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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에게 바치는 글
2020년 11월 06일 10시 06분  조회:452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안해에게 바치는 글

성송권


우수, 경첩이 지난 지가 퍼그나 되는데도 올해는 그냥  눈이 추적추적 내린다.

오늘도 운무가 비낀 하늘이 흐려오더니 아침부터 게사니털 같은 눈이 약간씩 휘날리다가   정오 무렵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렸다.

며칠째 이어지는 고뿔 때문에 눈물, 코물 쥐여짜다가 끝내는 안해의 성화에 못이겨 병원걸음을 하게 되였다. 흰 눈을 방불케 하는 하얀 보가 깔려있는 침대 우에 몸을 맡긴 채 적점주사를 맞으며 창밖에서 내리는 봄눈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배동한다고 따라나선 안해가 병실 벽에 걸려있는 텔레비죤을 보다 말고 벽에 기댄 채 쪽잠에 빠져버린 것이다. 나는 살며시 텔레비죤을 끄고 나서 단잠에 빠져있는 안해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안해의 얼굴은 온통 잔주름으로 덮여있었고 곱던 파마머리도 반나마 흐트러져있었다. 조금이나마 젊어보이고저 깔끔하게 빗어올린 머리와 달리 옷은 영낙없는 시골아줌마 차림이였다. 저도 모르게 코마루가 찡해났다. 한창 나이에는 세월이 흘러가는 걸 느끼지 못했는데 요즘 들어 세파에 부대낀 흔적들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안겨온다.

37년전의 3월 18일이 바로 우리 부부가 결혼한 날이다. 그 해 봄에도 눈이 참 많이 내렸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잔치 전날에도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는데 봄눈은 풍년을 기약한다고 로농들은 기뻐서 야단이였으나 부모님은 근심걱정에 싸여있었다. 안해의 집이 왕청에 있다보니 내가 살고 있던 량수천자에서 60리를 달려 도문까지, 도문에서 다시 렬차로 바꿔타고 왕청까지 가야 했는데 눈길에 뻐스가 끊겼으니 말이다. 토의 끝에 나젊은 막내사촌누나와 매형이 나를 배동하여 왕청까지 걸어가기로 용단을 내렸다.

무릎까지 넘는 눈을 헤치며 힘겹게 걸어서 까울령산고개 밑까지 이르렀는데 누나가 더 이상은 못 걷겠다며 폴싹 주저앉았다. 몸에 지니고 온 음식으로 요기를 하며 한참을 쉬고 나서 나와 매형이 누나의 두 팔을 붙잡고 까울령을 넘어 렬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세시였다. 그 렬악한 환경에서 장장 다섯시간을 걸은 셈이였다. 그 다음날 왕청에서 아침상을 받고 나서 첫날 이불 한채만 달랑 메고 다시 도문에 도착하니 뻐스가 여전히 통하지 않고 있었다. 훈춘 대팔령의 눈 치기 작업이 한창인 모양이였다. 붐비는 대합실에서 우리는 행운스럽게도 우리 동네에 석탄을 실어나르는 도문 원림처의 허기사와 마주쳤다.

우리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나서 고맙게도 선뜻 도와나섰다. 그렇게 신부와 대반을 허기사의 차에 태워보내고 오후 4시에 차가 통하여 집에 도착하니 해가 서산을 훌쩍 넘어간 6시였다. 살며시 신부 방문을 열어보니 기다리다 지친 안해가 지금처럼 벽에 기댄 채 몸을 옹송그리고 쪽잠에 빠져있었다.

