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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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단편) 붉은 고추밭 댓글:  조회:533  추천:0  2023-09-07
1.집 산과 들이 파랗게 물들기 시작하던 어느날 아침이였다. 고선생은 갑자기 무슨 소리엔가 놀라 늦잠을 깨였다.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내다보니 무려 백여마리나 될 양무리들이 똥털을 희뿌옇게 날리며 집앞 길을 꽉 메워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재수없이 웬 양무리가 내 집앞을 다 지나다니다니?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화가 사그라지기도 전인데 또 한바탕 무슨 소리가 들려오고 있어 내다보니 이건 뭔가? 덩치 큰 소무리들이 윙윙 비행기 프로펠러소리를 내며 날치는 똥파리들을 부르며 요란스럽게 집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온 겨울동안을 가두어 기르다가 봄이 오니 풀 뜯어먹이러 들로 내모는 가축들이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퇴직후라도 좀 조용히 살리라 맘 먹고 마련한 집이 아니던가! 세상에 태여나 엄마 젖 한 모금 못 먹고 자란 때문이던지 원체 왜소하고 여윈 몸이였는데 퇴직후에는 더욱 비쩍 마른데다 몸도 거두지 않아 정신병자를 방불케 했다… 나이 서른하고 다섯살이나 먹은 아들이 불쌍해서 못 보겠었다. 아버지와 맞지 않는다며 세집을 잡고 혼자 살아가는 저 아들 때문에 한시도 맘이 편할 사이가 없는데다… 외국 나간 안해까지… 속 탈 일은 그뿐이 아니였다!… 시에서 자전거를 타고 반시간도 넘게 가야하는 합작구 어느 회사에 출근하는 아들은 언제 장가를 갈런지 자기는 손주나 보고 죽겠는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쿡 하고 눈물이 솟구친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살던 아파트(46평방)를 팔아서 아들에게 15만원이나 하는 “홍기패” 자가용을 사준 것이다. 그래도 아들은 아버지가 좋다는 말 한마디 없다. 아마 얼떨하게 일 처리를 해놔서 엄마의 사랑을 못 받고있는 자기에게 자가용 열대를 사주어도 반갑지 않다는 뜻인지 모를 일이였다. 어떻게 살가? 퇴직후의 삶을 편히 살아야 한다는 것은 결국 아들을 장갈 보내고 설 때마다 손주에게 빨각빨각 소리나는 붉은 지페 몇장씩을 주어 손주들이 빵긋빵긋 웃는 것을 보는 게 아닌가… 에라, 이것도 저것도 다 가망성이 없을 것 같았다. 한낮은 고민과 방황으로 모대기더라도 한 밤중이야 편히 드러누워 코를 곯 집이라도 있어야 하는게라고 생각했다. 동료들처럼 몇십만원 짜리 아파트에 들어 살 수는 없지만 작고 헐망한 집이라도 꿈속에 안해와 엄마를 불러보면서 잘 집이야 엄마의 따스한 품과 같은 것이 아니랴! 나에게, 저금이 없는 나에게 집이 생길 수 있을가! 그렇다고 아들이 들어 사는 세집에 찾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더우기는 얼마 안되는 저축한 돈을 다칠 수도 없는 일이였다. 언제 불쑥 세집에 살더라도 자가용을 굴리고 다니는 아들이 녀자가 나졌다면서 말을 떼고 혼사를 치르겠다고 한다면? 언제 불쑥 남 못 보는 밤마다 정신병자처럼 고래고래 욕설만 퍼붓던 자기가 큰 병에라도 걸린다면? 언제 불쑥… 손에 저금한 돈이 없고서야 어떻게 사람구실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농촌으로 가 널통 같은 세집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몇날 며칠을 마른 라면을 씹으면서 거리의 구석구석을 훑고다니던 끝에 거리의 맨 끝으머리에서 집 한 채를 발견한 것이였다. 참으로 기적적으로 발견한 “신대륙”이였다. 70평방나마 될 아담한 벽돌기와집이였다. 남향으로 출입문 하나와 출입문 량켠으로 통 유리창문을 앉혔는데 해볕이 유난히 잘 비껴드는 집안은 난방설비까지 마련되여 있었고 보던 색텔레비죤과 세탁기는 새것 그대로였다. 집뒤로는 홍기하가 흐르고 풀숲이 아득하게 돌아눕고 있었다. 가슴이 뛰였다. “급한 사정으로 이 집을 헐 값에 팝니다.”와 련계전화가 있었다. 그 자리서 휴대폰을 걸었는데 만원을 부르는 것을 깎고 깎아서 3천원으로 락착지었다. 그 새집에 들어서 온 겨울동안을 얼마나 편히 지냈던지 몰랐다. 그 동안 퇴직하고 집에서 할 일이 없이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게 죽을 지경이라는 동료들 몇이 여러번이나 전화 왔었다. 배보국(퇴직전교연조장)은 한밤중에까지 전화를 걸어오는 것이 치매를 앓지나 않는지 의심 할 정도였다. “고선생, 집에서 뭘하구 있어? 퇴직후 안해까지 없으니까 더 심심할게야. 너무 고독하면 통오리구이에 눅거리 술이라도 사가지구 우리 집으루 오라구? 들었어? 괜히 우울증에 걸리지 말구?” “나의 안해가 못 가게 한다구! 미안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이 다 나갔던지  몰랐다. “머라?! 퇴직하더니… 아, 그게 정말여? 고선생도 녀자를 다 생각할 줄 알어? 녀자가 어데 좀 부실한가? 아니아니, 내 말은 아이가 너무 많이 딸린 보리만두 같은 아니아니, 이 주둥아리야! 영 늙은 할무니인가?” “나 보다 열하구 세살이나 어린데 살색이 눈처럼 희구 체대가 배구치는 녀자처럼 섹시해. 나두 어떻게 그런 복이 다 나에게 차례졌는지 그저 꿈만 같다우.” 그렇게 말하고 통화를 뚝 꺼버리니 조장의 충혈이 진 도끼눈이 툭 불거지는 걸 보는 것 같아서 구들에 뒹굴면서 웃어댔다. 언제 이렇게 소리 내여 웃어본 적 있었던가!   새집에 들고부터 고선생은 정신이 분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밤중에도 보일 수 없는 집뒤로 흐르는 홍기하는 안해로, 전야는 어머니로 착각될 때가 종종이였다. 아니, 한번도 본적 없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새집에서 꿈속에 나타났을 줄이야… 아마도 엄마의 신이 도움을 주는 집 같았다. 그러한 신성한 “엄마의 품”을 양무리와 소무리가 똥을 갈기고 털을 날리고 비린 냄새를 풍기면서 마구 짓밟고 소란속으로 몰아넣다니!… 2. 엄마의 얼굴 매일 양무리와 소무리가 집앞을 소란스럽게 지나다니는 통에 기분은 말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볼멘 소리를 쳤다가 양몰이가 삐우는 채찍에 생 눈알이 뽑힐가봐 두렵기도 했다. 그날 아침에 배조장이 또 휴대폰을 걸어왔다. “고선생네 집을 찾아가니 이사를 가구 전화를 거니 안 받고.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더니 고선생은 퇴직한 후에 분에 넘치는 복을 받는 군. 쩟쩟. 하기야 내 눈으루 직접 보아야 맘 놓겠는데…”  “아 글쎄 도박쟁이 남편과 리혼을 한 절디젊은 녀인이 자기는 소설을 쓰는 작가와 사는 게 평생 소원이라면서… 헛 허허. 난 지금 똑 마치 청년시절루 되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여. 헛허허.” 지금껏 거짓말이란 해 본적 없이 너무 고정하여 어리숙하다는 말 까지 듣고 살아온 자기가 왜 배조장과는 거짓말을 하는지 모를 일이였다. 아니 배조장도 한번 속 앓이를 해보라는 고약한 마음까지 든다. “고선생은 말야 인재야! 흐흐 왜 인재냐구? 개구리가 바다에 뛰여들었으니깐! ” 배조장이 쩍하면 교연조선생들 앞에서 하던 말이다. 그 때마다 고선생은 저절로 머리가 뚝 떨어지군 했었다. 원래는 그 곳을 가지 말았어야 했었다. 소학교에서 여러 잡지에 소설도 발표하면서 작문지도교원으로 잘 나가던 중 뜻하지 않게 고중으로 사업전근을 하게된 것이였다. 소학교장은 “나이 쉰 한 살이나 먹고 왜 자리를 뜨오? 몇해를 더 하면 소학교 초고급교사직함을 가질 수 있을런지도 모르는데.” 그러며 막았지만 큰 바다에 가서 헤염을 쳐야 사는 보람을 느낀다며 기어이 소학교를 떠난 것이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조선어문교연조장인 배보국선생이 교무처를 찾아가 “소설 몇편을 썼다고 소학교원이 단번에 고중교원이 된다면 이건 누가 들어도 코웃음 칠 일입니다.”며 반기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하기야 고선생을 데려간 고중교장이 우연히 출판사로 갔다가 대학동창을 만나 해마다 고등입시시험에서 작문성적을 올릴만한 인재 한명을 받아야 겠는데 그런 속사정을 털어놓다가 동창으로부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당신네 시에서 소설을 참 잘 쓰는 작문교원, 고아무개를 왜 데려못가오? 소학교가 무슨 관계요? 로신이 북경대학을 나오고 북경사범대학의 교수로 지냈던가?”그 말 한마디 때문에 청운을 탄 것이였다. 교장이 직접 물색해 온 인재라기에 고중교원들은 만나면 “작가선생님”하면서 깎듯이 대했다. 학교령도에서는 배조장이 다년간 맡아하던 고3 대학입시작문지도를 고선생이 맡아하도록  결정했다. 고급중학교 1학년은 물론 초급중학교 1학년도 가르쳐 본적 없는 고선생이 고3 대학입시작문지도교사로 교단에 올랐다. 가슴이 뛰였다. 상상속의 소설가선생님보다 실제로 교단에 오른 선생님은 너무 실망되든지 어떤 학생들은 얼굴을 찡그리기 까지 했다. 163센치미터의 작은 키, 왜소한 체구, 숭숭 얽은 곰보얼굴은 학생들이 잘 아는 로신이나 곽말약과 대비하면 서글프기까지 할 정도였다. 술상에서 배조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고중학생들을 소학생들처럼 대하면 안되오. 상과시간에 목을 길게 빼들고 꿀룩꿀룩 광천수를 기울이는 걸 놔둬야 하고 책상에 엎드려 간간히 코를 고는 걸 놔둬야 하며 남녀학생이 소곤거리는 걸 놔둬야 하오.” 그 말의 뜻이 뭔지, 왜 고생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알수 없었다. 고선생은 비록 소학교에서 왔지만 “전국중소학교교수경색”과 “전성중소학교교수경색”에서 여러번 최우수상을 받은 적 있는 “교학능수”였다. 기타 군더더기가 없이 40분교수에 5분을 지식강의를 마치고 35분동안 써내기를 하는 데다 써낸 작문마다 평정을 달아내는 고선생의 교학법은 자는 학생이 없는 흥미로운 작문시간이 되였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 일이다. 고선생이 고3작문교수에 자긍심을 느낄 때 일이 일어났다. 술을 좋아하는 배조장이 고선생을 데리고 술을 마셨는데 덩치가 황소같은 배조장이 “작가선생”이라고 이렇게 저렇게 올리추면서 술을 권하였다. 그날 밤 고선생은 재수없게 헌자전거가 도랑창에 박히는 바람에 얼굴을 벋겼다. 벋긴 얼굴 때문에 배조장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청가를 맡았다. 청가를 맡은 날 저녁무렵에 어떤 녀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작문시간을 배보국선생님이 보았습니다. 제목을 ‘헌자전거’라고 달고서 작문을 쓰라고 했습니다.… 듣자하니 선생님께선 몹시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어서 빨리 회복하여 작문을 배워주시길 바랍니다.” 고선생은 눈물이 핑글 고여올랐다… 일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벋겨진 관골에 시커멓게 딱지가 앉아 보기 흉하게 된 처지에 배조장이 교연조 선생들을 이끌고 병문안을 온 것이다. 코구멍만한 세집, 안해 없는 썰렁한 집안에 13명이나 되는 남녀교원들이 꽉 들어찼다. “그래, 술을 자제해야지. 그게 뭐요?” 어느 남선생이 안타까운 나머지 말했고 “선생님, 맘 푹 놓으시고 몸 조리 잘 하세요.” 어느 녀선생이 물기가 번들거리는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 고선생은 어쩐지 고맙다는 느낌보다는 쫄딱 망신을 당한 느낌이였다. 이제야 보니 작가선생이라는 게 술주정뱅이구나, 그러니까 아마 안해도 달아나 없겠지, 그러니까 아직도 세집에서 살지. 그런 인상만 안겨준 것 같았다. 그 날밤 자정무렵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 속에 울리던 녀학생의 목소리와 녀선생의 관심어린 목소리가 귀가에 쟁쟁히 울려오면서 자신은 얼마나 오래동안 녀인의 관심어린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가가 생각키우면서 목젖이 떨꺽 소리가 나게 서러웠다. 아, 엄마의 목소리도 저렇게 간절하고 정겨웠을거야. 소학교적 동학들이 엄마 손목 잡고서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이 부럽다못해 끝내 허리 꼬분 할머니를 조르고야 말았다. “난 왜 엄마가 없냐구? 엄마는 날 두고 어데로 갔어?  엄마는 미인이야? 어떻게 생겼지? 사진 내놔 봐? 앙앙. 나 엄마 보구싶단 말야… 할머니가 알려주지 않으면 난 공부도 안 할거야… 앙앙앙. 내 엄마 내놔-” 그날 할머니는 손주에게 깊이 감추었던 사실을 털어놓고야 말았다. 1957년 겨울의 어느날, 녀인은 멎지 않는 화열로 초불처럼 간들거리는 자기 생명의 마감 날자를 예감했던지 구령으로 쪼박이 종이에 붉은 고추밭을 정성들여 그려서 한돐도 안 찬 아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 쥐여주었단다. 그러자 아들은 하늘의 별을 머금은 듯한 눈동자로 엄마를 바라보면서 캐득캐득 소리내여 웃더란다. 엄마가 흘리는 눈물은 하염없이 아들의 량볼에 떨어지고… 사랑하는 아들과 사진 한장 못 남긴 채 하늘나라로 떠나간 엄마를 알아버린 후 더는 엄마를 내놓으라고 할머니를 애 먹일 수 없게 된 동년은 할머니를 엄마처럼 믿고 따르면서 커갔지만 그 할머니마저 하늘나라로 떠나갔을 때는 소년의 나이가 고작 14 살 때였다. 소년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남았다. 아버지! 외국으로 돈 벌러 나갔다는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홀로 사는 것이였다. “너의 아버지는 늬 엄마가 널 임신했을 때 외국으루 돈 벌이 나갔어. 그러니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힘 내 살아야 한단다. 공부를 잘 하여 대학에 가는 날 늬 아버지가 돌아올끼다.” 는 할머니의 유언이였다. 그런데 의지가지 없는 손주를 홀로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간후라도 유일한 기다림이란 희망을 가지라고 쓴 거짓말일 줄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였다… 소년은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병으로 사망한 아버지가 살이있는 줄로 여기고 기다림으로 희망차게 살았다. 하지만 긴 기다림은 늘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가려있었다. 눈 감으면 엄마는 저 하늘에 달처럼 걸려서 자길 보며 정겹게 웃어준다. 엄마의 웃음을 그려보며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소년은 불쑥 큰 아쉬움을 느끼면서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아아! 그게 무얼가? 엄마가 그려준 붉은 고추밭은 구경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 나는 왜 할머니께 그 비밀을 캐여묻지 못 했을가… 3. 개구리헤염 아침에 양무리, 소무리들이 똥털과 똥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집앞을 지나가자 이어 휴대폰이 울렸다. 배조장이 걸어온 전화였다. “왜 자꾸 전화를 걸구 이러오? 집에서 소설책을 읽던가 아니면 집앞 광장으루 나가 광장무를 추는 할무니들 구경이라도 할 거지.” 고선생은 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화를 내고말았다. 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그런데도 대방에서는 좋은 말투로 나오고 있는다. “실은 말요, 긴요한 일이 있어서 그러오. 래일 나의 생일인데 친구들 몇만 부르려고. 고선생만은 부부를 다 청하오. 꼭 동부인하고 와야 하오? 집 주소를 알려주오. 그럼 내가 친히 택시를 불러 모시러 갈게?” “아, 그거 참 안됐구만이라. 부인이 어찌나 려행을 떠나자고 그러는지 마지못해 려행을 온거란 말요. 어딘가구? 말해두 모를거요. 태산이나 황산은 알겠지만 미산이라구 중국에서 황산 버금에 가라면 아쉬워 할 미산을! 금시초문이라구? 그럴거요. 언제오는 가구? 한주일은 걸릴거요. ” “머잉?! 려행을 갔다구? 수미산이 아니구 미산이야? 그럼 갔다와서 따루 보자구?” 고선생은 자기처럼 낚시도, 마작도, 당구도 흥취가 없고 지어 남들이 다 하는 걷기운동이나 등산조차 할 줄 모르는 “퇴직백치”가 된 배조장의 처지가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났다. 이게 뭐람? 자기는 거짓말로 배조장을 우롱하고 배조장은 잔뜩 질투에 찬 나머지 진가를 확인하려 드는 유치한 “장난”을 벌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퇴직후 옹근 한해동안이나 그림자도 볼 수 없던 배조장이 어느날 갑자기 휴대폰을 걸어온 게 아니던가! 일년동안을 사방을 둘러봐도 친구 하나 없고 자기가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 퇴직 생활을 고선생은 어떻게 지내느냐? 옥중생활도 할 일이 있고 동료들이 있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는데 이건 옥중생활보다 못한 삶이 아니냐? 죄라도 범하고 감옥에 들어가 살가부다?… 제발 자기와 가까이 하고 놀아달라고  애걸하다 싶이 해온 배조장이 문득 비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고선생이였다. 1997년 가을, 새 아파트로 이사 나간 교원들이 살던 학교주택 몇 채가 나지자 그중 한 채가 조선어문교연조에 몫으로 떨어졌다. 개혁개방의 물결이 도도한 변강도시라 세집살이를 하는 교원들이 적잖은 현실이였다. 처녀교원들과 총각교원과 자기 집이 있는 교원들을 제외하고는 고선생과 과부선생간의 겨룸이 될밖에 없었다. 과부선생은 나이가 젊은데다 얼굴이 곱살하고 몸이 풍만하여 남편이 생기면 남편집으로 가 살지도 모르는 형편이였다. 하지만 결국 주택은 배조장의 역할로 과부선생에게로 넘어갔다. “고선생이야 얼굴이 주글주글해가고 저승꽃이 피기 시작하잖아. 흐흐흐. 과부선생이야 살결이 눈처럼 희고 배구선수처럼 섹시하단말야. 그러니 누구와 놀아야 해? 흐흐흐.” 과부선생이 집들이를 하던 날 저녁 배조장은 술상에서 그렇게 롱담처럼 말하고 껄껄 웃었고 기분이 둥둥 뜬 나머지 과부선생을 안고 빙글빙글 돌면서 사교무를 추었었다. 고선생은 가배의 노력으로 고3대학입시작문교수에 박차를 가하느라 눈코 뜰 사이 없게 보냈다. 그러니 아들의 학습을 돌 볼 사이가 없었다. 매양 엄마 없는 집안에 들어서는 아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가? 아버지마저 한밤중에 들어서니 때식을 굶을 때가 종종일 때가 보통이였을 아들… 고1에 다니는 아들이 상과시간마다 컴퓨터 그래팩스와 프로그램 서적만 뒤적거리다 결국 중퇴를 하고야 말던 그해에 배조장의 아들은 중경리공대학에 합격된 영예를 안아왔다. “보란말이오. 개구리의 족속은 올챙이지만 상어의 족속이야 상어가 아니겠소? 흐흐흐.” 배조장이 고선생이 없을 때 교연조선생들 앞에 한 소리였다. 소학교에서 고중으로 사업전근을 한지도 7년철을 잡던 어느 날 부턴가 고선생은 뭔가 고민이 들었다. 고중3학년작문과를 맡은 이래 성과는 주렁져 해마다 학교로부터 교학선줄군으로 표창을 받기도 했지만 총적으로 오지 말았어야 할 곳으로 온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였다. 공연히 다른 학과 교수보다 교학수당금이 더 붙고 달 수당금도 높은 배조장의 보금자리를 빼앗아 하는 것 같은 량심적인 거리낌이 밤잠을 못 이루게 했다. “고선생, 여기는 본과이상의 학력만이 직함평가에 참가하는 곳이니깐.” 배조장은 직함평가 때마다 그런 말로 고선생앞에 붉은 카드를 꺼내들군 했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학교교무처에서는 현급고중이라 로교원 가운데 여럿이나 되는 “전과”학력을 가진 교원들의 직함평가 참가 문제 때문에 2년 반의 함수로 본과를 딸 수 있도록 각 교연조장앞으로 언녕 통지서를 내려보냈던것이다… 하지만 배조장쪽에서 되려 버럭 화를 냈었다. “고선생이 본과함수를 나온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요? 석사생들이 우글거리는 고중에서 반주임 한 학기 못 하고서 무얼로 점수를 딴다고 그러오? 듣기 싫겠지만 상어들이 헤염치는 바다에 뛰여든 개구리신세가 아니오? 헛수고를 하지 말라고 생각해서 그런거니까 감사하게 여겨야지.” 그때 고선생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한 수치, 방황, 고통들이 소설감이 아니냐 여기면서 고중이란 바다에서 끝까지 “개구리 헤염”을 치리라 주먹을 불끈 쥔 것이였다. 고선생은 고급중학교로 놓고 말하면 1급직함이고 배조장은 고급교원 등급(5급6급7급)가운데서도 젤 높은 등급에 들어 고선생보다 월급이 천몇백원이나 더 높았다. 어느 한번의 술좌석에서 배조장이 “고선생은 어느것 하나 나와 비길게 없다구. 크 흐흐흐.”라고 말하며 통쾌해하던 배조장이 퇴직을 당금 눈 앞에 둔 어느날, 고선생과 “난 고선생이 부럽다구.” 그런 말을 해오는 게 아닌가! 고선생이 못 들은 척 하려니 뜻밖의 내용이 담긴 말을 내뱉고 있었다. “30여년을 교직에 몸 담그었다면 퇴직후 20여년을 더 살지 30여년을 더 살지 모르는데 대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낸단 말이오? 근심이 태산 같단 말이오! 고선생이야 글 재간이 있으니 매일 구상하고 소설을 쓰느라 얼마나 보람차오?” 하고 다 빠진 번대머리를 긁다가 남산 같은 배를 주먹으로 쿡쿡 박아댔다. 고선생은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배조장의 그런 모양이 불쌍하기까지 해났고 또 늘 우울하고 머리를 푹 숙이고만 다니던 자기가 긴 호흡이 나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파트, 직함… 수두룩한 골치 아픈 일들을 매장할 수 있는 게 소설 쓰기였던 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정작 퇴직을 하고보니 점점 발표하기가 곤난해지는 소설쓰기도 역시 스트레스만 쌓이는, 자기의 “무덤”만 파는 일이라는 걸 배조장이 알가! 하기야 퇴직전에도 갇힌 신세였지만 퇴직후 역시 수인 꼴로 여생을 보내야 할 일이 그저 막연하기만 해난다… 퇴직후라도 정신상 고통이 없이 보내야 할텐데? 퇴직후 구경 무엇을 하고 살아야 매일 쾌활한 심정이 될 수가 있을가? 세상에 그런 게 있을가? … 4. 고갈(楛渴) “쨩-” 채찍을 울리는 소리가 폭죽소리처럼 들린다. 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양몰이군이 긴 채찍을 겨드랑이에 끼운채 앞서 걷고 있었고 그 뒤로 흰 양떼들이 따르는데 맨 뒤로 흰 점 박이 얼룩 개 두마리가 혀를 뻬 물고 양들을 감시한다. 저 양몰이군이 부러웠다. 늘 즐겁고 행복할 것 같았다. 무슨 고민이요 방황이요 스트레스요, 고통이요가 있겠는가? 가없이 푸른 하늘. 흰구름송이, 푸른 들, 해빛, 또 유유히 흐르는 홍기하… 그렇다고 누가 고선생더러 양치기를 하라고 한다면 절대로 못 할것이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퇴직하기 이태전부터 고민해 온 문제는 퇴직한지 몇해가 지난 지금까지 고선생을 못 살게 군다. 월급으로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은 없다지만 온 하루 할 일이 없는 게 문제였다. 소설을 쓰려고 해도 속 탄 일들이 련이어 닥치군 하는 때문에 절필이 되고만 꼴이다. 어느 하루 낯 찡그리지 않은 날이 없고 마냥 우울해서 하루해를 지우군 한다. 눅거리 집이라도 갓 집을 사고 들었을 때는 뭔가 희망이 보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희망도 차츰 사라지고 만 것이다. 고선생은 갈수록 자기의 정신이 고갈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고선생의 절망을 부활시킬 건더기란 그 아무것도 없었다. 아파트, 직함, 안해, 아들의 장래문제… 어느것 하나 희망이란 없는 무정한 현실이 아닌가! 어느 날에는 죽으려고 홍기하에 나갔다가 강변에서 남이 먹다 던진 곽밥을 아귀아귀 먹어대며 히죽이 웃어뵈는 거지를 보고 야, 저런 거지도 저렇게라도 악을 쓰고 사는데 나라에서 주는 봉록을 타 먹는 내가 왜 죽는단 말인가? 그렇게 도로 집으로 돌아와버린 일도 있다. 휴대폰이 울렸다. 절대 받지 않으려고 맘 먹은 터였지만 또 맘이 약해지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후대폰에서 왕왕.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배조장이 울다니?! 대체 무슨 일로 저러지? “배조장, 왜 우오? 무슨 일이 생겼소?” “와앙앙앙… 흑응응흑흑. 나 철저히 망했어… 망했다구… 응흑흑. 나 죽고싶단 말야… 내 슬픈 처지를 누가 알겠나…” “망하다니? 그게 대체 무신 말이요? 좀 똑똑하게 말해보라우? 응?” “한해전에 안해가 페암으루 북망산으루 가더니 엊저녁엔 아들이…” “뭣이?! 작년에 안해가 죽었다구? 저런? 왜 난 감감 모르구 있었나? 거기다 중경에서 잘 나간다던 아들마저 죽었단 말이요?!” “내 안해가 죽은 걸 알면 자네가 속으로… 자네는 모를거야, 난 아파트도 다 팔았어. 난 떨거지 신세가 된지 오래다구. 아들이 경영하는 회사에 집 판 돈을 다 처넣었는데 끝내 회사를 만구하지 못하고… 아들이 자살을 선택했다가… 이걸 어쩌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아들을 보러 중경으루 가려니 돈이 없다구… 엉엉엉… ”  고선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배조장의 안해가 죽은 일을 두고 고선생이 왜 기뻐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응당 아들의 회사가 부도난 일도 고선생과 비밀로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어쨌든지 고선생은 배조장의 일을 두고 먼 산 보듯 할 수 없겠어 다우쳐 물었다. “그래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거요?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도 있단 말이요?” “세상이 이렇게 큰데 믿을 사람은 고선생 뿐이구만. 고선생, 나에게 돈을 꾸어주구려. 고선생이 집을 팔았다는 소문도 들었소. 그러니 돈 10 만원만 꾸어주오… 나 고선생을 ‘할아부지’라고 부를 게…” 고선생은 억이 막혔다. 배조장의 그 살집 좋던 안해가 죽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항우같은 아들까지 죽는다고? 아파트도 언녕 팔아치우고 세집에서 산다고? 오죽하면 나를 다 “할아버지”라고까지 부르겠다니… 내가 혹시 악몽을 꾸고있는 건 아닌지?… 아아! 망했고나! 배조장이 내 꼬락서니보다 더 모질게 망했고나! 그러나 고선생은 조금도 통쾌하지 않았다. 불시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에라이 악귀같은 놈아! 내 평생에 유감이라면 너 같은 놈을 만난게야!… 내 일만도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인데 어쩌라고 그러한 나만 물고 늘어지냐구?… 대체 왜 자꾸 나와 이래? 전생에 내가 늬 아비를  때려죽인 빚이라도 졌다는 게야? 왜 나만 붙잡고 이래? 나 좀 가만두라고? 응? ” “왕와아아왕왕, 날 불쌍히 여기라우- 고선생은 죽을 때까지 나를 원쑤로 취급할지 모르지만 실지는 그런게 아니라우- 고선생이 작가로 우리 학교로 왔을 때 난 하루아침새 위신이 납작하게 되여 난 하마터면 우울증에 걸릴번 했다우- 고선생이 교학수당금이 높은 나의 고3작문지도 자릴 빼앗았을 때 난 죽고싶었다우- 녀선생들이 고선생을 작가라고 부르면서 아양을 떨 때마다 난 밤잠을 못 자고 밥맛을 잃었다우- 고선생에게 나의 조장자리를 빼앗길가봐 바늘방석에서 산 걸 누가 알겠냐구- 그러니… 자네야 일이 점점 잘도 풀려 양귀비같은 녀자를 얻어 살고 아들도 장가를 들어 달덩이 같은 손주를 안아 볼 수 있는게 아닌가? 엉엉흑흑. 나야 안해도 죽고 아들도 층집에서 뛰여내렸고… 좋아, 고선생까지 날 본척도 않는데 나 살아 뭐해- 나 사품치는 홍기하에 뛰여들거야- ” 대방은 또 왕왕. 울음을 터뜨리면서 이번에는 자기의 고선생에 대한 지난 날의 “권력행사”를 몽땅 고선생의 잘못으로 돌려버린다. 휴대폰을 꺼버리자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얼마나 절망했으면 저러랴… 안해가 죽은데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죽고나면 살멋이 뭐가 있겠는가! 죽음의 변두리에서 헤매는 동료를 내버려두는 게 죽을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래, 배조장이 죽는 걸 가만 보고있을 수야 없지. 구해주자! 10만원은 몰라도 그간 아득바득 모은 돈을 꾸어주어야지. 베조장이 월급이 있는데 월급으로 얼마든지 갚겠지. “이보라우? 10 만원은 없구 겨우 모은 돈 3 만원이야. 한해전으루 꼭 갚아줄 수 있겠지? 나 이거 생명 같은 돈이라구?” “아이고, 할아부지- 3 만원이라도 꾸어주구려- 아이고, 할아부지- 제꺽 위챗으루 넘기라우- 나 심한 고통으루 며칠전에 중풍을 맞은 후 걸음걸이가 불편해 바깥 출입을 못 하니까… 고선생을 만나는 것두 고통스러운 일이니껜-” 배조장이 중풍까지 맞았다니 그 비참함에 비감까지 들면서 뜻 모르게 입술이 하는 휘파람소리가 휘호호- 나가는 동안 위챗상으로 3만원을 넘겨주었다. 눈 깜빡 할 사이 3만원이라는 거금을 흘려버리고 나니 수습할 수 없는 충동적인 행위를 느끼며 자기의 뺨을 호되게 갈겼다. 고선생은 “그래, 난 구명은인이야, 은인이고 말고!” 그런 말을 수십번이나 곱 씹으면서 자신을 안위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조금도 편하지 않고 갈수록 불안하기만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던 날 한밤중이였다.  낮이면 사업에 눈 코 뜰 사이가 없고 밤이면 자정무렵까지 되지도 않는 소설을 끄적거리다가 잠에 곯아떨어지군 하는 남편때문에 생과부가 되는 게 싫어 외국에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안해가 그리워 깜깜한 천정에 대고 “여보- 이제는 밤마다 자기를 사랑해줄게, 어서 돌아오오-“하고 불러 볼 때였다. 느닷없이 휴대폰이 울어댔다. 정말로 안해가 돌아오려나 휴대폰을 귀가에 갖다 댔다. “고선생 맞죠? 나 배조장의 안해야요. 혹시 저의 남편이 고선생네 집에…” “머…머…머잉?! 배조장의 안해? 죽었다고 하던데…” 고선생은 귀신을 부르며 나 동그라졌다가 다시 휴대폰을 잡았다. 휴대폰을 통해 배조장이 다단계판매집단에 들어 남의 돈을 몇십만원이나 사기를 치고 지금 공안의 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것… 고선생은 그 자리서 피를 토하고 까무라치고 말았다… 5. 비밀 5월 중순께라 홍기하는 금삼각도시를 스치며 동해로 흘러드는 두만강하류와 내기라도 하는 듯 시커멓게 치렁치렁한 깊은 물살을 이루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선생은 홍기하대교 한가운데 선채 현기증을 일게 흐르는 강물을 무섭게 노려보 고 있었다. 생각 할 수록 분하고 원통했다. 자기는 배조장에게 당해도 철저하게 당했다… 아니, 그게 다 자기의 사주팔자가 사나운 탓이 겠었다. 한뉘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이 살아온 자기, 아니, 어쩜 아버지와 엄마의 얼굴륜곽조차 알 수 없는 자기가 아닌가! 그러니 항상 우울해서 머리만 뚝 떨군 채 앞 발명 한마디 못하는 인간이니까 남의 없수임을 당한 게 아니란 말인가! 안해와 아들마저 자기를 배척하고 있는 삶을 더 살아서는 뭘한단 말인가! 배조장에게 돈 3 만원까지 떼우고 만 엊저녁은 그저 죽고싶은 생각으로 미칠것만 같았다. 나는 왜 죽을 생각만 드는 것일가? 결국 자기는 죽을 자격마저 없겠음을 깨닫고 만 것이였다. 엄마가 림종 때 한 돐도 안 찬 자기에게 붉은 고추밭을 그린 종이를 고사리 같은 손에 쥐여주었는데 그 붉은 고추밭이 상징하는 게 무엇인가를 깨치지도 못하고 이승을 떠난다면 저승에서 무슨 면목으로 엄마를 만난다는 말인가! “아들아, 넌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이승을 살지 못했구나. 넌 불효를 저질렀어. 되 돌아가 마저 엄마의 뜻을 지키고 오너라!” 라고 말이다!! 붉은 고추밭! 대체 그게 무엇일가? 고선생은 자기의 이마를 소리나게 탁 때리고나서 자기의 머리통을 싸쥐였다. 그 바람에 맥 없이 몸이 휘청거리면서 하마터면 다리위에서 깊은 강물로 떨어질 번 했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다리아래 저쪽켠으로부터 기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런저런! 이보게- 잠간만! 죽으려거든 내 얘기를 듣고 죽어도 늦지 않을 테니- 여게로 와 우리 잠간 얘기를 나누세-” 그렇게 소리 지르는 것은 양몰이군이였다. 고선생은 자기가 죽는 줄로 알고 그렇게 불러주는 양몰이군이 슬그머니 고마왔다. 고선생이 다리를 내려서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강변으로 다가갔다. 눈보라와 비바람에 얼굴이 붉으죽죽하니 주름투성이고 앞이가 다 빠져 검붉은 혀가 이 사이로 끼인데다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는 고래희를 넘겼을 늙은이였다. “자네가 이렇게 볼모양 없게 뼈만 앙상하니 여윈 걸 보니 뭔가 알것 같구만은 그래도 자네는 아직 한창 살 나이가 아닌가? 왜 그랴? 부모가 어떻게 준 목숨이라고 그렇게 쉬이 목숨을 끊으려고 하나? 불효 중 젤 불효가 뭔줄 아나? 자살이야! 저승에서 부모가 통곡을 친다구. 자네가 역경과 좌절앞에 머리 숙이지 않고 분투하는 것이 곧 행복과 복을 불러온다는 걸 기억하세. 전에 나도 내 신세때문에 죽음을 생각 해 본적 있었네만 결국 끈질기게 분투의 삶을 산 것이야… 전염병은 너무 일찍 나의 부모를 앗아갔어… 나는 머리가 총명한 내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15살때 학교를 중퇴했어. 벽돌과 모래실이를 했고 건설공지로 다니면서 강쇠 후리는 일도 했어. 소학교1학년에 다니는 동생은 이 형님을 아버지처럼 엄마처럼 따랐지. 동생은 형님의 소원대로 공부에 노력했는데 학기마다 최우등생이 되였어. 나는 동생이 대학을 갈 앞날을 그려보면서 죽을둥 살둥 모르고 일 했다구. 나는 층집을 짓는 일을 하다가 두번이나 죽을 번 했어. 한번은 5층에서 널판대기가 두동강나는 바람에 아래 그물에 걸리면서 모래무지우에 떨어져 옆구리 뼈 두마디가 나가고 또 한번은 3층에서 떨어졌는데 정갱이 뼈가 끊어져 이렇게 절름뱅이가 된거야. 동생이 ‘형님, 나 학교 안 다닐래. 나 때문에 형님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해, 엉엉.’ 서럽게 울 때마다 ‘형님이 동생을 출세시키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응당한 일이야. 이 형님은 네가 공부를 안 하면 살 멋이 없어. 들었어?’ 그렇게 동생을 공부 하도록 설복 하군 했어… 대학입시 합격통지서를 받던 날 동생은 이 형님을 붙안고 엉엉. 울었어. 비 내리는 날과 음침한 날이면 다리 통증이 심해지고 더우기 위병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 관골이 무섭게 튀여나온 여윈 형님이 너무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였어. ‘형님, 더는 일하마우, 난 아르바이트를 해서 얼마든지 대학공부를 할수 있으니…’ 동생은 대학을 가기 전날 밤 동창이 밝을 때까디 커다란 종이에 그림을 그렸어. 난 동생이 대학에 가니 흥분하여 잠이 안 와서 그러는가 여겼어. 그런데 그게 아니였어. 동생이 떠나고나서 며칠후에야 벽 가운데로 붙힌 그 그림이 나의 주의력을 끌줄이야. 아무리 봐도 그림의 제목이 이상했어. 가없이 넓은 풀밭과 풀을 뜯는 양 한마리 외에 아무런 내용도 없는 그림 아래로 ‘속죄’라는 두 글자가 씌여있었으니 말야. 제목이 ‘풀’이나 ‘풀을 뜯는 양’이면 몰라도 ‘속죄’라니… ‘속죄’면 어떻고 ‘양’이면 어떻다는 말인가. 그런데 누워도 앉아도 벽 한가운데 붙힌 그 그림에 시선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어. 그러노라니 언젠가부터 밥술만 떨어지면 발길이 풀밭으로 향해지는 걸 막을 수 없었어. 우울증까지 와 밤낮 널통같은 집에만 붙박혀만 있던 나는 풀밭과 강변을 돌아다니며 청신한 공기를 마시고 운동량도 저도 모르게 증가되여 밥맛이 돌고 위도 더는 아픈 줄 모르게 되였어. 매번 유유히 흐르는 홍기하 강변의 풀밭에 나가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이 푸른 하늘에 흐르는 흰 구름송이들 처럼 느껴져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어. 나는 차츰 어떤 아리숭한 철리가 내 머리에 들어오는 걸 느꼈어. 그런데 딱히 짚어서 무엇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더라고. 풀을 뜯는 한마리의 양은 동생같기도 하고 그 이슬 머금은 풀은 이 형님의 피땀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동생의 ‘속죄’는 형님에게 어떤 보람된 일이 나지도록 갚음이라도 하겠다는 뜻으로 쓴 ‘속죄’인지 모를 일이였어…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내가 풀밭에서 양몰이를 하는 꿈을 꾸고는 놀랐어. 마치 동생이 “형님, 양 두마리를 사서 길러요. 그게 몇년이 지나면 수십마리로 늘어날거야요. 돈이 있으면 가정도 이룰 수 있을거야요.” 라고 맣해오는 것 같았어… 양몰이 25 년 째인 쉰 살을 넘보던 어느 날, 벙어리 과부가 자진하여 내게로 시집을 왔는데 그 이듬해에 달덩이 같은 아들을 보았네. 나 지금 나이가 일흔하고 일곱이네만 아들은 대학 공부를 하구있지 뭔가!… 사람이 사는 비밀이 뭔줄 알어? 죽는 비밀이 절망이라면 사는 비밀은 정! 정이 드는 거라구! 난 풀, 똥과 정이 들었어. 왜 그렇게 보나?  난 양을 치지만 또 그 양똥으로 거름을 낸 파밭에서 해마다 몇만원씩의 수입을 거둔다네. 내 말을 너무 투박하게 듣지 말게나.”  “아, 똥!” 갑자기 고선생이 그렇게 비명처럼 소릴 질러버렸다. 그야말로 오래동안 긴 턴넬속을 헤매면서 찾던 엄마가 그린 “붉은 고추밭” 비밀이 드디여 풀린것이였다 6. 열쇠 고선생은 양몰이군 령감 앞에 허리 굽혀 인사를 올리기까지 했다. 그리고나서 집 쪽으로 정신없이 뛰여갔다. 마르고 여윈 몸이 풀줄기에 걸려 몇번이고 넘어지면서 달려가는 고선생의 뒤모습을 향해 양몰이군은 뭔가를 알았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벙그레 웃었다. 고선생은 오래만에 자기가 든 새집이 더욱 환해진 것 같았다. 흰 회칠을 올린 집 추녀아래로 어머니가 엮어 드리운 빨강 고추다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였다. 고선생은 들판의 풀들이 양몰이군의 병을 뚝 떼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었다면 자기는 자기가 심어 가꾼 울의 붉은 고추밭이 자기의 우울증을 쫓고 건강한 삶을 되찾게 할 것이라는 걸 굳게 믿고있었다. 그렇다, 얼마나 쉬운 도리인가! 양이 풀을 먹고 싼 똥이 고추농사를 짓는데 비료가 된다. 저도모르게 고추농사를 짓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 때 땀을 뚝뚝 흘리는 로동은 건강으로 이끄는 약이 되여 밥맛을 돋우고 기운이 솟구치게 할것이 아닌가. 아! “풀과 똥!”, “고추와 똥!” 이렇게 쉬운 삶의 열쇠를 못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참으로 불쌍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이튿날 이른아침에 고선생은 집앞을 지나는 양몰이군령감을 붙잡고 물었다. “령감님, 저 양똥을 사려는데 양똥 한근에 얼마씩 팝니까?” “양똥을 사서 뭘하는데 쓰려구?” “저의 집 울에 고추를 심으려구요.” “고추를 심어? 허허. 거참 생각 잘 했어. 일에 재미를 붙히면 다 잘 될거여. 돈은 무슨 돈이람, 그저 가져다 비료로 쓰라구. 응? 그저. 허허허.” 소몰이군도 고선생에게 소똥을 맘대루 가져다 쓰라고 했다. 홍기하 물소리가 들리고 푸릇푸릇 진해가는 들녁이 시야로 안겨드는 도시 맨 끝으머리에 집들을 잡고 사는 그들이였다. 채소들을 심어야 하는 막바지 계절이라서 바쁜 시간에 쫓기는 고선생을 도와 양몰이군과 소몰이군이 짬짬히 도운 덕에 단 며칠만에 자갈들을 골라내고 양똥과 소똥을 뿌린 밭이랑을 짓는 일이 순조로이 끝났다. 그리고 고추모를 사다가 옮겨놓으니 집 뒤와 앞 울이 파랗게 고추밭이 되였다. 이제 고추밭이 붉어질 때까지 농사를 짓다보면 원망, 불평, 저주, 후회, 허욕… 들이 사라지고 식욕이 무지 당기는 건강체가 될 것이였다. 고선생은 비로소 엄마가 그린 그림의 주제가 “무병장수”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붉은 고추는 날아가는 새들도, 동물들도 먹지 않고 피하는 도고한 령물에 속한다! 무릇 고추를 먹는 사람들로 하여금 땀투성이로 만드는 붉은 고추, 붉은 고추가 던져주는 철리는 무엇일가? 땀 흘리며 고추를 먹는 사람들이 매운 맛을 들이고 식욕을 갖게 하는 것은 무릇 인생이란 땅과 귀결되여 있으며 땅에 정을 붙힐줄 아는 삶이야 말로 보람되다는 걸 알려주는 것일 것이다! 그런 도리를 깨닫게 한 어머니야 말로 이 세상 가장 선견지명이 뛰여난 위대한 분이 아니랴…… 에필로그 고선생네 잎울 뒤울이 붉게 고추불길이 타오르던 가을의 어느 날, 한국에서 고선생의 안해가 왔다. 아들의 결혼식에 온 것이다… 십몇넌을 안해 없이 살아온 고선생이 기뻐한것은 말할것도 없다. 하지만 안해가 아들의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떠나겠다고 하는 걸 막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아들의 결혼식이 끝난지 열흘이 지나도 떠날념을 않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언제 갔던가 싶게 아니, 쭉 자기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살아온 것 처럼 고선생을 도와 고추를 따고 찾아드는 되거리 장사군들에게 고추도 팔면서 하루해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어디 그뿐인가. “당신…당신”하면서 고선생에게 달걀지짐도 해 주고 한국에서 배워왔다는 생선회도 곱게 떠서 저녁 술안주로 대접하면서 남편곁을 붙어다니는 게였다. “한국에 안 갈 거요?” 고선생이 그간 한국에서 돈 버느라 바다바람에 주름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한 안해를 측은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순미를 따르려고 해요. 돈부자가 되려는 것도 안면을 따지는 것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다 자기 장식에 불과하지요. 10 억짜리 아파트를 가진 부자도, 서울시장도 부러워 하는 게 무병장수라는 당신의 말이 맞아요! 양몰이를 하고 살든 소몰이를 하고 살든간에 자기가 하는 일에 정을 느끼면 그게 곧 행복한 삶이 되는 것 아닐가요?…” …… 더욱 놀라운 일은 고선생이 붉은 고추밭 한가운데 음식상을 차리고 양몰이군과 소몰이군은 물론 고향친구들을 불러 석찬(夕餐)을 차린것이였다. 만찬의 주제는 “울 엄마 사진을 찾았어!”였다! 고선생의 어머니의 사진은 병풍가운데로 초상처럼 찍은 거폭의 사진으로 걸어놓았다. 흰 모시적삼에 베치마를 입은 녀인은 맨발 벗은 채로 붉은 고추밭 한가운데 서있었는데 바람결에 아미위로 검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미소 짓는 약관의 모습은 소박하고 점직하면서 외유내강한 모습을 안겨주고 있었다. 익은 고추물이 든듯 량볼이 붉으므레 상기된 그 건강한 녀인의 모습이 그 얼마나 탐스럽고 아름다운지 몰랐다. 그때였다. 어려서부터 고선생과 한마을에서 자란 한 동료가 뭔가 발견하고 큰 소리로 웨쳤다. “아니?! 저 초상 속의 녀인이 고선생의 안해의 얼굴이 아니오? 그렇다니깐! 대체…”거기까지 말하던 동료가 뒤늦게야 뭔가 낌새를 챘던가 자기의 입을 막고말았다. 고선생이 자기 안해의 처녀적 모습에 모시적삼과 베치마를 입은 것으로 어머니의 초상을 제작해낸 것이였다… 붉은 고추밭! 그 속에서 어머니는 하냥 웃고 계신다. 2023년 1월 지음 2023년 5월 수개.
