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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이 풍요한 고장을
량춘식 (연변)
포장도로가 없이 산굽이를 돌고 돌아 따발길로 이마를 늙히고 살아도 골안이랄 상징일 수림마저 차츰 벌거숭이로 바꿈하는 판이더니 그걸 구실로 못살데라고 떠나간 사람들 대신 출국바람속에 뭉치돈을 버는가 싶더니 그 번 돈으로 도시로 현성으로 나가 살아내던거였다. 90년대 초반기부터 고향을 뜨기시작을 한게니 한 시오륙년을 넘기니 백이십여호가 싹쓸이로 나가버린상 싶게 비였다.
해덩이처럼 발랄하던 그 시적이 열일곱살이더니 이제 그는 덧없이 서른두살이나 먹었다. 그간 남자는 으레 맛볼것도 가리잖고 본것이라지만 처녀도 아닌 맘에 없는, 그것도 소원이 아니게 갱년기의 한족 아낙한테 희롱을 당하고… 그 구겨진 자존 때문에 원통하고 유감스럽기 짝 없는건 말고도 어데가 말할곳 없게 부끄럽고 자존심 질리는거였다…《나도 떠났더면은…》하는 소리로 자신을 안위해보기도 해온 그던 것이다.
돌이키면 우석이 자기에겐 꿈도 많았다. 어느것 하나도 실현한 것 없다지만 10세땐 전투영웅이 되겠다 했고 15세땐 이름난 남중음가수로 돼보고저
아찔한 소나무꼭대기에 바라올라 꽥꽥 소리질러 노래도 뽑아댔었고 20세땐 이름난 작가로, 25세땐 농민기업가로… 그러다가 차츰 리상은 색바래져가고 술군이 되고 놀부가 되어간거였다. 부끄럽지만 그뒤로 지금껏 한 생각이란 가리잖고 알맞춤한 녀잘 만나 장갈 드는 것으로 늙은 부모의 생전의 소원을 풀어주는거였다. 그런데 세월이 다 하도록 그런 기회는 시종 주어질줄을 몰랐다.
무당의 말도 드러맞는 것 같았다. 우석이는 두루두루 걸릴게란 없는거고 기구하리란거였다. 덩치 크고 콩마대를 옆구리에 끼고 달릴 기운이니 남자 우 남자인것이고 부리부리한 두눈에 코 크고 이발 드세니 사내다운지라 맘씨 또한 비단이다. 어려서부터 남과 싸운적 없고 자기걸 남 다 주어버리는 성질이였으니 남자 치고 그게 흠이란거였다.
《에라 이 자슥아, 뉘길 닮아 그케 맘씨 좋노. 맘씨 좋으니 돌아가며 손핼 보고 그러니 덩치값 못하게 담이 참새담으로 남 다 나가보는 버덕엘 못 나가살제이. 》
아버지가 버럭버럭 나무랄때면 우석이도 참을수없어 자길 변호한다.
《우린 웨 한국에 친척이 없는거죠? 우린 웨 이리 가난한거죠?… 그러니 담이 있대도 여기 개골창 올챙이 시적으로 살아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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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도 싫은거지만 가슴에 손 얹고 눈감고 고민을 가해보노라면 우석이, 자기란 놈은 확실히 담대하나 새 가슴인게였다. 쩔둑발이 홍수도 쩔룩쩔룩거리는 주제로 어뤄쓰란델 나가 신발 징 박고 하루 수입 몇백원씩이나 올린다든데, 처녀적 아이를 지운적 있다던 살짝곰보, 영순이 그 가시내도 어느 도시루 들어가 귀부인으루 잘 살구있다든데… 휴- 우석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머리를 들고 눈길을 두어갔다.
이, 우석이- 가을 해볕이 훼슬훼슬 튀여오는 속을 새 쫓는 허수아비 만들어가는, 둬짐 논밭을 낮에 다루고 저녁과 어뜩새벽이면 한족 왕쓔리의 조수로 두부앗는 일을 거들고 벌어내는 사내, 어쩌면 마지막 이 가을속의 황우석일지도 모른다던거였다.
이 가을과 더불어《떠나야지…》하는 사색이 그예 아람으로 터지려는 때문이든지 사내는 새삼스럽게도 그 큰 머리통을 주억거려 산과 들과 강과 늪과 또 자기의 남자를 앗아간 육실헐늠으 년이 있을 왕쓔리가 드릉드릉 코를 곯 뚜퍼집쪽을 시커먼 집안을 눈알 굴린다 … …
한해 또 한해 지나간 그 가을날들이야 어디 익고 그윽하고 설레던 계절이였던가… 한이 설킨양 슬픔처럼 피였던 꽃들은 동구밖 산길섶에서 떠나가는 사람들과 기약없는 리별이 한창이였으며, 밤마다 아람번 별들이 쏟아져내려 잡플에 묻힌 논밭들을 아쉬워하더니 이내 뒤산도 빈 산이 됐고, 반달늪과 쏘강의 병 들고 여위고 줄었더라도 어린 메기와 붕어새끼들의 안부를 묻는 한편으로 조개와 산천어에게 알이 실리도록 슬프나마 맑은 바람을 들여주고 있었다.
코끝이 맹맹해나도록이나 맑은 가을 하늘을 아른아른 나는 잠자리들의 투명한 몸짓마저도 슬픔으로 흘러드는 느낌이던 그 이어지던 계절속으로 우석이의 방황은 얼마나 멍청하고 애나던지.
《세상 악하고 못된게 사람이지…》
늪이면 늪마다 강이면 강마다 화학약품을 쓰고 남포를 터치고 전기를 넣어 고기를 못살게 굴어 아이만큼씩한 농어를 잡아내던 60년대를 거슬러 고기새끼들도 돌쫑개새끼들만 보이던 90년대를 두고 농부, 아버지는 그렇게 가슴 아파했다.
