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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컵] 노을이 사라지기 전에
2020년 10월 09일 08시 22분  조회:746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노을이 사라지기 전에
조려화
 
‘부친절’이라며 남편이 량가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하러 밖으로 나가잔다. 
 
년중의 잡다한 명절에 집안 어르신들 생신, 거기에 이런저런 집안행사까지 겹치다보니 한달에도 몇번씩 외식을 해오던 터라 그 말에 시큰둥해서 중얼거렸다.
 
“우리 명절도 아닌데 꼭 쇠야 할가요?”
 
실은 몸이 고단하니 그냥 넘겨버리고 집에서 푹 쉬고 싶었다.
 
“당신이 힘든 건 아는데 그래도 모시고 나가면 로인들이 즐거워하지 않겠소?”
 
남편의 말에 일리가 있는지라 할수없이 지친 몸을 끌고 량가 부모님을 모시고 신선로집에 찾아갔다. 식당 안은 우리처럼 가족 단위로 온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해두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트면 자리가 없을 번했다.
 
이윽고 료리가 상에 오르자 나와 남편은 부모님들의 잔에 술을 따라올렸다.
 
“‘부친절’이라 식사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두분 아버님, 항상 건강하십시오.”
 
“어머님들도 모든 걱정을 훌훌 내려놓고 만년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량가 부모님은 싱글벙글하며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고맙구나. 우린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챙겨줘서…”
 
“그러게 말이예요. 너희들이 이렇게 마음을 써주니 실로 고맙다.”
 
부모님들이 만면에 희색을 띠고 맛갈스레 식사하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피곤이 싹 가시면서 모시고 나오길 참으로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 천천히 많이 드세요.”
 
“어머님, 이것도 드셔보세요.”
 
평소에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느라 음식을 가리던 시부모님도 연신 맛 있다고 치하하면서 골고루 드셨다. 친정부모님도 사돈어른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반가운 모양인지 술잔을 기울이면서 조곤조곤 얘기를 잘 나누셨다.
 
아이들처럼 기쁨에 들떠있는 어른들을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짠해나는 한편 평소에 효도를 입버릇처럼 외우면서도 걸핏하면 바쁘다고 핑게로 미룬 자신이 더없이 부끄러워났다. 이어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가슴 속에서 굽이를 쳤다. 진정한 효도란 무엇일가? 부모님을 물질적으로 만족시켜주고 출세해서 체면을 세워드리는 것만일가? 물론 자식이 돈을 잘 벌거나 벼슬이나 한다면 부모로서 가슴이 뿌듯하겠다만 그런 성공과 효도는 별개의 개념일 것이다. 그냥 수수할지라도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차근차근 갚아가고 기쁨을 드리는 게 진정한 효도일 거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집에 돌아와 위챗을 확인해보니 출국했거나 대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 보내온 선물을 자랑하느라고 올린 사진들로 모멘트가 온통 도배되여있었다. 문득 명절 때마다 외국에 있는 자녀들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마음 한구석이 시려난다며 쓸쓸한 미소를 짓던 한 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물론 값진 선물도 나무랄 데 없겠다만 부모님의 허전한 가슴을 메워드리는 데는 소박한 음식일지라도 옆에서 자식과 함께 나누는 자리를 가지는 게 더 따뜻한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얼마전, 친구가 홀로 시골에서 살고 있는 시어머니가 못내 걱정이 된다면서 고충을 털어놓았다. 집에 모셔오려고 하니 사정이 여의치 않고 시어머니가 끼니나 제때에 드시는지 알 수 없다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럼 양로원에 모시지 그래? 요즘은 시설이 근사한 양로원들이 많다던데.”
 
“자식들이 퍼렇게 살아있는데 양로원에 모실 수는 없다면서 시동생이 막아. 그게 마음에 걸리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야.”
 
