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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파묘(破墓) / 추옹
2022년 10월 31일 13시 46분  조회:533  추천:1  작성자: 설야

[중편소설]

파묘 (破墓)
 



​추옹

     날카로운 바람이 밤을 할퀴고 지나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비릿한 갯내가 골네댁의 앙가슴을 때리곤 한다. 파도는 차가운 동짓달의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바위를 때리면서 부서졌다. 부서지는 파도의 비말(飛沫)은 은빛이다. 끝없이 밀려와서는 바위에 부딪히는 차도의 그 단순한 동작만이 이 밤의 유일한 움직임이다. 아마 한낮이었다면 얼음같이 투명한 하늘이 보이겠지만 산등성이에 비수같은 달이 걸린 이 밤은 별빛이 너무 깔끔하도록 반짝거린다. 수많은 사연들을 얼어붙게 하고 텅 빈 공간을 후벼파고 지나가는 갯바람은 그래서 더욱 차갑고 냉정한지도 모르겠다.

     한달 전에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남편을 삼켜버린 바람도 이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골네댁은 남편의 출어준비를 끝내자 정신없이 잤었다.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은 방 안에 켜 놓은 호롱불을 일렁거리게 해서 벽에 걸린 허연 옷들이 섬칫함을 느끼게 했다. 남정네들의 목매달아 죽어버린 시체처럼 벽에 걸린 옷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거렸다. 미처 남편의 옷을 정리하지 못해서 집에서 막 입는 허드레 옷이 두어개 걸려 있었다.

     호롱불 심지가 탁탁 튀는 불꽃에 베어나오는 냄새는 석유냄새다. 골네댁은 파도소리에 몸을 뒤채이면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매일 밤마다 머리를 헝클어뜨린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나곤 했다. 움푹 들어간 눈을 번득거리며 앙칼지게 쏘아보곤 했다. 돌아가실 때의 그 얼굴은 해골 그대로였다. 핏기 하나 없는 하얀 얼굴에 패인 주름살은 검은 수렁을 연상시켜 줬다. 그 얼굴에 번득이는 차가움은 죽음의 빛이다. 파란 눈동자에 어둠이 살짝 가린 촛점없는 눈동자는 외경스러움과 오싹한 섬칫함을 느끼게 해 준다. 정말 인간의 살갗이 뼈에 처발라진 느낌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요즈음은 거의 매일같이 뒤숭숭한 꿈자리에 시달렸다.

     네 이년 풀어먹고 살아.

     그러나 시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는 안했다. 그냥 파랗게 그녀만 노려 봤다. 그리고 자꾸 따라오라고 손짓만 햇다. 추운 밤이지만 온 몸에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엇다. 불길한 예감이 바르게 스쳐 왔다.

     석동(石東)이는 앓고 있었다.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좀처럼 약을 써도 별 차도가 없었다. 생각다 못하여 오늘은 당골에 찾아가볼까 생각 중인데 기어히 꿈에 또 시어머니를 본 것이다. 당골은 오사리(烏沙里)에 있다고, 돌아가실 때 시어머니가 이야기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당골로 각시무당을 찾아가 보라고 했었다. 각시무당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대신 전수시킨 무당이었다.

     남편이 죽은 날부터 석동이는 앓기 시작했다. 아니, 꼭 그날은 아니더라도 그 어스름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그보다 좀 앞서서 돌아가셨다. 한 보름 전쯤은 될 것이다. 읍네의 병원에서도 병명을 모른다고 했다. 벌써 한달 째 아팠으며 요즈음은 얼굴이며 몸 전체가 물에 불은 것처럼 띵띵 부어올랐다. 그 몸은 바다에서 건져낸 남편의 시체와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어제는 생각다 못하여 한의원에 갔더니 그냥 바람이라고 했다. 석동이에게 찬 수건을 갈아 주다가 깜빡 모로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읍네까지 30리 길을 걸어서 갔다왔으니까 피곤도 했으리라. 시어머니는 골네댁이 잘 때마다 용하게도 잊지않고 찾아 왔다.