《세상 똑똑헌체하며 무리한짓 피우는게 농부들이야. 망할짓을… 》
산마다 아름드리 송백을 마구 채벌하여 차츰 벌거숭이 된 민둥산들에선 산 사태가 지고 먼지바람이 귀신처럼 울어 망하지않나 두고보라며 욕설을 퍼붓군하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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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세상도 다 보네… 이게 웬 꼴이가. 농촌이 없어지는 세상을…》
실말이지 농포, 아버지의 눈에 세상은 천지개벽으로 안겨왔다. 아니, 사회관계망이 없고 돈줄이 없어 남들처럼 맘대로 어쩔수없던 사람들에게 세상은 놀랍도록 꼬불견이였을것이였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도록이나 문전옥답도 마구 버리고 해변도시로 현성으로 향진으로 올라가 사는 세월이니말이다.
단지 불쌍할뿐이다, 아버지가. 아니, 그 미열은 자식인 우석이한테 치렬하다. 눈만 펀히 뜨고 남 다 잘되는걸 보고 앉아 빈털터리로 자길 앙탈질할뿐이니.
60년대 중반기까지만도 산에는 침엽림 활엽림으로 숲이 꽉 우거지고 가축인가 싶게 동네까지 심심찮게 내려와 꿀꿀거리다 총에 맞아 뻐드러져 술군들 술안주가 되던 그 흔하던 메돼지와 놀가지며 범, 곰들이 무시로 나무군들을 위협했다. 그리고 승냥이와 늑대무리들이 출몰하여 토비무리를 쫓았다던 촌사에 오른 전설같은 얘기… 벌은 기름이 철철 흐르게 오곡이 파도처럼 설렜다. 강도 많아 앞강 뒤강에 남강이요, 실개천도 소오줌, 말오줌, 당나귀오줌실개천으로 불렸다. 언제나 달이 내려 걸리던 반달늪이며 야밤에 처녀총각이 홀딱 벗고 들어가 목욕하다가 빠져죽었다는 몽달늪, 놀부총각이 더위에 못견뎌 들어갔다가 함박만큼 큰 조개한테 물려 불알 한쪽 떼웠다는 말씹늪… 주먹만큼씩 큰 왕거미가 그물을 틀고 박달새 재 넘어가는 대낮도 한밤중같이 깊은 소박골, 견우직녀처럼 강과 벌을 사이두고 천년을 마주보고 아츠랗게 솟은 코대벼랑과 대포산…《구구구구…》,《뻐뻐꾹…》새들의 목청 고운 지저귐속에 경치수려한 고장이였다.
그렇게 풍요하던 고장이 우석이가 소학교를 다니기시작을 하던 때부터 차츰 코앞에서 하던 장작나무도 깊은 산을 들어가게 되었고 메돼지 사냥도 이삼십리 산곡을 찔러다녀야 된다던거였다. 무서운 일은 초중시적부터였다고 그랬다. 화학비료나 살초제를 쓴 때문에 그렇게 버글거리던 강가재가 자취를 감추고 종래로 없던 황사바람도 분다던게였으니… 볼수없던 산사태나 충재까지 드는 일도 나지니 그저 눈 뜨고 하늘의 조화라하던 그 무식이 악마던 세월이였다.
그럴망정 그나마 적잖이 남은 그리고 흔적이랄지라도 아름다움과 고풍적 유혹이 질척하리만큼 암내런 듯 당겨와 초중도 중퇴하고 16세에 농군이 된것이였다. 벼농사 짓고 소수레에 나무도 박아싣고 황무지 일구고 손바닥같은 물고기 잡아 횃대 끝에 말리다가 겨울이 오면 옹노를 놓아 토끼, 잔꿩, 놀가지도 잡는다. 그땐 얼마나 좋은 세월이든가. 인물 번듯하고 부지런하고 맘씨 좋아 나가도 칭찬, 집에서도 칭찬소리를 떠날줄 몰랐다. 웃집의 순애와 아랫집의 금순이가 장갑도 떠주고 신발도 씻어주면서 다투어 따라서 골머리를 앓고 고민까지 했댔다. 그리고 탄식까지 했다. 손꼽아 세여보면 아직 장갈 들려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그런데 그런 탄식과 즐거움과 행복은 참으로 공연한것일줄이야. 스무살도 되기전인데 꿈에도 생각지 못한《바람》에 오랜세월, 기차 못타보고 개울물에 얼굴 비춰보던 농민들이 비행기 타고 바다있는 도시루 들어가 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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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집도 떠나…》그렇게 맘이 움직이기 시작을 함에따라 대대로 살아온 고향이 차츰씩 정이 떨어지고 있음을 어쩔수가 없고 있었다. 톱질과 도끼질에 통나무숲이 사라지고 지어 벌거숭이가 된 산들과 나날이 묵어나는 땅에 수풀만 우거져간다. 하루걸러 찰떡 치고 되놀이도 하던 오붓한 마을은 이제 띠염띠염 여나문집만 남았고 담 끓고 허리 꼬분 늙은이들 깇침소리만 들릴뿐이니 낮이면 침침하며 밤이면 바람소리만 귀신곡을 뽑는 곳이 되어간다…그런들 어쩌란 말인가. 떠나다니 어데로 떠난단 말인가. 우석이는 단 목이 빠지게 죽지못해 살아온것뿐이든 것이다.
우석이는《푸르릉》하는 소리에 깊은 생각속을 떨쳐나와 허공에 시선을 걸었다. 천마리가 될상싶게 한무리의 참새들이 하늘을 까맣게 점 찍으며 우석이네 벼밭을 실컷 까먹고서 황혼속을 깃들이고저 날으는 중이다.
《그저 렵총을 <탕!>하고 쏴야겠군, 제길! 》
그런 중얼임도 입밖에 튀여나가자 이내 헛된 소리임을 깨닫는다.
