것이다.

셋째 중고등학교 교재에 「동백꽃」「봄`봄」「산골나그네」「소낙비」4편이나 실리고 대학입시에 가장 단골로 많이 출제되는 것이「봄`봄」이라고 한다.

넷째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기차역 이름이 사람의 이름으로 된 것은 ‘김유정역(서울-춘천행 춘천 바로 전 기차역)’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이외 ‘김유정우체국’이 있고 ‘농협 김유정지점’이 있는 등 사람의 이름을 딴 ‘호칭’ 중에 김유정이 으뜸이라고 한다.

필자의 이목을 끈 것은 바로 김유정이 처음으로 ‘뽀뽀’라는 말을 썼다는 사실이다. 그의 단편소설 「산골나그네」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참새들은 소란히 지저귄다. 지직바닥(기직바닥)이 부스럼 자죽(자국)보다 질배(진배)없다. 술 짠지쪽 가래침 담뱃재- 뭣해 너저분하다. 우선 한길치에 자리를 잡고 게배(計杯)를 대 보았다. 마수걸이가 팔십오 전 외상이 이 원 각수다. 현금 팔십오 전 두 손에 들고 앉아 세이고 세이고 또 세어보고......
뜰에서는 나그네(본 작품에서 나그네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임)의 혀로 끌어올리는 인사.
“안녕히 가십시게유.”
“입이나 좀 맞추고 뽀! 뽀! 뽀!”
“나두.”

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 우리말 ‘뽀뽀’의 원조이며 1961년 국어사전에 ‘뽀뽀’가 정식 올랐다고 한다.

이렇듯 김유정은 실로 우리민족사에 길이 빛날 업적을 남겼다. 그리하여 그를 기리는 문학촌까지 설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유정문학촌은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문학작가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며, 그 기념 및 연구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는 김유정기념사업회가 2002년 8월 일반시민들에게 김유정의 삶과 문학을 좀 더 가까이 소개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68년 김유정 31주기를 맞아 발족된 김유정기념사업회는 김유정문인비를 건립하고, 김유정 문학의 밤, 김유정추모제를 개최하였다. 기념사업회는 김유정 작가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전시관 및 부대시설을 마련하고 작품의 무대인 실레마을에 문학산책로를 조성하는 등 김유정 작가의 문학적 업적과 문학정신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2002년 8월 개관한 김유정문학촌을 운영하고 있다.

김유정기념사업회는 현재 김유정추모제, 김유정문학제, 학술발표회, 청소년문학축제, 김유정문학상 시상, 김유정문학캠프, 김유정백일장 및 소설문학상 시상, 소설의 고향을 찾아가는 문학기행, 김유정 소설과 만나는 삶의 체험, 순회문학강연 등 각종 문학축제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김유정문학촌은 2개의 전시관에 김유정의 삶을 소개하고 그의 작품을 전시하며 홍보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이 전시관에서는 김유정이 몸담았던 구인회와 그의 문우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작품의 배경이 된 당시 농촌 상황을 알리고 있다.

김유정을 추모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 운영하여 그의 생애와 업적을 일반시민들에게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중국 노벨문학상 수상자 莫言 작가가 한국방문 시 ‘김유정문학촌’을 찾았다고 한다. 莫言 작가는 향토작가로 유명하다. 김유정도 한국에서 가장 이름난 향토작가이다. 아마 이런 공통점이 莫言 작가가 이곳을 방문한 계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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