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광학
외손주가 태여 나자 나와 안해는 딸을 도우려고 낯설은 고장 청도에로 오게 되였다. 청도에 온지 잠깐 사이같이 느껴지는데 벌써 두 번째 해가 저물어 간다. 뒤돌아보니 기간 우리는 하루하루 지리지리 한 황혼육아의 고달픈 나날들을 보낸 것 같다.
그러다 지난 10월 하순 외손자가 두돐이 지나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자 우리 량주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틔우게 되였다. 오전 8시30분 좌우에 애의 손목을 잡고 5분 거리를 걸어 유치원에 맡겼다가 오후 4시30분 좌우에 다시 애를 유치원으로 부터 집으로 데려오면 그만이였다.
외손주가 없는 사이 오전과 오후의 황금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집안의 잡다한 자질구례한 일들을 하고도 여유가 생겼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책을 보고 컴퓨터에 마주앉아 글을 긁적거리며 자유의 시간을 만끽했다. 손주놈에게 감겨 꽁꽁 묶이운 몸이 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잠시 나마 거기에서 벗어나고 보니 생활은 너무 편하고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매일 똑같은 여유로운 일상이 반복되다 시간은 바람같이 쉭이익하고 지나 어느 덧 11월 중순이 되였다. 이런 같은 내용의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저도 모르게 생활이 너무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맨날 안해가 곁에 있어 말동무가 되긴했지만 그게 아니였다. 이럴 때 연길에 있으면 친구들을 불러 술 한 잔하며 시원히 덕담이라도 나누며 즐겼을 텐데 이곳은 타지이다 보니 낯익은 사람도 없다. 좀 시간이 더 지나자 스멀스멀 외로움과 고독감이 밀려 오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차 어느 날인가 딸의 권고에 의해 청도조선족 작가 협회에서 조직한 독서모임에 참가하게 되였다. 우연이라고 해야 할가 아니면 그대로 연분이라고 해야 할가 모임에서 길림시서란중학교에서 교직에 몸을 잡다 퇴직하고 청도에 와 만년을 보내고 있는 김성기선생님을 알게 되였다.
그리고 모임에서 선생님의 소개로 ‘청도시 조선족교사 친목회’의 정황을 알게 되였고 또 선생님의 살뜰한 관심과 간절한 요청에 의해 결국 ‘포로’가 되여 교사친목회에 가입하기로 약속하고 예정된 금요일에 활동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내가 김성기선생님과의 약속에 의해 교사친목회와 ‘맞선’을 보기로 한날 청도의 날씨는 11월의 끝자락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봄날처럼 따스하였다. 교사친목회의 활동장소는 청도시성양구의 외각 자그마한 진에 자리 잡은 조선족이 경영하는 ‘전주식당’ 2층이였다. 차에서 내려 2층으로 향하며 웬지 설레이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도그럴것이 이제 곧 청도라는 낯 설은 고장에서 생면부지의 얼굴들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이날 나외 또 한명의 선생님이 ‘맞선’을 보기로 했는데 그가 바로 내몽고 치치할시에서 온 엄선생님이였다.
우리가 2층 입구를 지나 곧 바로 활동실에 들어서자 이미 활동실에 오신 선생님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높이 환성을 지르고 박수를 쳐대며 반기였다. 이런 일은 처음 대하는지라 어정쩡한 김에 어쩔바를 모르다 겨우 안정을 취하고 자리에 앉아 주위를 휘둘러보니 환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대던 선생님들이 말짱 녀선생님들일줄이야! 허, 이러고 보니 우리가 운좋게 꽃밭을 찾아 온 셈이였다.
조금지나 회장 김성기선생님의 소개에 의해 안 일이지만 이 협회에는 30여명의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3분의 2이상이 녀선생님들이란다. 오늘 엄선생님과 내가 새 회원으로 참가 하게 되면 남성이 9명으로 되여 오랜만에 남성이 3분의1의 비중을 채울 수 있단다. 기간 협회에서는 남성회원들을 모집 하려고 여러모로 애쓰다 요행 오늘 두 선생님들을 맞이하여 녀성회원들이 더 들끓고 기뻐하고 있단다. 오, 그랬었구나! 순간, 마음이 붕 뜨며 어깨가 으쓱해지는 건 웬 일일가. 그러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의 연길로인무도장에서 남성들이 들어서면 녀성들이 앞다투어 커피나 음료를 사들고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뜬소문만이 아닌 것 같았다.
청도시 조선족교사친목회총회에는 총회회장단을 주축으로 산하에 시구지회, 성양구지회, 이창지구지회 등 조직들로 구성되였단다. 거이 100여명에 가까운 협회회원들이 모였는데 다수가 동북3성에서 퇴직한 로교사들과 약간명의 기관, 사업단위에서 퇴직한 간부들이란다. 듣고 보니 이곳은 알쭌하게 지식인들만 모인 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협회는 협회의 장정에 근거해 총회회장단과 각 지회회장단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고 회원 모두가 참여한 민주적선거의 방법으로 총회회장단성원과 각 지회회장단 성원들이 선출된다고 한다.