13    [단편] 삼원나루 댓글:  조회:634  추천:0  2019-07-11
삼원나루 량춘식   나루터에는 “한사람이 3원! 한마리 3원!”이란 붉은색 페인트로 삐뚤삐뚤 써갈긴 패말이 도강객들을 커다랗게 맞아준다. 늑징, 침탈이 아닌 걸 알면서도 배 타고 강 건느는 사람들은 돈 1원 지어 50전 때문에 꼬치꼬치 캐고 강 량안이 떠나가게 소릴 질러대군 한다.  “저런… 저런, 저 큰 덩치의 황소가 왜 3원이야? 요 돼지새끼도 3원 받는데… 뭐, 뭐야…” “병든 사람헌티 돈 받어… 콱 가져… 홍문에 난 앙이를 뽑아 팔아 처묵을 늠으새끼가…” 그런 억이 막히는 처지에 맞닥뜨릴 때가 보통이였다.  목숨 걸고 줄배를 놓은 장본인이 바로 ‘절름뱅이’ 억수! 자기가 아니던가. 두부 한모에 3원인데 그래 내가 놓은 배로 강 건네주고 받는 돈 3원이 죄라도 된다는 말인가… 하루가 십년 맞잡이로 고독하고 우울했던 그 나날들을 유유히 흐르는 강으로 나가 하루해를 지우군 했던 억수였다. 죽음, 유유한 강을 넋없이 바라보면서 익사를 선택하던 그 날, 긴 턴넬 속이 끝나듯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해처럼 불쑥 나타났을 줄이야. 거의 십년 나마 정지되였던 강건너 간이역에 다시 렬차가 정거된다던 거였다. 십여년 전, 강에는 줄배가 있었더랬다. 강 량안에 든든히 박힌 쇠말뚝이 그걸 증명해준다… 고작 10여호의 철로가속들만이 사는 너무 보잘 것 없는 간이역이라서 그랬던지 단 일분간의 정차가 취소될 줄이야. 아아, 1분! 그 1분 때문에 숱한 백성들이 강가에서 통곡을 쳤던 일은 지금도 억수의 눈가에 삼삼하다… 매일마다 남행과 북행으로 렬차가 1분씩 두번 정차하군 했었다. 사방 500리 구간에 300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도시 주위에 3개의 현성이 있었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있어서 팔고 살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이였다. 그 때문에 간이역으로 산 하나 넘어서 강을 건너서 벌의 긴 오솔길을 걸어서 사방 50리 구간의 촌락들에서 백성들이 꾸역꾸역 끊임없이 나타났다. 단 1분간의 정차 동안에 근 몇십명을 헤아리는 객들이 렬차를 오르내리군 했던 간이역이였다… 그렇게 옥수수죽처럼 끓었던 간이역이 정차 정지로 인해 제 역할을 잃은 지 얼마 안 지나 강의 줄배도 언젠가 행방불명이 된 거였다.  그로부터 보따리나 자루, 광주리를 든 장사군들은 덜렁덜렁거리고 먼 거리를 굴러가는 값 비싼 뻐스나 경운기를 타고서 가야 했다.  “우메야, 강건너 간이역에 렬차가 정착한다능기 증말이우다?…” “그런데는 어쩌겠수, 줄배가 읍능기 강 건늘 수 읍능기…”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고 그렇게 말뚝을 박고 나무다리가 놓였는데 담이 작은 녀인들이나 아이들과 늙은이들은 건너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해마다 물귀신의 공양으로던지 다리를 건느다 사람 몇명씩이나 강에 떨어져 ‘물귀신’이 되는 걸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중 어느 날 억수가 무릎을 치며 마을 사람들의 안전과 경제적으로도 리익이 될 사위 좋고 시어미 좋을 방도가 생긴 것이였다… “억수 만만세에-” “억수에게 미녀가 아니, 선녀가 따라라아-” 목숨을 내걸고 줄배가 놓이던 날, 그런 축원의 구호소리가 강 량안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만세에-’, ‘미녀가…’는 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아침도 눈두덩이를 비비며 나타난 사공을 향해 사람들은 볼 부은 소릴 질러댄다.  “이봐, 돼지여? 배돈 벌어 산다는 놈이 해 한발이나 뜬 지금에야 기여나오다니…” “그 날 그 날 번 돈이 밤마다 어느 과부년을 즐겁게 해주는지 누가 알라우 글씨여… 흐흐…” 그럴 법도 했다. 고양이 손도 빌려쓴다는 5월이여서 강건너 농사를 짓는 그들이기에 거기다 37살을 먹도록 녀자를 모르다가 간밤 나루터에서 사랑하는 ‘양귀비’와 키스를 해본 흥분 때문에 이 아침에 당하는 수모도 달가울 수 밖에. 조반도 거른 채 긴 고리창을 끌고 나루터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아침해살이 눈부시고 강 량안에는 안개가 뽀얗다. 길섶의 고들빼기가 이슬을 물고 노오랗게 꽃술을 내보이며 수줍어한다.  그렇게 신과 바지가랭이를 다 젖히며 달려온 것인데 벌써 나루터는 시끌벅적할 줄이야. 줄배는 주인이 아니고는 누구도 소유될 수 없게 강둔치에서 십여메터나 떨어진 흉용팽배하는 물결 우로 떠서 출떡출떡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언제나 일을 마치는 대로 긴 갈구리창으로 밀어붙이고 일의 시작으로 걸어당겨내는 자기 소유만의 ‘경제물’이 있었다.  강 량안의 높직한 둔덕에 깊게 박힌 통나무 기둥에 단단히 고정된 와이야줄이 치렁치렁하게 휘돌이를 놓고 흐르는 강심의 물결을 내려다보며 ‘챙채애앵-’ 하고 아츠런 소리를 내고 있었고 둔치를 물어뜯고 배전을 쳐대는 물결소리가 고막이 먹먹하도록 치통을 일으킨다.  고리창에 걸린 배가 드륵드르륵- 강쇠의 마찰음을 내면서 둔치에 와닿자 나이 듬직한 로농이 한소리 먹여왔다. “마소부터 실어얀다구, 이잉.” 첫 배 운송부터가 시끄러웠다. 말 두필에 말임자와 옥수수씨 마대를 멘 사람, 새끼돼지 세마리를 팔러 가는 중늙은이들이 배에 올랐는데 말임자가 말의 배 아래로 움츠리고 앉게끔 한배가 찼는데 그 무게에 배전은 출떡출떡 쳐오르는 시커먼 물갈기 때문에 핑-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공포에 질려 낯색이 파랗게 질린 늙은이는 말꼬랭이를 꽉 거머쥔 채 뱁새눈을 판들거리고 사공과 연신 따져묻는다.  “여봐, 사공총각, 말 한필에 3원 받는 거지?” “뭐, 뭐라고요?… 그렇죠. 당연히 한마리당 3원인 거죠!” 사공은 배전을 마구 쳐대는 물소리에 잘 들리잖던지 큰소리로 묻고 대답을 한다.  “저렇게 덩치 큰 말이 3원이믄 요 내 돼지새낀 1원을 받아도 과분하다 그 말여!…” 배미에 앉은 중늙은이 돼지임자는 배바닥에다 분풀이로 연신 침을 뱉으며 분개해하고 있었다. “왜 이러나, 이담 자네도 이 배에다 집채같이 큰 짐이나 노새를 실을 적 없을 라구… 왜 1원두 따지구 그래유?” 말임자가 게두덜대자 중늙은이는 더욱 떠들어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구 그렇게 모아야 아들놈 장갈 보내지…” “관두라구. 어제두 볼라니까 집의 아들이 눈과 입가에 선글라스와 휴대폰을 걸고서 도시청년들의 스타일루 거들먹거리던데… 뉘집 처녀가…” 그들이 옳거니 그르거니 시비를 걸고 있을 때였다. ‘꽤액’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다마 같은 말눈깔에 겁 먹은 돼지새끼가 ‘풍덩’ 강물에 뛰여든 것이였다. “내… 아이고, 나의 돼지새끼가… 내 생명 같은 돼지…” 하고 화닥닥 놀라 어쩔 바를 몰라할 때 어느결에 사공의 긴 포획그물이 사품치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돼지새끼를 번개처럼 건져올린 것이였다. 그런 기회를 놓칠세라 말임자가 “돼지새끼를 구한 값이야 단 3원이라도 내얍지요? 아무리 어째도… 킬킬…” 돼지임자가 말임자의 그 말에 화도 나고 사공의 눈치도 보여 몸둘 바를 몰라하고 있을 때였다.  나루터의 저쪽 언덕에서 란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소 두마리가 여윈 암소 한마리를 다투고 있는 중이였다.  소임자 셋이서 당기고 저쩌고 하여 겨우 가축들의 타오르는 성욕의 불길이 조절이 된 모양이였다. 배가 이물을 대안나루에 대이기 바쁘게 사공이 사구려 소리를 뽑듯 목청을 뽑았다.  “말 두필에 6원, 말임자 3원, 그리구우… 돼지새끼 3마리에 9원, 돼지새끼임자 3원, 그리구우… 옥수수 반마대는 한마대가 안 차기에 더우기 ‘사람’, ‘마리’에 해당하지 않기에 관두시구려…” 돼지새끼임자가 기어코 돼지새끼를 구해준 값으로 3원을 더 건네는 것도 뿌리친 채 수입 24원만 허리춤에 찌른 채 금방 소들이 란리를 놓던 대안으로 이물을 돌린 것이다. 거기서 일군들이 어서 배가 와닿기를 바라고 소리소리 질러오는데 성욕을 못 푼 수소들까지 영각을 뽑아대고 있었다. 억수는 엊저녁 달빛 아래 배 우에서 그녀와 난생처음으로 련애란 걸 해본 흥분 때문에 늦잠에서 겨우 깨여나다 보니 아침 때식마저 거른 채로였다. 했어도 경제적인 호황의 기분 때문에 맥 드는 줄 모른다. 돼지, 노새, 말, 소, 거위들의 울음소리까지 모두 돈이 오는 소리로 반가왔다. 아니, 그녀와의 사랑의 분위기로 흥분된다.  “아아, 돈이여! 할아부지보다 더 위대한 돈이셔!” 억수는 그렇게 낮은 중얼임을 련속 반복하면서 눈앞으로 그녀를 떠올려보군 했다. 사공은 배 이물에 돌격의 태세로 버티고 선 채 와이야줄을 잡아당긴다. 쉭! 쉭! 강바람이 차돌들이 날아오르는 소리처럼 들리고 검푸른 물결이 헤가르는 고물을 들이받고 물어뜯으며 흰갈기를 일으킨다.  배가 대안에 닿자 역시 가축부터 상선하게 되였다.  소 세마리 중 두마리만 배에 오를 수 있게 되였는데 ‘성전쟁’이 다시 터질 줄이야. 덩치 크고 뿔 큰 ‘미남소’가 상선하려는 암소를 쫓아가 풀쩍 올라타버리는데 배가 뒤집어질듯 기우뚱거리고 사람들이 아우성을 지른다.  “야, 거참 부러운 풍경이군… 흐하하…” 어떤 이는 배가 번져질가 공포에 떨고 있는 판인데 한 중늙은이는 배짱 좋게 롱지거리다. “에끼, 동물들이 흘레하능기 뭐가 부럽다구까지 그려…” “동물들의 흘레가 저같이나 솔직한 건지 참!… 인간들이야 얼마나 여수처럼 드러워… 그러니 자연히 난 동물들의 모든 행위를 귀여워하는 거여. 흐하하…” 그렇게 중늙은이 둘이 서로 열띤 소리를 할 때였다. 그걸 구경하느라 배에 오르는 것조차 잊은 사람들이 입이 벌어지게 혀를 찼다. 글쎄 ‘선녀암소’가 자길 올라탄 ‘미남수소’를 홱 돌따서며 뿌리로 세게 떠받아버린 거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여위고 눈곱 끼고 느침만 질질 흘리고 선 지지리 못생긴 수소에게로 음풍영월이듯 음순을 들이대던 거였다.  “아하, 통 리해가 안 가는구려. 아쉽고 또 아쉽구먼이라. ‘선녀소’가 ‘똥구리소’를 허락하다니…” 한 중늙은이가 유감천만이던지 무릎까지 쳐대고 있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한 녀성이 비꼬듯한 투로 내뱉고 있었다.  “저 ‘똥구리소’의 온몸에 옥수수가루와 두병찌끼들이 묻었잖아유. 저걸 핥아먹고 싶어서라도… 그럴 거라구요. 녀인들도 마찬가지라구요. 좀 못났더라도 부지런하고 돈 잘 벌어내는 사내들을 추구하는 게 아닐가요. 호호…” 사공총각은 그녀를 흘끔 건너다보았다. 짙은 화장이 그녀의 거친 피부를 은페시키고 있었는데 이 세월에 농촌에선 자기 같은 녀자마저 ‘금값’이 아니랴는 오만함이 그대로 드러나뵌다.  하긴 그랬다. 지독히도 ‘메마른’ 세월이다. 주글주글한 할머니들의 축 처진 젖통마저 부끄럽게 마주뵈는 억울한 놈이였었다.  어떻게 장갈 들어볼 수는 없을가… 피 말리는 고민과 뼈 휘는 방황의 계절이 시작되였다… 결국 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선입견의 강한 휘동하에 목숨을 걸고 강에 줄배를 놓게 된 것이였다… “개 한마리 3원, 소 세마리에 9원, 사람들 아홉에 27원, 총 39원이요…” “이봐 이보라구, 개도 돈 받어? 이런 제길헐 늠으…” “개도 ‘마리’에 속하니깐요. 미안하지만 이건 도강의 ‘법’이지요!… 세상 모든 것에는 법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 법을 리행하지 않거나 어기면 벌 받고 자유를 박탈당하게 돼있거든요! 렬차, 뻐스, 택시를 타도 말파리나 개파리를 타도 다 돈을 내야지요. 당신들이 렬차를 타고 현성이나 도시를 여유작작 나다닐 수가 있으며 기름진 토양에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이 배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돈 3원을 내고 30원, 3만원을 벌 수 있는 곳으로 가겠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사공총각이 역정 서린 구구한 설명을 해댈 땐 더는 맞장을 치는 이가 없었다. 말해봤자 기다리는 건 손해 밖에 더 없을 거였다. 그것은 한바탕 청동빛의 얼굴이 불끈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하고 울뚝불뚝 근육 진 몸의 오금센터들에서 뼈들이 내는 소리가 여물게 들리는 위엄 때문이기도 했다.  상쾌한 아침은 이 아침만도 돈 63원이나 번 이 아침나절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아침은 배 뜨는 아침마다 사례 터친 입안처럼 짜릿했던 것이였다.  그는 배미에다 그물을 드리웠고 강가에다 주낙을 늘여놓군 하는 것이였다. 그것은 언제나 헛탕 칠 때가 없었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고향을 떠나간 후 아니, 지금도 떠나가고 있지만 그 때문에 강물은 더욱 맑아지고 물고기도 많아지는 것이였다. 배미에 드리운 조그만 어획그물에선 고물부터 배바닥을 붙어다니는 뱀장어나 송사리들이 들었고 강물에 놓은 주낙들에선 운수가 좋을 땐 사발 크기 만큼의 두통이 큰 메사구들이 개구리거나 작은 물고기를 꿴 주낙에 끌려나오군 했다. 배돈도 벌고 물고기돈도 벌고 꿩 먹고 알 먹는 격의 삶은 그렇게 이제 강에 배를 놓은 날부터 거의 둬해째 나던 거였다.  그는 그런 보람된 살이를 시작하고부터 처녀 없던 자기 주변에 언제 저 같이 동탕하고 요요한 계집애가 나타난 것인가를 놀랍게 의식한 거였다.  조선족이든 한족이든 몽골족이든간에 처녀란 출국이 아니면 도시로 나가 돈 벌고 짝을 이루는 게 요즘 법인데 말이다.  처녀는 마냥 꽤 거리를 두고 이쪽을 흘끔흘끔 눈길을 던져오고 있었는데 말이다. 봄이 지나고 무더운 여름이 다 갈 때까지도 처녀는 먼거리의 섹시함만 보여줄 뿐, 말 건넬 틈서리조차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고 아예 무시하려고 애썼지만 온몸의 정열과 눈길이 그예 처녀의 모습에로 가 조청처럼 떨어지지 않던 거였다. 한 몇십메터의 동안을 두고서 처녀는 배 모는 걸찬 사공청년의 기운과 돈 받는 거동들을 주시하고 점심참에는 물고기를 끓여내는 구수한 내음을 기꺼이 맡고 있는 눈치였다.  “에이, 여기 와 같이 구수하고 얼큰한 메기국이나 먹어주시여어…” 억수가 담을 길러 강가의 하얗게 피여나는 억새꽃에 바래여 해쓱하니 얼굴이 더욱 꽃 같아 보이는 그 처녀를 향해 목청을 돋우어 불러보았다. 그러나 처녀는 의연히 강뚝 풀섶에 오도카니 앉은 채 알은체도 않는다. 억수는 두번, 세번이나 불러보았지만 역시 그쪽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아차, 저 처녀 혹시 정신이상에라도 걸린…” 그렇게 머리통이 윙- 울리며 기가 죽은 거였는데… 그 처녀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 속에 늦가을도 한겨울도 물러가고 이 여름, 그러니까 한주일 전 강수면에 저녁노을빛이 흐르고 무수한 잠태기들이 날치며 저녁을 가송할 때 ‘미친녀’가 원래는 ‘벙어리처녀’겠음을 알아버리고 말 줄이야… 아침도 늦은 아침이였다. 한바탕 배객들을 건네주고 난지라 마카와 메기를 건져 배 우에서 앵코숱불탕을 끓여서 술 둬냥에 밥을 게눈 감추듯 하고 나니 엊저녁 사랑이 사례처럼 몸통 속을 기습하면서 여울여울 갑문을 닫고 묻히는 조개처럼 배전을 잡고 누운 채 잠에 빠져든 것이였다. 얼마나 잤을가? 무슨 소리에 잠을 깨며 눈을 떴을 때는 강한 해살이 얼굴을 가린 밀짚모자를 비집고 숨 막히도록 얼굴을 쪄내고 있었다. “어이… 어서 배를 갖다 대란 말야… 렬차시간이 다되여가는데, 어이…” “배사공이지 저팔계야… 한뉘 남자노릇 제대루 못하구 살 놈아…” 사공 억수는 대안에서 고래고래 소릴 질러대는 잰내비 같은 놈들을 깊은 강물에 처넣고 싶도록 화가 동했다. 그러나 심심찮게 배객들한테 당하군 하는 일이 밥 먹듯해서 화를 흐르는 강물에 거품처럼 띄워보내야 하는 것이 습관된듯했다.  배 고물이 나루에 닿자마자 두 청년이 배에 뛰여올랐다.  둘 다 린근 동네에 사는 청년들 같았다. 장밤 마작을 치고 술판까지 벌렸던지 물감을 들여 금황색으로 빛나는 머리는 쑥밭이고 옷매무시는 쥐가죽 같은데 입에서는 술냄새가 풀풀 날렸다. 물길을 가르는 배에서 둘은 신선이나 된듯 기분이 둥둥 떠서 이러쿵저러쿵 자기 좋은 소릴 하느라 법석을 떨고 있었다. ‘왕바바’라고 불리는 바위 같이 생긴 녀석이 떴다 고았다. “나 레슬링운동이 좋드라구, 히히…” 그 말을 ‘요밍밍’이라 불리는 개미허리 청년이 받았다.  “난 말야 기래두 사이버카페가 좋더라구, 낄낄…” “임마, 그런 델 갈 거면 차라리 삼바가 더 좋지 뭐. 고대와 현대가 묘하게 어울리는 곡조에 맞추어 엉덩이 춤을 추고 배꼽 춤을 추는 섹시미녀들이 붐비는 그 속을 와인을 얼근히 마시고 한데 어울리느라면 챠, 시간은 어느 년의 샴푸나 메니큐어에서 풀어지는 것이고 그러면 행복은 결국 내 정열의 창조물이 아니더냐, 뭐 그런 거야!” “얌마, 넌 레슬링이 뭐가 좋다고 거기루 ×빠지게 다녀? 네가 뭐 근육살을 올린다구? 원체 바위 같이 생긴 네가 말야? 뭣에 유혹되였어…” 밍밍의 야유 젖은 물음에 바바가 붉은 실타래가 풀린듯한 충혈진 눈을 검푸르게 용용한 강물 속에 헹구면서 힘 없이 중얼거렸다.  “레슬링 운동실에 들어서면 난 제 정신이 아니야! 한달 훈련비 600원씩이나 왜 거길 뿌려줬냐고?… 우연히 그 앞을 지나다가 활짝 열린 문안으로 세상 첨 보는 섹시한 처녀가 나에게 윙크해보이는 거 아녀. 한번 들어와 근육훈련을 해보란다… 아아, 그 무거운 아연덩어리 레슬링기구를 다룰 적마다 빤히 날 내려다보는 녀교련원, 그녀의 머루알 같은 동공과 근육투성이로 미끈히 뻗어내린 허벅지와 탄탄한 앞가슴이며를 올려다보느라면 무거운 아연덩어리가 불시에 날 내려쳐 내가 죽어버려도 원이 없을 것 같더라고…” 밍밍이 젊은 이마에 늙음을 피우며 “넌 그게 문제야. 미인들을 찾아헤맨다니까. 거기다 썬쩐 들어가 개고생하여 돈 버는 부모형제들의 돈을 싹 팔지 뭐. 킥킥…” “얌마, 너두 안 그래? 맹장이 터졌소 하고 거짓말을 써서 부쳐온 만원 돈을 마사지를 하오 하며 안마원아씨한테 싹 처넣어버린 거 내 모를라구…” 그담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배가 거의 대안을 가 닿을 때였다. 밍밍이 강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거긴 벙어리처녀가 선녀처럼 서있었다.  “저 벙어리 처녀를 꼬시다가 나 귀뺨을 얻어맞았댔어… 말 못해 그렇지, 속이 여물구 미녀지, 그래서 영원히 사랑을 하려구 그런 건데…” “하긴 이 근처에 저 벙어릴 내놓구두 절름거리거나 간질병이 있는 풍만하구 수양버들 같은 처녀들이 있긴 한데… 그런 것들마저 날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야! 휴.”  밍밍이 말 같은 말을 한마디 던졌다.  “우리 둘은 백수건달이야!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간 영원히 장갈 들기 어려울 걸! 장갈 드는 길은 단 한가지, 어떻게라도 돈을 벌어야 해!” 배두가 대안의 둔치에 대이기 바쁘게 두 청년이 훌쩍 뛰여내리려 들었다. 사공이 가로막았다.  “도강값을 치르고 내려야지.” 바바가 코방귀를 뀌였다.  “뢰봉아저씨를 따라배우라우. 응? 기리구 우린 돈이 없다구요.” 억수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시커멓게 룡트림을 하는 강물에 눈길을 던지면서 맞장을 떴다. “늬들 부모형제가 뼈 휘게 벌어 부친 돈을 시내루 올라가 마구 탕진을 하는 데는 돈이 아깝지 않구 강을 건느는 돈 3원은 아깝다 그 말여?… 그 꼴루 노니깐 어느 처녀가 늬들을 좋아하겠어…” 두 청년은 그것도 배 우에서 안되겠던지 선선히 돈 6원을 사공에게 뿌리고 얼굴색들이 지지벌개서 배에서 뛰여내렸다.  억수는 여름 속에 묻힌 간이역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두 청년의 뒤모습이 몇해 전의 자신 같지 않나 의심이 들어 두려워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먹먹해오는 치통 같은 전률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대안에 눈길을 주었다.  거기서 아름다운 처녀가 갈꽃같이 부서지게 입 벌리고서 이쪽을 향해 손 저어오고 있었다. 은은한 목소리는 없어도 찬송가처럼 부드러운 느낌으로 몸속이 출렁이고 있었다. 저 녀인이 없었다면 자기는 실로 어떻게 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계집애가 자기에게로 추파를 보내오던 그 날부터 처녀로 변한 것이였고 키스를 한 엊저녁부터 자기는 자신감 넘치는 남자가 된 것이 아닐가. 그렇다면 진정 누가 나에게 진정한 남자의 자격을 준 것일가… “하느님이 뭔 줄 알어? 세상사람들이 바루 하느님인 게야. 그 하느님은 눈이 있어, 다 본다고. 어느 누가 삶에 등가죽이 벗겨지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면 그에게 ‘자격’을 준다고…” 라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비로소 깨달을 것 같았다.  흉흉한 세찬 강물결을 헤가르고 목숨 걸고 와이야줄을 늘여 배를 놓던 그 날의 ‘절름뱅이’, 억수를 사람들은 보았다! 매일 배를 몰아 3원씩 돈 모으는 로총각을 사람들은 보았다! 그렇게 아글타글 모은 돈으로 집도 수리하고 텔레비죤도 사놓고 살기 시작하는 사공총각을 눈들이 보았다… 아마, 저 처녀도 나날이 눈에 드는 삼촌벌 되는 사공총각을 따라서 강가에 나왔나보다.  “저 가시내, 무섭도록이나 곁을 주지 않고 하루해를 보내군 하는 가시내가 허구헌 날 강가로 나오는 까닭이 뭐야.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듯 자기도 큰 도시로 시집을 가고파서겠지야…”  그렇게 미워까지 하고 귀찮아하다가 달포 전의 세찬 강바람 속에 흠뻑 땀 흘리고 지친 자기에게 개나리꽃처럼 배시시 웃어뵈며 고운 종이로 싼 전병을 내여밀었을 때에야 ‘벙어리’처녀임을 안 것이였다.  희망, 언제나 기회를 놓칠 줄 모르는 억수다. 미소 지어보이는 그 고운 얼굴을 보며 내여민 손목을 덥석 잡았다… 강물은 메기의 이늘 같은 정열을 분비하고 강아지풀이며 방동사니며 보리뱅이에 소똥꽃, 말씹풀 같은 잡풀들마저 ‘절름뱅이’와 ‘벙어리’의 사랑을 시기해 잎으로 눈 가린다.  현대적 사랑은 이런가? 대안에서 도강하려는 개들이 아우아우- 갈까마귀소릴 질러오는 데도 통 귀먹었다.  사랑은 그렇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눈이 멀고 귀가 멀게 불타오른다.  벙어리처녀는 끝없이 손짓하고 웃고 손짓하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그 뜻은 그래도 고향이 좋아요. 봄에는 산딸기에 두릅이, 여름에는 오디와 칡이, 가을에는 다래가 지천으로 깔려있어 우리 둘 입을 무척이나 즐겁게 하지요… 비행기 타고 유람선 타는 신선놀음도 부럽지 않아요. 도시나 천국 같다는 외국에 살아도 병든 사랑이라면… 고향에서 부지런히 돈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가 진짜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갖춘 사나이지요!… 그렇게 들려오는 것이였다… 엊저녁의 그 달콤한 정경 속에 잠겨 노래처럼 흐르는 강물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참이였다.  문득 눈길이 대안에서 배를 대기하는 객들이 목청 돋우어 부르는 소리도 없이 그저 맥없이 애타도록 막대기 같은 손을 저어오는 게 애처롭게까지 안겨오고 있었다.  사공은 아쉬운 나머지 쩝쩝 입맛을 다시며 황급히 배에 뛰여올랐다. 그런데 엊저녁 밤 늦도록 련애하고 혼곤히 잠에 빠졌을 처녀가 어느 사이 나루터로 나와 뒤따라 배에 올랐을 줄이야. 대안의 나루터에 비스듬히 걸터앉기도 하고 와이야줄 고정대에 몸을 기댄 채 다가오는 배를 대기하고 있는 세 사내들은 금방 하행렬차에서 내린 것이였다. 술에 취했거나 아니라면 뉘집 황둥개에게 쫓기다 맥이 다 빠져버린 사람처럼 셋 다 죽은 붕어눈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물이 나루턱 밑에 대이자 세 사람은 어질어질 배에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셋 다 약속이나 한듯 눈확과 관골들이 튀여나오게 여위였고 창백한 얼굴들이였다. 그럴망정 그들을 맞이하느라 그런지 고향의 저녁노을은 아름답게 피여나고 선녀가 내렸는가 이물 쪽에 아릿다운 처녀가 미소를 머금어 살풋이 그들을 맞는 것이 이게 그 늙고 낡아빠진 느낌의 고향이 맞냐 의심이 들 지경이였다.  그들이 서울도 아닌 꿈도 꾸기 싫은 누더기 고향에 이 같이 선녀 같은 녀인이 다 있었더냐 의혹과 경악에 질려할 때였다.  “야, 이 놈들아. 이 할아부지를 못 알아보다니…” 팔 힘줄이 튀여나오게 배줄을 당겨내던 사공이 미인에게 넋을 앗기고 있는 셋을 향해 버럭- 질러대는 소리는 반갑고 하소연에 가까운 유머스런 목소리였다.  “아하, 이… 이게 억수가 아냐?! 저런… 안 죽고 살어있었구나아…” 학처럼 목이 약해진 ‘게사니목’이 알아보고 알은체하는데. “절름뱅이 아니, 아니지. 소학교 적… 시간에 오줌을 솰솰 누었던…” 하는 왼볼에 한모숨의 털 기미가 돋친 ‘털사마귀’가 손벽을 탁- 치고 알아보는데.  “맞구만이라, 거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고 해서 선생님께 ‘무용지물’이라고 불리던 절름뱅이 억쇠가 아냐? 반갑다아-” 그러며 코대만 긴 ‘이딸리아’가 덥석사공의 손을 부여잡으며 왈칵- 희열의 눈물을 쏟던 거였다.  “짜아식, 할아부지를 만나니까 단통 눈물부터 흘리는구나… 하긴 이게 몇년 만이야. 나 혼자 버리구 잘난 척 침 뱉고 가버린 늬들이…” 억수도 코 풀기, 오줌 누기, 담배 피기, 술 마시기 했던 중소학교 적 동창생이자 한동네 친구들인 그들을 만나 감구지회로 코등이 저려나고 있었다.  ‘무용지물’, ‘게사니목’, ‘털사마귀’, ‘이딸리아’들은 그렇게 서로의 뜻밖의 상봉을 눈물겹게 즐거워는 했지만 정작 얼굴을 맞대고는 뭐 별로 할 말도 없어 되려 어색한 국면이였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저 그래도 소위 ‘고향의 주인’이라 자처하는 억수가 입을 열었다.  “늬들, 고향 떠난 지 한 십년도 넘었겠지?… 이 할아부지가 몹시나 그리웠겠구나… 허허…”  ‘게사니목’이 그런 ‘괄시’에 자존심을 세웠다.  “무용지물 같은 것이, 말마다 ‘할아부지’를 달어싸구 있어, 네가…” “내가 왜 할아부지냐 하믄 난 고향을 튼튼히 지키고 있기에 ‘터주대감’ 즉 할아부지인 거야. 안 그래?… 해마다 추석께믄 내가 풀이 무성한 늬들의 할아부지와 할머니의 묘지들을 벌초해주었어… 몇해 전의 추석이든가. 그 날도 늬들 할아부지 할머니 봉분들의 벌초를 해주다 해볕이 따스하더라니 봉분에 기대여 소르르 잠이 들었었어. 꿈을 꾸었어. 글쎄 한 할아부지가 글쎄 나 보구 ‘할아부지이-’ 해서 ‘할아부지가 어찌 나 보구 할아부지라구 부릅니꺼?’ 하니 그 할아부지가 하시는 말씀이 ‘내 자손들은 다 한국이란 델 가서 오질 않구 대신 그대가 해마다 이렇게 와서 우리들의 수염도 깎아드리구 술과 밥도 공양하시니 그댄 실로 존경을 받아야 할 할아부지외다아’고 그랬어. 꿈을 깨고서 든 생각이 ‘난 저승사자들의 눈에 아마도 한국 나간 사람들의 할아부지로 뵈는 게나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 뭐야… 하하하…” 원체 소학교 적부터 언변이 없는 억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다 나오자 셋은 서로 강냉이죽처럼 부옇게 색 바랜 눈들로 바라만 볼 뿐이였다. 억수가 한마디 더했다.  “그런디 웨 이랴? 늬들 셋이 이렇게 똑같이 오다니. 기리구 뼉다구 한토막을 서로 으릉으릉 다투어 갉다가 온 것처럼 그 꼴들이 뭐여? 금방 도강한 그 건달청년들 같이나.” ‘털사마귀’가 입을 열었다.  “나두 참 이상해. 똑 마치 하루한시에 약속이나 한듯 고향엘 가는 렬차에서 만났다닝게… 셋 다 어미 잃은 송아지 꼴을 해가지고.” 억수는 그 말이 들을수록 이상해서 배미 쪽으로 해서 우두커니 용용히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사내를 손가락질로 물었다.  “닌 어쩌라고 코 하나만 남기고 다 뼈골이야. 페스트에 걸린 닭새끼 꼴 같으이…” ‘이딸리아칼코’가 삑- 마른 코를 풀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병은 자랑을 하랬다고… 헉. 제길.” “제길이란, 왜 말을 시원히 못하구 그래. 한국엘 가서 술과 창기질 땜에 칼코만 간직하구 왔어? 하핫하하…” 억수는 짜개바지 적부터 쩍하면 자길 ‘절름뱅이’라고 업수히 보아왔던 칼코를 짐짓 놀리며 강이 떠나가게 웃어제꼈다. 참으로 오랜만에 통쾌히 웃어대다가 대방이 하는 기 죽은 말에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뭐? 금방 뭐라고 그랬어? 아암?!… 장암이… 쯧쯧쯧…” “그렇다구. 나도 암이여. 위암… 얘, 털사마귀는 간암이라구. 제길. ‘암쟁이’들이 약속이나 한듯 고향엘 모여올 줄이야… 공기 좋고 물 좋은 고향엘 오믄 배꼽 만큼이라도 더 살 수 있겠는지 일루의 희망을 품고서…” ‘게사니목’이 먼산을 주시하고 선 채 시누런 이발을 드러내보이면서 말하고 있었는데 슬프고 해괴해보였다.  “아아, 거 참으루 안됐구만이라. 잘살려고 고향을 떠나간 늬들이… 그려. 하여튼 잘 왔구만이라! 고향이란 뭐여? 코앞만 보구 사욕만 차릴 줄 밖에 모르는 옹졸한 곳이 아니지. 고향이란 고향에 대구 ‘퉥!’ 하고 침을 뱉고 간 놈, ‘가난구덩이’라고 욕하고 간 놈, 더우기는 ‘영원히 장갈 못 들 곳’이라고 배신을 하고 떠난 놈들에게마저 관용을 베푸는 곳이야! 거 서울이나 큰 도시에선 암환자들 돈이 없으면 무작정 화장터루 내몰지만 고향은 푸른 들, 샘치 솟고 꽃들이 만개한 아름다운 산으루 맞이하는 그런 신선적인 곳이야! 돈 일전 한푼 없는 거지도 더라면 악한도 도적놈까지도 넓은 품으로 받아들이는 곳이지!… 에익, 등신 같은 불쌍한 것들아!” “우리가 왜 등신 같은 불쌍한 것들이여?…” ‘이딸리아칼코’가 억울하다는듯 걸고 든다. 사공은 껄껄- 큰소리로 웃고 나서 손가락질로 꾸중처럼 말했다.  “불쌍한 놈들이야 가난하여 장갈 못 드는 걸 이르는 것이지만 듣던 소문처럼 늬들이야 부모의 집이든 형님의 집이든 한국 서울의 한복판에 아빠트에 들어 사는 ‘부자’들 아니것어. 그런 조건으로도 장갈 들 수 없겠으니 그기 바로 ‘등신 같은 불쌍한 놈’들 아니겄나…” 그 말에 셋 다 고개를 깊이 떨군 채 할 말이 없어한다.  그 때였다. 사례든듯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털사마귀’가 아까부터 처녀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해하다가 “참 못 믿을 일이여. 아직도 고향에 저 같이나 이쁜 처녀가 다 있다는 게…” 억수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그러게 난 세상이 불공평하지 않구 공평하다구 말하고 싶네. 이 절름뱅이가 영원히 장갈 못 들 거라고 늬들도 장담을 친 바 있지만 그보다는 ‘절름뱅이야, 너 처녀손목도 못 쥐여보고 죽어도 난 모른다’며 고향의 처녀들이라고 생긴 건 다 한국으로 대도시로 가버렸다만 난 이렇게 출렁이는 강물에 두둥실 뜬 배 우에서 저 미녀와 키스란 걸 하면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사랑을 한다네! 낄낄…”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딸리아칼코’가 휘청거리다 하마트면 시커멓게 치렁치렁한 강물에 떨어질 번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억… 억수야, 정… 정말루 저 미녀가 너의 약혼녀란 말이냐? 한국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저 같이나 섹시한 미녀가 너의… 이거 혹시 내가 악몽을 꾸고 있는지 모를 일이야… 어디 진짜라면 너 저 처녈…” 그렇게 말할 사이 억수는 어느 결에 처녀께루 다가가 ‘뻑’하고 키스를 해보였다. 그것도 모자라 처녀더러 해볕과 거센 바람에 거칠어진 자기의 손등에 대고 ‘뽀뽀’를 소리나게 하도록 했다. 처녀가 방실방실 웃으며 억수의 손등에 대고 그 고운 입술로 ‘뽀뽀’를 할 때 셋은 죽는 시늉을 지으면서 당금이라도 파도 세찬 강물에 뛰여들듯이나 허둥댔다.  ‘게사니목’이 정면으로 억수를 바라보지 못하며 물었다.  “이봐. 억수야, 대체 팔자소관이란 말 맞어? 좀 알려줘. 넌 사는 비결이 있는 게 아녀? 이제라도 그걸 알고퍼.” 사공이 한번 더 힘껏 이물을 굴리고 배줄을 잡아당기고 나서 관성을 타는 배 우에서 로인이 손주놈들한테나 살아온 경험을 말하기라도 하듯 느리게 말을 했다.  “암, 거야 있다마다. 발 없는 말이 하루 아침에 천리를 간다고 내가 들어서 아는 바지만 늬들에게 녀자복이 없는 건 첫째, 부모형제들이 피땀으로 번 돈을 사기치는 것, 둘째, 술을 뜨물처럼 들이켜기 좋아한 것, 셋째, 계집질을 오줌 누듯 밥 먹듯 한 것, 넷째는 도박에 인이…” 그 말을 듣다 못해 ‘털사마귀’가 소리를 치고 말았다.  “에끼끼, 뭔 ‘째’가 그리도 많어… 드럽게 곁을 치지 말구 복판을 쳐울리란 말야…” 억수는 셋을 향해 이가 갈리는 소리이듯 말하고 있었다. “바루 늬들이 ‘분투’란 걸 모른다 그 말여! 늬들은 능력이 없는 데다 생긴 것도 과학적이 못되잖아. 게다가 부모형제들의 피땀을 축내고 사는 등신들이니까… 그런 악습들이 늬들에게 준 게 뭐여? 암 밖에 더 있어?… 늬들이 어려서부터 ‘무용지물’이라고 업수히 보아왔던 날 봐! 한국에도 못 가는 병신이라도 비관실망이란 모르고 머리를 써서 이 사품치는 무서운 강에 배를 놓아 렬차를 타러 오가는 길손들에게 복지를 마련해줄뿐더러 나도 이렇게 돈을 벌잖아. 그러니 벙어리라도 저 같이 생육을 할 수가 있고 밥과 찬을 만들어오는 섹시한 ‘양귀비’가 생겼잖아… 잘 기억해둬. 내가 말하는 건 바루 인생철학이여!” 쿨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털사마귀’는 여윈 볼따구니에 달린 사마귀의 털 몇대나 뽑으면서 쿨쩍거렸고 ‘이딸리아칼코’는 자기의 코를 쥐여비탈았고 ‘게사니목’은 긴 목을 축 늘어뜨린 채 긴 한숨만 풀풀 내쉬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이딸리아칼코’가 강건너 저 멀리 우뚝 솟은 절벽산의 칼코닉슨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울 할아부지가 ‘나의 초가집에서 나의 녀인과 살면 그기 곧 선경에서 불로장생하는 도를 닦는 신선 아이겄나!’ 그러셨어. 그러고 보면 어쩜 무용지물 아니, 억수 니야말로 신선 된 거 아이겄나!… 제길! 난 신선이 되기는 고사하고 ‘병신’이 됐다니까… 망해도 드럽게… 끄윽윽끅끅…” “난 ‘가난구덩이’를 탈출했다고 기고만장했더니 백번을 죽어도 생각 못할 ‘암구덩이’에 빠질 줄이야… 흑흑으응응…” “에익… 난 외국엘 날아간 강남 간 제비가 되였나 했는데 결국은 불 때는 시커먼 구새통 속으로 날아들어간 꼴이 아니구 뭐야… 흑흑…” ‘게사니목’도 ‘털사마귀’도 배전을 두드리면서 절망에 빠져했다.  세 ‘암’들이 엇갈아 저주를 퍼부으면서 캄캄하기만 한 앞날을 울음소리로 불러보다가 저도 모르게 귀구멍들이 열려한 것은 지척에서 들려온 이상한 소리 때문이였다. 그것은 벙어리미녀가 지르는 우어어- 하는 부름소리였던 것이다. 벙어리처녀가 ‘암’들 앞에 흰 종이 한장을 펴고 그 우로 또박또박 연필글씨를 써보이던 거였다.   울 엄마는 두부장사와 살고 난 배사공과 살래요 ‘암’도 여기선 ‘신선’에게 쫓겨요 … …   ‘암’친구들은 고향에서 살았다. 벙어리처녀의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고도 십년이나 더 살다 갔다는 말 때문에 다신 한국에로 돌아가지 않았다.  고향의 산에 올라 천년바위 아래 풍풍 솟는 이 시린 샘을 떠마시고 더덕, 도라지, 황기…를, 들에 나가 미나리, 민들레…를 캐여서 먹으며… 담배와 술 그리고 밤을 패는 도박을 끊고 친구들과 배 타고 주낙 놓아 물고기도 잡고 오이, 고추를 심을 터전도 재미로 가꾸면서 살아가고 있다.  … … 인생철학이 둥실둥실 떠가는 여기 삼원나루터로 오시라…
12    [단편] 산빛 자물쇠 (량춘식) 댓글:  조회:983  추천:0  2017-05-27
단편소설  산빛 자물쇠 량춘식     밤낮을 기차와 뻐스를 갈아타고 정신없이 장의장에 다달았을 때는 무너질듯 치솟은 산아래로 먹물처럼 어둠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전날 저녁 전화에서 분명히 3호령구실이라고 부고를 접했는데 혹여 내가 잘못 듣기라도 한것인가. 령구실에는 령구만 찬 바닥에 누워있을뿐 문상객이라곤 찾아볼수 없었다. 정신이 아뜩하니 돌아가고 손발이 떨렸다. 푸들푸들 떨리는 입술로 “엄마…”를 불러냈건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니, 인제사 오능기가…” 령구가 놓인 어둑한 구석에서 쉰 소리가 울려나왔다. 화들짝 놀랐다. 그쪽으로 시선이 굴러갔다. “초… 촌장!”  나는 령구뒤에서 씨나락 까먹은 귀신처럼 나온 로촌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로촌장의 눈에는 눈곱이 끼고 입에서는 술냄새가 풍기고있었다. 로모의 시신을 염습하고 안치하느라 밤새 숱한 고생을 한것이 틀림없었다. 순간 외성에서 공작이 바쁘다는 핑게로 그것도 꼬빡 몇해나 어머니를 못 보고 산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나 같은 불효한 놈팽이가 역겨웠던지 촌장은 너의 어머닌 가스렌지를 잘 닫지 않은탓에 가스중독으로 돌연사했다는것, 곁에 사람들이 없다보니 그저 예전에 마을에서 함께 살았던 몇 사람이 와 시체를 돌봤다는것만 말하곤 지친 몸을 끌고 장의장을 휭 떠나버렸다. 소한때라 칼날같이 예리한 눈보라는  점점 더 무섭게 아우성치고있었다. 령구실문이 탕 닫긴다. 갑자기 관속에 갇힌 놈처럼 나의 눈에 별이 아물거린다.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나의 시야에 익숙한 실물이 희미하게 안겨들었다. 너무나 작은 사진이였다. 광목치마저고리를 입은 누렇게 부황 든듯한 얼굴의 녀인이 사진속에서 나를 조용히 바라보고있었다. 다름 아닌 어머니셨다. 아아! 자식들이 얼마나 불효했으면 령구앞에 놓을 영정마저 준비 못해드리다니… “엄마, 이 불효한 자식이… 억 흑흑.” 난 2촌짜리 사진앞에 풀썩 무너져서 이마가 터지도록 절을 해대면서 어린애처럼 울었다. 사자를 전송하는 울음소리… 15년전, 아버지가 세상 떴을 때는 4일장을 치르는 낮과 밤을 그 숱한 사람들의 울음소리로 차고넘쳤는데… 이 순간 황금과 돈보다 더 귀한것이 슬픔을 나타내는 울음소리건만, 나 혼자 내는 울음소리로는 사자를 전송하는 슬픔을 가셔내기에는 너무나 무기력했다. 고독하다. 질식할만큼 적적하고 외롭고 무섭다. 어머니의 령구를 지키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였다. 아마도 하느님이 인간답지 못한 이놈에게 내린 벌일것이다. 안해는 리혼하고 아들은 호주에, 남동생은 미국에, 녀동생 셋도 외국에 가있다. 외로움과 적막으로 가득 찬 령구실은 부모를 여의였다는 슬픔을 찾아볼수 없었다. 령구실안은 이발이 맞쪼이도록 춥기만하다. “엄마, 춥지?”  그런 소릴 내면서 플라스틱꽃들로 둘린 령구를 만진다. 또 한번 설음을 토해낸다. 목젖이 도려내도록 아파났다. 이 아픈 느낌과 함께 아래도리에서 방광이 찡찡 저려오기 시작한다. 방광결석에 걸린지 수년이 된다. 진종일 앉아버텨온 술놀이와 마작판에서 얻은 병이다. 비가 내리거나 날씨가 추워 엉덩이나 허리를 차겁게 굴라치면 배뇨 동통이 오고 지어 혈뇨까지 생긴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마살을 찡그리며 고개를 떨었다. 홍문과 고환 사이를 움켜쥐고 눌렀다. 그래도 바늘로 쑤시듯 아프다. 그렇게 심한 동통이 지난 후라야 배뇨가 찔끔찔끔 시작이 된다. 장의장실내 위생실들은 모두 사용할수 없게 봉해버려 눈보라가 아우성치는 어둠속으로 나서야 했다. 현성에서 꽤 거리를 둔 산골에다 지은 장의장이기에 밤은 지독하게 캄캄하고 공포스러웠다. 흐드득 떨며 쭈그러든 살덩이를 꺼내여 배뇨에 힘썼다. 방광에 오줌이 찼건만 오줌줄기는 가늘다못해 똑똑 떨어진다. 령하 40도의 혹한속에도 오줌을 소방용물총처럼 갈기던 그 젊은 나날들이 사무쳐온다. 젊은 놈들이 단 몇초면 끝내는 소변을 십여분도 넘게 갑자르는 동안 온몸이 얼어서 동태가 된듯싶었다. 설음마저 얼어 얼음이 된 몸을 끌고 령구실앞에 다달았을 때였다. 분명히 3호령구실에서 목쉰 울음소리가 새여나오고있었다. 화들짝 놀라며 다시 귀기울여도 나그네귀신이 내는 누덕누덕한 목소리였다. 순간 공포감과 슬픔에 잠긴 캄캄하던 긴 턴넬 저켠으로부터 한가닥 빛이 발산하고있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쩜 귀신이라도 와서 고독한 내 처지를 동무해주는게 아닌지… 난 령구실문을 열지도 못한채 그냥 얼음덩어리처럼 굳어있었다. “어… 어허… 내가 있었더라도… 그날만은 잘 모르는 가스렌지를 쓰지 말고 투닥투닥 토막나무를 땔것이지, 하긴 이놈이 미처 나무를 패드리지 못한때문이지요… 어흐흑… 이 못난 놈때문에…” 어? 저 목소리가 째보외눈이! 친구, 친구가 생겼다! 혈육의 시신을 함께 지켜주는게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친구임을 절감하면서 눈물로 량볼을 흥건히 적시며 령구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야, 오재수-” 저도 모르는 사이 이름을 부르며 그를 향해 팔을 벌렸다. 그런데 이건 뭔가, 웃는 얼굴에 침을 뱉어도 분수지. 그는 내가 시체도적이기라도 하듯이 한걸음 물러서며 사나운 표정을 짓고 나를 향해 손사래를 쳐댄다. “아… 아니, 네가 왜 여길 나타나? 무신 자격으루… 니가 다 아들이냐구…” 천만뜻밖이였다. 천리밖에서 달려온 내가 그것도 친어머니의 령구앞에서 친아들이 아닌 놈에게 아들자격이 없다고 줄욕을 먹다니, 분하고 억울했다.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으으엇다, 잘한다야! 아들, 그것도 맏아들이란것이 꼬빡 네해나 발길을 끊었다면서? 고향을 배반한 놈! 친어머니를… 에익, 열쇠도 버리고 사는 반편이 같은 놈 같으니라구…” “열쇠”가 없다니? 한번 더 째보외눈이가 외눈을 치뜨고 바다사자같은 입술을 너불거릴 때 난 순식간에 바보가 된듯 머리가 뗑해났다. 술과 마작을 너무 가까이 한탓에 간, 위가 나쁜데다 방광결석에까지 걸린 놈. 갈수록 몸도 아프고 일이 되는게 없다보니 나와 30여년을 가난하게 살아온 안해는 나의 변태적인 행패질에 굴욕을 참다못해 결국 가버렸다… 급기야 난 소릴 질렀다. “날 그렇게 대하지 말아! 나… 난 머리를 들수 없게 창피한 놈이란 말이야. 하는 일이란 되는게 없구 설상가상으루 리혼까지 당하구 개처럼 사는 놈이잖아… 에씨… 행복했다면 왜 어머닐 모셔가지 않았으며 해마다 설명절때 고향을 펄럭거리고 놀러와 즐기지 않았겠냐구… 어흐흑, 너마저 날 무시한다면 여기 천국 가시는 울 엄니 좋아할턱 있겠냐구. 응?” 난 눈보라속에서 어미를 잃고 우는 한마리의 송아지 같았다. 나의 말이 그의 말갈기를 틀어잡았던지 그는 대뜸 노함을 누그러뜨리고있었다. 난 령구앞에 몸을 내동댕이친채 자신의 뺨을 호되게 때리고있었다. “난 죽어야 해! 죽어얀다구! 어머니께 효도대신 맘속 고통만 쌓아준 후레아들이라구. 난 죽어싸단 말야… 어머니, 나두 엄마따라 갈가유…” 내 코에선 선지피가 흘러내렸다. 그때 갈퀴같은 손이 나의 손목을 거머잡았다. 그리고 왜소한 내 몸뚱아리를 가볍게 일으켜 세워서 자기 가슴에로 끌어당겼다. 난 거쿨진 그의 가슴에 안겨서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의 코구멍으로 내쉬는 숨소리는 늦가을 기러기 홰치며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우리 둘은 령구를 마주하고 놓인 낡은 쏘파에 엉덩이를 부렸다. 설한풍이 장의장 창문들을 세차게 두드려대고있었다. 차거워나는 엉덩이에 36도의 온기를 가해주면서 우리 둘은 어느덧 서로의 오래동안 묻어두었던 얘기들을 화토불씨처럼 빨갛게 달구어내고있었고, 영정 속의 어머니는 광목치마저고리를 입으신채 멀리서 웃으시며 걸어나오시고, 이 한밤을 지새면 어머닌 화장이 되시고 그러면 이 아들은 그 하얀 뼈가루를 품에 안고 몇십리 상거한 내 배꼽 떨어진 고향의 강에 뼈가루를 뿌리러 가야 한다. 문상객은 그예 단 한사람도 없었다. “너 병신 꼴값하는구나…” “병신 꼴값한다 왜? 하긴 너처럼 에미 배속에서 떨어질 때부터 병신 꼴값이 되야 하능긴데 이건 뭐야, 병신이 아닌 놈이 병신 꼴값하구 살게 되는 릉욕을 당하느니…” 둘은 30여년만의 상봉임에도 짜개바지시절처럼 진짜병신이 가짜병신이 쌔고쌘 세월을 빈정거리고있었다. 우리는 담배불과 연기로 얼굴과 입안과 손을 덥히고 문상객들이 부어야 할 술병을 가져다 찔끔찔끔 마셔대면서 속과 정신을 덥혔다. 그러나 술병에 입술을 댔다마는 정도였다. 오재수도 술군이고 나도 술에 인이 박힌 놈이지만. 단둘뿐일지라도 화장전 추도회는 의례 치러야 하는 어느것도 하나 빼놓을수 없는 일이였다. 우선 추도사를 쓰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닐수 없었다. “넌 대학을 나온 인테린데 추도사는 무슨, 입으로 서정서사시를 할것이지.” “조상의 령전에 정중히 추도문을 읽어드리는것이 효도가 아니겄냐구.” 난 급한 성질이라 필을 꺼내 요지를 적어내려갔다. “고 최복순… 1937년 4월 21일…” 금방 거기까지 적었는데 벌써 글길이 막히고있었다. 그저 고난 속에서 자식들을 바득바득 키워냈다는 식으로 쓰기엔 너무 아깝고 아쉬웠던것이다. “왜 멍청해졌어? 쓸게 궁해졌다 그거여? 다른건 몰라도 늬 엄닌 죽을적까지 고향을 지키다 가신 그런 위대한 분이셨거든…” 그 말에 막혔던 글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내가 30대, “인재초빙”에 발탁되여 천리밖 개방도시로 나가 초가집신세로부터 아빠트를 타게 되여 그렇게 간곡히 어머니를 모시겠다 했을 때, 그후 나이 40대, 50대에 접어들면서 여러번 어머니를 모시려 했을 때에도 번마다 “고향이 좋아. 나 아무데도 안 갈란다”며 고집했던 어머니. 몇해전에 리혼을 하고나서 어머니를 불렀을 때에도 “하긴 네 혼자 얼마나 외롭겠냐. 하지만 그게 다 네가 가정이란 자물쇠를 지키지 못해 그런것이란걸 난 알어… 난 이제 되려 부담이 될게야. 저 높은 산과 넓은 들이, 저 강과 소와 못들이 날 가지 말라 하누나…”하시면서 고집 부리던 등 굽은 로모셨다. 나의 추도문이 거의 끝날무렵 오재수가 중얼거린다. 째보입술사이로 밤바람소리를 내는 그의 발음은 엉망이였지만 어머니의 영정을 들여다보면서 천국의 꽃같은 플라스틱꽃들을 어루쓸고 사그라드는 향불을 바꾸고 바깥의 사나운 눈보라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눈물 둬방울 떨구기도 하면서 원고처럼 뱉아내는 이야기는 어느덧 나의 마음을 흠뻑 적셨다. 그는 안해가 있었고 엄동에 안해가 집을 뛰쳐나갔기에 향내 9개 마을을 찾아헤매느라 그만 어머니의 별세를 빚게 되였다고, 다 자기탓이라고 눈물을 떨구었다. 나는 퍽 미안스러웠다. 그런데 그의 안해는 왜 집을 뛰쳐나갔는지, 향내 9개 마을은 온통 한족동네인데 왜 그토록 우왕좌왕 찾아헤매야 했는지 궁금해나기도 했다. “아니여! 내 안해는 집을 뛰쳐나간기 아니구 남편인 날 찾아나온기여. 미처 잠그지 못한 문으로…”  이는 나를 더욱 의아케 만들었다. “내 안해는 참으로 미인이라니깐…”  그의 입에서 기여나오는 말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려고 치밀하게 짠 음모 같기도 했다. “다 니 엄니 공로라니깐, 참말로!”  자기를 친아들처럼 지켜봐주시고 관심해주신 분이 바로 복순어머니, 나의 어머니셨단다. 내가 반문할 사이 없이 그의 이야기는 나의 뜻밖의 의혹과 고민과 사유들을 결박한채 깊고깊은 옛날로 자맥질해 들어갔다. 나이 10살을 먹던 그해부터 그는 벌써 장가들고싶은 생각으로 간절했다. 고향동네 개들이 혀를 빼물고 드러누워버리는 삼복철이면 산은 더욱 높고 깊었다. 온갖 꽃들을 품속에 감춘채 푸르다못해 검기까지 한 산은 한낮에도 동맥속의 피처럼 수액이 흐르는 소리, 꽃과 나무들이 내는 향기, 그리고 산노루, 승냥이, 오소리, 뱀, 다람쥐, 토끼, 산새들과 벌레들의 교미의 향은 눈알이 짠하고 정신이 아뜩하니 돌아가게 한다. 소박맞은 며느리 슬픔이나 짝사랑에 속이 타는 야밤이면 산은 여위여 창백한 낫가락같은 쪼각들을 업고 잔별들을 거느렸고 홀애비 과부 눈이 맞았거나 처녀 총각 사랑의 언약이 이뤄진 밤이면 대야같은 둥근 달과 은하수가 걸린 산, 그 산아래 포근히 들어앉은 백여호의 고향마을-조양촌. 산이 높아서 가려주는 그림자 크고 산이 길어서 자손들을 무우 뽑듯한다는 조양촌. 아버지네들은 주정뱅이 많고 엄마네들은 가수도 많았다. 하지만 암탉이 알을 낳듯 낳아대는 자식들 가운데는 절름뱅이, 벙어리, 외눈이, 륙손, 고환이 하나 없는 아이에 자지 둘이나 가지고 태여난 병신들로 우글거리는 동네였다. 째보에 외눈을 가진 오재수도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다리 부러진 노루 한데 모인다지만 재수는 어려서부터 같은 축의 기형아들과 한데 어울리지 않았다. 재수는 천성적인 기형아였지만 천성적이라 할만큼 못된 궁리만 하는 애이기도 했다. 그는 학교에 가면 공부는 뒤전이고 앞뒤와 곁에 앉은 녀학생들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어린나이에 난 앞으로 장가들수 있을가, 어느 가시내가 나의 색시감일가… 하는 생각이 그의 일과의 전부였다. 재수는 언제부턴가 무더운 여름의 한낮보다 밤을 좋아했다. 그때는 “가난할수록 영광스럽다”, “고아, 불구자는 우선권이 있다”는 문화대혁명시기라 재수는 겁나는게 없었다. 그는 밤마다 마을의 7선녀네 집근처에 숨어서 집안을 훔쳐보는것이 큰 락이였다. 큰딸은 18살이고 막내딸이 6살이다. 저녁마다 딸들은 등잔불에 둘러앉아 열심히 이를 잡느라 제정신이 아니였다. 넌들거리는 창호지로 얼이 나간채 훔쳐보느라면 보리알같은 이들이 손톱사이에서 딱, 딱 하고 터지는 소리가 너무도 듣기 좋았다. 재수는 딸 일곱중 자기보다 3살이나 우인 14살인 셋째딸 보옥이가 젤 맘에 들었다. “이가 많은 녀잔 복이 있고 살림을 잘한다”고 어느 웃반 형님이 해버린 말이 명언으로 기억되였기때문이다. 그런데 번마다 보옥이는 고개아래 가슴에 딱 붙어 피를 빨고있는 보리알보다 퍽 큰 이 두마리를 시종 잡지 않고있지 않는가. “…그 콩알만한 이 두마리를 왜 안잡죠?”  그날 그렇게 복순어머니와 물었다가 “…소녀의 젖꼭지를 이로 착각을 해버리니 원. 공불 해 공불! 공부가 너에게 돈 주고 색시감 마련하는게야…”하고 톡톡히 꾸중을 당하기도 했단다. 그의 동년은 이처럼 변태에 가까웠다. 그런 그가 녀자들이 드문 마을에서 미인을 데리고 산다니 도무지 리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네 안해가…”하고 말이 나오려 할 때였다. 곁령구실들에서 쪼각쪼각 울음소리들이 일시에 일어나는가싶더니 그것들은 차츰차츰 통곡소리로 번져지기 시작했다. “새벽이야. 귀신을 물리치고 저승길에 꽃을 뿌리라는거지. 곡을 내야 한다고…”  재수가 향을 갈고 술을 붓고 절 세번을 하고나서 넉두리하며 호곡을 내기 시작했다. “어이어이고… 김장철이면 김장을 담그시고… 내 아이들도 보아주시고… 어이어이고오… 떠나갔어도 떠난 농군들의 토지문서들랑 꼼꼼히 보아주시기도 하면서… 토지야 언젠가도 우리 토지라면서… 어이어이야아…  어이어이고오…”  나도 울려고 했다. 그런데 울음이 나가지 않았다. 왜 그런지 재수가 엉덩이를 콱 차주고싶도록 미워났다. 네깟 눔이 뭔데 친아들보다 더 한단말이냐. 아무리 세상 뜬 어머니라도 그렇지, 이건 친아들 뺨치게 나오구 있잖아. 어디 그뿐이야. 네깟 눔에게 안해, 그것도 미인을 데리구 살구있다니… 네가 내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아죽이잖아…  나는 갑자기 안해가 그리워졌다. 처음으로 느끼는 안해에 대한 정감이였다. 령구앞에서는 남자들보다 녀자들의 울음소리가 제격이니 말이다. 응당 있어야 할 세 녀동생과 제수, 그리고 이제는 남의 녀자가 된 아내. 그들은 대체 왜 어머니의 령전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여야 하는것인지… 나는 째보외눈이를 의혹에 서린 시선으로 째려보았다. 눈물코물로 범벅 된 그는 쉬여가는 소리로 울고있었는데 친자식이면 이보다 더하랴싶게 슬픔에 잠겨있었다. 나는 아까와는 달리 내 기억속의 째보외눈이를 찾아헤매이고있었다. 1975년, 문화대혁명이 결속되던 해에 소학교 분수도 풀줄 모르는 수준으로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되지 않고있었던 세월에 생산대에 내려와 귀향지식청년으로 일할 때까지 그에 대한 인상이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마을의 불구자들과는 근본 어울리지 않았고 그들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고 살아온 나에게 그에 대한 인상이 있을리가 없었다. 하기야 출세하여 가난한 고향마을을 떠나겠다는 생각으로 눈에 달이 올랐던 나의 청년시절이였음에랴. 그러나 재수는 나를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칼날같이 추운 새벽에 한나절이나 낑낑거리며 배뇨를 하고 들어온 나를 무섭게 들여다보던 오재수는 “너라도 알아둬!”란듯 또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해살, 녀인들은 해살과 같다고 허두를 뗄 때 작가나 아나운서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의 귀를 도사리게 했다. 동년시절 마을에 많고많던 가시내들땜에 앞날은 희망에 넘쳤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던 어느날 갑자기 따스한 해살아래 잔디밭에 누워 달콤히 잠들었다가 싸늘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을 때 해가 지고 어둠이 뒤덮이듯 문득 실망의 낭떠러지에서 헤매이였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큰가마밥”도 깨여지고 출국바람에 빈집들이 어수선한 바람소리로 기승을 부릴 때까지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채 허망한 소릴 했다. “복순어멈요, 기러기들은 가을에 떠났다가 이듬해 봄이면 날아오능긴데 우리 마을 그 숱한 가시내들은 왜 하나도 돌아오능기 없어유? 아마 래년에 올려고 그러능긴지?” “그거 무신 소리고? 떠나가 언녕 애기 낳고 아기자기 잘살건데 오다니. 뜨물에 달 뜨나 기다리능것과 같어. 맨날 누워서 환상, 상상, 망상을 하고 사느니… 쯧쯧.” 그날 복순어머니의 꾸중은 그로 하여금 밤잠을 못 이루게 했단다. 봄날의 종다리처럼 노래도 구성지던 여름날의 제비처럼 날씬하니 춤도 잘 추던 가을하늘에 아른아른 날으던 고추잠자리, 제비잠자리, 된장잠자리들처럼 흔하던 가시내들을 더는 볼수조차 없게 된 무정한 현실 앞에 고개가 숙여지고 슬픔만 괴여올랐다. 결국 모든것을 포기하고 술만 죽여대다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산에 올라 페허나 다를바없는 동네를 굽어보고 늙은 느릅나무에 목을 매였다. 죽어서 천당에 갔다. 천당에서 7선녀네 셋째딸 보옥이가 자기와 키스를 해주려 했다. “아, 보옥이-”라고 부르며 행복감으로 눈을 크게 떴을 때는 천당이 아니고 헛간 같은 자기 집안에서 늙은 복순할멈이 자길 빤히 내려다보고있었다. 원래는 복순어머니네 똥개가 복순어머니를 불러왔기에 자기의 목숨을 구할수 있었단다. “복순어멈요, 나 어떻게 하면 장갈 들수가 있죠?” “허송세월하지 말고 돈, 돈을 벌어야 해. 그게 바로 행복의 자물쇠를 구한다는 뜻이지… 넌 고향에서 행복의 자물쇠를 구할수 있어. 또 그 자물쇠를 잘 관리하는 열쇠의 주인이 될수 있을거야.” 애초에는 복순어머니의 말을 믿지도 않았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뭔가 돈 벌 구멍을 노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페허가 다 된 마을옆 강건너로 간이역이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렬차가 단 1분동안을 정착하는, 철로가속들이 살고있는 자그마한 역이지만 강 량안의 몇십리 구간내의 십여개의 마을과 진의 보따리장사군들이 간이역을 리용할게 불보듯한 일이였다. 그러니 저 깊은 강에 줄배를 놓는다면 돈을 벌수 있다고 여긴터였다. 그런 생각도 복순어멈이 알려준거라고 했다. 그 기회를 놓칠수 없었다. 맘먹고 접어드니 바쁜 일도 아니였다. 건장한 한족장정들을 동원해 강 량안에다 깊은 구뎅이를 파고 기둥을 세웠고 마을의 창고에 있던 긴 와이야줄에 긴 바오래기를 매여 소에게 맨 다음 강을 건너게 했다. 헹야헹차! 그렇게 굵은 와이야줄이 넓은 강에 드리우자 밤도와 만든 줄배가 놓이게 된것이다. 그날밤, 사공이 된 재수가 돼지 잡고 잔치를 벌린건 말할것도 없다. “넌 이제부터 자물쇠를 가진 사내야!” 재수는 복순어멈이 한 말의 뜻을 다는 알수 없었지만 자신은 비로소 인간축에 드는 일을 잡게 되였음을 자랑스럽게 느꼈다고 했다. 나는 재수의 이야기에 더욱 깊이 빠져들고있었다. 재수는 강 량쪽 언덕에 가격표 패말을 세웠다고 한다.   가격규정표   사람, 개, 돼지, 염소… 1원, 소, 말, 당나귀, 락타… 2원, 경운기, 크고작은 수레… 3원!   재수는 사공이 된 다음부터 차츰 돈 버는 재미에 날이 가는줄 몰랐다. 얼음이 녹아서부터 얼음이 떵떵 얼 때까지 매일매일 수입이 짭짤했다. 어떤 날에는 하루당 수입을 70원씩이나 올릴 때도 있었다. 배를 몰아 매달 수입이 많으면 천오백원, 적으면 천원씩이나 번다는게 믿을수 없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돈을 벌게 되니 그에 따르는 고민도 커가고있었다. 쩍하면 노로 강물을 철썩 때리기도 하면서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돈 벌면 뭘하노? 자랑할 녀자도 없는 이…”   어느날 복순어멈이 그런 재수를 마주하고 타이르듯 말했다. “사공이 된지 몇달째니? 금방 녀자가 널 찾어올끼다…” “복순어멈의 짐작은 마치 귀신이 조화를 부리듯 잘 맞아떨어졌어.” 그날도 그는 어둑새벽녘에 벌써 강으로 나갔다. 배도 몰고 물고기도 잡아 이중으로 돈을 번다. 강에는 물고기들이 우글거렸다. 재수가 배에 마련한 작은 가스난로에 금방 잡아 밸 딴 메기 한마리를 끓였다. 흥얼흥얼 코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스난로의 알루미늄냄비에서 벌렁벌렁 끓는 메기탕을 떠서 밥을 먹으려 할 때였다. “어허헉!”하고 기절초풍을 하면서 뒤로 벌렁 나동그라진것은 재수였다. 나루터의 언덕에는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며 하얗게 웃어주는 미인이 서있는것이 아닌가. 앗, 귀신이다! 해골같은 흉물스런 귀신이 아니였다. 칠흑같이 까맣게 윤기 흐르는 폭포머리, 희고 동탕한 얼굴, 풍만한 가슴과 파도 치듯 굴곡을 이룬 허리와 엉덩이, 미끈히 빠진 다리는 볼수록 섹시했다. “귀신”은 재수를 향해 웃음지으며 오고있었다. 가쯘한 흰 이발들은 아침해살에 비수처럼 비발쳤는데 “난 생총각의 피를 마실래요.”라고 하는것 같았다. 재수가 한번 더 “으아아앗!”하고 비명을 뽑으며 나루에 정박한 배를 콱 당겼다. 배가 단번에 십여메터나 언덕과 거리를 두며 멀어져갔다. 그런데 저쪽 언덕에 미녀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졌다. 휘여휘여 고개를 주억거리며 살피고있을 때 “꺄륵”하고 등뒤에서 웃음소리가 나고있는것 같아 홱 고개를 돌렸다. 이건 뭔가, 뒤에 “귀신”이 자기를 향해 활짝 웃고있지 않는가. “아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자기를 향해 그 귀신이 뭐라고 소릴 지르더니 품속에 감춰두었던 종이를 펼쳐보이고있었다. 거기엔 뜻밖에도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너무 서툰 그림이였지만 쉽게 안겨왔다. 그림은 열려진 자물쇠였다. 그리고 그아래로 “난 벙어리야요”란 글씨가 비뚤비뚤 씌여있었다. 순간 귀신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미인, 의혹투성이 녀인만 자기를 애처로이 바라보고있었다. “열려진 자물쇠와 벙어리처녀”가 재수를 못살게 굴었다. 아무리 머리를 짜도 풀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그러다 재수의 눈길이 가멎는 곳이 있었다. 처녀의 목에 난 이발자국 같은 허물이였다. 몇시간전에 낸 자국 같았다. 그는 추측되는바가 있어 처녀의 팔을 걷어올려보았다. 붉고 검푸르게 이물이 있었는데 담배불로 지진 상처도 있었다. 모든걸 알수가 있었다. 밤마다 짐승 같은 놈들이 집안에 쳐들어와 벙어리처녀를 릉욕한게 불보듯 뻔했다. 그러자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났다. 원, 세상에 자기같이 못난 놈을 다 찾아오다니… 벙어리는 륙십일동안이나 재수의 됨됨이를 숨어서 지켜보았다고 손가락을 폈다 꼬부려보였고 세상 천지에서 아저씨 한사람만 믿는다고 왕손가락을 내들어보이고 그렇게 믿어달라고 앞가슴에 손을 대였다가 갸웃한 고개의 왼뺨으로 고운 손바닥을 살풋 얹어뵈였다. 더우기 조실부모한 후 할머니와 살다가 한해전 할머니까지 저세상에 가니 벙어리라고 밤마다 술주정뱅이들이 기생집처럼 자물쇠까지 마스고 쳐들어와 못살게 군 일을 알고보니 벙어리라고 걸레짝처럼 막 대하는 그놈들이 저주되고 처녀가 한없이 불쌍하기만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벙어리처녀를 안해로 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못했다고 했다. 그것은 18세인 그녀보다 자기가 17살이나 더 먹었고 보고 또 봐도 잎 피기전의 솜뭉치같은 흰 꽃을 피우는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여우버들같이 미끈한 그녀가 깨질가 념려되는 유리상자속의 옥같이 여겨졌기때문이였다. 그날, 재수는 처녀의 요구대로 처녀 집에 쇠빗장을 지르게 큰 자물쇠를 만들어주어 더는 “처녀도적”들이 못 기여들게 만들었고 그렇게 처녀는 날이 밝으면 어김없이 줄배에 올라 하루 또 하루를 재수의 곁에서 떠날줄 몰랐다. 그러나 어느날, 복순어머니가 그를 불렀다. “그냥 그렇게 오라버니꼴루 보낼것 없이 단김에 소뿔 빼듯 오늘저녁으루 집에 데려가 살아, 응?” 그 말 한마디에 정신이 펄쩍 들었다. 어슬녘에 손목 잡혀 순순히 따라온 처녀를 구들에 눕히고 옷 벗기니, 구름속을 헤치고 달 따는 일이 정신이 잃어지도록 상상밖이더란다…  복순어머니의 더욱 크나큰 격려와 지지는 그 며칠후에 있었다. “이걸 채워! 소가죽팬티야. 말하자면 네 안해를 도적맞지 않게 하는 자물쇠인거야.” 그리고 그냥 두눈이 뚱그래 선 그를 터득시켰다. “네 안해는 네가 지켜야지. 남들이란 그저 욕심내고 도적질하는 객관요소가 될뿐이야. 알았어?” 다시 보아도 생전 못 들어본 그런 신기한 제작물이 아닐수 없었다. 엷어도 찢을수 없게 질긴 소가죽팬티였는데 허리를 질끈 조이는 가죽끈에 자물쇠를 잠글수 있게 만든것이였다.   그후에 있은 일이였는데 어느 한번은 우연히 이웃동네의 70고령의 돼지 치는 령감태기가 10원짜리 돈으로 안해를 유혹해 버들방천에 끌고 들어갔다. 주정뱅이나 아무런 대가도 없이 희롱하려 들면 항거하는 안해지만 돈이라면 10전짜리도 입이 벙글하는 안해였다. 미녀의 사타구니에 자물쇠를 찬줄 모르는 령감태기는 음욕을 채우지 못한채 돈만 떼우고 가버렸는데 그후 얼뜨기 남정들이 돈으로 자기 안해를 “맛있게 먹어보려” 했지만 번마다 돈만 떼우고 어쩌지 못한건 말할것도 없다고 하면서 오재수는 이런 약점 때문에 녀자들에겐 “자물쇠”를 채워야 하고 또한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남자들이란 가정을 책임질줄 아는 “열쇠”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령구실이란것도 잊은채 킬킬 웃어제꼈다. 이는 마치도 술과 도박에 인이 박혀버린 나때문에 쩍하면 나가돌며 마작도 놀고 동창모임에 가서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던 안해와 자주 싸웠던 자신를 풍자하는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재수가 그런 남편이였기에 색시는 그 자물쇠를 열고 잠글적마다 자물쇠에 그려진 산을 가리키며 자기를 보배처럼 대하는 남편을 변함없이 한곳에 선 산처럼 은혜로와하군 했다. 난 왜 째보외눈이보다 못하지? 나는 자신의 용모와 총명을 너무 믿었다. 한낱 조장자리 하나 못 얻은 일반 중학교원에 불과한 놈이고 설상가상으로 40대에 안해의 배신까지 받은 처지이니, 나를 앗아간 귀신이 있다면 그건 곧 술이다. 나는 수없이 파티를 벌렸다. 생일파  티, 축하파티, 계절파티, 형형색색의 명절파티… 그런 술놀이에 밤을 새우면서 안해의 곁을 비웠던 날이 일년 365일에 265일도 넘었고 게다가 월급 한푼도 안해에게 쥐여준적이 없이 다 써버렸으니 안해의 가슴에 얼마나 많은 한이 서렸으랴. “복순어머닌 가끔씩 이런 말씀을 하군 했어. 저 높은 산은 영원히 젊은 내 맏아들처럼 뵈여. 내 맏아들… 난 내 젊었을적 그런 아들과 못 갈라져…” 재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 때 난 더 참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렸다. 진정 그땐 그 얼마나 어머니의 참된 아들이였던가. 난 우리 동네 첫번째로 대학생이였고 무비의 영광을 안겨드린 “개천의 룡”이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의 생전에 효도를 못하고 례의를 지키지 못한 놈이다. “에이에이… 이 살기 좋은 세월에, 과학이 발달하여 집안에서 다 대소변을 누는 ‘아빠트’에 산다면서… 에이… 죽긴 웨 죽겠다고 지랄을 부리노…”  재수가 면박을 주었다. 그는 오열로 실성까지 해 뒤번져지는 나를 부축하고 문상객이 없는 텅 빈 빈의관에서 마지막 절차인 추도문까지 대신 읽어버렸고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시키고나서 이놈의 몰골을 측은히 여기게 된걸 꿈같이 여겨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래, 가자. 우리집으로 가 하루밤 묵고 랠 아침, 고향 아니, 엄니강에다 유골을 뿌리자꾸나.” 그가 날 끌었다. 난 싸움을 말려준 형님인듯 그의 뒤를 졸졸 따랐다. 장의장의 령구실 앞마당까지 사람들로 우글거렸다. 그 대부분은 한족들이였다. 형제들, 자매들, 안해들, 친척들… 그러나 조선족으로 뵈는 한 령구실에는 나처럼 녀인이란 볼수 없고 기죽은 남정 서넛만 목석처럼 앉아있을뿐이였다. 저들도 나처럼 “열쇠”없이 마음의 떠돌이로 사는 신세들인 모양이겠지. 그러자 더욱 슬펐고 가슴이 아팠다. “어서 여길 떠나야지.”  그런 중얼거림이 떨어지기도 전에 난 재수의 행동에 소름이 끼쳤다. 택시나 뻐스도 아닌 재수의 오토바이짐받이에 앉아야만 했던것이다. 혀를 내밀면 당금이라도 베여갈것만 같은 칼날같은 바람이 부는 혹한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니… 난 재수가 준 벙어리장갑을 낀 왼손으로 어머니의 골회함을 안고 오른손으로 오토바이짐받이를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야, 눈 크게 뜨고 앞을…” 그의 외눈잡이때문에 안전이 걱정되였던터라 불쑥 이런 말이 튕겨나가다가 중동무이하고말았다. “이래뵈도 자기 안해도 몰라본다는 그런 두눈들보다는 멀리 내다뵌다는거 알어!” 난 할말이 없었다. 그래, 시력 좋은 두눈을 가진 출신 좋고 학벌 높은 우리들의 외기러기신세가 미녀를 품고 사는 째보외눈인 재수보다 행복하다고 말할수가 있단 말인가? 결국 생활의 왼눈과 오른눈이 안해와 남편이 아니겠는가. 그러고보니 진짜 삶의 고독한 외눈이는 나인것이다. 아아, 슬퍼! 오토바이는 눈 깜짝할사이 몇키로메터 떨어진 시내로 접어들었다. 슬픔으로 엊저녁과 아침까지 거른지라 눈앞에 노란불이 반짝이며 기아의 변주곡이 울었다. 그보다는 배뇨기관이 팽창되고 찡찡 저려나는 통증때문에 이를 사려물 정도였지만 어머니의 유골이 추워할가 저어하는 “효심”이 그것들을 물리치고있는것 같았다. 이놈은 정말 지독했다. 현성에서 30여리나 떨어진 산골 오지길을 그 낡아빠진 오토바이로 내처 짓쳐댔다. 아마 며칠전처럼 안해가 자기를 찾아간다고 깊은 눈길을 헤치고 나가 실종되는 일이 다시 생길가봐서일지도 몰랐다. 그는 고집을 부리고 먹을줄밖에 모르는 녀자일지라도 후대를 이어주고 밤마다 비단요같은 존재이니 제 잘났노라 씽하고 비행기놀음을 하고 세상을 누비고 사는 그런 년들보다는 백배 낫지 않겠냐고 했다. 이에 나는한마디도 대꾸할수가 없었다. 자존심이 마구 구겨지더니 그저 악몽이였으면 하고 바랄뿐이였다. 눈섭에 하얗게 서리 내려 앞도 잘 분간할수가 없었고 코구멍으로 얼음덩어리가 져 입으로 숨을 쉴 정도였다. 방광속의 오줌마저 얼어버렸는지 하반신은 완전히 마비상태로 감각이 없었다. 산이 들인지 들이 산인지 대지가 하늘인지 하늘이 대지인지 모든게 흰 눈에 덮여 정신이 아뜩하니 돌아가고있을 때였다. 갑자기 귀를 웅웅하게 때려대던 엔징소리가 뚝 멎었다. “내려라!” 재수가 서너번이나 큰소리로 불러서야 난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난 커다란 눈덩이처럼 오토바이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어머니의 유골함만은 품에 꼭 안은채로였다. 백발의 할아버지인양 큰산이 내려다보고있었다. 그 산이 내는 숨소리가 아뜩하니 동년을 뒤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몇 집 없는 고향의 비참함때문에 울컥 눈물이 났다.  산마저 재수의 편이 되여 내 꼬락서니를 희롱한다는 창피스런 느낌을 감지하며 난 벌써 재수네 집안으로 들어서고있었다. 잡동사니들로 찬 널직한 구들에서 세 아이가 엄마와 이불을 쓴채로 한창 텔레비죤를 시청하고있는 중이였다. 풍만한 가슴을 출렁거리며 구들에 선채 두눈이 뚱그래서 나를 주목하는 녀인은 듣던바와 같이 동탕한 녀인이였다. 재수가 손짓으로 뭐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이내 나를 향해 웃음인사를 지어보였다. 난 일시 몸둘바를 몰라하며 휘청댔다. 너무나 부러운 집안이였다. 입에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직장에 나갔고 퇴근길은 역시 기다리는 안해를 등지고서 술친구들의 부름소리에 흥분을 감출길 없었던 지난 시기 언제 안해의 반가운 기색을 본적 있었던가? 산추위처럼 마음을 얼구어주었지만 또한 부럽고 화목한 집안 풍경이였다. 짜개바지적 옛 정분을 생각해서라도 산비둘기찜과 기름개구리튀김에 소발통국에다 기어이 술 한잔이라도 굽내자고 드는 재수의 드센 고집에도 난 술에 입술만 젖혔을뿐이였다. 젖무덤이 다 드러나있는 재수의 안해가 상에 마주앉아 벙실벙실 웃어주고 술도 따라주었건만 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주질 않았다. 해마다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었다는 고추장과 배추김치, 천반 대들보에 주렁주렁 달린 메주덩어리들에 눈길이 걸리며 눈물만 솟구쳤다. 이튿날, 아이들의 떠들어대는 소리가 나의 깊은 잠을 깨웠다. 아침상을 쓰기전에 우린 어머님의 령전에 애도를 드렸다. 유골함우로 영정을 모시고 어머니께서 한평생을 즐겨 드셨다는 산포도술과 말린 물고기튀김을 놓고 술을 붓고 절을 올렸다. 어리둥절해있던 재수의 세 딸도 슬픔속에서 할머니를 찾았다. 아홉살 경희가 “할머니, 왜 안 나와?”하고 영정을 향해 울랴울랴 할 때, 일곱살 경화가 “할매, 우리 오늘 어데가 놀가” 할 때, 다섯살 경순이가 할머니의 영정으로 튀긴 물고기를 갖다대면서 “할머니, 이거 먹어, 응?”할 때 재수의 안해는 왕왕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영정 속의 어머니는 여전히 웃고계셨다. 질병에서 오는 고통, 정 많은 마을사람들과의 수많은 리별을 해야 했던 고통, 텅 비여가는 동네를 바라만 보아야 했던 고통, 고독감을 이겨야 했던 고통, 아들이 제구실을 못하고 사는것을 어쩔수 없이 묵인해야만 했던 고통, 무력과 무능에서 온 괴로움들, 고통을 고통으로 맞이해야 되는 고통스러움들을 묵묵히 웃음으로 맞이하시던 어머니셨다. 오전 10시경, 유골함을 안고 강으로 향했다. 그토록 사납던 눈보라도 잠자고 해살이 유난했다. 아홉살때 두만강을 건너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강물에 빨래하고 낚시하고 미역 감고 터밭에 물 길어주고… 더불어 살아온 강은 물살이 얼마나 세던지 이 혹한에도 강심으로 살얼음을 밀어낸채 그 시커먼 물갈기를 날리며 소리치며 흐르고있었다. 갑자기 아이들의 짜그르르 생기 넘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루터에 얼어붙은 배우로 벙어리녀인이 세 딸과 가위바이보를 노는 풍경이 그려졌다. 아아, 자물쇠를 찬 녀자- 녀인은 자유를 박탈당한 셈인가? 난 시선을 거대한 산에 주고있었다. 산은 수없이 계절이 바뀌여도 한자리를 지킨다. 자기의 몸에서 숨쉬는 나무숲은 얼마나 울창하고 동물들은 얼마나 자유스러운가를 그만이 알고있을뿐이리라. 어머니의 유골은 어머니의 빨래터에서부터 뿌려졌다. 내 뒤에는 재수가, 그 뒤로 그의 안해가, 그 뒤로 세 아이들이 줄을 서서 남쪽으로 움직이고있었다. 나의 손에서 유골 한줌이 뿌려질 때마다 재수의 울먹이는 호곡소리가 울려퍼졌다. 대개 사위 셋을 삼아서 외손들을 그득 둘것이며 저마다 참된 인간으로 성장시켜 토지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는 어머니가 바라던 “조선족자물쇠집”으로 새 동네를 이뤄가리란 뜻으로 들려왔다. 난 아주 오래만에 내 어깨와 다리에 기운이 오름을 느끼고있었다. 나도 유골 한줌씩 날릴 때마다 간곡한 기대를 담아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하늘 새 동네로 가실 때 이 못난 아들놈의 술버릇 뚝 떼여가시옵소서. -새 동네로 가실 때 이 세월 리혼을 장난처럼 대하고 지남침에 쇠막대기 들어붙듯 재미처럼 불법동거를 즐기는 부녀자들의 개버릇 뚝 떼여가옵소서… -어머니, 가시거들랑 새 동네의 얼떨떨한 사내들한테도 “자물쇠의 주인”이 응당 뉘여야 한다는걸 똑똑히 배워주옵소사. 그리고 누구든 “열쇠”를 잃게 되는 현실의 “3인”이 바로 술과 도박과 리혼이란걸 험하게 꾸중하옵소사… 도라지 2015년 제4호
11    량춘식 프로필 댓글:  조회:1631  추천:1  2013-02-17
1957년 흑룡강성 목릉현 하서공사 보흥촌 출생 1975년 고중 졸업후 하서공사 조양촌에서 2년간 농업에 종사 1976년 허서공사 수리소에서 1년간 과학영농 기술운을 일함 1977년 하서공사 갱신촌소학교에서 3년간 민반교원으로 사업 1980년 "우파의 아들 정책락실"로 시험쳐 목릉현국영담배공장에 공인으로 5년간 일함 1985년 교원아버지의 영향으로 보흥촌소학교원으로 전근됨. 그 8여년간 흑룡강성 오상서범학원 조문전과 졸업,길림대학통신학부 교육학본과 졸업. 1992년부터 8년간 훈춘시제1실험소학교에서 작문지도교원으로 사업 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 주임 력임 현재 연변작가협회 리사,훈춘시제2고중 조선어문 교원으로 사업 2006년 흑룡강신문 "신춘문예공모"에 입선되여 장편소설《지옥은 천당이다》를 련재 2008년 중편소설《하류의 물살》과 단편《푸른강은 흘러라》가 한국자영영화사에 의해 영화《푸른강은 흘러라》로 각색되여 부산영화제에 출품 중편소설《레몬빛 선택》,《고향》,《홰치는 소리》 등 12편과 단편소설《누나네 마을》등 80여편 발표 진달래문학상,화림문학상,도라지문학상,연변일보제일제당상,화신문화대상,리영식아동문학상 등 10여차 문학상 수상.
