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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행복을 팝니다 / 신상성
2022년 10월 31일 12시 56분  조회:383  추천:0  작성자: 설야

[단편소설]

행복을 팝니다
 

신상성

1

 

하늘에서 실오라기를 하나 내려놓은 듯 하얀 연기가 한줄기 올라가고 있었다.

초겨울인데도 겨울바람답지 않게 잔잔한 오후다. 지구촌 이상기후가 겨울인데도 겨울답지가 않다. 그렇게 고대하던 흰눈도 지난 달 초에 비둘기 모이 같은 싸락눈을 한번 나비물로 흩뿌리고는 그만이다. 구름빛깔만 시시로 변덕부리는 게 겨울이라는 실감을 잠깐씩 깨우쳐줄 뿐이다.

 

사뭇, 수평선 같은 물빛 하늘이 어느 새, 생선 훔쳐먹은 고양이 눈빛으로 야옹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깨에 맨 카메라 비품가방을 한번 추슬리고는 손가락을 모아서 피사체 이미지를 잡아보았다. 긴 굴뚝 위에 얹혀 있는 태양, 그 뒤로 달아나는 나즈막한 산등성이! 이런 배경에는 야경 이미지가 좋을 것 같다.

 

속리산 오름길 근처 조그만 공동묘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청주 무심천으로 달려내려 가는 뱀허리 같은 강줄기도 내려다 보인다.

 

터무니없이 긴 굴뚝 위의 하얀 달, 그리고 새까만 배경에는 벌거벗은 여자와 젖꽃판같이 부드럽게 물결쳐 나간 산등성이가 있다. 조리개를 무한대로 열어놓고 망원렌즈를 쓰면 에로스적인 주제가 대조적인 명암으로 살아나리라. 아가페적 환희의 절정에는 참아냈던 눈물도 샘물로 흘러내리리라.

 

내가 왜 여태 그런 생각을 못해봤지?

그러나 곧 그런 누드 ‘사랑만들기’ 이제껏 주제화는 이미 아내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어 버렸다. 화장터! 음산하고 비릿한 사람 살가죽 타는 냄새가 향 냄새를 양념으로 쳐서 콧속으로 나볏하게 들어와 앉았다. 나는 더욱 깊이 허파 속으로 그 냄새를 빨아당겨 밑바닥에 재었다.

 

그 동안 줄기차게 찾아다니던 산과 해변은 이제 전세계 화장터 순례로 돌변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카메라 렌즈가 어떻게 밝혀낼까. 인화되어 나오는 사진을 보면 인간의 육안으로 보지 못하던 숨은 빛들이 빛난다. 때로 전율한다.

 

인도 갠지스강 바라나시 화장터, 파키스탄 국경선 사막의 애기들 애장터에서도 그런 빛을 보았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유태인 공동묘지는 평평한 공원 같다. 그런데도 비석 십자가 끄트머리에서도 불루빛이 터져나왔다.

 

분명 지상의 빛이 아닌 천상의 살아있는 빛이다. 아니 천상은 아직 올라가보지 않았으니까 모르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까지 못 보던 신비의 빛이 인화지에서 터져나오곤 했다.

 

단 한 컷의 명작을 위해선 내 가슴에 화장터 죽음의 분위기를 넉넉히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두 눈알을 이곳 화장터의 비장감으로 파김치 같이 절여서 걸어 놓아야 한다. 나는 터져나오는 헛구역질을 심호홉으로 눌러가며 다시 가파른 언덕배기를 올라갔다.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부터 위장 속에 라면 한 줄거리 집어넣지 않았던 생각이 났다. 배가 고픈데도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날캉, 혀 밑으로 고이는 신물을 뱉을까 하다가 도로 삼켰다. 그거라도 목구멍에 넘겨야 할 것 같았다. 화장터 입구 메뉴판을 올려다 보았다.

 

“어른 8,500원, 어린이 4,300원, 사산아 1,100원 그리고 별도 유골보관 2,000원 그 옆에는 괄호를 해서‘2년간 보관’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괄호의 뜻은 어린이 시체는 어른의 절반 값이라는 것 같았다.

 

만12세 이하, 어린이는 죽으러가는 데에도 어른의 절반 값인 모양이다. 어린이는 화장하는 데도 어른의 반값 정도 기름값이 드는가 보다고 생각하자 쓴웃음이 쿡! 새나왔다. 어이가 없을 때면 알레르기마냥 일어나는 버릇이다. 저능아 같은 그 웃음은 내 자신에 대한 조소이거나 냉소이다.

