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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狮子座个性全面解析 댓글:  조회:1266  추천:54  2023-11-08
狮子座个性全面解析   性格特点:狮子座, 外文名叫Leo, 别名又叫天狮座, 出生日期为7月23日-8月22日。狮子座开朗,热情洋溢,无论何时都散发着阳光般的气息,喜欢引人注目。本性纯真,有时会陷入满足自身欲望的泥沼,虚荣心较强。但是,只要适度压制自己的渴望,坚持不懈地努力,砥砺意志,就会破除万难,达到自己理想的彼岸,同时获得人们一致的敬重和钦佩。   1.狮子座:好高骛远 狮子座的人通常都是精力旺盛的过动儿,不过狮子座会把这些精力控制得很好,不会漫无章法的随兴浪费,而会让它们在一个稳定而有秩序的情境底下发挥最大的功效。他们很有组织性,极度重视秩序,喜欢凡事按照计画进行,不要发生什么意料之外的干扰,所以他们在做任何事之前都会设计一套完整的架构,把所有的相关因素都考虑在内,让自己轻而易举的控制整个流程。   2.狮子座:思想开放 狮子座竭尽全力冲破自己能量的极限,战胜艰难险阻,去开创光辉灿烂的新局面。此座的人风度翩翩,引人注目。你有宏伟的志向、坚韧不拔的毅力、所向披靡的竞争力。胆识过人,为人襟怀坦荡,宽宏大量,热情洋溢。你的思想中经常闪烁着英雄主义和理想主义的火花。   3.狮子座:自作多情 狮子座的女生们在情感事务中完完全全是个盲人,她们全凭跟着感觉走的。在她们的眼中,心仪的人是白璧无瑕一尘不染的。既便是与自己设想的美好前程相差千里万里,既便前面是苦海和陷阱,她们也认了。不一头撞死在南墙上决不甘心的。 粘的要死的狮子,陷入热恋时会是最甜蜜的情人,满面春风,手机讲不停,旁若无人到让人鸡皮疙瘩掉满地。问题是爱情总是有落入平凡的时候,嫉妒心超强的狮子,需要你不断地表白,老夫老妻还要配合演罗密欧跟朱丽叶,实在让人很想笑。   4.狮子座:缺乏谨慎 狮子座不知留余地或过于简单化。容易被表象所迷惑,以致犯教条主义错误。狮子座的人特别需要愉快的心情。消遣和娱乐、参加各种社交活动、与朋友交往,并能在这些活动中表现出自己举足轻重的地位。否则,你就会变得忧郁寡欢,失去你的魅力和光彩(这是你取得成功及吸引人的重要精神支柱)。休息会使你感到疲劳,你最好是在频繁的活动中去放松自己。   5.狮子座:专横跋扈 狮子座非凡的才华使你很容易走上享有威望的职位。尊严和慷慨是你性格不可分割的一部分。你善于发现为自己工作的人的优点,及时肯定他们的成绩,激发他们的工作热情和献身精神。你常常挥金如土,以满足自己对奢华生活的需求。你喜欢把自己的房间装饰得富丽堂皇。希望自己的家就是一个布满艺术品的世界。   6.狮子座:喜欢受人恭维 狮子座好表现,喜欢受人恭维,理想的配偶是可以和你分忧、同甘共苦的白羊座;有自由、进步思想、开朗、愿和你共同享受人生、实现理想的射手座;同属狮子座的人,均为相称的对象。不相称的对象如过于自私、坚持而阴沉的天蝎座;能打破你的一切理想的水瓶座;像岩石般顽固使你感到委屈的金牛座,都不会幸福。   7.狮子座:积极果敢 自尊心很强的狮子座,喜欢有自信和才华的对象,一味的顺从,并不能打动这种人的心,有主见、独之又勇於表达就是魅力最大所在,所以千万别卑躬屈膝的,大方的表现自己吧!   8.狮子座:喜爱受周遭众人瞩目 狮子座像国王般受众人注意时是你最愉快时刻,你很清楚自己有吸引人的能力。才干与外貌。但除了受你的吸引之外,还要有出众能力外表。不拘小节的大方开朗自信的人,才能获得你的青睐,运动神经发达的人与你最相配。   9.狮子座:爱面子 狮子座爱面子、自信得有点儿自大,常常会很在乎别人对自己的看法,也常常会因此而使自己不快乐。   10.狮子座:宽容不计较 狮子座的人很宽容,通常不会因为小事而斤斤计较,他们喜欢展现自己与众不同的仁慈心和获得尊重。对于过往的爱人,狮子座的人很少去探讨是谁的功过是非,无论当时对方有多伤害自己,但是过去了就过去了,狮子座的人不会去诅咒或者怨恨,因为他们喜欢向前看,他们不喜欢做八婆和有损自己高贵形象的事情。狮子座的人相信,只要自己完美和努力,幸福就在前方。   献给狮子座男性的话:其实你心里最想说的是:你们以为我是什么?我……我只是一只猫啊! 献给狮子座女性的话:你是温暖的阳光,但任何人都无法私自拥有。
30    天蝎座个性全面解析 댓글:  조회:988  추천:0  2023-11-08
天蝎座个性全面解析   性格特点:天蝎座, 外文名叫Scorpio, 出生日期为10月24日-11月22日, 它是十二星座之黄道第八宫。深信事物具有两面性是天经地义的真理,喜欢在孜孜不倦地探求中前行,这就是天蝎座的个性显著特征。天蝎座的世界充满着秘密,外人很难探个究竟,有沉着的洞察力和谨慎的行动能力,但不易为人察觉,它深藏在内心深处。天蝎座不善于交际,少言寡语,表达谦虚,容易被他人评价过低,但是一旦予以反击,力量足以使对方胆寒。天蝎座总是给人以谦虚感和尊严感。   1.天蝎座:对唯一情人钟爱不渝的人 天蝎座多年深爱一个人是你的特徵;且很珍惜与对方亲密相处的时光,甜蜜型的人才能符合你的期望。一直对你充满温柔,想和你黏在一起的情人,才能与你长相厮守;从你的表情即可明了你心意的是最佳恋人。   2.天蝎座:尊重对方秘密 天蝎座相称的对象是爱情、钱财及精神上都能相互尊重对方秘密的双鱼座;能负起建设及保卫家园的巨蟹座;同样属于天蝎座的对象,能互相保持诚信,过着和平而快乐的生活。不相称的如饶舌多嘴的水瓶座是不合适的;固执而贪欲重的金牛座会起冲突;虚荣或故弄玄虚的狮子座只会令你失望。   3.天蝎座:占有欲强 天蝎座恋爱中的天蝎座会愿意为对方改变自己。你的占有欲极强,以致常令对方喘不过气来;可是同时,你又渴望自己能保持神秘感,是否有点矛盾?你会被那些爱理不理、冷漠但充满成熟魅力的男人紧紧抓住你的心。   4.天蝎座:控制欲强 天蝎座控制欲很强,常沉迷于控制别人。他们喜欢控制一切能够控制的人,包括恋人、孩子、朋友抑或是下属,甚至,当他们和不熟悉的人呆在一起时,天蝎座也很习惯于控制局面。更别说在感情中,天蝎座有着强烈的占有欲,他们敏锐的洞察力能够将恋人的一举一动尽收眼底,不用听你的真话还是假话,他们就能够觉察到你葫芦里到底卖的是什么药,倘若侵犯到了他们,天蝎座更是得理不饶人,爱记仇又爱教训人。这样的控制欲常常让身边的人压抑,甚至害怕。   5.天蝎座:性感的星座 天蝎座是最性感的,因为它也掌管了生殖器官,性欲强盛,而且影响到他们的精力会无穷无尽地发挥,他们一定要每天都过得非常充实,如没有目标的事,他们难以投入!   6.天蝎座:记仇,报复心强 天蝎座的人是记仇的,切忌得罪他,有朝一日必定报仇的;因为冥王星的影响,将狡猾、残酷、的性格加诸他们身上,会不惜方法打击仇人;如果你想做中间人,他可能会迁怒于你,发泄他的怒气。蝎子本性善良,正如这个世界上还是好人多一个样子,蝎子大多本性是善良的。对于人性,我们还是希望是好的,对于任何人,我们都会选择去相信,并且,只给人一次欺骗他的机会,仅仅一次,就能给蝎子带来很大的伤害。久之,蝎子也不在善良,因为他们明白了:人善被人欺,马善被人骑的道理。开始报复欺骗他们的人。   7.天蝎座:悲观孤独 天蝎座看待任何事物,往往是事情残酷的一面,所以和我们天蝎在一起的时候,气氛会很沉闷。因为蝎子心底里已做好了最坏的打算,对所有的一切都保持低调,这个样子便能很坦然的面对一切,可是,却失去了一个活力,一个生气。孤独不是孤单,蝎子会有很多的朋友,所以绝对的不孤单,蝎子也会有很多可以推心置腹的人。但,蝎子的确是孤独的。那孤独是静夜沉思的独自感悟,是夜深人静的独品辛酸。蝎子不是心理上的群居动物。孤独的弱点在于蝎子自己,因为一个人的力量终究无法和群体的力量相抗衡,也许,在心的最深处,蝎子最信任的人是自己吧!   8.天蝎座:神秘,极端 天蝎座的人有一个成功的优点,就是他们一旦定了目标,就会不达目标心不死,永不退缩的! 天蝎座的人酷爱权力,喜欢有自己的思想方法。钱和物质对你是不可缺少的,但从不用它来束缚自己的手脚,你对那些对自己的事业、工作有过帮助的人,总是念念不忘,肯为你们慷慨解囊。你喜欢慎重而深思熟虑的冒险行动,也很会利用自己的魅力和感召力去达到自己渴望的目的。你的物质欲望必须得到充分满足。相传,天蝎座与象征死亡、遗产和赠与的黄道第Ⅷ宫结了"金玉"良缘,因此迄今为止,天蝎座的人仍在享受着配偶在物质生活方面常常给你的利益。还有些天蝎座的人,可能走向另一个极端,你们对这个世界上的幸福、财富毫无兴趣,而是去开创自己的信念之路,或者内心深处经历着神秘主义的骚动。   9.天蝎座:感情用事 天蝎座最大的弱点,毫无疑问的,那一定是感情!蝎子是一个很感情用事的人,对于自己所付出的一切都很重视,所以蝎子对感情的依赖,是大家难以想象的。可是,这也是我们最致命的弱点。所谓愈在乎的东西愈容易被其所伤害,当蝎子知道自己的一切的投入都是假的或是无法挽留的时候,那个感觉不亚于世界末日。这种打击可能会是毁灭性的。   10.天蝎座:自以为是 天蝎座是个完美主义者,可以蝎子也是人,而不是万能的神。当某些突发事件打乱了蝎子的计划时,对于自己考虑到的问题,蝎子会很从容的应付,因为蝎子不习惯去做一个没有任何准备的事情,可是正因为这个样子,对于应付意料以外的事情,却几乎束手无策。实际上,聪明的蝎子只会对事情的成功保留八成的把握,因为这个世界上除了已经发生的事实外,没有什么不可能的。蝎子是个不容易上当的星座。   献给天蝎座男性的话:除非亲身一试,否则她无法想像你有多爱她。 献给天蝎座女性的话:你的爱真的很深很深,但有时会把人溺的透不过气来。
29    [중국고전장편소설] 서유기 머리말 댓글:  조회:670  추천:0  2023-06-28
[중국고전장편소설] 서유기        머리말 1       《서유기》는 대략 명조중엽인 16세기 70년대에 책으로 완성되였다.《서유기》는 앞서 나온《삼국연의》,《수호전》그리고 그후에 나온《유림외사》, 《홍루몽》과 함께 우리 나라 명청시기의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우수한 장편소설이다. 중국고전소설예술의 휘황한 성과의 징표이기도 한 이러한 소설들은 중국인민, 나아가서는 세계인민이 즐겨 읽는 고전문학작품으로 되였다.     고전소설《서유기》도 자체의 특점을 갖고있는바 이 소설을 읽을 때 아래와 같은 점을 반드시 리해해야 한다.     첫째,《서유기》는 일반 고대소설들과는 달리 신화와 동화의 성질과 특점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모택동 동지는 “신화중의 허다한 변화”,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의 72변이라든가《료재지이》에서 나오는 허다한 귀신과 여우들이 사람으로 변한 이야기”에 대해 언급할 때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이러한 신화에서 말하는 모순의 호상변화는 결코 구체적 모순이 나타낸 구체적 변화가 아니라 무수하고 복잡한 현실적 모순의 호상변화가 사람들에게 일으킨 유치하고 사상적이고 주관환상적인 변화인 것이다.” —모택동 “모순론”     “그것은 결코 현실에 대한 과학적 반영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신화나 동화에서의 모순구성의 제 측면은 결코 구체적 동일성이 아니라 환상적 동일성일 따름이다.” —동상서     모택동 동지는 여기에서 신화나 동화류의 문학예술창작의 구체적 성질과 특점을 지적하였는 바 이는 우리가 소설《서유기》를 리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도적 의의를 갖고있다.     다 알고있다싶이 “관념형태로서의 문예작품은 모두 일정한 사회생활이 인간의 두뇌에 반영되여 생긴 것이다.” —모택동 "연안문예좌담회에서 한 강화” 신화 및 신화소설《서유기》와 같은 작품들도 하나의 관념형태로서 역시 일정한 사회생활을 반영하고있다.     《수호전》,《홍루몽》중에서 묘사된 인문과 사건 및 모순투쟁은 극 소부분이 종교적 미신과 문학적 환상을 반영한 것 외에 대부분은 현실생활속에서 존재하거나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물론 문학작품은 예술적 가공을 거친 것이다.)《서유기》에서 묘사한 손오공, 저팔계, 옥황상제, 신선, 요괴 그리고 손오공이 천궁을 소란시킨다거나 지구에 돌입하고 룡궁을 란장판으로 만든다거나 이랑신과 지혜를 겨룬다거나 백골정을 세번 쳤다든가 하는 이야기 줄거리들은 현실생활에 있을 수도 없고 존재할 가능성도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야기속에 있는 많은 문학적인 환상적 인물과 사건들은 역시 현실생활과 동떨어질 수가 없는 것들로서 작자가 사회현실속에서 장악한 자료와 사회생활에서 얻은 감수, 리해를 그 창작적 토대로 삼고있는 것이다.     《서유기》는 랑만주의로 충만된 환상적인 필치로 손오공이라는 이 신화적 영웅인물의 신통력과 변화를 그려내고있다. 작품에서 손오공은 승천입지도 하고 호풍환우도 하며 변하고 싶은대로 변하는 데 심지어 토지묘로도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근두운을 타면 단번에 십만 팔천리를 날 수 있고 금고봉을 수놓이바늘만큼 작게 변화시켜 귀안에 넣을 수도 있고 사발아구리만큼 굵고 몇장 길이로 길게 변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럼 이런 것들이 현실생활에서 가능한 일일가? 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렇게 활발하고 지혜롭고 락관적이며 투쟁정신과 무궁한 재주를 가진 인물을 좋아할 뿐만아니라 그 신비스럽고 대단한 위력을 가진 금고봉마저 좋아하고있다. 이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손오공이 천궁을 소란시키고 요마들과 싸우는 등 환상적인 이야기속에 우리가 능히 리해할 수있는 현실적인 내용이 들어있으며 또 이런 이야기들이 모종의 사회비판적 의의를 갖고있기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랑만적인 묘사방법은 작품이 나타내는 예술세계에서는 합리적인 것이다. 그러므로《서유기》를 읽을 때 우리는 이 소설은 신화소설의 성질과 특점을 가진 소설임을 반드시 명심하고 읽어야 이 작품의 사회적 내용과 의의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과거에 오일자, 오원자 등 사람들은《서유기》를 “담선(谈禅)”, “석도(释道)"의 책이라고 말하였고 그 후에 호적은 이 책이 “완세주의(玩世主义)”를 표현했다고 했는 데 이런 평가들은 모두 이 작품의 사회적 내용과 의의를 말살하고 외곡한 오유적인 평가들이다.     둘째, 《서유기》는 작가 개인이 창작하고 완성시킨 그런 작품들과는 달리 고대민중들의 창작과 작가 개인의 창작이 결합되여 완성된 작품이다. 중국고전소설들중에서 《서유기》는《유림외사》,《홍루몽》등과 같은 순 작가 개인에 의해 창작된 작품과는 다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라《수호전》,《삼국연의》등 작품들처럼 긴 시간을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술과 창작에 의해 형성되였다가 나중에 한 사람에 의해 총화성적으로 재창작되고 책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당승의 취경이야기는 력사적으로 실지 존재했던 사실이다. 당태종 정관년간(기원 627년부터 기원 649년까지)에 중 진현장은 불경의 교의를 정확하게 전하기 위하여 천축(인도)에 경을 구하러 가기로 작심했다. 그는 전후하여 17년이란 긴 시간을 거쳐 수만리 길을 걸었으며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 끝내 6백여부의 불경을 얻어가지고 장안에 돌아왔다. 귀국 후 현장은 성지에 의하여 불경 번역작업을 받아하는 한편, 서역에서 보고들은 일들을 구술로 전했다. 그의 제자 변기(辩机)가 그의 구술에 근거하여 《대당서역기(大唐西域记)》를 써서 서역 여러 나라들의 불교유적과 토산물, 풍속 등 정황에 대해 소개했다. 후에 또 그의 제자들인 혜립(慧立)과 언종(彦悰)이《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法师传)》을 써 현장이 서역에 다녀온 이야기를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 두 책은 모두 실제로 있은 사람과 사실을 쓴 것이지만 전자는 불교의 발원지에 대한 견문을, 후자는 불교도의 전기를 쓴 것인만큼 신비한 종교적 색채가 많았다. 특히《서역기》에서는 더 많은 종교적 풍문과 불경속의 이야기를 기술하고있다. 또한 교통이 극도로 불편한 당시 정황으로 볼 때 현장이 홀몸으로 서역에 가서 경을 얻어온 것 자체가 모종의 전기성적인 색채를 띠고있었다. 이리하여 당승의 취경이야기는 민간에 류전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과정에 점점 별의별 신비한 내용들이 보태지게 되였다.     송조때에 이르러 취경이야기는 이미 민간에 광범위하게 류전되였는 바 이야기군들의 주요한 이야기거리로도 되였다. 현존하고있는《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经诗话)》가 바로 남송시기의 이야기군들이 사용하였 던 화본이다. 이 책은《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法师传)》처럼 실지로 있은 력사적 인물과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후행자(猴行者)가 백의수사(自衣秀士)로 변하여 당승을 보호하면서 도중에 요괴를 때려 잡는 이야기를 쓴 것이다. 이 책은 이야기 줄거리가 조잡하고 예술적 상상력과 문장조직 등이 오승은의 《서유기》에 비해 많이 못하지만 처음으로 취경이야기를 문예창작에 도입하고 주인공을 현장이 아닌 후행자로 한 것이 주목된다. 이 책에서 나오는 후행자와 심사신(深沙神)은 후에 나온《서유기》의 손오공과 사화상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저팔계라는 인물은 아직 출현하지 않고있었다.     원조때에 이르러 취경이야기는 더 크게 발전하였다. 이미 발견된 자료에 근거하여 우리는 원조부터 명조초기에 이미《대당삼장취경시화》보다 더 성숙된《서유기》 화본소설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석하게도 지금은 그 때의《서유기》화본소설을 볼 수 없고 다만 명조 영락년간(기원 1403년부터 기원 1424년까지)에 편찬된《영락대전(永乐大典)》에서 “위징이 꿈에서 경하의 룡을 베다”라는 제목으로 된《서유기》에서 발취했다는 1,200여 자 되는 문장을 볼 수 있을뿐이다. 이 단락의 문장에서 쓴 이야기내용은 현존 세덕당본(世德堂本)《서유기》 제9회 “원수성(袁守诚)은 용케도 무사곡(无私曲)을 알아 맞히고 룡왕은 어리석게 하늘의 법을 범하다”와 제10회 앞부분의 내용과 맞먹는다. 이밖에 조선고대의 한어교과서인《박통사언해(朴通事谚解)》에서도 “당삼장서유기”라고 제목을 단 평화(平话)를 여러 곳에서 인용하였다. 비록《박통사언해》에서 인용한 문장이 그 화본의 원문이 아니고 옮긴 이의 간략된 문장이기는 하겠지만 거기에서 우리는 그 화본에는 이미 많은 취경이야기들이 실려있었음을 알 수 있다.     취경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대우에서 공연되였다. 일찍 금원본(金院本)에는《당삼장》이 있었고 원잡극(元杂剧)에는 오창령의 《당삼장서천취경(唐三藏西天取经)》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실전되였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는 원조말기, 명조초기 때의 사람 양경현(杨景贤)이 쓴《서유기》 잡극이 있다. 이 책에서는 당승이 태여난 이야기는 다루었으나 위징이 꿈에 경하의 룡을 벤 이야기와 당태종이 명계에 들어갔다 나온 이야기는 없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손오공이긴 하지만 그 후의《서유기》에서 묘사한 손오공의 인물형상과는 비할 수가 없으며 오승은의 붓끝에서 묘사된 손오공의 형상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당조 때 현장이 경을 가져오고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대당서역기》 등 책이 나타난 후로부터 송조, 원조, 명조초기까지 이 몇백년 사이에 취경이야기는 구전전설, 화본소설 및 잡극 등 여러가지 경로와 예술형식을 통하여 부단히 발전하여 왔다. 또 취경이야기는 오랜 시간을 거처 류전되는 과정에 많이 변화되였다. 인민들은 원래의 이야기 줄거리를 부단히 고치고 보태고 하였으며 동시에 봉건통치계급과 봉건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관찰과 인식을 이야기속에 주입하였을 뿐만아니라 이야기를 통하여 봉건사회 악세력에 대한 비판과 투쟁을 반영하였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리상과 소망도 반영하였다. 오승은의《서유기》는 취경이야기를 다룬 민간문학의 제재를 직접 계승하였을 뿐만아니라 거기에서 풍부한 사상적 자양분을 섭취하여 이 신화소설로 하여금 생동하고 재미있는 묘사의 갈피갈피에 왕왕 귀중한 사상이 번뜩이게 하였다. 례를 들면 소설 제45회에서 손오공이 한무리의 뢰전풍우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장면을 아래와 같이 묘사한 것이다.     “이 금고봉만 지켜보다가 내가 이 금고봉을 우로 처들면 곧 바람을 일으키란 말이요.”     풍로파와 손이랑은 지체없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두번째로 처들면 구름을 펴구.”     추운동자와 포우랑군도 인차 대답하였다.     “네, 네, 구름을 펴드리지요.”    “세번째로 처들면 우뢰와 번개를 치구.”     뢰공과 전모는 이구동성으로 대답을 했다.     “네, 네,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네번째로 쳐들면 비를 내리구.”     “네.”     룡왕들은 일제히 대답하였다.     이러한 묘사들은 신들앞에서의 손오공의 위풍과 강대한 위력을 충분히 보여주고있다. 이런 랑만주의 예술적 상상은 자연을 정복하려는 고대인민들의 강렬한 념원을 아주 생동하게 반영하고있으며 인간의 노력이 하늘을 이길 수 있다는 락관적인 정신을 반영하고있다. 또 이것은 고대인민들이“상상과 상상력을 빌어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의 힘을 지배하려 했음을” —맑스 “정치경제학비판서론” 표현하기도 한다.     《서유기》는 우리 나라 고대인민군중들의 집단창작과 작가의 개인창작이 결합하여 탄생된 것으로서《서유기》에 관한 민간문학이 없었더라면 오승은의 《서유기》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고대인민군중들의 집단창작으로 된 이 기초우에서 간단하고 조잡한 내용을 재창작을 거쳐 예술적 특점이 더욱 성숙되고 내용이 더욱 풍부해진 한 부의 고전신화소설이 탄생되게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며 또한 작가 오승은의 공헌이다.     셋째, 비록 오승은은 작품속에서 당시의 암흑한 봉건사회현실에 대하여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하였지만 그저 사회가 변화되기를 바랐을뿐 봉건통치제도를 뒤엎으려는 것은 아니였다.     오승은 자는 여충(汝忠)이고 호는 사양산인(射阳山人)이며 회안부 산양현(지금의 강소 회안)사람이다. 그는 소관료에서 소상인으로 몰락한 가정에서 태여나 명조중엽인 약 기원 1500년부터 기원 1582년 사이에 생활하였다. 증조부와 조부는 련속 2세대가 작은 문관직에 있었으나 이름을 날리지 못하였고 채색실과 비단등속 장사를 하는 아버지는 경영에는 소질이 없는 소상인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글읽기를 즐겨했으나 관리들에게 자주 협잡을 당했으며 이로 인하여 사회현실에 늘 불만을 품고 있었다.     오승은에 대하여 이전 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평가하였다.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질이 뛰여나 회안일대에 이름을 날리였다.”     “민첩하고 지혜로우며 많은 책을 읽어 지식이 해박하다. 붓을 들면 시가 나오고… 또 해학적인 극을 창작하는데도 재간이 있었는 데 그가 쓴 여러 편의 잡기들은 한시기 이름을 날렸다.”     이러한 평가들에 의하여 우리는 오승은 일생의 한 측면을 리해할 수 있다. 오승은의 과거길은 그리 순탄하지 못하여 40여 세가 되여서야 겨우 “세공생(岁贡生)”을 얻었다. 순탄치 못한 과거길과 어려운 처지 등 원인으로 하여 그는 늘 가난한 생활을 하였으며 세도가들의 웃음거리로 되였다. 이런 환경속에서 그는 정계와 과거제도의 부패상에 대하여 더 깊이 료해하게 되였으며 변덕스러운 사회세태를 인식하고 비판하게 되였다. 그는 성격이 강직하고 아첨할 줄 몰라 60여 세가 되여서 부득이 작은 관직을 맡았는데 그것도 허리를 굽혀 권세에 아부하려 하지 않는 성격때문에 얼마 못 가서 그만두었다. 그는 한평생 많은 작품을 썼으나 생활이 째지게 가난했고 또 이어받을 자식이 없는 등 원인으로 대부분이 실종되고 현재 실존하고있는 것은《서유기》외에 후세사람들이 다시 정리한《사양선생존고(射阳先生存稿)》가 있을 뿐이다.     순탄하지 못한 과거길로 하여 오승은은 사회현실에 불만을 품게 되였다. 오승은은 “왕도(王道)”와“덕치(德治)”를 결합하여 봉건통치질서를 유지할 것을 주장하였는바 이것이 그의 기본적인 정치사상과 주장이였다. 그의 이런 주장들은《사양선생존고》에서 엿볼 수 있다. 례를 들면 이 책에 “명당부(明堂赋)”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것은 당대 황제의 공덕을 구가한 전형적인 작품이다. 여기에서 그는 명세종 가정황제를 숭고하고 위대한 천자라고 칭찬하였으며 그의 통치를 “인심에 맞고 천심을 따른” 통치로서 “백성들은 해빛아래에서 생활하고 상하가 합심되여 화기애애하다”고 칭찬하였다. 물론 이것은 “왕도”와 “덕치”를 결합하여 통치할 것을 바라는 작가의 환상이지 결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기실 가정황제는 도교를 숭상하여 오래동안 정사는 돌보지 않고 궁전에 들어박혀 단약이나 만들어 먹으면서 불로장생을 바라는 아주 어리석은 황제이다. 일부 사람들이 그에게 이런 어리석은 일을 그만둘 것을 권하였지만 그는 듣지 않았으며 도리여 진언을 한 사람들을 박해하였으며 지어 곤장을 쳐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는 정사를 엄숭(严嵩) 일당에게 맡겼다. 엄숭 일당은 탐욕스럽고 횡포하며 남을 해치는 무리들이기에 그때 통치는 말할 수 없이 부패하였다. 때문에 오승은은 이런 현실생활을 실제적으로 관찰하고 명조의 실상을 “군대가 날로 무기력해지고 가렴잡세가 날로 늘어나며 허위적인 것이 흥행하고 사기를 치는 기풍만 늘어간다.”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또 “허리를 굽혀야 바라오를 수 있고”, “겉으로는 웃으나 속에는 칼을 품고 서로 다른 당파들을 배척하며”, “세력을 위해서 파리나 쥐처럼 행동하고 리익을 위해서는 물여우처럼 행동하는” 추태들을 폭로하면서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많은 말들을 참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탄하였다.     오승은은 비록 당시의 암흑한 사회현상을 폭로하고 비판하기는 하였지만 의연히 “간사한 사람들을 멀리하고 옛날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정치적 환상을 버리지 못하였다. 장시《이랑수산도가(二郎搜山图歌)》에서 그는 자신의 사회에 대한 견해와 정치적 포부를 충분히 밝히였다. 이 시에서 오승은은 화가의 높은 예술적 기교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이를 빌어 명조사회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리상을 표현하였다. 시에서 그는 “의관”을 관료사대부에 비유하고 “원학(猿鹤)”과“사충(沙虫)”을 각각 고상한 사람과 비렬한 사람에 비유하였으며 “오귀(五鬼)”와“사흉(四凶)”을 각각 송조시기와 요순시기의 간악한 인물에 비유하였다. 오승은은 많은 시작품을 통하여 자신은 이러한 종류의 간악한 무리들을 제일 중오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작품《희대선생간원주의발(熙台先生谏垣奏议跋)》에서 반희대(潘熙台)가 관리를 할 때 모륜(毛伦), 녕고(宁杲), 강빈(江彬), 전녕(钱宁) 등 네 사람과 과감히 싸운 것에 대해 특별이 칭찬하면서 이 네 사람이 바로 명조의 “오귀"와 “사흉”이라고 지적했다.     《이랑수산도가(二郎搜山图歌)》에서는 아래와 같은 작가의 기본적인 정치관념이 반영되였다. 즉 백성들이 재난에서 허덕이는 원인은 사회에 추악한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통치자가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하여 이리 같은 간신배들이 욱실거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왕도”로서 봉건통치의 만년대업을 유지할 것을 바랐다. 그러나 다만 한탄만 하였을 뿐 실제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였다.     오승은은 현실생활중에서 자신의 정치적 리상을 실현할 수 없음을 심심히 느꼈으며 또 당시의 “오귀”, “사흉”따위 무리들에 대해 증오는 하나 자신이 무력함을 느꼈다. 하여 그는 민간에서 류전된 신화이야기를 기초로《서유기》라는 신화소설을 창작하였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리상을 손오공이라는 인물에 기탁하였으며 그의 손에 들려있는 대단한 위력을 갖고있는 금고봉으로 당시 요괴와 같은 존재의 부패한 간신배들을 소탕하였다. 오승은의 이러한 사상은 소설의 총체적인 사상내용이 제고된 데서 보아낼수 있을 뿐아니라 소설의 세부묘사와 인물의 언어묘사에서도 보아낼 수 있다. 례를 들면 소설의 제45회에서 손오공이 신들에게 구름을 펴고 우뢰를 울고 비를 내리게 할 때 뢰공 등천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등천군! 거기서 잘 살펴 뢰물을 받아먹고 법을 어기는 벼슬아치들과 부모들께 불효막심한 후례자식들을 몇놈이라도 더 쳐죽여주오!”     소설에서 손오공이 제일 증오하는 것은 “뢰물을 받아 먹고 법을 깨뜨리는 벼슬아치들”이다. 이것은 오승은의 많은 시에서 표현된 탐관오리들을 적대시하는 사상과 완전히 일치되는 것이다. 이 실례는 오승은이 손오공이라는 주인공을 빌어 자신의 정치적 리상을 표현했음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오승은은 어렸을 적부터 야사나 민간이야기 같은 것들을 즐겼으며 고대신화전설이나 민간전설에 익숙하였다. 그는《우정지(禹鼎志)》라는 지괴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그는 “비록 이 책은 지괴소설에 속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귀신에 대해 쓴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이 시기 인간사회의 변이에 대한 지괴소설이나 쓰면서 우화적 의미를 더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의 신화소설들은 비록 신선이나 귀신에 대해 썼지만 역시 “인간사회"를 반영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창작은 환상적인 형식과 현실적인 내용으로서 사실은 작가의 사회현실에 대한 평론과 비판이다. 물론 작가의 이런 비판은 사회가 개량되기를 바랄 뿐이였지 근본적으로 봉건사회제도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2       명조중엽이후 환관들이 정권을 잡고 밀정들이 행악하여 정치가 더욱 부패해졌다. 명무종 주후조(明武宗 朱厚照)는 사람을 쓸 줄 모르고 정사에 어두웠는바 류근(刘瑾)등 간신배들이 정사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하였다. 그들은 살인과 방화를 마음대로 하면서 백성들을 압박하였으며 재산이 황실보다도 더 많으면서도 백성들의 고열을 짜내기에 급급하였다. 류근은 뢰물을 먹이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관직에서 내쫓고 뢰물을 먹인 자에 대해서는 벼슬을 높여주면서 강압적으로 뢰물을 요구하였다. 명세종 주후총(明世宗 朱厚熜)때에 와서는 탐관들이 득실거리고 백성들이 살기 힘들 게 되였다. 엄숭(严嵩), 엄세번(严世蕃)부자는 왕법을 무시하고 재주가 어떠하든지 뢰물을 먹이는 량에 따라 관직을 봉해주었다. 하여 “장수가 승진하려면 병졸들을 못살 게 굴어야 하고 관리가 득세하려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따라서 군사들은 흩어지고 백성들은 류리걸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서유기》에서 다룬 것은 비록 귀신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것은 그 당시 명조 사회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서유기》는 암흑하고 부패한 봉건사회와 어리석고 흉폭한 통치자들에 대해 심각하게 폭로하고 비판하였다. 작품속에서 묘사된 천국이나 인간세계는 어느 하나 깨끗한 곳이 없다. 천궁이나 지부는 보기에는 아주 신성하고 위엄있어 보이지만 실은 겉치레일 뿐 그 속은 부패하고 추악하기 그지없다.     당태종의 혼이 지부에 갔을 때 판관 최각은 선황의 신하였고 또 그는 당대의 재상이자 그의 절친한 친구인 위징의 편지를 받은 원인으로 생사부의 기록을 고쳐 당태종의 수명을 20년이나 더 늘구어 혼을 이승에 보내주었다.     당승 일행이 간난신고를 거쳐 서방 극락세계에 도착하였지만 아난과가엽은 경을 공짜로 주려 하지 않았다. 당승은 진경을 얻기 위하여 부득이 오는 길에서 동냥할 때 쓰던 자금바리대를 내놓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계국의 사리요괴는 국왕을 죽여버리고 국왕으로 변하여 왕위를 독점하였으나 그가 신이나 염왕들과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오계국 국왕은 억울해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이러한 묘사들은 바로 관리들끼리 한통속이 되여 왕법을 무시하고 탐오회뢰하는 당시 사회의 부패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서유기》는 어리석고 무능하며 조폭하고 음란한 통치계급을 비판하였다.     소설속에서 나오는 인간세상의 제왕들은 도교나 숭상하고 녀색에나 빠진 어리석은 군왕들이고 천국의 옥황상제마저도 옳고그름을 가리지 못하는 우매하며 독재적인 인물이다. 그는 손오공을 제압하기 위하여 태백금성과 태상로군 등 일당들의 지지하에 음모를 꾸미고 수단을 부리면서 안하는짓이 없다. 이러한 통치자들의 형상에서 우리는 인간사회 봉건제왕과 관료들의 어리석고 탐욕스러우며 세도를 부리는 반동적인 면모를 보아낼 수 있다.     《서유기》에서 당승이 취경길에서 만나는 많은 요괴와 악마들은 험난한 자연환경의 신화적인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많이는 인민을 해치는 사회악세력들을 상징한 것들로서 사회현실에 대한 반영이다. 제44회에 나오는 호력대선 등 세 대선은 요술로서 차지국의 국왕의 신임을 사고 중들을 해치는 데 중들은 더러는 죽고 죽지 못한 사람들은 노예로 되였다. 죽지 못한 나머지 중들은 포도군사들이 사처에 깔려서 도망을 칠래야 칠 수가 없고 죽음래야 죽을 수도 없는 처참한 처지에 있었다. 뿐만아니라 중이 아니라 하더라도 머리카락이 적거나 빠진 사람들도 중으로 몰려 도망치기 어러웠다.     이것은 명조시기 시정배가 살판을 쳐 길을 다니기도 겁이 나고 한집이 죄를 지으면 옆집까지 벌을 받아야 하는 련좌를 당해야 했던 사회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오승은은 명조 명세종 시기에 생활했던 인물이다. 력사기재에 의하면 명세종은 도교를 매우 숭상하였는 바 선후하여 소원절(邵元节), 도중문(陶仲文) 두 도사를 “진인”으로 봉하고 례부상서 관직을 주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그 무슨 “령소상청통뢰원양묘일비현진군(灵霄上清统雷元阳妙一飞玄真君)"이라는 도호를 붙이였다. 제40회에서 나오는 요괴 홍해아의 잔혹한 행위는 사람들의 마음을 섬찍하게 할 정도이다. 그는 산신들을 박해하여 어느 산신 하나 배불리 먹고 변변히 입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산신과 토지신들을 잡아다가는 아궁지기나 문지기로 부려 먹고 밤이면 야경까지 세웠으며 지어는 그놈의 졸개들까지도 산신과 토지신들에게 돈을 풍기였다. 만약 그런것마저 보내지 못하게 되면 그놈들은 몰려와 절간을 마스고 옷을 벗겨가기 때문에 토지신과 산신들은 한시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이것은 바로 명조시기 백성들이 압박과 착취를 받고도 하소연 할 곳마저 없으며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 허덕이는 사회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서유기》에서는 인민을 해치고있던 요괴들이 모두 신선이나 보살들과 관계가 있음을 폭로하였다. 비구국의 국장(国丈)은 원래 수성이 타고있던 흰사슴이고 평정산의 금각대왕과 은각대왕은 태상로군의 금로와 은로를 살피던 동자이며 통천하의 요괴는 관음보살이 련꽃못에서 기르던 금붕어이며 소뢰음사의 황미대왕은 미륵보살의 황미동자이다. 또 사타산의 첫째 마왕과 둘째 마왕은 문수, 보현 두 보살이 타던 청사자와 흰코끼리이고 셋째 마왕 대붕은 여래와 연관이 있으며 함공산 무저동의 요정은 리천왕의 의녀이고 완자산 흑송림의 황포괴는 하늘의 이십팔수 가운데의 하나인 규목랑이 하계에 내려온 것으로서 손오공의 말을 빈다면 “하늘에서 내려 온 요괴”이다. 이런 요괴들은 신선과 보살의 부하가 아니면 그들의 친척으로서 매 번 손오공이 그들을 없애려고 할 때면 그들의 주인이 나타나 귀순시킨다는 명의하에 그들을 보호해 주군 한다. 례를 들면 요마 새태세는 원래 관음보살의 금빛털의 늑대였는 데 주자국의 황후를 빼앗고 궁녀를 죽였으며 국왕도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번 하였는 데도 보살은 도리여 그가 주자국 국왕을 재난에서 구해주었다고 말하였다. 또 이 관음보살은 온갖 죄악을 저지른 홍해아를 문하에 들이여 선재동자로 봉하였다. 이 책에서 쓴 신과 요괴의 관계는 사실상에서 봉건사회에서 통치자들이 서로 결탁하여 인민들을 압박하고 착취하는 현실사회의 반영이였다.     소설 《서유기》는 종교에 대하여 특히는 도교에 대하여 신랄하게 조롱하고 풍자하였다. 소설에서는 도사를 부정인물로 부각함으로써 요술의 허망함과 도교의 가소로움을 폭로하고 질타하였다. 소설에는 또 저팔계가 복성, 록성, 수성의 면전에서 그들을 “종놈”이라고 희롱하는 장면이 있다. 소설은 불교에 대하여 비교적 높이 받들기는 하였지만 역시 여러 곳에서 불교를 풍자하였다. 례를 들면 손오공은 여래의 앞에서 여래를 “요괴의 조카”라고 말했는 데 이는 신에 대한 대담한 풍자이다. 또한 소설에서는 불교에 대한 불경스런 언어를 사용하고 또 구체적인 묘사를 통하여 불교의 일부 교의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취경길에서 손오공과 당승은 늘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를 대하는 문제때문에 모순이 생기군 한다. 손오공은 요괴를 때려죽일 것을 주장하고 당승은 늘 “착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면서 요괴를 죽이지 말것을 주장하나 나중에는 손오공이 옳고 당승이 틀렸음이 증명된다. 이것은 불교 교의중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는 교의는 믿을 것이 못되며 위해가 크다는 것을 말해주며 이런 교의를 믿는 것은 더욱 아둔한 것임을 말해준다.     반드시 지적해야 할 점은《서유기》의 종교와 신권에 대한 비판은 당시 사회의 암흑성과 긴밀히 련관되여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도교에 대해 제일 날카롭게 비판하였는 데 이는 가정년간에 도교가 통치계급사이에 성행하면서 사회가 뒤죽박죽이 되였던 원인으로 작가가 이에 대해 특별히 반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승은이 봉건사회와 봉건통치계급 및 종교에 대하여 일정한 비판을 한 목적은 통치계급에게 “교훈”을 제시해주어 그들이 틀린 것을 고치고 바른길에 들어설 것을 호소하기 위함이였으나 우리는 작품을 통하여 명조사회의 암흑성과 봉건통치계급의 부패상을 료해할 수 있다. 《서유기》는 도대체 무엇이 봉건통치이고 무엇이 봉건사회인지를 인식하는 데 우리에게 생동하고 형상적인 자료를 제공해주고있다.     《서유기》에서는 손오공이라는 반항적이고 신화적인 영웅형상을 부각하고 찬양하였다. 소설에서 손오공은 대담하고 투쟁정신이 강하며 어떤 면에서는 심지어 “무법천지”라는 느낌을 주는 인물이다. 그는 신성불가침이라고 말하는 천궁도 근본 안중에 없었다. 금고봉을 들고 마음대로 령소보전을 들부시고 도솔궁을 침범하여 천궁을 란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는 또 “생사정수(生死定数)”, “륙도륜회(六道轮回)”설법도 무시한 채 유명부에 쳐들어가 생사부에 있는 원숭이 족속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는 “천자는 존귀한 존재이고 아래사람은 웃사람을 범하면 안된다”는 따위의 교리를 무시하고 천궁의 존귀한 신들을 완전히 념두에 두지 않았으며 천상지존인 옥황상제 앞에서도 “이 손오공”이라고 칭하며 반말을 썼다. 손오공은 대담하게 들부시고 욕할 뿐만아니라 투쟁중에서 무서워하거나 후퇴하는 법이 없다. 그는천병에게 겹겹이 포위되였을 때에도 지혜와 용기로써 끝까지 싸웠으며 붙잡혀 로군의 단로안에서 49일 단련되여 눈알이 빨갛게 되였어도 비관하지 않았다. 단로안에서 뛰쳐나오자 바람으로 귀안에서 금고봉을 꺼내 사발아구리만큼 크게 만들어 손에 들고 다시 천궁을 분탕하러 쳐들어갔다. 서천으로 가는 길에서도 가지각색 요괴들을 만났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웠으며 하늘에 오르든지 땅에 들어가든지 요괴의 래력을 알아낸 뒤 제거해버렸다. 이렇게 아무리 큰 난관도 손오공을 막지 못하였다. 한번은 그가 사타산에서 요괴의 “음양이기병”속에빨려들어가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번하였으나 이발을 사려물고 아픔을 참으며 갖은 방법을 다해 도망을 쳐 다시 싸움을 벌렸다. 소설에서 천궁을 소란시키고 지부를 쳐들어가는 손오공의 대담한 반역적인 행동과 용감하고 지혜로운 성격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용감히 투쟁하고 곤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손오공의 정신은 당승과 저팔계와의 비교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소설중에서 당승과 저팔계는 그 자신이 가지고있는 전형적인 의의외에 작품중에서 손오공이라는 인물을 더욱 뚜렷이 부각해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당승의 연약함을 비판하면서 손오공의 대담히 투쟁하려는 정신을 더욱 뚜렷이 하였고 또 신심과 의지력이 결핍하고 쩍하면 짐을 나누어서 헤여지자고 하며 싸움에서 도망칠 구멍만 찾고있는 저팔계의 결점을 비판면서 곤난을 두려워 하지 않고 투쟁을 견지하려는 손오공의 형상을 더욱 뚜렷이 부각하었였다.     봉건사회에서 통치계급은 늘 자기에게 대항하는 자들을 홍수, 맹수와 비기면서 대역무도한 죄인으로 취급했다. 이러한 정황하에서 《서유기》는 천궁과 지부의 통치자에 과감히 대응하는 예술형상을 부각하였는 데 이는 그 당시 력사조건에서 볼 때 일정한 의의를 갖고있다. 우리가 손오공의 투쟁정신을 긍정하는 것은 그가 대적하는것이 어리석고 횡포한 봉건통치자와 인민을 해치는 요괴들이며 인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있기 때문이지 무턱대고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제44회에서 인간사회의 불만을 평정하고 곤난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 손오공의 행동을 중들의 입을 빌어 찬미하였다. 취경길에서 손오공은 인민을 해치는 요괴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없애버림으로써 인민들을 위해 해를 제거하였다. 례를 들면 비구국에서 그는 백록정을 항복시킴으로써 1,111명의 아이들의 생명을 구했고 은무산에서는 표범요정을 때려 죽이고 나무군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또 천방백계로 파초선을 구해 화염산의 불을 끔으로써 사제일행이 서천길을 계속 갈 수 있게 했을 뿐만아니라 당지의 백성들을 위하여곤난을 덜어주었다.     손오공의 요괴를 처단하는 정의적인 행동과 승천입지하며 호풍환우하는 신통한 재주는 당시 인민군중들의 소박한 념원을 반영하고 있으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고대인민들의 리상을 안받침해 주고있다. 바로 이러한 원인으로 하여 몇 백년을 내려오면서 손오공이라는 인물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의 사랑스런 신화 영웅 형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택동 동지는 그의 유명한 시편 “칠률 ·곽말약 동지에게 화답함(七律•和郭沫若同志)”에서 백골정을 세번 친 손오공의 이야기를 쓰면서 손오공의 과감히 투쟁하는 정신과 요괴를 소탕하는 행동에 대해 찬양하였으며 손오공이라는 예술적 형상이 가지는 의의를 제시하였다. 손오공이 천궁을 소란시키고 요괴들을 때려 없애는 투쟁내용은 사회비판적인 적극적인 내용을 표현하는 바 이는 사회투쟁에서의 일부 경험을 객관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된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맑스주의 관점으로 분석, 비판하고 개괄함으로써 새로운 내용을 더하여 옛것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할 수 있다. 례를 들면 손오공은 천궁과 천궁의 통치자들이라는 어마어마한 것들을 대하면서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금고봉을 들고 쳐들어 감으로써 옥황상제를 벌벌 떨게 만들었고 천병들을 혼비백산시켰는 데 이는 이 세상의 어떤 것들은 겉보기에는 신성하고 강대하여 불가침인 것 같아도 과감히 대응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있다. 또 제27회에서 손오공이 백골정과 싸우는 내용은 실제상에서 모 종의 투쟁지식과 경험을 보여주고있다. 백골정은 당승의 고기를 먹기 위하여 아릿다운 소녀로 변하기도 하고 파파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변하기도 하면서 당승일행을 속이려 들었지만 손오공의 “화안금정(火眼金睛)”만은 속이지 못하였으며 결국은 손오공의 금고봉에 맞아 한무더기의 해골로 되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교활하고 변덕스러운 “요괴”들에 대해 언제나 경계심을 갖고 정확하게 판단하여야 하며 손에 든 무기를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소설속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많은 데 이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계발해주는 역할을 한다.     《서유기》는 우리 나라 고전문학작품중에서 민주성을 띤 작품의 정화이기는 하지만 필경은 봉건시대 산물이다. 소설은 종교적 내용으로 충만된 취경이야기가 발전한 것이고 또 나중에는 봉건사대부의 지식인 손에서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뚜렷한 시대적, 계급적 제한성을 가지고 있으며 봉건적인 찌꺼기가 존재하고 있는바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하여는 비판적으로 대하고 제거해버려야 한다.     작가 오승은은 비록 암흑한 봉건사회에 대하여 폭로하고 비판하기는 하였지만 근본적으로 봉건제도와 군권(君权)제도의 합리성에 대해 의심하지 못하였으며 “왕도”로서 리상적인 봉건왕조를 건럽할 데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였다. 소설의 제88회에서 나오는 옥화왕은 백성을 자식같이 사랑하고 옥화국은 도시가 번성하고 오곡이 풍성한“극락세계”와 같은 곳이다. 이는 바로 작가의 리상적인 봉건왕조를 건립하려는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소설《서유기》에서 우리는 작가가 봉건왕조의 최고 통치자를 다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룡(真龙)”이라 하면서 자신의 희망을 그들에게 기탁하였음을 보아낼 수 있다. 작가는 봉건제왕들의 유치함과 무도함을 폭로하고 비판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변호하였다. 소설 속에서 나오는 군주들은 일시적으로 생각을 틀리게 하고 사람을 잘못 쓴 원인으로 어리석고 무도한 군주로 된 것이므로 그들을 잘 인도하여 옳바른 길에 들어서게 한다면 다시 정사를 바로잡고 백성을 아끼는 현명한 군주로 될 수 있다고 여겼다. 례를 들면 비구국의 사람을 잡아먹는“마왕”까지도 악한 것을 버리고 바른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작가는 봉건제도를 비판함에 있어서 군권을 완전히 부정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군주”가 “어리석은 군주”를 대신해주기를 희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봉건사회에서 옥화국과 같은 “극락세계”가 출현하기를 바라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어리석은 황제”가 일단 현명해지면 천하가 태평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비록 “어리석은 군주”와 “현명한 군주”는 그 차이가 있지만 그들의 계급적지위는 결코 그들이 인민의 리익을 대표할수 없음을 결정해주며 그들은 최고통치자이자 착취자임을 결정해준다. “구세주는 종래로 존재한 적이 없으며 신선이나 황제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로동인민이 신세를 바꾸는 방법은 오직 일떠나 모든 착취제도를 뒤엎는 길 뿐이지 다른 출로는 없다.     소설《서유기》에서는 신권에 대해 일정하게 풍자하기는 하였지만 결코 종교나 신권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작품은 여러곳에서 “일음일탁은 전생에서 전해지느니”, “인간의 그 어떤 생각도 하늘땅은 모조리 꿰뚫어보거니 만일 선과 악에 보응이 없다면 그것은 하늘땅에 사심이 있음이라.”와 같은 실례로써 불법의 무변함과 인과보응의 사상 , 숙명론 등 종교적 미신사상을 선양하였다. 독자들에게 특별히 해를 끼치는 것은 많은 곳에서 구체적인 사건과 묘사를 통하여 이런 미신을 구체적으로 설교했다는 점이다. 례를 들면 오계국 국왕은문수보살을 공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3년 동안을 죽어야 하는 벌을 받아야 했고 구원외는 성심성의로 불교를 신봉했기에 지장왕보살이 그의 수명을 연장해 준것 등등이다. 또 소설의 제8회부터 제11회까지의 당승이 경을 얻으러 가게 된 원인을 쓴 이야기는 종교미신사상을 더욱 돌출히 하고있다.     계급투쟁의 경험으로 볼 때 종교는 인민을 마취시키는 정신적 아편이다. 때문에 레닌은 종교를 “세계에서 제일 밉살스러운 물건의 하나” —레닌《레브 똘스또이는 로씨야혁명의 거울이다》라고 말했다. 봉건통치계급이 신권과 종교를 떠벌인 것은 그들의 반동통치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신권을 떠벌이면서 자기 자신들을 신격화하면서 소위 “하늘로부터 소명을 맡아” 신의 위탁으로 만민을 통치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설교하고있는 “불법무변(佛法无边)”이라든가 모든것은 상제의 뜻에 좇아야 된다는 것들은 바로 자기들 자신이 “구세주”이며 누구도 거역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한것이다. 그들은 또 “인과보응”리론과 숙명론을 떠벌이면서 인민들이 받는 가난과 고통이나 자신들이 누리는 부귀와 영화는 모두 운명이 정해진 것이지 계급적 압박과 착취에서 오는것이 아니므로 인민들은 하늘이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야지 반항하면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라고 설교하였다. 통치계급은 이러한 “긴고주(紧箍儿)”를 인민의 머리에 씌워놓아 인민들의 반항의식을 속박하였으며 인민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소설속의 “삼교합일”의 사상 역시 지주계급의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다. 례를 들면 제47회에서 손오공은차지국 국왕에게 “스님도 공경하고 도사도 공경할 뿐아니라 또한 인재를 길러 쓰십시오. 그런다면 나라는 영원토록 반석같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신권사상과 종교관념은 인류사회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일종 무형의 물질이 인류사회를 지배한다고 주장하는 철두철미한 유심주의 리론으로서 맑스주의 세계관과는 근본적으로 대립된다. 통치계급은 이것을 인민을 기만하고 피압박계급의 반항의식을 탄압하는 사상도구로 삼았다.     우리는《서유기》에서 반영된 종교미신사상을 포함하여 모든 각양각색의 유심론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판하여야 한다.     손오공이라는 인물을 분석함에 있어서 우리는 두개 측면으로 분석하고 비판하여야 한다. 즉 그의 투쟁이 가지는 적극적인 사회적 의의를 보아내는 동시에 이 인물형상에는 작가의 사상락인이 깊이 찍혀 있으며 시대와 계급적인 국한성이 있음도 보아내야 한다. 소설에서 손오공은 천궁을 소란시키고 심지어 “황제를 번갈아 가면서 하자”고 웨쳤지만 결코 “황제”가 “천궁”을 통치해야 한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았으며 후에는 자신이 천궁을 소란시킨 데 대해 잘못을 뉘우쳤다. 그는 관음보살에게 “저도 이젠 모든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라고 말하였고 후에는 옥황상제 앞에서 신으로 칭하면서 “소신은 보살님의 가르침을 받고 불문에 귀의하여 그분의 제자가 되였사오매 더는 량심을 속이고 페하를 거슬리는 일을 하지 않고있사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정황에 대해서 우리는 가히 리해할 수 있다.     작품에서 볼 수 있는바 손오공이 여러 번 천궁을 소란한 것은 옥황상제가 현명하지 못하여 사람을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옥제가 어리석기 때문에 손오공은 반기를 들었고 자기절로 “제천대성”으로 칭하고 천궁에 반항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래와 옥황상제는 역시 “강자”였고 오공은 오행산 밑에 깔리여 죄값을 치러야 했다. 손오공은 자신이 더는 기만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오행산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당승을 도와 경을 얻어 동녘땅의 중생들을 구원하여 정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여 자연적으로 불문에 귀의하였다. 손오공은 “어리석은 황제”를 반대하였을 뿐 황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옥화국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현명한 군주인 옥화왕을 만났을 때 그는 “그를 스승으로 삼고 재간을 배워 나라를 지키려는”세 왕자의 청을 흔쾌히 들어주고 열심히 그들에게 자신의 재주를 가르쳤다. 이로부터 우리는 손오공이 천궁을 소란하고 지부를 들부시면서 옥황대제와 염라대왕을 멸시하고 그들에게 반항하였지만 그의 머리속에서는 봉건제도와 봉건왕권을 철저하게 부정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그가 근두운을 타고 한 번에 십만 팔천리를 날 수 있지만 여래의 손바닥을 못 벗어나 듯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봉건제도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으며 그의 사상도 “긴고주"라는 봉건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이것은 작가의 세계관의제한성의 반영이며 시대적, 계급적 제한성의 결과물이다.     총적으로 말하면 《서유기》의 사상내용은 비교적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으로서 그 속에는 민주적 성질의 정화도 있으며 봉건적인 찌꺼기도 있다. 고전 문학작품으로서의 《서유기》는 총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가진 작품이다. 소설은 기이한 문학적인 환상을 통하여 봉건사회의 암흑성을 넓은 범위로 폭로하고 비판하고 천궁과 지옥의 통치자와 인민을 해치는 요괴들에 대한 반항투쟁을 찬양하였으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고대인민의 리상과 념원을 반영하였다.     당시의 력사적 조건하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진보적인 의의를 가지는 작품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하여 력사와 그 시대의 사회를 료해할 수 있다.     《서유기》의 총적인 사상적 의의와 예술적 가치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우리 나라 문학사에서 뿐만아니라 세계 문학사에서도 하나의 우수한 신화 문학작품이다.   3       우리 나라 고전 랑만주의 작품으로서의《서유기》는 그 예술성과가아주 크다. 작품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통하여 우리는 작품의 우점에 대해서는 본보기로 삼고 작품의 결점에 대해서는 거기서 교훈을 섭취할 수 있다.     《서유기》의 예술적 처리, 형식과 기교 방면을 아래와 같이 분석할 수 있다.     1. 현실에 기초하였으나 현실을 초월하였고 랑만주의 환상적 색채를 띠였으나 취경이야기의 기본 줄거리를 보류하였다.     문학작품은 현실에 기초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현실을 초월할 것을 요구한다. 《서유기》가 신화소설인 관계로 작가는 더욱 과감하게 예술 상상력을 발휘하였으며 전반 소설은 랑만주의 환상과 색채로 충만되였다. 소설속의 인물이나 사건은 더는 현실생활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나 개괄이 아니라 리상화되고 환상화된 것이다. 《서유기》는 보기 드물게 풍부한 예술상상력을 표현하였다. 우리 나라 문학사에서는 아직 이보다 더 생동하게 완정한 신화세계를 묘사한 작품이 없으며 이처럼 황홀한 신화와 동화이야기를 창조하고 손오공, 저팔계와 같이 생동한 예술형상을 부각한 작품이 없다. 총적으로 말하면 소설은 아주 환상적으로 씌여지기는 하였지만 사회현실을 떠나지 않았으며 인물과 사건을 묘사할 때 비록 신기하고 유모아적이고 재미있게 쓰기는 하였지만 일정하게 사회현실의 내용을 포함하고있다. 때문에 이 작품은 하나의 사회적 의의를 가지고있는 신화소설이지 아무 의의가 없는 황당무계한 소설이 아니다.     취경이야기의 원래의 사상내용을 과감히 개조한 것은 오승은의 예술창조성의 돌출한 표현의 하나이다. 력사인물로서의 현장은 《서유기》속의 예술형상으로서의 당승과는 너무나 다른 인물이다. 력사기재에는 현장에 대해 칭찬한 말들이 아주 많다. 그의 제자들은 그에 대하여 “경전의 오묘함을 통달하”고 “옛것과 현인을 사랑”하며 “총명이 남보다 훨씬 뛰여났”고 학문을 즐겨 늘 침식을 잊어가며 학문에 몰두하였으며 불경을 배움에 있어서 “한 번 읽으면 그 뜻을 리해하고 한 번 보면 단단히 기억한다”라고 말하였다. 봉건 력사학자들은 그에 대하여 “박심함이 뛰여나고 설교에 능하며 불교의 오묘함을 잘 해석하여 멀리 토번에서도 원근과 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를 존중하였다.”라고 칭찬하였으며 당태종은 그를 당시의 “불문의 령수”라고 청찬하였다. 또한 곤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서 먼길을 떠나 갖은 곤난을 이겨낸 현장의 정신은 자연히 사람들의 존경과 탄복을 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소설《서유기》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소설속에서 당승은 취경길에서 난관에 맞다들면 울기나 하는 얼떨떨한 사람으로 부각되였다. 소설속에서 그는 귀구멍만 넓고 “선”에 대해 정확히 구분할 줄도 몰라 늘 요괴를 좋은 사람으로 빗본다. 뿐만아니라 손오공의 권고도 듣지 않고 도리여 “긴고주”를 외우는 잔인한 수단으로 오공이 요괴를 죽이지 못하게 한다. 그러다가 재난을 당하여 혼이 난 다음에야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한다.     당승은 우매하지만 가르쳐 줄수 있기에 반면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작품에서 돌출하게 한 것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당승의 인물형상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왜 이렇게 당승의 형상을 변화시켰으며 취경이야기중에서의 당승의 주역지위를 실제상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손오공에게 주었으며 그를 열렬히 찬미하였을가? 만일 그저 력사기재와 당태종 등 사람들의 당승에 대한 평가를 근거와 출발점으로 한다면 작품은 그저 하나의 예술작품형식으로 된 “고승전(高僧传)”이나 “성승전(圣僧传)”으로 밖에 되지 않을 것이며 작품의 주요내용도 그저 불교와 불교교도에 대한 찬미가 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러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즉 수백년간 내려온 구전전설과 화본을 창작적 기초로 삼고 이 기초에서 예술적인 재창작을 진행한다면 실제 인물과 실제 사건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손오공이라는 신화적 인물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하고 신화적 환상과 예술형식을 결합하는 것을 통하여 현실적 내용을 더욱 넓게 표현할 수 있었으며 추악한 사회현실에 대해 폭로하고 비판할 수 있었다. 오승은은 소설을 창작할 때 두번째 방법을 선택하였으며 또한 이것은 소설 《서유기》의 예술적 처리에서 성공한 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유기》는 필경 당승의 취경이야기를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이야기는 종교적인 내용과 색채를 갖게 된다. 동시에 작가 오승은이 비록 명조사회의 현실에 대한 감수로부터 출발하여 작품을 창작하고 종교에 대하여 특히는 도교에 대하여 일정하게 비판을 하였지만 그의 사상속에는 의연히 인과보응, 숙명론 등과 같은 유심론적 사상의 찌꺼기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서유기》의 예술처리와 예술형식에서 표현되고있다. 례를 들면 작품에서는 시, 송, 게, 찬등 많은 것들로써 종교관념을 선전하였고 “외도는 진성을 매혹하고 원신은 본심을 도와주다”, “의마”, “심원”, “도심”, “선성” 등과 같은 것들을 설교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이야기의 줄거리와 인물성격 발전의 수요를 떠나 “권선징악(劝善惩恶)”을 설교하였다. 이미 80가지의 난을 렬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여든하나의 수가 다 차야만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교의 교의에 의하여 81번째 난을 보충하였고 소설속에서 두번씩이나 “황당무계한 불경 목록”을 쓰고 보살들의 명단을 복잡하게 렬거한 것이 그 실례로 된다. 이러한 것들은 문학작품을 딱딱하고 지루하게 만들고 작품내용에 유심론적인 찌꺼기가 섞이게 만들었다. 이것은 예술적으로 볼 때에도 실패한 것이다.     2. 모순충돌속에서 신화적 예술형상을 뛰여나게 조각하여 손오공과 저팔계의 선명한 성격을 묘사하였지만 일부 예술형상들은 창백하고 무력하다.     《서유기》에서는 능숙하게 이야기줄거리와 결부하여 모순투쟁 속에서, 행동 중에서, 전투 중에서 주요인물의 형상을 부각하였다. 손오공의 락관적이고 지혜롭고 용감하며 굳센 성격과 신통력은 천궁을 소란하고 룡궁과 지부를 들이치고 신선, 룡왕, 요괴들과 투쟁하는 것과 긴밀히 련결된 것이다. 손오공이라는 인물을 떠나면 이러한 이야기들은 생동한 예술적 광채를 잃게 되고 반대로 이런 이야기를 떠나서는 손오공이라는 생동한 예술형상도 없게 된다. 이 돌속에서 태여난 돌원숭이는 태여나자마자 “눈에서는 두줄기의 금빛광선이 뿜겨나오고 그 빛발은 하늘에까지 뻗쳐” 사람들로 하여금 이 원숭이가 절대로 본분이 나지키는 원숭이가 아님을 느끼게 하는데 후에 불문의 정과를 얻은 후에도 남들과 다른 “투전승불(斗战胜佛)”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작가는 긴장하고 격렬한 투쟁이야기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손오공의 성격특점과 신기한 재주를 돌출히 표현하였다. 그렇게 위엄있는 천궁에서 법력이 높은 천장들이 얼마 있든지 관계치 않고 손오공은 대담히 투쟁하여 구요성들은 급급히 문을 꽁꽁 닫아걸고 나오지 않았고 사대천왕들도 겁을 먹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게 만들었고 화과산에서는 리천왕이 거느린 천장들과 십만 천병을 대하고도 낯색 하나변하지 않고 대항하였다. 백골정을 세번 때려잡고 라찰녀와 싸우는 장면을 쓸 때 작가는 여러가지 모양으로 위장한 요괴를 “화안금정”으로 간파하고 적의 배속에 들어가서 적을 항복시키는 손오공의 재간을 돌출하게 묘사하였으며 이랑진군과 싸우는 장면에서는 그의 림기웅변능력과 종잡을 수 없게 변하는 신통력도 충분히 표현하였다. 그는 때로는 키를 만장이나 늘구어 진군과 악전하고 때로는 변신술을 부리며 적과 싸우는 데 어떤 때는 큰 가마우지로 변하여 하늘을 찌르다가도 어떤 때는 물고기로 변하여 물속에서 헤염친다. 그는 참새, 물뱀, 너새로 변할 수도 있고 심지어 토지묘로도 변할 수 있었다. 쩍 벌린 입은 대문이 되고 이발은 문살이 되고 혀는 보살이 되고 눈은 창문이 되여 진군을 한입에 삼켜버릴 준비를 하고있었는 데 다만 꼬리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기대로 만들어 절간뒤에다 세워놓았는데 그 꼬리때문에 진군에게 발각되였다. 그러자 손오공은 화닥닥 몸을 솟구쳐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진군의 그 “봉의 눈”마저도 손오공을 찾을 수 없었다. 원래 손대성은 리천왕의 천라지망을 별로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은신법을 써서 포위망을 벗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랑신의 모양을 해가지고 관가구  진군묘로 가서 귀졸들의 절까지 받았다. 이런 눈부신 변신술은 이야기를 더욱 긴장하고 재미있게 전개해주며 손오공의 지혜롭고 락관적이며 익살스러운 성격과 변화무쌍한 재간을 남김없이 표현하였다.     작가는 인물형상을 부각함에 있어서 인물의 사상성격을 동물의 자태, 습관과 교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서유기》의 인물과 이야기를 신화적이고 동화적인 색채를 띠게 하였으며 이 방면의 예술처리에서 개성화 창작에 주의를 돌렸다. 례를 들면 손오공과 저팔계를 모두 동물로 부각한 것인데 손오공은 원숭이로, 저팔계는 돼지로 부각하였다. 원숭이는 “뾰족한 얼굴에 홀쪽한 볼, 금정화안(金睛火眼)”의 외모에 활발한 동물이다. 이것은 손오공의 72가지 변신술을 가진 신통하고 기민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돼지로서의 저팔계는 코가 쀼죽하게 길고 귀가 크며 행동이 우둔하고 먹기를 좋아하고 잠자기 좋아하는 체형적 특점과 성격적 특점을 가지고있다. 이것은 작가가 저팔계라는 인물의 성격특점을 부각하려는 수요에 부합된다. 심지어 손오공과 저팔계는 사용하는 무기마저 그 차이가 있는 데 하나는 크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변화무쌍한 금고봉이고 하나는 거칠고 든든한 아홉가닥의 갈퀴이다. 이것은 두 인물의 서로 다른 성격, 애호에 부합된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는 이 두 인물의 변신술에 대해 쓸 때 둘 다 변신술을 부릴줄 알게 썼지만 그 차이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손오공은 남자든 녀자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무엇이든지 모두 변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똑같게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저팔계는 이와 달리 돌이나 언덕, 코끼리, 락타 등 크고 우둔한 것으로는 변할 수 있지만 작고 깜찍하고 예쁜 것으로는 변할 수 없다. 한번은 녀자애의 모양으로 변했는데 겨우 얼굴은 변했지만 배만은 여전히 뚱뚱해서 일칭금을 닮지 못했다. 이런 변신술의 차이는 두 인물의 재주의 차이를 표현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두 인물의 개성의 차이를 표현하였다, 이는 인물성격을 전형적으로 부각함에 있어서 아주 고명한 수법이다.     《서유기》에서 손오공과 저팔계라는 인물형상은 성공적으로 부각하였으나 당승과 사화상에 대한 예술형상을 부각함에 있어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소설에서의 당승은 정신면모와 성격이 나약한 인물로 부각된다. 그러나 작가는 그의 성격특징을 묘사함에 있어서 단조롭고 중복된 수법을 사용하였다. 례를 들면 그의 나약하고 무능하며 담이 작고 곤난앞에서 위축된 모습을 쓸 때 “눈물을 흘린다”든가 “혼비백산” 하였다고 묘사하지 않으면 “제대로 말안장에 앉지 못하여 말에서 굴러떨어졌다”고만 묘사하였다. 또한 사화상의 형상을 묘사함에 있어서는 더욱 희미하게 묘사하여 선명한 개성이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량적으로 많은 신이나 보살, 요괴의 형상을 묘사할 때에는 어떤 것은 비교적 개성이 있게 묘사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으나 어떤 형상들에 대해서는 필력을 들이지 않아 인물이 전형적으로 부각되지 못하였으며 사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볼 때 작가 오승은은 신기하고 생동한 이야기를 쓰는 데 묘필이기는 하지만 시내암, 조설근처럼 독자들이 잊지 못해하는 많은 인물을 선명한 예술적 형상으로 부각한 데 비해서는 뒤떨어지는 바 이는 선명한 예술적 형상창조에서《서유기》가 손색이 가는 점이기도 하다.     3. 작품은 전반적으로 볼 때 재미있고 유모아적이며 풍자적이고 해학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것은 용속하고 무료한 점도 있다.     유모아적이고 풍자적인 수법과 랑만주의적 환상이 결합하여《서유기》의 독특한 예술풍격을 구성하였다.     《서유기》는 생동하고 재미있는 서술과 신랄한 풍자를 통하여 추악한 사회현실에 대해 폭로하고 비판하였다. 례를 들면 아난과 가엽은 당승들에게서 선물을 갖지 못하게 되자 당승 사제들에게 글자 없는 백지종이의 “무자진경"을 주었다. 당승사제들이 이 일을 여래에게 말했을 때 여래는 웃으면서 이미 알고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경문은 경솔하게 전해서는 안되거니와 빈손으로 가져가도 안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전에 몇몇 비구승들이 경을 령산아래로 가지고 내려가 사위국의 조장로집에서 한번 외워 그 집 식구들의 안전과 망자의 제도를 보장해주었지만 올적에 서말 서되의 쌀과 몇알의 금싸래기를 받아왔었다. 난 그 때에도 독경값이 그렇게 싸고서야 후손들의쓸 돈이 없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었다.”라고 “경을 싸게 판”일을 말해주었다. 겨우 남을 위하여 경을 읽어주고 쌀과 금싸래기들을 받고도 돈을 적게 받았다고 푸념하니 이 여래의 탐욕도 참 끝이 없다.     이러한 것들을 풍자할 때 작가는 아주 생동하게 썼다. 아난이 당승에게서 자금바리대를 받고 그저 빙그레 웃을 때 옆에 있던 힘장사들과 료리사들이 놀리자 “부끄러워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자금바리대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또 최판관이 생사부에 당태종의 수명이 “정관 13년(一十三年)”이라 씌여져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꿈틀 놀라며 급히 붓에다 진한 먹을 듬뿍 묻혀‘一’자 우에에다 가로 두줄을 더 그었다”. 이러한 문자들은 아주 생동하고 활발하여 인물의 행동과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고있으며 작가가 풍자하려는 것을 더욱 유모아적이고 신랄하게 표현하며 아주 예술적이다.     오승은은 신선, 불교도, 요괴들에 대해 풍자하고 비판하였을 뿐만아니라 취경대오 속의 인물에 대해서도 풍자하고 비판하였다. 례를 들면 작품 속에서는 생동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하여 저팔계의 거짓말을 하기 좋아하는 데 대해 비판하였다. 저팔계더러 산을 순찰하라고 보낸 손오공은 담이 작고 게으른 이 녀석이 산은 순찰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여 얼려넘길 것을 알고 벌레로 둔갑하여 팔계의 귀에 붙어 팔계를 미행했다. 과연 팔계는 얼마를 가지 않고 오공들을 “너희들은 모두 거기서 편안히 쉬고있으면서 나만은 이렇게 부려먹는다”고 욕한다. 그리고는 풀숲에서 한잠을 자고 깨나서는 바위 세개를 놓고 스승, 사형, 사제를 대한다고 생각하고 자문자답하면서 거짓말을 꾸며댔다. 즉 요괴가 있던가고 물으면 있다고 하고 산은 무슨 산이던가고 물으면 석두산이라고 하며 동굴은 무슨 동굴이던가고 물으면 석두동이라 하고 문은 어떤 문이던가고 물으면 큰 쇠못을 박은 철문이다고 대답하기로 거짓말을 꾸며놓고는 “그리고 만약 대문에 못이 얼마나 박혀있더냐고 물으면 그것만은 이 팔계가 미처 세여보지 못했노라고 하면 그만이야. 이만큼 거짓말을 꾸며놓았으니 이젠 가서 필마온 녀석을 속여먹어야지!”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 거짓말들을 잊어버릴 가봐 돌아오는 길에서 고개를 폭 숙이고 부지런히 입속으로 외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손오공에게 발각되고 손오공은 먼저 돌아와 당승에게 일러바쳤다. 과연 팔계는 돌아와서 그대로 거짓말을 꾸며댔으나 인차 손오공에 의해 폭로되였으며 팔계는 궁지에 몰리게 되였다. 이 바보는 거짓말을 너무 어설프게 꾸며댔기에 인차 들통이 난것이다. 이 이야기는 팔계가 거짓말을 꾸미는 과정을 생동하게 묘사함으로써 이 바보의 가소로운 행위와 심리상태를 상세하게 표현하였으며 이는 저팔계라는 인물의 총적인 성격특점에 부합된다. 작가는 이러루한 창작수법을 여러 곳에서 응용하여 저팔계더러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지 못하게 하고 참새가 방아간을 지나는 격으로 만들어 저팔계의 색을 좋아하고 작은 리익을 탐내며 담이 작고 자사자리한 성격특징을 표현하였다. 작품에서는 재물을 탐내고 색을 좋아하는 저팔계의 이런 사상행위를 조소하고 비판하는 동시에 그의 일부 우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례를 들면 그는 로동을 사랑하고 아무리 더럽고 힘든 일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며 취경대오가 무사히 형극령을 넘고 희시동을 지나가게 장애를 없애 공을 세웠으며 무거운 짐도 그가 서천까지 메고간 것 등등이다. 또 작가는 저팔계의 언어를 묘사함에 있어서 생동하고 재미있게 묘사하여 희극적인 예술형상으로 충만되게 하였으며 농후한 풍자적, 비판적 의의를 갖게 했다.     《서유기》의 이런 생동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인물의 행동, 언어와 심리상태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이 생동하게 재미있게 묘사되여 있기에 소설의 무미건조함을 극복하고 희극성적인 예술효과를 거두었으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였는 바 이는 이 작품이 예술상에서 거둔 성공적인 점이다. 그러나 소설은 어떤 면에서 너무 괴이한 것을 추구하였는 데 이로 하여 소설은 사회적 의의와 적극적인 내용을 잃었으며 해학적이고 재미있어야 할 것도 진지하지 못하고 저속하고 무료한 것으로 되고 말았다. 례를 들면 제53장 “삼장은 내물을 잘못 마셔 잉태를 하고 오정은 우물을 길어다 태를 없애주다”에서는 당승과 저팔계가 자모하의 물을 잘못 마시고 잉태하였다가 “파아동 락태천”의 물을 마시고 겨우 락태를 하고 아픔이 멎은 이야기를 썼다. 기실 이는 근본적으로 아무 적극적인 의의가 없는 괴상하고 황당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 손오공과 평시에 말이 적던 사화상까지 포함하여 소설속의 인물들이 서로 놀리고 무의미한 말을 하게 했다. 이런 것들은 작가가 창조한 정면적인 예술형상에 손상을 주며 일종의 엄숙하지 못한 렬악한 창작경향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해이지언(解颐之言)”은 사회적 의의가 있는 것이여야 하며 그렇지 못한 것은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비록《서유기》에서의 이런 용속하고 무료하며 진지하지 못한 것은 의의가 있고 유모아적이고 풍자적인 것에 비할 때 첫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들은 의연히 이 점에 대하여 주의를 돌리고 비판적으로 대해야 한다.     상술한 3가지 특점 이외에 반드시 제기하여야 할 것은《서유기》가 예술형식상에서 민간문학의 특점을 보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례를 들면 작품에서 언어는 민간설창과 구두어의 정화를 흡수하여 산문과 운문을 섞어썼는 데 이는 우리 나라 송원시기의 설화예술에서 발전해온 것이다. 《서유기》에서 사용한 언어는 보통 구두어로 된 것으로서 비교적 생동하고 활발하며 표현력이 강하다. 주요인물들사이의 대화도 비교적 잘 되였으며 언어의 개성화에 주의를 돌렸다. 소설에서는 민간의 어휘와 속담을 대량으로 선택하여 비교적 자연스렵게 응용하였다. 비록 작품속에 작가의 고향방언(소북방연)이 많이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총적으로 통속적이고 리해하기가 쉽다. 소설에서 사용된 운문을 볼 때 소수의 잘된 것을 내놓고는 종교의 현리를 말했거나 투쟁장면이나 산수의 풍경을 묘사한 운문은 대부분이 평범하고 공식화된 결함이 존재한다.     총적으로《서유기》의 예술성에 대해 평가할 때 우리는 이분법의 방법으로 분석하고 비평해야 한다. 설사 소설의 예술경험과 예술기교가 성공적으로 되였다 할지라도 이 작품 자체의 구체적인 성질과 특점때문에 성공적으로 된 것이므로 만약 다른 작품을 이 작품의 성질과 특점처럼 쓴다면 꼭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고려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참고로 해야지 무턱대고 그대로 옮겨다 쓰면 안된다.       화동사범대학 고전문학 교연조 곽예적, 간무림 집필     1972년 6월 초고, 1978년 수정  (1973년 예적이 재수정함)
【艺人传奇】 传奇歌手甄妮:丈夫离世40年,她怀念亡夫的方式悲壮催泪         甄妮是红遍两岸三地的著名传奇歌手,影响力仅次于邓丽君,曾与徐小凤、汪明荃在香港歌坛形成三足鼎立。       甄妮演唱的《铁血丹心》《鲁冰花》《东方之珠》《奋斗》《海上花》《再度孤独》等脍炙人口的歌曲,影响了几代歌迷,获得过香港十大中文金曲最高荣誉“金针奖”等殊荣。       甄妮的丈夫名叫傅声,是上世纪70年代至80年代初香港红极一时的武打演员,主演了《少林五祖》《射雕英雄传系列》《少林寺》等众多经典影片。       1983年7月7日,傅声不幸因车祸离世。丈夫悲情早逝,将甄妮推入悲痛的深渊。       而今傅声已离世40年了,甄妮怀念亡夫的方式让人泪奔……   01         1983年,59集古装武侠剧《射雕英雄传》在港台和内地热播,引发万人空巷。该剧共分为3部:第一部19集,第二部、第三部分别20集。      《射雕英雄传》共有《铁血丹心》《满江红》《世间始终你好》《似是前生欠你》等12首主题曲、插曲,全部由甄妮和罗文演唱。其中《铁血丹心》最为经典,至今还被广为传唱。       1991年,甄妮登上央视春晚,演唱《鲁冰花》《同一首歌》两首歌曲。至此甄妮的事业如日中天,在两岸三地有着巨大的影响。       甄妮祖籍广东江门,1953年2月20日出生于中国澳门。甄妮的母亲是上海人,父亲是奥地利人,祖母是西班牙人。       她小学时父母离异,后来母亲带着甄妮姐妹嫁给了一位广东人。继父也有自己的孩子,在这个复杂的组合家庭中,甄妮的童年,少女时代并不完美,写满了艰辛和眼泪。       高中毕业后,甄妮考入中国台湾省的世界新闻专科学校,后转学到中国文化学院就读。       期间,甄妮被星探发掘,进入娱乐圈发展。       1971年,台湾银河唱片公司为甄妮推出首张个人专辑《心湖》,颇受歌迷好评。       大学毕业后,甄妮正式进入影视圈发展。1974年,甄妮为影片《云飘飘》演唱主题歌《天真活泼又美丽》,开始在宝岛歌坛崭露头角。       就在这年,在香港著名演员、导演狄龙的介绍下,甄妮认识了香港武打演员傅声。       傅声(原名张傅声) 1954年10月20日出生于中国香港,父亲张人龙是香港富商。傅声有11位兄弟姐妹,他在家中排行第9。傅声的弟弟张展鹏也是中国香港的武打演员。       傅声学习成绩不好,中学没毕业就辍学了,当过送货员、装修工人。       傅声的父亲张人龙与著名导演刘彻是好朋友,在刘彻的提携下,傅声主演了《方世玉与洪熙官》《九连环》《十四女英豪》《马永贞》《哪吒》《少林五祖》等影片,是香港邵氏电影公司的当家小生。       傅声身高1.79米,长相帅气,身材性感结实。而甄妮有着混血女孩特有的高挑、丰满和美丽,两人一见钟情。       为了追随爱情,1975年甄妮来到香港发展。       两人的爱情曝光后,遭到了双方家长的坚决反对。甄妮的父母觉得傅声文化程度不高,家中兄弟姐妹多;而且傅声是武打演员,容易受伤。       傅声的父母对甄妮也不满意,认为她门户低,与自己家不般配。家庭的巨大压力下,两位年轻人出现了动摇。   02         张彻支持他们恋爱。1976年春天,他执导影片《蔡李佛小子》时,邀请甄妮在片中饰演女一号“黄美芳”,让傅声出演男一号"钟坚"。       几个月的拍摄过程中,甄妮与傅声的感情升温到沸点,两人谁也离不开谁。       1976年12月4日,甄妮与傅声冲破双方家庭的阻力,在中国香港组建家庭。结婚时甄妮刚23岁,而傅声才22岁,两人年龄太小,加上事业正处在上升期,夫妻俩暂时不打算孕育宝宝。         婚后,甄妮推出的个人粤语专辑《奋斗》,销量突破80万张。她还在《唐人街小子》《冷血十三鹰》《第三类打斗》等影片中担任重要角色。       而傅声的事业更是驶入快车道,主演的《少林寺》《射雕英雄传系列》引起巨大的反响。傅声也成为当时香港最红的武打演员之一。       婚后3年,甄妮流过4次产,这对她的身体是很大的摧残。       1978年,傅声的一位男同事在拍一部武打戏时,裆部严重受伤,终生失去了生育能力。这让甄妮和丈夫感到深深的后怕。       这些年,傅声在拍武打戏时,身上的小伤从来就没有断过。甄妮担心丈夫出现什么意外,便与丈夫商量,将他的精子在医院冷冻起来,这样他们想什么时候生宝宝都行。       甄妮的提议说到了傅声的心坎里。不久甄妮陪丈夫飞赴美国,将傅声的精子冷冻在美国的一家医院。       这是夫妻俩最私密的事,他们没有让第三个人知道。       随着傅声的知名度越来越大,他的朋友越来越多,几乎天天要出去应酬。傅声与朋友在一起就是喝酒,多次喝醉了被朋友送回家。       甄妮最反感丈夫在外面喝酒,夫妻俩由此发生碰撞,但这并没有动摇他们婚姻的根基。       1983年2月20日,是甄妮30岁生日,傅声为妻子在酒店庆生。甄妮吹灭生日蛋糕上的红烛后,对丈夫说:我决定忙完手头的工作后,年内就准备孕育宝宝。       傅声觉得自己到了这个年纪,也该做爸爸了,对妻子的提议举双手赞成。       接下来的日子里,甄妮在家里一律不化妆,按时作息。傅声戒烟,也不再出去喝酒,夫妻俩为孕育宝宝做各种准备工作。       1983年7月,甄妮去日本演出。离家那天,傅声早早起来为甄妮煮了馄饨,这是以前从来没有过的事。甄妮感到意外,同时内心有一丝温暖。       出门不远,甄妮内心突然涌上依恋,她转身跑回家,在丈夫额头上吻了一下:"等我回来。"       谁知这一分别竟成永诀!   03         7月6日晚上,傅声与弟弟张展鹏还有一个演员,去淡水湾拍戏,他请哥哥帮他开车。途中转弯时,因速度过快,汽车撞到了山体上。       车子滚到深沟里,四轮朝天。坐在副驾驶位置上的傅声受伤最重,浑身血肉模糊,被紧急送往医院急救。       接到家人打来的电话,甄妮含着眼泪从日本飞回香港。       7月7日上午,傅声因失血过多不幸身亡,年仅29岁。甄妮赶到医院时,见到的是太平间里丈夫冰凉的遗体。       丈夫连一句话都没有留下就走了,甄妮肝肠寸断。       丈夫悲情早逝,将甄妮推入巨大的悲痛深渊,她爱丈夫,无法接受没有丈夫的日子。       8月初,甄妮在家里服下了30多片安眠药,准备去天堂里追随丈夫。幸亏妹妹及时过来送吃的,哭着将甄妮送往医院。       经急救甄妮保住了性命。当她睁开眼时,母亲、继父、亲生父亲、姐姐妹妹都围在自己身边,个个满脸悲戚。       母亲抓住甄妮的手:"你不能做傻事呀,要是你有什么意外,妈妈可怎么活?"       甄妮心如死灰,大颗大颗的眼泪淌过苍白的脸颊。担心甄妮再出什么意外,甄妮的妹妹和母亲轮流过来守护她。       为此甄妮的妹妹辞去了工作,这让甄妮感到深深的自责。       因为自己,一家人的生活都被打乱了。甄妮在心里告诫自己:我要坚强起来,不再让家人为我操心!       半年后,丧夫的甄妮走出家门,重新出现在歌坛。她将对丈夫的爱和怀念,都化作了工作的动力。       1984年5月,甄妮在香港红磡体育馆一连举办7场演唱会,成为继邓丽君之后第二位在这里举行演唱会的女歌手。       1985年,甄妮推出了《为你而歌》《亲亲梦里人》《留下我美梦》等多张个人专辑,每张销量都不俗。       1986年,丈夫已经去世3年了,甄妮表面上很平静,但内心的痛依然在。       这时有优秀异性追求甄妮,但她觉得自己的心太小,里面已经被傅声住满了,再也装不下其他男人,便委婉拒绝了。   04         夜阑人静,甄妮看着丈夫的遗照,眼里就会涌出酸泪:当年要是与丈夫孕育一个宝宝就好了,这样会让自己有个念想。       不久,甄妮无意中从电视中了解到:美国一位30多岁运动员的妻子,在丈夫去世两年多后,通过人工技术怀上了宝宝。       甄妮的心被触动了,丈夫不是在美国一家医院有冷冻精子吗?甄妮也决定仿照这位美国妈妈的做法,用人工技术诞下一个宝宝。这既是对丈夫的怀念,也是他生命的延续。       当甄妮将这个悲壮的决定告诉家人时,大家都不同意。尤其是甄妮的母亲,她一直希望女儿以后能找个优秀的男人再婚,要是生下个孩子,会让再婚变得艰难。       其实甄妮早已拿定了主意,她之所以告诉家人,是为了对他们表示尊重,但家人并不能左右她的意志。       1987年7月4日,甄妮在美国一家医院,用丈夫冷冻的精子,诞下了女儿甄家平。       宝宝满3个月后,甄妮带着女儿回香港生活。       甄妮未婚做妈妈的消息曝光后,在娱乐圈引起地震。很多人在猜甄妮女儿的亲生父亲是谁?       有的媒体将港台有名望的男演员数了个遍,逐个猜测谁是甄家平的亲生父亲。为此这些男演员的后院起火,妻子与他们发生争吵和矛盾。       媒体记者旁敲侧击向甄妮打听她女儿的生父是谁,甄妮守口如瓶。于是甄家平生父的身份成谜。       1994年,甄家平上小学了,同学们知道她来历不明,纷纷歧视嘲笑她。甄家平放学回家后经常哭。每当这时,甄妮就抱着女儿一起哭。       1999年,甄家平上初中了,她问妈妈:"你能告诉我亲生父亲是谁吗?" 甄妮回答女儿:"等你成年后,妈妈再告诉你。"       初二时,甄家平与一位女同学发生小摩擦,对方骂她是“私生女”,甄家平的心被伤透了。       回家后,她背着书包要去找父亲,甄妮将女儿拉住:"你找不到父亲的,他早就去世了。"       甄家平不相信,以为妈妈骗她。从此她不再向妈妈提生父的事,但有了心结。此后甄家平变得自卑孤僻,不愿与同学交往。       看着女儿心事重重,甄妮的心像针扎一样疼。她不知道自己生女儿的决定是对是错?   05         这些年一直有异性在追求甄妮,有的不嫌弃她带着女儿,但甄妮始终没有动心:一是怕女儿将来受委屈;二是她接受不了其他男人。       2008年,有位男士整整等了甄妮4年,见甄妮一直没有在感情上做出回应,便彻底死心了。此后再没有异性追求甄妮,大家都知道,重情的甄妮今生是不会再嫁了。       2012年10月23日,甄妮与女儿应邀在香港一家电视台做节目,在主持人的询问下,甄妮首次曝光了女儿甄家平的真实身份。       大家这才知道,原来甄妮在丈夫去世4年后,用他冷冻的精子生下了女儿。       甄妮一个人将女儿抚养大,经历了多少体力和精神的负荷呀!她以这种悲壮的方式怀念天堂里的丈夫,付出的代价太大了!       很多观众为甄妮泪奔,但电视里的甄妮在讲述这一切时,语气始终很平静。       在节目现场,甄家平哭得泣不成声,将甄妮紧紧搂在怀里:"妈妈,以后我会托起你的晚年!"           2013年,甄妮又遭遇丧亲之痛。甄妮二姐的儿子、著名歌手李立崴,在中国台北家中自缢身亡。       几年前李立崴的父亲患血癌离世,李立崴与母亲相依为命。为孝顺妈妈,他花3000万台币给母亲买了一套豪宅。因为房贷的压力太大,李立崴患上了抑郁症,两个月暴瘦22斤。       2013年7月24日,李立崴在家中浴室自缢身亡,年仅39岁。儿子非正常死亡,将甄妮的二姐打入悲痛的深渊。       甄妮将二姐接到香港,帮她疏解悲痛。姐妹俩都没有了丈夫,都是单身一人,互相取暖。       据媒体报道,甄家平于2017年结婚了,并做了妈妈。女儿和宝宝成了甄妮的感情寄托,晚年的甄妮很少接演出,经常与女儿一家团聚。       甄家平很孝顺,在生活和精神上呵护妈妈,甄妮的晚年不孤单。甄妮庆幸,幸亏自己当年用丈夫冷冻的精子诞下了一个女儿,不然自己晚年无依无靠,无儿无女,会很孤独。       2023年,甄妮70岁了,已步入老年。甄妮30岁丧夫,整整40年没有再婚,一直在心里怀念丈夫。她孤身一人,不顾舆论压力和世俗眼光,为亡夫诞下女儿。       甄妮怀念丈夫的方式悲壮、催泪、让人动容,但不值得提倡和仿效!   -END-
27    [중편소설] 가시꽃 향기 / 김영강 댓글:  조회:757  추천:0  2023-01-16
[중편소설] 가시꽃 향기 김영강   오늘도 집을 나섰으나 갈 곳이 없다. 아침을 한술 뜨고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서는 것이 이제는 일과가 되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미국에 온 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며칠 전에는 세면대 앞에서 속옷 몇 개를 주무르고 있는데 며느리가 목욕탕 문을 어찌나 세게 닫아버리는지 쾅,하는 소리에 너무 놀라 귀청이 떨어질 뻔했다.   ‘시어미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조차도 보기 싫다는 뜻 아닌가?’   같이 산 지 1년도 채 안 돼 며느리와의 사이에 완연하게 벽이 생긴 것이다. 그 벽은 날이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분노와 서러움이 차곡차곡 가슴에 쌓이고 또 쌓였다. 남편이 남기고 간 집을 처분해 그 돈을 큰아들한테 몽땅 준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 미국에 온 것은 더더욱 후회 막심하다.     “아니, 그 돈을 다 아들한테 줘버렸어? 왜 그렇게 돈 아까운 줄을 몰라. 돈, 딱 손에 쥐고 내 살 궁리를 했어야지. 그래, 수중에 한 푼도 안 남겨놓고 몽땅 다 줘버렸어? 똑똑한 줄 알았더니 자네 아주 바보로군 바보야. 늙으면 돈이 있어야 돼. 돈이.... 자식 소용없다고. 돈이 효자야 효자.”   일찍 미국에 와 노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동서가 한심하다는 듯이 내게 말을 늘어놓았을 때, 나는 동서가 한심해 보였다.   “형님은 차암····,  왜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들 힘들 때 도와주고 또 내가 도움을 받아야 될 때는 받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사는 게 좋잖아요?”   “말이 좋지. 세상 일이 그렇게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 되는 줄 알아? 좀 더 살아봐. 지금은 며느리가 잘해주는지 몰라도 얼마 못 갈 걸.”   동서가 하는 말이 말 같지도 않아 속으로 코웃음을 쳤는데 지나고 보니 동서 말이 다 맞았다. 동서한테 가볼까 하고 버스를 타려고 막 발걸음을 떼다가 그만 주춤 서버렸다. 동서한테는 아들 며느리가 너무 잘해준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오늘은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 그냥 누구한테든 하소연을 하며 실컷 울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옆집 아낙네와 마주칠까 봐 그것도 싫다.   ‘뭐 식당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라고?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해?’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다.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동서의 말이 더 귀에 거슬린다.   “아무리 서울에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안방마님 노릇을 했으면 뭘하나? 여기는 미국이라네. 자네가 젊고 건강해 보이니까 저 여편네가 노느니 심심풀이로 자기랑 같이 다니자는 말이야. 아들한테 신세 안지고 용돈 벌어 쓰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젊었을 때부터 동서에게서는 묘한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바람 때문에 가슴이 시려도 참았다. 시아주버니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고 아이들마저도 잘 풀리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비도 남편이 뒷바라지를 했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내게 형님 노릇을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더 기가 막힌 일도 있었다. 하루는 동서가 자꾸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자네한테 중매가 들어왔는데 시집갈 의사는 있어?”   우스워죽겠다는 듯이 조소어린 입술을 씰룩거리는 동서의 말투에는 ‘너도 이제 별 볼일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구나.’ 하는 빈정거림이 잔뜩 묻어 있었다.   “8층에 사는 웬 영감이 자네한테 반했나봐. 나이는 일흔아홉이고. 1년 전에 상처했다는군. 한데, 나이가 좀 많지? 자네가 불법체류자라면 또 몰라도. 참, 영주권은 언제쯤 나온대? 요새는 꽤 걸린다고 하던데.”     영주권까지 들먹이며 동서는 내 속을 긁었다. 말 같잖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화를 발끈 내면서 나는 동서를 노려보았다.     “싫으면 그만이지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알았어. 알았어. 내가 실수했어. 미안해. 미안해. 입김도 안 들어가리라는 자네 성격 잘 알지만 그 영감이 하도 졸라서 내가 한 번 말해본 거야. 한데, 자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요새는 나이 들어 재혼하는 거 흉 아냐. 심지어는 80 난 노인들도 장가를 간다니까.”   그 후부터 동서가 사는 아파트에는 발길이 뜸해졌다. 영감쟁이 하나가 나를 훔쳐보고 있는 듯해 끈적끈적한 불쾌감에 온몸이 스멀거렸기 때문이다.   나는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떠나보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길거리엔 차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도 목적지를 향해 다 떠났다.  갈 곳이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가슴에 연기 같은 것이 가득 차오르며 숨을 뿜어내도 시원하게 걷히지가 않고 자꾸 답답했다. 토할 수 없는 시커먼 돌덩어리를 삼킨 듯한 무거움에 가슴이 짓눌렸다. 잿빛 하늘이 얕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디로 갈까?’   유행가 가사 모양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흘러가는 수밖에 없다.   1년 전, 남편은 고혈압으로 쓰러져 바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미국 땅에 묻혔다. 두 아들이 미국에 살기 때문이다. 남편은 오래도록 대기업에서 중역으로 몸담고 있다가 정년퇴직을 한 후, 거의 매일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주식투자에 매달려 살았다. 한때는 잘 나가던 적도 있었으나 퇴직을 한 다음에는 증권도 바닥을 쳤다. 그런 남편이 보기 싫어 나는 잘도 돌아다녔다. 그러나 지금처럼 쓸쓸하지도 않았고 처량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정이 좋은 부부도 아니었는데 남편이 없는 자신을 돌아보니 꼭 날갯죽지 떨어진 새 같다.   나는 맞선을 본 다음, 좋다든지 싫다든지 하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결혼을 했다. 그리 옛날도 아니었는데 나는 이조시대 여인처럼 인생을 살았다. 신랑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온 수재라고 했다. 그때 나는 집에서 가사를 돌보고 있었는데 남편 이모를 통해 중매가 들어온 것이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부터 부를 쌓아 지방유지로 이름이 나 있었지만 나는 이름뿐인 부잣집 맏딸이었다. 어머니는 계속 병석에 누워계시다가 내가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나 아버지는 금세 재혼을 했고, 그 밑으로 일곱 명이나 되는 자녀를 줄줄이 낳아 자랄 때 나는 아버지의 눈길 한번 제대로 못 받았다. 칭찬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다. 부모의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나의 어린 시절은 슬픔과 눈물의 연속이었다. 동생들 치다꺼리에 내 존재는 완전히 잊고 산 세월이었다. 이런 나를 우리 집을 들락거리면서 일을 도와주던 남편의 이모가 측은하게 여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에서 보낸 세월이 근 10년이나 되었다. 대학 진학을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어 무관심한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었다.   발길 닿는 대로 흘러오고 보니 남편의 산소였다. 입구에서 꽃 한 다발을 샀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사람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남편의 무덤 앞에 앉았다. 마음에 아무런 동요도 없고 그냥 담담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바깥일에 바빠 항상 무심하고 무덤덤했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한마디로 불만의 세월이었다. 마작에 미쳐 주말에는 으레 외박이었다. 어릴 때부터 참는 데는 이력이 나 그냥 꾹꾹 참고 살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도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그런 감정은 도무지 없었다. 남편이 없으니까 아들 며느리가 무시하는 것 같아 그것이 제일 속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치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실컷 울기라도 해버리면 조금은 속이 시원해질 것도 같았다. 가끔씩은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버스를 타고 먼 산을 바라보다가도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남이 볼까 창피해서 이를 악물며 참은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엉엉 소리 내어 울어도 된다. 아무도 없는 적적한 공동묘지, 통곡과는 잘 어울리는 장소다. 어느새 나는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슬픈 울음소리는 적막한 공기를 가르며 허공 속에 흩어졌다. 터져버린 눈물샘은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정말 대책이 없다. 하루가 막막해 눈을 뜨기조차 두려운 나날이다. 노인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자격이 돼도 몇 년씩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 영주권도 없는 몸이다.   둘째 아들이 매달 용돈은 보내주지만 그 돈으로 아파트를 얻어 혼자 살지는 못한다. 경영학 박사인 둘째는 지금 뉴욕에 있는 국제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둘째한테 가서 밥이나 해주며 살까 하는 안이 떠올라 한번은 말을 끄집어냈다가 단번에 거절을 당했다.   “어머니 저, 집에서 밥 통 안 먹어요. 그냥 잠만 자요. 또 거기는 한국 사람이 하나도 없고 젊은 미국 애들만 사는 아파트 단지라 어머니는 감옥살이 해야 됩니다. 더구나 한 달에 반은 외국 출장 나가야 돼, 제가 집에 없는데 어떻게 어머니가 뉴욕에 삽니까? 안 돼요.”   둘째한테 맘 속에 있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잘못하다가는 형제끼리 의 상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업 확장을 해놓고 쩔쩔매는 큰아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봐 지금은 참고 사는 수밖에 없다. 목구멍까지 꽉 차 있는 서러움을 밖으로 토해내고 싶다. 그래야 속이 뚫릴 텐데 정말 너무 답답해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다. 머지않아 저절로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아 나 자신도 두렵다.   갑자기 인기척이 나서 눈을 돌리니 웬 여자가 나를 보고 서 있었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처량해 보였던 모양이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표정이 얼어붙어 있었다. 30을 갓 넘은 듯한 동양 여자였다. 까만 바지와 블라우스가 바람에 하늘거렸다. 순간적으로 분명히 한국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내게 간단히 목례를 하고는 남편 산소와는 한참 떨어진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아래 도로를 내려다보니 그 여자의 것인 듯한 새까만 차 한 대 가 주차해 있었다. 겨우 울음을 그치고 무덤 앞에 넋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서 그 여자가 언제쯤 내려올까 하고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이 나왔다.   한참 후에 여자가 내려왔다. 여자를 보고 몸을 일으키다가 나는 그만 휘청거리고 말았다. 여자가 재빨리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나왔다.   “미안해요. 너무 오래 앉아 있어 그런지 다리에 힘이 빠졌나 봐요.”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서야 나는 혹시 한국 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어색한 표정을 지었는데 정말 다행하게도 여자의 입에서 한국말이 나왔다.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등성이를 내려오다가 나는 또다시 중심을 잃고 말았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눈앞이 어지러워 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얼른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에게로 몽땅 몸이 실려졌다. 그녀도 비틀거리며 힘겹게 나를 받아 안았다.   나는 소나무 밑에 있는 벤치를 가리키면서 마음과는 정반대의 말을 했다.   “바쁘시면 먼저 가세요.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예상대로 그녀는 내 곁에 앉았고, 우리는 한참 동안을 벤치에 머물렀다. 참으로 고마웠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배려였다. 집이 어느 쪽이냐는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무슨 인연인지 집도 같은 윌셔 거리에 있었다. 나는 남편 산소에 왔다고 얘길 한 다음, 혹시 그녀도 남편을 잃었는가 싶어 누구 산소에 왔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어머니 산소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안색이 안 좋으세요. 많이 우셨나 봐요.”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가슴 속에 꽉 차 있는 서러움이 갑자기 치솟아 올랐다. 체면 때문에 아무한테도 못한 이야기가 터져나온 것이다. 우리 집안의 내막을 모르는 여자이니 말을 쏟아놓아도 된다는 계산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영감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내 신세가 서글퍼서 자꾸 눈물이 나네요. 아들 며느리가 괄시하는 것 같아 더 그래요.”   이렇게 시작된 하소연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묘지에 들어설 때만 해도 잔뜩 흐린 잿빛 하늘에서 비라도 뿌릴 것 같았는데 언제 개였는지 청명한 하늘에는 조개구름들이 은은히 깔려 있었다. 햇살을 받은 초록의 잎사귀들이 생기를 띠고 반짝반짝 빛을 발하면서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었다. 속이 뻥 뚫리며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실컷 통곡을 하고 가슴 속에 차 있는 서러움을 쏟아냈기 때문일까?’         몸도 한껏 가벼워져 얼른 일어났다. 여자는 나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어지럼증이 씻은 듯이 싹 가셨어요. 아주 기분이 가뿐해요.”     여자는 내 팔을 놓지 않고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남의 슬픔을 끝까지 들어주며 같이 슬퍼해주는 그녀의 심성에 감동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그녀의 가슴에서 훈훈한 정이 내 맘 속으로 스며들었다.   집에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자기 차를 타라고 하면서 여자는 차문까지 열어주고 닫아주며 지극히 자상스럽게 나를 대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시간이 되면 어디 가서 점심이라도 먹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자는 두말 않고 승낙을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말이 없고 지극히 비사교적인 내가 이 여자한테는 왜 이렇게 술술 말이 잘 나올까?’   우리는 근처 한국 식당으로 들어갔다. 마주앉아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그녀는 상당히 미인이었다. 화장을 전혀 안 했는데도 윤곽이 뚜렷했다. 하얀 피부에 갸름한 얼굴이 아주 매력적이고 눈매가 시원했다. 알맞게 오뚝한 코와 입술 모양도 선명하고 예뻤다. 보면 볼수록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얼굴이었다. 물결이 치듯 웨이브가 진 어깨에 닿을락 말락한 머리 모양도 보기가 좋았다. 그녀는 미스 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미스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어느새 둘째 아들이 마음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결혼에 한 번 실패했으나 아이는 딸리지 않았으니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나이를 물었더니 그녀는 서른이 넘었다고만 했지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아들은 서른네 살이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미스 장은 맛있는 것들을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며느리가 좀 이래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주인이 딸이냐고 물었다. 둘이 닮았다면서 꼭 모녀지간 같다고 해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또 하소연이 터졌다.   “미안해요. 내가 초면에 너무 실례를 하는 것 같네요.”   “아녜요. 누구한테든 털어놓고 이야기를 해야지 속에 담아 놓고 있으면 병이 돼요. 앞으로 갈 데 없으시면 언제든지 저희 집에 오세요. 그리고 저한테 얘길 하시고 속을 푸세요. 제가 다 들어 드릴게요.”   처음엔 듣기만 하고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태도였는데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도 내게 친근감을 같는 것 같았다. 참 고마웠다. 그 동안 너무 버려져 있어 정에 굶주린 탓인지도 모른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 있기도 불편하고 나가기도 불편해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며느리의 뾰족한 목소리가 가슴을 찔렀다.   “오늘은 안 나가세요?”   빨리 나가라는 뜻이다. 우산을 받쳐 들고 정처 없이 집을 나섰다. 비바람이 너무 심하게 몰아쳐 몇 발자국을 걷다가 옆집 처마 밑에 잠깐 서서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을 했다. 날개 떨어진 새 한 마리가 갈 곳을 잃어 처마 밑에서 비를 맞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가슴 속에 흐르는 소나기 같은 눈물과 함께 온몸에 한기가 퍼져 가슴이 벌벌 떨려 턱이 다 흔들렸다. 추운 겨울도 아니었는데 뼛속까지 고드름이 맺히는 것 같았다. 하늘도 무슨 한이 그리 많은지 장대 같은 눈물을 길바닥에 쏟으며 통곡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심정은 교통사고라도 나서 이대로 빗길에서 콱 죽어버렸으면 싶었다. 그래서 두고두고 며느리의 가슴 한복판에 대못을 박고 싶었다.   그날, 동서네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걱정 좀 해보라고 전화도 안 걸었다. 갈 곳이라고는 동서네 집밖에 없는 것을 뻔히 알 텐데도 며느리로부터의 전화는 없었다. 동서한테는 적당히 거짓말로 둘러댔다. 자고 들어온다는 말을 했노라고.   다음날 저녁에 집엘 들어서니 며느리는 어디서 주무셨냐고 묻지도 않았다. 전화라도 한 통 해주었으면 걱정은 안 했을 것 아니냐고 화라도 내 주기를 바란 내가 바보였다. 며느리는 일체 말이 없었고, 그녀의 표정에서 걱정은커녕 아주 안 들어와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뭐하러 기어 들어왔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며느리가 무섭기까지 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온 아들도 별말이 없었다. 집에서 잤는지 말았는지 그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들한테서도 완전히 버림받은 기분이 들어 그날 밤 나는 가슴을 앓으며 많이 울었다.   미스 장이 계속 머리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내막을 알아보고 둘째 며느리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거니 그녀가 나를 반겼다. 목적지를 두고 버스를 타니 기분이 날아갈 듯이 상쾌했다. 미스 장은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나를 맞이했다. 얼른 하아타이 박스를 받아 들고, 이렇게 무거운 걸 어찌 들고 오셨냐고 놀라면서 안쓰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타운 하우스였다. 가구도 별로 없고 까만 가죽 소파만이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직장에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부동산 브로커인데 요즘은 한가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살아 중매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가타부타 대답을 않고 나이가 들고 보니 마땅한 자리가 없다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어딘가 비밀의 베일에 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미 점심 준비를 다 해놓았다면서 그녀는 나를 붙잡았다. 따듯한 마음씨가 가슴에 와 닿았다. 파전을 부치고 불고기도 구워서 정말 오래간만에 잘 먹었다. 음식 솜씨도 며느릿감으론 만점이었다. 후식으로 내온 딸기가 달콤한 게 아주 맛이 좋았다. 딸기를 먹다 말고 나는 그만 목이 메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아들 며느리랑 손자 녀석들까지 모두 응접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나는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응접실에만 자꾸 귀가 쏠렸다. 방에서 나가보려고 하다가도 자기네 식구들만 있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편치 않은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세 살짜리 막내 놈이 이쑤시개에다 딸기 한 알을 콕 찍어 가지고 들어왔다. 녀석이 “할머니 이거 먹어” 하고 딸기 한 알을 코앞에 들이미는데 온몸에 서러움이 홍수처럼 밀려오며 콧잔등이 시큰했다. 할머니 딸기 안 먹는다고 손자 놈 손을 탁 쳐버렸다.   넋두리는 또 시작되었다. 미스 장도 맞장구를 쳤다. 첫날보다는 말을 많이 하며 스스럼없이 나를 대해 주어 내 마음도 편했다.   “그건 너무 했네요. 어머니 나오셔서 딸기 드시라고 얘길 하든지 아니면 자기네가 먹기 전에 한 쟁반 담아서 어머니 방에 갖다 드렸어야죠. 그게 다 자식 교육인데····. 그렇게 혼자 속을 끓이지 마시고 아주머님께서 아들 며느리 불러놓고 얘길 하세요.”   아들 며느리한테 이 마음을 말할 수는 없다. 며느리 성질에 더 역효과를 낼지도 모른다. 그저 참고만 사는 인생이니 영원히 참고 사는 수밖에 없다. 며느리는 남의 자식이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배 아파 낳은 내 아들이 저러니 더 서럽다.   남편 장례식이 끝난 후 큰아들은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맹세를 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고 엄마의 여생은 자기가 편히 잘 모시겠다고 했다. 그 맹세는 1년도 못 가 헛것이 돼버리고 말았지만 그때의 아들 마음은 진심이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미스 장을 두 번째 방문한 날이었다. 집엘 가려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그녀가 따라나왔다. "나오지 마세요. 저기 나가서 바로 버스 타면 돼요." 하고 미스 장을 돌아보고 말을 하다가 나는 그만 문턱에 왼발이 걸리고 말았다. “어머머” 하고 앞으로 꼬꾸라지려는 찰나 그녀가 나를 잽싸게 붙들었는데, 우린 둘 다 바닥으로 나둥그러지고 말았다. 미스 장의 가녀린 몸이 나를 안고 나자빠진 것이다.   나는 겨우 일어났다. 그런데 미스 장이 일어서다가 도로 주저앉았다. 왼발을 쭉 뻗고 있었다. 놀래서 다가가니 발목이 삔 모양이었다.     “큰일 났어요. 이럴 땐 빨리 침을 맞아야 돼요.”   “괜찮아요. 좀 있으면 가라앉겠죠. 일단 집으로 들어가야 되겠어요.”   그녀는 내 손을 붙들고 오른발에 힘을 모으며 겨우 일어섰다. 심하게 절뚝거리는 것을 보니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도 어디 다친 데 없느냐고 물으면서 미안해서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그녀가 도리어 미안해했다.     “괜히 번거롭게 해 드리네요. 아주머니는 가셔도 괜찮아요.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무슨 소리예요. 나 때문에 그리 됐는데, 지금 나랑 같이 가요. 어디 아는 한의원 없어요? 다행히 왼발이니 운전은 할 수 있겠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복사뼈가 탁구공 만하게 부풀러 올랐다. 뼈에 금이 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사코 마다하는 그녀를 이끌고 가까운 한의원엘 갔다. 첫 침을 꽂자마자 미스 장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가슴이 조여들어 온몸이 움칠움칠했다.     ‘저렇게 비명을 지를 성격이 아닌데.’   뾰족한 침 끝이 뼛속을 후비며 파고드는 모양이다. 한의사는 지극히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여러 대의 침을 복사뼈에다 계속 꽂았다. 이를 악물고 소리를 삼키는 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얼른 미스 장의 손을 붙들었다. 그녀는 전신의 힘을 손에다 쏟아부으며 내 손을 움켜쥐었다. 큰아들을 낳을 때 침대 한 끝을 부여잡고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때가 생각났다. 갑자기 그녀의 어머니가 된 기분이었다. 드디어 한의사가 아주 느리게 한마디를 했다.   “잘 참네요. 이제 다 됐어요. 침 맞을 때 제일 아픈 곳이 바로 복사뼙니다.”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다음 날부터 거의 매일 그녀의 집을 들랑거렸다. 미스 장이 한사코 마다했으나 나는 설거지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었다. 청소래야 쓰레기 버리는 것과 거실의 먼지를 닦아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며느리 생각이 났다.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시어미가 며느리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까?’   방도 치워주고 싶었으나 방문은 언제나 닫혀 있었다. 뜨거운 수건 찜질이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사는 보람까지 느껴졌다. 미스 장이 빨리 낫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매일 그녀의 집에 올 수 있는 명분이 있다는 것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그냥 저쪽 방에서 자고 싶었다. 방이 두 개이니 방세라도 조금 내고 미스 장 집에서 사는 것이 아들네에 있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뿐이었다.     “아주머니께서 너무 잘해주시니까 도리어 제가 미안해요. 또 자꾸 일을 하시니까 제가 불편해요. 그냥 놀러 오셔서 저하고 친구해 주시면 돼요. 아주머니가 이렇게 자주 오시니까 저도 참 좋아요. 침 맞으러 갈 때도 혼자 가는 것보다 같이 다니니까 더 좋고요.”   빈말 같지는 않았다. 발목이 다 나은 다음에도 나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으나 그녀는 내게 손도 까딱 못하게 했다. 이상할 정도였다. 점심을 먹은 후, 식탁을 훔치려고 해도 기겁을 하고 말렸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을 좀 편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며 일손을 놓지 않았다.       그 후,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전화를 할 때마다 그녀는 항상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늘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오늘은 한가해요. 지금 놀러 오세요.”     부동산 중개인치고는 자유 시간이 많은 편이었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그녀는 자기 어머니 얘기를 가끔 했다. 젊을 때, 혼자되어 재혼도 안 하고 딸 하나만을 키우면서 고생을 많이 해 어머니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자기가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다는 말도 비쳤다.   “내가 보기엔 미스 장, 어머니한테 무척 효녀였을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야 정신이 든 거죠. 정말 제가 너무 철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는 4년쯤 됐는데 얼마 전에 이장을 했다고 한다. 젊은 애가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돌아가신 다음에야 뼈저리게 후회되는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해서 그런지 미스 장은 내게 정말 잘해 주었다. 어떤 땐 미안할 정도였다. 생전 처음 가보는 고급 식당엘 가서 비싼 스테이크를 사주기도 했다.       “늙은 사람 만나서 친구해 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돈까지 쓰면 내가 미안해서 안 돼요.”   “아녜요. 괜찮아요. 저도 한 번쯤은 갚아야죠. 