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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먼 불빛
량춘식
먼 현성의 불빛은 밤마다 별로 떠온다. 가난하고 아팠던 별, 얼음쪼각 같던 꿈의 별은 지금도 눈앞에 가물거린다.
어렸을적, 밤은 그토록 무서웠다. 녀동생은 밤만 오면 그냥 울다가 잠이 들곤 그랬다.
《에그에그, 커서 시집도 못갈것이 그저 승냥이나 콱 물어가버려라.》
어머니는 쩍하면 그런 소릴 하며 역정을 냈다.
난 창가에 넋을 놓고 앉아있군 했다. 파리똥이 다닥다닥하고 붉은 페인트로 《충(忠)》자를 쓴 창유리로 밤은 까맣게 붙어있었다. 그 한장의 창유리둘레로는 싯누런 창호지가 붙어있었다. 식지에 침을 묻혀서 창호지에 빠끔 구멍을 낸다. 그 구멍으로 까만 밤이 나타난다.
애들한테 연필에 찔려 울던 일, 먹에 시커멓게 마구 갈겨진 긴 고깔모자를 쓰고 조리돌림을 당하던 아버지, 투쟁을 피하여 옥수수밭에 몸을 숨기고 모기떼에 물리고 흙투성이 되였던 어머니가 그 밤속에 숨어서 애처롭게 흐느끼고있었다. 그보다는 가녀린 목줄기를 빼여들고 밤속을 뚫어져라 응시하곤 하다가 그대로 문턱에 머리를 처박고 잠들어버리군 하는 나어린 아들의 장래가 걱정되여 깊은 한숨을 짓군 하는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 그 량볼로 눈물이 아니라 피가 흘러내리고있었다, 얼마나 무서운 밤인지 몰랐다.
누군가 그랬다. 저 별들은 모두 엄청 큰 돌덩어리들이라고, 그리고 태양은 무지무지 큰 불덩어리라고. 별 뜬 밤이면 수많은 돌사태가 쏟아질가 두려웠고 낮이면 불덩어리가 지구에 떨어질가 두려웠다. 온통 공포감뿐이였다. 그런 가운데도 새 같은 가슴속에 재속의 화토불처럼이나 꿈이 빨갰다. 달이 뜬 밤이?가끔씩은 공포와 외로움은 사라진다. 동경으로 찬 눈길은 하염없이 달을 바라본다… 남자애들이 나와 놀아주지 않고 곱게 생긴 창희랑 현자랑 태덕이랑 정옥이랑 날 보면 침 뱉고 돌아서는 이 세상을 떠나 투쟁 받는 아버지와 옥수수밭에 숨어 사는 엄마와 울보 녀동생을 데리고 저 달나라에 올라가 살고싶다는 생각으로 눈물이 글썽하도록 간절한 마음이 되군 하였다.
그러나 일년치고 달뜬 밤이 어디 그리 흔한가. 흙속에 묻힌 감자 같은 시골마을의 밤은 적막하고 음습하였고 공포스럽기만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근처에서 어렵잖게 가축의 털과 뼈쪼각이 섞인 승냥이의 똥을 볼수가 있고 간밤에 범이 내려와 뉘네 송아지를 물어갔다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던 밤, 짐승의 판들거리는 영악한 눈깔 같던 그런 밤들이 진주보석들이 무진장한 바다밑세계처럼 코끝이 맹맹하도록 유혹이 되고있을줄이야.
마을뒤골목에 살았던 황토집이 폭우에 무너진때문에 부득불 북산언덕배기의 절간 같은 집으로 이사한 그날 밤이였다. 열한살에 내 시야로 들어온 그것은 난생처음으로 되는 풍경이였다. 마을의 공묘로 이어지는 야산언덕에 상여집으로도 쓴적 있었다는 다 찌그러든 막이나 다를바 없었다. 마을의 밤과는 판이했다.
주위에 인가라고는 없어 공묘의 귀신들이 훨훨 날아와 문을 기웃거리는듯 괴괴하고 몸서리를 칠 그런 살풍경스러운 밤이였다. 바람에 펄럭거리는 창호지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내기조차 무서웠다. 귀신은 문틈으로 기여들어온다고 그랬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그날 밤은 특별히 캄캄했다. 달도 별도 없고 부엉이 울음소리마저 없는 삼라만상이 고요한 밤이였다. 무섭고 지루하기만 하던 무수한 밤속에 눈만 말똥말똥해서 바라보기만 하던 그 밤들과는 달리 뭔가 강렬한 욕구가 류황불빛처럼 반짝 일고있었다…
아무리 봐야 창호지가 일으킨 유혹이였다. 아주 작은 바람구멍이였다. 바람과 먼지에 닳아 난 바늘끼만큼한 구멍으로 분명히 무수한 불빛들이 명멸하고있었다. 저게 뭘가? 저건 하늘도 아니고 허허벌판 저 끝에서 이는 불빛이라니, 하늘의 은하계가 륙지로 곤두박혀 오색령롱한 빛갈을 뿜는것 같기도 했다. 대체 뭘가?… 어머니는 그게 십리도 넘게 먼 현성의 불빛이라고 그랬다.
소학교 6학년때에야 난 현성에 가볼수가 있었다. 아버지가 촌구석에 묻혀 세상구경 못해본 나를 데리고 시오리나 떨어진 현성구경시키러 간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산후증으로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기에 돈 만들려고 쌀 팔러 간것이였다. 추운 겨울에 눈길에 썰매에 실은 쌀 백근을 끌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시내구경, 밤이면 이루 헤아릴수 없이 별 같은 불빛들이 반짝인다는 그 곳이기에 바빠도 힘이 났다.
시내에 들어서서 난 어리둥절해졌다. 처음으로 4층집(그때 현성에서 제일 높은 층집임)을 보게 되였는데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다가 개털모자가 다 떨어졌다. 실북나들듯 오가는 차량들과 밀물처럼 밀려가고 밀려오는 인파들을 보고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구나 했다. 칙칙폭폭 객차 짐차가 정거하고 하늘을 찌른 공장굴뚝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어딘가에 부딪쳐 코피까지 터졌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공농병랭면식당》에 갔다. 거기에서 쌀 판 돈으로 난생처음으로 랭면을 먹어보게 되였다. 랭면이 얼마나 긴지 걸상우에 올라서기까지 하여 숱한 사람들을 웃겼다. 아버지는 술 한병을 거의 다 마시고나서야 자리를 떴다.