     골네댁은 잠을 다시 청하기가 무서웠다. 또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날 것 같았다. 겨울밤은 한걸음도 샐 것 같지 않게 지루했다. 그 꿈을 이제는 머릿속에 훤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꿈에서도 달빛이 유난히 파랬다.

     시어머니는 골네댁을 새파랗게 노려보면서 자꾸 따라오라고 손짓만 했다. 시어머니의 하얀 치마에 달빛이 하얗게 안겼다. 앞서서 스적스적 걷다가는 자꾸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면서 골네댁을 재촉했다. 깊은 산 속인데도 그 산이 전혀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꿈 속에서도 그 산길은 많이 다녀 본 길 같았다. 다만 시어머니와 같이 가기가 싫어서 늘 머뭇머뭇하곤 했다.

     시어머니는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가서는 반드시 뒤를 돌아보면서 골네댁을 기다렸고, 골네댁은 달빛에 비치는 시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온 머리카락이 전부 위로 솟는 것 같은 소름이 돋았다. 그 절벽 밑으로는 파도가 때리고 있었고 거센 파도소리에 묻혀서 실날 같은 아기의 울음 소리가 골네댁의 귀를 후벼 파면 골네댁은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 아기의 울음소리는 처음에는 들릴 듯 말 듯 들려오다가는 점점 더 커지면서 파도소리를 잡아먹고, 그리고 나면 그 절벽은 아기의 울음소리로 꽉 차 버렸다. 처음에는 뭣 모르고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이상스레 꿈 속에서도 그 뒤가 무서웠다. 그래서 그 뒤로는 아기의 실날같은 울음소리만 들려도 이내 잠에서 깨어나도록 습관이 들어 있었다.

     눈만 감으면 아니, 눈을 떠도 꿈 속의 그 길은 머릿속에 훤했다. 처음에는 그 길이 낯선 길이 아닌지, 아니면 하도 그런 꿈을 꾸다보니 이제는 그 길이 낯선 길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어머니는 절벽 꼭대기에서 늘 바다로 난 늙고 큰 소나무가지를 붙들고 골네댁을 돌아보곤 했다. 그 나뭇가지에는 누가 쳐놓았는지는 모르지만 금줄이 처져 있었으며 꿈에서도 그 금줄에는 약발을 받아서 약이 바싹 오른 새빨간 고추가 촘촘히 매달려 있었다. 그 소나무 곁에는 바위가 하나 우뚝 서 있었다. 골네댁은 자꾸 손짓하는 시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안 따라가겠다고 도리질을 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한달 전이다. 어촌의 겨울은 다른 데보다도 차갑게 빨리 찾아 왔다. 죽마진(竹馬津)의 겨울은 읍네보다도 빠른 것 같았다.

     남편은 새벽같이 묵호호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 묵호호를 탄 지는 5년이 된다. 배라고 해봤자 20톤 내외의 작은 목선에 발동기가 하나 달려 있었고 기껏 열 댓 명이 타고 가까운 바다에서 짬바리를 하는 배였다.

     시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처음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골네댁은 그날 잠을 안잔 것을 후회했다. 만약에 꿈에 시어머니를 봤다면 남편이 바다에 나가는 것을 한사코 말렸으리라는 그런 후회였다. 아마 그날 꿈에 시어머니를 봤더라도 그냥 대수럽지 않게 지나쳤을런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남편이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때늦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런 후회가 밀려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그녀는 밤새도록 그물코를 꿰매고 있었다. 이 그물이 그녀의 네 식구 온 가족의 생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도 오래 되어서 한번씩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면 여기저기 그물코가 빠져서 찾아 꿰매는데도 정신이 없는 그물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그 그물을 만질 때마다 옛날에는 바다에 조금만 나가도 이 그물로 동해바다의 고기를 싹 쓸었는데 하면서 그 옛날을 아쉬워 하곤 했지만 골네댁은 그 말을 안 믿었다. 옛날에 고기를 많이 잡은 집 치고는 너무 가난했으니까.

     바람은 좀 불었지만 날씨는 괜찮은 것 같았다.