안해는 바로 그 때부터 쪽잠과 인연을 맺은 것 같다. 1995년, 우리가 살고 있는 변강의 조그마한 오지 향도 개혁개방의 봄바람을 타고 새로운 탈바꿈을 꾀하게 되였다. 안해가 출근하던 백화점이 문을 닫으면서 그녀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워낙에 성격이 서글서글하다보니 마음속에 넣지 않고 훌훌 털어버릴 줄 알았는데 일자리를 잃고 나서 안해는 몰라보게 변해갔다. 쩍하면 애들한테 화를 냈고 성격도 날을 거듭하면서 날카로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로씨야에 가서 장사를 해보겠다고 하루 건너 려행사를 드나들던 안해가 드디여 사증을 받았다며 만면에 미소를 띠며 싱글벙글거렸다. 하지만 들떠있는 안해와 달리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향정부에 출근했는데 봄, 가을에는 호림방화, 여름에는 홍수방지를 뛰느라 하향해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였다. 더구나 당시 농업판공실에서 다각경영 조리로 일하다보니 과수원, 약재재배호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안해가 로씨야로 간다면 혼자서 아이 둘을 키워야 한다는 말인데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해났다. 하지만 안해의 의지는 흔들림없었다. 밤낮으로 얼리고 달랬는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안해가 로씨야로 간다는 소식이 어느새 왕청에 계시는 이모님 귀에까지 들어갔다. 어느 날 저녁, 이모님께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어미야, 여기서도 열심히 장사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 험한 길을 선택하냐? 애들은 그래도 어미가 곁에 있어야지. 어린 것들이 어찌 어미 없는 설음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내가 힘껏 밀어줄 테니 만물상 장사를 한번 해보는 게 어때?”

한참 침묵을 지키던 안해가 결국 이모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제서야 나도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1995년 4월에 안해는 시장에 3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방을 세 맡고 제법 장사를 시작했다. 왕청의 제일 큰 백화점에서 오래 동안 구입원으로 일해온 이모님과 림업국에서 일했던 이모부도 일자리를 뿌리치고 안해의 장사에 합류했다. 손에 쥐고 있는 돈이 얼마 되지 않다보니 이모님께서 장춘, 심양 등 대도시에서 물건을 외상으로 가져와서 판 후 두달 뒤에 돈을 갚는 형식으로 장사를 이어나갔다. 다행히 장사는 잘되였다. 비닐장판, 비닐로 만든 쌀함지, 물통은 물론 각종 철물도 매대에 진렬하여 팔았는데 말 그대로 뭐나 다 있다 할 만물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몇년 고생한 보람으로 안해도 장사에 어느 정도 미립이 트게 되였고 장춘, 심양 등 도시에 홀로 물건을 구입하러도 오고갔다. 돈을 한푼이라도 아끼느라고 안해는 렬차를 타도 자리표가 없는 티켓을 끊었다. 내가 뭔 고생을 사서 하느냐며 핀잔을 줘도 안해는 쪽걸상에 앉아 잠간 눈을 붙이면 금방 도착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장사를 하다보니 별의별 손님들이 다 있었다. 어느 하루, 향소재지에 사는 할머니 한분이 가게를 찾아왔다.

“요즘 세월에 믿을 게 하나도 없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네. 어쩜 이런 가짜 상품으로 사람을 속일 수 있어?”

가게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할머니는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며칠전에 가게에서 건전지를 사갔는데 가짜가 틀림없다는 것이다. 안해가 건전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꼭지 부분의 비닐 딱지가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래서 직접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자 검으락푸르락해서 이런 걸 왜 진작에 말해주지 않았느냐며 한마디 더 뱉더니 건건지를 홱 낚아채서 밖으로 나가더란다.

또 한번은 안해가 가게에서 새로 들여온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60여세 돼보이는 고객이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콩을 가는 믹서기가 들려있었는데 다짜고짜 물려달라고 야단을 부렸다. 물건을 물리겠다는 리유도 참 가관이였다. 열흘전에 사간 건데 한번 갈면 량이 너무 많아 랑비라나. 기계를 이미 사용했고 품질에 하자가 없는 이상 물릴 수 없다고 하니 한번밖에 돌리지 않았고 파손된 것도 아닌데 왜 물릴 수 없냐며 제 쪽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내심하게 설명해도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절대 물릴 수 없다고 거세게 나왔더니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가서 마당에 정연하게 배렬해놓은 상품들을 발로 차고 손으로 쥐여 뿌리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보다 못해 주위에 몰려들었던 구경군들이 파출소에 신고를 하겠다고 전화를 꺼내드는데도 안해는 꾹 참고 조용히 넘어갔다.