《떠날 놈이 렵총이 다 뭐야. 》
그런 새삼스런 소릴 짓씹으며 그는 허수아비의 머리통에 퉁자를 덜렁 씌우고나서 논두렁에 힝하니 올라섰다.
서산에 해는 지고 우석의 얼굴엔 근심으로 구겨진다.
두부앗이 왕쓔리아낙이 기다릴 저기 한족동네의 시커먼 나무구새에 가 눈길이 머물기전에,
《챠, 똑 동년적같이 산과 벌이 여물어가는디 그 시절과는 달러서 온통 버림을 받은 꼴여 꼴… 》
그런 소리가, 요즘들어 매일 하는 똑같은 소리가 나가며 성매방아처럼 눈길이 돌아간다. 그랬다. 그건 인간들에 의해 찍히고 여위고 비여갔던 자연의 부활, 산은 숲이 무성해져 짐승들이 찾아들고 화학제사용으로 알카르를 잃었던 벌이 성해지고 오염되였던 강과 늪도 원기를 회복한것이든 것이다. 그러니 자긴 어쩔수없이《페농》을 면치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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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새들이 많아진데 비하여 논밭이 너무 적었으니 몇백사람이 농사짓던 넓은 벼밭에 덮치던 적은 새들이 지금은 한두사람이 짓는 왕쓔리년 이불자락만큼한 벼밭을 덮쳐들어 다 까먹으니 더는 자연을 람벌 할 사람들이 없어진 걸어온 세월동안을 산과 벌이 살찌는게 좋을턱 없다. 하늘로는 새들이 벼, 밀농사를 까먹고 까마귀들이 옥수수를 발가먹는다. 그뿐인가. 산으론 메돼지들이 감자, 무우, 고구마를 다 뚜져먹는데다 범이 내려와 우석이네 멍멍이를 물어가더니 피똥을 갈기던 암소마저 각을 피뤘으니 이 아니 똥, 똥같은 풍요함이 아니랴.
고향을 떠나느라 제정신이 아닌바람속에 거의 20년을 바라보게나마 산에 벌에 인적 드문때문이였을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댔는데 이토록이나 긴 세월동안을 수목이 커가고 잡풀이 성기고 물이 씻어 흘렀으니 독자들이여, 20년 가까이 고향이야 얼마나 원시적일만큼 푸들었으랴.
《참말로 산천경개 좋을시고… 하건마는…》
어제처럼 똑같은 소리로 중얼이며 머리를 절레절레 젓는 것은 고독이 시키는 탄식인지 말못할 유감이 자아내는 한탄인지 모를 일이였다.
곁에 한또래 친구들이라도 있다면,
《허허허, 우리 저 대포산에 올라 부엉이 알이나 꺼내다 술안주 시킬가… 》
곁에 처녀들이나 있다면,
《내 산천어 잡아올게, 우리 들놀이겸 회 치고 굽고 고추장 풀어놓고 볼랑볼랑 끓여서… 》
혹은 곁에 곰보안해라도 있다면은,
《산 좋고 물 좋고 다 좋은데 우리도 한번… 》
그러나 우석이에겐 그저 자기의 그림자밖에는 없다.
《세상에 젤 참기 바쁜거 나 알어유. <로빈손크루쇼>처럼 사는거 있잖아요… 》
아버지 앞에 로빈손크루쇼 얘길, 그것도 누렇게 넌덜거리는 소설책을 읽은 것을 장황히 늘어놓던 그날, 오후도 무더위에 소불알이 익어터질 늦은 오후에 그림자와 같이 보기만해도 시원할 남강으로 나간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기가찬 칠월의 무더위였다. 폭양속에 산과 벌의 초목은 나른해지다못해 축 처지고 길섶 고들빼기나 여뀌, 개망초들은 밸처럼 탈렸고 길은 발목이 빠지게 먼지가 풀썩풀썩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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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이-, 배촨을 건느게… 》
대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우석이를 움켜잡았다. 챙챙한 녀성의 목소리든 것이다. 대안은 남쪽이였다. 남쪽켠에서 녀자가 건너오겠단다. 그런데 조선족녀자가 아니고 한족같았다. 처녀도 아니고 아낙년같았다… 죽는 꼴을 보이고 있었다. 용용히 사품치며 흐르는 시커먼 강쪽으로 마주하고서 허위허위 손저어대며 배 좀 건네다 달라고 야단법석을 짓고 애원질이다. 그제야 보니 누가 한 짓인지 배줄이 끊어진채 배는 우석이쪽 둔치에 와 붙어 있는게 아닌가.
우석이는 줄배에 뛰여올랐다. 배두에 서서 힝 하고 한번 와이야줄을 당기면 배는 네댓메터씩이나 수면을 미끌어져 나간다.
대안에 가 닿고보니 매일 식전마다 강 건너 마을로 두부 팔러 다니군하는, 논 농사는 뒤전이고 콩 농사같은 한전다룰줄밖에 모르는 후리골동네의 두부장사, 왕쓔리가 아닌가. 붉으우리한 얼굴은 가을 호박같고 개구리 모양 불쑥 내밀어진 배 때문에 허벅지의 거무튀튀한 바지는 터질 듯 한껏 신다리에 압박되여 갱년기의 아닉이 아니라면 만삭의 임신부로 잘못 착각을 할지도 모른다.
더위속에 버들가지를 한줌 꺾어 머리뒤로 가린채 그녀는 울상을 하고 하소연을 한다.
《어느 씹둥이루 잘못 빠져나온 놈으새끼가 배줄을 끊어서… 이건 식전 아침에 두부 팔고… 개새끼… 당나귀좆같은… 구족을 멸해도 시원찮을 네 에미… 같은 새끼… 》
《듣는게 욕을 먹는다구 그만 하라구유. 》
그러며 우석이는 두부판이 빈 리어카를 낑 들어 배판우에 실었다. 어느 고약한 사람의 행사 때문에 식전아침에 나와 아침, 점심까지 촐촐 굶은 아낙은 그제야 기아를 느꼈던지 맥이 빠져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참 고마워, 젊은이》그런 뜻이던지 씽씽 배를 몰아대는 우석이만 뚫어지게 쳐다보는게 아닌가.