     별빛이 흩뿌려졌고 파도가 계속 같은 소리를 내면서 바위를 때렸다. 그녀는 밤새도록 남편의 출어준비를 서둘렀다. 장례를 치르고 이제 사우제도 끝닜고 좀 쉬었으면 싶기도 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도 빡빡한 살림이었다. 그런 포시러움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여름철에는 오징어를 쫓아다니기도 했지만 남편은 주로 가까운 바다에 나가서 짬바리를 했다. 짬바리란 잡어잡이였다. 새벽같이 나가서 그전날 처놓은 그물에 걸린 고기를 끌어 올리고 또다시 그물을 쳐두었다가 다음날 끌어 올리는 단순한 고기잡이 방식이다.

     오징어 철은 지나갔다. 겨울인데, 명태 철인데도 아직 명태가 잡히지 않았다. 예년보다 좀 늦은 것 같았다. 그날은 오랫만에 바다에 나갔다. 덕산이나 울진 쪽으로 내려갔다 온다고 했다.

     그물코도 꽤고 낙시도구도 챙기고 여러가지 준비를 하고 새벽같이 아침을 지었으므로 잠 잘 겨를이 없었다. 일기예보만 믿다보면 굶어죽기 꼭 알맞을 것이다. 별이 떴다는 것은 날씨가 좋다는 뜻이다.

     새벽같이 남편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별똥 하나가 사선을 그리면서 산들성이로 떨어졌다. 그 산 너머에 읍네 공동묘지가 있다. 언제부터인가는 모르지만 저 산 너머에다 한 사람, 두 사람 장례를 치르다 보니 바로 그 산은 읍네사람들이나 죽마진 사람들이나 다 같이 죽은 사람을 내다버리는 공동묘지가 되었다.

     골네댁은 또 누가 하나 죽나보다 하고 무심히 집으로 돌아 왔다. 석동이는 그냥 자고 있었다. 밥상을 부엌 부뚜막에 내다놓았다. 석동이를 안고 아랫목에 눕자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밤 새도록 출어준비를 했으니까. 누가 깨울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날이 밝기가 더딘 겨울이 부옇게 봉창을 두드리고도 몇 번을 자다가, 깨다가, 다시 자다가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뒤채이면서 자던 그녀의 귀에 음습한 바람이 때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후둑후둑 하고 비바람이 채양을 요란스럽게 때리고 있었다. 순간, 이상스레 골네댁은 가슴이 답답했다. 벌떡 일어났다.

     파도가 친다고, 비가 온다고, 바다에 나간 사람이 다 죽겠는가마는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닐 것이다. 그녀는 방정맞은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했지만 갑갑함이 그리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때, 바로 옆집에 사는 묵호댁이 숨이 턱에 차게 뛰어들어 왔다.

     "석둥이 자 애미야, 니 뭐하노? 퍼뜩 일나그라. 사람들이 축항에 몰켜서 야단 아이가....."

     방문을 열자 눈이 아니라 철에 맞지 않은 빗줄기가 마루에도 볼창에도 들이쳤다. 그녀가 자고 있는 사이에 날씨가 변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묵호댁을 보자 그녀는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석동이를 들쳐업고 뛰쳐 나갔다. 맑은 날이면 까마득히 뚝 내려앉아 있을 수평선이 바로 눈높이까지 올라와서 금방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으르렁 대고 있었다. 방파제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음습한 죽음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스쳐갔다. 대부분 이맘 때 쯤이면 짬바리 나간 배들이 돌아 올 때다.

     또 한 마을에 떼과부가 생길 것이라고, 입이 촉새같은 영동댁이 무심코 쫑알거렸다.

     "미친 년, 무신 소리 하노?"

     옆에서 묵호댁이 톡 쏘아줬지만 영동댁의 그 목소리가 다행히 작았었다. 파도가 심상치 않았고 본격적으로 으르렁대고 있었다. 점점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어허, 철에 맞지 않게 비바람은... 쯧쯧..."

     "우리나라 일기예보는 좋은 것은 하나도 안 맞히고, 나쁜 것은 우예 그리 잘 맞히노..."