 

아직껏 폭소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우습거나 째지게 즐거워도 폭소가 없었다. 폭소 한번 안했다면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폭소하도록 기뻤던 기억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아내와 생이별한 이후는 물론이지만 그 이전의 모든 기억까지 아내가 깡그리 하늘로 가지고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어금니새로 밀려나온 비웃음이 한쪽 입술 끝을 떨게 하고는 뱃속을 험악하게 뒤집어 놓는다. 남에게 잘 띄지 않는 나의 비웃음은 냉소이면서도 조소가 되어 오히려 이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지렛대 역할도 해온 것 같다.

 

나는 벌써 몇 번째 읽고, 몇 번째 나 자신에 대한 조소를 날린 그 안내판 앞에 다시 서서 카메라 가방을 또 한번 추슬렸다. 두어 번 돌아오르는 이 길은 정문에서부터 이곳 화장장까지가 먼 길이 아닌데도 황천길마냥 길고 무섭다.

 

죽음이 무서운게 아니라 죽음까지 이르는 그 시간이 무섭다. 죽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고, 그 죽음을 기다리는 게 두렵고 고통스럽다는 말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이미 죽음이 결정되지 않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인간뿐이랴,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소멸한다. 입구에서 보면 멀고, 출구에서 보면 짧다.

 

버스에서 내려 정문을 거쳐 올라오게 되는 이 길은 버스 한 정거장의 절반에 절반도 안 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구비구비 지겹게 느껴진다. 고오타마 싯달타도 흰 바탕에 검을 글씨로 쓴 시체 태우는 가격표를 보면 손을 가리고 쿡 웃었을 것이다. ‘어른은 8,500원, 어린이는 50%절반 세일’

 

그리고 무릎을 치고 또 일갈했을 것이다. 그래 내가 뭐라든?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죽지도 않았을 꺼 아니냐. 태어났으니까 죽는 것은 당연하지, 사랑하니까 증오하는 게 아녀? 이별하니까 또 만나게 되고... 거참,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헌당가?

 

내가 대학시절 운동권으로 전국수배 중 잡혔다.

서대문 국립호텔에서 국민혈세로 콩밥을 먹고 있을 때는 자못 화엄경에 심취해 있었다. 그렇다고 싯달타에게 매어 달릴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단지 때때로 격하게 충돌되는 단어나 귀절들이 내 눈을 굽죄어서 다시 읽게 만들었을 뿐이다.

 

한용운도 법구경에 매달려 ‘임의 침묵’ 시집이 나왔다던가. 어찌되었든 그때 깜방은 하루하루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낱말이, 세상이 무서웠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이다. 그때 찢겨져 굴러다니던 화엄경 한쪼각이 아니었더라면 식당에서 숨겨온 젓가락으로 나는 자살했을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지 마라 사랑에는 이별이 있나니, 그리워하는 사람을 두지 마라 그리움에는 기다림이 있나니, 즐거워하지 말라 즐거움에는 슬픔이 있나니, 나는 그때도 쿡 웃으면서 책장을 되알지게 덮어버렸다.

 

그럼 뭐야 느기미! 사랑하지도 말고 그리워하지도 말고, 즐거워하지도 말고, 그럼 돌부처마냥 근엄하게 서 있거나, 전부 머리깎고 중이 되란 말야. 이 세상 사람 전부 산 속에 들어와 목탁 두드리는 것만이 최선이라면 느기미!

 

농사는 누가 짓고 공장은 누가 돌린단 말인가. 불경은 그래도 설핏 빈틈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성경이나 똑같이 전부 독선이야 독선! 세상 경전이란 게 전부 나만이 유일한 신神이다. ‘천산청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아니면 ‘나를 섬기는 자만이 오직 영생을 얻으리라’하는 식의 왕고집에 똥고집들 뿐이다.

 

구석에 옹송거리며 엎드려 있던 동료들도 그때쯤이면 자발없이 끼어든다.

“야, 짜샤! 내 앞에선 팬티 안 벗고 가는 여자가 없다 이거야, 나는 누구냐? 맞혀봐?”

나는 또 똑같은 대답을 피의자 같이 대답한다.