아버지는 취했다. 서북풍을 맞으며 빈 썰매를 끌고 귀로에 오른 우리는 서로 휘청거렸다. 나는 자꾸 멀어져갈수록 불야성을 이룬 현성이 신기해 뒤로 보다가 휘청거리고 아버지는 찬바람에 취기가 올라 휘청거렸다. 그래도 난 취한 아버지한테 자꾸 물었다.
《아버지, 저기 불빛 많은 곳엔 어떤 사람들이 사나요?》
《우…우리 같이 농촌거러지들이 사… 사는 곳이 아니란다…》
《아버진 교원인데 왜 못가나요? 》
《이 자슥아, 아… 아버진 뚝박골소학교 훈장이라서 개똥냄… 냄새가 난단다… 으헛헛.》
《저―어―기, 불빛마을서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르나요?》
《농촌사람들은 이른새벽부터 뼈 휘게 일하여야 밥에 시락장국이나마 먹을수 있지만 저기 불빛거리 사람들은 푹신한 쏘파에 앉아서도 금의호식한단다…》
《우린 왜 저런 곳에 가 살수 없을가요?》
《팔자란다. 팔자가 좋으면야 저기 불빛휘황한 시가지로 가 살수 있는거란다, 후―》…
그날부터 내 맘속 깊은 곳에는 《팔자》란 명사가 암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팔자》는 낮이면 안개와 연기에 가려 근본 볼수 없다가도 밤이면 이른봄 논뚝을 따라 불이 붙듯 가물가물 내 여린 가슴을 불태웠다. 주시할수록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초저녁부터 꼼짝않고 앉아 창호지로 난 구멍으로 밤속의 그 불빛에 넋을 앗기고있었다. 그 불빛은 《팔자》였다.
《넌 밤만 오면 뭘 그리 내다보는거니?》
어느날 어머니가 불쑥 물어왔다. 난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팔자를 내다보아요.》
어머니의 두눈은 휘둥그래졌다.
《아니?! 이 애가, <팔자>를 내다보다니? 그건 무슨 말이냐?》
그러며 어머니는 내가 보는 창호지에 난 바늘끼만한 구멍으로 눈을 갖다대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가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가정배경이 나쁜 아들의 장래가 가슴 쓰렸던것이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어머니는 진정하고 자기의 등뒤에서 말없이 코를 훌적이고 선, 어린 아들의 머리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어머닌 믿는단다. 우리 아들이 커서 꼭 저 불빛찬란한 시내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 가 살리라고. 그러자면 지금부터 매일매일 배우는 공부를 잘해야 한단다. 알겠니?》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처럼 창호지에만 매여달리는 녀동생을 말려 숙제를 하도록 타일렀다.
나는 더는 창호지에 눈길을 팔지 않으려 했다. 낮에 배운 숙제를 깨끗이 하고도 과문을 죄다 암송내기까지 했다. 나는 엄마가 간간히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암송낼수 있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
어느날 밤, 《로동개조》하며 실망의 골짜기에서 술만 죽여내군 하던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비틀비틀 밖을 나섰다. 황야의 거친 바람이 내 여린 볼을 사정없이 갈겼다. 술 취한 아버지가 날 어쩌자는걸가? 《커서 사람구실 못할 놈아 …》그런 소릴 한탄으로 뱉군 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전을 쨍 쳐오는 순간, 난 약간 다리가 떨렸다. 우리 집이라지만 《상여막》뒤에 김치움이 있었다… 나는 놀랐다. 김치움속에 시내의 불빛보다 더 현실적인 《보물》들이 그득할줄이야.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 《보바리부인》, 《몽떼크리스또백작》, 《삼국연의》, 《수호전》… 들이 확 눈길을 끌었다.
마을 혁명위원회에서는 《홍위병》들을 파견하여 이따금씩 우리 집을 수색했고 《부농분자》, 《외국특무》, 《반당반사회주의분자》, 《고린내나는 아홉째》 아버지를 끌고 가 투쟁하곤 했다.
어둠은 언제나 찬바람을 타고 외따로 떨어진 우리 집을 먼저 습격하곤 한다. 황야와 골짜기에서 이는 바람이 합세하여 불어칠라치면 집뒤 수풀속에 든 무덤들에서 괴상한 소리들이 연달아 울려와 녀동생은 울음을 퍼지르며 엄마품을 파고든다. 그때면 병색이 짙은 엄마의 눈길은 겨우 열살잡이라도 나에게로 향한다. 봐라, 네 오빤 얼마나 용감하냐. 오빤 큰 사람이 될 징조거든. 미더운 눈길이다. 엄마의 그런 바램속에 나의 조그만 등이 시커먼 밤속을 나서서 집뒤로 향한다. 쑥단을 들어내고 움속에 내려간다. 등잔불아래 그렇게 나의 독서는 시작되군 했다. 어떤 날은 등잔기름이 마를 때까지, 어떤 날은 새벽빛이 새여들 때까지였다. 독서의 세계속에 푹 빠져있는 동안은 무서움도 괴로움도 근심도 없었다. 먼 불빛을 바라보는것과는 달랐다.
그 불빛이 시망막에 어리는 찰나가 던져주는 어둠, 간거함, 아득함이라니… 독서는 신비한 세계에로의 인도였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풀싹이 땅우로 내여미는만큼씩이나 나의 모든것을 조금씩조금씩 먼 불빛― 《팔자》로 가닿고있었다…
나는 그렇게 서서히 커갔다. 거친 황야와 공묘가운데로 뚫린 움속에서 깊숙이 신비한 재미에 끌려들면서 견강하고 용의주도한 소설속 인물을 배워가고있었다… 그러나 《팔자》는 기어이 암울한 그대로고 털끝만한 변화도 없었다. 때때로 먼 현성의 밤 불빛에 넋을 앗기며 애된 한숨을 흘리는 가운데 내 나이도 열아홉살, 고중문을 나서서 귀향지식청년이 되였다.
자학으로 독서를 한것뿐이지 소학교분수도 바로 못푸는《고중생》이였다. 기실 생산대로 내려와 사원이기전에 논도 풀고 가을도 할줄 안《학교농군》이였다.
병약한 어머니와 술만 죽여내던 아버지가 떠멘 우리 집은 빚이 많았다. 나보다 네살이 어린 녀동생이 불쌍했다. 15세부터 일군이 된것이다. 우리 둘은 그 빚때문에 이 악물고 일했다.