요즘 세월에 이만해도 일말의 효심이 어린 마음가짐이라 볼 수 있다. 평생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걸 아낌없이 쏟아붓는 게 바로 부모이다. 그 태산같은 은혜를 가슴에 아로새기고 정성껏 부모님을 섬기는 걸 자식 된 도리로, 미덕으로 믿고 이를 대대로 받들고 이어온 게 우리 민족이다. 그러니 부모님을 양로원에 모시는 걸 불효를 저지르는 일이라고 여기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주위를 살펴보면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효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돈 벌러 외국으로 떠나면서 어린 자식을 년로한 부모님에게 떠맡기는 게 이제 흔하디흔한 세태로 번져버렸다. 그러다보니 편히 보내야 할 로년에도 어린 손군들의 뒤치닥거리에 숨을 톺는 로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머리발이 희끗희끗한 로인들이 어린 손군의 책가방을 대신 메고 학교 대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하학시간에 맞춰 학교 대문 밖에서 기다리다 집에 데려와 숙제를 시키고 저녁밥을 지어 먹이고 씻기고 재운다. 애들은 다 알아서 큰다고 쉽게 말해도 어린 손주를 돌보는 게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 일인가? 자칫 애가 다치거나 몸에 탈이 생기거나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거나 성적이 떨어져도 괜히 자신의 탓인 것 같아 마음을 조이기가 일쑤이다. 말썽을 부리는 손군을 두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는 로인들을 볼 때마다 안스러워난다. 단지 생활비를 넉넉히 보내는 걸로 도리를 다했다고 안도하면서 부모님의 여생을 외면하게 되면 나중에 그의 어린 자식들이 커서 자신의 부모를 외면하게 되는 악순환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물론 부모님이 건강하고 자청해서 손주를 맡아준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식의 짐을 대신 짊어져야 하는 부모님의 여생은 고달픔 그 자체이다. 시름없이 노래교실에 다니거나 려행을 다니는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겨야 할 대신 손군을 돌보느라 여생의 즐거움은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
 
《제자규(弟子规)》의 첫장을 보면 효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몸을 낳아 키워준 은혜를 잊지 말고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인간의 기본도리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시경》에도 “낳아 길러주신 어버이의 은덕을 갚고저 하나 하늘 같아 끝이 없다.”고 이르지를 않았던가. 반포지효(反哺之孝)라고 까마귀도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거늘 하물며 우리 인간임에랴.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리유로 년로하고 운신이 불편한 부모님을 양로원에 모시거나 부모님들이 병원에 입원해도 간병인을 부르는 게 류행처럼 되여버렸다. 물론 양로원에 부모님을 모시거나 병원에서 간병인을 쓰는 걸 무작정 불효로 몰아붙이려는 건 아니다. 다만 년로하고 힘없고 몸이 아픈 부모님 곁을 지켜주는 게 자식의 마땅한 도리가 아닐가 싶다.
 
집 근처의 보건소가 어디론가 옮겨가고 그 자리에 양로원이 들어섰다. 몇년전만 해도 시골이나 교외에서 볼 수 있던 양로원이 이제는 시내 한복판에 떡하니 들어섰다. 내가 살고 있는, 인구가 2만명이 되나마나한 자그마한 현소재지에서도 양로원이 유치원보다도 더 흔하게 눈에 안겨온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효를 모든 행위의 근본으로 삼아왔다. 연변의 조선족들도 일찍 수십년전에 8월 15일을 로인절로 정하고 꾸준히 효문화를 선양하고 실천해왔다. 하지만 대대로 전해내려온 우리의 미풍량속이 갈수록 색이 바래지는 현실이 안타깝고 앞 못 보는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의 이야기와 같은 가슴 따뜻한 사연을 들어본 적이 언제였던지 까마아득하다. 부모님은 우리가 효도하기를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중에 잘되면, 잘살면, 성공하면 그때 가서 효도하려 하지 말고 부모님 살아생전에 정성으로 섬기는 게 진정한 효이다.
 
내 몸은 조금 피곤해도 량가 부모님이 그토록 흐뭇해하시니 마음만은 흐뭇하다. 친정엄마는 날로 기력이 쇠하고 시어머님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면서 경한 치매증상을 보인다. 시아버님 역시 백내장으로 재수술까지 받았다. 세월을 따라 늙어가는 건 자연의 순리이니 거스를 수는 없다만 그래도 더불어 잔잔한 추억 하나 더 쌓을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어버이 살아계실제 섬기기를 다하라.”는 선조들의 말씀을 명기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부모님이 계실 때 례와 의를 갖추고 효도하리라. ‘부친절’이 우리 명절이 아니면 어때서. 다시한번 효를 되새기고 행하게 한 데 의미를 둔 하루였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로년세계>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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