     일기예보 탓이겠는가, 날씨가 나쁜 것이... 그러나 아무튼 어촌에서는 날씨가 사나와지면 일기예보가 욕을 먹었다.

     파도는 그대로 방파제를 때리고 방파제 위로 물보라를 흩뿌렸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쉽게 멎을 비가 아니었다. 차가운 비바람도 더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몰아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래도 피할 줄 몰랐다. 후들후들 떨면서 성난 바다를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출어했던 배들은 이미 들어온 배들도 있었다. 날씨를 봐가며 나갔던 배들이었다. 작은 배들까지 출항증을 다 끊고 나가지는 않는다. 더구나 새벽같이 나가는 배는... 그리고 짬바리 하는 배들은 어디 멀리 나가지도 않는다. 부두에 묶여 있는 배들은 제멋대로 요동을 쳤다. 돌아온 사람이나 아직 안돌아온 어부들의 가족둘이나 그냥 바닷가에서 서성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아마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으리라.

     어디 멀리 고기잡이 나간 배들이라면 울릉도 근해나 아니면 아랫쪽으로 내려가서 피할 수도 있겠지만 당일치기 배들은 여기 죽마진 이외에는 어디 배 댈만한 마땅한 데도 없었다. 몇몇 배들은 남쪽으로 내려갔을 거라고 추측도 했다. 나가고 들어 온 배를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었다.

     어부의 아낙들은 이런 날씨 변덕으로 남편이 안돌아 오면 제발 다른 곳이라도 가서 살아만 있어 달라고 빌었고 또 어디가서 꼭 살아있으리라고 마지막 기대를 걸어 보기도 했다. 그것은 남편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일종의 자기 암시이기도 했고 자기 최면이기도 했다. 그 세월이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 그래서 체념해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나도 그런 구차한 집념에 매달리는 아낙네들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그녀들의 죄만은 아닐 것이다.

     점을 치러 가서 설혹 죽었더라도 살아 있다는 말을 듣기를 바랐고, 죽었다는 점괘가 나오면 바로 그날이 제삿날이 되기도 했다. 이런 과부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폭풍우가 한번씩 때리고 지나가면 죽마진은 떼과부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그네들은 이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여기서 자라고 여기서 정들고 익숙해진 이 마을의 그 애잔한 매듭 때문에 감히 훌쩍 떨쳐 버리고 타관으로 나가는 것을 무서워 했다. 조상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노가리 철이면 노가리 배를 따서 말리고, 오징어 철이면 먹통을 터트려 말렸다. 그렇게 살아온 그네들의 생활은 변화도 없었고 이 마을에서 단 한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금방 죽는 줄로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변함없는 단순한 생활에 그들은 순종하고 살았다. 그네들에게 변화라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체념, 그리고 기다림, 시간, 세월... 이런 것들이 그녀들의 의미에 아주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골네댁도 시간이 지나면 체념하고 살겠지만 확인하기 전까지는 결코 체념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방파제마저도 사람들이 더이상 서서 서성거리기에는 불안했다.

     이때, 멀리서 까만 점이 하나 나타났다. 흐린 날씨 탓에 그것이 무엇인지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저마다 마음 속으로는 우리 남편, 자식, 어버이기를 바랐다. 까만 점이 점점 더 커졌다. 이런 날 바다에 보이는 것이 배 이외에 달리 뭐가 또 있겠는가마는 가물가물 밀려갔다 밀려왔다 할 때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옆에서 들으면 침을 삼키는 목젖 소리도 들리겠지만 비가 워낙 심하게 왔으므로 그 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버렸다.