녀동생은 때이르게 처녀티가 완연했다. 거친 벌과 산야에서 다져진 몸매는 이르게 피여난 한송이 꽃 같은 애된 얼굴을 받들고 우아했다. 그 또래 녀자애들은 조숙했다. 우악한 사내들과 눈 맞추고 쉽게 련애에 포위되고 지어 남몰래 아이를 지우는게 자랑이듯 빈번했다. 허나 녀동생한테 련애거는 총각들은 없었다. 락오된 인간, 배척받는 인간… 그때문인지 녀동생은 차츰 침울했고 생기란 찾아볼수 없었다. 집뒤에 혼자 서서 울 때가 간혹 있었다… 그러다가 녀동생은 《벼락시집》을 갔다.
《이렇게라도 시집을 가 녀자노릇을 하게 됐으니 이것도 다행이지요… 흑흑.》
시집가던 날, 녀동생은 나이 지긋한 오빨 볼 면목이 없어하며 그렇게 자신을 위안하고있었다.
난 가슴이 찢어지고있었다. 너무나 곱게 생기고 총명한 열아홉살난 녀동생이 자기보다 거의 열살이나 우인데다 한심한 절름뱅이에게로 시집을 간다는게 말이다. 그래도 《빈하중농대표》의 자식이노라고 그쪽에서 탕탕 큰소릴 쳐대고있었다.
그날 밤, 난 울었다. 바람소리 세찬 들에 서서 먼 불빛을 바라보며 텀벙텀벙 눈물을 쏟았다. 딸이 평생 시집을 못갈가봐 싫다는것을 억지로 떠밀어보낸 부모가 야속했고 절망한 나머지 약해져 꺾어져버린 녀동생이 불쌍해서 울었으며 앞날이 근심되여 울었다. 그렇게 울음을 씹으며 저주하다가 실성한 사람 같이 킬킬 웃어대기까지 했다. 울다가 웃던 그 밤은 미쳐버린 밤이였다.
세상은 고약했다. 병신이 비단 같은 내 녀동생을 데려가더니 이번엔 왼눈이 누렇게 부황뜬, 명자라고 부르는 처녀가 나에게 소개되여왔다. 녀동생은 약해서 당한 팔자라면 난 절대 그런 당하는 인간이고싶질 않았다.
《얘야, 그저 왼눈이 멀었을뿐이지 가정출신이 좋은 집 딸 아니냐. 아이를 낳을수 있고 돼지를 칠수 있으면 대득으로 생각하려무나…》
이번에도 어머니가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으며 어떡하느냐 숙명이다 그랬다. 자식의 전도란 시집을 가고 장가를 드는것, 그것뿐이였다. 딸이 시집을 못가는것과 아들이 장가 못드는것이야말로 한평생 팔자를 망친다는게 고질로 돼버린 어머니가 되려 측은해났다. 어머닌 그게 탈이라면 탈이였다. 성질이 모질지 못하고 너무 고정한것이였다. 세월이 그렇게 주조한것일가.
《어머니, 어렷을적 어머닌 나더러 커서 꼭 불빛 찬란한 시내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 가 살라고 그랬잖아요… 이꼴로야 어찌…》
《… 더 아름다운 곳, 그 곳이 어떤 곳이며 어느 천년엘 가고… 우리 같은 사람에게 당할 소리겠느냐…》
어머니는 여윈 어깨를 들추며 흐느꼈다. 아들의 완곡한 거절과 꿋꿋한 행동거지에서 뭔가 지루히도 긴 밤을 밝히고저 류황불 같은 파란 불빛을 본것이였으리라, 창공의 무수한 은하계와 계명성을 바라고 아들의 팔자에 기적이 나타나길 기도했으리라…
팔자란 무엇일가, 운명에 기적이 나타나길 바라고 절로 이루어진다는 그런것일가… 아닐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서 이룩될것이란 단 한가지도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아는게 있어야 이룩될것이였다. 그렇다면 구경 뭘로 알아두어야 하는것일가? 할아버지적부터 여직껏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부디 당부하고 바라온것이란 오직 하나, 《글 읽어라》 그게 아니던가. 글 읽으면 이담 커서 큰 사람 된다던 말로부터 뭔가 알것 같았다, 팔자를 고칠수 있다는.
저, 먼 불빛이 차츰 그걸 말해오고있었다.
―몽떼크리스또백작이 《레미제라블》을 쓰듯 동요하지 말고 꾸준하여라.
― 초가오두막집에서 장가들고 아들 낳고 딸 키우는게 조급하다면 너의 눈에 저 먼 불빛은 아름답고 령롱한 꿈으로 아롱질수 없으리라.
그런 사상이 모름지기 자존심으로 박히기 시작하였다. 했기에 난 내 또래들이 장가들고 행복하게 사는걸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무등 애를 썼다. 왜냐 하면 소개해오는 처녀들과 따르는 처녀들이 악을 쓰기때문이였다.
그런 처녀들은 낮은 집에 굴뚝이 크듯 엉뎅이만 삐여나지 않으면 마른 수수깡처럼 여위고 오관이 비뚤게 생겼다.
《출신이 나쁠뿐이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요, 인물체격이 좋고 일 잘하고 지식이 있고 거기다가… 글쎄요 아직 루명을 채 벗지 못했다지만은 그 아버지는 국가 봉록을 받는 훈장 아닌가요… 난 그 집에 시집가고퍼요…》
어느날 그 처녀네 집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얻어들은 소리였다.
《얘야, 장가들려무나. 빈농의 딸인데 더 뭘 고를게 있냐. 애 낳고 밥 지을줄 알면 그만이지…》
아버지도 아들이 영원히 장가 못들가봐 걱정이였다. 《호박골》 룡수, 《허수아비》 철규도 보란듯 1등처녀를 얻어 장가드는데 난 하필이면 3등처녀와 병신처녀들속에서 대상자를 물색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 자존심도 생활의 조롱을 면치 못할줄이야.
명자는 생산대장인 아버지의 턱을 대고 담대하게 나를 추구하였다. 왼눈이 먼 얼굴은 언제나 내쪽을 향하고있었다. 마치도《넌 내거야, 내 손에서 못벗어난단 말이야》하고 오른쪽눈이 말해오고있는듯했다. 한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덧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면 털벌레가 내 몸을 스멀스멀 기여다니는듯 징글스럽기까지 했다. 자기의 아버지가 피우는 좋은 담배라며 독한 담배를 가져오고 곱게 수놓은 담배쌈지를 선물로 나에게 건넸지만 난 될수록이면 좋은 말로 거절하군 했다.
