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인간과 물고기 그리고 나무
리광학
세상에서 영원히 한 곳에 정착하며 정지되고 변하지 않은 민족은 없을 것 이다. 피난과 도망, 생을 위한 떠남 가고 또 가면서 이동하며 긴긴 세월을 지내 온 민족이 우리 민족이 아닐가 싶다.
우리들의 선인들은 고향을 등지고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의 낯설은 곳에 찾아와 두 손으로 밭을 일구고 집을 짓고 하며 삶의 려정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간신히 북간도에 정착을 하고 살다 또 더 나은 삶을 지향하며 먼 장춘지역으로 이주해 간 우리 민족 선인들이 있다. 1945년 광복을 맞고 얼마 안되여 당시 연길현과 화룡현의 일부 우리 민족 농호들이 수전개척단에 합류하여 길림성장춘시 류수현의 동부와 북부 라림하 (拉林河)를 계선으로 흑룡강 오상시가 바라보이는 곳으로 이주했다. 박달 나무 얼어터지는 북방의 추운겨울, 이주민들은 거이 빈몸이나 다름없이 류수현 허허벌판에 땅을 파고 움집을 짓고 겨울을 났다. 봄이 오자 온갖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란 벌판의 풀들을 맨손으로 제거하고 물도랑을 파고 하며 악착같이 한빼미 한빼미의 논밭을 일구어 냈는데 나중에 그 논면적이 무려 5백여 헥타르에 달했다.
그렇게 힘들게 류화땅에 깊숙히 뿌리를 내려 일떠세운 곳이 바로 길림성장춘시류화현 ‘연화조선족향’이다. 연길현의 ‘연’자에 화룡현의 ‘화’자를 따서 연화라고 지명을 단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그 힘든 렬악한 환경에서 어찌하여 용케 뿌리를 내려 살아 남을 수 있었을가?
물론 이런저런 여러가지 안받침한 원인들이 많았겠지만 그 중에서 그래도 가장 주되는 원인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과 주관능동적인 사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가 싶다. 하기에 인간은 삶의 과정에 나타나는 곤난과 역경에 대처하고 이겨 나갈 수 있는 의지와 지혜를 갖고 있다. 이런 인간의 가지고 있는 내재적인 근거를 가진데다 그 당시 동북3성의 많은 지역들은 선인들의 고향은 비길 수 없을 만큼 살진 땅과 최적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가.
어릴적 어느 한여름 장마철에 생긴 일이다. 하늘은 창이 뚤렸는지 며칠간 쉴새없이 물줄기를 퍼부어대더니 큰 강물은 강뚝을 넘어 논을 덮치고 작은 물도랑은 버드나무가지나 풀줄기같은 잡다한 물건들이 무작정 떠내려와 휘감기며 다리를 메우는 바람에 미처 물이 빠지지 못해 길우로 흙탕물이 넘쳐났다.작은 물도랑 앞에 자리를 잡은 생산대의 우사간도 재앙을 면치 못했다. 도랑물이 뻗치며 우사간의 소들의 배설물들이 흐르는 곳까지 닿아 련결이 되였다.
며칠 후 비가 끊기고 넘치던 물이 점차 빠지자 사양원이 우사간바닥의 널판자를 들자 믿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졌다. 숱한 미꾸라지가 우글우글 거릴 줄이야! 미꾸라지들이 도랑물이 넘쳐 소들의 배설물이 흐르는 곳과 련결이 되자 기회를 다잡아 떼를지어 모여든 것이 분명하였다. 어른들은 이게 웬 떡이냐며 손을 모아 너무 쉽게 가마니에 미꾸라지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미꾸라지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쉽게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게 되였다.
그때는 어린탓에 미꾸라지가 왜 하필이면 우사간 널판자 밑에 모였을가 하는 아리숭한 의문만 가졌었다. 썩 후에 어른이 되여 서야 미꾸라지는 양지보다는 음지를 흐르는 물보다는 고인물에서 즐겨 서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미꾸라지와 정반대의 특성을 가진 물고기가 있다. 바로 산천어란 물고기이다. 산천어는 주로 환경과 공기 좋은 심산계곡에서 흐르는 깨끗한 물에서 서식한다. 만약 산천어의 기본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들의 주관 욕심과 의지에 따라 마을 주변의 물도랑이나 늪의 고인물에 놓아주면 생존 할 수 있을가.
연길분지의 복판으로 부르하통하가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굽이쳐 흐른다. 부르하통하는 만주어로 버들숲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가 어릴때 기억에 의하면 우리 마을 강변이나 마을주변 학교운동장 그리고 어디를 막론하고 버드나무가 없는 곳이 거이 없었던 것 같다.
봄이 오면 마을주변의 여러가지 나무들 중에서 제일 먼저 가지에 하얀 개지를 곱게 업고 기지개를 쭉 펴며 봄 소식을 알리는 나무가 바로 버드나무였다. 그로부터 얼마 안지나 버드나무에 파란 물기가 오르면 버드나무 가지를 꺽어 버들피리를 부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름이 오면 어른들은 강변에서 쭉 빠진 밋밋한 버드나무 가지를 베여다 생활에 필요한 광주리를 틀거나 고기잡이 통발을 만들었다.
추운 겨울이 오면 아이들은 강변의 곧은 버드나무 가지들을 잘라 송곳을 만들어 얼음강판에서 썰매 놀이를 즐겼다.
그제날 연길 시가지의 가로 세로의 가로수들 대부분이 수양버들이였다. 하남다리 서북쪽에 자리잡은 아름답고 수려했던 “청년호” 도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로 인해 더 이채를 돋구었었다. 이로부터 보아 버드나무는 연길분지에서 서식하기 가장 알맞는 나무의 일종이 아니였을가 싶다.
그러던 연길분지의 버드나무는 사회의 발전에 의한 도시화의 진척으로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부르하통하의 버드나무 숲은 언녕 자취를 감추고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 도시를 아름답게 건설하려는 취지하에 록색형명의 푸른 바람이 거세차게 일고 있다.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선정되여 도시에 자리를 잡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평생 산에서만 자리를 잡고 살던 소나무도 그들속에 끼여 이곳저곳에 이사를 하고 있다. 헌데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그 자람새가 시원치 않다. 적지않은 소나무들이 이사를 와 3년을 못넘기고 아쉽게 요절되고 있다. 심지어 연길 서출구로 가는 길 남쪽에 위치해있는 유명한 소구역내의 여러가지의 나무들 가운데더서 웬지 소나무만 병들어 누렇게 시들어 가고 있다. 소나무가 자리를 잡아 10년 세월이 거이 가는데 말이다. 병들어 죽어가는 한 그루의 소나무일지라도 그것은 우주의 생명체이기에 극히 소중한 것이다.
움직일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고 생각 할 수 있는 인간은 그 어느 생명체보다 뛰여나게 자연 환경에 적응하는 생존능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물고기는 그래도 자유로운 편이다. 움직일 수 없고 생각을 가질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는 소나무는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사철 푸른 소나무의 위상에만 매료 되지 말고 소나무의 기본특성과 옮기고자 하는 자리의 자연 환경을 고려해 주고 생각해 주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세상은 더 아름답지 않을가.
지금 이 시각, 도시의 어디에 선가 소나무는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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