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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컵] 효도의 의미
2020년 11월 06일 11시 12분  조회:632  추천:1  작성자: 로년세계
효도의 의미 

송향옥


시간처럼 빠르고 덧없는 게 또 있을가. 어머니가 영영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2년이 되였다. 하지만 지금도 그 날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쓰리고 아려온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열흘전이였다. 아침에 딸애를 학교에 보내놓고 방안을 거두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웬만하면 한번 다녀가렴. 어머니가 널 무척 보고 싶어하는구나.”

여느때와 달리 피곤기가 잔뜩 실린 아버지의 목소리는 퍼그나 가라앉아있었다. 남편이 출국한 뒤로 홀로 딸애를 키우고 있는 나를 배려해서 웬만해서는 전화를 하지 않던 아버지였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리 속을 스치면서 가슴이 방망이를 쳤다. 어머니의 병세가 갈수록 깊어가서 핸드폰소리만 울려도 깜짝깜짝 놀라군 하던 무렵이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친정으로 달려가보니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침대머리에 앉아있었다. 여느 날 같으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막내딸이 왔구나.”라고 하면서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었을 어머니는 침상에 힘없이 누워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침대가로 다가가 앙상하게 여윈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해쓱하고 홀쪽하니 꺼져들어간 어머니의 얼굴을 보노라니 은연중 가슴이 아려오고 눈굽이 젖어들었다. 이윽고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베개 밑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내 손에 쥐여주었다.

“이걸 받아. 이제껏 살면서 널 든든하게 낳아주지 못한 게 늘쌍 속에 걸렸단다. 엄마의 마음이니 얼른 받아. 나중에 약 사먹는 데 조금씩 보태렴.”

내가 한사코 밀어내는데도 어머니는 기어이 내 손에 봉투를 쥐여주었다. 야윈 어머니의 손과 두툼한 돈봉투를 엇갈아 보고 있노라니 뜨거운 눈물이 보뚝 터진 강물마냥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그만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어린애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겨릅대처럼 야윈 손으로 내 잔등을 하염없이 쓰다듬어주었다.

“울긴,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아프고 그러다 죽을 수도 있는 거란다…”

기진한 몸으로 두 눈을 꼭 감은 채 힘없이 누워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물에 가려 흐리마리하게 안겨왔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식에게 주고 또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늘 미안해하는 어머니의 한량없는 사랑 앞에 목이 꺽 메면서 지난 일들이 영화필림마냥 생생하게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딸애의 돌이 지난 지 얼마 안되여 남편은 잘살아보겠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출국길에 올랐다. 그 때부터 나는 한창나이에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서 혼자 딸애를 키워야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였는데 정작 홀몸으로 애를 키우려니 힘에 부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 무렵 나의 딱한 사정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몸이 워낙에도 허약했던 나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며 아예 우리 집으로 옮겨와 어린 딸애를 돌봐주었다. 유난히 몸이 약했던 딸애는 잔병치레가 끊이질 않아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찾았다. 한밤중에라도 딸애가 갑작스레 열이 나면 어머니는 두말없이 애를 둘쳐업고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고 딸애가 점적주사를 다 맞을 때까지 온몸이 땀벌창이 되도록 품에 안아 달래주면서도 언제 한번 원망 같은 걸 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나깨나 늘 딸 걱정, 외손녀 걱정을 달고 살았다.

이 딸이 마흔 고개를 넘도록 해마다 꼬박꼬박 생일을 챙겨주는가 하면 두번씩이나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을 때에도 70 고령의 년로한 몸으로 헐금씨금 병원으로 달려와 넉넉치 못한 살림살이에서도 뭉치돈을 내 손에 쥐여주면서 안스러워 눈물을 훔쳤던 어머니이다. 여태껏 살기 바쁘다는 핑게로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한 이 딸을 오로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포근히 감싸주고 너그럽게 한품에 안아주었던 어머니, 매일 등교하는 외손녀를 챙겨주랴, 앓는 나의 병수발을 들어주랴, 하루 세끼 병원으로 밥을 지어 나르랴 한달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치던 어머니는 내가 퇴원할 즈음에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있었다. 그런데도 이 철 없는 딸은 “왜 나만 이렇게 건강하게 낳지 못했느냐.”고 볼 부은 소리를 뱉어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박박 긁어댔으니…

지난 일들을 하나 둘 떠올리노라니 밀려오는 자책감과 미안함에 북받치는 회한을 금할 길 없었다. 효도는 못할망정 허구한 날 년로한 어머니를 속상하게 하고 그 가냘픈 어깨에 무거운 짐만 잔뜩 지웠던 나는 실로 한심한 딸이였다.

어머니가 간절한 눈빛으로 좀더 앉아있다가 가라고 만류하는데도 애 하교 시간이 다가오니 아쉬운 마음으로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삭정이처럼 바짝 마른 모습으로 누워서 나를 향해 힘없이 손을 젓는 어머니를 돌아보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딛는 내 눈에서는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마냥 흘러내렸다. 돈봉투가 든 가방이 묵직하게 느껴졌고 어머니의 다함없는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났다.

돌아가는 길에 차창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병상에서조차 이 딸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애면글면하는 늙고 아픈 어머니에게 나는 과연 무엇을 해드렸던가? 여직껏 받기만 하고 살기 바쁘다는 핑게 아닌 핑게로 징징대면서 효도려행 한번 보내드린 적도, 값진 옷 한벌 사드린 적도 없었다. 고작 생일날에 돈 몇백원씩 드리는 걸로 넘기고 병수발마저 늙은 아버지에게 떠맡겨버렸으니…

그런데 그번 만남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작별이 될 줄 어찌 알았으랴…

불혹의 고개를 넘어서야 부모님이 계실 때 종종 찾아뵙고 살뜰하게 위로하고 즐거움을 안겨드리는 게 진정한 효도라는 걸 깨달았으니 나란 인간은 실로 무심하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불효자였다. 문득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의 가사가 무거운 채찍으로 둔갑하여 나의 마음을 호되게 때린다. “부모가 열번 생각할 때 자식이 부모를 한번 생각해도 효자”라는 우리말 속담이 나의 귀전을 아프게 울린다…

《로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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