더구나 지난번 아플 때 아주머니께서 제게 너무 잘해주셨잖아요.”   그녀 집에 갈 때마다 늘 점심을 얻어먹게 되어 간단한 선물을 사가지고 갔더니 그걸 또 고맙게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나 때문에 다쳤는데도 거꾸로 고맙다고 그러니 그녀의 착한 심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둘째 며느릿감으로 점점 내 맘 속 깊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 동안에 지켜보아도 남자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은 애인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휴, 다행이군.’   “미스 장 같은 미인이 남자가 없다니까 이상하네요.”   “아이, 아주머니도····. 제가 무슨 미인이에요? 저 미인 아니에요.”   “미스 장은 너무 겸손해서 탈이야. 길을 막고 물어봐요. 다 미인이라고 그럴 테니.”   앞에 대놓고는 멋쩍어서 남의 칭찬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도 미스 장한테는 마음에 있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주머니가 예쁘게 봐주셔서 그렇죠. 나이가 너무 많아 마땅한 사람도 없지만 전 이렇게 혼자 사는 게 편하고 좋아요.”   그리고 미스 장은 서른여섯이라고 나이를 밝혔다. 아들보다 두 살이 많았다. 사실, 나이 좀 많은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들에게 이혼 경험이 있기에 더 그렇다. 보면 볼수록 그녀가 맘에 들었다. 둘째 며느릿감으로 마음을 굳힌 나는 추석날 미스 장이랑 같이 성묘를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며느리가 물었다.   “어머니, 추석날 성묘 갈 때 애들도 다 데리고 가야 되겠어요. 작년에 애들 안 데리고 간 게 마음에 걸려요.”   며느리 입에서 성묘 가자는 말이 먼저 나온 것이 나는 놀라웠다. 으레 생각조차 못할 줄 알고 나는 미스 장만 맘에 두고 있었다. 반갑고 고마웠다.   “애들도 같이 가면 좋지. 그럼 큰애가 학교 갔다 와야 하니까 오후에 가야 되겠네.”   미스 장과의 시간 약속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한데, 미스 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감기가 들었다고 하면서 성묘를 못 간다고 했다. 어머니를 그토록 생각하면서 그까짓 감기 때문에 성묘를 못 간다고 해 좀 의아한 맘이 들었다. 며느릿감으로 점을 찍어 놓았으니 이제 슬슬 가족을 만나도 될 것 같은 계산 아래 나는 식구가 다 간다는 말도 했다.   “애들한테 감기 옮기면 어떡해요?”   그러면서 기침을 콜록콜록했다. 꼭 같이 가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다.   “그럼, 다음에 산소 갈 때 나랑 같이 가요.”   그 후, 산소 가자는 말이 없어 내가 먼저 물어보았더니 그녀는 혼자 다녀왔다고 했다. 서운한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별 내색 않고 흘려버렸다. 사람은 혼자서 실컷 울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니 그녀도 그랬을 것 같아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부르며 통곡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콧잔등이 시큰했다.      하루는 벼르던 둘째 아들 얘기를 끄집어내고 우선 나이와 이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그녀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과일 같은 것을 사 가지고 가서 가끔씩은 작은아들이 용돈을 보내왔다는 말을 비치곤 했다. 또 아들한테 미스 장 얘기를 했더니 엄마한테 잘해주어 고마워한다는 말도 했다.   “제가 뭘 잘해주긴요. 아주머니가 제게 잘해주시죠.”   고급 핸드백도 선물했다. 아들 문제를 떠나서도 미스 장한테는 뭐든지 해주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우러났기 때문이다. 핸드백을 보고 깜짝 놀라며 미스 장은 이렇게 좋은 것은 받을 수 없다고 강력히 사양했다.   “이건 내가 돈 주고 산 게 아니고 옛날에 남편이 외국 출장 가서 사 온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더 받을 수가 없죠. 이렇게 귀한 건 아주머니께서 오래오래 간직하셔야죠.”   “이거 말고도 더 있으니까 괜찮아요. 나야 이제 이런 백 들고 갈 데도 없어요.”   50을 갓 넘겼을 당시, 남편은 출장이 잦았다. 마누라한테 선물이라고는 할 줄 모르던 사람이 웬일인지 출장 다녀올 때마다 선물을 사왔다. 바바리코트도 하나 사왔으며 주로 핸드백을 사왔다. 핸드백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 것 같다. 반짝반짝하게 윤기가 흐르는 것도 여전하고, 노란 장식도 조금도 변질이 되지 않아 아직도 진짜 금처럼 반짝인다. 디자인도 유행을 타지 않고 언제든지 들 수 있는 그런 모양이다. 사실 나보다는 며느리에게 더 잘 어울려 며느리가 시집오자마자 서너 개는 준 것 같다. 한 번은 조카며느리가 예쁘다고 탄성을 질러 들고 있던 것을 준 적도 있다.   “왜 마음에 안 들어요? 쓰던 거라서?”   “아녜요. 제 마음에 꼭 들어요. 너무 비싼 거라서 그러죠.”   그녀는 핸드백을 만지작거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마음은 기뻤다. 그녀가 내게 베푸는 것에 비하면 핸드백 같은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었다. 지극히 말을 아끼던 그녀가 말을 많이 하면서 나를 웃기기도 했다. 유머가 아주 풍부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깔깔대고 웃었다. 부모에게서도 남편에게서도 자식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훈훈한 정을 그녀로부터 느꼈다.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그것도 우연히 만난 생면부지의 여자한테 나는 달음박질을 치며 달려갔다. 그녀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사랑의 빛 때문이다. 시들시들했던 세상이 파릇파릇하게 내 눈에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와 점차 친해지면서 조금씩 조언도 해주었다.   “이런 거, 저한테 안 해줘도 괜찮아요. 아주머니가 먼저 며느리한테 베풀어 보세요.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옷도 사주시고 또 애들 장난감도 사 주고 그러세요. 이따가 집에 가실 때는 애들 먹을 거라도 사 가지고 들어가세요. 마음이 안 내키시더라도 그냥 눈 딱 감고 그래도 내 자식인데 생각하시고 노력을 하시면 그쪽에서도 마음이 돌아설지도 모르잖아요? 죄송해요. 주제넘게 이런 말씀을 드려서.”   “아니에요. 미스 장 말이 맞아요.”   정말 그랬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느리나 손자 녀석들을 위해 잘한 것이 하나도 없다. 잘하기는커녕 도대체 한 것이 없다. 혼자 나가 이것저것 사 먹고 다니면서도 애들 먹으라고 과자 한 봉지 사 들고 온 적이 없다. 미스 장은 일일이 합당한 말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얘길 할 때마다 무릎을 치며 그대로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들시들하던 세상이 파릇파릇하게 변하고 이제는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 번은 “우리 집에 오실 때 애들 데리고 와도 괜찮아요. 저, 애들 참 좋아해요.”  하고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금세 좋은 일이라고 느껴졌다. 애들을 봐주면 그만큼 며느리가 힘을 덜게 될 것이다.   ‘막내를 한 번 데리고 나와 볼까?’   위 두 놈한테 치어서 그런지 막내가 좀 순한 편이다. 그리고 나를 제일 따른다.   ‘그러나 며느리가 허락을 할까?’   그 며칠 후, 나는 며느리에게 미스 장 이야기를 하고 막내를 데리고 가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며느리가 선뜻 허락을 하며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어머니 애 안 좋아하시는데 힘드시면 어떡하느냐고 도리어 반문을 했다. 얼굴이 화끈했다. 지 새끼 미워하는 시어미가 어찌 좋을 리 있겠는가?   막내 놈과 둘째가 거실에서 빙빙 돌다가 마룻바닥에 앉아 있던 나를 향해 엎어진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받아 안아줘야 마땅한 할미가 그만 무의식적으로 몸을 피해버렸다. 둘째는 바닥에 꽈다당 넘어졌고 막내는 내 오른팔에 머리를 박고 발라당 드러누웠다. 부엌에 있던 며느리가 놀라서 뛰어와서는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 둘째는 제쳐놓고 내 오른팔에 안겨 있다시피 한 막내를 얼른 떼놓았다. 그리고 내 눈치를 살피며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사랑이라고는 한줌도 지니지 못한 할미였고 시어미였다. 아이 셋 데리고 쩔쩔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 몰라라 하고 맨날 나가 돌아다니기만 했으니 그게 무슨 시어미인가? 남들은 며느리 직장에 내보내고 애 키워주며 살림까지 해준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해본 적이 없다. 손자 놈들이 법석을 떨며 시끄럽게 굴 때는 젊은 애가 연년생으로 아들 셋 줄줄이 낳은 것조차도 마음에 안 들었다. 어려운 공부하고도 써먹지 못하고 집구석에 처박혀 애들 치다꺼리하느라 정신없는 며느리가 한심하기도 하고 눈에 거슬리기까지 했다. 며느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대우만 받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이 되어 나는 항상 막내를 데리고 다녔다. 막내는 버스 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 역시 심심치 않아 좋았다. 녀석도 미스 장을 ‘장 아줌마’라고 부르며 잘 따랐고 그녀 역시 막내를 아주 예뻐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미스 장도 금세 정을 주는데 나는 내 친손지들을 귀찮아했었다.    어느 날, 둘째 놈 방이 하도 어질어져 있어 치워주다가 조립해 놓은 성냥갑만한 장난감 차를 망가뜨린 적이 있었다. 녀석이 그냥 발을 뻗대고 앙앙 울면서 할머니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 나가. 여긴 우리 집이야. 나가. 나가. 할머니 나가.”   나는 너무 기가 차서 멍하니 서 있었다. 눈물이 났다. 며느리는 두 눈을 착 내리깔고 차는 다시 조립하면 되니 울지 말라고 아주 차분하게 아이를 타일렀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괜히 애들 방에 들락거리지 마시고 어머닌 그냥 어머니 방에 가만히 계세요.”   방구석에 콕 처박혀 나오지 말라는 뜻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조차도 싫다는 말이다. 아이를 때려주며 할머니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쳐도 시원치 않을 판에, 정말 너무 슬퍼 가슴이 저렸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슬픔을 어금니로 꽉 물었다. 지어미가 할미를 괄시하니까 애들도 그대로 보고 배우는 것이다. 방으로 들어와 안 될 소리지만 악담을 했다.   ‘두고 봐라. 너도 이 담에 당해 봐라. 자식을 그 따위로 키우면 너도 그대로 당한다. 너도 훗날 너 같은 며느리한테 당해 봐야 내 맘 알 거다.’   그 후부터 더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 더 미웠다. 그런데 미스 장을 알고부터는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차츰차츰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철없는 아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이해가 되었다. 내가 밉게 구니 며느리도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부끄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언젠가는 먹다 남은 순대를 갖고 들어와선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은 적이 있다. 다들 자는 시간인데도 문이 잘 닫혔나 확인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었다. 두어 개 먹고 나니 더 이상 목에 넘어가지가 않아 변기에다 쏟아 넣고 쏴 하는 물소리와 함께 씻겨 내려가는 시꺼먼 밥찌꺼기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선 도둑이 제발 재려 혹시 변기가 막히면 어쩌나 하고 며칠을 끙끙 속을 앓았다. 그 다음부터 순대만 보면 구역질이 나는 증세가 생겼다.     미스 장 말대로 막내 놈도 자주 안아주고 애들 손잡고 집 근처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랑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또 며느리가 좋아하는 과일도 한아름 사 가지고 들어왔다. 예전에는 냉장고에 들어 있는 과일 한 알에도 손을 댈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마구 꺼내 먹어도 마음이 편했다.   왜 그랬을까? 먹을 것이 흔한 미국에서 나는 먹는 것으로 인해 서러울 때가 많았다.   아들은 오징어 튀김을 좋아했다. 가끔 보면 부엌 한쪽 구석에 마른 오징어를 물에 불려놓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다음, 밤에 오징어를 튀겨서 먹었다. 어떤 때는 거의 밤마다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아들 며느리는 어머니가 한지붕 아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들만의 삶을 살고 있었다. 밤에 먹는 튀김이 건강에 나쁠 것이라는 염려보다 앞서 나는 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 더 서러웠다.   ‘그래서 더 나가 다니며 군것질을 했던가?’   잔디에 물도 주고 부엌일도 거들어주고 하니까 소일거리가 생겨서 좋았다. 며느리 생일에는 예쁜 카드에다 금일봉을 두둑이 넣어주었다. 둘째 아들이 보내주는 용돈을 참말로 요긴하게 쓰고 있는 것 같아 나 자신이 행복했다. 길을 가다가도 괜히 눈물이 나서 남이 볼까 봐 부끄러웠었는데 이제는 그 눈물도 없어졌다. 집 안에서도 며느리와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는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곤 했는데 그 증세도 없어졌다.   온종일 가도 말 한마디 안하던 며느리가 슬슬 말문을 열었다. 며느리가 한 반찬도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며느리에게는 장점이 많았다. 남편 떠받들어, 애들 잘 키워, 살림 잘해, 제일 중요한 것은 다 잘하는 것이다. 또 부부금실이 좋아 시어미가 샘이 날 정도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미스 장 말대로 지네들 잘 사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인 것이다.   미스 장을 완전히 며느릿감으로 찍어놓았을 즈음 운 좋게도 나는 그녀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신문을 펼칠 때마다 도배를 해 놓은 여행사 광고가 늘 그림의 떡처럼 느껴져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미스 장이 내 맘을 풀어준 것이다. 물론 내가 먼저 제안을 했었다. 지나가는 말로 흘렸는데 눈치 빠른 그녀가 얼른 허락을 한 것이었다.   끝까지 마다하는 것을 나는 그녀의 비용을 부담해 주었다. 그리고는 마침 둘째 아들이 용돈을 보내왔다는 얘기를 슬쩍 비쳤다. 분위기 봐서 정식으로 얘기를 하려고 둘째 사진 중에서 제일 잘된 것으로 한 장 골라 가방 속에 단단히 잘 넣었다.       “자연의 위대함을 보면 인간은 참으로 하루살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돼요. 남에게 상처를 줘가면서까지 자기 욕심만 부리고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허다하잖아요. 지나고 보면 다 헛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겠지요?”     이제 겨우 서른 중반에 불과한 미스 장이 그랜드 캐니언을 내려다보며 철학자라도 된 듯이 심각하게 말했다.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우수에 잠긴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 금세 눈물이라도 주르르 쏟아낼 것 같았다. 자신도 그 중의 하나였다고 인정하는 눈빛이었다.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일까?’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래요?”   “네?”   미스 장은 반문했다. 그러더니 금세 “아아, 네에····.” 하고는 말을 이었다.   “평생을 나 하나만 바라보고 나 잘 되기만을 바라고 사셨는데 저는 정말로 못된 딸이었어요. 어머니가 지겹고 싫을 때가 많았거든요. 나중에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을 당시는 그냥 돌아가시기만을 바랐어요.”   잠시 말을 끊더니 미스 장은 다시 밝은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정말 자연의 힘은 정말 위대해요. 저기 저것 좀 보세요. 아휴, 손으로 빚어도 저렇게 멋있게 만들지는 못할 거예요.”   그날 밤, 밤이 깊었는데도 잠이 안와 나는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살며시 일어나 화장실을 향했다. 여행 중이라 그런지 대변을 잘 못 봐, 그냥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미스 장이 화장실 문 앞에서 나를 불렀다.   “너무 오래 안 나오시기에. 괜찮으세요?”   나에게 신경을 써 주는 그녀의 심성이 고마웠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쉬이 들지 않았다. 그녀도 잠이 안 오는지 뒤척거렸다. 머리맡에 놓인 등불을 켰다. 은은한 불빛이 눈물처럼 방안에 차올랐다.   “미스 장도 잠이 안 오는 모양이네.”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네. 저도 잠이 안 와요.”   “무슨 생각했어요? 어머니 생각?”   “네. 아주머니는요?”   “죽은 남편 생각이 나네요. 남편이랑 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갑자기 내가 왜 남편 얘기를 끄집어냈는지 모를 일이다. 여행을 하면서 즐겁기만 했지 남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도 남편 얘기였다.     “나는 부부의 정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오. 부모 덕 없는 년이 남편 복도 없다 그러더니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아들 둘을 낳기는 했으나 우리 영감은 나한테는 통 관심이 없는 남자였어요. 마작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으레 외박을 일삼고 날이면 날마다 회사일이 바쁘다며 한밤중에 들어오고, 남편 구경하기도 어려웠어요.”   며느리 얘기가 나오면 주거니 받거니 얘기가 잘 이어졌는데 남편 얘기를 하니 미스 장으로부터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50대 초반부터 남편과는 각방을 썼다. 내가 먼저 베개를 들고 건넛방으로 와버렸다.  곤히 잠든 그의 숨소리가 내 온몸을 파고들며 살 속을 콕콕 찔러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옛날부터 여자들을 소 닭 보듯이 했다.   “이 상무님은 돌부처예요 돌부처. 술자리에서 기생들이 아양을 떨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합니다. 이 사진 좀 보세요. 지난번 연회에서 스냅으로 막 찍은 겁니다.”   집에서 마작판을 벌이다가 사진을 여러 장 내놓으며 비서실장이 한 말이다. 정말 그랬다. 다른 남자들은 기생들을 끼고 앉아 볼을 비비는 장면이 다 잡혔는데 남편만 진짜 돌부처모양 부동자세였다.       각방을 쓰고 보니 그렇게 편하고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말 못하던 자존심의 상처도 말짱히 가셨다. 남편 역시 원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자존심도 치유가 됐을 테니까.         결혼도 안 한 처녀한테 괜한 주책을 부린 것 같아 무안한 생각이 들어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미스 장은 어머니랑 같이 여행한 적 있어요?”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못된 애였어요. 고등학교 다닐 적엔 왜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요. 어머니는 아무 대학이라도 대학 졸업장은 따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를 하셨지만 저는 그까짓 대학은 가서 뭐하느냐고 반항만 했어요.”   잠깐 얘기를 끊어 나는 얘길 그만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는데 다행히 얘기는 곧 이어졌다.   “내 주위의 친구들도 다 그런 애들이었어요.”   그러더니 또 금세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얘기가 더 듣고 싶었다.   “그래서 미스 장이 나쁜 데로 빠졌나요?”   그녀가 놀란 듯이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얘기를 계속했다.   “친구 중에 부잣집 딸이 하나 있었어요. 저는 편모슬하에서 너무 가난하게 살아 빗나갔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그 애는 아버지가 회사 사장이고 오빠도 수재만 모이는 일류대학에 다니는 집안의 딸이었어요. 오빠는 굉장히 미남이었는데 걔는 얼굴도 안 예쁘고 공부도 못 했어요. 걔가 항상 그랬어요. 오빠랑 비교당하는 것이 죽을 만큼 싫다고요. 공부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자기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고 했어요. 친척들도 항상 오빠만 칭찬을 해, 걔한테는 그게 다 상처로 남았었나 봐요. 그 애 엄마는 나 때문에 친구가 나쁜 데로 빠졌다고 니를 만나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일은 제가 그 애 오빠를 좋아하게 된 거였어요.”   그녀 역시 독백처럼 천장을 향해 자신의 과거를 풀어내고 있었다. 며느릿감으로서의 점수가 점점 깎여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나는 그녀가 측은했다.   어머니의 눈물어린 정성도 작용을 했었겠지만 그보다 더 친구 오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 미스 장은 겨우 대학 문턱을 넘긴 했었다. 미스 장은 “오빠. 오빠.” 하면서 그를 무척 따랐고 그 역시 그녀를 좋아했다. 그러나 친구 어머니는 멸시의 눈으로 미스 장을 버러지 보듯 했다. 내세울 것 없고 가난하다는 것이 죄는 아니다. 그런데도 친구 어머니는 그녀를 죄인으로 취급하며 친구가 빗나간 것까지 책임을 물으며 자신의 아들까지 망치려 하느냐고 미스 장을 몰아세웠다.   결국, 오빠는 다른 여자와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버렸다. 대학 2학년 때였다. 어머니마저 지병인 심장병이 도져 드러누워 계셨다. 미스 장은 다시금 빗나가기 시작했다. 너무나 철이 없었다. 물론 학교도 자퇴를 해버렸다.   “너무 억울하고 분했어요. 세상이 원망스러웠어요. 그래서 저도 보란 듯이 돈을 벌어 막 쓰고 살고 싶었어요.”   목청이 높아지며 흥분에 들떠 있다가 잠깐 얘기를 중단하고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를 꺼내더니 한참 동안이나 벌컥벌컥 들이켠 후 내게 물을 권하고는 한쪽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도 그녀와 마주앉았다.   “그래서 돈을 벌어서 막 쓰고 살았어요?”   나는 컵을 받아들고 물 두어 모금으로 목을 축이면서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한참 회상에 젖어 줄거리를 술술 풀어내던 그녀가 나의 질문에 후닥닥 놀랐기 때문이다.   “네에--?”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아뇨, 그냥 취직했었어요.”   조금 전과는 달리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표정도 거의 울상이었다. 순간적으로 혹시 술집이나 요정 같은 곳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직업 마담들이 여대생들을 상대로 집요하게 미끼를 던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물로 보나 나긋나긋한 몸매로 보나 그들의 눈에 금세 띄었을 수 있는 미스 장이다.   “그럼 그 친구 오빠는 지금 미국에 살아요?”  한동안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렸다. 그리움이 아픔이 되어 뼛속까지 후비며 파고들었다. 그러나 세월이란 참으로 좋은 약이었다. 미스 장은 물 속같이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모르겠어요. 아주 옛날에 다 잊었거든요.”   “그럼 둘이서 깊이 사랑한 게 아니었어요?”   “그때는 뭐가 뭔지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제가 그 사람을 참 많이 사랑했던 것 같아요.”   암만해도 이번 여행 중에는 둘째와의 결혼 얘기는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친구한테 연락해서 만나면 될 텐데····.”   “친구하고도 연락 두절된 지 오래됐어요. 그 친구도 저를 피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저하고 너무 차이가 나버렸거든요. 결국 친구는 마음을 잡아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도 잘 했어요.”   “그런데 미스 장은 왜 아직 결혼을 안 했어요?”   한참 질문을 하다 보니 왠지 쑥스러워졌다. 며느릿감으로의 점수를 다시 매개기 위해 저울질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점수가 아무리 깎인다 하더라도 미리 따놓은 점수가 워낙 높아 흔들릴 염려는 없다.   그렇지만 둘째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작정을 했다.   “제게는 남자 운도 없고 결혼 운도 없나 봐요. 그 후로 어머니 병이 악화되어 많이 편찮으셨거든요. 어머니 약값 대고 그렁저렁 살다보니 몇 년이 후딱 지나버리더라고요. 제가 늦게까지 결혼을 못한 것도 다 어머니 탓 같고, 어머니가 제 앞길을 다 막아버린 것 같아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어요. 어머니 말 거역하고 제 멋대로 살아놓고 결국은 그 책임을 어머니한테 돌렸으니 정말 저는 죄인이에요.”   목소리가 울먹거렸다.   “어머니는 눈도 못 감으시고 숨을 거두셨어요. 서른이 넘도록 결혼도 못 하고 있는 딸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생각되고, 또 이 넓은 세상에 저 하나만 달랑 남겨놓고 떠나려니 차마 발걸음이 안 떨어졌었나 봐요.”   그녀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미스 장이 아닌 완전히 딴 사람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착한 미스 장이 나쁜 딸이었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착하긴요. 저 착한 사람 아녜요. 죄 많이 지었어요.”   젖은 목소리와 더불어 그녀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너무 죄책감 갖지 말아요. 부모님한테 암만 잘했어도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만 남는 법이에요. 자꾸 잘못한 일만 생각나는 법이거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미국에 이장까지 한 정성을 보더라도 미스 장은 효녀예요. 효녀.”   “저 효녀 아니에요. 돌아가신 다음에야 어디에 묻히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땅 속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건 똑 같은데 뭐 다를 게 있겠어요?”   훌쩍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묻고 흐느껴 울었다.   날이 갈수록 미스 장에게 빠져들어 어떻게 해서라도 꼭 둘째 며느리로 삼고 싶었다. 여행 중에 잠깐이라도 실망을 한 내가 이상했다. 서른여섯이나 되는 여자한테 그만한 과거도 없다면 그게 도리어 비정상이다. 둘째는 결혼을 한 경력이 있으니 그까짓 과거쯤이야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둘째한테는 이미 뜸을 들여놓은 상태라 휴가 맡아서 다음 달에 오게 돼 있다.   날씬하고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것을 결혼 조건의 우선순위에 올려놓는 둘째이다. 거기다가 똑똑하고 마음씨도 고우니 아들이 홀딱 반할 것이 분명하다. 신이 났다. 둘째는 늘 그랬다. 첫 번 결혼은 실패했으나 재혼을 하면 어머니는 자기가 모실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미스 장이라면 정말 딸같이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바람도 제법 불었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우산을 들고 나서는데 며느리가 따라나오며 물었다.   “날씨도 안 좋은데 어딜 가시려고 하세요?”     언젠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 생각나면서 며느리의 한마디가 고마움으로 가슴에 닿았다. 금세 다녀올 데가 있다고 말을 하고는 바삐 나가는데 며느리가 내 뒤통수에다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괜찮다고 손을 저으며 뒤를 돌아다보니 며느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이제는 버스 타는 선수가 되었기에 날씨가 어떻든 간에 내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침 버스도 금세 와 한걸음에 달려갔더니 그녀가 막 문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허탕을 칠 뻔했다. 마음이 급해 전화를 않고 온 것이 불찰이었다.   “요 앞에서 잠깐 누굴 만나기로 했어요. 이것만 전해주면 돼요.”   미스 장은 바쁘지 않으시면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면서 도로 들어가 손에 집히는 대로 비디오테이프를 하나 꺼내서 넣어주고 황급히 나갔다.     시간이 남아돌아가 주체할 수 없는 처지이니 나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는 몸이다. 아니, 오늘은 꼭 기다려야 한다. 10분쯤 지났을까? 일이 30분 정도 지연되니 좀 더 기다려달라는 전화가 왔다. 비디오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사제지간이 연애하는 판에 박은 줄거리이라 별 흥미가 없었다.   갑자기 안방에 들어가 보고 싶은 출동을 느꼈다. 곧 며느리가 될 테니 자는 방도 들여다보고 싶었다. 손잡이를 살며시 돌리니 문이 열렸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아주 심플한 연한 밤색의 헤드보드를 머리에 이고 벽 한쪽에 작은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같은 디자인의 화장대가 침대 발치에 놓여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썰렁한 분위기였다. 잠깐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옷장 문을 열었다. 방 분위기에 비해 옷장은 화사했다. 밝은 빛깔의 옷은 별로 입지 않는 미스 장인데 화려한 옷들이 많았다. 다들 고급스러워 보였다.   위 선반에는 핸드백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첫눈에 무지하게 많다고 느껴져 세어 보았더니 무려 열네 개나 되었다. 그런데 내가 준 핸드백 바로 옆에 신기하게도 장식이랑 손잡이도 똑같은 핸드백 하나가 놓여 있었다. 까만색으로 색깔만 달랐다. 하도 신기해서 꺼내서 비교를 해보고는 얼른 올려놓았다. 다른 핸드백들도 내 것과 비슷했다.   구두도 무지하게 많았다. 신발장 안에 있어야 할 구두들이 옷장 안에 있어 이상했다. 핸드백이 놓여 있는 선반 바로 아래에 선반이 또 하나 있었고, 그 위에 구두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모양이나 색깔이 핸드백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옷과 마찬가지로 다 고급품들이었다. 가난하게 살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의 과거가 베일에 감춰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또다시 들었다.   오른쪽으로는 서랍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랍을 위에서부터 차례차례로 열어보았다. 스타킹이니 양말, 그리고 팬티들이 차곡차곡 개켜져 있었고 서랍 세 개는 텅 비어 있었다. 얼른 옷장 문을 닫고 화장대 서랍에 손을 댔다. 텅 빈 서랍 속에 뜻밖에도 사친첩이 한 권 들어 있었다. 바짝 호기심이 동했다.   사진첩을 펼쳤다. 어머니인 듯한 아주 미인인 여자의 얼굴이 맨 첫 장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친구들이랑 찍은 미스 장의 교복 입은 사진을 대충 보고는 빠르게 사진첩을 넘기니, 중간쯤에는 대학생 차림의 미스 장이 지금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여기저기에서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매력을 풍겼다.   혹시 친구 오빠라는 사람의 사진이 있나 하고 눈여겨보았으나 남자 사진은 어디에도 없었다. 몇 장을 넘기도록 남자 사진이라고는 한 장도 없었다. 이상할 정도였다. 아버지 사진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아버지 사진은 꼭 있으리라 생각하고 계속 장수를 넘겼다. 중간 정도쯤이었다.   드디어 남자 사진이 등장했는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눈앞에 뿌예지며 남자의 얼굴이 작아졌다 커져다 하면서 빙빙 돌았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고개를 한 번 세차게 흔든 다음, 눈을 질근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숨을 한 번 훅 내쉬고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십대의 미스 장이 아버지뻘로 보이는 어떤 남자의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 남자에게로 몸을 기대다시피 바짝 붙이고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은은한 미소를 얼굴 전면에 띄고 있는 남자의 표정에는 행복감이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그녀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잘못 봤나 하고 눈을 닦고 또 닦으며 몇 번이고 다시 보아도 그 남자는 미스 장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 남자는 바로 내 남편이었다. 눈이 익은 회색 양복에 빗금이 그어진 빨간 넥타이를 맨 남자, 보고 또 보아도 분명히 남편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짓고 있는 행복감이 충만한 그 미소는 낯이 설었다. 남편 사진이 또 있나 하고 재빨리 뒷장을 넘겼다. 거기엔 그림이나 책에서 본 바 있는 외국의 풍경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미스 장이 남편의 팔짱을 꼭 낀 채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사진첩을 서랍에 도로 넣고 얼른 방을 나왔다. 가슴이 심하게 뛰고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겨우 거실로 나와 소파에 드러누웠다.   하나의 사건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작은아들이 유학을 떠난 그해였으니 만 10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괴상망측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나는 부리나케 대문을 나섰다. 마구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택시를 불러 타고 전화의 목소리가 일러준 곳으로 득달같이 달려갔다. 문 앞에 서 있겠다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집인지를 몰라 서성이고 있는데 한참 만에 열 서넛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가 두려운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계집아이는 문 앞에 선 채로 놀라운 이야기를 일러주었다. 남편한테 젊은 첩이 있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바로 이 집의 주인이며 자기는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데, 내일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고, 또 이 사실을 아주머니한테 얘기해야 될 것 같아 전화번호부를 보고 남편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남편의 회사와 직책까지 일치했다. 주인 여자는 일이 있어 인천엘 갔는데 내일 새벽에 돌아온다고 했다.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한 일이 생겼으니 당장 집으로 오라고 했다. 너무나 흥분해 부들부들 떨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지극히 침착하게 무슨 큰일이 났냐면서 지금 바빠 자리를 비울 수가 없으니 퇴근 후에 보자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당장 와요. 당장. 안 오면 내가 회사로 간다구요오····. 회사에서 망신당하게 전에 당장 와요. 지금 당장 오라고요.”   계집아이가 내일 시골로 간다니까 가기 전에 삼자대면을 해야 한다는 작정이 서 있었다. 남편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흥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슬슬 후회스런 감정이 밀려왔다. 침착하게 대책을 세운 다음 전화를 걸 걸, 바로 전화를 걸어 그냥 울어버린 것이 뭔가 잘못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억제하고 참는 데는 선수인 내가 왜 그런 경솔한 행동을 했는지 나 자신도 이상했다.   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음인지 남편은 직접 차를 몰고 한 시간쯤 지난 후에 집으로 왔다. 나는 앞뒤 말을 다 잘라먹고 그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남편은 참말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고 반문했다.   “그 집이라니 도대체 누구 집인데 그래?”   “당신이 매일 가는 집인데 왜 나한테 물어요? 빨리 가자고요.”   나는 남편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자초지종 알아듣게 얘기를 해 보라면서 남편은 정말 모르는 얼굴을 했다.   “그렇게 시침 뗀다고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알아요? 그 동안 속고 산 것도 분한데 이제는 더 안 속아요. 빨리 차 몰아요.”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남편은 버럭 화를 내면서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순간, 나는 정말 아닌가 하고 잠깐 헷갈렸다.   “그러면 내가 일러줄 테니 운전이나 하세요.”   그 계집아이랑 맞대면을 하면 더 이상 잡아떼지는 못하겠지.   “그래. 가자구.”   남편은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하며 내가 일러주는 대로 방향을 잡아 운전을 했다. 정말 깜깜하게 모르는 길을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또 헷갈렸다. 정말 아닌가 하고.   아니다. 이름, 직책, 회사까지 다 맞는데 그 계집아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의 무게가 나를 사정없이 내려 눌러 짓뭉개는 것 같아 한숨을 크게 내쉬는데 갑자기 남편이 명령조로 말했다.   “무슨 일 때문에 내가 당신한테 닥달을 당해야 하는지 얘길 해 봐. 나도 알아야 될 거 아냐?”         차는 이미 그 집 앞에 도착되어 있었다. 나는 “차 세우라”고 동문서답을 한 후에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 동안 아무 기척이 없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초인종을 계속 눌러댔다. 초조했다. 계집아이가 놀라서 뛰어나왔다. 계집아이와 남편의 눈이 마주쳤다. 남편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했다. 한데, 여자애의 입에서 튀어나온 뜻밖의 말에 나는 또다시 헷갈렸다.   “아녜요. 이 아저씨가 아녜요. 제가 전화를 잘못 걸었나 봐요.”   아이는 정말로 미안해 죽겠다는 듯이 안절부절못하며 쩔쩔 맸다. 삼양물산의 이경수 상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고 내가 되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이 혼선을 빚었다.   “삼양물산인지 삼영물산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주인 언니가 전화하는 소리만 들었거든요. 분명히 이 아저씨는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아줌마, 아저씨, 정말, 정말로 미안해요.”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아이가 울상을 지었다. 머리 좋은 그가 사건의 상황을 금세 파악하고 전화 한 통으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연출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남편은 아주 태연하게 아이를 타일렀다.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전화를 하면 어떡하니? 앞으로는 조심해라.”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을 외면한 채 나는 아무 말 않고 돌아섰다.   시계를 보니 겨우 10분도 지나지 않았었다. 나는 손으로 가슴을 훑어내리며 마음을 진정하려고 애를 썼다. 전신에 맥이 다 빠져버려 일어나 앉을 기운조차 없었다. 갑자기 하얀 벽들이 뱅뱅 돌면서 속이 메슥메슥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면서 한참을 그대로 누워 있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남편이 투자했던 주식이 한창 날개가 돋쳐 회사까지 그만두려고 망설일 때 그 사건이 터졌으니 경제적으로는 가장 전성기였다. 나이를 꼽아 봐도 딱 들어맞는다. 그때 계집아이가 주인 언니의 나이가 스물여섯이라고 했다. 그 스물여섯이라는 숫자가 뇌리에 박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몇 년이나 살았을까? 사건이 터진 그 훨씬 이전부터였겠지? 각방을 쓰기 시작한 50대부터라고 치면 미스 장은 그때 겨우 스물이 넘었을 적이 아닌가?’   맨 처음에 붙어 있는 사진은 남편이 주식으로 돈을 벌었던 50대 초반 같고, 미스 장도 앳돼 보이니 사건이 터지기 훨씬 전에 찍은 사진이 틀림없다. 뒤에 보이는 높은 빌딩도 증권회사 같다.   ‘증권 회사의 직원이었을까? 아니면 증권을 하다가 만나 증권 박사인 남편에게 조언을 구하다가 정이 들은 것일까?’   여자애의 말을 종합해 봐도 삼양물산의 여직원은 아니다. 더구나 남편이 회사의 직원을 첩으로 삼을 사람은 아니다.     ‘혹시 요정의 기생이었을까?’   그랜드 캐니언에 여행 갔을 때의 일이 뇌리를 스쳤다. 그 때, 그녀가 회상에 젖어 옛날이야기를 했었다. 실연을 당한 후, 대학을 중퇴하고 돈을 벌어 막 쓰고 싶어 취직을 했다고 했다. 그 ‘취직’을 한 곳이 증권회사일 수도 있고 삼양물산일 수도 있으나, 둘 다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분명히 요정 같다. 철이 없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후회한 것을 보면 직업 마담의 미끼에 걸려든 것이 분명하다. 그 당시 어머니가 많이 아팠다고 하니 미스 장이 보수가 많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친구 오빠한테 버림 받은 심리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회사일 때문에 요정 출입이 잦았던 남편이다. 기생인 미스 장을 만나 첩으로 삼은 게 틀림없다. 어머니를 거역하고 제 멋대로 산 것이 후회스러워 눈물을 흘린 것을 보면 그 ‘취직’을 한 직장이 분명히 요정이다.   남편과의 관계도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만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는 지속되었고 어머니는 더 많은 눈물을 흘리다가 돌아가셨다. 물론 돈이 첫째 이유였겠지만 남편의 외모와 인격을 종합해 보면 그는 젊은 여자가 따를 만한 매력을 지닌 남자다.   ‘그래서 미스 장이 존경하게 되어 좋아한 것일까? 과거를 고백한 것도 남편의 첩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나였을지라도 내게 그런 고백을 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함이었을까?’           그날 호텔 방에서 미스 장은 나를 잠깐 바라보다가 시선을 떨어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착하긴요. 저 착한 사람 아니에요. 죄 많이 지었어요.”   흐린 불 아래였지만 그녀의 울먹이는 음성과 더불어 눈에 물기가 어리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미스 장은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었다.   ‘쏴아쏴아’ 하는  바람소리가 물결처럼 귓가에 밀려왔다. 창밖을 스치고 간 바람이 나뭇가지 위에 걸려 서럽게 울었다. 으스스 몸이 떨렸다.  내의를 입었는데도 가죽 소파의 차가운 기운에 온몸이 시려왔다. 싸늘한 냉기가 등덜미를 훑어내렸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바닥으로 내려와 양탄자 위에 누웠다. 한결 나았다. 이런저런 줄거리를 연결시켜 보니 모든 게 다 들어맞는다. 완전히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그녀와 얼굴을 맞대기조차도 고역스러울 것 같아 그냥 가버릴까 하고 잠시 망설였다.   ‘아니지. 그냥 가면 안 되지. 둘째 아들 얘기를 하면서 어떤 식으로 거절을 하나 심중을 떠봐야지. 절대로 좋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썼다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을 티니까.’   비디오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가물가물한 정신으로도 줄거리는 눈에 들어왔다. 본마누라와 첩이 ‘형님 동생’ 하며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남편이 버젓이 살아 있었다. 동생은 형님에 비하면 딸 같은 나이였다. 생긴 것도 형님은 고생에 찌들어 빠진 아낙네이고, 동생은 좀 천하긴 하나 화장까지 곱게 하고 있었다.     동생이 형님의 손을 붙들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형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죄를 너무 많이 지었어요. 용서해주세요. 형님이 그렇게 고생하시는 것도 모르고 형님 미워하고 또 아픈 가슴에 상처만 줬으니 제가 죽일 년이에요. 어어엉--엉엉...”   동생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형님은 더 서럽게 울었다.   “아니다.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미워한 걸로 치면 네가 나만 했겠냐? 우리 앞으로는 서로 의좋게 지내자.”   두 여배우가 울음바다를 이루었는데 나는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도 잘 우는 울보인 내가 눈물은커녕 찡하는 기미도 없었다. 반듯이 누워 고개만 모로 돌리고 있었더니 목이 뻐근해 텔레비전을 향해 돌아누웠다. 그래도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되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장면이 바뀌어 형님 동생이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형님, 힘드신데 왜 무채를 썰려고 하세요. 채칼 이리 주세요. 형님은 저기 불려놓은 마늘이나 까세요”   동생은 형님 형님을 입에 달고 극진히도 형님을 위했다. 갑자기 열 살 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나타나면서 “큰엄마” 하고 형님 품에 안겼다. 동생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무채를 밀면서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말했다.   “큰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나가서 놀아.”   그러나 형님은 아이를 예뻐 죽겠다는 듯이 품에 꼭 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배고프지?”   조금 후, 장면이 다시 바뀌었다. 동생이 형님에게 화장품을 내밀면서 말했다.   “형님도 좀 가꾸세요. 아이고, 손이 이게 뭐예요. 거북이 등처럼 터져가지고····.”   안쓰러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동생은 형님의 손등에 로션을 발라주고는 막 문질러댔다. 그리고 형님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세상에...,  피부가 너무 거칠어 수세미 같아요. 형님, 이거는 스킨이라고 맨 먼저 바르는 거구요. 또 이거는 그 다음에 바르는 료숀, 이거는 그 다음에 바르는 언더메이컵.”   동생이 화장하는 순서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 립스틱은 제가 딱 한 번밖에 안 발랐으니 새 거나 똑 같아요.” 하면서 화장품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는데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형님이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하고 있으니까 호경이 아빠가 만날 저만 찾잖아요.”       ‘나도 그렇게 구질구질했었나?’   그랬다. 나도 멋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너무너무 검소했다. 남편한데 아양 떨 줄도 몰랐고 알뜰살뜰하게 남편을 위할 줄도 몰랐다. 그냥 세월 따라 그렁저렁 살았다.   큰아들이 결혼할 때였다. 동서가 나를 보고 한심하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내일이 상견례인데 그래도 다이아몬드 한 캐럿 정도는 끼고 나가야지····.  그쪽 집도 만만찮은데. 자네는 맘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잖아. 욕심이 없는 거야, 바보야? 도대체 자네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남편 몰래 뒷주머니도 좀 차고 그래봐. 그렇게 바보같이 살지 말고.”   시장바닥에서 콩나물을 사도 값을 깎는 동서다. 하루 벌어 하루를 연명하는 듯한 핏기 없는 아낙의 얼굴을 보며 나는 곁에 서 있기조차도 창피했다. 그런데도 동서에게는 다이아몬드 반지도 있고 밍크코트도 있다. 내 눈에는 동서가 한심해 보였다.   “아참, 자네 시집올 때 돈 싸들고 온 거, 설마 다 내놓은 건 아닐 테니 뒷주머니는 차고 있겠네.”   동서하고 말을 하다보면 상처를 받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그녀의 자격지심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대로 넘기곤 했으나 가끔씩은 ‘내가 바보인가’ 하고 스스로 반문하기도 한다.        얼마 전 일이다. 며느리 친구가 친정엄마라는 여자랑 잠깐 집에 들른 적이 있다. 그날은 웬일인지 방안에 처박혀 있는 나를 며느리가 불러내어 아주 상냥하게 인사를 시켰다. 나하고 동갑이라는 그 친정엄마가 너무 젊어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 나는 조금 나이가 더 먹은 친구인 줄 알았다. 화장을 곱게 했었는데 눈 화장이 아주 선명했다. 지금도 그 여자의 모습이 내 머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굽슬굽슬하게 웨이브가 져 있는 갈색 머리 결이 반짝반짝했다. 뭘 발랐는지 얼굴도 반짝반짝했다. 피부에도 검은 티 하나 없었다. 까만색으로 정장을 했었는데 옷감은 니트였다. 재킷 가장자리에는 노란 금줄이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둥근 모양으로 달려 있는 단추는 진짜 금을 연상시켰고 노란 단추의 가장자리에는 까만 선이 둘러져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거울을 앞에 놓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거뭇거뭇한 저승꽃들이 내게 손짓을 했다.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제법 큰 반점들이 어느새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었다. 흰머리도 많이 늘었다. 머리를 자르러 갈 때마다 미용사가 염색을 권했으나 한 번도 염색을 해본 적은 없다. 좀 충격을 받긴 했으나 그때뿐이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것이 내 인생이다. 이제 나는 완전히 할머니 티를 내며 살고 있다.   드디어 인기척이 났다. 달깍거리는 열쇠 소리에 또다시 숨이 가빠 왔다. 한 줌의 바람이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온몸이 얼어붙는 듯 움칠했다. 싸늘한 냉기가 다시금 등덜미를 쓸어내리며 다리가 뻣뻣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편안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미스 장은 너무나 놀라 들고 있던 가방을 팽개치고 내게로 달려왔다. 실내인데도 바바리코트 자락이 심하게 펄럭였다. 나갈 때는 몰랐는데 디자인이 눈에 익다.   ‘내 앞에서 어쩌자고 저 바바리코트를? 아니지. 내가 올 줄을 모르고 문을 나서다가 만났으니 그럴 수 있지.’   늘 즐겨 입으면서도 더구나 비가 내리는데도 그 바바리를 입고 오지 않은 내가 이상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수화기를 들고 앰뷸런스를 부르려고 했다. 내가 말렸다. 내 병은 내가 알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서너 번 이런 증상이 나타났었다. 금세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아 숨을 헐떡거린 적도 있었으나 가슴을 쓸어내리고 주먹으로 치고 하면 괜찮았었다.   “괜찮아요. 내가 가끔 이래요. 좀 있으면 금세 나아요.”   “안돼요. 병원에 가야 돼요. 안색이 너무 창백해요. 숨도 가쁘잖아요. 아주머니도 심장이 나쁜가 봐요. 저의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고생을 하셔서 제가 잘 알아요.”   어머니 심장병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 귀에서 튕겨나갔다. 영문을 모르는 그녀는 수화기를 놓지 않았다. 도리어 내가 그녀를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미스 장은 민첩하게 또 침착하게 행동했다. 우선 따뜻한 물과 청심환으로 나의 정신을 가다듬게 한 다음 포근한 담요를 가져와 내게 덮어주고는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이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것처럼 팔다리가 편안하게 풀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리를 주무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경험에 의한 익숙한 손놀림이다.   반듯이 누운 남편의 다리를 미스 장이 주무르고 있다. 남편의 뜨거운 눈빛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하니 열기를 띠었다. 깨물고 싶도록 예쁘다. 서른여섯이 아니고 스물여섯 같다. 그녀의 열 손가락이 종아리에서부터 허벅지로, 그리고 점점 더 위로 올라가고 있다. 갑자기 오물을 뒤집어쓴 듯한 더러운 기분이 전신을 휩쌌다. 목구멍으로 헉,하고 뜨거운 김이 치솟아오르며 숨이 막혔다. 뜨거운 불덩어리가 핏줄을 타고 마구 돌아다녔다. 얼굴이 화끈했다. 애써 마음을 꾹꾹 누르고는 최대한으로 태연을 가장하면서 숨을 한 번 크게 들어마셨다가 후우, 하고 내쉬었다.   미스 장은 어쩌다가 그런 증세가 왔는지를 물었다. 나는 시침을 뚝 떼고 거짓말을 했다.   “소파에 누워 비디오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가죽소파에서 찬기가 몸에 스며들었나 봐요."   비디오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형님과 동생은 화면에서 사라지고 사제지간인 젊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제야 미스 장은 비디오를 껐다. 나는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참 웃기는 얘기도 다 있네. 본마누라와 첩이 어떻게 한집에서 살아?”     완전 무방비 상태인 그녀의 가슴에 나는 비수를 날렸다. 그리고 입귀를 칼끝처럼 다물면서 어금니를 꽉 물었다. 턱이 아프도록 꽉 문 어금니 사이에서 뱉어내지 못한 말들이 파랗게 갈려 부서지고 있었다.   ‘그래, 너는 본마누라와 첩이 형님, 동생하며 한집에서 의좋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가능한 일이겠지? 만일 남편이 죽고 없다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어디 네 생각이 어떤지 한 번 들어보자.’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최대의 노력을 하며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는 누워있으라는 그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나 앉았다. 나 역시 아주 침착하게 다음 행동을 개시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미스 장의 눈을 뚫어지라고 빤히 들여다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내가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왔어요. 우리 둘째 아들한테 미스 장 얘기를 했더니 아주 좋아했어요. 다음 달에 여기로 온다니까 한 번 만나보세요. 아까운 나이인데, 미스 장도 얼른 결혼을 해야지요.”   사진을 꺼내들고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둘째는 남편과 판에 박은 닮은 꼴이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입술이 잠시 파르르 떨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제는 미스 장이 청심환을 먹어야 할 차례다. 그녀는 할 말을 잃어버린 듯 아니, 못 들은 척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나의 다리를 계속 주물렀다.     ‘그렇지, 네가 내 눈빛을 바로 받지는 못할 거다.’   “왜 마음에 안 들어요? 우리 아들이 이혼해서 그래?”   그녀는 바닥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아, 아뇨.” 하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몽땅 잡아내려고 작심을 하며 그녀의 수그린 얼굴에 시선을 박아놓고 있었다. 뒷말을 잇는 미스 장의 음성이 떨려나왔다.   “아드님은 공부도 많이 했는데 저는 대학을 졸업도 못 했잖아요. 또 나이도 더 많고요.”   “그까짓 두 살 더 많은 게 뭐 어때서 그래. 내가 다 얘기했는데 우리 아들이 아무 상관없다고 그랬어.”   ‘이혼이니 학벌이니 나이니 그런 건 물론 이유가 되지 않지. 이유는 딴 데 있겠지.’   그녀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내 다리를 열심히 주물렀다. 아들이 곧 온다고 했으니 한 번 보기라도 하라고 나는 그녀의 가슴에 계속 화살을 쏘아댔다. 안 되겠다 싶었던지 미스 장은 진짜 피할 수 있는 핑계를 내세웠다.   “실은 저한테 남자가 있어요.”   ‘남자는 죽고 없는데, 남자는 무슨 남자야.’   “분명히 남자가 없다고 나한테 얘기해놓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그녀를 낭떠러지를 향해 잔인하게 밀어붙이면서 화를 냈다. 미스 장이 놀래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 목소리가 너무 컸었나 보다. 나는 아차, 했다. 태연한 척하려고 최대의 노력을 했는데도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다. 더 이상 앉아 있다가는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겁이 났다.   마침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미스 장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재빨리 휴대폰을 집어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무슨 흔적이라고 남겨놓은 것 같아 속이 떨렸다. 손잡이에 묻은 지문이라도 감지할 것 같아 발이 저렸다. 무슨 전화인지 미스 장은 한참 동안이나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설마 화장대 서랍을 열어 사진첩의 위치를 점검하지는 않겠지. 분명, 내 말을 어떻게 막나 하고 연구 중일 거다.’   사기를 당한 기분이 다시금 엄습하며 속을 떠보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스꽝스러워졌다.   ‘뭐 핸드백이 꼭 마음에 들어? 니가 고른 것이니 네 맘에 들 수밖에.’   그때, 남편은 의아해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뭘 아나? 같이 간 비서실장이 챙겨준 거야.”   미스 장이 방에서 나오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높은 목청이 떨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론 브로커가 일을 느리게 하는 바람에 다된 계약이 깨지게 생겼어요. 화를 좀 냈더니 열이 나네요.”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미소까지 띄는 여유를 보이면서 그녀를 괴롭혔다.     “오늘은 내가 말할 기운이 딸리네요. 다음에 또 얘기하기로 하지요. 나는 그간에 미스 장을 내 둘째 며느리가 다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생각해 보세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면서 나를 부축했다. 가녀린 몸매가 수양버들처럼 흐느적거리며 감겨들었다. 뭇 사내들의 혼을 몽땅 앗아버릴 만한 요염한 자태다.   어쩔 수 없이 미스 장의 차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맘 같아선 며느리를 부르고 싶었다. 빗줄기는 올 때보다 더 굵어져 차창을 마구 때리면서 울부짖었다. 바람도 몹시 불어 가로수들이 몸을 떨며 잎사귀를 털어내고 있었다. 빗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공중에 흩날리는 잎사귀들이 몸부림을 치며 아우성을 쳤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로 가는 거냐고····.’   내 가슴 속에서도 삭막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나를 홀로 남겨두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쓸어가버릴 것 같은 세찬 바람이었다.   거리엔 차가 줄줄이 밀렸다. 웬 신호등이 그렇게 많은지 차는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고 하며 거북이 걸음을 했다. 나는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꼼짝을 안했다. 입을 꼭 다물고 침묵했다. 침묵의 무게에 눌려 차가 짜부러져 전신이 짓이겨질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가느다란 작대기 두 개가 앞유리에 쏟아져내리는 빗물을 부지런히 닦아내며 빠른 속도로 좌우로 왔다갔다하는 모양이 숨이 차 보였다. 미스 장도 보통 때보다는 갈팡질팡하며 숨가쁘게 운전을 했다.         “어마나,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웬 차가 이리 많아요? 비가 오니까 교통이 더 혼잡하네요.”   무슨 말이라도 해서 침묵을 깨야겠다고 느꼈음인지 미스 장은 뻔한 소리를 하며 목청을 돋우었다. 안정감 없는 소리가 붕 떴다가 흩어졌다. 앞차의 뒤꽁무니라도 들이박을 것 같아 불안했다.     집 앞에 차가 멎자마자 며느리가 우산을 받쳐 들고 쫓아 나왔다. 차문을 열어주다가 며느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안색이 너무 창백해요.”   나는 얼른 며느리의 팔을 잡으며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며느리는 미스 장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내가 암말 않고 며느리를 떠밀다시피 하면서 발걸음을 떼놓았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붕,하고 그녀의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뒤통수가 자꾸 뒤로 잡아끌리고 발길이 닿은 땅이 흐물흐물했다.   “어머니, 지금 병원에 바로 가셔야 되겠어요.”   집 안으로 들어온 며느리는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아냐, 괜찮아. 내 병은 내가 알아. 좀 누워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전기담요나 꺼내서 좀 깔아줘.”   며느리도 미스 장처럼 우기는 것을 겨우 말렸다. 전기담요를 꺼내 침대 위에 깔고 스위치를 조정하면서 며느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머니, 저 여자가 미스 장이죠. 근데, 어디서 본 여자 같아요. 낯이 익어요.”   낯이 익다는 며느리의 한마디가 나의 귓전을 후려쳤다.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며느리가 생각난 듯 "아, 바로 그 여자예요." 하고는 말을 시작했다. 가슴이 덜커덩 하고 내려앉는 충격이 왔다.   “아버님 장례식에서 본 바로 그 여자예요. 까만 바바리코트를 입은 모습과 그리고 얼굴이 너무 예뻐서 들어올 때부터 인상에 남았었거든요. 모르는 여자라, 아마 아버지 회사 계실 때 직원인가 했어요. 그날 제가 입구에서 손님들에게 인사했잖아요. 그리고 장례식 시작할 때가 되어 안으로 들어와서 앞줄로 가는데 그 여자가 또 눈에 띄었어요. 한쪽 구석에 앉아서 아주 서럽게 울고 있더라고요. 지금도 제 기억에 아주 선명해요. 나가면서 유가족에게 인사할 때는 못 봤어요. 그래서 장례식 끝난 다음에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는데 일찍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어요. 분명해요.”          그 후, 나는 근 한 달 동안을 호되게 앓았다. 배가 쌀쌀 아프기 시작하더니 목구멍이 따끔따끔하고 기침이 났다. 목이 잠겨 소리도 제대로 낼 수가 없었다. 아랫배가 뻐근해 소변보기도 힘이 들었다. 어지간하면 그냥 견디는 성격이었지만 열이 내리지 않아 할 수 없이 며느리를 따라 병원에 갔었다.   “신우염, 방광염에 몸살감기까지 겹쳤습니다. 진작에 병원에 왔었어야지요. 이렇게 병을 키우다가는 정말 큰일 납니다.”     의사는 당장 입원이라도 해야 될 것처럼 겁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온 1년 동안 병원이라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간에 가끔씩 몸이 나른해지며 가슴이 답답하고 배가 살살 아플 때가 있었지만 혼자서 삭이면서 지나쳤다. 몸 상태가 아주 안 좋으니 건강검진을 꼭 받아야 한다고 의사가 강조를 했다.   그날, 집에 오면서 며느리가 “어머니, 얼굴이 많이 상했어요.” 하고는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거울 속에 웬 80대의 노인이 후줄근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얼굴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살갗은 바람 빠진 풍선모양 축축 늘어져 있고 조막만한 얼굴에는 두 눈만 뻥 뚫려 있다. 어찌나 목이 말라 비틀어졌는지 머리를 지탱하기조차도 힘에 겨워 보인다. 흰머리도 어느새 그렇게 많이 늘었는지 아주 반백이 되었다. 폭삭 늙어버린 내 모습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인생은 이렇게 가고 있는 것이라고. 강물이 흘러흘러 바다로 가듯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듯이 내 인생 뒤에는 또다른 인생이 오고··· ···. 인생은 그저 왔다가 가는 것이다.     그날 본 비디오 생각이 자꾸 났다.   ‘만일 미스 장한테 아이가 있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그랬다면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을까? 여자아이라고 가정을 하는 것이 우리 집안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아버지 같은 두 아들을 ‘오빠, 오빠.’ 하고 부르겠지? 아들들은 그 애를 귀여워해 줬을까? 아니면 본척 만척 했을까?‘   미스 장을 꼭 닮은 예쁘장한 계집아이가 눈앞에 떠오른다. 레이스가 달린 하얀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꼭 백설공주 같다. 머리를 양갈래로 가지런히 땋아내리고 나를 보고는 환히 웃는다. 그리고 "큰엄마" 하고 부르면서 내게로 달려온다.   ‘그러면 나는 "아이구, 내 새끼" 하고 그 아이를 껴안아 줄 수 있을까?’   한참 소설을 쓰고 있던 나는 갑자기 하나의 궁금증이 머리를 세차게 쳐 현실로 돌아왔다. 아버지에 대한 아들들의 평가다. 두 아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 아버지는 최고’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자랐다. 큰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버지가 든든하게 뒤에 버티고 있는 한 그들에겐 아무 걱정이 없었다.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두 아들은 열심히 노력했고 원하는 학교에 척척 잘 붙어주었다. 가정적인 면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남편이었지만 아이들 학교문제에는 늘 과민반응을 보였었다. 올 에이를 받아온 둘째가 “나는 아버지 때문에 공부해. 이건 내 성적표가 아니고 아버지 성적표라니까.” 하고 말한 적이 있다. 둘 다 미국유학까지 시켜 명문대학을 나왔으니 어마어마한 돈을 교육비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남편은 두 아들의 대학졸업 논문까지도 봐 줄만큼 박식했었다. 지금도 두 아들의 가슴 속에는 존경스러운 아버지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만일 미스 장과의 일을 안다면 그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재조명할까? 그리고 미스 장을 만난다면 그녀를 어떻게 대할까?’      그날 밤이었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비디오의 스토리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미스 장이 내 손을 붙들고 잘못했다면서 머리를 조아리며 흐느껴 울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게 붙인 호칭이 형님도 아니고 아주머니도 아닌 어머니였다.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부르며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미스 장이 다 털어놓을 모양인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나 그 며칠 후, 미스 장이 아닌 며느리로부터 나는 진짜 꿈같은 말을 들었다. 꿈을 잘 꾸지도 않고 꾸어도 생전 들어맞은 적이 없는 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꿈을 들어맞았다.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여자는 이 세상에 며느리밖에 없다.   “어머니, 그 동안 제가 어머니한테 너무 무심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어머니이---. ”   내 손을 붙들고 며느리는 울었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전류가 흐르듯이 가슴이 찌릿찌릿했다. 나도 울고 있었다.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한 게 너무 많다. 용서해다오.”   어찌나 며느리가 흐느껴 우는지 내 눈에서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온 방안이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어 감동의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잘 챙겨 먹는데도 며느리는 시간 맞춰 물을 떠받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끼니때마다 다른 종류의 죽을 정성스럽게 끓여주었다. 흰죽. 야채죽, 전복죽 그리고 깨죽까지 끓여 내 입맛을 돋우려고 노력을 했다. 아들도 퇴근 후엔 내 방을 들여다봤다. 혼인은 깨졌다는 말을 듣고도 그 사이에 둘째 아들이 다녀갔다. 그리고 병원비에 보태라면서 돈을 내놓았다. 아무런 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 혼자 고민을 했는데 하늘을 나를 듯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열도 완전히 떨어지고 거의 회복이 되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막내 놈이 장 아줌마한테 가자고 졸랐다.     “어머니가 편찮으신 거 미스 장이 몰라요? 어머니가 못 가시니까 저의 집으로 오라고 하세요. 아버님 옛날 부하직원이고 또 어머니하고 친하니까 저도 미스 장하고 친구하면 좋잖아요.”    부하직원이라는 며느리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난 그 동안 하루도 미스 장 생각을 안 해본 날이 없었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건만 전화통에 신경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나의 건강을 핑계로 한 번쯤은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져봤으나 두어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막내가 계속 성화를 하고 또 며느리가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하기에 나는 번호를 건네주었다. 가슴이 뛰었다. 수화기를 들고 있던 며느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상해요. 전화가 디스커넥트가 됐대네요. 새 번호도 안 나오고요.”   며칠 후, 며느리가 다시 미스 장 얘기를 끄집어냈다.   “어머니, 제가 한번 그 집에 가볼까요?”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어느 날 이른 아침, 나는 미스 장 집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집 앞에서 눈길도 한 번 안 주고 돌려보낸지, 거의 두 달쯤 됐을 때였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현관문을 바라만 보며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10년 전 그 집 근처에서 서성이던 생각이 문득 떠올라 쓴웃음을 짓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무의식 중에 길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미스 장이 아닌 웬 중년의 미국 여자가 황급히 문을 나섰다.     며느리와 둘이서 부엌 식탁에 앉아 콩나물을 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깔끔한 며느리는 콩나물을 무쳐도 항상 꼬랑지를 딴다. 며느리가 나를 바라보다가 잠시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 흰머리가 너무 많네요. 머리도 많이 길었어요.”   내 몰골이 흉측하게 비쳤나 보다. 그러고 보니 고무줄로 묶어도 될 만큼 머리가 길어 있었다.   다음 날, 나는 며느리와 같이 미장원엘 갔다. 그리고 며느리가 시키는 대로 또 미용사가 해주는 대로 그대로 따랐다. 커트를 하고 파마도 했다. 생전 처음 염색도 하고 하이라이트라는 것을 몇 가닥 넣었다. 미용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불로우드라이어를 하고 고데로 머리 모양을 창조해냈다.   “어머니, 10년을 젊어 보이세요. 정말 너무 멋있어요.”   미용사도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내가 봐도 놀랄 만큼 완전 딴 여자가 되어 있었다. 머리 모양이 이렇게도 사람을 달리 보이게 한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언젠가 본 며느리 친구의 친정엄마라는 여자가 생각났다. 상쾌한 기분으로 미장원을 나와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도 들르고 옷가게에도 들렀다.   “이 바바리코트, 옛날에 아버님이 영국 출장 가셔서 사 오신 거죠? 아버님이 안목이 높으셨나 봐요. 그런데 너무 오래 이것만 애용해서 많이 낡았어요. 이제 날씨도 제법 춥고 하니 코트 하나 새로 사셔야 되겠어요.”   그때서야 나는 입고 있는 바바리코트에 눈이 갔다. 거의 사철 내내 이 바바리코트를 즐겨 입었다. 폭신폭신한 카시미어로 된 안감에 지퍼가 달려 있어 비 오는 여름철에도 또 바람 부는 겨울철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오늘도 무의식중에 이 코트를 걸치고 나왔다.     “어머니도 이제 좀 가꾸고 젊게 사세요. 화장품 가게에서 가르쳐준 대로 하면 피부도 고와지고 주름살도 줄어들 거예요. 저도 오늘 많이 배웠어요. 이제 저녁마다 저랑 둘이서 젊어지기 시합하세요.”   며느리가 신이 나서 깔깔 웃었다.          그 며칠 후, 며느리와 같이 병원엘 갔다 오는 길에 산소엘 들렀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종합 진단 결과에 며느리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아버님한테 가자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아마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나 역시 혹시 심장에 무슨 이상이 있으면 어쩌나 하고 은근히 염려를 했었다.   “아까 의사가 깜짝 놀라는 거 보셨죠? 어머니 오늘 너무 이쁘세요. 아버지도 깜짝 놀라실 거예요.”   며느리는 깜짝깜짝을 연발하면서 신이 나서 손뼉이라도 칠 것같이 좋아했다. 며느리의 팔짱을 끼고 등성이를 올라가다가 저쪽 소나무 밑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 시선이 갔다. 빈 의자가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순간, 한줄기 바람 같은 것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면서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쏴아아~ 하고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 쳤다. 그리고 슬픈 얼굴을 한 미스 장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어디에선가 아주 먼 곳에서 어머니···· 하고 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꿈에서 내 손을 붙들고 어머니라고 부르며 목놓아 울던 미스 장, 그녀가 나를 또 다시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눈물을 흥건히 머금은 그 소리의 여운은 점점 멀어져갔고,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네가 가시꽃이었다 하더라도, 그 향기로 내게 진 빚은 이미 다 갚았잖느냐?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너와 나의 실마리를 풀 수는 없었을까?’   요즘은 손자 녀석들이 시끄럽게 굴어도 밉지가 않고 예쁘기만 하다. 며느리하고 도란도란 얘기도 자주 주고받는다. 밥도 한상에서 먹고 출근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운전 조심하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아들네는 항상 별개의 식구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나도 아들네와 한 식구라가 되었다는 소속감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제일 값진 것은 매일 아침 출근하듯 집을 나서는 버릇이 없어진 것이다. - 끝 -
26    [명시 감상] 청포도 / 이육사 댓글:  조회:709  추천:0  2023-01-16
[명시 감상] 청포도   이육사 ​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광야(曠野)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시집 한 권으로 '현대시 100년'에 길이 남은 시인들이 많다. 김소월과 한용운과 김영랑이 그렇다. 특히 유고시집 한 권으로 길이 남은 시인들도 있으니, 이상과 윤동주와 기형도 그리고 여기 이육사(1904~1944) 시인이 그렇다.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이 따라 다닌다. 지사(志士), 독립투사, 혁명가, 아나키스트, 테러리스트, 의열단 단원 등. 1928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수감되었을 때 수인번호가 264(혹은 64), 이를 '대륙의 역사'라는 뜻의 한자 '육사(陸史)'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가 어떤 항일운동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단지 17회 정도 감옥을 들락거리며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 만주·북경 등지를 부단히 왕래했다는 것, 북경 감옥에서 40세의 나이로 옥사했다는 것 정도.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것인지 안 들렸다는 것인지, 초인이 있을 거라는 것인지 초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지, 이 광야에 목놓아 부르는 사람이 초인인지 나인지, 초인을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노래를 목놓아 부르는 것인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왜 천고(千古)의 뒤에야 오는 것인지 해석 이 애매한 부분이 많은데도 이 시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이 처음 열렸던 날부터 다시 천고 후까지, 휘달리던 산맥들도 범하지 못했으며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어준 이곳! 이 신성불가침의 시공간 속에서 흰 눈과 흰 말(馬), 매화 향기와 초인의 이미지는 돌올하다. 특히 까마득한 날부터 천고 뒤로 이어지는 대서사적 시제와 감탄하고 묻고 명령하는 극적인 어조 속에서 '광야'의 고결한 미감과 강렬한 정서는 한결 고무된다. 웅대하다는 말, 장엄하다는 말이 이만큼 어울리는 시도 드물 것이다.      감옥에서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유시 '꽃'에서도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라고 노래했다. 오천 년의 역사가 시작된 이 광야에서, 지금-여기의 눈보라 치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찬란한 꽃을 피울 미래의 그날을 떠올려본다. 시인이 기꺼이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렸던 이유일 것이다. 기름을 바른 단정한 머리에 늘 조용조용 말하고 행동했다는, 올곧은 시인이 올곧은 삶 속에서 일구어낸 참 올곧은 시다.   [작자 소개]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시인. 본관은 진성(眞城), 호는 육사(陸史), 본명은 이원록(李源祿) 또는 이원삼(李源三), 이활(李活)이며 후에 이육사로 이름을 개명했다.      출생 1904년 5월 18일 (음력 4월 4일), 경상북도 예안군 의동면 원촌동 원촌마을 881번지 (現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706)      종교 유교 ( 성리학 )      사망 1944년 1월 16일 (향년 39세), 중화민국 허베이성 베이핑시 주재 일본 제국 총영사관 교도소 (現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  
25    [명시 감상] 향수(鄕愁) / 정지용 댓글:  조회:634  추천:0  2023-01-16
[명시 감상]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작자 소개]      정지용(鄭芝溶, 1902년6월 20일 ~ 1950년)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아명은 지용(池龍), 세례명은 프란치스코(方濟角)이다.      출생 1902년 6월 20일, 충청북도 옥천군 읍내면 향청리 (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종교 카톨릭      사망 1950년 9월 25일 (향년 48세), 평양시 또는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으로 추정
24    [중편소설] 플렉시테리언 / 이안리 댓글:  조회:712  추천:0  2023-01-15
[중편소설] 플렉시테리언   이안리   제 1 부        지오는 작업에 필요한 칼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가지고 다니던 칼이 망가져 급하게 새 칼을 장만해야 했다. 칼을 함부로 버리면 위험한 일이 생긴다는 미신 때문에 지오는 날이 부러진 칼을 오토바이 트렁크에 가지고 다녔다. 지오의 오토바이에는 여러 번 붙였다 뗀 영업용 스티커 자국이 지저분하게 남아 있었다. 열일곱에 가출 팸을 나온 뒤로 많은 일자리를 전전했지만 이번 일만큼 시급이 높은 일은 없었다.      신호에 걸린 지오는 도로 위에서 습관처럼 메시지 창을 열었다. 아침 일찍 보낸 메시지가 읽히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며칠 전에 보낸 것도 지난달에 보낸 것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부업을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흘렀고, 지오는 그 시간의 대부분을 시유 없이 혼자서 보냈다. 일 때문에 서로 예민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직은 시유가 떠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휴대폰을 구겨 넣듯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엑셀을 당기자 나무들이 뒤로 휙휙 지나갔다. 지난번에 시유와 함께 갔던 상점을 향해 지오는 오늘 홀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상아색 컨테이너 도매상점은 수천 가지 칼을 판매했다. 지오는 용도에 정확히 맞는 칼을 구입하려고 통로를 오가며 진열장을 살폈다. 상점 사장은 지오가 돌아다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날카로운 칼날을 연신 기계에다 밀며 눈으로는 데스크톱 모니터만 주시했다. 지오도 슬쩍 화면을 보았다. 핸드헬드 카메라가 야산에서 네발짐승을 추적하고 있었다. 달려가는 짐승의 뒷다리를 폭이 좁은 조명이 빠르게 따라갔다. 빛이 요동쳤고, 총성이 울렸고, 비명 섞인 숨소리가 흩어졌다. 앞으로 달려가는 남자의 칼날이 눈부신 서치라이트를 반사했다. 지오는 바로 앞 진열장에 가까이 다가섰다. 가장 비싸 보이는 칼을 집어 들고 허공에 손을 그어 보았다.      "무슨 칼 찾아요?"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사장이 근처까지 와 있었다. 정확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머뭇거리던 지오가 "어떤 칼이 가죽을 잘 자르나요?" 물었더니 사장은 "무슨 가죽이요?" 하고 되물어왔다. 여전히 어려웠다.      "올가미 덫을 자르고 가죽도 좀 잘라야 하는데요."      지오가 말하자 사장이 이번에는 "그러니까 무슨 가죽이요, 동물 잡습니까?" 하고 물었다.      지오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말했다.      "저 동물 구조센터에서 일해요."      그제야 사장은 대충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지오는 내색하기 어려운 불안을 느꼈다. 그간 지오가 사용해 온 칼날에는 꺼림칙한 동물 지방이 잔뜩 끼어 있었다. 상점 사장이 오토바이 트렁크를 열어 기름 낀 칼날을 보기라도 한다면 재차 미심쩍은 눈초리로 칼 주인을 훑어볼 것이 뻔했다. 지오는 상처 난 자신의 손등을 다른 손으로 감췄다. 사장의 시선이 지오의 얼굴과 어깨를 거쳐 마지막에는 손등에 고정되었다.      "정형 칼 가져가요. 업자들은 곱창 칼이라고 하는데, 이게 뭐든 잘 잘립니다." 사장이 가늘고 작은 칼을 건네며 말했다.      "근데 아직 학생 아니에요?"      지오는 대답 대신 현금을 내밀어 칼 값을 지불했다. 거스름돈을 돌려받을 때까지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사장의 관심을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등을 보인 사장이 포장용 신문지를 꺼내는 사이 칼을 챙겨서 조용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오토바이에 오른 지오는 차가 없는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다시 도로변 나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맞바람이 제법 차가웠지만 투명한 가을볕이 내리는 곳은 따뜻했다. 휴대폰 거치대를 눈높이까지 올려 전방과 동영상을 절반씩 응시했다. 휴대폰에서는 칼집 사장이 보던 유튜브 영상이 흘러나왔다. 오토바이 앞 유리는 낮이고 휴대폰 액정은 밤이었다. 이따금 영상에서 중요한 장면이 나올 때면 지오는 한낮의 평화로운 풍경을 무시하고 밤의 영상에 신경을 집중했다.      깊은 밤에 랜턴 조명을 켜놓은 남자는 말하고, 달리고, 때때로 욕설 섞인 고함을 질렀다. 다급한 목소리로 형님, 하고 소리칠 때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쓰러졌다. 잠시 오토바이를 세우고 영상 밑에 댓글을 달기로 했다. 동물의 불법 포획 영상에 경고 댓글을 달고 구조 센터에 알리는 것 역시 지오의 여러 가지 일 가운데 하나였다.      화면을 내려 추천 수가 높은 댓글을 읽고 있는데 길게 뻗은 흙길 위로 맹렬한 클랙슨 소리가 퍼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맞은편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가오는 트럭이 보였다. 트럭은 순식간에 거대해졌고, 바로 눈부신 상향 라이트와 손가락질이 눈앞에 도착했다. 지오는 놀라서 경사진 두렁으로 핸들을 틀었다. 브레이크를 당긴 뒤에는 눈을 감고 몸을 움츠렸다. 더 내려가면 채소밭이었다. 옆을 스쳐가는 트럭의 풍압이 전해졌다. 오토바이를 겨우 멈추고 서서 커다란 엔진음과 차 밑을 때리는 자갈 소리를 들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트럭이 지나가고 지오는 거치대에서 떨어진 휴대폰을 찾기 위해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휴대폰에서는 여전히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핸들을 잡고 천천히 오토바이를 움직여보았다. 구덩이에 빠진 앞바퀴가 큰소리를 내며 회전하다가 기어이 채소밭을 밟고 굴렀다. 소리가 요란했지만 사이드 미러에 비친 채소들은 크게 망가지지 않은 듯 보였다. 바퀴도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굳이 내려서 확인하지 않고 지오는 다시 앞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제 2 부        야외 주차장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삐딱하게 주차된 짐차가 긴급 상황을 암시했다. 지오는 오는 길에 일분일초도 허비하지 않은 것처럼 고개를 묻고 빠르게 걸었다. 정문 앞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무거운 표정이 잠시 잊고 있었던 심사 일정을 상기시켰다. 일주일에 세 번 구조센터의 관리사 보조 자격으로 출근하는 지오는 구조 동물의 생사를 심사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책상이 일곱 개뿐인 구조센터는 병원 응급실의 대단한 축소판이라, 지오는 수술실에서는 간호사, 숲에서는 구조대원, 야외 계류장에서는 거의 간병인으로 헌신했다.      센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네 모서리를 들고 구조케이지를 옮기는 자원 활동가들과 마주쳤다. 작년 이맘때는 지오 역시 청바지 차림에 푸른색 활동가 조끼를 입고 무리와 몰려 다니곤 했다. 아직은 센터 직원들보다 대학생 형 누나들과 어울리는 쪽이 편했다. 지오를 발견한 활동가들이 구조케이지를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렸다. 케이지가 위아래로 흔들리더니 짐승의 코가 철창 밖으로 삐져나왔다.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개체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멧돼지였다. 맨 앞에 선 활동가 누나가 손끝으로 돼지의 뒷다리를 가리켰다.      "저걸 매달고 밭에서 발견됐대."      지그재그 모양으로 날이 선 엽구가 돼지의 허벅지를 조이고 있었다. 돼지가 케이지에서 발을 휘저을수록 엽구는 더 깊숙하게 살을 파고들었다. 활동가들은 서로 자리를 바꾸고 다시 케이지 모서리를 들어 올렸다. 돼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케이지가 기울었다. 지오도 무게가 쏠린 뒤쪽을 양손으로 받쳤다. 여섯 사람은 계속 자리를 바꿔가며 수술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복도 끝 제일 큰 수술실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었다.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재활 관리사 김 선생이 심각한 얼굴로 돼지를 받았다. 수의사들이 전부 자리를 비웠다고 했다. 익숙한 상황이었다. 외근이 잦은 구조센터에 가만히 앉아서 동물을 기다리는 인력은 거의 없었다.      "일단 재우자."      김 선생은 돼지를 케이지 채로 수술대에 올려 진정제를 투여했다. 흥분한 돼지가 좌우로 움직였다. 잠시 기다렸다가 수술대를 덮었던 군용 담요를 젖히자 초점이 흐려지는 돼지의 눈동자가 보였다. 대충 봐도 의식이 날아가기 직전이었다. 자원 활동가들이 달라붙어 잠금장치를 풀고 케이지 문을 여는 동안 지오는 김 선생을 도와 응급처치를 준비했다. 먼저 와이어 커터로 스프링을 절단하고 주둥이를 벌려 단단하게 박힌 엽구를 떼어냈다. 뼈가 비칠 정도로 깊은 상처가 표면에 드러났다. 지오는 수의사용 메스 대신 새로 장만한 칼을 김 선생에게 건넸다. 엽구에서 떨어져 나온 이물질이 부패한 가죽과 함께 매끄럽게 잘려나갔다. 뜨거운 피가 솟구치지 않고 아래로 깨끗하게 흘러내렸다. 커다란 천으로 상처를 덮자 돼지는 이불을 덮고 단잠에 빠진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슈오옥 슈오옥 돼지의 숨소리가 들렸다. 지오는 새 칼이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일이 수월할 거라는 예감이었다.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낸 지오는 야외 계류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코로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면서는 문득 죽음이 없는 하루를 상상해 보았다. 그 생각은 비행 훈련에 열중하는 매 성체를 관찰하면서 더 커졌다. 입원 3개월 차 매의 날개는 다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짓이겨졌다가 겨우 형태가 잡힌 상태였다. 덕분에 양쪽 끝에 설치된 횃대 사이를 날아다닐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높이가 낮은 구조물로 활강하는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발톱으로 철망을 차고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한쪽 날개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장난감 쥐에 경쾌한 스냅을 실어 계류장 바닥에 던져도 매는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날다가 금세 속도를 줄여버렸다.      크게 휘파람을 불어 매를 불러보았다. 갇혀 있는 매를 부르고 소리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초조했다. 어느새 계류 예산을 초과한 매를 밖으로 내보내기로 한 날이었다. 퇴실 방법은 선임 수의사가 정했다. 살아서 나가거나 죽어서 나가거나. 고통이 심하고 밖에 나가도 제 구실을 못해 죽음이 확실한 아이들은 ─수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경제적으로 죽여서 내보냈다. 지오는 진심으로 매가 시험 사냥에 성공하기를 바랐다. 계류장 가까이 붙어서 안을 살펴보았다. 철조망 벽에 세워 둔 목재 수납함, 귀찮은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인간 눈높이에 쳐놓은 차광막,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설치한 난로 조명 어디에도 지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지오는 철망 밖에 쪼그려 앉아 매를 바라보다가 아예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계류장 안으로 들어갔다. 훈련장은 지오가 열다섯 걸음을 걸어야 끝에 도달할 만큼 직사각형 모양으로 길었다. 가장자리가 떨어진 차광막을 정비하고 바닥에 뒹구는 장난감 쥐를 집어 들었다. 실제 쥐가 움직이는 속도로 실리콘 쥐를 던졌다. 줄에 연결된 모형 쥐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운동장 바닥을 쓸고 다녔다. 쥐가 발밑을 지나가도 매는 소심하게 날갯짓할 뿐 먹잇감을 건져 올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쥐를 줍는 것은 지오의 몫이었다. 줄을 당겨 올릴 때마다 실리콘을 잡는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왜 이렇게 못해?"      제멋대로 엉킨 줄의 매듭을 풀다가 지오는 점퍼 주머니에 장난감 쥐를 넣어버렸다. 계속 던진다 해도 매가 제힘으로 사냥감을 낚아채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았다.      시원한 바람이 목 뒷덜미에 닿았다. 지오는 끝까지 잠갔던 지퍼를 조금 내리고, 저녁에 따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지 묻는 김 선생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시유는 여전히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아침에 보낸 메시지는 함께 살던 집에 시유가 넣은 보증금 5백만 원을 당분간은 빼주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돈을 재촉하지 않는 시유가 이별 유예기간을 주려는 건지 궁금했지만 메시지를 무시하는 상황이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헤어진 뒤로 줄곧 보낸 모든 메시지를 시유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김 선생에게 답장을 보내려는데 활동가 형들이 사료 통을 들고 계류장을 지나쳐 갔다. 전날 계류장 청소를 도왔던 형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큰소리로 물었다.      "매는 잘해?"      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절대 성공할 것 같지 않았는데?"      "쥐를 실감나게 던져주면 잡아요."      지오는 손목에 스냅을 주며 줄을 낚아채는 시늉을 했다.      "아직 수의사님 안 왔지? 나도 좀 해보자."      "쟤도 쉬어야죠. 오후 심사에서 잘하려면 휴식을 줘야 한 대요."      한 번 뱉은 거짓말은 바퀴가 달린 것처럼 스스로 가속했다. 지오는 형을 계류장 철망 앞으로 데려가는 대신 장난감 쥐를 낚아채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매의 날갯짓을 장황하게 묘사했다. 실제로 보고 싶었던 장면들을 섞자 설명은 한층 그럴듯해졌다. 횃대를 나뭇가지처럼 차고 날아다니는 매를 상상했는지 형의 얼굴에도 만족감이 번졌다.   ​제 3 부        지오는 형을 동료들에게 돌려보내고 김 선생에게도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마침 매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김 선생의 메시지가 추가로 와 있었다. 훈련의 결과를 묻는 김 선생에게 지체 없이 답장을 전송했다.      ─성공했어요.      ─방사해도 되겠어?      바로 회신이 왔다. 네, 하고 입력했다가 잠시 손가락을 멈췄다. 몇 글자를 입력했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한참 만에 답을 했다.      ─제 생각에는요.      전송을 하고 나서는 마음이 편했다. 그저 의견을 낸 것뿐이고 충분히 그 정도 자격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가 형에게 했던 것처럼 그럴싸하게 살을 붙이지는 않았다. 매의 습성을 잘 아는 김 선생을 거짓으로 만족시키려면 너무 많은 것을 꾸며내야 했다. 마지막에 보낸 메시지도 방사를 원하는 지오의 입장에선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오는 다른 질문이 날아오기 전에 휴대폰 화면을 껐다. 손에서 진동이 느껴졌지만 확인하지 않고 사무동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내려갔다.      길에서 육식 사료가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냄새, 끝이 가벼운 비린내는 뼈를 발라낸 생닭의 냄새였다. 양발로 흰 살코기를 뜯어 먹던 너구리가 지오의 발소리에 철창과 먼 쪽으로 이동했다. 센터와 닿아 있는 야산에서 피리 소리 같은 도요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숲으로 돌아가면 차라리 저렇게 작은 새를 사냥해 먹는 편이 유리할지도 모른다. 지오는 모형 쥐 하나 사냥하지 못하는 매의 날개를 떠올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내내 장난감 쥐와 연결된 줄의 매듭이 걸리적거렸다.        휴대폰 진동은 김 선생의 메시지가 아니라 시유의 웹툰 업로드 알림이었다.      농장을 탈출한 돼지가 사람을 패고 다니는 괴상한 만화. 한때는 지오도 채색을 돕고 아이디어를 보탰던 두 사람의 만화. 지오는 돼지가 쉬고 있는 수술실 앞에서 새 연재분을 확인했다. 내용이 들어오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스크롤을 죽 내렸다. 업로드가 늦어 죄송하다는 작가의 말. 그 안에 지오를 향했던 짤막한 글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통유리로 한낮의 해가 들어왔다. 뿌옇게 빛이 번져 들어오는 창 너머로 계류장으로 가는 통로가 보였다. 유리 벽면에 부착한 버드 세이버 스티커가 사무실 바닥에도 일정한 간격으로 동물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림자는 여러 사람에게 밟힌 것처럼 길쭉하게 늘어지다가 책상 근처에서 외곽선이 깨끗하게 끊어졌다.      낮 시간의 사무실은 시끌벅적했다. 거슬리는 기계식 키보드 소리와 신고전화를 받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20평 남짓한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구조센터에는 가만히 앉아 쉬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원 활동가들은 필요한 물건을 찾아 뛰어다녔고, 자기 책상이 있는 직원들은 컴퓨터와 캐비닛 책장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철제 책장에는 주로 전문 서적과 개체기록카드 파일이 정렬되어 있었는데 파일을 들고 의자로 돌아온 사람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책상마다 파티션이 쳐져 있어 직원들은 서로 무얼 하는지 모르고 지낼 때가 많았다.      지오는 김 선생의 자리에 앉아서 그가 부탁한 서류작업을 했다. 오전 시간 동안 동물들과 함께한 재활 일지를 작성하고, 서류와 대조하여 사물함 장비 상태를 꼼꼼하게 수정했다. 지오의 노트북 화면 맨 뒤에는 언제나 검정고시 강의 페이지가 띄워져 있었다. 아르바이트와 봉사활동 틈틈이 지오는 고졸 검정고시 문제를 들여다보곤 했다.      김 선생과 선임 수의사는 꽤 오랫동안 사무실을 비웠다. 매를 살펴보고 오겠다고 말한 것이 벌써 한 시간 전이었다. 지오는 노트북으로 김 선생이 공유한 문서들을 살피다 처음 매가 들어온 날의 파일을 열어보았다. 구조 접수를 받고 지오를 데려갔던 김 선생이 작성한 기록, 날짜 밑에 첨부된 사진은 모두 지오가 휴대폰으로 직접 찍은 것들이었다.      사진 속에는 종일 땀방울이 흐를 만큼 더웠던 그날의 날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산중턱까지 닦여 있는 도로에 차를 대놓고 가파른 은행나무 길을 오르자 멀리 나지막한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석상과 연등이 아니었다면 가정집으로 착각할 만큼 작은 암자였다.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지오는 매의 숨이 이미 끊어진 줄 알았다. 매는 절에서 행사를 앞두고 만든 철사 구조물에 날개가 엉킨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죽음의 냄새를 맡고 몰려든 날벌레들이 구조물 위를 날아다녔다.      "부디 이곳에서 죽지 않게 데려가 주십시오."      스님 하나가 지오에게 다가와 말했다. 등산복을 입은 행인들이 뒤에 서서 지오가 들고 간 빈 케이지를 살폈다. 이곳에서 죽지 않게. 지오는 속으로 그 말을 여러 번 따라했다. 이곳에서, 죽지 않게, 이곳에서, 죽지 않게.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한 말인지 헷갈렸다. 그저 어떻게든 매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걸음 가까이 구조물에 접근하자 지오의 마음을 알았는지 매가 철사에 걸리지 않은 한쪽 날개를 퍼덕였다. 두터운 장갑을 끼고 매를 빼내려고 했지만 복잡하게 얽힌 철삿줄이 풀리지 않았다. 김 선생은 가방에서 커다란 모포를 꺼내 빛이 가려지도록 매를 덮었다. 움직임이 잦아드는 동안에는 바깥쪽 철사를 조금씩 잘라 구조물을 작게 만들었다. 절 앞마당에 모인 사람 모두가 김 선생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옷을 걷어붙인 두 팔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지오보다 몸이 작고 마른 김 선생은 질긴 철사 덩어리를 능숙하게 잘라 새 둥지 크기로 줄였다. 김 선생의 가위질은 구조물과 함께 매를 케이지에 넣을 수 있을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제 4 부        지오는 신입 활동가 누나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김 선생보다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고 생각했다. 수의사가 죽이기로 했다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누나를 수술실로 보내지 않는 것이 지금 지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산책 삼아 누나와 사무동 건물을 크게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누나와 하나씩 나눠들자 센터장이 희망이라고 이름 지은 백구가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누나는 줄곧 땅을 보고 걸었다. 대화가 끊길 때마다 잠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 말고는 주변을 살피지도 않았다. 누나? 하고 부르면 아무 말 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웃어 보이는 게 고작이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오는 말없이 걷는 속도를 천천히 늦췄다. 뒤쳐져 걷던 누나와의 거리가 티 나지 않게 조금씩 줄어들었다.      수의사와 김 선생은 두 사람이 수술동 맞은편 화단을 지날 때 나타났다. 못 본 척 커피를 마시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바닥에 발을 끄는 누나의 신발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있는 대로 분한 내색을 하고 걷는 누나를 발견하고 수의사가 화단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왜 여기들 나와 있어?"      수의사는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벌써 끝났나요?" 지오가 묻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표정 없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누나는 입을 떼지 않았다. 수의사를 지나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걸어갔다.      "저기, 매는 어떻게 해요?"      지오의 물음에 수의사는 멀리 걸어가는 누나의 뒷모습을 향해 대답했다.      "괜찮지 않겠어?" 그러고는 돼지의 죽음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의 호의가 누나에게 닿을 만큼 큰 목소리로 말했다.      "매는 오늘 방사하자고. 알았지?"      "선생님도 확인하셨어요?"      지오가 이번에는 김 선생에게 재차 물었다. 이제 날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다친 부위 말고 다른 곳도 살펴봤는지, 오전에 힘들어하던 착지는 그들의 심사를 통과했는지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수의사는 한 발짝 떨어져서 둘의 대화를 들었다. 눈동자는 의아하다는 듯 지오와 김 선생의 얼굴을 번갈아 응시했다.      "왜 그래? 바라던 거 아니야?"      수의사가 거듭 말끝을 올렸다.      "방사 가능하다며?"      그 말에 김 선생은 지오를 쳐다봤다. 지오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미적거렸다. 적당히 말을 얼버무리고 급한 일이 떠오른 것처럼 다리를 움직였다. 괜찮을 거야, 하마터면 그렇게 말할 뻔했다. 지오의 혼잣말은 시유와 함께 살면서, 애정을 주고받으면서 고쳐졌다가 다시 문득문득 튀어나왔다. 괜찮아, 하고 오랜 입버릇이 나오려 할 때면 지오는 의식적으로 두 입술을 꾹 다물었다.      바닥에 턱을 괴고 누워 있던 백구가 지오를 따라올 것처럼 일어나더니 수의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백구의 움직임을 의식하던 지오는 얼마간 정면을 향해 걷다가 사무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오는 주변을 살피며 다시 흙길로 걸어 나왔다. 돌계단 위에서 내려다보자 두 사람은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 계류장까지 가는 길 내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올라갈수록 나무 그늘이 짙어졌고, 사료 통을 들고 이곳저곳을 오가던 활동가 무리도 보이지 않았다. 철조망 내부만 오전과 같았다. 매는 여전히 횃대 위에 가만히 앉아서 지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고리를 풀고 안으로 들어간 지오는 사무실 캐비닛에서 몰래 챙겨온 추적기를 품에서 꺼냈다. 수의사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매의 등허리에 추적기를 달고 싶었다. 일단 기기를 달면 방생은 확정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센터는 숫자 몇 개로 간편하게 매를 추적할 수 있었다. 홀가분해야 했다. 분명 마음이 가벼워야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았다. 애매모호한 감정이 추적기를 꺼내 든 손을 자꾸 아래로 끌어내렸다. 보수 도구를 담아둔 유리통에 지오와 매의 실루엣, 그리고 울타리 너머 하늘의 구름이 희미하게 반사되었다. 지오는 고개를 까닥거리는 매와 눈을 맞추고 괜히 보관함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기어이 돼지와 매의 운명을 가른 자신의 거짓 문자를 생각해냈다. 지오는 한 가지만 확실히 하자고 마음먹었다. 매를 날려 보내기 전에 한 가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장면이 남아 있었다.      줄에 매달린 장난감 쥐는 여전히 점퍼 주머니 속에 있었다. 쥐를 꺼내 들자 실리콘 몸체에 든 플라스틱 알갱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쥐를 허공에다 힘껏 던져보았다. 소리에 관심을 보이며 주위를 돌던 매가 발톱으로 쥐를 낚아채 구조물 위에 앉았다. 지오는 기꺼이 밧줄을 잡아 당겼다. 쥐를 거두어들인 뒤에 알갱이들을 흔들고 다시 공중에 던졌다. 울타리, 구조물, 그다음에는 매의 몸통을 향해 쥐가 날아갔다. 어깨가 아플 때까지 계속 던졌지만 첫 시도처럼 매가 사냥에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 지오가 던진 장난감 쥐는 매의 부리나 발톱을 스치고 마지막에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구조센터는 군데군데 깨지고 움푹 파인 아스팔트 도로와 비포장 길을 모두 지나야 출입이 가능했다. 센터에 출입하는 자동차 바퀴와 직원들의 신발은 성한 데가 없었다. 지오는 앞코 가죽이 허옇게 벗겨진 자신의 등산화를 내려다보았다. 지오가 밟고 서 있는 창고 앞마당은 아스팔트였지만 왼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벌겋게 흙이 드러나 있는 야산이었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지오는 샛길을 타고 올라가 산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건조한 흙길 위에 낙엽이 쌓여 미끄러웠다. 신나무 낙엽이 두텁게 깔린 산중턱을 걷는데 면적이 넓은 상수리나무 잎사귀가 낙하산을 펼친 것처럼 아래로 내려왔다. 