“산부인과 의사입니데이”

 

“그래, 전두엽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넹? 쨔샤 ‘복지아파트’ 간판에 태풍이 불었다 이거야, 그 바람에 ‘ㄱ’받침과 ‘트’ 글자가 날라갔어, 그러면 무슨 글자가 되냐? 날래 읽어보라우”

“거 살살 좀 하더라꼬잉, 우선 담바구 한 모금만 줘보더라꼬... 그걸 내 성스러운 혓바닥으로 발음해 보라, 이기야? 거 태풍도 좃빠지게 불었덩갑네”

 

“야, 101번! 111번 깨어와, 오늘 복지아파트에 입주시켜 줘야겠어! 이거 썅! 야, 거 미국에서 온 편지 있지, 그것두 읊어봐. 남도민요 가락으루 말야”

 

신림동 고시원에서 육법전서 외우다가 팔찌 끼고 들어온 두터운 안경잡이가 편지를 엄중한 판결문 같이 낭송했다.

(중략)

 

“미국에 이민 와서 보니, 어느덧 형수님 ‘본지’가 새까아만 것이 참으로 그립습네다! 여기서 글자가 한 개 틀렸능기라, 워디가 틀렸능교? 고걸 퍼떡 찾아보래이 문디이 짜석아”

“퍼떡 몬 찾으모, 고 쏘세지 톱으로 팍 썰어뿔기라, 무시라 ‘ㄴ’은 자가 안 빠졌뿐나? 고녀석 지랄하고 자빠졌네. 형수 생각만 밤낮 하능갑다. 키키...”

그래도 깜방의 벽시계느 왜 그렇게 안 가는지.

 

2.

오후가 되었다.

속리산 화장터 풍경이 운동화 코 끝에 더욱 가깝게 펼쳐졌다. 어느 스님의 독경소리가 목탁소리를 배경으로 자장가 같이 아늑하게 들려온다. 아프리카 식인종들의 신나는 북소리 장단으로도 들린다. 그것을 배경으로 그 옆에 나라힌 서 있는 삽자가 교회에선 찬송가 우렁찬 합창소리도 흔들려 왔다. ‘욜단강 건너서 만나세!’

 

오늘 화장하러 들어온 시신들은 그래도 엽전 주머니가 큰 모양이다. 주로 닫혀 있던 법당과 교회 문이 활짝 열린 것을 보니 그들에게 돈푼께나 던져준 모양이다.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 어느 유족은 화장비도 없었다. 화장을 시켜놓곤 뼛가루도 인수하지 못하고 그냥 줄행랑을 치는 영세민도 있단다.

 

그런데 오늘 들어온 시신들은 그래도 싯달타나 그리스도가 머리를 한번씩이라도 쓰다듬어 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유가족들인가 보다.

 

금년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이상한 것은 그들의 장례식이다. 소위 대통령 국장이나 사회장 등 거창한 정치적 장례식에는 불교 기독교 심지어 카톨릭까지 스님, 목사, 신부들 까지 동원되어 한꺼번에 염불과 찬송을 한다. 죽음은 개인의 것이지 만인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유족이 사회의 것이 아니다.

 

해당 개인의 평소 종교에 따라 추모하면 될 것이다. 개인의 죽음 자체에 본인들 의지와는 무관하게 비빔밥을 만들 필요는 없다. 내 생각이 잘못일까. 지금 이 속리산 화장터에는 분골쇄신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개체의 영혼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의 영혼이나, 영세민의 영혼이나 그냥 각각 독립적인 기체로 대기권에 올라갈 것이다. 여러 성직자들이 법석을 떤다해서 극락도 가고 천당도 가고 두 군데 다 가는 것은 아니다. 또 각각의 지옥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천당이고 지옥이고 단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믿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후생이든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이든 믿으려고 한다. 우습다. 분명한 것은 저승으로 가는 영혼이나 죽음만 있을 뿐이다.

 

나의 평소 그릇된 생사관 때문인지 화장터를 몇 바퀴 돌아도 내 렌즈엔 만족할만한 피사체를 잡지 못했다. 슬픔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슬픔을 포착하기 위해 아내가 떠난 이후 거의 3년을 헤매어 다녔지만 아직도 확실한 인화지는 없다.

 

지극하고 진실된 단 한 장의 슬픔, 단 한 장면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런 ‘현상’은 아직도 없다. 슬픔의 구체적인 실체는 눈물이 아닐까, 추상적인 슬픔을 현상화시킨 데는 눈물일 것이다. 또는 어떤 현상일 것이다. 나는 다만 내 어머니의 눈동자 같은 눈동자를 단 한 장이라도 찍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고, 죽음 앞에서의 눈물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눈물보다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종합병원 영안실의 슬픔, 교통사고 현장에는 너무나 놀란 유족들의 눈물없는 경악과 슬픔, 어이없는 슬픔 등도 있다.