10    "내 대뇌에는 광석창고가 있어요" 댓글:  조회:1561  추천:0  2012-12-27
9    [단편소설] 이 풍요한 고장을 댓글:  조회:1969  추천:0  2012-12-26
[단편소설] 이  풍요한  고장을 량춘식 (연변)     포장도로가 없이 산굽이를 돌고 돌아 따발길로 이마를 늙히고 살아도 골안이랄 상징일 수림마저 차츰 벌거숭이로 바꿈하는 판이더니 그걸 구실로 못살데라고 떠나간 사람들 대신 출국바람속에 뭉치돈을 버는가 싶더니 그 번 돈으로 도시로 현성으로 나가 살아내던거였다. 90년대 초반기부터 고향을 뜨기시작을 한게니 한 시오륙년을 넘기니 백이십여호가 싹쓸이로 나가버린상 싶게 비였다.     해덩이처럼 발랄하던 그 시적이 열일곱살이더니 이제 그는 덧없이 서른두살이나 먹었다. 그간 남자는 으레 맛볼것도 가리잖고 본것이라지만 처녀도 아닌 맘에 없는, 그것도 소원이 아니게 갱년기의 한족 아낙한테 희롱을 당하고… 그 구겨진 자존 때문에 원통하고 유감스럽기 짝 없는건 말고도 어데가 말할곳 없게 부끄럽고 자존심 질리는거였다…《나도 떠났더면은…》하는 소리로 자신을 안위해보기도 해온 그던 것이다.     돌이키면 우석이 자기에겐 꿈도 많았다. 어느것 하나도 실현한 것 없다지만 10세땐 전투영웅이 되겠다 했고 15세땐 이름난 남중음가수로 돼보고저     아찔한 소나무꼭대기에 바라올라 꽥꽥 소리질러 노래도 뽑아댔었고 20세땐 이름난 작가로, 25세땐 농민기업가로… 그러다가 차츰 리상은 색바래져가고 술군이 되고 놀부가 되어간거였다. 부끄럽지만 그뒤로 지금껏 한 생각이란 가리잖고 알맞춤한 녀잘 만나 장갈 드는 것으로 늙은 부모의 생전의 소원을 풀어주는거였다. 그런데 세월이 다 하도록 그런 기회는 시종 주어질줄을 몰랐다.     무당의 말도 드러맞는 것 같았다. 우석이는 두루두루 걸릴게란 없는거고 기구하리란거였다. 덩치 크고 콩마대를 옆구리에 끼고 달릴 기운이니 남자 우 남자인것이고 부리부리한 두눈에 코 크고 이발 드세니 사내다운지라 맘씨 또한 비단이다. 어려서부터 남과 싸운적 없고 자기걸 남 다 주어버리는 성질이였으니 남자 치고 그게 흠이란거였다.     《에라 이 자슥아, 뉘길 닮아 그케 맘씨 좋노. 맘씨 좋으니 돌아가며 손핼 보고 그러니 덩치값 못하게 담이 참새담으로 남 다 나가보는 버덕엘 못 나가살제이. 》     아버지가 버럭버럭 나무랄때면 우석이도 참을수없어 자길 변호한다.     《우린 웨 한국에 친척이 없는거죠? 우린 웨 이리 가난한거죠?… 그러니 담이 있대도 여기 개골창 올챙이 시적으로 살아야죠. 》 1     생각하기도 싫은거지만 가슴에 손 얹고 눈감고 고민을 가해보노라면 우석이, 자기란 놈은 확실히 담대하나 새 가슴인게였다. 쩔둑발이 홍수도 쩔룩쩔룩거리는 주제로 어뤄쓰란델 나가 신발 징 박고 하루 수입 몇백원씩이나 올린다든데, 처녀적 아이를 지운적 있다던 살짝곰보, 영순이 그 가시내도 어느 도시루 들어가 귀부인으루 잘 살구있다든데… 휴- 우석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머리를 들고 눈길을 두어갔다.     이, 우석이- 가을 해볕이 훼슬훼슬 튀여오는 속을 새 쫓는 허수아비 만들어가는, 둬짐 논밭을 낮에 다루고 저녁과 어뜩새벽이면 한족 왕쓔리의 조수로 두부앗는 일을 거들고 벌어내는 사내, 어쩌면 마지막 이 가을속의 황우석일지도 모른다던거였다.     이 가을과 더불어《떠나야지…》하는 사색이 그예 아람으로 터지려는 때문이든지 사내는 새삼스럽게도 그 큰 머리통을 주억거려 산과 들과 강과 늪과 또 자기의 남자를 앗아간 육실헐늠으 년이 있을 왕쓔리가 드릉드릉 코를 곯 뚜퍼집쪽을 시커먼 집안을 눈알 굴린다 … …     한해 또 한해 지나간 그 가을날들이야 어디 익고 그윽하고 설레던 계절이였던가… 한이 설킨양 슬픔처럼 피였던 꽃들은 동구밖 산길섶에서 떠나가는 사람들과 기약없는 리별이 한창이였으며, 밤마다 아람번 별들이 쏟아져내려 잡플에 묻힌 논밭들을 아쉬워하더니 이내 뒤산도 빈 산이 됐고, 반달늪과 쏘강의 병 들고 여위고 줄었더라도 어린 메기와 붕어새끼들의 안부를 묻는 한편으로 조개와 산천어에게 알이 실리도록 슬프나마 맑은 바람을 들여주고 있었다.     코끝이 맹맹해나도록이나 맑은 가을 하늘을 아른아른 나는 잠자리들의 투명한 몸짓마저도 슬픔으로 흘러드는 느낌이던 그 이어지던 계절속으로 우석이의 방황은 얼마나 멍청하고 애나던지.     《세상 악하고 못된게 사람이지…》     늪이면 늪마다 강이면 강마다 화학약품을 쓰고 남포를 터치고 전기를 넣어 고기를 못살게 굴어 아이만큼씩한 농어를 잡아내던 60년대를 거슬러 고기새끼들도 돌쫑개새끼들만 보이던 90년대를 두고 농부, 아버지는 그렇게 가슴 아파했다.     《세상 똑똑헌체하며 무리한짓 피우는게 농부들이야. 망할짓을… 》     산마다 아름드리 송백을 마구 채벌하여 차츰 벌거숭이 된 민둥산들에선 산 사태가 지고 먼지바람이 귀신처럼 울어 망하지않나 두고보라며 욕설을 퍼붓군하던 아버지였다. 2     《별난 세상도 다 보네… 이게 웬 꼴이가. 농촌이 없어지는 세상을…》     실말이지 농포, 아버지의 눈에 세상은 천지개벽으로 안겨왔다. 아니, 사회관계망이 없고 돈줄이 없어 남들처럼 맘대로 어쩔수없던 사람들에게 세상은 놀랍도록 꼬불견이였을것이였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도록이나 문전옥답도 마구 버리고 해변도시로 현성으로 향진으로 올라가 사는 세월이니말이다.     단지 불쌍할뿐이다, 아버지가. 아니, 그 미열은 자식인 우석이한테 치렬하다. 눈만 펀히 뜨고 남 다 잘되는걸 보고 앉아 빈털터리로 자길 앙탈질할뿐이니.     60년대 중반기까지만도 산에는 침엽림 활엽림으로 숲이 꽉 우거지고 가축인가 싶게 동네까지 심심찮게 내려와 꿀꿀거리다 총에 맞아 뻐드러져 술군들 술안주가 되던 그 흔하던 메돼지와 놀가지며 범, 곰들이 무시로 나무군들을 위협했다. 그리고 승냥이와 늑대무리들이 출몰하여 토비무리를 쫓았다던 촌사에 오른 전설같은 얘기… 벌은 기름이 철철 흐르게 오곡이 파도처럼 설렜다. 강도 많아 앞강 뒤강에 남강이요, 실개천도 소오줌, 말오줌, 당나귀오줌실개천으로 불렸다. 언제나 달이 내려 걸리던 반달늪이며 야밤에 처녀총각이 홀딱 벗고 들어가 목욕하다가 빠져죽었다는 몽달늪, 놀부총각이 더위에 못견뎌 들어갔다가 함박만큼 큰 조개한테 물려 불알 한쪽 떼웠다는 말씹늪… 주먹만큼씩 큰 왕거미가 그물을 틀고 박달새 재 넘어가는 대낮도 한밤중같이 깊은 소박골, 견우직녀처럼 강과 벌을 사이두고 천년을 마주보고 아츠랗게 솟은 코대벼랑과 대포산…《구구구구…》,《뻐뻐꾹…》새들의 목청 고운 지저귐속에 경치수려한 고장이였다.     그렇게 풍요하던 고장이 우석이가 소학교를 다니기시작을 하던 때부터 차츰 코앞에서 하던 장작나무도 깊은 산을 들어가게 되었고 메돼지 사냥도 이삼십리 산곡을 찔러다녀야 된다던거였다. 무서운 일은 초중시적부터였다고 그랬다. 화학비료나 살초제를 쓴 때문에 그렇게 버글거리던 강가재가 자취를 감추고 종래로 없던 황사바람도 분다던게였으니… 볼수없던 산사태나 충재까지 드는 일도 나지니 그저 눈 뜨고 하늘의 조화라하던 그 무식이 악마던 세월이였다.     그럴망정 그나마 적잖이 남은 그리고 흔적이랄지라도 아름다움과 고풍적 유혹이 질척하리만큼 암내런 듯 당겨와 초중도 중퇴하고 16세에 농군이 된것이였다. 벼농사 짓고 소수레에 나무도 박아싣고 황무지 일구고 손바닥같은 물고기 잡아 횃대 끝에 말리다가 겨울이 오면 옹노를 놓아 토끼, 잔꿩, 놀가지도 잡는다. 그땐 얼마나 좋은 세월이든가. 인물 번듯하고 부지런하고 맘씨 좋아 나가도 칭찬, 집에서도 칭찬소리를 떠날줄 몰랐다. 웃집의 순애와 아랫집의 금순이가 장갑도 떠주고 신발도 씻어주면서 다투어 따라서 골머리를 앓고 고민까지 했댔다. 그리고 탄식까지 했다. 손꼽아 세여보면 아직 장갈 들려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그런데 그런 탄식과 즐거움과 행복은 참으로 공연한것일줄이야. 스무살도 되기전인데 꿈에도 생각지 못한《바람》에 오랜세월, 기차 못타보고 개울물에 얼굴 비춰보던 농민들이 비행기 타고 바다있는 도시루 들어가 산단다. 3     《그렇다면 우리 집도 떠나…》그렇게 맘이 움직이기 시작을 함에따라 대대로 살아온 고향이 차츰씩 정이 떨어지고 있음을 어쩔수가 없고 있었다. 톱질과 도끼질에 통나무숲이 사라지고 지어 벌거숭이가 된 산들과 나날이 묵어나는 땅에 수풀만 우거져간다. 하루걸러 찰떡 치고 되놀이도 하던 오붓한 마을은 이제 띠염띠염 여나문집만 남았고 담 끓고 허리 꼬분 늙은이들 깇침소리만 들릴뿐이니 낮이면 침침하며 밤이면 바람소리만 귀신곡을 뽑는 곳이 되어간다…그런들 어쩌란 말인가. 떠나다니 어데로 떠난단 말인가. 우석이는 단 목이 빠지게 죽지못해 살아온것뿐이든 것이다.     우석이는《푸르릉》하는 소리에 깊은 생각속을 떨쳐나와 허공에 시선을 걸었다. 천마리가 될상싶게 한무리의 참새들이 하늘을 까맣게 점 찍으며 우석이네 벼밭을 실컷 까먹고서 황혼속을 깃들이고저 날으는 중이다.     《그저 렵총을 하고 쏴야겠군, 제길! 》     그런 중얼임도 입밖에 튀여나가자 이내 헛된 소리임을 깨닫는다.     《떠날 놈이 렵총이 다 뭐야. 》     그런 새삼스런 소릴 짓씹으며 그는 허수아비의 머리통에 퉁자를 덜렁 씌우고나서 논두렁에 힝하니 올라섰다.     서산에 해는 지고 우석의 얼굴엔 근심으로 구겨진다.     두부앗이 왕쓔리아낙이 기다릴 저기 한족동네의 시커먼 나무구새에 가 눈길이 머물기전에,     《챠, 똑 동년적같이 산과 벌이 여물어가는디 그 시절과는 달러서 온통 버림을 받은 꼴여 꼴… 》     그런 소리가, 요즘들어 매일 하는 똑같은 소리가 나가며 성매방아처럼  눈길이 돌아간다. 그랬다. 그건 인간들에 의해 찍히고 여위고 비여갔던 자연의 부활, 산은 숲이 무성해져 짐승들이 찾아들고 화학제사용으로 알카르를 잃었던 벌이 성해지고 오염되였던 강과 늪도 원기를 회복한것이든 것이다. 그러니 자긴 어쩔수없이《페농》을 면치못한다. 4     엄청 새들이 많아진데 비하여 논밭이 너무 적었으니 몇백사람이 농사짓던 넓은 벼밭에 덮치던 적은 새들이 지금은 한두사람이 짓는 왕쓔리년 이불자락만큼한 벼밭을 덮쳐들어 다 까먹으니 더는 자연을 람벌 할 사람들이 없어진 걸어온 세월동안을 산과 벌이 살찌는게 좋을턱 없다. 하늘로는 새들이 벼, 밀농사를 까먹고 까마귀들이 옥수수를 발가먹는다. 그뿐인가. 산으론 메돼지들이 감자, 무우, 고구마를 다 뚜져먹는데다 범이 내려와 우석이네 멍멍이를 물어가더니 피똥을 갈기던 암소마저 각을 피뤘으니 이 아니 똥, 똥같은 풍요함이 아니랴.     고향을 떠나느라 제정신이 아닌바람속에 거의 20년을 바라보게나마 산에 벌에 인적 드문때문이였을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댔는데 이토록이나 긴 세월동안을 수목이 커가고 잡풀이 성기고 물이 씻어 흘렀으니 독자들이여, 20년 가까이 고향이야 얼마나 원시적일만큼 푸들었으랴.     《참말로 산천경개 좋을시고… 하건마는…》     어제처럼 똑같은 소리로 중얼이며 머리를 절레절레 젓는 것은 고독이 시키는 탄식인지 말못할 유감이 자아내는 한탄인지 모를 일이였다.     곁에 한또래 친구들이라도 있다면,     《허허허, 우리 저 대포산에 올라 부엉이 알이나 꺼내다 술안주 시킬가… 》     곁에 처녀들이나 있다면,     《내 산천어 잡아올게, 우리 들놀이겸 회 치고 굽고 고추장 풀어놓고 볼랑볼랑 끓여서… 》     혹은 곁에 곰보안해라도 있다면은,     《산 좋고 물 좋고 다 좋은데 우리도 한번… 》     그러나 우석이에겐 그저 자기의 그림자밖에는 없다.     《세상에 젤 참기 바쁜거 나 알어유. 처럼 사는거 있잖아요… 》     아버지 앞에 로빈손크루쇼 얘길, 그것도 누렇게 넌덜거리는 소설책을 읽은 것을 장황히 늘어놓던 그날, 오후도 무더위에 소불알이 익어터질 늦은 오후에 그림자와 같이 보기만해도 시원할 남강으로 나간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기가찬 칠월의 무더위였다. 폭양속에 산과 벌의 초목은 나른해지다못해 축 처지고 길섶 고들빼기나 여뀌, 개망초들은 밸처럼 탈렸고 길은 발목이 빠지게 먼지가 풀썩풀썩 일었다. 5     《와아- 이-, 배촨을 건느게… 》     대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우석이를 움켜잡았다. 챙챙한 녀성의 목소리든 것이다. 대안은 남쪽이였다. 남쪽켠에서 녀자가 건너오겠단다. 그런데 조선족녀자가 아니고 한족같았다. 처녀도 아니고 아낙년같았다… 죽는 꼴을 보이고 있었다. 용용히 사품치며 흐르는 시커먼 강쪽으로 마주하고서 허위허위 손저어대며 배 좀 건네다 달라고 야단법석을 짓고 애원질이다. 그제야 보니 누가 한 짓인지 배줄이 끊어진채 배는 우석이쪽 둔치에 와 붙어 있는게 아닌가.     우석이는 줄배에 뛰여올랐다. 배두에 서서 힝 하고 한번 와이야줄을 당기면 배는 네댓메터씩이나 수면을 미끌어져 나간다.     대안에 가 닿고보니 매일 식전마다 강 건너 마을로 두부 팔러 다니군하는, 논 농사는 뒤전이고 콩 농사같은 한전다룰줄밖에 모르는 후리골동네의 두부장사, 왕쓔리가 아닌가. 붉으우리한 얼굴은 가을 호박같고 개구리 모양 불쑥 내밀어진 배 때문에 허벅지의 거무튀튀한 바지는 터질 듯 한껏 신다리에 압박되여 갱년기의 아닉이 아니라면 만삭의 임신부로 잘못 착각을 할지도 모른다.     더위속에 버들가지를 한줌 꺾어 머리뒤로 가린채 그녀는 울상을 하고 하소연을 한다.     《어느 씹둥이루 잘못 빠져나온 놈으새끼가 배줄을 끊어서… 이건 식전 아침에 두부 팔고… 개새끼… 당나귀좆같은… 구족을 멸해도 시원찮을 네 에미… 같은 새끼… 》     《듣는게 욕을 먹는다구 그만 하라구유. 》     그러며 우석이는 두부판이 빈 리어카를 낑 들어 배판우에 실었다. 어느 고약한 사람의 행사 때문에 식전아침에 나와 아침, 점심까지 촐촐 굶은 아낙은 그제야 기아를 느꼈던지 맥이 빠져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참 고마워, 젊은이》그런 뜻이던지 씽씽 배를 몰아대는 우석이만 뚫어지게 쳐다보는게 아닌가.     《왜 그런 눈으루 사람 보아유? 》     《배 고파서 본다, 왜? 헤헤》     《하참. 배 고픈데 날 보믄 내 고기가 먹혀유? 》     《조선족 총각들을 눈요기하믄 배 불러진다더라, 왜. 헤헤》     《왜가리처럼 왜왜거리면서 이 아줌마가 이거… 물에 곤두박힐라. 》     우석이는 슬그머니 골이 난 자신이 만족스러워졌다. 그것도 어림셈을 쳐도 자기보다 열댓살이나, 고모벌은 될 한족아낙의 입에서 마구《조선족총각》을 희롱하려들다니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게 놔둘수 없든 것이다. 그런데도 아낙은 입을 가만있질 못한다. 6     《농담으루 들어둬. 나 이래뵈두 불쌍한 녀자야. 남편이 풍을 맞구 남자구실을 못한지 석삼년이라구.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한밤중까지 두부 세판을 혼자 하느라면 온몸이 제 살같지가 않게 아프구 물씬거리지… 한족동네라야 끌끌한 남자들 다 도시루 나가 일감 찾어갔기에 없구… 그러니 내 어찌 자길 부러워하지 않겠나…》     《사위루 삼구싶다 그런 뜻이우?》     《늦었어. 딸이 두달전에 금방 시집을 갔구만, 쯧쯧. 》     《병신같은 눔에게 막 줘뿌린거 아뉴? 아니믄 그 집딸이 좀 어딘가…킬킬》     우석이는 질투 때문에 빈정거렸다.     《이럼 어떻겠나, 내 매일 일공으루 4원50전씩 딱딱 줄테니까 새벽 네시에 와서 두부 앗이를 거들고 오후 세시반에 와서 한판을… 》     《매일 4원5십전을 준다? 》     우석이는 눈빛이 확 일었다. 하루에 꼭꼭 4원5십전씩이나 손에 돈을 쥘수있다면 한달에 삼사는 십이에 삼오는 십오라 그러면 백이십원 더하기 십오원 하면은 백삼십오원이라, 일년이면 천오백원도 넘는다. 농사를 지어서 얼마 떨어지던가. 이건 큰 수확이 아닐수 없었다. 허구헌날 자기 집, 그나마 수목이 우거짐에 따라 새 들이 엄청 놀라운 수자로 늘어나 이제 더 벼농사를 짓는다는건 골치 아픈 일이겠든 것이다.     《왜 딱 4원5십전씩이유? 아예 5원이면 5원이지? 》     《네깟눔이 나와 흥정질이야, 일년 농사를 참새와 메돼지한테 다 앗기고 아비아들이 배 곯고 사는 주제에 하루에 4원5십전이믄 업여로 버는게 아냐. 돼지고기 두근 나마 사고도 술 한병값이야. 싫으면 관둬라. 하겠다는 사람 쌔구버렸으니까. 》     《헌투레길 주어 팔아두… 》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자신은 죽어도 고물장사는 못하겠기에 응낙을 해버린거였다.     《아부지, 알지? 나 랠부텀 로빈손크루쇼처럼 안 살게됐어. 새벽과 저녁편으루 두부간에 가 물퉁자 들어주구 월급쟁이질하게 됐어유. 크하하. 》 7     《그래?! 이눔 자슥아, 로빈손인지 하는 놈이야 태여나자 빈손뿐으로 빈털터리가 아니겄냐. 그래서 로빈손! 넌 뭐냐? 태여나자 황우석이니 황금덩일 소수레처럼 굴리구 산다는거 왜 모르느냐. 》     아버지도 대견스러워했다. 그도그럴것이 우울증이던지 공허증이던지 아들놈이 새벽잠이 통 없이 큰 눈만 뚱그래서 천장만 쳐다보는가하면 저녁엔 놀러갈 곳 없이 개만 안고 노는 것이 안타까와 못 보겠던 것이다. 이젠 됐다. 돈보다는 할 일이 있으니 됐다. 거기다가 자기로서도 썩 내켜하니 말이다. 어찌 그렇치 않으랴. 하나밖에 없는 씨알머리가 버덕엘 못 나갈망정 물앉은 백치로는 되지말아야 잖은가. 헌신짝도 짝이 있다거늘 기회를 보아 한족과부라도 부쳐놓아 손주놈이나 보믄 될일인데.     그리고 생각은 우석이도 은근히 하고 있은지 오랬다. 순애나 금순이같은 가시내들은 이제 죽었다 살아나도 더는 못 볼것이고 그나마 점점 나이를 먹어가니 이젠 어느 한족마을 깊숙이 헤치고 들어가 좋긴 아이 없는 과부년이라도 좀 젊은 것으로 맞아들일 참이던 것이다. 순이랑 친구들이랑 알면 비웃을것이겠지만 이제 무슨 방법이 있단말인가. 자긴 버덕으로 나갈 놈이 못된다. 그런 연줄을 달아줄 사람도 돈도 없다. 자기같은 무지러지가 나간들 도시나 현성에서 뭘 해먹고 산단말인가.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두 말아얀다. 》그런 중얼임은 언제부턴가《올라간들 무신 소용 있갔남. 도리여 내려다 볼끼고만은.》했다.     우석의 신조는 왕쓔리네 뚜퍼간으로 다니고부터 굳어진 듯 했다.     《망아지의 세계가 그것이고 우물안의 개구리 세계가 그것이야. 각기루 사는 맛 다른거다. 》그거였다. 뜻인즉 이 세상천지 어델가나 뻐둑거리고 일해야 먹고 사는게 농민일망정 음식점 일을 하느라면 펄펄 끓는 국에 델것이고 건축일을 하느라면 벽돌에 대갈통이 깨지리라는 거였다. 그러며 자기야말로 두부나 거르며 콩물살이 오르는 일감을 잡았노라고 느긋한 기분이 되군 했다.     아, 이 황우석이가 언제 버득으루 나가지못해 가슴을 박박 긁으며 못난이 질을 한적 있었던가싶게 그는 첫 새벽을 두부간으로 찾아간 것이다.     일은 별거 아니였다. 뽐프로 자아 큰 물독에 물을 채운다음 련거퍼 물 십여퉁자를 퍼내여 두부가마에 붓는다. 다음 밖에서 석탄을 퍼 들인다. 그런 일은 순식간에 끝난다.     저녁에 그는 일이 끝나던 자리로 일삯을 받았다, 4원5십전을.     《챠, 이런것도 다 일이라고. 카하하》 8     너무 쉽게 번다고 아버지앞에 으시댔다. 하긴 밭일을 하는외에 업여로 벌어내는 현금치기였으니 그럴법도 했다.     그런데 하루이틀 지나면서 보니 일은 거기에 그친게 아니던 것이다. 울안에 피둥피둥 살찐 돼지 열마리나 되었는데 돼지죽을 주는 일을 맡기는게 아닌가. 그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자칫 똥을 바르고 더러운 일인데다 돼지죽에 손을 데거나 죽지게를 네댓번 지고나면 땀이 비오듯 한다, 제길. 아무리 생각해도 4원5십전을 받고 돼지죽을 준다는게 억울했다. 그렇다고 일삯 5원을 채워달라기도 그렇고.     뭐나 오래하느라면 꾀가 생기고 고가 튼다. 실하면 약하게 만들고 애하면 푼하게 하는게다.     그는 자기가 보고있는 손핼 미봉하고저 했다. 그건 죄가 아니라고 여겼다. 두부를 앗느라고 김이 뽀얗게 싸여 앞을 분간키 어려울 때 콩물을 꿀럭꿀럭 배 부르게 마시는 것 말고라도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땐 포장된 두부 한모를 슬쩍 품속에 넣는다. 두부 한모에 1원5십전이라, 콩물을 적어도 50전어치는 마셔두었겠다 그러면 일삯까지 하루당 땡땡 굳은 6원5십전이 되든 것이다.     두부 한모쯤 잃어지고 콩물 반바가지쯤을 들이키는 것이 해내는 일에 비해 과분한게 아니든지 그냥 모르는척해두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억지로 참고 지낼 생각지 못할 일에 닥쳤다.     원체 입이 쌍트럽던 아낙의 입에서 우석일 공개적으로 멸시를 하고 대하는 거였다.《돼지보다 둔한 놈이…》,《개같은…》,《거러지같은 꼬락서니를…》그런건 관두고라도《서른살이 되도록이나 녀자 맛도 못 본놈》이랄때는 이가 갈리게 참아내군 했다. 그저 그런년이겠거니, 남편의 병시중으로 고생고생하던 나날에 생긴 괴병이겠거니 했다.     이것저것 탓하다간 이런 돈벌이마저 떼울것같아 참는도중이였는데 콩물 사러온 사람들에게 콩물 파는 일까지 맡긴다. 어디 그뿐인가. 두부를 하고난 뒤의 콩비지같은 찌꺼기를 큰 퉁자에 담아 지게로 져 나르란다. 나무를 패고석탄을 깨고 두부방바닥을 걸레질하고…     어느날 일에 지쳐 들어온 아들을 보다못해 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어진것아, 배 터지도록 콩물이나 마셔두고 배가죽이 데도록 그 뜨거운두부모나 넣어오는데만 그치지말고 일한것만큼의 삯을 올려달라고 해보려므나. 휴-》     그제야 심심히 깨닫고 힘 입어 일삯을 단 1원5십전이라도 올려달라고했는데 쓔리가 코를 핑. 하고 풀어던지며, 9     《오십전을 가해줄테니 그것도 적다면 가서 온하루 메돼지나 새를 쫓던지… 5원씩이면 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거야. 》     하루 또 하루를 5원씩을 받아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벼개밑에 돈을 모아두는 재미던지 억울함도 참고 코도 자주 푸는 뚱보 아낙의 말이면 꼬빡꼬빡 들어줄밖에 없고 있었다. 그러나 맘속 깊은 곳으로부터 지금껏 장갈 못들고 있다는, 남다 산골오지를 떠난 이 곳을 여적 떠나지못하고 남아 허덕이는 자기의 꼴을 우습게 보고 없수임을 대하는 왕쓔리겠음을 차츰씩 그 언행으로부터 깨닫으며 수치감이 쌓이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그날도《이 둔한놈아, 돼지보다 못한… 》하고 앙칼진 욕설을 들쓰고 나선뒤 불 붙는 속을 달래고저 마을을 벗어났다. 새벽에 나서서 두부 두판일을 끝내고나니 콩물을 마셔두었을 망정 밥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발길은 곧추 대포산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제하던 생각이던가, 남들처럼 이 산촌을 벗어나 현성이든 어느 도시든 그런 천국같은 곳으루 가 살리라던… 그런데 지금은 저 왕쓔리네 두부방도 벗어나길 이같이 바쁘다니 대체 이건 무슨 숙명이란말인가.     《그래, 뛰쳐나오고 말테다. 못 나올게 뭐야… 》     더러운 년의 노예처럼 지내느니… 대체이 우석이가 어데가 못나서 쓔리네 콩물을 팔아주고 돼지를 먹여주고… 그러다가 주체할수없게 웃음이 나간다. 킬킬 그냥 웃어대다가 끄으윽 하고 울음이 질러지는게였다 그는 그렇게 엎디고 우는 곳이 대포산 정상의 떡메바위우든 것이다.     훼슬훼슬 한낮의 열기를 되 뿜어내는 바위들에 눈물을 텀벙텀벙 쏟는 우석의 꾹감은 눈숙에는 자기가 열살잡던 해에 병으로 저 세상 간 어머니가 보인다.     《우석아, 너한테 누나도 없고 누이동생이라도 놔주리라 했는데 이 어미가… 이 어미마저 멀리로 가니 넌 이제 얼마나 외롭겠니… 우리 우석이가 장차 큰 사람 되는걸 보려했는데… 》     어머니는 북망산에 묻혔다. 북망산에서 이 우석이가 출국을 언제 하느냐, 너도 도시루 나가 휘 돌아보고 거기서 살며 돈도 벌지않느냐 손저어 물어오는게 보인다… 그리고 자꾸 눈물 훔친다. 이 아들이 불쌍하단다… 그리고 위로도 해준다. 언젠가 우리 우석이도 이 좁은 곳을 벗어나 바다가 있는 큰 도시루 들어갈때가 있을게라고… 꼭 있다고. 여기 고향이 나빠서가 아니라 도저히 혼자서는 살아내지 못하기때문이라고. 10     우석이는 눈물을 쓱 닦고 대포산 높은 바위우에서 아래를 굽어 살핀다. 그는 금방 큰 결심을 한 듯 앞 가슴을 쑥 내밀고 이를 악문다… 저 푸른 강, 반달늪, 그리고 아름드리 소나무 숲…어데 간들 하루에 돈 5원어치 벌지못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자신심은 차츰 식어가고 있으며 한숨으로 새여나간다.     이태전부터 그는 긴긴 겨울속을 돈낟가리 쌓을 꿈을 설계한것이였다. 그런 꿈은 어디까지나 환상적이 아니였고 과학적이군 했다. 현실이 립증하는게였다. 오래동안 삼림을 람벌하거나 강이나 늪에 남포질하거나 화학약품을 쓰고 사람이 없었던 탓으로 산에는 버섯과 약재가 흔하고 짐승이 욱실거리며 강과 늪에는 물고기가 우글거린다. 문밖만 나서면 모든게 다 돈이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태동이 되고나자 그런 꿈은 생각과 판이했다. 산에 들어가 한주일이나 헤매고 다녔지만 인심은커녕 황기뿌리 한마디 눈에 띄지않았고 버섯도 한여름에 비가 내려야 눈에 띄는게였다. 그렇다고 곰이나 메돼지는 잡으려다 되려 먹히지나 않겠는지 놀가지나 토끼새끼 한 마리도 그저 눈 펀히 뜨고 바라볼뿐이던 것이다.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낚시질 재간이 무딘지라 온 하루를 앉아도 낚시찌만 갈아대다가 먼지 털고 돌아서기가 일쑤이다. 가을에는 흔해빠진게 물고기라 어쩌다 큰걸로 잡아팔려해도 사는 사람 드물다. 한번은 늪에서 왕사발만큼한 조개 한드럼 잡아서 뻐스 잡아타고 현성으로 팔러 갔던 일이 있다. 갈적에는 제꺽 팔아 손에 돈 백원이나 쥐고서 개고기탕에 술 둬냥을 뽁 하고 얼근해서 녀 리발사의 잘근잘근 녹여줄 손가락에 만지워 머리나 깎고 그담엔 몸 전신을 막 죽게 주물러낸다는 미인 안마사한테 가 피곤기나 확 풀어보리라 한건데 이건 뭔가,     《당나귀발통조개, 소발통조개, 말씹조개- 청춘에 혈기 왕성하고 중년에 원기 돕고 로년에 회춘을 하는 조개- 사시유- … 말씹… 》     그렇게 부끄럼 무릅쓰고 왜가리 목청을 뽑았지만 온 오전을 생각처럼 와 사려고드는 사람 없었는데 점심때도 많이 기울어질즈음,     《이그 쯧쯧, 늙은 할마시의 그것처럼 축 죽어빠진 걸 뉘 산답데. 쥐여뿌려도 아깝잖은 것을… 그저 한 5원에 내게다 다 넘길거지. 》     그제야 드럼안을 들여다보니 한낮의 폭양에 그 싱싱하던 조개들이 싯누른 속살을 드러낸채 벌려진 따개비사이로 짙푸른 비린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는데 쉬파리가 잉잉 덮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더럽게 사기를 쳐 폭리를 보려한다는 괘씸한 생각에 올려다 보니 얼핏 익어터졌다고도 할수없고 물쿼서 흐물떡거린다고 할수도 없게 얼굴을 들여다 보면 꽤 젊었고 몸뚱이를 보면 개구리배 모양 엉덩이아래로 터지게 청바지가 한껏 압박돼있는 허벅지든 것이다. 11     한낮의 태양열기를 다 담았던지 이글이글한 그녀의 탐욕스런 눈길을 피해 그녀 앞 보자기안을 들여다보니 아차, 저것도 사람 먹게 내다 파는 음식인가. 위잉. 하고 쉬파리들이 날아나는데 죽어 넘어간지 이레도 넘게 말의 그것같은 돼지순대가 시커멓게 꼬들꼬들 말라탈려빠지고 변해있었든 것이다.     《응쯧쯧. 저게 자기의것이유? 속은 쉬여빠지구 껍질은 질긴 뭣같을 그것처럼이나 까탈리게된 것이… 쉬파리들두 못 먹어 날아나누만기래여. 그러니까 내걸 사기치려구? 》     《뭐? 사기를 쳐? 야, 방치같은걸 차구 사내답지못하게 산증에 성병 걸린 아낙년의 그것같은 조개나 잡구 나다녀… 드럽다, 퉤. 》     《이썅. 어데가 털 뽑히구 와 입씹질이여. 이게 여적 녀자루 퀴퀴하게 썩다가 뭣같은 돼지순대나 팔구 살며 만족을 느끼는… 》     … …     더 돌이키기도 싶잖다. 그러고 보면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두부방에서 돈 5원씩 어김없이 벌어내는 일도 정작《퉤!》하자니 아쉽기도 한게였다.     우석이는 두부방에서 새벽녘과 저녁시간동안을 울며 겨자먹기로 일을 해야 했다. 여름도 깊어감에따라 날씨가 어찌나 무더운지 일을 조금만 해도 온 몸이 물자루가 된다. 그는 아예 짧은 바지 하나만 걸치고 웃동을 드러내고 일했다. 떡 벌어진 앞가슴과 울뚝불뚝 일어선 근육은 고동빛으로 번들거린다.     그날도 이른 새벽을 두부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왕쓔리가 변했다. 아니 전혀 다른 녀자루 나타난거다. 소매 짜른 연두색 블라우스를 입고 붉은 목단꽃이 수놓인 앞치마를 두르고 나섰는데 산봉우리같은 젖무덤이 덜렁거리고 입술은 붉은 메니큐어를 칠하고 눈 언저리도 잉크빛으로 칠했다. 그리고 일을 하느니 곧 땀으로 얼굴을 검붉게 얼룩간 것이 흡사 무당굿을 하는 귀신어멈의 얼굴 꼴이다. 그래도 필경은 녀자라서 자꾸 거기로 눈길이 지꿋게 가는걸 주체못한다.     말씨도 다르다.《이새꺄… 돼지같은… 》하던 말투를 고쳐《총각》이라고 부르는데다 쩍하면《아유… 꺄루룩 낄낄 》잘도 웃어준다. 그건 그렇고 새뽀얗게 두부김이 서려올라 앞을 잘 분간할수없는걸 턱대고 자꾸 부딛쳐오며《아야야, 간지러…》하고 엄살인양 간드러진 소릴 뽑아대군 하는데 그럴적마다 두부살처럼 뭉글뭉글한 젖가슴이 감각되며 주착없게 아래도리가 튼실해나서《제길할!》하는 신칙이 나간다. 12     쉰살을 랠모레로 쳐다보는 아낙의 성감도 쉬여빠질걸로 짐작을 하고 그저 그럴때가 있겠거니 례사롭게 대하던, 아니 그러한 씁쓰름한 아낙의 살결을 부딛치고 흥분을 느끼던 자신이 되려 어처구니없고 부끄럽게 검토해보던 어느날이였다.     그것도 하루 일에 온 몸이 녹작지근 할 저녁도 아니고 몸의 어느 부위나 샘처럼 기운이 솟는 어뜩새벽녁이든 것이다. 두부방에 들어서서 두부 한판이 다되여갈무렵, 새뽀얀 뜬김속에서 우석이가 걸탐스레 뽀얀 콩물을 둬모급 들이키고 있을무렵이였다. 뭔가 보드랍게 자기의 앞가슴을 쓰듬으면서 목덜미를 핥아오던거였다.     《우리집 두부물을 마시고 찐 탐스런 이 살을… 일삯 1원을 더 올려서 6원씩 줄게… 》     《… … 》     우석이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힘이 무궁무진했지만 왜 그런지 그녀의 몸에 밀착된 자기가 흥분에 취하며 그대로 끌리고 합작을 하는게 아닌가… 우석이는 그녀와 관계를 끝내고나서 아주 잠간새에 일어난 일을 두고 기막히게 후회가 들었다. 그는 냉큼 밖으로 뛰쳐나가 돼지굴곁에 쭈크리고 앉아《왝왜액》하고 구역질을 해댔다… 토악질을 해대다가 쿡. 하고 눈물이 솟구치는걸 막을수 없었다. 순애랑 금순이랑 얼굴들이 떠올랐다. 햇순같이 말쑥한 얼굴, 샘처럼 맑고 초롱초롱한 눈, 웃으면 박씨처럼 가쯘히 드러나는 아래우의 12대의 흰 이, 걀쑥걀쑥한 손마디, 치렁치렁한 쌍태머리가 날씬한 허리를 드리운 그네들이 알면 뭐라고 할까… 그저 미칠것만 같았다.     우석이는 남강으로 달렸다. 시퍼런 물굽이, 하늘의 정기를 핥아먹어 밑바닥끝까지 짙푸른 하늘같이 넓은 파도가 우석의 가슴을 쳐대는거였다. 돋을 볕에 눈을 부시는 물보라… 아침을 노래하는 물안개… 엊저녁도 높다란 대포산과 휘우듬히 수줍던 달을 잠재우더니 바람 세찬 한낮을 맞아 하늘을 입은 채 밀려와 둔치를 물어뜯고 자갈톱에 몸부림 치는 파도, 그 물바람속에 깃을 갈며 나비처럼 나부끼는 저 여러 물새… 댕기물떼새며 민댕기 물떼새의 가슴은 또한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 같은 활달함과 항홀함 때문에 우석은 더욱 분개했고 수치를 느끼며 몸둘바를 몰라하는게였다.     《풍덩!》하고 남강에 빠졌다. 아니 뛰여들었다. 씻어야 했다. 맑은 남강물로 오염되고 때국진걸 깨끗이 씻어내고 그러면 마음의 상처도 새 살이 돋을거라고 여겼다. 우석은 흙반죽을 이겨 들썼고 눈 알만 판들해가지고 강속 성긴 모래를 쥐여 자기의 몸뚱아리를 부어나도록 때려쳤다. 그리고 이제 더는 그런 수치스러운 짓에 몸 적시지않도록 높은 강턱우에서 거꾸로 세 번이나 강물에 몸을 처박아댔다. 13     《이제 한번만 더 왕쓔리와 그런짓 치른다면 이렇게 죽을테야》     그래도 돈 5원벌이는 아니, 이젠 6원으로 올라간 일삯이야 벌어야겠다고 옹근 밤을 잠 설치며 고민을 한 것이다.     질끈 눈 감고 두부방에 들어섰다. 총각은 총각이였고 촌뜨기가 옳았다. 왕쓔리앞에서 자꾸 몸둘바를 몰라하는 꼴을 보였고 정면으로 대할 면목이 없어했다. 그럴수록 왕쓔리는 그게 재미있다는 듯 꼴꼴 웃고 뽀얀 뜬김속에 몇번이나 정겹게 부르고 그 비대한 몸뚱아리를 꼬면서 꼬집기도 하는거였다.     아침 두부앗이와 저녁 두부앗이를 어떻게 참아냈든지 모른다.     왕쓔리는 하루 일삯을 건넸다.     《6원이 아니우? 왜 5원이유? 》     《야, 되려 네쪽에서 돈을 내야할텐데… 내가 아니믄 한뉘 남자질을 못할번했을건데. 》     《뭐야? 한뉘 남자질을 못해? 이런 썅… 》     고대 악담이 터져나온걸 못 참아했다. 그때였다. 우석이 눈앞으로 별이 튀겼다. 왕쓔리의 투박한 손이 뺨에 떨어진거였다.     《꼬리놈아, 내 말이 그른데 없어. 텅빈 마을에 방치같은걸 차고 한뉘 늙을 네 놈이…》     《에라, 더러운 년이 었다 대구 악다구니질을… 》     우석이는 드디여 폭팔했다. 갈퀴같은 손으로 왕쓔리의 낯판대기를 호되게 휘갈긴 것이다.     밤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시원한 바람이 볼을 쓸어준다. 등뒤로부터 아낙의 욕설이 들려온다.     《…수캐보다 못한… 뭣이 행복인줄도, 행복을 똥으로 아는 놈… 대를 끊을 미욱한 돼지…》     우석이는 왜 그런지 분하지도 아쉽지도 않고 있었다. 전번처럼 미친놈같이 웃지도 않았고 울음을 퍼지르지도 않았다. 무겁고 무거운 돌덩이를 부려놓은듯이나 걸음이 가볍고 멍에를 벗은 수송아지가 양지바른 초원을 만난듯한 자유로움이고 있었다. 그는《황포돛대》를 멎지게 휘파람 불고 있었다.     《미친놈이군, 미쳤다니까… 》     왕쓔리의 욕설이 멀리서 들려온다. 14    그러나 그는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늙은 아버지 앞에 풀썩 무릎을 꿇고는 눈물을 텀벙텀벙 쏟았다.     《아버지, 전… 전 랠 오전중으로 떠나가렵니다… 그렇게 결정지었으니깐요… 더는 이렇게 살수가 없다구요… 》     이 놈아, 뭐? 네가 이 아비를 두고 떠난다구… 불효를 저지른다고 풍기를 만난 사람처럼 분기를 내뿜을줄 알았던 아버지가 전혀 뜻밖으로 나올줄이야.     《기래. 이제야 내 아들놈 답어. 이 아비가 이런 날이 오기를 고대 기다린거라구. 떠나야 할 사람인게야, 암. 그렇구말구. 》     《… … 》     어디를 떠나느냐, 북경으로 가려나 현성으로 가려나… 불시로 도시루 들어가면 친척 하나 알 사람 하나 없이 어떡한다는 거니… 무슨 일을해서 돈을 번다냐… 물을 말도 많겠건만 아버지는 물어오지 않는다. 주름많은 눈 언저리로 물빛이 번들거리고 꾸륵꾸륵 대통 끓는 소리만 들릴뿐.     순애랑 금순이랑 가 있는덴 어떤 곳인지… 현성으로 가든 해변도시루 가든 뭘루 벌어먹어야 하느냐… 에라, 가보자. 돈 백원이나 있으니 기차 타고 한 오백리나 가볼가부다. 가야 할 곳 이름도 모르고 친척도 친구도 없는 도시, 그저 층집이 꽉 들어서고 차량이 실북나들듯한 붐비고 사는 도시루… 단 한가지, 그것은 유일한 신심이고 있었다.     - 마을의 키다리 염대장은 18층자리 아찔한 빌딩을 짓다가 떨어져 콩가루가 된지 십년도 넘고 미용하고 처녀라고 떠난 뒤집 아낙은 칠년전에 도적배를 타고 푹. 칼에 찔려 휴대한 돈 앗기고 바다귀신 된후로… 더는 죽었단 말 못 들었다. 더욱이 떠나간 그 숱한 마을사람들이 굶어죽은 사람 있단 말 들은적 없잖은가… 그들은 모두 소 처럼 일할 것이다, 일감들이 그득 밀렸겠으니 그들은 모두 쥐처럼 살 것이다. 도시란 거대한 삶의 환경속에 《쥐구멍》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 때문에.     아, 그런데 아쉽다… 우석이는 밤이 마저 가는 시커먼 집안속을 황소눈을 해가지고 부릅뜬채로다. 자꾸 한숨이 나온다. 가슴이 탄다.     먹물을 푼 듯 온통 새까만 집안속이 영사막처럼 안겨오고 있는다… 오래동안 인간들의 손길과 발길이 닿치않아 앞벌뒤벌이 묵어났다지만 그새 땅은 부식토가 되어 기름지고 화학살초제에 멸족을 고했던 가재들까지 환생하여 들여다뵈는 강과 호수는 맑고 푸르러 일렁인다. 산마다 숲이 우거지고 꺼겅꺼겅 잔꿩이 울어예고 노루사슴이 떼를 지어 언덕을 누빈다… 아, 나 처럼기운 센 청년이 한 둴만 같이 농살 지어도 논 몇헥타르나 되어 새들의 독차지엔 아름찰텐데… 그리고 또… 15     이제 떠나야지. 떠나야 할 이 못난 놈을… 우석이는 눈물이 흥건한 시선을 들어 창가로 향했다. 동창이 휘여휘여 밝아오고 있는것이였다.     《벼파도 칠 이 풍요한 고장을… 》     떠나야 할 때를 알며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더 그렇게 중얼이고 있었다. (2006년5월16일 밤)
8    추 천 사 (장편소설"장야몽"에 대하여) 댓글:  조회:1670  추천:21  2010-12-16
추 천 사          문화대혁명시기를 다시 돌아보게 한 중견작가 량춘식의 장편소설 《장야몽》이 일전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여 독자들과 대면하였다.     3장 53절, 40만자로 된 장편소설 《장야몽》은 문화대혁명시기의 흑룡강성 목릉현의 한 시골마을을 무대로 섬세한 필치로 주인공 《식》의 모순된 내심세계와 성장과정을 《기나긴 꿈》의 장면으로 핍진하게 묘사하고있다.     터무니없이 《반당반사회주의분자》로 전락되여 현성에서 시골소학교에 쫓겨간 아버지를 따라 농촌소학교를 다니는 주인공은 남다른 노력으로 학업에 열중하지만 《반당반사회주의분자》인 아버지와 대를 물리며 내려온 부농성분 때문에 그렇게 매고싶었던 붉은넥타이도 못매고 공청단에도 가입하지 못하며 참군도 좌절되고 공농병대학에도 갈수 없게 된다. 이렇게 농촌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도 자기앞날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은 식은 대학입시가 회복되자 정신병자노릇을 하면서 놀라운 의력으로 대학입시를 준비, 끝내 소원대로 최고학부에 입학한다.     소설은 경상도사투리와 중국동북농촌의 거친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 대동란시기 농촌에서만 볼수 있었던 애잡짤한 애정스토리를 곁들여 독자들의 구미를 더욱 당겨준다.     1957년 흑룡강성 목릉현에서 출생한 량춘식은 선후로 흑룡강성오상사범학원, 길림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훈춘에서 조선어문교원으로 사업하였다. 다년간 작가는 《누나네 마을》 등 80여편의 단편소설과 《레몬빛선택》 등 12편의 중편소설외 장편소설 《지옥은 천당이다》를 창작하였다. 2008년에는 그의 중편소설 《하류의 물살》과 《푸른 강은 흘러라》가 영화로 각색되여 부산영화제에 출품되여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량춘식은 현재 훈춘시제2고중에서 조선어문교원으로 사업하는 한편,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 주임, 연변작가협회 리사, 훈춘시작가협회 부주석 등 직을 맡고있다. 그는 장편소설 《장야몽》을 10년대동란을 겪어온 교원가정들에 삼가드린다고 말했다.    《장야몽》은 문화대혁명시기의 흑룡강성 목릉현의 한 시골마을을 무대로 섬세한 필치로 주인공 《식》의 모순된 내심세계와 성장과정을 동란시기 농촌에서만 볼수 있었던 애잡짤한 애정스토리를 곁들여 독자들의 구미를 더욱 당겨준다.   《진달래문예상》 창작상 (왼쪽으로부터 두번째- 량춘식)      연변주 제7회 “진달래문예상”수상식이 12월 18일, 연변주정부청사에서 개최, 2009년이래 연변주 문예창작분야 우수문예작품과 개인을 표창하였다. 량춘식의 장편소설 "장야몽"이 영예롭게 창작상을  수상했다.     금주의 문인으로 추천한다.     "문학닷컴 편집부"    
7    [단편소설] 먼 불빛 댓글:  조회:2312  추천:33  2010-03-24
[단편소설] 먼 불빛 량춘식 먼 현성의 불빛은 밤마다 별로 떠온다. 가난하고 아팠던 별, 얼음쪼각 같던 꿈의 별은 지금도 눈앞에 가물거린다.  어렸을적, 밤은 그토록 무서웠다. 녀동생은 밤만 오면 그냥 울다가 잠이 들곤 그랬다.  《에그에그, 커서 시집도 못갈것이 그저 승냥이나 콱 물어가버려라.》 어머니는 쩍하면 그런 소릴 하며 역정을 냈다.  난 창가에 넋을 놓고 앉아있군 했다. 파리똥이 다닥다닥하고 붉은 페인트로 《충(忠)》자를 쓴 창유리로 밤은 까맣게 붙어있었다. 그 한장의 창유리둘레로는 싯누런 창호지가 붙어있었다. 식지에 침을 묻혀서 창호지에 빠끔 구멍을 낸다. 그 구멍으로 까만 밤이 나타난다.  애들한테 연필에 찔려 울던 일, 먹에 시커멓게 마구 갈겨진 긴 고깔모자를 쓰고 조리돌림을 당하던 아버지, 투쟁을 피하여 옥수수밭에 몸을 숨기고 모기떼에 물리고 흙투성이 되였던 어머니가 그 밤속에 숨어서 애처롭게 흐느끼고있었다. 그보다는 가녀린 목줄기를 빼여들고 밤속을 뚫어져라 응시하곤 하다가 그대로 문턱에 머리를 처박고 잠들어버리군 하는 나어린 아들의 장래가 걱정되여 깊은 한숨을 짓군 하는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 그 량볼로 눈물이 아니라 피가 흘러내리고있었다, 얼마나 무서운 밤인지 몰랐다.  누군가 그랬다. 저 별들은 모두 엄청 큰 돌덩어리들이라고, 그리고 태양은 무지무지 큰 불덩어리라고. 별 뜬 밤이면 수많은 돌사태가 쏟아질가 두려웠고 낮이면 불덩어리가 지구에 떨어질가 두려웠다. 온통 공포감뿐이였다. 그런 가운데도 새 같은 가슴속에 재속의 화토불처럼이나 꿈이 빨갰다. 달이 뜬 밤이?가끔씩은 공포와 외로움은 사라진다. 동경으로 찬 눈길은 하염없이 달을 바라본다… 남자애들이 나와 놀아주지 않고 곱게 생긴 창희랑 현자랑 태덕이랑 정옥이랑 날 보면 침 뱉고 돌아서는 이 세상을 떠나 투쟁 받는 아버지와 옥수수밭에 숨어 사는 엄마와 울보 녀동생을 데리고 저 달나라에 올라가 살고싶다는 생각으로 눈물이 글썽하도록 간절한 마음이 되군 하였다.  그러나 일년치고 달뜬 밤이 어디 그리 흔한가. 흙속에 묻힌 감자 같은 시골마을의 밤은 적막하고 음습하였고 공포스럽기만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근처에서 어렵잖게 가축의 털과 뼈쪼각이 섞인 승냥이의 똥을 볼수가 있고 간밤에 범이 내려와 뉘네 송아지를 물어갔다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던 밤, 짐승의 판들거리는 영악한 눈깔 같던 그런 밤들이 진주보석들이 무진장한 바다밑세계처럼 코끝이 맹맹하도록 유혹이 되고있을줄이야. 마을뒤골목에 살았던 황토집이 폭우에 무너진때문에 부득불 북산언덕배기의 절간 같은 집으로 이사한 그날 밤이였다. 열한살에 내 시야로 들어온 그것은 난생처음으로 되는 풍경이였다. 마을의 공묘로 이어지는 야산언덕에 상여집으로도 쓴적 있었다는 다 찌그러든 막이나 다를바 없었다. 마을의 밤과는 판이했다.  주위에 인가라고는 없어 공묘의 귀신들이 훨훨 날아와 문을 기웃거리는듯 괴괴하고 몸서리를 칠 그런 살풍경스러운 밤이였다. 바람에 펄럭거리는 창호지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내기조차 무서웠다. 귀신은 문틈으로 기여들어온다고 그랬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그날 밤은 특별히 캄캄했다. 달도 별도 없고 부엉이 울음소리마저 없는 삼라만상이 고요한 밤이였다. 무섭고 지루하기만 하던 무수한 밤속에 눈만 말똥말똥해서 바라보기만 하던 그 밤들과는 달리 뭔가 강렬한 욕구가 류황불빛처럼 반짝 일고있었다…  아무리 봐야 창호지가 일으킨 유혹이였다. 아주 작은 바람구멍이였다. 바람과 먼지에 닳아 난 바늘끼만큼한 구멍으로 분명히 무수한 불빛들이 명멸하고있었다. 저게 뭘가? 저건 하늘도 아니고 허허벌판 저 끝에서 이는 불빛이라니, 하늘의 은하계가 륙지로 곤두박혀 오색령롱한 빛갈을 뿜는것 같기도 했다. 대체 뭘가?… 어머니는 그게 십리도 넘게 먼 현성의 불빛이라고 그랬다.  소학교 6학년때에야 난 현성에 가볼수가 있었다. 아버지가 촌구석에 묻혀 세상구경 못해본 나를 데리고 시오리나 떨어진 현성구경시키러 간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산후증으로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기에 돈 만들려고 쌀 팔러 간것이였다. 추운 겨울에 눈길에 썰매에 실은 쌀 백근을 끌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시내구경, 밤이면 이루 헤아릴수 없이 별 같은 불빛들이 반짝인다는 그 곳이기에 바빠도 힘이 났다.  시내에 들어서서 난 어리둥절해졌다. 처음으로 4층집(그때 현성에서 제일 높은 층집임)을 보게 되였는데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다가 개털모자가 다 떨어졌다. 실북나들듯 오가는 차량들과 밀물처럼 밀려가고 밀려오는 인파들을 보고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구나 했다. 칙칙폭폭 객차 짐차가 정거하고 하늘을 찌른 공장굴뚝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어딘가에 부딪쳐 코피까지 터졌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공농병랭면식당》에 갔다. 거기에서 쌀 판 돈으로 난생처음으로 랭면을 먹어보게 되였다. 랭면이 얼마나 긴지 걸상우에 올라서기까지 하여 숱한 사람들을 웃겼다. 아버지는 술 한병을 거의 다 마시고나서야 자리를 떴다.  아버지는 취했다. 서북풍을 맞으며 빈 썰매를 끌고 귀로에 오른 우리는 서로 휘청거렸다. 나는 자꾸 멀어져갈수록 불야성을 이룬 현성이 신기해 뒤로 보다가 휘청거리고 아버지는 찬바람에 취기가 올라 휘청거렸다. 그래도 난 취한 아버지한테 자꾸 물었다.  《아버지, 저기 불빛 많은 곳엔 어떤 사람들이 사나요?》 《우…우리 같이 농촌거러지들이 사… 사는 곳이 아니란다…》 《아버진 교원인데 왜 못가나요? 》 《이 자슥아, 아… 아버진 뚝박골소학교 훈장이라서 개똥냄… 냄새가 난단다… 으헛헛.》 《저―어―기, 불빛마을서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르나요?》 《농촌사람들은 이른새벽부터 뼈 휘게 일하여야 밥에 시락장국이나마 먹을수 있지만 저기 불빛거리 사람들은 푹신한 쏘파에 앉아서도 금의호식한단다…》 《우린 왜 저런 곳에 가 살수 없을가요?》 《팔자란다. 팔자가 좋으면야 저기 불빛휘황한 시가지로 가 살수 있는거란다, 후―》… 그날부터 내 맘속 깊은 곳에는 《팔자》란 명사가 암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팔자》는 낮이면 안개와 연기에 가려 근본 볼수 없다가도 밤이면 이른봄 논뚝을 따라 불이 붙듯 가물가물 내 여린 가슴을 불태웠다. 주시할수록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초저녁부터 꼼짝않고 앉아 창호지로 난 구멍으로 밤속의 그 불빛에 넋을 앗기고있었다. 그 불빛은 《팔자》였다.  《넌 밤만 오면 뭘 그리 내다보는거니?》 어느날 어머니가 불쑥 물어왔다. 난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팔자를 내다보아요.》 어머니의 두눈은 휘둥그래졌다.  《아니?! 이 애가, 를 내다보다니? 그건 무슨 말이냐?》 그러며 어머니는 내가 보는 창호지에 난 바늘끼만한 구멍으로 눈을 갖다대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가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가정배경이 나쁜 아들의 장래가 가슴 쓰렸던것이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어머니는 진정하고 자기의 등뒤에서 말없이 코를 훌적이고 선, 어린 아들의 머리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어머닌 믿는단다. 우리 아들이 커서 꼭 저 불빛찬란한 시내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 가 살리라고. 그러자면 지금부터 매일매일 배우는 공부를 잘해야 한단다. 알겠니?》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처럼 창호지에만 매여달리는 녀동생을 말려 숙제를 하도록 타일렀다.  나는 더는 창호지에 눈길을 팔지 않으려 했다. 낮에 배운 숙제를 깨끗이 하고도 과문을 죄다 암송내기까지 했다. 나는 엄마가 간간히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암송낼수 있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 어느날 밤, 《로동개조》하며 실망의 골짜기에서 술만 죽여내군 하던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비틀비틀 밖을 나섰다. 황야의 거친 바람이 내 여린 볼을 사정없이 갈겼다. 술 취한 아버지가 날 어쩌자는걸가? 《커서 사람구실 못할 놈아 …》그런 소릴 한탄으로 뱉군 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전을 쨍 쳐오는 순간, 난 약간 다리가 떨렸다. 우리 집이라지만 《상여막》뒤에 김치움이 있었다… 나는 놀랐다. 김치움속에 시내의 불빛보다 더 현실적인 《보물》들이 그득할줄이야.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 《보바리부인》, 《몽떼크리스또백작》, 《삼국연의》, 《수호전》… 들이 확 눈길을 끌었다.  마을 혁명위원회에서는 《홍위병》들을 파견하여 이따금씩 우리 집을 수색했고 《부농분자》, 《외국특무》, 《반당반사회주의분자》, 《고린내나는 아홉째》 아버지를 끌고 가 투쟁하곤 했다.  어둠은 언제나 찬바람을 타고 외따로 떨어진 우리 집을 먼저 습격하곤 한다. 황야와 골짜기에서 이는 바람이 합세하여 불어칠라치면 집뒤 수풀속에 든 무덤들에서 괴상한 소리들이 연달아 울려와 녀동생은 울음을 퍼지르며 엄마품을 파고든다. 그때면 병색이 짙은 엄마의 눈길은 겨우 열살잡이라도 나에게로 향한다. 봐라, 네 오빤 얼마나 용감하냐. 오빤 큰 사람이 될 징조거든. 미더운 눈길이다. 엄마의 그런 바램속에 나의 조그만 등이 시커먼 밤속을 나서서 집뒤로 향한다. 쑥단을 들어내고 움속에 내려간다. 등잔불아래 그렇게 나의 독서는 시작되군 했다. 어떤 날은 등잔기름이 마를 때까지, 어떤 날은 새벽빛이 새여들 때까지였다. 독서의 세계속에 푹 빠져있는 동안은 무서움도 괴로움도 근심도 없었다. 먼 불빛을 바라보는것과는 달랐다.  그 불빛이 시망막에 어리는 찰나가 던져주는 어둠, 간거함, 아득함이라니… 독서는 신비한 세계에로의 인도였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풀싹이 땅우로 내여미는만큼씩이나 나의 모든것을 조금씩조금씩 먼 불빛― 《팔자》로 가닿고있었다… 나는 그렇게 서서히 커갔다. 거친 황야와 공묘가운데로 뚫린 움속에서 깊숙이 신비한 재미에 끌려들면서 견강하고 용의주도한 소설속 인물을 배워가고있었다… 그러나 《팔자》는 기어이 암울한 그대로고 털끝만한 변화도 없었다. 때때로 먼 현성의 밤 불빛에 넋을 앗기며 애된 한숨을 흘리는 가운데 내 나이도 열아홉살, 고중문을 나서서 귀향지식청년이 되였다.  자학으로 독서를 한것뿐이지 소학교분수도 바로 못푸는《고중생》이였다. 기실 생산대로 내려와 사원이기전에 논도 풀고 가을도 할줄 안《학교농군》이였다.  병약한 어머니와 술만 죽여내던 아버지가 떠멘 우리 집은 빚이 많았다. 나보다 네살이 어린 녀동생이 불쌍했다. 15세부터 일군이 된것이다. 우리 둘은 그 빚때문에 이 악물고 일했다.  녀동생은 때이르게 처녀티가 완연했다. 거친 벌과 산야에서 다져진 몸매는 이르게 피여난 한송이 꽃 같은 애된 얼굴을 받들고 우아했다. 그 또래 녀자애들은 조숙했다. 우악한 사내들과 눈 맞추고 쉽게 련애에 포위되고 지어 남몰래 아이를 지우는게 자랑이듯 빈번했다. 허나 녀동생한테 련애거는 총각들은 없었다. 락오된 인간, 배척받는 인간… 그때문인지 녀동생은 차츰 침울했고 생기란 찾아볼수 없었다. 집뒤에 혼자 서서 울 때가 간혹 있었다… 그러다가 녀동생은 《벼락시집》을 갔다.  《이렇게라도 시집을 가 녀자노릇을 하게 됐으니 이것도 다행이지요… 흑흑.》 시집가던 날, 녀동생은 나이 지긋한 오빨 볼 면목이 없어하며 그렇게 자신을 위안하고있었다.  난 가슴이 찢어지고있었다. 너무나 곱게 생기고 총명한 열아홉살난 녀동생이 자기보다 거의 열살이나 우인데다 한심한 절름뱅이에게로 시집을 간다는게 말이다. 그래도 《빈하중농대표》의 자식이노라고 그쪽에서 탕탕 큰소릴 쳐대고있었다.  그날 밤, 난 울었다. 바람소리 세찬 들에 서서 먼 불빛을 바라보며 텀벙텀벙 눈물을 쏟았다. 딸이 평생 시집을 못갈가봐 싫다는것을 억지로 떠밀어보낸 부모가 야속했고 절망한 나머지 약해져 꺾어져버린 녀동생이 불쌍해서 울었으며 앞날이 근심되여 울었다. 그렇게 울음을 씹으며 저주하다가 실성한 사람 같이 킬킬 웃어대기까지 했다. 울다가 웃던 그 밤은 미쳐버린 밤이였다.  세상은 고약했다. 