누런 낙엽들 사이로 빨갛거나 미처 익지 못해 푸르스름한 잎들이 알록달록하게 섞여들었다. 사람이 가지 못하는 길 위에선 새들이 낙엽을 밟아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다. 비좁은 샛길을 계속 들어가자 굵은 회색빛 나무줄기에 사유지라는 경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 옆으로 나 있는 비탈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목적지였다. 지오는 가장자리가 헤지고 떨어져나간 안전띠 밑으로 몸을 숙이고 깊은 산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갔다.      돌보는 사람이 없어 거칠어진 무덤을 지나자 작은 공터가 나왔다. 하얀 평지 위에 집을 짓다만 철골 구조물이 보였다. 철골이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미완성 집은 처음 지오가 공터를 발견했을 때부터 나무판자, 공사용 흙더미들과 함께 몇 해째 방치된 채였다. 지오는 이따금 집터에 서서 구조물의 사연을 상상해 보았다. 누군가 선산에 집을 짓다가 건축업자에게 돈을 지불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되었다든가, 건강한 노인이 건축을 얕보고 혼자 집을 세우려다 결국 뒤편 무덤에 묻혀 있다든가,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철골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려앉은 천막 아래서 고양이 두 마리가 지오에게 다가왔다. 과거가 어떻든 방치된 구조물은 지금 초대형 캣타워로 이용되고 있었다. 센터에서 가지고 온 참치 캔을 그늘에 따주고 근처 흙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지오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쉬고 싶을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낡은 집터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으면 복잡한 심경이 조금은 나아졌다.      지오는 집에서 싸온 샐러드 김밥을 꺼냈다. 늦은 점심이었다. 바닥에 앉은 채로 대강 호일 끝부분만 열고 김밥 한 개를 입에 넣었다. 전에 시유가 가르쳐준 대로 말았는데도 함께 먹던 맛이 나지 않았다. 같이 만들었던 소이 마요네즈가 상하기라도 했는지 혀에서 시큼한 맛이 났다. 시유가 공유했던 채식 폴더에서 김밥 레시피를 확인했다. 물기를 짠 두부, 당근, 우엉, 오이와 로메인 상추까지, 만드는 과정에서 빠뜨린 재료는 없었다. 지오는 입안에 굴러다니는 텁텁한 밥알을 억지로 씹어 삼켰다. 꼬리만 먹고 남은 김밥은 다시 알루미늄 호일로 감쌌다. 산에서 먹는 점심은 언제나 짧게 끝이 났다. 간식거리를 찾아 가방을 뒤졌지만 가지고 나온 음식이라고는 이미 고양이들을 위해 꺼낸 참치 통조림이 전부였다.      휴대폰 진동이 쉴 새 없이 울렸다. 간식을 나눠 먹으려는 활동가 형 누나들이 그룹 채팅창에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지오는 언젠가 회식을 마치고 집에 김 선생을 데려간 날 이후로 대부분의 식사를 혼자 했다. 두 번의 술자리를 계기로 다른 직원들과 나누는 음식도 대화 주제도 왜인지 내키지가 않았다.      그날 회식은 기간제 근로 자격을 얻은 지오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지오의 말에도 김 선생이 사람을 불러 모으겠다고 먼저 나섰다. 김 선생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이 센터 근처 터미널로 모여들었다. 원래는 사무실 직원들끼리 보기로 했던 약속이 자원 활동가들까지 하나둘 합류하니 금세 열 명이 넘어갔다. 매주 센터 안에서 얼굴을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밖에서 따로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오는 오토바이를 바깥에 대놓고 터미널 벽시계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차를 가져온 동료들은 이미 모두 모여서 진지하게 저녁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터미널 근처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앉아서 먹을 만한 식당은 고깃집 아니면 감자탕집이 고작이었다. 고기를 먹자는 사람이 반, 감자탕이 반의 반, 나머지는 둘 중에 아무거나 먹자고 했다. 고기가 없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 모임에서 고기를 빼자는 말은 나머지 사람 모두의 배려를 요구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오가 휴대폰으로 고기 없는 음식점을 검색해본 것은 시유가 보낸 메시지 때문이었다. 곧 식당으로 이동할 것 같다는 말에 시유는 대답 대신 갓 완성한 돼지 만화의 스케치를 사진으로 보내왔다.      ─“나보다 우월한 인간만 우리를 먹어라.” 돼지가 괭이를 들고 두 발로 서서 외쳤다.      시유가 보낸 첫 번째 컷은 고지능 돼지가 무기를 빼앗아들고 농장 주인에게 맞서는 장면이었다. 위풍당당한 등장 신에 돼지를 감싸는 배경선을 추천했던 사람은 지오였다. 주인공 돼지의 아이큐는 인간보다 높게 설정되어 있었다. 사료 통에 깔려 있는 신문을 읽다가 말과 글을 깨치고, 세상을 알고,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던지는 녀석이니까, 돼지의 대사는 사실상 어느 인간에게도 먹히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다음 컷에서는 돼지우리를 박살내고, 돼지 군단과 농장을 탈출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이제 어디로 가지?” 주인공 돼지를 뒤따라온 돼지가 물었다.      ─“저걸 타자.” 주인공 돼지가 냉동 탑차를 가리켰다.      ─“몰 줄 알아?” 돼지들이 차로 달려가면서 외쳤다.      ─“일단 타 봐.” 주인공 돼지는 운전석으로 올라타 마구잡이로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하는 거더라, 봐둔 적이 있는데…? 돼지의 생각 풍선이 바쁘게 움직이는 앞다리 한쪽을 가렸다.      ─“부르릉~” 시동이 걸리고 차가 앞으로 나갔다.      ─“위잉~” 짐칸에 냉각팬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게 우리를 냉동 삼겹으로 만들려고 하나!” 돼지들이 한 데 뭉쳐 앉으며 소리쳤다.      ─“미안. 에어컨을 틀어본다는 게…” 주인공 돼지가 버튼을 몇 개 누르고 황급히 핸들을 돌렸다.      지오는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흘리고 손가락으로 한 컷씩 사진을 넘겼다. 고지능 돼지는 길을 가던 도중에 나뭇가지로 초보 글자를 만들어 짐칸 문에 붙이고 도심으로 차를 몰았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켜자 농장주의 최근 목적지 목록이 떠올랐다. 돼지들의 목적지는 목록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정육 창고였다.      ─“이것들 뭐야?” 가죽 앞치마를 입은 정육점 주인이 차에서 내리는 돼지들을 보고 외쳤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잘 알아.” 돼지가 괭이를 들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주인은 황급히 창고에서 정형 칼을 가지고 나왔다.      ─“내가 할게.” 돼지가 주인과 일대일로 마주섰고 다른 돼지들이 복싱 링을 만드는 것처럼 둥그렇게 둘을 둘러쌌다.      돼지의 눈높이를 의도한 건지 정육점 주인을 그린 것은 대부분 로우 앵글이었다. 덩치 큰 중년의 사내가 돼지에게 발길질을 하고 칼을 휘둘렀다. 위기에 처한 돼지가 칼을 막기 위해 괭이를 치켜든 순간, 괭이가 남자의 허벅다리를 푹 찔렀다.      지오는 클로즈업 그림으로 표현된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면서 단순한 그림체 너머에 있는 시유를 생각했다. 너무 과한 장면은 아닌지 메시지를 보내려다 관두었다. 만화를 본 사람들이 간혹 악성 댓글을 달았지만 그럴수록 시유는 더욱 발칙한 장면을 그려내 그들의 손가락을 민망하게 만들곤 했다.      처음부터 지오가 시유의 채식에 동참한 건 아니었다. 옆에서 고기를 구우면 한 번쯤 시유가 젓가락을 들겠지 기대하던 시절도 솔직히 있었다. 채소를 구운 프라이팬에 따로 삼겹살 한 줄을 굽거나, 된장찌개를 끓인 다음 먼저 시유의 대접에 덜고 차돌박이를 넣어 한 번 더 끓여내는 일이 성가시게 느껴질 때쯤 지오는 진지하게 채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도 고기를 좀 줄여볼까, 하고 말한 것은 그보다 한참 뒤, 고기를 구울 때마다 시유의 밥그릇에 남겨져 있는 밥을 보고, 새삼 시유가 꽤 오랫동안 고기 냄새를 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날이었다.    제 5 부        시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존 로빈스의 책『음식 혁명』을 읽고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둔다든가, 『왓 더 헬스』, 『도미니언』 같은 다큐멘터리를 노트북으로 다운 받아 거실 텔레비전에 연결해서 보는 정도가 시유가 한 행동의 전부였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슈퍼 돼지 영화 『옥자』를 몇 번이나 보면서는 그냥 만화에 참고할 이미지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지오는 우선 냉동실에서 돼지부터 모두 치웠다. 개인 접시에 닭과 생선을 놓는 빈도가 줄고 점차 시유가 차리는 비건 음식에 익숙해졌을 무렵 지오는 그동안 어떻게 자신을 채근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지 시유에게 물어보았다.      "해치고 강요하지 않으려고 채식하는 거니까."      시유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힘들지 않았어?"      "언젠가는 같이 해줄 거라고 생각했지. 반드시 같이 할 필요는 없지만."      전도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진심으로 감탄이 나왔다. 그날 저녁 지오는 자진해서 템페를 굽고, 볶은 채소에 귀리 음료를 부어 버섯 리소토를 만들었다. 대단한 음식처럼 먹어주는 시유를 보는 것이 좋았다. 시유는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놓고 휴대폰을 가지고 와 그동안 수집한 채식 레시피 폴더를 보여주었다. 패스트푸드부터 슬로푸드까지, 시유가 찍어놓은 음식 사진은 삼백 장이 넘었다. 전부 다 먹어보자, 지오는 시유와 마주 앉아서 말했다. 함께 앉는 식탁에서 채식 메뉴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결국 구조센터 직원들은 터미널 앞 돼지고깃집을 선택했다. 테이블 세 개를 이어붙인 자리에서 지오는 김 선생과 같은 줄 맨 끝자리에 앉았다.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하얀 접시에 쌓여 있던 선홍빛 고기들이 숯불 위로 올라갔다. 비계가 너무 많지 않느냐고 누군가 말했지만, 숯에 구우면 기름이 빠질 거라는 김 선생의 말에 모두가 불평 없이 고기를 집었다. 처음 석쇠에 올린 세 줄의 고기는 젓가락질 몇 번에 사라졌다. 옆자리에 앉은 세 살 터울 활동가 형이 유독 지방이 많이 붙은 고기를 집어 석쇠에 올렸고, 이내 기름이 떨어진 자리에서 검게 그을린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연기는 하필 지오가 앉은 자리로 향했다. 몸을 조금 틀어 앉았지만 기름이 한 방울 떨어질 때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오는 등받이에 힘을 주어 의자를 살짝 뒤로 밀었다.      지오와 같은 줄에 앉은 김 선생은 대학원에서 쓰고 있는 박사 논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고기를 입에 넣은 채 말하는 김 선생의 옆얼굴이 지오의 시야에 들어왔다.      "수정 요청이 자꾸 들어와서, 그게 제일 힘들지."      "높은 점수대 저널은 확실히 까다롭게 보나요?"      김 선생과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물었다.      "그렇긴 한데. 하다보니까 리뷰어마다 원하는 방향이 있는 것 같더라고."      "그게 뭔데요?"      "요새 트렌드는 역시 동물 자체보다는 인간 질병하고 연결 짓는 거겠지."      김 선생은 질문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두루 쳐다보며 대답했다. 김 선생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저마다 예시를 하나씩 들어 보이며 김 선생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지오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다. 수의학과에 합격한다 해도 구체적으로 해보고 싶은 연구가 아직은 없었다.      활동가 형이 추가 주문한 삼겹살이 나왔다. 새 접시를 지오 앞에다 내려놓은 종업원은 겉면이 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잘라 석쇠 가장자리에 두르고, 바로 올려드려요? 하고 선홍빛 고기를 가리켰다. 지오는 고개를 저은 뒤에 다른 테이블의 불판을 확인했다. 그러다 나란히 앉아 있는 김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왜 더 안 굽고? 많이 먹어."      "먹고 있어요."      지오는 기름진 파절이 접시를 들어 김 선생에게 보였다. 돼지기름에 볶은 김치와 콩나물이 보호색처럼 섞여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파 말고 고기 말이야. 무슨 채식이라도 하냐?"      김 선생이 건넨 건 살가운 농담이었지만 지오의 마음은 잠시 동안 어수선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고기를 먹은 뒤였다. 살코기 한 점을 입에 집어넣은 순간부터 줄곧 거부감 없이 삼겹살을 삼켰다. 집에서 시유와 채식을 한다고 해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털과 잉크가 남아 있는 돼지껍데기를 보고 비위가 상한다든가 고기 굽는 냄새가 역겨워진다든가 하는 일은 지오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씩 해보고는 있는데요."      지오는 어수선한 마음을 거두려고 그렇게 말했다. 채식을 한다는 말에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모두 지오를 쳐다봤다. 김 선생이 그들을 대표해 지오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럼 다른 데 가자고 하지?"      "아뇨, 저는 플렉시테리언이라고…… 평소에는 채식을 하다가 가끔 고기를 먹어도 되는 거라서……."      지오는 종업원에게 했던 것보다는 완곡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젠가 시유는 사람이 일주일 중 하루 채식을 하면 바뀌는 것들을 나열하며 플렉시테리언이라는 단어를 소개했다. 연간 몇 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가 감소하고, 몇 리터의 물이 절약되고 하는 말들은 아마 한 치의 과장도 없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가끔씩 고기를 먹는 플렉시테리언 역시 엄연한 채식주의자의 한 축이라는 말을 지오는 진심으로 믿었다. 그리고 삼겹살집에 앉아 그 단어를 말하는 순간에는 누구보다 특히 자신에게 알맞은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오는 채식주의자를 욕보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도 반감을 사지 않으려고 그 멋진 말을 선택했다. 마침 마주앉은 사람이 자기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며 거들었고, 건강 때문에 특별한 날에만 고기를 먹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 덕분인지, 사람들은 이해가 수월해진 표정이었다. 다만 지오는 먹어도 된다고 표현한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고기를 허락하고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아서 그랬다.      "너는 조금 유연하게 하겠다는 거네?"      옆자리 형이 말했다. 형은 집게로 불판 가장자리 고기들을 집어 같은 테이블 사람들 앞에다 놓았다. 지오의 파절이 위에도 잘 익은 고기 한 점이 놓였다.      사람들은 갑자기 채식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연하다는 형의 말 때문인지 그들은 마치 지오를 채식주의자가 아닌 것처럼 대했다. 채식주의자라는 사람들은 대체 식물은 어떻게 먹는 거야? 풀은 생명이 아닌 거야? 어차피 동물도 이미 죽은 애들만 먹는 거잖아, 하는 보편적인 공격들은 지오가 아니라 그곳에 없는 다른 사람들을 향했다. 지오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으면 되었다. 제대로 반박하자니 스스로 답을 낼 수 없는 질문도 섞여 있어서 조용히 위아래로 고개만 움직였다. 하지만, 그 사람들 자기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라는 말만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지오의 신경을 건드렸다. 김 선생의 직속 후배인 젊은 관리사는 아예 자세를 고쳐 앉고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 매형이 안성에서 한우 뷔페를 하거든요. 얼마 전에 무슨 단체가 와서는 주차장에서 피켓을 들고 난리를 피웠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자기들만 특별해서 남을 가르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요. 채식을 하고 싶으면 조용히 할 일이지 왜 남을 괴롭히고 피해를 주느냐고요."      관리사는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동의를 구하듯이 지오를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지오를 공격하려는 시선은 아니었다. 비난은 지오를 넘어 어쩌면 지오가 이미 닿았거나 앞으로 닿을지 모르는 영역에 효과적으로 미쳤다. 지오는 최대한 태연하게 시선을 받아넘기는 동시에 속으로는 시유를 생각했다. 그동안 시유가 의도적으로 보여주었거나 함께 살면서 자연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모습들을. 지오의 주변에 상주하던 텍스트와 이미지들, 강요하지 않으려고 채식을 한다는 말과 목소리와 시유가 혼자서 차분히 식단을 지키던 시간들을. 지오는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로 뭉치거나 붙잡지 않고 천천히 흘려보냈다. 그리고 시유가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지 상상해보는 것으로 관리사의 눈길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하늘빛이 캄캄했다. 서둘러 귀가하려는데 술에 취한 김 선생이 지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고는 지오네 집에 가서 한 잔 더 마시면 딱 좋겠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내내 옆자리에 앉았던 활동가 형도 바짝 따라붙었다. 은근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가도 되겠느냐고 메시지를 보내자 시유는 그렇게 하라고 답했다. 계산대 앞에 몰려 있는 일행과 잠시 떨어져서, 지오는 집에 있는 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럼 우리 물건들 좀 치워놔 줄래?"      "집 깨끗한데?"      시유는 지오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리 여행 사진이나 커플로 산 물건들 있잖아."   제 6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지오가 사촌 누나와 함께 사는 줄만 알았다. 집을 구할 때 두 사람이 합의한 대로였다. 가출 팸 출신끼리 눈이 맞아 같이 산다는 걸 굳이 밝히지는 않아도 된다고,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시유였다. 동물 구조센터나 배달 가게에 지오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오는 계산대 앞으로 돌아가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점퍼에 탈취제를 뿌렸다. 나란히 선 사람들도 지오를 따라 외투에 밴 고기 냄새를 죽였다. 하나둘 식당을 떠나고 남은 세 사람은 김 선생의 차에 앉아 대리 기사를 기다렸다. 좁은 공간에 모여 앉으니 탈취제 냄새가 차 안에 진동했다. 점퍼 옷깃을 젖혀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시면 라벤더 향에 섞인 고기 냄새가 올라왔다. 창문을 열고 옷을 벗어 공기 중에 털었다. 화학약품과 섞인 기름 냄새는 옷을 털면 털수록 옅어지지 않고 강하게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집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걸레질이라도 한 것처럼 바닥이 깨끗했다. 아침까지 현관에 놓여 있던 커플 운동화, 냉장고에 붙여 놓았던 폴라로이드 사진과 메모들도 보이지 않았다. 시유는 방에서 나와 지오의 손님들에게 인사한 다음 모두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올 때까지 서서 기다렸다.      "누난 뭘 청소까지 했어?"      미안한 마음에 공연히 무뚝뚝하게 물었으나 시유는 지오의 등을 툭 치고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들어가서 일을 보겠다, 재차 인사를 건네고는 방으로 들어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의 틈만 남긴 채 문을 닫았다. 시유는 고지능 돼지 만화의 정식 연재처가 정해져 마감일마다 채색 작업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따금 지오가 나서 배경 채색을 도왔지만 매주 일정이 빠듯했다. 지오는 맥주나 조금 내주고 사람들을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문 가까이 서서 문틈을 넓히자 책상 의자에 앉아 머리에 헤드셋을 끼는 시유의 뒷모습이 보였다. 문틈에 살짝 얼굴만 집어넣은 채 시유에게 말을 걸었다.      "금방 마무리하고 도와줄게."      시유는 지오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음악을 크게 틀었는지 바닥에 뻗은 발을 까닥거리며 마우스만 움직였다.      지오의 뒤에서는 김 선생이 집 앞에서 사온 과자 봉지를 뜯었다. 맥주는 냉장고에서 지오가 꺼내왔다. 이미 많이들 마셨기 때문에 일단 한 캔씩만 꺼내보기로 했다. 거실 한 가운데 상을 펴놓고 남자 셋이서 캔을 부딪쳤다. 동물 이야기로 시작해 센터에서 있었던 일로 화제를 옮기자 금세 손님들의 맥주 캔이 비었다. 배를 벌린 채 널브러져 있는 과자봉지도 바닥을 드러냈다. 마침 화장실에 다녀온 김 선생이 모자란 술을 가지러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린 사람들이 잘 해놓고 사네."      김 선생은 맥주 캔을 꺼내 들고 말했다. 부엌을 건너온 김 선생의 시선은 거실을 지나 불 꺼진 옷 방에 잠시 머물렀다. 사촌 누나가 깔끔한 스타일인가 봐? 하는 말소리를 못들은 체하며 지오는 주방 건조대에 있는 커플 머그컵을 쳐다보았다. 그다음엔 김 선생을 따라 눈으로 옷 방을 빠르게 훑었다. 창을 두고 좌우 벽에 딱 맞게 짠 행거에는 다행히 시유가 신경 써서 치웠어야 할 물건은 없었다.      "너 잠은 어디서 자?"      다시 김 선생이 물었다. 그제야 지오는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시유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더블 사이즈 침대가 있는 두 사람의 보금자리는 안방 문이 거의 닫혀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지오는 매일 밤 소파에서 잠을 청하는 것처럼 등을 대고 누워 보였다. 거실이 편하다고 말한 뒤에는 공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소파에 누워보라고 했다. 김 선생이 소파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지오는 일어난 김에 부엌으로 가 자신의 머그컵에 물을 받았다. 활동가 형이 찬물을 달라며 지오를 쫓아왔다. 지오는 시유의 컵에 물을 받아 건넸고, 그러다 문득 애인 사이가 아니어도 컵 세트 정도는 같이 쓸 수 있는데 과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유 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귀찮고 성가시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몰랐다. 무턱대고 사람들을 집에 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전화를 끊은 뒤에 디자인과 색이 같은 커플 운동화를 치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지오는 뒤늦게 시유의 입장을 헤아려보려고 애썼다.      형은 컵을 다 비우고도 부엌을 기웃거렸다. 시원한 물을 마시니까 이제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형이 냉장고 문을 열자 거실에 있는 김 선생도 관심을 보였다. 짭조름한 것 좀 있나? 김 선생이 물었고, 예를 들면 어떤 거요? 형이 대답했다. 소시지나 만두 같은 거? 김 선생이 소파에 엉덩이를 붙인 채 다시 묻자 냉장고 안을 살피던 형이 거실을 향해 말했다.      "풀떼기 밖에 안 보이는데요?"      목소리가 컸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지만 헤드셋을 벗었다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굳이 문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지는 않았다. 대신 지오는 부엌에서 턱으로 안방 문을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가 채식을 해서."      사실 집에서는 시유의 식생활에 꽤나 동참하고 있었지만 지오는 거리를 두고 그렇게 말했다. 저녁을 고깃집에서 먹어놓고 같이 완전한 채식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지오가 냉동실 문을 열어 손님들이 만족할 만한 음식을 찾는 동안 거실과 부엌에서는 채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어떻게 채소만 먹고 살지? 치즈 같은 것도 없어? 치즈는 왜 안 돼? 형이 궁금증을 쏟아내자, 자기들끼리 나눠놓은 등급이 있어, 생선은 된다 닭은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유제품까지 안 먹으면 완전 강성인 건데, 하고 김 선생이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았다. 형은 치킨만은 사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돼지는 참아도 닭은 못 참을 것 같다는 형의 말을 자르고 김 선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키운 동물인지를 봐야지, 무작정 안 먹는다고 좋은 건 아니거든. 필수 아미노산은 동물성 단백질이 월등하다는 연구도 있고."      김 선생의 마지막 말은 오롯이 지오에게로 향했다.      "같이 사는 네가 고생이겠다."      지오는 계속해서 냉장고를 뒤졌지만 냉동실에서도 마땅한 안주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싱크대 하부 장을 열자 각종 양념 통들 옆에 시유가 사다놓은 채식 라면이 보였다. 라면만큼은 모두가 반겼다. 지오는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 세 개를 끓였다. 하부 장에는 두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것 말고 특별한 날 꺼내자고 시유가 사놓은 그릇들도 있었다. 상에 라면을 올려놓고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두 사람은 시식하듯이 각자 그릇에 덜어서 라면을 먹었다. 채식 라면이라 그런지 괜히 좀 심심한데요, 형이 그릇을 비우고 말하자 이번에도 김 선생은, 맛은 비슷한 것 같은데 성분을 봐야 해, 봉지 좀 가지고 와 봐, 하고 대화의 방향을 조금 틀었다.      "진짜 고기는 하나도 안 들어갔나? 고기 맛 흉내 내겠다고 때려 넣는 첨가물이 몸에 더 안 좋아. 그걸 알아야 돼."      라면 봉지를 받아 든 김 선생이 두 사람을 가르치듯 말했다. 식품 성분표를 자세히 확인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김 선생은 뒷면에 인쇄된 작은 글자들을 대강 훑어보는 것 같더니 이내 봉지를 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듯 개인 접시를 입에 가져다 대고 면발과 국물을 한입에 후루룩 빨아들였다.      술자리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냉장고에 사 두었던 술은 소주까지 완전히 동이 났고, 손님들은 택시 할증이 풀리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지오는 시유의 채색 작업을 도와주지 못했다. 냄비와 그릇을 대충 싱크대에 넣어놓고 안방 문을 열자 홀로 작업을 끝낸 시유가 거실로 나왔다.      시유는 집에 남아 있는 고기 냄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환기만 시킬 뿐 냄새에 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아 지오를 답답하게 했다. 지오가 옷 방에서 옷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시유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괜찮은 조언 좀 들었어? 공부 가르쳐주는 사람이라 데려온 거잖아."      시유가 하는 말은 대개 그런 것들이었다. 직설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도움을 받아야 해? 진짜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 뜬금없이 묻거나, 그냥 네가 필요 이상으로 잘하는 것 같아서, 하고 말을 돌리는 식이었다.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삼겹살 냄새 때문이 아닐까, 지오는 생각했다.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선생님이 꼭 삼겹살집에 가야 한다고 해서. 축하하는 자리라서 그렇다나 뭐라나."      "내가 고기 먹는 걸로 뭐라고 한 적 없잖아. 왜 그런 말을 해?"      시유는 그제야 알아듣기 쉬운 말을 꺼냈다.      "그 사람한테 왜 그렇게 하는 건데? 네가 가기 싫으면 안 가겠다고 하면 됐잖아."      지오는 곧고 정직한 시유의 시선을 겨우 받아넘겼다. 그러면서 삼겹살집에서 관리사의 말을 들을 때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해보려고 노력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입을 헹구고 거울을 보는데 새 옷에서도 머리카락에서도 여전히 고기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제 7 부        구조센터를 빠져나온 것은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뒤였다. 지오는 지상 주차장 계단을 내려오다 무언가 뒤를 잡아끄는 느낌에 구조센터를 올려다보았다.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일합니다, 쓰여 있는 현수막 너머로, 그 안에 속해 있기만 하면 다른 사람의 호감을 보장하던 구조센터의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구조센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보통 좋은 일 하시네요, 말했고, 그 포장 덕분에 지오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반나절 안에, 단지 말 한 마디에 돼지는 죽고 매는 살았다는 사실, 이제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센터의 모순이 새삼 지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오는 죽은 돼지보다는 살아나간 매를 생각하려고 애썼다. 새장에 넣고 자루를 씌운 매의 머리, 시야를 가리자 차분해지던 날개, 가락지를 채운 발목, 지피에스 추적기를 부착한 등…… 지오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케이지 속 개체를 눈에 담으며 익숙한 은행나무 숲으로 향했었다. 계절이 바뀌는 사이 누렇게 갈변한 나무 숲. 절에서 벌목을 했는지 푸석하고 비탈진 땅에 가로로 누워 있는 나무줄기들이 김 선생과 지오의 산행을 방해했다.      탁 트인 땅을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 지오는 김 선생보다 앞장서 숲에 숨겨진 덫이 있는지 살폈다. 쇠막대기로 나무를 훑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 퍼졌다. 지오는 매끈하게 잘린 나무 밑동부리를 밟고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게 벌어진 나무들 사이로 서쪽으로 넘어가는 노란 햇살이 비쳐 들었다. 새장 문을 열고 매의 얼굴을 덮어두었던 자루를 벗겼다. 무거운 새장이 쓰러질 정도로 움직이던 매는 두 사람이 말릴 새도 없이 바닥을 치고 해가 떠 있는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지오는 발을 접고 날아가는 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땅과 수평하지 못한 오른쪽 날개를 보면서는 매가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더 이상 매를 위해 거짓말하고 숲까지 나와 먹잇감을 던져줄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는 점과 숫자들이 매의 일상을 보고할 것이다. 좌표의 움직임이 멎었을 때 다시 숲을 뒤져서 시체를 거두고 추적기를 회수하는 것 정도가 사람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하나라도 살려서 좋겠구나."      김 선생이 센터로 돌아오는 차 운전석에서 말했다. 지오는 잠시 눈길을 돌려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는 빈 새장을 쳐다보았다. 이대로 보내도 괜찮은 거 맞죠, 그렇게 중얼거린 것은 센터에 도착해 퇴근 준비를 하면서였다. 답은 저녁이 되어도 나오지 않았다. 시유에게 전화해 대신 괜찮다고 말해주는 목소리라도 듣는다면 정말 괜찮을 것 같은데 선뜻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두커니 주차장 계단에 서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활동가 형 누나들이 지오를 지나쳐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아직 안 갔어?"      위에서 지오를 부르는 김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 선생은 서류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외투를 고쳐 입으면서 지오에게 다가왔다.      "알지? 똑같이 그 학교 앞으로 가면 돼."      "오늘도 같이 안 가세요?"      "이제 나 없어도 되잖아? 물건은 그 사람 통해서 보내고."      김 선생은 지오의 등을 떠밀고 계단을 내려갔다. 몸에 힘을 줘 제자리에서 버텼다. 이런 상태로 아르바이트를 가자니 마음이 더욱 내려앉았다. 더는 구조센터 건물을 돌아보는 마음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지오는 유독 가파르게 느껴지는 계단 마지막 한 칸을 겨우 내려왔다. 그리고 오토바이가 있는 쪽으로, 어두컴컴한 주차장 구석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은 언제나 똑같았다. 칼 가게를 향해 달렸던 지방도로를 되돌아가 어두침침한 시골길을 달리는 경로. 울퉁불퉁한 흙길에 들어서자 오토바이 바퀴에서 어김없이 자갈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오토바이를 세우고 고글과 이어폰을 착용했다. 라디오 어플리케이션을 켜고 마지막 파일을 재생하자 몇 분 전에 녹음된 일기 예보가 흘러나왔다. 구름 낀 저녁이지만 밤사이 비 소식은 없다고 했다. 다만 점차 짙어지는 안개에 주의하라는 기상 캐스터의 말에 지오는 너무 늦지 않게 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후미진 비포장도로는 가로등불이 두 개 건너 하나씩만 들어왔다. 좌우는 불빛 하나 없는 논밭이었고 전방은 구조센터에서 시작된 야산의 능선들이 시커멓게 둘러쳐져 있었다. 자주 달리는 길이었지만 잊지 않고 안개등을 켰다. 아래쪽까지 빛이 들어와 흙바닥에 깔린 돌 알맹이들이 보였다. 오전에 속도를 내 달렸던 도로 위에서 지오는 조심스럽게 두 바퀴를 몰았다.      불 꺼진 신호등을 여러 개 지나쳐 조용한 마을에 진입했다. 길가에 세워진 녹슨 표지판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을 알렸다. 인도 쪽으로 한 칸 들어가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버스 정류장에 오토바이를 댔다. 바로 동업자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용한 마을이라 그런지 신호음이 귓가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세 번째 신호가 닿았을 때 지오는 볼륨을 줄이고 이어폰을 귀에서 빼버렸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멘트가 나올 때까지 작은 신호가 끊이지 않을 것처럼 계속해서 이어졌다.      라이트를 끄고 오토바이에서 내리자 마주 서 있는 건물이 짙은 회색빛 실루엣으로 보였다. 약속 장소는 오래전 아이들의 발길이 끊긴 초등학교였다. 활짝 열려 있는 교문을 통해 보이는 폐교의 모습이 음산했다. 깨진 유리창이 시커멓게 속을 노출했고 축구 골대와 철봉이 사라진 땅은 자갈밭 자체였다. 버려진 운동장 한편은 그나마 주민들이 키 작은 작물을 심어 밭으로 사용하는 듯했지만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처럼 완전히 방치된 채였다.      담벼락을 따라 학교 뒤편으로 가면 작은 개울이 나왔다. 개울은 먼 산에서 내려와 커다란 나무에 부서지고 두 갈래로 나뉘어 흘렀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개울 근처로 난 둑길을 걸었다. 물소리와 흙에 닿는 발소리 말고는 고요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평평한 돌을 딛고 서자 사방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지오를 감쌌다. 그대로 서서 휴대폰 빛을 끄고 운동화 밑바닥을 물에 적셨다.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리면 반드시 반딧불이 하나가 빛을 흩뿌리며 날아올랐다. 한 마리가 빛을 밝히면 근처 풀포기에서도 미세하게 빛이 반짝거렸다. 빛은 여러 개가 산발적으로 깜빡이다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고 한순간 사라졌다가 까만 물빛에 비치기도 했다. 우연히 반딧불을 발견하고부터 지오는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혼자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넜다. 액정을 최대한 어둡게 한 다음 카메라에 불빛을 담았다. 그렇게 찍은 동영상을 시유에게 보내곤 했다.      "반딧불이는 엄청 오래 껍질을 벗고 또 엄청 오래 땅 속에 머물러 있대. 성충이 될 때까지."      처음 동영상을 받은 날 시유는 같은 영상을 돌려 보다가 휴대폰을 검색해 지오에게 보여줬다.      "곤충들은 다 그렇지 않아?"      "얘들이 특히 그렇대. 그래야 똥꼬에서 제대로 빛이 나는 걸까?"      시유가 거실 불을 끄고 되물었다.      지오는 그날 어둠 속에서 빛나던 시유의 웃음과 목소리와 휴대폰 액정에 돌아다니던 작은 불빛들을 종종 생각했다. 황록색 빛에 익숙해진 눈을 한동안 감았다 뜨면 멀리 산 위로 펼쳐진 하늘에도 보일 듯 말 듯 작은 별빛이 가득했다.      날카로운 경적소리가 찌르듯 퍼졌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켠 휴대폰 불빛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반딧불이 하나둘 사라졌다. 서둘러 개울을 벗어났다. 경적은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사이 두 번이나 더 울렸다. 길가로 나가자 멀리 라이트를 켜고 정차 중인 동업자 아저씨의 차가 보였다. 상향등이라도 켰는지 새하얀 인공조명이 교차로 표지판까지 닿아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지오는 오토바이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동업자 아저씨의 차로 옮겨갔다. 아저씨의 더블 캡 운전석에는 그가 차군이라고 부르는 운전수가 앉아 있었다. 차를 몰아서 차군인지 성이 차 씨여서 차군인지는 물어보지 않아 몰랐다. 차군과 지오는 서로 부를 일이 없어 따로 호칭 정리가 필요하지 않은 사이였다. 차군에게 운전대를 맡긴 아저씨는 뒷좌석 오른쪽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차 안이 온통 담배 찌든 냄새로 가득했다. 지오는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올라타 잠시 숨을 참았다가 천천히 공기를 뱉었다. 자동차 구석구석 배어 있는 쩐 내를 단번에 들이마시면 속이 메슥거렸다. 차문을 닫자마자 창문을 맨 아래까지 내렸다. 아저씨의 손이 운전석 시트를 두 번 치자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차가 앞으로 움직였다.      "김 선생은 안 온다하대?"      꽁초를 창밖에 던지고 아저씨가 지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 오는 거냐고 묻는 건지 안 온다하더라는 말인지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오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룸미러에 비친 아저씨만 보면 차 안의 실루엣은 마치 범죄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아래위 모두 검정색 옷을 입은 아저씨는 쩍 벌린 다리 사이에 기다란 엽총을 끼고 있었다.      "형님, 총 좀 내려요. 애 무서워하잖아요."      차군의 말에 아저씨 역시 엉덩이를 살짝 들어 룸미러를 바라보았다. 거울에 총을 비춰 본 아저씨는 총구가 밖으로 향하게 총을 고쳐 쥐고는 걸걸하게 웃었다.      "왜 그래? 좋은 일 하러 가는데."      좋은 일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오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거 정말 좋은 연구거든."      김 선생은 낮부터 지오를 학교로 불러놓고 그렇게 말했었다. 오랜 시간 정성을 쏟고 있는 논문이 작은 문제들로 정체기에 빠져 있다고 했다. 한여름인데도 찻잔에 뜨끈한 녹차를 우려낸 김 선생은 지오에게 제안하고 싶은 알바가 있다고 뜸을 들이다 말을 꺼냈다.   제 8 부         신종 감염증하고 진드기를 연결 지은 거야. 산짐승이 밭에 내려왔을 때 가죽에 붙어살던 매개 진드기가 인간 서식지로 이동한다. 마지막 연결고리만 찾으면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      왜 자기를 불러서 논문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했지만 김 선생의 가설은 지오가 보기에도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진드기를 직접 채취해야 한다는 말까지 듣고 지오는 구조센터의 동물 시체에서 진드기를 찾아내려나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센터 애들 가지고는 데이터가 안 나와."      김 선생이 지오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구조한 개체들 몸에는 이상할 정도로 진드기가 없어. 고지대에서 막 내려온 애들 가죽을 벗겨서 전수 조사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제가요?"      "나중에 대학 와서 할 거 미리 경험하는 거지."      "막 그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일단 되물었지만 지오의 머리는 입을 따라가지 못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라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내가 너한테 못할 일 시키겠어?"      김 선생이 큰소리로 말했다.      "당분간 밤에 배달 아르바이트 안 해도 될 거야. 그만큼 챙겨줄게. 정규직 채용도 힘 좀 써보고."      지오는 그저 김 선생을 바라보았다.      "괜찮다니까. 너답지 않게 왜 그래?"      "그게 아니라요."      겨우 그런 대답이 나왔다.      괜찮을 거라고, 김 선생은 거듭 말했다. 지오는 너답지 않다는 말을 곱씹었고, 더는 대꾸하지 않고 김 선생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건물을 나서려는데 분수대 앞에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걱정 없이 누워서 웃고 떠드는 모습에 왠지 심술이 났다. 사람이 없는 벤치를 찾아 걸어가면서 지오는 걸리적거리는 쓰레기를 걷어차고 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에 알바 하나 하자는데, 어떡할까? 돈은 배달 일보다 훨씬 많이 준다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서. 지금 선생님네 학굔데, 빨리 대답해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일 하는 건데?"      시유가 물었지만 지오는 답을 얼버무리고 계속 말을 쏟아냈다.      "수의학과 사람들은 다들 하는 모양이던데, 이거 하고 나중에 센터에 채용되면 좋은 거 아닌가? 좋은 거겠지? 선생님처럼 돈 받고 일하면서 학교도 다닐 수 있잖아."      "그러니까 하고 싶다는 거야, 하기 싫다는 거야?"      대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지오는 그 뒤로도 시유가 묻는 말과 상관없는 말만 늘어놓다가 전화를 끊었다. 멍한 얼굴로 해가 내리쬐는 학교 교정을 서성거렸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바로 대답하지 못한 이유를 걸으면서 천천히 생각하려고 했다. 김 선생과 마주치지 않게 수의대 건물과 먼 곳 위주로 남의 대학 캠퍼스를 쏘다녔다. 그렇게 오후 시간을 다 써버리고 나서야 지오는 저녁 당번을 보러 구조센터에 출근했다. 동물 울음소리가 들리는 텅 빈 사무실이 오히려 편했다. 검정고시 문제집을 꺼내 몇 문제 풀어보고, 하루 동안 구조센터에 들어오고 나간 동물 장부를 살펴보다가, 지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김 선생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켜서 논문 파일을 찾아보고 있었다. 영어로 되어 있어 어려웠지만 대강 지오에게 말한 논문이 맞는 것 같았다. 페이지마다 다른 종류의 진드기와 동물 가죽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만 계속 들여다봐서 그런지 속이 거북했다. 지오는 바깥 공기를 쏘이기 위해 또다시 드넓은 구조센터를 배회했고, 계류장과 입원실을 크게 한 바퀴 돌아 후문에 위치한 소각장 앞에서 다리를 멈췄다. 벽 앞에 쌓여 있는 특수 비닐 더미에 플래시를 비추자 날아오르는 파리들의 몸이 빛을 반사해 반짝였다. 지오는 제일 위에 놓여 있는 비닐을 찢어 어린 삵의 시체를 살짝 들췄다. 오후 다섯 시에 안락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삵의 가죽은 온기 하나 없이 차가웠다. 가죽 가까이 휴대폰 플래시를 가져다댔다. 털 사이사이에 강한 빛을 비췄지만 밝은 빛을 되비치는 허연 속가죽만 드러날 뿐 지오가 찾는 진드기는 발견할 수 없었다. 아래 깔려 있는 가죽도 마찬가지였다. 동물들의 가죽은 인형처럼 깨끗했다. 진드기는커녕 피나 상처의 흔적 같은 것도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계류장 근처를 서성이는 지오를 보고 김 선생은 말했다.      "그 진드기들 때문에 가축 안락사도 늘어날 거야. 지금은 치료 방법이 없으니까."      못들은 척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란 것쯤은 지오도 알았다. 전날 비닐에 싸인 삵 밑에서 소각을 기다리던 두 구의 시체는 농가에서 데리고 온 개였다. 사무실 책상에는 진드기에 의한 인간 감염의 위험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개들을 고통과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안락사 조치한다는 수의사의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김 선생은 계류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지오에게 덧붙였다.      "결국 좋은 일이 되는 거잖아. 알아들어?"      그런 말들에 기대어 지오는 살아 있는 짐승의 가죽에서 진드기를 찾는 일이 가능해졌다. 요즘엔 아예 낮에는 구조센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유해 조수의 가죽을 벗기러 다녔다. 확신이 없는 마음 상태로 처음 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오는 이제 작은 희생을 동반하는 자신의 일이 신종 질환을 유발하는 진드기 예방에 크게 기여할지도 모른다는 거창한 생각을 종종 했다. 다행인 것은 지오가 잡는 고라니 같은 동물 역시 수의사가 센터에서 죽인 멧돼지처럼 국가가 지정한 해로운 짐승 목록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산촌으로 올라갈수록 가로등은 줄고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벌써 삼십 분을 달렸다. 30분이면 슬슬 인적이 드문 경작지 부근이었고, 동업자 아저씨는 그곳에서 두 번이나 놓쳤던 고라니를 노리고 있었다. 지오는 창문을 열고 서치라이트 전원을 켰다. 빛이 레이저처럼 목표를 찾아 꿈틀거렸다. 그러다 지오의 실수로 강렬한 빛이 마주 오는 차의 전면 유리를 통과했다. 클랙슨, 손가락질, 옆으로 나란히 서서 노려보기. 낮에 트럭을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아저씨는 총구를 손에 쥔 채 지오가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욕을 입에서 뭉개놓고, 창문을 내리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먼저 용서를 구했다. 대장이 굴복하자 나머지 두 사람도 상대의 시력이 회복될 때까지 연신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들은 차를 보낸 뒤에도 한동안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아저씨가 조금 전보다 더 낮은 데시벨로 중얼거렸다.      "놀랐겠지?"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지오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아저씨가 걱정한 쪽이 상대 운전자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다. 아저씨는 밭을 보며 이야기했고, 차군은 미등만 켠 채 도로변에서 가장 은밀한 지점을 찾아 핸들을 움직였다. 과연, 그렇다면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되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지오의 서치라이트가 멀리 채소밭 위를 가로질렀다. 저거 뭐지, 하는 아저씨의 음성과 동시에 지오는 밭에서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빛을 반사한 물체가 김 선생이 연구하는 개체의 눈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지오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차문 손잡이를 당겼다. 예민하게 빛의 각도를 유지하면서 발 한쪽을 땅에 디뎠다. 그때 다시 한 번 빛을 받은 안광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탕, 하고 아저씨의 베레타 엽총이 요란한 굉음을 냈다.      지오는 두꺼운 박달나무 가지를 들어 그것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갓 차에서 내려 총성이 울렸을 때를 생각하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오는 거듭 안광이 반짝였을 때 어쩌면 고라니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쓰러진 무언가를 향해 달려오는 내내 그 예감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밭은 헤드 랜턴이 아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빛이 조금만 먼 곳을 비춰도 구덩이에 발이 빠지고 발목까지 씌운 신발 비닐이 계속 미끄러졌다. 습기 먹은 흙냄새를 뚫고 달큼한 작물 냄새가 퍼졌다. 피 냄새는 그 아래에 육중하게 깔려 있었다. 센터에서 맡아온 냄새와는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 때문에 지오의 팔다리 털이 바짝 섰다. 피는 이전부터 농작물 밑에서 끓고 있던 것처럼 흙을 밟을 때마다 한층 강한 냄새를 풍겼다. 흔적을 따라간 땅에 정신없이 찍혀 있는 발자국이 보였다. 가슴 높이까지 오는 돼지풀을 헤치고 숨소리를 쫓는 지오의 온몸에 두려움이 번졌다. 콩잎을 서리하다 쓰러진 그림자는 묵밭으로 도망쳐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희미한 형체는 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었다가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이내 자리에 주저앉았다. 라이트에 비친 둔부가 붉고 하얬다. 인간은 아니지만 고라니도 아닌 피 묻은 엉덩이. 엉덩이 주인이 둔부 위로 솟은 고개를 꺾어 지오를 바라보았다. 노루였다. 지오는 농구공처럼 튀어 오른 심장을 제자리로 쓸어내렸다. 고라니부터 인간까지, 지오의 상상 속에는 사실 노루보다 안 좋은 쪽이 더 많았다.   제 9 부         노루가 지오를 향해 세차게 울부짖었다. 소리가 묵밭을 넘어 농가에 닿을 것 같았다. 근처에 차를 대고 앉았을 밤의 동료에게도, 어쩌면 멀리 센터에 퇴근하지 않고 남아 있을 낮의 동료에게도 소리가 닿을 것 같았다. 금방 안도가 훑고 간 자리에 새로운 불안이 밀려들었다. 산 높이 자리 잡은 조상들이 인간 농사를 망치지 않은 덕에 노루는 아직 유해 조수 지정 동물이 아니었다. 고라니와는 다르게 포획이 불법이었다. 노루를 쏜 것이 알려지면 그깟 연구는 변명거리도 되지 않았다. 지오는 어떻게든 노루를 살려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계류장에서 익힌 손길로 노루를 일으켜 세우고 최대한 다정하게 앞으로 밀어보았다. 엉덩이 한쪽에 구멍이 난 노루는 밀면 밀수록 거친 숨을 껄떡거렸고, 그 모습을 보면서 지오는 아저씨를 원망했다. 차라리 숨이 끊어졌다면 수습이 쉬웠다. 평소 몸통을 노릴 때면 연발을 쏘던 사람이 오늘은 왜 한 발만 쐈는지, 아저씨의 변덕 때문에 지오의 아르바이트가 몇 배는 어려워졌다.      마지막 힘을 짜낸 노루가 또다시 괴성을 질렀다.      "나를 죽여줘."      신이 통역이라도 했는지 순간, 지오에게는 비명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고통스러운 숨을 삼킨 노루가 지오를 향해 안달하고 있었다. 처음에 지오는 그 부탁을 외면하고 노루를 계속 안전한 곳으로 밀었다. 확인 사살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내가 죽이는 건 아니야, 아저씨가 죽이고 나는 죽은 아이의 가죽을 수거할 뿐이야, 언젠가 시유가 묻는다면 거짓을 보태지 않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박달나무 가지로 노루의 머리를 내리친 건,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될 거였다. 눈을 질끈 감고서 몇 차례 더 머리를 강타했다. 노루는 바닥이 진동할 정도로 다리를 움직이며 지오를 올려다보았다. 박달나무보다 더 단단한 것을 찾아야 했다. 흙이 손톱 사이로 파고 들 때까지 바닥을 쓸어보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돌멩이와 가느다란 나뭇가지뿐이었다. 닥치는 대로 날카로운 물체를 찾아 헤매던 지오의 손이 어느새 가방에서 새 칼을 빼 들었다. 지오는 떨리는 손으로 노루의 목덜미를 잡았다. 칼끝이 뼈마디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불쾌한 감각이 파열음을 비집고 손에 스며들었다. 노루의 눈동자가 짧은 호흡과 함께 돌아갔다. 그 모습에 꼭 유해 조수가 아니더라도 일단 가죽은 확보하라고 말하던 김 선생의 얼굴이 불현 듯 떠올랐다. 초점을 잃은 지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손만은 습관이 밴 것처럼 꼬리를 자르고 발목을 동그랗게 돌려 가죽을 벗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뒤에서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근처에 다른 노루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지오는 초식 동물처럼 상체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묵밭에 자란 풀 위로 솟아오른 귀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노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풀숲 사이로 빛을 비추자 기다란 그림자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피 냄새를 맡은 들개가 몸을 낮추고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 새끼를 잃어버린 멧돼지가, 굶주린 미지의 짐승이 웅크린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 지오는 헤드 랜턴을 끄고 자세를 정비했다. 혹시 제 뒤에 뭐 있어요? 하고 소리쳐보았지만 아저씨의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다. 칼끝은 노루의 뼈마디에 단단하게 박힌 상태였다. 순간 날카로운 무언가가 지오의 목덜미에 닿았다. 신음을 뱉으며 팔을 휘저었다. 큰 날벌레의 날갯짓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날벌레 몇 마리와 지오의 팔뿐이었다. 칼을 뽑아 저항해야 할 만큼 위험한 짐승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오는 눈을 감고 칼자루를 비틀었다. 내장을 비우려면 항문을 절개하고 배까지 길을 내야 했다. 암순응이 찾아와 조명을 켜지 않아도 노루의 몸이 잘 보였다. 손잡이를 잡고 힘주어 아래로 칼을 그었다. 그때 칼이 스친 몸통에서 뿌연 액체가 떨어졌다. 피보다 말갛고 냄새가 비리지 않은 액체였다. 가슴에서 흘러내린 액체의 정체를 알아채고 지오는 그만 칼을 내려놓았다.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미 잘려나간 가죽만 허겁지겁 지퍼 백에 담았다. 묵밭을 향해 달릴 때 느꼈던 거대한 불안이 다시 지오의 전신을 잠식했다.        "잘 마무리했냐?      아저씨가 짐칸에 지퍼 백을 싣는 지오에게 물었다. 지퍼 백의 부피가 평소보다 작았다. 지오는 연구에 유효할 만큼의 가죽을 담아오지는 못했지만, 대신 목소리에다 조금 전에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노루였어요."      노루라는 말에 아저씨는 황급히 지퍼 백을 들춰 보았다.      "노루는 쏘면 안 되잖아요. 어떡해요?"      지오가 물었지만 밭에서처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왜 한 발만 쏘셨어요? 엉덩이 노리고 쐈잖아요. 전에 엉덩이를 쏠 때는 확실하게 두 발씩 쏜다고 했잖아요."      계속해서 쏘아붙이자 마침내 아저씨가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왜. 살아 있든?"      지오는 가까스로 받아쳤다.      "그건 아니고요."      그 알맹이 빠진 대화를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아저씨의 신호를 받은 차군이 시동을 걸었고, 세 사람이 탄 차는 다시 어둡고 좁은 산촌의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켜진 곳까지는 또 삼십 여분을 그렇게 달려야 했다. 안개등을 켜고 민가 주변을 빠져나가는데 손전등을 든 농민들이 하나둘 도로변에 나타났다. 밭을 하나 건널 때마다 한 명씩, 조금 뒤에는 적지 않은 무리가 차 주변에 모여들었다. 지오는 목격자가 나타난 것 같은 노파심에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수포로 덮어 둔 짐칸에는 반쪽짜리 노루의 가죽이 함께 타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저씨가 창문에 머리를 내밀고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웬 총소린가 하고. 혹시 군청에서 나온 사람들인가?"      차 앞을 막아선 노인이 짐칸을 슬쩍 보고 창문 틈으로 세 사람을 훑어보았다.      "예, 비슷해요. 밭을 망치는 고라니가 있다고 해서."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내리는 동안 사람들은 짐칸에 몰려들어 방수포를 만져댔다. 물컹한 지퍼 백을 만진 남자의 손에 피가 묻었고, 그것을 본 할머니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나온 것은 안도와 환호였다. 사람들은 흐뭇한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거나 농사가 편해지겠다며 홀가분한 숨을 내뱉었다.      아저씨는 방수포를 다시 덮고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처음 나타났을 때와 반대로 그림자가 하나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한 사람만은 자동차 옆에 그대로 남아 아저씨를 주시했다. 노인의 걸걸한 목소리는 아저씨가 뒷좌석 가까이 돌아왔을 때 다시 창밖에서 들렸다.      "정말 고라니인가?"      "그럼요. 아무거나 막 잡으면 안 돼. 우리도 큰일 납니다."      아저씨가 대답했다.      "저 위에 버려진 묵밭 옆에가 내가 농사를 짓는 콩밭인데, 거기 고라니만 내려오는 건 아니거든. 군청에다 잡아달라고 몇 번을 말하는데 왜 잡아주질 않어?"      "뭐가 내려오는데. 노루 같은 거요?"      긍정의 의미인지 노인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지오는 묵밭을 헤치고 나가느라 옷에 묻은 도깨비풀을 떼어내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지켜보았다. 둘은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차에서 노인을 조금 떨어뜨린 뒤에야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그놈 방금 우리가 잡았어요. 노루라 엉덩이 가죽이 허옇잖아. 그러니까 그만 가세요. 어르신만 알고 계시고."      짐칸 앞을 어슬렁거리던 노인의 목소리가 한층 누그러졌다.      "한 마리 잡아주면 보통 군청에서는 얼마씩 쳐주나?"      "그런 건 왜요? 원래 노루는 진짜 안 되는 거예요. 고라니 꼬리나 가져가야 몇 만원 주는 거지."      "내가 고마워서 그래. 이거 가지고 가."      노인은 주머니가 여럿 달린 조끼에서 구깃구깃한 지폐 몇 장을 꺼냈다.      "아이, 이거 안 되는데."   제 10 부         아저씨는 노인을 데리고 차에서 몇 걸음 더 떨어졌다. 가 담뱃값이나 하라고 채근하는 노인의 목소리도 점차 멀어져갔다. 지오가 밭에서 느낀 불안이 다시 차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아저씨가 받은 돈 때문인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차로 돌아온 아저씨는 농가의 히어로라도 된 마냥 의기양양했고, 그 모습을 보는 지오의 마음은 점점 혼란스럽기만 했다.      자갈밭에 흔들거리며 다음 지점으로 가면서 지오는 다시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한테도 따로 돈을 받아요?"      아저씨는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농사를 도와줘서 고맙다잖아."      "그러니까 꼭 밀렵 같잖아요."      "고라니도 군청에서 돈은 주잖아. 너도 김 박사한테 두당 열 개씩 챙겨 받는다면서? 좋은 게 좋은 거지 뭘 그래.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첫 번째로 잡히는 지폐를 꺼내 지오 앞으로 내밀었다. 돈을 끼운 둘째 셋째 손가락의 스냅이, 너도 수고했지 참,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오는 아저씨가 내민 손을 밀쳐냈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매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하자는 거야? 다 그럴 만하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아저씨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고 돈을 주웠다. 지오는 놀라서 몸이 움찔했다. 헤어지기 전 시유가 했던 말을 아저씨의 입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처음 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간 날에 시유는 몸을 바짝 붙이고 앉아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 따져 물었었다.      "너한테 나지 않던 냄새가 나."      시유는 지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오늘부터 수술실 일 돕는다고 했잖아."      "거짓말이지?"      "내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해?"      지오는 제 속이 비칠까 봐 괜히 성을 냈다.      "왜 한다고 했어?"      "뭐가?"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는데, 알바 왜 맡은 거야. 예전처럼 그렇게 된 거야?"      시유의 질문은 어느새 아르바이트를 넘어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팸 시절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다툴 때면 시유가 한 번씩 꺼내는 레퍼토리였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어김없이 형들을 따라 저질렀던 지오의 비행들이 나왔다. 비쩍 마른 노인들에게 빼앗은 돈으로 산 음식이 싫어서 시유는 아지트를 자주 떠나 있었다고 했다. 시유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아니면서 왜 그런 짓들을 했어, 하는 흐름까지 가지 않으려면 지오는 자리를 피하거나 오히려 더 세게 나가야 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형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잖아. 또 왜 그러는데?"      지오가 화를 내자 시유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오늘 뭐 시켰어?"      "그냥 연구 재료 때문에 칼 쓰는 거야. 아까도 말했잖아."      "그랬지."      시유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리고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너, 그럴 만하니까 그랬던 거잖아. 네가 감당할 만하니까. 그 말은 대화가 끊기고 나서 한참 뒤에 했다. 둘은 각자 휴대폰을 보다 샤워를 했고 같은 공간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자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기에 지오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유가 집을 나간 건 그저 새로 하는 아르바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시유가 했던 그 말을, 아저씨에게도 들었다. 말투는 완전히 달랐지만 내용은 같았다. 그 말은 그래도 될 때는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무방하니까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형님, 여기서 더 할까요?"      형님, 하는 소리에 지오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저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차군은 또 다른 경작지 부근에 차를 세우고 서치라이트 전원을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엔진 소리만 존재했던 차 안에 플라스틱 스위치 소리가 더해졌다. 차 유리를 통과해 허공을 밝히는 빛을 보면서 지오는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 하나를 떠올렸다. 출근길에 본 영상에서 야산에 랜턴 조명을 켜놓고 노루를 사냥하던 남자가 외친 형님이, 혹시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혹시 저 말고도 같이 일하는 사람 있어요?"      아저씨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있지."      "그 사람, 돈을 주고 동영상도 찍어요?"      룸미러로 뒷좌석을 쳐다보는 차군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저씨 역시 거울을 힐끗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지오를 보고 말했다.      "왜. 한 번 찍어보려고? 해 봐. 요새는 휴대폰 카메라로도 잘 나와."      지오는 아저씨가 꺼낸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불현듯 자신의 아르바이트도 카메라에 찍힌 건 아닐까 하는 끔찍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머릿속에서 구조센터의 수의사, 재활 관리사, 자원 활동가가 모두 모여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이 재생되었다. 갑자기 눈앞이 어질하면서 현기증이 났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들썩거리자 아저씨가 손을 뻗어 지오의 등에 얹었다. 그 손을 튕겨내듯이 몸을 일으켰다. 눈을 치켜뜨고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 역시 갈 곳 잃은 손을 거두고 지오를 똑바로 쳐다봤다. 아저씨는 이웃들에게 해로운 짐승만 퇴치하는데 뭐가 문제냐면서 진심으로 의아해했다. 아저씨의 논리에도 맞는 구석이 있을지 몰랐다. 그에게는 이미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고 오전에 본 영상의 댓글도 분위기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지오는 아저씨를 향해 날을 세웠다. 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해로우면 사람도 쏘시겠어요."      아저씨는 말이 없었다.      "쏴본 적 있으세요?"      그냥 투정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복잡한 하루를 보냈는데, 갑자기 시유와 똑같은 말을 꺼낸 아저씨에게 튀어나온 반항 같은 거였다.      어둠 속에서 정적이 흘렀다. 차 안은 차군이 서치라이트 스위치를 조작하는 소리 말고는 고요했다. 지오는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냐고 멱살을 잡거나, 내가 무슨 사람이라도 죽였느냐고 일갈하는 아저씨의 반응을 기다렸다. 평소 보여준 모습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쇠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저씨는 고함 대신 엽총을 치켜 올려 총구를 흔들었다. 총구가 지오를 향했다. 지오는 깜짝 놀라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을 더듬거리자 칼집에 꽂힌 칼이 만져졌고 지오는 반사적으로 그 생각을 해냈다는 사실에 훨씬 더 놀랐다. 바로 앞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압력이 가해졌다. 갑자기 멍해진 귀에서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이명이 들려왔다. 지오는 뺨에 흐르는 물이 땀인지 피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로 차에서 뛰어내렸다. 혹시 있을 두 번째 총성을 피해 몸을 숙이고 밭을 향해 도망쳤다. 문득 안개가 심해 가시거리 확보가 어려울 거라는 일기 예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핸들링이 쉬워 살아남기 수월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스쳤다.      "꼬리나 가지고 와!"      기다렸던 일갈은 그때 나왔다. 아저씨가 소리친 방향에 지오가 있고 더 멀리에 쓰러져 바둥거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지오는 몸을 일으켜 곧장 그림자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지오는 눈을 감았다. 그림자의 꼬리를 자르려는데 차에서 소환되어버린 시유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시유가 그린 만화 속 돼지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당신을 안다. 괭이를 든 돼지의 대사가 시유의 목소리로 지오의 머릿속을 떠다녔다.      다시 그림자의 꼬리를 잘랐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꼬리를 썰었다. 칼날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고 보았을 때 그것은 농작물의 줄기였고, 나무 부스러기였고, 난도질당한 흙과 뿌리와 썩은 잎사귀들이었다. 고개를 들자 정신없이 도망치는 그림자가 보였다. 뒤에서 차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아저씨의 서치라이트가 지오의 등을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 끝 -  
23    【伟人传奇】周恩来家史 댓글:  조회:1387  추천:2  2023-01-08
【伟人传奇】 周恩来家史         1872年冬至这天,江苏清河知县万青选夫人,诞下一女婴,按时令节气,取名万冬儿。又因排行12,被习惯称为十二姑。       万冬儿幼小聪明伶俐,深得万知县喜爱,无论走到哪里都带在身边。在当时的清河县有一景:万知县的官轿外出访客会友,后面跟着一顶小花轿,坐着的就是万冬儿。父亲与客人会谈时,万冬儿在一旁安静的倾听,耳濡目染,学了些处理问题的本领。       渐渐长大的万冬儿闹着老爸,进了万公馆读书识字,并显现出管理才能,从母亲手里接过总管之职,把一大家子几十口人管理的井井有条。       万冬儿25岁,由父亲作主,嫁给了淮安县令周起奎儿子周劭纲为妻。周劭纲性格随和,忠厚笃诚;万冬儿精明能干,在周府中姑嫂有了摩擦矛盾,都会说请十二姑来评评理。万冬儿都处理的干净利落,让人心服口服。       35岁时,万冬儿一场大病,不治身亡。娘家悲痛万分,要求周家置办楠木棺材,要披五层麻,漆七层漆,做像模像样的道场。然而,已经败落的周家,食粥度日,无力按万家要求操办。无奈之下,只好把灵柩厝于庵中。直到28年后,万老太太去世,周劭纲用多年来攒下的一笔钱,把妻子的灵柩领回淮安下葬。       万冬儿是嫁入周家第二年时,生下一个男孩,取名周恩来。万氏长得很美,周恩来相貌酷似生母。       1945年抗战胜利后,周恩来在重庆对众多记者说:“35年了,我没有回家,母亲墓前想来已白杨萧萧,而我却痛悔亲恩未报!” 此后周恩来多次表示对母亲的怀念之情。       1965年已经是共和国总理的周恩来,带头移风易俗,让侄儿周尔萃代表他回到家乡,平掉淮安的周家祖坟,棺木就地下沉,退耕还田。母亲万冬儿的坟也被平掉了。       周恩来与鲁迅同宗同族,为北宋大儒周敦颐后代。二人为叔侄关系,却终生没能相见。       解放后,许广平到中南海周恩来家中作客,周总理亲热的说,排起辈分来,我应该叫你婶母。       1969年“九大”期间,周恩来特地到北京饭店拜访鲁迅弟弟周建人时说,建老,我已查过,您是绍兴周氏20世孙,我是绍兴周氏21世孙,您是我的长辈,我要叫你叔叔来!       1976年1月8日,世界上一盏智慧之灯熄灭了,一颗伟大的心脏停止了跳动。万众敬仰的周总理与世长辞,他一生无子女 、无房产、 无墓地 , 两袖清风,鞠躬尽瘁!       2023年1月8日,是这位伟人去世47周年。从微博上看到这篇文字,感觉非常有史料价值,分享给各位朋友。
22    [전기인물의 이야기] 감사하는 幸福 댓글:  조회:842  추천:0  2022-12-22
[전기인물의 이야기] 감사하는 幸福   1863년 英國 어느 추운 겨울 밤, 갓난 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南部 웨일즈의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세찬 눈보라가 몰아닥쳐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고, 아무리 외쳐도 도와 줄 사람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한 농부가 건초 더미를 짊어지고 그 눈 쌓인 언덕길을 넘고 있었다. 농부는 언덕의 한 움푹한 지점에서 이상한 형태의 눈더미를 발견했다. 그 눈더미를 헤치자 그 속에는 알몸으로 얼어 죽은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의 품에는 그녀의 옷으로 감싼 무언가가 안겨 있었는데 농부가 옷을 헤치자 아직 숨을 할딱이는 갓난아이가 있었다. 여인은 추위 속에서 자신의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어 아이를 감싸고, 자신은 알몸으로 숨을 거뒀던 것이다.   이 아이는 커서 훗날, 제1차 세계 대전 중 전시 내각을 이끌었고 '베르사유 조약'을 성사시킨 바로 英國의 제 34대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이다. 그는 자신을 키워준 농부로부터 어머니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는 늘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을 생각하며 죽을 힘을 다해 공부를 했다. 아무리 추워도 따뜻한 옷을 입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도 배불리 먹지 않았으며,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5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다. 그리고 나태해 진다는 생각이 들 때면 "웨일즈 언덕"에 올라 눈보라 속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옷을 벗어 감싸 주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의 마음은 일생 동안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그 사랑에 보답코자 하는 간절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행복한 상태'란 과연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육신의 안락함과 풍요로운 현실을 위주로 생각하지만 보다 주체적인 것은 마음의 행복이다. 마음 속에 고마운 마음, 감사한 마음이 가득차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부모를 잘만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항상 원망과 불평과 섭섭한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마운 사람은 있다. 그 분들이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행복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고마운 사람들과 고마운 일들로 마음을 채워 보자.   어떤 자녀는 섭섭하게 느낀 것을 죽을 때까지 가슴 깊이 간직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결국 스스로를 불행한 삶으로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 했다.   행복해지려면 마음부터 바꿔야 한다. 영국의 제 34대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가장 불행한 시대에 가장 불행한 자리에서 태어났지만 항상 어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가장 행복하게 훌륭한 삶을 살지 않았던가!   ◇ 오늘의 銘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 탈무드
21    [단편소설] 장씨(張氏) 이야기 / 김광한 댓글:  조회:729  추천:0  2022-12-20
[단편소설] 장씨(張氏) 이야기   김광한        경기도 부천시가 아직 시로 승격되기 전 부천군으로 남아 있을 때, 윤영숙이란 서른다섯 살 된 여자가 살고 있었다.      한 번 결혼에 실패하고 그 나이에 자식도 없이 홀몸으로 살면서 자신을 내팽개치고 다른 여자를 얻어간 남편에게 복수라도 하듯 돈 생기는 일에는 몸 파는 것 빼놓고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돈 욕심이 대단한 여자였다.      그래서인지 이혼 당한지 5년 후에는 상당히 많은 돈을 저축해 부천이 시로 승격됐을 때 시내 중심가에 조그만 빌딩 한 채와 넓은 주택, 그리고 헐값에 사들인 땅이 꽤 많이 올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예비 재벌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와 접촉을 가진 사람들은 그녀를 윤 여사 대신 통뼈마담이라고 호칭했다.      얼굴이 남자처럼 말상인 데다가 태어날 때부터 뼈가 남달리 굵어 어쩌다 악수라도 할라치면 손아귀의 악력이 대단해 그녀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었고 키도 구척 장신인 데다가 목소리마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괄괄해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 가닥 할 인물이었다.      아무튼 이런 통뼈마담인지라 세상 살아나가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돈 긁어모으는 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시장의 노점상인들에게 일수놀이를 한다거나 그 자신이 직접 다방의 가오 마담, 술집 주인, 화장품 외판사원, 보험 외판사원, 고리대금, 경찰 정보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는데 최근에는 안면이 넓어진 것을 무기로 틈틈이 중매쟁이 노릇도 해 짭짤하게 부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소지한 수첩엔 꽤 많은 신랑 신부 후보감들이 빽빽이 기재돼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한번 결혼에 실패한 손때 탄 남녀들이었다.      워낙 많은 중매를 했고 또 성사도 많이 시켰기 때문에 부천시의 통뼈 마담은 널리 소문이 나 있었다.      이런 통뼈마담에게 어느 날, 우리들이 추천한 홀아비 장기수 씨가 등장했다.      장기수는 일찍 장가를 들어 그 나이에 벌써 시집갈 연만한 딸을 두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조강지처와 이혼을 해 낭인생활을 하던 참이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 부친이 모 교회의 장로이고 모친이 권사였는데 어쩌다 그만은 돌연변이로 태어났는지 부모의 좋은 혈통을 따르지 않고 주색잡기는 물론 못된 짓이라면 골라서 하는 문제아로 성장했다.      학교 다닐 때는 책가방을 내팽개친 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산으로 끌고 가서 다리를 부러뜨려 무기정학을 받거나 시험지를 보여 달라고 공갈 협박을 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하고, 그 시절 악명 높았던 종삼 뒷골목을 버젓이 고등학교 모자를 쓴 채 어슬렁거리다가 훈육주임한테 들켜 풍기문란으로 무기정학을 받은 적도 있었다.      또한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집안에서는 한 가족처럼 지내던 식모를 꼬여 임신을 시켜 꽤 많은 돈을 주고 내보내게 한 적도 있는 전과가 대단한 작자였다.      이런 장기수를 그대로 방치해 둘 수가 없어서였는지 하느님은 그에게 놀라운 손재주를 부여해 주었다.      장씨는 원래 엔지니어 출신으로 전자계통에서 내노라하는 기술자였다. 라디오 조립은 물론 흑백 TV 시절 청계천이나 세운상가에서 부속품을 사다가 집에서 TV를 조립 판매할 정도로 그 실력이 대단했다. 그의 손이 한번 가면 용케도 고장 난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오고 망가져 고물 장수에게나 줄 TV에서 화면이 재생되는 것이었다.      이 손재주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제법 큰 규모의 전자회사에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 일하는 솜씨가 공대 출신 뺨칠 정도로 대단해 경영자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생활 형편도 펴지고 가장으로서 과거의 나쁜 습관을 버려 사는 맛을 알게 될 즈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대우 좋고 급료도 괜찮은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어떤 발명(?)에 열을 올렸는데 일반인들은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글쎄, 천재가 하는 일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싶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일이라서 옆 사람이 보기에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다.      '전천후 만능안경'      즉, 이 안경은 남자가 끼고 있으면 지나가는 여자의 알몸 뿐 아니라 조금 더 조작하면 마치 투시경처럼 사람의 내장 상태가 화면에 나타나 의학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어 이것이 발명되면 노벨상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거부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장씨는 퇴직금을 받아서 청계천에 나가 각종 고물기계를 사다가 후미진 골방에다 연구실을 차렸다. 무슨 대단한 연구를 하는 것처럼 방 앞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붙이고 변소 갈 때 한 번 얼굴을 비치는 것 외에는 24시간 그 방에서 나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내도 밤 시간 이외에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비밀이 새어 나간다는 이유에서였다. 가끔 그의 얼굴을 보면 운동 부족 때문인지 영양실조 때문인지 얼굴에 황달기가 역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부인과 그의 부모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처음엔 몸 걱정을 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어쩐지 그 발명품이란 것이 잘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보, 몸 상하는데 쉬었다 하시구려." 하고 부인이 얘기할라치면      "완성단계에 있어. 말시키지 말아." 하며 부인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완성 단계에 있다는 발명품이 몇 달이 지나도 그 상태인 것 같아      "정말 발명이 될 것 같아요?" 하고 그의 선량한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그는 욕설부터 내 뱉았다.      "아니, 이 x년이 다된 밥에 재를 뿌리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해! 죽치고 아가리나 닥쳐!" 하며 주눅을 들여 놓기도 했다.      하루는 그의 부친이 걱정이 되어      "얘야, 모든 일은 하느님이 주관하시는 거란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야. 내가 보기엔 공연히 애만 쓰는 것 같은데 하느님께 열심히 간구해라. 고마우신 하느님께서 이를 도와주실 것이다. 그리고 말을 들으니 그 발명품의 용도가 해괴망칙한 것이던데 하느님이 그런 추잡한 용도에 쓰이는 물건을 발명하는데 협조를 해주실 것 같지 않다. 다른 방향으로 연구를 돌릴 생각은 없냐?" 하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기도할 것을 종용했다. 그 발명품의 용도가 자신의 신앙과 대치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이 꼭 사탄의 꾀임에 빠져들어 간다고 생각했다.      "기도요? 그건 아버지 같은 예수쟁이들이나 하는 일이에요. 과학자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요. 괜히 천당이라는 걸 만들어 놓고 무식한 사람들 겁이나 주는 그런 것 절대 믿지 않아요. 인공위성이 달나라는 물론 화성까지 갔다 오는 세상에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수작이에요?"      "수작이라니? 너 예수 믿지 않는 건 네 자유지만 그렇게 하느님 모독하면 죄받는다."      "아니, 아버지 그만 웃기세요. 죄받다니요."      "이거 큰일 날 아이로군. 병 걸려도 중병에 걸렸군. 저걸 어떻게 회개시키나?"      그래서 부모는 아들을 위해 철야 기도를 하거나 능력 있는 목사를 모셔다가 '사탄'의 세력에 빠진 아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주여!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지금 저 아이는 눈가에 비늘이 덮여 있습니다. 비늘을 떼어 사물을 올바르게 보게 해 주십시오.“ 하고 목사와 그의 아버지는 함께 기도를 드렸으나 장씨의 눈가에 덮인 비늘은 떨어지기는커녕 더욱 두터워질 뿐이었다.      오히려 장씨는 그에 반발하여 더욱 거칠게 나왔다. 또한 그는 자신의 연구(?)가 끝나면 이웃 포장 마차집 과부에게 달려가 갖은 수작을 다 부리며 부모를 욕되게 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씨의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회사에 다닐 때는 그래도 월급이란 게 있어서 풍족하진 못하지만 그런대로 가계는 꾸려 나갔는데 퇴직한 지 6개월쯤 후에는 쌀마저 떨어져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자 밀가루를 사다가 수제비 국을 끓여 먹었다.      "발명왕 에디슨도 처음엔 다 이랬어. 발명은 아무나 하는 것인 줄 알아? 집념이 강하고 시련을 이겨내는 강한 의지가 필요해." 하며 수제비를 떠먹으면서도 기가 죽지 않았다.      그의 어린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말끔히 쳐다보다가는 또 혼날까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느 날, 보다 못한 그의 아내가 영양실조로 얼굴이 누렇게 뜬 얼굴로      "여보, 이 무식한 것이 뭐 알겠어요. 그러나 이젠 지쳤어요. 허구헌날 남의 집에가 돈이나 꾸고 이젠 꿀 데도 없어요. 그 연구란 것 포기하고 남들처럼 삽시다." 하면 그는 방바닥에 놓여진 요강을 집어 던져 방바닥을 오줌바다로 만들어 놓을 뿐이다.      "이 무식한 것아! 세계적인 발명품이 한두 해에 이루어지면 누군들 발명 못 하냐, 이 여편네가 미쳤나?" 하며 아무 소리 못하게 했다.      마침내 1년 6개월째 접어들자 장씨도 자신이 하는 일에 점차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발명품이 발명되지 않을 것 같은 조짐이 보이자 그는 포기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의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새 출발을 제의했다. 그리고 친정 오빠에게 찾아가 돈을 빌려 부천시에다 조그만 전파상을 차려주었다.      전파상은 그런대로 잘 운영이 되었다. 신흥주택가라서 일이 많았고 공장이 들어서자 그의 일손은 무척 딸렸다.      또 하청을 맡아 꽤 많은 돈을 만지게 되었다.      영양실조에 걸린 누런 얼굴이 제 색깔이 날 때 쯤 호사다마란 말이 있듯이 이런 장씨 일가를 시기한 '사탄'이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가끔씩 장씨의 전파상에 찾아와 심한 농짓거리를 하던 이웃 복덕방 박씨가 장씨가 출장간 사이에 그의 촌스럽고 순진한 부인을 집적거렸던 것이다.      "아줌마, 몇 살이오?"      "그건 왜 물어요?"      "아줌만 내가 보기에도 딱해요. 한창 나이에 뭐 즐기는 것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처음엔 벼락 맞을 소리라고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멋대가리 하나 없는 남자와 평생을 살 생각을 하면 자신의 신세가 결코 유복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자주 찾아와 바람을 집어넣다 보니 카바레까지 진출하게끔 되었다.      장씨가 장기 출장에서 돌아오자 눈치를 채고 있던 종업원 아이가 그 사실을 장씨에게 귀뜸했다.      "아저씨, 요즘 아줌마가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아저씨 없는 사이에 가끔 외박했어요."      "그야 임마, 친정에 갔다 왔겠지, 저런 늙은 할망구를 누가 건드리냐?"      "늙었다니요. 아저씨 없는 사이에 월부 화장품을 얼마나 사들였는지 아세요?"      "월부 화장품?"      "그래요."      "돼지주둥이에 루즈 바른다고 여우가 된다더냐?"      "사람 일은 몰라요. 조심하세요."      "원 녀석도 별것 다 신경을 다 쓰는구나." 장씨는 일소에 붙였다.      그런데 가끔씩 찾아오는 박씨를 대하는 아내의 눈초리 속에 색이 담겨져 있는 것 같이 느낀 건 보름이 지나서였다. 그래서      "박씨가 그래도 사람은 좋단 말이야. 옛날에 한 가닥 했다던데." 하고 슬쩍 운을 떠보았다.      그랬더니 박씨에 대해 언제 그렇게 알았는지      "뭐 옛날에 시의원도 나갔대나 봐요. 사람이 서글서글한게 이런 촌 동네에서 복덕방 하긴 아까운 사람 같아요."      "그래서 당신 맘에 들었어?" 장씨의 말에 뼈가 들었다.      "그런게 아니고‥‥‥‥“      "그럼 뭐야!" 하며 이번에는 큰소리로 화를 냈다.      "그 복덕방 새끼 자주 찾아오는 것 내가 모를 줄 알고, 너 이 X년, 이실직고 하지 않으면 이걸로 아가리를 요절낼 줄 알아!" 하며 식칼을 들고 설치자 그의 부인은 억울한 듯      "하늘이 알아요! 천벌을 받을 소리 함부로 하는 게 아녜요." 하고 훌쩍훌쩍 울고 법석을 떨었지만 아무래도 그의 부인은 순진한데다 초범(?)이었다.      "우리 일하는 아이가 증인이야! 대질시켜줄까?"      그녀는 마침내 자백을 했다.      "꼭 한번이에요. 박씨가 어딜 가자고 해서 술을 잔뜩 먹여 놓고‥‥‥“      장씨는 아무 말 없이 부천경찰서 형사계로 찾아가 부인과 박씨를 간통죄로 고소했다.      그렇잖아도 융통성 없는 구식 마누라가 보기 싫었는데 속으로 잘됐다 싶은 장씨는 유치장에서 잘못했다고 두 손 모아 비는 부인을      "이런 망종들은 실컷 콩밥을 먹여야 해." 하며 합의를 거절했다.      장씨는 부인이 결국 알몸으로 쫓겨나 6개월 형을 살게 됐을 때 마지못해 합의를 해주었다.      그 후 장씨는 전파상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합의금을 갖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계집질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장씨의 두 딸은 이런 아버지가 보기 싫어 어머니에게 가버렸고 남은 것은 장씨뿐이었다.      장씨는 틈틈이 술집 접대부를 불러들여 살림도 차려보았고 다방 아가씨를 꾀어 들여 집안에 앉혀 보았으나 그 동안 벌어 놓은 돈만 축낼 뿐이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식으로 뒤늦게 바람이 난 장씨에겐 하루하루 가는 게 꿈결 같았다. 그러다가 6개월쯤 후에는 더 이상 쓸 돈이 없었다. 알거지가 된 것이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빈털털이가 되자 그 동안 살 섞으며 죽자 사자했던 계집들도 이번엔 외상장부를 들고 찾아와 악다구니를 쳤다.      "장씨, 그 동안 마신 술값 어떻게 할거요?"      장사장님에서 장씨로 호칭이 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좀 봐줘."      "술값은 외상으로 치자. 아니, 아이들 화대 값도 외상으로 할거야?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생각다 못한 장씨는 갈아입을 옷 몇 가지만 가방에 챙겨 갖고 야반도주를 했다.      그런 장씨가 가끔씩 우리 친구들 앞에 나타났는데 나타날 때마다 큰 소릴 쳤지만 그의 초췌하고 꾀죄죄한 모습에서 그의 현재 형편을 측량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동안 부산에서 부두 노동자를 비롯하여 외항선원, 회사 경비원, 노가다 인부 등 전자계통과는 전혀 무관한 육체노동을 하며 만고풍상을 겪어서인지 이미 그의 머리는 반백이었다.      이런 장씨가 딱해서 친구들은 그를 마땅한 과부와 재혼시킬 것을 신중히 논의, 마침 부천에 용한 중매쟁이가 있다는 걸 수소문했는데 그녀가 윤 마담, 즉 통뼈마담이었다.        윤 마담은 디방으로 데리고 나온 장씨를 마치 민완수사관처럼 아래 위를 훑어보며 예의 주시하더니 몇 마디 물었다.      장씨는 그녀가 묻는 말에 더듬더듬 대꾸했다.      윤 마담이 쓰고 있는 안경알 속의 눈초리가 차갑고 매섭게 느껴졌기 때문에 잘못 거짓말이라도 하다가 발각되면 큰일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괜찮아.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차근차근 대답해. 자네의 일생이 걸린 일이야. 나중 일은 생각지 말아.“      "혼자되신 지는 얼마나 되는지요?"      장씨는 그 말에 주눅이 들어 올려다 보지도 못하고      "예, 예, 꽤 오래 됐습니다." 하며 겨우 모기 소리만 하게 대답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한 5년 됐습니다."      "5년이라? 그럼, 그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다른 여자와 동거생활을 했는지 아니면 틈틈이 난잡한 짓을 했는지 그런 의미였다.      "그냥 혼자 책도 읽고, 산에도 가고 그랬습니다."      "기간이 너무 긴데요." 하며 윤 마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음 질문을 했다.      "이혼을 당했습니까, 이혼을 했습니까? 아니면 상처를 했습니까? 이혼을 당했으면 선생에게 하자가 있는 것이고, 이혼을 제의했으면 부인에게 하자가 있는 법인데 좀더 구체적이고 육하원칙대로 말씀해주십시오. 그래야 성사가 됩니다."      그 말의 뜻을 이해 못하는지 장씨는 머뭇머뭇 했다. 그래서 우리가 대신 답변해 주었다.      "예. 상처를 했지요. 부인이 암으로 세상을 떴거든요.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의 일생에 파도가 몰려 온 것입니다.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요."      윤 마담이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건 그렇고, 현재 직업은 뭡니까? 그것도 구체적으로, 또 재산상태는요?"      "예, 전자제품의 하청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재산은 공장부지하고 이것저것 합해서 약 3억 정도 될까요?"      이것도 우리가 대답해 주었다.      "아, 그래요? 그 정도면 재산 상태는 양호한 편이고, 그럼 어떤 상대를 원하십니까?"      "예, 그냥 빨래나 해주고 어린애 딸리지 않은 40줄의 과부라면, 그런 사람이 있겠습니까?"      "알아봐야지요. 40줄의 과부라? 퍽 순수한 편이시군요."      "예, 워낙 이 친구가 마음씨가 착해 놔서‥‥‥‥“      "호적은 깨끗하겠지요?"      "예 물론입니다."      "가족관계는?"      "현재 홀몸입니다."      "홀몸이라고 해놓고 부인 얻고 나서 하나 둘 객꾼처럼 모여들면 손해 배상 물어야 해요. 그런 사람들 그 동안 많이 봤어요."      "염려 놓으십시오."      그녀는 장씨가 답변하는 말을 신문기자처럼 노트에다 정성껏 적었다. 그러면서도 장씨의 몰골이 초라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열심히 곁눈질을 하며 흘겨보았다.      세탁소에서 빌린 양복이 너무 낡아 세탁을 했지만 소매가 헐어져 실밥이 튀어나온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친구 너무 소탈해서 탈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공치사를 늘여다 놓아도 윤 마담의 노련한 눈길을 피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재산상태는 정확하겠죠? 나중에 심부름 센타 직원들 시켜 확인해 볼 테니까 정확히 말씀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 장씨의 재혼문제는 정식으로 윤 마담의 수첩에 올라 추진되었다.      장씨와 윤 마담은 그 후 자주 만났다. 윤 마담과 만날 때마다 세탁소 하는 친구는 장씨에게 손님 옷을 빌려 주었고 우린 그의 거사비용을 염출해 주었다.      윤 마담은 장씨와 만날 때마다 한 사람씩 신부 후보라고 데리고 나왔다.      어느 때는 스물이 조금 넘은, 비록 과거의 경력(?)이 좀 있지만 살결이 고운 젊은 여자를 데리고 나왔다.      장씨는 저 여자라면‥‥‥‥ 하고 생각했으나 오직 그림의 떡이었다.      소개를 시키고 윤 마담은 그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기 위해 자리를 피했는데 번번이 장씨 쪽에서 딱지를 맞았다.      주로 서른 살 내외의 여자는 유흥가 쪽에서 잔뼈가 굵어 세상물정을 너무 잘 알아 장씨와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윤 마담은 젊은 여자와는 쉽게 성사되지 않을 것 같자 이번에는      "장사장님, 아무래도 젊은 애들보다 산전수전 겪은 과수댁이 어떨까요? 한 사람 마땅한 사람이 있긴 있는데 한 가지 아이가 한명 딸려서, 아이라야 친정에서 양육하면 될거고."      그래서 그것도 괜찮다 싶어 맞선을 보았다. 그랬더니 장씨도 늙었지만 늙어도 아주 늙은 시장바닥에서 고등어나 팔 뚱뚱한 50대쯤의 여자를 데리고 나왔다. 모르긴 하지만 슬하에 손자까지 있을 성 싶은 늙은 여자였다.      장씨는 윤 마담에게 싫은 표정으로 눈짓을 했다. 아무리 내가 늙었기로서니 저런 저승길 앞장 설 여자를 데려오다니 사람을 뭘로 아는가 싶어 화까지 났다.      "장 선생님, 웬만하면 그냥 하세요. 장 선생 인생도 그렇고 그런 것 아닙니까? 헌신 문수만 맞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그렇지요. 윤 마담, 사람 너무 무시하시네요."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배필이 나타났다. 30 중반의 여자인데 장씨도 호감이 가고 그 여자도 장씨에게 호감을 피력했다. 이런 걸 천생연분이라고 하든가?      "예, 마음에 듭니다. 추진하겠습니다."      장씨는 윤 마담에게 자신 있게 대답했다. 상대방도 윤 마담에게      "사람이 성실한 것 같아요. 나이가 좀 들었으나 가꾸면 되는 것 아녜요. 오히려 젊은 사람보다 나은 것 같아요." 하며 교제하다가 봐서 살림 차릴 것을 생각하는 듯 했다.      윤 마담도 장씨에게      "이번 일은 잘 성사가 될 것 같은데 장 선생, 나 시시한 여자 아닙니다. 크게 놀아요.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하며 금전문제를 넌즈시 물어보았다.      "예, 제가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한 장?"      "그렇게 해야겠지요."      윤 마담의 한 장은 1백만 원을 생각하는 것에 반해 장씨는 견해가 달랐다. 십만 원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도 지금의 형편으로는 여러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사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네, 좋아요. 그러면 내일 저녁에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 저녁, 장씨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30대 중반의 과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윤 마담이 나타났다.      "그 아이가 몸이 아파 못 나오겠다고 해서 대신 나왔어요. 아무래도 집에서 반대를 하는 것 같아요. 헤어질 때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간 것을 보니, 할 수 없어요. 사람이 하는 일, 본인이 싫다고 하면‥‥‥‥“ 하며 장씨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장 선생, 그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      장씨는 그저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윤 마담도 장씨에게 여러 명의 여자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문득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자신은 중매만 했지 자신의 일은 한번도 스스로 처리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돈 몇 푼 때문에 남의 인생을 사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을 때 스스로의 인생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윤 마담은 이제부터 중매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쳐 당사자(?)끼리 해결한다는, 이제까지 없었던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 상대를 장씨로 내심 생각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장씨가 비록 머리가 반백이고 체격도 별 볼일 없지만 그 동안 만나본 결과 성격이 온순하고 홀몸이며, 재산상태도 3억 정도 되니 자신의 재산을 축내려는 것 같지는 않았고, 체격으로 보아 자기 휘하에 잡고 놀 수 있지 않느냐는 나름대로의 철저한 계산을 해보았다. 그래서 장씨가 마음에 든다는 여자를 다른 핑계 삼아 따돌렸던 것이다.      윤 마담은 장씨가 술을 마다 않는다는 것을 알고 술집으로 데려가 가끔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만취한 장씨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수작을 붙였다.      "장 선생님, 내가 중매쟁이 노릇을 한다지만 나도 외로운 사람이랍니다. 사람이란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나 중매 좀 서 주세요. 구전은 톡톡히 드릴께요." 하며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촌닭처럼 앉아있는 장씨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의 악력이 대단해 꼭 역도선수의 손 같았다.      "윤 마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장씨는 술 취한 와중에도 체면을 지키기 위해 슬그머니 손을 떼려 했으나 떼면 뗄수록 수갑처럼 꼭 죄어왔다.      "장 선생님도 외로운 사람, 나도 외로운 사람,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는 것도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장 선생님." 하며 짐짓 취한 것처럼 슬그머니 장씨에게 몸을 기댔다. 그러다가 장씨를 쓰러뜨렸다.      "윤 마담, 이러시면‥‥‥‥"      그러나 그것도 말 뿐이었다.      장씨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괜히 돈도 없는 주제에 젊은 계집 탐해봐야 평생 고생문 닫히지 않을 것 같고, 또 몇 달 살다가 젊은 놈팽이 얻어 고무신 바꿔 신을 것 같아 윤 마담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윤 마담의 얼굴이 말상이고 섬찟하게 생겨 마음에 걸렸지만 얼굴이 먹여 살리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뼈다귀가 굵어 가끔 부딪치는데(?) 좀 신경을 써야겠지만 이 여자와 함께 지내면 의식주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씨는      "이렇게 여러 모로 부족한 나를 그렇게 깊이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저같이 못난‥‥‥“ 하고 슬쩍 빼보았다.      "아니에요. 제가 그 동안 너무 잘난 체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저 외로운 여자예요. 겉으론 화통하고 뭐든지 혼자 해결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장 선생님, 날 어떻게 해주세요." 하며 윤 마담은 장씨의 목을 잡고 매달렸다.      그 이튿날 새벽, 장씨가 깨어보니 곁에 반라의 윤 마담이 번듯하게 누워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날부터 윤 마담과 한 식구가 되었고 호칭 역시 '여보 당신'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었다.      윤 마담은 그것도 하느님이 뒤늦게 주신 귀한 남편이라고 장씨를 극진히 대접했다.      "여보, 괜찮다면 며칠 푹 쉬세요. 당신이 사장이니까 맘대로 해도 될 것 아녜요. 시장하시면 냉장고 열고 입에 맞는 것 꺼내 잡수세요. 나는 수금할게 있어서 나갔다가 좀 늦을테니까요."      그래서 며칠 간 마음 놓고 푹 쉬었다.      장씨는 자신의 처지가 발각될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에라, 나중에 삼수갑산 가더라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냉장고에서 기름진 음식과 양주를 꺼내 대낮부터 취했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보내길 4일, 윤 마담이 어느 날,      "여보, 당신 직장일 보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하고 직장에 나갈 생각을 않고 방구석에서 번둥빈둥 대는 장씨에게 물었다.      "총무한테 이야기해 놨어요. 일주일 간 몸이 아파 쉰다고‥‥‥“      "회사를 남의 손에 맡기면 안 되는데‥‥‥“ 하며 윤 마담은 반신반의했다.      무슨 놈의 회사가 일주일씩 비워도 괜찮단 말인가.      그날, 일수 돈을 걷어 정오쯤 들어온 윤 마담은 대낮인데도 술이 취해 팬티만 걸치고 대(大)자로 누워 있는 장씨가 문득 의심스러웠다. 장씨의 신원조회 한번 해보지 않고 받아들인 자신이 너무 경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장씨 친구들 말에 넘어가지 않았나? 3억 정도의 재산이라면 꼴이 왜 그 모양인가?)      그래서 다시 한 번 장씨의 누워 있는 모습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 동안 목욕탕에 가질 않아선지 손톱 끝에 까만 때가 박혀 있었고 양말 뒤꿈치가 드러나 보여 3억 정도의 재산가 같지 않았다. 누워 있는 장씨의 입에선 고약한 냄새가 풍기고 품위 없이 침까지 질질 흘러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잠꼬대까지 나왔는데 듣기에 아주 민망한 상소리였다.      "야, 이 x년들 ! 내가 누군 줄 알아! 이래 뵈도 왕년에 용산 짱구라면 계집들이 사족을 못 썼어! 이것들이! 외상술 먹는다고 괄시야! 빨리 술 가져와!"      윤 마담은 그의 잠꼬대에 기겁을 했다.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상소리는 아무리 잠꼬대라지만 그의 전력을 의심케 했다.      (외상술? 이래 뵈도 왕년에 용산 짱구? 아무래도 내가 잘못 봤지, 양말에 구멍 뚫린 것은 또 뭔가? 요즘 세상에 구멍 뚫린 양말 신고 다니는 사람도 있나?) 하고 보니 의심 가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윤 마담은 혹시나 이치가 혹시나 싶어서 장롱 깊숙이 숨겨둔 현금 뭉치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로 있었다. 윤 마담은 누구도 믿지 못해 수금한 돈을 모조리 봉투에 넣어 모르는 곳에 감춰두었던 것이다.      안심이 된 윤 마담이 이번에는 장씨의 주머니를 살그머니 뒤져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를 살펴보았다.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을 보아하니 친척 같아 보여 다이얼을 돌렸다. 장씨의 부친 장 장로였다.      "거기 장기수 씨 댁이지요?"      윤 마담은 장씨가 깰까봐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조용 말했다.      "그렇긴 하오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요. 장기수 씨 잘 아는 사이입니까?"      "그래요. 물어보시오."      "이혼은 했습니까?"      "건 왜 묻소? 남이야 이혼을 했건 말았건, 그런데 거기가 어디요? 교도소요?"      "아닙니다."      "난 교도소인줄 알았지. 교도소 말고 그 놈이 갈 데가 없는데‥‥‥‥"      윤 마담은 얼른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이제 완전히 그의 정체가 들어 난 셈이었다.      "알고 보니 순 양아치 아냐?"      윤 마담은 자신의 판단이 틀려도 너무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 분한 생각까지 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한 줄도 모르는 장씨의 잠꼬대는 계속됐다.      "야, 이x년아! 빨리 쏘주하고 오징어 한 마리 가져와. 윤 마담은 또 어디 갔어!"      윤 마담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젠 콧물까지 흘리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분한 생각이 앞서서 그를 흔들어 깨웠다.      "여보 장씨, 일어나요. 여기가 어딘 줄 알아요?"      "어디긴 어디야, 내 집 안방이지."      윤 마담의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그러다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악을 써댔다.      "아니, 이거 어디서 굴러 온 말뼈다구야! 야, 이 새끼야! 빨리 일어나지 못해!" 하면서 한 발로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그것도 모자라 한손으로 그의 귀싸대기를 훔쳐 갈겼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장씨는 며칠 후에 올 사태가 일찍 다가온 것을 직감했다.      "내가 취했나? 남의 집에 들어온 것 같군." 하며 부시시 일어나더니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없이 쏜살같이 윤 마담의 집을 빠져 나갔다.      윤 마담은 세숫대야에 물을 퍼 담아 그를 향해 힘껏 뿌렸다.      윤 마담은 장씨를 집 밖으로 쫓아 보내고 나서 장농 깊숙이 숨겨 두었던 현금과 자기앞 수표를 꺼내 세어보았다. 2천만 원은 넘어 보였다.      요 몇 달 동안 이자에 이자가 새끼를 쳐 벌어준 돈이었다. 일수 돈, 고리 대금으로 벌어들인 돈, 다방 임대료, 아직도 걷어 들일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윤 마담은 그 돈을 만져볼 때 산다는 것에 대한 강렬한 의미를 느끼곤 했다. 남들이 느낄 수 없는 쾌감,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종이조각에 불과한 것들을 꺼내 보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 종이조각들이 축 날까봐 그 동안 남의 결혼식에도, 잔치 집에도, 값비싼 옷도, 친척들의 모임에도 될 수 있으면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윤 마담은 그 돈을 세어보면서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가슴 한 구석이 텅비고 웬일인지 허무감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외로움이었다. 장씨의 후줄그레한 뒷모습에서 석연치 못한 쓸쓸함을 느꼈다. 얼마 안 있으면 나이 마흔, 그 동안 이 돈을 벌기 위해 인색하고 지독하단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을 버린 전 남편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악착같이 살아왔던 것이다.      도둑 맞을까봐 자동 경보장치를 설치하고 이자 돈을 늦게 갚으면 인정사정없이 차압딱지를 발송케 하고,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것은 돈이었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잃은 것은 그녀의 인생이었다. 아무도 그녀의 주위에 없었다.      "이것이 뭐길래."      그녀는 침을 발라 돈을 세다가 그만 그 돈을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이것 말고 더 귀한 것이 있을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해줄 수 있는 다른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      길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기타를 두들겨가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동전을 구걸하는 맹인 부부의 얼굴에도 기쁨이 넘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기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작 동냥 받는 몇 천 원의 돈에서 기쁨을 찾는 것일까? 그리고 아침마다 들리는 청소원 아저씨의 밝은 얼굴, 좌판 아줌마의 피곤에 젖은 얼굴에서 초조와 불안의 그림자보다 오히려 행복감이 엿보이는 건 웬 일일까? 그런데 나는 왜 장농 속에 수천만 원을 숨겨 두고 행복은커녕 매일 초조와 불안에 떨며 전전긍긍하고 살아갈까?      그러다가 문득 조금 전 물벼락을 씌워 내쫓은 장씨에게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 마담은 마음이 심란해서 그날은 하루 쉬기로 했다. 모처럼만에 극장 구경이나 갈까 하고 생각했다. 옛날 고등학교 시절 몰래 들어가 보았던 남녀의 사랑에 얽힌 애정영화를 구경하기로 했다. 그 동안 살아가는데 너무 시간을 뺏겨 감정이 메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매를 하면서도 상대방의 기쁨을 생각하기에 앞서 중매 수수료에 신경을 써왔던 자신의 마음이 너무 인색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옷을 주워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녀의 집 앞 골목이 끝나는 길에 요즘 새로 생긴 성당이 있었다. 매일 하루에 두 차례씩 보는 성당 건물이었지만 그날따라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극장을 가려다 말고 성당 뜨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미사 시간이었다. 여신도들의 머리에 뒤집어 쓴 보자기가 산뜻해 보였다. 영성체 하는 모습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전능하신 천주와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과연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졌으며 또한 나의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신이 미처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저 사람들 가운데 나처럼 돈을 숨겨 놓고 혼자 몰래 세어보며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겠지.)      그녀는 만약 내가 수중에 돈 한 푼이라도 없다면 나는 죽은 송장이나 다를 바 없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죽자 살자 하고 돈을 모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가슴에 허무가 밀려온 것이다. 돈이 없어도 사람대접 받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그러자 그녀는 그 동안 자신은 남들에게 베푼 것이 너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자기 뒤집어 쓴 여자들 틈에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용기를 내어 성당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치 패잔병 같은 심정이 들었다.      사무장 옆에서 말을 주고받는 수녀에게 다가가      "수녀님, 저도 이 성당에 나올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젊은 수녀의 얼굴은 깨끗했다. 자기처럼 돈 욕심이 없는 아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는 딴 세상에서 온 천사와 같이 느껴졌다. 수녀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비교해 보니 자신의 얼굴은 너무도 때가 묻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해와 세속적 욕심의 때가 묻지 않은 젊은 수녀의 얼굴을 대할 때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수녀는 윤 마담에게      "초 신자이신 모양인데 좋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늘 선생님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주님이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찾아오시는 것이 마땅하지요. 참 반갑습니다." 하면서 그녀를 성당 뒤쪽의 수녀관으로 데려 갔다.      그녀는 마치 주인의 손에 끌려가는 한 마리의 소처럼 억지로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죄짓고 쫓겨 다니다 자수한 범인의 심정처럼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앉으십시오."      그녀가 의자에 앉자 수녀는 그녀를 위해 성호경을 긋고 그녀를 위해 간단한 기도를 했다.      "전에 교회나 성당을 다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릴 적 교회성가대에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흥미삼아 다녀본 것이죠."      "가족관계는?"      "홀몸입니다."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그래서 남들에게 괄시 받지 않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돈이 제가 갖는 신앙이었습니다. 괄시 받지 않고 사람 대접받으며 이 세상을 꾸려 가자면 돈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돈을 모았습니다만......"      "잘하셨어요. 돈이 있어야지요. 그러나 이제부터 돈보다도 마음 속에 사랑을 쌓아가는 생활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선생님이 돈으로 인해서 잃어버린 것을 살아가면서 찾아야 해요. 남들과 원수진 것을 풀고, 용서를 해주고 그럼으로써 선생님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베풀어야 합니다."      윤 마담은 수녀의 '베풀라'는 말에      "그럼, 제가 갖고 있는 돈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란 말입니까?" 하며 정색을 했다.      (그게 어떤 돈인데, 마음이 심란해서 성당을 찾아왔는데 겨우 애써 번돈을 게으름뱅이들에게 나눠 주란 말인가? 그래야만 보자기 쓴 사람들과 어울리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녀는 웃으면서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재물은 때로는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들에게 베풀어 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목숨을 버리려는 자는 얻을 것이요, 목숨을 아끼려는 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란 성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갖고 계시면서도 평화를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재물만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수녀관을 둘러보니 값나가는 물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값나가는 그림도, 도자기도, 전자 제품도 없었다. 그러나 거기엔 이상하게도 마음을 아늑하게 해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내용도 모르고 값나가는 그림을 구입해서 벽에다 붙여 놓고 그걸 들여다보면 느끼던 즐거움, 그것은 어쩌면 가짜일 것 같았다. 그림을 감상하며 진정한 즐거움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림의 값을 견주어보며 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윤 마담은 이렇게 혼자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수녀가 부러웠다. 그래서 물었다.      "수녀님은 월급이 얼마나 되십니까?"      "월급은 없습니다."      "그럼, 생활하는데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가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합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물며 하느님이 창조하신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겠습니까? 선생님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찾아오신 것도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 말에 윤 마담은 그 동안 가졌던 강퍅했던 마음이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 같은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도 처음엔 다 선생님 같았습니다. 자주 찾아오십시오."      수녀의 말을 듣고 수녀관을 나온 윤 마담의 발걸음은 처음의 패잔병 같은 발걸음이 아니었다. 한결 발걸음에 가벼웠다. 평소에 경멸하던 장님 악사부부도, 절름발이 불구자도, 모두가 사랑스러웠다.        6개월 후, 그녀는 마침내 교리 공부를 마치고 '기름부음'을 받았다.      통뼈 마담이 아니라 '루시아'란 본명으로 새로 태어났다.      그녀가 이상스럽게 느꼈던 미사보를 쓰고 미사예식에 참례했고, 진정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느꼈다.      "인생이란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돈 말고 또 다른 무엇, 그것은 사랑입니다. 자매님도 늦지 않았습니다.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그리고 주님 앞에 기도하세요."      그녀는 자신 있게 남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놀라운 변화였다.   - 끝 -