소아암 환자의 어린이 장례식 등도 수 없이 찍어보았지만 이상하게 하나같이 규격화된 눈물뿐이다. 아직은 어린 소녀의 죽음 앞에 엎드린 엄마의 눈물이 얼마나 절실한가. 그래도 인화되어 나온 내 사진에는 ‘진정한 슬픔’이 없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사진에 생경한 향불과 촛불 그리고 눈물 몇 방울이다. 사진에서는 ‘진실’이 살아나오지 못했다. 내 사진기술의 한계도 있다. 통곡하는 슬픔보다, 울음이 터지는 슬픔보다, 눈물 한방울 없는 슬픔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몸으로는 인지하는데 왜 사진에서는 그렇게 절실하지 못할까.

 

뭉크의 ‘절규’도 덧칠한 것이다. 자연 그 자체가 아니다. 한번 유명해지니까 집단무의식으로 그냥 휩쓸리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이 아닌 사진은 실체의 복사이지 실존 또는 현실의 복사가 아니다. 살아있는 투사가 아니면 피사체는 그 자체로 살아나지 못한다. 그 내부의 의미가 겉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게 한계이다.

 

사진가들은 다만 명암과 빛을 살려내는 작업일 뿐이다. 화가들은 덧칠로 마음껏 보완해 내지만 사진가들은 다만 찍어낼 뿐이다. 빛의 미세한 스펙트럼 한점이라도 손댈 수 없다. 손을 댔다하면 이미 그것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내가 존경하는 제주도 서귀포 선배는 비오는 날 해변에 지는 석양빛 한번 제대로 잡아보려고 해변에 아예 텐트를 쳐놓고 일년 365일 황혼에 대고 셔텨를 눌렀지만 자기가 원하는 황혼빛이 안 니온다고 미쳐버렸다. 그리고 카메라와 함께 서귀포 앞바다에 뒤어들어 자살해 버렸다.

 

3.

15살 나는 외로운 유기견마냥 세상 물정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그나마 고아원에서 하루세끼 굶주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지경이다. 그때 누군가 내 모습을 카메라로 사진 촬영할 수만 있었더라면, 죽어가는 어머니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내 눈동자를 렌즈에 담았더라면, 필시 슬픔의 장면이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 있었으리라.

 

몇 년간 헤메어다닌 내 사진첩에는 어린애가 이빨을 뺄 때 아파하는 눈물, 양로원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임종의 할머니 눈물, 공원 벤취에서 소리죽여 흐느끼는 여중생의 눈물도 포착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사계절, 전국을 방랑하며 주워모은 필름 봉투가 라면박스로 열 개는 넘을 것이다.

 

불에 태워버린 필름들은 더 많다. 미쳤다. 대개는 새로 발견하는 첫 피사체에서부터 셔터 감각이 달라진다. 작품의 깜냥을 짐작헤게 되는 것이다. 현상하기 전 암실에서 필름을 비춰보면 감도는 물론이지만 눈빛 속의 미립자 숫자까지 계산해낼 수 있다.

얼굴표정이 생명이다. 그중 눈동자가 거의 결정해버린다. 그러니까 셔터. 필름. 인화를 거쳐 결국 현상까지 나온 작품은 필름 10통 1000장 쯤 버려야 마음에 드는 것 한두장 정도 나올까말까 한다.

 

그전에는 ‘이별의 눈물’만 찍기 위해 김포공항이나 서울역, 버스 터미널 등 이별 장소를 헤집고 다녔지만 역시 진정한 이별의 사진을 못 찍었다. 오히려 엄마 사진을 한 장 들고 울고 있는 예닐곱 소년의 눈에서 나는 진실을 잡았다. 시골 기차역에서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밤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자 마침내 두 손으로 엄마 사진 위에 엎어져 울고 있었다.

 

나는 심상치 않은 그 소년 옆에 오후 내내 같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나는 그 소년의 눈물을 차마 찍을 수 없었다. 설사 찍는다고 한들 내 사진기술로는 그 천진한 슬픔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그냥 포기했다. 사진가로서의 스스로 한계를 처음으로 느낄 때였다.

 

화장터 분구 소각장 불루 연기가 크게 흔들렸다.

겨울 칼바람이 돌풍이 되어 하늘을 더욱 어지럽혔다. 흰 빛깔에서 파란 귀신빛이더니 지저분한 회색빛으로 변해 있다. 오전에 화장장 주위에 널려 있던 쓰레기며, 시신을 싸온 광목 옷가지 등속을 태우기 때문에 살가죽 타는 냄새와 함께 머리 속도 어지럽다.