병신이 비단 같은 내 녀동생을 데려가더니 이번엔 왼눈이 누렇게 부황뜬, 명자라고 부르는 처녀가 나에게 소개되여왔다. 녀동생은 약해서 당한 팔자라면 난 절대 그런 당하는 인간이고싶질 않았다.  《얘야, 그저 왼눈이 멀었을뿐이지 가정출신이 좋은 집 딸 아니냐. 아이를 낳을수 있고 돼지를 칠수 있으면 대득으로 생각하려무나…》 이번에도 어머니가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으며 어떡하느냐 숙명이다 그랬다. 자식의 전도란 시집을 가고 장가를 드는것, 그것뿐이였다. 딸이 시집을 못가는것과 아들이 장가 못드는것이야말로 한평생 팔자를 망친다는게 고질로 돼버린 어머니가 되려 측은해났다. 어머닌 그게 탈이라면 탈이였다. 성질이 모질지 못하고 너무 고정한것이였다. 세월이 그렇게 주조한것일가. 《어머니, 어렷을적 어머닌 나더러 커서 꼭 불빛 찬란한 시내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 가 살라고 그랬잖아요… 이꼴로야 어찌…》 《… 더 아름다운 곳, 그 곳이 어떤 곳이며 어느 천년엘 가고… 우리 같은 사람에게 당할 소리겠느냐…》 어머니는 여윈 어깨를 들추며 흐느꼈다. 아들의 완곡한 거절과 꿋꿋한 행동거지에서 뭔가 지루히도 긴 밤을 밝히고저 류황불 같은 파란 불빛을 본것이였으리라, 창공의 무수한 은하계와 계명성을 바라고 아들의 팔자에 기적이 나타나길 기도했으리라… 팔자란 무엇일가, 운명에 기적이 나타나길 바라고 절로 이루어진다는 그런것일가… 아닐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서 이룩될것이란 단 한가지도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아는게 있어야 이룩될것이였다. 그렇다면 구경 뭘로 알아두어야 하는것일가? 할아버지적부터 여직껏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부디 당부하고 바라온것이란 오직 하나, 《글 읽어라》 그게 아니던가. 글 읽으면 이담 커서 큰 사람 된다던 말로부터 뭔가 알것 같았다, 팔자를 고칠수 있다는. 저, 먼 불빛이 차츰 그걸 말해오고있었다.  ―몽떼크리스또백작이 《레미제라블》을 쓰듯 동요하지 말고 꾸준하여라. ― 초가오두막집에서 장가들고 아들 낳고 딸 키우는게 조급하다면 너의 눈에 저 먼 불빛은 아름답고 령롱한 꿈으로 아롱질수 없으리라. 그런 사상이 모름지기 자존심으로 박히기 시작하였다. 했기에 난 내 또래들이 장가들고 행복하게 사는걸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무등 애를 썼다. 왜냐 하면 소개해오는 처녀들과 따르는 처녀들이 악을 쓰기때문이였다.  그런 처녀들은 낮은 집에 굴뚝이 크듯 엉뎅이만 삐여나지 않으면 마른 수수깡처럼 여위고 오관이 비뚤게 생겼다.  《출신이 나쁠뿐이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요, 인물체격이 좋고 일 잘하고 지식이 있고 거기다가… 글쎄요 아직 루명을 채 벗지 못했다지만은 그 아버지는 국가 봉록을 받는 훈장 아닌가요… 난 그 집에 시집가고퍼요…》 어느날 그 처녀네 집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얻어들은 소리였다.  《얘야, 장가들려무나. 빈농의 딸인데 더 뭘 고를게 있냐. 애 낳고 밥 지을줄 알면 그만이지…》 아버지도 아들이 영원히 장가 못들가봐 걱정이였다. 《호박골》 룡수, 《허수아비》 철규도 보란듯 1등처녀를 얻어 장가드는데 난 하필이면 3등처녀와 병신처녀들속에서 대상자를 물색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 자존심도 생활의 조롱을 면치 못할줄이야. 명자는 생산대장인 아버지의 턱을 대고 담대하게 나를 추구하였다. 왼눈이 먼 얼굴은 언제나 내쪽을 향하고있었다. 마치도《넌 내거야, 내 손에서 못벗어난단 말이야》하고 오른쪽눈이 말해오고있는듯했다. 한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덧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면 털벌레가 내 몸을 스멀스멀 기여다니는듯 징글스럽기까지 했다. 자기의 아버지가 피우는 좋은 담배라며 독한 담배를 가져오고 곱게 수놓은 담배쌈지를 선물로 나에게 건넸지만 난 될수록이면 좋은 말로 거절하군 했다.  초여름에 접어들어 나는 생산대장의 배치에 따라 마을에서 한 시오리나 떨어진 《후영》으로 일하러 가게 되였다. 보통 나이 지긋한 로농들이 가 있게 되는 그런 곳을 뭣때문에 내가 가게 되였는지 몰랐다. 나 혼자 청년이라면 몰라도 《외팔눈》 명자도 식모로 올라온것이였다. 후영에서 논김을 다 매려면 적어야 한 열흘씩은 걸렸다. 올라갈 때 읽고 쓸것으로 책 몇권을 휴대했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한낮이면 땡볕아래 궁둥일 하늘로 쳐들고 돌피를 뽑느라 논판을 헤매느라면 팔이 빠지는듯하고 허리가 끊어질듯 아파난다. 해그늘이 들어 저녁렬차가 기적을 울려서야 간신히 한숨이 나온다.  저녁을 치르고는 단 반시간만이라도 사전을 들추면서 한자로 된 소설책이 읽고싶어진다. 고중을 나왔다지만 한어수준이 너무 바닥인때문이였다. 그런데 그 저녁시간마저 박탈을 당한다. 그런 환경속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욱 땀을 쥐게 하고 몸둘바를 모르게 하던 일은 그 박부대장때문이였다.  로농들에게 있어서 저녁은 기다려온 즐거운 시간이였다. 남정들은 호박잎순이나 들나물에 잡아온 붕어새끼들을 넣고 끓인 매운탕에다 독한 술을 얼근히 마셔대고 아줌마들도 탁배기를 들어 목덜미가 불그레하니 물든다.  《처녀총각의 이중창을 들어보는게 어떠슈? 》 박부대장의 똑같은 제의다. 내뺄가봐 문을 지키고선 문잡이 로농때문에 그예 노래를 해야만 했다.  《야, 남자가 왜 그리 졸장부여, 빈하중농들의 재교육을 받자면 하란대루 해얀다.》 명자는 구석에 처박힌 나의 손목을 잡아끌어낸다. 난 언제나 그녀한테 질질 끌렸다.  《시작!》 명자가 선코를 뗀다. 우린 같이 부른다.  《대해항행은 키잡이에 의거하고/ 만물의 생장은 태양에 의거하네/…》 그저께도 그 노래를 불렀고 어제도 그 노래를 불렀다. 래일도 모레도 그 노래를 부를 판이다. 아는 노래란 없으니 명자도 나 따라 그 노래를 부르고있는거였다. 명자의 량볼은 발그레 물들어있었고 나의 얼굴은 해쓱하니 질려있었다. 명자는 딱 바라져있었고 난 가물든 밭의 옥수수처럼 푸들지 못하고 여위여있었다.  《궁합이 맞는 신랑신부감이요.》 박부대장의 그런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신랑신부처럼 나란히 선채로 노래를 부르군 했다.  땅을 파고 들어앉은 농막은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짧게 퍼지다가 껌뻑 호롱불이 죽으면 밤속에 깊이 잦아든다. 막안은 봉당을 경계로 량쪽으로 구들이 놓였는데 오른쪽으로 남정들이, 왼켠으로 아낙네들이 드러누워 잠든다. 불이 꺼진 막안은 차츰 코고는 소리로 들어찬다. 박대장이 석유등잔을 관리하기에 등불빛을 빌어 책을 볼수도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두눈은 점점 더 또렷해나고 생각하기도 지겨운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덮쳐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함께 학교를 다녔던 동창생들은 약속이나 한듯 장갈 들고 시집을 가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여보기에 꿀맛을 누린다.  아버지 어머니를 더 속태우지 말고 장갈 드는게 상책일가, 명자가 외눈박이만 아니라도… 나 또한 뭐가 볼게 있단 말인가. 출신이 나쁜데다 말라서 볼품없는 이 꼬락서니… 밤은 깊어만 갔다. 코를 고는 소리가 지쳤던가 곁에 누운 박대장이 돼지나팔소리 같은 방귀를 뀌자 저쪽 구들의 어느 아낙네들 가운데서도 뒤질세라 짧게 끊어 수줍은 방귀가 호응하였는데 《꽥―》하고 농막을 뿌리채로 뽑아버릴듯 밤 12시 짐차가 강에 둘러싸인 섬을 들썩거리며 산굽이를 휘돌이를 놓아버린다. 저쪽 녀인들의 구들에서 꿈결에 젖어 흐느끼는가 그런 애된 소리의 임자가 외꾸눈이 같다는 의심에 주눅이 들며 주르륵 내 눈귀로 눈물인가 방울지고있었고 나도 끝내 피폐해진 몰골을 기진한 여파에 처묻고있었다…  후영의 밤은 무서웠다. 십여헥타르의 둘레는 강이 사품치며 흘렀고 강밖으론 우중충 뭇산이 솟았다. 낮이면 숲과 물과 새, 꽃들과 조그만 무척추동물들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의 생장과 움직임에 별의 이슬 같은 꿈을 꾸곤 그랬지만 일단 밤만 찾아오면 그런 꿈들이 눈물겨웁게 간절해지고 절실해질 대신 허둥지둥 쫓기고 어처구니없이 헐벗는것이였다. 그럴만큼이나 밤은 칠흙 같았다. 그런 밤마다 먼 불빛이 내게는 얼마나 수요되던지… 귀뚜라미 우는 깜깜한 농막안과 여우와 늑대들이 어슬렁대는 후영의 밤은 그대로 무덤속이였다. 자존과 기대와 꿈과 의력이 기죽고 군데군데 뭔가에 뜯기우고있을적에 일은 일어나고야말았다.  그날은 옹근 하루를 비가 쏟아졌다. 우리 농막의 사원들은 모두 한 오백메터 상거한 이웃 생산대의 농막으로 가 술추렴을 하게 되였다. 물에 빠진 노루를 때려잡은것이다. 노루를 큰 가마에 푹 앉히고 온 하루 명절인양 되놀이가 벌어지고있었다. 나는 원래 술을 입에 대지 않고있다가 박대장이 억지로 권하는바람에 정신이 알딸딸하게 술을 마시고말았다.  《이봐 나머지총각, 우리 농막으루 가 술통을 가져와.》 《나머지총각》이라구 부를적마다 심히 찔리며 고개가 숙어지는걸 어쩔수 없었다.  밤은 깜깜했고 비는 계속 내리고있었다.  《명자야, 너 동무해 같이 심부름 갔다오려므나.》 명자도 술을 했던지 목덜미까지 불그레한 얼굴을 들어 깔깔거리며 나를 묻어나왔다.  술이 작용을 한건지 외눈이, 명자와 같이 걷는게 싫지 않았다. 처마 낮은 집의 굴뚝이 크다고 키 작은 명자의 그 큰 엉뎅이가 자꾸 나를 부딪쳐온다. 그럴적마다 뭔가 내 그것이 튼실해나는걸 어쩔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뿐이였다. 그렇게 명자는 비닐을 쓴채로 내가 든 우산아래에서 걷고있었다.  나무댕기를 뽑자 농막문이 삐꺽 열렸다. 내가 술통을 쥐는데 뭔가 뒤로부터 내 그것을 슬몃 거머쥐는게 아닌가. 허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돌아서서 명자를 향하는 찰나 그녀는 뼉다구 같은 내 그걸 다시 안으로 힘껏 틀어잡았고 내 손도 그녀의 아무것이나 되는대로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고 《빨고 입맞추고…》하던 어느 누군가의 육담이 피끗 떠오르면서 목이고 입이고 마구 물어뜯을듯 입술이 미쳐나고있었다. 명자의 장알박힌 손이 얼마나 드세게 쥐고 당기고 험하게 굴었던지 어째보지도 못하고 찍― 사정을 해버리고만거였다.  《이크, 코풀레기.》 명자는 그제야 손을 빼냈고 얼굴이 지지벌개나더니 부엌으로 힝 달려가 쌀뜨물에 손을 뻑뻑 씻는것이였다.  나는 그제야 제정신이 돌았던지 금방 저지른 일이 후회되였다. 아니, 후회되는 정도가 아니였다. 원, 세상에 어쩜 이런 일이 다 발생할수가 있단 말인가. 명자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고 마을의 민병련장과 공사파출소, 현의 감옥살이 신세들이 련달아 위압감으로 쌓이고있었다.  어둑시그레한 부엌에서 명자의 시퍼런 눈불이 날 주시하고있는게 무서웠다. 난 구들에 풀썩 꿇어앉아 무릎에 머리통을 한껏 구겨박고 울음처럼 넉두리가 나갔다.  《이건 사실이 아니여. 꿈도 꾸기 싫은… 끄응응흐…》 그럴 때 명자가 앙칼지게 쏘아붙이고있었다.  《이 새꺄, 이 부농새끼 같은게. 너 잘난데가 어드메냐. 뭐, 꿈도 꾸기 싫다? 내거 다 빨고 주므르고서리… 내 처녀가 다 다슬었구 부농 때가 묻었는데 그래두 싫다구? …늦어서 다음달에 잔치다! 들었지? 안그러면 강간죄루 울 아버지한테 말해버릴래, 이 개 같은… 량심없는…》 《명자야, 날 한번만 살려주어다구, 네가 먼저 내걸 안쥐였더면 어찌 이런 일이…》 《녀자가 남자의걸 먼저 쥐였다는게 누가 들어도 사실이라고 믿을것 같애? 이 멍청한…》 그때였다. 문이 펄쩍 열리며 박대장이 노기등등해서 들어섰다. 그때라고 명자가 흑흑 울어 퍼지르기 시작했다. 박대장이 다짜고짜 나의 귀뺨을 갈기며 으름장을 놓았다.  《감히 빈농의 딸을 다쳤어, 에라 철창살이가 원이구먼기래여. 이젠 어떡헐래? 다쳤으면 별수 없구먼기랴… 기래 철창살이 허겄냐? 결혼하겄냐? 말해봐.》 별수 없었다. 난 결혼하겠다고 대답하는수밖에 없었다. 난 깊은 동굴속에 갇혀버린거였다. 한점의 불빛도 별빛도 이슬의 냄새마저 소실된 그런델 말이다.  박대장은 날 개처럼 질질 끌고 비속을 나섰다.  노루뼉다구를 갉으며 술놀이에 한창이던 사원들 가운데로 나와 명자가 나란히 섰다.  《얘들이 지끔 진짜 를 부르겠다누먼. 자, 박수―》 집안은 왁작 끓어번졌고 흘끔흘끔 눈길들이 이상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비난속이였다.  나는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길 없었다. 명자는 웃고 노랠 부르고 난 울분에 목이 막혀서 노랠 부르는거였다.  대해항행은 키잡이에 의거하고/  만물의 생장은 태양에 의거하네/ … … 물떠난 고기는 살수 없고/ …  잠들수 없는 밤이였다. 악과 분개가 서린 밤이였다. 박대장과 몇몇 어른들이 만든《극》이란걸 눈치챈것이다. 생각할수록 한심하기만 했다. 한심한 세상속에 한심한 인간들속에서 그냥 한심한 꼭두각시극을 연기하고 살아가기란 죽기만 못하다고 생각되였다. 그런데… 그런데 난 죽을수 없다고 이 악물었다. 그리고 싫은 일 죽어도 못한다고 느꼈다. 어떻게 견뎌낼만하느냐, 불보듯 뻔했다. 이대로라면 랠부터 어떤 결과가 오리란것도 분명한것이다. 고민, 아픔, 분노… 갑자기 흥분하도록 어떤 결단이 서고있었다. 그래, 미친척하자, 미친놈에게 딸을 줄수가 있을가… 더 아무것도 고려할게 못되였다. 오직 《미친놈》이 되고자 했다… 옷을 홀딱 벗었다. 팬티를 벗어 녀자들이 코를 곯고있는 구들에다 들이뿌렸다. 그리고 키들키들 웃어대다가 슬몃 일어나 어둠속을 더듬어 박대장을 찾았다. 박대장의 얼굴이 있을 쪽을 겨냥하고 진득이 오줌을 갈겨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질겁을 하며 밀고닥치고 호롱불을 찾느라 야단을 쳐대는데 저쪽 녀자들 구들에서 어느 녀인은 놀라서 울음소리를 내지르기까지 한다. 나는 그냥 키들키들 웃기만 했다.  《아니?! 저런 환장을 하겄다야. 이 놈이, 부농자식이 미쳤구만기래여. 응? 저런 쌔가빠질늠으 엇대구 오줌을 다… 저런 부끄러운줄도 모르는…》 《오줌을, 존경하는 박대장의 얼굴에 다 오줌을 쏘다니…흐핫하…》 농막안이 호롱불로 밝혀지자 사람들은 나를 둘러싸고 법석대며 악연해하고 어안이 벙벙해서 란리였다.  《아깝구만 아까워, 쯧쯧. 불쌍도 해라, 흑응응… 지 아비어미가 알면 워찌할란교…》 평소에 나를 멀리하던 녀인들도 미친 나를 마주하고 아까워하고 불쌍해서 눈물지으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있었다.  나는 그냥그냥 웃었다. 웃다가 울기도 하고 두눈을 퀭하니 뜨고 등불만 바라보기도 했으며 누군가의 의심하는 눈길과 부딪치면 등불을 바라고 태양을 우러르는 춤을 추기도 했다. 발가벗고 노는 그 꼴이야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처경이였던지 박대장도 구들을 쾅쾅 쳐대고있었다.  《미쳤군, 미쳤어. 저 애가 내 얼굴에 오줌을 갈기고 미쳐버렸네. 김대장의 사위 될번하다가… 아이고, 우리 명자 니 팔자도 참말로 사납다. 워찌하믄 니 약혼 하루만에 저 눔이 미쳐버렸노. 내가 김대장을 워티기 볼끼가.》 명자도 농막안의 대들보에 목매여 죽는다고 란리를 쳤다.  《그대가 없이 내 살아 뭘 할라우― 어우― 첫사랑아, 머저리 같은것아― 우어― 나 죽어뻐릴라…》 난 속이 시원해서 박대장앞에서 말처럼 뛰기도 하고 바지도 벗고 오줌도 갈기려 들었다. 그럴 때마다 박대장은 자꾸 구석으로 달아났고 사람들은 날 바지를 입히느라 애를 쓴다.  《저 눔아가 딱 나헌티 오줌을 싸려 들지? 나 이거 원… 빨리 마을루 내려보내라구.》 난 소수레에 꽁꽁 결박을 당한채 후영을 떠났다. 떠나면서 자꾸 흐드득흐드득 웃었다. 명자를 향해 손을 젓고 박대장을 향해 손을 저었다. 명자는 그 한눈을 들어 희뜩거리며 슬픔에 어깨를 들추고있었는데 그제야 뭔가 속에 걸렸고 울컥 동정이 들기도 해났다.  《미안해, 명자야…》 난 속으로 거듭 기도처럼 외워보았다. 그러다가 명자때문에 당할 《시련》을 생각하느라니 다시 증오가 북받쳤다. 후과는 상상하기조차 무서웠다. 눈을 꾹 감았다. 이를 갈았다.  날이 저물어서야 집에 대일수 있었다. 어머니는 기절을 했고 아버지는 나의 머리통을 안고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변이냐, 어쩜 이런 불행이 다 이 집에 떨어지다니… 하느님도 불공평하구나― 영예로운 집안에는 앉아놀아도 복덩이를 굴려주고 고통과 아픔으로 모대기는 우리 집안엔 아무리 기도하고 노력을 가해도 그예 화만 던지니… 아이고, 이 불쌍한것아… 이제 내가 살 멋이 없구나…》 한식경이 지나서야 제정신을 차린 어머니도 땅을 두드리며 꺼이꺼이 넉두리를 널어놓았다.  《어릴적부텀 큰 사람 된다고, 출세하여 아버지 어머닐 큰 도시루 모셔다 천당 같은 생활을 누리게 하겠다고 독서도 하고 밤을 패며 노력을 해온건데… 불쌍한 내 아들아, 정신 좀 차리고 이 어밀 보려므나― 이 어미가… 하느님 맙시사― 으흐흑응, 내 전생에 무신 죄 질렀다고 이 아니 백주에 생벼락 아닌가베…》 어머닌 몇번이나 정신을 잃고 넘어갔는지 모른다. 그 정경은 차마 눈뜨고 볼수 없었다.  《어머니, 전 미치지 않았어요. 미친척하는겁니다. 한동안만 참아주세요. 김대장의 딸이 시집가버린 이튿날로…》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걸 끝끝내 참아내야 했다.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듯했고 속으로 피눈물이 떨어지고있었다.  내가 미친병에 걸렸다는 소문은 린근동네까지 파다히 퍼졌다.  미친놈인척하기도 쉬운 노릇이 아니였다. 그것도 집안식구들앞에서까지 말이다. 집안식솔들에게 진속이 드러난다면 곧 끝장이란걸 난 잘 알고있었다. 난 밤이 오면 독서를 하기 위해 낮부터 책만 찾아 읽는 중얼임을 거듭《연극》해야만 했다. 미친척하다도 볼거리, 책만 주면 헛웃음을 거두고 책에 눈길을 멍청히 파는척하군 그랬다.  《이 애는 미쳐서도 지식을 파고드누만. 쯧쯧 얼마나 리상이 있은 애였소.》 사람들도 그렇게 혀를 차며 동정을 보냈다.  나는 저녁이 오면 《요괴가 온다― 귀신이다―》하고 헛소리를 치면서 내 방문을 안으로 걸어놓고는 깊은 밤까지 명작들을 탐독하고 베끼고 암송하군 했다. 그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깨고소한 날도 며칠가지 못했다. 후영에서 일을 끝내고 내려온 명자가 느닷없이 내 집으로 드나들줄이야. 이른새벽에 뛰여드는가 하면 한밤중에 치마를 펄렁거리고 뛰여들어와서는 《아니, 거짓말야요. 그이가 미칠수 없어요. 거짓말이지요. 미쳐도 난 그이가 좋아요.》 소릴 지르면서 마구 구들에 올라와 날 이리저리 뜯어보군 하다가는 힝하니 돌아가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하현달도 뭘 봤던지 낯 붉히고 구름뒤에 숨어버린 캄캄한 밤, 등잔불아래 정신없이 한어로 된 《홍루몽》을 읽어내려가던 나는 예감으로 등골이 섬뜩해나고 제살이 아니게 공포감을 느끼게 되여 부지중 조그만 뙤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 나는 하마트면 비명을 내여지르며 기절할번했다. 창호지를 발기고 들여다보는 눈은 귀신의 눈이 아니고 명자였던것이다.  《넌 미치지 않았어.》 그러며 우리 집을 무작정 뛰여드는것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저 앤 미쳐서 중얼거리다도 책만 들면 조용해지거던…》라며 한사코 말렸으나 하루밤만 같이 있게 해달라고, 있으면서 진짜 미쳤는지 시험해보겠다는 처녀의 고집을 막을수가 없었다.  《처녀가, 빈농의 딸이 우리 애와 하루밤을 한방에서 지우겠다는게 복이 아니겄수.》 결국 아버진 방문을 닫아주었다.  명자는 푹 퍼진 엉뎅일 내곁에 부려놓고앉아 그 흰전등알을 박아넣은것 같은 눈을 들어 날 무섭게 응시하였다. 난 구석에 엉금엉금 기여들어갔다. 그도 나를 따라 기여왔다. 난 그를 보고 킬킬 웃었다. 명자는 사팔눈을 들어 날 잡아먹을듯 노려보더니 아주 자신만만하게 입까지 다시며 다가와 내 속옷안으로 손을 쑥 찔러버렸다. 그 놈은 명자의 손에 쥐이자 쑥 커지며 절구공처럼 단단해졌다. 실로 뜻밖이였다. 내가 만약 흥분을 하고 오르가슴에 견디다가 그녀를 점하는 날엔 거짓미치광이질이 증명된다는걸 난 알고있었다. 참으로 오래동안 고민하고 획책한 교묘하고 이 악문 실험이였다… 난 실실 오줌을 누기 시작하다가 일이 되느라고 방귀까지 크게 나갔다.  《에그 씨. 진짜 미쳤네, 드럽게 미쳤다니까… 이걸 어찌하나…》 오줌이 질펀한 손을 털면서 명자는 외마디를 질러버리더니 곧 바깥으로 뛰쳐나가버렸다. 그리고 더는 나타나질 않았다.  한달 또 한달, 그 찌물쿠던 여름도 길고 시원하여 아쉽던 가을도 가고 겨울에 접어들던 어느날이였다. 《저 애가 미치지만 않았다면 새해 여름에 있게 되는 대학시혐에 한번 겨뤄볼텐데…》하는 아버지의 한탄을 듣게 되였다. 뜻밖이였다. 귀가 번쩍 띄였다. 그날따라 일이 되자고 그랬던지 아버지는 내게 반도체라지오 하나 사서 들으며 마음안정이나 될는지 기대를 건거였다. 반도체라지오에서 국내국외정세를 다 들을수 있었고 《4인무리》이 거꾸러지고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되였다는 희소식도 접하게 된 그날 밤, 나는 미친듯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싶었으나 아버지 어머니께 타격이 될가봐 그럴수 없었다. 나는 내 방구석에 깊숙이 처박혀 먼지를 들쓴 고물무더기를 허비적거렸다. 소학교적부터 고중 졸업때까지의 교과서들을 찾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마 안가 무슨 눈치를 챘던지 글씨소리와 외우는 소리가 우세인 내 방에 눈길을 돌리고있었다. 일단 눈길이 부딪치거나 내 방을 《침입》한다면 난 미친척할수밖에 없었다.  대학입시 달포를 앞두고 난 집의 장닭을 도적질해 품에 안고 현소재지를 향했다. 현소재지에서 장닭을 판 돈으로 증명사진을 찍었고 대학입시등록을 마친것이다. 모든것은 극비에 붙여두어야 했다.  집에서는 미친 아들에 대해 별반 관계치 않았다. 온 하루 어둑컴컴한 구석에 처박혀서 하루이틀도 아니고 옹근 한주일씩이나 들어박혀있기가 일쑤이고 한밤중에도 집뒤의 산등성이에 올라가 고래고래 소릴 지르다 들어오기때문인가보다. 기실 산에 올라 소릴 지르는것은 맘속에 맺히고 맺힌 응어리를 하소연하는거나 다를바없었다. 평생의 《도박》을 단 이 아들한테 걸고 살아온 부모에게 있어서 그 믿던 나무가 꺾어져버렸다는게 실로 하늘이 무너지듯한 슬픔이 아닐수 없었다. 아버지는 술로, 어머니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있는 현실 또한 자식인 이 《미친놈》의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저며내고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이 아들은 미치지 않았어요. 난 꼭 장한 일을 할거야요!》 나의 웨침은 그런 뜻이련만 누구도 알아들을수가 없게 짐승의 소리로 대체할적마다 내 속으론 피눈물이 흐르고있었다.  끝내 고등학교입시를 치르는 날은 닥쳐오고야말았다.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았다. 시험장에는 나를 알아볼 사람이라곤 없었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사흘동안 제정신이 아니게 이른새벽에 나갔다가 어두워서야 집에 들어선 아들을 마주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중얼거렸다.  《후유― 점점 병이 더해가니 이 일을 어찌하누, 가끔 어델 저렇게 갔다오는건지…》 《에그 쯧쯧, 제발 죽지만 말아다구… 아무리 못났더라도 …내 피덩이니 부모 먼저 갈수야 없잖느냐, 에그에그 쯧쯧…》 나는 차츰 온정되고있었다. 시험을 치른 경과를 나 절로 잘 알고있었지만 대학입학통지서를 쥘수 있을가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러나 꼭 온다고 굳게 믿고있는터였다.  울앞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여 아들의 미친병을 치료하는데 쓸 돼지굴안의 꿀꿀이를 찌무룩이 비웃던 어느날이였다. 앞집에서 아침부터 찰떡 치고 돼지 잡고 야단법석인데 어머니가 푸념조로 중얼댔다.  《에그에그, 아무리 눈 한짝이 멀었대도 어찌 그런델 다 시집을 간다냐, 똑 찍어놓은 고생길이지, 쯧쯧.》 명자가 웃마을에 사는 간질병이 있는 고아총각한테로 약혼을 허한거란다. 얼마나 고대 바라온 일이던가. 그러나 왜 그런지 기쁠수 없었다… 후영의 농막에서 내곁에 찰딱 붙어서서 보조개를 패며 매미처럼 노래를 부르군 했던 명자, 미쳐도 사랑한다며 밤중마다 짓쳐들어오던 명자… 아, 마음이 비여오고 산란하길 어데 비할바없었다… 울수도 웃을수도 없는 우울한 마음을 달랠길없어 안달을 떨고있을무렵에 내앞에 뭔가 뚝. 떨어져내렸다. 우편배달이 건넨 편지였다. 순간 전신에 형언못할 기운이 쭉 뻗으며 헉, 하고 어떤 예감으로 인한 소리가 나가고있었다.  《아! 대학입학서.》 진짜 미칠것만 같았다.  《엄마― 아부지―》 나 모르게 튀여나간 그 부름은 참으로 오래만이였고 부르고싶다못해 울음을 먹어오던《어머니― 아버지―》였다.  《아니? 네가 금방 뭐라고 그랬니? 어머니라고 불렀어? 응?》 돼지죽을 끓이다 소리를 듣고 쫓아나온 어머니는 똑 말뚝이 박히듯 돼지굴옆에 선 아들을 마주하고 서버렸다. 이외와 악연감이 찬 두눈으로 눈빗질하면서 또박또박 무거운 음성을 내뱉고있었다.  《네가 금방 날 부른거니? 어디 다시한번 불러봐, 응?…》 그것은 천근만근도 더되는 무겁디무거운 확인이였다. 그리고 아들의 떨리는 손에 얹힌 노을빛 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길로 최후의 기대감과 희망과 《어쩌면…》이라도 기적이라도 나타나길 바라는 간절함이 그득 고여있었다.  《엄마… 나… 난 미치지 않았어. 대학입학통지서가 왔다구요, 어엄마아… 이 대학입학통지서를…》 어머니는 갑자기 두눈이 송아지눈이 되며 입술이 푸들푸들 떠는것이였다. 이어 콩알 같은 눈물이 주르륵 떨어지고 주걱 같은 두팔이 허공을 몇번인가 긋더니 《아들아, 네… 네가 우리 몰래 이른새벽에 나갔다가 어슬녘에 들어서군 했던게 원래는… 원래는 대학시험을 치르느라 그런게였구나. 어디 보자, 어디…》 그러며 홱, 편지를 나꾸어채서는 속지를 뽑았다.  《연변대학… 흐윽. 이게 꿈 아니냐!》 그렇게 울음소리를 내던 어머니가 갑자기 나의 팔을 꽉 비틀어 꼬집었다.  《아갸갸, 아픈데요.》 《그래, 아프겠지. 꿈이 아니구나, 생시구나…》 어머니는 울다가 웃다가 드디여 통지서를 높이 쳐든채, 울바자문을 열어제낀채 동네를 마구 뛰여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 우리 아들이 대학 붙었다구요― 누가 우리 아들이 라던가요. 우리 아들은 출세했지 뭐야요…》 그러다가 우물집근처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오던 아버지를 붙잡고 수염과 관골이 우거진 낯에다 마구 입을 맞추고 끌어안고 어린애처럼 뛰였다.  《이 년이 미… 미쳤나. 네… 네 년까지 미쳤으니 나 이제 목매 죽어야지…》 그러며 아버지는 울려고 끽끽거리는것을 《미치긴 누가 미쳤다구요. 우리 집 아들이, 여적 미친척했다구요. 대학시험을 위해 미친척했거든요. 안미치구 이렇게 대학입학통지서까지 탈수 있나요. 춤추자요, 딴따라 딴딴… 응흑응…》 《이게 지금 뭐라고 허텅지거리 치는거야, 미친척이라? 대학입학통지서가 왔다고? 이기 지금 미쳐도 단단히…》 심히 불안에 쌓이며 어머니의 손에 쥔 통지서를 홱 나꾸어채서 들여다보았다. 눈을 문지르고 거듭거듭 확인을 해보다가 갑자기 불에 엉뎅이를 덴 소 같이 펄쩍 솟구치며 집쪽으로 냅다 백메터달리기를 하기 시작했다.  집근처에 선 아들을 바싹 접근해가며 뚫어져라고 들여다본다. 이 놈아, 그래 안미친게 확실하단 말이지? 하고 묻기도전인데 내가 먼저 《아부지―》 하고 웨쳤다. 그리고 허억, 하고 닭똥 같은 눈물이 뚤렁 떨어진다.  《어?! 시방 날 라고 불렀어? 어이쿠. 내 새끼야… 원 세상에… 원…》 내 머리통을 품에 끌어당기는 아버지의 눈확이 확 붉어나며 눈물이 좔좔 흘러내린다.  《아무렴 그럴수가 있겄냐. 미치다니, 그게 무신 일이라냐… 무신… 주여, 내 하나님이셔…》 … …  나는 나를 잃지 않았다. 무정한 세월속에 자기를 마구 내여맡겨버리는 축들은 당분간은 나름대로의 자유를 맛볼수 있는거다. 그러나 즐거움의 뒤끝에 따르는것은 고통, 지겨움, 고독, 불행, 허무… 밖에 없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삶에 꿈이요, 희망이요가 색바랠수밖에 없는거다.  흰갈기를 날리며 발굽에 불티일게 달리는 말보다도 빠른게 세월이요, 소 열마리로 당겨도 못돌려세우는게 세월이랄 때 인간에게 있어서 배움의 계절을 게을리하지 않음은 황금을 주고도 못바꿀것이며 눈앞의 리익만 따지는 한치보기 살이는 찬서리를 기다리는 한포기 풀에 해당될뿐인것이다.  세월의 여파속에 머리가 세여가도 언제나 꿈이 있고 희망에 차있다면 사는 보람을 느끼게 되며 힘이 솟구치는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겐 밤이, 어둡고 침침하고 고독한 자기를 가두는 그런 밤이 있어야 한다. 그런 밤이야말로 자신을 끝끝내 솟구치게 하여 이겨내는 꿈과 그 꿈을 향하는 각고정려의 노력을 발산시키는것이다.  그런 밤속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그리고 그냥 현성의 먼 불빛을 보고저 내 동년적 현성의 그런 밤속의 가물거리던 불빛보다 십배 백배 더 거창하고 황홀히 아롱진 도시에서 며칠전에 팔십고령의 아버지가 떠나가셨다.  죽어서마저 《먼 불빛을 바라본다》며 고향의 북망산 푸른 이끼 돋은 언덕에 잠든 어머니 따라…《사람은 태여나서 죽을 때까지 쉼없이 노력해야지…》라며 출세에 만족을 느끼고 언녕 술군이 되여가는 부패한 이 아들의 더러운 꼴이 역겨워 가버린 아버지였다… 역시 나는 다시 다르게 부패해지고있는걸가? 바람이 나를 깨운다. 얼마나 오래만이냐, 드디여 나는 밤속에 서서 창공의 별들을 바라본다. 먼 불빛이 아물거리며… 아물거리며…   [연변문학 2006년 11월호]
6    [단편소설] 삼평의 노을 댓글:  조회:2560  추천:56  2009-05-02
[단편소설] 삼평의 노을 량춘식     피빛 단풍이라 부르는 색깔도 해마다 일교차와 일조량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잖아요. 모닥불도 물가에서와 숲속에서의 색깔이 다르고 태양마저 매일 다른 색으로 떠오르는데 뭘…그래서 어떻다는거야, 날더러 기어이 이곳에 눌러앉아 떨꺼덕. 죽어버리라는거야. 대체 뭐가 다르다는거야. 니 말대로라면 온 세상에 어느것 하나도 다르지않는 것 없것다…그렇쵸. 다 달러요. 오직 아들이 출국해 무지무지 벌어 보낸 돈, 그 돈에 따르는 효도가 변할리 없잖아요. 그거래요. 효도를 제외하고…     이 미련한 마누라야, 그 벌어 부친 돈, 효도가 문제야. 그게 우리들을 후딱 다르게 만들어버린게야. 닌 이렇게 뚱보반편이 되고 난 이렇게 주려말라 숨만 붙어있고…달러질거야요, 현성의 수백개 보이라굴뚝이 무너지고 발전창의 온수를 쓴다던데 그때면 공기 좋아 새들의 노래소리도 들을수 있을게고 집안에 플라스틱꽃 대신 함초롬히 생화를 창턱에 놓아 피우고…이 망할 할망구야, 니 날 끝내 죽이자고 드는구먼기래여…          늙은 량주는 몇해를 두고 그렇게 입씨름을 했다. 아니, 자식들의 외국서 벌어 부친 돈으로 산골오지를 벗어나 현성 올라가 한십여년이나 호화아빠트에서 전화놓고 핸드폰 차고 화투 치고 마작 쌓고 귀족살림을 하다가 몇해전에 할멈은 풍을 맞고 령감은 페결핵에, 위궤양, 간염으로 진단을 받고 살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이가 륙십이 금방 넘은 량주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60이 청춘이고 70이 중년이라며 100살까지 살리라던 그들은 그저 맘대로 안되는 인생이 야속하기만 해났다. 왜 이럴가, 왜 펀펀하던 아내가 입이 삐뚤어지고 다리 손이 한짝씩 말을 잘 듣지않는건지, 왜 그같이 건장이여서 씨름군이던 남편이 녹쓴 수레바퀴처럼 삐꺼덕삐꺼덕 소리를 내는것인지. 둘은 그저 누워서 펀히 서로의 몰골을 바라보면서, 현성의 검누른 연기를 풀풀 토하는 보이라굴뚝들 사이로 해살과 쪽빛을 찾으면서 원망하고 저주의 빛을 보내군 했든 것이다.     그런 끊임없는 부부의 모순과 갈등가운데서도 병의 근원은 알바없었고 근치에 대해선 더욱 캄캄하던거였다. 그간 텔레비광고에 나오는 약종들과 안리요하는 협잡군들한테 몇천원짜리 약을 사느라 판 돈이 십만원도 더 들어갔다. 했으나 삐뚤어진 아내 입은 여전했고 자기도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벌겋게 단 가마에 오줌을 갈기는 칙치익. 소리 같았다.     할망구야, 나 한달을 더 버텨낼 것 같지가 못해. 어쩜 지금 하는 말이 유언이라두 되지않겠는지 모르겄어. 나 현성 올라온 십몇년을 두고 한시도 맘속을 떠나지않은게 있거든. 그건 시종 다르게 변함이 없이 싹트고 꽃피고 열매를 맺고, 그렇게 해마다 실하게 커왔거든…령감, 그게 뭔데요. 이제야 별수 있나요. 죽기전 령감의 소원이라니 들어줘야지유…      1       령감은 말하지 않았다. 얼굴색은 거므프리했고 두눈은 삶은 물고기눈처럼 빛이 죽어있었다. 다만 엉기엉기 일어나 옷을 입고 개화장을 짚은채 로친을 끌고 문을 나선거였다. 그날 로친은 어안이 벙벙한채 따라나섰다. 죽음이 이웃이던 것이다. 한생을 함께 살아온 령감이 그저 불쌍해서 못보겠었다. 대체 어데로 가는것일가, 령감만 알고있을뿐이였다.          봄이였다. 시내에선 볼 수 없는 아니, 못 보아온 봄이였다. 뻐스는 거리를 벗어나 한 시오리를 질풍같이 달리더니 이제는 배불룩이 아낙의 허리띠같이 둘러간 산굽이를 안고 터덜터덜 굼벵이처럼 기여서 간다.          차창으로 내다봐도 어디가 어딘지 알바없고 있었다. 대체 어딜가, 어딜가는가 물어도 령감은 거의 죽는 꼴을 하고 손사래만 칠뿐이다. 아마 림종전의 소원성취겠거니 느껴질때는 삐뚠 입이 더욱 삐뚤어대는 느낌이다. 암만봐도 고향으로 가는 길로밖에 짐작이 가지않고 있었다.          15년전, 고향 삼평마을을 떠날때는 5월이였다. 무너져내리는 토벽집에다 농기구들을 던져버린채 달랑 빈몸으로 내외가 뻐스에 몸을 실었댔다. 아들이 현성에다 아빠트를 사놓은 것이다…뻐스에서 남편의 손을 꼭 잡고 행복에 겨워했다. 부릉부릉하는 뻐스의 엔징소리보다 차창밖으로 불어치는 바람소리가 더 세찼다. 창은 열수가 없게 밖은 온통 싯누른 먼지바람이였다. 모조리 람벌해버려 수림을 잃은 산등성이는 벌거벗었고 전엔 볼수없던 산사태가 길을 메우고 논밭을 뭉개버린다.          이보쇼, 동무. 한뉘 옴팡진 산골서 기차도 못보고 개처럼 살다가 이제 행복하게 됐씀다. 해해…한뉘 개처럼 살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유. 고향을 막 말하지마우. 삼평골에 풍년이 들고 메돼지 놀가지 욱실대던 그땐 헛간에 량곡이 넘쳐나고 온 겨울 돼지, 소, 개를 잡아 달아놓고 조막도끼로 뚝뚝 찍어먹던때가 있잖았소, 개 처럼 살았다니 그 말이 개소리지…          그때 시내로 올라가는 뻐스에서도 고향을 그같이 싸고돌더니 쭉 15년 긴세월을 시내에서 아빠트생활을 하면서도 그예 고향, 삼평을 못 잊었는가. 죽기전에 삼평골을 디디면 어델 다니고 보면 뭐가 볼게 있단말인가. 듣자하니 백몇십호가 이젠 드나 스무호가 되나마나하게 남았다고 그러던데. 그담엔 더 말해 뭣하랴. 농호들이 없으니 고향이야 황페하길 더 이를데 있으랴. 하여튼 그러할 망정 못가보면 유한이 될것이니. 2       령감, 나야 입이 삐뚤어지고 조금 절름거려도 아직 오래 살것지. 그러니 령감 소원 안 들어줬다가 령감 죽은귀신 밤마다 내게 붙지야말게 해야지비. 속으로 그렇게 기도하며 가는길에 할망구는 령감모르게 울기도 울었다.          대체 어딜 가냐는 물음에 입을 열지않다가 내린 곳은 짐작처럼 삼평이였다. 황페하길 짝없겠거니 여긴 고향, 아니 슬그머니 기분이 둥둥 뜨기시작을 해서 본게 생각속의 삼평이 아니던 것이다. 온통 푸른 세계속에 봉선화, 아카시아, 민들레꽃들이 아름다워 등잔밑이 어둡다고 이 가까운 고향으로 15년동안이나 와 보지않은게 부끄럽든 것이다.     령감, 보시우다. 맘껏 보시우다. 오, 령감, 이러한 고향이기에 죽어 유한이 되지않게끔…          할망구가 삐뚠입을 너불거려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전인데 령감은 비척거리고 걸어간다. 이마에선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발걸음도 휘청인다. 아마 마지막 힘 다해 삼평을 걸어보려는것이겠지. 그러나 당금당금 넘어질듯하는 걸음은 내처 앞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니?! 절벽산! 이건 뒤동산 절벽산 아래 자기집 논자리가 아닌가. 걸음을 멈추고 절벽산을 마주한 령감이 무릎을 탁. 치고나서 당금 죽을 사람답잖게 나온다.          할망구, 이 절벽산이라네. 우리 집 논밭을 내려다보구 아아히 창공을 찌르고 선 이 절벽산이 지루히도 내 맘속에 자리를 잡고 솟아있었다구. 어느 한날한시도 다름이 없었다그거여. 할망구, 나 속심 말을 하네만 난 긴 시간을 속죄를 했었어. 왜? 우리 아이가 절벽산에 바라올라 살구나무에 살구를 뜯다가 떨어진 것이 정갱이뼈를 분질렀던 그 해 말이네. 절벽에서 하마트면 아이가 죽을번한 일이 속에 내려가지않아 도끼로 살구나무는 물론 절벽산봉의 나무들과 산아래 나무숲을 모조리 찍어버린 일 있잖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 왜 그런지 난 나 자신이 점점 할 말이 없어지고 웃음도 마르고 밤잠도 설치는 등 그뿐이면 몰라도 식욕이 감퇴되고 성욕이 가물든거여.     어떤 날 밤 할망구 아니 그땐 처녀처럼 싱싱했지. 내 사타구니 그걸 때리며 뼉다구같던 것이 왜 이리 흐물떡거리는 죽은 쥐새끼같으냐구 원망두 많았던 그 우울한 밤들이 생각안나? 그땐 원인을 몰랐어. 다 찍어버린 살구나무, 참나무, 피나무, 봇나무, 황철나무들이 새해봄이면 또 다시 커서 숲을 이루겠지 여겼어. 그 후론 해마다 절벽산아래 어거리대풍 들던 우리집 벼농사가 태반이 쭉정이가 아니면 립고병으로 쓰러지고 충재가 들지않으면 왕가물이 들어 해마다 페농이였어. 그러던차 아들의 돈으로 우리가 현성 올라간게 아니겄나…아따, 이 놈의 다 죽는갑던 령감이 절벽산을 보더니 흥분을하며 말두 장설이구만기래여. 아마 죽기전의 개똥벌레 궁둥이같은 반짝 반디빛 현상은 아닐터이지?      3       에라이 주리를 틀 할망구야, 내가 그리 쉽게 죽을것같어. 내 목숨은 절벽산의 일초일목과 이어진건데랴.     그때에야 두 눈 똑바로 뜨고 절벽산을 쳐다보는데 15년, 긴 세월 찍힌 나무밑둥들에서 새싹이 돋고 벼랑너설에 자란 살구나무씨가 떨어져 새로이 자란 살구나무들… 이 절벽산을 나무숲으로 단장했다.아카시아, 야산국화, 진달래, 살구꽃, 찔광이, 돌배꽃들이 피여 웃고 벌은 붕붕, 시찌시찌 시찌비이 산새, 꾸룩꾸룩 비둘기, 찌찌찌익 찍 독수리, 부엉부엉 부엉새들이 하늘을 까맣게 점찍으며 나는 가마새들과 화합을 즐긴다.          할망구는 넋없이 바라보다가 산그늘이 드는 저녁때를 알고서 저녁뻐스를 놓친다고 바락 소릴 지른다.     안간다. 안가! 갈려면 네나 가버려라. 이 좋은 절승경개를 버리구 보이라굴뚝속을 기여들어가. 내 페결핵은 거기서 얻은게여. 또 네 입도 공기혼탁으루 삐뚤어진거야. 쿨룩쿨룩. 그놈의 아빠트란것도 봄과 늦가을이면 스팀이 차가워서 랭돌인데다 오싹 한기가 들어 감기가 열백번두 더 걸리는 것 아녀. 나 싫어. 싫타! 꿈마다 화토불에 감자구워먹구 수려한 졀벽산이 훼슬훼슬 돌열을 뿜어 기온이 맞춤해 벼풍년 들었던게 아녀. 안간다, 안가! 나 여기서 이렇게 누워 죽을란다. 절벽산의 부활을 만세 부르며 죽는 것으로 절벽산을 란벌하고 고향을 버린 죄를 용서받을거여. 쿨룩쿨룩쿨룩룩.          그러고 뉘엿뉘엿 해지는 저녁그늘속에 민들레밭에 드러누우니 할망구가 애고애고., 넋두리를 하다가 펄쩍 제 정신이 드는갑더니 삼검불이 된 머리카락새로 얼마 떨어지지않은 곳을 주시한다. 거기엔 숫제 얼핏 보기에도 누가 버리고간 농막이 있었다.     령감, 우리 저기 농막 가 살기우. 그런 말이 다 어떻게 할망구 입에서 나갔던지 모른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령감이 번쩍 눈을 뜨더니 끙. 하고 일어나는게 아닌가.     농막에 들어서니 녹 쓸었을망정 가마 두 개가 걸려있고 먼지에 개똥천지였으나 장판구들이 그대로였다. 대수 쓸고 닦고 불을 때니 가마에서 설설 물이 끓고 구들도 따뜻해난다. 일이 될려고그랬던지 헛간에 녹쓴 삽이며 괭이까지 있었던 것이다.                                                     4          용변보러 나갔다싶던 령감이 비척비척 쓰러질 듯 들어서더니 돈 백원을 메치며 당장 돼지고기에 입쌀, 소금등속을 사오란다.     뭐라고? 돼지고길 사오라고 그랬어유? 돼지고기가 아니라 참새고기도 못 드시던 령감이 그게 진말이요? 하며 믿을수 없어 한다.     내 전에 씨름군일적엔 절벽산아래 논벌에서 점심참마다 돼지비게에다 술 근반씩이나 마시구두 써레질이구 가을이구 일에 황소였거든. 그런데 그후론 절벽산에 나무숲이 사라지니 별쭝맞게 내 입맛두 가더라 그거여. 어디 그뿐인가. 나무숲이 없으니 짐승들이 없고 꽃이 없으니 새와 벌들도 없드라고. 더욱이는 나무숲 없는곳엔 비가 내리지않고 우박과 먼지바람만 모여왔지. 절벽에 모이던 돌열도 흩어졌던지 랭기만 감돌고말이야. 그러니 공기야 청신하지못하고 침침하고 부패한 냄새만 역할뿐이였지. 그러니 어찌 농사가 될수있겠나.          할망구, 나 오늘 기실은 옹근 15년동안이나 가슴에 암처럼 커온 속죄를 하러온것이였어. 죽어서 여한이 안되게 말이네. 그런데 이렇게 절벽산이 부활이 되다니 뜻밖이네, 뜻밖이여. 그러니 내 이제 단 이틀을 살더라도 내 힘으루 한삽 또 한삽 논을 일구어보구 죽을려하네. 절벽산 아래 논을 일구는 꿈은 긴 세월을 두고 밤마다 아빠트속을 채웠댔어, 어흐흐흑흑 . 그건 나의 전부였어. 꿈에 내 밭 둘레엔 언제나 풍광 수려한 절벽산이 숨쉬네.그런 내 밭을 죽어서도 가지구 갈란다. 새 울고 꽃 피고 샘이 흐르는 풍경아래 항금나락 춤추는 내 구천세계에로 할망구도 같이 가얄게 아냐.     할망구가 웃동네 한족마을에서 돼지고기, 입쌀등속을 사오니 어두어둑 어둠이 깃들었는데 그때까지 령감이 삽질 한번하고 쿨룩쿨룩룩 또 한번 하고 쿨룩룩거리는게 아닌가.          조그만 농막안에 구수한 냄새가 차고 구들밥이 올랐다. 시허연 돼지비게가 오르고 오다가 벌에서 한줌 뜯은 미나리무침도 올랐다. 갑자기 령감이 꽥. 소릴 질러서 할망구는 깜짝이야 했다. 거의 죽어가던 시체같던 사람이 오래만에 내는 소리였다. 술이 없다는게 아닌가. 에라이 령감쟁이가 술이란 웬말인가. 페결핵에 간병에 위궤양에 비장이 약해 페스트에 걸린 수탉처럼 날개와 다리를 가누지못하는 꼴이던 애처롭던 그이가 아니던가.     다시한번 더 두눈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는 맥없는 모습일망정 그게 기꺼웠다. 죽자고 저러는가, 죽기전에 저 모양인 것은 아닐테지. 아무튼 운명직전이라치고 소원이야 들어줘야지. 그러며 헐레벌떡 달려서 술을 사오니 돼지비게 두점에 술 한잔 겨우 마시고 그 자리에 쓰러져 코를 곤다.   5          할망구는 밤중에 몇번이나 일어나 령감의 숨소리를 귀담아 듣고 코에다 손을 대 보았다. 괴상한 일이다. 현성 아빠트에선 밤중에 잠이 안 온다고 투정을 부리고 전렵선염이든지 오줌도 열몇번이나 일어나 들랑거리던데 이건 첨이다. 통잠이다. 죽지 않았는가? 죽지않았다. 림종전이 이런거나 아닌지.     령감은 이튿날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좀 삽질을 하고 오후에도 해질녁까지 쉬다가 파고 쉬다가 파고. 돼지고기는 한점두점씩이더니 저녁엔 술 두 잔까지 들고 돼지비게도 네점이나 맛있게 우물거린다.     령감은 사흩날에도 죽지않았고 낮이면 논밭을 일구었다. 열흘이 되니 제법 얼굴색이 달라진다.          장검으로 자른 듯 깎아지른듯한 절벽산, 나는 한때 벌거숭이가 되였었다. 벌거숭이가 되였던 그 이듬해엔 쉼없이 졸졸 흘러내려 논밭의 관개수 되였던 골짝샘마저 말랐었다. 다람쥐 참새마저 자취를 감췄고 날 우러르고 칭송했던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가버렸다. 나무숲은 절벽산의 옷이다. 그 옷은 신비한 요술처럼 생명을 부여한다. 새들을 부르고 짐승들을 부르고 더운날 그늘을 부르고 가문 날 비를 부르고 뿌리론 영양가로 수분을 공급한다. 여름이면 서늘하게 해주고 겨울이면 푸근하게 해준다. 어디 그뿐인가. 숲이 있기에 열기를 방출하여 주위 십리구간의 밭들이 풍년들게 기후를 조성해준다. 그런 옷을 잃고 여름이면 따가왔고 먼지바람에 모대겼고 가뭄속에 생기를 잃었으며 목이 갈했다. 겨울이면 추웠다. 그리고 지독히도 고독했다. 그러나 필경 난 절벽산이다. 다 갈라져도 언제든 옷을 입겠다는 신념이 굳다.     나는 찍힌 뿌리들에서 움이 돋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한해 또 한해를 커갔다. 십여년만에 나는 끝내 전의 풍성함을 되찾은 것이다. 다 모여왔다. 새도, 토끼도, 샘치도, 꽃들도…오늘은 이렇게 15년만에 산아래 논 주인도 찾아올줄이야. 이게 신비한 자연의 힘이다. 삼평마을 사람들이 90년대중반기부터 출국바람속에 부자되고 현성이나 큰 도시로 올라가 사느라 분분히 마을을 떠났는데 기실 다수의 사람들의 이동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에 거쳐 삼림을 란벌하는통에 산과 벌이 벌거숭이가 된데에 근원이 있는 것이다. 삼림이 없는 지대에는 홍수, 산사태, 왕가물이 필연이듯하기에 십년에 일곱해를 흉년이겠으니 농민의 의미가 있을리 만무한 것이다.     밤이면 현성의 불빛이 하늘의 은하계처럼이나 아물거리는 여기 삼평이 풍광이 수려하고 해마다 황금파도 설렜다면 현성부자들이 이곳에다 별장까지 짓고 처가집 다니듯 할 꽃나라일 것을. 유감천만가운데서도 다행이라면 절벽산에 오르길 저어하여 지속적인 람벌이 되질못한덕으로 겨우 수림옷을 입은데다 영 못보는가 했던 산아래 벼밭주인이던 저이들이 림종때라고 잊지않고 찾아와 한삽두삽 개간으로 농민의 본질을 남김없이 드러내니 알수있어라, 리향민들의 깊은 맘속의 수려한 고향의 꿈을. 6       절벽산이 시무룩히 웃고 내려다보는 하루 또 하루를 령감따라 논을 일구느라 늙은 손바닥이 물집이 터져서 아리다고 생떼질 쓸때마다 쿨룩크하하. 낄낄크쿨룩룩. 령감의 웃음소리는 즐겁다.          둬짐 푼하게 논이 생겼다. 돌돌돌 돌산에서 샘을 끌어들여서 관개수로 쓴다. 멀리 까맣게 큰비가 내려도 여긴 잔비 끝에 무지개 선다. 바람도 솔솔, 벼랑산은 훼슬훼슬 돌열기 내뿜어 논벌은 후끈후끈 하우스속 같다. 주절주절 논코에선 플라나리아와 하얀 나비 디스코련습에 다망하고 시그널레드로 무대를 펼쳤는가 머리들고 바라보면 오렌지, 코발트바이올렛, 스칼렛…모든 연분홍빛으로 아름다운 들이다.     기실 힘센 장정이 논 둬짐 푸는데는 단 사흘이면 된다는데 둘이서 꼬빡 스무날도 넘게 악전고투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령감은 한삽을 파고 한동안을 쉬고 로친은 파기싫어서 한참씩을 쉬고.     그러나 모내기는 일삯을 놓았던 것이다.     푸른 논가운데 언제나 서 있었다. 쿨룩쿨룩. 페를 들어내는 기침소리도 차츰 사라지고 있었고 삽질도 날따라 기운이 배여온다.     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소리 극성스럽고 조잘조잘 물소리 고르롭던 어느날 밤, 절벽산의 부엉새 울음소릴 들으며 량주는 잠 못이루고 있었다.     령감이 죽기전 소원으루 여겨 나 예까징 따라왔고만은 죽기는커녕 환생을 하구있구먼요…나 꺼뻑 죽었으면 절벽산아래 묻어버리고 올라가 아빠트에 도박판 만들고 즐겁겠다 그거여? 처녀적부텀 멋만 따고 배돌이를 치던 네 년이…          살아나니 둘의 아웅다웅은 밤마다 시작된다. 로친의 시내로 올라가고퍼하는 심사가 불보듯하니 말이다.     절벽산나무숲이 짙고 벼 배부르던 날, 논기음을 매다가 말고 로친이 논둑에 올라선채 더는 이런 고생을 사서는 못살겠다고. 시내 올라가 아들이 부쳐보내는 돈도 다 못쓰고사는 자기라며 입 삐뚠 볼이 으등거려질 때,     에끼 할망구가 그 삐뚠입에서 안 쓸 말이 나올적 있었나. 꽥 소릴 지르는데 그 소리가 페병 간병 위병으로 시체같던 령감의 입에서 튀여나오는 소리답잖게 우렁차서 벼랑산이 메아리쳐온다. 그통에 로친이 깜짝 놀라는데 농막살이가 싫어 눈물을 펑펑 쏟는 로친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령감이 한번더 소릴 내여지른다. 7       할망구가 풍기에 삐뚤어졌던 그 입이, 입이 언제 바루잡혔나, 어허허. 그려. 잡혔구먼기래여. 똑 츠녀같군기래, 허허…아니, 뭐라나요? 내 입이 바루잡혔다고요? 어머머머, 왜 이럴까요, 내 입이 바루잡혔잖아요. 호호…     로친이 꺼꾸로 업뎌서 샘물에 얼굴 비춰보며 못 미덥게 놀라와 한다.     이제는요 날 보구 할망구라 부르지 말어요. 60살이니깐 츠녀맞잡인데…날 보구 령감말 집어치워. 63살이니깐 나야말루 청년맞잡이 아니것어.     그날 밤 더욱 희구한 일이 생겻다. 한치마폭 은실은실 달빛아래 긴 세월 남자구실을 못하던 령감이 오줌누는 소리가 논코 물소리처럼 아니, 시찌시찌 시찌비이- 새울음소리처럼 들려오고 줄기가 무지개처럼 활등으로 뻗는다는 거였다.     우리 3계절은 여기서 살아요…그러니까 4분의3의 계절을 대자연에 귀속시키자 그거지. 바루 그거야.     령감이 손벽을 쳤고 로친도 살까기가 된 자기 엉덩일 갈긴다.     모텔알프스보다도 더 멋스런 농막, 그리고 푸른 논벌… 영원히 달라질줄 모르는 푸르름의 혜택을 입어 삼평의 노을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2007년5월17일  훈춘에서)
5    [단편소설] 푸른강은 흘러라 댓글:  조회:3446  추천:51  2008-11-11
