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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컵] 우리는 까치둥지마을에서 살았다
2020년 10월 09일 08시 05분  조회:480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우리는 까치둥지 마을에서 살았다
남옥란 
 
토박이가 아닌 우리 엄마는 조양천에서 유명하다 할 ‘수레집’의 딸이였고 아버지는 철로에서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하면서 입살이나 하던 막일군이였다. 
 
해방 난 이듬해, 아버지는 한분 뿐인 백부를 따라서 구수하마을로 이사를 했고 그 곳에서 우리 다섯 남매를 낳아 키우셨는데 예쁘지만 키가 작은 엄마를 닮아서인지 다섯 남매는 모두 일매지게 키가 작달막했어도 생김새만은 야무졌다. 우로는 언니와 나 그리고 밑으로는 남동생 둘, 막내녀동생 이렇게 줄줄이 다섯을 두었다. 
 
우리 형제는 이렇게 구수하벌 까치둥지마을에서 뒹굴면서 자랐다. 우리 집 동쪽 논밭에는 백년된 아름드리 백양나무가 있었는데 우듬지의 가지 사이에 역시 아득히 오래돼보이는 까치둥지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까치둥지마을이라고 불렀다. 또 물이 아홉갈래로 흐른다고 해서 구수하라고도 불렀는데 수전과 한전이 반반인 산간지대였다. 우리 마을은 학교, 위생소, 촌공급판매합작사를 구전하게 갖추고 있었다. 마을에서 도보로 40분 정도 가면 조양천 기차역에 닿을 수 있어 교통이 편리한 데다 쌀밥을 먹을 수 있고 학교도 가깝고 동네사람들의 인심 또한 좋은 살기 좋은 시골마을이였다. 
 
이렇듯 흑백사진처럼 진한 풍경이 안겨오는 내 고향마을에는 도합 30여가구가 오붓하게 모여서 살았다. 마을의 맨 뒤끝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터밭이 운동장 만큼이나 넓었다. 터밭 중심에는 20평방메터 남짓한 초가집이 큰 버섯송이처럼 댕그라니 솟아있었다. 집 동쪽에는 큰길이 나있었고 큰길과 터밭 사이로 도랑물이 졸졸 쉬임없이 흘렀다.
동생들의 기저귀며 온집 식구들의 옷이며 흙이 게발린 신이며 농기구들은 모두 도랑에서 말끔하게 씻어냈고 터밭에 가물이 들어 곡식들이 폴싹 고개 숙이면 퍼내도 퍼내도 마를 줄 모르는 그 도랑물로 메마른 터밭을 적셔주었다. 그러면 농작물이 금시 푸르싱싱하게 생기를 띠고 고개를 쳐들었다. 가축들에게도 그 도랑물을 먹이였다. 아홉살 난 큰남동생이 소고삐를 쥐고 앞에서 걸으면 소는 엉기적엉기적 따라나서서 도랑에 머리를 푹 파묻고 바닥이라도 낼 것처럼 걸탐스럽게 도랑물을 들이켰다. 
 
집에서 기르는 가금, 가축이 어지간히 많은 게 아니였다. 오리, 닭, 게사니, 집 지키는 누렁이, 외양간에는 동생이 물을 먹이던 생산대의 소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봄부터 산란기에 들어선 오리와 게사니는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아무때나 알을 낳았다. 닭들처럼 널판자로 된 다락 우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외양간 구석에 벼짚으로 틀어 덩그렇게 달아맨 둥주리 안에서 알을 낳는 것도 아니였다. 그래서 보다 못한 아버지가 여섯살짜리 남동생의 키 만큼한 높이로 집 동쪽의 벽에 기대게 해서 굴 하나를 지어주었는데 거기에서 꽥꽥거리면서 게사니와 오리가 동무하며 춘하추동을 지냈다. 봄부터는 가금알을 받아서 삶아서도 먹고 염장을 해서도 먹고 일부는 동네에서 가깝게 지내는 이웃에 바가지에 담아서 나누어도 주면서 이웃끼리 오고가는 정 가득히 오붓하게 지냈다.
 
마을과 조금 동떨어진 우리 집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봄이 되니 마당에는 초록색 풀들이 뾰족뾰족 돋아났고 메꽃이 그 큰 마당을 가득 채웠다. 민들레도 노란 꽃을 떠이고 수줍게 서있었고 언제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를 노랑나비, 흰나비가 한들한들 춤을 추고 구제비도 옛집을 용케 찾아와서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웠다. 짚으로 이영을 올린 음달진 쪽은 참새떼들이 날아와 터를 잡고 사시절 살아갔다. 여섯살짜리 남동생과 세살짜리 녀동생은 싸리나무가지를 손에 쥐고 나비를 쫓아다녔고 마당에 내려앉아 꼬리를 달싹거리며 모이를 쪼아먹고 있는 새떼들을 쫓느라고 재미나서 깔깔 웃고 떠들었다. 강아지도 덩달아 애들과 섭쓸려서 엎어지고 뒹굴면서 신나게 놀아댔다. 파란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흰구름송이가 시름없이 떠도는데 우리 집 풍경과 어울려서 한폭의 생생한 수채화처럼 아름답고 아늑하게 안겨왔다.
 