초여름에 접어들어 나는 생산대장의 배치에 따라 마을에서 한 시오리나 떨어진 《후영》으로 일하러 가게 되였다. 보통 나이 지긋한 로농들이 가 있게 되는 그런 곳을 뭣때문에 내가 가게 되였는지 몰랐다. 나 혼자 청년이라면 몰라도 《외팔눈》 명자도 식모로 올라온것이였다. 후영에서 논김을 다 매려면 적어야 한 열흘씩은 걸렸다. 올라갈 때 읽고 쓸것으로 책 몇권을 휴대했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한낮이면 땡볕아래 궁둥일 하늘로 쳐들고 돌피를 뽑느라 논판을 헤매느라면 팔이 빠지는듯하고 허리가 끊어질듯 아파난다. 해그늘이 들어 저녁렬차가 기적을 울려서야 간신히 한숨이 나온다.
저녁을 치르고는 단 반시간만이라도 사전을 들추면서 한자로 된 소설책이 읽고싶어진다. 고중을 나왔다지만 한어수준이 너무 바닥인때문이였다. 그런데 그 저녁시간마저 박탈을 당한다. 그런 환경속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욱 땀을 쥐게 하고 몸둘바를 모르게 하던 일은 그 박부대장때문이였다.
로농들에게 있어서 저녁은 기다려온 즐거운 시간이였다. 남정들은 호박잎순이나 들나물에 잡아온 붕어새끼들을 넣고 끓인 매운탕에다 독한 술을 얼근히 마셔대고 아줌마들도 탁배기를 들어 목덜미가 불그레하니 물든다.
《처녀총각의 이중창을 들어보는게 어떠슈? 》
박부대장의 똑같은 제의다. 내뺄가봐 문을 지키고선 문잡이 로농때문에 그예 노래를 해야만 했다.
《야, 남자가 왜 그리 졸장부여, 빈하중농들의 재교육을 받자면 하란대루 해얀다.》
명자는 구석에 처박힌 나의 손목을 잡아끌어낸다. 난 언제나 그녀한테 질질 끌렸다.
《시작!》
명자가 선코를 뗀다. 우린 같이 부른다.
《대해항행은 키잡이에 의거하고/ 만물의 생장은 태양에 의거하네/…》
그저께도 그 노래를 불렀고 어제도 그 노래를 불렀다. 래일도 모레도 그 노래를 부를 판이다. 아는 노래란 없으니 명자도 나 따라 그 노래를 부르고있는거였다. 명자의 량볼은 발그레 물들어있었고 나의 얼굴은 해쓱하니 질려있었다. 명자는 딱 바라져있었고 난 가물든 밭의 옥수수처럼 푸들지 못하고 여위여있었다.
《궁합이 맞는 신랑신부감이요.》
박부대장의 그런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신랑신부처럼 나란히 선채로 노래를 부르군 했다.
땅을 파고 들어앉은 농막은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짧게 퍼지다가 껌뻑 호롱불이 죽으면 밤속에 깊이 잦아든다. 막안은 봉당을 경계로 량쪽으로 구들이 놓였는데 오른쪽으로 남정들이, 왼켠으로 아낙네들이 드러누워 잠든다. 불이 꺼진 막안은 차츰 코고는 소리로 들어찬다. 박대장이 석유등잔을 관리하기에 등불빛을 빌어 책을 볼수도 없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두눈은 점점 더 또렷해나고 생각하기도 지겨운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덮쳐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함께 학교를 다녔던 동창생들은 약속이나 한듯 장갈 들고 시집을 가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여보기에 꿀맛을 누린다.
아버지 어머니를 더 속태우지 말고 장갈 드는게 상책일가, 명자가 외눈박이만 아니라도… 나 또한 뭐가 볼게 있단 말인가. 출신이 나쁜데다 말라서 볼품없는 이 꼬락서니… 밤은 깊어만 갔다. 코를 고는 소리가 지쳤던가 곁에 누운 박대장이 돼지나팔소리 같은 방귀를 뀌자 저쪽 구들의 어느 아낙네들 가운데서도 뒤질세라 짧게 끊어 수줍은 방귀가 호응하였는데 《꽥―》하고 농막을 뿌리채로 뽑아버릴듯 밤 12시 짐차가 강에 둘러싸인 섬을 들썩거리며 산굽이를 휘돌이를 놓아버린다. 저쪽 녀인들의 구들에서 꿈결에 젖어 흐느끼는가 그런 애된 소리의 임자가 외꾸눈이 같다는 의심에 주눅이 들며 주르륵 내 눈귀로 눈물인가 방울지고있었고 나도 끝내 피폐해진 몰골을 기진한 여파에 처묻고있었다…
후영의 밤은 무서웠다. 십여헥타르의 둘레는 강이 사품치며 흘렀고 강밖으론 우중충 뭇산이 솟았다. 낮이면 숲과 물과 새, 꽃들과 조그만 무척추동물들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의 생장과 움직임에 별의 이슬 같은 꿈을 꾸곤 그랬지만 일단 밤만 찾아오면 그런 꿈들이 눈물겨웁게 간절해지고 절실해질 대신 허둥지둥 쫓기고 어처구니없이 헐벗는것이였다. 그럴만큼이나 밤은 칠흙 같았다. 그런 밤마다 먼 불빛이 내게는 얼마나 수요되던지… 귀뚜라미 우는 깜깜한 농막안과 여우와 늑대들이 어슬렁대는 후영의 밤은 그대로 무덤속이였다. 자존과 기대와 꿈과 의력이 기죽고 군데군데 뭔가에 뜯기우고있을적에 일은 일어나고야말았다.
그날은 옹근 하루를 비가 쏟아졌다. 우리 농막의 사원들은 모두 한 오백메터 상거한 이웃 생산대의 농막으로 가 술추렴을 하게 되였다. 물에 빠진 노루를 때려잡은것이다. 노루를 큰 가마에 푹 앉히고 온 하루 명절인양 되놀이가 벌어지고있었다. 나는 원래 술을 입에 대지 않고있다가 박대장이 억지로 권하는바람에 정신이 알딸딸하게 술을 마시고말았다.
《이봐 나머지총각, 우리 농막으루 가 술통을 가져와.》
《나머지총각》이라구 부를적마다 심히 찔리며 고개가 숙어지는걸 어쩔수 없었다.