《왜 그런 눈으루 사람 보아유? 》
《배 고파서 본다, 왜? 헤헤》
《하참. 배 고픈데 날 보믄 내 고기가 먹혀유? 》
《조선족 총각들을 눈요기하믄 배 불러진다더라, 왜. 헤헤》
《왜가리처럼 왜왜거리면서 이 아줌마가 이거… 물에 곤두박힐라. 》
우석이는 슬그머니 골이 난 자신이 만족스러워졌다. 그것도 어림셈을 쳐도 자기보다 열댓살이나, 고모벌은 될 한족아낙의 입에서 마구《조선족총각》을 희롱하려들다니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게 놔둘수 없든 것이다. 그런데도 아낙은 입을 가만있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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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으루 들어둬. 나 이래뵈두 불쌍한 녀자야. 남편이 풍을 맞구 남자구실을 못한지 석삼년이라구.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한밤중까지 두부 세판을 혼자 하느라면 온몸이 제 살같지가 않게 아프구 물씬거리지… 한족동네라야 끌끌한 남자들 다 도시루 나가 일감 찾어갔기에 없구… 그러니 내 어찌 자길 부러워하지 않겠나…》
《사위루 삼구싶다 그런 뜻이우?》
《늦었어. 딸이 두달전에 금방 시집을 갔구만, 쯧쯧. 》
《병신같은 눔에게 막 줘뿌린거 아뉴? 아니믄 그 집딸이 좀 어딘가…킬킬》
우석이는 질투 때문에 빈정거렸다.
《이럼 어떻겠나, 내 매일 일공으루 4원50전씩 딱딱 줄테니까 새벽 네시에 와서 두부 앗이를 거들고 오후 세시반에 와서 한판을… 》
《매일 4원5십전을 준다? 》
우석이는 눈빛이 확 일었다. 하루에 꼭꼭 4원5십전씩이나 손에 돈을 쥘수있다면 한달에 삼사는 십이에 삼오는 십오라 그러면 백이십원 더하기 십오원 하면은 백삼십오원이라, 일년이면 천오백원도 넘는다. 농사를 지어서 얼마 떨어지던가. 이건 큰 수확이 아닐수 없었다. 허구헌날 자기 집, 그나마 수목이 우거짐에 따라 새 들이 엄청 놀라운 수자로 늘어나 이제 더 벼농사를 짓는다는건 골치 아픈 일이겠든 것이다.
《왜 딱 4원5십전씩이유? 아예 5원이면 5원이지? 》
《네깟눔이 나와 흥정질이야, 일년 농사를 참새와 메돼지한테 다 앗기고 아비아들이 배 곯고 사는 주제에 하루에 4원5십전이믄 업여로 버는게 아냐. 돼지고기 두근 나마 사고도 술 한병값이야. 싫으면 관둬라. 하겠다는 사람 쌔구버렸으니까. 》
《헌투레길 주어 팔아두… 》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자신은 죽어도 고물장사는 못하겠기에 응낙을 해버린거였다.
《아부지, <로빈손크루쇼>알지? 나 랠부텀 로빈손크루쇼처럼 안 살게됐어. 새벽과 저녁편으루 두부간에 가 물퉁자 들어주구 월급쟁이질하게 됐어유. 크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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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눔 자슥아, 로빈손인지 하는 놈이야 태여나자 빈손뿐으로 빈털터리가 아니겄냐. 그래서 로빈손! 넌 뭐냐? 태여나자 황우석이니 황금덩일 소수레처럼 굴리구 산다는거 왜 모르느냐. 》
아버지도 대견스러워했다. 그도그럴것이 우울증이던지 공허증이던지 아들놈이 새벽잠이 통 없이 큰 눈만 뚱그래서 천장만 쳐다보는가하면 저녁엔 놀러갈 곳 없이 개만 안고 노는 것이 안타까와 못 보겠던 것이다. 이젠 됐다. 돈보다는 할 일이 있으니 됐다. 거기다가 자기로서도 썩 내켜하니 말이다. 어찌 그렇치 않으랴. 하나밖에 없는 씨알머리가 버덕엘 못 나갈망정 물앉은 백치로는 되지말아야 잖은가. 헌신짝도 짝이 있다거늘 기회를 보아 한족과부라도 부쳐놓아 손주놈이나 보믄 될일인데.
그리고 생각은 우석이도 은근히 하고 있은지 오랬다. 순애나 금순이같은 가시내들은 이제 죽었다 살아나도 더는 못 볼것이고 그나마 점점 나이를 먹어가니 이젠 어느 한족마을 깊숙이 헤치고 들어가 좋긴 아이 없는 과부년이라도 좀 젊은 것으로 맞아들일 참이던 것이다. 순이랑 친구들이랑 알면 비웃을것이겠지만 이제 무슨 방법이 있단말인가. 자긴 버덕으로 나갈 놈이 못된다. 그런 연줄을 달아줄 사람도 돈도 없다. 자기같은 무지러지가 나간들 도시나 현성에서 뭘 해먹고 산단말인가.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두 말아얀다. 》그런 중얼임은 언제부턴가《올라간들 무신 소용 있갔남. 도리여 내려다 볼끼고만은.》했다.
우석의 신조는 왕쓔리네 뚜퍼간으로 다니고부터 굳어진 듯 했다.
《망아지의 세계가 그것이고 우물안의 개구리 세계가 그것이야. 각기루 사는 맛 다른거다. 》그거였다. 뜻인즉 이 세상천지 어델가나 뻐둑거리고 일해야 먹고 사는게 농민일망정 음식점 일을 하느라면 펄펄 끓는 국에 델것이고 건축일을 하느라면 벽돌에 대갈통이 깨지리라는 거였다. 그러며 자기야말로 두부나 거르며 콩물살이 오르는 일감을 잡았노라고 느긋한 기분이 되군 했다.