 

원형의 화장장 둘레에 하마의 입같이 벌어져 있는 화구들의 입 가장자리가 시뻘건 혓바닥을 쉬임없이 낼름거리는 것으로 손님이 많은 모양이다. 최근에 대형교통사고나 떼거리 죽음 같은 걸 뉴스에서 본 일이 없는데 적잖은 영구차들이 심심찮게 밀고 들어온다. 시신들도 많고, 더구나 살아있어 더욱 슬픈사람들이 많은데 아직도 진지한 울음 컷을 잡은 게 없다. 이러다가 오늘도 또 별 볼일 없이 필름만 몇 통 날리고 가게 되는가 보다.

 

죽음의 눈물, 이별의 눈물, 처절한 슬픔을 찾으러 전국을 헤매어 다녔지만 별로이다. 야외 화장장도 종합병원 영안실마냥 어떤 프레임, 어떤 규격화가 아닐까. 다시 초조해진다. 최근에는 협심증이라고 했던가 그 비슷한 심장의 울렁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태로 지속되다간 내년 봄에 계획하고 있는 사진전이 또 무기 연기될지도 모른다. 이번에 또 연기가 된다면 아마 영원히 무산될 것이다. 내 목숨을 지탱하는 마지막 고무줄인 사진이 나에게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한다면 내가 지구별에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무슨 명작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나 자신에게 ‘존재론적’인 어떤 의미만 확인만 시켜주면 되는 것이다. 사진전은 남에게 보여주거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내가 나야! 허어 사진 괜챦은데...’ 하는 존재적인 것 한번쯤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어쩌면 사소한 그것 하나 못한다는 게 좀 스스로 우습다. 누가 사진작가로서 인정하고 안하고는 둘째 문제이다. 기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슬픔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슬픔을 알아야 기똥찬 기쁨도 알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엔 기쁨이 있고, 그래서 행복이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일까. 정말 있다면, 그 행복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 한 순이라도 좋다. 행복의 실체를 발견만 하면 된다. 그것을 위해 어쩌면 나는 평생을 헤메어 왔는지 모른다.

 

인간은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고 그래서 살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 행복이란 무엇인가. 기쁨의 구체적 실체는 웃음이다. 그 웃음 끝에 행복이 있을 것이다. 가장 지극한 행복은 가장 진실한 웃음에서 형상화될 수 있다. 슬픔은 눈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진실한 슬픔을 찾기 위해서 눈물의 현장을 쫓아다니는 이유도 먼저 가장 지극한 슬픔을 알아야만 진실한 기쁨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쁨의 전야로서 슬픔을 확인하러 다니는 것이다. 그것이 전혀 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나는 최소한 내가 목격한 아니 내가 경험한 슬픔만이라도 찍어내고 싶다.

 

지난 여름에는 철거민 촌에도 찾아다녔다. 천주교 도시빈민 사목협의회에서 나오는 기관지의 현장을 쫓아다닌 것이다. 일간지에는 그런 보도들이 잘 없기 때문에 명동성당의 회보를 찾았다. 신당동 재개발 명목의 철거 때에는 장마때라 철거민들의 가난한 설움은 더 컸다. S재벌이 대형 쇼핑센터를 세운다고 매입했다던가 그들은 포크레인으로 함부로 밀어부쳤다.

 

“이 짜식이, 불난 집에 와서 부채질하는 거여 뭐야!”

나는 무엇인가 목덜미께에 둔탁한 충격을 받았다. 되돌아보니 술취한 노동자가 눈알을 부라리며 다시 한번 악매를 줄듯이 코끼리 귀짝만한 손바닥을 높이 쳐들었다. 그 곁에는 입가에 핏물이 얼룩진 시골농부가 지독한 소주냄새와 함께 그 노동자를 말렸다.

“괜히 엠한 사람 잡고, 생떼를 쓴다고 죽은 아들이 살아온당감? 죽은 자식 불알 잡기제... 그만 해뿌드라고 이잉”

“아니, 여게가 무슨 관광지야 뭐야, 불국사야, 이런 육시헐...”

 

나는 대여섯 살쯤 되는 여자아이에게 열심히 핀트를 맞추고 있었다. 염이 잘 안됬는지 화덕입구 벽돌 침대 위에는 그 소녀가 잠자는듯 평화스런 얼굴이었고, 그 앞의 차단된 유리창 앞 관망실에는 젊은 여인이 울음도 잊은 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중간에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화장터 화부 노인만 아니었다면 이 젊은 엄마는 어린 딸의 잠자리를 마지막으로 보살펴주고, 밤새 잘자아! 하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을 게다. 나는 그 순간을 포착하자마자 아, 이것이었구나! 기다린 보람이 있어었어!