밤은 깜깜했고 비는 계속 내리고있었다.
《명자야, 너 동무해 같이 심부름 갔다오려므나.》
명자도 술을 했던지 목덜미까지 불그레한 얼굴을 들어 깔깔거리며 나를 묻어나왔다.
술이 작용을 한건지 외눈이, 명자와 같이 걷는게 싫지 않았다. 처마 낮은 집의 굴뚝이 크다고 키 작은 명자의 그 큰 엉뎅이가 자꾸 나를 부딪쳐온다. 그럴적마다 뭔가 내 그것이 튼실해나는걸 어쩔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뿐이였다. 그렇게 명자는 비닐을 쓴채로 내가 든 우산아래에서 걷고있었다.
나무댕기를 뽑자 농막문이 삐꺽 열렸다. 내가 술통을 쥐는데 뭔가 뒤로부터 내 그것을 슬몃 거머쥐는게 아닌가. 허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돌아서서 명자를 향하는 찰나 그녀는 뼉다구 같은 내 그걸 다시 안으로 힘껏 틀어잡았고 내 손도 그녀의 아무것이나 되는대로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고 《빨고 입맞추고…》하던 어느 누군가의 육담이 피끗 떠오르면서 목이고 입이고 마구 물어뜯을듯 입술이 미쳐나고있었다. 명자의 장알박힌 손이 얼마나 드세게 쥐고 당기고 험하게 굴었던지 어째보지도 못하고 찍― 사정을 해버리고만거였다.
《이크, 코풀레기.》
명자는 그제야 손을 빼냈고 얼굴이 지지벌개나더니 부엌으로 힝 달려가 쌀뜨물에 손을 뻑뻑 씻는것이였다.
나는 그제야 제정신이 돌았던지 금방 저지른 일이 후회되였다. 아니, 후회되는 정도가 아니였다. 원, 세상에 어쩜 이런 일이 다 발생할수가 있단 말인가. 명자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고 마을의 민병련장과 공사파출소, 현의 감옥살이 신세들이 련달아 위압감으로 쌓이고있었다.
어둑시그레한 부엌에서 명자의 시퍼런 눈불이 날 주시하고있는게 무서웠다. 난 구들에 풀썩 꿇어앉아 무릎에 머리통을 한껏 구겨박고 울음처럼 넉두리가 나갔다.
《이건 사실이 아니여. 꿈도 꾸기 싫은… 끄응응흐…》
그럴 때 명자가 앙칼지게 쏘아붙이고있었다.
《이 새꺄, 이 부농새끼 같은게. 너 잘난데가 어드메냐. 뭐, 꿈도 꾸기 싫다? 내거 다 빨고 주므르고서리… 내 처녀가 다 다슬었구 부농 때가 묻었는데 그래두 싫다구? …늦어서 다음달에 잔치다! 들었지? 안그러면 강간죄루 울 아버지한테 말해버릴래, 이 개 같은… 량심없는…》
《명자야, 날 한번만 살려주어다구, 네가 먼저 내걸 안쥐였더면 어찌 이런 일이…》
《녀자가 남자의걸 먼저 쥐였다는게 누가 들어도 사실이라고 믿을것 같애? 이 멍청한…》
그때였다. 문이 펄쩍 열리며 박대장이 노기등등해서 들어섰다. 그때라고 명자가 흑흑 울어 퍼지르기 시작했다.
박대장이 다짜고짜 나의 귀뺨을 갈기며 으름장을 놓았다.
《감히 빈농의 딸을 다쳤어, 에라 철창살이가 원이구먼기래여. 이젠 어떡헐래? 다쳤으면 별수 없구먼기랴… 기래 철창살이 허겄냐? 결혼하겄냐? 말해봐.》
별수 없었다. 난 결혼하겠다고 대답하는수밖에 없었다. 난 깊은 동굴속에 갇혀버린거였다. 한점의 불빛도 별빛도 이슬의 냄새마저 소실된 그런델 말이다.
박대장은 날 개처럼 질질 끌고 비속을 나섰다.
노루뼉다구를 갉으며 술놀이에 한창이던 사원들 가운데로 나와 명자가 나란히 섰다.
《얘들이 지끔 진짜 <약혼노래>를 부르겠다누먼. 자, 박수―》
집안은 왁작 끓어번졌고 흘끔흘끔 눈길들이 이상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비난속이였다.
나는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길 없었다. 명자는 웃고 노랠 부르고 난 울분에 목이 막혀서 노랠 부르는거였다.
대해항행은 키잡이에 의거하고/
만물의 생장은 태양에 의거하네/
… …
물떠난 고기는 살수 없고/ …
잠들수 없는 밤이였다. 악과 분개가 서린 밤이였다. 박대장과 몇몇 어른들이 만든《극》이란걸 눈치챈것이다. 생각할수록 한심하기만 했다. 한심한 세상속에 한심한 인간들속에서 그냥 한심한 꼭두각시극을 연기하고 살아가기란 죽기만 못하다고 생각되였다. 그런데… 그런데 난 죽을수 없다고 이 악물었다. 그리고 싫은 일 죽어도 못한다고 느꼈다. 어떻게 견뎌낼만하느냐, 불보듯 뻔했다. 이대로라면 랠부터 어떤 결과가 오리란것도 분명한것이다. 고민, 아픔, 분노… 갑자기 흥분하도록 어떤 결단이 서고있었다. 그래, 미친척하자, 미친놈에게 딸을 줄수가 있을가… 더 아무것도 고려할게 못되였다. 오직 《미친놈》이 되고자 했다… 옷을 홀딱 벗었다. 팬티를 벗어 녀자들이 코를 곯고있는 구들에다 들이뿌렸다. 그리고 키들키들 웃어대다가 슬몃 일어나 어둠속을 더듬어 박대장을 찾았다. 박대장의 얼굴이 있을 쪽을 겨냥하고 진득이 오줌을 갈겨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질겁을 하며 밀고닥치고 호롱불을 찾느라 야단을 쳐대는데 저쪽 녀자들 구들에서 어느 녀인은 놀라서 울음소리를 내지르기까지 한다. 나는 그냥 키들키들 웃기만 했다.