아, 이 황우석이가 언제 버득으루 나가지못해 가슴을 박박 긁으며 못난이 질을 한적 있었던가싶게 그는 첫 새벽을 두부간으로 찾아간 것이다.
일은 별거 아니였다. 뽐프로 자아 큰 물독에 물을 채운다음 련거퍼 물 십여퉁자를 퍼내여 두부가마에 붓는다. 다음 밖에서 석탄을 퍼 들인다. 그런 일은 순식간에 끝난다.
저녁에 그는 일이 끝나던 자리로 일삯을 받았다, 4원5십전을.
《챠, 이런것도 다 일이라고. 카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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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번다고 아버지앞에 으시댔다. 하긴 밭일을 하는외에 업여로 벌어내는 현금치기였으니 그럴법도 했다.
그런데 하루이틀 지나면서 보니 일은 거기에 그친게 아니던 것이다. 울안에 피둥피둥 살찐 돼지 열마리나 되었는데 돼지죽을 주는 일을 맡기는게 아닌가. 그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자칫 똥을 바르고 더러운 일인데다 돼지죽에 손을 데거나 죽지게를 네댓번 지고나면 땀이 비오듯 한다, 제길. 아무리 생각해도 4원5십전을 받고 돼지죽을 준다는게 억울했다. 그렇다고 일삯 5원을 채워달라기도 그렇고.
뭐나 오래하느라면 꾀가 생기고 고가 튼다. 실하면 약하게 만들고 애하면 푼하게 하는게다.
그는 자기가 보고있는 손핼 미봉하고저 했다. 그건 죄가 아니라고 여겼다. 두부를 앗느라고 김이 뽀얗게 싸여 앞을 분간키 어려울 때 콩물을 꿀럭꿀럭 배 부르게 마시는 것 말고라도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땐 포장된 두부 한모를 슬쩍 품속에 넣는다. 두부 한모에 1원5십전이라, 콩물을 적어도 50전어치는 마셔두었겠다 그러면 일삯까지 하루당 땡땡 굳은 6원5십전이 되든 것이다.
두부 한모쯤 잃어지고 콩물 반바가지쯤을 들이키는 것이 해내는 일에 비해 과분한게 아니든지 그냥 모르는척해두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억지로 참고 지낼 생각지 못할 일에 닥쳤다.
원체 입이 쌍트럽던 아낙의 입에서 우석일 공개적으로 멸시를 하고 대하는 거였다.《돼지보다 둔한 놈이…》,《개같은…》,《거러지같은 꼬락서니를…》그런건 관두고라도《서른살이 되도록이나 녀자 맛도 못 본놈》이랄때는 이가 갈리게 참아내군 했다. 그저 그런년이겠거니, 남편의 병시중으로 고생고생하던 나날에 생긴 괴병이겠거니 했다.
이것저것 탓하다간 이런 돈벌이마저 떼울것같아 참는도중이였는데 콩물 사러온 사람들에게 콩물 파는 일까지 맡긴다. 어디 그뿐인가. 두부를 하고난 뒤의 콩비지같은 찌꺼기를 큰 퉁자에 담아 지게로 져 나르란다. 나무를 패고석탄을 깨고 두부방바닥을 걸레질하고…
어느날 일에 지쳐 들어온 아들을 보다못해 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어진것아, 배 터지도록 콩물이나 마셔두고 배가죽이 데도록 그 뜨거운두부모나 넣어오는데만 그치지말고 일한것만큼의 삯을 올려달라고 해보려므나. 휴-》
그제야 심심히 깨닫고 힘 입어 일삯을 단 1원5십전이라도 올려달라고했는데 쓔리가 코를 핑. 하고 풀어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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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전을 가해줄테니 그것도 적다면 가서 온하루 메돼지나 새를 쫓던지… 5원씩이면 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거야. 》
하루 또 하루를 5원씩을 받아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벼개밑에 돈을 모아두는 재미던지 억울함도 참고 코도 자주 푸는 뚱보 아낙의 말이면 꼬빡꼬빡 들어줄밖에 없고 있었다. 그러나 맘속 깊은 곳으로부터 지금껏 장갈 못들고 있다는, 남다 산골오지를 떠난 이 곳을 여적 떠나지못하고 남아 허덕이는 자기의 꼴을 우습게 보고 없수임을 대하는 왕쓔리겠음을 차츰씩 그 언행으로부터 깨닫으며 수치감이 쌓이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그날도《이 둔한놈아, 돼지보다 못한… 》하고 앙칼진 욕설을 들쓰고 나선뒤 불 붙는 속을 달래고저 마을을 벗어났다. 새벽에 나서서 두부 두판일을 끝내고나니 콩물을 마셔두었을 망정 밥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발길은 곧추 대포산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제하던 생각이던가, 남들처럼 이 산촌을 벗어나 현성이든 어느 도시든 그런 천국같은 곳으루 가 살리라던… 그런데 지금은 저 왕쓔리네 두부방도 벗어나길 이같이 바쁘다니 대체 이건 무슨 숙명이란말인가.
《그래, 뛰쳐나오고 말테다. 못 나올게 뭐야… 》
더러운 년의 노예처럼 지내느니… 대체이 우석이가 어데가 못나서 쓔리네 콩물을 팔아주고 돼지를 먹여주고… 그러다가 주체할수없게 웃음이 나간다. 킬킬 그냥 웃어대다가 끄으윽 하고 울음이 질러지는게였다 그는 그렇게 엎디고 우는 곳이 대포산 정상의 떡메바위우든 것이다.