그 소녀 피사체를 중심으로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날렵하게 렌즈를 조작했다. 암사슴을 발견한 숫사자같이 이럴 때 나는 직업적 본능과 기쁨으로 가슴이 뛴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다.

 

그 지극한 슬픔을 더욱 깊이있게 포착하기 위해 어안렌즈도 쓰고 망원렌즈도 썼다. 다시 B셔터를 써서 역광을 거꾸로 이용해보기 위해 등을 돌리려는 순간에 나는 그 노동자에게 얻어맞은 것이다.

 

아이구, 이거 죄송합니다! 사죄하는데 그의 두번째 쇠뭉치 손바닥을 얼굴에 얻어맞고 카메라를 놓쳐버렸다. 연득없이 벌어진 일이라 주위사람들의 슬픈 눈동자들이 일시에 나에게 몰렸다.

 

무엇인가 깊은 계곡의 옹달샘같이 조용하고 깨끗한 그래서 오히려 따뜻하고 편안한 그런 눈길이 비쳐왔다. 극히 짧은 순간인데도 긴 터널 속을 들어가는 듯한 아늑함이었다. 맞았어! 그것은 바로 내 어머니의 눈동자, 내 아내의 눈동자였어.

 

나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아니 애써 잊어왔던 감격을 새삼스레 발견해내곤 얼른 떨어진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카메라 렌즈가 박살나 있었다. 속의 필름만 무사하면 되겠지. 나는 도망치듯 그 현장을 빠져 나왔다.

 

분명 셔터감각이 달랐어. 나는 왼쪽 가슴을 손으로 강하게 누르며 택시 속에서 파괴된 렌즈를 빼버리고 비상용으로 예비해둔 렌즈를 갈아끼웠다. 필름도 새 것으로 다시 갈아넣었다. 단 한 장만이라도 좋으니까 마음에 드는 것만 나오면 내년 봄 전람회를 꼭 개최하리라고 다시 다짐했다.

 

어쩌면 기쁨의 사진은 영 못 찍어도 좋다. 슬픔의 사진 단 한 장만이라도 일단 성공하면 그 다음을 계획할 수 있고, 또한 자살계획도 연기될 수 있으리라. 제1회 때는 아내의 경제적 수입에 의한 벗바리가 있어 엉겹결에 개최를 했지만 아내가 없는 지금 제2회를 혼자 감당하기가 벅차다. 아내가 없는 세상은 날로 표백되어갔고 냄새를 잃어갔다.

 

나는 대학시절에 아내를 만나면서부터 아, 세상은 또다르게 살아 움직이는구나, 이런 것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죽을 이유가 없었으므로 살 이유도 없이 그냥 정지되어 있는 사물로 하루하루를 넘기면서 지극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시각으로만 세상을 분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단말마 죽음 때문에 딱! 닫혀졌던 내 가슴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은 동물성이었다. 내가 고집해온 식물성 시각이 아내로 인해 생명감을 느끼고 힘차게 일어서기 시작했다. 우리가 동거생활을 시작할 때는 그 동물성이 기관차 추진력으로 가락떼기도 했다.

 

그미는 S대 사진학과에 재학중이었다. 사진에 관한 얘기가 나중에 사랑에 관한 절실한 얘기로 급변되었다. 아마튜어 사진사였던 나는 그미로 인해 프로 사진가로 변신해가고 있었다. 아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깊이를 그미에게서 새롭게 인지해 갔다.

렌즈는 그냥 피사체의 겉만 찍는게 아니라 그 속의 내밀한 어떤 존재를 잡아내야 한다.며 그미의 혀 끝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기쁨이란 어떤 실체를 만져볼 수 있었다. 꽃무덤, 우리는 수감자들의 일터 인쇄소에서 그리고 화장실 변기 위에 서서 잠깐씩 갈증나는 사랑을 했다.

 

그미의 젖꽃판은 메말랐지만 결코 메마르지 않고 풍성했다. 어린시절 밤이면 내가 만지작 대던 엄마의 젖무덤 같이 깊고 깊었다. 아, 이게 행복의 덩어리란 것이로구나. 똑같은 피사체 대상물이라도 작가의 인식과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야외에 공동 출사를 나가서 똑같은 환경, 똑같은 대상 속에서도 작가들은 ‘자기의 사상과 시점’을 내놓는다. 세상에 대한, 사물에 대한 자신의 주제를 프리즘으로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아내의 띠뜻한 가슴에 사닥다리를 놓고 한 계단, 한 계단 행복의 단계로 올라갈 즈음 아내는 죽었다. 투옥 중 과도한 수사와 고문으로 정신분열 증세를 얻어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평소에도 그미는 다가채기로 기절해 쓰러지곤 했다.