20    [단편소설] 꿈 / 박명선 댓글:  조회:609  추천:0  2022-11-16
[단편소설] 꿈 박명선 1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전차가 사막에 멈춰서버린 꿈이었다. 일본은 사막이 없는 나라인데 왜서 전차가 사막에 왔을까? 전차를 탔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었다. 저쪽 출입문 옆에서 웬 남자가 머리를 숙이고 걸레가 들어있는 물통 안의 물을 정신없이 들이키고 있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어떻게 저런 더러운 물을 다 마신단 말인가? 전차에서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모노를 입고 이목구비가 수려한 여인이 물병을 들고 웃으며 앞에 서있었다. 그는 여인을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에 나와 보니 차바곤에 7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물은 어디에 있을까? 가없이 펼쳐진 사막 가운데에 푸른 오아시스가 보였다.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가다가 꿈 속에서 깨어났다.....      일본에 와서 어쩌다 낮잠을 잤더니 이게 웬 꿈일까?      2000년대초 어느 해 2월 중순 토요일 오후였다.      오랜만에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이지만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룸메이트였던 찬이가 이사를 간 집에 혼자 있기도 멋적게 생각되어 그는 운동복을 차려입고 집문을 나섰다.      오전과는 달리 바람도 불지 않고 따스한 햇빛도 비쳐왔다. 집과 가까운 곳에 큰 공원이 있었지만 찬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유소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주유소를 지나 집 동네를 벗어나는 길목에 작은 공원이 있었던 것이다. 그 공원을 지나 옅은 강물이 흐르는 다리를 건느면 신작로에 닿는다. 작년에 한달간 비닐제품제조공장에서 주말아르바이트를 할 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면서 보았던 공원이었다. 오늘은 웬 일인지 그 공원에 가보고 싶었다.      주유소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 걸린다. 주유소에 거의 왔을 때 하얀색 승용차 한 대가 주유소를 나와 앞으로 내달리는 게 보였다. 주유소를 지나려던 그는 맞은켠 길옆에 잠깐 멈춰섰다. 노란 유니폼에 노란 모자까지 쓴 종업원들을 보노라니 두주일 전까지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찬이를 눈앞에서 보는 것만 같았다. 화물차가 무섭게 옆을 스쳐가서야 다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아까 하얀색 승용차가 공원 앞에 멈춰있었다. 동네를 둘러보면서 공원에 도착하니 승용차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공원 구석진 곳에 놓여있는 벤취에 선글라스를 건 남자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여자가 햇볕쪼임을 하는지 큰길 쪽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말하고 있는 남자는 30대 후반으로 보였고 웃고 있는 여자는 꽤 젊어보였다. 그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내처 앞으로 걸었다. 나왔던 김에 강변까지 가보고 싶었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 나니 산책할 시간도 없었다.      그는 강변을 거닐다가 돌계단에 앉아 잘금잘금 물결이 일렁이는 강물을 굽어보면서 집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엇저녁에도 이제 몇 밤 자면 오는가고 딸애가 묻기에 백 밤만 자면 간다고 말했다. 이젠 백 밤이라는 말을 어린 딸애한테 몇 번이나 했는지도 모른다. 일본에 온 지 1년이 넘었다. 애엄마와 딸애의 얼굴은 사진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돈지갑에 넣은 사진을 꺼내보았다. 이제도 몇 년 더 있어야 귀국할 수 있는데 그 때면 애엄마도 딸애도 나를 보고 낯선 사람 만난 듯 서먹서먹해하지 않을까고 생각해보니 마음이 서글퍼졌다.      한참 앉아있다가 공원에 다시 이르렀을 때는 승용차가 보이지 않았다. 벤취는 하나 뿐이었다. 그는 아까 그들이 앉았던 벤취에 가서 앉았다.두 팔을 벤취에 올려놓고 따스한 햇살에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부인과 딸애를 일본에 요청하여 한주일 전에 이사를 간 찬이가 부러웠다. 찬이는 하얼빈 모 대학 일본어학부 동창생이고, 일본어교원을 같이 하다가 일본에도 같이 유학을 온 친구였다. 일본에 금방 왔을 때 이제 서로 가족요청을 하면 동갑인 애들이 같은 유치원에 다닐 수도 있겠다던 찬이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찬이처럼 가족요청을 하고 싶었지만 학업을 마치면 귀국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정부 공무원인 애엄마를 일본에 꼭 오라고 강요할 수도, 일본에 데려다가 아르바이트를 시킬 수도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멀지 않은 쓰레기통 옆에서 까마귀 두 마리가 하얀 비닐주머니 안의 알포트 쵸콜렛봉투를 헤집어대고 있었다. 그들이 먹다가 버린 음식쓰레기 같았다. 그는 까마귀들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눈앞에서 까마귀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충격적인 정경에 그의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까마귀들은 찾아낸 먹이를 제각기 먹는 게 아니였다. 주둥이를 맞대고 서로 먹이를 먹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눈치챘는지,먹을 만큼 먹었는지 얼마 안되어 까마귀들은 검은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까악까악 소리를 내지르며 시가지 쪽으로 날아갔다.      까마귀들이 헤집어놓은 비닐주머니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려던 그는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본 듯 되돌아서버렸다. 비닐주머니 안에 빈캔이며, 쵸코렛 부스러기며, 빨간 립스틱이 묻은 티슈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앉았던 벤취에 멍청하니 앉아있었다는 게 께름직하게 느껴졌다. 옷에 뭐가 묻지 않았나 옷잔등과 바지엉덩이를 툭툭 털고 자리를 떴다. 오늘 괜히 여기를 찾아오지 않았나 싶었다. 아까 차를 눈여겨보았다. 도요다차였고 도꾜 차번호였다.      주유소를 다시 지나 번화한 네거리에 왔을 때 그 도요다차가 마주오다가 전철역 방향으로 굽어들어 길옆 주차장 안에 멈춰서는 게 눈에 띄었다.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가지 않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선글라스와 노란 머리가 같이 내리더니 멀지 않은 세븐일레븐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부부간이 아님은 틀림없었다. 뒤따라 세븐일레븐에 들어선 그는 가게 안을 살펴보았다. 선그라스도 노란 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들이 화장실에 또 같이 들어갔을까? 지금까지 다녀본 패밀리마트나 세븐일레븐에 화장실은 없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나오던 샴푸를 찾아가지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서려는데 그 남자가 카운터 안에 서있었다. 유리창문으로 비쳐들어오는 햇빛에 야마시다(山下)라는 명찰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윽하여 노란 머리도 카운터로 통한 휴게실이라고 써붙인 문으로 나왔다. 둘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던 것이다.      오오쯔끼(大槻)라는 명찰을 단 노란 머리가 40대 여점원에게 인사를 하고 계산대에 바꿔섰다. 교대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시였다.      야마시다가 오오쯔끼에게 바코드를 찍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오오쯔끼가 아르바이트하는 첫날인 것 같았다.      점장일 수도 있는 야마시다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오오쯔끼, 공원에서 세븐일레븐으로 날아들어온 두 까마귀.......      그는 샴푸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2      이튿날 아침, 호랑이도 간담이 서늘해 할 것 같은 어마어마한 소리에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대문이 바람에 닫기는 소리였다. 대문의 진동에 한 겹 창문들이 덜컹거리고 주방의 그릇들이 딸락거렸다. 일본에 온 지 얼마 안되던 어느 날 밤중에는 갑자기 집 전체가 마구 흔들거려 지진에 집이 무너져 깔려죽지 않겠나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방안으로 찬바람이 불어들어오고 있었고 잔뜩 들린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커튼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창문부터 닫았다. 어제 오후 통풍시키려고 조금 열어놓았던 창문을 자기 전에 닫는 걸 깜빡 잊었던 것이다. 대문이 닫기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집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는 문을 도로 닫았다. 한달 전, 증권회사에 근무한다는 오오무라(大村)가 독신으로 1층에 이사를 왔다. 그보다 나이도 어리고, 성격도 쾌활하고, 웃을 때면 덧니가 유표하게 드러나는 그녀와 가끔씩 농담도 주고받았었지만 찬이가 이사를 간 후부터는 예의적인 인사만 하고 스쳐지나군 했다. 외국인을 상대하기 싫어하는 듯한 중년 부부가 한동안 1층에 살고 있었는데 작년 연말에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 1층이 비어있을 때는 아랫층에 내려가서 대문을 닫을 때도 있었지만 이젠 오오무라가 있기에 아랫층에 내려갈 필요가 없었고 혹시 비좁은 대문 안에서 오오무라를 만나면 어설픈 인사를 하기도 싫어서였다.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이다. 어쩌다 이틀 쉬게 되어 오늘은 찬이네 가족을 집에 요청하여 저녁식사나 같이 할까고 어제부터 속궁리하고 있었다. 찬이가 이사한 날, 전자레인지를 이사선물로 사주고 찬이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언제 한번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그들 부부에게 말했던 것이다. 어제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치는 날씨라 오늘은 찬이네 가족을 부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하얀 냉장실이 굶주린 짐승의 뱃속처럼 느껴졌다. 오늘 점심에 전철역 앞 마트에 가서 불고기용 쇠고기랑 찬이의 딸애가 좋아한다는 치킨이랑 카레를 한꺼번에 사려고 어제는 달걀도 사놓지 않았다. 김치와 쏘세지 한 개와 달걀 한 알 밖에 없었다. 달걀을 볶아서 아침이라도 먹고 싶었다.      그는 달걀을 사려고 다시 집문을 나섰다. 집 부근에 패밀리마트가 있었지만 세븐일레븐으로 자전거를 내달렸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고 바람도 부는 날씨라 가게에는 손님이 서너 명 밖에 없었다. 달걀과 사과쥬스를 사가지고 나가려던 그는 가게에 손님이 없는 걸 보고 계산대에 되돌아섰다. 세븐일레븐 로고가 새겨진 황토색 에프런을 앞가슴에 걸친 30대 중반으로 보이고 어느 드라마에서 나오던 탤런트처럼 이쁘게 생긴 아까 여점원에게 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생을 수요하는가고 물었다. 여점원이 웃으면서 그의 신상에 대해 먼저 묻더니 밤 열두시부터 새벽 다섯시까지 하는 시간대가 비어있다고 말할 때 휴게실 문으로 야마시다가 나왔다. 여점원이 야마시다의 옷소매를 내려주는 걸 보고 그들이 부부간임을 알아차렸다.      야마시다가 입국심사관처럼 그의 전신을 위아래로 쓱 내리훑어보고 나서 이것저것 묻더니 오늘 밤부터 나올 수 없는가고 묻기에 지금 좋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야간아르바이트인데 시급이 낮다고 능청스레 대꾸했다. 야간아르바이트 시급이 1,000엔이면 높은 레벨이었다. 야마시다가 와이프의 웃는 얼굴을 쳐다보면서 100엔을 인상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마침 방학기간이고 점심 열두시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하는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집에 가서 좀 누워있다가 시간을 맞춰 다시 와도 되었다. 그는 선선히 동의했다. 부인의 분부 대로 종업원명보에 인적사항을 적어넣었다. 7,8명 되는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이 근처에 살고 있었지만 오오쯔끼만은 두 정거장을 가야 하는 곳에 살고 있었다. 찬이네 집 부근인 것 같았다. 야마시다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돌아서려는데 부인이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건네주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해달라고 하기에 웃으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집에 들어온 그는 방금 전의 일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오늘 왜서 세븐일레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자고 했을까? 야마시다와 오오쯔끼 때문일까? 그들이 무슨 사이든 상관할 일이 아니잖은가? 까짓 달걀을 사려고 세븐일레븐을 찾아갔단 말인가?      어제 그 공원을 찾아갔던 것처럼 오늘도 괜히 세븐일레븐을 찾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제 꿈에 보았던 7숫자와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어쩌면 세븐일레븐과 야마시다부인일지도 몰랐다. 부인의 황토색 에프런과 에프런에 달린 파란 호주머니가 사막과 오아시스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전국 각지에 점포가 널려있고 슈퍼들 중에서 매출량이 상위라는 세븐일레븐, 일이 이렇게 된 바엔 집에서 멀지 않은 세븐일레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좋을 상 싶었다. 3      세븐일레븐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도시락을 산 손님에게는 덥혀드릴까요, 컵라면을 산 손님에게는 더운 물을 부어드릴까요, 하고 물어봐야 했다. 계산대에서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일은 그나마 수월했지만 혹시 물건을 훔치지 않는가고 모니터로 손님들의 거동을 주시해봐야 했다. 물건을 가만히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창고에서 상품들을 날라다가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넣어야 했고, 가져간 상품들을 기록부에 기록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빵, 샌드위치, 스시, 도시락, 오니기리(주먹밥)와 같은 유통기한이 짧은 식료품들은 밤 열두시가 지나면 소비기한을 재확인해야 했고, 마사진 달걀이나 과일은 처분하고 새 것으로 다시 내놓아야 했다. 그리고 식료품배달트럭이 들어오면 식료품들을 날라다가 냉장코너에 진열해놓아야 했다.      야마시다가 한시간 정도 가게에 있다가 파트너인 혼다(本田)와 잘 협력하라고 부탁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부인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 부부는 매일 여기에 주숙하지 않는 걸로 짐작되었다.      둬시간은 허리를 펼 사이도 없었다. 휴게실 안에 창고도 있었고, 창고 옆에 탈의실과 화장실도 있었다. 카운터로 나가는 문 왼쪽에 작은 미닫이방이 있었다.      새벽 세시가 되니 손님이 적었다. 대학 2학년생인 혼다가 걸상에 앉아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그는 시계를 자꾸 올려다보았다. 오늘부터 몇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하루에 두 곳 아르바이트를 어떻게 할까, 버텨낼만 할까 근심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계산대 옆에 붙여놓은 일정표를 보았더니 오오쯔끼는 오후 세시부터 저녁 여덟시까지 한주일간 오까다라는 여성과 파트너로 되고 있었다.      매장 안을 한바퀴 둘러보다가 창밖을 내다보던 그는 밖으로 나갔다. 가게 옆에 설치한 공중전화기가 전화줄에 매달린 채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가 전화를 하고 전화기를 제대로 올려놓지 않은 것이었다. 새벽바람에 으스스 몸이 떨려 전화기를 도로 올려놓고 가게로 달려들어가면서 큰길을 얼핏 건너다보았더니 멀지 않은 가로등 아래에 파란색 승용차 한 대가 멈춰있었다. 그가 가게에 들어와서 얼마 안되어 마스크를 착용하고 코트 깃을 올린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섰다. 그는 감기에 걸린 손님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유와 샌드위치를 들고 카운터에 와서 값을 치른 여자가 야마시다부인이 오지 않았는가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야마시다부인한테 전해달라면서 호주머니에서 웬 편지봉투를 꺼내 카운터에 내밀며 야마시다부인한테 전화를 할 것이니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카메라에 얼굴이 찍힐까봐서인지 머리를 숙이고 총망히 가게를 나갔다. 그와 혼다는 인사말도 건네지 못하고 의아한 눈길로 여자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편지봉투 수신인과 발신인 난에는 이름도, 주소도 씌어있지 않았다. 혼다가 웃으며 돈이 들어있지 않을까고 묻기에 돈은 절대 아닐 거라고 대답했다. 편지봉투를 만져보았더니 사진이 몇 장 들어있는 것 같았다. 혼다도 편지봉투를 만져보고 여자손님이 수상하다며 부인한테 어떻게 전해드리면 좋을까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파란색 승용차가 움직이더니 전철역 방향으로 씽하니 가버렸다. 여자는 아까부터 차안에서 동정을 살펴보고 있다가 가게에 들어온 것이었다.      혼다는 한주일 전부터 여기서 일하고 있어 야마시다부부한테 소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애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편지봉투를 창턱 꽃병 옆에 놓아두었다.      새로 들어온 식료품들을 진열해놓고 어제 남은 오니기리 네 개를 광주리에 담아들고 카운터에 돌아가려는데 부인이 가게에 들어섰다. 부인이 아침인사를 하면서 이젠 퇴근하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가 다 되었다. 그와 혼다가 옷을 갈아입고 카운터에 다시 나오니 부인이 롱코트를 입은 채로 계산대에서 돈을 점검하고 있었다. 뒤돌아보던 부인이 집에 가서 아침이라도 먹으라면서 그와 혼다에게 오니기리 두 개씩 나눠주었다. 그가 얼마인가고 묻자 웃으면서 2천만엔이라며 점장이 몇시에 퇴근했는가고 묻기에 새벽 한시 쯤에 퇴근했다고 대답했다. 왜서 남편이 몇시에 집에 들어간 것도 모르고 있을까? 혼다도 멍하니 부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혼다에게 창턱을 눈짓하자 혼다는 눈을 껌벅거리고는 돌아서버렸다.      그는 새벽 세시 쯤에 마스크를 착용한 여자가 부인한테 전해달라며 부탁한 것이라고 창턱의 편지봉투를 부인에게 건네주었다. 웬 여자가 새벽에 편지봉투를 가져왔을까고 의문스러운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던 부인이 알았다면서 수고했어요, 내일 다시 뵈요, 하고 카운터에서 그들을 바래주었다.      어머니와 누나와 같이 살고 있다는 혼다는 저녁에 다시 만나자며 집 방향이 다르기에 먼저 가겠다면서 자전거를 냅다 몰고 벌써 저 멀리로 사라져갔다. 그보다 나이도 어리고, 일본인인 혼다와 똑같게 오니기리를 나눠준 부인이 고마웠지만 집으로 가는 내내 이제 부인한테 무슨 큰 불행이라도 닥쳐오지 않을까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집에 들어오니 소르르 졸음이 몰려왔다. 오니기리를 먹으려다가 가방에 넣어두었다. 배가 고팠지만 눈이 내려와 먹을 것 같지 못했다. 평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는 전차로 반시간 가야 하기에 열한시 전에 일어나야 했다.      얼마나 잤을까, 자지러지게 울려대는 휴대폰 벨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일곱시였다. 그는 누운 채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모시모시, 저예요. 주무시는데 전화를 드려 미안해요. 통화 불편하지 않아요?”      야마시다부인이었다.      “괜찮습니다.”      “녹화를 보았는데 그 여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혼다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 여자 몇 살 쯤 돼보였어요? 그 여자를 뒤따라 나가보지 않았어요?”      혼다는 새벽부터 몹시 당황해했고, 부인한테서 전화가 걸려오니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을 수도 있었다. 혼다에게 먼저 전화를 한 부인에게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파란색 승용차를 몰고 가더라고만 대답했다.      “차번호는 기억했어요?”      “불빛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습니다.”      “김상한테 한가지 일을 부탁하고 싶은데 직접 만나서 얘기할 수 없을까요? 지금 집인가요?”      “네, 집입니다만...”      “그럼 지금 집에 올라가도 괜찮을까요?”      이 여자가 집앞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4      어제와는 달리 따스한 햇살이 방안으로 비쳐들어오고 있었다.      여자가 집을 찾아오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바삐 옷을 주어입었다. 이불을 개어놓고 집문을 열었다. 그녀는 아까 옷차림 그대로였다.      “편히 앉으세요.”      방에 들어와 무릎을 꿇고 앉은 그녀에게 그는 웃으면서 방석을 건네주었다.      “이 자세가 더 편해요.”      그녀가 방석을 무릎 밑에 깔고 그를 보며 정색해서 말했다.      “집까지 찾아와서 미안해요. 오늘 밤 그 여자가 다시 가게에 올 수 있으니 잘 살펴봐주세요.”      “알겠습니다. 헌데,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 여자가 익명신과 함께 사진도 석 장 보냈더군요. 사진 보여드릴까요? 아니,더러운 사진은 보여드리지 않겠어요.”      익명신의 내용은 몰라도 무슨 사진인지는 알만 했다. 그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화제를 돌려버렸다.      “지금 점장님이 가게를 보고 있겠지요?”      “아직 오지 않았어요. 어제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그녀가 시계를 보더니 몇시에 집을 나가는가고 물었다.      “열한시 전에 집을 나가야 합니다. 그 여자가 부인한테 전화를 하겠다고 하던데 전화가 왔던가요?”      “전화가 올 리 없죠.”      “커피라도 드릴까요?”      주인의 예의를 갖춰 물어봤을 뿐인데 뜻밖으로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 가스불을 켜서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하품이 쉴새없이 나왔다. 선자리에서라도 잠깐 눈을 붙이고 싶었다. 그녀가 점장이 오면 내가 어디에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해달라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커피 두 잔을 타서 방으로 들어왔다.      “커피 드십시요.”      “고마워요.”      그녀가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어요. 오늘 출근하면 점장이 있을 거예요. 점장이 퇴근할 때 가만히 뒤를 밟아주시겠어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나한테 부탁하다니?      “미안하지만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 수도 없고 부탁했다가 가게에 소문이 날까봐 그래요. 제가 김상을 믿고 하는 말인데 저를 한 번 도와주시면 안되겠어요? 저는 지금 분을 참지 못하겠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격분했으면 나를 다 찾아와서 이런 부탁까지 할까 싶었지만 지금 자신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들고 있다는 불쾌한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먼저 5만엔 드릴게요.”      그녀가 핸드빽 안의 돈지갑에서 만엔짜리 지페 다섯 장을 꺼내 그의 커피잔 앞에 내놓았다.      내가 치사한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 남자인 줄 알았는가.      “이러시면 저는 가게를 그만두겠습니다.”      그는 돈을 그녀의 손에 도로 쥐어주었다.      “그럼, 오늘은 드리지 않을게요. 점장이 어디로 갔는가만 확인해주시면 그 때 더 드릴게요. 저는 그 여자를 용서할 수 없어요. 어떻게 저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는 그녀의 기색을 살펴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 여자가 가정을 파괴하려고 간계를 꾸민 게 아닐까요?”      “익명신을 간계라고 쳐요. 그럼 왜서 두 사람의 알몸과 그 장면을 찍은 사진을 석 장이나 보냈겠어요? 사진 일시는 작년 11월말이던데 가위로 여자의 얼굴을 베어낸 걸 보아 사진 속의 여자가 그 여자 같아요. 작년부터 그 사람을 의심하긴 했지만 증거가 없었기에 지금까지 참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법적으로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증거를 남긴 야마시다가 못나도 너무 못난 바보라고 생각되었다. 아무리 못나도 어떻게 사진을 증거로 다 남긴단 말인가? 헌데, 사진은 그들이 스스로 찍은 것일까, 아니면 그 여자나 누군가가 몰래카메라로 찍은 것일까?      “점장님이 혹시 그 여자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건 아닌지요?”      “그럴 수 없어요. 서로 미친 듯이 좋아했겠죠.”      그 여자는 아마 야마시다의 오랜 애인일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야마시다가 자기를 차던지고 어쩌면 오오쯔끼일 수도 있는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는 걸 눈치채고 야마시다가 자기와 같이 놀던 방탕한 사진을 동봉하여 부인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진을 보여달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편지내용도 알고 싶지 않았다.      “부인을 도와드릴 수 없어 미안합니다.”      “김상이 저를 도와주지 않으면 저는 여기서 나가지 않겠어요.”      “?...”      일순 그녀를 어떻게 집에서 내보내야 하는지 궁리가 나지 않았다. 답복할 수는 없었다. 불쑥 머릿 속에 뭔가 떠올랐다. 그는 입을 막고 하품을 하는 척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저는 조금 자야겠습니다. 자지 않고 이대로 밖에 나가면 쓰러질 것 같습니다.”      “그럼 쉬세요.”      그녀가 무릎을 세우더니 침대에 가서 이불을 펴놓았다. 이젠 그만 가겠는가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녀가 커피잔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그는 침대에 돌아누웠다. 노곤해진 몸을 뉘으니 절로 눈이 감겨졌다. 내가 자는 걸 보면 알아서 가겠지.      비몽사몽 꿈결에 누가 이불을 덮어주는 느낌에 눈을 뜬 그는 와뜰 놀라고 말았다. 그녀였다. 그는 이불을 차고 일어났다.      “미안합니다. 깜빡 잠들었습니다.”      “조금 더 쉬셔도 되는데요.”      시계를 보니 열시반이었다. 내가 세시간이나 잤나?      “아직 가지 않으셨.....”      그는 말끝을 흐리웠다.      “김상이 일어나는 걸 보고 가려고요. 저의 부탁 들어주시는 거죠?”      “이미 말했습니다. 저는 이젠 집을 나가야 합니다. 같이 나갑시다.”      “아니요. 전 여기에 그냥 있겠어요.”      억울하고 기가 막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있겠으면 있으라지. 언제까지 있는가 두고볼 테다!      그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가방과 웃옷을 쥐고 혼자서 집문을 나갔다.      저녁에 좀 늦게 퇴근했다. 집 골목에 들어서자 집 전등이 환히 켜져있었다. 전등을 켜놓고 나가지는 않았다. 그녀가 여직껏 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이다. 그녀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      살며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더니 그녀는 침대에 모로 누워있었다. 그녀가 입고 왔던 롱코트는 옷걸이에 걸려있었고 창문 커튼들도 쳐져있었다. 그녀는 자는 척하고 있는 게 아니였다. 누가 안아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숨소리에 따라 반팔 회색 스웨터 위로 오르내리는 몰캉한 젖가슴, 허벅지에 꽉 낀 곤색 바지 위에 윤곽이 드러난 몽클한 엉덩이, 황토색 나일론 양말에 눈길이 멎자 사막과 오아시스가 다시 생각났다.      사막에 멈춰서버린 전차에서 내려 물 마시러 오아시스로 달려가다가 꿈 속에서 깨어났는데 오늘 눈앞에 이렇듯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질 줄이야 어찌 상상인들 했으랴.      낮꿈은 개꿈이라더니 내가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를 보려고 그런 꿈을 꾸었단 말인가? 내가 보려던 오아시스는 이것이 아니였잖은가?      헌데, 오아시스에는 어떤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을까? 어떤 마을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5      침대 앞에 서있던 그는 주방에 가보았다. 주전자가 싱크대 옆에 놓여있을 뿐 라면을 끓여먹은 흔적도 없었다. 쓰레기통도 그대로였다. 그녀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자고 있는 것이다. 며칠 입은 적삼이나 씻자고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쓰레기통 안에 두루마리종이 여러 장이나 던져져있었다. 종이도 많이 쓰는구나 속으로 웃었다. 문득 왜서 생리기도 아닌 그녀를 집에 두고 야마시다가 어제는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남자들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지금 내 침대에서 자고 있는 그녀는 깨끗한 여자일까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내가 왜서 저것들 때문에 에로틱한 상상까지 해야 하는가고 다시 생각해보니 화가 치밀어올랐다. 와락와락 적삼을 씻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씻은 적삼을 베란다에 널어놓고 발자국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돌아오셨군요. 언제 오셨어요?”      그녀의 말소리가 마치 금방 잠을 깬 아내가 늦게 퇴근한 남편한테 하는 인사말처럼 들렸지만 그는 언성을 높였다.      “지금 남의 집에서 뭘 하고 있어요? 부끄럽지도 않는가요? 이웃들에서 내가 어떤 여자와 동거하는 줄로 알겠어요.”      그녀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입을 열었다.      “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저는 김상을 남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저의 동생과 동갑이더군요.”      그녀가 인적사항에 적어놓은 내역을 본 것이다.      “그럼 왜서 동생 집에 가지 않고 여기에 왔어요? 동생한테 부탁하면 되잖아요?”      “동생한테 알리고 싶지 않아서요.”      “저한테 왜서 이렇게 집착해요? 무슨 이유라도 있는가요?”      “이유 같은 건 없어요. 김상한테 부탁하면 꼭 될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예요.”      “저는 못합니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할 때까지 여기에 있을 거예요.”      낯빤대기도 두꺼운 여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여자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겨우 삼켰다. 그녀를 문밖에 콱 내쫓고 싶은 것도 참고 있었다.      “저녁은 드셨어요? 몇시에 들어올지 몰라 여덟시까지 기다리다가 패밀리마트에 가서 도시락 두 개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어요.”      “저를 상관 말아요.애는 어쩌구요?”      부지중 그녀의 딸애가 생각나서 그는 어망결에 물었다.      “저녁에 외할머니 집에 가라고 했어요. 아참, 전자레인지가 없는 걸 모르고 도시락을 냉장고에 넣었네요.”      그녀가 몸을 일으키더니 냉장고로 뛰어갔다.      그녀가 정말 며칠이고 그냥 집에 눌러있으면 어떻게 한담? 내일이면 아랫집 오오무라나 이웃들에서 알 수도 있었다. 그녀를 그냥 집에 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야마시다가 오늘 밤 어디에 가는가고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도시락을 덥힐까요?”      “아니요.”      그는 퉁명스레 대답하고 방에 있기 싫어 화장실에 다시 들어갔다. 양말이라도 씻으면서 시간을 흘러보내고 싶었지만 도시락을 덥히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방으로 되들어왔다.      “차갑지만 같이 먹어요.”      그녀가 도시락 두 개를 밥상 위에 가져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먹으라고 그녀를 더 이상 난처하게 만드는 것도 예의가 아니였다.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로 젓가락을 들 수 밖에 없었다.      “빨리 드십시요.”      “그럼 먹겠어요. 언제 한 번 같이 식사해요.”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리고 있는 그녀는 며칠 굶은 사람 같았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그녀가 인차 젓가락을 내려놓을 것 같아 맛있다고 말하며 같이 먹었다. 진짜 맛있었다. 오늘 도시락이 이처럼 맛있을 수가 없었다. 고느적한 한밤중에 집에서 서너살 연상인 그녀와 도시락을 같이 먹는 이 야릇한 기분을 어떻게 형언했으면 좋을까!      그는 한바탕 웃어제끼고 싶었다. 정신이상에 걸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웃으면 그녀가 덴겁하여 밥도 채 먹지 못하고 허둥지둥 집에서 뛰쳐나갈 것만 같았다.      시계는 정각 열한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면 세븐일레븐까지 5분이면 도착한다. 그녀가 잘 먹었다며 젓가락을 내려놓자 그도 따라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사과쥬스를 드릴까요? 저는 커피를 마시겠습니다.”      “그럼 같이 커피 마셔요. 제가 커피 탈게요.”      그녀가 다 먹은 도시락 두 개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 창밖을 내다보니 이웃집 전등들은 모두 꺼져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번 주 목요일이 가게 오픈 3주년 기념일이라는 걸 알았다. 기념일을 어떻게 보내는가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식료품들을 보내오는 음식제조공장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가 피로해보였는지 그녀가 좀 쉬라면서 시간이 되면 깨워주겠다고 하자 그는 사양하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아까 전차에서 눈을 붙이긴 했지만 집에 와서 좀더 자려고 했다. 오늘은 세븐일레븐에 나가지 않고 아침 늦게까지 폭 잤으면 세상에 이처럼 행복한 일이 더 없을 것 같았다.      주방에서 커피잔을 씻고 화장실에 들렸다가 방에 들어온 그녀는 그가 자는 걸 보고 방 전등을 끄더니 바람벽에 기대 앉았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방안으로 비쳐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실루엣처럼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오전에 내가 잘 때도 그녀는 저렇게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녀는 코트도 벗지 않고 있었다. 추워서가 아니였다. 내가 자기의 몸매를 훔쳐볼까봐서였다. 나를 남자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방금 전에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소리가 들릴세라 동시에 물을 내렸다. 그녀는 지금까지 애엄마는 일본에 데려오지 않는가, 혼자서 적적하지 않는가는 따위의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그녀는 옅은 화장만 했고, 귀걸이도 걸지 않았고,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았다. 이쁜 여자들이 인물값을 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런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편지봉투를 뜯어본 순간, 그녀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녀한테는 큰 타격이었을 것이다. 일곱시에 나오는 종업원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익명신을 보낸 여자를 어떻게 찾아낼까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동생한테 알리고 싶지 않다던 그녀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한테 부탁하려고 찾아온 것이다.      찬바람에 커튼이 춤 추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 전등을 켰다. 추운 데 있지 말고 침대에 가서 쉬라고 하자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겠다면서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챈넬을 돌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가 이젠 같이 집을 나가지 않겠는가고 당장 물어볼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기색이 역역히 어려있었다.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오늘 밤 점장을 미행하려고 결심을 내렸다. 그녀를 집에서 내보내려면 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가게에 나가겠습니다. 점장이 퇴근하면 어디에 가는가 살펴볼게요.”      그녀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고마워요.”      그녀가 발딱 일어서더니 그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 말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으면 나의 목까지 끌어안을까 싶어 그는 가만히 서있었다.      “제가 혼자서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두려웠어요. 점장과 가게에 오는 여자손님들을 잘 살펴봐주세요. 저는 그 여자를 꼭 찾아내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녀가 침대 쪽으로 한발 다가가더니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심장이 팔딱거리고 아랫도리가 후끈거렸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요.”      “아닙니다. 지금 가봐야겠습니다.”      그는 살며시 그녀의 두 팔을 풀어놓았다.      “근심 말고 쉬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그는 스프링처럼 단숨에 밖으로 튕겨나왔다. 6      가게에 들어서자 야마시다가 일찍 왔다며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처음 보는 아르바이트생과 어제 인사를 나눈 젓가락처럼 생긴 근시안경과 교대를 마친 그는 계산대에서 일하다가 야마시다를 따라 창고와 매장을 돌아보았다. 야마시다가 분부를 마치고 카운터에 다시 들어와서 시계를 보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두는 것이었다. 저녁에 다시 만나자던 혼다가 열두시가 넘어도 오지 않고 있었다. 야마시다가 혼다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혼다가 겁을 집어먹고 그만둔 것 같았다.      손님 몇 명이 카운터에 다가왔다. 맥주를 산 남자손님에 이어 타올을 산 여자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돌려주며 인사를 한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랫집 오오무라였다. 오오무라는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생긋 웃고는 가게를 나갔다.      오오무라가 왜서 이 시간에 여기에 왔을까? 왜서 나를 보고 당황해하지도, 주저하지도 않을까?      가게에 온 오오무라가 심상찮아보였다.      손님들이 나가자 옆에 서있던 야마시다가 오늘 혼자서 가게를 볼 수 있는가고 묻기에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점장님께서 집에 돌아가서 주무시라고 했더니 좀 있다가 가도 된다면서 야마시다가 휴게실로 들어갔다.      야마시다는 그 여자가 가게에 왔다간 걸 알고 있을까? 마누라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걸 알고 있을까?      그는 세븐일레븐 조끼 호주머니 안에 넣은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설치해놓고 휴게실 문 가까이에 다가갔다. 안에서 야마시다가 누구한테 전화를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방안에서 전화를 하는지, 목소리를 낮춰서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방안에도 카메라가 있음직해보여 계산대로 되돌아섰다.      손님들이 다시 뜸해지자 바닥청소를 해놓고 카운터에 들어오니 야마시다가 자고 있는지 휴게실 안에는 아무 동정도 없었다. 상품을 가지러 들어간 척 들어가보려다가 야마시다를 그대로 자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혼다가 오지 않았기에 이제 야마시다가 밖에 나간다면 가게를 비워두고 미행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 여자가 두 번 다시 가게에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긴장의 끈은 놓을 수 없었다. 자동출입문과 창밖을 수시로 내다보면서 이제 박두해올 시각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두시부터 세시 사이에는 택시기사와 중년남자가 쥬스와 청주를 각자 사가고 세시부터 네시 사이에는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노동자 대여섯 명이 시간 간격을 두고 컵라면과 오니기리를 먹으러 여러 번 드나들었을 뿐 여자손님이라곤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네시반이 거의 되었을 때였다.      웬 시꺼먼 그림자가 창밖에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 다시 찾아온 유령 같아보여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시 돌아서서 공중전화를 하는 그림자는 짧은 생머리 여자였고, 검은색 웃옷에 검은색 바지까지 입고 있었다. 어제 여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코트 깃을 올렸지만 긴 웨이브머리였기에 그 여자는 아닌 것 같아보였다. 그런데 창밖의 저 여자는 집전화나 휴대폰이 없어서 새벽에 공중전화를 할까? 혹시 그 여자가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다시 찾아온 게 아닐까? 후다닥 밖으로 달려나가보고 싶었지만 누가 문 뒤에 숨어있다가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후려칠 것 같아 나가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윽하여 여자가 전화기를 놓고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그제야 그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여자는 존재감을 생색이라도 내 듯 또각또각 구두발소리를 울리며 고요한 새벽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뒷모습이나 걸음걸이도 그 여자는 아니였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면 야마시다가 깨어날까봐 지금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커피 한 잔만 마셨다. 다시 카운터에 들어와 종업원들이 마셔라고 테블에 올려놓은 눅거리 인스턴트커피나 한 잔 더 마시려는데 야마시다가 휴게실에서 나왔다. 같이 커피를 마시자며 손수 탄 커피 한 잔을 그에게 건네주고 걸상에 앉은 야마시다의 두 눈에 피발이 서있었다. 야마시다가 웃으면서 개학은 언제이고, 개학하면 수업이 많은가고 묻더니 혼다가 그만두었다면서 야간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더 구하기 전까지 매일 나와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나서 벽시계를 보며 물었다.      “어제는 부인께서 다섯시에 나오셨더군요. 오늘도 부인께서 일찍 나오세요?”      “오늘은 다른 사람이 나와요.”      야마시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다가 통화가 되지 않는지 자리에 되앉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한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마주앉아 무슨 말을 하려다가 휴대폰을 뒤적이는 야마시다의 얼굴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를 집에 몰래 숨겨두고도 시치미를 떼고 있는 자신이 스스로도 뻔뻔스럽고 음흉스럽게 느껴졌다. 야마시다가 얼굴을 들자 그는 경찰을 본 범죄자처럼 몸둘 바를 몰라했다. 마침 음식배달트럭이 들어왔기에 자리를 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다섯시가 되어도 온다던 사람은 오지 않고 있었다. 야마시다가 퇴근하는 그를 문밖까지 바래주었다.      참으로 지겹고도 지긋지긋한 시간이었다.      동트기 전인 춥고 어두운 이 새벽에 그녀는 혼곤히 잠들어있을 것이다. 오지도 않는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고 괜히 신경줄이 팽팽해지다 나니 가게를 들여다보던 여자를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녀는 알기나 할까? 그 시꺼먼 그림자를 생각하면 집으로 달리는 자전거가 집어삼킬 듯한 동굴을 향해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오늘 이불 안에서 바지를 벗고 자기만 해보지. 오늘은 절대 가만놔두지 않을 테다!      집앞에 당도하자 방 전등은 꺼져있었고 현관전등만 켜져있었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살며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방 전등을 켰더니 펴놓은 이불 안에는 그녀가 없었다. 이불 안은 그녀의 온기로 따뜻했다. 그녀가 집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주방과 화장실 안의 쓰레기주머니들은 새 것으로 놓여져있었고 타일바닥들은 깨끗하게 닦아져있었다. 휴대폰은 꺼진 상태였다.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벽시계 초침소리가 어제 아침 계단을 올라오던 그녀의 발걸음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녀의 체취가 풍겨오는 이불 안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다가 창밖이 훤히 밝아서야 비로서 잠이 들었다.      비가 내릴 듯 흐릿한 오전, 아르바이트 하러 가려고 전차에 앉은 그는 요즘 보던 소설책을 가방에서 꺼냈다가 황급히 책으로 얼굴을 막았다. 맞은켠에 앉은 사람들 속에 노란 머리가 있었던 것이다. 오오쯔끼가 어느 역에서 전차에 올랐을까? 일본에 와서 처음 느끼는 어색한 공기가 전차 안에서 감돌고 있었다. 좀 지나서 얼굴을 막았던 책을 슬며시 내리고 보니 그녀는 출입문 쪽에만 눈길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았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책을 내려놓고 태연스레 앉아있었다.두 정거장만 가면 그녀가 내리는 것이다. 전차가 역에 도착하자 그녀가 먼저 내렸다. 그도 전차에서 내려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녀가 찬이네 집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문구방을 지나 찬이네 집으로 가기 전인 오른쪽 골목으로 굽어들더니 어느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그녀가 눈치 채고 고개를 돌릴까봐 되돌아가지 않고 대문을 지나 동네를 에돌아서 전철역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큰길에 다다르면 전철역이 보인다.      그 때였다.      하얀색 도요다차가 눈앞을 스쳐지났다. 야마시다 차 같아보였다. 큰길까지 뛰어가보았더니 차가 오른쪽으로 굽어들어갔다. 그는 다시 확인하려고 달려가서 골목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야마시다가 차를 담장 옆에 바싹 세워놓고 그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과연 까마귀들이 여기에 새 둥지를 틀고 있었구나!      이러면 점장이 어디에 갔는가만 확인해달라던 그녀의 부탁은 들어준 것이고 미행도 여기서 끝난 것이다. 7      내가 개인정탐이나 어느 영화에서 나오던 너절한 치들이 목표물의 뒤를 밟던 짓을 한 게 아닌가?      전차에 다시 앉은 그는 그녀가 이제 전화가 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궁리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목격한 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후과가 두려웠다. 증인으로 경찰에 불리워갈 수도 있고 그러면 학교에 알려질 수도 있었다. 그들 부부 일에 잘못 끼어들었다가 자칫하면 자기만 낭패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점장은 혼다가 오지 않아서 아침까지 가게에 있었다고, 그 여자는 가게에 오지 않았다고 사실 대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여자를 꼭 찾아내겠다고 그녀가 윽벼르고 있지만 그 여자가 가게를 다시 찾아오지 않는 한,야마시다가 스스로 입을 열지 않는 한 그 여자는 영원히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저녁 무렵까지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가게 전화로 두 번이나 전화를 해봤지만 휴대폰은 여전히 꺼진 상태였다.      나한테 언녕 전화를 해야 하잖은가? 그녀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혹시 못된 마음을 먹고 자살이라도.....?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전화를 해달라고 음성메세지를 남기려다가 경찰들이 그녀의 휴대폰으로 추적하면 어쩌랴 제꺽 종료버튼을 눌러버렸다.      아홉시가 되자 퇴근길에 올랐다. 집 대문 앞에서 쓰레기주머니를 들고 나온 오오무라를 면바로 만났다. 오오무라가 변명하듯 먼저 말을 건네왔다.      “제가 월요일과 금요일 저녁에는 세븐일레븐에서 멀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열두시까지 카운터를 봐요. 그리고 저의 친구도 세븐일레븐에서 일한다고 해서 친구가 있는가고 들려본 거예요. 김상이 거기에 일할 줄은 몰랐어요.”      “그래요? 친구는 누군가요?”      “오오쯔끼 구미꼬예요. 아시죠?”      그는 흠칫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시간대가 달라서 같은 가게에서 일해도 얼굴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오늘도 세븐일레븐에 나가요?”      “네, 그럼...”      오오무라가 걸레 같은 오오쯔끼의 친구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집에 들어온 그는 내일 날씨를 보려고 텔레비전을 켰다. 지방챈넬에서 오락프로가 한창이었다. 한국에 여행을 갔다왔다는 한 젊은 여인이 한국에서 사온 파란 때밀이 타올을 들고 평소에는 몸에 때가 없는가 했는데 이 때밀이 타올을 써보니 때가 가득하더라고 웃으며 자랑 삼아 떠벌이고 있었다. 다른 챈넬을 보려고 리모컨을 찾던 그는 리모컨은 보이지 않고 웃음소리만 그냥 들려오자 발로 텔레비전 전원을 꺼버렸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한시간 넘게 잘 수 있었다. 알람을 맞춰놓고 잠자리에 누웠다.      ... 그는 다시 꿈을 꾸고 있었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거울을 마주하고 한 겹 한 겹 기모노를 벗고 있었다. 하얀 목덜미, 예쁜 허리..... 실 한 오리 걸치지 않은 여인이 천천히 돌아서더니 웃으며 그의 옆에 고스란히 누워 정답게 속삭이면서 부드러운 손으로 그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차츰차츰 아래로 내려가던 손이.....      악!      그의 입에서 무서운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비명소리와 거의 동시에 휴대폰이 경망스레 울려터졌다.      “저예요. 늦게 전화해서 미안해요.”      그녀였다. 늦게라도 전화가 오니 시름이 놓였다.      “괜찮습니다. 지금 어딘가요?”      “약방, 아, 아니예요. 지금 가게에 나가는 길이예요. 그럼 가게에서 다시 뵈요.”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약방이라고 말했다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녀가 혹시 새벽에 집을 나갔다가 감기에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그는 샤워를 하면서 여인의 손길이 닿은 부위를 깨끗하게 씻었다.      열두시 전에 가게에 들어서니 그녀가 계산대에 서있었다. 어제 왔던 아르바이트생이 퇴근하려고 카운터에서 나왔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탈의실에서 조끼를 갈아입고 카운터에 나오니 마침 아까 왔던 손님들이 나가고 그녀와 단둘이 남았다. 회색 스웨터 위에 황토색 에프런을 걸친 그녀의 얼굴이 조금 초췌해보였다.      그는 아까 약방이라고 하셨는데 감기에 걸렸는가고 물었다.      “괜찮아요. 오전에 서류를 제출하고 점심시간에 어머니 집에 갔댔어요. 두통이 심해 열시반까지 누워있다가 가게에 전화를 해봤더니 점장이 여직껏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약방에 들렸다가 가게에 나온 거예요. 근심 말아요.”      오전 열한시 쯤에 야마시다가 오오쯔끼 집에 갔었다. 오후 세시에 출근하는 오오쯔끼와 같이 나왔겠는데 야마시다가 지금까지 가게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얼굴색이 안 좋아보입니다. 집에 들어가 주무십시요.”      “혼다를 아침 일곱시에 노임 가지러 오라고 했어요. 혼자면 힘들어요. 같이 있을게요.”      “괜찮습니다. 점장님이 다섯시까지 나오지 않으면 제가 부인이 나올 때까지 남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좀 피곤하니 먼저 갈게요.”      옷을 갈아입은 그녀가 수고하라는 말만 남기고는 가게를 나갔다.      어떻게 이대로 그냥 나갈 수가 있단 말인가!      온종일 휴대폰을 꺼놓고 있다가 야심한 밤중에야 전화를 걸어온 그녀, 아무리 몸이 불편하고 가게에서 사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 않은 그녀가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원했던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을 어떻게 알고 제멋대로 부려먹는 수작인가 싶었다. 자신이 마치 밤중에 주문을 외우며 오아시스를 홀로 지키는 사막 어느 촌마을의 늙어빠진 촌장 같아보였다.      카운터에 서있던 그는 걸상에 앉았다. 손님이 오면 일어나고 손님이 없으면 그냥 걸상에 앉아있었다. 비어있는 공간에도 상품들을 채워넣지 않고 있었다. 그 여자와 시꺼먼 그림자가 다시 나타난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야마시다나 그녀에게 어떻게 가게를 그만두겠다고 말해야 할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음식배달트럭이 실어온 식료품들을 냉장코너에 진열해놓고 시계를 보니 15분전 다섯시였다. 야마시다가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섯시가 되자 그녀가 가게에 들어섰다. 그는 아침인사를 하면서 카운터에 들어온 그녀에게 맞인사도 하지 않았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무슨 일인가요?”      그녀가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에는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학급에서 모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저녁에도 약속이 있어 나오지 못하겠습니다.”      단도직입으로 가게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면 자신이 기본도 지키지 않는 무뢰한으로 보일까봐서였다.      “그래요? 내일은 가게 오픈 3주년 기념일인데요.”      “미안합니다."      “할 수 없군요.그럼 모레는 나오시는 거죠?”      그는 그녀를 마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뭔가 알아차린 듯 인츰 되물어왔다.      “혹시 그만두려는 건 아니겠지요?”      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남녀손님이 가게에 들어와서 서투른 일본어로 두부와 캐찹을 사고 싶다고 하기에 카운터에서 나와 손님들을 모시고 코너로 갔다. 여자손님의 생머리와 복장을 보고서야 어제 새벽 가게를 들여다보던 여자임을 알아차렸다. 저도 모르게 허구픈 웃음이 흘러나왔다. 손님들이 나가자 새벽공기도 쐬일 겸 밖에 서있다가 다시 들어오니 계산대에 서있던 그녀가 탈의실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들어오라고 부르기에 휴게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더니 에프런을 걸친 그녀가 문앞에 서있었다. 회색 스웨터를 그대로 입은 걸 보아 집에는 들어간 것 같지 않았다.      “가게에서 더 말하지 않겠어요. 오전 열시반에 전철역 앞 마트 맞은켠에 있는 찻집에서 기다릴게요. 그럼 퇴근하세요.”      그녀가 나가자 그는 옷을 갈아입고 그녀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가게를 나와버렸다. 8      집에 들어온 그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차라리 오늘부터 그만두겠다고 속시원히 말했더라면 찻집에 가지 않아도 될 걸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10시 10분에 알람이 울리자 대충 씻고 집 대문을 나섰는데 정장을 입은 오오무라가 부랴부랴 택시에서 내렸다. 오오무라가 인사를 건네오자 벌써 퇴근하는가고 물었다.      “오오쯔끼가 교통사고를 당했대요. 집에 들렸다가 몇 명 친구와 같이 병원에 가보려구요.”      “네? 오오쯔끼상이 많이 상했어요?”      “어느 리조트에 갔다오다가 화물차와 충돌했대요.”      “친구들과 같이 놀러갔나 보군요.”      “가게 점장과 같이 갔대요.그럼...”      오오무라가 대문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리조트라면 하룻밤 묵을 수도 있었다. 언제 갔는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야마시다가 오오쯔끼를 데리고 놀러간 것만은 분명했다.      까마귀들이 겁도 없이 화물차를 들이박다니?      전철역 자전거정류소에 자전거를 두고 그녀에게 전화를 해보니 휴대폰이 꺼져있었다. 그녀가 아직 교통사고를 모를 수도 있기에 급한 일이 있어 가지 못하겠다고 말하려 했던 그는 할 수 없이 찻집을 찾아들어갔다.      그녀가 차를 시켜놓고 창문 옆 좌석에 앉아있었다. 저쪽 테블에 남자손님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혼자 앉아있을 뿐 고풍스러운 찻집은 조용했다.      그가 휴대폰이 꺼져있더라고 말하려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대로 말할게요. 그 날 아침, 편지봉투를 뜯어보고 어쩔 바를 모르겠더군요. 치밀어오르는 분은 눅잦힐 수 없고 가게 종업원이나 동생한테 부탁할 수도 없어서 막연하기만 하더군요. 먼저 혼다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는 잘 모르겠다면서 김상한테 물어보면 알 거라고 하더군요. 김상 집에 갈 때는 김상한테 부탁도 할 겸 그 사람을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미쳐서 날뛰고 있는데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이예요.”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대담하게 나올 줄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 새벽에는 김상과 함께 있는 상상까지 해봤어요.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복수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되어 김상이 오기 전에 집을 나간 거예요.”      왜서 나를 기다리지 않았냐고, 기다렸다가 함께 환락 속에 기껏 빠져있었으면 좋지 않았냐고 물어보려던 그는 남자손님 쪽을 건너다보면서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제 새벽에 어디에 갔댔어요?”      “어머니 집에 갔댔어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손님이 들어와서 남자손님과 마주앉았다. 회색 코트, 긴 웨이브머리, 갸름한 얼굴, 두쌍의 커다란 쌍겹눈, 그리고 금빛 귀걸이..... 그 여자 같아보였다.      여자손님을 보던 그의 몸이 움찔거렸다. 다행히 그녀는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는 여자손님한테 눈길을 더 주지 않고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낮은 소리로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여자의 오른손 중지에 기미가 있지 않았어요?”      편지봉투를 내민 그 여자의 오른손 중지에 좁쌀알만한 까만 기미가 있었던 것이다.      “손은 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사진을 이미 경찰서에 제출했어요. 왜요? 그 여자가 가게에 왔댔어요?”      그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그녀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니,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찻잔을 가볍게 테블에 내려놓는 그녀에게 하려던 말을 꺼냈다.      “요며칠 저는 유학생 신분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미안하지만 오늘부터 가게를 그만두겠습니다.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녀의 얇다란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하네요. 부탁한 일을 묻지 않아 기분이 나빠서 아침에 성낸 줄로 알았어요. 그 일은 오늘 조용히 물어보려고 했어요. 김상이 사례금을 받지 않을 것 같아서 아까 전자제품가게에 들렸어요. 내일 오전에 전자레인지와 전기포트가 도착할 거예요.”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시만요. 그럼 모레부터 새로 시작하신다고 생각하겠어요. 시급을 인상해드릴 테니 오늘 먼저 사흘분 노임을 드릴게요.”      그녀가 돈지갑에서 만엔짜리 지페 두 장을 꺼내 테블에 올려놓았다. 그도 돈지갑에서 천엔짜리 지페 석 장과 500엔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 테블에 올려놓았다.      “제가 일한 만큼 받겠습니다. 더 많지도 적지도 않게 받고 싶습니다. 모레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오늘부터 그만두겠습니다.”      그녀가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 말했다.      “제가 그 말을 해서 그러세요?”      아르바이트 하러 갈 시간도, 그녀가 휴대폰을 켤 때도 된 것 같았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쪽 테블에 앉은 여자손님의 매서운 눈빛이 찻집을 나가는 그의 등뒤에까지 꽂히고 있음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9      그녀와 그 여자를 한데 남겨두고 밖으로 나온 그는 가게를 한번 뒤돌아보고 전철역으로 걸어갔다. 세븐일레븐은 집에서 거리가 제일 가까웠지만 사흘 밖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 가게였다.      저녁에 퇴근해서 집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평소에는 꽁꽁 닫겨있던 오오무라네 집문이 빼꼼히 열려져있었다. 대문을 들어오는 발자국소리를 들었는지 오오무라가 나들이옷차림으로 집문을 열고 나왔다.      “돌아오셨어요?”      오오무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네, 오오쯔끼상이 괜찮은가요?”      “많이 다친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는 엄중하지 않대요.”      “다행이군요. 점장도 괜찮은가요?”      “옆칸에 입원해있다는 점장은 잘 몰라요. 헌데 점장과 오오쯔끼가 애인관계인가요? 왜서 같이 갔을까요? 친구들도 궁금해하더군요.”      “점장이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오오쯔끼상의 얼굴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오늘도 세븐일레븐에 나가요?”      “오늘 그만뒀습니다.”      “그랬어요? 무리하게 일하지 말아요. 저의 어느 친구 남편은 너무 고되게 일해서 며칠 전에 입원까지 했어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이튿날 오전 열시 쯤에 택배가 도착했다. 그녀가 보낸 전자레인지와 전기포트였다. 그는 물건들을 들고 집문을 나섰다.      택시로 세븐일레븐에 도착하니 출입문 어구에 꽃바구니 몇 개가 놓여있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바겐세일이라는 표어가 매장 곳곳에 걸려있고 손님들이 북적거리고 있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처음 보는 여종업원에게 인사를 하고 야마시다부인한테 드려달라고 물건을 부탁했다. 여종업원이 부인께서 인츰 오신다고 하자 볼일이 있어 그만 가겠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다시 택시를 타려다가 시간이 충분하기에 멀지도 않은 전철역으로 걸어갔다.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을 굽어들었을 때 꽃묶음을 안고 꽃방에서 나오는, 어제 찻집에서 보았던 그 여자와 맞닥뜨리고 말았다. 속이 꿈틀했지만 모르는 척 스쳐지나갔다.      “미안해요.저...”      그 여자가 그를 부르자 그는 돌아서서 나를 불렀는가고 물었다.      “네, 실례이지만 세븐일레븐 종업원이 아니세요?”      그 여자는 그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그는 속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오늘 가게 오픈 기념일이지요? 야마시다점장님께서 나오셨죠?”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점장님을 알고 계세요?”      “네, 저의 고중 선배예요. 부인은 나오셨나요?”      그는 마침 잘됐다고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부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부인도 알고 계세요?”      “부인과는 중학교 동창생인데 만난지 오래 됐어요. 이제 다시 보니 어제 찻집에서 예쁜 여성과 차를 마셨죠? 제가 그 찻집에 있었거든요.”      중떠보려고 불러세웠는지, 그녀를 알아보고도 못본 척했는지 궁금해서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제 찻집에 갔댔습니다. 그 여성이 야마시다부인입니다.”      “어머, 저는 야마시다부인인 줄 모르고 인사도 건네지 않았네요.”      그는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핼끔핼끔 그의 눈치를 살펴보는 그녀에게 한술 더 떴다.      “저만 알아보시고 중학교 동창생인 부인은 알아보지 못하셨나 봅니다.”      “그게 아니라 손님과 얘기하다 나니 알아보지 못했군요.”      그는 아까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는가고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교묘하게 꾸며대는 이 간사한 여자가 무슨 일로 부인과 같이 찻집에 갔는가고 되물어올 것 같아 뒷말을 잇지 않았다.      “그런가요? 지금 쯤이면 부인이 가게에 오셨을 겁니다.그럼...”      그가 돌아서려 하자 그 여자가 다시 말을 건네왔다.      “점장님의 휴대폰이 그냥 꺼져있더군요. 미안하지만 이 꽃을 점장님께 전해주시겠어요? 지금 시간이 바빠서요. 노자끼라고 말하면 알 거예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젠 세븐일레븐 종업원이 아니라서요.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돌아서서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보았다.      시간이 바쁘다면서 새끼 낳지 않은 암소처럼 늘짝늘짝 걸어가던 노자끼가 세븐일레븐 골목으로 굽어들지 않고 레스토랑이라고 큰 영어간판을 내건 빌딩 옆 골목 안에 세워둔 파란색 승용차로 다가가더니 꽃묶음을 뒷좌석에 던져넣고 운전실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었다.      노자끼는 그들이 지금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고 가게 오픈 기념일에 일부러 가게를 찾아가는 길이었는데 야마시다가 가게에 나오지 않았고 부인이 인츰 가게에 들어온다고 하니 꽃묶음을 부탁한 것이었다. 찻집에서 그녀를 보고도 못본 척했을 것이고 야마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줄도 아직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헌데, 노자끼는 나에게 괜히 인사를 건넸다고 후회하지 않을까?      성씨까지 알려준 아둔한 여자가 어떻게 그런 엉뚱한 짓을 저질렀을까 하고 그는 코웃음을 쳤다.      전철역에 도착했을 때 그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가게의 경영자등록변경수속을 밟으러 갔다가 돌아오니 가게에 왔다가셨다더군요.”      경영자등록변경수속?      “그럼, 이제부터 부인께서 가게를 경영하게 되나요?”      “맞아요. 3년 전에 제가 투자해서 점포 두 개를 세웠어요. 지금 아버지가 맡고 있는 세븐일레븐도 장사가 잘돼요.”      점포 하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다른 하나는 남편의 이름으로 등록했다가 지금 야마시다의 이름을 변경하는 수속을 밟는 중인 것이다. 이제부터 점장은 그녀인 것이다.      “점장으로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혹시 이전에 장사라도 했어요?”      “고마워요. 이전에 무역회사를 했어요. 아버지가 오늘도 열두시부터 가게를 봐주시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왜서 저의 선물을 받지 않았어요?”      야간아르바이트생을 아직 구하지 못했다는 말로도 들렸지만 그녀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성의는 고맙게 받았습니다. 아까 길에서 부인의 중학교 동창생을 만났습니다. 꽃묶음을 사가지고 가게로 가는 길이라고 하던데요.”      “중학교 동창생들은 기념일을 몰라요. 성씨는 물어보지 않았어요?”      “노자끼라고 하면 안다고 하더군요.”      “노자끼? 잘 생각나지 않아요. 어제는 그 여자의 오른손 중지에 기미가 있다고 했죠? 그 여자와 노자끼라는 여자가 연관성이 있어보이던가요? 어제는 상상도 못한 일이 발생했지 뭐예요. 어떻게 가게의 여자와 또.....”      그녀가 잠깐 말을 끊었다. 그녀가 교통사고를 알고 있는 것이다.      “저의 선물도 받지 않은 대신 오늘 저녁에는 시간을 꼭 내요.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싶어요. 한 번 같이 식사를 하자고 제가 말했잖아요.”      “미안합니다. 오늘 시간이 안됩니다. 노자끼라는 여자는 긴 웨이브머리에 갸름한 얼굴입니다. 그리고 쌍겹눈이고 금빛 귀걸이를 걸었습니다.”      찻집에서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노자끼를 알아볼 것 같이 감히 입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노자끼라는 여자가 마음에 걸리는군요. 확인해봐야겠어요.”      노자끼의 진상이 이제 곧 드러날 수도 있었다.      그는 전차를 빨리 타야 하기에 그만 실례하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10      며칠 후, 공교롭게도 1년 남짓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가 문을 닫게 되어 그는 집에서 그 동안 밀렸던 참고서적들을 뒤적이고 있었지만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새 일자리를 구하려고 매일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중국 유학생이라고 여러 가게들에서 거절당했고, 몇 명 점장들한테서는 동북 하얼빈에서 왔는가고 놀림까지 당했다. 중국에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타먹으며 편안히 살 것이지 왜서 좋은 직업 버리고 일본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하나, 이런 수모까지 당하나 싶었다.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활 날아가버렸으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집 생각이 절로 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난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던 2월 마지막 날 오후였다.      도꾜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전차에서 그는 오오쯔끼를 보았을 때보다 더 크게 놀랐다. 출입문 옆 의자에 수염이 텁수룩하고 얼굴이 창백해진 야마시다가 고개를 떨어뜨린 채 혼자 앉아있었던 것이다.      야마시다가 언제 퇴원했을까?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전차에서 내린 그는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던 전철역 서구로 향했다. 서구는 동구보다 컸고 가게들도 동구보다 많았다. 서구 광장 맞은켠 빌딩 아랫층에 중국요리점과 라면집이 있었다. 오늘은 그 가게들에 문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중국요리점을 찾아가는 길에서 뜻하지 않게 그녀를 다시 만날 줄이야.      그는 놀라는 기색도,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그녀가 그의 근황을 묻자 그는 사실 대로 대답했다.      “그럼, 저의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하지 않겠어요?”      눈앞에 보이는 세븐일레븐이 그녀의 아버지의 가게였다.      “요즘은 책도 좀 봐야 하기에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것 같지 못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아닌 보살을 하며 그녀에게 웃어보였다.      “개학은 4월이겠죠? 그럼 아무때든 연락해요. 저... 오오쯔끼의 친구가 무슨 말을 하지 않던가요?”      그저께 오오무라한테서 오오쯔끼가 퇴원하는 길로 고향에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었다.      “오오쯔끼가 고향에 돌아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요? 그 사람은 오늘 나온다더군요. 노자끼가 조사를 받았어요. 김상 덕분에 그 여자를 찾았어요.”      야마시다가 오늘 퇴원한 것이었다. 노자끼가 조사를 받았다고 해도 왠지 그 일이 잘 끝나서 통쾌하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저는 김상을 믿어요. 저의 아버지의 가게도 좋고 저의 가게에서 다시 일해도 좋아요.”      “아닙니다. 그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김상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만 해요. 전화를 기다릴게요. 그럼 또 뵈요.”      그녀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멀거니 지켜보고 있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려면 그녀의 아버지의 가게나 그녀의 가게에서 다시 일할 수도 있었다. 그녀가 내심 고마웠지만 이왕이면 새 일자리를 구하고 싶었다. 헌데 일자리도 아직 구하지 못한 마당에 점포 두 개나 갖고 있는 그녀와도 멀어졌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더욱 막막해졌다.      오후 시간이어서인지 작은 라면집은 준비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중국요리점에 들어가려는데 오전에 면접을 보았던 도꾜 아끼하바라(秋葉原)전자가게에서 내일부터 나와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전문대상으로 도꾜에 세워진 전자가게였다.      그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았다.      만약 전자가게에서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더라면, 중국요리점에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녀한테 전화를 했을까? 전자가게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 것은 전자레인지와 전기포트를 그녀에게 돌려줬기 때문이 아닐까? 돌려주지 않았더라면 전자가게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길 건너편 그녀의 아버지의 가게에 손님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다시 발을 들여놓을지도 몰랐던 세븐일레븐, 눈에 익은 세븐일레븐 로고, 꿈에 보았던 7숫자.....      불현듯 사막과 오아시스가 클로즈업되어 눈앞에 다시 안겨왔다.      그럼, 그 날 꿈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온 것은 오늘 그녀의 요구를 뿌리치려는 것이였을까? 그 더러운 물을 정신없이 들이키던 남자는 오늘 전차에서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던 야마시다였을까? 아까 물통은 보이지 않았다. 더러운 것들이 사라졌으니 걸레가 들어있는 물통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잖은가? 그리고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가던 내가 갈증을 못이겨 물병을 들고 있던 여인한테로 되돌아왔을까?      어렵사리 구한 새 일자리, 아득하게만 보이던 오아시스, 오늘 드디어 샘터까지 달려왔단 말인가?      두주일 전의 꿈, 꿈 같은 오늘, 오늘은 그 날의 꿈해몽을 한 것 같기도 하고 그 날처럼 다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한낱 꿈에 지나지 않음에도 생각할 수록 묘한 느낌이 들었다.      둥둥둥~      난데없이 북소리가 울려왔다.      중국요리점 문앞에 우두커니 서있던 그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둥둥둥~      북소리가 또다시 울려왔다.      겨울의 끝자락을 잡고 새봄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행사가 어딘가에서 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북소리가 마치 꿈 속에서 어서 깨어나 새 출발을 하라고 울려오는 듯했다.      이 좋은 날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불러내서 술도 같이 마시고 러브호텔에도 같이 가고 싶었다. 그 날 밤의 연장전은 오늘 밤에 불꽃 튀는 접전을 펼쳐야 하잖겠는가. 그 날 밤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녀를 뒤쫓아가서 아무데서나 눕혀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 뿐이지 남의 나라에 와서 못난 짓을 할 내가 아니지. 그래도 제일 어려운 시기에 자기의 가게에서 다시 일해도 좋다고 선뜻이 말해준 고마운 점장이 아닌가. 그녀가 집을 찾아온 일은 이젠 과거형으로 되었다.      그녀에게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전화를 하려는데 찬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고 보니 찬이와 통화를 한 지도 두주일이 넘었다.      “오랜만이구나. 생일 축하한다.”      “생일?”      “생일도 모르고 있었나? 음력으로 오늘이 너의 생일이잖아. 저녁에 전번에 갔던 그 이자까야(居酒屋)에서 만나자.”      통화를 마치고 그는 쿡쿡 웃었다.      생일을 몰라서가 아니였다. 그녀에게 전화를 하지 못해서도 아니였다. 전번에 갔던 이자까야가 생각나서였다. 20대 젊은 두 여자가 같이 마셔도 괜찮은가고 묻기에 다짜고짜 얼마인가고 물었다. 2만엔이라 하기에 너무 싸서 흥미가 없다고 거절했다. 이자까야를 나오면서 보니 그 두 여자가 길 가는 남자들에게 흥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학교 캠퍼스에서 그녀들을 만나게 되었다.어느 학부 학생들인지는 몰라도 일부 여대생들은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있구나 속으로 웃었던 것이다. 그리고 찬이에게 내일부터 아끼하바라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말만 하고 뒷말을 잇지 않아서였다. 면접을 마치고 아끼하바라역 화장실에 들어가서야 아침에 샤워를 하고 팬티를 뒤집어 입었다는 걸 보아냈다. 전자가게 면접에는 통과되지 못했구나, 내일부터는 옷을 제대로 입고 집을 나와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생각에 얼마나 골몰했으면 팬티까지 뒤집어 입었으련만 어쩌다 팬티를 뒤집어 입으면 좋은 일이라도 생기는 것인가.      좋은 일만 생긴다면 매일 팬티를 뒤집어 입으리라.      오늘은 참말로 재미있고 뜻깊은 날이었다. 오늘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동구 쪽에서는 보지 못했던, 꿈 속에서 사막에 멈춰서버렸던 그 전차가 손잡이에 조롱조롱 매달린 사람들을 가득 싣고 이 겨울 마지막 날 오후의 햇살 속으로 유유히 미끌어져가고 있었다.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는 옷을 갈아입으려고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꿈이라는 것이 그런 꿈을 꾸지 말자고 해서 꾸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제부터는 사막과 오아시스와 같은 꿈은 제발 다시 꾸지 말았으면 바랐다. - 끝 - (격월간 ‘송화강’ 2020년4호)
19    나이별 이칭 댓글:  조회:445  추천:0  2022-11-11
나이별 이칭 나이 이칭 의미 나이 이칭 의미 나이 이칭 의미 나이 이칭 의미 15세 지학(志學)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62세 진갑(進甲) 다시 60갑자가 펼쳐진다 16세 과년(瓜年) 혼기에 이른 여자의 나이 70세 고희(古稀) 종심(從心) 칠순(七旬)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 20세 남-약관(弱冠) 여-방년(芳年) 갓을 쓰는 나이 꽃다운 나이 71세 망팔(望八)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 30세 이립(而立)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 80세 산수(傘壽) 팔순(八旬) 나이 80세를 이르는 말 40세 불혹(不惑)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81세 망구(望九) 90세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81세를 뜻함 50세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 90세 졸수(卒壽) 구순(九旬) 나이 90세를 이르는 말 60세 이순(耳順) 육순(六旬)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 91세 망백(望百) 백세(百歲)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91세의 별칭 61세 환갑(還甲) 태어난 간지의 해가 다시 돌아온다 100세 상수(上壽) 병 없이 하늘이 내려준 나이
18    [위인 전기] 모택동의 이야기 댓글:  조회:461  추천:0  2022-11-01
[伟人传奇] 모택동의 이야기    모택동은 중국 나아가서는 세계에 많은 이야기를 남긴 위인이다. 허다한 이야기는 이미 책으로 영화로 우리가 많이 보았다. 그 중에서 가장 백성과 가까웠던 이야기를 다시 감상해 본다.   1. 어린시절   1893년 12월 26일(음력 계사년 11월 19일) 바로 해가 솟는때 모택동은 호남성 상담현 소산충 상옥장의 한 토벽돌로 지은 집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생존인 할아버지의 명함은 모은보, 아버지는 모이창(자ㅡ순생, 호ㅡ량필), 어머니는 문칠매 였다. 아이가 태여나서 3일이 되는날 모씨네는 당지의 풍습대로 풍성한 술상을 차리고 “하3조”(賀3朝) 행사를 거행하였다. 그날만은 부처님, 보살님을 믿지않는 모순생도 향을 피우고 폭죽을 터치고 분주히 돌아치며 기분을 돋구었다. 연회에 참석한 매우 학식이 있는 한 사람이 아이에게 십분 쟁쟁한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 이름이 바로 모택동이다. 그선생은 호도 지어주었는데 윤지라고 하였다. 그먼저 두아들을 강보에서 잃은 모씨네는 셋째로 또 아들을 보자 무척 기뻐했든 것이다. 모순생부부는 모두 5남2녀를 보았는데 2남 2녀는 모두 강보에서 잃고 모택동, 모택민, 모택담 3형제를 성인으로 키웠다. 하지만, 모택민, 모택담은 해방전 혁명투쟁중에서 희생되였다.   모택동의 아버지 모순생은 세심하면서도 깍쟁이였는데 그는 이악스레 집살림을 경영하였다. 모순생은 각박스레 돈을 모아 차츰 괜찮게 살게되였고 자식들에게 엄혹하였다. 대신, 어머니 문칠매는 인자하고도 너그럽고 동정심이 많았다. 용모거나 성품에서 모택동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어느해 가을이다. 갑자기 먹장구름이 뭉켜오더니 광풍이 불어치며 폭우가 당금 쏟아질 기세였다. 집집마다 말리느라 널어놓은 벼를 급급히 거둬 들였다. 어린 모택동도 아버지와 함께 급급히 탈곡마당에 널어놓은 벼를 거두기 시작했다. 일하다 문득 바라보니 이웃집 할머니가 혼자서 힘겹게 벼를 거두고 있었다. 모택동은 다짜고짜로 즉시 달려가서 이웃집을 도왔다. 그사이 폭우가 쏟아지며 모택동네 벼는 적지않게 비물에 흘러가고 푹 젖어버렸다. 이에 대노한 아버지는 멍청이 같은 놈이라며 때리려고 하였다. 모택동은 선자리에서 웃으면서 말했다. 이웃집은 소작농이여서 벼가 많지도 않거니와 소작료를 또 내야하지만 우리는 많기도 하고 자기것이니까 좀 손실을 봐도 괜찮은게 아닌가고. 더욱 분통이 터진 모순생은 기가 막혀 네놈은 그래 밥을 먹지않는가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줄욕을 퍼 부었다. 모택동은 그럼, 때마다 내가 적게 먹으면 될게 아닌가고 대 들었다. 결국은 어머니가 나와서 말렸다.   모택동이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사숙에 다니며 공부할 때다. 그는 점심밥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밥을 가지지 않았다. 어느날, 모택동은 집이 먼 동학이 점심밥을 사지않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동학의 집은 너무 가난했던 것이다. 모택동은 점심시간에도 공부를 더 하겠다는 리유로 어머니하고 점심밥을 사 달라고 하였다. 이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는 흡족해 하며 그럼 점심밥을 사 주라고 하였다. 하지만 짠지쪼각에 밥을 조금 싸 주라고 엄명을 하였다. 어머니는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될수록 좋은 반찬에 밥을 많이 싸 주었다. 모택동은 가난한 동학과 함께 점심밥을 먹었다. 저녁때면 모택동은 굶은사람처럼 밥을 먹었는데 어머니는 점심밥이 적어서 아이가 이러는게 아닌가고 의심이 들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모택동과 자세히 물어 내막을 알게 되였다. 어머니는 네가 잘했다고 하면서 점심밥을 두몫으로 싸 주었다.   어느해의 일이다. 모택동의 아버지는 린근의 한 농민집에서 큰돼지 한마리를 사기로 하고 예약금까지 물었다. 며칠이 지나서 돼지값이 올라가자 모순생은 아들에게 돼지값을 주면서 가서 돼지를 끌어오라고 하였다. 모택동이 돼지 가지려 가니 임자는 매우 랑패해 하며 돼지를 잘못 팔았다고 아쉬워 하였다. 돈있는 집에서는 별일아니지만 자기네 같은 사람은 큰 손실이라며 돼지를 내여 주었다. 모택동은 예약금을 돌려받고 돼지를 물려주었다. 그러고 돌아오는중 동무를 만났는데, 동무는 땀벌창이 되여 반달음으로 현성에 가는길이였다. 어머니가 급히 앓는데 현성에 있는 친척집으로 돈꾸려 간다는 것이였다. 모택동은 두말없이 주머니의 돈을 동무에게 주었다. 이로하여 모택동은 아버지에게서 줄욕을 먹으며 대판싸움을 하였다, 결국은 또 어머니가 나서서 말려냈다.   모택동이 11살 때다. 모순생의 사촌동생 모국생은 병으로 7무의 밭을 팔려고 하였다. 이밭은 모국생네 명줄이였다. 모순생은 때를 만났다고 좋아라 밭을 사들였다. 이로하여 모택동과 어머니는 극구 반대하며 국생네 난관을 함께 이겨내야 한다고 입이 닳게 말했으나 아무 쓸모도 없었다. 이일은 모택동의 가슴에 잊을수 없는 상처로 되였다. 새중국이 성립된후 모국생의 아들 모택련이 북경으로 왔을 때 모택동은 이옛말을 여러번 하면서 “구사회의 그사유제는 형제간의 정도 무시하였다,”고 말하였다.   모택동이 16살 되던 해다. 모순생은 모택동에게 이젠 공부를 그만큼 했으면 되였으니 현성(상담)에 가서 돈벌이를 하라고, 현성에 있는 친구 미곡상과 약속이 되였는데 그집에 가서 쌀장사를 배우며 일하라고 하였다. 모택동은 할수없이 현성으로 갔다. 가서 보니 미곡상은 근량을 속이고 지어는 쌀에 모래를 섞기까지 하였다. 모택동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나는 농사일을  하면 하였지 그런 량심없는 장사술은 배우지도 하지도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어머니는 옳다고 하면서 외가집에 가서 더 공부를 하면서 두외삼촌들과 의논하여 출로를 찿으라고 하였다.   이렇게 바른길로 바르게 성장한 모택동은 청년시절부터 평생을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였다. 2. 전사들과 함께   기나긴 장정의 길에서 모택동은 전사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하였다. 장정초기 큰병을 앓고난 모택동의 신체는 매우 허약했다. 하여 담가를 안배하였다. 그러나 모택동은 늘 담가를 쓰지않고 상병원전사들에게 돌리였다.   한번은 황혼무렵 세번째로 적수하를 건널때였다. 그때 경위원 황택구는 심한 복통으로 걷기가 몹시 힘들었다. 하여 반장 호창보에게 대오의 뒤에서 걷겠다고 청시하였다. 호창보는 비준하였다. 대오가 모태하강변에서 배를 기다릴때 모택동은 신변의 공작인원들을 점검해보고 황택구가 없는것을 발견하였다. 황택구가 복통으로 뒤에 떨어진것을 알게된 모택동은 담가를 강변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호창보는 모택동에게 담가는 당신께서 계속 쓰고 황택구는 말을 타게 하자고 하였다. 모택동은 머리를 흔들면서 배가 아픈 사람이 어떻게 말을 타느냐고, 꼭 담가에 앉게하라고 하였다.   1935년 6월, 부대가 대설산을 넘을때다. 가파롭고 미끈눈길은 한발작을 나가면 두발작을 미끄러지는 형편이였다. 경위원들이 부축하려고 하면 그는 견결히 사양하면서 힘들게 걸어나갔다. 경워원들이 그럼, 말꼬리를 붙잡고 걸으라고 해도 그는 사양하면서 체약자와 녀성동무들에게 돌리였다. 전사들이 헐떡이며 지쳐하거나 눈구덩이에 빠지면 그는 꼭 손잡아 이끌어 주었다. 그러면서 한명이라도 설산을 넘으면 그만큼 힘이 더 커진다면서 전사들을 고무하고 격려하고 손잡아 이끌어 주었다. 설산의 기후는 너무도 악렬하고 변화무쌍했다 모택동은 산꼭대기를 보지말며 산아래도 보지말고 머리를 수그리고 발앞만 보며 걸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절대로 잡은손을 놓지말라고 수시로 웨치였다. 설산은 오를수록 공기가 희박하였다. 경위원 대천복이 호흡곤난으로 주저앉자 모택동은 즉시 업으려고 하였다. 이때 오길청이 먼저 업게되여 모택동은 곁에서 부축하며 함께 걸었다. 이렇게 모택동은 전사들과 함께 설산을 끝끝내 정복하고 넘었다.   부대가 장족지구에 들어선후 부대는 소금과 량식이 다 떨어졌으나 어데서 구할길이 없었다. 장족동포들은 반동파들의 악선전으로 피해버렸던 것이다. 몇백리 험난한 길을 홍군은 말그대로 풀을 뜯어 먹으며 전진하였다. 부대가 초지를 건널때다. 어느날 세찬폭우가 쏟아졌는데 비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모택동은 담가의 유포를 뜯어서 전사들과 함께 쓰고 비를 피했다. 이때 진창봉은 자기가 리질에 걸렸기에 모택동과 함께 유포를 쓰면 않된다고 하였다. 모택동은 진창봉을 자기곁에 끌어다가 함께 유포를 썼다. 초지에서 량식이 떨어진지 여러날이다보니 상병원들이 더욱 늘어나고 전사들이 기진맥진하였다. 모택동은 말 몇필을 잡게하고 고기를 상병원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이때 전사들은 손바닥만한 말고기를 모택동 몰래 풀과 함께 끓인후 모택동이 먹게 하려고 꾀를 썼다. 이를 알게된 모택동은 말고기를 기어이 담가에 누워가는 대천복에게 가져다 주게 하였다. 며칠후 담가원들이 빈 담가를 들고 모주석께로 왔다. 대천복은 끝내 회생되였던 것이다. 경위원은 종이에 싼 말고기를 모택동에게 드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대천복은 림종시에 이 말고기를 꼭 모주석께 드리라고 하면서 혁명이 하루빨리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주석께서 꼭 보중하시며 경위반 전우들이 모주석을 잘 보위하라고 당부 하였습니다,” 모택동은 비통을 억제하며 아무말도 못하였다. 그는 말고기를 다시 잘 싸면서 다음과 같이 목멘소리로 말하였다. “수천만의 렬사들이 중국인민의 해방사업을 위하여 희생되였다. 이정신은 중국인민을 감동케 할것이며 세계인민들을 감동케 할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정의의 사업을 지지할 것이다. 우리의 정의의 사업은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무정한 설산과 초지와 기아, 추위와 폭우, 부상, 질병은 많은 생명을 삼켜버렸다. 그러나 홍군은 완강한 의지로 설산, 초지를 전승하였고 자아를 전승하였다. 홍군은 국민당의 포위, 추격, 저지, 차단을 물리치며 380여차의 전투를 하며 11개 성을 경유하였다. 8만명이 떠난 장정대오는 1만1천명으로 1935년10월 섬감혁명근거지 오기진에 도착하였다. 이로서 중앙홍군의2만5천리 장정은 모택동의 인솔하에 승리적으로 끝났다. 모택동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사들과 함께 행군하였다.   3. 벼락사건   1941년 6월3일 오후다. 섬감녕변구정부에서는 작은례당에서 변구현장들의 회의를 하였다. 하늘에서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면서 련속 우뢰가 진동하였다. 이때 한줄기 벼락이 회의장을 들이쳤는데, 연천현대리현장 리채영이 불행히도 벼락에 맞아 즉사를 하였다.   그날은 장날이였다. 남관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들끓었다. 안색에서 온 한 50대의 사람도(老鄕) 나귀를 끌고 장보러 왔는데 말뚝에 매여놓은 그의 나귀도 그날 벼락에 맞아 죽었다. 로향은 너무도 분하고 원통해서 발을 구르며 잉!잉!울면서 소리쳤다. “하늘놈이 눈깔이 멀었는가. 왜서 모택동은 벼락치지않고 리현장과 내나귀만 벼락을 치는가…”그의 발괄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부사람들은 급급히 울고불고하는 로향을 말렸다.   이날 이사건과 로향의 망발은 특대희소식이 되여 전 연안성에 쫘악 소문이 났다. 반박하며 욕하는 사람, 로향을 동정하는 사람, 말을 더 보태여 만들어 내는 사람, “하느님이 인간을 징벌하는것이다… 보응이다… 더 큰 재난이 덮칠 징조다… 간대루야 공산당과 모주석이 백성을 모르는체 하겠는가…” 연안성은 각종여론으로 시글벅적하였다. 소식과 여론은 변구보안처에 보고되고 모택동에게도 보고되였다. 모택동은 즉시 보안처의 오동무를(小吳) 불렀다.   쑈우가 오자 모택동은 매우 친절히 물었다. “듣건대 쑈우가 로향을 구류하자고 한다는데 어째서 그러는가?” “그는 숱한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모욕했습니다.” “그런가? 그가 어떻게 나를 모욕했는지 들어보자.” “리현장이 벼락으로 사망한것이 주석과 무슨관계가 있는가. 그의 나귀가 죽은게 주석의 탓인가. 그가 연안에서, 그것도 제일 번화한 장마당에서 당신의 명함을 찍어부르면서 욕하고 모욕한것은 엄중한 사건입니다. 즉시 구류하고 심사해야 합니다.” 모택동은 경쾌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가 이모택동을 욕한것이 법을 위반한건 아니잖은가?” “아닙니다. 당신은 인민의 령수이십니다. 당신을 욕했다는건 그가 한간특무가 아니면 토호렬신이라는걸 말해 주는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구류심사하는것은 응당한 것입니다.” “생각해 봐라. 그가 정말로 한간특무라고 한다면 백주대낮에 나를 내놓고 욕하겠는가?” 쑈우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모택동은 그의곁에 다가가서 온화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나직히 물었다. “쑈우, 인민군중들이 왜서 우리를 옹호하며 열애하는지를 아는가?” “우리가 로백성을 위하여 천하를 다투고 행복을 도모하기에…” “옳다. 인민들이 우리를 옹호하고 열애하는것은 우리의 이대오는 혁명대오로서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에게 만약 공작중에 결점과 착오가 있으면 누구든, 어떤방식으로든 비평과 의견을 제기할수 있다. 우리는 응당 접수해야 한다. 아닌가?” “그는 의견을 제기한것이 아니라 사람을 욕했습니다.” “욕도 일종의 의견제출방식이지.” 모택동은 쑈우의 어깨를 다독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쑈우, 내가 한가지 건의를 하자. 로향을 구류하느라 하지마라. 대신 나를 도와 구체정황을 잘 알아봐 달라. 그가 도대체 나에게 무슨의견이 있는지? 될수있겠지?” 쑈우는 경쾌히 대답했다.   원래, 문제의 근원은 변구정부의 내부에 있었던것이다. 당시, 근거지는 가장곤난한 시기였다. 왜놈들은 “3광”정책(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태우고 모조리 략탈)을 실시하면서 발악적으로 근거지를 소탕하고 국민당반동파들은 근거지를 첩첩 봉쇄하였다. 동시에 1939년부터 1941년간 근거지에는 수재, 한재, 충재 등 자연재해가 매우 엄중하였다. 그리고 몇년사이에 변구의 군정인원이 대량 증가되였다. 비생산인원이 10만여명으로 증가되였다. 군대와 정부기관의 수요를 보장하기 위하여 변구정부에서는 군중들의 부담을 해마다 증가하였다. 과중한 부담은 군중들의 생산적극성을 손상했을 뿐만아니라 당과 군중의 관계를 손상했고 불평불만과 원성이 나타나게 하였던 것이다.   며칠후 쑈우의 회보는 다음과 같았다. 항전초기의 변구의 공량은 1만석이였는데 1939년에는 5만석,  40년에는 9만석, 금년에는 20만석으로 급증했던것이다. 로향은 이에 의견이 컸던것이다. 모택동은 길게 탄식하며 “오, 그런 일이구나! 그로향은 확실히 우리에게 아주 좋은 의견을 제기했다. 비평을 아주 잘했다!”   모택동은 즉시 이문제를 세심히 대량 조사하고 처리하였다. 공량을 최후 4만석으로 결정하고 대규모의 정병간정을 실시하였다. 이거조는 모택동의 위신을 더 오르게 하였다. 로향은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자기머리를 쥐여박으며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천부당 만부당 모주석을 욕하는게 아닌데!” 하며 후회를 했다.   그러나 문제가 다 없어진건 아니였다. 일부지방에서는 공량임무가 여전히 과중하였고 어떤간부들은 공작방법이 간단하고 조폭하였다. 하여 농민들의 생산적극성과 당과 군중의 관계에 손상을 주었다.   변구 청간현의 한 농촌아낙네가 당과 모주석을 대대적으로 욕하여 연안으로 압송되여 왔는데 보안처에서는 심사후 엄하게 처리할 작정이였다. 이 농촌아낙네는 남편이 죽고 아이가 셋인데 큰애가 겨우 10살이고 작은애는 3살반이였다. 그리고 집에는 풍을 맞아 운신을 못하는 시어머니가 있었다. 요동(땅굴집)은 골물곁이여서 비만 좀 크게 내리면 물에 잠기였다. 하지만 로력이 없고 돈이 없다보니 어쩔수 없었다. 이집은 마을에서 몹시 가난한 집이였다.   최근년간 공량징수때문에 현과 향, 촌에서 간부들이 적지않게 내려 왔는데, 어떤간부들은 실제형편이야 어떻든 강박적으로 징수하며 욕사발을 퍼 붓기까지 하였다. 하여, 살길이 막막하였던 아낙네는 악이받쳐 공산당을 욕하고 모주석을 욕했던 것이다. 이러이러한 문제로 사람이 잡혀왔다는 소식을 들은 모택동은 즉시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보겠다고 하였다.   농촌아낙네는 모택동께서 만나자고 한다니 대뜸 자기가 큰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모택동 앞에 꿇어 엎디며 큰죄를 범했으니 죽여달라고 빌었다. 이에 모택동은 아낙네를 진정시키며 자초지종을 자세히 물었다. 전후지사를 자세히 료해한 모택동은 격분을 참을수 없었다. 아낙네가 “주석님! 집에 시어머니와 아이가 셋이 있는데 그들을 생각해서 나를 집에 가게 해 주십사.”하고 애원하니 모택동은 “된다!”고 대답한후 책임간부에게 즉시 직접 집까지 호송하며 청간현에서 각항사업을 전면 엄격히 검사하며 문제를 즉시 시정하며 착오있는간부는 엄숙히 처리하라는 공문까지 가지고 가게 하였다. 그리고 이 아낙네의 요동을 새로 잘 만들어 주라고 부탁하였다. 아낙네는 진실의 말을 하며 우리공산당과 혁명정부에 량호한 원망과 의견을 제출한 좋은 사람이라고 부언하였다.