시구지회는 모두 3개조로 구성되였는데 엄선생은 1조에 편입되고 나는 연길에서 왔다는 명분하에 연변에서 온 선생님들 이 가장 많은 3조에 편입되였다. 이제부터 신입생의 생활이 여기에서 시작된 셈이다.
내가3조에 자리를 옮기자 조장의 사회하에 회원들마다 자아 소개를 진행하게 되였다. 선생님들 모두가 한뉘 교사직에 종사했던 분들이라 정색해서 또박또박 자아 소개를 하였다. 그런데 열심히 듣고 있을수록 어쩐지 옛날 내가 교직에 몸 담갔던 학교시절로 돌아 간듯한 느낌으로 젖어만 갔다. 흑룡강 에서 오신 선생님이 자기는 ‘밀조중’이라고 한다. 조금있다 또 한 선생님이 자기는 ‘계조중’이라고 한다. 궁굼한걸 참지 못하는 내가 ‘밀조중’이 뭐고 ‘계조중’이란 뭔가를 묻자 두 분은 웃으며 줄임말이라고 하였다. 그제사 나는 그들이 말하는 원뜻을 알 수 있었다. 한국과 수교후 우리는 서로간의 문화교류와 더불어 그들이 일상에서 영어발음 그대로 사용하는 말들과 줄임 우리 말을 많이 사용하여 말하는 본인은 진작 알고 있지만 듣는 사람의 위치에서는 무슨 뜻인지 묘연하여 어정쩡할 때가 많다. 어느 술 좌석이였던지 누군가 술잔을 높이 들고 ‘진달래’ 하며 소리를 먹이자 좌석에 앉은 모두가 일제히 일어나며 ‘위하여’ 하고 받아 넘기며 잔을 굽을 냈다. 나는 ‘진달래’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말인 줄로 생각하고 덩달아 기분 좋게 잔을 굽냈다. 그런데 좌석에서 말하는 ‘진달래’란 그런 뜻이 아니였다. 이 말도 우리 말 줄임 말로서 ‘진지하고 달콤한 래일을 위하여’란 희망과 행복을 바라는 뜻일 줄이야!
흐르는 시간은 빠르기도해 이런저런 행사가 마무리되고 드디여 점심식사 시간이 되였다. 분조별로 안배된 좌석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라 회원들마다 얼굴에 웃음꽃이 력력히 어려 있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기분 좋은 점심식사가 끝나자 조장이 일어서며 오늘 점심식사 총비용에 대하여 설명하고 개개인이 부담해야 할 부분을 납부하란다. ( 이건 또 뭐야, 회비는 이미 납부하지 않았는가? ) 내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짓자 옆에 앉은 선생님이 재빠르게 눈치 채고 점심식사 비용은 회원개개인이 부담한다고 알려주는 것 이였다. 그리고 회원 회비는 협회의 큰 행사 때마다 사용하는데 이를테면 교사절이 라든가 년말 총결과 같은 행사가 포함된다고 한다. 듣고 보니 리해가 갔다. ( 아, 이것이 소위 외국에서 류행되는 “A,A제”란 결산 방법이구나! ) .
청도시에는 지금 많은 조선족협회들이 조직되여 활발히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하며 우리 민족공동체의 단결과 발전에 한몫을 하고 있다. 또 이를 통해 인구가 천만을 넘도는 해변 도시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협회들은 20여전부터 협회활동식사 비용을 “A,A제”결산 방법으로 치르고 있다. 처음에는 회원들마다 좀 너무 야박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습관이 되여 잘 받아들이고 있다. “A,A제”는 비교적 공정하고 투명하며 부담스럽지 않는 통쾌한 결산 방법이다. 또 “A,A제”는 협회를 위해 긴 시간을 지탱 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뒤받침해 줄 수 있는 좋은 계책이다.
과거 우리는 오랜 세월 무엇이나 ‘우리’라는 큰 틀 속에서 생활하며 문제를 고려하고 처리하여 왔다. 그리하여 웬간한 일들은 그 어떤 조직이나 군체에 의례하는 경우가 많았고 한상 차리고 기분 좋게 먹고난 후이면 트림을 하고 기지개를 켜야 함이 지당하겠건만 식당문을 벗어나기 바쁘게 움추리며 이빨 쑤시듯 의문덩이를 쑤셔대는 일들이 비일비재였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우리는 개혁개방과 사회의 발전에 따라 과감히 옛날 틀을 깨고 “A,A제”와 같은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회식자리분담 방법들은 받아들이고 따라가야 발 빠른 사회변화에 적응 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사협회는 매주 금요일이면 활동장소에 모여 활동을 진행 하였다. 비록 이미 퇴직한 교사들이 모여 활동을 진행하건만 조직규률성 만은 재직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특히 동북3성과 기타 지방에서 한곳에 모인 분들이고 소학교 교사로부터 대학교 교수들, 그리고 정부기관, 사업단위에서 온 분들이 한자리에 모인 장소라 시비곡절이 많게 됨은 인지상정이다. 모든 걸 자각에 맡기는 건 무리이다.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면 거기에 걸 맞는 시스탬이 갖추어 져야 하고 건전한 취미와 오락성이 결합된 활동들을 많이 조직하고 발전시켜야 그 단체가 ‘장수’ 할 수 있다.