《아니?! 저런 환장을 하겄다야. 이 놈이, 부농자식이 미쳤구만기래여. 응? 저런 쌔가빠질늠으 엇대구 오줌을 다… 저런 부끄러운줄도 모르는…》
《오줌을, 존경하는 박대장의 얼굴에 다 오줌을 쏘다니…흐핫하…》
농막안이 호롱불로 밝혀지자 사람들은 나를 둘러싸고 법석대며 악연해하고 어안이 벙벙해서 란리였다.
《아깝구만 아까워, 쯧쯧. 불쌍도 해라, 흑응응… 지 아비어미가 알면 워찌할란교…》
평소에 나를 멀리하던 녀인들도 미친 나를 마주하고 아까워하고 불쌍해서 눈물지으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있었다.
나는 그냥그냥 웃었다. 웃다가 울기도 하고 두눈을 퀭하니 뜨고 등불만 바라보기도 했으며 누군가의 의심하는 눈길과 부딪치면 등불을 바라고 태양을 우러르는 춤을 추기도 했다. 발가벗고 노는 그 꼴이야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처경이였던지 박대장도 구들을 쾅쾅 쳐대고있었다.
《미쳤군, 미쳤어. 저 애가 내 얼굴에 오줌을 갈기고 미쳐버렸네. 김대장의 사위 될번하다가… 아이고, 우리 명자 니 팔자도 참말로 사납다. 워찌하믄 니 약혼 하루만에 저 눔이 미쳐버렸노. 내가 김대장을 워티기 볼끼가.》
명자도 농막안의 대들보에 목매여 죽는다고 란리를 쳤다.
《그대가 없이 내 살아 뭘 할라우― 어우― 첫사랑아, 머저리 같은것아― 우어― 나 죽어뻐릴라…》
난 속이 시원해서 박대장앞에서 말처럼 뛰기도 하고 바지도 벗고 오줌도 갈기려 들었다. 그럴 때마다 박대장은 자꾸 구석으로 달아났고 사람들은 날 바지를 입히느라 애를 쓴다.
《저 눔아가 딱 나헌티 오줌을 싸려 들지? 나 이거 원… 빨리 마을루 내려보내라구.》
난 소수레에 꽁꽁 결박을 당한채 후영을 떠났다. 떠나면서 자꾸 흐드득흐드득 웃었다. 명자를 향해 손을 젓고 박대장을 향해 손을 저었다. 명자는 그 한눈을 들어 희뜩거리며 슬픔에 어깨를 들추고있었는데 그제야 뭔가 속에 걸렸고 울컥 동정이 들기도 해났다.
《미안해, 명자야…》
난 속으로 거듭 기도처럼 외워보았다. 그러다가 명자때문에 당할 《시련》을 생각하느라니 다시 증오가 북받쳤다. 후과는 상상하기조차 무서웠다. 눈을 꾹 감았다. 이를 갈았다.
날이 저물어서야 집에 대일수 있었다. 어머니는 기절을 했고 아버지는 나의 머리통을 안고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변이냐, 어쩜 이런 불행이 다 이 집에 떨어지다니… 하느님도 불공평하구나― 영예로운 집안에는 앉아놀아도 복덩이를 굴려주고 고통과 아픔으로 모대기는 우리 집안엔 아무리 기도하고 노력을 가해도 그예 화만 던지니… 아이고, 이 불쌍한것아… 이제 내가 살 멋이 없구나…》
한식경이 지나서야 제정신을 차린 어머니도 땅을 두드리며 꺼이꺼이 넉두리를 널어놓았다.
《어릴적부텀 큰 사람 된다고, 출세하여 아버지 어머닐 큰 도시루 모셔다 천당 같은 생활을 누리게 하겠다고 독서도 하고 밤을 패며 노력을 해온건데… 불쌍한 내 아들아, 정신 좀 차리고 이 어밀 보려므나― 이 어미가… 하느님 맙시사― 으흐흑응, 내 전생에 무신 죄 질렀다고 이 아니 백주에 생벼락 아닌가베…》
어머닌 몇번이나 정신을 잃고 넘어갔는지 모른다. 그 정경은 차마 눈뜨고 볼수 없었다.
《어머니, 전 미치지 않았어요. 미친척하는겁니다. 한동안만 참아주세요. 김대장의 딸이 시집가버린 이튿날로…》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걸 끝끝내 참아내야 했다.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듯했고 속으로 피눈물이 떨어지고있었다.
내가 미친병에 걸렸다는 소문은 린근동네까지 파다히 퍼졌다.
미친놈인척하기도 쉬운 노릇이 아니였다. 그것도 집안식구들앞에서까지 말이다. 집안식솔들에게 진속이 드러난다면 곧 끝장이란걸 난 잘 알고있었다. 난 밤이 오면 독서를 하기 위해 낮부터 책만 찾아 읽는 중얼임을 거듭《연극》해야만 했다. 미친척하다도 볼거리, 책만 주면 헛웃음을 거두고 책에 눈길을 멍청히 파는척하군 그랬다.
《이 애는 미쳐서도 지식을 파고드누만. 쯧쯧 얼마나 리상이 있은 애였소.》
사람들도 그렇게 혀를 차며 동정을 보냈다.
나는 저녁이 오면 《요괴가 온다― 귀신이다―》하고 헛소리를 치면서 내 방문을 안으로 걸어놓고는 깊은 밤까지 명작들을 탐독하고 베끼고 암송하군 했다. 그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깨고소한 날도 며칠가지 못했다. 후영에서 일을 끝내고 내려온 명자가 느닷없이 내 집으로 드나들줄이야. 이른새벽에 뛰여드는가 하면 한밤중에 치마를 펄렁거리고 뛰여들어와서는
《아니, 거짓말야요. 그이가 미칠수 없어요. 거짓말이지요. 미쳐도 난 그이가 좋아요.》
소릴 지르면서 마구 구들에 올라와 날 이리저리 뜯어보군 하다가는 힝하니 돌아가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하현달도 뭘 봤던지 낯 붉히고 구름뒤에 숨어버린 캄캄한 밤, 등잔불아래 정신없이 한어로 된 《홍루몽》을 읽어내려가던 나는 예감으로 등골이 섬뜩해나고 제살이 아니게 공포감을 느끼게 되여 부지중 조그만 뙤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
나는 하마트면 비명을 내여지르며 기절할번했다. 창호지를 발기고 들여다보는 눈은 귀신의 눈이 아니고 명자였던것이다.