 

된장찌개를 끓이다가도 마늘가루를 넣는다는 것이 간장을 넣고 심지어는 외동딸이 먹는 감기약을 부은 적도 있다. 근처에 농약병이라도 있었더라면 거꾸로 쏟았을 것이다. 그미는 사진 작품이 안 되면 발작이 더욱 심했다. 발작 때문에 작품이 안 되는지도 몰랐다. 한밤중 전화벨이 울리기만 해도, 수도검침 등으로 낯선 사람이 방문하기만 해도 아랫다리를 심하게 떨었다. 자동 로봇 같았다.

 

우리가 사회에서도 어디서에서건 달가와하지 않아 목동 뒷골목에서 조그만 사진관을 개업했다. 작품도 하면서 DP점도 겸하는 사진관이다. 몇 년간 생활이 조금씩 안정이 되자 거꾸로 그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안정이 되는데 오히려 불안이라니? 그미는 촛불 같은 조그만 행복이지만 이걸 누가 빼앗을 까봐 조바심 난 것 같았다.

 

연득없이 옛날의 악몽에 실패 감기기 시작했다. TV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격렬해지면 꼭 그날밤 악몽에 시달렸다. 우리의 사랑이 결실로 나타난 행복의 실체, 그것은 은복하殷福河 첫딸이 태어나던 날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뺨에 흘러내리는 감격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달동네 보건소, 냄새나는 복도 끝에서 실성한 눈물을 흘렸다. 내가 포착하고자 하고자 하는 ‘행복한 눈물’이란 것도 바로 이런 이미지이다. 어쩌면 가장 단순한 이 포인트를 아직껏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소 정신외과를 다니던 아내는 대학교 시절 절친 하나가 가정문제로 자살하자 그 충격으로 죽어버렸다. TV에 보도되었던 그날 밤, 친구따라 같이 가버렸다. 그날 밤 지독한 악몽 가위에 눌려 아침에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아내가 없는 세상은 다시 나를 식물성 인간으로 돌려버렸다.

 

사진관도 팔아버리고 아내의 유품을 정리했다. 아내가 못다한 작품의 몫까지 부활시켜 거의 3년 동안 두번째 전람회를 준비해왔지만, 이런 상태로는 절망적이다. 불행하면서도 철저하게 불행하지 못했고, 행복했을 때는 이미 그 행복이 지나가고서야 행복의 실체가 무엇인지 기억할 뿐이다.

 

아내와 나는 혼인 이후, 꽃나무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왔다. 꽃과 나무만을 중심으로 사계의 모습을 담아왔고, 아내는 특히 지리산 야생화 나뭇잎을 오브제로 애살떨어 왔다. 될 수 있는 한 운동권 문제를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4.

속리산 화장터에서의 포인트 실패가 이곳에서도 연장된다면 내년 봄 전람회는 끝이다. 처음부터 극한적 슬픔의 장면을 여의도 정치판에서 포착하려는 기획부터가 실패이다. 표백되고 의도된 거짓말에서 무슨 역슬픔을 찍으려는가. 일간지 신문사 뉴스깜으로나 팔아먹든지. 스스로 우습다.

 

“이 친구야, 자넨 뭘 살판났다고 또 나타났어?”

“어, 너는 여기서 육갑 떠는구나. 그래 옛날 양심은 어디다가 팔아먹고 이렇게 관광사진으로 비럭질해 먹으면 소화 잘 되겠구나”

 

같은 남산대 동아리 친구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반갑게 끌어 안았다. 그가 높이 치켜든 피켓에는 ‘행복을 팝니다!’ 라고 크게 씌어 있었다. 행복을 원하는 사람에겐 무슨 행복이든 공짜로 팝니다. ‘양심의 한 표를 나에게 찍어주세요!’ 정치구호로서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엉뚱한 곳에서 만났다. 좁은 서울바닥 어디서나 마주치게 된다. 어디든 일체 취직이 안 되니 대개는 막노동 건설현장이나 이런 정치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알바를 하는 것이다.

 

“야, 오늘 세 김가덜 정치 끝내기가 영광된 우리 운동권 가족에게도 쏟아지는구나. 이것 봐라. 오늘 일당이 2만5천원에다 식권 한 장이데이 커!”

그 녀석 곁의 친구도 껴들었다.