봄은 파종계절이다. 채소 씨앗은 동네에 사는 여러집들에서 서로 바꿔가며 심었다. 엄마가 콩종자를 순희네 집에 주면 순희네는 우리 집에 없는 수수종자를 보내왔고 뒤집에 사는 한족색시 왕연이는 오이가 크고 산량이 많으니 심어보라면서 오이씨를 들고 왔다. 아버지, 어머니는 늘 숨 돌릴 새도 없이 바삐 움직였다. 앞마당에는 오이, 고추, 상추, 마늘, 도마도, 가지를 심고 서쪽 마당에는 옥수수, 수수, 콩 등 늦가을 곡식을 심었다. 동쪽 마당에는 감자, 무우, 배추, 키낮은 떡호박이며를 옹기종기 심어놓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큰길이 동쪽으로 나있기에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는 화학비료를 별로 안 쓰고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의 배설물을 흙에 섞어서 만든 유기농 비료를 쓰던 때라 토지가 깨끗하고 비옥했다.
 
록색이 짙어가는 여름이 오면 우리 집 터밭과 울바자 주위에는 갖가지 꽃들이 아롱다롱 곱게 피여나 꽃내음이 뜨락에 차고넘쳐났다. 모닥모닥 피여난 새하얀 감자꽃, 노란 호박꽃, 하얀 완두꽃이 있는가 하면 울바자 밑에는 아버지가 심어놓은 봉선화, 가지가 무성한 분꽃, 수수한 란초꽃, 가을국화와 ‘꽃중의 왕’이라 불리우는 모란꽃, 키다리아저씨 같은 해바라기꽃도 있었다. 이젠 기억이 아리송하지만 말 그대로 꽃바다였다. 이 때가 되면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서 돌에다 봉선화를 짓이겨 손톱에 바르고는 버들잎으로 동여매고 물들기를 기다린다. 반시간 쯤 지나서 버들잎을 풀어내면 손톱은 연분홍빛으로 물 들어있다. 서로들 제 손톱이 더 이쁘다고 뽐내면서 자랑을 한다. 분꽃은 까만색 씨앗이 맺히는데 그 씨앗을 터치우면 하얀 분가루가 쏟아져나온다. 그것을 손톱으로 후벼서는 얼굴에 문지르면 얼굴은 대뜸 새뽀얗게 된다. 화장품이 없었던 우리에게 대자연이 준 선물인 셈이였다.
 
어디 이뿐이랴. 먹을거리도 마당 가득했다. 울바자 안에는 오롱조롱 탐스럽게 열린 빨간 도마도, 한족색시가 준 씨앗이라고 해서 한족 오이라고 부르던 빨래방치 같은 오이들이 주렁주렁 보기 좋게 달려 있다. 다른 채소들은 언제 크는지 전혀 신경이 안 쓰였지만 날것으로 먹을 수 있는 오이 만큼은 우리들의 눈에서 빠져나가기가 어려웠다. 엄마 몰래 도적고양이마냥 살금살금 오이밭에 기여들어가서는 올리훑고 내리훑고 한다. 노란꽃이 떨어지기 바쁘게 남자애 ‘고추’ 만한 크기의 오이가 달린다. 이틀이 지나면 중지 길이 만큼 자라고 또 며칠이 지나면 드디여 먹을 수 있게 커진다. 꼼꼼하고 령리한 큰남동생은 오이를 따서 먹고도 모르쇠를 대군 했다. 입가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면 폴폴 풍기는 오이냄새에 금방 들켜버리면서 말이다. 엄마는 우리가 오이밭을 드나드는 것을 보지 못하고도 오이넝쿨 모양새만 보고 감쪽같이 알아맞추었다. 오이는 따도 괜찮으나 넝쿨은 잡아채듯 다치지 말라, 그러면 넝쿨이 상해서 오이가 열리지 못한다고 늘 똑같은 잔소리를 하군 하셨다. 아무튼 파랗고 싱싱한 오이는 한달 가량 먹을 수 있었다. 엄마는 오이가 늙으면 그냥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매일매일 한 구럭씩 따서는 세 동생들의 어깨에 지워서 이웃집에 보냈다. 그래도 며칠이 지나면 팔뚝 같은 누런 오이들이 넝쿨 여기저기에 달려서 밭고랑에 척척 드러누워 잠을 청한다. 
 
