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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리》
2012년 10월 01일 08시 41분  조회:1724  추천:6  작성자: 설야
[연이의 이야기3]
모모리
 
우리 연이가 태여나서 돐이 다가오자 말을 번지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하는 부름소리같은건 날 따라 발음이 제법 똑똑했다. 그것이 엄마 아빠가 된 우리 부부에게는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조렇게 조꼬만 앵두입에서도 어떻게 말이란게 다 만들어져 흘러 나올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주말이면 우리부부는 애를 데리고 거리구경을 나간다. 그때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연이보담 좀 더 큰 다른집 애들이 제엄마 아빠하고 이것저것 사달라고 졸라대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것이 그땐 나에게 무척 부럽기만 했다. 언제면 우리 연이도 저 애들만큼 커서 요거 사달라 조거 사달라하는 날이 올가하고 기다려지는 마음이였다.
 
그때 우리 세식구는 아침이면 제각기 자기일터로, 유아원으로 갈라져있다가 저녁때가 되면 한자리에 단란히 모이는데 저녁을 지어먹고 나서는 우리 부부는 늘 화투놀이를 했다. 둘만이 노는 놀음이였건만 어쩜 그땐 그리도 재미있었던지?
 
처음에는 돈내기를 하다가 결국 승부가 나봐야 다 제집돈 먹기라 마지막에는 내가 딴 돈도 고스란히 아내한테 바쳐야 하니 재미가 적어져 후에는 아예 벌칙주기를 했다.
 
벌칙주기로는 손목치기(아내가 이기면 식지와 중지 두개를 사용하고 내가 이기면 반드시 식지 하나만을 사용하여 쳐야 했음),물마시기,베개이기, 종이꼬리 달기,장판닦기,주말빨래씻기,하여튼 자꾸만 한쪽으로 창조해서 만들다보니 그 류형은 무수히 많았다.
 
놀음에는 내가 좀 엉터리쓰는 고질이 있어 늘 속임수를 썼건만 어쩐지 열에 여덟은 내가 그냥 벌칙을 당한걸로 기억난다. 고놈의 화투장에도 령기가 스몄는지 번마다 내가 번지면 늘 빈깍지가 나오지 않으면 뒤통수를 쳤고 아내가 번질때면 불깃불깃한《관》통이 아니면 《약》이 나거나 《단》이 나오군 하였다. 아마도 내가 하두나 엉터리를 쓰니깐 하늘이 내린《천벌》이였을 것이다.
 
우리가 놀이를 시작하면 어린 연이도 끼여들어서 함께 놀겠다고 《성화》를 부리군 한다. 그럴때면 우리는 이미 번져서 쓸모없는 빈깍지같은 것들을 연이의 손에 쥐여준다. 그러면 우리연이도 어른들을 본따서 저혼자 화투장을 치고는 뭐라 중얼거리면 놀군한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였다. 그날도 저녁상을 물리고 우리 부부가 마주앉아 화투놀이에 여념없는데 얼결에 우리가 쥐여준 화투장을 갖고놀던 연이가 그 무슨 《모모리》,《잇싸리》하면서 우리가 난생 알아듣지 못하는 해괴한 이름을 부르며 노는 소리가 얼핏 귀에 들려왔다.
 
처음에는 무주의상태로 별 생각없이 지내 듣다가 반복되는 소리에 순간 무엇인가 불쑥 나의 뇌리를 쳐오는것이 있었다.
 
《연이야, 이게 뭐지?》
 
놀던 화투놀이를 잠간 멈추고 연이손에 쥐여져있는 《명월》을 가리키며 물으니 《모모리》하고 또렷또렷 대답하는것이였다.
 
《명월이~》하고 발음을 시정시켜주니 나의 입을 따라하는 연이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발음은 여전히 《모모리》다. 다른 패를 가리키며 물으니 그건 묵묵부답이다.
 
그러던 연이가 갑자기 널려있는 화투장들속에서 《흑싸리》무깍지 한장을 골라 뽑아쥐더니 《잇싸리,잇싸리!》하는 것이였다.
 
《그건 흑싸리다.흑~싸~리~》
《잇~싸~리~》
 
다시 여러번 반복적으로 교정시켜 주어도 의연히 그《모모리》고《잇싸리》다.
 
어떻게 되여서 그애 귀에는《명월》이가 《모모리》로, 《흑싸리》가 《잇싸리》로 들릴가? 정말 재미있고 신기했었다.
 
발육시기의 초기단계에 처해있는 유아의 청각기관과 발음기관으로서는 아마 이렇게 밖에 안 들리고 따라 그렇게 발음이 나올 수 밖에 없는것이다.
 
우리 연이가 어른들이 배워주지도 않은 화투장 이름을 자기로 《귀동냥》해서 자체로 두가지 꽃이름을 장악하고 있었다는데서 나는 무척 놀랐다. 비록 발음은 안 되여서 자기로의 독창적인 유아식 언어라지만 모종 사물에 대한 기억의 잠재력이 엿보였던것이다.
 
《어허,우리 연이 용~타!》
《우리 연이 진짜 대단해!》
 
우리 부부는 어린것이 너무 기특해 놀던 화투를 뿌리치고 연해연방 애를 서로 빼앗으며 애의 볼에다 키스의 소나기를 퍼부었다.
 
그래서 그후부터 우리 부부는 짬짬이 시간나는대로 심심하면 우리 연이에 대한 《화투교육》을 《가강》하기 시작했다. 《화투교육》을 통해서 애의 사물에 대한 분류,식별능력과 연이 나름대로라도 이름을 장악해내는 기억능력을 발굴해내고 키워내는것이 총적목표였다.
 
이렇게 시작한것이 그후 약 반년이 지나자 과연 마흔여덟장의 화투장들을 열두개 달에 따라 나누는데 익숙했고 부르는 명칭도 굳어진 《연이식 언어》로 몽땅 장악했으며 둘만이 놀던 우리부부 화투놀이에 어린 놀음군이 하나 더 불어 인젠 화투대오가 셋이 되였던것이다.
 
어쨌든 그때 우리 연이가 열두달 화투장 이름들중 받침없는 음절의 명칭은 다 제대로 정확히 번졌으나 받침글자로 된 이름들에는 연이식 나름대로의 이름들이 다 따로 있었댔던 것이다.
 
어떤 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연이가 마치 그 어느 외국이나 다른 별나라서 온 《손님》같기두 하였다. 같은 화투장도 나나 아내는 《명월》이나 《흑싸리》로 부르지만 우리 연이는 《모모리》혹은 《잇싸리》라고 불렀으니깐... 지금도 무의식간에 가끔씩 그때의 그 일들을 떠 올릴 때면 혼자서 즐겁게 웃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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