     어업조합 청년들이 사람들을 방파제에서 몰아냈다. 아니, 방파제에서 사람들을 몰아낼 때가지 사람들이 기다리고 서 있지도 못했다. 파도는 이미 방파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저마다 불행들이 남들에게는 닥쳐와도 자기만은 피해 가 주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멀리서부터 파도에 휩쓸려서 다가오는 배가 누가 탄 배인지 저마다 조바심을 치고 있었다. 금방 옆으로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도 방파제를 향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다가오는 것인지 뒤로 밀려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배라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배는 분명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지 그 배가 무슨 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아침에 나간 묵호호였다. 골네댁은 그 배를 잘 안다. 어디 멀리 오징어나 명태잡이 하러 갈 때 이외에는 5년이나 그 배를 탔으므로 배의 갑판만 봐도 묵호호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배는 이미 배의 기능을 잃고 있었다. 다행히 방향을 잘 잡은 탓으로 파도에 밀려 오는 배였다. 
     배가 부두 가까히 들어오자 사람들은 웅성대면서 조바심을 쳤다. 그러나 배는 이미 어디에도 댈 수가 없었다. 내항에 묶인 배들마저도 위험했다. 그대로 밀리는 파도에 묵호호는 방파제 위로 솟는 듯 하더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뒤집혀졌다. 배에 탄 사람들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사람들은 그냥 서서 어, 어, 한 마디 하고는 침묵했다. 방파제로 나갈 수도 로프나 구명대를 던질 수도 없엇다. 골네댁은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버렸다. 아, 하고 새어 나오는 단절음마저도 삼켜 버렸다. 물에 빠진 사람들은 악착같이 방파제 끝으로 기어 오르려고 했지만 이미 파도에 밀려서 그들이 보는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해일은 바닷가에 면한 어촌의 집도 몇 채 삼켜 버렸다.

     일주일 뒤에 세 구의 시체가 방파제에서 멀리 떨어진 넙적바위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그 중 하나가 남편의 시체였다. 물에 퉁퉁 불은 남편의 넝마같은 몸뚱어리였다. 벌써 시체도 없는 장사를 치른 뒤였다. 골네댁은 그때 울지 않았다. 넋두리도 안했다. 억장같은 가슴을 쥐어 뜯기만 했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옆에서 보다못하여 묵호댁이 석동이를 안고 갔다. 묵호댁은 아래, 윗집 사이로 오래도록 친하게 지냈었다.

     죽은 사람들은 한꺼번에 장례를 치렀다. 빈 상여가 바닷가를 돌았다. 무덤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죽은 원혼이나마 위로해 주자고 빈 상여가 바닷가를 돌았었다.

     골네댁은 사흘 뒤에야 석동이를 알아 봤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이놈만은 뱃놈을 만들지 말아야지... 골네댁은 석동이를 안고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런 다짐도 골네댁의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골네댁을 보고 눈빛이 달라졌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죽고 남편이 바로 눈 앞에서 죽고 줄초상이 났던 것이다.

     전생에 무슨 죄를 졌는지 뾰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죄라면 남들처럼 가난한 데 시집와서 가난하게 산 죄밖에 없는 것 같았다. 골네댁은 악착같이 울지 않았다. 아니, 울음이 가슴 저편에서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눈물은 다음에 한가할 때 흘리자.

     골네댁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석동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마음이 황황했으므오 슬픔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죽었을 때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의 장례를 다 치른 날 밤에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났다. 합동장례를 치를 때도 골네댁은 그냥 멍하니 누워 있었다.

     사실 골네댁이 정신을 차린 것도 시어머니의 그 파란 눈빛과 따라오라는 손짓을 외면하고 아기의 울음소리에 귀를 막다가 정신이 들은 것이다. 그 동안 묵호댁이 석동이와 골네댁을 보살펴 줬다.

     골네댁은 석동이의 얼굴에 물수건을 다시 갈아주고 파도소리를 들었다. 동짓달의 맵찬 바람이 파도를 들쑤석거리는지 파도소리가 높았다. 파도소리가 높은 걸 봐서 날씨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았지만 이제는 날씨 때문에 걱정할 건덕지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녀석이나 아프지 말고 잘 컸으면.....