[단편소설] 푸른강은 흘러라 량춘식 (연변)     컴퓨터를 꺼버렸다. 제길! 그는 씨벌였다… 푸른강이 출렁이는 화면속이다.     숙이: 푸르름은 랑만이야.     철이: 푸르름은 광대무변이지.     숙이: 그것은 숙원의 약속이고.     철이: 그것은 옥같은 고백이며.     그러나 지금 철이앞의 컴퓨터대화는 꺼져버린지 오래다.     철이는 책상우에 흩어져있는 서류뭉치들을 추슬러 서랍안으로 밀어놓고 컴퓨터대화 덱스트를 적어둔 서류를 몰아서 바스켓에 담는다. 그럴 때 촉감이 빳빳한 팜플렛 한장이 손끝에 잡혀졌다. 연두빛 표지에 푸르게 흐르는 푸른강이였다. 아니, 두만강일것이다. 그것은 몇달전의 잉크빛 저녁에 교정의 저녁자습때 숙이가 건네준것이였다. 달게 미소를 발라 넘겨준것이지만 보면 볼수록 의미가 깃든것이였다. 푸르른 두만강, 혼탁하지 않고 영원히 푸르게 흘러라! 이런 뜻일거라고 확신했을적에 철이는 얼마나 흥분했던가.     숙이, 숙이는 모델이나 연예계의 스타처럼 황홀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총명하고 명랑하며 아련한 느낌을 주는 애다. 학습위원인 숙이가 반급 남자애들의 우상이나 다를바없는 녀자애란걸 누가 모르던가. 그런 도고한 녀자애가 철이, 자기의 뭘 보고 우정의 다리를 놓은것일가? 하긴 1.78cm의 키에 영준한 얼굴을 갖춘 자신이 《백마왕자》라고 해도 무안할건 없지만… 하여튼 모두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중점대학을 바라고 저녁자습에 혼신을 태우는 철이였지만 이것이 숙이의 은근한 중시를 불러일으켰다고는 말할수 없을것 같았다. 숙이의 믿음으로부터 기운을 더 가지게 되였던것은 더 말할것도 없다.     《숙아, 우리 인터넷세계속에서 서로 배우고 도울순 없을가?》     《그 방법이 좋겠어. 그렇게 해?》     《시간은?》     《초저녁 6시 좌우, 그담은 밤자습이 끝난후 9시 좌우, 어때?》     《암호는 뭘로?》     《푸른강!》     《무슨 뜻이지? 오, 그래, 오염이 없는 령혼?》     이렇게 그들 사이의 인터넷세계를 펼쳐가기로 약속한 날은 유난히 별들이 반짝이던 저녁이였다. 그들의 인터넷화면에는 언제나 짙푸른색으로 충만되였다. 켜진 컴퓨터화면으로 하얀 초서체의 글이 상대방의 마음으로 한글자한글자씩 나타날 때만큼 심정이 설레일 때는 없었다. 낮에 배운 지식, 의문, 래일에 대한 타산, 계획, 리상을 설계할적마다 그들 서로의 가슴에 푸른강이 흘러들어 출렁출렁 꿈이 일렁이였다.     그런데 언제나 있던 암호- 하학무렵의 《푸른강!》, 저녁자습후의 《푸른강!》은 언제부턴가 차츰씩 그 약속의 힘을 퇴색시켜가고있었다. 교정에서의 암호도, 전화로의 암호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체 무슨 원인에서일가? 어느 댄스에서던가 녀자의 마음은 뜬구름같다던데 혹여 숙이가 다른 우정의 남자친구를 정한것이란 말인가?… 철이는 갈피를 잡을수 없었고 그럴수록 더욱 당황하기만 했다. 갈수록 수미산이라더니 요사이 인터넷을 도무지 켜주지 않는 숙이의 랭철해진 인상에 골이 나고 고민이 쌓여가는 판인데 며칠전에는 한국측으로부터 홍두깨같은 소식이 덜컥 왔다. 어머니가 랭동어창에서 일하다가 심한 동상을 입어 왼손을 절제당할 가능성이 있다는것이였다.      집요한 고민과 방황속에 철이는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한동안 얼마만큼의 풍류객 철이였던가. 세상에 부러운게 없어보였고 여느 애들이나 자기를 쳐다보게끔 살리라 시도해보았다. 그는 통이 크게 어머니가 벌어보낸 돈으로 오천원을 주고 오토바이를 사서 타고 다녔고 천원을 주고 핸드폰까지 사서 찼다. 오늘 우리 생활의 응당한 리듬이 뭐야? 황토길에 옥수수떡이야 아니겠지.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 다니고 컴퓨터로 아르바이트하는게 제격이야. 철이는 오토바이에 숙이를 앉히고 두만강으로 낚시질다니는 꿈도 여러번 꾸었다.      철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게 되자 어중이떠중이 애들이 오구구 모여들군 했다.     《철이, 오늘 나 급한 일 있는데 좀 태워다주겠어?》     멋쟁이 미옥이의 속살대는 말이였다.     《날 태워. 난 너와 함께 절벽이라도 날아내리고파.》     톱가요가수 선화의 고백.     《히야- 오토바이를 척 타고서 핸드폰을 받는 모습이야말루 진짜 총경리의 스타일이거든.》     그럴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났지만 숙이가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는게 유감이였다. 저 애가 왜 저러지? 다른 애들 앞이라 나타내기 저어해 그러는거겠지.     어느날 아침은 숙이를 태우고 함께 학교가리라 큰 맘 먹고 숙이네 집으로 갔는데 숙이 엄마가 《오, 철이구나. 숙이가 금방 자전걸 타고 갔지.》 라고 해서 헛방을 치고 또 어느날은 숙이의 자전거를 감추어놓고 하학길에서 기다렸는데 숙이가 《얘, 사람 웃겨. 나 삼륜차 타고 간다.》 해서 무안해난 나머지 오토바이를 쥐여박았다. 참, 리해할수 없는 애야. 까다롭긴 생앙쥐야. 녀자란 참 사탕알 쥐고 《요것 봤쭁!》하고 보이고 감추는 한치보기거든. 이렇게 나무라고 듣지 못할 공갈을 하군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비여오고 까닭모르게 방황했었다.     철이는 그날도 전날 밤의 사이키 음악소리가 머리를 빠개는 느낌을 술냄새로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독하다.》와 《뜻대로 안된다.》는 고민을 조건으로 어느 으슥한 골목술집에 들어가 술을 기껏 들이켜고 미친듯이 댄스를 춰댔던것이다. 골목과 포장도로에서 질풍같이 오토바이를 짓쳐댔지만 첫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녀선생님의 꼬집는 소리처럼 빼대대하게 들려왔다. 대수롭지 않게 교실문에 들어서는 순간, 첫눈에 속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대번에 눈길이 곤두섰다. 숙이가 박씨같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앞에 앉은 반장, 룡호와 생글거리고있었다.     철이는 한껏 마음을 눅잦히려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태도를 수습하고있었지만 그 어떤 소중한것을 앗기고있고 끊어진 분필처럼 높은 교탁에서 굴러떨어지는 처절함이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눈에 불이 일고 불끈 쥔 주먹에서 으득으득 소리가 나고있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배운게 아무것도 없는것 같았다.     저녁 어스름이 도적처럼 기여들자 철이는 시도한대로 엔징소리를 아츠럽게 내며 시야로 가로등들을 휙휙 날려보냈다. 학교에 거의 이르러 어둑시구레한 곳에서 붙어있는 한쌍의 련인을 향해 주저없이 달려가 머리가 맞대일 지경으로 쏘아보았다. 그쪽에서 볼성사나운 욕설이 나왔다.      《누구야? 뭘 볼게 있다구. 미친개눈을 해가지고…》     룡호와 숙이가 아니였다. 공연히 욕만 뒤통수를 때렸다. 재수없이.      교실에 이르니 저녁자습에 온 학생들이 복습준비로 한창이였다. 그런데 암만 봐도 숙이와 룡호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복도를 나와보니 턴넬처럼 캄캄하기만 할뿐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야, 이거 미치겠다, 미치겠어!》     하마트면 이런 고함이 박산나는 창유리와 함께 복도를 메아리칠번했다.     그떄였다. 구두소리가 계단을 울리고있었다. 가까이 올수록 그 모습은 룡호였다. 그런데 그 뒤로 나타난 모습이 생각처럼 숙이일줄이야.     《네 꼴은 밤처럼 거무칙칙하구나.》     불쑥 튀여나간 첫마디였다. 룡호는 의아한 눈길로 철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무슨 뜻이니? 넌…》     《무슨 뜻? 네가 모르면 누가 아니? 두꺼비가 고니를 노려…》     《너 술 마셨니?》     《술? 네 눈에 내가 술망나니로 보인다 그 말이야? 에익!》     철이가 날리는 주먹에 룡호는 대번에 낯이 터져 피칠갑이 되였다. 발길질을 해대려는데 숙이가 룡호를 막고 말렸다. 숙이가 철이를 정면으로 하고 입을 열었다.     《왜 이러냐구, 응? 넌 지금 많이 변하구있어. 예전의 그 철이가 아니라구. 소박하고 열정적이구 뜨겁던 철이가 왜 이래? 무슨 원인이야? 갑자기 리기적이구 퇴페적이 되는건 무엇때문이야? 나 지금 널 연구하고있는중이야… 넌 날 실망시키구있어!》     철이는 이러는 숙이가 뜻밖이였고 말마디마다 비수처럼 찌르는것 같아 백치처럼 서있었다. 숙이의 눈가에는 이슬이 가랑가랑 맺혀있었다.     그날 밤, 철이는 밤깊도록 잠들수 없었다. 숙이의 목소리가 자꾸 귀청을 때린다… 철이의 고민은 하루 또 하루를 끈질기게 쫓고있었다. 하기는 그랬다. 실망되겠지. 술 먹고 저녁자습에 고추장 맛보기로 다녔고 거기다가 사람까지 치구. 에익, 이거 언제부터 이렇게 된거지? 내가 변하구있다? 그래 정말 내가 변하구있는거야? 왜 변하구있지? 변하게 된 원인이 뭐지?… 어머니가 출국하기전인 반년전만 해도 난 얼마나 성실하고 순박한 애였던가. 그래, 그때 매일 숙이의 눈길은 얼마나 부드러웠던가. 웃음도 방실, 말도 부드럽게. 엄마가 외국 가기전 부탁대로 지각 한번 없이 등교하고 공부에 열중했잖아. 체육반장이고 기운이 세다고 녀자애들은 나한테 무거운 일을 잘도 맡겼지. 그때마다 자랑처럼 꿍꿍 일을 하고나면 반급애들은 너도나도 부러워했지. 뒤수더기만 긁으며 부끄러워하던 나를 두고 숙이가 제일 즐거워하던 그날그날들. 번개치고 우뢰우는 날이면 무서워하는 애들은 나의 뒤를 따랐고 밤중에도 나를 방패처럼 믿고 따르던 애들, 축구경기때마다 《땅크》라고 응원하고 손벽에 물집까지 생겼다던 숙이네들… 아, 그런데 지금은 걔들 눈길이 왜 그리 차겁지? 평소에 녀자처럼 부끄럼 잘 타던 반장한테는 왜 손찌검했지? 원래의 철이는 도깨비가 물어갔나?… 이 저녁따라 고독하구나. 먹물처럼 흘러드는 저녁어둠속에 연분홍빛 봄바람은 어데로 갔나. 초롱초롱한 별빛은 왜 안보이는거야? 엄마 생각도 났다. 가슴에 손을 얹고 두눈 감고 엄마를 만나러 가보자. 어머니, 그간 얼마나 고생하세요. 손은 어떠세요. 너무 고달프게 지우시는군요. 이 아들의 마음이 마구 미여지고있어요. 뭐라구요? 어머니의 부탁을 저버리고있다구요? 출국하느라 꾼 리자돈도 다 못물었는데 누구의 허락도 없이 마구 돈을 탕진하고 돈으로 신용과 명예를 사려 했다구요? 이게 곧 실망이고 타락이라구요? 어머니의 왼손이 절제된다손 치더라도 오른손으로 이 악물고 벌어 자식의 뒤바라지를 할 어머니라고? 어머니, 미안합니다. 저의 머리가 일순 뜨거워졌나봅니다. 이제 한학기만 지나면 대학시험을 치러야 할 놈이 너무 이르게 자기를 떴다고은것 같군요. 이게 어디 어머니의 아드님다운 짓이겠습니까? 다 쓸모없는 허욕탓이지요. 허욕이 내 전도를 망칠번했어요. 어머니, 보세요. 저 창공에 달이 떴어요. 저 달빛아래서 허욕이 없는 참된 사람으로 걷고싶어요. 그래, 이 저녁부터 책가방 메고 배움의 전당으로 달려가 맘먹고 저녁자습 해야죠. 말하면 한대로 처사하는게 남자가 아닐가요…     철이는 헛칸에 처박았던 자전거를 닦아서 탔다. 오토바이를 탄것보다 훨씬 마음이 가벼웠고 명랑했다.     깨끗이 빨고 다리미질한 교복을 입은 철이가 불밝은 교실에 들어서자 애들의 눈길이 달려와 멎는다. 그 눈길들은 차츰 봄물처럼 일렁이며 반짝거리고있었다. 그럴수록 철이는 몸둘바를 몰라 송구스럽고 안타까워났다. 그때 뭔가 연필로 정성껏 초고를 작성하고있던 학생의 책상에서 파란색 고무가 떨어지며 구을러와 철이의 발밑에 머물렀다. 반장 룡호의 고무였다. 철이는 주저없이 그 고무를 주어서 룡호의 손에 쥐여주었다. 마주치는 그들 서로의 눈길은 통쾌하고 서글서글함이 넘쳐나고있었다. 그때 그 장면을 지켜보고있던 숙이의 눈도 반짝 빛났다.     《푸른강?》     철이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푸른강?》     그 챙챙한 목소리의 임자는 분명 숙이였다. 사위를 둘러보았다. 교실은 언녕 텅 비여있었다. 골똘히 기하문제를 풀이하느라 동학들이 밤자습을 마치고 돌아가는것도 모르고있은것이였다. 오직 숙이만이 문밖에서 인터넷 암호를 부르고있엇다. 철이는 흐읍, 감동을 먹으면서 《푸른강!》 하고 우렁찬 화답을 뽑았다.     밖은 유난히 밝았다. 한가슴 달빛을 안고 자전거페달을 힘있게 굴렸다.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열었다. 바다색에 비행운같이 흰 글이 또렷이 나타난다.       숙이: 철이야, 오랜만이구나. 그새 몇번이나 인터넷을 통하려고 했지만 시종 켜지 않았더구나. 더러 실망했고 뾰로통한 날도 있었지만.     철이: 사람이란 욕심이 많은가봐. 엄마가 애써 번 돈이란것도 잊고 허욕에 둥둥 떴댔어… 귀신에게 앗겼던 리지를 도로 찾아왔다고 해야 할텐데.     숙이: 그랬었구나. 되돌아섰으니 더 어엿해보인다. 우리 반급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던 네가 반급 일에 관계치 않으니 생활위원을 겸한 내가 바빴지 뭐야. 생활이 가난하여 중퇴하고저 하는 농촌마을에 사는 경일이 집도 가봐야 했고 차사고때문에 입원한 순이에게도 걱정도 하고 지원도 해야 했었어. 그간, 반장 룡호가 발이 닳게 뛰여다녔지 뭐야…     철이: 아, 아무쪼록 부끄럽구나. 혼탁했던 내 령혼에 저주를 퍼붓는다…     숙이: 흘러가버렸어. 이젠 푸르디푸른 두만강처럼 쉼없이 출렁출렁 흘러가야지. 우리는 어머니 대지에 흐르는 푸른 강이야. 대지는 맑고 푸르름을 원하는거 아니니?     철이: 그래, 흐르자. 쉼없이 바다로 흘러들자!     밖은 횅창 밝았다. 둥근 달님이 미소하고있는 밤, 그들의 가슴으로 푸른물이 흘러들고있는것이다. 출렁출렁 푸른강은 흐른다. (연변문학 2002년 제7호)
4    [중편소설] 하류의 물살 댓글:  조회:12108  추천:60  2008-11-11
[중편소설] 하류의 물살 량춘식     고동색으로 침묵하고있는 언덕에 나는 앉아있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 고독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은 여느때처럼 황페하고 적막한것이 아니라 탕개가 풀리며 어느 정도 감동하기까지 한다.     구태의연한 풍경이라서 두만강하류는 아름답기만하다. 삼국이 린접해있는 국경선이다. 왼편으로 로씨야의 트럭과 송아지만큼 큰 개짖는 소리, 오른편으로 조선의 기관차의 고동과 닭들의 홰치는 소리가 련속부절히 들려와 못가보는 이웃이기만하던 력사의 비망록이 안개의 강으로 한가슴 흘러들기만한다. 짙은 회백색, 흑청색의 두만강하류는 그 흐름이 완만하고 수많은 잔주름이 미명의 빛속에 잘디잘게 쪼개진다. 짙푸른 엽록소가 물든 강변갈숲과 진붉게 물기오른 피빛버들숲을 어루쓸고 나가는 하늘빛 동쪽 저 멀리 무연히 바다가 누워있다. 동해란다. 저 바다로 모국의 강릉이나 속초항에 가 대일수 있기도 하다면… 봄이면 청록색, 여름이면 짙푸른 파랑, 가을이면 감청색, 겨울이면 짙은 남색의 상공으로 계절따라 터새, 철새, 나그네새들의 울음이 그 얼마나 이 가슴을 쪼개고 애끓였던가.     나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강하구의 얕은 언덕에 앉아있었다. 삼각지와 넓은 바다가 잘 내려다보였다.     강하구는 물살이 완만했다. 민물과 짠물이 서로 섞였다. 그곳에 물고기들이 서식했다. 수심 얕은 수토사이가 산란에 적당하기때문이다. 새우무리와 조개무리의 민둥뼈동물도 모여들었다. 새들은 주린 배를 채웠다. 그리고 날개를 손질하며 쉬다가 떠났다. 그럴적마다 이 마음은 곧잘 감동했고 아쉬운 나머지 핑글 더운 눈물이 고여오르군 했었다. 도요새의 유연한 비행을 두고, 갈매기의 기류에 따른 묘한 상승을 보며 너희들이야말로 삶이란 그물에 걸려 헐떡이는 인간들과는 달리 가고픈 곳 다 다니며 자유의 신이라는 부러움으로 마음의 날개를 끝없ㅇ 퍼득이였던것이다.     내가 못가본 곳은 너무나 많다. 국경선너머는 말고 조국의 수도 북경은 물론 성소재지인 장춘마저 못가본, 비행기는 말고 파란 렬차 한번 못타본, 자전거만 타는 한심한 농투사이니 말이다. 그래도 제일 가고픈, 자나깨나 그리는 품의 강심(江深)이 있다. 안해가 있을 그 어디에―서울의 어느 김밥집이나 부산의 고삭은 나루배아래 바람등받이에 새우잠 자는, 강릉이나 영동의 어느 두메산골 감자밭이나 두만강 철교란간을 붙잡고 흐느끼는 오, 어쩌면 이제는 속초항에서 동해를 거쳐 배가 연변 훈춘에 와닿아 속초항만에서 환향의 기회를 기다리며 쪽잠 들고있을 그곳으로 찾아가고픈것일가. 그런데 왜 자꾸 안해를 , 사랑하는 안해의 처지를 이토록 슬프게만 매여놓고있을가. 어느때 어느 남자 문뜩 딸라띠를 해띠고서 눈이 까매서 기다릴 이 나그네를 찾아올지 뉘 알랴. 하긴 생각이 처량하게만 흘러드는것도 리해가 갈것 아니냐. 고향을 떠날적에 자그나마 온 방천마을의 남녀로소가 한사람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송별을 고할적 3년만에, 두만강변의 해당화 세번 지고 필적에 환향하리라 맘놓으라며 맹세하던 안해가 아니던가. 그런데 3년이 지나고 또 3년이 오도록 《돌아가겠어요.》하는 대답이 올줄은 모르고있는 형편이다. 문득문득 날아드는 송금표, 많으면 륙천 팔백원, 적으면 일천 이백원씩 희열에 들뜨기보다는 오히려 고맙고 미안스럽고 가슴아프기까지 해나서 받아보는것은 개인날 궂은날 가리잖고 발이 부르트도록 서울에서 부산으로, 강릉서 영동으로 자리를 부엌데기처럼 옮기며 바꾸어온 《피땀》이였던것이다.     여보, 이젠 제발 돌아와주오. 덕분으로 아이들까지 대학 보내고 페결핵으로 황천객이 다됐던 어머니도 편히 살아서 신수 멀끔하구먼. 저금한 돈도 적잖은데… 이렇게 바다 건너 수없이 새처럼 편지가 날아갔어도 《더 벌어야죠…》라는 한마디 애매한 대답뿐인걸 어쩌랴.     돈이 안해를 악마로 만들었는가? 돈을 벌기 위해 태여났을가? 말도 안된다. 안해여, 그대의 봄같은 숨소리와 말소리, 수정같은 눈동자와 박씨 같은 가쯘한 이, 고운 얼굴과 앞가슴과 숫눈무지 같은 하반신, 그리고 해바라기 같은 정과 도덕과 량심은 그대 혼자만의것이 아니어늘… 그러나 내 지금 별수 있으랴. 언젠가 안해가 말했듯이 삶이란 결국 그런것, 어부가 그물코를 시작하여 끝맺을 때까지 한코를 뜨면 열코을 나가야 하고 열코를 뜨면 백코를 나가야 하는, 결국 그런 한코, 두코의 그물이 자기를 쳐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굶고 주려 마르게 하는 《마귀그물》이란걸 알면서도 한사코 떠나가는게 인간인것이다. 이때문에 나는 고통스럽다. 애당초 허욕에 날치며 안해를 풀어보낸것이 지금은 그것이 돈으로 지지리 어두운 고독만을 바꾸어오고 귀체(貴體) 스스로 귀체의 모든것을 해친다고 해야 할지를.     그립다, 그리워서 망망한 바다가 보이는 하류의 삼각지로 나간게 아닐가. 마를수 없는것이 바다라면 여기 두만강하류의 풍족도 영원할것이다. 황어, 산천어, 청어, 정어리, 쏘가리, 가재미, 꼴뚜기, 송어, 련어, 용어들이 은빛 번뜩일 때 그보다는 오월, 련어철에 몇십근 지어 백여근씩 되는 련어들이 알을 쓸고저 무리쳐 오르는데 한마리만 잡아도 사람이 실컷 먹고 나머지를 도끼로 찍어 돼지를 먹인다고 한다. 얼마나 아까운 짓인가. 인간들이란 린색하기 짝 없다. 하류에 수없이 고기가 많다는 선입감때문일것이다.     물속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가. 그 어떤 고갈이라던가 하는것을 느낄수 없을텐데. 이런 느낌이 나에게 던져준 상상이였을가. 나에게는 언제부턴가 하류가 안해의 미끈한 하반신으로 착각되군 했다…     얼마나 맑지고 청청한가. 700리 두만강의 상류, 중류가 오염이 없었으니 하류야 거울면 같이 유유했었다. 푸른 강역에 차돌을 쏟아부은듯 오붓하게 들어앉은 방천마을이다. 길섶에 어렵잖게 굶어죽은 시체를 볼수가 있고 류리걸식하던 《대약진》세월에도 방천마을사람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를 운운하지 않고 살수 있었다. 훈춘이 중국의 맨 북쪽구석에 위치해있으니 훈춘에서도 70키로메터의 심산수레길을 조여야 대일수 있는 700리 두만강 맨끝쪽, 동해가 훤히 바라보이는 마지막 산속마을이니 오지도 한심한 오지였다. 태여나 죽을 때까지 기차 못타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해는 낡은 자전거를 구해다가 타고 다니는 박가를 자전거 탈줄 안다고 촌장으로 선거했었다. 그토록 구석이라 해서 정치불문인것은 아니였다. 마을의 어느 집에 반도체라지오가 있었고 열흘에 한번씩 우편배달이 다녔으며 간혹 경신향정부에서 《공작대》들도 다니군 하여 정책조달이 되고 생산대회의가 띠염띠염 열리군 했던것이다. 이른봄, 종자구입때나 한여름 종종의 일때문의 수레나들이보다는 늦가을이나 한겨울속의 징구량 바치는 일이 제일 대사로 나서는것은 코흘리개도 아는 사실이였다. 푸름한 신새벽에 개털모자에 고드름을 붙이며 징구량을 꽉 박아실은 수레대오가 산길을 조인다. 뚜꺼덕 삐삐덕, 이랴쨔쨔 소리가 골안을 들었다 놓는데 자칫하다간 좁은 얼음서린 길에서 탈절되여 천길나락으로 굴러 황천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그래도 새벽, 낮, 밤을 교체하면서 해해년년 어김없이 완수하군 하는 징구량임무였다. 《대약진》 그 세월에는 쭉정이마저 날려 얻은 낟알까지 깨끗이 실어가게 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배고파 우는 아이를 업고 촌장을 삿대질하며 욕질을 했다.     《욕은 당연히 제가 먹어야 합니다. 진작 준비가 되여있으니깐요.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우린 우리 마을이 위치하고있는 때문에 굶어죽을수 없을겁니다. 두만강하류에서 바다에서 오르는 물고기들이 펄떡펄떡 뛰놀고 늪도 있고 벼라별 약재와 산짐승들이 낳은 산도 있지 않습니까… 견딥시다. 나라의 곤난을 함께 떠멥시다…》     촌장의 예견대로 방천마을은 류리걸식하는 사람들을 볼수 없었다. 어느 집에서 메돼지를 잡아도 스무호남짓한 사람들이 골고루 나눴고 아이만큼씩한 송어를 잡아도 큰 가마에 끓여서 온 마을  남녀로소가 명절인양 모여 먹군 하였다. 그때 마을에 첫손 꼽히는 《부호》가 있었으니 호주의 성명이 윤철룡이요, 별명이 《손톱눈》이다. 이름과는 달리 키 작고 강마른 철색의 나그네여서 보는 사람을 무안케 할 정도인데 그런 사내가 떡구시같이 실한 아낙과 일곱딸을 낳아 기르면서 잘산다는게 믿어질수 없는 사실이다. 세층으로 된 집앞 뒤주에는 강냉이, 호박, 벼섬이 그득 쌓여있었고 돼지, 게사니, 오리, 닭들이 울어제끼고 바람에 펄럭거리는 흰 이불안과 딸들의 속내의며가 꽃같이 피여난 빨래줄 받침용장대기의 아득한 끝초리로 언제나 말린 물고기들의 기름튀김을 련상시켜오군 하여 아래도리까지 뻐근해나도록 사람을 죽여준다. 그래도 기막힌 깍쟁이다. 배추김치를 넘볼라치면 먹던 김치를 손톱으로 찢어서 주는가 하면 산치기에서 도시락 구워먹을 때 곁의 네 장정들이 말린 붕어튀김을 축낼가봐 미리 한마리를 주어들고 네몫으로 빡빡 쪼개주더라는것이다.     윤가는 사람들에게 늘 《잘 먹기 위해 부지런해라》고 말한다. 윤가는 확실히 잘 먹어댔다. 많이 먹어서 그런게 아니라 영양이 고루 가도록 각양각색의 음식장만에 신경을 쓰는것인데 열두가지 네발짐승의 고기, 열두가지 날짐승의 고기, 열두가지 물고기, 열두가지의 김치, 열두가지의 알곡밥, 열두가지의 알류, 기름류의 정상적인 음복이였다. 그외에 세가지를 금하고있었는데 술, 담배, 도박이였다.     윤가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황금이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할적마다 《시간이 곧 황금이여》 라고 말을 받군 했단다. 윤가는 빠짐없이 생산대 일에 참여하는외에도 점심시간이나 이른아침, 지어 달빛아래에서마저 자류지를 뚜지군 했는데 그뒤엔 숫돌처럼 음식함지박을 인 안해가 따라다녔다. 일하고 먹고 일하고 먹고… 먹고 일하고 먹고 일하고… 비내리는 야밤에 배 타고 그물 늘이는, 주먹눈이 터지는 겨울에 옹노 놓고 덫도 놓는 나그네는 눈코뜰 새 없이 보내는것 같지만 그의 휴식이 과연 어떤 틈사리였는지 마냥 고동색 얼굴은 윤기 돌고 쾌감이 흐른다.     마을에서 윤가를 두고 《아유, 그 아즈반님이야 세상 복 혼자 굴러가겠죠》 라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는건 아낙네들이였고 윤가네 가축을 호시탐탐 노리는건 어중이떠중이 청년들이였으며 《손톱눈도 쪼개여 쓰는 눔이여》 라며 공연한 욕지거릴 퍼붓는건 당연히 아낙의 바가지 긁는 소리에 잠을 설치군 하던 나그네들이였다.     《사내대장부로 태여났으면 올방자 척 틀고 앉아 공대받으며 살아야지. 저 같이 한뉘 궁둥이를 하늘에 쳐들고 손톱발톱이 모지라지도록 살어야 쓰것냐, 쯧쯧.》 하고 저주를 퍼붓는건 아버지였다. 그러면 어머니는 되려 아버지를 꾸중한다.     《두상짝요, 일에는 굼뱅이고 묵는데만 악돌이 되여 술 묵고 담배 피고 도박 치고 뉘  과부엉뎅짝만 살피고 다니는… 애고애고, 윤가처럼 살았으면 내사 춤구갔구만…》     우리 집은 움막과 다를바 없었다. 뒤처마가 땅과 거의 맞닿아있어 닭들이며 오리가 오르내렸고 돼지까지 이영을 뚜져서는 엄지만큼씩 꾸부정대는 시허연 굼뱅이를 파먹어댄다. 어머니는 병약한 녀자였다. 아버지가 호주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가난은 이리처럼 덮쳐들었다. 우로 누이 셋이나 달도 못차 죽어버리는 바람에 나, 아들이 나이 지긋해서 본 대잇기자식이였으니 참말로 다행이 아닐수 없었던것이다. 어머니의 전부의 희망은 이 아들이였다. 아무리 봐도 잘난 자식이고 총명한, 큰일을 해낼 인재로 성장할것 같았다. 아버지는 술만 얼근하면 내 이마를 다독거리며 《너 이담 크면은 몇살부터 술 마시겠노》, 《너 이담 크면 몇살부텀 도박 놀겠노》 같은 롱지거린지 진담인지를 하고선 곧잘 낄낄거렸고 《너 이담 크면은 윤씨네 막낭딸에게 장가들거라. 며늘감이 드러났거둥.》 이런 말도 정색해서 곧잘 하군 했다.      1966년 여름, 700리 두만강은 전례없이 혼탁했고 물도 불었다. 하늘은 산증에 걸린 아낙처럼 쉴새없이 비를 쏟았고 골물과 산사태까지 쏟아져 흘러든 두만강은 곬을 넘어 광활한 밭들과 인가를 범람해버려 시누런 흙탕물길로 뱀과 죽은 가축들이 쉴새없이 떠내려갔다. 방천마을은 높직한 산등성이에 자리잡고있었기에 가축이나 가장집물은 손해보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강역밭들이 몽땅 물에 밀렸다. 이만해도 다행이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풀이 죽어 얼굴이 시커매서 한숨만 풀풀 내쉬였고 머리를 떨구고 다녔다. 수전과 한전이 몽땅 거덜이 났으니 쌀 한알 없이 추운 겨울을 어찌 난단 말인가. 수십개의 마을들에서 향정부에 원조를 요구했고 향정부에서는 현에다 손을 내밀었다. 쌀은커녕 한절반 뜬 강냉이가 인구당 백여근씩 차례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럴법도 했다. 불었던 물이 다 빠진 때는  마침 가을배추, 무우철이였다. 모두들 얼이 쭉 빠져 정신을 못차리고있을 때 그래도 윤가가 선참 아낙과 딸 일곱을 데리고 떨쳐나섰다. 제일 막내딸 윤수연이가 열살이였으니 우로 롱구선수 같은 딸들의 로동효률은 실로 경탄을 자아낼만했다. 밭을 일구고 배추와 무우, 파를 심는데 검은 흙고랑이들이 강역에서, 산비탈에서 우쭐우쭐 터를 넓혀가고있었는데 그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분분히 묵밭일구기에 나서기 시작을 했다. 농사란 심어서만 되는게 아니였다. 바야흐로 자라기 시작을 하는 무우, 배추에 충재까지 뻗치게 되였는데 그 심한 정도는 온 벌의 풀과 나무잎들을 볼수가 없을 정도였다. 길에 나다니기조차 끔찍했다. 발을 옮겨딛기조차 바쁘게 털벌레들이 지천으로 기여다녔다. 수재에 어혈이 든지라 련이어 닥친 충재앞에서 사람들은 어째보지도 못하고 기운을 내풀고는 《끝장이다, 끝장!》하며 실망을 해버렸다. 그러나 윤가는 강역밭과 산비탈밭에 아낙과 딸들을 내몰았다. 저마다 삽과 낫을 들었다.     강역밭은 대개 뙈기뙈기를 합해 두헥타르는 될상싶었는데 바야흐로 무우와 배추가 배가 불러가도록 싱싱하게 자란 밭이였다. 그런걸 왜 벌레에게 《소탕》 당한단 말인가. 그들은 땀을 철철 흘리며 밭둘레에 도랑을 빼기 시작했다. 옹근 이틀밤낮을 싸워서야 밭둘레에 두만강물을 끌어들일수 있게 되였다. 그러니 벌레들이 밭에 범접을 할수가 없게 되였다. 산비탈둘레에는 들에서 베여온 깔과 새로 불을 질러 재를 쌓았는데 털벌레들은 재무지를 넘어오지 못했다. 막내딸 수연이까지 밤을 새며 벌레와 싸우다보니 입술이 갈라터지고 감기까지 걸렸다. 가을에 무우,  배추, 파 풍년이 들어 린근마을의 한족들과 쌀, 기장, 조와 바꾸고 돈을 번건 말할것도 없는데… 그해에 내 나이 윤수연이보다 한살이 더 많았으니 열한살, 소학교 4학년이였고 수연의 웃반이였다. 그래도 복식반이였기에 우리는 허름한 교실에서 이웃으로 앉아 공부했다. 나는 키꼴 큰 아버지를 닮았는지 힘을 셌지만 항시 다른 애들이 구워온 감자랑 훔쳐먹기에 여념을 했으므로 공부에는 뒤전이여서 벌을 서군 했다. 수연이는 가만 볼라니까 엄마, 아버지는 잘난데가 없이 꼴불견이건만 어데를 골라서 닮았는지 곱게도 생겼고 공부도 1등이여서 언제나 선생님 칭찬을 독차지하고있었다. 공불 못하면 애들의 눈에 나기 마련이고 그러고보면 자신도 풀이 죽는다. 그런데 나, 이 김석룡이는 어찌하여 단연 이름이 높아졌던가. 너무나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과 애들을 놀래웠던 일은 지금까지도 그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풋풋풋, 삐삐삐, 삐삐용, 끄르르륵 쫑쫑…     새들의 아름다운 목청이 두만강가로부터 신새벽을 깨웠던 모양이였다. 교장실 창유리 같이 알른거리다고 우리 반의 깨여진 창유리처럼 부서져 반짝이는 두만강의 수면에 대고 조약돌총질을 실컷 하고서야 교실에 들어섰다.     《서랏! 또 지각이야! 또 숙제 못해왔겠지? 어제 수연의 기름개구리튀김을 네가 훔쳐먹었지? 너 대갈통이 호박이라면 삶아나 먹제이. 쓸데가 없는 놈, 들어갓!》     산수선생님의 뾰족구두코가 내 여윈 엉뎅이를 조긴다.      그다음 시간은 작문시간이다. 벌써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기아의 변주곡이 울린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지른다. 틀림없는 쏘가리튀김일것이였다. 네발이든 두발이든 하늘의것이든 산의것이든 물속의것이든간에 고기냄새이기만하면 틀림없는 수연의것이다. 눈길은 손만 뻗치면 대일 수연의 책상안으로 들어간다. 나의 손이 나갈무렵 느닷없이 선생님이 와 서있었다. 별수없이 흑판을 보았다. 거기엔 커다란 판서 《아버지》가 씌여있었다. 귀신의 작간이랄가, 쓰고싶은 충동이 물기둥처럼 일며 생각하고 느껴오던 일들이 물보라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작문이 뭔지도 모르는 놈은 드디여 삐뚤삐뚤 모지라진 연필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에 이란 별명을 가진 한 아버지가 있다. 깍쟁이란 뜻이다.      집도 제일 덩실하고 돼지, 닭도 제일 많이 치고 쌀도 제일 많다. 또 논밭도 제일 많다. 뭐나 다 많지만 달라고 하면 깍쟁이 쓴다.     작년 설날에 우리 집에서 꾸어먹은 쌀 백근 받으러 왔댔는데 아버지와 다투었다. 한마을에 살면서 제일 잘살면서 그깟 백근 받으러 남자답지 못하게 다니는가고 하니 은 꾸어간것은 친아비의것이라두 한냥 차이 없게 받는게 사는 도리라며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간 다음 어머니는 안받는것만도 이안해죽겠는데 그런 량심없는 소릴 칠수 있는게 사람이냐고 한바탕 다투었다.     며칠전 어머니에게 떠밀려 아버지는 또 에게로 무우 백근, 배추 삼백근을 외상내러 가는수밖에 없었다. 무슨 방법이 있는가? 겨울은 오는데. 그이는 원래 외상치기는 없는데 한마을이니 안면을 봐준다면서 그 손톱 긴 손으로 아버지의 식지를 쥐여 손도장을 찍어버리더라는것이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씨근거리면서 이러며 욕설을 퍼부었는데 엄마처럼 나도 한숨이 나갔다. 은 잘사는데 우리 집은 왜 못살가? 은 시간을 금싸락처럼 여기고 일하는데 아버지는 빈둥빈둥 놀기만할가?      아,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시간이 끝나기 5분전, 선생님이 나의 작문을 애들앞에 랑송했다. 애들이 《우와―》 큰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수연이는 머리를 숙이고 가방끈만 만지작거리고있는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쓰다보니 수연이 아버지를 써버렸는데 수연이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그냥 가슴에 머물러와 밤잠까지 설쳤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였다. 밖에서는 마가을 궂은비가 구질구질 내리고있었다. 아버지는 대자로 누워 코를 골고있었고 어머니는 늦아침때식을 익히고있었다. 나는 옷을 입고 도로 이불안을 헤맸다. 그때였다.     《석룡아!》     쨍쨍한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아유, 이게 뉘냐? 윤아즈버님네 막낭공주가 워짠 일루 다 우리 집으로 왔어? 어서 들어와, 응?》     뭐야? 그럼 수연이가 왔어? 나는 총알처럼 튕겨일어나 문밖을 나섰다. 수연에게 닭장같은 우리 집안을 보이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수연이는 비닐로 지은 비옷을 입고 샐쭉 웃어보이고있었다. 그 모양은 흡사 일찍 허물없이 사귀여온 딱친구인듯했다.     《가자, 우리 두만강으로 나가자. 이렇게 잔잔한 비가 계속되는 날엔 잉어랑 붕어랑 멸치랑 쏘가리랑 다 물린다더라. 옜다, 이건 네 낚시대, 요건 내 낚시대, 그리고 이건 고기미끼, 요건 지렁이, 히히.》     수연이는 내가 말할 사이도 없이 련주포를 쏘고는 특별히 나를 위해 준비한 낚시대까지 넘겨주는것이였다. 그러나 나는 우물쭈물했다. 춥고 비까지 내리는 날에 엉뚱하게 낚시질이라니, 그런데도 뜻밖으로 수연이의 《접대》때문에 싱숭생숭해나는 기분이 난처하기까지 했다.     《싫단 말이지? 낮잠이나 자면 떡이 생기니? 부지런하면 먹을것도 생기고 100점도 생기고…》     우리는 탁 트인 조약돌밭에 앉아있었다. 눈앞으로 청빛의 물살이 무겁게 꿈틀대고있었고 황둥오리인가 도요새인가 하는 새들이 비상을 하고 쏘련과 조선을 이어놓은 시커먼 철교가 두만강을 가로질러 길게 가로누워 침묵하고있었다.     아버지한테 배운거였다. 소녀는 구수하게 굽은 종주먹만큼한 두병덩이를 물살이 면면한 수면에 탁 던져놓고는 나의 낚시찌를 뿌려놓고 자기도 조금 떨어진 곳에다 낚시터를 정하고 앉았다.     《네가 쓴 작문을 울 아빠께 내용 곧대로 알려주었지.》     소녀의 말소리는 수면을 미끌며 바이올린소리처럼 타고 왔다.      《그래 뭐라던?》     궁금해서 물었다.     《……》     《눈물 흘리더라…》     《뭐야?》     나는 깜짝 놀랐다. 걔 아버지가, 눈물도 깍쟁일 걔 아버지가 울다니, 왜 울었단 말인가? 내가 더 묻기도전에 두눈이 둥그래진 나를 바라보면서 수연이 말을 이었다.     《울 아빤 혼자서 여덟식솔을 먹여살려. 아득바득 벌어서 일전 한푼 아껴쓰거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울 아빨 깍쟁이라면서 온역 피하듯 해왔지… 네 글이 너무 기특하다고 하더라. 막 힘이 난다고.》     낚시질은 생각보다 재미났다. 부끄러웠지만 수연이가 알려주는대로 동동이를 톡톡 치며 끌고가거나 동동이가 물속으로 쑥 꽂히거나 비스듬히 드러누울 때를 겨냥하여 채면 영낙없이 고기가 아가미를 찍힌채 낚시대가 휘도록 물속을 이리저리 요동질하다 끌려나오군 했다.     두만강하류에 이토록 고기들이 많은데 낚시질에 너무 늦게 미립이 트이는것이 후회되였고 수연이가 아무쪼록 감사하고… 철부지소녀애가 다 낚아내는 고기를 아버지는 한번도 낚아온적 없었으니. 그래도 아버지는 내가 잡아온 고기를 껍질을 발라 생회치고 말려서 기름튀기하고 어탕을 만들고 군불에 굽어내면서 술을 한병 또 한병씩 비워냈다. 시름시름 앓는 엄마때문에 낚아오는 고기를 렴치없이 《임무완성》하군 하는 아버지가 미욱스러웠지만 그래도 아버지이니 방법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귀신》이 되였다. 신새벽에 나가고 밤낚시질세계속에 깊이 빠져버렸다. 수연이란 소녀를 까마득히 잊은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였다. 물론 수연이가 더는 찾아온 일도 없지만 그는 언제나 학교에서 찾아와 《어제아침도 낚시질 나갔지?》 《숙제를 돌보면서 낚아라.》 하며 부탁들을 부지런히 해댔다.     수연에게서 배운 낚시질은 추운 겨울 얼음구멍에서도 할수가 있어 온 겨울방학을 두만강 얼음아이가 된건 더 말할것도 없겠지만 괴상하게 재미나던 일은 이듬해 여름, 그러니까 오곡이 홰치며 자라던 7월중순께였다.     그날 학교 교장이 5, 6학년의 제일 머리 큰 남자애들과 녀자애 몇을 불러들였다. 물론 내 키가 제일 컸다. 아쉽게도 우리가운데는 수연이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홍소병》이라는 붉은 완장이 왼팔에 껴졌다. 하늘에 오른 기분이였다. 다음은 날이 선뜩선뜩한 낫 한자루씩 차려졌다. 우리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강역에 나가 풀을 베여오라거나 산에 올라 싸리같은걸 베여오라면 큰일이였다. 뱀이 우글우글하니 말이다. 그뿐인가. 말모기, 등에, 날파리떼가 지천으로 날치니 말이다.     《이 낫은 혁명의 낫이다. 류소기의 를 고취하는 자본주의길로 나아가는 놈들을 베는것이다.》     《목을 베랍니까?》     교장의 말에 나는 낫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애들이 킬킬 웃어댔다.     우리는 교장의 뒤를 따라 마을 《소탕》을 떠났다. 집집이 울바자를 뛰여넘어 한창 검푸르게 기운을 쓰고 자라는 옥수수며 콩이며 오이, 고추 같은 곡식과 남새들을 용서없이 베여버렸다. 우리 집의 남새밭을 다칠 때는 앓는 엄마가 울었고 나도 울었다. 그래도 나는 낫질을 했다. 《혁명》을 하기때문이였다. 수연이의 집 앞뒤울의 남새밭이 제일 컸고 오리랑 가지랑 고추랑 참 탐스럽게 자라있었다. 어떻게 알고 달려왔는지 수연이가 눈가에 눈물이 가랑가랑해가지고 집앞에 서있었다.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수연이의 가냘픈 어깨와 흐느낌소리와 나에게도 쏠리고있는 눈길을 차마 서리찬 낫으로 벨수는 없을것 같았다.     《나 배 아파. 똥 누고 올겁니다.》     나는 낫을 던지고 바지춤을 쥐고 수연이네 울안을 벗어났다.     수연이네 집은 마을의 투쟁대상, 개조대상으로 지목되였다. 앞울, 뒤울, 산비탈, 강역에 일군 밭들이 몇자루의 낫에 쫄딱 망했고 돼지, 개, 거위, 닭들은 생산대의 양돈장에 빼앗겼다. 그러니 아주 하루새에 부자로부터 알거지가 된 셈이였다. 윤가는 긴 고깔모자를 쓰고 《반당반사회주의분자》라고 쓴 패쪽을 목에 걸고 조리돌림을 당했고 그뒤로는 집식솔들이 저마다 《자본주의꼬리》라는 패말을 걸고 줄을 지어 따라야 했다. 공작대라는 사람이 얼마나 지독한지 조금의 틈서리도 주지 않고 끌고다녔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시퍼런 대낮에 코를 곯던 아버지가 밤을 패며 투쟁대회에 참가하는가 하면 호박넌출, 오이넌출, 당콩넌출, 박넌출을 베여던지는데 제일 열성분자였다. 얼마 안가 아버지는 대뜸 벼락출세를 하여 《빈하중농대표》, 《빈협주석》으로 당선되였다.     우리 집에는 손님이 빌새 없었다. 현에서 파견해내려보낸 공작대, 촌장, 부녀주임, 민병련장, 교장, 지어 향파출소장까지 찌프차를 타고 들이닥치군 했다.      더욱 믿을수 없는 일은 아버지에게 돈이 많게 된것이다. 어렵잖게 1원, 10원, 몇십원씩 뽑아 개 한마리 사오라, 양 한마리 잡아라 한다. 그보다는 전에 본척도 않고 지냈던 사람들이 닭도 가져오고 마른 물고기, 고사리, 꿩 같은 《례물》을 들고 오는것이였다.     《엄마, 흥부가 알거지 되고 아버지같은 놀부가 부자되는 이 세월이 참 별났지, 안그래?》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어데 가서 절대 그런 말 번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머니는 몹시 겁이 많은 사람이였다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수연이네야말로 마을이 가난에 헤맬 때마다 꾸어주고 외상쳐주어 사람들의 기아를 제거해주었던 유일한 《은인》이란 느낌이 어린이 맘에 뿌리깊이 내린것이였다. 우리 집만 봐도 그러잖은가. 일하기 싫어하는 아버지때문에 거의 해마다 수연이네 량곡을 꾸어왔고 재작년 어머니가 병이 도져 현병원으로 갈 때도 결국은 수연이네가 돈을 선대해주었었다. 마을 회계에게마저 돈이 말라있던 그 세월에 유족하게 사는 《손톱눈》이 없었더라면 어머니는 어떻게 되였을가.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 발벗고나서서 수연이네 집안을 헐뜯고있다…     마을에서는 심심하면 《손톱눈》을 투쟁하는 대회를 열었는데 엄마가 예견한대로 학교에서도 《자본주의꼬리》인 수연이를 비판한다는거였다. 나는 이 주요한 정보를 아버지의 입을 통해 알았다. 내가 안달아난 마음을 눅잦힐길 없어하고있을 때 더욱 악연할 소식이 전해왔다. 래일, 수십리 떨어진 향중심소학교에서 전 향 중소학교 《자본주의꼬리》비판대회를 여니 모두 저녁전으로 각 소학교 《자본주의꼬리》대표인물을 향정부에 압송해야 한다는것이였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 수연이는 점심을 먹고 학교에 들어서는 즉시로 붙잡힐 판이였다. 그래, 수연이를 빼돌리자. 이것이 짧은 순간에 내린 결단이였다…     짐작했던바와 꼭 같았다. 대수사가 전개되였다. 향에서 내려온 군대와 공작대 그리고 교장과 홍위병, 홍소병들이 천라지망을 늘였다. 두만강변을 서캐 훑듯했지만 헛물만 켰다.     천만다행이였다. 수연이를 우리 집 뒤울안 다락에 숨겼으니 말이지 두만강변의 어느 원두막이거나 산의 나무숲에 피신시켰더라면 경을 칠번했다. 마을을 벌컥 뒤집혔으나 《빈하중농대표》이고 《빈협주석》이 사는 우리 집에 대해서는 의심할수도 없었고 언감생심 범접할 담도 없을거였다.     수연이는 우리 집 다락에서 옹근 한주일이나 피신해있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수연이 엄마가 알고 나의 어머니가 안다. 그렇지만 수연이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올수가 없는 사람이요, 나의 어머니도 아버지 눈치만 살필뿐 뒤울다락에 주의를 돌릴수 없는 처지다. 수연이는 다락에서 고통스러웠지만 잘 먹고 잘 잘수 있어 내가 마음을 놓을수 있었다. 개고기, 양고기, 물고기에 이밥과 찰밥에 기장밥까지 먹을수 있었다. 밤이면 모기가 문다고 모기장까지 쳐주었고 무서워할가봐 내가 다락 2층에서 자기까지 했다. 그때는 왜 그랬을가? 수연이를 어째 그토록 끔찍이 대해주었던가? 단 한가지, 사람은 량심이 있어야 한다. 그것뿐이였다. 수연이네 돈이 엄마를 살렸고 수연이네 쌀이 기아에 모대기고있던 우리 집을 불렸고 수연이가 나의 라태를 깨우는 낚시질을 배워주었지 않은가. 그러나 총명하고 말쑥한 수연이를 두고 언제 한번 이성을 느껴보았다거나 장래의 색시감으로 넘본적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천진한 소년이였다.     두만강은 쉼없이 흘렀다. 소박하고 동정심 많던 천진스런 시절도 흘러가고 막 매스터배이션을 식은 죽 먹듯해가는 열정의 소용돌이에 휘감겨들었다. 《문화대혁명》도 끝나고 손에 장알이 박히도록 일만하다가 귀향하여 농촌마을의 처녀총각이 돼버린것이다. 수연이네 집은 손잡이뜨락또르까지 갖춘 《부자》가 되고 우리 집은 다시 빈곤호가 되여버렸다. 그사이 나와 수연이는 동년때와는 달리 너무나 일반적인, 어쩌다 만나면 《어델 가니?》 라는 보통 인사말이나 하고 지나는 남남의 관계가 되여버린것이다.     수연이는 더는 동년의 그 고운 모습이 아니였다. 해볕에 그을다 못해 가무잡잡해진 얼굴색이며 할매손처럼 터실터실해진 손이며는 일밖에 모르는, 정이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촌녀의 대표형상이였다.     아버지가 빈정대는 말처럼 나는 《늦된 놈》이 옳았다. 스물네살을 먹었지만 련애대상에 대하여 고민할줄 모르고있었다. 내 생활권이란 기껏해야 두만강하류에서의 그런 무질서한 답습이였던것이다.     하류는 유유하고 묵묵했으며 고독하기까지 했다. 그런 강하구에 서서 탄식의 숨소릴 죽이곤 했던 나자신을 두고 언제까지 이렇게 오래오래 백치같은 사람이 되여야 하느냐를 스스로 묻군 했었다. 그럴수록 허탈하기만했고 머리는 텅텅 비여오고만 있었다. 그래 안그런가? 뭘 알고 고중졸업을 했단 말인가. 이토록 허무하려고 세상에 태여났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처박고 앉아있었다. 그럴 때마다 저앞 낮은 삼각지류 상공으로 깨액깨액, 삐삐삐삐 하고 우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눈길을 그리로 던져본다. 흡사 이 무언의 사내가 스스로 묶어놓은 어떤 완고한 기반에 목이 잠기여 흐느낌도 없이 통곡하고있는 느낌이였다. 그보다는 지금 이 시각도 마당가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이 아들에 대한 알지 못할 축복의 기도를 드리며 서있는 어머니의 가녀린 목줄기와 애달픈 마음이 안겨와서 이 넓은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주고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인가 나는 유유하고 번들거리는 하류의 숲속을 문득 생각해보게 되였다. 물속은 맑고 물의 흐름속도가 빠르나 부드러울것이요, 은빛의 생명체들을 품어가는 모체의 요람일것이라는것, 그 물속세계를 헤매고싶다는 즐거움에 앞서 이름못할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던것이다. 그러한 신비감이 차츰차츰 식어가고있을무렵,  나에게는 하나의 현실로 인한, 참으로 뜻밖의 이성이 오래 갈앉았던 쪼각 배런듯 불쑥 떠올랐다.     그날은 한여름의 석양무렵이였다. 노을빛에 수면은 금붕어의 등어리처럼 번뜩번뜩 빛났고 한낮의 폭양에 의해 풍기는 열기속에 도요새의 울음마저 나무숲이나 갈숲으로 잦아든지 오래다. 나는 아주 날렵하고 익숙한 솜씨로 미끼를 뿌리고 낚시찌를 손질하고있었다. 황혼무렵에 낚는 고기들이야 팔뚝같은 잉어나 붕어가 아니면 둔한 송어였다. 어둠에 가리우기전의 수면은 나붓기는 불꽃처럼 아름다왔다. 소녀의 묵독이요 요조숙녀의 미소다. 까닭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을 의심하며 고요한 수면에 붉고 푸른색의 동동이를 띄울무렵 물 끼얹는 소리와 쨍한 비명소리가 간간히 귀전을 쳐온것이다. 강변 수양버들이 음특하게 고개를 숙인 그아래 갈숲너머로 눈이 둥그래졌다. 노을 머금은 수면에 라체의 상반신이 초상으로 안겨들었다. 《아!》 짧은 경탄이 샜다. 수연이라니?! 폭포머리는 함함히 까만 빛발을 뿌리고 흰대접같은 젖무덤은 두개의 핑그빛 자그만 유두를 보이며 박통처럼 부풀어있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내 심장의 박동이 맹렬함을 느꼈고 그토록 음탕한 놈이 나라는 사실을 승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하등 필요없는 아버지의 쥐똥같은 젖꼭지를 바라보듯이, 내 배꼽을 들여다보며 연구하듯이 수연이의 상반신에 눈길을 걸고있었다.     그러면서 아주 간곡히,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하회를 기다리고있었다. 드디여 그녀의 늘씬한 허리가 물우를 솟구치면서 하신까지 드러났다. 그녀는 약간씩 흐느끼고있었다. 음모가 여실히 드러났다. 새까만 음모는 동년적 수연이의 하얀 필기장에다 연필로 마구 락서를 해놓은것 같은거였다. 그때의 울음먹던 모습이 지금 시각처럼 느껴졌다. 로동에 근육진 시허연 허벅지가 은밀스런 자궁을 황궁인양 받들고 미끈히 솟았다. 내 아래도리가 뻣뻣하다못해 돌덩이를 달아맨듯 불편을 느끼다가 그만 사정을 해버리고 스스로 부끄러운 나머지 슬그머니 주저앉아버리고말았다… 두만강에서 목욕을 하는 수연의 라체를 본후부터 텅 비고 녹쓸던, 실망과 자비의 언덕에서 끝없이 방황하고 갈앉고 추락하던 나의 심상에 변혁이 일었다. 그렇다, 저 녀자를 사랑하리라. 해볕에 그을은 얼굴과 장알박힌 두손이 두만강의 표상, 인상이라면 수연이의 옷속에 감추어진 라체야말로 풍족한 은밀의 생명체들을 키워가는 두만강하류의 속성과 같은것이리라. 우선 돌부처같은 마음속에 사랑부터 키워가라. 저 녀자를 사랑하고 저 녀자의 사랑을 받을수가 있다면 그 사랑이 어쩌면 이 둔해버린 사나이의 운명을 좌우지하여 망각된 앞날을 해빛으로 선사받을지도 모를 일이였던것이다.     나는 수연이의 하반신을, 밤속의 달빛같던 하반신을 사랑했다. 눈감으면 떠오르고 눈떠도 아른거렸다. 거기에는 살숲의 그늘도 있고 사막의 오아시스도 있으며 들판의 오곡향기 그윽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렇게 옹근 한해를 짝사랑만 하고있던 아릿하던 어느날, 문득 내 나이 스물다섯이라 수연의 나이 스물넷이겠는데 그녀는 왜 여적 독수공방하고있을가? 라는 자문에 후닥닥 놀라버리고말았다.     나는 고기를 낚기 위하여 지어 살얼음 낀 강에 들어서서 낚시가 걸리지 않도록 바닥의 돌들을 들어내고 풀줄기와 검불과 묵은 나무덩굴을 악쓰고 뽑아내고 언덕의 앉을 자리를 치고 미끼, 낚시찌, 동동이에 이르기까지를 열심히 노력하듯 수연이를 《낚을》 방법을 최대한으로 강구해야 했다.     동년적 잠만 몰아오던 궂은비 내리는 낮에 수연이가 낚시대 두개를 들고 우리 집을 찾아왔던 일이 푸른 무늬 간 동동이처럼 떠올랐다. 나는 흥분을 했고 용단이 섰다.     오후부터 날씨가 흐리기 시작하더니 저녁무렵을 잡아 갈꽃같은 비살이 부드럽게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박동하는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밖을 나섰다. 될수 있을가? 사랑의 성패감이 임습하면서 수연이를 국경선너머로 비상하는 백설의 고니로 우상시켜오고있었다. 그럴수록 나자신이 졸렬하게만 느껴지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조금후 나는 높뛰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수연이네 앞마당을 들어서고있었다. 빨래줄에 이불안을 걷고있던 수연이와 정면으로 맞띄웠다. 수연이의 눈길이 내 손에 쥐여진 두대의 낚시대에 와 걸리며 놀라운 빛을 반짝이였다.     《가자, 두만강으로 나가자. 이렇게 잔잔히 비가 계속되는 날엔 잉어랑 붕어랑 멸치랑 쏘가리랑 다 물린다더라. 옜다. 이건 네 낚시대, 요건 내 낚시대, 그리고 이건 고기미끼, 요건 지렁이…》     동년적 수연이가 나에게 하던 말 그대로 옮겼다는걸 난 잊지 못하고있었다.     우리는 강하구의 얕은 언덕에 앉아있었다. 먼 바다가 녀인의 부른 배에 띤 푸른색 비닐띠처럼 안겨오고있었다. 거기로 하류가 뛰여가고있다. 수면우로 동동이 둘이 나란히 떠있었고 물촉새 한쌍이 수양버들가지에 앉아 삑삑, 삑삑 하고 다정히 사랑을 주고있었다.     《수연아, 나 죽고싶다.》     찾고찾은 첫마디였다. 녀자의 두눈이 똥그래지더니 이내 까르르 웃어버린다. 난  결이 난 나머지     《내가 죽으면 속 시원컸지? 너…》     하고 버럭 고함까지 질렀다.     《콱 죽어라! 이 두만강에 뛰여들어라. 고기밥이 되구말게스리.》     그녀는 뾰로통해서 내쏘았다. 정말이지 뜻밖이였다. 내가 죽기를 원하는 수연이라니?! 억이 막혔다.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악만 받치다가 막 일어서려는데      《네가 죽으려면 나와 함께 죽자!》     라는 뜻밖의 비감서린 음성이 나의 심장을 틀어쥐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고 백치처럼 녀자의 얼굴을 들여다볼뿐이였다. 나의 검고 툭 튀여나온 관자놀이를 일별하면서 락심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나 너 이러는게 마음에 안들거든. 하긴 그래. 우린 이 낳은 희생품이지. 모든 꿈을 잃었거든. 그렇다고 해종일 세월만 탓하면서 앉아 늙을수야 없잖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뭘 좀 하고프다고 생각되는 일땜에 노력해보고싶잖아?》     《그래 하고픈 일 있지. 널 사랑하고픈 일…》     어떻게 이런 말이 튀여나갔는지 몰랐다. 죄를 지은것처럼 목을 움츠러뜨리긴 했지만 그 시각 동년적의 수연이를 다락에 감춰두고 밤낮을 《경위》서던 일이며가 눈앞에 선해와서 일루의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가슴이 설레였다. 수연이는 이윽토록 강물소리를 들으며 말이 없었다. 드디여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경신향정부에서 사업하는 총각의 청혼을 억지로 물리치고 아버지에게 뺨까지 맞았다는것, 엊그저께 훈춘현우전소에서 사업한다는 총각한테서 청혼이 들어왔는데 이제 나이때문에 더 미룰수 없다는 대목까지 들었을 때 나는 눈앞이 캄캄해나며 현기증까지 일었다.     《수연아, 날 살려다오. 네 나 버리고 가면 난 죽는다, 응? 수연아…》     난 비루하게 나왔다. 눈물을 찔끔찔끔 짜면서 구걸했다.     《네가 이렇게 나오니 나도 별수 없구나. 이렇게 하자꾸나. 마을소학교에 교원 한명 수요하는데 약 반달후 시험을 친다더라. 시험내용은 어문은 작문을 쓰고 수학은 초중 1학년교과서 내용까지를 범위로 한대. 그때 나도 치를건데 이번 기회에 네가 을 하면 내 네게 시집을 가마.》     수연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표연히 가버렸다.     나는 넋잃고 두만강만 바라보았다. 세상에 강이 많고많아도 두만강은 단 하나이다. 난 두만강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난 내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두만강에 기도했다.     《주십시오. 이 못난 놈에게 그대를.》     나는 이 기회가 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도박》이란걸 명백히 알고있었다. 작문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수학은 소학부분의 분수응용문제부터 복습해야 했다. 눈앞이 캄캄해났지만 높은 언덕이나 강톱에서 저 바다로 묵묵히 흘러드는 하류의 번뜩임이나 뽀얀 물안개를 바라볼적마다 두주먹이 불끈 쥐여지군 했다. 나는 코피를 쏟았다. 