개꼬리가 올리솟으면 옥수수 알이 잉태하기 시작한다. 옥수수 이삭들은 금발 같은 수염을 곱게 드리우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 모양새로 그 자리에 서있는다. 그래도 매일이 다르게 통통하게 살이 찐다. 중복이 지나면 따먹을 수가 있는데 엄마는 세살짜리 막내동생에게 간식으로 먹이려고 매일 새벽이면 나가서 손톱으로 껍질을 살짝 벗기고 알맹이를 꼬집어본다. 어지간하게 여물었다 싶으면 딱 하나를 따다가 밥가마 한쪽에 넣고 삶아서 막내에게 먹이군 했다. 살짝 여문 옥수수의 단물이 감칠맛이 있어서인지 막내는 그렇게도 맛나게 냠냠 먹어주었다.
 
드디여 감자, 고구마를 먹을 수 있고 호박이 영글고 옥수수도 마음 대로 따먹을 수 있는 수확의 계절이 왔다. 그 무렵이면 이웃집 엄마들이 우리 집 마당에서 기쁨의 잔치를 벌린다. 영이 엄마, 순이 엄마, 정금이 엄마, 미선이 엄마, 원석이 엄마가 아침부터 갓 젖을 뗀 아이와 젖먹이를 업고 안고 우리 집 앞마당에 모여든다. 정금이 엄마는 중복에 심은 배추 이파리로 담근 물김치를 들고 왔고 원석이 엄마는 고추장을 사발에 담아들고 왔다. 순이 엄마는 정원에서 갓 익은 오얏을 따가지고 왔는데 애들이 신이 나서 한웅큼씩 쥐고서 맛나게 먹었다. 동생 셋은 꼬마들이 많이 와서 좋다고 야단법석이다. 엄마들은 왁작 웃고 떠들면서 여름 내내 밖에 걸어놓았던 딴가마에 먼저 옥수수를 안치고 그 우에 호박과 고구마, 감자를 올려놓는다. 드살이 센 순이 엄마가 마른 쑥대를 안아다가 불을 지핀다. 한시간 가량 지나면 가마 안에서 구수한 냄새와 함께 단김이 가마뚜껑 틈으로 새여나오는데 마치 증기를 내뿜는 기관차 같다. 애들은 빨리 먹고 싶어서 군침을 질질 흘리며 엄마한테 졸라댄다. 우리 아버지가 마당 한가운데 여름 내내 해볕에 말리웠던 쑥단을 풀어서 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 우에 둥그렇게 모여앉는다. 엄마는 집안의 크고 작은 그릇들을 모조리 들고 나와서는 가마 안의 음식들을 꺼내여 보기 좋게 담아 조무래기들에게 먼저 나눠준다. 때마침 지나가는 이웃동네 분들에게도 맛 보라고 손에 듬뿍 쥐여주었는데 농가의 인심은 그렇게도 풋풋했다. 
 
까치둥지마을에서 살다보면 산해진미라도 당기는 게 없고 무릉도원이 부러울 게 없었다. 고된 일을 마치고 속이 출출할 때 먹는 상추쌈은 왕의 수라상도 저리 가라 한다. 남정네들은 한켠에서 마늘, 파, 가마에 쪄낸 가지, 풋고추를 토장에 꾹꾹 찍어서 술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말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땅거미가 아물아물 밀려오면 아버지는 모기떼를 쫓느라 쑥을 태우고 동생과 동네 조무래기들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반디불을 쫓느라 여념이 없다. 외양간의 누렁소와 기타 가축들이 기척없이 조용해진다. 하루 동안 먹거리를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엄마들은 밤이 깊어 잠투정을 하는 애들을 데리고 각자 자기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동네 조무래기 친구들과 하루종일 즐겁게 뛰놀았던 동생들도 머리가 베개에 닿기 바쁘게 단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까치둥지마을에서 우리 남매들도, 동네의 조무래기들도 대자연의 품속에서,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는 모두가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백년된 까치둥지는 력사의 견증인으로서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 그 곳에서 마을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해주고 있다. 아, 꿈속에서도 가고 싶은 고향의 초가집, 태를 묻고 잔뼈를 굳히고 꿈을 키웠던 내 고향 까치둥지마을이여, 새하얀 억새풀이 들녘에서 춤을 추며 우리를 지켜보던 자랑스러운 구수하벌이여, 대를 이어 천년만년 길이길이 전해가리.
 
<로년세계> 2020년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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