     골네댁은 잠 못 이루는 이런 밤은 아직 익숙하지가 않았으므로 여러가지로 생각이 복잡했다. 파도소리는 한낮의 그 파도소리보다는 너무 크게 울부짖었고 너무 크게 밤을 때리고 있었다. 밤의 파도소리는 밤새도록 수많은 이야기를 구시렁대면서 골네댁의 귓가를 스치는 것 같았다. 혼자 있는데 익숙해지지 않았으므로 잠이 안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골네댁은 시어머니를 생각해봤다. 생각해 보면 쭈뼛하고 소름이 끼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이 많으신 분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문 밖에 큰 것의 발자국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가끔 집안 사람들에게 말도 없이 나가서는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안 돌아 왔다. 죽마진에서는 시어머니를 오사리 할매라고도 했다. 오사리는 죽마진에서 높고 험한 두레재를 하나 넘어야 하는 바닷가의 마을이다. 시어머니는 하나뿐인 자식 끝식(末植)이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고 자신을 참고 살았다.

     가끔 동네에서 풍랑이 치거나 남정네들이 안돌아오면 아낙네들은 그녀에게 물으러 오곤 했다. 그녀의 말은 틀림없었다. 그녀가 살아있다고 하면 살아있는 것이고 죽었다고 하면 틀림없이 죽은 것이다. 무당을 안 한지는 벌써 여러 해 되지만 아직도 그 뽑아내는 신통력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는 점을 치거나 굿을 해서 살지는 않는다.

     하나뿐인 자식이 싫어했고 며느리가 악착같이 그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끝식이는 살림이 좀 어려워도 어머니가 점을 치거나 굿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녀도 며느리가 그것을 한사코 말리는 것을 그르다고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저는 결코 어머니의 신딸이 될 수 없어요. 다 알고 왔어요. 여기 시집오면 내림무당이 되고, 자식은 아들 하나만 낳고, 아기가 나면 자식은 빨리 죽고, 내리 몇 대째 외아들, 내림무당, 그리고 내리 과부가 된다면서요. 저는 그런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무당이 될 수 없어요. 어머니께서 자식을 위해서 버리셔야 해요. 그래야 저희집도 남들처럼 손가락질 안받고 살 수 있어요. 곧 아기가 태어나는데 아기만은 무당집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안받게 키우고 싶어요."

     그러나 시어머니는 가끔씩 신이 내리면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혼자서 몸부림을 치면서 달랬다. 그때는 누구도 가까히 갈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그녀를 잡지 못했다. 허공을 응시하는 파란 눈동자에는 애원과 원망과 공포에 서린 두려움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 보는 사람이 오싹해졌다. 아무래도 신이 내리면 시어머니는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럴 때마다 자식이나 며느리가 좀 안됐기는 했지만 그것도 근년에는 일년에 불과 두어 번 정도로 뜸했다.

     신이 내리면 시어머니는 밖으로 나갔다. 계절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추운지, 더운지... 주로 달밤이고 달빛이 그녀의 앞길을 인도해 준다.

     오사리가지 가자면 상당히 먼 길이다. 두레재를 넘어야 했다. 대낮에 남정네도 그 고개를 넘는 것을 두려워 할 만큼 험하고 깊은 산이다. 태백산 줄기였다. 그 산에는 큰 것의 흔적이 가끔 나타나곤 했다. 큰 것이란 호랑이를 말한다. 산신령님을 그냥 호랑이라고 부르기가 송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랑이를 큰 것이라고 불렀다. 시어머니는 그 험한 두레재를 달밤에 혼자 넘어 간다. 보통 남정네들도 아침을 든든히 먹고 서너명이 떠들면서 대낮에 넘어가도 하루 걸음이 좋게 걸릴 만큼 멀고 험한 그 고개를 그녀는 하룻밤에 넘어 간다. 언제나 그녀는 스적스적 걷는데 그녀의 뒤에는 꼭 큰 것이 따라왔다. 큰 것이 안따라오면 뒤가 내둘려서 걷지를 못하지만 큰 것이 따라오면 마음이 든든했다.