소학교 선생님들을 찾았고 몇십리를 걸어 중학교재를 얻으러 다녔다.     모여온 수험생들이 어떤 꼴이란걸 손금 보듯했지만 수연이만은 무서웠다. 결과는 뻔했다. 수연이가 1등이였다. 맥이 탁 풀렸다.     나는 옹근 열흘이나 두문불출했다. 음식맛도 잃고 밤에도 자반뒤집기를 했다. 얼굴은 창백하고 온몸의 힘줄이 쪽 빠져버린듯 사지가 나른해났다. 절망의 변두리에서 방황하고있을 때 아닌 밤중에 홍두깨런듯 마을 소학교장이 우리 집으로 불쑥 들어섰다. 나는 그 어떤 직감이 머리를 쳐들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래일부터 학교에 출근하오. 1학년 학생들을 맡아 ㄱ, ㄴ, ㄷ, ㄹ부터 시작해 배워주오. 허허, 축하하오.》     나는 울었다. 목 긴 황둥오리처럼 꺼억꺼억 울었다.     《엄마가 죽었나, 울긴…》     교장이 말려서야 교장의 손을 틀어잡고 울음을 그쳤다.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은공을…》     기실 난 속으로는 《수연아, 이제야 어쩌겠니?…》 하며 쾌자를 부르고있었다.     학교에 출근하던 날에야 나는 수연이가 그예 《과학농예사》가 되련다며 교원자리를 나에게 양보한 일을 알게 되였다. 너무나 미안했고 쑥스러웠다.     한치마폭 달빛이 넘쳐나던 그날 밤, 그러니까 소학교원이 되던 이튿날이다. 그녀 생각이 간절하면서도 부끄러워 만날 엄두를 못내고 쩔쩔 매던 나에게로 수연이의 쪽지가 날아들었다. 너무나 뜻밖이였다.     《저녁 낚시질 나가자. 그 낚시터.》     나는 온몸을 전률했다.     달빛아래 하류가 길게 드러누워있었다. 풀빛도 양류의 설렘도 없지만 하류는 수연이의 하신처럼 우유빛이런듯 번들거린다.     《나 결정했어. 너한테로…》     《……》     나는 대답대신 길게 숨소리를 그었다.     수연이는 나의 두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지친듯 잔디언덕에 스르르  누워버렸다. 나는 그녀를 탐욕스레 내려다보았다. 늘씬한 허리와 긴 다리가 요람처럼 느껴졌다. 드디여 나의 몸이 거칠게 기여올랐다. 그녀는 순순히 내맡겼다. 두눈가에 달이 뜨고 입가로 행복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그리고 풍만한 가슴으로부터 난생처음 맡아보는 형언할길 없는 냄새가 피여오르고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처녀의 냄새일것이였다. 머리가 아찔하도록 유쾌하고 아릿한 흥분을 갖다주는 향기였다.     《문화대혁명때 난 너의 집뒤 다락뒤주에서 한주일이나 숨어있었지. 무서웠지만 잘 먹던 일이… 그리구 무사했고… 난 벌써 그때부터 널 나의 랑군님으로 점찍어두었지 뭐야… 호호.》     우리의 사랑은 열렬했지만 녀자측의 강렬한 반대를 받았다. 수연이는 종종 우리 집 뒤울 다락에서 잠을 잘 때가 있었다. 동년적에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속에 몸 감추었던 다락뒤주, 오늘은 아버지 매를 피하여 몸 감추어야 할 다락뒤주가 되다니… 털면 먼지밖에 없는 건달놈새끼때문에 우리 수연이가 망쳤다고 욕설을 퍼부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강턱의 얕은 언덕에 앉아 강물의 거침없는 흐름처럼 사랑을 나누었다.     우리는 결혼을 위하여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었고 삑삑삑삑 하고 물촉새가 울었다. 외투를 펴고 알몸이 된 우리는 흥분의 극치에 다달아 모기도, 강바람도 모르고 거칠게 헐떡이고있었다. 이따금씩 간간히 기러기의 울음소리 같은것이 들려오고있었고 유치원애들의 박수소리 같은 소리가 중부리도요의 날개짓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수연이에게 태기가 들어서기도 전에 전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수연이 아버지가 두만강에 걸린 그물 빼내러 들어섰다가 수중고혼이 돼버리고만것이다. 그물 한코 째지는게 아까와 깊은 물에 들어섰다니 결국 깍쟁이 심리가 《손톱눈》을 해친거였다. 우리의 약혼을 악쓰고 반대해나선 수연이 아버지가 《룡궁》으로 간것을 두고 나는 물론 수연이앞에선 무조건 비감에 싸여있었다.     《가시아비를 잃었으니 결혼때 돼지는 뉘 잡겠소?》     나의 말에 수연이는 더 서럽게 울었다.     우리의 결혼날자는 동지달 초이레날로 정해졌다. 아버지가 누구보다 기뻐했다. 맨날 술이다. 그러다가 무서운 소식이 터졌다. 아버지가 술에 취한채 두만강얼음구멍에 빠져 수중고혼이 되였던것이다.     《아버님을 잃었으니 결혼날에 북채잡고 술타령, 까투리타령은 뉘 불러요.》     그 말에 난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울지 말아요. 와 가 룡궁에서 만나 인간세상을 담론하며 즐거운 락을 누려갈거죠.》     우리는 서로 어이없이 웃고말았다. 이게 바로 인생이고 연분이란건가.     교장은 나를 《떨떨이선생》이라고 불렀다. 안해의 치마밑에서 설설 기며 산다는 뜻이였다. 나는 교장이 미웠다. 린색하길 그지없다. 나는 교수를 잘했지만 교장은 학기마다 《ㅏ, ㅑ, ㅓ, ㅕ》를 배워주라고 했다. 난 6학년을 배워주고싶었다. 후에 안해가 닭알 열알을 교장집에 《선물》하고서야 난 1학년담임을 벗어나게 되였다.     안해는 나를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곧잘 핀잔준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봉건통이란 뜻이다. 안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지어 걸죽한 욕설을 퍼부을지라도 난 대꾸 한마디 없이 욕설을 들어만주거나 아니면 술쩍 피해버리군 한다. 나는 나의 이런 성격이야말로 군자답다고 자처하고있는터였다.     두만강은 쉼없이 흘렀다. 그러나 예전의 강이 아니였다. 맑고 푸르던 강이 언제부턴가 혼탁해지기 시작한것이다. 조선 청진시에서 흘러든 화학성물질이나 중국 연변의 석현종이공장 같은데서 흘러든 오물들이 그거였다. 그토록 흔하던 민등뼈동물들은 구경하기가 어려웠고 고니같은 희귀한 새들은 볼수조차 없었다.     안해는 나이 사십대에 접어들면서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 그물같은 잔주름이 널렸다. 이른아침에 영근 풀섶이슬을 모르고 풀에 손대기 싫었지만 건들건들 휘파람으로 일터에서 돌아오는 안해를 맞고 저녁 설겆이도 해주고 《밉다가도 고와져요》라는 평을 들어보는 나다. 터놓고 말해서 그래야 안해의 이불속을 기여들수가 있었던것이다. 그래, 그 둥글고 부드럽고 긴 하반신의 생존이 나의 소유라는게 얼마나 신비스럽고 다행스런 일인지 나는 안다.     《영구한 사랑은 하반신에 있나보우.》     《무슨 뚱단지같은 철학이야요?》     《강하류가 깊고 넓어야 흐름폭이 거창할게 아니요. 하류가 좁고 옅어 자갈이나 나무등걸 같은것이 보인다면…》     《강하류를 녀자의 허벅지에 비기다니요?》     《수연의 얼굴은 변했지만 하반신이야 더욱 튼튼해졌고 빠졌질 않겠소. 난 수연의 하반신을 사랑하오.》     나는 자신의 라태함을 잘 알고있었지만 고칠수 없는 놈일거라는걸 알고있었다. 그게 나를 괴롭혔다. 나는 왜 이런 사내로 태여났을가. 부지런한 인간과 라태한 놈을 인간세상에 다르게 만들어내놓은것도 조물주의 탓이겠다. 내가 알바 뭐야. 개가 건너다녀도 도움이 된다는 5월의 논밭이나 젖먹이애가 울음소릴 내도 가을걷이에 흥이 난다는 계절에 발길 하나 손끝 하나 내밀줄 모르고 책이나 붙잡고 방구석에 나뒹굴고 코고는 멀쩡한 이 남편을 두고 수연이가 얼마나 골이 났으랴. 말하라치면 직사포였고 끈질기고 내밀성 드센 녀자였지만 왜소하고 선비냄새가 다분한 남편을 두고 언제부턴가 원망 한번 없이 모든것을 그러려니 하고 여기고 버텨보는 그녀였던것이다.     남들은 우릴 거꾸로라고 말했다. 남자란것이 모든게 다 약한데 녀자가 욕심이 세고 괄괄한 아낙이란다.     그렇다, 나라는 놈은 왜 이 꼴이지? 놀고 또 놀아도, 먹고 또 먹어도 달랑깨비마냥 비쩍 마르기만하고 안해는 일하고 또 일하고 찬물만 꿀떡꿀떡 들이켜고 된장에 생미나리 같은걸 뚝뚝 찍어먹어도 몸뚱이만 쇠같다.     《방귀 뀐 놈이 구리다 한다》는 말은 대통령의 연설을 초과한다. 부엌데기처럼 해가지고 다닌다, 집안이 돼지굴같다, 국이 짜다, 못사는거 다 네년 탓이다… 갈수록 학생수가 줄어들어 학교가 망가진다는 말이 나돌아서부터는 더 그랬다. 교원직에 있다고 농포안해를 은근히 얕잡아보아오던 긴 나날들이였건만 안해는 그 모든것을 받아안았으며 그보다는 남편이 지식인이라고 뭇아낙네들앞에 자랑하고 자호감까지 가지군 했었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드는 돈은 아름찼다. 소학교때는 모르겠던데 중학교에 자식 둘을 보내고나니 학비가 엄청났다. 뭐 들을라니 고중에 가면 더 험하고 대학에 가면… 류학 보내자면… 자식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눈앞이 다 캄캄해난다.     《소처럼 머리만 틀어박고 끙끙 일만하고 머리를 못쓰니까 이 집이 서발막대 휘둘러 걸릴게 없잖아…》     《집안팎일 손톱 하나 까딱 안하구있다가 그딴 소리 지를 면목 서나보죠…》     《자식들이 내 머릴 닮아서 총명한것만도 대득이야.》     《……》     가난은 우리 부부사이에 간단없는 다툼질을 가져다주었다. 그럴 때마다 남들이 왁살스럽다고 그러는 안해, 수연이쪽에서는 늘 지고만다. 그리고는 집안사람들 몰래 가만히 눈물을 흘리군 하던, 밤 깊도록 무언가 깊은 고민에 자반뒤집기를 하면서 두만강물소리에 귀기울이던 안해였다.     우리 집에서 안해가 더욱 《죽일 년》이 된건 그 이듬해 두만강하류가 국경선 삼국의 언덕을 뭉청뭉청 물고뜯던, 강우량만 잔뜩 상승하던 계절이다. 원래 병약하던 로모가 자리에 드러누웠다. 페결핵이였다. 향병원의 의사는 두달을 못넘긴다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가끔씩 토혈하고 파랗게 질긴 얼굴을 들어 이 아들을 올려다볼적마다 그 눈망울에 말 못할 숙원과 애달픔이 차있는것을 력력히 읽어낼수가 있었다. 가난하게 사는 자손들을 두고 때이르게 천국에 갈수 없노라는, 이 아들의 살림이 펴이고 손주들이 잘되는것을 보고 가야겠다는 그런 간절함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안해는 돼지, 개, 게사니, 닭까지 죄다 팔아서 돈을 만들었다. 겨우 로모의 생명을 칠성판에서 구해냈으나 돈은 약 사고 하는 치료비에 밑빠진 항아리였다. 그 무렵, 나에게도 액운은 떨어지고야말았다. 마을 소학교가 학생고갈로 인해 부도난것이였다. 나의 교원생활이 한창 꽃같이 피여나고있을 계절에 때이르게 찬서리가 내릴줄은 뜻밖이였다.     《어쩌겠소. 선생에 대해서 우에선 다른 표시가 없더구만. 농사를 짓는것두 살아가는 길 아니겠소? 자, 이 술로 서로의 갈길을 축복합시다…》     교장을 따라 향중심소학교로 《벼슬》 가는 교원들과 하강(下崗)된 우리 몇은 웃음과 울음속에 폭음을 했다. 아, 이 일을 어머니가 안다면, 안해가 안다면, 자식들이 안다면… 배신감과 억울함 그리고 자비감으로 몸을 떨었다… 밤은 악마의 날개를 한껏 펼쳤고 그아래로 먹빛의 강이 무섭게 꿈틀거린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목놓아 흐느꼈다. 그때… 아, 나의 여윈 어깨를 잡아주는 힘이 느껴졌다. 안해였다. 우리는 삼각주의 얕은 언덕에 오래오래 앉아있었다. 안해는 삶의 조폭함에 한껏 짓눌려버린 남편앞에 오래동안 계획했던것이라기보다는 무정한 현실에 대처해 고민하고 시도해온 앞날에 대한 도전을 솔직히 토의하고 정리하고있었다. 그러는 수연이앞에 언제나 자신만은 철학적이고 인위적이며 과학적이라던 나의 고전은 어리석음에 불과한것이였다고, 현실에 대처할줄 아는 삶적분석과 삶에 대처한 행위자가 곧 수연이라는 점에 놀라고 머리가 숙여진것이다. 그는 자신의 말에 흥분하고있었고 나는 감동하고있었다… 안해는 두만강을 이야기하고있었다. 주요하게 하류에 대해서였다. 두만강하류는 곧바로 동해와 합수되여있지만도 좀 섞였을지라도 짠물보다는 민물이며 거슬러올라갈수록 완연한 민물이라는것, 이때문에 수많은 바다고기들이 알쓸 계절을 놓지지 않고 찾아들어 후대를 번식하는 요람이 되는것이다. 송어를 례들어보자. 송어알은 불색을 띤것도 있고 핑크색을 띤것도 있으며 날이 감에 따라 포도색을 띠기까지 하는것이다. 아름다운 색반이 아니고 탐스럽고 향기로우며 알갱이 정도가 큼직하여 다른 물고기들이나 지어 민등뼈동물들까지 악쓰고 먹으려드는 식종에 속하는건 말할것도 없다. 송어는 후대의 번식률을 높이기 위해 매년 5월에 접어들면 기후와 서식환경이 맞춤한 두만강하류를 거슬러오르는것이라고 한다. 그런 후대번식을 위해서라면 송어들은 수천리물속을 밤낮 가르는데 민물은 하류를 찾아 알을 쓸고 원만한 려행을 다한 다음이면 날개가 다슬어 끊어지고 찢어지고 몸뚱이가 군데군데 살이 떨어지고 피멍이 들며 죽기까지 하는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거기다 비하면 인간은 너무나 단순하고 라태하다. 할아버지가 부치던 밭을 아버지가 부치고 그담엔 그 아들이 부치고… 이런걸 《세세대대》라고 부른다. 《세세대대》는 조상이 건립한 마을에서 살아왔고 그들이 짓고 살던 집에서 살며 그들이 씻고 닦으며 쓰던 그릇들을 사용한다. 《세세대대》는 조상들이 쓰던 땅을 쓰고 강, 호수… 그렇다. 그 터를 쓰고 산다. 그러니 삶의 권안에서 개미 채바퀴 돌듯하여 그 방식이 너무 단조롭고 딱딱하며 신맛이 날 정도가 아닐가. 계절따라 자유자래로 사는, 짠물과 민물의 리용을 활성화하는 송어를 그래 찬탄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러고 볼 때 인간들도 례외가 아니다. 고향마을을 떠나 산에 올라 숯을 굽고 고사리를 꺾거나 현소재지나 도시로 들어가 콩나물장사를 하여 돈을 벌수도 있다. 돈만 벌수 있다면, 깨끗한 돈만 벌수 있다면 그 어데든 갈수가 있는것이다. 이대로 앉아서 땅에 모든걸 맡기고 산다면 미래와 경직된 인간이요, 락엽같은 생일것이다. 그래, 가야지. 랠 아침 뻐스 타고 훈춘시로 들어가겠어요. 번영하는 병경도시 훈춘시에서 세방 잡고 서시장에서 콩나물이나 남새를 넘겨받아 장사할거야요. 그렇게 장사폼이 잡히면 매대 하나 사서 통이 크게 벌어볼거야요… 별밭이 펼쳐졌다. 금싸락들이 무수히 떨어져서 강물이 빛났다.     안해가 떠나던 날 아침, 나는 뻐스에 오르는 안해의 뒤모습을 묵묵히 일별했다.     《당신!》     안해의 갈린 목소리가 돌아서는 나를 불러세웠다. 눈확이 푹 꺼져버리고 관골이 튀여나온 안해의 얼굴이 처참해보였다. 울고있었다. 눈물이 찰랑 흘러내리고있었다. 손을 젓고 돌아선다. 여윈 얼굴이여도 실팍지고 근육진 하반신이 나의 애처로와진 마음을 다독여오고있다.      안해가 가고난 한주일은 밤마다 악마의 밤이 되였고 날마다 옥중의 날이였다. 너무나 그립고 그리웠다. 늘씬한 안해의 허리가 꿈에 황둥오리처럼 날아오고 날아갔다. 《쿨룩쿨룩》하는 로모의 기침소리가 찬 집안은 관속처럼 느껴지기만했다. 꼬빡 두주일만에 나는 훈춘행뻐스에 몸을 실었다.     서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팥죽처럼 끓고있었다. 그속에서 안해를 찾는다는것은 전혀 가망성이 없어보였다. 남새를 파는 곳을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렸지만 안해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팠지만 먹고싶은 생각이란 조금도 없었다. 안해를 못찾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오후 한시 반 뻐스를 잡아타야 한다. 차비밖에 없다. 머리를 떨구고 락망에 싸여있을 무렵, 얼핏 시야로 한 모습이 날아들었다. 안해였다! 하마트면 소리까지 지를번했다. 구석쪽으로 안해가 벌려놓은, 얼핏 보기에도 싱싱한 남새주위로 신사타입의 남정 몇지 값을 흥정하고있었다. 속이 세게 활랑대고있었고 찡, 눈굽이 젖어들었다. 나도 몰랐다. 왜 그런지를. 어둑새벽에 남새를 넘겨받아 밥술도 온전히 뜰 사이없이 어둠녘까지 줄창 사구려에 혼신을 달굴 안해, 그 안해를 너무 고생시킨다는, 그 안해를 도시의 구석에다 외롭게 버렸다는, 그 안해를 어중이떠중이 남정들의 웃음속에 야유와 조소속에 빠뜨리고있다는 죄책감으로 핑글 더운 눈물이 고이는것이였다. 그러나 그 동정속에 깊이 빠질수록 사랑하고픈 안해를, 그곁에 가닿아 《여보!》 라는 말 한마디 건네볼 용단이 서질 않았다.     《너, 너 석룡이 사구려를 부르며 살어, 이 못난이…》     이런 무형의 야유가 쇠몽치로 되여 뒤통수를 후려치는것이였다. 해질녘까지 나는 안해의 뒤모습에 젖어있었다.     그래도 어둠이 좋았다. 남들이 알게 뭐야. 안해를 누님인양 어깨를 붙이고 거리를 거닐었다. 얼마나 다정했는지 웃고 떠들기도 했고 뻑 하고 안해 볼에다 입맞춤까지 했다. 거리는 천당같았다. 산데리야색등이 교묘한 조소를 날리고 수은등과 섬광등들이 금전의 위력을 턱대고 뻐기고 색스폰소리에 녀가수의 흐느러진 노래가락에 주정뱅이들과 신사들이 저마끔 고아대고있었다.     시원한 맥주 한고뿌에 고소한 양고기뀀 한대도 참고 군침만 넘겼어도 즐거웠고 행복했다.     밤이 깊어 우리는 우리의 《굴》로 돌아왔다. 8평방메터짜리 세집이였다. 창호지같이 누르끼한 전등불아래 우리는 널통같은 집안구들에 이불 한짝 편채 피곤한 몸을 내던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서로 흥분을 하기 시작했고 사랑의 도가니에 빠져버리기 시작했다. 수연이의 하반신은 여전했다. 매끌했고 보드라왔으며 높았고 요람인듯 느껴져 정신을 아뜩하니 죽여주고있었다.     《두만강은 여전하죠?》     그녀의 그윽한 눈속에 유유히 하류가 흐르고있었다.     《그렇소. 맑고 푸르오.》     《강의 최고리상이 뭔지 아세요?》     《뭔데?》     《바다로 흘러드는거죠. 바다는 행복한 세계, 격정의 세계로 강은 이를 위해 쉼없이 흘러요. 바위에 부딪치고 소용돌이에 휘말려들면서 얼고 폭우에 견디면서도 조금의 탓이나 비관이 없어요. 강을 이룬 수천수만개의 물방울들이 다 그래요. 어느 하나의 물방울도 쉬려하거나 어느 물방울의 덕을 입으려 하지 않지요. 이게 바로 강이예요. 두만강의 맑고 푸르름이 여기에 있고 폭넓은 하류의 유순하면서도 드팀이 없는 흐름이 여기에 있잖을가요. 우리 인간들을 두만강에 비길 때 우리는 얼마나 리기주의적이고 파렴치하기까지 하며 또 퇴페적인가요? 더럽고 춥고 피땀을 흘리는 일은 하려 하지 않으며 영예롭고 호의호식하는 인간이 되려 하는 인간, 남을 시키고 리용하여 자기 배를 불리는 사람, 남의 등을 두드려 간을 내여먹자고 드는 인간들이 욱실대는가 하면 자포자기하고 비관실망에 젖어 어떤 일에 어째보지두 못하고 주저앉아 무골충이 돼버리는 인간들이 얼마나 가소로운가요… 그래요, 난 언제나 일에 지치거나 자존심이 상하던가 비관에 젖어들 때면 자연 두만강을 생각하게 돼요. 두만강을 생각하노라면 사지에 뻐근히 힘이 생겨나고 심장이 뛰고 정신이 분발되군 하지요…》     나는 안해의 근육진 몸뚱이우에 업혀있었지만 어째보지도 못하고 사지가 풀려있었다. 참 멋적었고 부끄러웠다. 한숨만 푸푸 토하다가 김빠진 공처럼 굴러내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긴 나날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다. 대체 난 어떤 인간형에 속하는걸가? 어찌 보면 안해가 말한, 그 듣기만해도 지긋지긋해나는 부패한 인간형에 속하는 같기도 했다. 어느날엔가 드디여 난 그 어떤 이름할수 없는 공포감속에 떨기 시작을 했다. 도저히 짐작키 어려웠고 형언할길 바이없었다. 무시무시한 정신이상증세가 틀림없었다. 두만강하류가 급격히 붓는다. 온통 흙탕물이다. 번개가 장검을 휘두르고 우뢰가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며 창살같은 비를 퍼붓는다. 사나운 파도가 시작된다. 내가 모는 고기배가 뒤번져진다. 《손톱눈》이 내 배꼽을 뽑으며 웃어제낀다. 먹빛 물결속이 깊이 잦아든다… 그렇게 헛소리를 내지르면서 한주일을 혼수상태에 처박혔다가 깨여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여버렸다. 그래, 수치스러울게 뭐란 말인가. 어떤 놈은 인간이고 어떤 놈은 쌍놈이란 말인가. 황제는 황제대로의 한숨이 있고 백성은 백성나름의 홀가분이 있는거다. 관직을 가진 놈들은 그 놈대로의 싫은 짓과 질투와 시기의 긴장한 삶이 있는거고 땅파먹고 사는 놈은 역시 잘살자고 버둑질대는 그런 삶이 아닐가. 함께 인간세상에 태여났다는 점이 평화로운 감득일 때 살기 위해 서로 다른 힘을 써감이 뉘가 뉘를 비웃을 자격이 있겠는가. 그런 야유적배심을 가진자야말로 비렬하고 퇴페적인간이겠다…     인간세상이 어둑새벽처럼 안겨온다. 안해가 나에게 낳아드린 새 인간세상이였다. 새벽이니만큼 조금 흐린 하류처럼 투명하진 못해도 어떻게 어디로 해서 노저어가야 하는지를 가려볼수가 있는ㄱ서이였다. 그렇다. 나는 돼지를 길렀고 닭, 오리, 게사니를 기르게 되였다. 부끄러울게 뭔가. 내 삶을 내가 사는데. 량반틀을 차려 살다간 로모도 굶겨죽이고 아이들 공부도 못시키고말텐데. 오, 안해 홀로 지쳐죽이겠다… 나는 두무남짓한 수전도 다루었다. 정작 시작해보니 못할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맘놓고 공부에 접어드는게 좋았다. 로모도 쿨룩쿨룩 기분이 난다 그러신다.     그해 겨울은 주먹만큼한 눈이 터져 온통 푹신한 흰세계속이였다. 내가 지은 량곡을 헛간에 쌓아놓고 기지개를 켜며 겨울을 보냈다. 개짖는 소리, 돼지 우는 소리, 오리 깃터는 소리, 게사니 목빼는 소리, 닭이 홰치는 소리가 모두 내것이였다. 안해에게도 치하의 편지를 몇번이나 받았다. 얼마나 멋진가. 이런 호방한 삶의 풍격을 안해가 가르쳐준것이란걸 차츰 잊으며 자아만족에 혼신을 앗길제 울긋불긋 가을을 타고 안해가 문뜩 나타났다. 영 돌아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백오십리밖의 훈춘시로 가 옹근 두해 반을 고생하다 돌아온 셈이였다. 그새 그립고 그리워 달포사이를 누비고 다니고싶었던 내가 아니던가. 왔다니 무한히 즐거웠지만 한편 속이 비여오기도 했다. 병석에서 항시 칠성판을 건너다보는 로모와 다 큰 아이의 공부 뒤바라지를 하려면 얼마나 막연한 금액이 수요될지 모른다.     《영 내려오고말았지요.》 라는 뒤에는 해석도 타산도 더 없었다. 안해는 굳어져있을뿐이였다. 그토록 명랑하고 쇠소리나던 그제날의 수연이가 아니였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연지곤지 찍고서     렐 모레 온다나     어화둥둥 내 사랑     레시바를 귀에 꽂고 앉아서 팝송에 맞춰 발장단을 치던 내 만족했던 생활이 끝나가고있음에 나는 차츰 처참해지고있는것이였다. 나는 내가 끝없이 끝없이 추락하고있다는 자비감에 몸을 떨었다. 밤이 그 점을 증명해주고있었다. 하류의 물소리 들으며 향기 맡던 밤, 마주보며 웃고 얘기하던 밤, 키스하며 숨막히던 밤, 풀밭에 뒹굴던 밤, 신혼의 야릇하던 밤, 아기자기 사랑의 밤들이 그 얼마나 황홀했던가.  나에게 그런 밤들이 다시 있을가. 수연이의 얼굴에서 그걸 예고받고있었다.     하나 또 하나의 밤속에 나는 살아있었으나 죽어있었다. 내 몸에 달려있는것들이 시퍼렇게 멍이 든채 역할들을 발휘 못하고있다. 내 욕망은 곁에 누운 안해의 비파같은 한숨소리에 의해 꺼지고 내 에네르기의 발동기들도 안해의 시퍼런 불을 머금은 눈살에 의해 죽어버린다. 《손톱눈》, 수연이의 아버지가 아이고 아이고 《배고프다》 울며 날아오고 《주정뱅이》 나의 아버지가 미친듯 웃어제끼면서 긴 날개로 시커멓게 날아간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밤들이였다.     안해가, 옹근 한주일동안이나 수인같던 안해가 박씨같이 하얀 이를 드러내여 활짝 웃었다.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성공에로 향한 확신에 찬 발로였다.     안해는 나뿐만아니라 키 넘는 아들딸까지 데리고 산책나섰다.     저녁노을에 온 삼각지가 귤빛으로 물들고 평화를 포인트하며 해오라기가 노을빛을 마시고 날아옌다. 해오라기뿐이 아닌 꼬마물떼새, 흰목물떼새, 중부리도요, 민물도요, 원앙, 청둥오리, 황오리, 왜가리, 고니, 기러기, 농병아리 등 수십종의 철새와 나그네새들이 먹이를 쫓아 하류의 삼각지를 점령하고있었다.     우리 네식구는 하류가 유리처럼 내려다보이는 삼각지의 낮은 언덕에 가지런히 앉았다.     건조한 9월의 저녁바람이 대기를 꽉 채워 불었다. 강가의 작은 벌레나 물고기나 조류도 살이 오르고 겨울을 날 생물들은 벌써부터 겨우살이준비에 착수했다. 식물은 뿌리를 더욱 견고하게 대지에 박고, 먹이를 쫓는 동물들의 싸댐도 한층 분주했다. 각양각색의 목청으로 새떼들의 우짖는 소리와 날개치는 소리가 강변 갈대밭을  덮는다. 저 새들의 힘찬 비상이 이제 여기 두만강하류 삼각지로부터 다시 망망한 바다로 이어지리란걸 우리는 잘 알고있었다.     인간들의 삶의 방식도 저 새처럼 부단히 이동이 되느라면 더 경험이 넓어지고 깊어길것이며 생활도 보다 윤택해질것이라고 안해도 말하고있었다… 아니, 새들이 우리에게 말해오고있는거였다. 우리 철새들은 여름에 그 한대의 추운 지방에서 번식하여 가을이면 지구의 반을 가로지르는 려행길에 오른다. 떠날 때를 안다. 얇은 해살아래 파르스름하게 살아있던 이끼류와 작은 떨기나무가 재빛으로 시들고 긴밤이 저 북방의 찬바람을 몰아올 때쯤이면 려정의 차비를 차린다. 여름동안 부쩍 큰 새끼들도 날개를 손질하며 천봉만학을 아찔히 굽어보며 헤가를 하늘길을 필연적 려행길로 아는것이다.     처음 떠날 때 우리는 무리를 이룬다. 그러나 창공으로 가로질러 쉬지 않고 날 때는 다만 혼자 날뿐이다. 마라손선수가 42.195키로를 완주할 때 오직 자기자신의 극기와의 싸움이라고 말했듯 작은 심장으로 숨가빠하며 열심히 열심히 혼자 날아간다. 그렇다고 방향이나 길을 잃는 법은 없다. 혼자 날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5백만년전 신생대부터 새들은 그런 고통의 긴 려행을 터득하였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수 없는 바다와 하늘이 맞물려있는 무공천지에 길을 열어 봄, 가을 두차례는 대이동으로 장식해온것이다. 오직 생활환경에 적응키 위해서라는 한마디로 치부해버린다면 인간도 거기에서 례외일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라태하고 간사하고 비렬하고 봉건적이여서 생활권안에서 수인이 되고 생활이 노예가 되고있지 않는가…     안해는 무척 격동하고있었고 가끔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하고있었다. 아이들은 서정시같은 구변과 의미심장한 말뜻에 깊이 눌려 사색의 하류를 헤맸고 나도 그 말속에 숨은 오묘함때문에 마음을 바쟁이고있었다.     그날 밤을 나는 잊을수가 없다. 그날 밤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까지 살아온 지난날이 누구보다 행복했음을 알고있으며 또 기다림으로 푸르게 창연함을 믿고있는것이리라.     그날 저녁, 안해 수연이는 아이들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나서 나와 단둘이서 강변 갈숲을 찾았다. 정말이지 그러리라고는 생각밖이였다. 주저심 많고 자비심 많은데다 몸집이 왜소한 나를 수연이가 유치원아이를 안듯 번쩍 들어 안아버릴줄이야. 삽시에 온몸이 땅땅 굳어지는 감에 허둥대면서 나는 내가 하류의 수심을 비상하는 한마리의 송어가 되였음을 알았다. 그녀에 의해 우리는 서로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라체가 되였더. 그녀는 강이 되여 나를 이리저리 뒤번지며 히스테리적으로 즐겼다. 해덩이처럼 힘껏 발기된 나의 그것을 알았을 때 나는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그래, 난 남자, 나의 남자는 수연이가 준것이야!… 하류는 길게 드러누웠고 달빛에 시허옇게 안겨들었다. 밤깊도록 농병아리의 울음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안해를 기다리는 그 한달을 1년맞잡이로 보냈다. 대련시로 나가 늦어서 한달만에는 꼭 소식을 보내리라던것이 반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묘연했다. 반년하고 열흘이 더 지난 어느날, 문득 편지 한통이 날아들었다. 이게 뭔가? 한국 서울에서 오다니. 꿈만 같았다. 눈물로 아롱진 글구들이 하늘끝 기러기떼처럼 날아든다.     당신, 그간 가내일동이 무고한지요?     이제야 소식을 전하게 된걸 용서하세요.     난 지금 서울시의 한 골목 음식점에서 약간의 휴식시간을 쪼개여 이 글을 쓰고있어요.     …당신은 너무 뜻밖일거야요. 그러나 모든걸 량해하며 너그럽게 받아주시길… 확실히 생명을 내건 모험이였지요. 한해 반을 훈춘올라가 번 부스럭돈을 전부 밀어넣고 대련에서 야밤에 밀항배에 올랐던거야요. 악취풍기는 선창밑 까막나라속에 갇혀 열물까지 다 토하며 옹근 사흘낮밤을 모대겼을 때는 이 내 육실한 몸이 락엽처럼 엷어진듯했어요… 어느 누군가는 서리찬 비수에 배를 푹 박히고 선지피 콸콸 흘리며 바다에 처박혔다던데, 또 언젠가는 밀항배가 파도에 부서져 60여명 밀항자들이 몽땅 룡궁 갔다던데. 또 그들은 옹근 나흘밤을 고생끝에 한국땅에 가대였는데 《만세》를 부르던 그 찰나에 철컥철컥 하고 수쇄가 채워졌다던데… 나는 아무 탈 없이 하느님이 보호해주셔서 밀항에 성공한거예요.  이 수연이가 배에서 다 죽을것만 같았던 둥둥 뜨는 몸이였지만 한국땅에 한발을 디디고 섰을 때는 사경에서 헤매던 딸이 어머니 품에 안긴듯 울음이 터졌고 다음엔 기쁨에 못이겨 북받치는 힘을 누를길 없었지요… 한국에 들어서니 모든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요. 일자리가 나서주질 않았고 그나마 어쩌다 맡은 일거리도 고용주가 부도를 맞는 바람에 일값마저 치러주지 않고 훌쩍 사라져버리다보니 한달간은 거리이 개죽 같은걸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였댔어요. 그러다가 요행 구명은인을 만난거예요. 그 언니의 소개로 지금의 《부두어탕집》에서 멸치구이일을 하게 되였는데 고용주가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거든요… 첫월급을 받았어요. 중국돈으로 7천 5백원이야요… 막 울었어요. 뼈빠지게 몇해씩이나 버는 돈을 단 한달만에 벌다니요.     한국에 와서 난 아버지 《손톱눈》을 더욱 새롭게 알게 되였어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씀씀이가 계획없이 헤프고보면 보뚝 터뜨린 물이라고 그래요. 아버지가 생전에 혼자의 힘으로 벌어서 어떻게 그 많은 우리 집 식솔들을 먹여살리수 있었겠는가를 알수 있어요. 술, 담배, 도박을 멀리했던,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께 절 드리고픈 마음이예요.     중국에 사는 조선사람들은 모국 사람들의 두가지 삶의 방식만은 꼭 배워야 한다고 해요. 시간을 다투어 열심히 뛰며 일하는것과 번 돈을 꼭 쓸데에 쓰되 그 씀씀이마저 《깍쟁이》여야 해요…     고동색으로 침묵하고있는 언덕에서 나는 움쭉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안해에게 써보낸 편지의 내용을 다시한번 수개해본다.     여보, 나 이제 더는 예전의 그런 린색하고 야비한 바보로 살아갈수 없구만. 《남자》, 《인테리》라는 새똥의 작용보다 못한 허영심으로 안해의 등만 처먹고 살아온 인생이 부끄럽구만.     그러나 이건 어느 모로 보나 수연이앞에서 하는 주제넘는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구만. 하긴 그렇다고 부득불 승인하지 않을수가 없구려.     수연이는 나의 하류요. 하류의 물이 뻗으면 상중류의 수원이 충족해져 수천헥타르에 달하는 옥토에 생명수가 흘러드는게 아니겠소. 하류가 엄청 수통이라면 상류가 고갈이 되고 하류가 꽉 막히면 홍수가 지는걸 뉘 모르겠소. 그러니 내내 유유히 뻗어만 주는 수연이가 우리 생활에 기쁨과 희망을 갖다주는게 아니겠소.     너무 오랜 시간을 지체했소. 맑고 푸른 하류의 묵묵한 수고를 그저 지켜보고만 지내왔으니. 아니 《응당》이요, 《천연적》이요에 붙여왔으니 말이요. 말하자면 그대를 보호하고 작업률을 덜어주도록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왜 진작 못했던가를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는구만.     하류여, 내 사랑하는 두만강하류여, 그대는 아름답소. 그대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상한 지조까지 지녔으며 내 그대 인격미와 체격미에 더욱 혹할것 아니겠소. 그대가 내내 건강한 미를 갖도록 그대 언덕에 풀을 심고 나무를 심고 화초를 심어 얼기설기 하얀 뿌리들이 물의 살을 거뿐히 하리오…     그렇소. 이젠 돌아올 때가 된것 같소. 《내가 돌아가면 언젠가 내가 번 돈이 거덜이 날게 아니겠어요…》 이런 말 마우. 수연이가 더는 지치지 않도록 내가 나섰단 말이우. 푸르디푸른 두만강하류에 《그물양어장》을 앉히기로 향정부와 계약을 맺은거요. 물론 수연이가 벌어보낸 돈이 은을 낸거지… 애들은 시중학교에 보내고 나와 로모가 강변에 삼간집 짓고 오리, 닭 치고 팔뚝같은 물고기들을 기르며 하류에서 수연이를 기다리겠단 말이요…     기지개를 켠다. 시야로 넘실대는 황홀경이 날아든다. 나는 뉘연한 강하류의 턱과 변을 따라 갖가지 나무와 풀과 화초의 뿌리로 하얗게 하얗게 엉키고있다…   (연변문학 2002년 제2호)  
3    [중편소설] 정신무진(2) 댓글:  조회:2908  추천:84  2007-12-21
[중편소설] 정신무진 량춘식  6. 죽으라, 내 육체여 이튿날도 그랬다. 안개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 그것이 몸밖으로 새여나올듯이 목구멍으로 스멀스멀하며 퍼져오르면 생고기를 씹는듯, 녹물을 마신듯 비린내가 입안으로 진동한다. 게다가 이를 사려물고 되넘기느라면 게트름이 어쩔수 없이 새여나왔고 구역질이 튕겨오른다.  치과를 찾아간다고 술을 한 이틀 끊어놨더니 몸속이 온통 이런 증상이라니, 이발이야 빼여버려 그만이지만 이건 또 무슨 병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시원히 검사를 하고 약이라도 지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술이라도 맛있게 마시려 해도 이깟 증세의 병증이 없어야 될거니깐. 이제 술은 안해의 상징인데야! 백강, 하류의 물살은 거창했다. 물굽이가 숲에 가리는듯하더니 긴 턴넬을 뽑았고 전속으로 얼마간을 달리는가싶더니 뻐스는 팔면통시에 와닿았다.  돈 일원이라도 아끼고저 터덜터덜 걸어서 시병원에 들어섰다.  일층의 자궁유방 검진실앞에는 녀자들이 줄느런히 늘어앉아 기다리고있었고 이층의 간센터, 삼층의 신장, 페, 척추센터앞에는 검진으로 나선 해쓱하거나 부추김을 받는 병인들이 가끔 보였다.  종합검진을 받았다. 아마 난생처음 들어서는 프로급병원인가보다. 혈액검사, 소변검사, 허파MPT촬영,위내시경검사를 하는데 온오전이 걸렸다. 돈이 아까와 3원짜리 랭면으로 점심을 넘기고 첫사람으로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검사를 받았다. PET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신체부위와 장기안의 암세포뿐아니라 앞으로 발전할수 있는 악성변중세포를 확실히 촬영해내는 첨단장비라고 의사가 말했다.  검진을 마치고 이틀을 기다리라 했다. 그 이틀동안을 어떻게 보냈던지 모른다. 흉막염이나 페, 위나 비장에 문제가 생기면 어쩔가 큰 근심이였다. 일단 결핵에 걸리면 소 한마리에 개 열마리는 먹어놔야 깨끗이 치료된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또 위벽이 마사졌거나 비장에 문제가 생겼다면 호주머니가 아닌 이상 뒤집어볼수도 없어 속이 바질바질 탔다.  퉁공기와 옥공기에 더운 물을 떠놓고 나는 중얼거렸다. 이제부턴 술을 적당히 마셔둘테요, 내가 건강해야 아이의 래일을 볼수 있잖아. 그리고 여보, 당신 돌아오는 날까지… 술을 이틀째 끊으니 단통 입맛이 도는 느낌이였다. 쌀밥을 앉히고 감자를 썰어놓고 장도 끓여서 먹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둬술 드네 했는데도 배가 부른것처럼 더 구미가 없었다. 배속에 가스가 차오르면서 게트림이 나고 구역질도 느껴졌다. 그래도 밥을 떠넣고 씹어서는 넘겼다. 넘길 때마다 래일과 함께 눈물이 고여올랐다.  종합검진 사흗날아침은 날씨도 청량했다. 무엇보다 몸이 거뿐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들과 안해의 얼굴이 번갈아 날아들었다. 살것 같았다. 밥이 들어가니 몸이 춰서는게 아닌가. 아무런 고민도 없이 날듯이 뻐스에 올랐다.  시병원에 이르니 오전 아홉시 반이였다. 의사가 기다렸다는듯 맞아주었다. 의사는 우리 시병원에 갓 들여온 의기가 고첨단장비라고는 하지만 의사들이 아직 조작경험과 검진결과에 대한 분석력이 깊지 못할수도 있으니 한번 더 큰 병원엘 가 다시 검진을 하면 어떨가를 물어왔다.  ―아니, 뭐 종양이라도 생겼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단통 눈이 둥그래져서 걸고들듯이 물었다.   의사는 주의사항을 적어주었다. 술, 담배, 섹스는 끊고 잠을 많이 잘것,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산책을 할것, 청국장을 많이 먹을것, 고등어 꽁치 등 푸른 생선을 많이 먹을것… 등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채 오래도록 일어날수 없었다. 간암, 이건 간암이란 말이 아닌가. ―그 어떤 불치의 병도 초기에 발견했으면 괜찮을겁니다. 가능성이 있지요. 설령 우리의 검진이 백프로로 들어맞다고 장담을 못하니까요. 나는 녀자들이 줄지어 앉아있는 자궁유방 검진실앞 복도를 지나서 병문을 나왔다. 제정신이 아니였다.  몇백원을 다 쓰고 호주머니엔 뻐스비만 남은듯했다.  뉘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몰랐다.  퉁공기와 옥공기가 뚱그렇게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부지중 중얼거렸다.  ―돈은 죽음을 관리하는 가장 문명한 도구야. 그런데 정신은 죽음을 압도하는 가장 철저한 공구란 말야. 정신이 죽음을 앞당길수도 미룰수도 있다는 도리를 난 믿는다. 그럼 나의 정신은 누가 무르게 만든것일가. 나는 잘 알고있었다. 이대로 무너진다면 달포안으로 몸이 말라 죽어갈것이란것을. 하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 치자. 그러면 어째서? 이제 간암으로 첨단설비검진이 나온 이상 죽음의 순서를 결정하는건 오직 돈밖에 없잖은가. 나에겐 돈이 없다. 아, 아들에겐 절대로 말할수가 없다. 일본에 있는 안해에게도 아니, 이젠 남의 안해가 된 계복에게 알린다? 무슨 소용 있으랴. 언제까지 살을 저미는 암세포확장의 진통을 겪다가 죽지 말고 아예 자살을 하는게 도리일것  같았다.  간암! 간암!!… 미칠것  같았다. 장밤 눈을 커다랗게 뜨고 깜깜한 집안속을 죽은 넋으로 떠다녔다. 그래, 이만큼 살아도 오래 버틴 셈이구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배반을 받은지 일년이 넘도록 살았으니 이건 나로서는 기적이랄밖에. 이젠 죽어야지. 이건 하느님의 뜻일거였다. 죽어서 천당 가자. 천당에서 계복이를 데려가야지. 계복이와 다시 련애부터 새롭게 시작을 하는거야. 그래, 이젠 죽자. 어떻게 죽을가… 농약을 마실가, 안돼. 창자가 너무 아프다던데. 절벽산에서 뛰여내릴가, 안돼. 콩가루가 되고나면 천당에서 계복이가 날 알아 못볼거야. 뒤강에 얼음을 끄고 돌을 달고 익사할가, 안돼. 얼마나 차갑다고… 죽어도 안락사버금으로 가는 죽음을 택해야 하는거야. 그게 뭔데? 오, 술이여, 내 아픔과 고통과 죽음마저 무마해줄수 있는게 오직 너란 말이지… 그래, 죽으라 내 육체여. 술속에서 저도 모르게 천천히 즐겁게 죽으리. 나는 《죽으라 내 육체여》라고 술에 내 육체를 내여맡겼다. 그러나 《죽으라 내 령혼이여》는 하지 않았다. 정신이 죽으면 육체도 죽는다. 그러나 육체가 죽어도 정신은 살아있는 법이다. 내 정신, 령혼은 천당에서 계복이와 화합하여 행복의 구들이 놓일것이라고 난 믿고있었다.  나는 내 육체를 죽이고저 노력했다. 술이 들어가 간암세포에 영양분이 되게 하고저 시도했다.  나는 천천히 나를 죽이는데 성공하고있었다.  7. 고향의 《 암 》 번연히 알면서도 최대 수치란걸 알면서도 해남도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알면 가슴 아파 공부못할줄을 알면서도 나는 그럴수밖에 없었다.  ―돈 좀 꾸시우. 우리 아들이 방학에 오면 곱배로 갚아드릴터이니.  ―돈 좀 꾸시우. 이제 우리 안해가 일본서 돈 부쳐보낼터이니… 새빨간 거짓말을 꾸며댔다. 십원도 꾸었고 일원도 꾸었다. 꾸어준것이 아니라 《쯧쯧, 어쩜 이 지경이 되다니》 혀를 차면서 불쌍해서 건네준 돈들일것이다.  아들은 달마다 어김없이 돈 백원씩 백오십원씩 부쳐보냈다. 했건만 그 돈으로 꾸어낸 돈을 갚아주지 않았을뿐만아니라 계속 걸인이 되여갔다.  세상 일은 첫걸음을 떼기가 바쁘단 말이 있다. 그 어떤 천한 일이든 일단 맘 먹고 시작만 뗐다면 되려 즐겁고 하고싶은 일로 되여 남들이 어떻게 보는줄을 모를 지경이 되는것이다.  《천천히 죽어》가는 길은 어려웠지만 그 어려운가운데서도 즐거움이 있을줄이야. 돈을 5원 꾸었다면 마른명태 하나에 술 한근 사들고 하루 세끼를 맛있게 살수가 있는거였다. 가물에 단비라고 맛도 말끔하게 가난한 가운데 뾰족하게 도드라짐을 어이 알랴. 술은 자꾸 당겼다. 간경화복수나 간암환자들이 술이 더욱 당긴다는 말을 봐선 내 병이 간암일것은 분명하렷다.  먹고싶은것을 먹자. 먹고싶은걸 먹지 않고 죽겠는가. 암세포야 뭐든지 가리잖고 자란다는데 구태여 이것저것 가리겠는가. 하루에 마시는 술만도 거퍼 한근 지어 한근 반이 되니 아들이 부쳐오는 고깟 백원돈으로 어찌 담당하랴. 그렇다고 막 죽기는 싫은 나인지라 걸인이 되여야 했던것이다. 빌어서 먹든 꾸어서 먹든 저녁에 어스름이 깃드는 집안 구들우에 밥상을 놓고 창가로 뵈는 깜빡이는 별들이나 달빛을 빌어 술이 넉근한 퉁공기를 들어 옥공기와 맞부딪쳤다. 그 술맛이 그처럼 달콤할수가 없었다. 목구멍으로 술이 넘어간뒤 녹이고 씹는 소금이나 알사탕, 땅콩, 이리꼬구이들이 그처럼 맛있을줄이야. 부엌아궁이에는 기본상 불을  때지 않는다. 저녁에는 전등도 켜지 않는다. 텔레비는 고장난지 오래다. 록음기도 페품이나 다를바 없었다. 핸드폰은 눅거리로 팔아치웠다. 전화비때문에 전화는 벙어리가 되였다.  동네에 나서면 뉘집 개들의 꼬랭이를 베여서 불에 구워 술안주 하고픈 생각이 굴뚝 같다. 두부파는 한족 녀자의 손마디를 끊어서 기름에 튀해 먹고싶었다. 니 손가락 하나에 값이 얼마냐, 술안주 해먹고싶다. 그래놓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키들거렸다. 돼지를 보면 엉뎅이살이 먹고싶고 잡을수 있다면 쥐새끼도 삶아서 개고기처럼 먹고싶었다.  배 고플 때는 닥치는대로 먹었다. 길섶에 나뒹구는 생감자알이나 무우도 와삭와삭 씹어먹었고 뉘네 금방 내던진 먹다만 국수오라기도 쉬파리를 쫓고 쥐여서 먹었다. 그래도 감기에는 걸리지 않고 설사를 하는법 몰랐다. 걸인의 우세는 거기에 있었다. 이런 생들의 건강은 병도 왔다가 달아나는 모양인지 모를 일이였다. 어쩜 내 암이 걸인생활로 더 악화되지 않고있는지도 모를 일이던것이였다.  나는 우거지든 들나물이든 쓰레기더미의 음식물이든 먹고서 배가 부르면 슬금슬금 뒤동산으로 오른다. 높으직한 뒤산 언덕에 나무잎을 꺾어서 펴고 누우면 두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정신이 새삼스러워난다.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며 아래우와 좌우를 시야로 담는다. 그러면 별난 생각들이, 종래로 해못본 깨달음들이 련달아 생긴다… 밤이면 하늘은 고달프게 잠든 땅을 내려다본다. 그러다도 낮이면 하늘은 땀 흘리는 땅을 내려다본다.  밤이면 땅은 금덩이로, 천당으로 뜬 달과 별을 쳐다본다. 그러다도 낮이면 땅은 바람부는 구름을 쳐다본다.  나는 밤이면 찬 구들우에 누워 아무것도 안보일 천정만 바라본다. 그러다도 낮이면 술 한잔에 아름다운 몽유와 환청으로 갈 밤을 위해 걸인으로 떠돌이한다.  밤과 낮― 밤은 꿈이며 낮은 현실일뿐이다.  나는 꿈과 현실의 공간에서 나를 찾을수 없었다.  ―막 죽다니 그게 될소리냐. 나도 모르게 죽어가야 하는게야!! 그건 나의 좌우명으로 된지 오래다.   뒤산은 한겨울에도 해볕으로 따스했다. 량쪽으로 큰 산들이 바람을 막아주는 탓으로 적설우에 누워도 소르르 잠들게 따스하다. 어느날, 나는 문득 너무 따뜻함에 놀라며 눈을 떴다. 해살이 물처럼 흘러내리는 공간으로 논이 보였다. 두부모처럼 틀을 쳤고 가두어넣은 논물이 거울처럼 번들거린다. 써레를 놓는 사람, 모를 꽂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언제 봄이 왔지? 나는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파란 수건, 빨간 수건, 노랑 파랑  때깔 고운 녀인들의 고운 모습도 보인다. 녀인들이란 늙은이들만 내놓고 깨끗이 출국이요 큰도시로 나간 마을에 웬 녀인들이란  말인가. 옳았다. 싹모 나온 한족녀자들일거였다, 단 몇집뿐의 모내기라도. 걸인, 여적 마을안으로 돌면서 비라리를 했지만 이젠 한번 들로 나가봐야겠던것이다.  배가 고프다. 집에 가봤자 씹다남은 명태꼬랑지와 껍질밖에 더 뭐가 있으랴. 아지랑이속을 걸었다. 다리가 자꾸 맥없이 헛질린다. 이랴, 이랴… 소  때리는 중늙은이가 다루는 논이 첨 띄였다. 논머리에 비닐보퉁이가 보인다. 가서 헤쳐보았다. 챠, 이게 뭐야. 찰떡에 만두에 이밥, 달걀지짐에 소고기장졸임에 고추장 거기다가 시큼털털한 막걸리가 있잖은가. 수저를 보니 세사람몫이였다. 에라, 세상에 도적질을 모르는 걸인이 있다더냐. 나는 비닐에다 찰떡이며 밥이며 고기며를 세몫으로 나눈 한몫씩만 주어담아 사라졌다.  이튿날도 들로 나갔고 사흗날도 들로 나가 일군들의 밥과 찬과 막걸리를 훔쳤다. 그러다가 나흗날만에 드디여 들켜서 물매를 맞았다. 한마을 사람들이여도 날  때렸다. 그중 중늙은이가 나서서 말렸다.  ―관두게. 가족도 잊고 고향도 잊고서 제 좋을 볼장 보구 사는 그 안해가 나쁜 년이지… 그런 화냥년들때문에 지금 세월에 불쌍한 나그네들만 녹아나잖았나. 어찌 됐든 우리 동네의 《암》이야. 죽여버리지두 못하구 감옥에 처넣지두 못할 《암》이라구… 8. 죽는 육체를 부르는 죽는 정신 내 육체여 천천히 죽어가자던 나는 들에서, 모내기에 열성이 오르고있는 남녀로소들이 보는데서 물매를 맞으면서 더 살아 뭣하랴 절망을 한것이다.  ―이 놈들아, 때리겠거든 음식도적인 나만 욕하면서  때릴것이지, 죽이겠거든 이 못난 놈의 행실만 탓해 죽일것이지 불쌍한 내 안해는 뭣 하러 끼여서 욕질이냐… 나는 맞으면서도 그 말만 웅얼거린것이다.  그날 밤 난 집에 들어와 대성통곡을 했다. 계복아, 내 사랑하는 안해야, 사람들이 널 가족도 잊고 고향도 잊은 제 좋을 장만 보구 사는 나쁜년이라구 손가락질을 하는구나. 내 어찌 그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수 있겠느냐. 네 비록 지금 날 버린채 타향에서 군사내와 재미있게 살고있다 해도 난 남들이 널 욕보이게 할순 없구나. 생각나겠지? 20여년전 내가 《나쁜집 애》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던 나날에 그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달려와 막에 홀로인 나와 설을 쇠주던 일을, 처녀들이란 나를 온역 피하듯하던 그 세월에 너만은 어쩌라고 구들 잘 고치고 물고기 잘 잡는 《인재》라며 한사코 날 사랑한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참 얼마나 다행이며 꿈도 못꿀 일인지 그저 하늘의 뜻이랄밖에. 영원히 장가들 꿈이라곤 엄두도 못내고있은 내가 후영의 칡벼랑늪에서 그대 처녀를 알게 될줄이야. 지금 이 시각 생각만 해도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도록 흥분을 하는, 내게는 달처럼 이 세상이 다하도록 단 하나뿐일 사랑을 웬 놈들이 험담을 하게 내버려둔단 말인가, 내 안해가 설령 그렇게 되였다 한들 내 안해에겐 죄가 없다. 다 이 못난 놈, 아들놈 하나 공부시킬 돈 못벌고 가난하게 산 이 놈의 탓이지… 온 저녁을 그렇게 갈파하다가 드디여 깨달은것이 죽자, 내가 죽어야 더는 안해를 험담할수 없을게 아닌가. 그거였다.  나는 생각했다. 간암에 걸린 내가 여적 죽지 않고 살아있음은 내 정신이 죽지 않고있었기때문이란걸. 정신이 살아있어봤자 공갈과 비방으로 짓찧어질것인데 차라리 죽어서 령혼이 머나먼 앞날이 가있는 안해에게로 가 머무는게 그럴법하였던것이다.  나는 막 죽음을 이 갈았다. 찬구들에 눈 펀히 뜨고 누워있었다. 거의 매일을 굶다싶이하고 나날을 보냈다. 어떤 날은 물도 마시지 않았다. 상우에 놓인 퉁공기와 옥공기가 나를 뚱그렇게 내려다본다. 술이 마시고싶어졌다. 물이 마시고싶어졌다. 뭐건 막 먹고싶어졌다. 그러나 이 악문채로였다… 그런데도 나는 잘 죽어지지 않고있었다. 그러나 내 몸은 차츰씩 못해갔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눈확이 푹 꺼지고 관골이 흉하게 드러나있었다. 내 몸은 검불처럼 가벼웠고 마른 뼈우로 가죽이 늘어져 겉들렸다.  ―이제 곧 죽는가봐. 그런 중얼임이 바람을 향해 목탁을 치면서 읽는 중의 천수경처럼 들렸다. 바로 그 순간이였다. 한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가 내 귀전을 쳐오는게 아닌가. 그건 계복이의 음성이였다. 이십여년전 후영의 칡벼랑늪가에서 내 목을 끌어안고서 내 귀에 하던 말이였다.  ―우리 죽으면 령혼이 이 칡벼랑늪에 와 만납시다. 우리 죽으면… 내 죽는 정신은 어데로 가고있었다. 그리고 내 육체는 거멓게 색이 죽어가고있었다.   9. 먼저 가 머물리 나는 동네의 《암》이기에 내 꼴을 사람들에게 보이고싶지 않았다. 그들이 내앞에서 내 안해를 저주했기에, 나를 죽이지 못해하기에 나는 그들을 만나길 꺼려 한다.  내가 맘속깊이 기대한 날이 온것 같았다. 창공에 보름달이 걸린것이다… 우리는 그날 밤 칡벼랑가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늪에 금황빛의 보름달이 떴었다. 보름달을 보면서 보름달이 우리들의 마음의 융합이라고 계복이가 그랬을 때 나는 남자답지 못하게 울었다. 내가 사람의 늙음과 따르는 필연의 죽음이 아쉬워 그런다고 그 원인을 말했을 때 계복이는 사람의 마음 즉 령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며 저 물속 둥근달이 우리들의 령혼을 만나게 할것이라고 했던거였다… 난생처음 녀자와 흠뻑 취해 나눈 말이라서 그런걸가, 그 말은 왜 방불히 어제 한 말처럼 내 귀에, 가슴에 생생한것일가. 내 정신은 후영의 칡벼랑아래 늪가운데로 잠겨있을 금황빛 보름달께로 쏠리고있었다.  후영, 아득했다. 줄배로 강을 건너야 하고 강을 건너서도 시오리길이 잘되였다. 더구나 결혼하고 이십여년이나 못가본 곳이다. 언젠가 누가 그랬듯이 후영이란 그 섬땅은 인간들에 의해 버려진지 너무 오래된 땅이라고. 1991년에 마을의 마지막 농호가 부치던 논이 뿌려진채로였다니 그 긴시간을 섬의 변화가 어떠한지를 상상할수마저 없는거였다. 온갖 짐승들이 욱실대고 잡초가 성하여 나무숲이 꽉 들어차 방향을 분별할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이제 일어서야 한다. 기어코 이 밤에 가 닿아야 한다. 그리고 칡벼랑에서… 이 밤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을 하니 걷잡을수 없게 헉헉 울음이 터진다. 아들아… 내 아들아, 이러는 아버지를 용서해다우.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 너만큼이나 너의 어머니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거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가. 이승에서 내 사랑을 이루지 못할바하곤 저승에서 령혼사랑이라는걸 해보려 하니 오히려 네가 이런걸 알면 아버지의 처사가 옳다고 할지도 모르겠구나, 아들아 넌 이미 성공한 셈이니 이 아비는 맘 놓고 네 어미와 만나러 간다. 기운을 내여라, 언제든 이 아비의 령혼이 널 지켜주고있겠으니까. 이 추레한 몰골로 이 허약한 약골로 이제 거기까지 갈수 있겠는가. 내 36도 체온이 찬구들을 덥히려는듯 여윈 등허리를 붙이고 뗄줄을 몰랐으니 몸속의 밸까지 차겁다못해 고드름이 생긴것 같다. 몸이 차다못해 고환과 항문사이의 거리도 줄어든것 같이 여겨졌다.  