훼슬훼슬 한낮의 열기를 되 뿜어내는 바위들에 눈물을 텀벙텀벙 쏟는 우석의 꾹감은 눈숙에는 자기가 열살잡던 해에 병으로 저 세상 간 어머니가 보인다.
《우석아, 너한테 누나도 없고 누이동생이라도 놔주리라 했는데 이 어미가… 이 어미마저 멀리로 가니 넌 이제 얼마나 외롭겠니… 우리 우석이가 장차 큰 사람 되는걸 보려했는데… 》
어머니는 북망산에 묻혔다. 북망산에서 이 우석이가 출국을 언제 하느냐, 너도 도시루 나가 휘 돌아보고 거기서 살며 돈도 벌지않느냐 손저어 물어오는게 보인다… 그리고 자꾸 눈물 훔친다. 이 아들이 불쌍하단다… 그리고 위로도 해준다. 언젠가 우리 우석이도 이 좁은 곳을 벗어나 바다가 있는 큰 도시루 들어갈때가 있을게라고… 꼭 있다고. 여기 고향이 나빠서가 아니라 도저히 혼자서는 살아내지 못하기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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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이는 눈물을 쓱 닦고 대포산 높은 바위우에서 아래를 굽어 살핀다. 그는 금방 큰 결심을 한 듯 앞 가슴을 쑥 내밀고 이를 악문다… 저 푸른 강, 반달늪, 그리고 아름드리 소나무 숲…어데 간들 하루에 돈 5원어치 벌지못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자신심은 차츰 식어가고 있으며 한숨으로 새여나간다.
이태전부터 그는 긴긴 겨울속을 돈낟가리 쌓을 꿈을 설계한것이였다. 그런 꿈은 어디까지나 환상적이 아니였고 과학적이군 했다. 현실이 립증하는게였다. 오래동안 삼림을 람벌하거나 강이나 늪에 남포질하거나 화학약품을 쓰고 사람이 없었던 탓으로 산에는 버섯과 약재가 흔하고 짐승이 욱실거리며 강과 늪에는 물고기가 우글거린다. 문밖만 나서면 모든게 다 돈이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태동이 되고나자 그런 꿈은 생각과 판이했다. 산에 들어가 한주일이나 헤매고 다녔지만 인심은커녕 황기뿌리 한마디 눈에 띄지않았고 버섯도 한여름에 비가 내려야 눈에 띄는게였다. 그렇다고 곰이나 메돼지는 잡으려다 되려 먹히지나 않겠는지 놀가지나 토끼새끼 한 마리도 그저 눈 펀히 뜨고 바라볼뿐이던 것이다.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낚시질 재간이 무딘지라 온 하루를 앉아도 낚시찌만 갈아대다가 먼지 털고 돌아서기가 일쑤이다. 가을에는 흔해빠진게 물고기라 어쩌다 큰걸로 잡아팔려해도 사는 사람 드물다. 한번은 늪에서 왕사발만큼한 조개 한드럼 잡아서 뻐스 잡아타고 현성으로 팔러 갔던 일이 있다. 갈적에는 제꺽 팔아 손에 돈 백원이나 쥐고서 개고기탕에 술 둬냥을 뽁 하고 얼근해서 녀 리발사의 잘근잘근 녹여줄 손가락에 만지워 머리나 깎고 그담엔 몸 전신을 막 죽게 주물러낸다는 미인 안마사한테 가 피곤기나 확 풀어보리라 한건데 이건 뭔가,
《당나귀발통조개, 소발통조개, 말씹조개- 청춘에 혈기 왕성하고 중년에 원기 돕고 로년에 회춘을 하는 조개- 사시유- … 말씹… 》
그렇게 부끄럼 무릅쓰고 왜가리 목청을 뽑았지만 온 오전을 생각처럼 와 사려고드는 사람 없었는데 점심때도 많이 기울어질즈음,
《이그 쯧쯧, 늙은 할마시의 그것처럼 축 죽어빠진 걸 뉘 산답데. 쥐여뿌려도 아깝잖은 것을… 그저 한 5원에 내게다 다 넘길거지. 》
그제야 드럼안을 들여다보니 한낮의 폭양에 그 싱싱하던 조개들이 싯누른 속살을 드러낸채 벌려진 따개비사이로 짙푸른 비린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는데 쉬파리가 잉잉 덮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더럽게 사기를 쳐 폭리를 보려한다는 괘씸한 생각에 올려다 보니 얼핏 익어터졌다고도 할수없고 물쿼서 흐물떡거린다고 할수도 없게 얼굴을 들여다 보면 꽤 젊었고 몸뚱이를 보면 개구리배 모양 엉덩이아래로 터지게 청바지가 한껏 압박돼있는 허벅지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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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태양열기를 다 담았던지 이글이글한 그녀의 탐욕스런 눈길을 피해 그녀 앞 보자기안을 들여다보니 아차, 저것도 사람 먹게 내다 파는 음식인가. 위잉. 하고 쉬파리들이 날아나는데 죽어 넘어간지 이레도 넘게 말의 그것같은 돼지순대가 시커멓게 꼬들꼬들 말라탈려빠지고 변해있었든 것이다.
《응쯧쯧. 저게 자기의것이유? 속은 쉬여빠지구 껍질은 질긴 뭣같을 그것처럼이나 까탈리게된 것이… 쉬파리들두 못 먹어 날아나누만기래여. 그러니까 내걸 사기치려구? 》
《뭐? 사기를 쳐? 야, 방치같은걸 차구 사내답지못하게 산증에 성병 걸린 아낙년의 그것같은 조개나 잡구 나다녀… 드럽다, 퉤. 》
《이썅. 어데가 털 뽑히구 와 입씹질이여. 이게 여적 녀자루 퀴퀴하게 썩다가 뭣같은 돼지순대나 팔구 살며 만족을 느끼는… 》
… …
더 돌이키기도 싶잖다. 그러고 보면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두부방에서 돈 5원씩 어김없이 벌어내는 일도 정작《퉤!》하자니 아쉽기도 한게였다.