17    [중편소설] 절망하는 자의 친구 / 김광한 댓글:  조회:436  추천:0  2022-10-31
[중편소설] 절망(絶望)하는 자의 친구 김광한   내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을 때는 이미 정오가 지나 있었다. 칠월 중순의 열기가 그의 좁고 냄새나는 방 안에 가득차 화끈거렸고, 부엌에는 반 쯤 타다 깨져 버린 연탄 덩어리가 흉물처럼 널려져 있었다. "시몬 형제여 ! " - 그의 세례명은 시몬이었다. 시몬은 예수의 제자로서 어부였다. 내가 그를 조용히 불렀을 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바 깥 문고리가 열쇠로 채워져 있지 않은 걸로 보아, 친구는 방 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시몬 형제여 ! " 몇 차례 반복해서 불렀으나 역시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좁은 부엌으로 내달린 쪽문을 열고 안을 엿보니, 친구는 때에 절 은, 그리하여 극심한 빈궁을 엿보게 하는, 용수철이 헤어진 천 틈 으로 삐져 나온 침대에 벌렁 누워 천장을 향해 눈을 감고 있었다. 방바닥엔 어지럽게 흩어진 책, 담배 꽁초, 휴지 등이 정신없이 널려 있었고, 벽 쪽에는 대학 졸업식 때 찍은 그의 활짝 웃는 흑백 사진이 빛이 바랜채 채 낡은 사진곽에 박혀 있었다. 방 한가운례 있는 조그만 책상 위에는 그리스도의 고상(苦像)이 쓰러져, 누운 채, 슬프고 가련한 얼굴로 절망한 얼굴의 친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나는 고상(苦像)을 두 손으로 일으켜 세운 다음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 다. 그 고상은 언젠가 그의 황폐할 대로 황페한 영혼이 침몰 직전 내가 사다 준 것이었다. 숨을 내뿜을 때마다 그의 입에서 역겨운 소주 냄새가 풍겼고, 그 것은 좁은 방 안 구석구석까지 배어 있어 견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의 조그만 눈가엔 말라붙은 눈꼽이 눈 가장자리를 꼭 죄이고 있었고, 헝클어지고 정돈되지 않은 반백의 긴 머리카락은 절망의 늪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의 아내가 극심한 생활고 때문에 보름 전에 세상을 스스로 하 직하고 만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탄생한 곳과는 인연이 먼 벽제 화장터 근처 들판 에 한줌의 재가 돼 흩뿌려진 것이다. 얼마 전까지 이 공간을 메웠던 사람이, 함께 밥을 먹었었고, 비록 사랑의 함량은 남들보다 덜했지만, 늦게 술취해 들어오는 남편 걱 정을 하며 변덕스럽고 까탈스런 사람에게 질책당할까 봐 염려했으 며, 그의 술주정에 보통 여자처럼 잔소리를 했던, 살을 섞으며 살 았던 아내가 이 공간에서 행방 불명이 된 것이다. 그저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고, 학식은 없지만 하루 세끼 밥 걱정 하지 않을 정도로 친구를 위해 봉사를 하던 아내, 그 내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시몬 형제여 ! 친구가 왔네 ! " 그제서야 그는 귀찮은 듯 부시시 눈을 떴다. 평소 같으면 그 목 소리에 술병부터 찾았을 그 친구가 오늘은 달라져 있었던 것이디-, 몹시 피로한 얼굴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안히 쉬게 하리라." 하는 성서의 말씀조차 싫은 피로한 얼굴이었다. 한참 동안 그는 낮선 .사람처럼 나를 응시하다가, 술이 덜 깼을 때처럼 늘 하던 표준말과는 아주 다른 국적 잃은 말을 내게 했 다. "자네가 누군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모습이 몹시 측은했다. "나야, 이 사람아." "왜 왔어 ? " "자네가 염려가 되어서‥‥‥‥ "염려할 때도 있었나?" 그는 아예 내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아니, 인간 자체를 불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의 빼빼 마르고 여윈 몸이 종잇장처럼 반짝 들어 올려졌다. 그의 아내가 남기고 간 화장대 위의 꽃병도, 간단한 콜드 크림과 로션도, 밥상 위에 있어야 할 쓰다만 원고지도, 의자도 모두 여기 저기 흩어져 어수선했다. 친구가 덮고 자는 침대 위의 더럽고 때가 낀 이불이 늙은이의 주름살처럼 구겨져 있었고, 책상 위에 늘 함께 있었던 달팽이 모양 의 나무 재떨이엔 담배 꽁초와 담뱃재로 가득차 있었다. 부엌에 달린 쪽마루엔 여기저기 벗어 놓은 그의 고린내나는 양 말짝들이 널려 있었고,안측 의자에는 더러워진 걸레나 다름없는 수건이 길게 걸쳐 있었다. 수건엔 지난 여름 야유회 기념이라고 쓴 글씨가 박혀 있었다. 그 야유회 때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했다. 덧문은 열린 채로 있었다. 방 안은 쓸쓸하고 침침하고 숨이 막힐 듯한 공기로 꽉차 있어서,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이런 광경을 보니 내 마음이 아팠다. 친구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없는 내 마음은 찢어질 듯했다. 모 두가 정상이 아닌 듯했다. 폐차장과 같았다. 폐차장에서 부서진 자동차를 다시 형태를 망가뜨린 채 분해해 부속품을 여기저기 널려 놓은 듯한 장면 같다고나 할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누가 이 시대의 천재를 이렇게 망쳐 놓았을까? 창조주가 창조의 질서를 계획한 그 바깥의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비쳤다. 한때 그는 어떤 중견 신문사의 편집국장이었다. 우두커니 망연자실하고 있는 내게, 친구가 억지로 몸을 반쯤 침 대에 기대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래, 자네가 내게 상투적 으로 쓰는 구원이란 글자는 이미 행방불명이 됐네, 마누라는 죽어 버리고, 애새끼들은 뿔뿔이 제 갈길로 가 버리고, 나만 남은 거야. 송장 같은 꼴이 돼 갖고‥‥‥ 자네는 내 한심한 꼬락서니를 보고 뭔가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겠지 ? 아주 그럴듯한 음성으로 소피 스트(궤변)처럼 자네가 읽은 훌륭한 책들의 내용과, 그 구절들을 적당히 인용해서, '절망한 사람들이 마침내 구원받았다. ' 그런 류의 이야기를, 나가이 다가시(永井) 박사의 이야기를, 목사나 신부들처 럼 하고 싶겠지. '이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이고, 나보다 더 참담한 상황에 빠졌던 사람들이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일어싫다. 이럴수록 힘없고 보잘것없는 인간들은 하느넘에게 매달려야 한다고, 그 좋은 예가 구약에 나오는 욥이라고 생각하겠지, 그것이 자네의 상투적 용어란 걸 나는 슬프게도 잘 알고.있네, 그러나 이제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네.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한 방법이란 걸 자네에게 말해 주고 싶네, 자네는 모든 걸 하느님의 뜻으로 돌리겠지만, 나에겐 그런 하느님이란 필요가 없어 졌네. 절망만을 주는 하느님을 나는 원치 않네. 한때 나도 자네처럼 천주의 어린양이 되려고 무척 애썼네, 그러나 어린양은 점차 나를 못생기고 힘없는 숫염소, 비루먹은 숫염소로 만들어졌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나는 그뜻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네." 나가이 다가시(永井降) 박사는 일본 전후(戰後), X선을 통해 일본인들에게건강을 준 사람으로, 그 자신 백혈병으로 죽어간 사람이었다. 그는 원자 폭탄으로 가족들이 모두 죽어 버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하늘에서 말씀이 들려 이 말을 수용하고 죽을 때까지 환자를 치료 했던 사람이다. 그가 들은 그분의 말은 '이 세상이 다하고 역사가 소멸하더라도 이 말씀은 남아 있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너에게 주는 말씀이다. '라는 성서의 말씀이었다. 친구는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제법 긴 꽁초를 신경질 적으로 집어 들고 있었다. 내가 라이터를 켜 주었다. 그의 눈에는 증오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고였다. 쪽문 틈으로 화려한 빛이 들어왔다. 그는 방바닥에 흩어진 쓰다 만 원고지를 한 뭉치 집어다가 빛구 멍을 아예 막아 버렸다. 그에겐 이제 술도 필요없게 되었다. 술취한 그에게 바가지를 긁던 마누라가 없어졌기 때문에, 술 마 시는 것에서 해방이 되자 이제 그 술은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할 말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 한 병 사올까?" 그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귀찮은 듯이 말했다.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부탁 ? " "그래. 내 부탁은 자네가 집으로 돌아가 주는 거야. 혼자 있고 싶네." 그가 거듭 말했다. 나는 이제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유능한 카운슬러도 그의 절망을 위로해 줄 말이 얼른 생 각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 주게. 이것이 내 부탁이고 나를 위해 주는 일이네." 집에 돌아온 그 밤에 나는 그를 위해 울면서 기도했다. 내 친구를 위하여, 그의 천재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마음 착한 천재의, 천재를 받아 주지 않는 인정머리없는 속물들의 회개를 위 하여, 겸손을 가장해 친구를 멸시한 사람들의 회개를 위하여, 생계 를 담보로 약한 자를 억압하는 가진 자들의 강퍅한 마음이 풀리기 를‥‥‥ 절망하는 사람들의 팅빈 가슴에 한 줄기 소나기 같은 빛을 내려주소서.그 가슴을 채우게 하소서.친구여,제발 죽지 말아 다오. 나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워 기도했다. 또 한 사람 이 세상 어딘가에 그의 영혼이 떠돌, 그의 아내의 한 맺힌 넋을 위하여, 집 나간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아이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위하여, 몹쓸 놈이라고 욕설을 퍼웃는 그의 동료들을 위하여 기도를 했다. 바로 한 달 전, 그는 다니던 직장에서 파면을 당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사람에게 덤벼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편 집국장으로 온 지 6개월 만이었다‥‥ 그의 대듬은 아주 정당한 것이었다. 그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었 다. 그러나 술을 마셨다는 것이 잘못이었다. 개인 회사에서 사장은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해고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돼있다. 사장의 말은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업자가 되었다. 과거의 예로 보아, 나이 사십이 넘어 직장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몇 군데의 술집을 거쳐 집에 돌아온 것은 새벽녂이었다. 그의 비 좁고 깨끗치 못한 방에는 아내와 큰녀석, 작은녀석이 그 시각까지 자는둥 마는둥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누워 있었다. 문 쪽을 향해 첫째 아들, 둘째 아들, 맨 끝에 봉제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의 부인이 뒤척거리면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 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질 듯 한 손으로 겨우 부엌 앞에 기대 있다가, 이윽고 쪽문을 발로 걷어찼다. 이때, 그 순간까지 참아왔던 뱃속의 오물들을 토해 냈다. "윽윽 ! 윽윽 ! "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빨갛고 거무죽죽한 내용물을 뱉어 낸 그 는, 방문을 열고 전등 스위치를 찾았으나 잡힐 리가 없었다. 몸이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문지방을 간신히 지나 방 안으로 들어선 그는, 중심을 잃은 몸으 로 비틀거리면서도, 누군가 한 사람 자신을 부축해 줄 것을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어긋나 버렸다. 가족들은 그를 외 면해 버렸던 것이다. 가족들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겨웠기 때문이다. 형광등 스위치는 그의 손이 달려 있는 방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는 그걸 잡으려고 발을 옮겼다. 그러자 잠든 줄 알았던 큰녀석의 입에서 신경질적인 비명이 튀 어나왔다. "누구야, 이건 ! " 큰 아들은 그의 이마를 밟은 사람이 아버지인 줄 알았지만 짐짓 모른체했다. "도둑이야 ! 도둑 ! " 큰아들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상대가·아버지인 줄 알자, "아버지 또 술 취했어 ! " 하며 원망 섞인 푸념을 했다. 이번에 그가 옮긴 곳은 둘째 아들의 이마였다. 작은녀석도 비명을 질렀다. "누구야 ! 누구 ! " 상대가 아버지인 줄 알자, 이번엔 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진 도대체 뭣하는 사람이에요. 매일 술만 마시고. 지겨워 못살겠어," 그는 이 말에 무척 화가 났다. 자신을 뭣하는 사람이냐는 말에 분노를 한 것이다. "이놈들이 이젠 저의 애비도 몰라보네, 불효 막심한 자식," 큰아들이 눈을 똑바로 뜨고 따졌다. "불효 막심한 놈으로 만든 게 누군데요? 아버진 그런 말씀할 자격이 없어요." 그는 그 말에 두 녀석의 귀싸대기를 번갈아 되는 대로 훔쳐 갈 겼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에,그의 열 살이나 아래인 아내가 이불을 걷어 젖히고 벌떡 일어났다. 그렇잖아도 이때쯤 뭔가 한 마디 해 주고 싶던 참에 구실이 잡힌 것이다. 그녀는 형광등을 켜자마자 악다구니를 쳤다. 아주 상스러운 호칭 을 써가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 네가 뭔데 애들한테 손찌검을 해 ! 네가 남편 이냐? 나가 ! 어유, 저 귀신 같은 건 죽지도 않고 또 들어왔네. 귀신도 눈이 삐었지, 저런 걸 안 잡아가고 누굴 잡아간담! " 그녀는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던지, 곁에 놓여 있던 달팽이 모 양의 나무 재떨이로 그의 이마를 쳤다. 그러자 친구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친구는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찍어 형광등 불빛에 비춰 보았다. "어,피 !" 아내가 던진 재떨이는 15년 전 신혼 여행 때 제주도 기념품 가 게에서 제법 비싸게 주고 사온 것이었다. 그 재떨이가 15년이 지난 후 흉기로 돌변한 것이다. "어, 피 ! 이것들이 ! " 친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김에 합세해서 자기를 해친다는 생 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그들은 가족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미움과 증오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는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미처 구두도 신지 못했다. 그리고 집 에서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은 파출소로 달려갔다. 새벽 두 시가 지난 파출소 안엔 늙은 차석과 방범대원 두 명이 졸고 있었다. 그가 피를 흘리며 들어서자, 그들은 관내에 폭행 사 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우선 그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 주었다. "폭행 사건이로군." 차석이 그에게 물었다. "누구에게 맞았소? 범인이 누구요?" 술 취해 꼬부라진 목소리로 그가 대꾸했다. "아주 나쁜 놈들입니다. " "깡패요 ? " "깡패는 아니고‥‥‥ "관내에 깡패는 없는것으로 아는데‥‥‥‥ 술 취해 누구와 다퉜소?" "아닙니다. " ':그럼 누구요? 범인을 찍어야 우리가 조치를 취하지." "아주 나쁜 놈들입니다. " "몇 명이오 ? " "세 명 입니다. " "집단 폭행이군," "그렇습니다. 집단 폭행이죠." "장소가 어디요 ? " "요 앞입니다. " "때린 놈들 그대로 있습니까?" "있습니다. 도망가진 못할 겁니다. " "인상 착의는 ? " "한 명은 여자고, 두 놈은 젊은 놈입니다. 세 명이서 합세해 내 이마를 쳤습니다. " "뭣하는 사람들이오 ? " "묻지만 말고 빨리 출동하십시오." 차석이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우리가 뭘 알아야 하지 않소?" "갑시다. " "좋소, 갑시다. 당신이 앞장서시오. 김씨, 권총 좀 챙겨 주시오." 김씨는 방범대원이었다. 방범대원이 챙겨 주는 권총을 허리에 차 고 차석이 일어섰다. 차석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약간 겁을 먹은 듯 떨고 있었다. "도망하지 않았을까? 나는 파출소를 지켜야 하는데‥‥‥‥ 차석이 말했다. 난폭한 폭행 피의자를 겁내는 말투였다. "그대로 있을 겁니다. " "아는 사람입니까 ? " 방범대원이 묻자 차석이 이를 정정했다. "면식범인가 ? " "모르는 사람입니다. " "시비를 했군. 당신이 먼저 시비를 건 거 아냐?"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이유없이 저를 때렸습니다. " "그럴 리가 있나. 당신이 먼저 시비를 걸었겠지. "미국말"을 하는 투로 봐서‥‥‥‥ "정말입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피해잡니다. " "술 마시다가 선생께서 옆손님들에게 말참견을 했겠지. 옆자리에 끼어서 깐죽대니까, 그런 거 아냐?" "제가요. ? " 그때 차석이 말했다. "김씨가 혼자 다녀와, 우리는 파출소를 지킬 테니까." "알겠습니 다. "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파출소를 홀로 나온 방범대원은 그가 비 틀거리며 인도하는 대로 따라갔다. 그는 자기 집으로 방범대원을 인도했다. "자, 들어오십시오." 방범대원은 폭행당한 장소가 포장 마차나 술집이 아니고 가정집 이라는데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형광등이 켜진 자기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 방엔 아내가 두 아들과 함께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어디요 ? " "여기요." 방범대원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가 손짓했다. "바로 저 세 사람입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이 꼴로 안들었습니 그가 범인을 찍었다. 방범대원이 보아하니 범인이란 사람들이 양순하게 생긴 아녀자와 고등 학교 학생들인 것을 알고 우선 반항할 것 같지 않아 물었다. "당신들이오? 이 사람 이마에 피를 내게 한 사람들이 ?" 어안이 벙벙해진 세 사람, 아내는 남편이 이제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을 보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이제 볼장 다 봤다고 생각했다. 방범대원과 눈길이 마주친 남편,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처벌해 주십시오, 이런 것들은 아주 혼내 줘야 합니다. 합세해서 구타했습니다. "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아내가 얼굴을 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뒤따라 그의 두 아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영문을 모르는 방범대원이 자신의 직무 수행상, "자, 파출소로 갑시다. " 하고 으름장을 놓다가, 웬일인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의 아내에게 물었다. "이 사람 누구요 ? " 아내가 대답했다. "애들 아빠예요. 술에 취해 정신이 나갔나 봐요." "애들 아빠라면 당신 남편이오?" "맞아요," 방범대원은 맥이 탁 풀렸다. 오래간만에 한 건 하려 한 것이 수 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여보, 당신이 이 집의 가장이 아닙니까? 마누라한테 얻어 터 지고 파출소에 와서 신고하는 사람 당신말고 이 세상에 또 있겠 소? 별 싱거운 사람 다 왔네, 어서 잠이나 한숨 자요. 알코올 중 독이로군." 방범대원은 툴툴거리며 파출소로 돌아갔다. 우리 친구들은 이 말을 전해 듣고 모두 웃었다. 그냥 웃는 것이 아니라 비웃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가 정신병자가 됐다고, 폐인이 됐다고 그를 경멸했다. 그의 불행에 대해 친구들은 쾌재를 불렀다. 남의 불행을 보고 좋아하는 속물들은 지식의 유무를 결코 가리지 않는 법 이다. 그러나 나는 웃지 않았다. 그의 불행에 대해 울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의 불행을 자초했는 가. 무엇이 그의 천재적인 두뇌를 치매화시켰는가. 그가 알코올에 탐닉하고, 따라서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은, 매사에 점잖고,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우리 들이었다. 오히려 그는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의 친구 편에 섰던 것이다. 직원들의 불이익에 그는 앞장서서 변호를 했었다. 그것이 그를 파멸케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우리들이 받아들여 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눔의 결여, 사랑의 결점, 그리고 개인의 조그만 안위 같은 것이 그를 정신병자 로 몰았던 것이다. 그는 결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가 이 사회에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의 실력이 속물들 보다 뒤져 있어야 했고, 정치적 경제적 안목이 그저 그런 보통 사 람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는 불행히도 그렇질 못했던 것이다. 적당히 속물적이고, 불의와 타협할 줄 알고,늘 그 가운데 서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남들보다 앞 섰던 것이다. 종교와 문학과, 그리고 인생에 대해 조금 아는 체를 했던 것이다. 아는 것을 그대로 말했던 것이다. 그가 실업자가 된 후,그의 아내가 자살을 했다. 남편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아이들의 타락은 점점'늪을 향 해 갔기 때문이다. 본드 흡입과 퇴학, 그러자 아내는 절망을 했던 것이다. 아내가 자살했기 때문에 그는 다니던 성당 교우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자살은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성당 교우들은 자살한 교우의 집에 오길 꺼려한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교우들은 교리에 충 실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문 모르는 교우들이 연도를 오려 하자, 그는 오히려 거절을 했 다. "올 필요 없습니다. " 그는 교우들의 형식적이고 규격적인 신앙 생활에 회의를 느꼈던 것이다. 사랑이 결여된 교우들의 태도, 사랑과 나눔보다 교리에 충 실하려는 교우들을 그는 경멸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신앙이란 인간들이 저희들끼리 만들어 놓은 정신적인 위안이라고 생각하게끔 됐다. 그는 영세를 받은 후 일 년 동안 열심히 성당엘 나갔다. 주일 미사는 물론, 새벽 미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신부의 강론을 종이에 적어, 가능하면 그대로 실천하려 애쓰며 충실한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영세식날 '시몬'이란 영세명을 선물했고, 대부(代父) 가 되어 주었다. 물론 그의 본명은 성인들의 탄생월에서 딴 것과는 거리가 먼 본명이었다. 그는 세례명을 받고 뛸 듯이 기뻐했다. "자네는 이제 변 시몬이다. 형제들에게 변 시몬이라고 말해 줘. 축하하네." 그러자 그가 물었다. "시몬이란 사람이 뭐했던 사람이니 ? 2천 년 전 사람이란 건 알 고 있지만‥‥‥ "예수님의 제자야, 고기 잡던 어부였지." "고기 잡던 어부?" - 어부란 말에 그는 다소 기분이 언짢은 것 같았다. "왜 ? " "그냥." "그럼 그 시몬말고 다른 시몬으로 하지, 어부였던 사람이 맘에 들지 않으면 "키레네"의 시몬이라고 하지. 골고다 언덕에서 기진맥진 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시몬,그 시몬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 자네는 남을 위해 수많은 헌신을 했으니까." 그는 남의 장례식에 웬만하면 참석했다. 그리고 남의 불행에 앞 장서서 위로를 했었다. 그만큼 가진 것은 없었지만 정이 많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가난했는지 모른다. "고맙다. " 내가 다시 말했다. "두 개의 십자가, 때로는 자기 이외의 십자가, 세 개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사람을 하느님은 더 귀하게 생각한다네. 자네는 그 럴 사람이야. 축복하네." 그 후부터 그는 열심히 성당 일에 참석했다. 나는 그가 다니던 성당의 교우들의 입을 통하여,그가 레지오단에 들어가 봉사 활동을 잘 한다고 들었을 때, 그의 새로운 변신에 새삼 기쁨을 느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나를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의 얼굴에 웬일 인지 기쁜 빛이 사라져 있었고, 수심이 가득했다. 대낮이었는데 입 에서 술냄새가 풍겼다. 그를 근처 다방으로 데려갔다. "무슨 일 ? " "있었지." "회사일? 아니면 신상에 관한? " "후자 쪽이야. 난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야만 하겠다. " "다시 돌아가다니 ? " "내 식대로 살겠어. 남의 집에 들어가 한 식구가 되려고 한 것을 후회하고 있네," "남의 집 ? 그게 왜 남의 집인가? 성당이란 바로 자네 집이네. 그분이 자네를 받아들인 거지." "아닐세. 그분은 안 계시고 객식구들만 잔뜩 있네. 그래서 내 식 대로 산다고 맹세를 했지. 그게 더 인간적이고 정직한 것 같아." "그럼 성당 생활이나 신앙마저 그만두겠다는 건가?" "일테면 그렇지." "일 년 동안 일 주일에 한 번씩 교리 공부한 건 어떻게 하고? 아깝지 않아 ? " "소설 쓰는 데 참고로 할 거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누군가 자네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 같 은데‥‥‥‥ "아닐세. 지난 날 자네에게 진 죄의 회개를 위해 다섯 번씩이나 고해 성사를 보았네." "네게 무슨 죄를 졌다고?" "술 마시고 자정이 지나 전화를 해서 자네 부인을 괴롭히고,자네 집에 가서 방뇨를 하고‥‥‥‥ "이 사람아, 그런 건 죄도 아냐. 오히려 즐거운 일이지. 나는 누 구보다도 자네를 이해하네. 그래서 대부도 선 것 아닌가. 난 이미 잊어 버리고 있었어.자네가 새롭게 영적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모든 보속을 다 받았다고 생각하네," 내 이야기에 그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꺼냈다. "노동자들이 모인 장소에서, 양복을 입고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꺼내면 그들이 받아주지 않지.왜냐하면 그건 남의 이야기이니까. 양복을 벗고 노동자의 입장이 되어서 이 야길 하면 그들과 한 패거린 줄 알고 친근감을 느끼게 되지. 나는 실업자 생활을 할 때 그걸 느꼈지. 한때 나는 아파트 경비원을 하 려고 맘먹었네. 자네도 알고 있겠지. 실업자 생활이 얼마나 무서운 줄‥‥‥ 그래서 말이야. 이력서의 학력란에 고졸이라고 썼지.아파트 경비소장이 그 동안 무엇하며 살았느냐고 하기에, 월부책 장사를 했다고 했어, 소장이 다시 물었어. 월부책 장사하기가 힘들지 않느 냐고. 그래서 이렇게 둘러댔지. 친한 사람에게 찾아가 책 사기를 권했을 때,상대방이 핑계를 대고 거절했을 때가 제일 맘이 상했었 다고 그했더니 대번에 소장이 친근감을 갖는 거야. 소장이 하는 말 이, 사실은 자기도 책장사를 한 경험이 있다는 거야. 그가 어느 센 터에 있었고 누구를 아느냐고 묻기에, 을지로 3가 쁘렝탕 백화점 옆 삼층 건물에 있었고, 금성 센터 '이준구'라는 사람을 잘 안다고 둘 러댔지. 이준구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었지" 그러나 그는 거기서 여지없이 거절을 당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서 갖춰야 할 것 이상을 갖췄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원이란 외모 가 적당히 늙어야만 하고, 적당히 무식하고, 손마디가 퉁겨져 나와 야 하고, 용모가 준수하지 못해야 하고, 약간의 노예 근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 건 나중에 그를 추천해 준 경비원 윤씨의 입을 통 해서였다. 윤씨는 비번날 친구인 변찬호를 근무하는 아파트에서 꽤 멀리 떨어진 허름한 대폿집으로 데려갔다. 그 대폿집은 아파트 경비원을 비롯해 청소원, 방범대원 등이 단골로 드나드는, 쌍과부집이란 상 호가 붙은 목로 주점이었다. 아파트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주민들에게 발각이 되면 당장 불이익이 올까 봐서였다. 윤씨는 그에게 심각하게 그것 보라는 듯이, "변씨, 내가 뭐랬어 큰 평수 가진 아파트에 사는 것들은 자기나 남편보다 못난 경비원을 원하거든. 그래야지만 자기들의 자존심을 충족시킬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일테면 약방에 가서 경비원 에게 바카스 한 병만 사오라고 시킬 때, 경비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람을 뭘로 아느냐고 그래 봐. 당장 쫓아내지, 개처럼 고분 고분 말 잘 듣는 착한 그런 경비원을 원하거든. 변씨는 그들에게 너무 사람이 고급스럽게 비쳤던 거야. 변씨도 생각을 해 봐. 졸부 들에겐 졸부들의 근성이 있거든. 그들의 오늘이 있기까지를 남들에 게 과시하고 싶은 거야. 뭔가 우쭐대고 싶고, 객기를 발휘하고 싶은 거야, 그들이 명절날에 용돈에 보태 쓰라고 몇 푼씩 던져 주는 것, 우리들에겐 고맙고 무척 인간적이라고 느낄지 모르나 사실은 그게 아니야. 자기가 데리고 있는 세퍼드에게 고깃덩어리 한 개 던져 준 다고 느끼면서, 그들의 자존심을 충족시키는 거야. 만일에‥‥‥‥ 하며 경비원 윤씨는 친구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만일에 말이야. 내가 던져 준 고깃덩어리를 세퍼드에게 던졌을 때, 세퍼드가 덥석 받아 덕지 않고 그걸 외면한다면 내가 화나지 않겠어. 세퍼드에겐 자존심이 없거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꼬리를 흔들지 않는 세퍼드는 원하지 않는 거야. 세퍼드는 세퍼드라야 하 고, 경비원은 경비원이라야 하거든. 경비원이 철학책을 끼고 다닌 다고 생각해 봐. 그들이 가만 있겠나. 경비원이나 세퍼드에겐 인격 을 기대할 수가 없는 거야." 윤씨와 헤어져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부인이 기대에 차 물었다. 남편이 경비원 이상의 학력과 경력, 그리고 인물을 겸비했으니까 경비원쯤이야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잘 됐겠죠." "안됐어," 그는 통명스럽게 대답했다. "안되다니요 ? " 아내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이력서를 잘못 썼나 봐." "잘못 쓰다니요 ? " "고졸이라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는 거야." "왜 고졸이 학력이 낮아서 그래요?" "아냐, 더 낮게 쓸 걸 그랬어." "중졸이라고 할 걸 그랬죠." "양심이 있지," "양심이 밥 먹여 준답디까?" 아내는 처음에는 남편을 위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경질을 냈다. 나중에는 입에 거품까지 물고 밥상머리에 앉아 숟가락을 달 그락거리기까지 했다. 그의 아내는 경비원도 못 하는 남편이 밉살스러졌다. 밉살스러운 경지를 떠나 증오스러웠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자 남편에게 내놓고 짜증을 부렸다.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아랫마을 방앗간집 아들한테 시집 이나 갈걸. 그 사람에게 갔으면 먹는 것 걱정은 하지 않았을 거야, 허우대 멀쩡하고 대학 출신이라고 갔더니 사람 잡았지. 아이구, 내 팔자야." 하며 그녀는 밥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거품을 물고 그에게 상처 내 는 말을 함부로 했다. 신혼 초엔 남편의 이름은 커녕,그림자조차 얼씬 못하던 그녀였다. 열 살이나 아래인 그녀는 처음 남편의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했고, 그 후에 부장님, 여보란 소리로 된 것은 결혼 십 년이 지나서였다. 아내는 남편이 근무하던 회사의 경리 사원이었던 것이다. 이런 남편이, 10년이 지나자 아내로부터 평가 절하를 받게 된 것이다. 이만저만한 평가 절하가 아니었다. 그는 결혼 생활 10여 년 동안 변변치 못한 직장에서 몇 번씩 쫓겨나기도 했고, 스스로 물러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는 젊었었다. 그래서 그의 이력서는 한 장으로 부족했다. 그런데 지금 오십줄의 나이에 들어서자, 점차 자신감을 상실해 갔다. 실업자가 되고부터 몸과 육신이 쇠락의 길을 걸어갔고, 모든 것이 까마득하기만 했다. 자신있게 이야기하던 학문에 대한 이론도, 그것이 쓸모없다고 느 끼게 되었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던 사고 방식도, 그리고 종교 자 체도 흥미를 잃어버렸다. 한때 그는 매일 새벽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례했었다. 새벽에 일 어나 종교 방송을 듣는 하루의 일과는 그에게 정신적 건강을 안겨 주었었다. 비록 신심이 두텁지는 않았지만, 새벽 미사는 그의 삶의 활력소를 안겨 주었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성당에 나갈 주일 아 침이면 술집을 찾았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술에 젖어 주일의 시간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 것이다. 그는 다방 레지에게 위스키를 한 잔 주문했다. 더 취해 보자는 것이었다. 레지는 별 이상한 손님 다 보겠다는 투로 가재눈을 했다. "여기가 뭐 술 파는 덴 줄 아세요?" "왜 ? 술 가져오라는 데 뭐 잘못됐어 ? 위티라는 것도 있잖아. 위스키 차 말이야." "여긴 술 파는 카페가 아녜요. 다방이에요. 혹시 밤이라면 몰라 도‥‥‥‥ 하며 차를 주문할 것을 권했다. "옛날엔 팔았잖아." "그건 손님이 젊었을 적 이야기죠. 그런 다방 이젠 다 없어졌어 요. 위스키 마시고 싶으면 카페로 가셔야죠," "내 이럴 줄 알고 준비해 왔지." 그는 레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언제 준비했던지 속주머니에서 이홉짜리 소주병을 꺼냈다. 그는 반쯤 남아 있던 소주를 병째 나팔 을 불었다. 곁의 손님이 이상하다는 듯인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그렇게 마셔도 되는 거야?" "괜찮아. 내게 믿는 것이라곤 이놈밖에 없어. 이 세상에서 제일 정직한 것 같아. 적게 마시면 적게 취하고 많이마시면 많이 취하고‥‥ 그의 몸이 투명한 액체가 들어가자 더욱 흐트러졌다. 손님들이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에게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한결같이 한심하다는 눈초리였다. 나는 그의 손에서 술병을 억지로 빼앗았다. 그러나 빈병이었다. 그가 다소 흥분해서 말했다. "나는 앞으로 성당이나 교회 같은 곳은 절대 나가지 않을 거야. 모두가 똑같아. 왜냐고? 구(9)원보다 나는 십원이 더 좋으니까. 저희 들끼리 구원이니 영생이니 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말장난일 뿐이 야. 자네도 생각해 봐. 지금 이 시간 현존하는 그리스도가 어디 있 다고 생각하나.사는 그 동안 순진하게 구원과 육신의 부활 같은 걸 어린애처럼 믿었던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것들은 전문가들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던 거야." "전문가 ? " "전문가라는 말이 이상한가? 교회의 목사나 성당의 신부들 말 이야. 그들은 그런 것들이 없으면 발붙일 데가 없거든. 그래서 신 자들을 끌어들이는 거야. 신자들이 있어야 물질적인 충족을 하게 돼 있거든. 이를테면 신자들이란 도구들이지." "이 사람아, 그런 불경스런 말이 어디 있나. 함부로 이야기하는 자네의 마음이 몹시황폐해 있네." 내 말에 그는 비웃듯이 말했다. "성당에서 영성체하는 빵 쪼가리에 그리스도가 있다고 생각하 나? 천만의 말씀이지. 감실(龕室)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줄 알고 그 앞에서 열심히 기도도 했지. 그러나 말일세, 감실 안에는 밀가루 를 반죽한 조그만 빵조각이 몇백 개 모여 있을 뿐이었어. 그것이 예수님이 고 그리스도라고? 그리스도가 빵이 됐단 말인가? 그걸 먹으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걸 먹고 똑 바로 행동을 해야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는 것이지. 천주교 신자 좋 아하네. 그리스도를 팔아서 장사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 아?" 나는 그를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왜 그가 그토록 황폐해졌을까. "영세까지 받은 자네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 나?" "영세 ? " 하며 그는 시니컬하게 웃었다. "물론 자네는 내 몸 속에, 내 영혼을 타락시키는 나쁜 마귀가 침투했다고 생각하겠지. 또 그렇게 확신을 갖겠지. 그러나 보시다 시피 내 영혼은 이렇게 멀쩡하네. 술에 좀 취했을 뿐이야 본래의 나대로 돌아왔을뿐이야. 신(神)을 믿는 작자들의 눈에는 모든 현상 을 신으로 귀결시키려고 하지.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 건 자기합리화였을 뿐이야, 자기 모순이었지. 그걸 알았을 때 나는 더 저항감에 빠졌네. 저희들끼리 만든 종교, 저희들끼리 만든 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한다? 웃기지 마." 그는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는 종교에 대해 일종의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테면 여의도 광장에 백만이 넘는 신도들이 모여 신앙 집회를 한다고 치자. 저희들끼리 박수를 치고 울고불고, 간증을 하고 법석 을 떨 때 만일 말이야. 이상한 구름이 떠 있다고 치자. 그 구름의 모양이 사람을 닮았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금방 단 정을 내리는 거야. 우연히 구름 조각이 모여 있는 현상을 갖고 그 들은 감격을 하지. 거길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확신하는 거지, 그 리스도가 생각하면 배꼽이 .빠질 일이지. 그래야만 집회가 성공한다 는 길 영악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거야. 그 리스도가 그 시간에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그것이 문제야.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희들이 소속한 종교 단체 안에서의 일일 뿐 이야. 찻잔 속에서 회오리 바람이 몰아친다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이 있겠나. 그것이 과연 우리 역사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하 나.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할 뿐이야, 마치 노아의 방주 안에 든 사람들처럼 저희들끼리 은혜를 받았다고 야단을 치는데, 그것은 지 독한 자기 모순이네. 그것이 남들에게 무슨 큰의미가 있겠나."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지 말게." "내가 부정적이라고 ? " 그는 종교에 대한 허구를 간파한 사람처럼 자신의 이론을 늘어 놓았다. 그렇게 많이 취한 것 같지 않았다. 아마 그 동안 술이 깨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인데, 요즘 교회에서 부활이 있다고 생각. 하나? " 그는 내가 마치 범인인 것처럼 나를 노려보았다. "글쎄 ? " "부활이란 죽음이 있어야 하는데, 죽음이란 일종의 순교가 아니 겠어, 죽음이란 자네도 알지만 객사나 자연사는 아니지. 순교자. 요 즘 교회에서 순교자가 나오니 ? 물론 정치 상황이 옛날과 많이 달 라졌긴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지, 그걸 난 얼마 전에 뼈저리게 느꼈네. 있다면 말의 성찬만 늘어놓는 비겁한 종교인들만 있을 뿐 이야. 대통령을 위한 조찬 기도회에 다녀온 목사들이 대우를 받는 종교 집단에 난 환멸을 느꼈네." 그는 말을 마치고 또 다른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냈디·. 이번 것 은 종이에 포장된 휴대용이었다. 그는 그것을 빨대를 이용하여 빨아 마셨다. 마치 우유를 마시듯 이. 그는 이미 알코을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알코올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네." 내가 말하자 그는 소주병을 들어 내게 내밀었다. 한 잔 마시라는 거였다. 내가 고개를 흔들자 그는, "지금의 내 친구는 이놈뿐이야," 하고 한 모금을 맛있게 들이키더니 목청을 높였다. "얼마 전에 말이야, 우리 구역에서 모임이 있었네, 구역 모임이란 것 자네도 알지? 신도들 가운데 제법 잘산다는 집에 모여 구역미사를 드렸지. 그런데 그 참석자의 대부분이 물질을 많이 소유한 자들이 었네. 물질이 많다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그들을 색안경 쓰고 보지 말아, 그들이라고 자비심이 없는 것이 아니니까. 자네가 갖질 못해서 기분이 상했나 본데‥‥‥‥ "아니야. 나는 갖지 못한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네. 물질을 그리 귀하게 생각지도 않고‥‥‥‥ "자네의 판단이 남들에겐 어리석게도 비칠 수가 있네. 자네는 뭔 가 크게 오해를 하고 있어. 자네가 갖고 있는 흑백 논리에서 벗어 나야 하네. 가난한 사람은 모두 정직하고 착하고 겸손하고, 가난의 원인을 나눔에 있다는 생각, 그리고 부자는 모두 헙잡꾼, 도둑놈, 사기꾼이라는 논리를 난 반대하네." "그 얘길 하자는 게 아니야,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직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닐세. 그들은 하나같이 회사의 경영자, 부동산 업 자들, 졸부들, 빌딩의 주인들이었어 빌딩도 몇 개씩 소유한 자들이 었네. 구역 모임이 아니라 마치 주식 회사의 주주 총회를 하는 느 낌이었지,물론 자네 말처럼 많이 소유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건 아니지.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소외되고 병들고 억압 받고 경제적으로 피폐한 형제들이 문제였네, 가진 자들은 그들에게 절대 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것일세. 그들에게 돈은 물론 아무것도 빌려 주지 않으려 하네. 왜냐.하면 돌려받을 수가 없으니까. 신부나 목사가 늘 이야기하지, 그리스도는 의인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만나기 위해서 왔다고‥‥‥그러나 그 자리에는 병든 자나 가난한 자, 죄진 자, 보잘것없는 자들은 낄 수가 없는 거야. 그들이 문턱을 높게 만들어 저희들끼리 가진 것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 해서이지, 가난한 자들은 아예 그런 자리에 끼어들지 않지. 아니, 스스로 포기를 했던 거야.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수치스러뤘던 거 야.'그들은 자기 지위에 맞는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 즐거 움이 있다고 생각하네, 의사는 건강한 자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역 할밖에 할 수 없는 것이지, 이런 논리라면 그리스도가 뭐 필요가 있겠나, 의사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기껏해야 못생긴 여자의 얼굴 이나 성형해 주고 화냥기 있는 여자들의 성적 쾌감을 높이기 위한 이쁜이 수술이나 해 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면 그 의사는, 아니 그리스도는 중산층의 가진 자들의 편에 서는 중산층 그리스도에 불과하네." 그는 남아 있는 소주곽의 소주를 홀짝 들이켰다. "그래서 그들은 구억 모임에 참석치 않는 거야. 거칠어진 손, 못 배워서 문자 쓰는 것에 빈곤한 형제, 그들은 성서에서만 나타날 뿐 이야. 정작 주인공들은 한 사람도 참석치 않고, 객꾼들만 모여서 그들의 세상을 구가하기 위한 기도를 올릴 뿐이야, 미사를 마치고 마당에서 신부와 악수를 나누고, 덕담을 하고, 건강을 묻고, 웃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나, 그들에겐 의사가 필요도 없어. 정작 의사가 필요한 사람들은, 의사를 찾지 않고 마 당에서 도망치듯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네, 자네 솔직히 말해 보게. 가진 자들, 권력 있는 자들의 구억 모임 현장에 그리스도가 나타난 다고 생각하나. 만일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하자. 그들에게 너희 들이 가진 것 모두 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라오너라, 그래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면 그들이 따라온다고 생각하나. 그들은 기대가 불확실한 내일보다 오늘의 즐거움과 부(富)를 원하지. 아마도 한 명도 따라가지 않을 걸세, 어떻게 얻은 재물인데. 그 재 물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남들의 눈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는데, 그 재물을 두고 따라갈 것 같은가. 어림도 없지, 그리스도는 그 재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대상에 불과하 네, 그들은 자기들이 부자로 있을 때만 그리스도를 찾는 거야. 그 리스도가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지. 그들은 가난한 것에 대해 겁을 내지. 그것뿐이 아니라 가난한 자조차 싫어하네. 그들은 처음엔 얌전히 저희들끼리 기도를 하고, 마치 무슨 큰 신앙 체험이 나 한 것처럼 조작한 신앙 체험을 이야기하지, 일테면 아이들이 중 병에 걸렸는데, 매일 새벽 기도를 하니까 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 일어나거라 했더니 병이 말끔히 씻겨졌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지, 그들은 오늘의 부를 가져오게 한 하느님을 찬미하지, 자신들은 마치 하느님에게 특별히 선발된 선민이란 인식을 갖고 가난뱅이들에게 군림하지. 자신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가난뱅이들은 하느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우쭐한 생각을 하지, 가난 뱅이들과 만나는 것을 자연 꺼리게 된다네. 가난뱅이들에게 자신들 의 자녀가, 자신이 소유한 부가 오염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 이네. 그들은 그들이 소유한 호화 주택과 자동차와 부동산과 어느 지역에 땅을 사놓으면 투자 가치가 높을 것인가 토의를 벌이네. 그 것도 싫증이 나면 배우자의 출신 학교 자랑, 처가 쪽의 권세 자랑, 애새끼 삼류 대학에 입학한 자랑, 그것으로 대충 마감을 한다네, 이런 식이야. 이런 자리에 햇볕에 얼굴이 그슬린 생선 장사 아줌마 나, 파출부나, 공사판의 잡부로 있는 신자가 불쑥 나타나 보게. 그 들은 자신들의 자리에 이런 자들이 나타나길 원치 않지. 물론 그들 은 이런 자들 앞에 결코 나타나지도 않겠지만, 그들에게는 부자들의 전매 특허가 된 종교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을 걸세. 나 역시 마찬 가지네. 나는 그런 자리에 결코 나타나지 않을 걸세." 그는 점점 진지하게 자기의 종교적 이론을 전개해 나갔다. 나는 그의 생각의 깊이에 탄복을 했다. 그렇다고 그의 이야기들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그의 이론이 정연한 것만은 인정해 야만 했다. 많은 양의 술을 마셨지만, 그의 정신은 의외로 말짱한 것 같았다. 내가 물었다. "그럼 자네가 생각하는 현존하는 그리스도는 어디 있다고 생각 하나? " 그는 담배 한 모금을 깊숙이 빨았다. 그리고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자네는 내 생각이 초신자(初信者)가 갖는 의례적인 회의라고 느낄지 모르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놓고 무척 많은 시간 동안 고민을 했었지, 그러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어." "그 결론은 ? " "떠나야겠다는 생각이지. 그래서 떠난 거야." 그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했다. 무척 실망과 분노에 찬 얼굴이 었다. "그리스도는 말일세. 예배당에서 목사가 침을'튀기며 설교할 때 그곳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네..그것은 오직 성직자들의 성직을 수행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네. 하나의 예식에 지나지 않 네.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 때, 빵을 나눌 때 그 빵 조각에 들어 있 다고도 생각지 않네. 나는 해방 신학이니 민중 신학이니 익명의 그 리스도 같은 종교적인 이론을 모르고 있네, 알 필요도 없고, 다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 이야기할 뿐이네. 그런 것들은 직업적인 종교 학자가 할 일이지.자네는 내게 이것 아니면 안된다고 강요했 을 때, 나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는 걸 이야기할 뿐이야." "자네가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나는 재차 물었다. "어느 곳에 현존하나? " "글쎄, 그걸 내가 안다면 내가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가? " "자네는 지식인으로서 종교에 접근하길 꺼려하는 것이네. 그러나 종교는 일단 구원이 전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식에 앞서 있다 고 믿네. 자네의 지식을 모두 버리고 어린아이가 되었을 때,종교는 자네를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네." 나는 그에게 어쩌면 왜곡되었을 성 싶은 그의 이론을 정정해주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나 역시 내 말에 확신이 서'있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이론에 지나지 않았다. "나무 몇 개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있네, 자네가 참석한 구역모임을 자네는 어떤 회사의 주주 총회를 방불케 했다 치자. 그사람들 모두가 정작 구원보다도 현실에 안주하는 데 만족하여 신 이라든가 하느님은 오히려 그들의 장식물로 여긴다 치자, 또 그 람들 마음 속에 있는 교만과 허영심, 욕심 그 외에 모든 쓰레기 같은 생각들이 곧 하느님의 뜻은 아니지 않나. 그럼 자네는 다른 길로 가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느님이 기뻐하실 일만 나름대로 챙기 면 되지 않나, 자네가 그들을 질타하고 욕을 하고,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건 자네가 갖는 또 하나의 오만에 불과하네. 그 오만이 자네를 못쓰게 만들고 있네, 하느님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을 원하거든‥‥‥‥ 나는 내가 아는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 즉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 출석하는 것이 목사나 신부 또는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들 _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 말에 못마땅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부정적인 삶보다 긍정적인 삶을 가지라는 이야기지, 그건 누구나 말할 수가 있어. 마치 그건 부모가 자식의 탈선을 막기 위해 이야 기하는 것에 불과하네. 일종의 일반 상식이지. 신앙, 믿음이란 그런 것과는 차원이 틀린 거야. 좀 심각하지.': 그는 신앙뿐만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삶 자체마저 의혹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신앙의 문으로 돌아올 걸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나 의 이야기가 그에게 먹혀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자넨 뭔가 의혹을 갖고 있네.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은 존재하지 않네. 일테면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것을 믿지 않 으면 기독교를 믿을 수가 없네, 그것에서부터 기독교의 신앙은 출 발하네, 만일 자네가 과학자라지만, 예수가 사람이었고, 사람은 죽는 것이고, 죽은 사람은 화장을 하지 않을 경우 일정 기간 유해, 즉 뼈를 남긴다는 것, 그 뼈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겠지. 성서(聖書)에 대한 의혹이란 한없이 많이 있네. 나도 처음엔 그랬네, 태초에 에덴 동산에 아담과 이브가 살았지. 발가벗고 말일세. 그때는 부끄러움 이란 것이 없었네. 그들에게 카인과 아벨이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카인이 욕심과 질투 때문에 아벨을 죽였지. 그런데 카인은 남자였 네. 인류의 조상이 카인이라고 하지만, 카인에게 부인이 있어야 할 텐데, 성서에는 카인의 여자 이야기가 나오질 않네. 여자가 있어야 지, 거기서 사람이 번식할 텐데. '그 당시 여자가 어디 있었느냐. 또 그 후에 노아란 사람이 나오네. 세상의 죄악이 하늘에까지 만연해 멸망시키려 할 때, 의인인 노아만을 살려 주기 위해 방주를 만들려 고 했네.·방주란 기관이 딸리지 않고 그냥 떠 있는 배를 말하네. 그 배에 세상에 산(生)것 가운데 암컷과 수컷을 모두 태워 종족을 보존시 키라고 했는데, 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을 태웠느냐, 또 박 테리아나 바이러스, 사랄의 눈에 징그러움을 안겨 주는 지렁이나 뱀, 굼뱅이, 전갈 같은 것을 태웠겠느냐 등등 따지고 들면 한이 없 네." 친구가 내 말을 막았다. "너무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않기로 하지." "자네가 지금 생각하는 종교에 대한 허구를 나는 허구라고 생각 지 않기 때문에 사도신경을 바치고 그것을 믿고 있네. 불신자가 생 각하면 헛된 일인지도 모르지. 그리스도가 어디에 현존하느냐.물론 교회당 안에서, 목사의 설교 때, 미사 예식에서 빵을 나눌 때 그리 스도가 현존한다고 생각지는 않네.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 병든 자를 필요로 하니까 참석한 자들 가운데 가난한 자, 병든 자를 눈여겨 보겠지.자네는 이렇게 말이야.부자나 탐욕이 많은 자, 마음이 깨끗지 못한 자들이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이 가져야 할 그 리스도의 은총을 가로챈다고 말이야,그것 역시 자네가 갖는 질투가 아니겠나." 그는 내 말에 깊은 고뇌의 표정을 지었다. "만일에 말이야.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인도나 스리랑카 에서 태어났다면 힌두교나 불교를 믿었어야 할 거야.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종교를 놔두고 이름과 형식이 그 나라에 맞지 않는 종교가 마음에 와 닿을 턱이 있겠나, 그들이 가톨릭을 믿지 않는 이유는 아주 당연하지.우리가 아프리카의 이상한 종족이 믿는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겠지. 한국 사람이 일본 종교인 남묘호렝교를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나." 친구는 내가 자기를 설득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빈약한 종교 지식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네는 신앙이란 걸 갖더니 말이 늘어난 것만 같네."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네. 자네의 영혼이 무척 황폐한 것 같아 서 안타깝네.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온 선교사들, 모방이나 샤스텡 엥베르 같은 사람들이 미개하기만 한 조정의 관리들에게 붙잡혀 목이 날렸네. 그들이 죽으면서 전파해 준 종교가 나는 믿을 수 있 다고 생각했네. 그들이 뭐가 답답해 조선이란 깨이지 않은 나라에 들어와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내놓았겠는가. 그들은 문명 국에서 태어나 그들의 눈에 비친 종교의 미개국에서 목숨을 내놓 았네. 자네가 지금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이해가 가네. 그러나 신앙이란 좀더 한 차원 높게 생각할 필요가 있지." 그러자 친구가 내 말에 반박을 했다. "한 무명의 대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죽었지. 단지 데모를 했다는 이유로‥‥‥ 대학생이 데모를 한 이유는 불의에 대한 항거였었네. 무명의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것처럼, 그 대학생은 민중 속에서 부활했네. 대학생이 불의한 권력 집단에 의해 처단이 되고 나서 민중들이 분노했지. 그때 민중들은 '주여 ! 주여 ! 어디로 가시나이까? ' 하고 외치지 않았어. 다만 민중들은 힘을 합쳐 불의한 집단을 향해 소리쳤네 '대학생을 살려 내라! ' 하고 말이야. 종교는 그 시간에 저희들끼리 기도를 했고, 여의도에 서 대규모 집회를 가졌네, 그들은 마치 노아의 방주에 탄 자들처럼 종교를 저희들만이 갖는 특권인 듯 울고 불고 손바닥을 치며, 되지 도 않는 간증을 하고 연보 바구니를 돌렸네. 하느님에게 감사한다는 뜻으로 말일세, 그리스도가 그 시각에 나타난다면 어떤 생각을 했 을까? 대학생의 죽음의 현장에 나타날 것인가, 그들의 집단적인 이익의 현장에 나타날 것인가 생각을 해 보게," 그는 종이곽에 든 소주를 계속 음미하면서 마셨다. 그와의 대화가 조금 지루해졌다. 그가 할 말을 모두 내게 했기 때문에 화제가 빈 곤해졌기 때문이다. 어설픈 종교 이야기 같아서 무료해진 것 같았다. 나와 헤어진 후 어쩐 일인지 그는 무척 상냥해졌다. 종교의 무거 운 의무감에서부터 벗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역사 소설을 한 권 썼는데, 곧 출판될 예정이라고 했다. "출판 기념회 때 꼭 와 줘, 어쩌면 이것이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될는지 알 수 없네." "이 사람아, 마지막이라니. 자넨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 "아닐세." 그런지 며칠 후 그의 부인이 쥐약을 먹고 자살했다. 그가 쓴 책이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책 한 권을 쓰는 일보다도 경비원 노릇이 더 현실적으로 맞는다 ·고 생각한 아내의 비극이었다. 그의 부인은 처음부터 월급을 꼬박꼬박 가져다 주는 공무원이나 기술자 남편을 얻었어야 행복할 사람이었다. 돈이 되지 못하는 지식과 철학을 그녀는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해가 힘든 오케스트라나 클래식보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더 현실적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졌고 벽제 화장장 2번 화구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육신의 탈을 벗었다. 그녀가 죽자 두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아버진 뭐예요. 어머니를 죽게 하고, 가장이면 가장으로서의 책 임을 져야 할 게 아녜요." 큰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삿대질을 했다. 친구는 그 말에 아 무런 할 말을 못했다. "그래, 내 탓이다. " "참 편리한 사고 방식이네요." 둘째 아들이 비아냥거렸다. 아이들은 마침내 가출을 했다. 그 후 그는 매일 술로 보냈다. 그러던 그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표정은 무척 활기에 차 있었고, 목소리는 희망에 들떴다. "글을 써야겠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영혼의 글을 말이야. 잘 먹고 잘사는 그런 상업적인 글이 아니고, 진정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는 글을 써야겠어. 적어도 나는 그 고통을 체험했고, 또 아직까지 그 고통이 진행중이니까, 나는 그들의 심정을 잘 알 수가 있지." "좋은 생각이야."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해방돼 보자 는‥‥‥‥ 어쩌면 고통도 기쁨의 일종인지 모르네." "그렇지. 진정한 행복이란 고통 뒤에 오는 것이니까. 고민이 없는 사람이 행복이 무엇인지나 알겠나. 왕궁에서 태어난 왕자에겐 기쁨 도 없는 법일세"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척 기뻐했다. 옛날의 그로서 돌아가게 할 힘이란 내게 없었다. 그것은 그 자신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만 했다. "열심히 해 봐." "고맙네," "자네라면 할 수가 있네." 그런지 이틀 만에 교통 사고를 당한 것이다. 만취해 육교 밑으로 건너다 승용차에 치인 것이다. 내가 찾아갔을 때 그는 여의도 성모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 있 었다. 목뼈가 부러지고 전신 타박상에다 뇌신경이 손상을 입었던 것이다. "소생할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하얀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모 처럼만에 그의 세례명을 불렀다. "시몬 형제 ! " 그의 몸을 흔들었으나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는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뭔가 내게 말을 하려 했으나 입이 움직여 주지가 않 았다. 그 시각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가 쓰려던 소설의 다음 줄거리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무리 시와 소설이 큰 가치가 있다고 한들 그의 생명만큼 가치가 있을까. - 나는 내가 잘 아는 사내에게 청원을 해 보기로 했다. 사내는 오래 전 "내 슬픔의 현장"에서 나를 위로해줬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도 모른체 그저 프란체스코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내와 함께 찾아온 것이다. 사내가 내게 말했다. "형제여, 친구가 살아나길 소망하오?" " 예 ," "친구가 그걸 원할까요 ? " " 예 ." "그럼 가봅시다. " 나는 사내의 뒤를 따라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중환자실은 소독약 냄새로 코를 찌를 것만 같았다. 다섯 명의 중환자가 있었는데, 모 두가 교통 사고였다. 그들로부터 들려 오는 비명은 마치 단말마의 소리 같았다. 우리는 소독된 푸른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두 번째 침대에 누워 있는 친구에게 다가갔다. 사내가 친구 앞에 서서 잠시 기도를 했다. "주여 ! 이 불쌍한 영혼을 거두지 마옵소서. 이 형제는 아직까지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순간적인 강퍅한 마음으로 주의 마음을 상케 했지만, 선량하고 착한 사람이옵니다. 주여 ! " 그러자 친구가 눈을 뜨고 사내를 응시했다.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서, 뭔가 그에게 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내가 친구에게 말했다. "형제여,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옳다면 눈을 세 번 깜박거리시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친구는 사내의 이야기가 끝나자 세 번 눈을 깜박거렸다. 사내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 것 같았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눈을 한 번 깜박거리시오, 그건 형제의 자유요." 사내는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머리는 핏자국이 말라붙어서인지 꺼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형제여, 그대는 육신의 부활을 원하시오? 아니면 이 세상이 아직도 살 만한 가치가'있다고 생각하시오 ? " 친구는 그 말에 눈을 세 번 깜박거렸다. 아마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좋소, 형제에겐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또 살아오면 서 많은 빚을 졌으니까. 그 빚을 갚도록 하시오. 지금 그분께서 말 씀하셨소." 내가 사내에게 물었다. "친구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빚은 없는 걸로 알고 있소. 구멍가게 의 소주 외상 값도 모두 갚았소." 사내가 말했다. "그런 빚이 아니오, 형제에게는 자신의 지식을 이웃들에게 나눠 주지 않은 지식의 직무 유기요, 그것도 일종의 빚이 될 수가 있소. 그것은 가난한 지식인이 갖는 원초적인 오만이라고 할 수 있소. 내 말이 틀렸소, 형제 ?" 친구가 다시 세 번 눈을 깜박거렸다. "좋소. 형제는 다시 살아난다면 사람을 사랑하겠소?" 이번에도 친구는 세 번 눈을 깜박거렀다. "사람을 사랑하다니요. ? " 내가 묻자 사내가 말했다. "이 형제는 오직자신만을 사랑했던 것이오. 현실에 대한 불만이 그것이오. 불만이란 형제의 마음 속에 사랑이 결여돼 있을 때 일어 나는 것이오." 이때 친구의 얼굴에 화기가 돌아왔다. 까무잡잡하지만 그의 얼굴 에 평화스런 빛이 내보이기 시작했다. "형제여, 지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지식을 갖지 못한 형제들을 사 랑하시오, 그대가 갖는 현실적인 판단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오. 형 제는 지금부터 어린 아기가 되어야 하오.그렇게 할 수가 있겠소?" 친구는 역시 세 번 눈을 깜박거렸다. "또 한 가지의 죄가 있소. 그것은 옳은 일을 한다고 본인은 생 각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렇지 않았던 것이오. 그로 인해 형제의 가족에게 고통의 시간을 안겨 주었소. 그것을 깊이 생각할 수가 있 겠소? " 친구는 이번에도 세 번 눈을 깜박거렀다. 사내가 내게 이야기했다. "형제의 친구는 다시 살아날 것이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살리셨소. 물론 나는 그리스도는 아니오. 그리스도의 발가락에 낀 때만도 못한 인물이오, 그러나 그분의 위대한 능력과 사랑은 나 같 은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셨소. 시몬 형제는 그가 일찍이 밟았던 땅을 다시 밟을 것이오." 사내는 친구의 이마를 두 손으로 다정히 쓰다듬더니 성호를 그 었다. "성부와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그러자 침대 모서리에 움였던 그의 손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리고 그의 굳어 버렀던 목이 좌우로 흔들리고, 그의 굳게 닫혔던 입에서 음성이 새어나왔다. "갑갑해. 나를 풀어 줘." 나는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가 환자에게 돌변한 사태, 죽음 같 은 것이 오지 않았나 싶어 급히 달려왔다. 사내가 말했다. "이 형제는 살아났소. 지금 이 형제를 묶은 끈을 풀어 주시오." 간호사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친구가 말했다. "나를 풀어 주시오. 여기가 도대체 어디요? 통 기억이 없으 니‥‥‥‥ 간호사가 놀란 듯 급히 담당 의사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담당 의사를 비롯한 병원의 원로급 의사와 원무과 직원들이 모두 나타났다. 그리고 친구의 침대 둘레에 모여섰다. 모두가 이상한 일 이란 듯 놀란 표정들이었다. 사내가 다시 말했다. "자애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이 형제를 사망의 권세에서 살아나게 하셨소. 모두 축하해 주셔야 하오." 원장인 듯한 나이 든 의사가 성호를 그었다.가톨릭 신자였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는 환자에게 붕대를 감아 주었을 뿐, 아무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생명을 관찰하시는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의사이십니다. 알렐루야 ! " 간호사가 그의 결박된 두 손과 두 발을 풀어 주었다. 그는 꿈속 에서 깨어난 듯 기지개를 힘껏 켜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대에 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 둘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이상한 듯이 쳐다 보았다. 이때 스피커를 통해 기도문이 들려 왔다. 기도 시간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기도문에 맞춰 성호를 긋기도 했고, 바닥에 엎드려 이 놀랄 만한 기적 같은 사건에 환희에 차 몸을 떨기도 했다. 아들아, 네게 당부해 두겠다. 내가 이 세상에 파견된 것은 하느님의 사랑스런 아들들 모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사랑이신 아버지께서 진정으로 바라신 것은 자신이 무(無)에서 만들어 생명을 준 지상의 사랑스런 아들들은 단 한 명도 멸망하여 잃지 않고 모든 사람을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행복과 영광에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싫어하는 이를 억지로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는 것은 바라시지도 않으며 또 질 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왔다. 내가 이 세상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손을 내밀고 맞잡아 아버지의 타는 듯한 사랑의 극치를 전하기 위해 나는 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나는 놀랐다. 내가 내민 손은 허공에서 언제까지고 보답을 찾지 못한 채 차가웠다. 아무도 이 가난뱅이 목수 아들의 옹이투성이인 손에 눈을 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손을 내민 채 사랑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내가 내민 손은 병자를 고쳐 주고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하고 말 못 하는 이들 혀를 풀어 주며 나병 환자를 깨끗이 고쳐 주고 죽은 이를 살려 주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참 따뜻한 내 손을 깨닫지 못했다. 내민 내 손가락에 사람들은 왕자의 황금 반지를 끼우려고 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형제들은 마침내 내 손을 잡았다. 그리하여 그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다. 아멘. 친구는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사내 앞에서 그를 멀거니 쳐다보았 다. 그러다가 물었다. "꿈에서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병원 원장이 물었다. "꿈에서 이 사람을 보았다고요? " " 예 ." "이분이 누구인가요 ? " 친구가 대답했다. "가장 가난한 친구.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 능력을 주 는 분. 그리고 물질 대신 마음 속에 사랑과 평화를 담뿍 담아 절 망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는 분입니다. " "그분이 누굽니까 ? " 원장이 다시 물었다. "당신을 살려 준 분이 누구요? 이건 의학 지식을 모조리 무식의 소치로 돌려 버린 일대 사건이오. 이 사람은 누구요?" 친구가 말했다. "프란치스코. 우리들의 가장 가난한 친구입니다.꿈에 보았습니다. " 사람들이 사내의 주위에 둘러섰다. "선생이 프란치스코요 ? " 사내는 빙긋이 웃었다. "프란치스코란 영세명은 흔한데," 이젠 내가 말할 차례였다. "이분은 진짜 프란치스코입니다. " 그러나 누구의 입에서 먼저 나왔는지, "프란치스코 만세 ! 프란치스코 만세 ! " 하며 손을 흔들었다. 죽어가는 중환자실의 환자들이 일시에 일어났다. 죽음의 사막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은 생명의 오아시스를 찾았던 것이다. 그 오아시스 는 힘센 자, 권력있는 자, 돈있는 자, 오만한 자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힘없는 자, 보잘것없는 자, 약한 자, 그러나 사랑과 평 화가 마음 속에 충만한 프란치스코에게 나왔던 것이다.   에필로그   20여년전에 친구인 한 가톨릭 신부가 있었다.이 친구는 번역실력이 뛰어나 가톨릭 사전을 비롯해 여러권의 신앙서적을 번역했다.어느날 이 친구가 11세기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해 소설로 써보라고 했다.그는 프란치스코 회 소속 수사신부였던 것이다.그래서 망서리다가 옴니버스 형식을 빌어서 20여편의 단편을 썼다.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소설이다. 그 신부는 몇년후 선종(善終)을 했다.   [작가 약력]   1944년 서울 용산 출생 중앙대 문리대 국문학과 69년졸업 시와 시론 소설 당선으로 문단데뷰 한국문인협회회원 백두대간, 로만칼라, 소설 윤유일 등 30여권 소설집 발행   - 끝 -
16    [중편소설] 파묘(破墓) / 추옹 댓글:  조회:483  추천:1  2022-10-31
[중편소설] 파묘 (破墓)   ​추옹 ​      날카로운 바람이 밤을 할퀴고 지나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비릿한 갯내가 골네댁의 앙가슴을 때리곤 한다. 파도는 차가운 동짓달의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바위를 때리면서 부서졌다. 부서지는 파도의 비말(飛沫)은 은빛이다. 끝없이 밀려와서는 바위에 부딪히는 차도의 그 단순한 동작만이 이 밤의 유일한 움직임이다. 아마 한낮이었다면 얼음같이 투명한 하늘이 보이겠지만 산등성이에 비수같은 달이 걸린 이 밤은 별빛이 너무 깔끔하도록 반짝거린다. 수많은 사연들을 얼어붙게 하고 텅 빈 공간을 후벼파고 지나가는 갯바람은 그래서 더욱 차갑고 냉정한지도 모르겠다.      한달 전에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남편을 삼켜버린 바람도 이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골네댁은 남편의 출어준비를 끝내자 정신없이 잤었다.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은 방 안에 켜 놓은 호롱불을 일렁거리게 해서 벽에 걸린 허연 옷들이 섬칫함을 느끼게 했다. 남정네들의 목매달아 죽어버린 시체처럼 벽에 걸린 옷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거렸다. 미처 남편의 옷을 정리하지 못해서 집에서 막 입는 허드레 옷이 두어개 걸려 있었다.      호롱불 심지가 탁탁 튀는 불꽃에 베어나오는 냄새는 석유냄새다. 골네댁은 파도소리에 몸을 뒤채이면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매일 밤마다 머리를 헝클어뜨린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나곤 했다. 움푹 들어간 눈을 번득거리며 앙칼지게 쏘아보곤 했다. 돌아가실 때의 그 얼굴은 해골 그대로였다. 핏기 하나 없는 하얀 얼굴에 패인 주름살은 검은 수렁을 연상시켜 줬다. 그 얼굴에 번득이는 차가움은 죽음의 빛이다. 파란 눈동자에 어둠이 살짝 가린 촛점없는 눈동자는 외경스러움과 오싹한 섬칫함을 느끼게 해 준다. 정말 인간의 살갗이 뼈에 처발라진 느낌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요즈음은 거의 매일같이 뒤숭숭한 꿈자리에 시달렸다.      네 이년 풀어먹고 살아.      그러나 시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는 안했다. 그냥 파랗게 그녀만 노려 봤다. 그리고 자꾸 따라오라고 손짓만 햇다. 추운 밤이지만 온 몸에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엇다. 불길한 예감이 바르게 스쳐 왔다.      석동(石東)이는 앓고 있었다.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좀처럼 약을 써도 별 차도가 없었다. 생각다 못하여 오늘은 당골에 찾아가볼까 생각 중인데 기어히 꿈에 또 시어머니를 본 것이다. 당골은 오사리(烏沙里)에 있다고, 돌아가실 때 시어머니가 이야기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당골로 각시무당을 찾아가 보라고 했었다. 각시무당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대신 전수시킨 무당이었다.      남편이 죽은 날부터 석동이는 앓기 시작했다. 아니, 꼭 그날은 아니더라도 그 어스름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그보다 좀 앞서서 돌아가셨다. 한 보름 전쯤은 될 것이다. 읍네의 병원에서도 병명을 모른다고 했다. 벌써 한달 째 아팠으며 요즈음은 얼굴이며 몸 전체가 물에 불은 것처럼 띵띵 부어올랐다. 그 몸은 바다에서 건져낸 남편의 시체와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어제는 생각다 못하여 한의원에 갔더니 그냥 바람이라고 했다. 석동이에게 찬 수건을 갈아 주다가 깜빡 모로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읍네까지 30리 길을 걸어서 갔다왔으니까 피곤도 했으리라. 시어머니는 골네댁이 잘 때마다 용하게도 잊지않고 찾아 왔다.      골네댁은 잠을 다시 청하기가 무서웠다. 또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날 것 같았다. 겨울밤은 한걸음도 샐 것 같지 않게 지루했다. 그 꿈을 이제는 머릿속에 훤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꿈에서도 달빛이 유난히 파랬다.      시어머니는 골네댁을 새파랗게 노려보면서 자꾸 따라오라고 손짓만 했다. 시어머니의 하얀 치마에 달빛이 하얗게 안겼다. 앞서서 스적스적 걷다가는 자꾸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면서 골네댁을 재촉했다. 깊은 산 속인데도 그 산이 전혀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꿈 속에서도 그 산길은 많이 다녀 본 길 같았다. 다만 시어머니와 같이 가기가 싫어서 늘 머뭇머뭇하곤 했다.      시어머니는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가서는 반드시 뒤를 돌아보면서 골네댁을 기다렸고, 골네댁은 달빛에 비치는 시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온 머리카락이 전부 위로 솟는 것 같은 소름이 돋았다. 그 절벽 밑으로는 파도가 때리고 있었고 거센 파도소리에 묻혀서 실날 같은 아기의 울음 소리가 골네댁의 귀를 후벼 파면 골네댁은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 아기의 울음소리는 처음에는 들릴 듯 말 듯 들려오다가는 점점 더 커지면서 파도소리를 잡아먹고, 그리고 나면 그 절벽은 아기의 울음소리로 꽉 차 버렸다. 처음에는 뭣 모르고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이상스레 꿈 속에서도 그 뒤가 무서웠다. 그래서 그 뒤로는 아기의 실날같은 울음소리만 들려도 이내 잠에서 깨어나도록 습관이 들어 있었다.      눈만 감으면 아니, 눈을 떠도 꿈 속의 그 길은 머릿속에 훤했다. 처음에는 그 길이 낯선 길이 아닌지, 아니면 하도 그런 꿈을 꾸다보니 이제는 그 길이 낯선 길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어머니는 절벽 꼭대기에서 늘 바다로 난 늙고 큰 소나무가지를 붙들고 골네댁을 돌아보곤 했다. 그 나뭇가지에는 누가 쳐놓았는지는 모르지만 금줄이 처져 있었으며 꿈에서도 그 금줄에는 약발을 받아서 약이 바싹 오른 새빨간 고추가 촘촘히 매달려 있었다. 그 소나무 곁에는 바위가 하나 우뚝 서 있었다. 골네댁은 자꾸 손짓하는 시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안 따라가겠다고 도리질을 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한달 전이다. 어촌의 겨울은 다른 데보다도 차갑게 빨리 찾아 왔다. 죽마진(竹馬津)의 겨울은 읍네보다도 빠른 것 같았다.      남편은 새벽같이 묵호호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 묵호호를 탄 지는 5년이 된다. 배라고 해봤자 20톤 내외의 작은 목선에 발동기가 하나 달려 있었고 기껏 열 댓 명이 타고 가까운 바다에서 짬바리를 하는 배였다.      시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처음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골네댁은 그날 잠을 안잔 것을 후회했다. 만약에 꿈에 시어머니를 봤다면 남편이 바다에 나가는 것을 한사코 말렸으리라는 그런 후회였다. 아마 그날 꿈에 시어머니를 봤더라도 그냥 대수럽지 않게 지나쳤을런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남편이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때늦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런 후회가 밀려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그녀는 밤새도록 그물코를 꿰매고 있었다. 이 그물이 그녀의 네 식구 온 가족의 생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도 오래 되어서 한번씩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면 여기저기 그물코가 빠져서 찾아 꿰매는데도 정신이 없는 그물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그 그물을 만질 때마다 옛날에는 바다에 조금만 나가도 이 그물로 동해바다의 고기를 싹 쓸었는데 하면서 그 옛날을 아쉬워 하곤 했지만 골네댁은 그 말을 안 믿었다. 옛날에 고기를 많이 잡은 집 치고는 너무 가난했으니까.      바람은 좀 불었지만 날씨는 괜찮은 것 같았다.      별빛이 흩뿌려졌고 파도가 계속 같은 소리를 내면서 바위를 때렸다. 그녀는 밤새도록 남편의 출어준비를 서둘렀다. 장례를 치르고 이제 사우제도 끝닜고 좀 쉬었으면 싶기도 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도 빡빡한 살림이었다. 그런 포시러움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여름철에는 오징어를 쫓아다니기도 했지만 남편은 주로 가까운 바다에 나가서 짬바리를 했다. 짬바리란 잡어잡이였다. 새벽같이 나가서 그전날 처놓은 그물에 걸린 고기를 끌어 올리고 또다시 그물을 쳐두었다가 다음날 끌어 올리는 단순한 고기잡이 방식이다.      오징어 철은 지나갔다. 겨울인데, 명태 철인데도 아직 명태가 잡히지 않았다. 예년보다 좀 늦은 것 같았다. 그날은 오랫만에 바다에 나갔다. 덕산이나 울진 쪽으로 내려갔다 온다고 했다.      그물코도 꽤고 낙시도구도 챙기고 여러가지 준비를 하고 새벽같이 아침을 지었으므로 잠 잘 겨를이 없었다. 일기예보만 믿다보면 굶어죽기 꼭 알맞을 것이다. 별이 떴다는 것은 날씨가 좋다는 뜻이다.      새벽같이 남편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별똥 하나가 사선을 그리면서 산들성이로 떨어졌다. 그 산 너머에 읍네 공동묘지가 있다. 언제부터인가는 모르지만 저 산 너머에다 한 사람, 두 사람 장례를 치르다 보니 바로 그 산은 읍네사람들이나 죽마진 사람들이나 다 같이 죽은 사람을 내다버리는 공동묘지가 되었다.      골네댁은 또 누가 하나 죽나보다 하고 무심히 집으로 돌아 왔다. 석동이는 그냥 자고 있었다. 밥상을 부엌 부뚜막에 내다놓았다. 석동이를 안고 아랫목에 눕자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밤 새도록 출어준비를 했으니까. 누가 깨울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날이 밝기가 더딘 겨울이 부옇게 봉창을 두드리고도 몇 번을 자다가, 깨다가, 다시 자다가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뒤채이면서 자던 그녀의 귀에 음습한 바람이 때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후둑후둑 하고 비바람이 채양을 요란스럽게 때리고 있었다. 순간, 이상스레 골네댁은 가슴이 답답했다. 벌떡 일어났다.      파도가 친다고, 비가 온다고, 바다에 나간 사람이 다 죽겠는가마는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닐 것이다. 그녀는 방정맞은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했지만 갑갑함이 그리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때, 바로 옆집에 사는 묵호댁이 숨이 턱에 차게 뛰어들어 왔다.      "석둥이 자 애미야, 니 뭐하노? 퍼뜩 일나그라. 사람들이 축항에 몰켜서 야단 아이가....."      방문을 열자 눈이 아니라 철에 맞지 않은 빗줄기가 마루에도 볼창에도 들이쳤다. 그녀가 자고 있는 사이에 날씨가 변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묵호댁을 보자 그녀는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석동이를 들쳐업고 뛰쳐 나갔다. 맑은 날이면 까마득히 뚝 내려앉아 있을 수평선이 바로 눈높이까지 올라와서 금방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으르렁 대고 있었다. 방파제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음습한 죽음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스쳐갔다. 대부분 이맘 때 쯤이면 짬바리 나간 배들이 돌아 올 때다.      또 한 마을에 떼과부가 생길 것이라고, 입이 촉새같은 영동댁이 무심코 쫑알거렸다.      "미친 년, 무신 소리 하노?"      옆에서 묵호댁이 톡 쏘아줬지만 영동댁의 그 목소리가 다행히 작았었다. 파도가 심상치 않았고 본격적으로 으르렁대고 있었다. 점점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어허, 철에 맞지 않게 비바람은... 쯧쯧..."      "우리나라 일기예보는 좋은 것은 하나도 안 맞히고, 나쁜 것은 우예 그리 잘 맞히노..."      일기예보 탓이겠는가, 날씨가 나쁜 것이... 그러나 아무튼 어촌에서는 날씨가 사나와지면 일기예보가 욕을 먹었다.      파도는 그대로 방파제를 때리고 방파제 위로 물보라를 흩뿌렸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쉽게 멎을 비가 아니었다. 차가운 비바람도 더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몰아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래도 피할 줄 몰랐다. 후들후들 떨면서 성난 바다를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출어했던 배들은 이미 들어온 배들도 있었다. 날씨를 봐가며 나갔던 배들이었다. 작은 배들까지 출항증을 다 끊고 나가지는 않는다. 더구나 새벽같이 나가는 배는... 그리고 짬바리 하는 배들은 어디 멀리 나가지도 않는다. 부두에 묶여 있는 배들은 제멋대로 요동을 쳤다. 돌아온 사람이나 아직 안돌아온 어부들의 가족둘이나 그냥 바닷가에서 서성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아마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으리라.      어디 멀리 고기잡이 나간 배들이라면 울릉도 근해나 아니면 아랫쪽으로 내려가서 피할 수도 있겠지만 당일치기 배들은 여기 죽마진 이외에는 어디 배 댈만한 마땅한 데도 없었다. 몇몇 배들은 남쪽으로 내려갔을 거라고 추측도 했다. 나가고 들어 온 배를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었다.      어부의 아낙들은 이런 날씨 변덕으로 남편이 안돌아 오면 제발 다른 곳이라도 가서 살아만 있어 달라고 빌었고 또 어디가서 꼭 살아있으리라고 마지막 기대를 걸어 보기도 했다. 그것은 남편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일종의 자기 암시이기도 했고 자기 최면이기도 했다. 그 세월이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 그래서 체념해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나도 그런 구차한 집념에 매달리는 아낙네들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그녀들의 죄만은 아닐 것이다.      점을 치러 가서 설혹 죽었더라도 살아 있다는 말을 듣기를 바랐고, 죽었다는 점괘가 나오면 바로 그날이 제삿날이 되기도 했다. 이런 과부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폭풍우가 한번씩 때리고 지나가면 죽마진은 떼과부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그네들은 이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여기서 자라고 여기서 정들고 익숙해진 이 마을의 그 애잔한 매듭 때문에 감히 훌쩍 떨쳐 버리고 타관으로 나가는 것을 무서워 했다. 조상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노가리 철이면 노가리 배를 따서 말리고, 오징어 철이면 먹통을 터트려 말렸다. 그렇게 살아온 그네들의 생활은 변화도 없었고 이 마을에서 단 한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금방 죽는 줄로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변함없는 단순한 생활에 그들은 순종하고 살았다. 그네들에게 변화라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체념, 그리고 기다림, 시간, 세월... 이런 것들이 그녀들의 의미에 아주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골네댁도 시간이 지나면 체념하고 살겠지만 확인하기 전까지는 결코 체념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방파제마저도 사람들이 더이상 서서 서성거리기에는 불안했다.      이때, 멀리서 까만 점이 하나 나타났다. 흐린 날씨 탓에 그것이 무엇인지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저마다 마음 속으로는 우리 남편, 자식, 어버이기를 바랐다. 까만 점이 점점 더 커졌다. 이런 날 바다에 보이는 것이 배 이외에 달리 뭐가 또 있겠는가마는 가물가물 밀려갔다 밀려왔다 할 때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옆에서 들으면 침을 삼키는 목젖 소리도 들리겠지만 비가 워낙 심하게 왔으므로 그 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버렸다.      어업조합 청년들이 사람들을 방파제에서 몰아냈다. 아니, 방파제에서 사람들을 몰아낼 때가지 사람들이 기다리고 서 있지도 못했다. 파도는 이미 방파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저마다 불행들이 남들에게는 닥쳐와도 자기만은 피해 가 주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멀리서부터 파도에 휩쓸려서 다가오는 배가 누가 탄 배인지 저마다 조바심을 치고 있었다. 금방 옆으로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도 방파제를 향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다가오는 것인지 뒤로 밀려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배라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배는 분명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그 배가 무슨 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아침에 나간 묵호호였다. 골네댁은 그 배를 잘 안다. 어디 멀리 오징어나 명태잡이 하러 갈 때 이외에는 5년이나 그 배를 탔으므로 배의 갑판만 봐도 묵호호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배는 이미 배의 기능을 잃고 있었다. 다행히 방향을 잘 잡은 탓으로 파도에 밀려 오는 배였다.       배가 부두 가까히 들어오자 사람들은 웅성대면서 조바심을 쳤다. 그러나 배는 이미 어디에도 댈 수가 없었다. 내항에 묶인 배들마저도 위험했다. 그대로 밀리는 파도에 묵호호는 방파제 위로 솟는 듯 하더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뒤집혀졌다. 배에 탄 사람들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사람들은 그냥 서서 어, 어, 한 마디 하고는 침묵했다. 방파제로 나갈 수도 로프나 구명대를 던질 수도 없엇다. 골네댁은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버렸다. 아, 하고 새어 나오는 단절음마저도 삼켜 버렸다. 물에 빠진 사람들은 악착같이 방파제 끝으로 기어 오르려고 했지만 이미 파도에 밀려서 그들이 보는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해일은 바닷가에 면한 어촌의 집도 몇 채 삼켜 버렸다.      일주일 뒤에 세 구의 시체가 방파제에서 멀리 떨어진 넙적바위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그 중 하나가 남편의 시체였다. 물에 퉁퉁 불은 남편의 넝마같은 몸뚱어리였다. 벌써 시체도 없는 장사를 치른 뒤였다. 골네댁은 그때 울지 않았다. 넋두리도 안했다. 억장같은 가슴을 쥐어 뜯기만 했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옆에서 보다못하여 묵호댁이 석동이를 안고 갔다. 묵호댁은 아래, 윗집 사이로 오래도록 친하게 지냈었다.      죽은 사람들은 한꺼번에 장례를 치렀다. 빈 상여가 바닷가를 돌았다. 무덤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죽은 원혼이나마 위로해 주자고 빈 상여가 바닷가를 돌았었다.      골네댁은 사흘 뒤에야 석동이를 알아 봤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이놈만은 뱃놈을 만들지 말아야지... 골네댁은 석동이를 안고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런 다짐도 골네댁의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골네댁을 보고 눈빛이 달라졌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죽고 남편이 바로 눈 앞에서 죽고 줄초상이 났던 것이다.      전생에 무슨 죄를 졌는지 뾰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죄라면 남들처럼 가난한 데 시집와서 가난하게 산 죄밖에 없는 것 같았다. 골네댁은 악착같이 울지 않았다. 아니, 울음이 가슴 저편에서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눈물은 다음에 한가할 때 흘리자.      골네댁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석동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마음이 황황했으므오 슬픔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죽었을 때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의 장례를 다 치른 날 밤에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났다. 합동장례를 치를 때도 골네댁은 그냥 멍하니 누워 있었다.      사실 골네댁이 정신을 차린 것도 시어머니의 그 파란 눈빛과 따라오라는 손짓을 외면하고 아기의 울음소리에 귀를 막다가 정신이 들은 것이다. 그 동안 묵호댁이 석동이와 골네댁을 보살펴 줬다.      골네댁은 석동이의 얼굴에 물수건을 다시 갈아주고 파도소리를 들었다. 동짓달의 맵찬 바람이 파도를 들쑤석거리는지 파도소리가 높았다. 파도소리가 높은 걸 봐서 날씨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았지만 이제는 날씨 때문에 걱정할 건덕지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녀석이나 아프지 말고 잘 컸으면.....      골네댁은 잠 못 이루는 이런 밤은 아직 익숙하지가 않았으므로 여러가지로 생각이 복잡했다. 파도소리는 한낮의 그 파도소리보다는 너무 크게 울부짖었고 너무 크게 밤을 때리고 있었다. 밤의 파도소리는 밤새도록 수많은 이야기를 구시렁대면서 골네댁의 귓가를 스치는 것 같았다. 혼자 있는데 익숙해지지 않았으므로 잠이 안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골네댁은 시어머니를 생각해봤다. 생각해 보면 쭈뼛하고 소름이 끼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이 많으신 분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문 밖에 큰 것의 발자국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가끔 집안 사람들에게 말도 없이 나가서는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안 돌아 왔다. 죽마진에서는 시어머니를 오사리 할매라고도 했다. 오사리는 죽마진에서 높고 험한 두레재를 하나 넘어야 하는 바닷가의 마을이다. 시어머니는 하나뿐인 자식 끝식(末植)이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고 자신을 참고 살았다.      가끔 동네에서 풍랑이 치거나 남정네들이 안돌아오면 아낙네들은 그녀에게 물으러 오곤 했다. 그녀의 말은 틀림없었다. 그녀가 살아있다고 하면 살아있는 것이고 죽었다고 하면 틀림없이 죽은 것이다. 무당을 안 한지는 벌써 여러 해 되지만 아직도 그 뽑아내는 신통력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는 점을 치거나 굿을 해서 살지는 않는다.      하나뿐인 자식이 싫어했고 며느리가 악착같이 그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끝식이는 살림이 좀 어려워도 어머니가 점을 치거나 굿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녀도 며느리가 그것을 한사코 말리는 것을 그르다고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저는 결코 어머니의 신딸이 될 수 없어요. 다 알고 왔어요. 여기 시집오면 내림무당이 되고, 자식은 아들 하나만 낳고, 아기가 나면 자식은 빨리 죽고, 내리 몇 대째 외아들, 내림무당, 그리고 내리 과부가 된다면서요. 저는 그런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무당이 될 수 없어요. 어머니께서 자식을 위해서 버리셔야 해요. 그래야 저희집도 남들처럼 손가락질 안받고 살 수 있어요. 곧 아기가 태어나는데 아기만은 무당집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안받게 키우고 싶어요."      그러나 시어머니는 가끔씩 신이 내리면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혼자서 몸부림을 치면서 달랬다. 그때는 누구도 가까히 갈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그녀를 잡지 못했다. 허공을 응시하는 파란 눈동자에는 애원과 원망과 공포에 서린 두려움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 보는 사람이 오싹해졌다. 아무래도 신이 내리면 시어머니는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럴 때마다 자식이나 며느리가 좀 안됐기는 했지만 그것도 근년에는 일년에 불과 두어 번 정도로 뜸했다.      신이 내리면 시어머니는 밖으로 나갔다. 계절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추운지, 더운지... 주로 달밤이고 달빛이 그녀의 앞길을 인도해 준다.      오사리가지 가자면 상당히 먼 길이다. 두레재를 넘어야 했다. 대낮에 남정네도 그 고개를 넘는 것을 두려워 할 만큼 험하고 깊은 산이다. 태백산 줄기였다. 그 산에는 큰 것의 흔적이 가끔 나타나곤 했다. 큰 것이란 호랑이를 말한다. 산신령님을 그냥 호랑이라고 부르기가 송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랑이를 큰 것이라고 불렀다. 시어머니는 그 험한 두레재를 달밤에 혼자 넘어 간다. 보통 남정네들도 아침을 든든히 먹고 서너명이 떠들면서 대낮에 넘어가도 하루 걸음이 좋게 걸릴 만큼 멀고 험한 그 고개를 그녀는 하룻밤에 넘어 간다. 언제나 그녀는 스적스적 걷는데 그녀의 뒤에는 꼭 큰 것이 따라왔다. 큰 것이 안따라오면 뒤가 내둘려서 걷지를 못하지만 큰 것이 따라오면 마음이 든든했다.      그녀가 신이 내릴 때는 사흘이고 나흘이고 방 안에서 꼼짝 안하고 큰 것을 기다렸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눈을 파랗게 뜨고 눕거나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 때는 언제나 소복(素服)을 했다. 그 옷은 그녀의 유일한 나들이 옷으로 다른 것은 미처 준비를 못해도 그 흰 옷 두어 벌 정도는 언제라도 손 쉽게 입을 수 있도록 방에 항상 걸려 있었다. 골네댁은 그것 하나만은 정성으로 준비해 드렸다. 그것도 이제는 습관이고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시어머니가 그런 야행을 할 떼는 초승도 있었지만 대체로 보름 때쯤으로 달빛이 밝을 때였다. 그래서 골네댁은 초승이나 보름 전, 후로 시어머니가 눈치 안 채도록 길 떠나는 차비를 늘 해놓았다.      시어머니는 달빛이 마당에 비추고 그 빛이 방문을 비추는 시각에 벌떡 일어났다. 하얀 치마 저고리를 차려 입고 마음에 뭔가 딱 집히는 순간, 벌떡 일어나서 나가는 것이다. 안방의 며느리나 자식이 잠이 들었는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하긴 이맘 때면 깊은 밤중일 테니까.      달빛이 천중(天中)에 걸려 있을 때다.      그녀는 집을 한바퀴 휘둘러보고 가신(家神)들에게 발동하지 말라고 동서남북에다 발을 세번씩 굴러서 지끈지끈 눌러서 꼭꼭 다져놓고 사립문을 나섰다. 달빛이 교교하게 내리 깔렸다. 그녀가 사립문 밖을 나서면 어김없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달빛에 반사시키면서 큰 것이 버티고 앉아서 그녀를 기다렸다. 매년 그렇게 두어 번 갔다오는 행사인데도 이곳 죽마진 사람들의 눈에는 한 번도 큰 것이 눈에 띈 적이 없었다.      그녀가 스적스적 앞에서 걸으면 큰 것이 소리없이 뒤를 따랐다. 그녀는 천천히 걷는 것이지만 남들이 본다면 상당히 빠른 걸음일 것이다. 보폭이 넓고 가볍고 경쾌한 걸음이지만 늘 그렇게 걷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걸음걸이는 시어머니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걸음이니까. 그녀가 그렇게 걸을 때는 길가의 풀들이나 나뭇잎사귀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소리도 하나 안났다. 밤에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도 그녀의 의식 속에서 끊어졌다. 그녀의 귓가에는 아기의 울음소리와 요령(搖鈴) 소리만 줄기차게 들려 올 뿐이다.      달빛이 비단실처럼 감미롭게 그녀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그녀는 오사리 마을 뒤까지 왔다. 달빛에서도 오사리 마을이 조개껍질을 포개놓은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녀는 거기서 샛길로 빠져서 당골로 들어 갔다. 당골은 오사리 마을에서 깊은 산 속으로 뚫린 샛길로 들어 가면 바닷가에 면한 천연의 바위굴이다. 밖에서 보면 입구가 상당히 좁고 들어가기에 위험할 정도로 가파르지만 들어가 보면 보통 사랑방만큼 넓었다. 그녀는 그 암자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깊숙히 정면을 보면 정실몽주의 목각인형이 잘 모셔져 있고 그 옆에는 부채와 식칼, 신기, 거울, 장고, 북, 동고리, 수고, 재금, 방울, 요령, 명금 등이 제각기 있을 자리에 알맞게 놓여 있었고 북, 산통과 파란 장삼과 붉은 고깔 등 그 외의 옷들이 잘 개어져 있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시어머니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다. 바로 시어머니의 신딸인 각시무당이 당골을 지키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당골만 들어가면 저절로 신이 난다. 그녀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골네댁의 시할머니도 오사리에서 정실몽주님을 모셨다. 정실몽주란 이 오사리 마을을 지키는 서낭당 신이었다. 이 마을에 정실몽주님를 언제부터 모셨는지는 모르지만 풍어제를 지내거나 부녀자들이 자식을 바라 때는 여기 와서 빌었다.      정실몽주란 계약결혼에 희생되어 정실부인이 못된 젊은 새댁의 원혼이다.      이 마을에 대대로 행세하는 김진사가 있었다. 김진사는 자기대에 집안을 크게 일으켜서 부러운 것이 없었지만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꼭 하나 있었다. 김진사도 자손만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김진사도 이 집안에 양자로 들어 왔었다. 자식 복은 없었다. 김진사의 아들도 양자였다. 좀 떨어진 마을에서 집안 지체가 못하지만 참한 규수를 하나 데려왔다.      손주를 하나 얻은 다음에야 정식으로 며느리를 삼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남의 눈도 있고 해서 갖출 것은 다 갖추고 데려 왔다. 그러나 결혼한 지 3년이 되어도 손주를 볼 수가 없었다. 김진사는 급한 마음에 신체 건장하고 잘 생긴 하인을 밤에 몰래 며느리 방에 밀어 넣었다. 며느리는 남정네가 병약한 남편이 아닌 것을 알았다.      며느리는 그 날 밤에 이 절벽에 와서 목을 매 달았다.      길지 않은 그 세월에 구박인들 오죽 받았겠는가.      그때부터 이 마을에 염병이 돌았다. 그 하인은 도망가다가 급살을 맞아 죽었다. 그리고 김진사 집뿐만 아니라 온 마을을 싹 쓸었다. 그리고 고기도 한 마리 안 잡혔다. 나라에서 무당을 불러 점을 쳐보니 그 새댁의 원혼이 저주를 해서 그렇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 뒤로 그 새댁을 후히 장사지내 주고 그녀의 원혼을 모셨다. 그녀는 특히 아기에 대해서 시기와 질투가 심했다. 그녀에게 빌면 자식을 잘 점지해 주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조금만 소홀해도 그 보복은 철저했고 악착같았다.      누구의 입에선가는 모르지만 정실부인이 못된 것이 한이 되어서 그 한을 풀어 주자고 정실몽주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오사리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마을에서 풍어제를 지낼 때마다 시어머니는 그 굿을 도맡아서 했다. 그 모든 제기들과 모든 물건들에는 시어머니의 신기(神氣)가 그대로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을 볼 때마다 신이 뻗힌다. 촛불을 켤 필요가 없었다. 달빛이 암자 안의 정면에 그대로 내리 비쳤다. 그녀가 그것들을 볼 때마다 징소리가 들리고 요령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옷들을 입고 춤을 춘다. 요령을 흔들면 주문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또 배우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 주문이 입에 배어 있었다.         동방에 지국천왕(持國天王) 님하       남방에 광목천자천왕(廣目天子天王) 님하       북방산의 아 비사천왕(毘沙天王) 님하       다리러 대리러 로마하       도람다리러 다로링 디러이       내외예 황사목천왕(黃四目天王) 님하        배우려고 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 때부터 물려 받은 주문이다. 그녀가 추는 춤도 벌써 30여 년을 춘 춤이다.      그녀가 시어머니와 굿판을 한번씩 벌릴 때마다 오사리 남정네들은 모두들 넋을 잃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그 옛날 젊었을 때는 상당히 고혹적(蠱惑的)인 미모임을 쉽게 연상시켜 줬다.      그녀는 굿을 하면서 살아 왔다. 한번씩 굿을 벌리면 제물이 풍족했다. 생활이 어렵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그녀의 남편을 바다의 풍랑에 일찍 앗겼다.      이 집안에 시집와서 물려받은 것이 있다면 하나는 남편을 바다에 일찍 잃은 것이고 또 하나는 시어머니를 따라 정실몽주님을 모시면서 여러군데 각종 굿판을 따라 다니면서 각종 굿을 벌인 일이다.      그녀도 끝식이를 배고 남편이 풍랑으로 죽었다. 남겨 놓은 유산은 없었다. 오직 시어머니와 굿을 하고 점을 쳐서 살았다.      오사리댁이 끝식이를 뱃사람은 안 만들려고 했지만 하긴 이 마을에 그것 아니면 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돌이 많고 염분이 많은 박토여서 농사가 되지 않았다.      끝식이는 학교보다 바다를 더 좋아했다. 시어머니가 돌아 가시자 그녀는 시어머니를 대신해서 모든 굿을 다 치렀다. 그럴 때마다 자식은 집을 나가있을 때가 많았다. 끝식이는 징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몰려서 굿 구경하는 것을 싫어했다. 신이 들려서 춤을 출 때는 하얀 허벅지가 다 들어났고 굿을 구경하는 사내들은 탐욕의 눈으로 그녀를 위에서 아래까지 죽 훑어 내려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끝식이는 어머니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같은 착각을 했다. 엄마의 그 따스한 품 속은 자기 혼자서만 가져야 했다. 끝식이는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뺏긴 서러움에 집을 뛰쳐 나가곤 했다.      그녀는 자식을 학교에 잘 보내어서 읍사무소에 면서기를 시키는 것이 큰 꿈이었지만 자식은 한번씩 굿판이 벌어지면 집을 나갔다. 처음은 한두달 정도 집에 안 들어오더니 점점 집을 버리고 부두에 아무데서나 잔심부름을 해 주면서 살았다.      끝식이는 어머니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했고 기어이 배를 탓고 바다로 나갔다. 배를 타고 심부름도 해주고 견자꾸 그물 놓는 법도, 오끼야 보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하면서 바다에서 뼈가 굵어졌다. 끝식이는 결국 어머니의 의도를 배반하고 학교에 안 갔으므로 그래서 면서기가 될 수 없었다.      오사리댁은 처음에는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고 버티었다. 자식이 한 몫의 어부로 자라는 동안 그녀는 점점 늙고 외로와졌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주위의 이야기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끝식이가 어머니에게 무당을 버릴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끝식이는 죽마진의 '만조'(滿潮)에서 연화(連花)를 봤다. 만조는 술집이었다. 끝식이는 연화를 보자 아주 그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녀의 고향은 황지의 절골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끝식이와 살면서 골네댁이라고 불렸다. 그녀는 자기의 이야기는 안했지만 끝식이의 집안 내력은 다 알고 있었다.      술집은 바닷가가 바로 보이는 좀 높은 산기슭에 있었다. 연화와 같이 창문을 통하여 바다를 보면 어항의 많은 배에서 켜놓은 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한데 어울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는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았다. 삽쌀한 바람이 감미롭게 불어 왔다. 끝식이는 그런 분위기보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준 연화를 더 좋아했다.      끝식이는 오징어잡이를 하러 갔다오던 날 밤, 둘은 바닷가의 넓적바위 위에서 만났다. 그날 밤은 파도가 푹 갈아앉아 있어서 파도소리가 잔잔했고 보름달의 파란 달빛이 그녀의 얼굴에 곱게 부서졌다. 남정네는 그 유혹적인 분위기에 참지를 못했다. 서로는 거의 알몸으로 누워서 파도소리를 들었고 곱게 쓰다듬어 주는 달빛을 받았다.      그녀는 남정네의 가까히 다가오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막으면서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무당이라면서... ..."      "누가 그래."      "그것도 모를라구, 다 아는데, 사람들이... ..."      연화는 주모에게서 그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좀 께름칙한 대로 무당이 되면 어쪄랴마는 그러나 내림무당이 된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남편은 언제나 바다에서 일찍 죽었고 과부가 된다는 말이 무서웠다.      연화는 끝식이에게 시어머니가 풀어 먹고 사는 것을 버리라고 당부했다. 외아들 하나만 낳고 남자가 금방 죽어버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금찍했다. 끝식이의 집안은 죽마진에서는 이미 이력이 나 있는 무당집인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음, 그 집 며느리로 들어가면 내림무당이 되고, 과부 살이 있는지 남자가 아들 하나만 낳았다 하면 죽는 집안이야."      주모는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 했었다. 끝식이는 연화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연화는 왜 집을 나왔어?"      "그런 걸 알아서 뭘 해?"      "그냥 알고 싶어."      "시시한 이야기야. 가난이 죄고..... 아버지의 술주정, 어머니의 도망, 뭐 그런 거야. 매일 맞았으니까."      그녀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기운이 있는 한 가족들을 때렸다고 했다. 그 중에서 연화는 제일 맏딸이었으므로 도망간 어머니 몫까지 맞았다.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가난과 술주정 때문에 어머니가 도망가 버리자 의부는 술을 마시고 연화를 기절시키도록 때려 놓고 강간을 했다. 어느 날, 비가 몹시 퍼붓던 날 집을 뛰쳐 나왔다고 했다.      서로들 그런 시시한 이야기는 무드를 잡친다. 필요없는 이야기가 되겠다.      한 남정네와 한 여자는 아주 쉽게 요구와 순응을 동시에 했다. 그 사이사이에 높아지는 비음(鼻音)의 교성을 파도소리가 아주 익숙하게 감춰줬다.        자식은 오랫만에 오사리댁을 찾아갔다. 곧 며느리가 생길 것이란 이야기를 했고 무당을 버릴 수만 있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겠다고 했다. 오사리댁은 그녀의 외로움을 결국 자식과 며느리에게 의탁하기로 했다. 그러나 처음 수삼년은 미친 듯이 내리는 신기(神氣)를 스스로 달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큰 병을 앓았다. 거의 일주일을 아무 것도 못 먹고 열병에 시달렸다. 자꾸 뭔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허공을 응시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때는 눈이 하얗게 내린 겨울인데 도저히 방안에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가슴을 쥐어 뜯는 아픔이 끊임없이 몰려 왔다.       삭망을 지난 달빛이 내리 비치고 있었다. 그녀가 밖으로 뛰쳐나가보니 사립문 밖에서 큰 것이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것을 보자 그녀는 지금까지의 아픔이 말끔히 씻기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큰 것의 의도를 알아 차렸다. 그녀는 큰 것의 인도를 받으면서 당골로 밤길을 떠났다. 당골에 가서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사흘을 쓰러져 있었고, 그리고 다시 밤길을 큰 것의 인도를 받으면서 집으로 돌아와서 이틀을 더 누워 있다가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문득문득 신이 내리면 거의 사흘씩 먹지도 않고 잠도 안자고 소복을 한 채 큰 것을 기다렸다. 그것은 하나의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자식과 며느리는 그것을 눈치챘다. 눈이 온 새벽에 밖에 나가보면 큰 것의 바자국 앞에 앙증스런 시어머니의 고무신 자국이 찍혀 있었다. 결국 두 젊은 내외는 그것만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3년만에 석동이가 태어났고 지금 앓고 있는 석동이는 다섯살인 것이다. 시어머니는 신이 내리면 며느리를 앙칼지게 노려보면서 저주를 했다. 그때마다 시어머니의 저주 때문인지 골네댁은 머리가 쪼개지는 것처럼 아프고 열이 나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리고 저절로 신이 나서 춤이 나왔다. 춤을 출 때는 자신도 몰랐다. 정신없이 춤을 추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들었다. 골네댁의 의식 속에서 뭔가 자꾸 거부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이 들곤 했지만 그것이 뭔지는 구체적으로 의식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정신이 들면 그때 비로소 한숨을 쉬면서 그대로 며느리를 재우고 그 다음날 아침이 되면 골네댁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멍청하게 일어났다. 그러기를 일년에 두서너 번씩 했다.      그렇게 골네댁은 시어머니의 그 집념과 저주를 앙칼지게 억척으로 버티고 이겨냈던 것이다. 그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시어머니는 돌아가실 즈음에 유언처럼 헛소리를 했다.      "네 이년, 네가 안풀어먹고 살면 이 집안이 거덜이 난다. 그냥 집안 문 닫는 거야. 석동이나 애비를 생각해서라도 풀어먹고 살아야 해. 이 집안은 조상대대로 신이 내린 집안이야. 네가 고집 부리면 내가 갈 곳을 못 찾아가. 그때는 내가 네년을 꼭 데려 간다."      이렇게 골네댁을 저주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정신이 들면,      "얘 애미야, 우리집이 망하지 않으려면 자신은 없지만 내 말 명심해라. 우리 집에 신이 내린 것은 네 시증조모 때부터다. 본래 우리 집은 자손이 귀해서 네 시증조모가 아기를 얻을 때, 정실몽주님께 백일 치성을 드렸지. 정실몽주님은 어리석은 우리들의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셨다. 풍어제도 거기서 지냈고, 아기를 얻은 것도 거기서지. 네 시증조모가 백일기도만에 아기를 얻었는데 바로 그 아기가 네 시조부가 된다. 그리고 두번째 아기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죽었다. 아무 병도 없이 갑자기 죽었지. 그러니까 시증조모가 정신을 놓았었지. 사람들이 네 시증조모를 보고 곧 죽을 거라고 했었지. 자식 죽고, 죽은 자식이 애미 잡아 간다고 야단이었지. 아기가 죽고 닷새가 지나도 사람들이 아기를 내다묻지 못했지. 그 노할머니가 꼭 안고 놇아주지를 않았지. 그러더니 어느날 갑자기 노할머니께서 벌떡 일어나더니 아기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지. 다 죽게 된 당신이..... 사람들이 무서워서 막지를 못했지. 시증조모는 아기를 안고 당골로 갔지. 그 아기를 정실몽주 앞에 눕히고는 예, 그저 바칩니다. 하나면 됐는데 그저 어리석은 마음에 욕심이 과해서..... 이제 이 아기를 바치니 노여움을 푸시고 그저 우리 집안 대대로 자자손손 번창하게 해 주시옵고,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그때부터 당신에게 신이 내렸지. 그 뒤로 아기는 바닷가로 난 소나무 밑둥에다 묻고 그 소나무에 금줄을 치고 내리 당골에서 살았지. 정실몽주 모시고 점도 하고 굿도 하면서. 우리집은 그때부터 정실몽주님이 돌보아 주신단다. 너도 석동이를 뱄을 때 꿈을 꾸었지. 우리 집안은 여자들만 거의 비슷한 태몽을 꾼단다. 시할머니도 그랬고 또 나도..... 그것이 다 정실몽주님이 돌보아 주신다는 증거다."      사실 그랬다. 골네댁은 동쪽으로 난 소나무 옆의 큰 돌을 붙잡고 그 돌 주위를 빙빙 도는 꿈을 꿨었다. 그것이 하도 이상해서 시어머니에게 물어보니 태몽이라고 해서 아기 이름을 석동(石東)이라고 지었던 것이다.      시어머니는 가래가 끓는 목소리를 억지로 열면서 다음 말을 이었다.      "지금 이야기하는 방법은 아주 위험한 방법이다. 그러나 너나 애비가 굳이 정실몽주님을 거슬리니 안할 이야기다만 한다. 내가 한이 많이 죽으면 귀신말명이 될 것이니 어디 제 길을 찾아갈지 모르겠다. 무당 죽은 귀신은 사귀나 악귀가 된다고 했으니 잘 달래어서 뒤웅박 속에 가두고 혹시 치성을 잘 들여 보아라. 귀신을 살살 달랠 때는 동쪽으로 난 소나무 가지나 복숭아나무 가지를 갖고 달래도록 하여라. 그리고 바다에서 잡은 제일 첫 새벽에 잡은 고기를 정갈하게 해서 치성을 들여 보아라. 그 동안 내가 정실몽주님을 잘 모셨는데 이제 이 집안이 큰일 났구나. 그러잖아도 걱정이 되어서 각시무당 하난 신딸로 들여 앉혀 놓긴 했다만 나만큼 정실몽주님을 잘 위할런지..... 이 집안이....."      그러더니 시어머니는 얼마 뒤에 다시 눈이 새파랗게 돌아가면서 부릅 뜬 눈으로 다시 골네댁을 노려 보았다.      "네 이년, 풀어먹고 살아라. 안그러면 이 집안 내가 가만 둘 줄 아느냐. 나보다도 정실몽주님의 노여움이 그냥 있을 줄 아느냐?"      말을 했다면 분명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부릅 뜬 눈으로 뭐라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릅 뜬 눈으로 사흘을 버티더니 결국 눈도 못 감고 그 새파란 눈빛으로 돌아 가셨다.      시어머니의 그 눈을 아무리 감기려고 해도 결국 감기지 못했다. 아무리 눈을 쓸어도 감겨지지가 않았다. 그때 끼치는 귀기와 전율..... 그때의 그런 음습한 분위기에도 달빛은 왜 그리도 파랬던지..... 염습을 할 때도 시어머니의 그 눈빛이 무서워서 한지로 얼굴을 가리고 염(殮)을 했었다. 그렇게 해서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도 끝내고 열흘만에 남편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으로 죽은 것이다.      골네댁은 생각다 못하여 마지막으로 당골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조상대대로 내려온 그 뿌리의 질김 때문에 골네댁은 몸서리를 쳤다. 한잠도 못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석동이를 묵호댁에게 맡기고 집을 나섰다. 석동이를 업고 가고 싶기도 했지만 그 멀고 험한 길을 더구나 이 추위에 혹시 데리고 갔다가 병이 덧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시어머니가 가르쳐 준 오사리 마을은 사실 멀었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도 저녁 늦게야 도착했다. 생각해 보면 골네댁은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그렇게도 그악스레 시어머니의 신딸 되기를 거부했지만 그러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안이 시어머니 저주대로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가끔 시어머니가 신이 내려서 몸부림을 칠 때를 보고 그녀는 몸서리를 쳤었었다.      이제는 후회해도 너무 늦었고 또 새삼스레 후회한다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오고 죽은 남편이 다시 살아 올 리도 없을 것이다.      저녁 늦게 오사리 마을이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뒷산에 도착했다. 이상하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먹었는데도 배고픈 줄을 모르겠다. 마을이 보이는 뒷산으로 뚫린 길을 따라서 또 한참을 걸었다. 달빛이 예리하도록 파랗게 온 산에 꽂혔다.      순간, 골네댁은 아, 하고 무서움에 온 몸을 떨었다. 바로 그 길이었다. 꿈에 본..... 시어머니가 꿈 속에서 따라오라고 재촉했던 그 길이 달빛을 받고 구비구비 뻗혀 있었다.      그리고 파란 달빛 아래서 바로 저 앞에서 소복을 하고 돌아가실 때, 눈을 못감고 그 외경스런 눈빛으로 흘겨보면서 시어머니가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소리도 안하고 스적스적 걷다가는 자꾸 뒤를 보면서 손짓을 했다. 거리는 더도 덜도 아닌 꼭 고만한 거리였다.      골네댁은 순간, 제 정신이 아니었다. 소름이 쭉 돋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자기도 모르게 끌려 갔다. 마음 속으로는 안 따라가려고 했지만 몸이 마음처럼 되지가 않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온 산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바닷가에는 소나무가 동쪽으로 뻗어 있었고 그 소나무 가지에는 금줄이 쳐져 있었고 약발을 받아서 새빨간 고추가 촘촘히 매달려 있었다. 그 소나무 옆에는 석동이를 뱄을 때 봤던 바위가 우뚝 서 있었다. 골네댁은 마음 저편으로는 거부를 하면서도 시어머니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시어머니를 따라서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덩골 입구의 맞은 편에 정실몽주의 목각인형이 모셔져 있고 그 옆에 시어머니가 앉아서 그 독이 오른 파란 눈으로 골네댁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이년, 내가 너 때문에 찾아갈 데를 못찾아가고 있어. 오늘 네가 네 발로 잘 찾아 왔다. 어쩔 테냐? 풀어먹고 살면서 석동이를 살릴 테냐? 아니면 집안 문을 닫을 테냐?"      시어머니는 쇠된 목소리로 다그쳤다. 골네댁은 그때,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석동이 생각도 안났고, 그대로 도리질만 쳤지만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의 몸은 저절로 춤을 추고 있었다. 징소리, 북소리, 요령소리 이 모든 소리가 그녀의 귀에 멍멍하도록 꽉 찼다. 시어머니는 점점 더 빠르게 요령을 흔들면서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골네댁은 정수리에 예리한 빛살이 꿰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고, 머릿속이 갑자기 밝아졌고, 그 밝음 저 밑바닥에 거부의 조고마한 그림자가 남아있는 것을 의식했지만 그러나 머리는 아프지 않았고, 자꾸 이러면 안된다는 의식은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춤을 추면서도 시어머니 앞에서 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 줄곧 떠올렸다. 그래서 그녀는 그대로 춤을 추면서 암자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고 그 침묵의 공간은 이윽고 파도소리가 들어 찼다.      암자 밖은 큰 것이 버티고 앉아 있었다. 파란 달빛의 큰 것의 눈동자에 반사됐다. 골네댁은 큰 것을 봐도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푸근했다.      그녀가 돌아가는 길에 큰 것이 뒤따라 왔다. 큰 것은 꼭 알맞은 거리를 두고 소리없이 따라왔다. 골네댁은 자꾸만 걷다가는 뒤를 돌아보곤 했다. 큰 것이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걸었다. 큰 것이 따라오니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샛별이 서산에 걸려있는 새벽에 골네댁은 집으로 돌아 왔다. 사립문이 보이는 집 앞에서 골네댁은 비로소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큰 것은 이미 없어졌다. 골네댁은 기다시피 방으로 들어와서 누웠다. 이내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헛소리를 했다.      "빨리 뒤웅박 갖고 와. 제까짓 것이 나를 누를라고 그래,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묵호댁은 안고 있는 석동이를 골네댁의 품에 안겨주고 뒤웅박과 근래에 잡은 명태를 가져왔다. 촌에서 뒤웅박은 꼭 필요했다. 봄에 심어서 가을에 꼭지를 따고 속을 파내어서 그 안에다 귀중한 물건을 넣어두기도 했고, 아니면 반으로 쪼개어서 속을 다 파내고 허드레 바가지로 쓰기도 했다.      묵호댁은 건너방에 상을 차렸다. 아직 시어머니의 상청을 치우지 않았다. 뒤웅박을 상 위에 놓고 그른 명태와 몇가지 음식을 진설하고 정화수 한 그릇을 떠다놓고 빌었다.      안방에서는 골네댁이 끊임없이 구시렁대고 있었다.      "오사리 할매, 제발 이것 잡수시고 우리 석동애미와 석동이 보살펴서..... 부디 노여움 푸시고....."      묵호댁은 하루종일 빌었다. 그러나 골네댁은 묵호댁의 비는 소리를 계속 구시렁거리고 따라하면서 빙정댔다. 골네댁은 계속 헛소리를 하면서 묵호댁이 건너방에서 비는 말을 안방에서도 똑같이 그 말을 받아서 빈정댔다.      대청마루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지만 묵호댁은 그 소리를 듣자 소름이 끼쳤다. 묵호댁은 그 순간, 자기 집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골네댁은 미친 년, 하면서 석동이를 안고 건너방으로 비틀거리며 건너가더니 그 상을 발길로 차서 엎어 버렸다. 그 바람에 석동이가 그악스레 울기 시작했다. 석동이의 울음소리가 송곳으로 귀를 후벼파는 것 같았다.      "... ... 또, ... ..., 그놈의 울음소리가... ..."      골네댁은 석동이의 목을 눌러 죽여 버렸다. 울음소리가 그치자 골네댁은 석동이를 안고 그냥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틀 뒤에 묵호댁이 다시 와보니 골네댁은 그냥 자고 있었다. 묵호댁이 조심스레 흔들어 깨우니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지 묵호댁을 똑바로 쳐다봤다. 비로소 골네댁은 시어머니의 귀신말명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골네댁이 정신을 차리고 석동이를 찾았을 때는 이미 석동이는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그 뜨겁던 열도 식었다.      "... ..., 내 애기, 애기가, 석동아... ..."      석동이가 죽은 것을 본 순간, 골네댁은 누구에겐가 모르게 저주를 하면서 방문을 박차고 뛰쳐 나갔다. 석동이를 가슴에 안은 채 집 뒤꼍으로 가서 낫을 번쩍 치켜 들고 사립문 밖으로 내달렸다. 묵호댁은 달빛이 낫에 반사되는 것을 본 순간, 그냥 그 자리에 누질러 앉아 버렸다. 골네댁은 공동묘지로 난 바닷가의 가파른 외길로 뛰쳐 나갔다. 그 길은 높고 험한 절벽을 끼고 있었다. 골네댁은 위태위태하게 그 길로 치달렸다.      석동아- 석동아-      달빛이 절벽을 내리치고 있었다. 동짓달의 바닷바람이 맵차게 골네댁을 때렸지만 그녀는 의식하지 못했다.      드디어 시어머니의 무덤까지 왔다.      "이년, 뮈라고, 집안 문을 닫는다고... ... 그래 닫아라, 이제는 더 망할 것도 덜 망할 것도 없다. 네년이 눈을 못 감는다고... ..., 그래, 네년의 그 눈을 이걸로 감겨 줄께... ..."      골네댁은 낫으로 무덤을 자꾸 팠다. 처음 봉분 위의 흙은 얼어서 굳어 있었지만 그 위를 벗겨 내자 이제 무덤 쓴 지 두 달이 채 안되므로 아직 얼지 않은 부드러운 흙들이 쉽게 부서졌다. 골네댁은 석동이를 무덤 곁에 내려 놓고 무덤을 계속 파헤쳤다. 손등에서 피가 나도 아픈 줄 몰랐다. 관이 나왔다. 바닷바람이 골네댁의 머리를 더욱 헝클어 트렸다. 달빛에 비치는 골네댁의 얼굴에는 귀기(鬼氣)가 서렸다.      관의 뚜껑을 낫으로 찍었다. 둔중한 소리가 공중을 울렸다. 관의 뚜껑을 깨자 수의를 입은 시신이 나왔다. 머리를 염한 베조각이 잘 안풀어지자 낫으로 끊었다. 머리를 받쳐 들자 뼛소리가 났다.      죽을 때도 감지못한 그 눈은 골네댁을 파랗게 노려보고 싸늘하게 비웃고 있었다.      "... ... ..."      골네댁은 그냥 쓰러졌다. 그 순간, 아기의 울음소리가 온 산을 뒤흔들었고, 그 사이사이를 차가운 파도소리가 악착같이 채워주고 있었다.   - 끝 -  