그 날 저녁, 학교에서 교장으로 일한다는 남성이 집사람과 함께 우리 집을 찾아왔다. 소개를 듣고 보니 오전에 가게에 와서 란리를 친 로인의 아들 내외였다. 너무 미안하다며 어쩔 바를 몰라하는 교장 내외를 안해는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 두집은 오히려 인연이 되여 지금도 명절이면 서로 맛 있는 음식을 나누면서 정을 돈독히 이어가고 있다.

향소재지에서 장사를 하다보니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 중 대부분이 농민이였다. 봄이면 농약, 비료, 농기구 비닐박막, 가을에는 집수리에 필요한 건축재료, 쌀가마니, 낫 등을 구입해야 했는데 수중에 돈이 모자랄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그들은 안해의 가게를 찾았다. 적게는 50여원, 많을 때에는 1,000원씩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음씨가 비단같이 고운 안해는 언제 한번 거절하는 법이라곤 없었다. 그래서일가, 안해의 가게는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이나를 막론하고 멀리 오지마을에서 온 어른들은 짬만 나면 안해의 가게에 모여서 한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 때마다 안해는 강냉이죽이나 국수 같은 음식들을 주문해서 어르신들에게 대접했다.

그 뒤로 로인들은 올 때마다 취, 더덕, 도라지 등 여러가지 산나물을 가져다주었다. 가을이면 또 찰옥수수쌀이요, 좁쌀이요, 기장쌀이요 하며 한가득 안고 왔다. 어느 해인가 령북에 계시는 할머니 한분이 40대가 되여보이는 아들 내외와 함께 안해의 가게를 찾았다. 아들 내외가 한국으로 로무수출을 떠나게 되였는데 수속이 다 끝난 마당에 비행기 티켓을 끊을 돈이 없어 이렇게 찾아왔다며 안타까운 사정을 터놓았다. 아들며느리 모두 말없이 일을 잘하는 데다 무던한 사람이라 한번만 믿고 돈을 꿔줄 수 없겠느냐며 통사정했다. 안해는 이번에도 두말없이 필요되는 돈을 할머니한테 드렸다. 그 해 가을, 할머니는 꾼 돈과 함께 집에서 기르던 황둥개를 잡아왔다. 덕분에 아들며느리가 한국에서 돈을 잘 번다며 안해가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가게에 두고 갔다.

2000년, 내가 도문시정부로 전근한 후에도 안해는 도문에서 통근차로 량수를 다니면서 장사를 접지 않았다. 아침이면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메고 가게에 가서는 춘하추동 쪽걸상에 몸을 기댄 채 한나절 몰려오는 피곤을 쪽잠으로 쫓으면서 열심히 일했다. 해마다 나라에 세금을 꼬박꼬박 바쳤고 잊지 않고 재해지구에 사랑의 마음을 전달해주었다. 그러니 두번씩이나 도문시 개체근로자모범으로 당선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였다.

안해는 자식농사도 참 잘 지은 것 같다. 딸애는 중앙민족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상해에서 근무하고 있고 아들도 장춘공업대학을 졸업하고 일본류학을 거쳐 지금은 공무원 시험을 무난히 통과하고 도문시 정부기관에 취직하였다.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내밀 때마다 안해는 그저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 것 뿐인데요 뭐.” 하며 어깨를 낮추었다. 안해가 남들과 달리 코리안이나 로씨야 드림을 포기하고 무에서 유를, 작은 데서 큰 데를, 모르는 데서 아는 데로 장사를 이어나갔기에 우리 부부는 남들처럼 리별의 설음도, 시련도 없이 하루도 떨어질세라 두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을 차곡차곡 쌓아나갈 수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함박눈이 우리 가정, 우리 부부를 축복하는 양 펑펑 내린다. 한평생 우리 가족을 가슴에 넣고 고생한 안해를 보면서 언제부터 뭘 쓰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그 소원을 이룬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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