금요일 오전 9시30분, 협회회장이 활동 시작을 선포고 이어 각 조별로 인원 점검에 들어간다. 거기에 기초하여 출석부에 실제 참가한 분들과 사유로 청가를 맡은 분들을 출석부에 기입한다. 또 그것을 근거로 년말 총화에 개근생을 뽑는다. 출석점검이 끝나면 다음은 전체 회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체육부장이 인솔하에 록음기에 맞추어 방송체조를 한다. 세월이 흘러 40여년이 훨씬 넘었지만 선생님들은 학교시절 방송체조의 매 동작들을 한점 틀리지 않고 재현한다. 참으로 탄복이 절로 나오는 걸 금할 수 없는 장면이였다. 방송체조 절목이 끝나자 이번에는 문예부부장이 인솔하에 광장무를 추었다. 이미 평시에 갈고 닦은 무용동작들이라 전혀 어색함이란 없고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우아한 나머지 황홀하게만 느껴졌다. 누가 이들을 늙었다고만 하랴 그들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가슴 벅찬 랑만의 세계가 있다.
방송체조와 광장무 절목들이 끝나면 잠간 휴식을 취하고 다음은 회원들의 집체 학습시간이 계속 된다. 회장단에서는 선생님들의 실제 정황에 근거하여 개성 있고 특장이 겸비한 교사들을 골라 강의 내용들을 미리 준하게 하고 30분좌우의 시간을 할애하여 강의를 진행하게 하였다. 강의 내용들을 보면 정치, 시사, 자연지식, 유머이야기, 스마트폰사용법, 건강과 생활상식 등 다종다양한 분야였다. 선생님들이 학습시간이 끝나면 다음은 로인들에게 알맞는 여러 가지 유희활동을 진행 하는데 이때면 선생님들 저마다 승부욕이 되살아나며 동심의 세계로 푹 빠져 들어 10년은 더 젊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교사협회에서는 또 선생님들의 년령과 건강을 념려하여 재직 시절때와 같은 시기에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안배하여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마련하여 주었다. 매년 총화모임은 12월에 안배하는데 교사총회의 통일요구에 의해 각 지회에 개인 선진 명액을 정해주고 각 지회에서는 지회 개인선진명액을 정한다. 여기서 재미있는건 선진개인을 선출함에 있어서 모두가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열정적으로 토론을 전개하는데 재직시절의 교사토론회와 별다른 점이 없다.
청도시조선족교사친목회의 매년 총화모임에는 청도시에 있는 여러 사회단체의 대표들과 주청도한국영사관대표들이 한자리에 앉아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청도에서 근3년 간 황혼육아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시기 조선족교사친목회라는 좋은 단체를 만나 외로움과 울적한 심경 속에서 인차 벗어 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의 마음과 정은 여럿이 함께 어울리며 키워가는 것 같다. 교사협회에 참가 하고부터 이상하게도 은근히 기다려지고 자연히 눈길이 가 닿게 되는 곳이 일력장이였고 한번한번 지나가는 금요일은 기간 정을 붙힌 선생님들의 하나하나의 익숙한 얼굴이 아니였나 싶다. 여러 지방의 퇴직교사들로 무어진 낯설은 얼굴들이 모여 무엇 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일을 벌려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보다는 힘을 합쳐 노력하며 황혼의 여유를 즐기는 그 과정이 더 재미있고 더 뜻 깊고 아름다웠던 것 같다.
교사협회에 참가한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합창단의 일원으로 되여 무대에서서 마음껏 노래를 부르게 되였고 생애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무용이랍시고 팔다리를 놀려 보았다. 그리고 협회의 요청에 의해 몇 번인가 강의 내용들을 준비해 가지고 선생님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을 가지게 되였다. 특히 세개 지구 협회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20차당대회의 정신을 주제로 한 강의를 진행하여 선생님들에 의해 긍정과 찬사를 받게 되었다. 이는 내 생애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가슴뜨거운 추억으로 남을 것 이다.
바다 물결이 출렁이는 아름다운 해변의 도시 청도는 3월의 봄을 맞아 어디라 없이 따스한 기운이 넘쳐나고 거리마다 나무들에 각양각색의 꽃이 피여 봄을 장식 하고 있다. 그 속에 기회의 땅을 찾아 뿌리를 내린 연분홍 진달래도 뒤질세라 봄을 만끽하고 있다.
여기까지 컴퓨터의 키보드를 누르며 글을 갈무리 하다 불현듯 우리 나라 송조시기 시인 륙유 (陆游)가 ‘산서촌을 거닐며’남긴 시, 몇구절이 떠올라 그대로 적어본다.
‘ 산 첩첩 물 겹겹
길이 없는가 하였더니
버들숲속 꽃핀 곳에
또 한 마을이 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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