15    [단편소설] 우크라이나의 봄 / 노인기 댓글:  조회:462  추천:1  2022-10-31
  [단편소설] 우크라이나의 봄 노인기        좁은 포신을 뚫고 나온 탄알은 휘익~ 어둠을 가른다. 금속과 화염(火焰)이 결합하여 내는 소리는 살을 찢는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았다. 마치 고요한 밤하늘의 고통처럼 뇌 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어둠은 일순간에 분주한 대기를 고요하게 하지만 전운의 기운은 이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고도 남았다.      대다수 외신은 이번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거라 전망했다. 우려와는 달리 전쟁의 양상은 다행히 러시아에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전쟁의 중심은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다. 지금쯤 블라디미르는 자신의 무모한 결단을 후회하고 있을까? 이렇게 장기화 될 줄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키예프까지는 약 2주 정도면 충분할 거라 여겼다. 늦어도 4월 안에 모든 것이 끝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길고 짧은 것은 재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 전쟁 또한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다.      러시아 해군의 자랑 모스크바 군함은 이렇다 할 전과도 없이 흑해에서 미사일 두 방에 격침되어 자국에 적지 않은 실망과 당황을 안겼다. 정확히 중앙을 가격당한 함선은 검은 연기를 하늘 높이 뿜어 올리며 위태롭게 운행하다 그만 좌측으로 기우뚱하더니 결국 흔적도 없이 바다에 삼키운바 되었다.      이외에도 우크라군은 용감하게 러시아의 중요 시설들을 불태웠으며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해 나갔다.      그렇다고 모든 곳에서 선방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곳은 러시아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우크라 시민들을 학살에 가깝게 살육했다는 보도도 전해진다. 독재자의 야욕으로 무고한 시민들만 이유와 원인도 모른 채 처참하게 죽어간다.      푸틴은 우크라가 예상외로 선전하고 그와 더불어 세계의 여론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흐르고 있는 것에 초조함을 느껴서일까? 핵 카드를 만지작 만지작하는 것 같다.      2022년 2월 겨울이 끝나갈 무렵 시작된 전쟁은 꽃피는 봄을 지나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초여름이 다되도록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는 앞다투어 우크라의 소식을 톱 뉴스로 다루었다.      우크라 대통령은 비장한 어조로 결사 항전의 뜻을 밝히고 시민들을 독려했다. 그의 표정과 말에는 과거 그가 코미디언으로 티비에서 사람들을 웃기며 즐겁게 해주었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은 듯 도리어 결연함이 넘쳐나는 것에 놀라는 눈치다.      한때 사람들은 코미디언 출신이 무슨 정치를 한다고 그래 하며 속으로 비아냥댔지만 막상 위기가 닥치자 그에 대한 편견은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알아차리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도 그는 격전지에서 막 돌아온 사람처럼 짧은 머리와 수염을 그대로 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티비 앞에 섰다. 고통과 두려움 가운데 놓인 시민들을 독려하고 세계를 향해 도움의 손길도 잊지 않았다. 강력하고 신속한 무기들을 지원해줄 것과 난리 통에 어디서 식량과 의료 물품을 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자원과 물질의 도움을 강력하게 촉구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뻐꾹뻐꾹 뻐꾸기 울음소리 대신 총성이, 아카시아 향긋한 꽃 냄새 대신 자욱한 화약 연기만이 온산을 진동했다.      우크라이나는 봄을 잊은 지 오래다.      오늘도 돈바스 지역과 세베로도네츠크가 러시아에 포위돼 힘겹게 항전을 이어가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살랑살랑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어머니의 품 속처럼 포근했다. 생명의 바람이었다. 대지는 변함없이 움을 돋우고 나뭇가지는 새싹을 틔운다. 고통이다. 아니, 고통스럽다. 여러 사람에게 기쁨과 화사함을 안겨줄 수도 있었는데 하지만 이번 계절은 모든 것을 비워야 했다.      물결 위에 부서지는 찬란한 햇빛도 바퀴 자국 선명한 아스팔트 옆 돌틈의 노란 민들레, 연약함은 오히려 연민을 자극했다. 그러나 연민은 더이상 아름다움으로 자리하지 못했다. 다만 거센 바람은 북으로 러시아로 모든 것을 되돌려 세우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리아는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둔 이십대 초반의 여성으로 키예프에서 약 400킬로 떨어진 조그마한 농촌을 고향으로 두었다. 오늘의 주인공이다.      눈은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듯 크고 색깔은 푸른 빛을 띠기도 하고 그렇다고 완전 푸른빛은 또 아닌 바라보고 있으면 신기하게 빨려드는 것 같다. 왠지 그런 마리아의 눈을 빠져나오기란 힘들 것 같았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 풍성한 머리칼은 짙은 갈색이지만 햇빛을 만나면 금발에 가까웠다. 특히 우크라 사람들에게 드문 갈매기 눈썹은 거짓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그녀의 입술 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위로 오빠 다섯을 두고 있었는데 한결같이 거칠었다.      큰 오빠 알렉세이만 마리아를 위할 뿐 다른 오빠들은 그녀를 남동생 대하듯 했다. 태생 자체는 연약하였으나 고향의 거친 산세와 더 거친 오빠들 틈에서 성장하다 보니 늘씬한 키와 순박한 생김새와는 많이 다른 마리아를 사람들은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마리아의 어머니는 키예프 출신으로 성장하면서 비교적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뭇 남성들의 마음을 애타게 하는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심성이 고운 사람으로 지금까지 남편이나 부모님의 속을 단 한 번도 썩힌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키이우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름 없는 시골 청년을 만나 결혼까지 이르렀는지 참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연은 이러했다. 마리아의 아빠는 전형적인 우크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그래도 공부는 곧잘 했다. 어느 나라든 시골은 할 일이 많다. 아니, 끝이 없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마리아의 아버지는 어린 나인데도 시골에서 농부로 평생을 농사나 지으며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번은 학교에서 받아온 성적표를 손에 쥐고 용기를 내어 아버지를 면담했다. 아버지 또한 아들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뭔가 비장함을 느꼈는지 어른을 대하듯 마주 앉았다.      부자는 이렇게 냉냉한 공기를 흩뿌리며 앉아있는데 대화의 절반은 침묵이 차지했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잠시 후 “음~” 하며 신음하듯 내뱉었다.      “네 뜻이 정녕 그러하면 하는 수 없지.” 아버지는 아들의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러웠고 아들 또한 아버지의 당혹한 표정이 부담스러워 애써 얼굴을 돌렸다.      마리아의 아버지는 비록 시골에서 성장했지만 보다 큰 도시 생활을 꿈꿔왔었다.      성적표를 받아들고 자신의 아버지를 찾은 이유는 중세건축에 관심이 높아 중세건축을 전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학을 키이우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날 아버지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들의 견고한 내면을 발견했다. 그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고 비록 늦은 감이 들긴 하지만 아버지 자신에게도 의미를 부여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결심하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버지는 곧바로 키예프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말로만 듣던 키이우를 찾은 것은 가로수 잎이 스산하게 떨어질 무렵의 늦가을이었다. 쌓인 낙엽과 앙상한 나뭇가지만 봤을 때 계절은 마치 초겨울 같았다. 러시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베리아의 찬 공기를 그대로 키예프 상공에 뿌려 놓은 것 같이 손등은 시렵고 발걸음은 종종거렸다. 푸르렀던 가로수는 앙상해지고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다. 마른 가지는 햇살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아들은 그런 햇살을 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막연히 꿈꾸던 도시의 태양을 그렇게 한없이 올려다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아버지가 흔들어 깨우듯 자신을 흔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자는 모든 것이 낮선 거리를 약속이나 한 듯이 바삐 움직였다.      내년 봄이면 아들이 진학할 대학을 우선하여 들렀다. 정문에 들어서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진으로만 보던 곳이 아닌가. 벅차기는 아버지도 매한가지다. 한마디로 감개무량, 가슴을 쓸어내리고 가슴을 부풀리고 또 쓸어내리기를 반복했다.      “여기냐?”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렸다.      “네.”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는지 대답 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의 동행까지는 바라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옆에 떡 버티고 있으니 자신감이 충만했다. 캠퍼스를 만끽하듯 천천히 걸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나눈 적이 없는 대화들을 나누었다.      바로크 시대의 건축양식을 따라 지어진 위풍당당한 건물들이 한두 채도 아닌 여러 채가 눈에 띄었다. 화려하면서 복잡한 무늬는 마치 고도의 정밀 기계로 깎아 만든 것처럼 정교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미 오래전 17세기 무렵 한창 유행했던 건축기법이라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부 역시 현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넓은 벽면은 명화 한점 걸려있지 않았어도 건축 당시 새겨진 문양으로도 훌륭했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이토록 조화로울 수 있단 말인가?      언제 누가 설계하고 건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무슨 건물인지 알 턱이 없는 아버지는 연신 아들에게 건물의 용도를 묻는다. 그러다 넓은 잔디밭이 나오고 왠지 학교와 연관이 깊을 것만 같은 화강석 받침의 한 흉상이 보였다.      “저 흉상은?”      “학교 설립자입니다.”      돌비 가운데 기록된 설립자의 약력을 소리 없이 읽어내려갔다.      “참 훌륭한 분이구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또 말은 하지 않았어도 아들이 키이우에 다녀간 일도 없는 데 언제 대학의 정보들은 세세하게 알았을까? 간절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대화만큼이나 뜨거웠던 가슴은 온도 차가 크지 않았다.      캠퍼스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도 아들도 모두 대학생이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두 사람은 그 여세를 몰아 아메리카에서 막 건너온 맥도날드 가게로 향했다.      아들은 마지막으로 햄버거를 언제 먹었는지 기억해 내지 못했다.      발길이 닫는 대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가게를 들어서긴 했는데 곧 후회했다.      알 수 없는 메뉴들로 인해 주문부터 난관이었다.      빨간 모자를 살포시 눌러쓴 앳된 아르바이트생은 주문을 위해 몇 마디 건넸으나 두 사람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친절한 그녀의 도움으로 주위 사람들의 낮 뜨거운 시선은 다행히 피할 수 있었다.      부자의 모습은 잘 갖춰 입었어도 왠지 어색한 차림은 어쩌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그만한 것이 또 있을까?      그렇게 마리아의 아버지는 꿈에 그리던 대학으로 진학하고 1년을 정신없이 보낸 다음 2학년으로 진학했다.      봄기운이 완연하려면 적어도 한 달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두 손은 번갈아 가며 호주머니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큼지막한 가방은 어깨에 메고 왼쪽 옆구리에 책 두 권은 들고 도서관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데 맞은 편에 긴 머리칼의 여학생 둘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무심코 지나가는데 왠지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볼까? 망설이다 결국 돌아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그에게 도서관은 수업 다음으로 중요하여 입출시간이 비교적 일정했다. 들쭉날쭉 불규칙한 패턴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2주일하고 5일이 지났다.      손끝에 전해지는 솔솔 부는 바람은 어제와는 확실히 달랐다. 따스함이 묻어났다.       ‘오! 드디어 봄이 온 것인가.’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고 그것은 일 년 중 특별히 봄에만 부여된 시간 같았다. 꽃은 보이지 않는데 향긋한 꽃내음이 느껴졌고 움이 싹을 틔우지 않았어도 파릇한 풀 내음을 내 품는 것 같았다. 뇌 속은 이미 다른 수 천개의 미립자를 끌어다가 오버랩하여 마치 현실로 인식하는 듯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짧은 21년의 삶 가운데 처음 경험해보는 것으로 지금 자신의 상태가 꿈인지 생시인지 본인도 잘 분간하지 못했다.      수려한 산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한 번도 나무와 숲과 자연을 생각해보지 않았고 또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도 고향의 친구들도 멀리 있다.      어제까지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졌다면 오늘은 모든 것이 날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다.      어머니의 품 속을 떠나 처음 느껴보는 행복, 풀밭 같은 포근한 바람은 그리움에 지친 몸과 마음을 그대로 받아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상황은 또 달랐다. 몸의 지체 중 발끝 말초신경은 다른 곳에 비해 지극히 현실적이다. 저릿저릿했다. 비로소 본연으로 돌아섰다. 순간, 이곳저곳 통증이 몰려왔다. 누가 말했던가. ‘아프니까 청춘!’ 무심코 피식 웃으며 지나친다. 물론 육신의 아픔을 두고 한 말은 아닐 테지만.      이때, “저기요?” 어디선가 누구를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러나 화답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여보세요?” 조금 더 선명해진 것 같다.      오른쪽으로 휙 고개를 돌려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누군가 그의 가방을 잡아끌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얼굴로 짓은 갈색의 긴 머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순간, 어리둥절하여 정신을 못 차리는 남학생을 향해      “전에 당신의 아버지와 함께 맥도날드에서 처음 봤어요.”      그랬다. 그때 어찌할 줄을 모르고 당황해할 때 친절을 베푼 여학생이 지금 그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 마리아의 어머니는 아픈 친구를 대신해서 잠깐 3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교대 근무자가 뚜렷한 이유 없이 10분 정도 늦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아버지와 아들이 맥도날드 매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마리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렇게 만났고 지금 마리아의 나이보다도 적은 나이였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도 여러 대학을 놓고 전전긍긍하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다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일찌감치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도서관으로 향하는데 마침 가방을 멘 어깨가 무척 힘들어 보이는 어떤 남학생과 마주치게 되었다.      2년간 한 번도 떠올린 적 없었고 또 기억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런데 그날!      어쨌든 이런 기막힌 만남은 졸업과 동시에 결혼으로 이어졌다.      이듬해 첫아들 알렉세이가 태어났다. 아빠는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은 행복은 생각처럼 오래가지 못했다. 어머니의 잦은 기침은 그칠 줄 모르고 오히려 점점 심해져 토혈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진단 결과 폐결핵이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렴으로 발전하여 생사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힘들겠습니다.”      주치의는 똑바로 아빠를 쳐다보지 못하고 환자의 상태를 담담하게 전해주었다.      아직 많이 어린 아들을 안고 병원들을 전전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심 끝에 두 분은 아빠의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을 택했다. 아무래도 아빠 혼자 어린 알렉세이와 병약한 엄마를 감당하기는 무리였다.      부모님의 도움이 절실함을 알고 아이가 조금 성장할 때까지만 함께 거하기를 부탁드렸다.      그렇게 어머니는 태어나 처음으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생활했다.      모든 것이 어색하다 못해 낯설기만 했다.      처음 며칠은 스트레스를 받아 오히려 건강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하고 석 달이 흘러 넉 달째 접어들었다.      시골 생활에 무슨 기대는 고사하고 더 이상 악화하지만 않기를 바랬다. 복잡한 도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선 공기가 맑았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에 들로 산으로 일을 거들었다.      처음 숨이 곧 넘어갈 것 같았던 몸은 점차 기운이 돋았고 신기하게 기침과 호흡기 관련 장기들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알렉세이가 세 살쯤 될 무렵, 어머니는 기적같이 예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아버지는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생각이 달랐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겨우 회복됐는데 선뜻 도시로 나간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쉽사리 좁혀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조부님은 가족회의를 개최했다. 결론은 아빠의 꿈도 중요하지만 어머니의 건강은 더 중요하다는데 달리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었다. 지혜롭고 흔들림 없는 할아버지의 판단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 후, 마리아의 어머니는 아들 넷과 오늘의 주인공 마리아까지 해서 여섯의 자녀를 출산했다.      서두가 많이 길었다. 이 땅에 맥도날드가 처음 들어올 무렵이니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마리아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함은 물론 아니다. 오직 마리아는 참혹한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는데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다가 결국 죽음보다 더한 고통 중에 놓이게 된 것을 말하고자 한다.      마리아의 대학 생활은 즐거웠다.      오빠들은 여동생을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잔소리를 하는데 그것은 마리아에게 고문과도 같은 지긋지긋한 간섭이었다. 그런 오빠들로부터 해방은 마치 새장을 벗어난 새가 자유롭게 창공을 나는 것과 같았다.      처음부터 유아교육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래 가족들은 사범대를 원했다. 마리아 자신도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가족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도록 지켜본 선생님은 마리아에게 유아교육을 권했다. 전혀 뜻밖이었다. ‘유아교육이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선생님의 의도를 들어보기 전에는 혼잡만 가중될 뿐 도무지 정리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의 어떤 부분을 들어 유아교육을 권하셨을까? 전에도 한번 사범대를 말씀드렸는데 유아교육이나 사범대는 장래를 위한 비젼보다는 왠지 사명감에 가깝게 느껴진다. 확실히 세상 출세를 위함은 아닌 듯하다.’      선생님을 만난 이후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뜻을 정하는데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유아교육과 겸해서 사학을 부전공으로 함께 공부했다.      가족들 곁을 떠나기는 처음이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 청소년기를 지나면 부모, 형제들의 간섭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랄 때가 있는데 막상 떨어져 생활해보면 그 동안 자신이 얼마나 평온한 삶을 살았는지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어머니의 희생, 가족들을 위한 아버지의 책임감, 비록 자신을 남자아이 대하듯 부드러움은 몸 속 어딘가 꽁꽁 묶어놓고 좀처럼 풀릴 줄 모르는 오빠들, 집 떠나 생각해보니 그래도 본심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큰오빠 알렉세이가 유일하게 가족들을 대표해서 편지를 보내왔다. 어린 여동생이 많이 생각나고 아무 연고 없는 곳에 혼자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못내 미안하고 걱정이 앞섰다.      마리아는 바쁜 일정으로 제때 소식을 전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낯선 곳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고향의 가족들을 떠올리며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함께 있을 때는 가족의 소중함을 왜 잘 알지 못했을까? 눈감으면 조용히 떠오르는 변함없이 성실하신 아버지, 평생 가족들을 챙기느라 어느새 까칠까칠한 어머니의 손, 그렇게 어머니는 자신의 삶이라곤 온데간데 없었다.      누구라도 외로이 혼자 떨어져 생활하다 보면 주눅이 들거나 의기소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런 가족들의 기대와 응원에 힘입어 매사에 자신이 넘친다. 수업을 듣는 그의 눈동자는 항상 빛났다.      우크라는 동유럽국가로 러시아 다음으로 국토가 넓다. 남동쪽과 남쪽 흑해와 아조프해를 제외하고 사방으로 국경이 접해있다.      흑해는 우크라의 해상물류 거점으로 너무도 중요한 곳이다.      셋째 오빠 세르게이가 태어나던 해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였다. 동부 유럽 대부분이 70여년의 긴 기간 동안 소련 정부의 통치 아래 있다가 한꺼번에 분리 독립한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먼 이야기가 아닌 불과 30년 전의 일로 비교적 가까운 이야기다.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다가 독립하여 자력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많은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가보다.      마리아는 이렇듯 처음부터 전쟁의 중심부로 나아갔던 것은 아니었다.      3학년을 마무리할 즈음 계절은 찬 기운을 뿌리기 시작했다. 거리는 매서운 시베리아의 눈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하다. 덩달아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진다. 해(年)의 시작은 그나마 여유로우나 그런 여유도 금세 바닥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거의 다 지나가고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당황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마음은 전기에 감전되었다 풀려난 사람처럼 경황이 없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하고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기류가 감지되었다. 러시아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이미 오래전부터 전쟁을 준비했다.      러시아 병사들이 우크라이나의 동쪽 돈바스 지역 주변으로 집결하다가 세계 언론들의 비난이 이어질 때는 물러나고 그러다 잠잠해지면 더 많은 병력이 결집하고를 반복하더니 해가 바뀌고 얼마 못되어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결국, 설마설마하는데 그만 러시아의 포문이 우크라를 향해 불을 뿜고야 말았다.      사학과 수업을 2년간 같이 수강한 이반 겐나디 안톤은 마리아보다 2년 위의 체육과 학생으로 건장한 청년이었다. 키이우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한 번도 키이우를 벗어난 적이 없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이었다.      마리아를 처음 본 순간, 그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쾌활함은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맑고 청순한 모습에 이반의 심장은 너무 빠르게 뛰어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이토록 타인을 향해 제어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이 자신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은 대학 3년이 될 때까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리아를 향한 요동치는 가슴을 조용히 속으로 간직할 뿐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해 일 년은 한 달보다 짧았다. 적어도 마리아에게는 그러했다. 조용히 2학년을 준비하는 가운데 가급적 부모님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는 중 오빠 알렉세이에게 편지가 왔다.      가족들이 몹시 기다리고 있으니 다른 생각 말고 방학과 동시에 고향으로 내려오라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갔다. 정확히 1년 만의 방문이었다. 버스에 올라타면서부터 마음은 이미 고향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탐스럽게 익은 곡식은 산들바람에 너울너울 춤추고 알알이 맺힌 이삭은 튼실해 보였다. 한눈에 풍년임을 알 수 있었다. 들판의 푸른 잎사귀들은 바람을 일으키듯 마리아를 격하게 맞이했다.      해질 녘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에 가슴이 떨려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향취인가. 마리아의 후각 시신경은 인간의 눈에 절대 보이지 않는 고향의 미립자를 정확하게 기억해 내고는 가슴이 고무풍선이 되도록 부풀린 다음 뱃속 깊이까지 들이마셨다. 이렇듯 고향의 그리움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오직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것 같다.      마치 아무것도 기억 못 할 어린 치어가 강물을 따라 대양에 다다른 다음 장성하여 기한이 차면 정확히 자신이 태어난 골짜기 냇가에서 자신의 어미가 그러했듯 그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부화를 끝으로 생을 마감한다. 연어 이야기로 교훈이 많은 물고기이다.      고향이란 연어처럼 참 묘한 존재라는 것을 처음 느껴보았다.      열흘간 가족들과 꿈같은 날을 보내고 다시 키이우로 돌아왔다.      떠나오기 전 버스 정류장에서 어머니는 딸의 손을 붙잡고 연신 몸 건강히 잘 지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마 다른 할 말도 많이 있었을 텐데 행여 건강이 나빠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날 어머니의 얼굴은 몹시 수척해 보였다. 밤새워 뒤척이며 괴로워하신 것이 분명했다. 얼굴과 손등에 잔주름이 부쩍 널은 어머니! 아버지 또한 얼굴 이곳저곳에 무거운 주름이 내려앉은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떠나오는 발걸음은 연(鉛)을 주렁주렁 매단 것 같이 무거웠다.      때마침 해외 소식통들은 러시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듯 우려하는 목소리들을 냈다. 앞에서 잠깐 살펴본 대로 염려하던 무거운 공기는 몇 달이 못 되어 현실이 되었다.      마리아는 졸업 논문도 미리미리 준비하고 동시에 취직 시험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만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전 학교는 휴교령이 떨어지고 국가는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아메리카는 볼 것도 없는(승산이 없다 뜻)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대통령을 아메리카로 망명을 제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우크라 대통령은 망명보다 국민과 함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울 것을 분명히 했고 그런 그의 결단은 어떤 화력보다 강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국민을 견고히 하고 다시 흔들리지 않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는 우연히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 마을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한곳으로 몰은 다음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어린아이들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마치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그것은 빛바랜 옛날 화면에서나 나올 것 같은 장면이었다.      전쟁은 자연재난이나 인재에 의한 재앙 또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한순간 화염에 휩싸여 죽거나 다치거나 어떤 사람은 생사도 모른 체 이산가족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전쟁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인생사 전쟁만 아니면 그 모든 재난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며 다 헤쳐나갈 수 있다고 한다.      국제 협약에 따르면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힘없는 여자와 노약자, 어린이들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되며 만약 이를 어길 때는 군사 재판에 회부될 수 있으며 만약 그러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된다.      처참한 아이들의 시신을 보자 마리아는 마음 속에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적의가 마그마같이 부글부글 끓어 오름을 느꼈다.      학교로 갔다. 폭격에 의해 건물이 손상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나 둘 재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생기발랄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학생들은 무너져 내린 교실을 보며 흐느껴 울었다. 마리아의 두 눈에도 쓴 눈물이 매달렸다. 검은 눈썹을 흥건히 적신 다음 아래로 흐르기 시작했다. 볼 양옆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 눈물은 넘어진 검은 콘크리트 잔해 위에 떨어진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와 교실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자 저마다 울분이 솟아올라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어떤 남학생은 벽면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군데군데 철근 더미가 삐죽삐죽 솟아 있는 그을린 벽을 향해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쾅쾅 주먹을 휘두른다. 러시아를 향한 분노의 주먹이었다. 많은 젊은 학생들이 우리도 싸우겠다고 앞다투어 지원했다. 그렇다고 누군가 선동하거나 강요에 못 이겨 지원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마리아도 어린 생명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장면이 잔상처럼 떠나지 않았다. 치유되기 쉽지 않은 고약한 트라우마를 자신도 모르게 이미 격고 있었다.      연약한 여자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피난이나 피신조차 할 수 없는 병약한 노인을 폭행해 죽이기도 하고 어린 유아를 돌아보지 않는 러시아군을 향해 분노했다.      모퉁이를 환하게 비추던 가로등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깜박이는데 곧 쓰러질 듯이 힘이 없다. 타닥타닥 소리는 잠시 후 들리지 않았다.      매서운 밤하늘은 금방이라도 폭탄을 쏟아부을 것만 같았다.      참으로 매서운 밤하늘이었다. 올려다보기가 여간 두렵지가 않다.      어쩌다 북쪽 끝에서 번개의 번쩍임과 흡사한 파란 광선이 번쩍이고 동시에 성난 사자의 부르짖음 같은 오싹한 울음에 절로 머리가 곤두선다.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주십시오.” 마리아가 말했다.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습니다.”      별빛이 맑은 우크라의 밤 풍경은 일순간 공포의 흑암으로 둔갑했다.      어디서 누가 무슨 목적으로 발사했는지는 고사하고 적군이 발사했는지 아니면 아군이 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수십 발의 포탄무더기는 눈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어디론가 빠르게 날아간다. 어떤 날은 이것들이 별들을 대신하듯 반짝였다.      그래도 사상자는 줄여야 했기에 기본 훈련도 받지 않은 상태로 전장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기초 훈련을 다지는 초라한 훈련소에 지원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군사 기본교육은 거의 생략하고 실전을 바탕으로 한 훈련이 어쩌면 더 효율적인지도 모르겠다. 유격과 각개 전투는 실전을 방불케 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는 우크라이나군이 거의 모든 곳에서 러시아보다 열세였다.      시간이 없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면 아무래도 사상자를 많이 줄일 수는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소총을 전달받고 영점 잡고 과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보는 것으로 몇 일간의 훈련은 끝이 났다. 그리고 전선으로 내몰린다.      어느새 연병장은 신병들을 이송할 수송용 군용트럭들이 배기구로 굉음과 검은 연기를 뿜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 모인 가운데 대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나이가 척척 소리를 내며 단상 위로 올라간다. 육중한 덩치 중에 유독 목덜미가 굵은 것이 마치 황소의 목처럼 강인해 보였다. 앞에 정열하여 서 있는 햇병아리들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듯 그의 표정은 어둡고 칙칙했다.      “고생 많았다.” 목소리는 덩치에 비해 잔잔했다. 가슴이 메이는 듯 한숨을 연거푸 두 번이나 내쉰다.      “이 시간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곳으로 저 군용트럭들이 여러분을 안내할 것이다. 그곳은 아무도 나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오직 포탄과 총성과 비명만이 귓전을 울릴 것이다. 조국의 운명은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고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라.”      눈물이 고였다. 제군들은 그의 무게보다도 무거운 침묵의 의미를 헤아리기라도 한 것일까?       “와 ~” 울분에 찬 함성이 온천지를 뒤흔든다.      그는 단상 위에서 짧은 두 마디를 남겼다. 그리고 무겁고 긴 침묵을 던졌다.      한편, 이반 겐나딘 안톤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얼마 동안 세무업을 하는 아버지를 도왔다. 잠시도 그냥 있지 못하는 본인의 성격과 세무하고는 많이 다름을 발견했다.      겐나딘의 아버지는 아들도 본인과 같은 세무 공부를 내심 바랬지만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세무의 기초적인 일을 맡겨보았으나 알려준 대로 하지 않고 엉뚱하게 하여 바로 잡느라 상당 시간 애를 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겐나딘의 아버지는 참고 인내하면서 ‘조금 지나면 잘 하겠지.’ 하고 도리어 자신을 위로하듯 답답함을 억눌렀다.       어느 날, 아버지는 같은 실수가 계속 반복됨을 알고 그 동안 꾹꾹 눌러왔던 인내는 분노가 되어 폭발하고 말았다. 아들을 향한 높은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흥분했는지 얼굴 전체에 열꽃이 피어올라 정수리까지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아들 또한 그런 아버지가 몹시 부담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한마디 의논도 없이 하사관 모집 공고를 보고 단숨에 지원 입대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일이었다.      12주가 넘는 긴 훈련 끝에 신병 훈련소로 발령받았다.      본래 큰 키와 단단한 체구를 소유한 그는 석 달이 지나자 제법 군인다운 면모가 풍겨 나왔다.      훈련병들에게 유격대 시범을 보이며 유격 훈련과 총검술을 지도했다. 방심은 곧 죽음임을 항상 강조했다.      훈련 첫째 날 여러 코스를 돌고 돌아 유격 훈련장에 도착했다. 군복은 이미 땀과 흙탕물에 젖어 말이 아니었다. 팔각의 챙이 긴 빨간 모자의 교관은 군인의 자세와 군기가 많이 약한 훈련병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눈동자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는 바위같이 단단하고 메시지는 녹음기를 털어놓은 듯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했다. 얼굴과 목둘레 손등 피부가 드러난 곳은 그을음이 내려앉은 듯 검게 탄 것이 장시간 햇볕에 노출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기둥같이 굵은 허벅지 커다란 손에 쥐어진 소총은 마치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다. 절도있는 그의 시범 동작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그의 기백은 여러 사람에게 자신감을 한층 충만하게 심어주었다.      마리아가 도하 훈련 중 관등성명을 제창하자 겐나딘이 비로소 마리아를 알아보고 놀란다. 물론 마리아는 겐나딘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리아는 러시아와 한창 불꽃을 주고받고 있는 전방으로 배정되었다.      그곳은 푸틴의 자존심이 걸린 곳이기도 했다. 치열했다. 그의 모든 신병들이 이곳으로 내몰린다. 러시아는 최정예부대를 투입하여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우크라이나 사상자가 러시아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겐나딘은 마리아가 치열한 전방으로 그것도 사상자가 제일 많이 발생하는 곳으로 배정됨을 알고 자신도 교관의 직무보다 전선에 나가 싸우기를 희망했고 그것은 곧 받아들여졌다.      겐나딘은 마리아와 같은 군용트럭에 올랐다. 양옆으로 길게 장의자가 고정되어 있는데 한 줄 10명씩 해서 대략 20명 정도 앉을 수 있었다. 물론 덮개는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전장으로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군용트럭의 묵직하고 둔탁한 디젤 엔진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겐나딘과 마리아는 대각선으로 앉았다.      마리아는 초조한 듯 차에 오르면서부터 고정된 시선은 움직일 줄 몰랐다.      게나딘은 그런 마리아가 몹시 걱정되어 자주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얼마를 왔을까? 불도저 같은 육중한 장갑차의 웅장하고 무거운 기계음이 가까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목적지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덮개를 살짝 젖힌 다음 밖을 살펴보았다. 총성과 포성은 들리지 않지만 싸늘한 공기와 곧 죽음이 임할 것만 같은 무표정한 얼굴에서 우크라이나의 가장 뜨거운 곳에 도착했음을 확신했다.       다음날 겐나딘과 마리아는 곧바로 전선으로 향했다.      적진 깊숙한 곳!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부상병들이 새로운 병사들을 구경이라도 하듯 불편한 몸을 일으키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의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뭔가 많은 것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분위기는 티브에서 보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많이 열악했다. 병력은 턱없이 모자랐고 화기는 말할 것도 없이 열악했고 화력은 방어조차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에 반해 러시아는 마치 사생 결단이라도 내릴 것처럼 화력과 병력을 집중했다.      우크라 대통령은 서방에 물자를 지원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나라를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날렸다.      겐나딘은 생각하기를 ‘이곳에서 살아서 돌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영원한 이별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문득문득 그를 괴롭혔다.      젊은 남자도 중도에 포기할 정도로 힘든 훈련을 꿋꿋하게 이겨낸 마리아!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험악한 전장 속에서도 “물드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청아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마리아의 목소리는 겐나딘의 가슴을 짓눌렀다.      오래전부터 아무도 모르게 간직해온 사람을 전쟁터에서 잃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떠올라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탄알이 피웅~ 하고 겐나딘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나무에 박힌다. 어떤 때는 나무를 피해 바위에 부딪치면 파편들이 나뭇잎들을 요동치게 한다.      벌써 동기 두 사람이 지난번 전투에서 총상을 입었다. 한 사람은 총알이 왼쪽 어깨를 관통하는 큰 부상이었고 또 한 사람은 역시 총알이 오른쪽 허벅지 중앙을 그대로 관통했다. 겐나딘이 허리띠를 풀어 지열을 한 다음 부축하여 안전한 곳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했다. 물론 두 사람 다 온전히 회복하기란 부상의 정도가 너무 심했다.      한바탕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른 양쪽 진영은 잠시 소강 모드에 접어들었다. 이번에도 마리아와 겐나딘은 위기를 잘 넘겼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 깊이 의지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번 전투에서 러시아군과 우크라군은 누가 더하고 덜 할 것도 없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추스르기에 시간이 꽤 걸릴 것만 같았다.      마리아와 겐나딘은 우연히 파괴가 심한 의무실에서 다시 만났다.      마리아는 부상병들을 돕기 위해 스스로 지원했고 겐나딘은 복구하기 위해 차출되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겐나딘이 손으로 머리를 쓱쓱 빗어넘기고 마리아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부상병들의 상태는?”      “부상의 정도가 매우 심합니다.” 마리아 역시 송글송글 맺혀있는 이마의 땀방울을 소매로 쓰윽 훔치며 대답했다.      “안드레이는?” 허벅지를 관통당한 동료의 안부를 묻는다.      “밤마다 울부짖다가......”마리아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멈췄다.      “밤마다 울부짖다가?” 겐나딘이 놀란 눈으로 마리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마리아의 눈망울에는 어느새 눈물이 깊게 고여있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리며 흠칫하는 마리아를 보는 순간, 겐나딘은 안드레이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총알이 관통한 안드레이의 다리는 부상 정도가 심했다. 정형외과를 전문으로 하는 잘 갖춰진 대형 병원에서도 결코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인데 하물며 이런 열악한 야전 병원에서 온전한 치료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되어 괴사가 진행되었다. 군의관은 이미 괴사가 진행되었음을 알고 바로 봉합 수술을 시행하려 했으나 대대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한차례 수술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 못했다. 한 차례만 더 해보기로 하고 그다음은 군의관 뜻에 따르기로 했다.      상처는 대대장과 군의관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영문인지 항생제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혈액이 공급되지 못한 살점은 몸에 붙어있어도 마치 떨어져 있는 것처럼 까맣게 죽어 들어갔다. 괴사가 더 진행되기 전에 의사는 봉합을 서두른다.      전열을 가다듬은 양 진영은 또다시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예상대로 러시아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아마도 우크라이나의 피해 정도가 더 심함을 알고 회복되기 전 선제공격을 가해 확실히 우위를 점할 심산이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런 와중에 G7이 참석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회의에 참석해 러시아의 침공은 불법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 다시 이와 같은 일이 자행되지 않기를 강력히 호소하고 더불어 물리적 지원을 촉구했다.      마리아와 겐나딘이 속해있는 부대는 지난번 폭격에서 완전히 복구하지 못하고 또다시 적군의 공세를 맞이해야 했다.      겐나딘은 부지런히 모래주머니를 쌓고 무너진 진지를 구축했다. 비록 힘들게 쌓는 돌무더기 하나하나가 자신과 동료의 생명을 지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엇보다도 마리아와 함께여서 지금까지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고, 총알이 빗발치는 위험 가운데서도 오히려 자신의 안전보다 마리아가 더욱 신경이 쓰였다. 겐나딘은 절망 가운데 놓였어도 마리아를 생각함으로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하나같이 죽음에서 막 돌아온 표정을 짓고 말이 없었다. 말을 건네는 사람도 상대방에게 말을 붙이는 사람도 없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다음 전투에서 자신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슴을 때리고 머릿속을 맴돌고 몸 구석구석 혈관이 산소를 운반하듯 두렵고 불길한 생각들을 온몸으로 실어나르는 것 같았다.      답답한 심경을 달리 표출할 방법이 없기에 어떤 병사들은 계속해서 담배만 피워댄다. 곧 적군의 공습이 시작될 거란 전문이 내려왔다.      이어서 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온다.      “각자 위치로!” 높은 지휘소에서 내려다보듯 말했다.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각자 위치를 고수하고 이탈하지 말 것을 위엄있고 당당한 투로 재차 반복했다.      지난번 전투에서 사상자가 너무 많이 발생해 이번에는 가급적 사상자를 줄일 목적으로 전술을 바꾸었다.      진지 구축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신을 주고받았다간 공연히 아군의 피해만 늘어날 뿐! 아마도 상대방의 전술에 그대로 말려 들어갈 것이 뻔했다. 지난번에도 적군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함으로 화를 키웠다. 해서 이번에는 전술을 바꾸어 적군이 아무리 총과 대포를 쏘며 나아와도 각자의 참호에서 대장의 명령이 내리기 전까지 총알 한 발도 쏘지 말 것을 지시해 놓았다.      예상했던 대로 러시아는 지난번 전술을 들고 나왔다. 화염은 맹렬했다. 비교적 안전한 참호에 몸을 숨겼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러시아군의 성난 사자 같은 공세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이 아무 반응이 없자 러시아가 간격을 좁히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게나딘의 참호에까지 미칠 것 같았다. 점점 가까워진 러시아군은 얼굴 식별이 가능한 거리까지 좁혀왔다. 우크라군 대장은 박자를 맞추듯 마음 속으로 하나, 둘, 셋, 숫자를 헤아리며 러시아군이 조금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우크라군은 마치 출발 선상의 100미터 선수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았고 대신 무서운 슬픔과 흥분이 대장의 신호를 재촉하듯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우레같은 대장의 소총이 탕탕하고 불을 뿜었다. 이것은 곧 우크라군의 공격 신호로 대원들은 대장의 총성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크라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맨 앞쪽 참호의 겐나딘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용감하게 뛰어나갔다. 단숨에 러시아군 다섯을 해치웠다. 순식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우크라군의 반격에 러시아군은 흔들렸다. 작전이 보기 좋게 빗나간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곱게 물러갈 러시아군은 또 아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높지 않음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다수 사람들은 러시아가 유일하게 미국과 견줄 수 있는 나라라고 알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한 쪽은 오히려 러시아였다.      이곳만 보더라도 벌써 몇 달째 치열한 공방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다 결국 사상자만 잔뜩하고 별 소득 없이 물러난다면 러시아의 체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닐 것이다. 러시아도 이 부분은 잘 알고 있었다.      우크라군이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러시아는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고는 곧바로 반격에 나선다. 이번에는 60톤이 넘는 순수 러시아산 철 덩어리 장갑차를 앞세웠다.      러시아는 자국의 전차가 지상에서 성능이 가장 우수하다고 믿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이 자랑하던 티거 전차에 소련의 전차들이 맥없이 무너지자 소련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곧 있을 독일의 모스크바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전차개발이 시급했다.      종전보다 뛰어난 T-34를 개발했지만 그렇다고 독일의 전차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래도 모스크바를 독일로부터 지켜내는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러시아의 가을은 깊어가고, 그리고 잠시 후 악명높은 모스크바의 겨울이 찾아 왔다. 살인적인 추위는 전쟁의 흐름마저 바꿔 놓았다. 독일은 소련의 화력보다 배고픔과 추위에 의해 거의 점멸하다시피 했다. 얼마 남지 않은 독일군은 소련의 전차에 밀려 후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소련에 패배함으로 6년 동안의 세계대전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일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독일을 물리쳤던 소련 시절의 우수한 전차 디엔에이를 러시아는 그대로 물려받았다.      지구상 현존하는 최고의 전차가 성난 사자같이 울부짖으며 우리의 주인공 마리아와 겐나딘의 부대를 향해 꽝꽝 불과 연기를 쏘아대고 있었다.      전차의 위력은 대단했다. 순식간에 팽팽하던 전세를 러시아 쪽으로 기울여 놓았다. 반경 수 킬로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건물과 사람이 주요 대상이었다. 한번 목표로 삼은 표적은 이동 중이라도 피하지 못하고 희생되었다.      이렇듯 우크라군의 사상자와 피해는 대부분 러시아 전차와 미사일에 의해 발생했다. 대전차를 앞세워 진격하는 러시아군의 공세의 수위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최고로 강렬했다. 마치 러시아의 모든 화력을 오직 이곳에 쏟아붓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많이 열세인 우크라군은 밀리고 또 밀려 결국 마지노선에 다다랐다.      잠시 숨을 고른다. 좌우를 둘러보니 얼굴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전투가 치열한 만큼 희생자도 많이 발생했다. 대장은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변변한 화기로 최정예 러시아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그동안 대장의 훌륭한 지휘 덕분에 그래도 잘 견뎌냈지만 아니 견뎠다기보다 버티었다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통신병으로부터 무전기를 건네받고 어디론가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을 날렸다. 아마 상부에 지원 요청을 하는 것 같았다.      겐나딘의 대장은 남은 병력을 확인하고는 어쩌면 최후의 결전이 될지도 모르는 작전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잘 버텨야 할 텐데.’      대장은 시름이 깊었다. 러시아 또한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나름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매달렸다.      소총과 수류탄만으로 저 강철 덩어리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가시권 밖의 러시아 군인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장은 무전기를 통신병으로부터 빼앗듯이 잡아채고는 목청을 높인다.      “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들이 움직인다.”      상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남은 병력과 화기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어느새 대장의 목소리는 다급함보다 상부에 대한 원망과 울분이 서려 있었다. 순간, 무수히 죽어간 부하들의 모습들이 마치 환영을 보듯 자신의 눈앞에서 춤추듯 사라진다. 대장이 떠올린 그들의 희미한 미소는 죽은 자의 미소가 아닌 것 같았다. 괴로움에 떨쳐버리려고 발버둥치듯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잠시 후, 상부로부터 짧은 전문이 날라왔다.      “적들로 아를로드 다리는 건너지 못하게 하라.”      “알겠습니다.”      ‘결국 싸우다 죽으란 얘기군.’ 대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겐나딘의 대장은 상부의 지원 없이는 방어할 수도 없고 모두 전멸당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소총은 무의미하여 단 몇 초도 견딜 수 없다. 그렇다고 부대원들을 뻔한 죽음으로 내몰 수는 더더욱 없었다.      이때, 고민에 빠져있는 대장을 향해 겐나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장님,” 대장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듯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고심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저들로 다리를 건너지 못하게 하려면.....”      “어디 좋은 묘책이라도 있는가?”      “폭발?”      “폭발?”      “더이상 방어는 무의미합니다.”      “음, 알고 있네.” 대장도 러시아군이 다리를 건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결국 아를르를 건너지 못하게 함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폭발이라니? 결국 아를르를 지켜낼 방법은 진정 폭발이란 말인가?       “대장님 저쪽을.....” 한 병사가 손가락으로 러시아군을 가르쳤다.      맹렬한 기세보다는 1차 목적지인 아를르가 시야에 놓여서인지 러시아군은 한층 여유를 부리는 듯 보였다. 어떤 병사는 잇몸이 훤히 보이도록 웃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군이 더 이상 자신들을 향해 총을 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총을 들 여력조차 상실한 것으로 판단이 미쳤는지 장난치며 무슨 놀이 하듯 걷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전 전투에서는 전차 뒤에 숨어 총을 쏘아댔지만 지금은 너무도 당당하게 전차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날씨는 더운 여름이지만 마리아는 오싹할 정도로 한기를 느꼈다.      우크라군의 얼굴은 하나같이 어두운데 짙은 당혹감마저 내려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나쁜 일을 예감이라도 하듯 두려움이 담긴 표정들이다.      러시아군을 향해 마땅한 전술이 떠오르지 않았다. 긴 침묵 속의 우크라군 대장은 조용히 입을 뗐다.      “변변찮은 무기로 잘 갖춰진 최정예 러시아군을 방어하느라 아군의 희생이 많았다. 최후까지 남아줘서 고맙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대장의 목소리는 무거웠지만 의외로 표정은 죽음을 각오한 사람처럼 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겐나딘은 빅토르와 다른 두 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적의 우측에서 최대한 방어하여 우리와의 간격을 더 이상 좁혀들지 않게 하라.” 대장은 평평한 땅 위에 대검의 날카로운 끝으로 찌르듯이 그리며 지시한다.      “마리아는 이들에게 보급품을 전달하라.”      대장은 남은 병사들에게 각각 적의 중앙과 좌측을 방어할 것을 명령하고 자신은 부대원 중 제일 나이가 적은 어린 병사 하나를 데리고 아를르의 다리로 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어깨 위에는 까만 뭉치의 긴 전선이 놓여있었다.      “시간이 없다.” 대장은 대원들을 재촉했다. 그리고 비장한 어조로      “최대한 방어하되 설치가 완료되면 즉시 아를르를 건넌다. 그러나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나를 비롯해 우리들은 모두 여기서 조국을 위해 죽을 것이다.”      대장의 마지막 말이었다. 부대원들은 두려움과 초조함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의 희생으로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불사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육중한 장갑차도 두렵지 않았다.      부대원들은 대장이 일러준 각자 장소에서 몸을 숨긴다.      러시아군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을 때 겐나딘의 총부리에서 불을 뿜는 것을 기화로 일제히 반격에 나선다.      의외였다. 처음 몇 달은 서로 팽팽하게 맞섰으나 전투가 거듭될수록 화력이 약한 우크라군의 고전이 눈에 띄었다. 조금씩 조금씩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아를르 다리까지 밀려났다. 우크라의 잠정적 마지노선인 아를르가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아를르를 건너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러시아의 장갑차는 마치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성난 맹수같이 아를르로 치닫고 있었다.      드디어 대장이 일러준 사정거리 안으로 러시아군이 들어서자 겐나딘의 총구에서 탕! 하고 화약이 강하게 피어올랐다. 우크라군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군은 당황했다. 그대로 아를르를 건널 줄 알고 행군하듯 무방비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았다. 전차와 나란히 걷던 러시아 병사들은 전차 뒤로 몸을 숨기고 방어태세를 취한다.      우크라군은 이것이 최후의 결전임을 알고 마지막을 준비했다. 대장의 말처럼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아예 접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정예 병사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우크라군에 의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희생자가 늘어나자 전쟁에 익숙한 정예부대는 신속하게 대오를 가다듬었다.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도 정확하게 집었다. 처음엔 어디서 날아오는지 몰라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다. 양측은 서로 몸을 숨긴 채 맹렬하게 불을 뿜었다.      한동안 양 진영은 교신하듯 탄알을 주고받다가 별 차도가 없자 이번에는 장갑차 위에서 망원경으로 우크라군을 발견하고 서서히 포대를 겐나딘이 몸을 숙인 곳으로 향했다. 여지없이 포탄이 날아왔다. 다행히 머리 위를 지나 제법 크게 빗나갔다.      전차는 고개를 숙이듯 포신을 살짝 내린 다음 꽝! 하고 강철 덩어리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이번에는 살짝 앞에 떨어졌다. 많이 위험했다. 겐나딘은 세 번째 포탄은 틀림없이 자기를 빗나가지 않을 줄 알고 옆으로 이동했다.      우크라군은 탄알 재고가 거의 바닥이었다. 그것은 겐나딘 뿐만 아니라 모두 마찬가지였다. 눈치를 챈 것일까? 러시아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빗발치듯 쏘아대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은 전차를 앞세워 또다시 간격을 좁혀오기 시작했다.      “마리아 탄약이 다 떨어졌어.” 겐나딘이 다급히 마리아를 향해 소리쳤다.      마리아는 대답 대신 알았다는 표정을 날리고 급히 움직였다.      탄알이 부족한 우크라군은 한발 한발 조준하여 쏘아댔다. 그것은 많은 실효를 거두었다. 사상자가 발생함으로 러시아군은 멈춰섰다.      러시아는 겐나딘의 참호 속에서 발사되는 실탄에 의해 유독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전차의 화력을 집중시켰다.      마리아는 포탄이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 하지않고 용감하게 탄알을 날랐다.      우크라군의 맹렬하던 총성은 어느 순간 겐나딘의 참호 외에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겐나딘의 탕! 하는 총성과 함께 러시아군이 쓰러지고 동시에 대전차의 포신이 꽝! 하고 크게 흔들렸다. 발사된 포탄은 그만 겐나딘에게 쉴새 없이 탄알을 전달하던 마리아 가까이에 떨어졌다.      “겐나딘~”      가슴을 찢는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이어졌다.      그 후 15일이 지났다.      마리아가 겨우 눈을 떴다. 꼭 보름만이었다. 꿈꾸는 듯 앞이 희미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낯익은 데라곤 한 곳도 없었다.      점차 눈이 밝아오고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왜 침대에 누워 있지?’      보름 전의 일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때,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아 눈은 이마 위를 보듯 올려다보는 데 겐나딘이 머리맡에 서 있었다. 놀란 듯 말을 하고자 했으나 이상하게 말은 입 속에서 머물 뿐 소리 되어 나오지 못했다.      겐나딘은 오래도록 수염을 깎지 않았는지 턱밑이 검게 수북했다. 그는 마리아를 향해 두 뺨 가득 눈물이 그렁그렁 흘러내리는데 표정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마리아는 그의 알 수 없는 모습에 당황했다.      “겐나딘! 어떻게?” 모기보다 작은 소리였다.      알아들었는지 겐나딘은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잠시 후, 묵직한 통증이 허리 아래서부터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었다.      ‘다리가 왜 이렇게 아플까?’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 한바탕 그녀를 휩쓸고 지나갔다. 고통으로 인해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처절한 싸움이었다.      보름 전 적의 전차포에 의해 쓰러진 기억이 마치 꿈 속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떠올랐다.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날 겐나딘의 동료들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절체절명 위기에 놓였었다. 러시아군도 죽음을 각오한 우크라군을 단지 수적으로 열세인 것을 알고 얕잡아 본 탓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우크라군은 잘 싸웠지만 열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결국 점멸하다시피 했다. 힘겨운 겐나딘의 싸움은 오히려 적의 화력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거기서 그만 마리아는 두 다리를 잃었다. 날카로운 비명에 돌아보니 마리아가 죽은 듯이 쓰러져있는데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고 두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겐나딘은 싸움을 중단하고 마리아를 안고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아를르를 향해 뛰었다. 러시아군의 총탄과 포탄이 휙휙 빗발치듯 스쳐 지나가는데도 전혀 당황하거나 주눅들지 않았다. 오직 마리아를 살려야겠다는 일념뿐!      폭약 설치를 끝낸 대장과 합류했다. 겐나딘이 사력을 다해 다리를 건너자 대장은 코앞까지 다가온 러시아군과 탱크 여러 대가 다리 절반쯤 건널 무렵 기폭장치의 기폭스위치를 힘껏 눌렀다. 다리는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러시아군은 결국 아를르를 건너지 못했다.      마리아는 과다 출혈로 맥박은 뛰는 듯 안 뛰는 듯 희미했고 혈압도 턱없이 낮았다. 서둘러 봉합 수술을 받았다. 쇼크로 인해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위기를 넘겼다. 출혈이 심한 탓에 많은 양의 수혈을 받아야만 했다. 보름 만에 겨우 눈을 떴다. 통증보다 더한 고통스러운 현실은 마리아와 겐나딘 모두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리아는 현실을 향해 아니, 자신의 운명을 향해 몸부림쳤다. 차라리 다른 동료들처럼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잠시 총성이 멈춘 건물 밖은 수채화를 뿌려 놓은 듯 아름다웠고 너울너울 나비의 날갯짓은 평화로웠다. 마치 전쟁이 끝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꽃잎은 화려하고 향기는 어린 시절 꺾었던 꽃에 얼굴을 가까이하여 맡을 때보다 더했다. 그렇게 꽃과 나비는 산하(山河)의 신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화하듯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겐나딘은 휠체어에 마리아를 번쩍 들어 앉힌 다음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바깥으로 향했다. 언제부턴가 마리아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따스한 햇볕은 마치 우크라이나의 청명한 봄 햇살 같았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 녹음이 우거진 수풀 사이로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리아의 긴 머리칼이 바람에 날린다. 두 사람은 새소리 가득한 숲속 벤치에 앉았다.      “오래전 대학생 때였어요.” 겐나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긴 머리칼이 무척 아름다웠지요. 그런 그녀를 나는 먼발치에서 쳐다보기를 좋아했어요. 내가 아는 그녀는 어린이를 무척 좋아했는데 항상 허리를 구푸려서 눈높이를 어린아이와 같게 하고 어린이와 대화하기를 좋아했어요. 그런 그녀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음을 발견하고는 놀랐지요. 그것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으로 내 속에서 어찌나 강렬하던지 나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곧 깨달았죠. 그것은 그녀를 향한 나의 첫사랑이었음을 말입니다.”      겐나딘은 조용히 마리아의 손을 잡았다.      숲에선 데이지꽃 향기 풍겨오고 새들은 나무 위에서 노래 부른다.   - 끝 -
14    [중편소설] 포화가 피워낸 붉은 장미 / 노인기 댓글:  조회:459  추천:0  2022-10-31
[중편소설] 포화가 피워낸 붉은 장미   노인기   군악대의 연주가 요란하게 울린다. 참전 용사들은 마치 그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뛴다. 환영행사가 끝나고 인터뷰가 이어진다.   “한국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나 잊혀지지 않는 사연이나 일화(逸話)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미 육군 00사단 제 00연대에서 복무했어요. 이름은 제럴드. 참전 당시 계급은 중위로 중대장이었어요.” 제럴드! 그도 이번 초청에 포함되었다. 60년이 흐른 지금 87세의 노구로 자신의 수한(壽限)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마지막으로 초청에 응했다. 그때 그는 삶과 죽음의 근사(近似値)에 한번 두 번 놓였던 것이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자신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채 인터뷰에 응했다. 오래전 그때를 떠올리므로 가슴이 벅차서일까? 그의 말은 조금씩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1 풀벌레조차 고요히 잠든 새벽이었다. 북한 정권의 무력 침략으로 전쟁은 일주일 만에 조선인민군의 승리로 끝날뻔하였다. 낙동강까지 후퇴를 거듭하던 우리 군은 맥아더 연합군 총사령관의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이틀 뒤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중국인민해방군의 개입으로 또다시 후퇴를 감행한다. 미 육군 제00사단 소속 00중대는 유독 한국 지형에 적응을 못 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벌써 전사자가 중대원의 절반이나 발생했다. 계속해서 북한과 중공 연합군은 155mm 박격포를 마치 별똥별처럼 마구 쏘아댄다. 이번 폭격에 거의 다 죽고 겨우 9명만 남았다. 폭격을 피해 벗어나려는 순간 마지막 포탄의 파편이 그만 중대장 제럴드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관통하여 뚫고 나간다. 매우 다급한 상황으로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선 붉은 피가 군복 상의를 서서히 적시기 시작했다. 고막을 찢는 요란한 폭격 소리에도 전우들이 자신을 부르는 고함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깨의 통증으로 눈을 떴다. 그사이 폭격은 멈췄고,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올라 시야가 흐릿했다. 몸을 돌리려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상처를 보니 다행히 출혈은 멈춰있었다. 깔때기 모양으로 움푹 파여 있는 허술한 참호에 자신의 몸이 뉘어있는 것을 알고 땅 위로 납작 엎드려 기어오르는데 어디선가 사람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져 온다. 일개 소대 정도의 중공군들이 폭격이 지나간 곳의 수색을 나온 것이었다. 나 뒹굴어져 있는 미군 시체들을 발견하고는 주머니를 뒤진다. 지갑과 시계, 총과 칼등을 탈취하고는 군화발로 시체를 밀어 넣는다. 광대뼈가 유독 큰 군인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자 “에잇~ 아무것도 없네” 이것도 전리품으로 각자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데 미군 전사자의 몸에서 취한 것으로 자기네들끼리 낄낄대며 “오늘은 수확이 괜찮은걸” 묵직한 시계를 손에 차고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자랑한다. 자랑하던 그놈이 찬 시계는 죽은척하며 위기를 넘긴 제럴드의 시계였다. 권총과 대검 그리고 자신의 총까지 수거하다시피 해갔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제럴드 중위는 힘겹게 일어나서 비로소 주변을 살펴보았다. 동료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처참한 모습으로 놓여있었다. 군번줄을 취하여 한 개는 이사이에 박아넣고, 또 한 개는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한편 중공군의 맹렬한 폭격을 피해 몇몇 대원들은 무사히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서 생명의 위협은 일단 모면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중공군의 추격에서 안정권을 벗어나자 전열을 가다듬는다. 불과 몇 명 남지 않았지만, 아직 전우들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가운데 폭격으로 인해 혹 부상 중에 놓여있을 수도 있고, 생사를 확인한 것이 아니어서 다시 폭격 장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제럴드 중위는 그 와중에 중공군이나 북한군들이 오지 않을 방향을 나름 설정하여 걷기 시작한다. 수통에 물은 다 떨어지고 벌써 몇 시간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목이 탄다. 메마름에 침을 삼키듯 꿀 꺽 거릴 때 수분이 없어 말라붙은 긴 식도가 속에서 달라붙은 느낌을 받았다. 이 또한 고통스러웠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은 것이 그만 발을 헛디뎌 언덕 아래로 굴렀다. 나무아래 그늘에서 한동안 누운 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오직 물밖에는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비틀대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걸음으로 산모퉁이를 돌았을 때 집 한 채가 보였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자 닭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얼마 남지 않은 기운으로 샘터 가까이 와서는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제럴드가 눈을 떴을 때는 방안에 누워 이불이 덮여있었고, 상의는 언제 벗었는지 기억도 없는데 벗은 채 오른쪽 가슴과 어깨 아래로 붕대가 감겨 있었다. 누워서 방안을 한번 빙 둘러 본다. 둥근 추가 째깍째깍 좌우로 움직여 30분을 알리는 종소리는 한 번 울리고, 그리고 시간마다 땡땡 울리는 종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괘종시계가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제럴드는 순간 어렸을 때 할아버지 방에도 비슷한 벽시계가 걸려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태엽만 감으면 긴 추가 자동으로 움직이고 또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기까지 하니 어린 마음에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품에 안길 때마다 의문의 물음들을 던져 주위 사람들을 웃기게도 하고 난처하게 하기도 했었다. 잠시 후 시계가 세 번 울린다. 벽시계 반대편에는 빛바랜 액자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는데 흑백사진들이 여러 장 들어있었다.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고 몸을 움직여보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중공군의 폭격에도 살아남은 제럴드중대의 네명의 대원들은 쑥대밭이 되어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시체들을 일일이 확인해 보지만 중대장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철모 안쪽에 J.W.J. 이름이 적혀있는 철모를 발견했다. “이상하다 헬맷은 있는데 사람이 안 보인다.” 버지니아주에서 참전한 스탁턴 병장이 철모를 들어 보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중대장님은 어쩌면 살아있는지도 몰라” “나도 꼭 살아있을 것만 같아 몇몇 시신을 봤는데 개목걸이가 하나는 박혀있고 하나는 없는 것으로 봐서 틀림없이 중대장님이 그렇게 하셨을 거야” 오하이오주 출신의 해리슨 병장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한결같이 시신들의 지갑과 총 대검 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북한군이나 중공군들이 이미 지나갔다면, 그렇다면 제럴드 중위가 적군들의 포로가 된 것은 아닐까? 대원들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한결같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소대장 넬슨 소위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매우 침착한 사람이었다. 어떤 난관에 직면해도 그는 마음의 평정심을 잃어 실수하거나 당황하는 일은 거의 없는 사람이다. “자 불길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적군을 피해 어디 몸을 숨긴 것으로 생각하자” 이렇게 그는 대원들을 격려했다. “해리슨 자네 같으면 어느 방향으로 가겠는가?” 소대장 넬슨이 전사자 확인을 마친 해리슨 병장에게 물었다. “글쎄요 아무래도 도움을 구하려면 미군 부대나 가까운 아군부대가 있을 방향으로 피하지 않았을까요?” 넬슨 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네” “그러면 자네 생각은 어떤가? 해리슨과 같은 생각인가?” 버지니아 출신 스탁턴 병장에게도 같은 물음을 한다. “해리슨의 생각에 공감하지만, 과연 중대장님이 파편을 맞고 쓰러졌으면, 분명 중상을 입었을 텐데 그 와중에 어느 방향으로 가면, 아군부대를 만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을까요?” “그럼 자네 생각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 “네 저의 생각에는 어디론가 몸을 숨겼겠지만, 아군부대가 있는 방향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듣고 보니 스탁턴 병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파편이 몸에 박히기라도 하면 무슨 온전한 생각이 들어 판단을 정상적으로 내릴 수 있겠는가? “해리슨 병장” “네 소대장님” 군사지도를 건네며 “가장 가까운 미군부대 할 것 없이 아군주둔지의 방향을 알아보게” “네 알겠습니다” 테네시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코리안 어머니 사이의 혼혈인 캐시어스 상병이 한마디 거든다. “소대장님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틀림없이 중대장님은 폭격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을 겁니다. 지금쯤 포로가 되어있던지, 아니면 가까운 민가로 피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중대장님은 파편으로 인해 출혈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은 곧 배고픔과 목마름을 일으키기 때문에 우선 민가로 피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넬슨은 나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후 조용히 결론을 내린다. “다들 좋은 의견들이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 방향이나 선택해서 찾아 나설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해리슨 가까운 민가의 방향도 알아보게” “네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미군 아군 할 것 없이 가장 가까운 부대가 50km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미군인가?” “아닙니다. 연합군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부대도 지금쯤 후퇴했을 가능성이 다분 이 높습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럼 가까운 민가는 어느 방향으로 몇 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가?” “지도에는 남동쪽으로 약 2.3km 외곽에 조그맣게 나와 있습니다.” “자 그럼 이동, 전방은 내가 맡을 테니 좌우 잘 살피고, 캐시어스는 후방을 맡아라.” “예 알겠습니다.” 넬슨 소대장과 일행은 아주 빠른 걸음으로 행군한다. 제럴드중대장의 생사를 알 수도 없었고, 만약 살아있다면 폭격으로 인해 상처가 깊어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대원들은 몸을 낮춘다. 대략 삼십호 정도의 평범한 시골 마을로 사람의 그림자나 짐승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서너 군데 연기가 피어올라 혹시나 해서 가보았지만, 포탄이 떨어져 전소되고 마지막 불씨가 겨우 피어올랐다. 적군들이 이미 점령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손으로만 신호를 보냈다. 두어 시간에 걸쳐 지붕 위까지 샅샅이 수색해 봤지만, 중대장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캐시어스 상병이 마을 주변을 살펴보는 사이 나머지 대원들은 잠깐 휴식을 취한다. 소대장 넬슨이 담배를 꺼내어 두사람에게 권하고 자신도 지치고 힘겨운 듯 깊이 빨아들이고는 후하고 내뱉는다. 다들 아무 말이 없다. 어떠한 심정들인지 굳이 말을 안 해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리라. 주변을 살피러 간 캐시어스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음을 황급한 그 모습에서 엿볼 수 있었다. “소대장님 적군이 마을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오른손 검지를 길게 하고, 방향을 가리키는데, 북쪽이었다. “북한군인가 중공군인가?” “중공군 같아 보였습니다” “숫자는 몇 명이나 되던가?” “많았습니다. 대략 200명 정도는 족히 될 것 같습니다” 캐시어스 상병의 말을 듣는 순간 두려움이 모두에게 임했다. 즉시 피우던 담배를 걸터앉은 돌 위에 짓눌러 끄고는 꽁초를 중지의 힘으로 휙 튕겨버린다. “어떡할까요? 소대장님” “정확하게 어디쯤 오고 있었나?” “냇가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쯤 마을 입구에 다다랐겠구나?” “아마 그럴 겁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일단 몸을 피하자” “아까 수색하면서 한 곳을 봤는데 네 사람 정도 몸을 숨기기에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해리슨 병장이 의견을 낸다. “좋아 그럼 빨리 그곳으로 피하자” 달려간 곳은 비교적 넓고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는 그런 집이었다. 큰방과 작은 방 부엌이 함께 있었다. 약간 옆에 외양간과 사랑방과 소죽을 끓이는 아주 큰 가마솥의 사랑채가 있었다. 뒷간과 돼지우리와 물건들을 저장하는 광과 곡식들을 보관하는 커다란 창고, 이렇게 세 군데로 나뉘어있었다. 대원들이 숨은 곳은 바로 돼지우리 위 장작들을 쪼개어 건조하며 보관하던 선반 너머로 해서 몸을 숨겼다. 선반 바닥은 곡식 창고의 지붕이 되는데 밖에서 봤을 때는 이런 공간이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해리슨 병장이 한국문화를 잘 알지도 못할 텐데, 그래도 위기의 순간이 닥치자 이 장소가 몸을 숨기기에는 안전하다고, 생각이 들었나 보다. 네 사람은 반듯하게 누웠다. 잠시 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불과 몇 시간 전 넬슨 대원들이 집집마다 수색을 한 것처럼 저들도 무리 지어 수색을 시작한다. 소리가 점점 가까이서 들리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대원들이 누워 있는 집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본채와 사랑채의 문들을 꽝꽝 거칠게 여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 두 사람은 저쪽도 좀 살펴봐라” 선임으로 보이는 이가 아직 군복이 신병티를 벗어나지 못해 어딘가 어색한 사병 둘에게 손으로 미군들이 숨어있는 곳을 가리킨다. “예 알겠습니다.” 선반 너머로 숨을 죽이며 웅크리고 누워 있는 네 사람은 적군들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직감적으로 이곳을 수색하라는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두어 사람의 발소리가 장작 더미를 넘어 얇은 판자의 경계까지 다다랐다.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것처럼 몸은 굳어있었고, 서로 눈동자조차 돌아가지 않았다. 총구로 판자를 툭툭 쳤다. 혹시 속에 뭐라도 들어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만약 뭔가 닫은 것같이 둔탁한 소리가 나면 기어이 안을 확인해 봤을 것이다. 다행히 소리는 무겁지 않고 가벼웠다. 대원들의 군화 바닥이 판자와 떨어져서 총구 끝으로 전달되는 느낌이 합판 너머의 공간은 어둡고 비어있다고 판단했다. “이상 없습니다.” 수색하던 병사가 큰소리로 외친다. 상병 캐시어스가 더는 참기 어려웠던지, 폭발하듯 한숨이 푸우~하고 요란하게 품어져 나오는데 아래 광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급히 넬슨이 캐시어스의 입을 손으로 막는다. 지금 미군 병사들은 광 위 천정에 누워 있다. 창고는 모두 나무합판으로 되어있어서 수색하는 적군의 발걸음 소리뿐만 아니라 디딜 때마다 진동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물론 대원들이내는 움직임이나 작은 소리조차도 아래서는 그대로 들린다. 북한군은 한쪽발을 들어 군화 뒤꿈치로 바닥을 꿍꿍 이곳저곳을 눌러보기도 하고 개 머리 판으로 천정의 이곳저곳을 툭툭 올려치며 나름 특이점을 찾으려고 한다. 조금 전 그 선임병이 “왜 뭐가 이상해?” 텅 빈 그래서 이상 할 것도 전혀 없어 보이는 창고에서 나오지 않고 뭔가 이상한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니까 핀잔 섞인 어투로 물어본 것이다. “아 아닙니다. 이상 없습니다” 멋쩍은 듯 황급히 뛰어나간다. 미군들은 죽음과도 같은 긴장으로 인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숨조차도 자유롭게 쉬지 못하는 것이 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육신의 생리적 현상들은 많은 수의 적군들로 인해 이미 그 기능들을 상실한 것처럼 아무 느낌도 없다. 그렇게 위기를 무사히 넘기는가 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적군들은 대원들이 숨어있는 이 집이 크고 비교적 보전이 잘되어있기도 하고 또 가마솥도 있어서 그나마 여기가 다른 집보다 낫다고 의견을 모았다. 수색을 마친 일 백여명의 병사들이 하나둘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가까이서 들리는 웅성대는 소리로 봐서 적군의 수는 가늠하지 못할 만큼 많게 느껴졌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중공 군인들의 생소한 언어는 사방이 막혀있는 어둠 속에서 더욱 두려웠다. 말의 톤이 대체로 높아서 무척 시끄럽게 들리고 어수선한 분위기 덕에 미군들은 각자 경직돼있던, 몸을 조금씩 돌려 자세를 바꾸기도 하고 귓속말보다 더 낮게 말하지만, 충분히 들리고도 남았다. “소대장님 야간에 모두가 잠든 틈을 이용하여 탈출을 하면 어떨까요? 더 이상 버티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해리슨 병장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스탁턴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적군이 몇 명인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데 탈출이라니 소대장님 불가능합니다” “내가 판단을 내릴 때까지 잠잠이 기다려. 지금은 탈출도 그렇다고 여기서 이렇게 있는 것도 몹시 힘들다. 어둠이 내린 다음 중공군의 어떻게 하는 것을 보고 결정하겠다” 소대장의 말에 모두 공감하는 눈치다. 바로 그때 중공군 두 병사가 대화하며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서로 입으로 손가락을 갖다 대며, 또 한 번 숨을 죽인다. “힘들고 귀찮은 것은 우리만 시키냐 아 참 오늘 야간이동하는 거야?” 아까 이곳을 수색했던 두 신병이었다. “그러게 오늘 밤에 행군할지 내일 출발할지 아직 몰라?” 낮에 봐둔 장작을 한 아름 안고는 사랑채 가마솥이 걸려있는 아궁이로 나른다. 두 사람이 네번에 거쳐서 남김없이 모두 날랐다. 장작이 쌓여 있을 때는 선반 안쪽 합판 너머가 보호를 받았지만, 장작이 없으면 딛고 올라서서 지금 넬슨 대원들이 숨어있는 안쪽을 쉽게 드려다 볼 수 있어서 발각되기가 쉬웠다. 다행히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고, 이미 수색을 마쳐서 누구 하나 창고동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넬슨 소위가 제럴드중대장이 생각이 났는지 조용히 입을 연다. “혹시 중공군들이 중대장님을 포로로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포로들은 남하하는데, 걸림이 되기 때문에 붙잡혔으면, 이미 북송당했을 겁니다” 순간 넬슨 소위의 표정이 무겁다. 벌써 시간이 상당하게 흘렀고 몸은 부상까지 입었으니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래도 중공군들은 여전히 말소리가 줄어들지 않고 톤도 낮아질 줄을 모른다.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혹 중대장의 행방을 알 수도 있을 텐데 “중공군의 말소리가 줄어든 것을 기화로 이곳을 빠져나간다” 소대장은 저들이 잠들었을 때 비로소 말을 멈출 것이고 그때 탈출하자는 것이다. 중공군은 하나둘 분대별로 나누더니 비교적 적당한 곳들을 선택하여 무리 지어 이동한다. 자정이 가까 왔을 때 거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간간히 보초병들의 담소정도만 들리는 정도다. 소대장이 먼저 몸을 일으켜 세운다. “해리슨 병장 자네가 앞장서게” “예 알겠습니다” 죽음과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병들은 또 생명과 맞바꾸는 모험을 감내해야 했다. 만약 창고 천장에서 날이 밝아 올 때까지 계속 숨어있으면, 발각될 가능성이 다 분했다. 우선 대원들이 피말리는 초긴장 상태를 몇 시간씩 무슨 스포츠도 아니고 견뎌내기란 아마 힘들 것이다. 소대장 자신도 이런 상황이 조금만 더 지속 된다면 미칠 것만 같았고 무슨 돌발행동을 할지 몰라 불안하기까지 했다. 해리슨 병장이 먼저 조심스럽게 마당 반대편 달빛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캐시어스가 그 뒤를 따르고 스탁턴 병장이 창고에서 막 나오는데 중공군 당번병이 순찰을 돌다가 마침 창고 옆으로 와서 벽에다 소피를 본다. 잠시 후 담배를 피우기 위해 성냥에 불을 붙이는 순간 담벼락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던 스탁턴과 눈이 마주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 한곳에서 미군을 보고 몸이 굳은 듯 어찌할 줄을 모른다. 이때 전광석화같이 스탁턴의 왼손은 상대의 입을 틀어막고 대검을 쥔 오른손은 적군의 옆구리에서 번쩍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소대장과 재빨리 시체를 자기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옮긴다. 마음이 초조하고 다급했다. 적군이 시체를 발견하는 날에는 모두 죽은 목숨이기 때문이다. 대원들은 담을 넘어 세 군데나 설치된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어두움 속을 바람처럼 이동한다. 20분쯤 지났을까? 마을 외곾을 거의 빠져나올 무렵 고요한 어둠을 뚫고 중공군의 비상을 알리는 싸이렌이 길게 울린다. 근무자가 교대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적군의 야습으로 판단하여 비상을 울린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는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과 호각소리로 인해 중공군 진지는 마치 벌집을 들쑤셔 놓은 것처럼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총성 한번 울리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니... 넬슨과 대원들은 황급히 깊은 산속으로 몸을 숨긴다. 중공군은 새벽녘이 되어서 01시에서 02시 근무자 한 사람만 없어진 줄을 확인했다. 탈영은 아닐 것이란 확신 가운데 다시 수색에 나섰고 얼마 못되어 시신을 발견했다. 담벼락 밑에 젖은 피와 옮기면서 흘러내린 핏자국들을 보고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2.   한 번 잠에서 깬 제럴드 중위는 또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떠보니 방안은 바뀐 것은 없었고 머리맡에 물 주전자와 컵이 쟁반에 놓여있었다. 겨우 몸을 가누어 앉고는 물을 두컵 정도 마셨을 때 괘종시계가 땡땡 일곱 번을 울린다. 제럴드는 지금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그리고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왔는지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주인은 누구인지 몹시 궁금했다. 그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똑똑 당황 되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오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들어왔다. “잘 주무셨어요?” 제럴드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나름 고마움을 표한다. 여성은 몇 마디 말을 건네지만, 상대가 아무 반응이 없자 큰소리로 누군가를 부른다. “네 알았어요” 가냘픈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이십대 초반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들어왔다. 놀랍게도 영어로 인사를 건넨다. 이런 시골에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뜻밖이었다. 의아한 듯 제럴드는 한참 동안 아가씨를 바라본다. “이렇게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이름은 존 윈스턴 제럴드 미 육군 중위입니다” “저는 김영원입니다” 영원은 이곳 양주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이곳 고향에서 함께 자랐고, 엄마는 바로 위 오빠 친구인 영원의 아빠를 어릴 때부터 잘도 따랐다. 영원의 아빠는 군대를 제대한 다음 시골에서 농사짓기를 원하시는 부모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상경하셨다. 이유는 농사일이 본인하고는 체질상 잘 맞지 않아서였다. 서울에서 가장 큰 미곡처리장의 장부 정리 일로 취직이 되면서 그때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하셨다. 일본의 탄압이 극심할 때 혼인하지 않은 조선 여자들은 언제 위안부로 끌려갈지 모르는 불안한 시기에 영원의 외조부님은 딸의 혼사를 서두르셨다. 이웃 동네에서 한두 번 청혼이 들어왔으나 엄마는 만나보기도 전에 완강하게 거절하셨고, 이유를 모르는 부모님은 딸을 심하게 혼내셨다. 부모님께는 차마 말은 못 하고 오빠에게 조용히 속을 내 비취셨다. 오빠는 다음날 바로 서울로 올라와 영원의 아빠를 만났고, 일주일이 지난 다음 원영의 외삼촌은 엄마를 데리고 서울로 왔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딸의 마음이 확고함을 알고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으셨다. 집안의 큰 반대 없이 혼인하였고 첫 자녀로 영원이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여 여자로서는 드물게 영어를 전공하였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여 마침내 부모님의 고향인 이곳으로 첫 발령을 받기에 이르렀다. 일 년 남짓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만 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난리 통에 학교는 학업을 중단하고 무기한 휴교에 들어갔다. 애국심이 강한 일부 남학생들은 스스로 학도의용병으로 참여해 무기를 받고 적과 대치 중 안타깝게 최후를 맞이한 학생들도 많았다. “제가 여기온지 얼마나 됐나요?” “오늘이 3일 됐습니다. 우리 집 앞에 쓰러져있는 것을 저희 엄마가 처음 발견하셨어요. 물론 의식도 없었고요.” “아 그랬었군요” “3일 동안 거의 주무시기만 했습니다” ‘아 3일씩이나’ 불현듯 부대원들이 생각이 났다. “생각보다 중위님의 상처가 깊습니다. 꿰매어야, 될 정도로 깊고 범위가 넓은 것 같습니다. 적당한 치료제가 없어 붕대만 감아 놨습니다” “감사합니다. 실과 바늘 있나요?” “의료용 바늘은 있지 않습니다” “그냥 바늘도 괜찮습니다” “어떻게 하려고요?” “상처를 꿰매려고 합니다” “집에 약과 꿰맬 수 있는 의료도구는 전혀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실과 바늘만 주세요” 제럴드는 영원의 도움을 받아 붕대를 풀어 상처를 꿰맬 준비를 한다. 상처는 워낙 깊고 길게 찢기어 있어서 여간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군인으로 상처 입은 환자이지만 남자의 탈의 된 상체를 보는 것이 쑥스러운 듯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평소 비위가 약한 어머니는 고깃덩어리같이 빨간 살 속을 보자 구역질부터 나와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는 수없이 원영이 제럴드의 왼편에서 치료를 도운다. “엄마! 물을 따뜻하게 데워 주세요” 피묻은 상처를 닦아내고 또 세균으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서였다. 제럴드에게 바늘에 실을 꿰어주고는 차마 볼 수 없어서 얼굴을 돌린다. 제럴드는 마취제 없이 갈라진 틈을 꿰매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세균에 쉽게 오염되고 또 잘못되면 염증으로 인해 진물과 고름이 생기고 살이 썩어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도 시절에 귀에 따갑도록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출혈이 심했다. 영원은 지금까지 이런 광경은 처음 이었다. 마취나 간단한 의료 조치도 없이 자신의 살을 꿰매는 제럴드는 아픈 표정이나 신음도 거의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시종일관 담담하고 흐트러짐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제럴드에게 진정한 군인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영원은 그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단번에 알아봤다. 뜨거운 물에 수건을 짜고는 흘러내리는 피와 진물을 닦아낸다. 제럴드의 이마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굵은 바늘로 생살을 꿰매놨으니 주체할 수 없는 아픔이 몰려온다. 영원은 상처에 소독제를 바르고 다시 붕대를 어깨와 가슴둘레로 길게 감는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중위님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엄마 들어오세요. 다 끝났어요” 어머니는 방에 들어오자 그저 놀랍고 신기한 듯 안지도 않고 제럴드를 내려다본다. “서양 사람들은 바늘에 찔려도 안 아픈가 봐” “많이 아프지요. 다 같은 사람인데” “그런데 어떻게 아야, 소리도 안 낼 수가 있나 참 별일이네” 영원의 어머니는 빨간 핏물이 대야 가득 담긴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저의 군복하고, 군화는 어디 있습니까?” “군화는 밖에 있고 군복은 빨아 걸어뒀습니다” “최근에 북한군이나 중공군이 다녀갔나요?” “아니요” “근래 다녀간 적은 없습니까?” “최근 들어서는 없습니다” 순간 제럴드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표정이 몹시 어두워진다. “왜 그러세요?” “만약 중공군이나 북한군이 다녀가지 않았다면 수일 내에 쳐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네에?” “우선 저의 군복과 군화를 빨리 숨기시고 여차하면 피할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유엔군들이 북으로 진격하지 않으셨나요?” 영원이 제럴드를 똑바로바라보며 묻는다.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까지 북진했으나, 중공군의 파상공세에 밀려 남하 중입니다” “그럼 어떡하죠?” “우리도 피난을 가야 하나요?” “서둘러 떠나야 됩니다” 마침 이웃집 총각 광택이가 영원의 집앞을 지나며 고개를 힐긋 돌려 안을 들여다보고는 영원이 낯선 미군과 함께 있는 것이 못마땅한 듯 휙 돌아서 간다. 영원이 급히 뛰어나가 광택이를 부르는데 “광택씨~ ” 광택이 못 들은 척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데, 영원이 다시 큰소리로 “광택씨~ 광택씨 ~” 하고 부른다. 광택이 그 재서야 겨우 뒤를 돌아보며 “왜 그러세요?” 하고 입술을 삐죽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무슨 화나는 일이라도 있으세요. 몇 번씩 불러도 그냥 가고” “아무 일 없어요” 광택이 여전히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 “혹시 시내 다녀오는 길이세요?” “그런데요?” “중공군이 내려온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나요?” “글쎄요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예 알겠습니다” “왜 중공군이 온대요?” “아 아닙니다” 광택은 영원과 한마을에 사는 청년으로 영원이 처음 학교 선생으로 부임해 오면서부터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고 언제부턴가 그녀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런 영원이 제럴드와 함께 있는 것이 몹시 거슬릴 수밖에 집에 도착해서는 다짜고짜 막걸리를 찾는데 대낮부터 왠 술이냐며 이유를 묻는 어머니에게 분이 풀리지 않자 행패를 부린다.   제럴드와 영원은 뒷동산 느티나무 아래 둥근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제럴드는 이렇게 한국 사람과 대화를 해보기는 거의 처음이었다. 통역병을 통해 주고받은 말은 작전과 전쟁용어들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등은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나무가 무척 크네요” 제럴드가 먼저 말문을 연다. “느티나무라고 해요 더운 여름 사람들에게 그늘을 선물하죠”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나무가 있어요” “어떤 나무인데요?” “오크나무! 들어봤어요?” “오크나무? 글쎄요” “크고 잎들이 무성하죠. 사람들이 그 아래에서 쉬기를 좋아해요” “아 그렇군요. 중위님 고향은 어디세요?” “캘리포니아입니다” “금문교로 유명한 그곳 말인가요?” “네 맞아요.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죠. 바로 저의 고향입니다” “정말 좋은 곳에서 태어나셨네요. 미국은 짧은 역사에 비해 이루어놓은 게 참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조국이 자랑스럽습니다” “고향에는 부모님과 또 누가 있어요?” “네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많이 보고 싶겠어요?” “네 떠나올 때 어머니께서 많이 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영원은 순간 제럴드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촉촉이 젖어 나옴을 보았다. 민주주의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서 그것도 다른 나라의 전쟁에 참전한 제럴드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애틋한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 새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요.” 가까이에서 들리는 새 울음소리가 신기하듯 제럴드가 묻는다. 두 사람이 대화를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운다. 이상하게 다른 새소리는 잘도 들리는데 정작 듣고자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새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한 듯이 한동안 울지 않고 잠잠했다. 약간 어색한 공기가 내려앉을 무렵 때마침 ‘호’자를 휘파람으로 불듯 ‘호 호 호 호’하고 4음절로 나름 리듬을 탄다. 몇 번 연속해서 들으니 마지막 음절은 앞의 음보다 조금 낮고 약간 길었다. 처음 들어보는 노랫소리는 두 사람의 기분까지 좋게 해주었다. “맞아요. 이 소리였어요.” 제럴드는 오른손 검지를 허공에 대고 소리나는 방향을 가리킨다. “검은등뻐꾸기입니다.” 영원은 의외로 쉽게 대답했다. “저도 처음 들었을 때 울음소리가 특이해서 어떤 새일까 궁금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수업시간에 우리 마을에 서식하는 새를 비롯한 동물, 식물들의 이름을 영어로 숙제를 냈던 적이 있었어요. 한 학생이 뻐꾸기와 검은등뻐꾸기를 구분해서 제출했는데 특색을 물어보니 울음소리를 들려주어서 쉽게 구분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름도 울음소리도 처음 들어보는 거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는 예쁜 꽃들도 많고 새들의 지저귐도 아름답습니다.” 제럴드는 마치 색다른 경험을 한 듯이 고개를 쳐들고 빙그르르 둘러본다. “미국에서는 들어보기 힘들 거예요. 계절에 따라 우리나라를 거쳐 러시아 동남부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동하거든요.” “아 그렇군요. 우리 미국에도 아름다운 새들이 많이 찾아 왔으면 좋겠네요.” “아마 전쟁이 끝나면 중위님 바람대로 미국에도 아름다운 새소리가 울려 퍼질 거예요.” “아! 그럴까요? 하하하” “호호호” 조금 부끄러운 듯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다른 곳에 두다가 또 어느 순간에 서로를 뚫어지게 살피는 두 사람의 모습은 지금이 전시상황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화로워 보였다. “중위님은 왜 군인의 길을 선택하셨어요?” “저의 집은 대대로 군인 집안입니다. 5대조 할아버지는 남북전쟁에서 남군 대령으로 군대를 지휘하셨고 할아버지 또한 1898년 미국과 스페인과의 전쟁에 참전하셨어요.” 먼 이국땅에서 뜻하지 않게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하게 되어 감개 한지 잠시 말을 멈춘다. “와 대단하시네요. 