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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날이면 더 그리운 오빠
2020년 11월 06일 10시 32분  조회:526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단오날이면 더 그리운 오빠

정정숙


밤은 소리없이 흘러가는데 침대에서 몸을 뒤척거리며 쉽사리 잠들 수가 없다. 가슴이 갑갑해나면서 평소 귀맛 좋게 들려오던 시계 초침소리마저 귀에 거슬린다.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창가에 다가가 휴— 하고 길게 한숨을 뽑았다. 무겁게 드리운 카텐을 열어젖히고 창밖을 내다보니 삼라만상이 꿈속에 잠긴듯 고요한 가운데 멀리 밤하늘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별 하나가 눈에 안겨왔다.
‘아, 저 별이 혹시 오빠가 아닐가? 오빠가 별이 되여 이렇게 날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가?’ 밤하늘에서 명멸하는 그 별빛이 방불히 사랑으로 가득한 오빠의 눈빛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이제 몇분만 지나면 단오날, 바로 오빠의 77세 생일날이다.
예로부터 록음방초가 우거지고 부드러운 미풍이 부는 계절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단오날은 천중가절로 불리우며 우리 민족의 가장 성대한 명절중 하나로 전해내려왔다. 마침 오빠의 생일날과 겹쳐 나에게는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날이기도 했는데 그런 단오날이 너무나도 쓸쓸하고 허전한 날로 바뀌여버린 건 오빠가 저세상으로 떠난 3년전부터이다. 매번 단오날이 오면 나는 오빠가 사무치게 그리워 몸부림을 치군 한다. 쓰린 가슴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책상을 마주하고 탁상등을 밝혀놓고 오빠한테 보내는 편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그리운 오빠, 오빠가 살아계셨다면 이제 몇시간만 지나면 오빠랑 생일단설기 둘러싸고 오손도손 생일파티를 할 건데… 오빠가 곁에 없다는 게 너무 슬프네요… 아, 참, 기쁜 소식을 전해줄게요. 요즘 연변축구의 재기를 위해 몇몇 축구로장들이 일떠나섰어요. 그중에는 오빠가 그처럼 애지중지 아끼던 친구도 있어요…”
어느덧 젊은 시절의 오빠 모습이 환히 떠오른다. 반곱슬머리, 짙은 눈섭, 예지로 빛나는 두 눈, 단단한 몸집… 영화배우 못지 않은 영준한 외모와 축구장에서의 눈부신 활약으로 숱한 처녀들의 애간장을 무던히도 태웠던 미남이였다. 1943년 단오날,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태여난 오빠는 축구명장을 여러명 배출해서 소문이 났다는 연길현 덕신공사(지금의 룡정시 덕신향)에서 잔뼈가 굵어졌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령리했던 오빠는 일찌감치 축구에 푹 빠져버렸는데 평소에는 성격이 부드럽다가도 축구장에만 들어서면 맹호처럼 날쌔고 용맹한 모습으로 바뀌여 어려서부터 ‘뽈개지’라는 별호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공부를 퍼그나 잘하는 아들이 학업에 몰두하여 출세의 길에 오르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념원도 오로지 축구만을 지향한 오빠의 굳건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 무렵 학교에서 축구경기를 할 때면 운동장 여기저기서 “그래도 종섭이로구나!”, “종섭이 최고야!”라는 오빠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터져나오군 했다.
오빠의 꿈은 드디여 현실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국가팀에 선발된 기쁨도 잠시, 얼마후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오빠는 어쩔수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후 길림성축구대, 심양부대축구팀에서 선수생활하면서 맹활약한 오빠는 왼발차기라는 남다른 특기를 보여주어 팬들 사이에서 ‘왼발의 맹수’로 불리웠다.
‘축구의 고향’이라 불리는 연변에서 축구는 우리 민족의 위상이고 명함이고 자존심이기도 하다. 오빠는 연변축구의 발전을 위해 그야말로 일생을 깡그리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선수에서 은퇴한 뒤 오빠는 연변축구팀 코치를 맡게 되였다. 승패는 병가상사임에도 자신이 이끄는 팀이 패배의 고배를 마실 때마다 오빠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서러움을 속으로 씹어 삼키며 퇴장하군 했다. 그런 오빠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오죽했으면 선수시절에는 아들이 자랑스러워 종주먹을 쥐고 축구장을 찾았던 어머니마저 안스러운 마음에 축구장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으랴.
오빠는 팀이 경기에서 진 날이면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 경기 전략을 고민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남 모르게 수없이 많은 고역을 치르며 모진 마음고생에 심신이 고달픈 나날들이 이어지자 선수시절에는 강건한 풍골을 자랑하던 오빠의 몸이 눈에 뜨이게 쇠약해져갔다…
성격이 무뚝뚝해도 례의가 바르고 마음이 따뜻한 오빠는 제자들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맏형 같은 선배이자 존경을 받는 코치였다. 특히 시종 축구인재양성에 정열을 불태웠던 오빠는 훌륭한 제자들도 수두룩이 두고 있는데 그중 국가축구팀 선수로 활약한 애제자 김광주는 나중에 오동축구팀 주장, 연변축구팀 코치 중임을 맡기도 했다.
선수시절에는 몸을 바쳐 축구장에서 뛰고 연변축구팀 코치가 된 후로는 팀의 번영을 위해 불철주야 고심한 오빠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삶을 살았다. 축구장이란 화려한 무대를 떠나 은퇴한 뒤에도 오빠의 축구사랑만은 달라진 게 없었다. 신문이나 텔레비죤을 통해 연변축구팀의 소식을 꼬박꼬박 챙겨들으며 연변축구팀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눴다. 만년에 오빠는 집 베란다에 화초를 가득 키웠는데 매번 새싹이 뾰족뾰족 돋아나거나 탐스러운 꽃봉오리가 맺힐 때마다 “축구새싹들도 이렇게 파릇파릇 돋아나야 할 텐데 말이야…” 하고 중얼거리면서 축구에 대한 끈끈한 미련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평생 축구밖에 몰랐던 우리 오빠, 이제는 훌훌 시름을 내려놓으세요. 오빠의 바람 대로 우리 민족의 축구 씨앗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서 민족을 위해 위상을 떨칠 날이 곧 다가올 테니까요. 지금 이 시각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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