우석이는 두부방에서 새벽녘과 저녁시간동안을 울며 겨자먹기로 일을 해야 했다. 여름도 깊어감에따라 날씨가 어찌나 무더운지 일을 조금만 해도 온 몸이 물자루가 된다. 그는 아예 짧은 바지 하나만 걸치고 웃동을 드러내고 일했다. 떡 벌어진 앞가슴과 울뚝불뚝 일어선 근육은 고동빛으로 번들거린다.
그날도 이른 새벽을 두부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왕쓔리가 변했다. 아니 전혀 다른 녀자루 나타난거다. 소매 짜른 연두색 블라우스를 입고 붉은 목단꽃이 수놓인 앞치마를 두르고 나섰는데 산봉우리같은 젖무덤이 덜렁거리고 입술은 붉은 메니큐어를 칠하고 눈 언저리도 잉크빛으로 칠했다. 그리고 일을 하느니 곧 땀으로 얼굴을 검붉게 얼룩간 것이 흡사 무당굿을 하는 귀신어멈의 얼굴 꼴이다. 그래도 필경은 녀자라서 자꾸 거기로 눈길이 지꿋게 가는걸 주체못한다.
말씨도 다르다.《이새꺄… 돼지같은… 》하던 말투를 고쳐《총각》이라고 부르는데다 쩍하면《아유… 꺄루룩 낄낄 》잘도 웃어준다. 그건 그렇고 새뽀얗게 두부김이 서려올라 앞을 잘 분간할수없는걸 턱대고 자꾸 부딛쳐오며《아야야, 간지러…》하고 엄살인양 간드러진 소릴 뽑아대군 하는데 그럴적마다 두부살처럼 뭉글뭉글한 젖가슴이 감각되며 주착없게 아래도리가 튼실해나서《제길할!》하는 신칙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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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살을 랠모레로 쳐다보는 아낙의 성감도 쉬여빠질걸로 짐작을 하고 그저 그럴때가 있겠거니 례사롭게 대하던, 아니 그러한 씁쓰름한 아낙의 살결을 부딛치고 흥분을 느끼던 자신이 되려 어처구니없고 부끄럽게 검토해보던 어느날이였다.
그것도 하루 일에 온 몸이 녹작지근 할 저녁도 아니고 몸의 어느 부위나 샘처럼 기운이 솟는 어뜩새벽녁이든 것이다. 두부방에 들어서서 두부 한판이 다되여갈무렵, 새뽀얀 뜬김속에서 우석이가 걸탐스레 뽀얀 콩물을 둬모급 들이키고 있을무렵이였다. 뭔가 보드랍게 자기의 앞가슴을 쓰듬으면서 목덜미를 핥아오던거였다.
《우리집 두부물을 마시고 찐 탐스런 이 살을… 일삯 1원을 더 올려서 6원씩 줄게… 》
《… … 》
우석이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힘이 무궁무진했지만 왜 그런지 그녀의 몸에 밀착된 자기가 흥분에 취하며 그대로 끌리고 합작을 하는게 아닌가… 우석이는 그녀와 관계를 끝내고나서 아주 잠간새에 일어난 일을 두고 기막히게 후회가 들었다. 그는 냉큼 밖으로 뛰쳐나가 돼지굴곁에 쭈크리고 앉아《왝왜액》하고 구역질을 해댔다… 토악질을 해대다가 쿡. 하고 눈물이 솟구치는걸 막을수 없었다. 순애랑 금순이랑 얼굴들이 떠올랐다. 햇순같이 말쑥한 얼굴, 샘처럼 맑고 초롱초롱한 눈, 웃으면 박씨처럼 가쯘히 드러나는 아래우의 12대의 흰 이, 걀쑥걀쑥한 손마디, 치렁치렁한 쌍태머리가 날씬한 허리를 드리운 그네들이 알면 뭐라고 할까… 그저 미칠것만 같았다.
우석이는 남강으로 달렸다. 시퍼런 물굽이, 하늘의 정기를 핥아먹어 밑바닥끝까지 짙푸른 하늘같이 넓은 파도가 우석의 가슴을 쳐대는거였다. 돋을 볕에 눈을 부시는 물보라… 아침을 노래하는 물안개… 엊저녁도 높다란 대포산과 휘우듬히 수줍던 달을 잠재우더니 바람 세찬 한낮을 맞아 하늘을 입은 채 밀려와 둔치를 물어뜯고 자갈톱에 몸부림 치는 파도, 그 물바람속에 깃을 갈며 나비처럼 나부끼는 저 여러 물새… 댕기물떼새며 민댕기 물떼새의 가슴은 또한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 같은 활달함과 항홀함 때문에 우석은 더욱 분개했고 수치를 느끼며 몸둘바를 몰라하는게였다.
《풍덩!》하고 남강에 빠졌다. 아니 뛰여들었다. 씻어야 했다. 맑은 남강물로 오염되고 때국진걸 깨끗이 씻어내고 그러면 마음의 상처도 새 살이 돋을거라고 여겼다. 우석은 흙반죽을 이겨 들썼고 눈 알만 판들해가지고 강속 성긴 모래를 쥐여 자기의 몸뚱아리를 부어나도록 때려쳤다. 그리고 이제 더는 그런 수치스러운 짓에 몸 적시지않도록 높은 강턱우에서 거꾸로 세 번이나 강물에 몸을 처박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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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번만 더 왕쓔리와 그런짓 치른다면 이렇게 죽을테야》
그래도 돈 5원벌이는 아니, 이젠 6원으로 올라간 일삯이야 벌어야겠다고 옹근 밤을 잠 설치며 고민을 한 것이다.