그럼 아버님도?” “네 아버님도 1차대전에 보병으로 참전하셨습니다.” 제럴드는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간다. “어릴 때 우리 형제들은 할아버지로부터 군인시절 무용담을 들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의 남자들은 군대를 반드시 다녀와야 했고, 또 복무기간 중 미국이 개입된 전쟁은 꼭 참전하기를 종용하셨어요. 그래서 할머니하고도 많이 다투셨죠.” 영원이 놀란 듯 “왜요? 왜 할머니하고 다퉈요?” 제럴드가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듯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는 아들도 또 이제 손자들도 다 군대를 가게하고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으니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가 미울 수밖에요.” 영원도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럴드도 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뜻을 이해, 못하는 것은 또 아니에요.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위기의 순간이 올 때는 젊은 사람이든 누구든 간에 예외가 없다고 늘 강조하셨어요.” “그래도 전쟁터로 기꺼이 나아가는 것은 ,,,, 저는 어디까지나 할머니 편입니다.” 영원이 손을 들고 외치자 둘 사이에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어쩌면 군인의 길이 가장 자연스러운 길인지도 모르겠네요? 적어도 중위님에게는 말입니다.” 약간 경직된듯한 표정의 제럴드는 “네 맞습니다. 아버지도 그런 할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는 여러, 자녀들, 중에 웨스트포인트를 누군가는 나와 주기를 기대하셨지요. 자녀들이 뜻대로 잘 따라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기대를 거두지 않으셨죠.” “웨스트포인트는 뭐예요? 혹시 군사 학교 같은 곳인가요?” “육군사관학교를 말합니다.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시에 있어서 흔히 웨스트포인트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장군들이 거의 이곳 출신들이죠. 이번 인천상륙작전을 펼친 맥아더 원수도 이곳 출신이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 아이젠하워, 패튼장군등 수많은, 별들을 탄생시켰죠” “그럼 중위님도 웨스트포인트 출신인가요?” 제럴드는 입술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영원을 바라보며 “네 그렇습니다.” 나지막하고 짧게 대답했다. 영원도 제럴드가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고 느꼈지만, 육군사관학교 출신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왠지 그의 군인다움이 뼛속까지 느껴졌다. 마치 선조들의 용맹한 디엔에이를 고스란히 받은 것 같다. 영원이 갑자기 무엇이 궁금한지 “제럴드! 중위님!” 하고 부른다. “네” 영원이 아무 말이 없자. “말씀하세요.” 영원이 대뜸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제럴드를 보며 말한다. “교회당 가운데로 손잡고 걸어갈 사람은 있어요?” 순간 제럴드는 영원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교회당 가운데로 손잡고 걸어갈 사람? 이게 무슨 뜻이지?’ 한두 번 되뇌더니 금방 알아차렸다. 영원의 재치에 놀랍다는 듯 제럴드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웨스트포인트의 빡빡한 일정은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4년간의 학업을 마침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지요. 연애?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제럴드는 왼쪽 어깨의 통증으로 자세가 불편한 듯 몸을 굽혔다 폈다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영원이 제럴드의 팔을 두 손으로 붙잡으며 묻는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한 자세로 오래 있다 보니 꿰맨 자리가 눌린 것 같은 통증이 느껴져서요.” “상처는 괜찮을까요?” “당분간 물을 조심하면 괜찮을 겁니다.” “아까는 많이 놀랐습니다.” “왜요?” 제럴드는 커다랗고 둥근 눈으로 영원을 바라며 “바늘로 직접 치료한 것 때문에요? 사실은 그 이후가 더 아팠어요.” “네! 꿰매는 것도 무서웠고, 아프다는 표정이나 소리도 내지 않아서 더 놀랐습니다.” 영원이 제럴드와 눈을 맞추고는 “중위님 많이 아프셨죠? 하지만 제가 옆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 아닙니다. 우선 부상당 한 저를 거두어 주시고 또 간호해 주셨습니다. 아마 미국에 돌아가서도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영원씨와 어머니께 이미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럴드의 꾸밈없는 마음은 영원의 마음에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 “은혜랄 것도 없습니다. 중위님은 고향을 떠나 먼 이국땅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공산당과 전쟁을 치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어찌 보면 저희가 중위님께 큰 은혜를 입었지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럴드의 말은 낮고 부드러웠지만, 그래도 힘이 있었다. “중위님! 언제쯤 이 전쟁은 끝이 날까요? 하루빨리 이 땅에도 평화가 찾아 왔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적어도 학생들이 전쟁터로 내몰리는 일은 다시 없었으면 좋겠어요.” 제럴드가 영원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금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전쟁은 중공과 소련이 개입하면서 복잡하게 꼬여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습니까?” ------------ “영원씨는 여성으로서 드물게 대학을 졸업하시고 영어를 전공하셨는데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지요?” 제럴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 난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고 모든 부분에서 특히 여성이 교육을 받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부터 이 부분이 몹시 궁금했었다. 지난 시절 기억들을 떠올리는 영원의 얼굴은 어느새 행복 가득한 미소로 젖어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교시는 대부분 담임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데 공교롭게도 영어 선생님이셨어요. 중학교 진학하고 난 다음 비로소 영어를 배우니까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기에 무척 늦었지요. 그래도 영어의 매력에 푹 빠져 영어를 전공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뜻을 정하기까지는 담임선생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담임선생님의 영향이라뇨?” “선생님은 그 시절 드물게 외국 유학을 다녀오신 엘리트이셨지요. 일본을 거쳐, 미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는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국의 어린 학생들에게 열정을 쏟으셨어요. 선생님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어요. 한국의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서 교육으로 뜻을 정하셨대요.” 흥미로운 듯 잠자코 듣고 있던 제럴드가 “그럼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공부는 처음부터 영어가 아니었어요?” “선생님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말씀드려야겠어요.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예술에 조예가 깊었어요. 특히 화가를 꿈꿨지요. 그것도 서양화가를요. 그런데 한국에서 예술을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한계에 부치자 유학을 결심하셨어요. 먼저 일본에서 공부한 다음 프랑스로 건너갈 계획이었어요. 그래서 일본에서 1년 동안 대학을 다니셨고, 애초 계획한 대로 프랑스 S대학에 입학절차를 끝내고 프랑스 대사관으로부터 입국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다리는 동안에도 고국으로 나오지 않고 계속 일본에 남아 공부를 하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부족한 科目(과목)과 이론을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대여섯 명의 불량배로 보이는 사람들이 몽둥이로 한 사람을 심하게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어요. 구타당하고 있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한국인이었대요. 순간 모른 체하고 지나갈까? 아니면 그만하도록 말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사람 살려” 하고 끔찍한 비명 소리를 내지르자 차마 같은 동포로서 외면, 할 수가 없었대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을 말리는데 잠시 후 그들은 선생님이 한국 사람임을 알고 “너도 조센징이구나 잘 됐다. 오늘 같이 죽어봐라” 하고 선생님도 덩달아 몽둥이, 찜질을 당하셨어요. 머리를 감싼 손위로 계속해서 몽둥이가 날아들고 그만 오른손 손목뼈가 부러지고 말았어요. 직접 병원을 찾아가 문을 두드려 보아도 받아주지를 않더래요. 시간이 늦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한국 사람인 줄 알고 거절당하셨대요. 그렇게 다섯 번째 병원에서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두 달간 입원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한번 손상된 기능과 감각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렇게 섬세했던 손은 떨리기 시작했고,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어요. 경찰서에서 폭행 사건으로 조사를 받았지만 피해 사실이 분명한데도 사건의 발단은 오히려 조센징에게 있다고 혐의를 뒤집어씌우기도 하고 또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보상이나 치료비조차도 받지 못하자 심한 회의가 찾아 왔어요. ‘조국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지 이미 오래고 주권을 상실한 국민은 마치 난민처럼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보호받지 못함을 개탄하셨지요. 이런 마당에 내게 무엇이 더 중요 할까? 그래도 예술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그것은 선생님의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고민이었고, 자신에 대한 냉정한 물음이기도 하셨어요. ‘내가, 추구하던 공부를 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로 성공했다고 하자. 그런데 내게 祖國이 없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날이 후 선생님은 자신을 위한 공부보다는 나라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로 가고자 했던 계획을 미국으로 바꾸고 일본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발전된 미국을 보며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예술 특히 화가로서의 뜻을 접었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전혀 새로운 마음이 생겨났어요. 그것은 고국의 청소년들이 어려서부터 우리말과 우리글을 빼앗기고 희망없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한국의 교육을 위해서 자신을 바칠 것을 다짐하셨답니다. “아~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시네요.” 제럴드는 감탄을 자아낸다. “일본에 의해 오래도록 한국 사람들이 고초를 당한 정도밖에는 잘 몰랐어요. 물론 그 부분도 온전히 안다고 할 수는 없겠죠.” “1910년 일본은 본격적인 국권침탈이 있기 전부터 우리나라를 많이 괴롭혔어요. 독립운동가들은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국외에서 활동을 많이 했어요.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불살랐지요.” “워낙 유명한 사건들이어서 그분들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민족의식이 투철한 것 같아요.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선생님도 국민들이 배움이 없이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학생들 교육에 헌신하신 것도 당시로써는 하나의 독립운동이라 할 수 있지요.” “네 중위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원은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먼 이국에서 온 청년 장교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쁘고, 제럴드 또한 한국의 근현대사가 궁금했는데 마침 영원에게 자세히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의 역사는 언제 들어도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 난 것도 잠시 지금은 같은 민족끼리 남과 북으로 나뉘어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으니...” 제럴드의 말에 영원도 현실이 안타까운 듯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 하고 두 사람 모두 같은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동시에 두 사람은 드러나게 말은 못 해도 결국 전쟁으로 인해 이렇게 만나게 되지 않았는가. 운명적 만남을 위해 전쟁을 핑계 삼으면, 안 되겠지 만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서로를 향해 ... 특히 제럴드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이 우연히 저절로 이루어졌다고 믿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운명적이었음을 직감했다. 제럴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영원씨는 운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영원은 뜻밖의 물음에 약간은 흥분한 듯 뜻 모를 미소만 내뿜는다. ‘운명’ 지금 이 순간은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 “글쎄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중위님은 운명이 있다고 믿어요?” 하고 반문하는 영원의 표정은 오히려 지독하게 믿는 눈치였다. “저도 아직 인생이 그리 길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우연히 저절로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영원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그의 눈은 빛났다. “그러면 중위님은 이 모든 일을 운명이라고 믿는가요?” 진지한 눈빛으로 제럴드를 바라본다. 제럴드 또한 시선을 영원에게 집중했다. “글쎄요? 그렇다고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 ” 제럴드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잠시 생각한 다음 말을 이어간다. “처음부터 한국으로 배치를 받은 것은 아니었어요.” “네? 한국으로 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뜻인가요?” 영원이 말했다. “네 한국으로 지원했지만, 미 국무성은 필리핀과 독일 두 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요. 그러다 최종적으로 독일로 확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영원은 초롱한 눈으로 제럴드를 바라보며 묻는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송기 계단에 막 발을 디딜 무렵 다급한 전갈이 도착했는데 한국으로 바뀌었다는 통보였습니다.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모두가 놀랐어요. 이번에는 할아버지도 강경하시지 않으셨죠. 목숨을 확신할 수 없는 치열한 전쟁터에 손자를 보내기란 자신이 참전하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어요.” “아무렴 왜 그렇지않겠어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손자는 당신의 목숨만큼이나 더 귀한 존재인데요. 그런데 독일에서 한국으로 그것도 급하게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한국전쟁이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어요. 그런데 전쟁발발 일주일이 체 못되어 남한의 대부분이 적군의 손아귀에 넘어간 사실을 알았어요. 미국과 유엔은 그제야 겨우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는 다른 나라에 급파할 병역들을 한국으로 급히 돌리게 되었지요.” 제럴드는 말없이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영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국에 도착하고 얼마 못되어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다음 질풍노도같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간 사실은 영원씨도 잘 알고 있지요.” 영원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하지만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후퇴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어요. 저의 중대도 대부분 이 앞 전 전투에서 거의 다 전사했어요. 그래도 몇몇 대원은 생존했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제럴드는 괴로운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혼자 남은 것이 이렇게 고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먼저 간 대원들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제럴드를 향해 영원이 그의 어깨에 살며시 몸을 기댄다. 그리고 부러운 손으로 그의 팔을 감싼다. “중위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병사들이 어디선가 중위님을 찾고있는 지도 모르잖아요.” 영원의 말은 내면의 통증같이 괴로운 제럴드의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말없이 영원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예민한 감각의 부드러움이나 이성의 불장난같이 소름 돋는 전율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오래도록 아니 영원히 영원히 그대에게 고마움을 간직합니다.” 제럴드는 마치 고백하듯 말하고 사랑스럽게 영원을 바라보았다. 제럴드를 바라보는 영원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눈을 깜박이자 눈물이 빗물처럼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왜? 눈물이 사춘기 소녀처럼 왈칵 쏟아졌을까?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제럴드도 영원을 향해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것이 솟아올랐다. 그것이 사랑일까? 처음 느껴보는 마음들이 가슴속에서 마구마구 솟아오르다 못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해 사랑스럽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을에서 탕 탕 탕~ 하고 총성이 울려 퍼진다. 순간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은 안 해도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하고도 남았다. “중위님 무슨 일일까요?” 영원이 불안한 듯 제럴드에게 묻는다. “총소리로 봐서 소련제 소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북한군이 마을로 들어왔다는 것인가요?” “글쎄요 자세한 것은 확인해 봐야 알 것 같아요.” 한 번의 총성은 공기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두 사람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혹시 모를 북한군이나 중공군을 의식해 영원이 아는 잘 다니지 않는 샛길로 제럴드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큰 연기가 동네 중앙쯤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영원과 제럴드는 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확신했다. “중위님 혹시 모르니까 제가 살펴보고 올 께요.” “괜찮겠어요?” 제럴드는 영원을 혼자 보내기가 몹시 불안했던지 “영원씨 아무래도 내가 다녀오는 것이 좋겠어요.” “혹시 북한군이라도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그러니까 내가 가서 살펴봐야지요.” 제럴드는 민첩하게 숲속으로 사라진다. 영원은 제럴드에게 무슨 일이라도 미칠까 봐 불안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제럴드가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중위님 어떻게 됐어요? 예상했던 대로인가요?” “네 예상했던 대로 북한군입니다.” 제럴드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영원씨 일단 집으로 들어가서 어머니와 함께 계세요.” “중위님은요?” “만약 같이 있는 것이 발각되면 어머니도 영원씨도 잘 못 될 수 있어요. 나는 주변에 숨어서 동태를 살피다가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 들어가겠습니다.” 영원은 걱정이 앞선다. 혹 자신의 집에 미군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도리가 없다. 언제까지나 숨어있을 수도 없고 갑자기 사람이 없어진 줄 알면 괜히 의심만 가중될 뿐이 아닌가. 용기를 내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집에는 마침 어머니가 계셨다. “엄마! 괜찮으세요?” 엄마는 영원을 보자 화들짝 놀란다. “애야 어디 있었느냐?” 엄마는 영원이 북한군에게 붙잡혀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중위님과 함께 있었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그래 그 미군은 지금 어디 있느냐?” “북한군들이 마을에 들이닥친 줄 알고 잠시 몸을 숨기고 있어요.” “그러잖아도 북한군들이 집집마다 뭘 찾는 것처럼 구석구석 살펴보더라.” “혹시 우리 집도 다녀갔어요?” “다행히 우리 집은 휘~익 둘러보더니 그냥 지나갔다.” “정말 다행이네요. 빨리 중위님의 옷과 물품들을 어디다 숨겨야겠어요.” “아침에 그 양반이 보이지 않는 곳에 두라고 해서 일단 숨겨놨다.” “네 잘 하셨어요.” “그런데 북한군들이 몇몇 사람들을 학교에 붙들어 놓고 있다는데 무슨 일일까?” “네?” 영원이 화들짝 놀라서 어머니께 다시 묻는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누가 무슨 일로 잡혀갔다는 거예요?” “아 글쎄 북한군들이 윗마을을 먼저들이 닥쳐 몇몇 사람을 포박하여 가고 그리고 우리 마을로 들어와서는 광택이하고 정호, 상근, 동호 하고 영수도 포박은 안 했지만 데리고 갔단다.” “아니 동호하고 영수는 국민 학생인데 그럼 초등학생들도 잡아갔어요?” 영원이 비통한 얼굴을 하고 “아무래도 학교로 가봐야겠어요. 어머니!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 될 것 같아요” 딸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영원의 팔을 강하게 붙들고 만류한다. “이것아 그곳이 어디라고 시방 그곳을 간다는 거여” 영원의 어머니는 거의 울음과 애원이 섞인 목소리로 영원을 잡아끌고 앉힌다. “그럼 애들이 잡혀갔다는데 어떡해요.” “이것아 빨갱이 놈들이 어른아이 가려서 잡아간 다냐. 그리고 너를 온전히 놔둘성 싶어 어림도 없는 소리 집밖으로 나갈 생각 말고 조용히 집안에 가만히 있다가 북한군이 물러 가고난 다음 밖으로 나올 생각해” 영원의 어머니는 강제로 딸의 팔을 끌고는 방안으로, 들어간다. ‘답답하다. 아까 총성은 무엇이고 도대체 북한군은 마을 사람들을 무엇 때문에 잡아갔을까?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순간 영원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혹시 ‘제럴드’ 때문이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3   한편 넬슨 소대장 일행은 중공군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나 중대장 제럴드의 행방을 쫓고 있다. “소대장님 조금 쉬었다 가지요.” 캐시어스 상병이 말했다. 그의 소총은 기관총으로 다른 병사들보다 무거웠다. “그럼 잠시 쉬었다 가지” 다들 지치고 피곤하여 각자 큰 나무를 등받이로 기대고 철모와 소총을 내려놓고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한동안 아무 말들이 없다가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소대장 넬슨 주위로 몰려든다. 넬슨은 지도를 꺼내어 현 위치와 주변의 정세를 살핀다. 반경 20킬로 내외를 설정하여 중대장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부터 선택하여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넬슨 소대장은 지나온 마을들을 체크 해가면서 다음 동리를 물색한다. 남은 네 명의 병사들로 분산해서 살펴보기에는 아무래도 위험이 따르고 혹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현재로서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더라도 같이 살펴보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소대장님!” 해리슨 병장이 입을 열었다. “말해보게” 해리슨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듯 시선은 특정한 한곳을 고정하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것이 뭔가 확신 없는 표정과 목적 없는 사람처럼 꽤 심신이 지쳐 보인다. “맥아더 원수가 압록강까지 진격해 갈때는 전쟁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 가족들의 품으로 날아 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중공군의 개입과 소련의 현대식 군수물자를 지원받은 북한에 의해 서울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다 또 전열을 가다듬은 연합군에 의해 겨우 서울을 재탈환했는데 소대장님은 과연 이 전쟁이 끝이 날까요?” 해리슨의 말은 질문도 아니고 말도 아니고 아마 전 연합군 모두의 공통된 물음일지도 모른다. 넬슨 소위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 상급자가 있으면 해리슨과 동일 한 질문을 마치 푸념처럼 널려 놓았을 것이다. 넬슨이 조용히 입을 연다. “나도 이 부분이 제일 궁금하네. 과연 이 전쟁은 언제쯤 끝이 날까? 만약 맥아더 원수를 만나기만 한다면,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다네 그래서 마음에 질문의 요지를 이미 오래전에 준비해 뒀지.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떠나서 전쟁의 종식 하다못해 전쟁의 휴전, 조차도 어찌 맥아더 원수 한 사람에게 달려있겠는가? 양측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밀어붙였다가 또 밀려 내려왔다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더 치러야만 끝이 날 텐가?” 소대장도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린다. 함께 했던 전우들이 먼저 죽고 적의 총탄이 언제 나의 가슴을 꿰뚫을지 알 수 없는 현실은 병사들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오는데 어찌나 예민한지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 할 정도이다. 넬슨 소대장은 전쟁이 길어짐으로 행여나 대원들이 전투 의욕마저 상실할까 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해리슨이 다시 말을 잇는다. “지난 폭격으로 중대원들을 거의 다 잃고 우리 네 사람만 겨우 살아남았는데 중대장님은 시신을 보지 못했으니 어딘가 살아있겠지만, 생존은 알 수 없고 부대도 부대원도 남아 있지 않은 지금 솔직히 회의가 많이 듭니다. 두렵기도, 하구요.” 넬슨이 해리슨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눈빛은 다정한 눈빛이었고 소나기 같은 폭격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함께 있는 것에 대한 고맙고, 감사함도 녹아있는 눈빛이었다. 어깨를 다독여주며 “우리 모두 힘을 내자, 먼저 간 전우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 사람들이 나 대신 죽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거야 그러면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지지 실제로 우리는 고국에 돌아가서도 먼저 간 전우들의 삶까지 몇 몫은 더 살지 않으면 안 되지 않는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네 그렇습니다. 전우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잘 살아야지요.” 해리슨의 말은 뜻밖이었다. 아니 감동적이기 까지했다. 지금까지 암울했던 마음은 살아야 할 이유로 분명해졌고, 전쟁도 향방 없는 싸움이 아님을 각자 마음속으로 확립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장병들의 얼굴은 생기가 돌았고, 소대장 넬슨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대원들의 밝아진 표정들을 보고는 몇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가벼워졌다. 왠지 중대장 제럴드도 어딘가에서 부대원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다들 이리와 봐” 넬슨은 지도를 펼쳐놓고 수색한 마을과 하지 않은 마을들을 구분 지어 놓았다. “가위 표시는 이미 우리가 지나온 곳들이고 점을 찍어놓은 곳은 그래도 지도에 나올 정도의 마을들이네.” “한국의 특징은 지도에도 없는 조그마한 마을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스탁턴 병장이 다음 장소를 어디를 선택하면 좋을지 신중하자는 뜻으로 한마디 거든다. “앞의 마을을 그냥 지나치고 이 끝 마을을 먼저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중대장님이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도 없고, 자 다음 마을로 이동하자.” 넬슨이 먼저 몸을 일으킨다. 한 시간 정도 행군하여 도착한 마을은 가구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젊은 사람은 피난을 갔는지 보이지 않고 늙은 사람들만 눈에 띄었다. 미군들을 봐도 한두 번 쳐다보고는 반기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두려워하거나 피하여 숨는 것도 없었다. 아마 적군을 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할아버지 왜 피난 안 가셨어요?” 넬슨이 새끼를 꼬고 있는 어떤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넨다. 물론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약간의 경계어린 눈으로 지그시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새끼꼬는 일에 더욱 집중했다. 병사들은 할아버지의 손놀림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할아버지의 손놀림으로 만들어지는 새끼의 용도가 궁금하여 물어 보지만 할아버지는 마치 ‘양놈들이 시방 뭐라는 겨’ 하는 표정으로 못 들은 척 아무 반응이 없다. 넬슨은 할아버지 곁에 앉은 다음 할아버지와 눈을 맞추고 손짓 발짓을 시도한다.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고 반대편 손으로 땅바닥을 가리킨다.’ 즉 푸른 눈의 미군 병사가 이곳에 오지 않았느냐? 라는 말을 대신해서 손짓으로 전해 보지만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아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푸른 눈은 이곳에 온적이 없다는 것인지..... 느낌상 알아듣지 못하시는듯하다. “캐시어스, 정찰을 다녀오게.” “예? 이동하실 겁니까?” 넬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원들은 이번 마을에서도 특이점을 찾지 못하고 다음으로 이동한다. 정찰을 다녀온 캐시어스는 이상 없음을 보고했다.   “캐시어스 자네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 했든가?” “네, 맞습니다.” 넬슨 소대장은 캐시어스 상병과 나란히 걸으면서 먼저 말을 건넨다. 넬슨은 캐시어스의 어머니가 한국 사람인 것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새삼 생각이 났나 보다. “이번 전쟁에 참전하기 전에는 사실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네. 막상 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가난한 데다 남북으로 나뉘기까지 했으니.... 그래 어머니는 어디 분이신가?” “안타깝게도 그동안 어머니의 나라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캐시어스는 어머니의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지원했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럼 이곳이 어머니의 모국이 아니란 말인가?” 넬슨은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마치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놀란다. “아닙니다. 소대장님 맞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 맞지만 태어나기는 하와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와이?” 걸음을 멈추고 캐시어스를 쳐다보며 묻는다. “네, 하와이” 하와이라는 말에 이해가 잘되지 않는 듯 넬슨은 점점 궁금증이 더해간다. “그 재미있구먼 이 조그만 나라에서 또 하와이라니 캐시어스 괜찮다면 어머니 얘기를 계속 좀 들려주게” 넬슨은 캐시어스 상병을 보며 말했다. “한국에서 전쟁이 났다고 했을 때 우리 부대에서 상병 자네가 제일 먼저 지원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네.” 캐시어스는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가끔 고개를 떨구기도 하고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의 눈빛은 빛났다. “늘 어머니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남과 북이 한쪽은 민주주의 또 다른 쪽은 공산주의로 갈라서서 전쟁을 벌인다고 하니 참전에 대해서는 길게 생각할 것이 못 되었습니다.” 캐시어스는 수통에서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옷소매로 입술을 쓱 문지른 다음 말을 계속 이어나간다. “오래전부터 한국은 일본의 간섭으로 인해 살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00년대 초 무렵 이민정책을 펴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 당시 하와이는 사탕수수농장이 번성해서 자체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19세기 중반 무렵 일본인과 중국인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점차 두 나라는 노동법을 앞세워 막노동인 농장일로 부려먹기는 불편하여 한국 사람을 쓰기로 했습니다. 어찌 보면 굶주림에서 벗어나려는 한국의 상황과 인력난을 겪고 있는 하와이 농장경영자의 상황이 잘 맞았다고 할 수 있죠. 일본을 거쳐 오랜 시간 배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한 한국인은 102명으로 최초의 이민자들입니다. 그 후 1905년까지 몇 차례 더 시도되었다가 일본에 의해 중단됐습니다. 어머니의 부모님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그 들은 생전 처음 이억만리 먼 이국땅에서 천신만고 끝에 일자리를 얻어 생활했지만 모든 것이 열악했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혀가 빠지는 고된 일을 한마디 불평 없이 잘 견뎠는데도 농장주의 처우는 형편없었나 봅니다. 노동자들은 농장에서 아무렇게나 자고 좀 심하게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견디다 못해 폭등이 일어나자 그 다음 부터 조금은 나아졌는데 고향이 많이 그리웠나 봅니다. 그 이후 소대장님 무슨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캐시어스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잘 듣던 넬슨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듯. “글쎄,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럼 소대장님 사진 신부라는 말은 들어봤어요?” “사진 신부?” 처음 들어보는 말로 어느새 넬슨의 표정은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캐시어스 사진도 뭔지 알고 물론 신부도 뭔지 아는 데 그런데 사진 신부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는가?” 소대장의 물음이 당연한 듯 캐시어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당시 이민자들의 대부분은 총각들로 혼기를 이미 넘긴 나이인데 고국과의 먼 거리와 통신 매체가 아직 발달 되기 이전이어서 사진과 함께 간단한 이력을 적어 보내면 중매하는 사람들의 주선으로 결혼이 이루어진대요. 참 신기하죠?” 넬슨도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웃는다. “그럼 서로 만나보지도 못하고 사진만 보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거야?” “네 실제로 그땐 그렇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맺어진 부모님 사이에서 첫 번째로 태어나셨고 다행히 이민 1세대는 2세들에게 가난과 노동의 고역, 차별, 학대, 멸시받는 것들은 물려주지 말자는 강한 신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타파하는 것은 교육밖에 없다고 믿고 일찍이 자녀 교육에 눈을 뜨게 되었지요. 어머니도 어느 정도 성장하고부터는 미국본토로 나와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캐시어스의 말이 끝나자 넬슨 소대장이 다시 묻는다. “캐시어스의 어머니의 얘기가 아니라 마치 한국의 역사 한편을 공부하는 느낌이군. 낯선 하와이로 이민을 결정하신 외조부님의 심정을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 데.... 고향은 내가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고 부모 형제와 일가, 친척들을 뒤로하고 듣도 보도 못한 먼 이국땅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겠지. 그런데 외조부님 고향은 한국 어디인가?” “인천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천이면 상륙작전을 펼친 그곳 아닌가?” 잠시 기다림도 없이 넬슨이 묻는다. “네, 바로 그곳입니다.” “캐시어스! 자네 누구보다 감회가 새로웠겠구먼” “네 말로만 듣던 어머니의 나라와 또 외조부님의 고향에서 작전을 펼친다고 하니 가슴이 많이 벅차올랐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용감하게 전투에 임했던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네. 캐시어스 자넨 지금까지 한 번도 뒤로 물러가지 않았었지. 대단했네.” 넬슨의 눈빛은 이제야 모든 것을 이해 한다는 듯 반짝인다. “아 아닙니다. 소대장님”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어머니의 그 이후 이야기도 좀 들려주게 지금까지 들어봤던 사연들,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네.” “네 소대장님” 캐시어스의 마음은 미국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어머니 생각에 가슴 가득 눈물이 젖어있었다. 대원들은 혹시 모를 적과의 교전을 생각해서 쉽게 노출되는 큰 도로보다는 비교적 오솔길같이 조그만 길을 이용했다. 갑자기 앞서가던 해리슨과 스탁턴이 뒤를 돌아보며 몸을 낮추라는 신호를 보낸다. 뒤따르던 두 사람도 급히 몸을 낮춘다. “무슨 일인가?” 넬슨이 묻는다. “적의 정찰병 같습니다.” 스탁턴이 손가락으로 11시 방향을 가리키며 망원경을 소대장에게 건넨다. “북한군으로 정찰을 나온 게 틀림없네.” 넬슨은 지도를 꺼내어 북한군 병력들이 어디쯤 있을 것을 가늠한다. “해리슨 정찰병들이 어디쯤 와있는가?” “대략 700미터 정도 앞까지 와있습니다.” “각자 몸을 숨기고 내 신호 없이는 절대로 총을 쏴서는 안된다.” “네 알겠습니다.” 각자 바위 틈새와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긴다. 그리고 잠시 후 북한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섯명이 한 조를 이룬 것 같았다. “동무들 저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요.” 고참으로 보이는 병사가 말했다. “네, 동무 그럽시다.” 총은 한곳에 기대어 놓고 모두 바위위로 올라서자 바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런데 북한군들이 올라앉은 바위가 공교롭게도 캐시어스 상병이 바위 밑 틈새에 몸을 숨기고 있어서 나머지 대원들은 손에 땀을 쥐며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잘못되어 발각되는 날에는 포로가 되던지, 아니면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김동무 앞으로 우리 부대는 어떻게 되는 기야요?”상황실에서 상황을 기록하는 김동무에게 무슨 새로운 정보라도 하달되었는지 옆에 있는 병사가 묻는다. “뭘 말이요?” “지금 3일째 학교 옆 마을에서 이동을 안하고 있으니 계속 여기있을 것인지, 아니면 남으로 밀고 내려갈 것인지 궁금하오.” “동무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소.” “아니 뭐 들은 것이라도 없소?” “아직 수령님의 지시를 기다리는 중인가 보오.” 김일성의 지시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말에 다들 아무 소리도 못 하고 담배만 양 볼이 쪽 들어가도록 깊게 빨아들이고는 후욱~ 하고 꺼지듯이 연기를 내 품는다. 그러다 폐 깊숙이 얻혀있는 갓난이 주먹만 한 가래를 컄아~앜 하고 입으로 끌어 올리고 속에서 오물오물, 하다가 엣퇴~ 하고 힘껏 내 뺕는다. 날아간 가래는 바위 밖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캐시어스 상병 옆으로 떨어졌다. 까맣고 누런 가래에 침까지 묻어있어서 하마터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다행히 소리는 나가지 않았지만, 누런 가래가 몸에 닫는 상상을 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그럼 김동무 생각엔 어떻게 될 것 같으오?” 김동무는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계속 질문을 던지는 병사는 김동무가 아무 말이 없자 계속 말을 이어간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 연합군들이 계속 몰려들고 물론 우리도 중공과 소련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1차 침공때 같이 낙동강까지 내려갈 수 있을지 아니면 서울만 탈환하고 더 이상 남하하지는 않을지? 만약 내려간다면 언제쯤 밀고 내려갈지 수령님의 생각이 몹시 궁금하단 말이오?” 잠자코 듣고 있던 김동무가 천천히 입을 연다. “아마 1차 때처럼 단시간에 조선의 남쪽까지 내려가기란 무리일 꺼요. 더군다나 사령관은 2차 대전을 종식시킨 맥아더가 아니요. 그가 이번 전쟁에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취임하기 전 우리 북한 조선인민들이 낙동강을 넘어 적화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는데 그 순간 그가 인천상륙작전을 펼칠 줄 누가 알았겠소? 우리 중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 않았소.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단시간에 함경북도 저 압록강까지 진격하리라는 것도 예상 못 했고 그때 모택동 동지가 인해전술로 우리를 돕지 않았다면, 전쟁은 맥아더에 의해 벌써 끝났을 것이오. 그러니 조만간 상부로부터 무슨 지령이 내려오지 않겠소.” 정찰병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서둘러 되돌아간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넬슨은 지도를 꺼내 펴고 수색하고자 한 마을은 북한군들이 주둔하고 있어서 다른 마을로 선회하기로 하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4.   영원의 마을에서 제럴드를 본 사람은 영원의 모녀 외에 광택이가 유일했다. 북한군들은 첫날 광택을 비롯해 청년 몇 사람과 국민학생 동호와 영수를 잡아다가 이유도 말하지 않고 하루 동안 감금했다. 밥도 먹이지않고 굶긴 다음 한 사람씩 불러다가 교실이 아닌 조그만 독방으로 눈을 가린채 데리고 갔다. 안대를 풀었을 때는 여기가 학교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낯이 설었다. 나무로 된 탁자가 중앙에 놓여있고 천정에서 전선이 길게 내려와 갓머리가 씌어져 있는 전구가 탁자위를 비치고 있었다. 노란빛은 어찌나 어두운지 얼굴만 겨우 알아볼 정도로 아주 희미했다.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는 이만한 방법도 없을 것만 같다. 그 기에 더하여 바깥 병사들의 가벼운 대화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날카로운 기합조차 전혀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는 아무리 살려달라고 고함을 질러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좌우 벽에는 체구가 좋은 두 명의 병사가 나무의자에 부동자세로 앉아있었다. 그들은 숨을 쉬는지조차 의심될 정도로 움직임이라곤 없었다. 시선은 고정되어있고 모자챙의 그림자가 얼굴을 가려 턱과 아랫입술 외에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국민학생부터 나이순으로 차례로 불려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광택이 불려간다. “동무 이름이 뭔가?” 광택이와 마주 보고 앉은 사람은 좌우에 앉은 군인들에 비해 신장은 약간 작은 편이지만 땅땅한 것이 자비라곤 털끝만큼도 없어 보였다. 머리칼은 뒤통수 주변으로 조금 있는데 그나마 짧고 이마부터 정수리 가름마까지는 가뭄에 콩 나듯이 머리칼이 드문드문 있었다. 계급장은 붙어있지 않았지만, 당 간부쯤 되어 보였다. 광택이를 노려 보는 검은 동자는 눈꺼풀에 반쯤 걸려있는데 어두워서 흰자위만 보여 눈을 맞추며 말하기가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광택 입니다.” “누구와 사는가?” “어머니와 함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안 계십니다.” “피난 갔나?” “돌아가셨습니다.” “언제?” “일곱 살 때요.” “지금 몇 살인가?” “스물여섯입니다.” “장가는?” “아직 안 갔습니다.” 고문관은 한동안 말을 쏟아내다가 아무 표정도 없이 광택이를 유심히 쳐다본다. 광택이도 한두 번 눈을 마주치다가 더이상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두려웠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문관은 처음보다 훨씬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동무 왜 잡혀 왔는지 아는가?”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더욱 또렷했고 상대방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음~ 잘 모르겠다?” 고문관은 턱을 앞으로 당기며 심호흡을 크게 한다. 의자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세 바퀴를 돌고는 다시 앉는다. 고개 숙인 광택이를 보고 “이보라우 정말 잘 모르겠나?” 억센 평안도 발음이었다. “예~” 광택이 두려움이 가득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보갔어. 여기 누군가 미군을 숨겨 주고 있지? 누군지 빨리 말하라우” 순간 광택이의 눈이 빛난다. ‘아 이 사람들이 영원씨 집에 있는 미군 때문에 이 난리를 치는구나 이제 사 이놈들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을 할 수도 없고 말을 하게 되면 영원씨와 그 어머니는 틀림없이 고문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놈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다가 결국 죽겠지’ 광택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몸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고 표정은 불안함이 금방 드러났다. 어둠 속에서도 도끼눈을 하고 먹이의 미세한 떨림조차 놓치지 않는 노련한 고문관은 쉽게 눈치를 챘다. 광택이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자 고문관의 눈빛이 다시 한번 섬뜩하게 빛난다. “이보라우 동무들 이놈의 종간나가 뭘 알고 있는 것이 틀림 없구만 준비하라우” 좌우 벽에서 그동안 숨소리도 내지 않고 앉아 있던 병사들을 향해 소리친다. “옛 알겠습니다. 동무” 그들의 행동은 큰 체구에 비해 매우 민첩했다. 잠시 후 처음 보는 기계들을 여럿이 힘겹게 들고 들어오는데 아무래도 고문기기 같았다. 다시 한번 두려움이 몰려왔다. 광택이 앉은 의자 뒤편에서 설치준비를 하고 있다. 고문관이 광택이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보라우 동무 미군들이 어디로 갔으며 누구집에 머물렀나? 날래, 말 하라우” 그는 어느새 소련산 담배를 피워물고 있었다. “모릅니다.” “몰라? 모른다.” 앞의 병사들을 향해 “이보라우 아직 멀었나?” “거의 다 되갑메다. 동무” “빨리 하라우. 이곳에서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지~이익~ 직직 피복이 벗겨진 두 전선을 붙였다 띠었다 할 때 파랗고 강한 전류의 불꽃 같은 것이 일어난다. 그것은 번개의 번쩍임 같아서 고문관의 충혈된 눈빛만큼이나 섬뜩했다. “고문관 동무 준비 끝났습니다.” 고문관은 떨고 있는 광택이를 한번 쳐다보고는 대기하고 있는 병사에게 머릿짓으로 시행할 것을 가리킨다. “엣 알겠습니다.” 네 명의 건장한 북한군 병사는 광택이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의자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상의를 찢어 벗기고 전선을 맨살 이곳저곳에 고정, 시켰다. 오른손 검지에는 악어 이빨같이 생긴 큰 클립이 아프도록 물고 있었다. “끝났습니다, 동무” 다 됐다는 말에 고문관은 담배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연거푸 두 모금을 최대한 깊이 빨아들이고는 지그시 눌러 끈다. 재떨이에서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자 큰소리로 허파를 감싸고 있는 끈적하고 누런 액체 덩어리를 쾌에 앸 하고 밖으로 겨워 올려서 자신이 피우던 꽁초 위를 덮는다. 연기는 더이상 나지 않고 꽁초도 덩어리 속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시작하지” 그의 말은 짧고 단호했다.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광택의 비명이 먼저 터져 나왔다. 옆에 있는 사람들의 귀청이 터지는 것 같았다. 마치 쇳소리같이 날카로웠다. 고문은 15초 간격으로 계속되었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모른다고 고문 중간에 몇 번 소리도 쳐봤지만, 그들은 이미 물소의 피맛을 본 사자같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고 아주 끝장을 볼 기세였다. “이놈이 생각보다 좀 버티는데 아무래도 전류를 좀 더 올려야겠소” 광택의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전기가 온몸을 타고 흐를 때 몸속 근육들이 터지는 것 같았다. 장기들도 떨어져나와 몸속 어디선가 굴러다니는 것 같다. 얼마 못되어 두 콧구멍에서 코피가 쏟아진다. 지금까지 이런 코피는 처음이었다. 고문의 강도를 더 올린다는 말에 광택의 몸은 꽁꽁 얼어붙은 것 같다. ‘아 결국 여기서 죽겠구나.’ “아 알았소~” 북한군 병사들은 광택의 말을 신음 소리로 알고 제대로 듣지 못했다. 계속되는 고문에 광택은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 누군가 찬물을 머리에 들어부어서 정신이 돌아왔다. “고문관님을 불러주시오” “뭐 때문에 고문관 동무를 찾느냐?” “할 말이 있소”     5 영원은 숲속에서 제럴드를 만났다. 먹을 것과 함께 군복, 소총등 제럴드의 소지품들을 다 챙겨서 넘겨주었다. 북한군들이 청년들과 어린이 두 명을 학교로 잡아간 것도 제럴드에게 알려주었다. “잡아간 이유가 뭐예요?” 제럴드가 묻는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혹시 나를 본 사람이 이 마을에서 영원씨 외에 누가 또 있나요?” “아니요, 아무도 없어요.” 영원이 고개를 반쯤 숙이고 생각하다가 “아 광택씨가 그때 같이 있는 것을 봤어요.” “그럼 광택씨도 잡혀갔나요?” “네 함께 잡혀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아마 저 때문일 겁니다.” “네? 중위님 때문에요?” “네, 틀림없습니다.” “아니 왜요?” “북한은 미군을 포로로 잡으면 굉장히 유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미국은 한 사람의 자국민이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구출하든지 아니면 막대한 돈을 지불 해서라도 데리고 가지요. 미군 포로는 전쟁이 끝나면 상호 간 포로 교환 카드로도 굉장히 유리합니다.” 영원이 걱정 어린 얼굴로 제럴드를 올려다본다. “중위님 우려하신 대로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제 어떡하죠.?” “광택이가 말을 했으면 곧 북한 군인들이 집으로 들이닥칠 겁니다. 제 생각에는 집으로 가지 말고 당분간 어머니와 어디로 피해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쟁 중에 어디 마땅한 곳도 없고,,,,,” “그래도 어디든 피해야 합니다.” “광택씨가 얘기를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럴드는 영원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절망하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고문을 견디기란 죽음처럼 힘들 겁니다.” 순간 영원의 얼굴에 깊은 근심의 빛이 감돈다. 집으로 들어가지 말고 어디로 피해있는 것이 좋겠다는 제럴드의 말에 온갖 두려움이 몰려와 마음을 짓누른다. 제럴드 또한 이 모든 위기가 자신으로 말미암음 인줄 알고 마음이 몹시 아팠다. ‘만약 영원에게 화가 미친다면 자신의 목숨을 다해서 보호할 것을 속으로 다짐했다. 아아 이 순간 넬슨과 우리 대원들이 함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원을 안전하게 보호 할수 있을 텐데...’ “중위님!” 무거운 눈빛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제럴드를 영원은 나즈막히 부른다. 제럴드가 듣지 못하였는지 아무 반응이 없자 영원은 재차 부른다. “제럴드 중위님!” 제럴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영원을 바라본다. 영원은 순간 제럴드의 슬픔 가득한 얼굴을 보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눈빛은 두 사람 사이에 곧 일어날 일들을 마치 아는 것만 같았다.   제럴드가 말없이 영원을 힘껏 끌어안았다. 잠시 뒤 영원도 두 손으로 제럴드를 끌어안는다. 두 사람은 전쟁만 아니었으면 사랑의 아름다운 포옹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어쩌면 이별의 포옹이 될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눈물이 왈칵 흘러내린다. 제럴드도 영원도 차라리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   영원이 제럴드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잠시 어디론가 피해있다가 북한군이 물러가면 그때 다시 오는 것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이 소란했다. 문을 열자 이미 북한군 십여명이 어깨 총을 하고 피투성이가 된 광택이를 질질 끌고 와서는 영원의 집 마당에 팽개치듯 밀친다. “광택씨” 영원이 달려가 광택이를 흔들어 보지만 광택이는 고문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인솔해온 북한 군인이 영원을 보며 “애미 나이가 영원이네?” 영원이 상대방을 노려보며 “그렇소 무슨 일이요?” “무슨 일인지는 가보면 알아” “어딜 간단 말이오?” 북한 군인은 영원의 물음에 아무 대꾸도 하지않고 “동무들 빨리 이 애미나이를 끌고 가라우” 이때 영원의 어머니가 북한 군인들 앞을 가로막는다. “내 딸은 못 데려간다. 이놈들아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잡아간단 말이냐 이 못된 놈들아” 영원의 팔을 잡은 군인들을 세차게 내리치며 완강하게 붙들고 저항했다. 이때 북한군 인솔자가 사정없이 개머리판으로 영원의 어머니를 내리친다. 그래도 군복 자락을 붙들고 저지하자 이번에는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다. 살이 터지고 피가 튀겼다. 순식간에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처참했다. “엄마” 영원이 병사들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들어 피투성이가 된 어머니의 얼굴을 끌어안는다. “너희 여섯은 집을 수색하고, 그리고 너희는 빨리 끌고 가라.”   아무리 몸부림쳐,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영원도 광택이가 심문을 받았던 그곳으로 끌려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대머리 간부가 들어왔다. 그를 본 순간 모든 희망은 내려놓는 게 좋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그의 고문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였던가. 혹 운 좋게 살았다 하더라도 중한 장애를 인해 불편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북한 비밀 조직에서도 꽤 알아주는 고문 기술자였다. 그가 영원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연다. “이름이 영원이라고 했나?” 영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도 예상 한 듯이 앞의 사람들에게 한 것처럼 다그쳐 묻지 않았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른다. 실내는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전혀 고문실 같지 않게 조용하지만, 공기는 비명보다 더 무거웠다. 이따금 고문관의 폐에 걸쳐있는 가래로 인해 쉑~쉑 하는 거친 숨소리가 마치 스피커의 잡음같이 들린다. 이때 “톡톡톡” 문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정적을 깬다. 좌측 벽에 앉은 병사를 향해 머릿짓을 한다. 문을 열자 영원의 어머니를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가격한 그 사람이었다. “무슨 일인가? 동무” “수색을 마치고 돌아왔습 메다.” “그래 단서라도 찾았는가?” “샅샅이 찾아보았으나 ...” 찾지 못했다는 말을 할 자신이 없었는지 그의 말은 중간에 끊어지고, 끝을 맺지 못했다. “그럼 못 찾았다는 말인가?” “..........” “이봐 동무 제대로 찾긴 찾은 거야?” 그가 버럭 화를 낸다. “옛 동무 샅샅이 뒤져 봤습메다.” “그런대 왜 못찾나?” 상대가 아무 말이 없자 그는 같은 말을 한 번 더 반복한다. “그런데 왜 못 찾아자?” 상대는 연거푸 같은 말을 들었지만 아무 대답도 못하고 마치 얼어붙은 사람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 고문관은 노려보기를 멈추고 대신 문을 열어주었던 군인을 보며 “김 동무가 한번 다녀와야갔서 가서 샅샅이 찾아보란 말이야” “옛 알겠습니다.” 내심 어떤 물증이라도 찾아오기를, 바랬는데 막상 빈손으로 돌아오자 확신에 찬 기대는 증오로 바뀌어 불같이 타올랐다. 그리고 그 증오는 고스란히 영원에게로 향한다. 뱀이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먹잇감을 노려보듯 언제든지 집어삼킬 기세였다. 영원은 자신의 머리 위로 살기(殺氣)에 가까운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오로지 탁자 위로 고정돼있었다. 마치 두려움이나 공포로부터 흔들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처럼 느껴졌다. 고문관은 처음부터 영원에게는 강압적 이기 보다는 증거 위주로 하고자 했었다.   제럴드는 영원이가 집에 있으면 오히려 위험에 처할 수 있어서 보내지 않으려 했으나 어머니로 인해 한사코 간다는 것을 말릴 수 없었다. ‘광택이 발설을 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예상했던 대로 영원의 집에는 어느새 북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행여나 미군이 찾아오지는 않을까? 싶어서일 것이다. 제럴드는 어둠을 틈타 학교로 향한다.   미군의 단서를 찾기 위해 영원의 집으로 보냄을 받은 김동무 역시 샅샅이 수색하고 또 뒤졌지만, 고문관이 바라던 물증들은 나오지 않았다. 고문관은 이렇다 할 소득이 없자 자신이 고안해낸 기구들을 가방에서 꺼내어 살핀다. 이른바 고문 기기들로 옆에서 보기에도 섬찟했다. “하는 수 없지” 짧게 한마디를 던지고, 기구들을 다시 원래대로 가방에 챙겨 넣고는 고문실로 향한다. 희미한 백열전등이 켜있는 고문실에 영원이 홀로 앉아있다.   ‘북한군이 제럴드의 물증을 찾지 못하면 나를 순순히 돌려 보내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문을 해서라도 토설하게 할 테지. 아 아 제럴드! 북한 군인들이 내게 견디기 힘든 고문을 가한다 해도 나는 당신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혹 살아서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해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당신이 무사히 전쟁을 끝내고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제럴드! 당신을 다시 못 본다 해도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뜨거운 눈빛을 가슴에 안고 가겠습니다.’   영원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일까? 이곳을 온전히 나가기란 힘들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무렵 굳게 닫혀있던 문이 철컹하고 열렸다. 언제나 네 명의 군인이 먼저 들어온 다음 고문관이 들어온다.   “이봐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인내심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 못되 그러니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고문관은 영원에게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男女老少) 할 것 없이 무례하게 굴었다. “언제 누가 다녀갔나?” 그가 드디어 취조를 시작했다. 영원은 고문관의 말을 들었으나 제럴드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가씨가 고등학교 선생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어. 더구나 영어를 전공했다지? 그 미국놈하고 같이 있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겠구먼?” 영원이 첫 물음부터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 갔다 하며 질문들을 쏟아낸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고문관 앞에서 영원은 신기할 정도로 침착했다. 영원의 이러한 모습에 고문관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정치범도 포로들이나 민간인은 말할 것도 없이 다 그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떨어야 했다. 밀려오는 공포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그가 물어보는 대로 얘기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런 고문관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함에 영원 자신도 놀랐다. 도리어 고문관이 초조해지는지 갑자기 그의 동작은 빨라지고 그의 저음의 목소리는 상대방을 두려움으로 몰고 갔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트레이드마크 같은 그의 목소리도 격앙되고 뭔가 불안한 구석이 느껴졌다. “이보라 동무 끝까지 주둥이를 열지 않으면 곧 후회하게 만들어 주갔어. 그때는 소용없어라” 그가 천천히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테이블 다리에 기대어 있는 가방을 들어 영원의 눈앞에서 도구들을 펼쳐놓는다. 잠시 후 머릿짓으로 좌우에 앉은 병사들에게 뭔가를 지시한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신속하게 움직인다. 영원을 그 자리에서 광택이를 묶었던 것처럼 단단하게 의자에 고정한다. 영원은 저항하거나 몸부림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고문실에 오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각오했다. 고문관은 마지막으로 영원에게 미군의 행방과 그들의 정보를 아는 대로 말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소용이 없자 격노한다. 그리고 그의 무자비한 고문이 시작되었다. 보기만 해도 섬찟한 도구들이 그의 손에서 번쩍이자 그 어떤 살인 병기보다 무서웠다. 살을 파고드는 고통이란 죽음처럼 두려웠다. 오로지 제럴드를 생각하며 고통을 이겨보려 했으나 그대로 기절하고 만다. ‘아 제럴드~’ 신음과도 같은 짧은 외마디였다. “고문관 동지 여자가 이렇게 견디는 것은 처음 봅메다.” 좌측에 서서 영원을 단단하게 묶고 함께 고문했던 병사였다. “아 이렇게 지독한 년은 처음일세” 그의 옷에도 얼굴에도 영원의 피가 이곳저곳에 띄어 묻어있었다. 옷에 묻은 피를 보며 마치 구더기가 자신의 옷에 기어오르는 것을 쳐다보듯 오만상을 찡그린다. “이 년이 그토록 입을 열지 않는 것은 필시 미국놈에게 무슨 중요한 정보를 들었거나, 아니면 적군의 기밀을 미군 부대에 전달하도록 이년에게 맡겼는지도 모르지. 그렇지않으면 이렇게까지 버틸 수가 없잖아. 그것도 일반인이 말이야.” “그렇습메다.” 고문관은 영원에게 뭔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렇지않으면 자신의 고문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나름 강단,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처음 얼마간 버티다가 점차 강도를 높이면 끝내 실토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도 그 기에 강도를 조금만 더 높이면 토설치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확신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담배를 중간쯤 피우고 갑자기 김 동무를 급히 찾는다. “찾으셨습니까? 고문관 동무” 부동자세로 서 있는 김 동무를 향해 “김동무 이 애미나이 집을 수색할 때 이상한 서류 같은 것 보지 못했나?” 김동무가 수색하던 장면을 떠올리는 동안 고문관이 먼저 말한다. “틀림없이 영문으로 된 문서 같은 서류가 있을 테니 가서 다시 찾아봐” “옛 알겠습메다.”   제럴드는 어둠을 틈타 학교 옆 플라타나스가 우거진 숲에 몸을 숨겼다. 교실마다 북한 군인들이 모여있었고. 두 명씩 보초를 서 있는 곳은 대략 세 네 군데 정도 되었다. 교무실은 창문마다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는 것으로 봐서 상황실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창문이 가려져 있는 곳은 두 군데로 상황실과 무기를 보관하는 탄약고일 가능성이 다 분했다. ‘영원씨는 학교 어디에 있을까? 북한 군인들이 위해를 가하진 않았을까? 생명의 은인인 영원씨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구출해야 한다.’ 속으로 다짐하지만, 근심과 초조가 제럴드를 엄습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행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록 자신은 혼자이지만 영원을 구출할 방법을 세워본다. 학교 외곽을 북한군 둘이서 계속 돌고 있었다. 우선 저들을 통과해야만 한다. 밤이 되자 복도에도 불이 켜있고 보초병이 가운데와 양 끝에 서서 교대를 기다린다. ‘그렇다면 취조하는 곳은 어디일까? 틀림없이 학교 본건물과 붙어있지 않고 떨어져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본건물과 30미터 정도 뚝 떨어진 창고 같은 조그마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불빛은 다른 곳에 비해 희미하나 보초병 둘이서 왔다 갔다 하며 출입문을 경계하고 있었다. 제럴드는 저곳에 영원이 있음을 확신했다. 창고 문이 열리더니 네 명의 군인이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학교 밖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저놈들이 영원을 고문했을 텐데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제럴드는 고문실에서 나온 북한 군인들의 뒤를 밟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영원의 집이 아닌가. ‘저놈들이 뭐 때문에 이 어두울 때 영원의 집에 왔을까?’ 제럴드는 어두운 마당의 담벼락 옆 화단에 몸을 숨겼다. 성인 키 정도 무리 지어 자라있는 들국화 다발은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잘 알아듣지는 못해도 저들은 필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동무들 샅샅이 찾아 보라우 빈손으로 고문관 동무에게 갔다가는 날벼락이 떨어질 거요.” 영원의 어머니는 다행히 집에 없었다. 무엇을 찾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집을 이 잡듯이 찾았다. 저들의 손에 살림살이나 가재도구들은 이미 폐지처럼 뭉개져 있었다. ‘혼자서 여러 명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놈들이 분산되어 따로 떨어져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제럴드는 조용히 기다린다. 이윽고 하나둘 찾는 것을 멈추고는 힘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동무! 찾아봐도 없소?” 원망 섞인 말투였다. 그리고 곧장 담배에 불을 붙인다. 찾는 것을 멈추고 모두 같이 앉았다. 랜턴도 켜지 않아 목소리뿐 모습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동무 더 이상 찾아볼 곳도 없는 것 같소.” “그래 동무는 어디까지 찾아봤소?” “항아리까지 다 열어 봤소, 고문관이 말한 그런 것은 없었소.” 김동무는 걱정이 앞선다. 고문관은 틀림없이 영문으로 된 기밀 문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데, 그런데 막상 와서 찾아보니 영어로 된 책과 공책 정도뿐 문서 같은 것은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다. “동무들 먼저 가라요.” 김동무가 세 사람에게 말한다. “아니 왜요?” “나는 좀 더 찾아보고 가겠소. 그리고 동무들은 오늘 밤에 체번도 있지않소. 그러니 먼저들 가시오” 김동무는 이대로 고문관을 만나기가 몹시 두려웠다. 더 이상 찾아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랜시간 지체되면 찾아봐도 없다는 그럴듯한 변명이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세 사람은 김동무를 남겨두고 먼저 학교로 돌아간다. 제럴드는 북한군이 혼자 남은 것을 보고 드디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대검이 그대로 김동무를 향해 번쩍였다. 곧바로 세 사람의 뒤를 따른다. 불과 얼마 못되어 랜턴의 불빛을 발견했다. 그들의 뒤를 소리없이 바짝 붙좇았다. 북한 군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어두운 길을 랜턴 하나에 의지한 채 걷고 있었다. 오른편 사람을 개머리판으로 먼저 가격하여 쓰러트리고 동시에 대검으로 가운데 사람에게 충격을 가하였으나 나머지 한 사람과는 맞닥트리게 되었다. 북한 군인도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죽여야만 했다. 죽느냐 사느냐 결코, 만만치 않은 치열한 몸싸움이다. 고함이 어두움을 뚫고 울려 퍼진다. 랜턴은 이미 손을 벗어나 밤하늘로 비취고 있었다. 제럴드가 다소 밀리는 듯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인해 몸싸움이 거듭될수록 힘이 점점 빠졌다. 상대가 묵직하게 휘두른 한방이 제럴드의 상처를 그대로 강타했다. 상대는 약점을 알고 몇 차례 더 가격이 이어졌다. 그대로 사로잡혔다. 잡고 보니 그토록 찾고 있는 미군이 아닌가. 자신의 혁대를 풀러 제럴드를 포박하고는 주둔지인 학교로 향했다.   ‘아 이렇게 끝나는가.’ 제럴드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몸은 포박돼 있고 북한군은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으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북한군 주둔지가 가까 올수록 그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웠다. 모퉁이를 막 돌아 학교 불빛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뒤에서 ‘으읔’하는 무거운 신음 소리가 났다. 그리고 “제럴드 중대장님!” 하고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넬슨 소위가 북한군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폭격으로 생사도 모른 채 흩어진 대원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더러 냈다. “아니 자네들!” 서로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재회가 될 줄 누가 알았던가 아무도 예상 못 했다. 다시 한번 깊은 전우애를 느꼈다. “지금까지 중대장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감격하여 잠시 서로 말을 잇지 못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는데 때맞게 와줘서 고맙네” “그런데 중대장님 조금 전 그 상황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말을 하기엔 시간이 없네. 가면서 얘기하세” 제럴드는 매우 급한 상황을 대원들에게 알리고 영원을 구출할 작전을 세운다.     6 대원들도 생사를 모른 채 막연히 찾고 있던 중대장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게 되어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비록 적군의 수가 상대도 못 할 정도로 많으나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흥분했다. 아군의 수가 현저히 적어서 전투를 하기에는 밤이 더 유리했다. 먼저 학교 외곽을 24시간 경계하는 순찰병을 제거하고 제럴드 자신은 영원을 구출하여 최대한 멀리 벗어난 다음 대원들과 만나기로 한다. 이번 전투는 이기기 위함보다 인질을 구출하는데 전력하고 총격은 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으로 하여 아군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견을 모았다. 제럴드는 넬슨과 함께 고문실로 쓰고 있는 창고로 향한다. 아니나 다를까 병사 둘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제럴드와 넬슨은 수신호로 주고받으며 왼편의 병사는 넬슨이 바른편은 제럴드가 맡기로 하고 창고 뒤로 돌아서 접근한다. 하나둘셋 순식간에 병(兵) 둘을 조용히 처리했다. 창고 문을 열어보았으나 굳게 잠겨있었다.   한편 고문관은 김 동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보다 지체되자 빨리 자백을 받고 싶었을까? 영원에게 처음보다 높은 강도로 고문을 하기 시작했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해. 죽고 싶어 환장했나 설마 죽고 싶지는 않겠지 미국놈은 어디 있어? 어딘냐고?” 고문관은 자신의 고문기술이 전혀 먹혀들지 못하자 흥분했다. 이렇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는 처음이었다. 벽 좌우에 각각 두 명씩 앉은 군인들도 지금은 한 명씩 앉아있었다. 고문관은 예리한 기구를 써서 생명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는 급소를 골라가며 영원에게 충격을 가했다. 그러나 영원은 고통도 아픔도 더는 느끼지 못했다. 고개는 죽은 사람처럼 힘없이 축 처져 있었고 신음은 거의 내지 않았다. 제럴드와 넬슨이 대검을 손에 쥐고 문을 강하게 꽝꽝 두드린다. 오른쪽 벽에 앉은 군인이 김 동무가 돌아 온줄 알고 묻지도 않고 벌컥 문을 열었다. 문손잡이가 돌아가기도 전에 전광석화같이 미군 둘이 박차고 들어와서 양옆의 군인 둘을 처리한다. 그러나 서로 마닥트리는 짧은 순간 고문관은 벽에 붙은 빨간 색의 비상벨을 누르자 화재경보음같이 따르르르 하고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고요 속의 건물은 순식간에 전쟁터같이 변했다. 귀청을 울리는 벨소리가 어둠을 뚫고 퍼져나간다. 북한군들은 신속했다. 넬슨은 고문관을 뒤쫓아가 처리하고 대기 중이던 병사들과 합류했다. 제럴드는 영원을 안고 뛰었다. 총격전이 일어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비상 작동이 창고에서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창고로 몰려간다. 고문실에서 심문을 받던 자는 감쪽같이 없어지고 북한군인 둘은 시체가 되어 피를 흘린 채 처참하게 나뒹굴어 있었다. 침입자가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북한군은 또 한 번 비상을 걸었다. 잠시 후 고문관의 시체와 보초병들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급히 전열을 가다듬는다. 약 이십명씩 하여 삼 개 분대로 인원을 편성하고는 도주로를 가늠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중 두 개 분대가 마침 제럴드가 도주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소대장님 저 방향은 중대장님이 도주한 방향이 아닙니까?” 캐시어스 상병이 넬슨을 보며 걱정 어린 투로 묻는다. “나도 알고 있네” 잠시 고심 끝에 넬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와 저들 사이에 총격전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저들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신호는 나의 총성이 울리면 일제히 사격하는 것으로 한다.” 넬슨은 일일이 대원들과 눈을 맞추고 작전을 지시한다. “스탁턴과 해리슨은 저들을 중대장님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유인하게 그리고 충분히 멀어졌다고 판단이 되면 우회하여 약속한 장소로 돌아오게.” “옛 알겠습니다.” 해리슨과 스탁턴이 어둠 속으로 민첩하게 움직인다. 넬슨은 용감한 캐시어스를 데리고 최대한 적들 가까이 이동한다. 자리를 잡고는 적을 향해 곧바로 총격을 가했다. 탕 탕 탕 드디어 넬슨의 총구가 불을 품었다. 북한군은 자신들이 예측한 반대 방향에서 적군이 있는 것을 알고 일제히 사격을 개시한다. 양측 치열한 화력공방이 이어지다가 해리슨과 스탁턴이 조금씩 후퇴하여 계획한 방향으로 북한군들을 유인하기 시작한다. 미군들이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음을 알고는 세 갈래로 분산했던 병력은 다시 하나로 합쳐서 쫓기 시작한다. 넬슨과 캐시어스는 오로지 대검으로 소리 없이 적의 측면을 파고든다. 벌써 많은 수의 적을 쓰러트렸다.   영원을 안고 얼마를 달려왔을까. 제럴드는 힘든 줄도 모르고 한참을 달렸다. 어둠은 점차 물러갈 조짐을 보였다. 실로 긴 밤이었다. 인생에서 이렇게 긴 밤이 또 있을까? 대원들과 약속한 장소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들 무사히 돌아오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영원을 풀숲에 눕히고 두 팔로 안았다. 몸은 온통 고문의 흔적들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맥박과 숨결은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약했다. 주르르 흘러내리는 제럴드의 눈물이 영원의 얼굴에 떨어진다. 제럴드의 온기 때문일까? 영원이 힘들게 눈을 떴다. 제럴드가 큰소리로 영원을 부른다. “영원씨, 제발 정신 차리세요. 영원씨~” 영원이 제럴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제럴드의 품에 안겨있다는 것을 알고 입술을 가늘게 움직인다. 제럴드는 가까이하여 자신의 귀를 대어본다. “제럴드! 꼭 살아서 어머니께 돌아가세요. ” 영원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말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는 떨어지고 팔과 다리의 맥은 풀어져 축 늘어진다. 그것은 곧 이생에서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처음 설레임을 안겨준 사람을 위해! 그녀가 그토록 북한 군인들의 손에서 지키고 싶었던 단 한 사람! 그 사람을 죽는 순간까지 그리워하다가 결국 그의 품에 안긴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불러도 보고 흔들어도 보지만 영원의 눈은 다시 뜨여지지 않았다. 맥박과 호흡도 멈췄다. 얼굴을 옆으로 하여 그녀의 가슴에 귀를 대보아도 심장의 울림이나 떨림은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영원을 끌어안고 오열하듯 울었다. 그리고 비통하게 소리 질렀다.   잠시 후 해리슨과 스탁턴 병장이 도착한다. 1시간가량 이 지난 다음 넬슨 소대장이 겨우 도착했는데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배여 나왔다. 군복은 피에 얼룩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군과의 치열한 결전이 있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몹시 애통해 보였다. “중대장님 캐시어스 상병이 그만....”   전쟁은 누구의 승리도 없이 1953년7월27일 마침내 휴전 협정이 서방 강대국들에 의해 체결되었다. 뼈아픈 분단의 역사만 간직한 채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 한국정부는 6.25 60주년 기념으로 미국을 비롯한 유엔 연합군 참전 용사들을 초청했다. 이미 세월이 많이 흘러 그때 당시 용사들은 대부분 작고하여 생존하신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당시 젊음 이들이 누구의 강요에 못이 겨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원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그 핏값으로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자유롭게 잘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결코 그분들의 값진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자리를 보다 일찍 마련하였더라면 더 많은 참전 용사님들이 이 자리를 빛내 주셨을 텐데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함께 싸워 지킨 이 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대통령으로서 여러분들에게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계시는 동안 편안하게 여행하시고 즐거운 시간, 추억의 시간이 되어 감회에 젖어보시기 바랍니다. 본국에 돌아가서도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다음 초청행사 때도 꼭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연설을 마친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그 친구가 많이 생각이 나요. 어머니의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우리 부대에서 제일 먼저 지원했죠. 그는 정말 용감했어요.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용맹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어요. 우리는 적군에 비해 수적으로 말도 안 되게 적었지요. 폭격으로 다 죽고 저까지 겨우 다섯 명만 남았어요. 그날도 나를 구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총격전을 펼치다가 실탄이 떨어지자 이 친구는 대검만 가지고 수십 명도 더 되는 적진으로 뛰어들어갔어요. 그리고 혼자서 그의 모든 적을 무찔렀지요. 그 덕분에 나머지 우리 네 명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제럴드가 그 옛날 캐시어스 상병을 떠올리며 인터뷰 도중 손수건을 꺼낸다. “그럼 그 부하는 그 전투에서 전사하셨어요?” 제럴드는 말없이 눈물을 훔친다. “네 그 전투에서 안타깝게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그 외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연이나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면요?” 기자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제럴드는 “음~ ” 하고 짧게 신음하듯 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나 오래전 기억들이었을까? 먼지가 겹겹이 쌓여 있는 책들 가운데 도서를 찾는 것처럼 진지했다. 그것은 앵커가 보기에 왠지 고통처럼 느껴졌다. 수차례 자세를 바로잡고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이번에도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내 말을 거두었다. 슬픈 기색이 역력한 그의 얼굴이 사연을 대신하는듯했다. “나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그들에게 많은 빚을 졌어요. 그것은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아픕니다.”   상흔의 흔적들이 가득한 느티나무에 바람이 분다. 노파의 구부러진 발걸음처럼 힘겨워 보였다. 떼가 반쯤 떨어져 나간 어느 초라한 무덤 앞에 파란 눈의 노신사가 묵념하듯 서 있다. 나이는 많이 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어딘가 고매한 기품이 풍겨 나왔다. 신사는 누구와 얘기하듯 제법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의 마음속에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그 이름! 그가 잠든 무덤 앞에서도 끝내 소리 내어 불러 보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신사가 다녀간 이름 없는 무덤 앞에 지금까지 한 번도 놓인 적이 없는 붉은 장미꽃이 놓여있었다.   - 끝 -
13    [단편소설] 행복을 팝니다 / 신상성 댓글:  조회:440  추천:0  2022-10-31
[단편소설] 행복을 팝니다   신상성 1   하늘에서 실오라기를 하나 내려놓은 듯 하얀 연기가 한줄기 올라가고 있었다. 초겨울인데도 겨울바람답지 않게 잔잔한 오후다. 지구촌 이상기후가 겨울인데도 겨울답지가 않다. 그렇게 고대하던 흰눈도 지난 달 초에 비둘기 모이 같은 싸락눈을 한번 나비물로 흩뿌리고는 그만이다. 구름빛깔만 시시로 변덕부리는 게 겨울이라는 실감을 잠깐씩 깨우쳐줄 뿐이다.   사뭇, 수평선 같은 물빛 하늘이 어느 새, 생선 훔쳐먹은 고양이 눈빛으로 야옹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깨에 맨 카메라 비품가방을 한번 추슬리고는 손가락을 모아서 피사체 이미지를 잡아보았다. 긴 굴뚝 위에 얹혀 있는 태양, 그 뒤로 달아나는 나즈막한 산등성이! 이런 배경에는 야경 이미지가 좋을 것 같다.   속리산 오름길 근처 조그만 공동묘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청주 무심천으로 달려내려 가는 뱀허리 같은 강줄기도 내려다 보인다.   터무니없이 긴 굴뚝 위의 하얀 달, 그리고 새까만 배경에는 벌거벗은 여자와 젖꽃판같이 부드럽게 물결쳐 나간 산등성이가 있다. 조리개를 무한대로 열어놓고 망원렌즈를 쓰면 에로스적인 주제가 대조적인 명암으로 살아나리라. 아가페적 환희의 절정에는 참아냈던 눈물도 샘물로 흘러내리리라.   내가 왜 여태 그런 생각을 못해봤지? 그러나 곧 그런 누드 ‘사랑만들기’ 이제껏 주제화는 이미 아내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어 버렸다. 화장터! 음산하고 비릿한 사람 살가죽 타는 냄새가 향 냄새를 양념으로 쳐서 콧속으로 나볏하게 들어와 앉았다. 나는 더욱 깊이 허파 속으로 그 냄새를 빨아당겨 밑바닥에 재었다.   그 동안 줄기차게 찾아다니던 산과 해변은 이제 전세계 화장터 순례로 돌변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카메라 렌즈가 어떻게 밝혀낼까. 인화되어 나오는 사진을 보면 인간의 육안으로 보지 못하던 숨은 빛들이 빛난다. 때로 전율한다.   인도 갠지스강 바라나시 화장터, 파키스탄 국경선 사막의 애기들 애장터에서도 그런 빛을 보았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유태인 공동묘지는 평평한 공원 같다. 그런데도 비석 십자가 끄트머리에서도 불루빛이 터져나왔다.   분명 지상의 빛이 아닌 천상의 살아있는 빛이다. 아니 천상은 아직 올라가보지 않았으니까 모르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까지 못 보던 신비의 빛이 인화지에서 터져나오곤 했다.   단 한 컷의 명작을 위해선 내 가슴에 화장터 죽음의 분위기를 넉넉히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두 눈알을 이곳 화장터의 비장감으로 파김치 같이 절여서 걸어 놓아야 한다. 나는 터져나오는 헛구역질을 심호홉으로 눌러가며 다시 가파른 언덕배기를 올라갔다.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부터 위장 속에 라면 한 줄거리 집어넣지 않았던 생각이 났다. 배가 고픈데도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날캉, 혀 밑으로 고이는 신물을 뱉을까 하다가 도로 삼켰다. 그거라도 목구멍에 넘겨야 할 것 같았다. 화장터 입구 메뉴판을 올려다 보았다.   “어른 8,500원, 어린이 4,300원, 사산아 1,100원 그리고 별도 유골보관 2,000원 그 옆에는 괄호를 해서‘2년간 보관’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괄호의 뜻은 어린이 시체는 어른의 절반 값이라는 것 같았다.   만12세 이하, 어린이는 죽으러가는 데에도 어른의 절반 값인 모양이다. 어린이는 화장하는 데도 어른의 반값 정도 기름값이 드는가 보다고 생각하자 쓴웃음이 쿡! 새나왔다. 어이가 없을 때면 알레르기마냥 일어나는 버릇이다. 저능아 같은 그 웃음은 내 자신에 대한 조소이거나 냉소이다.   아직껏 폭소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우습거나 째지게 즐거워도 폭소가 없었다. 폭소 한번 안했다면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폭소하도록 기뻤던 기억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아내와 생이별한 이후는 물론이지만 그 이전의 모든 기억까지 아내가 깡그리 하늘로 가지고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어금니새로 밀려나온 비웃음이 한쪽 입술 끝을 떨게 하고는 뱃속을 험악하게 뒤집어 놓는다. 남에게 잘 띄지 않는 나의 비웃음은 냉소이면서도 조소가 되어 오히려 이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지렛대 역할도 해온 것 같다.   나는 벌써 몇 번째 읽고, 몇 번째 나 자신에 대한 조소를 날린 그 안내판 앞에 다시 서서 카메라 가방을 또 한번 추슬렸다. 두어 번 돌아오르는 이 길은 정문에서부터 이곳 화장장까지가 먼 길이 아닌데도 황천길마냥 길고 무섭다.   죽음이 무서운게 아니라 죽음까지 이르는 그 시간이 무섭다. 죽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고, 그 죽음을 기다리는 게 두렵고 고통스럽다는 말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이미 죽음이 결정되지 않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인간뿐이랴,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소멸한다. 입구에서 보면 멀고, 출구에서 보면 짧다.   버스에서 내려 정문을 거쳐 올라오게 되는 이 길은 버스 한 정거장의 절반에 절반도 안 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구비구비 지겹게 느껴진다. 고오타마 싯달타도 흰 바탕에 검을 글씨로 쓴 시체 태우는 가격표를 보면 손을 가리고 쿡 웃었을 것이다. ‘어른은 8,500원, 어린이는 50%절반 세일’   그리고 무릎을 치고 또 일갈했을 것이다. 그래 내가 뭐라든?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죽지도 않았을 꺼 아니냐. 태어났으니까 죽는 것은 당연하지, 사랑하니까 증오하는 게 아녀? 이별하니까 또 만나게 되고... 거참,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헌당가?   내가 대학시절 운동권으로 전국수배 중 잡혔다. 서대문 국립호텔에서 국민혈세로 콩밥을 먹고 있을 때는 자못 화엄경에 심취해 있었다. 그렇다고 싯달타에게 매어 달릴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단지 때때로 격하게 충돌되는 단어나 귀절들이 내 눈을 굽죄어서 다시 읽게 만들었을 뿐이다.   한용운도 법구경에 매달려 ‘임의 침묵’ 시집이 나왔다던가. 어찌되었든 그때 깜방은 하루하루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낱말이, 세상이 무서웠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이다. 그때 찢겨져 굴러다니던 화엄경 한쪼각이 아니었더라면 식당에서 숨겨온 젓가락으로 나는 자살했을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지 마라 사랑에는 이별이 있나니, 그리워하는 사람을 두지 마라 그리움에는 기다림이 있나니, 즐거워하지 말라 즐거움에는 슬픔이 있나니, 나는 그때도 쿡 웃으면서 책장을 되알지게 덮어버렸다.   그럼 뭐야 느기미! 사랑하지도 말고 그리워하지도 말고, 즐거워하지도 말고, 그럼 돌부처마냥 근엄하게 서 있거나, 전부 머리깎고 중이 되란 말야. 이 세상 사람 전부 산 속에 들어와 목탁 두드리는 것만이 최선이라면 느기미!   농사는 누가 짓고 공장은 누가 돌린단 말인가. 불경은 그래도 설핏 빈틈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성경이나 똑같이 전부 독선이야 독선! 세상 경전이란 게 전부 나만이 유일한 신神이다. ‘천산청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아니면 ‘나를 섬기는 자만이 오직 영생을 얻으리라’하는 식의 왕고집에 똥고집들 뿐이다.   구석에 옹송거리며 엎드려 있던 동료들도 그때쯤이면 자발없이 끼어든다. “야, 짜샤! 내 앞에선 팬티 안 벗고 가는 여자가 없다 이거야, 나는 누구냐? 맞혀봐?” 나는 또 똑같은 대답을 피의자 같이 대답한다. “산부인과 의사입니데이”   “그래, 전두엽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넹? 쨔샤 ‘복지아파트’ 간판에 태풍이 불었다 이거야, 그 바람에 ‘ㄱ’받침과 ‘트’ 글자가 날라갔어, 그러면 무슨 글자가 되냐? 날래 읽어보라우” “거 살살 좀 하더라꼬잉, 우선 담바구 한 모금만 줘보더라꼬... 그걸 내 성스러운 혓바닥으로 발음해 보라, 이기야? 거 태풍도 좃빠지게 불었덩갑네”   “야, 101번! 111번 깨어와, 오늘 복지아파트에 입주시켜 줘야겠어! 이거 썅! 야, 거 미국에서 온 편지 있지, 그것두 읊어봐. 남도민요 가락으루 말야”   신림동 고시원에서 육법전서 외우다가 팔찌 끼고 들어온 두터운 안경잡이가 편지를 엄중한 판결문 같이 낭송했다. (중략)   “미국에 이민 와서 보니, 어느덧 형수님 ‘본지’가 새까아만 것이 참으로 그립습네다! 여기서 글자가 한 개 틀렸능기라, 워디가 틀렸능교? 고걸 퍼떡 찾아보래이 문디이 짜석아” “퍼떡 몬 찾으모, 고 쏘세지 톱으로 팍 썰어뿔기라, 무시라 ‘ㄴ’은 자가 안 빠졌뿐나? 고녀석 지랄하고 자빠졌네. 형수 생각만 밤낮 하능갑다. 키키...” 그래도 깜방의 벽시계느 왜 그렇게 안 가는지.   2. 오후가 되었다. 속리산 화장터 풍경이 운동화 코 끝에 더욱 가깝게 펼쳐졌다. 어느 스님의 독경소리가 목탁소리를 배경으로 자장가 같이 아늑하게 들려온다. 아프리카 식인종들의 신나는 북소리 장단으로도 들린다. 그것을 배경으로 그 옆에 나라힌 서 있는 삽자가 교회에선 찬송가 우렁찬 합창소리도 흔들려 왔다. ‘욜단강 건너서 만나세!’   오늘 화장하러 들어온 시신들은 그래도 엽전 주머니가 큰 모양이다. 주로 닫혀 있던 법당과 교회 문이 활짝 열린 것을 보니 그들에게 돈푼께나 던져준 모양이다.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 어느 유족은 화장비도 없었다. 화장을 시켜놓곤 뼛가루도 인수하지 못하고 그냥 줄행랑을 치는 영세민도 있단다.   그런데 오늘 들어온 시신들은 그래도 싯달타나 그리스도가 머리를 한번씩이라도 쓰다듬어 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유가족들인가 보다.   금년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이상한 것은 그들의 장례식이다. 소위 대통령 국장이나 사회장 등 거창한 정치적 장례식에는 불교 기독교 심지어 카톨릭까지 스님, 목사, 신부들 까지 동원되어 한꺼번에 염불과 찬송을 한다. 죽음은 개인의 것이지 만인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유족이 사회의 것이 아니다.   해당 개인의 평소 종교에 따라 추모하면 될 것이다. 개인의 죽음 자체에 본인들 의지와는 무관하게 비빔밥을 만들 필요는 없다. 내 생각이 잘못일까. 지금 이 속리산 화장터에는 분골쇄신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개체의 영혼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의 영혼이나, 영세민의 영혼이나 그냥 각각 독립적인 기체로 대기권에 올라갈 것이다. 여러 성직자들이 법석을 떤다해서 극락도 가고 천당도 가고 두 군데 다 가는 것은 아니다. 또 각각의 지옥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천당이고 지옥이고 단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믿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후생이든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이든 믿으려고 한다. 우습다. 분명한 것은 저승으로 가는 영혼이나 죽음만 있을 뿐이다.   나의 평소 그릇된 생사관 때문인지 화장터를 몇 바퀴 돌아도 내 렌즈엔 만족할만한 피사체를 잡지 못했다. 슬픔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슬픔을 포착하기 위해 아내가 떠난 이후 거의 3년을 헤매어 다녔지만 아직도 확실한 인화지는 없다.   지극하고 진실된 단 한 장의 슬픔, 단 한 장면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런 ‘현상’은 아직도 없다. 슬픔의 구체적인 실체는 눈물이 아닐까, 추상적인 슬픔을 현상화시킨 데는 눈물일 것이다. 또는 어떤 현상일 것이다. 나는 다만 내 어머니의 눈동자 같은 눈동자를 단 한 장이라도 찍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고, 죽음 앞에서의 눈물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눈물보다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종합병원 영안실의 슬픔, 교통사고 현장에는 너무나 놀란 유족들의 눈물없는 경악과 슬픔, 어이없는 슬픔 등도 있다. 소아암 환자의 어린이 장례식 등도 수 없이 찍어보았지만 이상하게 하나같이 규격화된 눈물뿐이다. 아직은 어린 소녀의 죽음 앞에 엎드린 엄마의 눈물이 얼마나 절실한가. 그래도 인화되어 나온 내 사진에는 ‘진정한 슬픔’이 없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사진에 생경한 향불과 촛불 그리고 눈물 몇 방울이다. 사진에서는 ‘진실’이 살아나오지 못했다. 내 사진기술의 한계도 있다. 통곡하는 슬픔보다, 울음이 터지는 슬픔보다, 눈물 한방울 없는 슬픔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몸으로는 인지하는데 왜 사진에서는 그렇게 절실하지 못할까.   뭉크의 ‘절규’도 덧칠한 것이다. 자연 그 자체가 아니다. 한번 유명해지니까 집단무의식으로 그냥 휩쓸리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이 아닌 사진은 실체의 복사이지 실존 또는 현실의 복사가 아니다. 살아있는 투사가 아니면 피사체는 그 자체로 살아나지 못한다. 그 내부의 의미가 겉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게 한계이다.   사진가들은 다만 명암과 빛을 살려내는 작업일 뿐이다. 화가들은 덧칠로 마음껏 보완해 내지만 사진가들은 다만 찍어낼 뿐이다. 빛의 미세한 스펙트럼 한점이라도 손댈 수 없다. 손을 댔다하면 이미 그것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내가 존경하는 제주도 서귀포 선배는 비오는 날 해변에 지는 석양빛 한번 제대로 잡아보려고 해변에 아예 텐트를 쳐놓고 일년 365일 황혼에 대고 셔텨를 눌렀지만 자기가 원하는 황혼빛이 안 니온다고 미쳐버렸다. 그리고 카메라와 함께 서귀포 앞바다에 뒤어들어 자살해 버렸다.   3. 15살 나는 외로운 유기견마냥 세상 물정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그나마 고아원에서 하루세끼 굶주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지경이다. 그때 누군가 내 모습을 카메라로 사진 촬영할 수만 있었더라면, 죽어가는 어머니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내 눈동자를 렌즈에 담았더라면, 필시 슬픔의 장면이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 있었으리라.   몇 년간 헤메어다닌 내 사진첩에는 어린애가 이빨을 뺄 때 아파하는 눈물, 양로원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임종의 할머니 눈물, 공원 벤취에서 소리죽여 흐느끼는 여중생의 눈물도 포착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사계절, 전국을 방랑하며 주워모은 필름 봉투가 라면박스로 열 개는 넘을 것이다.   불에 태워버린 필름들은 더 많다. 미쳤다. 대개는 새로 발견하는 첫 피사체에서부터 셔터 감각이 달라진다. 작품의 깜냥을 짐작헤게 되는 것이다. 현상하기 전 암실에서 필름을 비춰보면 감도는 물론이지만 눈빛 속의 미립자 숫자까지 계산해낼 수 있다. 얼굴표정이 생명이다. 그중 눈동자가 거의 결정해버린다. 그러니까 셔터. 필름. 인화를 거쳐 결국 현상까지 나온 작품은 필름 10통 1000장 쯤 버려야 마음에 드는 것 한두장 정도 나올까말까 한다.   그전에는 ‘이별의 눈물’만 찍기 위해 김포공항이나 서울역, 버스 터미널 등 이별 장소를 헤집고 다녔지만 역시 진정한 이별의 사진을 못 찍었다. 오히려 엄마 사진을 한 장 들고 울고 있는 예닐곱 소년의 눈에서 나는 진실을 잡았다. 시골 기차역에서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밤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자 마침내 두 손으로 엄마 사진 위에 엎어져 울고 있었다.   나는 심상치 않은 그 소년 옆에 오후 내내 같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나는 그 소년의 눈물을 차마 찍을 수 없었다. 설사 찍는다고 한들 내 사진기술로는 그 천진한 슬픔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그냥 포기했다. 사진가로서의 스스로 한계를 처음으로 느낄 때였다.   화장터 분구 소각장 불루 연기가 크게 흔들렸다. 겨울 칼바람이 돌풍이 되어 하늘을 더욱 어지럽혔다. 흰 빛깔에서 파란 귀신빛이더니 지저분한 회색빛으로 변해 있다. 오전에 화장장 주위에 널려 있던 쓰레기며, 시신을 싸온 광목 옷가지 등속을 태우기 때문에 살가죽 타는 냄새와 함께 머리 속도 어지럽다.   원형의 화장장 둘레에 하마의 입같이 벌어져 있는 화구들의 입 가장자리가 시뻘건 혓바닥을 쉬임없이 낼름거리는 것으로 손님이 많은 모양이다. 최근에 대형교통사고나 떼거리 죽음 같은 걸 뉴스에서 본 일이 없는데 적잖은 영구차들이 심심찮게 밀고 들어온다. 시신들도 많고, 더구나 살아있어 더욱 슬픈사람들이 많은데 아직도 진지한 울음 컷을 잡은 게 없다. 이러다가 오늘도 또 별 볼일 없이 필름만 몇 통 날리고 가게 되는가 보다.   죽음의 눈물, 이별의 눈물, 처절한 슬픔을 찾으러 전국을 헤매어 다녔지만 별로이다. 야외 화장장도 종합병원 영안실마냥 어떤 프레임, 어떤 규격화가 아닐까. 다시 초조해진다. 최근에는 협심증이라고 했던가 그 비슷한 심장의 울렁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태로 지속되다간 내년 봄에 계획하고 있는 사진전이 또 무기 연기될지도 모른다. 이번에 또 연기가 된다면 아마 영원히 무산될 것이다. 내 목숨을 지탱하는 마지막 고무줄인 사진이 나에게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한다면 내가 지구별에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무슨 명작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나 자신에게 ‘존재론적’인 어떤 의미만 확인만 시켜주면 되는 것이다. 사진전은 남에게 보여주거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내가 나야! 허어 사진 괜챦은데...’ 하는 존재적인 것 한번쯤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어쩌면 사소한 그것 하나 못한다는 게 좀 스스로 우습다. 누가 사진작가로서 인정하고 안하고는 둘째 문제이다. 기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슬픔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슬픔을 알아야 기똥찬 기쁨도 알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엔 기쁨이 있고, 그래서 행복이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일까. 정말 있다면, 그 행복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 한 순이라도 좋다. 행복의 실체를 발견만 하면 된다. 그것을 위해 어쩌면 나는 평생을 헤메어 왔는지 모른다.   인간은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고 그래서 살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 행복이란 무엇인가. 기쁨의 구체적 실체는 웃음이다. 그 웃음 끝에 행복이 있을 것이다. 가장 지극한 행복은 가장 진실한 웃음에서 형상화될 수 있다. 슬픔은 눈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진실한 슬픔을 찾기 위해서 눈물의 현장을 쫓아다니는 이유도 먼저 가장 지극한 슬픔을 알아야만 진실한 기쁨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쁨의 전야로서 슬픔을 확인하러 다니는 것이다. 그것이 전혀 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나는 최소한 내가 목격한 아니 내가 경험한 슬픔만이라도 찍어내고 싶다.   지난 여름에는 철거민 촌에도 찾아다녔다. 천주교 도시빈민 사목협의회에서 나오는 기관지의 현장을 쫓아다닌 것이다. 일간지에는 그런 보도들이 잘 없기 때문에 명동성당의 회보를 찾았다. 신당동 재개발 명목의 철거 때에는 장마때라 철거민들의 가난한 설움은 더 컸다. S재벌이 대형 쇼핑센터를 세운다고 매입했다던가 그들은 포크레인으로 함부로 밀어부쳤다.   “이 짜식이, 불난 집에 와서 부채질하는 거여 뭐야!” 나는 무엇인가 목덜미께에 둔탁한 충격을 받았다. 되돌아보니 술취한 노동자가 눈알을 부라리며 다시 한번 악매를 줄듯이 코끼리 귀짝만한 손바닥을 높이 쳐들었다. 그 곁에는 입가에 핏물이 얼룩진 시골농부가 지독한 소주냄새와 함께 그 노동자를 말렸다. “괜히 엠한 사람 잡고, 생떼를 쓴다고 죽은 아들이 살아온당감? 죽은 자식 불알 잡기제... 그만 해뿌드라고 이잉” “아니, 여게가 무슨 관광지야 뭐야, 불국사야, 이런 육시헐...”   나는 대여섯 살쯤 되는 여자아이에게 열심히 핀트를 맞추고 있었다. 염이 잘 안됬는지 화덕입구 벽돌 침대 위에는 그 소녀가 잠자는듯 평화스런 얼굴이었고, 그 앞의 차단된 유리창 앞 관망실에는 젊은 여인이 울음도 잊은 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중간에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화장터 화부 노인만 아니었다면 이 젊은 엄마는 어린 딸의 잠자리를 마지막으로 보살펴주고, 밤새 잘자아! 하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을 게다. 나는 그 순간을 포착하자마자 아, 이것이었구나! 기다린 보람이 있어었어! 그 소녀 피사체를 중심으로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날렵하게 렌즈를 조작했다. 암사슴을 발견한 숫사자같이 이럴 때 나는 직업적 본능과 기쁨으로 가슴이 뛴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다.   그 지극한 슬픔을 더욱 깊이있게 포착하기 위해 어안렌즈도 쓰고 망원렌즈도 썼다. 다시 B셔터를 써서 역광을 거꾸로 이용해보기 위해 등을 돌리려는 순간에 나는 그 노동자에게 얻어맞은 것이다.   아이구, 이거 죄송합니다! 사죄하는데 그의 두번째 쇠뭉치 손바닥을 얼굴에 얻어맞고 카메라를 놓쳐버렸다. 연득없이 벌어진 일이라 주위사람들의 슬픈 눈동자들이 일시에 나에게 몰렸다.   무엇인가 깊은 계곡의 옹달샘같이 조용하고 깨끗한 그래서 오히려 따뜻하고 편안한 그런 눈길이 비쳐왔다. 극히 짧은 순간인데도 긴 터널 속을 들어가는 듯한 아늑함이었다. 맞았어! 그것은 바로 내 어머니의 눈동자, 내 아내의 눈동자였어.   나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아니 애써 잊어왔던 감격을 새삼스레 발견해내곤 얼른 떨어진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카메라 렌즈가 박살나 있었다. 속의 필름만 무사하면 되겠지. 나는 도망치듯 그 현장을 빠져 나왔다.   분명 셔터감각이 달랐어. 나는 왼쪽 가슴을 손으로 강하게 누르며 택시 속에서 파괴된 렌즈를 빼버리고 비상용으로 예비해둔 렌즈를 갈아끼웠다. 필름도 새 것으로 다시 갈아넣었다. 단 한 장만이라도 좋으니까 마음에 드는 것만 나오면 내년 봄 전람회를 꼭 개최하리라고 다시 다짐했다.   어쩌면 기쁨의 사진은 영 못 찍어도 좋다. 슬픔의 사진 단 한 장만이라도 일단 성공하면 그 다음을 계획할 수 있고, 또한 자살계획도 연기될 수 있으리라. 제1회 때는 아내의 경제적 수입에 의한 벗바리가 있어 엉겹결에 개최를 했지만 아내가 없는 지금 제2회를 혼자 감당하기가 벅차다. 아내가 없는 세상은 날로 표백되어갔고 냄새를 잃어갔다.   나는 대학시절에 아내를 만나면서부터 아, 세상은 또다르게 살아 움직이는구나, 이런 것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죽을 이유가 없었으므로 살 이유도 없이 그냥 정지되어 있는 사물로 하루하루를 넘기면서 지극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으로만 세상을 분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단말마 죽음 때문에 딱! 닫혀졌던 내 가슴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은 동물성이었다. 내가 고집해온 식물성 시각이 아내로 인해 생명감을 느끼고 힘차게 일어서기 시작했다. 우리가 동거생활을 시작할 때는 그 동물성이 기관차 추진력으로 가락떼기도 했다.   그미는 S대 사진학과에 재학중이었다. 사진에 관한 얘기가 나중에 사랑에 관한 절실한 얘기로 급변되었다. 아마튜어 사진사였던 나는 그미로 인해 프로 사진가로 변신해가고 있었다. 아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깊이를 그미에게서 새롭게 인지해 갔다. 렌즈는 그냥 피사체의 겉만 찍는게 아니라 그 속의 내밀한 어떤 존재를 잡아내야 한다.며 그미의 혀 끝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기쁨이란 어떤 실체를 만져볼 수 있었다. 꽃무덤, 우리는 수감자들의 일터 인쇄소에서 그리고 화장실 변기 위에 서서 잠깐씩 갈증나는 사랑을 했다.   그미의 젖꽃판은 메말랐지만 결코 메마르지 않고 풍성했다. 어린시절 밤이면 내가 만지작 대던 엄마의 젖무덤 같이 깊고 깊었다. 아, 이게 행복의 덩어리란 것이로구나. 똑같은 피사체 대상물이라도 작가의 인식과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야외에 공동 출사를 나가서 똑같은 환경, 똑같은 대상 속에서도 작가들은 ‘자기의 사상과 시점’을 내놓는다. 세상에 대한, 사물에 대한 자신의 주제를 프리즘으로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아내의 띠뜻한 가슴에 사닥다리를 놓고 한 계단, 한 계단 행복의 단계로 올라갈 즈음 아내는 죽었다. 투옥 중 과도한 수사와 고문으로 정신분열 증세를 얻어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평소에도 그미는 다가채기로 기절해 쓰러지곤 했다.   된장찌개를 끓이다가도 마늘가루를 넣는다는 것이 간장을 넣고 심지어는 외동딸이 먹는 감기약을 부은 적도 있다. 근처에 농약병이라도 있었더라면 거꾸로 쏟았을 것이다. 그미는 사진 작품이 안 되면 발작이 더욱 심했다. 발작 때문에 작품이 안 되는지도 몰랐다. 한밤중 전화벨이 울리기만 해도, 수도검침 등으로 낯선 사람이 방문하기만 해도 아랫다리를 심하게 떨었다. 자동 로봇 같았다.   우리가 사회에서도 어디서에서건 달가와하지 않아 목동 뒷골목에서 조그만 사진관을 개업했다. 작품도 하면서 DP점도 겸하는 사진관이다. 몇 년간 생활이 조금씩 안정이 되자 거꾸로 그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안정이 되는데 오히려 불안이라니? 그미는 촛불 같은 조그만 행복이지만 이걸 누가 빼앗을 까봐 조바심 난 것 같았다.   연득없이 옛날의 악몽에 실패 감기기 시작했다. TV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격렬해지면 꼭 그날밤 악몽에 시달렸다. 우리의 사랑이 결실로 나타난 행복의 실체, 그것은 은복하殷福河 첫딸이 태어나던 날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뺨에 흘러내리는 감격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달동네 보건소, 냄새나는 복도 끝에서 실성한 눈물을 흘렸다. 내가 포착하고자 하고자 하는 ‘행복한 눈물’이란 것도 바로 이런 이미지이다. 어쩌면 가장 단순한 이 포인트를 아직껏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소 정신외과를 다니던 아내는 대학교 시절 절친 하나가 가정문제로 자살하자 그 충격으로 죽어버렸다. TV에 보도되었던 그날 밤, 친구따라 같이 가버렸다. 그날 밤 지독한 악몽 가위에 눌려 아침에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아내가 없는 세상은 다시 나를 식물성 인간으로 돌려버렸다.   사진관도 팔아버리고 아내의 유품을 정리했다. 아내가 못다한 작품의 몫까지 부활시켜 거의 3년 동안 두번째 전람회를 준비해왔지만, 이런 상태로는 절망적이다. 불행하면서도 철저하게 불행하지 못했고, 행복했을 때는 이미 그 행복이 지나가고서야 행복의 실체가 무엇인지 기억할 뿐이다.   아내와 나는 혼인 이후, 꽃나무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왔다. 꽃과 나무만을 중심으로 사계의 모습을 담아왔고, 아내는 특히 지리산 야생화 나뭇잎을 오브제로 애살떨어 왔다. 될 수 있는 한 운동권 문제를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4. 속리산 화장터에서의 포인트 실패가 이곳에서도 연장된다면 내년 봄 전람회는 끝이다. 처음부터 극한적 슬픔의 장면을 여의도 정치판에서 포착하려는 기획부터가 실패이다. 표백되고 의도된 거짓말에서 무슨 역슬픔을 찍으려는가. 일간지 신문사 뉴스깜으로나 팔아먹든지. 스스로 우습다.   “이 친구야, 자넨 뭘 살판났다고 또 나타났어?” “어, 너는 여기서 육갑 떠는구나. 그래 옛날 양심은 어디다가 팔아먹고 이렇게 관광사진으로 비럭질해 먹으면 소화 잘 되겠구나”   같은 남산대 동아리 친구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반갑게 끌어 안았다. 그가 높이 치켜든 피켓에는 ‘행복을 팝니다!’ 라고 크게 씌어 있었다. 행복을 원하는 사람에겐 무슨 행복이든 공짜로 팝니다. ‘양심의 한 표를 나에게 찍어주세요!’ 정치구호로서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엉뚱한 곳에서 만났다. 좁은 서울바닥 어디서나 마주치게 된다. 어디든 일체 취직이 안 되니 대개는 막노동 건설현장이나 이런 정치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알바를 하는 것이다.   “야, 오늘 세 김가덜 정치 끝내기가 영광된 우리 운동권 가족에게도 쏟아지는구나. 이것 봐라. 오늘 일당이 2만5천원에다 식권 한 장이데이 커!” 그 녀석 곁의 친구도 껴들었다.   “내 수입이 니덜보다 더 크노니! 우리는 가족 모두가 전천후로 뛴다. 큰아들 녀석이 빈캔을 하루종일 주워모으면 한 5천원 땡긴데이? 하나에 10원씩 5백개 정도는 주으니까 5천원 안 되것나? 그리구 저 뒤에서 마누라 김밥장사가 저녁이면 2만원? 으악, 하루에 거금 5만원이여!”   “뭐가 얼마에유, 백수건달 주제에 큰소리만 치네유“ 곁에서 아버지 티켓을 교대해서 대신 들고 둘째가 깜찍하게 대답한다. “근디, 이짓도 오늘로 끝나는구만, 공사판보다 두 배되는 벌이야. 대통령 선거기간 석 달 동안 좆빠지게 다녔제. 여기 여의도에서 세 후보 김가놈덜 피켓을 차례대로 다 들어주었네”   신림동에서 고시준비하다가 운동권으로 뛰어들어온 녀석의 생존방법이 거기 그렇게 황혼빛을 받아 자조하고 있었다. 속리산 화장터에서 느끼던 땀 냄새, 슬픔 냄새가 조금은 묻어났다.   “이 친구야, 오랜만에 우리 마누라한테 가서 따끈한 오뎅국물에 소주나 한잔 하자구, 이제 선거도 날샜어. 세상 머어 다 그런 거야. 행복은 어디에도 있지만, 또 어디에도 없는 거여” “암, 그래도 맥주보다는 깡소주가 낫제, 우리 체질에...”   며칠 후 나는 은평천사원으로 갔다. 어린시절 나를 다독거려주던 원장 어머니는 말없이 나의 외동딸 은복하의 손목을 쥐어주었다. 그러면서 어서 데리고 가라고 손짓만 했다. 훨씬 늙어버린 원장 어머니는 중풍까지 들려 있었다. 나는 3년만에 복하를 찾아 내왔다. 아내가 죽고난 후 복하를 천사원에 맡길 때 그미는 나와 같은 7살이었다. 끈질긴 부녀의 운명에 치를 떨었다.   행복이란 거, 그리고 기쁨이나 슬픔이란 거, 그것은 전혀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우습게 깨단했다. 여의도 우리 남산대 동료 피켓에서 무릎을 친 것이다. 정치판 유세에서 ‘행복을 팝니다!’ 역으로 행복은 파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다. 내 안에서 내가 끌어올리는 샘물이다.   그런데도 나는 정물적인 눈물에만 아직까지 집착해 온 게 아닌가. 맞았어! 내 사진에는 냄새가 없어? 눈물의 찐한 냄새? 핏줄이란, 어떤 이념보다 본능적이라는 것이다. 내 딸은 아내의 반쪽,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반쪽이다. 이제 온전한 하나로 붙여보자. 복하를 끌어 안았다.   3년만에 처음 나타난 아빠를 원망도 하지 않고 눈물로 얼굴을 묻었다. 꼭 아내 같은 마음씀이다. 그 여의도 계단 황혼빛에서 나는 ‘진실한 눈물’을 찍어냈다. 렌즈로 찍은 것이 아니고 내 깊은 가슴으로 찍었다.   행복이란 자기 눈의 중심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타인의 눈으로 찍어야 한다. 아니 나는 이제 사진 전람회 같은 건 관심이 없다. 복하의 체온만으로도 행복하다. 나도 여의도 피켓이라도 들고 일당을 벌어볼까. 이제 내년이면 복하도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기 때문에 사진을 버리고 현실에 눈 떠야 한다.   아내의 눈으로 보듯 복하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복하의 손목을 잡고 어머니 유골을 모신 보광사에 향불을 하나 올리자. (*)         [작자 프로필] 신상성{申相星) 소설가, 문학박사, 동국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동아일보] 신춘문예 ‘회귀선’ 소설당선(1979), 서울문예디지털대학 및 피지(FIJI)수바외대 설립자겸 초대총장, (사)한중문예콘텐츠협회이사장,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감사, 한반도문학발행인, 한국문학신문논설실장, 대한언론인회명예회원, 용인대 명예교수. 중국 낙양외대, 천진외대 석좌교수 등. 수상; 홍조국가교육훈장, 국가유공자(월남전), 경기도문화상(제15회), 한국펜문학상(제16회), 동국문학상(제10회), 한국문학상(제55회), 중국 장백산문학상(제1회) 등 다수 소설집; 목불, 처용의 웃음소리, 목숨의 끝, 인도향 등 저서 약 50여권.