 

“내 수입이 니덜보다 더 크노니! 우리는 가족 모두가 전천후로 뛴다. 큰아들 녀석이 빈캔을 하루종일 주워모으면 한 5천원 땡긴데이? 하나에 10원씩 5백개 정도는 주으니까 5천원 안 되것나? 그리구 저 뒤에서 마누라 김밥장사가 저녁이면 2만원? 으악, 하루에 거금 5만원이여!”

 

“뭐가 얼마에유, 백수건달 주제에 큰소리만 치네유“

곁에서 아버지 티켓을 교대해서 대신 들고 둘째가 깜찍하게 대답한다.

“근디, 이짓도 오늘로 끝나는구만, 공사판보다 두 배되는 벌이야. 대통령 선거기간 석 달 동안 좆빠지게 다녔제. 여기 여의도에서 세 후보 김가놈덜 피켓을 차례대로 다 들어주었네”

 

신림동에서 고시준비하다가 운동권으로 뛰어들어온 녀석의 생존방법이 거기 그렇게 황혼빛을 받아 자조하고 있었다. 속리산 화장터에서 느끼던 땀 냄새, 슬픔 냄새가 조금은 묻어났다.

 

“이 친구야, 오랜만에 우리 마누라한테 가서 따끈한 오뎅국물에 소주나 한잔 하자구, 이제 선거도 날샜어. 세상 머어 다 그런 거야. 행복은 어디에도 있지만, 또 어디에도 없는 거여”

“암, 그래도 맥주보다는 깡소주가 낫제, 우리 체질에...”

 

며칠 후 나는 은평천사원으로 갔다.

어린시절 나를 다독거려주던 원장 어머니는 말없이 나의 외동딸 은복하의 손목을 쥐어주었다. 그러면서 어서 데리고 가라고 손짓만 했다. 훨씬 늙어버린 원장 어머니는 중풍까지 들려 있었다. 나는 3년만에 복하를 찾아 내왔다. 아내가 죽고난 후 복하를 천사원에 맡길 때 그미는 나와 같은 7살이었다. 끈질긴 부녀의 운명에 치를 떨었다.

 

행복이란 거, 그리고 기쁨이나 슬픔이란 거, 그것은 전혀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우습게 깨단했다. 여의도 우리 남산대 동료 피켓에서 무릎을 친 것이다. 정치판 유세에서 ‘행복을 팝니다!’ 역으로 행복은 파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다. 내 안에서 내가 끌어올리는 샘물이다.

 

그런데도 나는 정물적인 눈물에만 아직까지 집착해 온 게 아닌가. 맞았어! 내 사진에는 냄새가 없어? 눈물의 찐한 냄새? 핏줄이란, 어떤 이념보다 본능적이라는 것이다. 내 딸은 아내의 반쪽,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반쪽이다. 이제 온전한 하나로 붙여보자. 복하를 끌어 안았다.

 

3년만에 처음 나타난 아빠를 원망도 하지 않고 눈물로 얼굴을 묻었다. 꼭 아내 같은 마음씀이다. 그 여의도 계단 황혼빛에서 나는 ‘진실한 눈물’을 찍어냈다. 렌즈로 찍은 것이 아니고 내 깊은 가슴으로 찍었다.

 

행복이란 자기 눈의 중심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타인의 눈으로 찍어야 한다. 아니 나는 이제 사진 전람회 같은 건 관심이 없다. 복하의 체온만으로도 행복하다. 나도 여의도 피켓이라도 들고 일당을 벌어볼까. 이제 내년이면 복하도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기 때문에 사진을 버리고 현실에 눈 떠야 한다.

 

아내의 눈으로 보듯 복하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복하의 손목을 잡고 어머니 유골을 모신 보광사에 향불을 하나 올리자.

(*)

 

 

 

 

[작자 프로필]

신상성{申相星) 소설가, 문학박사, 동국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동아일보] 신춘문예 ‘회귀선’ 소설당선(1979),

서울문예디지털대학 및 피지(FIJI)수바외대 설립자겸 초대총장,

(사)한중문예콘텐츠협회이사장,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감사,

한반도문학발행인, 한국문학신문논설실장, 대한언론인회명예회원,

용인대 명예교수. 중국 낙양외대, 천진외대 석좌교수 등.

수상; 홍조국가교육훈장, 국가유공자(월남전), 경기도문화상(제15회),

한국펜문학상(제16회), 동국문학상(제10회), 한국문학상(제55회),

중국 장백산문학상(제1회) 등 다수

소설집; 목불, 처용의 웃음소리, 목숨의 끝, 인도향 등 저서 약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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