다리를 들어 엉뎅일 일으키려는데 여위여 뼈가 질린 쪽의 항문 괄약근이 열렸는지 똥물이 나와있었다. 아아, 이 정도가 될줄도 모르고 누워만 있었으니. 나는 내 몸속을 알았다. 간암증상은 이런가. 벌벌 가마목으로 기였다. 거기에 대야가 있었다. 대야에 가마속의 녹낀 물을 퍼담고 바지를 벗고 사타구니를 씻기 시작했다. 깨끗한 몸이여야 내 령혼도 맑아지고 냄새가 없을것이였다. 누구는 《널 배반한 네 안해의 령혼이야 똥보다도 더러울거 아냐》 그럴지 모르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안해가 날 배반한것은 전적으로 내가 사내구실을 못하고 안해를 가난하게 살게 한때문일것이며 가난때문에 자식의 학비마저 댈수 없었기때문이라고. 그리고 안해가 타향에서 다른 사내와 사는 동안, 그동안은 즐겁고 행복한 동안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사이에 떠도는 간악한 아픔과 교활한 고통이 동반된 가시방망이로 살속을 휘젓는 세탁과  같은 추리의 과정인것이며 속죄와 반성의 과정이란걸 난 안다. 안해와 그 사내와의 매 한번의 교합이야말로 최초의 계복이가 저 황야에 버려졌다가 번개와 우뢰에 깜짝깜짝 놀라며 원래의 계복이로 회귀하는 과정임을 나는 믿는다.  나는 또 안해의 아름다움이, 흰피부로 알리는 뻗어간 파르스름한 심 줄들이, 사금처럼 빛뿌리는 이발들이, 흰절벽과도  같은 목이, 젖냄새 같은 발걸음 모습이… 나에게는 황홀경이지만 이 세상 모든 사내들에게는 악과 불행과 공포의 형체로 안길것이라는걸 말이다.  안해는 아주 짧은 기간을 녀성일것이다. 선량하고 요염하고 유혹적일것이다. 그러나 차츰 연분홍으로 분장한 속이 빈 갈대일것이며 뱀의 분신일것이다. 드디여 변하는 악과 변하지 않을수 없는 필연의 결구일것이란걸 난 안다.  오직 나에게만은 불변의 현혹이며 무지개빛갈의 사랑일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사내들이여, 조용히 물러서라, 두말없이 잘못을 깨닫고 머리 숙여라. 왜? 내가 안해의 속으로 령혼이 되여 머물러가기때문이리라. 나는 몸을 꼬부렸다. 간일것이다. 칼로 도려내듯 아프기 시작을 한다. 그리고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났다.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냄새였다. 냄새는 혐오할수록 더욱 날카롭게 느껴지는 모양이였다. 간이 작용을 잃으니 속에 들어간 음식물이 없음에도 창자, 그리고 위벽이 마구 썩어내는 모양이였다.  20여리길! 최후의 도박을 하리라. 그곳에서 안해를 《상봉》한다고 여기고있었다. 내 정신은 거기에 가 극치를 이루고있는거였다. 상봉의 금황빛의 달속에 가 나 먼저 머물리라 한것이였다.  10. 나는 죽었다.  집안에는 먹을게 없었다. 창가에 기웃이 들여다보는 달이 재촉을 한다. 달이 서산에 떨어지거나 구름에 가리기전에 밤도와 목적지에 가닿아야 했던것이다.  나는 울음이 없었다. 색바랜 지성이 공상과 악을 낳았고 악이 울음을 매장했다. 그 대신 몸을 떨게 하는 영화는 눈앞에서 시나브로 상영되고있었다.  계복이는 거기 있었다… 그해 겨울이 물러가고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였다. 로농들은 후영에로 나를 불렀다. 구들이 뜨뜻하고 술추렴도 하려면 내가 필요했던거였다. 다른 일은 바빠서 못하고 식모일은 할수 있다는 조건으로 계복이도 내려온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눈치 못채게 주의하여 사랑했다. 몇달전의 추운 겨울속에 설도 함께 쇠고 창백한 달이 비추던 칡벼랑늪의 얼음우와 막의 구들에서 포옹도 했건만 그 정도 더 깊지 못했다. 남들의 눈이 무서워 몇번 만날 기회마저 주어지지 못하고만 우리 사이였던것이다… 우린 더는 참을수 없어했다. 사랑이 극도에 처하면 남들이 어떻게 보는것도 모른다.  후영의 달은 밝았다. 어둠이 깃들면 난 《고기그물 보러》하고 막을 나섰고 계복이는 《남새 다듬으러》 하고 나선다. 우린 칡벼랑늪가에 이르면 말 한마디 없이 한몸이 되여 뒹굴었다. 번개식련애를 하고 막에 나타나야 했던것이다. 그런데도 들통이 났다.  막의 로농들은 《나쁜집 애라도 얼마나 착하고 재간있수. 갸들이 좋아하게 모른척하라구.》 너도 나도 감싸주던 일은 죽을 때까지도 잊을것 같지 않다. 로농들은 너희 둘이서 실컷 사랑을 하라며 웃 생산대막으로 막을 비우고 놀러 갔다가 한밤중에야 왔고 터줏대감령감은 나를 불러서 엄숙하게 《암만 봐두 녀자측 부모들이 동의할것 같지 않으니 애를 배게 하려마. 그럼 별수 없이  음흠.》 하며 방법까지 대주었다. 결국 우린 서로 이 악물고 노력을 했다. 그러나 여름은 빨리도 흘러 계복이는 호랑이 같은 아버지한테 불려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로 돌아가서 비밀이 탄로났다. 계복이 아버지의 부름따라 마을 민병련에서 나를 감금하였다. 생산대의 반공실 헛간을 한칸 내여 나를 가둔것이다. 하루 세끼를 녀동생이 밥을 날랐다. 창살이 박힌 구멍새로 들이밀어주었다.  밤이면 전등도 없이 캄캄한데서 보냈고 낮이면 민병들과 함께 부업을 가 남포에 불을 다는 위험한 일을 해야 했다. 민병들이 수군거렸다.  ―문화대혁명이 끝난지 언젠데 뭐 아직도 사람을 못살게 굴다니. ―저 민병련장새끼가 그 계복이를 탐해서 이러는거 맞지. 우리 한반에 다니던 동창들이 가만히 위안해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때론 내가 불을 단 남포에 맞아서 죽고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계복이와의 사랑을 생각할 때면 힘이 솟군 했다.  기적이 발생될줄이야. 감금된지 사흗날밤에 똑똑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안의 빗장을 빼고 널문을 여니 계복이였다. 계복이가 나에게 쇠를 써는 톱을 들이밀었다. 나는 아주 잠간새에 구석쪽으로 쇠창살을 하나 썰어냈다. 밑둥만 썬 창살을 슬쩍 벌리니 계복이가 기여들어올수 있었다. 우린 또다시 열렬했다. 매일 밤중마다 한몸으로 타올랐다. 긴 가을이 다 갈 때까지 계복이는 애가 들어설줄 몰랐다. 초겨울에 난 된감기에 걸리게 되면서 풀려서 집에 오게 되였다. 엄동속에서도 우리의 사랑은 후영의 구들처럼 뜨거웠다. 계복이는 그 무슨 핑게를 대서든 잠간씩 내게로 왔다가군 그랬다.  세월은 나와 계복이를 놓고 양공질을 하는것일가. 계복이 집에서 계복이와 마을 민병련장의 혼사를 억지로 결정하고 혼사날까지 잡을 무렵, 그러니까 문화대혁명이 끝난지도 2년이나 되던 1977년 10월의 어느날, 나의 아버지의 《우파분자》, 《부농분자》 등 억울한 루명이 뒤늦게야 현위에 의해 벗겨진것이다. 기쁨은 겹쳐서 들어왔다. 현교육국에서 사람이 내려와 정책락실로 나를 향중심소학 교원으로 자리를 준것이였다. 비록 정식교원이 아니고 림시 월급을 받는 대과교원이지만 그건 실로 내가 꿈도 못꾼 일이였다.  인간이란 그런가보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변한다더니 소학교엔 후영의 칡벼랑늪에 가물치처럼이나 탐스런 처녀교원들이 많았다. 지나온 사랑에 지치고 맥을 잃었던지 내가 깜빡깜빡 계복이를 잊고있을 때 거의 달포나 보지 못한 계복이가 내앞에 불쑥 나타났다.  계복이는 노을빛 블라우스에 수박색 미니치마를 받쳐입었고 왼쪽 가슴에다 반짝이는 만년필을 꽂았다. 그는 자기도 마을 소학교 민반교원으로 사업하고있다고 자랑하고나서 아버지가 그러는데 너희 둘다 교원이니 약혼에 동의한다고, 그러나 요구조건이 있는데 꼭 올 가을안으로 결혼을 해야 된다는것이였다. 거기다가 계복이가 자긴 아마 자꾸 토악질이 생기는걸 보아 임신한것 같다고 암시를 주는게 아닌가. 우린 그렇게 그해 겨울에 결혼을 하였다. 결혼후 안해는 오상중등사범학교 함수를, 나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함수를 하면서 교원사업을 하느라 정열을 불태웠다. 그런 눈코뜰사이 없이 바쁜가운데서도 젤 재미나는 일은 휴가일에 계복이가 나따라 후영으로 칡벼랑늪의 가물치를 잡으러 갈 때다. 시커멓게 치렁치렁한 깊은 그 늪으로 그 누구도 못들어간다. 유독 헤염재간이 좋은 나만이 들어갈 엄두를 낸다. 반두를 쥐고 벼랑굽을 더듬거리면 요동치는 가물치가 풀떡풀떡 걸려나온다. 안해는 내가 던진 가물치를 받아 다래끼에 넣을 때마다 흥분하여 산이 떠나가게 소릴 지르군 한다. 그 소리가 얼마나 은은하든지 나는 내내 온몸에 기운이 배군 했었다… 안해의 그 은은한 목소리가 자꾸 부른다. 나는 밤속을 휘청거리고 걸었다. 이틀이나 굶은 몸이 무슨 맥으로 20여리를 걸어낼가. 굵직한 몽둥이를 지팽이로 찍으며 자꾸 발작을 내여디딘다. 강도 어떻게 건넜던지 모른다. 강물에 달이 기웃거렸다. 오래만에 배줄을 당긴다는 느낌도 없이 당겨 건넜던거였다.  강을 건너고부터는 어림짐작으로 첩첩한 산을 따라 굽이굽이 휘둘러간 철길을 따라 내려갔다.  얼마나 긴 시간을 걸었을가. 드디여 맘속의 그 섬으로 굽어드는 표적, 왕릉 같이나 솟은 소산이 눈에 띄였다. 하마트면 알아보지 못할번했다. 철길역이기에 기어이 알아본것이리라. 순간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오래 인적이 닿지 않은 섬은 전혀 알아볼수 없게 변해있었다. 관목숲이 꽉 우거진 섬은, 아니 인간들에 의해 버림받은 섬은 너무나 잔혹하게 혹독하게 모습을 달리하고있었으며 그런 악렬한 환경으로 나의 앞길을 막고있었다. 거기다가 얼핏 들어도 귀에 익은 적현사와 은화사 그리고 늘매기 같은 독뱀들의 울음소리들이였다. 위험은 도처에 은페해있었다. 칡벼랑늪을 찾아가는 길이란 근본 존재하지 않고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사위가 코앞도 알아보지 못하게 캄캄해진것이였다. 쭉 머리끝까지 공포증이 엄습했고 목덜미에 찬기운이 돌았다. 그리고 전신에 닭살이 돋아있었다. 수백마리의 독사들이 내 아래다리로부터 기여오르고 늑대들이 시퍼런 불덩이를 뚝뚝 흘리며 날카론 이발을 드러내고 내 뒤덜미를 덮쳐오는것  같았다. 그저 이렇게 죽고싶지 않다는 생각, 오직 그 한 생각으로 난 악이 되받치고있었다. ―계복아아, 나 왔단 말야아… 어떻게 그 소리가 산악을 메아리로 들렸는지 몰랐다.  삽시간에 온 후영의 관목숲에서 울어대던 뱀의 울음소리와 잡음이 뚝 멎고 삼라만상이 고요하였고 구름을 헤치고 나온 달이 금황빛으로 은실은실 쏟아져내리는것이였다.  분명히 내앞으로 길이 열리는것  같았다. 아니, 령혼의 안내였을거였다. 나는 죽음직전의 유령의 착한 작간일거라는 깨달음을 가지며 더욱 떳떳하고있었던것 같다.  바루 저기로 꿰지르자. 방향은 명확했으나 잡풀과 관목이 어우러져 꽉 막아나선데다 발목을 넘는 물과 아마 논을 풀었던 자리라 흙두렁이 때아니게 발목을 걸어넘기는바람에 넘어지고 또 걸렸다. 거기다 뱀이나 짐승때문에 한보를 내걸으면 몽둥이로 둘레를 두드리고 해야 했다.  ―마지막 고통의 몸부림이다. 이제 곧 정신적아픔과 육체적아픔이 없는 계복의 령혼이 누워 기다리는 천국의 따스한 구들로 나가리니… 그런 중얼임이 끊임없이 내 입에서 나가주고있었다.  나는 기진맥진했다. 십여메터를 나가는데 십여분씩도 더 걸리는것 같았다. 사람이 움직이는게 아니고 주검이 무엇에 의해 흔들리는것이라고 하는게 적절할것이다.  창공에 달은 창백했다. 후영에서 고생하는 아들의 여윈 어깨를 붙잡고 통곡을 하던 어머니의 핼쑥한 얼굴처럼 창백했다.  ―어머니, 천국에 가면 어머니도 뵐수 있잖습니까. 그런 중얼임으로 어머니 령전에 용서를 비는 찰나, 시야로 번들거리는 뭣이 날아들었다. 은실은실 쏟아지는 달빛아래 그것은 한폭의 수채화 같았다. 침엽림 활엽림을 들쓴 칡벼랑이 날카롭게 솟고 그아래로 롱구장만큼한 치렁치렁한 늪이 극히 원시적형체로 안겨든것이다.  나는 내 미칠듯한 흥분을 안다. 이승에서의 안해 잃은 삶이 정녕 그 얼마만큼한 고역인지를. 지옥생애를 해탈하려는 내 목적지, 칡벼랑 늪이기에… 나는 극구 내 흥분을 진정시키며 늪가 억새풀우로 몸을 던졌다. 달이 내려다보고 닭모이를 뿌린듯 금황빛의 옥수수알 같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바람은 살랑살랑 내 볼을 어루쓸고 잠들었던 풀벌레들은 일제히 카톨릭노래런듯 간단히 연주를 끝내곤 잠잠한다.  늑대무리대신 사람냄새를 맡은 북대황 말모기들이 아귀아귀 접어들어 피를 빤다. 그것들은 저고리에까지 침을 박고 흡혈을 하는 판이다. 스르륵 뱀 한마리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간다. 전문 육식을 한다는 들쥐 한마리가 찍찍 하고 동료들을 불러 여러마리의 큰 쥐들이 내 육체를 에워싸고 파란 눈알을 반짝인다. 어데선가 우어우어 하고 늑대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승은 인간사이의 모순과 리기를 위한 비렬한 삶때문에 약자는 토혈을 할 신음에 젖어야만 하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병마와 짐승들까지 시시각각 생명을 노리것이니… 나는 한시급히 이승을 떠나리라 한것이다.  기운이 좀 들었던가 나는 내 몸을 꿈질거리고 벌벌 기였으며 지팽이를 짚고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이승의 주위를 눈박아 살피고 헉 긴숨을 들이켰다.  나는 지팽이를 버리고 나무사이에 몸을 의지하여 한나무 두나무를 잡고서 칡벼랑을 톺아올랐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그제날 계복이와 둘이서 가지런히 앉으면 생산대 탈곡장의 벼짚가리우 같던, 뛰여내려도 푹신한 북데기우라 위태로울것도 없던… 내 어깨에 다소곳 플라스틱머리댕기 맨 처녀 머리가 기대인 처녀총각이 달빛으로 아래 늪 수 면우로 거울 같은 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가을은 밤이 길었다.  드디여 나는 그 찍어낸듯한 벼랑길로 그우에 서있었다. 아래로 늪이 달을 잉태해있었다. 물속의 달은 계복이로 변해 웃고 손젓는다. 육체는 어디다 두고 령혼인가 유령인가 이 늪에 와있다고, 나를 기다린다고, 이승의 못된 인간들에게 껍질인 육체만 남겨두고 우리 둘의 넋은 천국으로 날아오른다고 나는 나의 정신으로 굳게 믿고있었다.  나는 인간세상에 대한 그 어떤 미련도 련민도 없었다. 고통과 아픔과 죄악만이 찬 세상이니  말이다. 시선이 가 머문 자리, 늪속의 대야 같은 달속엔 리혼도 배반도 사기도 기다림도 없는 곳이였다… 나는 안깐힘을 써서 뛰여내렸다. 풍, 쏴륵 하는 청각의 맞힘소리와 함께 코끝이 아려나면서 내 정신은 날고있었다. 죽는구나 아니, 안해가 힘껏 끌어당기는구나. 드디여 안해의 령혼과 융합이 되누나 그런 바늘끼 같은 생각이 곧 죽음의 짧은 과정임을 깨닫지 못하며 나는 죽었던것이다.  11. 조개와 가물치 독자들은 내 이 글을 보면 소설 같은 과장이라거나 거짓이라고 웃을지도 모른다. 룡궁에서 자라를 타고 간 가지러 륙지에 나왔다는 《토끼전》의 한 대목을 읽고 표절한게나 아닌가고 손가락질을 할것이다.  분명히 난 익사했을텐데, 그리고 왜 안해는 그림자도 뵈지 않는가. 이건 아름답기 그지없을 천당이 분명할텐데 왜 이리 아프고 춥고 비린냄새만 찼을가. 그런 불평과 의혹으로 아마 정신이 들었을것이다.  의식이 회복됨에 따라 나는 발부위가 심하게 아파남을 느꼈다. 그런 아픔이 완전히 정신이 들게 했을 때 나는 늪가에 머리를 처박고 물에 잠겨있었는데 코끝에 물이 일렁거리고있었다. 원래 나는 뭔가 커다란것을 안고있었다. 아, 난 죽지 않았구나. 천국의 문지기가 날 접수하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고 깨닫고있었다. 안해의 령혼이 없기에 난 천국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게 분명했다.  내 발부위가 심하게 아파나고있었다. 이건 뭣이 날카론 이발로 물어뜯는 과정이였다. 나는 둔덕에 기여나오고저 버둥거렸다. 풀을 잡고 몸이 둔덕에 오를 때에야 나는 원래 나를 물에 둥둥 뜨게 한 커다랗게 안긴것이 조개였음을 알아보았다. 작은 가마뚜껑만큼한 조개였다.  조개는 물속을 헤염친다. 일단은 밑바닥의 모래나 흙속을 파고들어 보이지 않다가 먹어야 할 시간이 오면 돌덩이가 튕기듯 쑥 솟아올라와 단단히 닫혔던 동근 껍질을 벌려 부유하는 생물이나 걸려든 물고기를 집어서 소화시켜버린다.  조개는 한마리의 가물치를 단단히 집고있었는데 반근은 실히 될 가물치의 몸통부위까지 삼키고있었다.  그런 가마뚜껑 같이 큰 조개를 내가 타고있다니 이건 아무래도 신기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간밤 내가 뛰여내린 자리는 늪중 깊이를 알수 없는 깊은 수중인데 어쩜 내가 이곳 둔덕까지 조개를 타고 나온것일가… 아니, 이건 뭐야, 또 무엇이 내 발을 갉아먹는다. 나는 둔억에 안깐힘을 써서 기여오르며 발을 들었다. 에크, 이게 뭐야. 날카론 톱이로 물고 놓지 않는건 뱀무늬처럼 생긴 한뼘이나 되는 가물치였던것이다. 가물치란 놈은 메사구보다 더한 놈이다. 육식을 하고 산다. 작은 고기, 썩은 짐승의 고기, 좌우간 고기면 다 먹고 사는 놈이다.  내 발바닥의 살점은 보기 흉하게 뜯어먹히운채로였다. 피가 흘러내려서 뚝뚝 떨어졌다. 다시 보니 내 턱주가리와 손등, 팔도 살점이 군데군데 허비우고 뜯겨서 피가 흥건히 내배고있었다. 대체 내가 죽지 않고 둔치까지 나와 숨이 붙어있은게 조개가 나를 태워서 나온것인지 가물치들이 내 살점을 뜯어먹느라 물어당겨서 나온것인지 알턱이 없었다.  늪은 고즈넉했다. 그리고 수면은 검푸렀다. 아름다운 늪이였다. 계복이와 사랑했던 늪이였다. 오매에도 잊지 못할 곳이여서 죽으면 계복이가 있을 천국에로 가 살수 있다고 늘 느끼고 느끼다가 드디여 찾은 사랑늪이 아니던가. 아, 그런데 사랑늪속의 가물치들이 산채로 내 살을 뜯고 베여먹다니… 언녕 마귀늪이 된지 오래구나. 가물치에게 뜯기운 군데군데 상처들이 소금을 뿌린듯 콕콕 쏘고 아팠다, 벌써 진물이 나고 고름이 흐르는듯 누우런 부패막이 씌우기 시작을 한다. 이가 갈렸다. 이를 옥물었다.  그 아픔이 내던져져 익사에 성공못한 의혹서린 정신과 더불어 점점 내 오랜 공상과 착각을 쫓고 씻어내고있으면서 리지를 되찾고있는거였다… 무엇이 나를 이 꼴로 만들었는가? 정신이다. 내 정신의 비관실망과 타락이 내 육체를 죽음에로 내몬게 아니란 말인가… 그래, 살아야 한다. 암이라도 랑만적으로 살아냈다던 기적적인 인간들이 많다던데, 살수 있는데까지 살아서 아니, 이 악물고 노래하고 춤 추면서 살아낼 때, 그 쓰고 고통스런 삶은 내 정신상 보람되고 영웅스런 자호로 될것이 아닌가. 《니 아비는 암에 걸려서도 내게 한마디 알려주지 않았고 또 이 꼴이라도 악으로 버티고 산다…》 로부터 아들에게 끈질긴 의력의 유전성을 확보시켜주어야겠다고 깨닫는 순간에는 기운이 흘러듦을 느꼈다.  뭐든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둔치에 꺼꾸로 엎뎌서 막 사라지려 하는 조개를 붙잡았다. 작은 쇠가마를 들어올리는것만큼 무거워났다. 희귀하였다. 사발만큼한 조개가 있다던데 가마만큼한 조개를 잡다니 이게 그래 개혁개방이 되여 고향을 떠난지 오랜 농민들이 보고퍼 오랜 시간을 자란… 원시세계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조개껍질을 벌리고 빼낸 가물치를 쥐여들었다. 손톱으로 껍질을 찢어발기고 새하얀 속살을 생것채로 씹어먹었다. 씹으면서 자꾸 울었다. 생명을 너무 소홀히 대한 단순하고 무지한 어제를 생각해 울었다. 이제 살아가야 할 일을 생각해 울었다… 배신을 당하고도 련민을 하고 더러운 사랑을 수호하고 어제의 내가 아니고 더러운 년을 저주하기 위해 하루라도 더 버티고 살아야 한다는 리념에 감동하며 울었다.  가물치대가리와 지느러미를 떼던지고 다 먹어버리고 누웠다. 누워서 이른아침의 하늘을 보았다. 새들이 우짖고 풀벌레들이 극성스레 울어옜다. 나는 정신이 들고 맥이 남을 느꼈다. 나는 묵직한 돌멩이를 주어들고 힘껏 큰 조개껍질을 깼다. 붉고 누르무레한 색갈의 조개속살이 나왔다. 물씬 비린내가 풍겼다. 속에는 거마리들이 우글댔다. 그 거마리들을 주어내고나서 날이 선 돌쪼각으로 조개속살을 베여내서 입안에 넣고 씹었다. 질겼고 비렸다. 꿀꺽 넘기고마는게 나을상싶어서 그냥 넘겼다. 울컥 토악질이 나오면 목구멍으로부터 밀려나온 조개고기를 다시 넘겼다.   작은 가마만큼한 큰 조개였지만 속살은 한공기도 차지 않았다. 나는 그걸 끝내 다 넘겨버렸다.   조개껍질이 해살에 비취색으로 번뜩거리는걸 바라보며 《나는 악한 인간이야. 이제부턴!》 그런 생각이 들었고 웃음이 나가고있었다. 참으로 너무 오래만에 웃어보는 웃음이였다.  12. 내 삶을 낚다 나는 너무 오래동안 나를 잃었다. 단순하고 천진하고 무지하기까지 했던 내 정신을 믿은 결과로 인해 삶을 곡해해온것이였다.  이제 내 기억속의 아름다왔던 후영은 그늘로 어두웠다. 후영의 칡벼랑늪에는 내 사랑이 없다. 늪속에 잠긴 금황빛달이 천당이요, 계복이의 령혼이 머문 자리요… 하는것들은 허상이요, 정신질병이 일으킨 착각이였다. 늪에는 내 살점을 도려먹는 무서운 가물치들이 우글거린다.  나는 그 가물치들을 잡고저 했다. 가물치들을 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것이다. 한마리의 가물치를 잡을 때마다 안해가 가족과 사랑을 어쩜 그리 쉽게도 배반할수 있는데 대한 복수의 과정으로 페허된 내 마음터에 조금씩조금씩 안위와 복구의 영양토를 펴가리라 한것이다. 그런데 생각처럼 가물치가 잡히겠는지 그런 근심도 없잖았다.  젊어서 원체 《물고기박사》란 별명까지 달고다녔던 나지만 너무 오래 자연과 거리를 멀리한때문에 그런 재간이 있는건지 의심할 지경이였고 있더라도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 단 한마리라도 잡자. 나의 악을 기르고 그 년을 저주하는 표징으로서 자신을 고무하리라! 가물치, 가물치는 귀한 고기다. 옛말에 정승이 먹는 고기라 했으니 가히 《귀족물고기》겠음을 알수 있다. 주둥이가 뾰죽하고 날카론 톱이발이며 몸뚱이는 둥글다. 육식을 하기에 요동을 치면 그 힘이 대단하다.  나는 아침에 점심밥을 준비했고 낚시대와 초롱그물을 들었다. 헛간에 오래동안 묵어있었더라도 잘 보관했기에 쓸만했다. 그리고 작은 알루미늄가마도 하나 넣었다.  젊었을적에는 20리길을 한시간 반이면 족히 걸어냈으나 이제는 그 배로 시간이 들었다.  단 한마리라도 낚을수가 있을가. 그러나 뜻밖이였다. 낚시에 풀메뚜기를 잡아 꿰여 뿌리니 냉큼 동동이가 물속에 쑥 끌려들어간다. 잡아당기니 낚시대초리가 활등처럼 휘면서 끊어질듯한다. 얼려서 겨우 끌어내보니 근반이나 갈 싯누런 가물치였다.  세상에 젤 낚기 힘든 물고기가 가물치라던 말이 떠오르며 고개가 저어진다. 약아빠지고 밤새 개구리 지어 뱀까지 잡아먹어 배를 불린 놈이라 웬간해선 낚시찌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가물치가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낚시찌를 보기 바쁘게 물다니, 생각해보니 모두 인간들때문이겠다. 가물치들이 오랜 세월 태고연한 원시림속에서 인간들의 흔적을 잊고 살다보니 멍청해진것일게고 낚시찌에서 인간냄새를 맡고 물어내는것일거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안해 잃고 불쌍한 사람의 삶을 돕기 위해 헌신을 하는것이나 아닐는지. 점심무렵을 넘기지 않았는데도 잠간새에 열댓근이나 실히 되게 낚았다. 비닐주머니속에서 그것들은 황금빛으로 풀떡거린다. 탐스런 놈들이였다. 오래동안 처음으로 기쁨이란걸 느껴보았다. 어쩔수 없이 안해생각이 났다. 계복이가 가물치를 다래끼에 주어담으며 내던 그 은은한 목소리가 맺혀온다. 그러나 단념해야 했다. 《나쁜 년!》 그랬다. 등걸불을 지피고 알루미늄냄비를 걸었다. 기름을 붓고 고추장을 좀 풀고 가물치국을 끓였다. 아, 맛있었다. 술생각이 났으나 참았다. 이제 술이란 저녁이나 아침에 속이 아플 때나 냄새가 날카로울 때에만 조금씩 마셔서 아픔을 마취시키리라 다진것인데. 가물치 열댓근도 얼마나 무겁던지. 땀이 그칠줄 모르고 흘러내린다. 이 가물치를 한근에 5원씩 사는 사람이 있을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비척비척 걸어서 거의 해질녁에야 동네가 보이는 간이역에 닿았다. 혹시나 해서 간이역 플래트홈에서 서성거리는 한족에게 가물치를 내보이며 사겠는가 물었다.  ―한근에 10원씩 줄터이니 아니, 그저 백오십원에 다 넘기우고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시장을 다 돌아도 가물치란 볼수 없단다. 초식어인 잉어나 붕어, 초어따위들은 흔하지만 육식을 하고 크는 물고기는 유독 메사구밖에 볼수 없다고 그랬다. 특히 초식어보다 육식어의 고기가 더 구수하고 영양가가 높다는데에 눈길을 모을수도 있겠지만 육식어인 메사구, 가물치고기는 사람의 혈액을 맑게 하고 항암작용을 논다는데서 초식어보다 육식어의 값이 껑충 뛰여오를거라고 그랬다. 그러니 보구 죽자 해도 없던 희귀한 가물치를 한근에 12원씩인 메사구값보다도 눅게 주었으니 나는 몰라도 한참은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몰랐던것이다.  그날, 돈 백오십원을 받고 나는 내가 간암환자라는것도 잊고서 흥분을 했다. 걸음걸이도 씨엉씨엉이였다. 안해를 잃고 얼마나 긴 시일을 술과 동무해 살아왔던가.  요란하게 화장만 추구하는 녀자일수록 사랑의 버림과 가깝고 술만 죽여내는 남자일수록 저승과의 거리가 가깝다.  나는 그 점을 잘 알고있었으므로 이 악물고 비관을 멀리하려 애썼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였지만. 그 어려운 억제와 견제의 과정에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후회하는 돌이킴앞에 가슴 찢어지게 하는 슬픔을 못이겨할  때가 가끔이군 했다. 내 인생이란 이게 뭐냐. 안해의 배신을 당하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고 암에 걸리고 걸인이 되여 물매를 맞고 손가락질을 받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느님은 나에게만 한벌 또 한벌의 족쇄를 채우는지… 그 최악의 경우에 처했더라도 난 어찌하여 살리라 한건지 나는 나를 끝내 감동하고 나를 이기리라 다진것이였다.  나는 매일 가물치를 낚았다. 간이역에서  전문 도매장사군이 날 기다려서 맞돈으로 넘겨받는다.  겨울이 다가올 때까지 나는 꼬빡 하루도 빠짐없이 후영으로 나다닌것이다.  첫눈이 내리던 그날, 나는 무심결에 거울을 보았다. 거울속에는 몹시 초췌하고 검누른 사내얼굴이 있었다. 문득 나는 내가 오랜 시일을 간암이란걸 잊고 지내온 나 자신이 간암확진이 내려서 지금껏 옹근 한해 반이나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왜 나는 죽지 않어? 칡벼랑늪에 투신자살도 안되고 억망으로 퍼넣는 술로도 간암이 폭팔되지 않고… 내 병은 참으로 질기다는걸 믿으면서 나는 먼 해남도에서 비용때문에 작년 음력설에도 못온 사랑하는 아들이 한없이 그리워나며 더운 눈물이 핑글 고였다.  나는 살얼음이 낀 철에도 벼랑늪가에 앉아 낚시로 의력을 길렀고 얼음이 꽝꽝 얼었어도 얼음에 구멍을 빼고 낚시찌를 넣었다.  어떤 날에 나는 많으면 열둬마리, 적으면 한두마리밖에 낚지 못했지만 그건 나의 전부의 삶의 방식이였다.  나는 매일 가물치를 먹었다. 마지막엔 의무적으로 먹었다. 가물치고기가 항암작용을 한다고 굳이 믿고있기에… 가물치는 《약》이였다. 못된 년으로 만들어진 약이였다.  나는 결국 내 부활을 낚고있었다. 13. 인생은 이런가 《죽음》이란 두자는 한시도 내 뇌리를 떠난적 없었다. 한달을 더 살수가 있을가, 어쩜 몇해를 더 살수 있을지도 모르지. 죽음이란 신신펀펀할 때 급작스레 찾아든다던데… 그런 생각과 함께 끊임없이 속이 아프고있었다. 별로 먹은것도 없이 디젤유나 쇠비린내 같은 냄새가 게트림으로 올리밀었고 간부위와 위 그리고 대장으로부터 홍문에 이르기까지 쓰리고 아리기도 했고 하루에 한번 꼴로 칼로 베듯 쭉 아파날 땐 정신이 까빡 잃어지고 눈앞이 캄캄해난다.  술은 이 악물고 마시지 않으려 했지만 혹간 밤중에 진통을 제거하느라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 인이 박힌 술은 자꾸 꿀물인듯 당긴다. 밥은 당겨서 먹는다는것보다 억지로 넘긴다고 해야 적절할것이다. 그저 몇숟갈이면 벌써 트림이 나오고 배가 불러진다.  나는 매일 새벽에 눈만 뜨면 력서를 마주한다. 또 하루를 살았다는 표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한 혈육인 아들과의 상봉의 날과 가까와지리란 표기이기도 했다. 이제 아들을 본다면 죽어도 뭐 한이 있을성싶잖다고 느껴도 보았다. 아들아, 코밑이 검실검실하니 수염도 나고 더욱 청년답겠지. 아들아, 이 아비는 단 너만 믿는다. 이 세상에서 단 너만이 이 아비를 생각하고 아파할것 아니냐. 이번 음력설엔 꼭 왔으면 하는데… 오직 너의 성공을 바랄뿐이다. 이번 음력설엔 제발 왔으면. 그저 그런 바램일뿐이구나… 밤마다 무당이 굿을 하듯 먼 해남도남쪽을 바라고 꺼꾸로 엎뎌서 두손을 합장하고 손을 부비고 또 부볐다.  나는 조금만 걸어도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고 사지가 나른해나며 눈앞에 별이 반짝이던 전과는 달리 몸이 많이 나아지고있다는 느낌이였다. 매일 20여리 후영을 갔다올수 있다는게 보통사람도 바쁜 노릇인데 말이다. 내가 정말 암환자일가, 왜 이럴가, 확실히 점심나절마다 늪가에서 끓여먹는 가물치고기때문일가. 그게 진짜로 항암역할을 하는 모양이라고 의심하고있었다. 그보다는 매일 몇십원씩 버는 돈에 정신이 분발된다는것, 그것은 확연한 일이였다.  그래, 살자! 나는 살아가고있는거야… 그러면서도 나는 그냥 죽음이 꿈뜰 찾아올 어느날인가를 무섭게 의식하고있었다, 역시 뼈만 앙상하고 얼굴색이 주검 같은 나의 꼴을 거울로 들여다보면서. 겨울은 깊어가고 폭설이 터지면서 나는 후영을 갈수 없게 되였다. 나의 주려마른 맥꼴로 어찌 혹독한 겨울을 헤칠수가 있으랴. 이제는 전화할 때마다 음력설무렵에 웬간하면 가리라던 아들의 말대로 아들만 기다리던 나였다.  나는 말려둔 가물치고기를 구워먹군 했고 가끔씩 메사구를 사서 탕을 끓여서 먹는걸 잊지 않았다. 항암에 기운이 있다고 믿어서였다. 나는 완강하게 살았다. 위가 쓰린지 창자가 잘리는지 간의 종양이 크느라고 그런지 몸통속이 마구 진통이 날 때는 술을 꿀럭꿀럭 들이키곤 그랬다.  아들은 내내 전화가 없었다. 그믐날밤까지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 밖에서는 눈만 소리없이 내려서 쌓이고있었다. 속이 진통이 시작되자 난 술을 마셨다. 술이 몸에 퍼지자 제발 오늘밤도 죽지 말자, 새날을 보리라. 그런 생각속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가. 잠결에 감은 눈까풀이 강렬한 빛발을 받으며 이마에 손길이 느껴지고있는것이였다. 꿈결이겠거니 가느스름히 눈을 뜨니 집안에 전등이 켜진게 아닌가. 그와 함께 자길 빤히 내려다보고있는것은 아들일거였다. 그래, 내 아들이 왔구나, 아들이… 그런데 다시 여겨보니 이건 안해, 계복이가 아닌가?!… 내가 이거 칡벼랑늪속 금황빛달궁에 들어선게 아닌가. 거기서 안해와 만난것이로구나. ―여보, 나… 나야요. 제가 왔어요, 여보… 그제날 안해의 그 은은한 목소리 그대로였고 분명히 집안을 울리고있었다. 난 내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아팠다. 생시였다. 정말 안해가 옳았다! 나는 화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나는 뒤로 비실비실 물러나면서 앞에 앉은 계복이를 뚫어지게 바라만보았다. 5년전의 그 계복이가 아니였다. 많이 겉늙었다. 람루한 의복차림새에 량어깨는 좁아지고 뼈골이 날카롭게 안겨온다. 얼굴은 누르끼했고 눈확과 관골이 두드러졌고 턱이 뾰죽했다.  ―당신, 계복이 옳아? ―나… 나야요, 미안해요… ―많이 못쓰게 됐구만. ―당신도 왜 이 지경이 됐나요? 흑흑… 안해는 죄송스러운 눈빛으로 울고있었다. 그런 안해의 육체와 눈빛과 눈물이 모든걸 다 말해오고있었다. 더 물을게 뭐란 말인가. 나는 안해를 힘없이 품에 끌어안았다. 내가 되려 여위였으나 단단할 안해의 품에 안기고있었다. 그리고 나는 쇼크했다.  안해가 내 인중을 눌러주어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고 꺽꺽거리다가 터뜨린 보물처럼 소울음을 퍼질렀다. 슬프고 슬픈 울음이였다. 울면서 넋두리로 물었다.  ―이제 또 떠날거야? ―떠나단요. 우리 서로 이렇게 안고 살거야요… 실로 꿈만  같았다. 안해의 뜻밖의 출현앞에 나는 거의 미칠듯한 흥분상태에 처해있었다.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 못했고 슬픔과 분노와 기쁨을 주체할길 없어했다.  ―여보, 아무 말도 하지 마오, 돈을 못벌어가지고 왔대도 그게 뭐 대수요. 가장 근본은 우리 둘의 사랑이 변치 않은것이잖소. 상봉, 이 이상 또 뭐 바랄것 있단 말요. 그랬으나 안해는 한사코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이실직고하고있었다. 안해가 일본에 가서 뜻밖으로 맹장염에 걸려 입원치료비가 없어 죽음의 경각에 처해 길어구에 쓰러졌을 때 중년사내의 도움을 받아 살아났고 그 은혜로 《갇혀》 그의 안해질을 하는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는 솔직한 하소연은 끔찍스럽기도 했다…  그 사내는 일본인이였고 도박군이고 건달이였다. 그러니 나이가 사십을 바라보도록 장갈 못들고있던참인데 마침 다 죽어가는 곱살한 녀인을 구해주게 된거였고 굳이 안해로 《만든》것이였다. 달아나지 못하게 려권과 기타 출국서류를 앗아내여 주지 않았고 친척들까지 동원하여 감시였다. 사내는 물론 암펌 같은 시어미까지 한사코 임신을 시키기 위해 발광을 했단다. 피임약을 먹다가 들켜서 물매를 맞군 했는데 갈비뼈 두대가 나가고 코등의 뼈가 끊어도 졌으며 시어미와 시누이들한테 뜯기워 머리가 무더기로 빠지기도 했단다. 그래도 죽을 생각은 없었단다. 악을 쓰고 살았단다. 다행한 일은 애가 들어섰으나 술 먹은 사내의 발길질에 류산을 한거였고 그담엔 더는 임신을 할수 없은거란다. 5년 3개월하고 열이레란 긴 시일을 두고 한시도 남편과 아들과 고향을 잊어본적이 없단다… 끝내 려권과 출국서류를 찾아냈고 탈출에 성공한것이란다. 《내가 당신을 이 지경으루 만들었군요, 내가…》 그러며 안해는 목놓아 울었다.  ―이건 하늘의 뜻이요. 하늘이 나를 고험한거라구. 우리 사랑을 고험한거라구… 어쩜 난 암이 아니라두 다른 사고로 일찍 죽었을런지두 모르지. 당신이 일본에 나갔고 그런 《배반》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살아있은건지두 모르잖어. 난 이겼소. 당신이 날 사랑하는 그 마음때문에 이겼구 석달을 못넘긴다는 간암에 항거하여 여적 살아온거 아니겠소. 난 행복하오. 여보, 인생이란… ―불행이든 행복이든 지어 죽음과 환생까지도 전혀 뜻밖으로 되여있는게 인생이지요. 어리광대극 같지요. 정말 인생이란 그런것일가요… ―그런것일망정 우린 우리 사랑을 흐트러짐 없이 지켜낸것이잖소. 금전에도 천당에도 유혹되지 않는 사랑은 얼마나 보귀한것이오. 더우기 지금 세월에 말이오… 한희와 비애가 차넘치던, 안해가 집에 들어선 그날은 2005년 양력 4월 20일의 한밤중이였다.  14. 보내야 할 땅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말렸던 일본땅엘 안해는 갔었고 가서 생명을 잃을번하고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질 친 《생지옥살이》를 면치 못한것이였다.  그것이 죄의식으로 되여 안해는 내내 죄송스러워했고 눈물지었다.  안해는 그간 몇번이나 나를 끌고 병원으로 가 암인지를 재확진하고저 했으나 번마다 나의 굳은 고집앞에 손을 들고말았다. 간암이겠지, 아니 죽을 때가 되면 죽겠지. 검사한다고 암이 나을가. 그보다는 암도 나의 강인한 삶앞에 손을 들고만거야! 가 아집으로 깊이 배긴때문이였다.  간암!! 나는 간암환자― 2년이 가깝도록 나는 왜 죽지 않고있을가? … 나는 구경 언제 죽는가?… 아, 무섭다. 《병원》이란 두글자가 젤 무섭다. 젤 추악하고 젤 저주스럽다. 그건 염라왕이나 다를바없게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의사놈들은 구경 의사인지 백정인지 알바없게 나를 혼동시키고있다. 한번은 감기에 걸려 주사를 맞았는데 주사를 맞고 집에 와 앉은것이 쿡 하고 엉덩이에 못이 박혀서 튕겨일어나 보니 그때까지 내 엉뎅이에 주사바늘이 꽂혀있은채로였던것이다. 의사란 놈은 아마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시각까지 밤에 흘레붙는다거나 술 처먹을 생각만 골똘했을가. 곁집의 아줌마는 맹장수술을 한지 이태동안을 배안에다 가위를 넣고 다녔는데 의사는 왜 가위도 꺼내지 않은채 배를 꿰맸을가. 사람들은 그런다. 건장한 사람도 병원엘 들어서면 병자가 된다고… 위암이 더 붓지 않으면 이 여윈 놈이 당뇨병이나 고혈압환자가 될지도 모를것이며 이제 석달을 못넘긴다는 사형판결을 받을것이 불보듯할게 아니란  말인가… 아아, 닭살이 돋고 뒤덜미에 찬기운이 인다. 으스스 떨린다.   그래, 아는것보다 모르는게 낫지. 녀인은 의심하지 말고 믿고 데리고 살아야 행복하듯이 암이란 놈은 모르고 사는게 도리여 편할것이라고… 아프다, 또 아파난다. 위속에 지푸라기가 쌓이고 가시방망이가 들어있는 느낌이다. 밥도 조금씩 하루에 열서너끼로 나누어 먹건만 왜 소화되지 않고 구토하고 설사를 하는건지… 간이 작용을 못노니 위액이 마를것이고 위벽이 염증을 일으킬거였다. 한번씩 아픔에 입술을 악물고 땀벌창이 될 때면 안해는 그저 내 머리를 붙안고 흐느낌을 먹는다.  안해의 고통은 더 이를데 없었다. 남편의 《사형선고》만 해도 앞이 막막한데 일본에 나갈 때 꾼 10만원이 20만원으로 불어 빚독촉이 심했고 그러니 친척간이 원쑤간으로 번지고있는 판국이였으니 그저 죽지 못해 사는 꼴이였다. 직업도 띄우고 《사형선고》를 당하고 주위 사람들을 원쑤로 만들고… 어느날 나는 오래동안을 두고 고민해오던 말을 안해앞에 했다.  ―여보, 당신이 아까와서 차마 말 못꺼냈소만 이대루야 살순 없잖겠소. 밤낮 랭수 한사발 떠다놓고 귀신한테 빈다구 죽을놈이 안죽을수도 없는거구. 은행대부금을 내여 한국엘 나가 버는게 어떠하오… 불은 불로 끄구 독은 독으로 치랬다구 빚도 빚을 더 지는 방법으로 더 큰 돈을 버는 길을 열어야지… ―사신이 시시각각 당신을 위협하는  때에 내가 당신 놔두고 어찌 떠날수 있겠어요. 나때문에 당신 그런 몹쑬 병을 얻은건데 이제 또 어찌…흑흑. 안해는 내 목을 끌어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아니요. 남편을 살리기 위하여, 빚을 갚고 우리 자식을 류학보내기 위하여 한국엘 나가는게 아니겠소. 나는 아마 당신을 기다리느라 더 아득바득 살수 있을것이오… 안해는 그렇게 한국으로 떠나게 된것이였다. 출국비자는 희망이였다.  ―한국엘 가면 일본에서보다 한결 안심하고 돈 벌수 있을거야요. 말이 안통하는 일본에선 걸음마다 걸채이고 넘어져 코를 깼다면 한국에선 걸음마다 기운이 날걸요, 날따라 해외나들이 시책이 좋아진다는 고국이잖아요. 이번에는… 이번에야… 그날 밤 안해는 출국비자를 안고서 아기처럼 기쁨에 겨워 울었다.  안해는 귀가 반년만에 다시 집을 떠나게 되였다. 나는 몸이 말째여서 연길공항까지 배웅할수 없었다. 그저 집문앞에서 배웅으로 앙상한 손짓만 했을뿐이였고 안해가 보이지 않을 때부터 눈물만 좔좔 흘렸을뿐이였다. 안해도 소리내여 울면서 갔을것이고… 동경을 해탈하고 서울행에 오르는 안해를 바라는 내 마른 육체는 해질녁까지 추풍에 나붓기고있었다… 죽을 때까지 이 악물고 분투해야 하는게 인간의 종지가 아니랴. 그런 종지는 또 변함없는 사랑이라야 싱싱한 생명력을 갖고있는거고… 돈은 죽음을 관리하는 가장 문명화된 도구다! 사랑은 죽음을 이겨내는 영원한 주제이다!!… 정녕 지금 세월에 변함없는 사랑이란 그 얼마나 보귀한지… 2007년8월18일 ( 2007년 11월호) 
2    [중편소설] 정신무진(1) 댓글:  조회:2432  추천:62  2007-12-21
[중편소섫] 정신무진 량춘식 ―동경을 해탈하고 서울행에 오르는 안해를 바라는 내 마른 육체는 해질녘까지 추풍에 나붓기고있었다.   1. 구 들      ―구들은 예술이야요. 안해가 하던 말, 그 말을 난 잊을수 없어한다. 죽음이 닥쳐 이발로 밸을 물어 끊는 아픔의 시각에마저 기억할것이며 죽어서도 천수경처럼 읊조려갈것이다.  어떻게 그런 말이 다 나왔을가, 공부가 통 머리에 들어가지 않아 16세 어린 나이에 생산대에 나와 일했다는 그녀의 입에서 《구들은 예술이야요》 그런 말이. 또 나는 여적 안해의 그 말을 잊지 못해하는것일가. 그 말을 하던 때가 언젠데, 하긴 오랜 세월이 흘러갔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난 안해를 내놓곤 이 세상 어떤 녀인도 사랑할수가 없음을 믿는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기에 그때, 먼 앞날 안해가 날 버릴수도 있을거라는 신화 같은 예측을 해본적이 없었다. 설령 그런 비극이 온다손쳐도 난 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안해만을 기다리며 살리라고… 그 암흑한 세월에 10년을 녀자애들과 말 한마디 나누어보지 못하고 살아온 《인간온역》이던 나에게 감히 말을 건네고 웃음을 짓고 사랑까지 한 그녀를… 1975년, 중국의 《암흑》(문화대혁명)이 장장 10년만에 결속이 되던 해였다. 여름은 지글지글 끓었다. 나는 그냥 삶이 고독하고 허기찼다. 해방전(1947년)에 교육사업에 참가한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동냥온 거러지가 한 성씨(안동김씨)라는데에 동정이 가 한해를 밥 주고 재우며 돌봤다는것을 조건으로 성분을 부농이라 매김받았고 그 미열로 인해 《부농분자》,《반당반사회분자》로 된때문이였다. 그러니 그 억울한 루명을 벗기전에 나는 언제든지 《나쁜》집안의 자식이였다.  그 지루하고 긴 턴넬속 같던 나날에 아버지는 억울히 억눌렸고, 어느해는 보수 없이 애들을 글 배워주고 밤엔 투쟁을 받았고… 그런 무거운 공포의 벽속에 갇혀 나는 10살부터 19살까지를 맞고 왕따당한게 아닌가.            나는 그런, 몹시 힘든 길을 가는 애였다. 정신이 한껏 고갈되고 육체마저 비쩍 말라 뼈만 앙상했다.  ―야, 너 이불짐을 싸고 랠 아침 후영으로 일하러 가라. 생산대장의 부름이였다.  평범치 않은 1975년, 그해 여름에 마을로 내려온 고중졸업생들을 통털어 귀향지식청년이라고 칭한다. 난 국가배급을 타먹던 집 애였으나 촌에 내려와 《로동개조》를 하기에 지식청년이란 이름을 달수가 없었다. 《지식청년》이란 《도시나 현성》을 상징하기에 《귀향지식청년》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닐수 없었다.  귀향지식청년들, 그 19살무리는 없었다. 이튿날 이불짐속에 책들을 꿍져넣은채 나만이 후영으로 가는 소수레에 오른것이였다. 곁에는 마을의 로농 몇이 담배대통만 풀썩풀썩 날리고. 난 중국에 4인무리가 꺼꾸러진 지금에도 의연히 문화대혁명에 의한 후유증으로 인해 왕따당하는구나를 소태처럼 씹어야 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후영은 마을에서 20리도 더 되게 떨어진 곳이다. 무너지듯한 산아래로 철길이 아낙년의 허리띠처럼 둘러가고 철길따라 백강이 흐르는데 백강이 ㅅ자형으로 갈라져서 가두어넣은 십여헥타르의 옥토가 바로 후영이란다.  백강이 깊어서 소와 수레를 함께 배에 실어서 건넸다. 배줄이 챙챙하고 울었다. 시커먼 물굽이가 하늘을 업고 몰려오고 몰려가며 당금이라도 배를 들어엎을듯 기세찼다. 나는 너무나 무서워 소꼬랭이를 꼭 틀어잡았다. 물에 빠지면 젤 믿을게 소였다. 무시로 뱀이 강물을 따라 헤여가고있는게 보였다. 그때마다 닭살이 돋았다.  점심은 허리에 처맨 벤도밥을 풀어서 수레우에서 먹었다. 너무 멀었다. 덜커덕거리는 수레때문에 밸이 아팠고 여윈 엉뎅이에 물집이 졌던지 아려서 수레에서 내려 걸었다.  산그늘이 들 무렵에야 목적지에 당도했다. 로농들을 따라 땅굴막으로 들어서기전에 허리띠를 잡고 숲을 찾았다. 잠간 헤쳤는데도 굉장히 아름다운 늪이 나타났다. 칡벼랑을 세우고 수면은 잉크빛으로 고요했다. 돌멩이 같은 조개도 살고 팔뚝만치 실한 가물치도 산다는 늪이 이 곳이란 말인가. 황홀했다. 잠간 취했다. 그러나 로농의 부름소리가 날 끌어가버렸다.  섬에는 땅굴막이 동서로 백보가량 사이두고 두개나 있었다. 1생산대와 2생산대의 막이였다.  썩은 나무토막으로 세운 구새만 아니라면 막인지 흙무지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땅을 가슴깊이로 파고 지은 땅굴막에 들어서면 가운데를 봉당으로 구들이 량쪽으로 갈라져 놓였다. 연기가 나서 때시걱마다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불이 잘 들지 않다보니 눈물코물을 짜면서 먹는 밥이 맛있은적 없고 구들도 가마목을 내놓곤 랭돌이다. 그러니 후영으로 올라온 사람마다 얼마 있지 못하고 치질이 나오고 랭병으로 허리가 아파서 《페인》이 되여 되내려간다. 그나마 《정배살이》 외딴 섬이라 두부마저 먹을수 없어 때식마다 호박잎따위를 숭숭 썰어넣고 끓인 장국이나 호박채를 먹을뿐이다.  자는것과 먹는것이 말째고보면 만병이 찾아들기 마련이고 사는게 지긋지긋할것이다.  한여름이라 벼들이 소리치며 자라는 때여서 농군들은 나날이 증가되여 막안에 든 사람이 열댓이나 되였다.  나는 그저 굽석굽석 하라는 일만 했고 그런 와중엔 짬짬이 사람들 눈을 피해 외국어(일어), 한어로 된 소설책이며를 외우고 보는데 정신이 팔렸다. 그런통에 로농들의 잔소리가 늘 붙어다녔다. 일군들은 거개가 환갑을 바라보는 늙은이들이였고 유독 나 혼자 청년이였다. 난 패기라곤 없었다. 그들이 기면 나도 기고 그들이 누우면 나도 눕고 그들이 연기에 콜록거리면 나도 같이 콜록거렸다.  그러던 어느날, 내 가슴에 달이 떴다. 가슴이 설레여 숲을 찾아들어 자주 오줌을 누었다. 풀벌레들의 극성스런 울음이 반가왔다.  생산대장의 딸, 나보다 두살이 어린 리계복이였다.  우리 집 앞으로 고래등같은 집이 계복이네 집이였다. 이른아침에 고기그물로 비늘이 번뜩이는 붕어를 잡아들고 들어설 때와 가끔씩 문밖의 나무그늘에 앉아 외국어를 암송낼 때 그냥 바자틈으로 날 재미있게 내다보다가 내 눈길과 마주치고는 얼굴 붉히던 계집애였다. 걔가 언제 저렇게 탐스럽게 컸는지 참 모를 일이였다.  난 가정배경이 《나쁜 집 애》이기에 걔를 똑바로 볼 엄두를 못내고 말 한마디 나누어보지 못한 처지였다. 그런 계복이가 어떻게 되여 후영엘 다 올수 있단 말인가. 밥짓는 할멈을 도와 식모로 왔다고, 상등로력을 웃도는 12부씩 받으러 왔다고 그랬다. 그래 네 아비가 생산대장이니까 뒤문거래로 공수부자하러 온거구나. 그래도 그렇지, 이 험한 골이 밤에 전등도 없는 까막나라, 범과 늑대무리들이 소를 물어간다는 이 험한 골로 새파란 1등처녀가 환장할려고 온게란  말인가… 하여튼 계복이가 온 연유를 난 알 필요가 없었다.        이튿날, 난 일터에서 쉼참을 리용하여 막으로 달려왔다. 무더기로 쓸어나오는 연기에 계복이가 목을 꺾고 줄기침을 터뜨리는게 안쓰러웠던것이다.  난 가마를 들어내고 삽으로 부뚜막안을 두뼘정도 더 파고 놋돌고리를 낮추었다. 다음 구새목아래 개자리를 파헤쳤다. 이런 변이라고야. 구들지식이란 0점이였다. 연기는 의례 높은 곳으로 향한다. 연기가 평평한 구들곬을 흐르게 하는 흡인력을 가지게 하는데는 개자루가 반메터좌우 깊어져있어야 하는건데, 마치 주먹을 당겼다가 내미는 힘의 산생처럼 구들곬으로 흘러나온 연기가 갈앉았다가 구새로 쓸어나가는 힘의 산생을 말이다.  ―오빤 이거야. 계복이가 엄지를 내밀며 량볼에 보조개를 피웠다.  불은 훅훅. 소리를 내며 빨아당기고있다.  ―너의 공수를 오늘부터 1부씩 더 올린다.  막장 터줏령감이 공수책을 꺼내보이며 공포했다.  ―니 그 구들고치는 기술을랑 뉘기헌티 배웠노? 이잉? 난 대답할수가 없이 그저 머리만 떨구었다. 문화대혁명때 투쟁의 혹형에 못이겨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한 할아버지한테 보고 듣고 배운것임을 뉘 알랴… 앞의 농막에서도 날 《모시러》왔다. 나도 뜻밖이였다. 13세 소년때 보아 기억한것이 실효를 발휘할줄이야. 난 단통 《책벌거지》로부터 《구들박사》로 불렸다.  내가 어떻게 구들이 뜨겁게 불이 들도록 고쳐냈는지 모른다. 그때문에 계복이가 뜻밖으로 나를 잘 대해주고 말까지 걸어오군 하니 난 더 기운이 났다. 계복이가 때시걱마다 맛갈스런 음식을 만들게 늪에 나가 손더듬으로 굵은 가물치를 어렵잖게 잡아들였다. 이상도 했다. 로농들이 아무리 손을 넣어 더듬어도 다치지 않는것을 내 손이 버들뿌리속을 넣어 더듬으면 가물치대가리가 쥐이는 일이. ―넌 오전만 일하구 오후엔 고기나 잡아와라. 그렇게 난 쉽게 공수를 벌어내는 《기술자》로 떠받들렸다.  고추장을 풀어놓고 깨잎과 가지를 숭숭 썰어넣은 얼벌한 가물치에다 빼갈을 얼근히 마시고 뜨끈뜨끈한 구들에 등과 배를 붙이면 잠도 잘 온다.  호롱불을 끈 막안엔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코를 곯지 않는건 오직 그녀와 나뿐일거였다. 난 느꼈다. 그녀가 어쩜 나때문에 후영을 찾아온것일지도 모른다고… 난 그녀를 사랑하고있는거였다. 그러나 나 혼자만 알고있는 일이였다. 어쩜 영원히… 그러나 새록새록이 아침마다 계복이가 ―구들이 얼마나 뜨뜻한지, 구들은 예술이야요. 챙챙한 목소리로 떠들 때마다 난 한없이 가슴 설레군 했다. 그때마다 난 문밖을 나서서 숲속을 찾았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이른아침이면 난 늪으로 나갔다. 수면에 솟은 절벽을 마주하고 심호흡도 하고 손더듬으로 고기도 잡았다. 그때면 계복이도 쌀 일러 나오군 했다. 그의 그윽한 눈동자와 발그무레 상기된 모습을 나는 감히 바라볼수가 없었다.  나는 졸장부였다. 점점 다가오는 계복이를, 기회를 내주군 해도 뒤걸음질만 치고있는 나에게 그녀는 그저 남모르게 안타까워할뿐이였으리라… 그러나 난 그때 예감이 있었다. 만물이 나름대로 자기 마당이 있고 통하는데가 있는것과 같이 이 《나쁜 집 애》를 좋아하는 녀자가 있는것이라고. 저 고풍스런 칡벼랑늪이 그걸 증명한다고 믿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가고 그녀도 간지 오래다. 추운 겨울바람속에 나는 몇몇 로농들과 벼, 콩 양창을 하느라 눈코뜰사이 없었다. 설대목이 가까워올수록 집생각이 간절했고 문만 열면 볼수 있을 계복이가 못내 그리웠다.  큰눈이 내리고 바람이 자고 일은 끝날줄 몰랐다.  그믐날 전날, 결국 나 혼자만 남아 쌓인 벼무지와 콩마대를 지키기로 되였다. 밖에서 눈보라가 아우성치고 밤정적을 가끔씩 찢으며 승냥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믐날 아침, 새들의 지저귐소리에 잠을 깨여 문을 여니 조용히 눈이 내리고있었다. 왜 그런지 울컥 설음이 북받쳤다. 다병한 어머니와 억울한 루명을 마저 벗지 못한 아버지와 세 녀동생들의 파리한 얼굴이 번갈아 떠오르며 올음이 비명처럼 터뜨려졌다. 점잖은 소의 울음처럼 울었다. 울다가 불쑥 드는 생각이 있었다. 혼자라도 설을 설처럼 쇠야 한다고 말이다.  오전에는 덫으로 벼북데기에 내리는 참새를 무려 이십마리나 잡아냈고 오후에는 백강에 나가 얼음을 끄고 개구리와 손바닥만큼씩 큰 붕어를 스무근도 넘게 잡았다.  아무리 《나쁜 집 애》라도 어찌 설 쇠라고 술 한근 고기 한근도 보내주지 않은채 내버려둔단 말인가. 그리고 아들을 찾아올수도 없게 《감금》받는 우리 처지야 칼로 생살을 저며낼만큼 아들이 불쌍하고 아까와나리라 속이 무너지며 얼음끄기에 지친 몸을 끌고 막에 거의 다달을 무렵이였다. 나는 부지중 나의 눈을 의심했다. 구새에서 분명히 연기가 나고있는게 아닌가. 눈 씻고 다시 보아도 밥 짓는 연기였다. 저럴수가? 도무지 짚이는데가 없었다.  문을 떼고 들어선 나는 눈앞의 정경에 대뜸 입이 벌어졌다. 겨울하늘에서 선녀가 솜외투 솜바지를 입고 내린거였다. 계복이가 소고기 닷근에 술 한통을 사들고 온게 아닌가. ―울 어머니와 조건을 잡아 다툼질하고 친구네 집에 간다고 나왔거든요. 계복이가 부끄러워하며 변명투로 나온다. 그리고 그는 부끄러움이 가셔지기도전에 막안의 나무기둥을 붙잡고 울었다. 난 그가 왜 우는지 알수 없어 멍해졌다. 그가 겨우 말했다.  ―흑흑, 어쩜 이럴수가… 여기서 홀로 설을 쇠단요, 우리 함께 설 쇠요. 그 말을 듣고 단통 목이 꺽 막혔다.  계복이는 막을 떠나지 않았다. 소고기를 푹 삶았고 참새고기를 기름에 튀겼고 물고기회를 쳐서 우린 술을 들었다… 그날 밤 구들은 따가왔다… 참으로 아프고 쓴 회억의 구들― 우리의 구들은 마냥 따가왔다가 언제부터인지 랭돌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밖에 석탄과 나무가 있지만 구새는 연기가 나기 바쁘다… 나는 치질에 걸렸고 허리가 아팠으며 몸의 어느 부위가 녹이 쓸어 썰그럭썰그럭 소리를 내는것  같았다. 그래도 ―구들은 참 예술이야요. 안해의 그 말은 그냥 내 귀에 쟁쟁 울려온다… 안해가 없는 구들― 지금은 그 구들에서 뜨뜻했던 그 시절의 구들우에 가지런히 누워 창가에 걸린 달을 보며 얘기를 나누던 행복했던 일들을 떠올릴적마다 나는 홀로 중얼거려본다.  ―리계복씨, 나 혼자 있어도 곁에 그대가 누운 같구만… 난 그저 행복할뿐이오.                                                                                                           2. 사 발 우리 집에는 사발도 많았다. 옥사발, 알루미늄사발이 있는가 하면 퉁사발, 된장을 끓여먹는 돌사발도 있다. 세월의 흔적이요 사랑의 축적이였다.  안해는 날 끔찍이도 아낀다. 아니 난 안해를 파르스름히 윤기도는 옥사발처럼 고와한다. 우리가 어떻게 맺어진 사랑이라고. 구들 잘 고치고 물고기를 잘 잡아들이는 덕에 자기는 《총명하고 재주 좋은 총각》에게로 시집간다며 농약(기실은 제조약물)을 마시고 자살까지 할번한 일로 아버지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평범치 않은 사랑이였다.  하루 세끼 식탁에는 옥사발에 수북이 담은 이밥, 사기사발에 담긴 국, 퉁사발에 뜬 숭늉물에 된장이 벌렁벌렁 끓는 돌사발이 오르군 한다.  어느날 안해가 밥상을 마주하고 오래동안 근심하고 생각한것을 터놓았다. 이를테면 지금 남자들은 한국이요 일본이요 어뤄쓰요 하며 돈을 무지무지 번다는데 우리처럼 근근히 소비돈밖에 될수 없는 공자에만 매여달려서 살아서야 어찌 아들의 공부뒤바라지를 할수 있겠느냐는 무거운 화제였다. 하긴 그랬다. 안해는 촌소학교에서, 나는 목릉시의 모 중학교에서 교원사업을 하고있었는데 둘의 로임을 합하여 천원도 되지 않았으며 집값이 짐작없이 폭등하는 시내에서 살수가 없어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씩이나 걸리는 고향의 산골오지에 그냥 집을 잡고 출근하는 우리였음에랴. ―남들이야 어떻게 살든 관계할것 없잖소. 교원들의 공자도 오를 때가 오겠지. ―그게 생각대로 될가요, 그리고 언제까지… ―어찌하든 출국할 생각은 하지 마오. 녀자와 사발은 내돌리면 깨여진다구 조상들이 그러잖았소. 내가 꽥 소릴 지르는바람에 안해가 들었던 사발이 떨어지며 깨여졌다. 안해는 깨여진 사발쪼각들을 주워모으면서 울고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남들 자식처럼 잘 입히고 잘 먹이지 못하는 처지가 안타까워 울었다.  그로부터 몇년이 흘러간 1998년 8월, 아들 학일이가 초급중학교 졸업생이 되자 나도 안달아났다.  ―퉁사발은 떨어져도 안깨져요. 돌사발도 안깨져요. 옥사발, 사기사발도 꼭 깨진다는 법 없지요. 사발마다 넘치게 채워가지고 돌아올래요. 급하면 담장도 뛰여넘는다는 뭣 같이 안해는 자식의 전도를 위해 몸을 내번지는거였다. 나는 내가 리자돈을 꿔서 한국엘 나가보려 했지만 《이틀 일하고 사흘씩 허리가 켕기는 사람이 죽자고 그러는가》면서 기어코 자신이 나가야 한다는거였다.  나는 안해를 말렸다. 했지만 안해는 소학교에 사표를 낸채 흑룡강성 계서시에 사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9만원을 내고 일본에 나가는데 성공한것이다. 연길항공에서 비행기에 오르는 안해는 그 모습이 아름다왔다. 저 같이 섹시한 녀자가 리계복이던가… 가슴이 오리오리 찢겼다.  ―가지 말라는데도… 비행기에 오르는 안해뒤에 대고 난 비명처럼 씹었다.  3. 부엌아궁이 부엌아궁이는 시커맸다. 부엌아궁이속으로 길게 아물아물 안해가 웃는다. 그렇게 가끔씩 나는 백치처럼 부엌아궁이속에 끈질기게 눈길을 걸고 안해를 찾군 했다.  아들을 밥 챙겨주어 학교에 보내고난 뒤면 전화통만 붙잡고 앉았다.  꼬빡 두해동안은 전화통이 불이 났다. 머나먼 동경에서 걸어오는 전화속의 안해 목소리는 그저 구들에 누워 비단이불을 머리우까지 끄집어 덮고서 귀속에 소근거리는 간질거림과 같은 그런 설레임이였다. 바쁘게 버는 돈이라서 얼마 안되는 돈이라도 꼬빡꼬빡 부쳐와 자식 학잡비와 집살림은 근심걱정이 없었다. 그러던 이태후의 어느날부턴가 달포가 지나고 한해가 저물도록 송금표도 더는 볼수가 없고 그저 단 두번의 전화만 받았을뿐이였다. 첫번의 전화내용은 아이앞으로 한해 학잡비 3천원을 보냈다는것, 다음 전화내용은 어느 대학에 록취되였냐는 간단한 물음에 그치지 않았던것이다. 그로부터 긴 시간동안을 남모르게 생활상 쪼들리고 정신곤핍증에 시달려야만 했던것이다.  안해가 집을 떠나 5년만에, 그러니까 아들이 대학에 록취되던 이듬해에야 나는 완전히 안해로부터 배신을 당한 자신을 믿을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들이 먼저 알고 한해가 되도록 비밀에 붙였을줄이야. 아들은 이 아비가 불쌍했던지 주일마다 전화를 걸어오군 했다. 비행기를 타고도 여섯시간씩이나 걸린다는 머나먼 해남도에서 걸어오는 전화였다. 전화내용은 번마다 같은 내용이였다. 《아버지, 저녁은 뭘루 드셨나요? 아끼지 말구 고기두 사 드셔유…》 뭐 그런것들이였다. 그런 일상적인 전화통화가 계속되던중 어느날엔가 전화속으로 울음먹는 아들의 문안이 들릴줄이야. 아들이 왜 운단 말인가. 그리워서도 아닐것이고 설대목도 아닌데다… 이번에는 내쪽에서 그 연고를 캐고들어서야 아들이 《어머니가 일본에 딴살림 꾸리고있어요…》 하고 실토한것이다. 넌 어떻게 그걸 알았냐? 고함을 질렀을 때 아들은 《어머니도 많이 웁디다. 목이 다 쉬였구요. 뭐 그런 연고가 있었다나요… 그 남자와 살지 않으면 안될… 어머니도 생활이 쪼들리니 내 학비만 빠듯이 부쳐준다고… 아버지께 한없이 미안하다고…》 아들도 목이 메여했다.  하늘이 무너질듯 눈앞이 까매났다. 난 구들에 엎딘채 오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찬구들에서 꺽꺽거렸고 그러다도 기절을 했다. 하루밤 몸부림끝에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찬구들우에 잠을 깼을 때는 창문가로 숫돌빛의 새벽이 새여들 무렵이였다.  나는 내가 신령의 부름을 받았음을 느꼈다. 전신에 땀이 내배고 량볼이 확확 불 붙는듯, 예리한 안광과 명철한 사색속에서 채찍질하고있었다.  부엌아궁이앞에 안해는 앉아서 웃고있었다. 오라고 손 젓는다. 나와 안해는 후영의 부엌아궁이앞에 서성이는 처녀총각이였다. 계복이가 말했다.  ―지금부터 어떤 역경이 부딪쳐도 절개 굽히지 않고 우리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 증거루 이 《약물》을 마십시다! 그러고 계복이는 사발에 찬물을 붓고 거기에 부엌아궁이속의 가마밑굽재를 긁어서 풀었다. 시커멓게 그을림이 떴다. 어렷을적 종이를 태운 재를 먹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그래서 종이재와 부엌의 그을림까지 먹던것처럼 우리 둘은 절반씩 갈랐다. 그리고 꿀물인듯 꿀꺽꿀꺽 마셨다.  부엌아궁이속의 가마밑굽재, 그건 내 령혼의 뭔가를 상징하고있었다. 희망의 끈이고 액을 물리치는 부적으로 보였다.  나는 부엌으로 내려갔다. 옥사발에 검댕이 재를 담아 물을 붓고 저었다. 걸직했다. 마시기전에 난 허드레처럼 소릴 내질렀다.  ―내 안해는 그 누구도 앗아가지 못한다. 내 안해가 남의것이 되다니… 잠간 유린당할수도 있겠지… 내 안해는 곧 리지를 회복할것이다!! 그리고 꿀꺽꿀꺽 마시니 그제야 웅웅거리던 머리가 트이고 정신이 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약수》라기보다 《신수》를 마신 기분이였다. 나는 또 불이 다 죽어 재만 남은 새벽에 슬슬 기여일어나 부엌아궁이에 머리를 들이밀어도 본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 거울엔 숱검뎅이투성이인 걸인 하나가 보인다. 검뎅이가 묻은 내 골은 안해의 사랑이 묻은 골이 아닐가… 그런 정신상태에 처해있을 때, 나는 이미 학교로부터 무단결석때문에 경고처분 세번째만에 강위에서 제명된후였다… 4. 퉁공기와 옥공기 우리 집에 찬장으로 구리빛공기, 보시기가 하나 보인다. 할아버지적부터 전해내려온 퉁공기였다.  나는 퉁공기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한번도 퉁공기를 써본적은 없다.  ―네 할아버지가 한평생 저걸(퉁공기)로 술 부어 마셨지 뭐가. 술만 얼근하면 퉁공기를 마주하고 말했지. 퉁공기야말루 사내 맘을 닮았다고. 할머니가 천수경처럼 퉁공기를 마주하고 하던  말이다. 그 말의 오묘한 깊이를 그제야 알것 같았다.  퉁공기, 퉁공기는 언제봐도 구리빛이다. 옥공기곁에 놔도 그 현란한 빛갈에 물들지 않는다. 찬장속에 홀로여도 고독을 모르고 엄동속에 추울수록, 한여름의 폭양속일수록 더욱 그 빛갈이 칼날처럼 쨍하다. 퉁공기는 떨구어도 깨여질줄을 모른다.  상징적이였다. 기독교신자처럼 치명적으로 나갔다. 막을수 없었다. 정신의 극기를 모았다. 나는 퉁공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천히 그리고 무거운 안위가 되고있었다. 상우에 씹던 명태쪼가리라도 올리고 퉁공기에 술을 붓는다. 아니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퉁공기 맞은켠으로 옥공기도 놓고 수저도 차렸다. 자, 마시오 계복이. 그런 중얼임으로 퉁공기의 술을 들이키고는 계복이 몫으로 부어놓은 두공기의 술도 말끔히 마셔버리군 했다. 처음에는 한주일에 한번꼴로 마셔두었지만 차츰 그 차수가 빈번해갔다. 오기와 번열로 마시던 술을 차츰 상징으로 마셔대다가 나중엔 한탄이 술을 마시게 했다. 전화소리만 울리면 불에 덴 소처럼 뛰쳐일어나 전화기를 부여잡는다. 《여보》라고 부르면 대방에서 아들의 애원조가 들린다. 《아부지, 또 술 취했어… 제발 좀…》 아들은 강경하다가 나중엔 부탁과 애원조로 나온다.  자존, 정진, 기대, 노력, 기쁨, 행복, 악, 모지름… 모든 심리방선이 그앞에서 무너지고있음을 실감했다. 어쩔수 없었다. 안해를, 그 풋풋하고 싱싱하며 심장 같던 안해를 일본의 어느 사내놈에게 앗기다니 억장이 무너질수밖에… 난 속이 좁은 인간이다. 내 눈에 더 다른 녀자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옥공기를 바라고 슬프게 묻는다. 안해야, 네가 나에게 해준게 뭐냐? 돈 몇만원 부쳐왔다고? 그 돈을 이 몇년간 아들을 공부시키고 먹고사는데 썼을뿐이 아니냐. 날 배신하려거든 어느 누구처럼 고대광실을 지을만큼한 돈이라기보다 적어도 십만원쯤이야 돈을 보내주어얄게 아냐. 이게 뭐야. 난 량손에 쥔게란 없이 안해 잃고 돈을 쥐지 못하고… 애초에 너희도 몰랐을거야. 내가 비극을 저지른다는것을. 인간이란 그런거야. 번연히 알면서 빠져들어가는게 인간상정이라던데… 넌 깨여진 옥사발! 난 널 저주한다. 아니, 저주하다니, 그럴수 없어. 난 널 사랑해, 사랑한다구. 그댄 꼭 돌아올거야. 뒤동산에 진달래가 피고 뻐꾹새 우는 봄날에 계복이는 꼭 나에게로 돌아올거야. 돈도 싫어. 그저 빈 몸으로 와줘. 몸이 와주기만 하면 돼. 그랬다. 저녁마다 술이 들어가면 그렇게 말했다. 뼈로 말했다. 피로 말했다.  구들은 차갑다. 차츰 불도 며칠에 한번꼴로 피우다나니 바닥과 구들엔 간이국수, 깡통찌꺼기들이 나뒹굴고 여름엔 파리가 기승을 치고 겨울엔 창유리와 벽에 얼음이 드레드레 언다.  홍문이 아파난다. 홍문과 고환의 거리가 졸리면서 오줌줄기도 가늘다. 허리가 아프고 밸이 탈린다. 술이 과한 날에는 이튿날 잠을 깨고보면 홍문의 괄약근이 조금 열렸는지 똥물이 나와있었다.  불을 때자, 불을 때야지 하면서도 몸은 점점 더 가증스러워난다. 어떤 날 불 때러 부엌으로 내려갔지만 부엌아궁이속으로 골을 디밀어 그 컴컴한 아궁이속 끝쪽에서 안해가 나오는 환청으로 흥분을 해보군 하였으니… 미친놈이 다된것일가? 아니, 난 미치지 않았다. 미치지 않는다.  나는 운동이랍시고 몸을 움직여본다. 오래 살아야지. 오래 살아야 자식의 찬란할 래일을 볼수가 있을것이고 안해가 돌아올 날까지 버티여낼게 아닌가. 나의 눈길은 또다시 구들우의 밥상께로 가 걸린다. 퉁공기와 옥공기가 나와 계복이처럼 마주 앉아 즐거운 기분을 뿌려준다. 나를 손짓한다. 그것은 내 고독의 세계에 인이 박히고있는 유혹이 아닐수 없었다. 5. 이발 문밖에 나서서 먼 산들이 어둠속으로 불려가는 저녁무렵이면 그리움보다 더한 아픔이 나를 울린다.  홍문이 아프고 허리가 아픈데다 이발까지 아플줄이야. 안해가 있을 땐 어디 아픈데라곤 없었댔는데. 조금만 불편해도 안해가 긁어주고 만져주고 자근자근 눌러주면서 《내 손이 약손》이야를 불렀는데. 퉁공기에 술을 마실 때 짝태나 땅콩따위 질기고 딴딴한것만 씹어먹은 탓도 있으리라. 이제 더는 그깟것들을 입에 넣을순 없었다. 그래, 두부안주를 왜 생각못했을가. 모든 고민과 아픔은 술로 대처하다보니 밥도 며칠씩 먹지 못할 때가 보통이니 그럴수록 신체는 더욱 약해질밖에. 나는 문득 이제 더 명태와 소힘줄따위를 사먹으려 해도 돈이 떨어졌음을 느꼈다.  마을 소매점에서는 비싼 명태를 맞돈이 아니고는 주지 않기에 린근마을 한족동네로 가 두부집에 들르는수밖에 없었다. 다행으로 두부는 이름만 적고 수자를 그어 외상치기할수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아버지 굶어죽는다. 너 돈 좀 부쳐주렴아. 엄마와 련계하면 넌 돈을 얻을수 있잖아.   내 아들은 효자였다. 한주일새에 300원짜리 돈깍지를 받을수 있었다. 얼마 안되는 돈으로 부실한 아비까지 돌보느라 아들은 실로 얼마나 근검절약하고 속 태우는지 나는 알고있었다. 그렇지만 무슨 방법이 있으랴. 난 이제 더는 일할 맥이 없었으며 병 있고 술중독이 온 놈이였다.  돈만 생기면 큰 술통에다 술부터 사 채웠다. 그리고 두부값도 몇십원이나 물군 했다.  어느날 아들이 전화에서 말했다. 아버지땜에 엄마한테 학비를 몇천원이나 높이 불렀다고… 죄송스럽다고 그랬다. 야야, 뭐가 죄송스럽냐, 이 아비를 배반한 그런 나쁜 년한테는 련민을 집어치워라 고만. 그랬다. 아들은 전화에서 한참이나 울음을 먹는갚더니 모기만큼한 소리로 《그쪽 엄마한테도 뭐 말 못할 곤난이 있는가봅니다. 전화적마다 목소리가 영 떨리고 쉰걸 보믄…》 하였다. 그날 밤 난 나의 허벅지를 꼬집고 까드득까드득 이발을 갈면서 울었다. 이게 뭐란 말인가. 글쎄 잘 살겠다고 나간것이 너마저 불편해지고있는 꼴이라니 너도 못살고 나도 이 꼴이 되고 우리 집은 철저히 깨여진것이냐.  이발이 아파난다. 우리 가문에 남자들 유전적으로 암에 걸린 사람 없고 오복에 속하는 이발병이 없었다는데 난 왜 이발통증에 견딜수가 없는겐가. 왼쪽 볼이 떡을 문것처럼 부었다.  두부를 먹어도 쩡쩡 아파난다. 술을 억망으로 들이켰다. 술에 취해서 잠들군 했다.  술은 좋았다. 그리움도 아픔도 마비시킨다.  그러나 필경 술은 육체를 해친다. 술을 마신 이튿날이면 속이 쓰리다못해 열물까지 토하고나면 아픈 속을 푸느라 또 술을 마신다. 술로 이어지는 나날은 길고 길었다. 몽롱한 의식속에 모든 기억과 소원들이 취해서 쓰러져있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못견딜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술을 마셔온 원인을 단 두가지로 귀납할수 있었다. 하나는 취중 즐거움 즉 안해와의 지난 행복했던 일들을 현실처럼 환청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그리울 때 그 아픔을 얼리기 위한것이였다. 그런데 이제 이발이 아픈것을 견뎌내기 위해 술을 마신다면 너무 마셔야 하기에 속이 폭팔할것 같았다.  ―돈은 죽음을 관리하는 가장 문명화된 도구다! 나는 그렇게 소태 씹듯이 중얼거려보았다.  나는 아들이 부친 돈을 넣고 떠났다. 백강 굽이굽이 뻐스는 달린다. 짙푸른 여름풍경속에 돈 벌어와 이제 시내에 들어가 살아요. 하던 말이 떠오르며 쿡 하고 쓴웃음이 나갔다. 안해의 희고 가쯘한 이발들이 박씨처럼 날아가고 날아온다.  팔면통시 구강병원에서 의사는 이발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아―의사가 불렀다. 입을 짝 벌리자니 자꾸만 울컥거린다. 그럴 때마다 아래배에 기운을 뻗쳤다. 그래도 구역질은 멎지 않는다. 구역질은 안개나 연기처럼 깊은 곳에서 피여오르기도 했다. 대부분은 그러다가 종잡을수 없이 사라졌다. 안개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것이 몸밖으로 새여나올듯이 목구멍으로 스멀스멀하며 퍼져오르면, 어금이를 지그시 물어서 그것을 몸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노라면 합작이 잘되지 않을 때 의사는 내 입에 아예 자갈을 물렸다. 자갈사이로 안이 들여다보이는 동안 나는 한숨이 나오고 눈물이 나오고있었다. 의사는 이몸에 마취주사를 찔렀다. 단통 아래턱이 뻣뻣해나며 돌이 달린듯 불편해난다. 그때에야 난 불에 덴듯 놀라며 의사를 밀치고 벌떡 뛰여내렸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겨우 말이 나갔다. 왜 마취주사를 놓느냐, 이를 두대나 뽑아야 된다고, 이 한대 하는데 값이 얼마나 되냐, 뭐 이백원씩이라구… 난 그저 이를 뽑아만 달라, 새 이는 싫다… 그러고 다시 벌렁 드러누워서 기다리는데 안해가 일본에 나가 번다는것이 이 꼴을 하고있다니 설음은 또 분개를 타고 목구멍으로 치민다. 그 치미는건 다시 미역가닥이 부패한 냄새나 쇠녹의 비린 내음으로 바뀌여 치민다. 내 구역질은 심히 날 못살게 굴고있는거였다.  ―왜 자꾸 뒤채입니까? 의사가 참다못해 역정을 쏟았다.  ―속이 자꾸 구역질을 하고 가스 같은 공기로 차올라서요. 별 일입니다. 그리고 냄새도 생전 못맡던 냄새로 차고요. ―왔던김에 속시원히 시병원엘 가 검살 해보세요. 요즘 상해와 일본에서 새 의료기를 들여왔다던데. 병이란 미리 알아서 처치해야죠. 안그러면 키우거나 죽음밖에 기다릴것 없지요. 이발 두대나 뽑았다. 혀가 헐렁 들어가 앉았다. 허전했다. 생을 함께 하지 못하고 락오된 안쪽 이발 두대가 한없이 아까왔다. 내 이발 하나 건사 못하는 주제니 안해도 가버렸잖아. 그런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사내의 능력이란 도대체 뭘가… 참으로 알수 없는 문제였다. 그건 철학이였다.  ( 2007년 11월호)   -계속-  
1    [단편소설] 눈이 내리네 댓글:  조회:2149  추천:65  2007-10-14
[단편소설] 눈 이   내 리 네 량춘식 (연변) 된눈이 터지려나 눈이 꺼매서  플래트홈을 나서니 희끗희끗 눈발이 날린다. 지도에서도 마지막 현성이라서 객들이 많이 내린 탓이던지 렬차안은 헐렁하니 빈자리가 많아졌다.  다리를 뻗고 편히 앉아갈 자리가 있음에도 찬수는 마지막 차바곤에서도 맨 구석쪽일 자리에 반쯤 엉뎅일 붙 였다. 출입구때문에 소란스럽고 그보다는 곁에 달린 변기실문이 한번씩 여닫힐 때마다 악취가 진동했지만 그에게는 그것마저 다행으로 느껴진지 오래다.  기차는 그의 생활에 쭈욱― 련결돼온것이다. 한주일에 한번, 많아서 세번씩은 기차를 타야 그 담배의 니꼬찐 같은《앤돌핀》이 풀리군 하였다. 오직 저 파란렬차, 오전 일곱시 반에 상행하여 단 한정거장만인 현성으로 갔다가 다시 오후 네시면 하행선으로 귀가하는 그런 왕복의《기차 타기》만이 유일한 생명연장의 유습 같은거랄가… 어쨌든 찬수는 정신이 기차에 실려있었다. 한밤중 깜깜한 집안에서 잠을 깨고는 이것이 긴 턴넬속을 지나는 기차안이겠거니 여기거나 한여름날 밭에서 길게도 뻗어간 호박넝쿨을 보아도 저건 칙칙폭폭 달리는 파란렬차로 착각을 해버리는수가 보통이였다. 그만큼 그는 기차를 수없이 탔다. 너무 타서 렬차원들을 다 안다. 렬차원들은 이젠 못본척 혹은 아예 그 존재가치를 부정해버린듯 그런 눈치들이다. 그러니 차표는 뗄 필요가 없는거였다. 《뢰물》을 먹이기도 했다. 기름개구리 두마리씩 준적도 있고 겨울에 언 참새 두마리씩, 여름엔 닭고기버섯을 조금씩 준 일도 있었다.  찬수는 《기차장수》였다. 그만큼 부지런했다. 산에 올라 참버섯, 싸리버섯, 소나무버섯, 닭고기버섯을 뜯어들였고 호수를 누비며 물고기도 잘 잡아들였다. 겨울이면 마을사람들 모두다 현성 올라가 살아 포수 없는 계절에 번식도 빠른 산토끼요, 여우, 너구리, 황가리, 족제비를 잡아들이고 기름개구리, 참새, 꿩들을 잡아 얼구기도 잘한다. 그런것들이 기차 타고 갔다오면 다 돈이 되는것이다.  찬수는 삼등렬차의 딴딴한 등받이의자에 벌 받은 소학생처럼 앉아있었다. 오늘 얼마를 벌었다거나 그런데에 머리를 쓰지 않는다. 가끔씩 그런 기분도 들었다. 껌을 씹을 때처럼 코끝까지 싸아한 냄새라거나 크레용구름 같은 냄새, 그리고 사랑하던 그녀의 목덜미에서 맡던 그런 아릿하고 코끝이 맹맹한 기분에 흠뻑 취하군 하였다. 그런 니꼬찐 같은 발효는 차창을 줄줄 적시는 몽몽한 비살이거나 눈꽃이 날릴 때면 아주 묘하게 집착이 되군 하였다.  찬수의 눈길이 부지중 그쪽으로 가 멎을 때, 《덜컹, 덜커덕.》 하고 육중한 차바곤들이 당겨가는 소리와 함께 렬차는 드디여 쭉―  레루우로 끌려가기 시작을 하고있었다.  그녀는 몹시나 붐비는 어느 역에서 올랐던지 찬수로부터 한좌석 건너 마주앉아있었다. 어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랑했던 숙이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녀는 귀부인차림이였다. 수달피로 지은 외투와 수박색비단으로 지은 블라우스가 그녀의 풍만한 몸매를 장식하고있었는데 푸른 보석이 박힌 반지는 고향을 떠나 팔자를 고쳐보고저 애쓴 흔적이랄가 옷매무시보다는 주름과 얼굴색이 잘 어울리지 않는듯했다.  가락맞게 달리는 차체의 흔들림속에 그녀는 턱을 고인채 하염없이 차창가를 응시하고있다. 차창으로 휙휙 안겨오고 스쳐가버리는것은 적설과 드러난 벼랑뿐이건만 경치보다는 세월 같이 빠른 속력에 아픈 추억을 맡겨버렸다고나 할가 그런 모습에서 찬수는 새삼스레 숙이를 읽고있었다.  그시적 숙이의 모습은 꼭 저랬다. 꿈, 리상, 쾌락, 행복 이 모든것들이 저 창가로 들어온다고 여겼을가, 그의 전신은 언제나 차창가로 향해있었다.  쏘강기슭을 따라 원두막이 띠염띠염 보이고 팔월의 낚시군들이 밤낚시에 제 정신이 아닐 때, 찬수의 생활에는 그녀, 버들치 같이 말쑥한 숙이가 뛰여들었다.  온 여름 밤낚시에 얼이 쑥 나갔다가 강건너 철길을 따라 시오리길을 달려 현성고중문에 들어서던 그날, 찬수는 억이 막히고 슬펐다. 초중까지 무리지어 학교 다녔던 한마을 애들이 엄청난 학비때문에 모두 중퇴해버린것이다… 그날, 하학하고 어느 골목의 으슥한 술집에 처박혀 술을 기껏 퍼마시고 곤죽이 되여 밤중까지 뽕짝을 불렀고… 그렇게 실망하여 방황하는 이튿날아침이였다. 놀랍게도 줄배로 강 건너 철길따라 학교 가고저 하다가 강나루터에서 문득 책보를 멘 한 녀학생을 발견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다고 말할수가 없게 기뻤다. 총명하고 섹시한때문에 접근이 자신이 없다가 부모의 리혼때문에 한 마을에 사는 이모집에 와 얹혀살며 학교 다니게 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을 때 흥분했고 갑자기 거리가 가까와지고있음을 느꼈다.  찬수는 당황했고 주저했다. 했건만 유혹은 물리칠수가 없었다. 해는 차츰 짧아지다가 초겨울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하학종소리가 나기 바쁘게 어두워졌다.  첫눈이 터지던 날, 찬수는 드디여 그 녀고생을 기다렸다. 학교정문어구에서 어두워지는 저녁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 조급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채 허겁지겁 달려나오는 녀학생을 가로막고 말을 꺽꺽 먹으며 겨우 자기를 소개했을 때 쩔쩔매던 녀학생답잖게 까르르 웃고 박수까지 쳐대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초면강산의 남학생앞이란 느낌이 불쑥 들었던지 입을 막고 눈이 동그래지기까지 했다. 다른 녀학생들처럼 분망하게 기숙생활할수도 없는 처지가 그를 이런 난국에 떠민게 아니란 말인가. 어쨌건 어둠과 눈보라를 헤치는 길동무가 생겨난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리기적인 느낌이 앞서는것은 당연했다. 그담은 근심되고 조금은 무섬증까지 들기도 했지만… 찬수는 그녀가 얹혀사는 이모네 집 생활이 어느 정도 가난하다는 점을 잘 알고있었다. 일하기는 싫어하고 술만 죽여내는 이모부네 집에 더부살이 신세로 공부하는 숙이가 얼마나 견딜가 괜히 근심되기도 했다. 거기다 대하면 찬수는 다행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소처럼 맞들고 벌어내는통에 남 부럽잖게 살고있었다. 무엇보다 누구네는 은행대부금도 못물고 또… 그런 외국바람에 물젖지 않고도 자기 집은 자기 공부에 근심없게 살림을 굳건히 하잖는가. 부모님이 고마웠다.  숙이는 꼭 다문 입술 같이 학습에 참다운 애였다. 찬수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몸매가 너무 쪽 빠져서 길가 행인들의 눈길이 미친듯 와 멎는 흔상터, 교실에서는 어중이떠중이 남학생들의 이성에 대한 환상늪이 파지군 하는 일이였다.  날이 저물어 어깨 나란히 철길의 침목들을 밟을 때는 이게 꿈이 아니냐 할 정도로 흥분하군 한다. 그러나 어깨는 서로 사이를 뜨고있었다. 녀자쪽에서 경계하기때문이였다. 얼마 안가 찬수는 감각으로 숙이의 심상을 알수가 있었다. 자기가 한낮 숙이의 학교로 오가는《경위》, 《말동무》에 불과하다는것을. 찬수는 저으기 실망했지만 또 더 이상 탐닉하려는 짓이 야비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때론 포기하려고까지 생각했다. 숙이의 꿈이 얼마나 크고 눈이 얼마나 높은지 알바 없었다. 아예 넘보지 말자고 단념하려 했다. 괜히 깊숙이 짝사랑에 빠지거나 실련의 고통을 겪는다면 그 후과는 상상도 못하리라 생각했다.   어느날부터 찬수는 더는 숙이를 기다리지 않았다. 홀로 학교를 다니는 편이 퍽 편함을 느끼고있을무렵, 숙이가 철길어구에 서서 기다리고있을줄이야. 《우리 그냥 같이 다니자. 혼자 다니기가 무섭고 외롭잖아.》 찬수는 확 숨이 가빠남을 느꼈다. 뜻밖이고 반가왔다.  흰눈이 갈꽃처럼 날리던 어느날, 찬수는 어두워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차 타본 일 있냐고 숙이와 물었다. 숙이는 없다고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날 둘은 저녁렬차를 탔다. 현성에서 단 한정거장만에 내리는 짧은 순간의 려정이라도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지 모른다. 둘은 약속이나 한듯 가지런히 가락맞는 피스톤들의 굴림소리속에 몸도 마음도 함께 어데론가 날고 나는듯싶었다. 숙이는 찬수의 덕분으로 타보는 기차라서 그런지 홍조어린 얼굴로 눈길을 차창으로 향하고있었다. 어둠이 군림하기 직전의 차창가로 꿈과 희망이 그를 향하여 손젓고있는듯 크게 뜬 눈망울로 정열이 반짝이고 입가로 미소가 간지럽게 어리는걸 찬수는 보았다… 숙이는 웬만해서는 말하지 않는 애였다. 그러나 꼭 다물었던 입술이 보일락말락 벌어져 백옥 같은 이가 드러나뵈고 속눈섭 긴 까만 커다란 눈빛이 락조 비낀 차창가에 물들 때만큼 찬수는 행복해본적이 없었다. 숙이로부터 이성의 체온을 감촉받고 체향에 취해 어지럽기까지 해나는 련쇄반응이 오렌지빛 앞날로 기탁되는걸 어쩔수 없었다. 때문에 찬수는 기를 쓰고 숙이를 끌고 하학하는 길로 기차역을 향하군 하였다. 숙이도 마다하지 않았고 끄는대로 끌려서 기차에 오르군 하였다… 궁궁쿵, 궁궁쿵. 렬차는 산굽이를 따라 칙칙폭폭 달리고있다. 차창밖으로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어스름이 차창가마다 잉크빛 물감을 칠하고있었다.  수박색블라우스를 입은 저 녀인은 아까보다 더 가까이 차창가를 마주하고있었다. 눈 내리는 바깥풍경에 넋이라도 뺏기고싶은 그 모습, 창테이블에 턱을 고인 손마디에서 푸른 보석반지가 빛나고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들이 앵두빛으로 탐스럽다. 그러나 그것들은 주름과 쇠잔을 가진 눈확과 입술에마저 올린 루즈의 세계와는 아무래도 잘 어울리지 않는듯싶었다. 열손마디가 주는 느낌은《돈》을 의미하나 얼굴이 알려주는것은 《위선》과《추락》과 《애잔》일뿐이란 느낌이였다. 하긴 그랬다. 네가 뭔데 초면강산의 녀자를 아무렇게나 자기나름대로 느껴보며 괜한 스트레스를 푸느냐, 이건 순 심리희롱이 아니냐는 자책이 들지만 어찌하든 자기는 그녀의 얼굴에서 눈길을 못뗐다. 어쩌겠소, 용서하오, 한평생 장가 못들고 늙어버릴 이 놈에게 시각으로나마 녀자를 만끽해볼수 있도록 해주오, 이랬다.  기차는 흰 연기를 아름아름 부려놓으면서 길게 드러누운 산굽이를 에돌고있었다. 씩씨익, 하고 열기를 뽑아던지기도 하고 꽥꽥, 하는 짧은 고동을 뽑아대기도 하면서 기관사는 눈 내리는 날 갈무리해오는 무아몽경의 자신의 기분대로 기차노래를 속력의 안성맞춤으로 리드해가고있었다.  겨울날의 짧은 해걸음이 몰아오는 어둠속을 그들은 쩍하면 기차《려행》으로 즐기군 했던것이다. 어머니가 한여름동안 짬짬히 버섯 뜯어 판 돈과 아버지가 물고기를 잡아 판 돈까지 기차타는데 날린것이다. 숙이는 숙이대로 찬수는 돈이 많은 애로, 《려행》돈이야 한낮 구우일모에 지나지 않는게라고 여겼던 모양이였다.  저 수박색블라우스 녀인처럼 숙이는 얼굴을 차창가로 향하고있었고 그러면 찬수는 바싹 몸을 그녀의 잔등께로 갖다붙여서 밀착시키고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럴수록 숙이는 얼굴이 거의 차창유리께로 붙는데 바깥풍경에 깜빡 취한듯, 찬수는 그 틈에 숙이의 허리에 손이 감기곤 그랬다… 찬수는 자신이 조금씩 조금씩 녀자를 알아가고있는걸 느꼈다. 아버지가 스물일곱살에 련애란걸 해보았다던 말이 생각나며 피씩 코웃음이 나갔다. 또 지금 숱한 로총각들이 장가 못들고 송아지무리떼처럼 동구밖 우물가에 모여들어 두눈만 둥그래서 허송세월 보내고 지내는게 못미덥게 우스웠다. 공부하면서 련애하고 아니, 련애하면서 공부한다? 것참 시대감 나는 새맛인것 같다가《아니야, 이건 너무 보통현상이구말구》그랬다. 그런데 숙이가 괴의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 누구도 범접할수 없게 곁을 주지 않던 그가 자기한테는《고독하고 외롭다》며 찾아주었고 슬그머니 옆구리에 손이 가는것도 모른척해준다. 요즘은 막 여위는게 알린다. 그 옆구리에 손이 가닿을 때 심장이 정상을 훨씬 초월하도록 고동을 쳐대니 이건 심장병에 걸릴 징조가 아닌가. 저녁에 자리에 누워 사정을 해버리군 하여 팬티를 자주 바꾸어 어머니 보기가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장미의 아름다움은 그 예쁜 꽃보다 가시에 있다는데… 숙이의 생각으로 되는《접수》가 되려 슬그머니 두려워남도 례외일수는 없었다. 그럴수록 정열은 그예 숙이에게로 향함은 어쩔수 없었다. 이런걸 두고 인연이라는걸가, 숙명이라는걸가, 찬수는 끝없이 배회하면서 숙이를 가까이 더 가까이 하고있었다.  다시 여름은 왔다. 기차에서 내리면 어둠에 먹혀버리던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냈고 봄물에 넘실넘실 줄배 타고 강 건느던 파릇파릇한 봄이 언제 흘러갔냐싶게 옥수수밭이 윙크하는 짙은 계절을 맞은것이다.  어느날, 숙이가 그런 말을 했다.  《난 나를 실망하구있어. 내가 이런 애일줄은 몰랐다구.》 《그건 무슨 말이야?》 《이 악물구 아득바득 대학입시를 겨냥하구 밤낮을 패야 할 시기에 이게 뭐지? 아니, 나 말야…》 《조기련애란 말이지? 우린 나이가 그런 나이거든. 왜? 그런 실례가 많잖아. 부부처럼 함께 세집 차리구 생활하면서도 대학 간다던데.》 《아무리 어째도 난 이런 애가 아닌데.》 《그럼 누구 탓이라도 된단 말이니?》 《내 량심, 내 맘 탓이지. 누굴 탓하겠니.》 《량심? 맘?》 《그래, 총적으루 가난 탓이거든. 내가 돈이 없으니깐 너의 신셀 졌구, 신셀 지니까 갚는다는게 이 지경까지 이르렀잖아. 불쌍한 내 마음. 난 왜 맘이 너무 선량하지? 선량은 언제나 손핼 앞세우거든, 참.》 《아니, 그럼 내가 억지루 사랑을 강요했다는거니? 나 억울하잖아. 내가 비루한 놈이구나.》 찬수는 발딱했다.  《아니야. 그저 내 설음에서 해보는 말이지. 어쩐지 앞이 막막해나는거 말야.》 숙이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내 눈물을 닦고는 해쭉 웃어보이며《그래도 난 후회 안해. 찬수 네가 젤 좋아.》또는 《찬수, 난 널 떠나지 않을거야.》라고 종알거리군 했다.  찬수는 이른아침마다 마을 옆구리를 빠져 강나루에서 숙이를 기다리곤 했다. 숙이를 배 태우고 시커멓게 용용한 물결을 거슬러 강을 건넌 다음 철길을 따라 난 길을 걸어서 학교로 향한다. 하루 학과를 마치고 둘은 다시 어깨나란히 귀로에 오른다. 철길이 다하는 로타리를 내려서면 저앞에 마을로 들어서는 강나루가 보이고… 둘은 철길아래 시커멓게 무성한 옥수수밭에 뛰여든다. 누가 누구를 끌고가는게 아니라 둘 다 마음이, 그들의 발길이 약속이나 한듯 그리로 향한다. 옥수수밭은 구름도 가다가 내려서 쉬여가도록 철길을 따라 우불꾸불 길기도 길다… 옥수수숲속에서 찬수는 책보에서 미리 준비해온 비닐을 꺼내 땅에 깐다. 둘은 끌어안고 미친듯이 빨고 애무하고 즐거운 비명을 내여지르기도 한다. 그 시간이였다. 멘스가 와도 그 시간이였다… 그렇게 격렬한 성행위를 겪고나서도 즐거움은 계속되군 한다. 강나루에서 줄배에 오른다. 줄배를 몰아 강심에 이른다. 배는 강심에서 멈추고 둘은 배에 가지런히 앉아 요람인양 향수를 누린다. 강바람이 불어오고 강물이 배전을 쳐댄다.  《찬수야, 날 버리믄 안돼. 나 처녀를 너에게 바쳤잖아.》 《강물이 마르지 않는한 너에 대한 사랑은 영원할거야.》 《만약 너의 배반을 받는다면…》 《어떡할거야?》 《널 죽이고 나도 죽을거야!》 죽인다는 말에 찬수는 만족한 나머지 웃기만 한다.  《너 전번 시험에 총점 오백 칠십점을 맞았다며?》 찬수가 물었다.  《그랬어, 넌?》 《난 점수가 좀 내려갔어. 뭐, 오백 오십점인걸.》 숙이는 손벽을 쳤다.  《우리 함께 대련리공대학엘 가?》 찬수는 숙이의 입에 자기의 입술을 포개며 다시 한몸이 돼버린다. 달이 내려다본다. 대안에서 저녁렬차를 타러 나오는 려객이 소리를 질러서야 둘은 아쉽게 배를 몰아 기슭에 대인다. 《뽕―》기적이 운다. 렬차는 산굽이를 저만치 휘뿌리며 일사천리로 내달린다. 수박색블라우스 녀인은 어둠이 바득바득 매여달리는 차창가로 눈길을 열고있다. 한여름 푸르렀던 옥수수밭을 덮으며 흰눈은 소리없이 내리고있었다. 문득 찬수는 턱을 고인 그녀의 눈확이 붉어있고 눈가로 이슬이 반짝이는걸 발견한다. 그럴거였다. 사람이 태여나서 고통이 없고 아픔이 없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하염없이 내리고 내려 쌓이는 눈발속으로 녀인은 아팠던 지난날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며 지어 그립고 소중했다고까지 느끼고있을테지… 뭘가? 부모님이나 형제 아니면 남편에게까지 뭔가 한생을 두고도 잊을수 없고 물수 없는 빚을 진 일때문일가,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일이란 추억으로 눈확까지 붉어질수가 있을건가. 그렇다고 치자. 사람이란 감정동물이 아닌가… 어쩜 숙이도 지금쯤 저 녀인처럼 어느 창가를 마주하고 앉아 이마에 손을 얹고 혹은 턱을 고인채 추억속에 깊이 빠져있을는지, 아릿하고 짜릿하며 온몸이 전률하도록이나 추억속에서 헤여나오지 못할는지도 모른다고. 그래, 거기도 지금쯤 흰눈이 내리고 또 내리고있을거야… 찬수는 쿵쿵 달리는 렬차와 함께 심장이 뛰고있었고 내리는 흰눈들을 감싸며 싸아― 허공을 비행하는 차연기와 같이 가슴 설레고있다. 그때였다. 찬수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수박색블라우스 녀인이 금방전의 눈확이 붓도록 눈물 짓던 애절한 모습과는 달리 피씩 웃고 고개를 젓기까지 하는게 아닌가. 오기와 번열과 랭소와 교만으로 찬 모습이였다. 오, 지난 일이야 너무 루추하지 않느냐, 그저 즐겁다고 치부해두자. 중요한건 미래가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녀인들의 추억이란 애짭짤한 지난날, 어느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그런것들이리라. 때려치워라 고만. 남자들이란 진짜 백치들이고말고. 세상에 젤 잘 얼리우는게 남자들이라고, 그저 녀자들의 눈물만 보면 속이 무너지고 그대만을 사랑해요, 하면 항복해서 절벽에라도 뛰여내릴수 있는게 남자들이란다. 불쌍하고 둔한것도 남자들이다. 녀자들이야 시집 하나 제대로 가면 한평생 성사를 한 셈이지만 남자들이야 어디 그런가, 고달프고 눈코 뜰 사이 없이 뛰고 분투해야 하나니… 찬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찬수는 그렇게 사랑하고 따르던, 한몸이 되여 뒹굴던 숙이가 대학입시 한학기를 앞두고 불쑥 사라질줄이야. 눈향기처럼 신기루처럼 어느 철길어구 로타리를 에돌아 바람 같이 숨어버린것이다.  선생님도 모른다고 그랬고 동학들도 알리 없었다. 그렇다고 냉큼 숙이 이모네 집을 찾아갈수도 없어서 달포째나 꿍꿍 속만 썩이다가 그예 결심하고 그 이모를 찾았을 때 하는 말은 무엇이였던가. 《친자식 공부시킬 돈도 없는데. 그리구 녀자들이란 말여 얼굴이 반반하게 생겼으믄 그게 곧 전도구 출세지. 안그래?》 《지금 숙이는 어데 있어요?》 《숙이가 어데 있든 네게 뭔 상관여. 이젠 걀 상관말어. 넌 학생이구 갼 사회사람이니깐.》 미칠것만 같았다. 펑펑 내리는 눈무더기속에 머리를 틀어박고 죽어버릴것만 같았다. 숙이야, 숙이야, 왜 그리 무정하단 말여. 말 한마디 없이 어델 가 숨어있어. 나 한번만 보자꾸나. 한번만… 울다가 울다가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던 날은 길게 며칠 밤이나 이어졌었다.  《세상에 그런 녀자들이 있단다. 불여우 같이 사내를 꼬시다가 더 먹을게 없으믄 꼬리로 낯판대기를 가리고 홀짝 사라지는 나쁜 년. 돈이면 오금을 못쓰고 리익이 될 일이면 량심도 도덕도 개 떼줘버리지. 그런 년을 사랑하다간 코 깨지고 자기만 망치는 법이야. 사내란게 뭐냐, 넘어졌다도 우뚝 일어서서 다시 기운차게 걷는게란 말여.》 아버지의 말씀이 결국 용기가 되였다.  그러나 난 이미 벌레먹고 구부정한 나무의 꼴이 되였던지 좀체로 정신 집중이 되질 않았다. 자나깨나 숙이 생각에 지쳐있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날, 하학하고 막 저녁렬차에 올랐을 때, 결국 눈에 띄지 말았어야 할 장면에 맞띄고말줄이야. 책보를 아무렇게나 낀채 흩어진 머리를 추스를 새도 없는 내 시야로 파마머리까지 지진 화려한 숙이가 키가 껑충한 나이 듬직한 사내의 팔을 낀채 차창테이블아래 행복하게 앉아 아양을 떨고있는게 아닌가. 심장이 튀여나올것만 같았고 눈앞에 현기증이 이는듯했지만 찬수는 용케도 참아내고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줄을 미리 짐작해온터였고 지난날을 철저히 단념하리라 마음을 모질게 다스려온터였는데도 울분과 모욕감에 견딜수가 없었다. 밸대로라면 숙이와 함께 있는 그 사내놈을 죽게 패주고싶었다.  눈길이 맞띄우는 순간, 숙이는 흠칠 놀라며 얼굴이 해쓱해났고 몸둘바를 몰라하고있었다.  그래, 보지 않는게 나을테지. 찬수는 마음을 독하게 먹으며 맨마지막 차바곤으로 자리를 떴다. 차창밖으로 하늘이 무너지게 눈이 펑펑 터지고있는걸 바라보고있으려니 숙이가 어느결에 다가와 툭 건드리고 말하는것이였다.  《미안해. 다 나 탓이야. 날 저주해줘. 가난이 날 이런 인간으루 만들었어. 그리구 한가지 부탁이 있어. 남자는 녀자와는 달러. 젊었을 때 이 악물고 분투하는 정신이 있어야 해. 모든 기회와 운수는 그런 노력속에서만 오는 법이니깐. 공부 잘해 꼭 대학 가, 안녕.》 머리가 윙윙 운다. 눈앞이 새까매났다. 숙이가 언제 돌아섰는지도 몰랐다… 뭐라고? 남자는 녀자와 다르다고? 그런줄 번연히 알면서 뒤늦게야 돌덩이처럼 날 내던지고 뭇사내 품에 안겨버린 네 년은 녀자란 말이지. 녀자는 반반한 얼굴이 벼슬이요 출세구 남자란 나서부터 어궤조산의 팔자란 말이지… 너무나 깊숙이 빠져서 정력이 분산되는걸 어쩔수 없어하는 자기가 한스럽고 애처로왔다. 기차에서 뛰여내려 죽고만싶었고 아니라면 숙이를 목 조여 죽이고만싶은 심정이였다… 숙이는 갔다. 나이도 고치고 타국으로 시집 가버렸다.  그래도 찬수는 추운 겨울 학교 다녔다. 저녁렬차를 타군 했다. 기차를 타면 언제나 숙이가 찬수곁에 있는듯한 아릿한 느낌이였다. 숙이의 목덜미에서 살내음이 샴푸보다 더 향기롭고 커피향보다 진한 흥분을 가해왔었다… 그렇게 찬수는 기차인이 박히며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있었다. 찬수는 차츰 고집스러운 멍청이로 전락돼가고있었다.  누군가 그랬듯, 기쁨은 아주 멀리서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오지만 불행은 눈섭에서 련달아 떨어진다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뛰여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찬수는 이제 모든게 다 공식적이 돼가고있었다. 아침에 도시락을 사가지고 떵떵 언 강을 건느고 철길을 따라 현성학교로 향한다. 학교에서 그 누구와도 교제하기 싫어한다. 시간에도 기계사람처럼 두눈만 퀭하니 뜨고 앉아 공불 하는지 마는지 모든 소리가 마이동풍이다. 그러다가도 오후 마지막 하학종소리만 울리면 부리나케 역전으로 내닫는다. 단 15분나마 걸리는 렬차안에서의《려행》이란 온 하루 기다려오던 즐거운 추억의 세계요, 행복한 순간일것이였다.  찬수에게 있어서 하나의 근심이란 부모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는 그 점뿐이였다고나 할가. 돼지를 치고 소를 먹이고 십여헥타르도 넘게 수전을 부치며 뼈휘게 일하는 부모앞에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출세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너만 보면 힘이 난단다.》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면서 출세한 사람 있었느냐. 우린 너 하나만 믿는단다.》 때때로 하시던 그 부탁을 어찌한단 말인가. 찬수는 글이 되여주지 않는 머리만 쾅쾅 쥐여박군 했다. 3년에 학비만도 만원돈을 처넣고 이꼴로 공부해왔다니 그저 지나온 일이 꿈만 같았다.  끝내 대학입시가 닥쳐왔다. 어머니는 이른아침에 찰떡을 쳐 현성 학교대문에다 붙여놓았고 아기의 옷고름을 모르게 아들의 옷곁을 따고 넣어주었다. 그러나 그 모든게 허사였다. 본과는커녕 일반 전과학교 입학통지서도 오질 않았다.  찬수는 다행이였다. 지극한 부모를 만난때문이였다.  학교 선생님들과 동학들을 두루 찾아 알아보고 자식에 대한 새로운 유도를 꿈꾼것이다. 그건 실로 피고름이 터지는 아픔을 포섭한 결과라는걸 찬수가 알턱이 없었다.  《찬수야, 대학에 못간다고 한 인간의 앞날이 끝난다는 도리는 없어. 인간 나름대로의 살길이 열려있는게란다. 네가 지금 가장 하고픈 일이 무엇이니?》 《네?!》 찬수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그 말은 너무나 뜻밖이였다. 그건 그야말로 실망이라거나 탓이라거나 유감이 아니였다. 자식에 대한 최고의 배려요, 크낙한 희망과 기대였고 은혜와 사랑이였다. 찬수는 더 억제하지 못하고 황소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암처럼 지니고 키워오던 멍든 가슴속의 말 못할 사연의 터뜨림이였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의 모든것을 다 아는 백분의 일만큼을 자식된 도리로서는 알지 못하는것일가. 자식의 실련의 깊은 칼자욱에 새살이 돋고 그 새살로 비바람 눈보라를 맞아갈 때를 기다리는 그 통절한 사랑의 깊은 호흡이라니… 《난… 난 왜 그런지 자꾸 기차를 타고싶습니다.》하던 제 정신 같잖은 유치원아이 같은 꼴을 보였을 때 부모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가. 다 큰 놈이 대학공부는 줴 팽개치고 매일과 같이 기차를 타겠다니 이건 웬 짐조이뇨? 그러나 아버지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도 보이는 대신 껄껄 웃어보이며, 《암, 기차를 타야지. 그런데 그저 타는것보담은 뭔가 지향이 있구 타야겠는데. 기래, 내가 잡은 물고기를 현성 가져다 넘겨팔려무나. 그걸로 네가 좋아하는 랭면도 사먹고.》 찬수의 일상은 그렇게 새로워졌다. 차마 하는 일 없이 차비를 팔며 상행선, 하행선을《려행》할수는 없는  그런 《장사려행이》 되였다. 처음에는 당당하던 고중생이 일약 장사아치꼴이 된게 아니냐고 수치감을 느꼈댔으나 시간이 흐르며 그것은 인으로 번져갔다. 인, 렬차에 오르면 한가득 이름할수 없게 가슴벅차오르고 설레는 맘, 그리고 물고기나 기름개구리, 버섯따위를 제꺽 넘겨팔아 손에 돈을 쥐는 짭짤한 재미는 별것이였다. 꼬빡 두해나 그렇게 아침차로 현성 갔다가 저녁차로 내려오기를 반복하였다. 숙이는 꼭 올거야, 꼭 내게로 돌아올게야. 그런 간절한 기대로 찬 커만 가던 믿음도 이젠 차츰씩 차츰씩 의심되고 줄어들고있었다. 그러며 가끔씩은 집앞 돼지굴뒤에서 두눈이 퉁퉁 붓겨서 나오군 하던 어머니와 나이보다 열살은 더 겉늙어뵈는 아버지의 주름살과 강마름이 찬수 자기때문이라는 섬찍한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부모가 불쌍하다는 효도가 생겨났다. 어느날이던가 아마 한 열흘전에 불쑥 한 말이 생각난다. 무슨 생각으로 다 그런 말이 입밖으로 튀여나갔던지. 《아버지, 어머니, 난 이제 기차타기 싫어져요. 뭔가 공부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가끔씩 드는게잖아요.》 《뭐야? 그랬구나. 금방 스무살이니까 한번 해볼만허지. 예순에 대학공부를 하는 늙은이 대학생도 다 있다던데, 아하, 이건 좋은 징조야.》 아버지는 펄쩍 뛰며 주름살을 펴보였다. 엄마도 좔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등을 어루쓸어주시던 그날을 찬수는 지금도 잊지 않는다. 학교에 다시 다니고싶다는것은 대학생이 되겠다는 야심이 살아났다는것이고 야심이 살았다는것은 자존심이 있다는것인데 그것이야말로 참되고 싱싱한 사유를 되찾았다는 표징이 아니란 말인가! 렬차는 씩씩 흰김을 내뿜으며 전속력으로 달리고있었다. 지난 일은 한낱 즐겁던 텍스트의 한단락에 불과할뿐이며 그담엔 교만과 야유로 금의환향을 뽐내던 수박색블라우스 그녀― 어쩜, 숙이도 저 같이 부럼없이 사는 귀부인이 되여 하이야 몰고 동해바다 구경 드나들며 푸른 해수를 자유로이 나래스치는 갈매기처럼 살거라는 추측에 괜한 증오가 서리며 찬수는 눈길을 수박색블라우스 그녀에게로 보내고있었다. 그런데 저게 뭐란 말인가? 창가 테이블에 이마를 부린채 잠든 그녀의 가발이 삐뚜름히 벗겨져내린게 눈에 띈것이다. 그보다 더욱 놀라운것은 왼손의 식지와 중지가 뭉청 잘린것이였다. 30대의 녀인이, 한창 아름다움으로 풍선 같이 발랄할 나이에 저건 또 뭘 의미하는걸가, 그저 놀라웠다. 수달털외투, 보석반지, 실한 금목걸이, 오만한 기상… 그것들은 금의환향이라 해야 할지 금의야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랬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앞에 마주설적엔 뭔가 단 얼마간이라도 성공이라거나 하다못해 그럴듯한 자호거리를 만들어온다는걸 뉘 모르랴. 인간은 그렇게 성실하지 못하며 비루하기까지 한것이다. 그러나 우린 그런걸 리해해야 할것이며 또 리해해준다. 고향앞에 누더기차림이라거나 외람된 꼴로 나선다면 그만큼 불효가 어데 있단 말인가. 하긴 고향이란 별꼴을 다 품어주긴 해도. 그렇겠지. 수박색블라우스 녀인이야 그 반반하고 말쑥한 인물값을 하느라고 스무살에 아주 잘 산다는 외국총각에게로 시집을 간걸거야. 그게 출세라고. 웬간한 대학졸업생보다 낫다고 자랑했을거였다.  은익을 반짝이며 날아가는 비행기에 앉아서 천국의 꿈을 꾸었겠지. 그러나 산다는게 쉬운건 아니였겠지. 어쩌면 서울이나 부산이 아니고 기가 찬 산골로 끌려갔겠지. 남편이란것도 자기보다 열다섯살이나 더 많은 홀애비께루 간거겠지. 몇번이나 달아나려다가 붙잡히고 병신이 되도록 두들겨맞기도 하면서 감자 심고 벼모하고 쌔가 빠지게 일했으리라. 그러다가 끝내는 도망을 쳐 서울에 몸을 잠그게 된 행운을 지닌거겠지. 서울에서도 몇년을 두고 벼라별 일을 다했을거였다. 때밀이, 꽁치장사, 전복이나 소라껍데길 주어 파는 일도 했을거였다. 그러다가 끝내는 기계일에 시달리다가 손가락을 잃은것일게고… 어떻게 살아갈가, 살기가 이토록이나 힘들다니. 내가 낳아놓은 딸앤지 아들앤지는 잘 크고있는지, 그런 그리움과 아픔에 모대기는 가운데 머리는 모지라져 빠져버리고… 숙이는 어떨가, 서울서 큰 기업을 차리고 사장질을 해먹는다는 숙이의 신랑이 서울태생이고 사장이란 말이 새빨간 거짓일수도 있잖은가. 병신이나 병달이 아닌 서울 한복판에 사는 사장님이 어찌 이런 시골에 와 아득바득 숙이를 안해로 맞아간단 말인가. 아하, 이런 생각 집어치우자 그만. 숙이는 잘 살고있겠지. 그래, 잘 살아라… 찬수는 지쳐가는 관찰과 의심, 추측과 상상, 분노, 동정 같은 일체 사유가 들추는 차바곤과 함께 이상한감이란 느낄수 없게 의례 그렇듯 평범하게 느껴지고있었다. 그랬다. 산다는게 원래 그런게 아니란 말인가. 울고 웃고 후회하고 의심하고 질투하고 야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실망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슬쩍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헛소리도 쳐보고 잘난척도 해보고 실은 빈 껍데기뿐인… 아, 인간이란 너무 바쁘게 사는구나. 숙이는… 이것 봐, 못난 놈 같으니라구. 또 그녀야. 이제 더는 숙이를 생각하지 말자는데, 찬수는 드디여 자기의 머리통을 쾅, 쥐여박았다. 어찌나 드센 강타였던지 곁에 앉은 고객이 눈이 둥그래지더니 이내 푸르륵, 하고 웃는다. 정신병자가 아닌가 의심이 든 모양이였다.  《궁궁쿵, 궁궁쿵, 떨꺼덕. 궁궁쿵, 궁궁쿵, 떨꺼덕…》렬차는 온통 눈발 날리는 속을 가락맞게 달리고있다. 혼곤히 잠들었는가, 수박색블라우스 녀인의 눈귀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교만과 야유로 찬 녀인이 더는 아니였다. 실속이 없이 텅 빈 허상의 녀잔 더 아닐것이였다. 부모형제와 친척들을 위해 또 고향사람들앞에 돈을 벌었다는, 가난을 털었다는 그리고 뭔가를 성공했다는 떳떳함을 보여주기 위해 고생한것, 그 《고생》만이라도 얼마나 고상한것인지 모른다. 하기야 량심적으로 가책받을 한가지 일이야 있겠지만은… 그런데 거기까지 그녀를 바라보면서 생각을 하고있던 찬수는 갑자기 자기가 미친개몽둥이에 한매 호되게 얻어맞은듯 머리가 뗑해나고 휘청거리기까지 해났다. 숙이가 차창가에 선채 손가락질로 질책해오는게 아닌가. ―난 저주받을 인간이야. 가난을 턱대고 아예 주저앉아버렸잖아. 총명한 머리로 대부금을 내여 공부하는 어떤 애들처럼 한학기만 견지했더라도 중점대학에 얼마든지 갔을수 있었겠는데 난 그렇지 못했어. 난 반반한 얼굴만이라도 녀잔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다고 여겼어. 그런데 현실은 불보듯 뻔하잖아. 인생이란 앉아서 척척 생각대로 되는게 단 한가지라도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있잖아. 가령 내가 행복하다더라도 내가 뒤돌아보는 추억은 항시 날 저주하고 후회하게 할거란걸 난 지금도 믿고있어. ― 그런데 나보다 더욱 약자이며 백치 같은 너, 찬수야, 난 녀자니까 그래도 이만큼 남자가 번 돈으로 먹고 누릴수야 있겠지만 넌 갈수록 말이 아니잖니. 넌 사내대장부야. 이제 스무살이잖아. 일어서. 일어서라니까. 한나무에 목매 죽는 인간이라니, 그깟 년, 정조도 량심도 도덕도 누더기 대하듯 한 나 같은 년을 잊지 못하다니… 백치 친구야, 더는 기차장수 되지 말어. 이제 눈 질끈 감구 이 악물고 한해를 공부해보려무나. 그게 너의 됨됨이구말구… 《뽕―》기적이 울렸다. 찬수는 머리를 번쩍 들고 정신을 차렸다. 숙이는 없었다. 수박색블라우스 그녀가 가치담배를 맛나게 빨아대고있었다. 그 꼬락서니가 역겨웠다. 어느 시내 구석에서 기생이나 창녀질로 남자들을 사기해먹는 년이나 아닌지… 에익. 머리를 돌렸다. 그녀의 차창가로부터 금방 곁의 차창가로 눈길을 걸었다. 완연한 어둠이 물들기전인 차창밖에선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있었다. 내려서 옥수수밭을 덮고 겨울 강언덕에 거꾸로 엎어진 줄배를 덮고 저기 숙이를 기다리며 담배질하던 마을 옆구리 뉘네 돼지굴가를 덮고 내 맘속 깊이 자리잡았던 첫사랑 무덤을 덮고… 이제《렬차장수》도 졸업이라고 생각하니 《마른 메사구 같은 녀석》하고 심심풀이로 놀려대기도 했던 렬차장이 차표 같은《졸업증》하나를 내게 발급하려나 다가오고있었고 렬차안의 숱한 고객들이 동학들인양 리별을 아쉬워하듯 애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래, 한번씩 문을 열 때마다 변기냄새가 역한 구석에 쭈크리고앉아있지 말고 이젠 저 깨끗하고 공기 맑은 편한 자리로 옮겨앉아볼가부다, 나도 랠부턴 당당하고 고교생이 될텐데 말이다… 차창가로 어렴풋이 고향마을이 안겨온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있었다.  (연변문학 2007년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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