12    [중편소설] 목숨의 끝 / 신상성 댓글:  조회:427  추천:0  2022-10-31
[중편소설] 1992년도 제31회 경기도문화상 수상작   목숨의 끝   신상성   1. 서울역 시계 탑, 6시 시계 침   염천교를 지나, 얼음에 팅팅 얼어터진 서울역 입구 지저분한 눈 위에 몇 번 나동그라졌다. ‘미군장병여행안내소’ 앞의 한국인 보초가 징그러운 웃음을 노랗게 던져왔다. 그 옛날, 식민지시대의 표상적 ‘서울역 건물’ 앞에서, 쓰러져 허리를 움켜쥐고 있는 나에게, 일본 헌병의 앞잡이 같이 생긴 보초는, 더욱 흥감부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비웃음의 포위망으로부터 빨리 벗어나려고 허둥댈수록 해나(海那)의 몸뚱이는 제자리에서 물레방아 탈 뿐 움직여 지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서부역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난간을 붙잡고 나서야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난간 아래로는 교외선 열차가 인왕산 노을을 머리로 해띵할 듯이 달려나가고 있었다.   정월의 매서운 바람 끝을 밀어내며, 턱 밑으로 고여 떨어지는 식은땀을 한 손으로 쓸어내려 눈보라에 흩뿌렸다. 식은땀은 말라붙은 젖 무덤 사이로, 뼈마디가 드러나 있을 등골 사이로, 봄날 깊은 골짜기 눈 녹은 물 흐르듯 흘러내렸다. 부삽으로 자궁을 파내는 듯한 통증이 다시 엄습한다. 현기증이 났다. 치를 떨었다. 깨물려 딱지가 앉은 입술을 다시금 깨물었다.   난간을 잡은 한 손이 부르르 떨리더니, 닫다가 왼 몸이 허공에 빙빙 돌았다. 헛구역질이 났다. 해나는 난간을 더욱 옥죄었다. 이마를 잡은 다른 손바닥에는 인공위성과 은하수가 쏟아져 내렸다. 얼음판 위에서 곤두박질 치듯 머릿속에 별들의 전쟁으로 어지럽다.   그러나, 가야 한다. 그것도 서둘러 가야 한다. 난간에 이끌려 한 걸음씩 걸음마 하듯 해나는 쇠 난간에 한 움큼씩 식은 땀을 고여내며 걸어나갔다. 무슨 영화 촬영 장면 보 듯 행인들이 발 뒤꿈치를 멈추며 해나를 핼끔거렸다. 5시 55분! 구름다리 끝 서부역 광장의 전봇대 시계 침이 남북으로 거의 일직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형 시계 탑 그 뒤의 ‘한보아파트’ 간판을 칼질하듯 세로로 그어 놓았다. 세로로 된 일직선의 시계 침이 세상을 둘로 갈라놓는 것 같다. 장난같이, 운명같이 해나의 가슴을 두 개로 쪼갠다. 운명의 신은 수박통을 둘로 갈라 선택을 촉구하고 있다. 아, 5시 55분… 완전한 자연수 6이란 숫자에는 남북방향이 일직선으로 서 있다. 6이 되기까지 5가 셋이나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제 나머지 5분 동안, 어떤 쪽이든 결정해야 한다. 약속된 정각 6시면 무엇인가 운명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의 생명을 죽여야 하느냐, 살려야 하느냐, 아니면, 모자가 다 죽을 수도 있는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주어진 운명이 아니고, 주워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수술동의서’에 갈기는 싸인 하나가 목숨을 좌우하는 것이다. 서부역으로 내려오는 층계난간에 머리칼을 가다듬으며 가뿐 숨을 쉬었다.   바로 길 건너로 ‘소화병원’ 초록색 형광 빛이 각막을 때린다. 그 병원의 인큐베이터 속에는 간단한 싸인 내 작업 하나로 죽어야 하느냐, 살아야 하느냐, 하는 무서운 생사여탈권이 내 볼펜 끝에 매달려 있다. 무의식, 무의지의 한 생명체는 전혀 나의 선택에 의해서 생사가 결정되어야 한다. 해나는 ‘나’라는 귀책사유에 다시 가슴을 쓸어내린다.   6시가 갈라주는 시계 침 마냥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수술할 것이냐, 아니냐, 선택해 주어야 한다. 성공률은 반반이란다. 오른쪽이 ○표이고 왼쪽이 ×표라고 마음 속으로 정한 다음에 해나는 벽시계를 마주보고 서서 그 중심에 배꼽을 맞추었다. 손 지갑을 높이 쳐들었다. 손 지갑이 떨어지는 쪽으로 의사에게 대답하리라.   오른쪽이면 의사의 수술동의서에 찬성이고, 왼쪽이면 그 반대다. 높이 쳐든 내 손끝은 가늘게 떨렸다. 수술에 찬성한다고 해도 그 다음 더 큰 문제가 엄청난 수술비이다.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데 보험은 생각지도 못했다. 수술계약금이 든 손지갑은 공중에서 떨기만 할 뿐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벌써 의사와 약속한 6시가 넘어가지 않는가?   사람이 약해지면 별 짓을 다 한다던데, 해나는 스스로의 불길한 예감에서 도망치듯 일어나 뛰어갔다. 아니, 기어갔다. 단, 1% 아니 0.01%라도, 아니, 아니, 억 만분의 1%라도 나는 수술시켜야 한다. 이미 태어난 생명체를 포기할 권리가 내게는 없지 않은가? 단지, 수술비가 없다는 이유로 아기 목숨을 없앨 수는 없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한 점 혈육이 될 지도 모른다. 해나는 자궁을 이 미 다 들어내어 다시는 아기를 가질 수가 없다. 늦게 가진 아이라 무슨 협착증이라던가 자궁을 드러내던가, 아기를 포기하던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나는 단연 아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난 얼마 후에는 또 ‘식도협착증’이란 게 아기에게 생겼다며 그 목구멍에 물 한 방울 넘어가지 못한다는 청천벽력이다. 아기의 식도(食道)를 넓히던가, 심할 경우 식도(밥줄)를 절단하여 인공호수를 가운데 끼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끼 손가락보다 더 가는 아기의 목숨 줄을 무슨 팬티 고무줄같이 기계적으로 말하는 원장의 입 놀림만 해나도 기계적으로 바라보았다.   우선, 수술계약금부터 마련해 오느라 며칠 동안 노오란 하늘만 바라보며 뛰었다. 방바닥에 카드를 뒤집어서 늘어놓은 것같이 아기방 가득히 채워져 있는 인큐베이터는 유리장식은 비정한 생물실습실 같다. 고교 생물시간에 사지를 바늘로 찔러서 잔인하게 벌려놓은 개구리 해부 실험실 같이 섬뜩하다.   미숙아, 기형아, 불구아들은 하나의 실험용 새끼 토끼같이 그냥 ‘기다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입금지!’ 푯말 앞, 이중 유리창 밖에서 며칠 전, 정신 없이 다녀갔던, 나의 갓난아기를 더듬거렸다. 내 아기를 찾았지만, 똑같은 인큐베이터 유리상자는 전부 비슷했다.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주먹만한 아기 목숨들이었다. 대개 죽었는지 살았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울먹이고 있는 해나 곁에 누군가 다가와서 어깨를 다소곳이 끌었다. 그 간호원이 구석에 있는 어떤 특수병실 안으로 어깨를 밀며 들어갔다. 그렇게 보고 싶던 아기인데, 막상 보려고 하니 종아리가 달달 떨렸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은 해나에게 간호원이 인적사항을 다시 묻더니 인큐베이터를 밀고 나왔다.   푸르스름한 아기의 얼굴에는 전기줄 같은 투명한 고무줄이 코로, 입으로 함부로 이어져 있었다. 머리 한복판으로 달아난 링거 줄을 만져보았다. 절벽 저쪽의 안개 줄 같이 전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이게, 한 토막 빨랫줄 같은 게, 나의 분신이란 말인가? 해나는 가슴을 한번 쓸어 내렸다.   아기의 콧구멍 쪽 희미한 전기줄에 바람결 같은 식물성 숨결이 안개같이 나들명거리는 것이 겨우 살아있다는 표징을 보일 뿐이다. 아! 엄마아, 나야, 역시 감은 눈 속의 아기는 그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아니, 환청 같이 들렸다. 금붕어 새끼의 아가미 운동 같이 보일 듯 말 듯한 생명체 아, 그것은 바람보다도 더 희미한 목숨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딸이든 아들이든 무조건 ‘밝고 맑아라!’ 하는 뜻으로 명청(明淸)이라고 이름을 지읍시다! 나 같이 이런 교도소 같이 어두운 곳에 있지 말고, 아기는 밝고밝은 곳에서 살아야지, 여보! 하고 껄껄 웃던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한’이라는 내 성을 붙이고 보니 ‘한명청’ 불편한데? 당신의 성씨 ‘하’ 씨를 붙이는 게 어때? ‘하명청’ 물 ‘하’ 즉 물이 맑고 맑다아? 그거 괜챦은데?   중국의 역대 어진 정치가 때때로 함정에 빠졌지, 특히 근현대사에서 위험하게 변질되었단 말야, 명나라는 한나라 문화보다 못했고, 청나라는 명나라보다 더 지독했거든, 거꾸로라면 더 좋았을 텐데. 청, 명, 한으로 말야. 그렇다고 성을 바꿀 수도 없고, 여보! 어쨌든 이왕 마음먹은 거니까 그대로 ‘한명청’으로 합시다. 명청이가 이담에 커서 거꾸로 엎어진 권총정부 군사독재의 이 한국사회를 바로 잡으면 되니까, 안 그러우?   남편의 호탕한 얼굴이 떠오른다. 물론 나를 웃기려고 너스레를 떠는 것이다. 그러나 밝고 맑아야 할 명청의 얼굴은 푸르고 푸르기만 하다. 입술은 아예 새카맣게 탔다. 젖을 빠는지 입술이 그림자같이 흐미하게 우직인다. 담당의사는 나를 진찰실로 불러내었다. 곧 퇴근해야 한다면서 수술동의서와 서약서를 내던졌다.   ‘수술이 끝난 후, 회복기를 거쳐 퇴원명령서가 발부된다. 약1개월간 아기를 찾아가지 않으면, 병원 측의 임의대로 영아원 등에 이동을 시켜도 아무 이의가 없음…’ 등의 서약서이다. ‘영아원’이라는 활자에 붉게 밑줄을 그은 글자만 지렁이 마냥 검붉은 고딕으로 꿈틀거렸다. 갓난아기 전문병원인 이 ‘소아병원’엔 창녀와 미혼모들도 많아서 아기를 버리고 달아난다고 했다. 주춤해 있는 해나의 어깨를 아까의 인큐베이터의 간호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아기가 죽을 경우, 대학병원에 실험용으로 내놓으면 사례금도 줍니다.”   그때까지 말이 없던 의사는 처음으로 이 말 한마디를 해나의 머리 위에 던져놓고, 몇 개의 도장이 찍힌 서류를 챙겨 들고 나갔다. 전세금 2백만원에서 우선 계약금조로 빼온 3십만 원이 든 손 지갑을 간호원에게 넘겼다.   2. 시간 속에서 피가 난다   해나의 남편은 아기의 이름만 ‘한명청’ 하고 지어주었을 뿐, 아기의 얼굴을 모른다. 뒤통수가 유난히 짱구인 자기의 분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수술 성공률이 시계 침 6시와 같이 좌우 절반인 아기를 어쩌면 부자지간이 한 번도 못보고 헤어질지도 모른다. 아니, 남편은 아기가 수술대 위에 놓여있다는 사실도 아내가 위험천만의 수술을 했다는 것도 모른다. 모른다.   해나가 굳이 알리지 않았다. 이 차가운 겨울, 차디 찬 시멘트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있을 남편에게 또 하나의 고통을 보탠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갓난아기 엿가락 같은 여린 몸에 날카로운 칼을 댄다는 것은 차라리 그대로 죽게 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이라며 치를 떨었다. 그러나, 막상 수술동의서에 도장을 찍고 나니 후련해진다.   금년에 3.1절 특사에도 남편은 희망이 없다. 명청이의 푸르고 어두운 얼굴보다 더 어둡고 암담한 세상 빛이다. 새해라고 세상은, 거리는 모두들 들떠있지만, 남편은 지난 해 성탄절 특사에도 제외되었다. 새해의 불탄절에도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은 지난 주에 서대문 교도소로 면회 갔을 때, 갑자기 청송감호소로 이감시킨 것이 암시한다. 남편의 죄는 그렇게 군함의 닻 쇠뭉치 같이 무거운 것일까?   무엇보다 남편의 대쪽 같은 성격이 어쩌면 평생 옥문 밖으로 나와질 것 같지 않았다. 그의 동료들과 같이 ‘반성문’에 간단히 싸인 하나만 쳐주면 이튿날로 나올 수도 있는데 북극곰 같은 곰탱이 고집이다. 그에게는 어쩌면 해나가 수술동의서에 단순하게 그어주어야 하는 싸인 만큼이나 절벽 같은 절망일 수도 모른다. 목숨 같은 신념 같은 거.   모를 일이다. 바퀴벌레 하나 눌러 죽이지 못하고 도망가도록 부채질을 하는 위인이 그렇게 고래심줄 같은 철사 줄 고집을 등뼈에 심지로 박아놓고 있을 줄은 모를 일이다. 신세계, 미도파 쪽은 성탄절이 지난 지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별빛보다 더 찔리는 츄리 데모로 발광하고 있다.   그 츄리 빛이 싫어서 명동 갓길을 돌아 충무로로 접어들었다. 멀리서나마 몇 달 만에 밟아본 명동이 몇 년 만에 만난 옛 애인인 듯 생경한 어색함과 소외감을 던져준다. 사랑과 사기, 음모와 음독, 극치와 음치가 설치는 애증의 땅에 해나는 멍청히 섰다. 누가 나를 이리로 밀었을까. 어머니는 나 대신에 병실에 누워 있는데? 도망갈지도 모르는 환자 대신에 볼모로 잡혀 누워 있는데? ‘나는 이 허영의 거리에 섰는가. 성냥개피 알 같은 일상의 반복, 하루하루가 성냥불 같이 짧게 그리고 애련하게 타버리는 애살스런 시간들이다.’ 연애시절 남편이 불쑥 내 핸드 백에 꽂아준 연애 시가 생각난다.   ‘하나의 성냥개비를 켤 때/ 또는 타버린 것들을 버릴 때/ 더 깊고 단단하게 확인 되는 밤… 쥐 떼들의 탐욕의 이빨이 빛나고/ 피 묻은 누군가의 꿈이 버려져 있다. … 흰 공기 속을 통과하는 햇빛의 정적/ 바람이 분다/ 벌판에 흰 빨래처럼 처박힌/ 저 어두운 바다가 운다… 문득 빈 수숫대처럼 어둠 속에 설 때/ 하얗게 일어나는 야윈 물 소리…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향한 연애 시가 아니라, 민주화를 열망하는 열사의 시였다. 그런 저항 시로 인해 한 밤 중 그는 누구에겐가 끌려 갔다. 그리고 세 해가 넘어가는 데도 그의 옥문은 열릴 기미가 없다.   남편과 연애시절, 자주 앉았던 ‘제비’ 음악다방에서는 마침 시 낭송회가 열리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냉 커피를 시켜서 남편과 나의 뜨겁게 타오르는 네 개의 젊은 눈동자를 식히곤 했었지, 얼음 조각이라도 어금니에 물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타버려 재가 될 것 같은 눈빛이었고 만남이었다. 그때 해나는 뜨거운 커피 잔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빈 손과 빈 속을 데우고 있었다.   일제 시대 때는 이 다방을 이상이 그의 동거녀와 운영하기도 했다는 음울한 이곳에는 대개의 젊은 시 낭송자들이 음험하게 모여들었다. 피 토하는 저항 시들이 자욱한 담배 연기 속을 낡은 테이프처럼 뛰어다녔다. 툭, 튕기면 담뱃재 같이 금방 스러질 것 같이 헐거워 보였으나 권총 탄환이 날아와도 비켜나지 않을 장엄한 표정들이기도 했다.   ‘… 내가 앓는 눈으로 사물을 보자. 모든 세상의 것들은 정말 앓고 있었어…’ 그 당시, 남편의 습작시도 들린다. ‘살아서는 모두가 숨어사는 개 같은 도시/ 시간 속에서 피가 난다/ 소태 같은 바람이나 만지며 살라 한다/ 바람이 접시에 닿고 있을 때/ 빈사의 사람/ 의자 위에는 바람 한 가지만 남아 있다… 바람의 뼈, 황소 뿔에 받힌 한 해/ 음표처럼 쏟아지는 겨울 비를 맞는다/ 바다가 옷 벗는 소리… 바람 한 점 일어나,   남편은 또 암벽타기를 즐겨했다. 어려서부터 고아였던 남편은 고아 특유의 근성 때문일까, 특수하게 위험한 짓만 일부러 골라하는 것 같다. 밧줄과 피켓, 고리 몇 개만으로 위험한 민 대머리 인수봉을 오르내렸다. 암벽타기는 최소한 두 사람 이상이라야 안전하다는데, 남편은 기껏 나를 대동하는 게 전부였다. 나와 만나기 이전에는 주로 혼자 탔다고 한다.   내가 따라간다고 해도, 나는 수직절벽 아래에서 점심을 나누어 먹고, 암벽으로 올라간 남편을 해질녘까지 기다리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편과의 데이트 기회는 희박했다. 해나가 남편을 처음 만날 즈음에 그는 남산 동국대 조교로 있으면서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르크스 초기 공산주의와 유럽 문학 배경연구이던가? 제목부터가 살기를 띠었다. 어느 해던가, 눈보라가 몹시 치던 날, 겨울 빙벽등반을 떠난 적이 있었다. 아이젠, 보조 로프, 덧 장갑 등이 준비된 남편의 배낭 뒤를 해나는 털모자 하나 달랑 덮어쓰고 수락산 빙벽을 따라갔다. 조선조 초기 무학대사가 이태조에게 수락산은 서울을 등지고 앉은 산세이기 때문에 ‘반역산’이라고 불렀다는 수락산을 별로 말이 없는 남편이 장수원에 내려서야 등반의 목적지를 말해 주었다.   그날 오후 땅거미 질 무렵, 남편은 해나 때문에 바쁘게 하강하는 도중, 빙벽에 내려친 오른쪽 아이스 해머가 부러지면서 기우뚱 하더니 그대로 미끄러져 내렸다. 다행히 왼쪽에 박혀 있는 시몽코브라 아이스 밧줄에 걸려있는 로프가 남편의 허리를 잡아주었다. 허리가 빙벽 중간에 매달렸다.   해나가 악! 얼굴을 감싸 쥐고 한참 만에 열 손가락 사이로 남편을 올려다보았을 때, 남편은 구두 끈의 아이젠 피크를 빙벽에 박고 있었다. 욈 몸이 거꾸로 뒤집어 진 채 얼음 벽을 망치로 뚫었지만 기진한 힘은 미치지 못했다. 바로 해나의 머리 위 이삼백 미터 쯤에서 추락했다. 가뜩이나 등산객이 없는 한 겨울인데다가 극심한 눈보라까지 몰아쳐서 한 뼘 앞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때 해나가 남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더욱 어두워지는 깊은 골짜기 어둠에 대고 사람살려어! 하는 고함소리만 고작이었다. 아니, 앞으로도 그를 위해 평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조바심이 났다. 비상 보조 줄이 없었더라면 남편은 그대로 저 아래 절벽으로 다이빙했을 것이다.   남편은 해나가 아니었으며 원래 수락산 꼭대기에서 텐트를 치고 이튿날 내려올 계획이었다. 굳이 해나가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서자 함께 한 것인데 빙벽을 너무 올라갔다가 앗차! 해나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피크도 없이 급히 하강하다가 메인 줄을 놓친 것이다.   얼굴 전체에 피가 흘렀다. 거친 바위 벽에 길린 것이다. 피범벅인 된 이마의 땀을 아무렇지도 않게 닦으면서 해나 앞을 우뚝 섰을 때, 그미는 냉갈령하게 뒤돌아섰다. 그리고, 분명히 선언했다. 이후, 암벽타기를 하면 다시는 안 만나겠다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몸부림쳤다.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자기를 위험에 몰아넣었던 빙벽을 올려다보며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골쩌기가 울리도록 찌렁찌렁 호탕하게 웃었다. 바퀴벌레 한 마리 못 잡는 선비가 이런 때는 땡크 캐터필러 같이 강인하게 굴러가디니? 정말 모를 일이다. 교수대 위 밧줄을 목에 감은 사형수의 마지막 너털웃음이 그랬을까? 세상의 모든 것을 체념하고 아니, 가볍게 털어버리고 난 해탈 같은 거?   어느 새 해나는 ‘제비’ 음악다방을 나와 남편과 자주 게임을 하던 탁구장 의자에 앉았다. 탁구장 주인여자가 아는 체를 했으나, 그미는 고개를 돌렸다. 도시, 요즘에는 누가 안부를 물을 때마다 대답할 말이 빈곤했다. 배터를 쥔 젊은 남녀들이 제비처럼 그들의 사랑을 이리저리 때리고 받았다. 그들은 게임의 스코어보다 사랑의 스코어에 더 열중해 있을 것이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지금 어머니는 나 대신 병원에 볼모로 잡혀 있을 텐데… 잃은 것이 많았으면 분명 얻은 것도 더욱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과는 이빨이 맞지 않는 톱니바퀴 처럼 서걱이었다. 밤새 악을 쓰다가 결국은 내 쪽에서 먼저 울음을 터뜨리곤 했었지, 전혀 나를 잃어버리고 그에게 아예 동화되어 버리는 거야, 그게 더 편안해질지도 몰라, 적어도 지금 보다는…   엄마의 잔소리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늦었다. 나는 원래 혼자가 아닌가. 먼지 낀 창 밖으로 은하수가 보인다. 남편도 지금쯤 환기통으로 저 밤하늘을 보고 있을 까? 혹여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아님, 쓰레기 같은 이 사회를 걱정하고 있을까? 달려가면 금방 만날 수 있는 거리인데 무엇이 나를 가로막는 것일까?   우리는 처음부터 소시민적인 생활에서 행복을 찾아야 했던 거야. 애기 광목 기저귀나 빨아주며 그냥 쬐그맣고 작게 살고 싶었는데, 그런데 남편의 톱니바퀴는, 너무 커어, 크단 말이야… 70년대 청년들은 교도소 나들명 거린 별이 몇 개냐며 김지하의 ‘오적’(五賊) 등을 레닌 훈장같이 가슴에 달달 외고 다녔다.   그미는 다시 탁구장을 나왔다. 남편의 체취를 사냥개마냥 핥았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여자같이 추억을 줍고 다니던 해나가 갈현동 박석고개에 내린 것은 병원 현관문이 이미 잠긴 뒤였다. 응급실 쪽으로 돌아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서울역 미군장병 여행안내소 그 헌병 같은 매부리코로 매서운 수위가 날카로운 찍어댈 듯이 위 아래로 찔러보며 ‘뭔 여편네가 밤 늦게 싸 돌아댕겨?”   삐꺽거리는 철문이 열리며 야간 당직 간호원인지 응급실 복도 끝에서 푸르른 담배 연기를 밤 하늘에 붐어 올리고 있었다. 이 병원 원장의 무슨 친척이라는 그 수 위의 매부리코는 이곳 일신종합병원 산부인과 과장의 코와도 비슷한 독수리 주둥이었다. 병실 문을 열자, 피고름 썩는 냄새를 억지로 탈색 시키는 독한 소독제 냄새가 덮쳐왔다. 그 동안 병실에 줄곧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바깥바람을 쐬고 들어오니 악취가 뒷골을 때렸다. 해나가 입고 있던 환자복을 대신 입고 누워있던 어머니의 작은 얼굴이 진짜 환자같이 누렇게 떠 있었다. 요즘 부쩍 시들어버린 흰 머리칼은 아예 흰 눈을 뒤집어쓴 것 같다.   참으려고 천장을 올려다 보았던 눈물 몇 방울이 어머니의 앙상한 손등에 떨어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모른 척 하고 옆으로 돌아 누웠다. 어머니가 정말 이렇게 깊이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의 잠은 이미 아버지가 강탈해 갔다. 어린 남매를 낳아놓고 훌쩍 만주로 도망 가버린 아버지, 아버지 덕분에 해나의 어린 시절은 늘 무겁고 어두운 구두 발자국에 처참하게 짓밟혔다.   처음에는 일본 헌병의 군화 발자국이 강보에 싸인 해나 오빠의 포대기를 함부로 짓밟았고, 해나가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쯤에는 인민해방군 보안대원들의 군화가 방바닥을 피 칠했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족의 민비 집안의 혈족이었던 어머니는 마포 동막궁 안에서 외할머니의 품에 나비같이 잘 수 있었다. 유년 시절 나비 같은 당신의 잠은, 아버지를 만나면서부터 그 나비의 날개가 찢겨지기 시작했고, 깊은 잠을 빼앗아 가버렸다.   “이것 좀 보소 새댁! 인자 일어나 보라요! 좀 있으몬 의사들 회진 시간아이라요. 우예, 아침 좀 묵어야지요. 정신채리이소 잉, 정신! 내사마 우째 못 보것구마 잉…”   커튼을 영러 젖혔는지, 닫다가 강렬한 햇살이 눈가죽을 뚫고 침투해 들어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겨우 일어나 앉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떨어졌나 보다. 어젯밤 다시는 안 놓칠 듯이 어머니의 등허리를 끌어안고 잤었는데 어머니는 안 보인다. 화장실에 갔을까?   “새댁요, 속이 비몬 눈에 암 것도 안 보이는 기라요, 나또 이 알라 땀시로 미쳐갖고 댕겼지만요, 우선 뭘 묵고 정신차리이쇼 잉…” 곁에 있는 침대의 아주머니가 다시금 재촉해왔다. 이 병원 환자 대부분이 교통사고 등이듯이 이 아주머니의 5살 짜리 꼬마도 무슨 국회의원 승용차에 치여 누워 있었다. 교통사고 현장이 무악재 고개인데도 굳이 이곳 박석고개 병원까지 끌고 온 이유를 모르겠다며, 억하심정으로 나대는 경상도 아주머니는 식판을 해나 침대 위 에 하나 놓아주었다.   비좁은 방에 네 개의 침대가 비집고 있어서 시중 드는 가족들은 다니려면 서로 끌어안고 한 바퀴 도는 형국이었다. 이 병실에서는 해나가 고참인 셈이다. 벌써, 두 달하고도 다시 첫 주가 시작된다. 교통사고 환자들은 대개 외상이나 골절상들이어 서 응급실에 걸레가 되어 들어올 때와는 달리, 한달 정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각 병실과 복도를 뛰어다닌다. 사람의 치유속도는 놀랍다. 그러나, 육체의 병은 쉽게 회복이 되지만, 마음의 병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이 놈의 병원은 죽어가는 시체를 놓고 뜯어먹는 까마귀들이라요. 아, 우리 집 근처에도 병원이 쌔고 쌨는데, 와 안 보내주능교? 최신식 시설을 갖춘 새 병원도 얼마 전에 우리 동네에 들어섰는데, 글로 보내달라카이, 그 원무과장인가 원장의 처남인가 하는 늑대가 눈을 부라리며 안 된다 안 카요?”   “아주머니,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요?” 해나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물었다. 국물만 몇 모금 넘기는 데도, 목구멍이 불에 덴 듯 고통스러웠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국에다 밥을 반이나 덜어서 말아주었다. 그리고는 숟갈로 더서 먹여주었다. 해나는 저능아처럼 울 듯이 받아먹었다.   “아, 벌씨로 보름이 안 됐능교? 맨날 빨간 약만 발라주고 싫다는 링거만 꽂아주고는 치료랍시고 이케 하루 종일 가둬 놓으니, 나보다도 이 어린 얼라가 울매나 갑갑허것소, 이잉, 어제 점심 참에 원무과에 가서 그 동안 병원비를 물어보니 160 만 얼맨가 나왔씁디다. 뭔, 2주에 1백 하고두 6십이란 말여? 날도둑 놈들이제!”   간호원이 약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그래도 그 아주머니는 들으라는 듯이 더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원무과장 좀 만나자고 했더니, 법으로 하든 뭐로 하든 맘 대로 하라며 즤 어멈 뻘 되는 나보구 삿대질 합디다아! 보험회사구 병원이구 다 그 통속이 한 통속들인데 시상 어디 가서 하소연 해본들 뭘 합니까?”   간호원이 그 할머니에게 약봉지에서 노란 약과 파란 약을 꺼내며, 할머니 이건 지금 손자에게 먹여주시고오, 조건 이따가 점심 먹고 먹여 주시고오… 그러나 그 할멈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더욱 악을 썼다.   “이봐요, 아가씨, 그런 소화제는 이제 안 먹어도 이 얼라는 노란 똥을 잘 싼대두 자꾸 가져오네 잉? 이 동네 그 국회의원인지 서캐위원인지 그 금빼지 놈 내 가만 안 둘끼구만, 내 무식한 시골 무지랭이지만 할 말은 안 할 줄 아능겨? ” 어머니가 들어왔다. 새벽녘에 어디 근처 절이라도 갔다오는지, 다소 생기 있는 얼굴이다. 아니, 생기 있는 척하는지도 모른다. 병원비를 못 내고 있는 해나에게 배식이 끊어진 지도 오래 되었다. 어머니는 간이 찬장에다 두루마기 속에 숨겨온 것들을 몰래 채워 넣었다. 어머니가 살고 있는 동네인 근처 구파발이나, 절간 부엌에서 또 구걸해온 일용할 양식일 것이다.   “내사마, 내 돈 들어가는 기 아이고, 보험에서 나오는 깅께, 상관할 필요가 없지만서두, 그 쌩돈 병원에 쳐 넣느니 위자료를 좀 주면 울매나 좋소 잉, 이 얼라아 집에 가서 묵을 한약 값이라도 쬐끔 보태주몬 울매나 좋것소 잉?” 간호원이 약봉지를 침대 위에 던져놓고 문을 세차게 닫고 나갔다.   “문딩이, 콱 썩어뒈질 년이… 얼라가 이케 된 걸 사우디에 가 있는 즈그 아베가 알면 내 다리 몽뎅이가 당장 분질러질 꺼라요. 이런 줄 알았으몬 그 금빼지인가 똥빼지 비서인가에게 합의서 도장을 안 찍는 긴데.. 이 병원 사무장에게 깜박 속았지라우, 도장을 안 찍으몬 보험금이 한 푼도 안 나오고 당장 병원에서 좇아낸다구 하더라카이, 얼라를 살려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우선 도장을 꾹 눌러주었제… ”   경상도 아주머니는 어머니를 보자. 다시금 어머니를 붙들고 하소연했다. 어머니는 해나의 이마를 만져보더니 그미의 다리를 주물렀다. 해나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다시 누웠다.   3. 김재박의 자서전 대필   6.25 피난 중, 군산 낯선 객지에서 장티프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해나에게, 어머니는 당신의 검지 손가락을 깨물어 해나 입 속에 피를 흘려 넣어 주었던 생각을 끄집어 내었다. 그래서 명청이가 부르르 떨며 의식을 잃어갈 때도 해나는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의 새끼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었다. 독수리코 산부인과 과장은 해나의 어머니를 혐의자 마냥 앉혀 놓고 다그쳤다.   “아니 뭘 이렇게 꾸물거립니까? 빨랑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될 게 아닙니까? 시간을 자꾸 지체하다간 할머니 따님이나 손자가 둘 다 희생되는 수가 있습니다. 아…”   그러나 어머니는 어쩌지 못했다. 딸을 죽일 수도, 그렇다고 4대 독자가 될 손자를 포기할 수도 없다. 옥중에 앉아 있는 사위에게 연락을 해얄텐데 그냥 떨리기만 할 뿐이다. 심한 산욕증과 중독증으로 자궁 벽에 아기가 늘어붙은 것이다. 그때 간호원이 뛰어들어왔다. 딸이 깨어났다는 것이다. 이미 과도한 하혈과 악성빈혈로 의식을 놓고 있던 해나가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달려간 노모에게 해나는 몸부림치듯 아랫배를 가리켰다. 아기만은 살려달라는 애원이었다. 거의 6시간의 집도 끝에 둘 다 소생할 수 있었다. 기적이다. 어머니의 백일 기도 탓일까, 어쨌든 명청이가 햇빛을 보게 되었고 신생아실에서 다른 새 생명들과 같이 참새 같이 짹짹 목청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예 신생아실 복도에 거적대기 같은 담요를 깔아놓고 잠을 잤다.   혹시나 누가 갓난아기를 바궈치지 않을까? 하는 생뚱한 노파심이었다. 머리카락 끝이라도 다치지나 않을까 안달을 했다. 닷새쯤 되어 퇴원 준비할 즈음 신생아실이 발칵 뒤집혔다. 명청이의 호흡이 멎은 것이다. 담당의사가 한밤 중 달려오고, 산소 호흡기니, 강심제니 하면서 소동 끝에 명청이는 서부역 소화병원 어린이 전문병원에서 보내온 구급차에 실려나온 것이다. 빨간 불과 빨간 앰브런스 싸이렌 속에 명청이는 깨어나지 못한 채 실려 나왔다. 기도가 막힌 것이다.   한 달 전의 일이다. 그날 새벽, 달려간 해나 앞에 담당의사는 스케치 북만한 엑스레이 사진 속에 볼펜 끝을 가리키었다. 그 냉갈령한 볼펜 끝이 가리키는 식도가 볼펜 속 심지같이 가늘어지더니 밥통(위장)과의 연결 끝이 희미하게 보일락말락 했다. 식도의 기형이라던가? 1천명당 한 명꼴로 이런 기형아가 생기는데, 식도와 밥통 사이에 특수 인공대용품을 끼워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신생아이기 때문에 피부조직이 연약하여 위험은 그만큼 가중된다고 한다. 5 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성공하더라도 나중에 좀 커서 유아시절에 한 번 더 수술을 해야 한댔다. 바다 건너 다른 나라, 무슨 아프리카 아이의 사건인 듯 싶다. 생뚱하게 듣고 있던 해나는 수술계약금을 갖고 사흘 안에는 반드시 와야 된다는 의사의 선고를 듣고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사흘 동안 아기의 수술가능 상태를 최종적으로 검사해 보는 시간이라며 의사는 사무적으로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 명청이가 신생아실에서 보리차 물만 먹어도 토해 내고 푸른 똥만 싼다고 걱정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해나는 그길로 구파발에 가서 쌀가게 집 주인에게 전세금을 빼달라고 부탁했던 돈을 받아온 것이다.   박석고개 일산병원 자신의 병원비를 일부라도 갚으려고 미리 얘길해 두었던 것인데, 우선 명청이의 소화병원이 더 급했다. 어제 저녁 6시에 건네준 명청이의 목숨 계약금 3십 만원은 그 일부이다. 그러나 잔금 170만원으로는 명청이의 수술비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아이를 찾아가지 못할 시에는 법원에서 지정한 영아원 등에 이동을 시킬 수 있음’ 이라는 구절이 시뻘겋게 달군 연탄 집게마냥 가슴을 지져왔다.   “아니, 이 할마씨야, 대관절 언제 퇴원하려고 이래, 지금 병실이 모자라 되돌려보내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이렇게 죽치고만 있으면 어떡허냔 말야. 내참, 누구 망하는 꼴 보려고 하나? 이 늙은 할망구가아?”   회진 시간에 나타난 것은 담당의사가 아니라 원장과 원무과장이었다. 요즈음에는 원무과장이 아예 반말투다. 수다스런 경상도 아줌마는 주춤 물러 서 있고, 어머니는 아들 같은 원장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초등학교 아이 같이 서 있기만 했다. 왕년의 왕족 후예지만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당연히 지불해야 할 딸의 출산비를 못 내고 있다는 이유로 굴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원장까지 대동한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 단호한 선언이 있을 모양이다. 해나는 어머니를 가로막고 섰다. “돈 대신 할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무슨 일이든 시키는 데로 하겠습니다.” 대신 화살을 받았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같은 원장이 천정을 잠깐 올려다 보았다. 원장의 처남인 원무과장이 앞으로 나왔다.   “할머님, 전세금이 있다지요? 그걸 있는 대로 싹 뽑아오세요, 이렇게 무작정 있으면 입원비만 더욱 늘어나는 게 아닙니까?” “원장 선생님, 그저 죽을 죄를 졌어요, 사위 녀석이 전과 같이 벌기만 했어두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원장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애기가 또 소화병원에 입원하여 수술해야 산다지 않습니까? 전세금을 다 빼버리면 우리 모녀는 당장 어디 갈 데도 없습니다.”   “그건 그쪽 사정이지 우리가 남의 집 걱정까지 할 수 없습니다. 나도 자선사업하자고 병원 차린 게 아니니까, 오늘 저녁 6시까지 결재를 하지 않으면 이 침대에 다른 환자가 옵니다.”   “여기 딸 아이 수술비도 문제지만, 손자 녀석 수술비도 그저 막막합니다. 전세금은 사글세 방 얻을 돈이라도 남겨야지, 다 빼오면…그러니까 저를 믿고 내보내주면 매달 얼마씩 갚아나가겠습니다.”   “할머니를 무얼 보고 믿습니까? 지금까지 370만원가량 밀려 있는데,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보아서 10만원 정도는 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전세금을 모두 빼 오십시오.”   원장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원무과장이 다시 반말로 욱박질렀다. “이 할망구야, 그것도 안 된단 말야? 어엉! 원장 선생님께서 특별히 봐 주신다면 감사하다고 백 배 절은 못할망정 뭐가 안 된다는 거야. 당장 경찰을 불러 넘기기 전에… 엉! 나참 별 떨거지가 다 속 썩혀!”   어머니는 원무과장의 경찰이란 말에 찔금 거리더니 하얗게 안면경련을 일으켰다. ‘제복’의 의미가 어머니에겐 가장 무서운 권총이다. 일본 헌병의 당꼬 바지 제복에 아버지를 잃었고, 6.25 때는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때에 남편이 빨치산들에게 잡혀 대죽 창에 찔려 잃었다. 그리고 또 피난 다니다가 정착한 마산에서 3․15 의거 때, 단 하나의 외아들을 경찰 제복의 무차별 총격에 잃었다.   아버지는 외세(外勢)의 식민지 제복에, 남편은 빨치산 군복에, 외아들은 내세(內勢) 제도권 제복에 제사 지냈다. 그리고 지금은 사위마저 생 이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의 깍지 낀 열 손가락이 눈에 보이게 떨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아니, 보자 보자 하니 젊은 양반, 너무 하잖소? 당신도 어머니가 있고, 할머니가 있을 텐디, 고런 말버릇 엊다 대고 하능교? 병원이랍시고 약한 사람 등치는 데여? 여기 원장 선생님이 교회 장로 아잉교? 눈물 콧물도 없능교?”   “아니, 등 치다니? 이 경상도 아주머니는 사사껀껀 시비꺼리만 찾고 있어? 정당하게 들어간 수술비용 달라는데, 무가 등 친단 말입니까, 네에? 이거 진짜 경찰 부를까요?”   복도에서 환자들이 왕창 모여들고 있었다. 해나는 며칠 전부터 주억거리던 생각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것은 명청이의 끊어진 식도를 보면서부터 진작 각오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식도를 이어주고 볼 일이다. 만사 제쳐 놓고 생명을 건져놓고 볼 일이다. 그런데도 순간순간 해나의 발길을 제지시키고 한 것은 순전히 남편 때문이다.   남편은 자기의 이념, 자기의 신념을 위해선 자신의 생명까지도 호탕하게 내던질 사람이다. 그 사상에 어긋나면 제 발로 걸어서 사형대라도 갈 사람이다. 그런데 해나는 남편과 정반대가 되는 보수 꼴통과 ‘타협’을 해야 한다. 남편의 이상과 해나의 현실이 첨예하게 충돌되는 순간이다.   해나는 광화문 행 버스에 올랐다. 덕수궁 정문을 지나 조선호텔 근처쯤이긴 한데 헷갈린다. 지난 겨울, 한번 왔던 기억을 추슬러 회색 건물을 찾아 올라갔다. 1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호텔 같이 복도에도 고급 양탄자가 깔린 내부는 화려하다 못해 어떤 위압감까지 주었다. 황금색으로 도금한 데스크에서 스튜어디스 같은 아가씨의 안내로 ‘비서실장’ 문을 두드렸다. 그 비서실장은 서른 살도 안된 젊은 나이에 벼락 출세햇다. 현 권총 정권의 실세 중의 실세이다. 남편과 고교 동창생이다. 마산시 모 지방신문 서울지사장이란 명패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도 위장 지사장이지 실제로는 사주(社主)이다. 앞 머리가 반달형으로 벗겨져나간 기름진 대머리 위로 맥아더 원수 같은 파이프 담배 연기를 천천히 올리고 있었다.   김재박(金在薄) 사장은 해나를 안내해 온 비서실장이 허리를 굽히고 나가자, 해나 에게 정중하게 자리를 권했다. 엉덩이가 따듯해지며 편안하다. 남편에게도 이런 자 리가 평생에 한번이라도 찾아올까? 커피 잔을 두 손으로 받치며 생뚱한 생각에 잡 혀 있었다. 남편이 이 막강한 실력자의 동창생에게 부탁만 해도 간단히 옥문을 나 올 수 있을 텐데…   “한심이 갸는 밥 잘 먹고 있겠지요?” 해나는 깜작 놀라, 커피 잔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는 담배 연기로 도너츠를 만들어 올리며, 먼저 그미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 남편의 이름이 ‘한강철’인데도 그는 한심하다며 ‘한심이’이라고 조롱하는 것이다. 김재박은 그 남편이 10년 형기 중 2년째 넘어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대학은 서로 다르지만 마산고교 때에는 한때 삼총사 중의 하나였다. 이승만의 부정선거 규탄, 3․15 의거 때는 같이 잡혀서 마산경찰서 지하실에서 곤욕을 당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의 세계와 신분이 천상천하로 대조적이다. 그동안 직접적인 충돌은 별로 없었지만 간접적인 적대의식은 남모르게 불꽃이 일어왔다는 걸, 연 애 시절의 남편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고교동창 중 초고속 출세한 김재박이가 전화만 한 통 걸어준다면 간단하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지방신문 지사장 직함이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보부 감찰실 고급간부이다. 이 건물도 실상은 서울시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극비 정보부란다. 김재박의 친 형은 이름 석자를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청와대 막강한 권력부처에 숨어 있다.   그것은 남편과 같이 민주화 운동을 하던 고교 동창들이 남편 교도소에 면회 왔다가 이따금 해나를 만나면 논물도 보이고, 하늘에 주먹질도 해대며 떠들던 소문들이다.   “한심한 한강철! 그 녀석! 와 그리 고생을 사서 하능교? 그래 봤자, 세상에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지만 고생이제, 한 세상 적당히 살아가는 기제, 이케 집 사람까지 고생 안 시키능교?”   해나는 대꾸 대신 김재박의 박제된 독수리 주둥이를 무표정하게 올려다 보았다. 그 주둥아리는 금방 창 밖으로 날아가 하늘로 올라 갈 것 같이 양쪽 날개를 당당하게 벌리며 햇병아리 같은 해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번 호부터 저희 월간지를 변경해 볼라꼬 안 카능교 중앙 일간지들이 전부 여성지니 주간지니 해서 재미를 많이 보고 있는데, 아무리 지방지라고 해서 성인군자마냥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요.”   해나는 지난 번에 그가 제안한 ‘김재박 평전’ 대필 문제 얘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대필계약서에 싸인만 하면 우선 그 계약금을 손 안에 쥘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계약금으로 우선 일신병원에 잡혀 있는 어머니를 끌어 내오고… 아니, 명청이의 수술 게약금을 먼저?   “우쨌던 간에 언론이란 우선 많은 독자들을 잡아놓고 봐야 안 되능겨? 그래서 좀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한국판 ‘플레이보이’ 잡지를 하나 새로 창간하려고 안 카능교? 원래 미국 플레이보이 잡지 수입권을 따내려고 했는데, 미국 놈덜 너무 바가지라 아예, 우리가 창간할라고 안 카능겨? ”   그는 연신 걸려오는 전화와 비서가 전달해 주는 쪽지를 받으며 능청을 떨었다. 이미 문 밖에는 많은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소문에는 마산 땅 절반은 다 빼앗다시피 해서 반강제로 차지하고 있단다.   “아주머니가 이 플레이보이 한국잡지 창간 작업 한번 안 해 보겠능교? 국문과 출신이고 하니까, 더욱 전공과도 안 맞능교? 월급은 두 배로 주리이다. 내가 강철이를 도와 줄 힘은 없꼬, 대신 아주머니를 도와주면 안 되겠능교?”   재박이는 노골적으로 해나와 한강철(韓鋼鐵))이를 능욕하고 있는 것이다. 반어법으로 스스로를 과시하면서 포르노 잡지로 능멸하려는 수작이다.   “인자, 한국도 플레이보이 잡지 정도는 볼 수 있는 차원이 아잉교, 이미 웬만한 상류 층에선 미군 P.X에서 흘러나오는 새빨간 원서를 다 보고 있는 판이라예, 내가 하면 전국의 공공기관들이 다 연간구독을 할 끼라예, 딴 언론사에서 냄새를 맡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어떤 놈인데 그냥 둘 낀교? 어림없제, 내가 누군교?”   “아버님 자서전 자료는 이제 다 모아 놓았습니까?” 해나가 살얼음 깨지는 소리로 겨우 물었다. 작년에 그는 자기 아버지의 자서전을 하나 꾸미는데, 그 대필 후보자 가운데 한 사람을 굳이 해나로 지정해 놓았던 것이다. 해나가 남편의 공안사건 문제로 김재박을 처음 이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 엉뚱하게 해나를 찍은 것이다. 그의 아내와 단짝 친구가 해나와 같은 동국대 독서써클 멤버였다. 당시, 전국대학가 독서회는 마르크스, 레닌 이념 동아리이었다.   “아참, 내 정신좀 보래이! 저희 아버님 자서전 문제로 왔지러. 가만있자, 증말로 쓰실 수 있능교? 아주머니의 필력이면 안심하지만, 그 동안 어떻게 냄새 맡았는지 웬 떨거지들이 쓰겠다고 울매나 덤비던지…무료로 써 주겠다니 차암,”   전자 벽시계의 빨간 아라비아 숫자판 첫 글자가 하나 더 보태어졌다. 그는 새삼 생각난 듯이 테이블 위 초인종으로 비서를 불렀다. 곧 그 아가씨가 자서전 자료 부스를 안고 왔다. 해나는 대학을 졸업반 때, 지도교수가 소개해 준 여학교도 마다하고, 박봉에다 업무량이 많은 잡지사를 굳이 선택했다. 그것은 단지 ‘창조적’ 직업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자기 같은 편향된 이념의 머리로 순수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게 걸렸다. 교육이란 가슴으로 해야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다. 몇 군데 군소 잡지사를 전전하다가 좌파 이념을 선도하는 계간 문학잡지에 정착하였다. 그미가 처음 생각한 것마냥 마음껏 뛰고, 마음 껏 쓸 수는 없어도 원한만큼 직성을 죽여가며 견딜 수 있는 직장이었다.   그러나, 그 잡지는 편집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해야만 하는 로봇이나 마찬가지이다. ‘창의적’인 것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우파 잡지들이 ‘북한문학 2중대’라고 공격했다. 발표되는 소설 내용은 늘 때려부수는 줄거리이다. 가정을 때리고, 사회를 찢어발기고, 국가를 전복시키는 주제들이다.   신혼부부를 이혼 시키고, 어머니의 불륜을 고발하고, 아버지의 부정을 폭로시켰다. 피 튀기는 벽지와 피 터지는 소리만 났다. 그래도 전국의 젊은이들은 이런 게 바로 한국문학의 정체성이요, 진정한 노벨 수상 깜이라며 열광했다. 실제로 해마다 발표되는 우리나라 3대 문학상들은 다 이들 잡지나 출판사에서 발표되어야만 그 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때는 처녀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사장과 또는 주간과 싸우다가 나오기도 했고, 필화사건으로 쫓겨나기도 했지만, 잡지계는 늘 들고 나는 자리가 많았다. 지금도 마음 내키면 옛 잡지사 어디고 들어갈 수가 있지만, 잡지계 연령으로는 이미 늙었고 무엇보다 건강이 악화돼 있다. 이번 명청이를 낳으면서의 불행의 원인도 악성빈혈과 영양실조가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의사는 충고했었다.   그것은 남편의 옥바라지 때문만이 아닌, 잡지사 특유의 열악한 환경과 과도한 노동 조건에 그 이유가 크다. 마감 날이 가까워지면 야근도 예사였다. 특히, 겉으로는 청소년 교양지 입네 하고는, 어린 여학생들에게 저속한 사탕발림으로 팔아먹고 있는 ‘서울하이틴’ 잡지는 직원들까지 혐오스럽게 하여 잡지계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그 여 사장은 직원들을 후라이 팬 위에 올려놓고 콩 볶듯 튀겨 잡숫고 있던 잡지였는데, 그 여 사장이 바로 김재박 부인이었던 것이다. 그미의 용병술은 남편과 차원이 달랐다. 다른 잡지사보다 월등한 대우를 해주고 대신 직원들을 집요하게 부려먹었다. 다른 데로 가고 싶어도 대우 문제로 주춤하게끔 하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그때 해나는 거의 6년간이나 교제를 해오던 남편과의 혼인문제를 놓고 다투던 때였다. 남편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이 확정되면 신혼살림을 시작하자고 했고, 해나는 자기가 남편의 등록금까지 댈 테니까 당장 방을 얻자고 투정부릴 때이다.   해나가 서울하이틴 잡지사 사장과 싸운 얘기를 남편에게 하소연하자 남편이 그 특유의 파안대소를 했던 것이다. 그때 처음 김재박과 남편과의 오래고 미묘한 관계를 해나는 눈치챘던 것이다. 남편은 늘 그렇게 말이 없었다.   “아주머니 계약금조로 우선 1백만원을 드리겠습니더예, 원고가 탈고되면 나머지 잔금 2백만원을 드리면 안 되겠능교. 중간에 돈이 꼭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이소 예, 대신, 원고내용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주어야 되겠습니더. 예에?”   그는 일방적으로 원고료며 집필내용을 결정했다. 싫으면 관두라는 말투다. 그미의 가난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미 남편의 동창회 아니, 그의 중앙정보부 정보망에는 전국 공안사범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매일 거울 같이 잡혀 보고 된다. 그가 낙서하듯 간단하게 싸인하여 써 던진 빳빳한 수표 쪽을 해나는 접고 접어서 외투 안쪽 깊숙이 찔러 넣은 다음 얼른 일어섰다.   박제된 독수리의 날카로운 주둥이를 피하듯, 재박이의 피 튀는 눈길을 피해 나왔다. 그의 미묘한 비웃음 소리가 복도 끝까지 따라 나왔다. 바쁜 마음에 엘리베이터 대신 층계를 뛰어내렸다. 남편이 이 사실을 안다면? 해나는 머리를 강하게 흔들었다. 어쨌든 명청이의 수술비부터 준비하고 볼 일이다. 아니, 지금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을 어머니부터 모셔와야 한다.   골수 친일파 김재박 부친을 마산지방 독립투사 또는 만고의 자선사업가로 페인트 칠을 진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 동안의 소문이 왜곡된 헛 소문이란 것을 그의 자서전에서 능란하게 휘갈겨야 한다. 역사의 미화 내지는 날조를 위해 해나는 결국 현실에 무릎 꿇어야 한다. 처참하게 망가지고 굴복해야 된다. 어쩌면 몸 파는 창녀 보다 더 비굴한 정신을 팔아먹어야 한다.   김재박의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야 한다는 엄포는 바로 영혼도 팔아야 한다는 암시이다. 이미 그런 치욕도 계산에 넣으면서 수표를 낼름 받은 것이다. 명청이의 목숨만 건질 수 있다면 정말 영혼이라도 악마에게 넘겨주고 싶다. 그러나, 남편에게도 알려진다면? 얼굴은 전혀 감각이 되지 않으면서 발걸음만 빠르다. 로봇이 걸어가는 것 같다. 벌써 저녁 해는 남산 뒤로 꼴깍 넘어갔다. 층계의 비상계단을 타다가 끝이 안 보여 중간에서 엘리베이터를 다시 탔었다. 1층을 지나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빈혈과 헛구역질 속에서 빨리 내려야겠다면서도 구두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13층까지 올라갔다. 담배 재 같이 사위어가는 의식을 해나는 뺀찌로 물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타고 내리는 소님들의 눈도끼가 날카롭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번 오르내리는 동안, 빌딩 손님들의 신고를 받았는지, 정문 수위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해나의 겨드랑이를 나꾸어 챘다. 그의 물리적 힘에 의해 원형 출입문 밖으로 밀려났다. 찬바람을 얼굴을 감쌌다. 정신이 번쩍 든다. 목 둘레 식은 땀을 훔쳐내며 조선호텔 앞 화단 위에 엉덩이를 잠깐 걸쳤다.   몇 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남편과의 첫 번 째 긴 이별을 맞보았다. 남편은 그미에게 공수부대 입대 영장을 보여주었다. ‘11월3일까지 제1공수특전단 신고’ 라고 붉게 밑줄 친 활자 아래엔 퍼런 스탬프 도장도 보였다. 남편을 저승으로 체포해가는 영장이라도 되는 듯 그미는 기절해 뒤로 쓰러졌다. 남편과 같은 요주의! 공안사범들에게는 흔히 발부되는 거친 영장이다. 그때의 일기장을 지금 읽어보면 좀 유치한 것도 같다.     4. 청송감호소 면회   ‘……처음으로 나에게 슬픔을 알게 한 이가, 처음으로 기쁨도 가르쳐 주었어요.’ 용서 없는 사랑은, 사랑 없는 용서처럼 공허한 것이다. 사랑은, 사랑 중에서도 뼈마디 아파 오는 이별을 앓는 이여! 불로 구워서, 몇 번이라도 불로 구워서, 두드려 만드는 시련의 구리 기둥을 보라… 암실에서의 뜨거운 그리움, 애정의 함정! 한 개피의 성냥으로도 능히 지옥의 불 바다를 부를 수 있는 나는 위험한 불씨…그대 고단한 배가 되어 항구에 들어오실 땐……   이런 낙서들이 생각난다. 숙명여대 김남조 교수의 수필집이던가에서 베껴온 것이다. 그때는 이런 문장 한 귀절에도 귓가가 빨개지고, 김수영 싯귀 하나에도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덕수궁 문닫을 시간인지 아베크 족들이 그쪽에서 데모하듯 몰려나온다. 누가 떼어놓기라도 하려는 듯이 쌍 두꺼비처럼 젊음들이 늘어붙어서 대한문을 나온다. 얼음 판 길에 기우뚱할 적마다 위태롭게 즐거워했다.   쌍쌍이들은 시청 쪽으로, 정동 덕수궁 돌담 쪽으로 흩어져 나갔다. 그들 속에 나와 남편이 팔짱 낀 뒷모습도 보인다. 남편은 시청 건물을 보고도 못마땅해 했다. 일본 놈들의 식민지 건물을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논리였다. 중앙청, 시청, 한국은행, 법원, 서울시경 등 적산가옥이 그대로 이 땅의 정치, 경제, 법률을 아직도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느냐는 주먹질이다.   남편은 왜 저런 갑돌이, 갑순이 쌍쌍들 같이 보통사람이질 못할까. 무슨 국가와 민족 어쩌구! 하면서 그게 모든 가치의 우선 순위이다. 나도 남산대학 시절 때부터 그런 남편을 경모하고 떠 받들었던 이념의 여인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하고부터 서서히 변질되어 갔다. 아니, 그냥 평범한 생활인이 되어 갔다. 특히, 명청이를 맞딱드리고 부턴 이건 아니다! 나도 그냥 평범한 소시민 명청이의 엄마이고 싶었다.   남편은 아직도 왜, 어머니가 말하는 아버지 같은, 또 같이 있으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린 시절 오빠 같은 냄새가 날까? 그냥 히히덕 거리고, 그냥 못 본 척 지나치며 살지 못할까? 그게 불만이었다. 남편과의 데이트는 은근한 밀어보다 격렬한 토론 쪽이었다.   사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모르고, 사춘기에는 오빠마저 부재된 집안이었다. 남자들의 근육 같은 굵직한 사랑이 결핍되어 자란 해나에게 한강철 선배는 오빠이자, 아빠이자, 정신적 스승이었다. 언젠가 백령도에 파견 나가 있다며 남편이 보내준 엽서에 쓴 구절이 떠오른다.   …돈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에 있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신용과 명예를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해나 씨!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이에요…고향과 같은 수락산 정상의 달밤에 우리는 야간 점프를 합니다. 하늘 끝에서 땅 끝으로, 우리는 젊음을 날리는 것입니다. 장난감 같은 낙하산이 장난같이 산 속 골짜기로 때로는 험난한 바위 절벽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죽음 같이 흘러 내립니다. 어젯밤에도 우리 내무반 동료 두 명이 이 근처에서 추락했지요. 오늘 밤은 그들 시체를 찾으러 다시 뛰어 내리는 것입니다…이렇게 위험한 밤, 왜 나는 그 동안 해나를 좀더 즐겁게 해주지 못했던가 후회해 봅니다. 이번 휴가 때는 그 깊은 그리움을 덕수궁 분수 앞에서 마음 껏 목욕해 보자우요….   해나는 남편과 걷던 덕수궁 돌담 길로 해서 MBC 앞으로 나왔다. 마침, 무악재 고개 방향으로 나가는 택시에 합승했다. 몹시 허기가 지는데도 손 끝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돌이 될까부다. 독립문을 지나자 다시 버럭 겁이 났다. 남편이 김재박을 만난 사실을 안다면? 그리고 대필 사실을 안다면?   “아이구, 아가! 이제 들어오니? 그래 뭘 좀 먹었니? 여기 좀 앉아 봐라!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의 얼굴이 전에 없이 밝다. 해나는 침대 끝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걸쳤다. 목돈이 생겼으니 우선 밖에 나가서 어머니에게 더운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외투를 벗지 않았다.   “얘, 나, 취직했단다. 한 달에 1십 만원 받기루 하구”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해나에게 어머니는 더욱 똥그란 눈으로 들떠서 그미의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아까, 이 병원 원장 사모님이 부르신다고 해서 내려갔더니, 나보고 청소일 같은 거 할 수 있느냐고 해서, 시켜만 주시면 변소 깐 청소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이 병원에 남아서 일하라고 하더구나. 처음에는 경찰이 와서 부르는 줄 알고 도망가려고 했지. 히히,”   해나는 어머니의 손목을 말 없이 끌고 나섰다. 뒷골목을 돌아 순대국 집에 들어갔다. 어머니와는 참 오랜만의 외식이다. 지난 해의 환갑 잔치도 건너뛰었다. 환갑은커녕 생일 케잌도 한 번 자른 적이 별로 없다.   “원장 사모님은 종교인이라 아무래도 정이 남다른 게야. 먹여주고, 재워주고 1십 만원이면 이 나이에 어디 가서 그런 대우 받겠니?” 그 부인은 이 병원 산부인과 의사이기도 해서 명청이의 탯줄을 잘라주기도 했다. 그러나, 해나는 콩나물 국물을 마시는 척하며 눈물을 마셨다. 원무과장은 해나 모녀에게 병원비를 다 받아낼 승산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전세금 전액 이외의 나머지는 어머니의 육체적 노동으로 때우려는 계산임을 해나는 계산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1년에 120만원씩 계산으로 어머니는 적어도 2년 이상은 이 병원에 잡혀 있어야 한다. 먹여 준대야 식당에서 환자들의 먹다 남은 밥을 먹여줄 것이고, 재워 준대야 환자들의 피고름이 묻은 빨래 쌓아두는 창고 방이 고작일 것이다. 병실이 모자라 환장하는 원장인데 청소부 방을 따로 마련해 줄 것 같진 않다. 다시 서둘러 서부역 소화병원으로 갔다. 그 동안 명청이의 수술여부는 검사결과가 나왔는지? 만약, 손 쓸 수도 없이 단념해야 한다면?   솜을 두텁게 넣은 누비옷을 준비한 보퉁이를 끌어안고 해나는 지정된 면회실에서 기다렸다. 청송감호소로 이감된 후 다섯 번째 면회 신청이다. 저번마냥 남편이 또 면회 거절을 하고 따돌릴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앞의 할아버지 면회객이 나가자 다음 차례에 남편은 옛날 같이 다시 활발하게 나타났다. 광대뼈가 더욱 툭 불거진 것이 훨씬 야위었으나, 쇠절구 찧는 듯한 우렁우렁한 목소리며 자신감은 그대로였다. 아니, 더욱 날이 선 듯한 느낌이다.   “여보, 명청이는 무럭무럭 잘 크고 있어요, 당신 닮아서 뒤짱구이에요!” “여보, 당신 닮았으면 똑똑한 아기일 꺼요, 어머니는 건강이 좀 어떻소? 겨울 이면 기침이 심하곤 했는데에? 올 겨울은 더 빨리 찾아오는 것 같소.” “어머닌 명청이 땜에 아주 즐거워 하세요. 기저귀도 꼭 어머니가 갈아주시구. 그런데, 이번 공판은 잘 될 꺼 라고 인권협회 채 변호사님이 말씀하셨어요.”   해나는 이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채 변호사 얘기까지 꺼내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아, 모두들 애쓰는 구려. 그러나 여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냥 놔 두구려. 아마, 금년에도 옥중 수기 문제로 쉽지 않을 것 같소. 아니, 그것보다 당신이 아기도 있고 하니… 다신 오지 말구려, 날씨도 험하구.” “또오, 그런 말씀, 저는 이제 명청이가 곁에 있으니까 절대 괜찮아요.”   남편은 해나에게 다시 재혼을 권유해 왔다. 아직은 젊으니까 마음을 돌리라는 강요 같은 것이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일체 면회도 거절해 왔던 것이다. 남편은 아마, 이 군사정권 아래에서는 못 나올 것이라는 것을 에감하고 잇는 것 같다. 이번 면회 허락도 어쩌면 그가 연필과 공책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 같다.   남편은 공수부대에서 제대를 하자 대학원 박사과정 진학도 포기했다. 법대 공법학 교수에의 꿈도 꺾어버렸다. 그리고는 원래부터 잠재해 오던 언론계에 투신했다. 경남일대 마산 지방 특파원에서 시작하여 유럽 전역을 드나드는가 싶더니 원래의 날 선 목소리가 다시 터졌다. 덕분에 신혼생활이란 것이 자주 출장 나가는 남편의 여행준비 물을 담은 가방을 김포공항으로 전달해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국내선 또는 국제선 공항에서 긴 이별 또는, 짧은 이별을 위한 만남으로만 세월을 죽여왔다. 입회 간수가 중간 점검한 책, 연필, 고약 등을 솜 누비옷 속에 싸 들고 남편은 다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듯 가볍게 그리고 힘찬 발걸음으로 되돌아 갔다. 10분간, 제한시간도 채 안 되었는데 남편은 한 번 더 큰 웃음을 해나의 가슴에 남겨주고 사라졌다.   그미는 남편보다 더 큰 울음을 가슴에 안고 일어섰다. 황망하고 삭막한 교도소의 높은 담장이 남편의 돌이킬 수 없는 가슴처럼 절벽 같이 막아 섰다. 길게 뻗어나간 철조망이 명청이의 얼굴에 죄 없이 잠긴 링거 줄처럼, 아픔처럼, 감겨 왔다. 그미의 등뼈 추간판 사이사이를 찬 바람이 찔러왔다. 일신병원에서 퇴원 이후, 미역국 한 그릇 제대로 몸조리 못한 탓에 약간의 야생 바람에도 신경이 닳는다.   사지가 전혀 타인의 것 같다. 억지로 굳은 철문 박으로 나왔다. 누굴 면회 오는 지, 지팡이에 왼 몸을 의지한 어느 할멈이 혼자 뒤뚱거리며 마주 오고 있었다. 지팡이가 걷는 건지 할멈이 움직이는 건지 모르겠다. 한발 앞으로 나갔다가 두 발 뒤로 물러난다. 거위 같은 그런 보폭으로 걷다간 면회 마감시간이 지난 뒤에야 면회 신청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해나가 달려가 업고 갈까? 하는데, 다행히 검찰청 호송버스가 할머니 곁에 멈추더니 삼키듯 태우고 들어갔다. 교도소 앞 버스 정류장에서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냈다. 정류장 근처에도 면회 가족인 듯한 사람들의 절망들이 머리 위에 무겁게 얹혀져 서성거렸다.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예감에 떨었다. 버스가 다시 왔다. 서성거리던 면회객들이 가기 싫다는 듯이 올라 탔다. 한국에서는 마지막 지옥이라는 청송감호소 그 냉갈령 한 담장만 바라보며 해나는 전혀 버스에 오를 생각을 못하고 있다.   전셋돈 남은 것 170만원과 김재박에게서 원고 계약금으로 받은 돈 100만원, 도합 270만원이다. 그 중에서 먼저 일신병원 원무과장에게 220만원을 내주었다. 나 머지 50만원으로 사글세 방을 얻었다. 구파발에서 의정부 쪽으로 넘어가는 장흥이란 시골에 30만원에 3만원짜리 사글세를 얻은 것이다. 원장이 20만원 깎아준 병원비의 나머지 350만원 중에서 220만원 내놓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130만원 어치 노동력으로 약13개월만 청소부로 일하면 될 것이다.   소화병원에도 들렸다. 명청이는 나날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쬐끔은 살도 오르고 우유도 마셨다. 왼쪽 옆구리의 끔찍한 수술자리도 실밥을 뽑았다. 콧구멍 등에 몇 개 연결된 줄만 제거하면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담당의사가 얘기한대로 일주일 내로 퇴원 수속하기는 불가능하다. 명청이의 병원비를 감당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약 1500장의 원고를 채우려면 하루에 1백 장씩 쓴다 해도 보름이 더 걸린다. 일반 신문기사나 보고서 종류라면 옛날 잡지사 기자 시절마냥 하룻밤에 1백여 장도 쉬웠지만 쓰기 싫은 남의 글을, 더구나 날조된 인물의 똥구멍을 닦아주는 찬사를 나열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 다음 문장을 쉽게 이어주지 못했다. 벌써 며칠째 제 1장을 제목을 써 놓고 전진하지 못하고 잇다.   미치는 제자리 걸음이다. 칵, 양잿물이나 마실까부다. 명청이 얼굴만 생각하면 손 끝이 부들부들 떨린다. 빨리 끝내야지, 정작 원고지 앞에 앉으면 단어 하나하나 잇기가 똥 덩어리를 삼키는 기분이다. 이런 개똥만도 못한 악한 인간을 천사 얼굴로 페인팅 하여 날조해 내자니 차라리 전혀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내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5. 장흥 유원지 가는 길   인큐베이터 방 값은 일반 병실의 3곱절은 더 비쌌다. 아직도 해나는 살 지 죽을 지 모르는 명청이를 인큐베이터 덮개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 보았다. 동네 문방구 점 장난감 인형 같이 누워 있다. 아니, 참나무 기둥에서 기어 나온 애벌레 같다. 숨을 쉬는 건 지, 안 쉬는 건 지? 아기의 코에 손 등을 갖다 대어보려고 내밀었다.   인큐베이터 덮개 유리창에 살짝 부딪혔다. 명청이가 깜짝 놀란 듯 안개꽃같이 웃었다. 생사가 불분명한 한 달짜리 갓난아기에게 이름이 무슨 소용 있을까? 명청이는 자기 엄마를 정말 알아보고 웃는 건지 강아지 같은 갈걍스런 웃음을 눈곱 같이 내밀었다.   담당 간호원이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된다고 팔꿈치를 잡아 끌었다. 복도 창 밖에서 여전히 명청이를 건너다 보며, 망연히 서성거리고 있으려니, 중간 계산서를 가지고 왔다. 굵은 고딕활자로 인쇄된 병원 영수증 속의 파란 글씨가 애벌레 같이 꿈틀거렸다. 병원비 아라비아 숫자가 그냥 무감각하다. 출판사의 교정지 같이 기계적이다. .   뒤돌아 서울역 쪽 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허연 서리가 내린 복도 창 밖으로 회색, 청남색 비둘기들이 와앙, 하늘로 오르고 있다. 고개를 왼쪽으로 잠깐 돌리면 며칠 전 남편이 떠나 간 서대문 감옥소 쪽이다. 그는 지금쯤 청송감호소에서 신입신고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한번 들어가면 병신이 되거나 시체가 되어야만 나온다는 유럽 19세기 한국식 괘씸죄 중죄인 영창이다.   앞에는 명청이의 인큐베이터, 뒤에는 검붉은 비둘기 떼, 더 먼 그 뒤에는 청송감호소, 왼편에는 남편의 피 땀이 배어 있던 얼마 전의 서대문 교도소, 더 먼 그 뒤에는 지금쯤 어머니가 의료 쓰레기를 태우고 있을 박석고개 일신병원, 그리고 다시 더 그 뒤에는 며칠 전 새로 입주한 해나의 사글세 방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사면 어디에도 빛과 희망은 없었다.   ‘한강철, 그리고 사랑해애…’ 엄머어? 한강에도 강철이 있나요? 강철을 어떻게 사랑해요? 깜짝 놀라, 뒤돌아 보니 아까의 그 담당 간호원이 붉은 도장이 진하게 찍힌 영수증을 내밀었다. 유리창에 쓴 글씨를 보며 해나에게 미소 지었다. 그미는 자신도 모르게 쓴 글씨를 보고 놀랬다.   손바닥으로 서리 낀 유리창의 글씨를 얼른 지웠다. 그러나, 쓸 때와는 달리 잘 안 지워졌다. 맞았어! 정지용 시가 생각났다. 그가 잠 안 오는 한 밤에 일어나, 은하수를 바라보며 절규했다는 ‘유리창’ 명시도 죽어간 자기 아들을 그리워하며 서리 낀 겨울 유리창을 호호 불며 긁었다지? ‘아아, 소리 없이 하늘로 날아간 작은 새여…   어느 젊은 부부가 뜬금없이 들이닥치더니 간호원이 밀고 있는 인큐베이터 앞을가로 막고 몸부림을 쳤다. 좁은 복도 간이의자에 앉아있던 어느 아주머니가 덩달아 눈시울을 붉혔다. ‘에구, 오늘 벌씨로 세 번 째, 뒷마당으로 가는 디이…’ 뒷마당에는 아기 시체를 처리하는 간이 화장터가 있다. 그 젊은 부부는 아기의 사망통고를 받고 달려온 것이다.   안 보려고 했으나, 돌아 본 그 인큐베이터 아기도 명청이 같이 그냥 자는 듯 했다. 모기 같은 숨도 쉬고 있는 듯했다. 생사의 갈림길이란 이렇게 분명하지 않는 것 같다. 죽는 건 지, 사는 건 지, 살고 있는 것인지,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 남편이랑, 사랑하는 건 지, 결혼한 건 지, 안 한 건 지 모르겠다. 세상을 모르겠다. 세상은 모르고 모르는 것뿐이다.   뒷마당으로 끌려간 인큐베이터 아기들은 날카로운 메스로 사지가 다시 잘려 서류 봉투에 담겨 한강 쓰레기 장으로 나간다. 화장하는 데 드는 기름값 20만원을 못 내는 부모들은 아기를 두 번 죽여야 한다. 강남의 어느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못 내고 도망 친 부모의 아기들은 아직도 숨을 쉬는 갓난아기들의 장기를 부위별로 잘라내어 밀매하기도 한단다.   그들은 살아 있는 아기도 죽었다며 거짓말 하고 장기매매를 하기도 한단다. 도살장 소마냥 부위 별로 오장육부를 잘라 팔면 그 수익금이 병원비의 몇 배나 된단다. 특히, 쓸개와 신장은 부르는 게 값이란다. 홍콩의 밀매업자들은 산 아기를 그대로 햇볕에 말려 아예 믹서기로 갈아서 한약재 약용으로 판다고 했다. 문둥병이나 해소에는 특효라고 황제내경에도 나와 있다나?   해나는 치를 떨었다. 이슬람 교도들이 시퍼런 반달 칼로 어린 양을 잡던 TV 장면을 떠올렸다. 머리를 세게 흔들자, 다시 아래 부분의 통증이 올라왔다. 부삽으로 사타구니를 내리 찍는 통증이 몰려왔다. 지난 달, 자궁을 다 드러낸 통증이 아직도 지진 휴유증으로 남아 있다. 쪼개지려는 이마를 차가운 벽에 잠시 의지했다. 창 너머로 명청이를 흘깃 넘겨다 보았다. 그리고 허둥거리며 층계를 내려왔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불광동 시외버스 주차장에서 내렸다. 주차장 건너편, 소년교도소 잔디 밭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장흥 행 매표구에 줄을 서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 그 소년 교도소 철문을 넘어섰다. 음력 설빔을 위해 근처의 ‘은평천사원’ 고아들의 무슨 자선음악회 현수막이 내려다 보고 있다.   대부분 갈 곳 없는 이 동네 노인들과 꼬마들뿐이다. 청중들은 음악을 듣는 것보다 저희들끼리 히히덕 거리는데 더 열중이었다. 고아원 소년 음악회 회원들이 동료 소년 죄수들의 설날을 위해 주민들에게 구걸하기 위한 음악회이다. 이맘 때면 매년 열리는 구걸 작전이다.   그러나, 동전을 던져 줄만큼 청중들의 동정을 끌기에는 실패 했다. 노인과 꼬마들에겐 그냥 눈요기일 뿐, 자선을 베풀만한 여유가 빈약한 사람들이다. 몇몇 소년과 소녀들의 키타, 하모니카 등의 합주와 독창도 있었고, 어설픈 연극도 있었다. 그들의 반복되는 징글 벨 크리스마스 노래와 참 아름다워라아, 주님의 세계느은…오오직 예수여어! 하는 찬송가 합창 소리는 발가락 끝을 떨리게 했다.   그것은 화음이 아니라 발악인데도 가슴 끝 실핏줄을 한 올씩 뜯어내는 절규였다. 누가 누구를 위한 자선이어야 하는가? 고아와 죄수 어느 쪽이 덜 불행한가? 아니, 어느 쪽이 더 행복한가? 수녀들과 여승들이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자선 냄비를 흔들어 댔지만, 몇몇 아줌마들의 쩔렁! 동전 떨어지는 소리 이외에는 별로 들리지 않았다.   교외로 나갈수록 어두운 냄새가 난다. 길거리에서도, 버스 속에서도 음식 쓰레기 통 썩어가는 어두운 빛이다. ‘장흥면’ 무슨 리라는 정류장 팻말을 어둠 속에서 겨우 찾아내어 내렸을 때는 초승달이 구름에 쫓겨 다니고 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아 직은 낯선 산골짜기 돌길을 더듬거리며 올라갔다. 반쯤은 얼음이 녹아 흐르는 시냇물 길을 따라 유원지 나무 울타리를 돌았다.   겨울이라 유원지는 공동묘지 같은 음험한 함몰을 준다. 유원지 관리인 집 유리창의 희미한 불빛을 발견 하고서야 해나는 조금 긴장의 허리끈을 늦출 수 있었다. 곧 오른쪽으로 철길이 나왔다. 이제는 폐선(廢線)이 된 철길은 아련한 향수도 불러 일으켰다. 초등학교 때, 오빠와 나는 저녁만 먹고 나면 철길에 나가 귀를 대고 기차가 오길 기다렸다. 통금이 있던 그때는 밤 자정까지 급행열차가 셋, 완행열차가 하나 지나갔다. 피난지 군산 근처에서 그때 우리의 제일 큰 꿈은 제1 국민병에 나간 아빠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빠는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 편입되었다고 같이 끌려간 군산 광복동 목수 아저씨가 말했다.   아빠와 같이 이북 함흥 고향에서 함께 내려온 피난민인 그 아저씨는 팔 다리를 흰 붕대로 칭칭 감고 귀가했다. 한쪽 눈도 나갔다. 상이군인으로 전역해 돌아온 것이다. 우리 아빤 언제 집에 온대? 완행열차만 서는 간이역인데도 우리는 마지막 급행열차까지 지나간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는 이미 지리산 피아골 전투에서 빨치산들에게 포로로 잡혀 죽창 찜질을 당했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을 우리에게 숨기고 있었다. 아버지의 시체를 찾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일부러 안 찾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험악한 지리산 어느 굴 속에서든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철길과는 묘한 인연이다. 우리가 6.25 피난시절 군산에서 살다가 풍문에 큰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마산으로 무작정 떠났다. 백부는 그때 14후퇴 때, 흥남 부두에서 미 해군 마지막 수송선을 얻어 타고 남한으로 넘어와서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석방되었다고 한다.   밀가루 노점상을 하던 백부 집에 억지로나마 우리 남매는 의지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마산 자산동에 집을 얻었다. 거기에도 묵중한 철길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중에 오빠의 이름도 올라가 있는 3.15의 의거탑이 자산동 근처에 올라갈 줄이야? 지금도 그 철길에는 경마선 12열차가 다닌다. 의거탑 근처에선 약속같이 기적이 빠아앙! 길게 몇 번 울린다.   의거탑 영렬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철길 근처에 함부로 올라가 장사를 하는 잡상들을 비키라는 기적이긴 하지만 해나는 어쨌거나 그 소리를 오빠를 포함한 민주화 영혼들을 위한 나폴리 광장 근위대 나팔 소리 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이란 참 우스운 것이다.   예컨대, 빨간색을 남편 같이 혁명적이고 정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머니처럼 핏빛 귀신이 덮칠 것 같이 섬뜩하다고 손을 내젓는 사람도 있다. 또는, 쿠바 앞 바다 수평선 위에 아침마다 찬란히 떠오르는 해와 같이 강렬한 꿈과 희망의 빛이라고 두 손을 번쩍 든 헤밍웨이도 있다. 그렇게 ‘노인과 바다’는 아침마다 월척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군산에선 석탄을 때던 화통 기차가, 중학생이 되어 마산으로 옮겨 살 즈음엔 증기 기관차로 발전하더니,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을 땐 디젤 엔진 기관차로 변했다. 국가경제 수준에 따라 기차 등급도 오른 것이다. 지금은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전기 기관차를 구상하고 있다는데, 해나가 지금 걷고 있는 이 철길은 폐선이 되었다.   폐선! 선고를 받고 기차가 다니지 않은 지 오래 되었는데도 철길은 뜯기고 있지 않았다. 걷어내는 비용이 신설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든다고 철도청에선 십여 년 째 내버린 자식이라며 유원지 관리인 할아버지는 주먹질을 해대었다. 시체같이 누워 있는 이 폐선 때문에 이 마을의 발전이 가로 걸려있다며 마을 유지답게 성토를 해대었다.   해나가 사글세로 얻은 이 집은 기묘하게도 철길이 마당 한쪽을 잘라먹고 지나 가는 판자집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댓돌이 철길이 되고, 신발은 철길 위에 놓이는 위험한 집이다. 세수를 하려면 철길을 건너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 야생의 생물에서 해야 한다. 집 에는 낙엽송 숲으로 이어지는 낭만적인 동화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그 숲 속을 한 뼘 들어가면 살벌하고 음산하다. 폐장된 채석장도 있어서, 애를 낳다가 그대로 죽은 듯한 가랑이 벌린 임산부 모양을 하고 있다. 산모의 배곱, 아래 부분은 거무틱틱한 화강암으로 희한하게 꽂혀 있다. 그 앞에는 검붉은 자갈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삭아빠진 군복도 보이고 개 뼈인지, 사람 뼈인지 흰 뼈다귀들도 굴러다녔다.   해나의 판자집 같은 움막 집들이 골짜기 근처에도 몇 채가 더 있고, 폐가(廢家)된 빈 집들도 있었다. 옛날 채석장 경기가 좋았을 때, 일꾼 가족들이 살던 집이라며 반듯한 블록 시멘트 집들도 더러 보였다. 폐선에, 폐간에, 폐인이 된 가난뱅이 마을이다. 방 두 칸에 부엌을 같이 써야 하는 주인집은, 주인 아저씨가 장님이었다. 그러나, 남매를 거느린 그들 부부는 즐겁게 살았다.   지금은 겨울이라 별로 재미가 없지만, 여름에는 바쁘단다. 아직은 쌓여 있는 채석장의 자갈 부스러기를 리어카에 실어 부부가 밀고 큰 행길가에 올려다 놓으면 공사장 트럭들이 싣고 가는데, 한 리어카에 한창 때는 3천원까지 받는다고 밝게 웃었다. 조그만 행복이 큰 행복이다. 이들 부부에게는 거리낌 없는 진정한 행복이다.   또 일요일 같은 때는 유원지에 나가 남편은 바이올린을 켜주고 손님들에게 팁까지 받았고, 주인 여자는 식당 일을 하며 일당을 보태었다. 8살짜리 큰 딸과 그 아래 작은 아들은 관광 온 꼬마들에게 풍선을 판다고 했다. 일상의 작은 사치 같은 큰 행복! 나도 이담에 명청이 손에 무지개 빛 풍선을 잔뜩 쥐어줄 수 있을까? 손 안 가득히, 꼬옥 쥔 손…   어느덧 빗방울이 철길에 콩을 볶았다. 굵어지는 겨울 비를 그대로 맞으며 해나는 철길 복판의 침목을 하나씩, 하나씩 밝으며 점점 크게 들리는 장님네 가족들의 합창소리를 귀에 모았다. …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자안다아… 그 막내 아들의 소프라노가 장님 아빠의 바이올린 반주음보다 훨씬 높게 솟아오른다.   밝고 밝은 즐거운 불협화음이 무거운 겨울 빗방울 사이를 가볍게 날아서 이따금 밤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에 게신 아버지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담에 명청이가 크면 저 집 막내 아들같이 씩씩하게 클 꺼야. 아무 꺼나 잘 먹고, 겨울에도 맨발로 눈 위를 달리는 저 막내 같은 꼬마가 될 꺼야.   “아니, 이제 오능개벼? 샥씨를 기다리다가 우리 식구가 먼저 저녁을 먹었구먼유. 내가 불을 지펴놨는디 따뜻한 지 모르겠구먼유. 아, 어서 방에 들어가 앉으시우.” “아주머니 고마워요…”   “물을 데워 놨승께유, 퍼다 쓰세유 예? 그래, 애기는 암 탈없이 잘 큰대유?” 해나는 고갯짓으로 대답하고 얼른 방에 들어갔다. 깨끗하게 펴둔 이불 속으로 옷 입은 채 들어가 누었다. 무덤 속같이 아늑하게 빠진다. 명청이가 지금쯤은 곤히 잘 자고 있을까? 자주 토해내곤 하던 모유가 조금이라도 목에 넘어갔을까? 무섭게 불어나던 자신의 누런 젖을 컵에 담아 담당 간호원에게 부탁했었다. 해나는 다시 인 큐베이터의 거미줄 같이 얽혀 있는 링거 줄을 생각했다.   일산병원의 어머니를 만나지 않고 온 것이 자꾸 걸린다. 환자들의 피 오줌이 든 변기통을 들고 서 있을 어머니와 맞닥뜨릴 것 같아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쪽 구석에 밥상 위 신문지가 눈에 띄었다. 사과상자를 뒤집어 놓은 밥상이다. 평소에는 원고를 쓰는 책상도 된다. 어지럽던 원고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의 정성이다. 해나는 다시 일어나 앉아야겠다면서도 허리가 방바닥에 굳어진 것 같았다. 밥보다 약속한 김재박 대필원고가 먼저 생각났다. 마감 날짜는 가까워 오는데 아직 단 한 장도 쓰지 못했다. 사과부스 하나 정도되는 자료조차 아직 꺼내보지 못했다. 주인댁 두 남매가 다 떨어진 만화책을 들고 왔다. 그것을 읽어달라며 해나의 양쪽 겨드랑이 밑을 다람쥐 같이 파고 들었다. “새댁유! 반찬이 없구 만유, 그래도 뭘 좀 들어 보래요?”   우거지 국에 노오란 콩밥을 소담스럽게 챙겨왔다. 해나는 만화 대신에 어젯밤에 들려 주던 피터팬 얘기를 아이들에게 이어주다가 일어났다. 주인 아주머니도 조심스럽게 다가와 TV에서 보았다는 이것저것을 물었다. 요새 세상에 이런 여자가 있을까 싶게, 친 자연 인간이다. 고향도 충청도 산골 오지라고 했다. 처음 듣는 지명이다. 빡빡 얽은 곰보에 양손도 다섯 손가락이 오그라붙었다. 평생 시집도 못 가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장님인 남편을 만나서 이렇게 달덩이 같은 아들 딸도 두었다며 만족해 했다.   “제가 요, 신혼 시절에 실수도 많이 했지라우, 안마해 달라는 손님들 호텔을 찾아 다니다가 지리를 잘 몰라 엉뚱한 곳에 남편을 데려다 주었지유, 신랑한테 어찌나 혼이 났는지요. 초장부터 쫓겨난 줄 알았지유.”   입을 가리려고 올라간 손이 뭉턱하다. 곁의 아이들도 즤 어머니 따라 두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흉내 내며 키들거렸다. “겨우겨우, 장님 신랑을 조선호텔 몇 호실이던가? 그 방 앞까지 데려다 주고 호텔 주변을 돌았당게유, 나중에서야 그게 명동이란 것을 알았지만서두 야, 대한민국에도 미국 같은 네온싸인이 휘날리는 것을 처음 봤어예… 티 브이에서 보던 미국보다 더 아름다웠어예.”   안 족에서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엄마아, 아빠가, 막걸리 한 병 더 사오래애! 늬들이 사다 주라마, 장흥상점 아줌마에겐 우선 외상으로 달라고 혀! 그러면서 흥감부리듯 신혼시절 애기를 계속했다.   “신랑의 안마가 끝날 때꺼정 어정어정 돌다가 조선후따루(호텔)를 찾는 디 시상, 워디 있는 디 알아야디유? 행인들에게 조선후따루 지붕 모양을 땅바닥에 그려가매 겨우겨우 찾아갔는 디, 아 이번에는 또 그 방 번호를 잊어뿌렸당게?   “아, 지가 깜박해서 긴 복도의 이방저방을 헤매는데 누가 뒤에서 확 덮쳐서 낼로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가 침대에 내팽개치는 기라유… 숨도 몬 쉬고 오돌오돌 떨고 있는 디, 야, 너 조말순 아녀? 아녀? 기여? 어른 대답하더꼬 잉, 그때서야 고개를 들어보니 아, 글씨 우리 집 쥔 양반 아녀?”   “그래서요?” 이번에는 해나가 더 급했다. “그래서유, 남자들이란 게 뻔할 뻔 자 아녀유, 내 오바를 홱 벗기대유, 그리구 금방 팬티까지 홀랑 벗기더만유, 원래 안마 기술자라 눈 간고도 구신 뺨 치는 양반이니께유.”   “아니, 그러엄, 조선호텔에서 잤다는 말예요?” 해나는 놀란 듯 소리쳤다. “그 조신호따루가 한국에서 젤 비싸다는 걸, 진작 알았지만서두… 내 우짜것능교? 그때나 이때나 다 신랑이 하는 일이라, 나중에 알았지만서두, 신랑이 한달 주물러 대어 벌어야 하는 방 값이 하룻밤에 날라갔다구 허대유.’   주인 아주머니는 아직도 부끄러운지 뭉턱 손이 다시 입술로 올라갔다. 그미는 아직도 남편이란 말보다 ‘신랑’이라는 용어를 썼다. 어쩌면 오래 쓸 것 같다. 베니어판으로 가린 옆 방에서 남편의 고함 소리를 다시 듣고서야 두 남매를 데리고 건너갔다. 막걸리에 취한 주인 아저씨의 노래 소리에 맞추어 아주머니의 서툰 바이올린 현 소리도 들려왔다. 뜬금없이 깊은 산 속에 버려진 소외감이다. 양철 지붕 위에 얹힌 루핑에 떨어지는 두터운 겨울 비 소리도 배경음으로 들린다. 바하의 ‘폴로네이즈’ 그 목이 쉰 듯한 현 소리 또는, 빈 바람소리를 명청이의 얼굴에도 얹혀서 같이 들어본다.   ‘폴로네이즈’ 인도 코브라 노점상의 피리소리 같다. 터번을 감은 힌두교 인도 노인의 피리 앞에서 춤을 추는 독사의 모습도 연상되는 밤이다. 어디선가 싸래기로 깨를 터는 받는 듯한 목탁 소리가 환청 되는 것도 같다. 해나는 짐짓 무릎을 꿇고 하늘까지 닿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다.   ‘나무관세음 보살!’ 양양 낙산사 해수 관음보살상 손 끝에 촛불을 올리는 심정으로 조용히 일어나 합장을 했다. 명청이 목숨만 살아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재박이 보낸 즤 부친의 관련자료 부스를 뜯었다. 낡은 일기장 등 한 권씩 꺼낼 때마다 검은 지네가 겨드랑이로 올라오는 기분이다. 좇아내려고 자꾸 헛 손질을 했다.   6. /////////////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언젠가 해나가 입시준비 할 때, 극도로 쇠약해진 몸을 추슬리기 위해 찾아갔던 합천 해인사가 생각났다. 그때 곁에서 어머니가 달여주던 한약을 겨우 마시며, 목탁소리에 무릎을 꿇곤 했다. 특히, 새벽 3시 예불을 드리는 목탁소리는 겨울 밤 절간 처마 끝을 간단없이 때리는 빗소리 같았다.   오랜 기와지붕 추녀 끝 풍경 소리… 남편도, 어머니도, 아기도, 동서남북 제각기 떨어져 있는 이밤, 나는 또 어찌하여 이곳 장흥 골짜기까지 흘러와 혼자이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가족을 갈갈이 찢어서 서울 밖으로 내모는 것인가? 돌아가신 아빠가 그냥 보고 싶다.   만주 벌판, 해란강 어느 초막, 우둥불 앞에서 찍은, 희미한 사진을 꺼내 본다. 아빠의 단 한 장 남은 흔적이다. 동북지부 광복군으로 지청천 장군 휘하에서 항일전을 벌였다던 그때 아버지의 사진이다. 광복이 되면서 남한으로 넘어와 다시 6.25에 참전하여 지리산에서 같은 동족, 빨치산에게 결국 피살 당한 것이다.   지리산 빨치산 이현상 부대! 그 중에서 어쩌면 아버지와 같은 고향 함흥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포위하여 함께 긴 죽창을 찌르던 고향 친구들? 지리산 야밤에, 이런 캄캄한 초승달 아래 그들은 누가 누군지 모르고 거저 죽여엇! 하는 명령에만 따라 동작했을 것이다.   대관절 누가 누구를 죽일 수 있는가? 심지어, 재판정의 판사라도 어떻게 사혀엉! 하고 같은 인간을 죽일 권한이 있는가? 구레나룻만 무성해 보이는 아빠가 그냥 그립다. 2십대에는 대일본, 항일전에, 3십대에는 대북한 반공전에 살륙의 일생이었다. 그리고 오빠! 말이 없지만 굵직했던 오빠, 내가 오전 반인데도 오빠는 자기 밴또(도시락)을 슬그머니 내 책가방에다 넣어주고 달아나고는 했다.   도시락이라고 해야 감자나 고구마 몇 쪽이었다. 6.25 직후, 우리는 오전 11시까지만 수업을 하기 때문에 점심은 집에서 먹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점심도, 저녁도 없었다. 건너뛰기 일수였다. 군산 피난시절, 그때의 가난이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우리 식구들은 머리만 큰 괴물 같다. 아빠도, 오빠도 그리고 남편까지 하필이면 그런 별자리를 얻어갖고 태어났을까?   아니, 모두가 스스로 이념 또는 신념으로만 꽉 찬 가분수 괴물들이다. 해나는 어금니가 저절로 떨리는 치를 떨었다. 떠나간 자 말이 없고, 남은 가슴은 빈 웅덩이에 낙숫물 채우기 바쁘다. 해인사 어느 암자 뒤뜰에 남 모르게 피어있던 연안홍과 밥티 꽃 그리고 법당 앞의 수국과 백목련…   밤마다 어머니와 껴안고 듣던 벌레 소리, 새 소리, 짐승 소리들, 한약보다 더 쓰고 독한 고적감? 이곳 서울 북쪽 끝, 장흥은 사춘기 해인사 시절과 같이 답답하고 캄캄하지만 은근하게 아스라한 동네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 …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   뿐이다/ 들리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뿐이다. 그때 조실 스님의 그 할(喝)! 지팡이 소리는 이제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리고, 덕수궁 뒤, 일제시대 대법원 건물, 3심 공판 날, 남편의 마지막 법정 진술에서 그의 당찬 쇳소리가 또박또박 사면 벽을 울렸다. 신혼여행 아니, 동거생활 중, 어저면 멀 리 떠나야 할 지도 모른다며, 남편이 뜬금없이 해나의 손목을 잡아끌고 독도와 울 릉도를 다녀 온 얼마 후, 남편은 끌려갔다.   ‘학문과 예술은 몰라도 잘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 수는 없다. 고뇌 없는 행동은 돼지와 같다. 따라서, 모순된 이 사회와 왜곡된 오늘의 역사에 대 한 나의 저항과 행동은 내 깊은 고뇌가 겉으로 나타난 것 뿐이다… 오늘의 이 법정 은 이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일시적 다툼일 뿐이다. 뒷날의 공정한 역사 시간이 나의 행동을 그리고 이 재판을 올바르게 재평가할 것이다. ’   방청석의 많은 민주화 동지들과 재야 인사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통곡했지만 어쨌 든 그렇게 끝났다. 역사적 재판을 다툼하던 5명의 판사들, 검정 버선짝을 뒤집어 쓰고 근엄하게 앉아 있던 그 빈 자리를, 해나는 허허롭게 돌아보며, 남편 한 사람만 싣고 가는 법정 뒤뜰의 대형 호송차량을 또 허허롭게 돌아보며 돌아올 수 밖에 없 었다. 해나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숨 쉬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남편의 그 찌렁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왔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도 없다고 해서 만물이 창조 안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옷감 고르는 기분으로 또는 수박 쪼개는 기분으로 역사를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게 아닌지. 대관절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이냐. 사회는 많은 악(惡)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전이 늦는 것이 아니고, 그 악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퇴보하는 것이다. 교수들은 착각하고 있어, 역사학자들은 컴퓨터 언어를 반어적으로 주입시키고 있단 말야. 예를 들면, 새는 늘 긴장을 하고 달아날 준비를 한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는 적의를 가지고 노려보는데 학자들은 고 주장하고 있는 거야.   해나는 자서전 원고를 써야 한다면서도 남편의 헌 공책을 계속 뒤적였다. 이미 오늘 밤도 잠들기는 글렀다. 육체는 더욱 허물어져 가면서도 정신은 더욱 날카로와진다. 아, 십자가를 달까요. 성호를 백 번 그을까요. 아니면, 염주를 들고 백팔번뇌를 백여덟 번 욀까요. 오늘이 며칠인지 어떻게 알아요. 명청이의 퇴원날에서 일주일을 빼어서 알지요.…   탁자의 유리컵에는 바다가 갇혀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햇빛 그친 낡은 문짝에 쇠못들이 박혀 녹슬고 있다. …바람은 오늘의 풀을 흔들고 지나가지만 흙속의 풀뿌리는 다치지 못한다. …자유와 꿈의 통제구역에 팻말이 꽂혀있다. 끝없이 거부하며 어둠으로 쓰러지고/ 풀뿌리 밑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잠들곤 했다./ 팻말 뒤에는 펄럭이는 막막한 어둠 / 어두운 창 너머 벌판에는 비가 뿌리고 / 잠자면서도 절벽을 보았다. / 밤마다의 신간…   남편의 시(詩)들은 조실스님의 창(唱)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했다. 우린 우리 안의 종기만 어루만지고 있어. 자기 안의 더럽고 추악한 것을 안고 있으면서 남을 욕하고 있는 게야. 남편의 꾸짖음 같기도 하고, 스님의 대죽비 소리 같기도 하다. 인간은 스스로 돼지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부터 불행이 시작된 게야.   헤어지는 연습이 있으면 기다리는 연습도 있어야지. 이런 밤, 이 좁은 방에 남편이 마주해있다면… 해나는 엉뚱한 비약까지 치솟았다. 반쪽뿐인 지성인의 얼굴, 그미는 그 반쪽 사이에서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빈 손과 빈 가슴… 언제나 나는 석류알처럼 뜨겁게 일어날 것인가. 탁자 위의 빨간 스탠드처럼 언제나 내 가족을 위한 사랑의 불을 켤 수 있을 것인가. 눈 속을 걷고 싶다. 춥고 지치면 톱밥 난로가 타오르는 찻집에서, 그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다. 해나는 거울에 비친 철부지한 얼굴을 펴며 일어섰다. 비닐로 가린 창 밖엔 사뭇, 굵은 빗줄기가 밤새 그치지 않을 것 같다.       김재박 회사의 홍보실에서 넘겨준 자료는 추상적이고, 반복적인 내용뿐이었다. 그나마 국회의원 출마 때의 선전자료나 과시용의 소책자 몇권이 전부였다. 그 아버지가 했다는 실제의 업적은 거의 다 라는 미래시제이고, 라는 과거시제는 없다. 과거시제로서의 업적을 굳이 들추자면, 양로원에 흑백 텔레비젼을 기증한 것이나, 모교 초등학교에 축구 공 열 개를 희사한 것 등의 잡다한 것이다. 그러나 방위성금에는 기절할 정도로 동그라미가 많이 쳐졌다. 이러한 사실은 최소한 6하원칙에 의해 쓸 만한 것은 몇가지 안된다. 그러니, 제1장 출생부터 초등학교 입학즈음까지를 겨우 쓰고나니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다. 자서전이 진행되면 우선 고향인 마산부터 뿌려질 터인데 전혀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해나는 남편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학졸업 후, 모 일간지 계통 월간지의 기획기사의 자료를 위해 마산에 내려갔을 때 3․15를 전후한 김재박 아버지의 비리와 음모를 소상하게 추적한 적이 있고, 그것을 나중에 다시 르뽀사로 전재한 적이 있다.   …강철은 또다른 모반(模反)에 가담했다. 바로 이웃에 사는 친구 하나가 마산 도립병원에서 죽어갔다. 그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서로의 패기가 같았기 때문에 잘 붙어다녔다. 그 친구의 피가 모자란다고 하자, 반학생들뿐만 아니라 강철의 학교 빤댓돌 고교에서는 한쪽 팔을 걷어붙이고 도립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친우들의 뜨거운 헌혈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도립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만에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3․15사건이 터지고 난 열흘 후다. 그 이후 마산 전지역의 남녀고교에선 시위가 격화되었다. 남학생들은 돌멩이를 던지고, 여학생들은 가사실습용 행주치마에 돌멩이를 날랐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자유당 독재 물러가라! 사실, 그 즈음엔 그 친구 뿐이 아니고 각 가정이나 교회, 사찰에 숨어서 치료받던 시민들이 하나둘씩 죽어갔다. 곁의 학우들이 차례로 피를 토하며 시체실로 옮겨지자, 빤댓돌의 졸업반을 중심으로 고교생들이 구마산 시민회관 앞에서 아예 아스팔트에 드러누워 단식투쟁을 모의했다. 또 한쪽에선 시체조차 못 찾은 부모들이 환장을 하고 시내를 헤매다녔다.   강철은 온몸이 참혹하게 찢겨져나간 친구의 마지막 모습에 치를 떨며 시민회관 앞에서 혈서까지도 마음 속으로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그 거사는 사전에 누설이 되어 주모자급 일부가 체포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마산의 전 고교는 물론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선배들까지 내려와 합세를 했던, 살벌하고 위험천만의 모반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국회조사단이니 신문기자이니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유리창이 박살난 시청이나 반쯤 타버린 경찰서를 뒤지고 다녔으나, 마산시민들에겐 시원한 냉수 한 컵도 못주는 부분적인 조사보고서로서 일간지 활자를 어지럽혔다.   빤댓돌 고교 위 공동묘지에서 체포된 강철 등의 일당은 훨씬 나중에서야 김재박이가 배신자라는 낌새를 알았다. 그 사건만이 아니고, 그동안의 큰 계획들마다 주사바늘 꽂힌 축구공마냥 김새곤 했던 것이 그의 밀고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재박은 늘 앞장섰고, 늘 먼저 연판장의 도장을 찍었었다. 그러나 오랏줄에 묶인 조사과정에서 보면 늘 빠져 있었다. 일종의 끄나풀이었던 것이다.   그후 강철 등이 2학년으로 진급할 때쯤 재박은 학교를 포기했는가 싶었는데, 스위스에 유학하고 있다는 화려한 엽서가 뺀댓돌 고교 수취함에 꽂혔다. 대학교 다닐 때쯤 재박은 이미 신흥재벌 회사의 감사명함을 아직은 하숙생들인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때까지도 해나는 같은 마산에 살면서도 강철은 전혀 몰랐다. 3․15 당시 강철이가 빤댓돌 고교 신입생이었을 때, 해나는 초등학교 5학년 코흘리개이기도 했지만, 당시 서울 호랑이 대학교에 다니다가 급거, 고향에 내려와 빤댓돌 후배들을 지도하던 오빠가 시청 앞에서 총을 맞고 무릎을 꿇자 단지, 그 허탈 때문에 모녀는 몇 년간 구름 속인지 연기 속인지 허둥대며 살았을 뿐이다. 나중에 르뽀 기사를 쓰기 위해 현장추적 취재를 하면서, 해나는 어머니도 몰랐던 오빠의 행적이며 강철의 큰 발자국을 찍어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밤새, 설해목 부러지는 소리에 잠을 설치다가 결국, 새벽녘에 담요를 걷어차고 일어났다. 판잣집이라 우풍이 드세긴 해도, 방바닥이 여름날 땡볕에 익은 바윗돌마냥 뜨거워서 이불을 깔아야만 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군불을 깊이 넣어주곤 했기 때문이다. 이곳만 해도 시골이라 잡목이 많았다. 주민들이라야 여름 한 철 유원지에 목숨을 걸고 빌붙어 사는 움막집 몇 채 뿐이어서 연탄불은 엄두도 못낸다.   허옇게 드러누워있는 시냇가 얼음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갔다. 채석장 검붉은 자갈 위에서 장님부부가 리어카에다 열심히 삽질하고 있었다. 장님 남편이 삽으로 뜬 자갈을 그의 아내가 잡고 있는 리어카에 던지는데 자갈 하나 흐트러짐없이 확실하게 리어카에 들어갔다. 첫 새벽부터 그들 부부는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것 같다. 한여름에 버리고 간 피서객들의 웃음과 가식, 허영과 자만이 눈 얼음장 아래에서 질식해 있었다. 여름보다 더욱 생동감있게 살아나는 설경, 겨울의 비경이 해나의 몸을 은밀하게 감쌌다. 산 등성이를 마구 뛰어오르다가 미끄러져내렸다. 다시 뛰어 올랐다. 누군가의 무덤 곁에서 목까지 차는 눈 속에 빠지기도 했다. 내복까지 젖어드는 추위인데도 신이 났다. 산까치와 산꿩이 은가루를 하늘에 뿌리며 놀라 달아나기도 했다.   이런 날은 명청이랑 눈싸움이라도 하고 싶다. 가장 가까이 곁에 두고 싶은 사람들이 전혀 엉뚱한 곳에서 격리되어 있다. 남편은 정신적인 싸움으로, 명청이는 생명을 다투는 육체적인 싸움으로, 어머니는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싸움으로 말이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해나는 소나무가지 위 잔설이 피워내는 설화(雪化)를 멍하니 올려다보가 눈덩이를 뭉쳐 힘껏 던졌다. 지금 나의 생존방식은 무엇인가. 남편과는 정반대의 거역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남편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그 목표와 반역되는 현실적 타협을 하고 있다. 그것도 똥구멍을 닦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핥아주는 일을 하고 있잖은가. 역사를 미화한다는 것, 더구나 날조한다는 것은 사마귀 같은 소름이 돋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명청이를 살리고 싶다. 목숨을 붙이고 볼일이다. 명청이를 살리기 위해선 그들의 피고름라도 핥아줄 용의가 있다. 해나는 몸부림치듯 눈위를 딩굴다가 골짜기 아래로 쳐박혀졌다.   어디선가 바람결 같은 목탁소리가 들렸다. 토끼같이 귀를 열었다. 합장을 했다 어머니에게 끄을려 대웅전에 들어서면 어머니가 정신없이 절하고 있는 사이 도망나오곤 하던 해나는 두 손이 소나무 가지 끝으로 피어 오르는 하늘 끝으로 향했다. 근처에 절이 있었던가? 이곳에 온 이후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었는데? 눈을 털었다. 눈은 브래지어 안의 스커트 안 쪽, 홑 내복을 땀과 함께 축축하게 녹여내고 있었다.   골짜기를 내려와 목탁소리를 따라 발맘발맘 걸었다. 소나무, 잣나무의 설화를 손끝으로 털어내는 듯한 목탁소리는 산 쪽이 아니고 유원지 쪽이었다. 모퉁이를 돌아오니 탁발승이 철길 위에 서서 염불을 주억거리고 있고 어머니가 쌀을 쏟아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나는 단숨에 뛰어왔다.   “엄니? 어떻게 오셨어요?” “아니, 아침 식전부터 어딜 그렇게 쏘다니냐? 몸도 성치 못한데…” 해나는 어머니를 껴안 듯이 밀고 들어왔다. 방 가득히 널려져있던 원고 파지가 어느새 정돈되어 있었다. 며칠 전에 원고지를 사러 나간 김에 소화병원에 들렀다가 어머니에게도 갔었는데, 마침 어머니는 간호원 대신에 산모환자를 받으러 앰브런스를 타고 갔단다. 그래서 배식하는 아주머니에게 약도를 그려놓고 왔는데 용케도 찾아오셨다. 시주를 했는데도 가지 않고 문 밖에서 계속 목탄을 두드리고 있는 스님에게 어머니는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몸 좀 녹이고 가시라고 하자, 눈을 지긋이 감은채 창이 다 끝난 다음에야 90도 되도록 합장을 하고 윗집으로 갔다.   탁발 자체보다는 목청 연습하는것 같다. 아무리 혼자하는 염불이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나 보다고 해나가 건성 우스워했다. “저 스님은 머리깎은 지 몇년 안됐을 꺼다. 난 염불소리만 들어도 가늠할 수 있지. 그나 저나 내일 모레면 구정인데 아버지와 오빠 제삿상에 명태라도 한 마리 올려놔야 하지 않겠니?”   “어머, 벌써 구정이예요? 명청이 퇴원할 날도 며칠 안 남았네요?” -“그래, 네가 쓰고 있다는 현장소설인가는 잘되는 거냐? 어느 잡지사라고 했지?” “아니, 어머니 그런건 몰라도 돼요, 여하튼 이번 당선만 되면 명청이 병원비 지불하고도 좀 남을 수있으니까요. 딴 걱정은 마세요. 거기는 힘들지 않으세요?”   “난, 암 염려없다. 고기 반찬에 푹신한 침대에 오히려 호강이란다. 원무과장도 잘해주고.” 어머니는 시냇가로 나가서 준비해온 생선등을 칼질했다.   해나는 눈 쌓인 철길에 서서 그윽하게 구부러져 나간 평행선 끝을 바라보았다. 철길! 누군가에게 달려가고 싶고, 기다리고 싶은 철길! 멀리 아버지가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두 손을 높이 쳐들고 뛰어오고 있다. 그 뒤를 오빠가 한 손을 휘저으며 달려왔다. 해나는 흠칫 고개를 흔들며 철길을 따라 나갔다. 발목 아래로 눈이불을 덮고 있는 침목이 하나씩 밀려나갔다. 오빠의 뒤로 남편이 넓은 가슴을 활짝 벌리며 다가왔다. 해나가 넣어준 누비옷을 벗어버리고 넥타이에 정장을 한 모습이다. 아, 얼마나 그런 복장을 기대했던가. 쇠말뚝같은 남편의 팔에 매달려 다시 충무로를 걷고 싶다. 아주 낮게 그리고 평범한 남녀가 되고 싶다. 흐려진 눈 가장자리를 닦았다.   남편이 이 철길로 숨찬 기관차를 타고 온다면, 집 앞에 내리자 마자 신발 벗고 들어오면 안방이 된다. 남편이 얼마나 우스워 할까. 얼마나 편할까, 철길이 댓돌이니까 얼마나 쉬울까. 고단한 몸, 길게 누일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폐선! 아니, 이 폐선같이 남편은 아주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 해나는 불길한 생각에 고개를 더욱 세게 흔들었다. 철길은 의정부로 나가는 국도 앞에서 뚝 끊어졌다가 아스팔트 길, 저쪽으로 다시 이어져 나갔다. 때때옷의 아이들이 아닌 청춘족들의 들뜸으로 버스정류장 근처를 서성거렸다. 명절이란 그들에게 다시금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부여하는데 또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의 빈 체온만 남아있고 어머니가 벗어놓은 옷은 없었다. 병원일 때문에 서둘러 나가신 모양이다. 어쩌면 모레 아침 제삿상 앞에 다시금 모녀만 애살스럽게 앉게 있을 걸 예상하고 도망간지도 모른다.   옆방에서 갑자기 찬송가 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장님부부가 다니는 근처 교회의 교인들이 심방예배를 온 것 같다. 그들의 말소리는 믿음과 자신에 가득차고 그들의 합창소리는 희망과 결의가 오랏줄같이 배어 있다. 어린시절 군산에 피난해 있을 때, 교회에 가면 목사님이 나누어 주곤 하던 원조품 초코렛 맛이 생각난다. 폭격에 다 죽었다고 생각한 내 또래의 꼬마들이 어디서 그렇게 참새떼같이 쏟아져나오는지 교회마당은 새벽부터 시끄럽고 즐거웠다.   교인들의 반복적인 기도와 찬소와 잡담이 저녁의 검은 커튼을 더욱 어둡게 끌어내렸다. 질기고, 따뜻하고, 고독한 밤이다.       해나는 어느 때보다도 즐겁게 그리고 당차게 앉아 있었다. 머리 끝을 쪼아댈 듯 노려보던 박제독수리의 주둥이도 부드럽게 보였다. 하나의 종이 독수리, 그렇게 위엄한 위협으로 내려다보지만 나에겐 하나의 벽그림에 불과해, 이 방의 주인 같은 녀석아! 그미는 여유있게 반격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전 탈고한 원고뭉치의 보자기를 김재박의 비서실장에게 넘겨주고 돌아오면서 명청이를 만났었다. 얼굴에 걸려있던 줄도 제거되고 안큐베이터에서 나와, 일반 생아실에서 우유빛으로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퇴원날짜가 일주일을 넘었지만 원장을 만나, 오늘까지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던 것이다. 오늘이 원고료 잔금을 받는 날이다. 원고료만 받으면 명청이는 퇴원이다. 약속시간 한시간이 넘어서야 김재박은 나타났다. 고향에 갔다가 공항에서 바로 오는 길이라며 짐짓 허둥댔다. 그의 허풍과 과시도 오늘만큼은 스폰지 물 먹듯 받아줄 수가 있는 것은, 곧 그의 손에서 떨어질 수표쪽지 때문이다. “부인의 글을 두 번이나 읽어 봤습니더, 역시 부인에게 의뢰한 것을 잘 했다고 생각이 들든데예.”   해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아, 이젠 명청이를 내 곁에 둘 수 있겠구나, 내 맨가슴에 꼭 껴안아 그동안 짜내어버리곤 하던 내 가슴의 즙을 내 온 몸에 갇혀있던 사랑을 아기의 입에 넣어주리라. 내게 명청이만 있다면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번에 부친이 고향의 대학을 새로 인수 안 했슴니껴? 지금 막 그 계약서의 도장을 찍고 올라오는 길 아잉교, 그 대학이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서두예, 재정난으로 허덕여온 것을 아버님이 크게 인심을 쓴기라예. 철학만 있으면 뭐 하능교 실천력이 있어야지. 안 그렇능교.”   “어제, 신문에서 봤습니다. 아마, 종합대학으로 확장하려고 하시려는 것 같아요.” “뭐 그런 것은 차근차근 계획해야만 되겠지만서두예, 이미 몇 년전에 시(市)에서 불하해준 땅이 변두리에 한 오십만평이 있습니더. 거기에 청사진을 펼 계획입니다. 저기 있는 저 독수리같이 날렵하고 그리고 치밀하게 해나갈기라예, 이런 때 강철이 녀석이 있으몬 내가 울매나 도움이 되겠읍니껴. 녀석 머리 하나는 끝내주는 화성인아잉교.”   해나는 6시를 향해 달려가는 전자시계 깜박초침에 조바심이 났다. 원무과 직원들이 퇴근해버리면 명청이는 하루 더 묵어야 한다. “그란데, 말입니더, 이 원고는 조금만 더 고쳐주면 좋겠슴니더. 이 책의 주인공이 이제 대학교 총장은 못하더라도 이사장은 안 되겠능교. 업적도 그만큼 크고 굵어야 안 되겠슴니껴. 참, 그런 게 애매하긴 해두…”   인터폰으로 불리운 비서가 원고뭉치를 가져와 해나 앞에 펼쳤다. 원고지 매장마다 빨간 색연필이 안 걸린 데가 거의 없다. 해나는 닫다가 눈앞이 불바다가 되는 걸 느끼며, 식은땀을 흘렸다. 어금니를 깨물며, 꺼져가는 성냥불 끝을 안 꺼뜨리려고 용을 썼다. 손가락 끝으로 이마를 지탱하고 있다가 콧등을 타고 떨어지는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묻혀내었다. 예상하지 아니한 건 아니지만 가벼운 수정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간줄이 많으면 거의 다시 써야 할 것 같았다. 재박이가 얘기한 대로 주인공의 없는 업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뒷구멍을 혓바닥으로 핥는 것보다 더 치욕적인 일일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업적에 대한 과시를 하다보면 그 반대 위치에 있는 인물이나 사건이 비례적으로 축소 내지는 부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나 오빠의 시위주동이나 남편의 당시 행위 등도 싸잡아 격하되고 지탄되어야 했다. 덩달아 김재박과 그 변질자들은 그 아버지의 부상(浮上)에 따라 감자줄기 올라가듯 격상시켜야 되는 것이다. 김재박은 자서전 자체보다는 잠재적인 라이벌 관계에 있는 강철과 그 부인에게 자기와 자기 아버지의 위치를 주입 내지는 강조하는데 목적을 둔 것 같다. 굳이, 해나에게 자서전 집필을 지명한 것부터가 얼르고 뺨치는 것이다. 아니, 그 모든 것보다 명청이를 어쩌면 고아원으로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해나의 의식을 발가벗겨 놓았다. 소화병원에 두 번씩이나 연기한 것은 이번에 못 찾으면, 나중에 서울시내 고아원을 전전하며 명청이를 찾아 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빠른 시일내에 찾지 못하면 외국의 어느 입양 부모에게 팔려갈지도 모른다. 더구나 명청이는 수술은 성공했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장수술을 하여 임시로 끼워넣은 알미늄 대롱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좁쌀 한쪽도 넘기기 힘든 밥줄을 지니고 있잖은가. 고아원에서 아무거나 주워먹다가 목에 자주 걸릴 터인데, 그짓을 누가 따라다니며 토하게 해줄 것인가.   해나는 기다리던 수표대신, 붉은 줄만 보이는 원고 보따리를 들고 일어섰다. 종아리가 눈에 띄게 떨렸다. 그러나 재박이에게 약한 꼴을 보이고 싶진 않다. 그미는 한걸음 한걸음 쓰러지지 않게 엘리베이터까지 나왔다.   “부인! 다시 수전되는 대로 언제든 오이소예? 자서전일망정 하나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라 그만큼 신중해야 안되겠능교?” 재박의 그 말은 반대로 역사는 얼마나 조작이 가능한 것이냐는 물음이다. 실제 그들 부자(父子)는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설쳐도, 대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과 사업이 잘 움직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재박은 개인의 역사는 날조가 가능해도, 사회의 역사는 그렇지가 못하다는걸 착각하는 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고교를 중퇴한 그가 외국에 나가 벼락같이 대학 졸업장을 만들어온 변칙과 같이, 사회의 역사도 얼마든지 변칙이 가능한 줄 알 것이다. 재박이의 강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정신적 찜질은 우습게 가증스러울 뿐이다.   해나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섰다. 남대문 넘어 보일 듯 말 듯 비켜있는 소화병원의 명청이를 생각해본다. 그래, 명청아! 장난인 듯 운명인 듯 그렇게 어느 고아원이든 살아만 있어다오. 빨간 줄이 지워질 때까지 고쳐다가 써주고 너를 찾아오마. 절망 같은 희망을 몇번이고 다짐했지만 화단에 걸친 엉덩이는 일으켜지지 않는다. 시청 앞의 비둘기들도 비상을 멈추고 움츠려들고 있다. 팔방에서 교통되는 차량의 불빛들이 해나의 얼굴을 더욱 어지럽혔다.   이렇게 우리는 사는 의미를 진하게, 한 모금 마시는 거야. 남편의 수의(囚衣)를 처음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면회하던 날, 남편이 한 말이다. 흐르는 것이 물 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일이 끝나 저물어/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누나/우리가 저와 같아서/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해나는 몸부림치는 눈보라 속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원고 보자기를 한 번 추슬려 그 중량감을 흔들어 보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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