질끈 눈 감고 두부방에 들어섰다. 총각은 총각이였고 촌뜨기가 옳았다. 왕쓔리앞에서 자꾸 몸둘바를 몰라하는 꼴을 보였고 정면으로 대할 면목이 없어했다. 그럴수록 왕쓔리는 그게 재미있다는 듯 꼴꼴 웃고 뽀얀 뜬김속에 몇번이나 정겹게 부르고 그 비대한 몸뚱아리를 꼬면서 꼬집기도 하는거였다.
아침 두부앗이와 저녁 두부앗이를 어떻게 참아냈든지 모른다.
왕쓔리는 하루 일삯을 건넸다.
《6원이 아니우? 왜 5원이유? 》
《야, 되려 네쪽에서 돈을 내야할텐데… 내가 아니믄 한뉘 남자질을 못할번했을건데. 》
《뭐야? 한뉘 남자질을 못해? 이런 썅… 》
고대 악담이 터져나온걸 못 참아했다. 그때였다. 우석이 눈앞으로 별이 튀겼다. 왕쓔리의 투박한 손이 뺨에 떨어진거였다.
《꼬리놈아, 내 말이 그른데 없어. 텅빈 마을에 방치같은걸 차고 한뉘 늙을 네 놈이…》
《에라, 더러운 년이 었다 대구 악다구니질을… 》
우석이는 드디여 폭팔했다. 갈퀴같은 손으로 왕쓔리의 낯판대기를 호되게 휘갈긴 것이다.
밤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시원한 바람이 볼을 쓸어준다. 등뒤로부터 아낙의 욕설이 들려온다.
《…수캐보다 못한… 뭣이 행복인줄도, 행복을 똥으로 아는 놈… 대를 끊을 미욱한 돼지…》
우석이는 왜 그런지 분하지도 아쉽지도 않고 있었다. 전번처럼 미친놈같이 웃지도 않았고 울음을 퍼지르지도 않았다. 무겁고 무거운 돌덩이를 부려놓은듯이나 걸음이 가볍고 멍에를 벗은 수송아지가 양지바른 초원을 만난듯한 자유로움이고 있었다. 그는《황포돛대》를 멎지게 휘파람 불고 있었다.
《미친놈이군, 미쳤다니까… 》
왕쓔리의 욕설이 멀리서 들려온다.
14
그러나 그는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늙은 아버지 앞에 풀썩 무릎을 꿇고는 눈물을 텀벙텀벙 쏟았다.
《아버지, 전… 전 랠 오전중으로 떠나가렵니다… 그렇게 결정지었으니깐요… 더는 이렇게 살수가 없다구요… 》
이 놈아, 뭐? 네가 이 아비를 두고 떠난다구… 불효를 저지른다고 풍기를 만난 사람처럼 분기를 내뿜을줄 알았던 아버지가 전혀 뜻밖으로 나올줄이야.
《기래. 이제야 내 아들놈 답어. 이 아비가 이런 날이 오기를 고대 기다린거라구. 떠나야 할 사람인게야, 암. 그렇구말구. 》
《… … 》
어디를 떠나느냐, 북경으로 가려나 현성으로 가려나… 불시로 도시루 들어가면 친척 하나 알 사람 하나 없이 어떡한다는 거니… 무슨 일을해서 돈을 번다냐… 물을 말도 많겠건만 아버지는 물어오지 않는다. 주름많은 눈 언저리로 물빛이 번들거리고 꾸륵꾸륵 대통 끓는 소리만 들릴뿐.
순애랑 금순이랑 가 있는덴 어떤 곳인지… 현성으로 가든 해변도시루 가든 뭘루 벌어먹어야 하느냐… 에라, 가보자. 돈 백원이나 있으니 기차 타고 한 오백리나 가볼가부다. 가야 할 곳 이름도 모르고 친척도 친구도 없는 도시, 그저 층집이 꽉 들어서고 차량이 실북나들듯한 붐비고 사는 도시루… 단 한가지, 그것은 유일한 신심이고 있었다.
- 마을의 키다리 염대장은 18층자리 아찔한 빌딩을 짓다가 떨어져 콩가루가 된지 십년도 넘고 미용하고 처녀라고 떠난 뒤집 아낙은 칠년전에 도적배를 타고 푹. 칼에 찔려 휴대한 돈 앗기고 바다귀신 된후로… 더는 죽었단 말 못 들었다. 더욱이 떠나간 그 숱한 마을사람들이 굶어죽은 사람 있단 말 들은적 없잖은가… 그들은 모두 소 처럼 일할 것이다, 일감들이 그득 밀렸겠으니 그들은 모두 쥐처럼 살 것이다. 도시란 거대한 삶의 환경속에 《쥐구멍》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 때문에.
아, 그런데 아쉽다… 우석이는 밤이 마저 가는 시커먼 집안속을 황소눈을 해가지고 부릅뜬채로다. 자꾸 한숨이 나온다. 가슴이 탄다.
먹물을 푼 듯 온통 새까만 집안속이 영사막처럼 안겨오고 있는다… 오래동안 인간들의 손길과 발길이 닿치않아 앞벌뒤벌이 묵어났다지만 그새 땅은 부식토가 되어 기름지고 화학살초제에 멸족을 고했던 가재들까지 환생하여 들여다뵈는 강과 호수는 맑고 푸르러 일렁인다. 산마다 숲이 우거지고 꺼겅꺼겅 잔꿩이 울어예고 노루사슴이 떼를 지어 언덕을 누빈다… 아, 나 처럼기운 센 청년이 한 둴만 같이 농살 지어도 논 몇헥타르나 되어 새들의 독차지엔 아름찰텐데…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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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떠나야지. 떠나야 할 이 못난 놈을… 우석이는 눈물이 흥건한 시선을 들어 창가로 향했다. 동창이 휘여휘여 밝아오고 있는것이였다.
《벼파도 칠 이 풍요한 고장을… 》
떠나야 할 때를 알며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더 그렇게 중얼이고 있었다.
(2006년5월16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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