《넌 미치지 않았어.》
그러며 우리 집을 무작정 뛰여드는것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저 앤 미쳐서 중얼거리다도 책만 들면 조용해지거던…》라며 한사코 말렸으나 하루밤만 같이 있게 해달라고, 있으면서 진짜 미쳤는지 시험해보겠다는 처녀의 고집을 막을수가 없었다.
《처녀가, 빈농의 딸이 우리 애와 하루밤을 한방에서 지우겠다는게 복이 아니겄수.》
결국 아버진 방문을 닫아주었다.
명자는 푹 퍼진 엉뎅일 내곁에 부려놓고앉아 그 흰전등알을 박아넣은것 같은 눈을 들어 날 무섭게 응시하였다. 난 구석에 엉금엉금 기여들어갔다. 그도 나를 따라 기여왔다. 난 그를 보고 킬킬 웃었다. 명자는 사팔눈을 들어 날 잡아먹을듯 노려보더니 아주 자신만만하게 입까지 다시며 다가와 내 속옷안으로 손을 쑥 찔러버렸다. 그 놈은 명자의 손에 쥐이자 쑥 커지며 절구공처럼 단단해졌다. 실로 뜻밖이였다. 내가 만약 흥분을 하고 오르가슴에 견디다가 그녀를 점하는 날엔 거짓미치광이질이 증명된다는걸 난 알고있었다. 참으로 오래동안 고민하고 획책한 교묘하고 이 악문 실험이였다… 난 실실 오줌을 누기 시작하다가 일이 되느라고 방귀까지 크게 나갔다.
《에그 씨. 진짜 미쳤네, 드럽게 미쳤다니까… 이걸 어찌하나…》
오줌이 질펀한 손을 털면서 명자는 외마디를 질러버리더니 곧 바깥으로 뛰쳐나가버렸다. 그리고 더는 나타나질 않았다.
한달 또 한달, 그 찌물쿠던 여름도 길고 시원하여 아쉽던 가을도 가고 겨울에 접어들던 어느날이였다. 《저 애가 미치지만 않았다면 새해 여름에 있게 되는 대학시혐에 한번 겨뤄볼텐데…》하는 아버지의 한탄을 듣게 되였다. 뜻밖이였다. 귀가 번쩍 띄였다. 그날따라 일이 되자고 그랬던지 아버지는 내게 반도체라지오 하나 사서 들으며 마음안정이나 될는지 기대를 건거였다. 반도체라지오에서 국내국외정세를 다 들을수 있었고 《4인무리》이 거꾸러지고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되였다는 희소식도 접하게 된 그날 밤, 나는 미친듯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싶었으나 아버지 어머니께 타격이 될가봐 그럴수 없었다. 나는 내 방구석에 깊숙이 처박혀 먼지를 들쓴 고물무더기를 허비적거렸다. 소학교적부터 고중 졸업때까지의 교과서들을 찾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마 안가 무슨 눈치를 챘던지 글씨소리와 외우는 소리가 우세인 내 방에 눈길을 돌리고있었다. 일단 눈길이 부딪치거나 내 방을 《침입》한다면 난 미친척할수밖에 없었다.
대학입시 달포를 앞두고 난 집의 장닭을 도적질해 품에 안고 현소재지를 향했다. 현소재지에서 장닭을 판 돈으로 증명사진을 찍었고 대학입시등록을 마친것이다. 모든것은 극비에 붙여두어야 했다.
집에서는 미친 아들에 대해 별반 관계치 않았다. 온 하루 어둑컴컴한 구석에 처박혀서 하루이틀도 아니고 옹근 한주일씩이나 들어박혀있기가 일쑤이고 한밤중에도 집뒤의 산등성이에 올라가 고래고래 소릴 지르다 들어오기때문인가보다. 기실 산에 올라 소릴 지르는것은 맘속에 맺히고 맺힌 응어리를 하소연하는거나 다를바없었다. 평생의 《도박》을 단 이 아들한테 걸고 살아온 부모에게 있어서 그 믿던 나무가 꺾어져버렸다는게 실로 하늘이 무너지듯한 슬픔이 아닐수 없었다. 아버지는 술로, 어머니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있는 현실 또한 자식인 이 《미친놈》의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저며내고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이 아들은 미치지 않았어요. 난 꼭 장한 일을 할거야요!》
나의 웨침은 그런 뜻이련만 누구도 알아들을수가 없게 짐승의 소리로 대체할적마다 내 속으론 피눈물이 흐르고있었다.
끝내 고등학교입시를 치르는 날은 닥쳐오고야말았다.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았다. 시험장에는 나를 알아볼 사람이라곤 없었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사흘동안 제정신이 아니게 이른새벽에 나갔다가 어두워서야 집에 들어선 아들을 마주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중얼거렸다.
《후유― 점점 병이 더해가니 이 일을 어찌하누, 가끔 어델 저렇게 갔다오는건지…》
《에그 쯧쯧, 제발 죽지만 말아다구… 아무리 못났더라도 …내 피덩이니 부모 먼저 갈수야 없잖느냐, 에그에그 쯧쯧…》
나는 차츰 온정되고있었다. 시험을 치른 경과를 나 절로 잘 알고있었지만 대학입학통지서를 쥘수 있을가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러나 꼭 온다고 굳게 믿고있는터였다.
울앞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여 아들의 미친병을 치료하는데 쓸 돼지굴안의 꿀꿀이를 찌무룩이 비웃던 어느날이였다. 앞집에서 아침부터 찰떡 치고 돼지 잡고 야단법석인데 어머니가 푸념조로 중얼댔다.
《에그에그, 아무리 눈 한짝이 멀었대도 어찌 그런델 다 시집을 간다냐, 똑 찍어놓은 고생길이지, 쯧쯧.》
명자가 웃마을에 사는 간질병이 있는 고아총각한테로 약혼을 허한거란다. 얼마나 고대 바라온 일이던가. 그러나 왜 그런지 기쁠수 없었다… 후영의 농막에서 내곁에 찰딱 붙어서서 보조개를 패며 매미처럼 노래를 부르군 했던 명자, 미쳐도 사랑한다며 밤중마다 짓쳐들어오던 명자… 아, 마음이 비여오고 산란하길 어데 비할바없었다… 울수도 웃을수도 없는 우울한 마음을 달랠길없어 안달을 떨고있을무렵에 내앞에 뭔가 뚝. 떨어져내렸다. 우편배달이 건넨 편지였다. 순간 전신에 형언못할 기운이 쭉 뻗으며 헉, 하고 어떤 예감으로 인한 소리가 나가고있었다.
《아! 대학입학서.》
진짜 미칠것만 같았다.
《엄마― 아부지―》
나 모르게 튀여나간 그 부름은 참으로 오래만이였고 부르고싶다못해 울음을 먹어오던《어머니― 아버지―》였다.
《아니? 네가 금방 뭐라고 그랬니? 어머니라고 불렀어? 응?》
돼지죽을 끓이다 소리를 듣고 쫓아나온 어머니는 똑 말뚝이 박히듯 돼지굴옆에 선 아들을 마주하고 서버렸다. 이외와 악연감이 찬 두눈으로 눈빗질하면서 또박또박 무거운 음성을 내뱉고있었다.
《네가 금방 날 부른거니? 어디 다시한번 불러봐, 응?…》
그것은 천근만근도 더되는 무겁디무거운 확인이였다. 그리고 아들의 떨리는 손에 얹힌 노을빛 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길로 최후의 기대감과 희망과 《어쩌면…》이라도 기적이라도 나타나길 바라는 간절함이 그득 고여있었다.
《엄마… 나… 난 미치지 않았어. 대학입학통지서가 왔다구요, 어엄마아… 이 대학입학통지서를…》
어머니는 갑자기 두눈이 송아지눈이 되며 입술이 푸들푸들 떠는것이였다. 이어 콩알 같은 눈물이 주르륵 떨어지고 주걱 같은 두팔이 허공을 몇번인가 긋더니
《아들아, 네… 네가 우리 몰래 이른새벽에 나갔다가 어슬녘에 들어서군 했던게 원래는… 원래는 대학시험을 치르느라 그런게였구나. 어디 보자, 어디…》
그러며 홱, 편지를 나꾸어채서는 속지를 뽑았다.
《연변대학… 흐윽. 이게 꿈 아니냐!》
그렇게 울음소리를 내던 어머니가 갑자기 나의 팔을 꽉 비틀어 꼬집었다.
《아갸갸, 아픈데요.》
《그래, 아프겠지. 꿈이 아니구나, 생시구나…》
어머니는 울다가 웃다가 드디여 통지서를 높이 쳐든채, 울바자문을 열어제낀채 동네를 마구 뛰여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 우리 아들이 대학 붙었다구요― 누가 우리 아들이 <미치광이>라던가요. 우리 아들은 출세했지 뭐야요…》
그러다가 우물집근처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오던 아버지를 붙잡고 수염과 관골이 우거진 낯에다 마구 입을 맞추고 끌어안고 어린애처럼 뛰였다.
《이 년이 미… 미쳤나. 네… 네 년까지 미쳤으니 나 이제 목매 죽어야지…》
그러며 아버지는 울려고 끽끽거리는것을
《미치긴 누가 미쳤다구요. 우리 집 아들이, 여적 미친척했다구요. 대학시험을 위해 미친척했거든요. 안미치구 이렇게 대학입학통지서까지 탈수 있나요. 춤추자요, 딴따라 딴딴… 응흑응…》
《이게 지금 뭐라고 허텅지거리 치는거야, 미친척이라? 대학입학통지서가 왔다고? 이기 지금 미쳐도 단단히…》
심히 불안에 쌓이며 어머니의 손에 쥔 통지서를 홱 나꾸어채서 들여다보았다. 눈을 문지르고 거듭거듭 확인을 해보다가 갑자기 불에 엉뎅이를 덴 소 같이 펄쩍 솟구치며 집쪽으로 냅다 백메터달리기를 하기 시작했다.
집근처에 선 아들을 바싹 접근해가며 뚫어져라고 들여다본다. 이 놈아, 그래 안미친게 확실하단 말이지? 하고 묻기도전인데 내가 먼저
《아부지―》
하고 웨쳤다. 그리고 허억, 하고 닭똥 같은 눈물이 뚤렁 떨어진다.
《어?! 시방 날 <아부지>라고 불렀어? 어이쿠. 내 새끼야… 원 세상에… 원…》
내 머리통을 품에 끌어당기는 아버지의 눈확이 확 붉어나며 눈물이 좔좔 흘러내린다.
《아무렴 그럴수가 있겄냐. 미치다니, 그게 무신 일이라냐… 무신… 주여, 내 하나님이셔…》
… …
나는 나를 잃지 않았다. 무정한 세월속에 자기를 마구 내여맡겨버리는 축들은 당분간은 나름대로의 자유를 맛볼수 있는거다. 그러나 즐거움의 뒤끝에 따르는것은 고통, 지겨움, 고독, 불행, 허무… 밖에 없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삶에 꿈이요, 희망이요가 색바랠수밖에 없는거다.
흰갈기를 날리며 발굽에 불티일게 달리는 말보다도 빠른게 세월이요, 소 열마리로 당겨도 못돌려세우는게 세월이랄 때 인간에게 있어서 배움의 계절을 게을리하지 않음은 황금을 주고도 못바꿀것이며 눈앞의 리익만 따지는 한치보기 살이는 찬서리를 기다리는 한포기 풀에 해당될뿐인것이다.
세월의 여파속에 머리가 세여가도 언제나 꿈이 있고 희망에 차있다면 사는 보람을 느끼게 되며 힘이 솟구치는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겐 밤이, 어둡고 침침하고 고독한 자기를 가두는 그런 밤이 있어야 한다. 그런 밤이야말로 자신을 끝끝내 솟구치게 하여 이겨내는 꿈과 그 꿈을 향하는 각고정려의 노력을 발산시키는것이다.
그런 밤속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그리고 그냥 현성의 먼 불빛을 보고저 내 동년적 현성의 그런 밤속의 가물거리던 불빛보다 십배 백배 더 거창하고 황홀히 아롱진 도시에서 며칠전에 팔십고령의 아버지가 떠나가셨다.
죽어서마저 《먼 불빛을 바라본다》며 고향의 북망산 푸른 이끼 돋은 언덕에 잠든 어머니 따라…《사람은 태여나서 죽을 때까지 쉼없이 노력해야지…》라며 출세에 만족을 느끼고 언녕 술군이 되여가는 부패한 이 아들의 더러운 꼴이 역겨워 가버린 아버지였다… 역시 나는 다시 다르게 부패해지고있는걸가?
바람이 나를 깨운다. 얼마나 오래만이냐, 드디여 나는 밤속에 서서 창공의 별들을 바라본다. 먼 불빛이 아물거리며… 아물거리며…
[연변문학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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