     그녀가 신이 내릴 때는 사흘이고 나흘이고 방 안에서 꼼짝 안하고 큰 것을 기다렸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눈을 파랗게 뜨고 눕거나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 때는 언제나 소복(素服)을 했다. 그 옷은 그녀의 유일한 나들이 옷으로 다른 것은 미처 준비를 못해도 그 흰 옷 두어 벌 정도는 언제라도 손 쉽게 입을 수 있도록 방에 항상 걸려 있었다. 골네댁은 그것 하나만은 정성으로 준비해 드렸다. 그것도 이제는 습관이고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시어머니가 그런 야행을 할 떼는 초승도 있었지만 대체로 보름 때쯤으로 달빛이 밝을 때였다. 그래서 골네댁은 초승이나 보름 전, 후로 시어머니가 눈치 안 채도록 길 떠나는 차비를 늘 해놓았다.

     시어머니는 달빛이 마당에 비추고 그 빛이 방문을 비추는 시각에 벌떡 일어났다. 하얀 치마 저고리를 차려 입고 마음에 뭔가 딱 집히는 순간, 벌떡 일어나서 나가는 것이다. 안방의 며느리나 자식이 잠이 들었는지 내다보지도 않는다. 하긴 이맘 때면 깊은 밤중일 테니까.

     달빛이 천중(天中)에 걸려 있을 때다.

     그녀는 집을 한바퀴 휘둘러보고 가신(家神)들에게 발동하지 말라고 동서남북에다 발을 세번씩 굴러서 지끈지끈 눌러서 꼭꼭 다져놓고 사립문을 나섰다. 달빛이 교교하게 내리 깔렸다. 그녀가 사립문 밖을 나서면 어김없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달빛에 반사시키면서 큰 것이 버티고 앉아서 그녀를 기다렸다. 매년 그렇게 두어 번 갔다오는 행사인데도 이곳 죽마진 사람들의 눈에는 한 번도 큰 것이 눈에 띈 적이 없었다.

     그녀가 스적스적 앞에서 걸으면 큰 것이 소리없이 뒤를 따랐다. 그녀는 천천히 걷는 것이지만 남들이 본다면 상당히 빠른 걸음일 것이다. 보폭이 넓고 가볍고 경쾌한 걸음이지만 늘 그렇게 걷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걸음걸이는 시어머니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걸음이니까. 그녀가 그렇게 걸을 때는 길가의 풀들이나 나뭇잎사귀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소리도 하나 안났다. 밤에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도 그녀의 의식 속에서 끊어졌다. 그녀의 귓가에는 아기의 울음소리와 요령(搖鈴) 소리만 줄기차게 들려 올 뿐이다.

     달빛이 비단실처럼 감미롭게 그녀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그녀는 오사리 마을 뒤까지 왔다. 달빛에서도 오사리 마을이 조개껍질을 포개놓은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녀는 거기서 샛길로 빠져서 당골로 들어 갔다. 당골은 오사리 마을에서 깊은 산 속으로 뚫린 샛길로 들어 가면 바닷가에 면한 천연의 바위굴이다. 밖에서 보면 입구가 상당히 좁고 들어가기에 위험할 정도로 가파르지만 들어가 보면 보통 사랑방만큼 넓었다. 그녀는 그 암자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깊숙히 정면을 보면 정실몽주의 목각인형이 잘 모셔져 있고 그 옆에는 부채와 식칼, 신기, 거울, 장고, 북, 동고리, 수고, 재금, 방울, 요령, 명금 등이 제각기 있을 자리에 알맞게 놓여 있었고 북, 산통과 파란 장삼과 붉은 고깔 등 그 외의 옷들이 잘 개어져 있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시어머니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다. 바로 시어머니의 신딸인 각시무당이 당골을 지키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당골만 들어가면 저절로 신이 난다. 그녀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골네댁의 시할머니도 오사리에서 정실몽주님을 모셨다. 정실몽주란 이 오사리 마을을 지키는 서낭당 신이었다. 이 마을에 정실몽주님를 언제부터 모셨는지는 모르지만 풍어제를 지내거나 부녀자들이 자식을 바라 때는 여기 와서 빌었다.

     정실몽주란 계약결혼에 희생되어 정실부인이 못된 젊은 새댁의 원혼이다.

     이 마을에 대대로 행세하는 김진사가 있었다. 김진사는 자기대에 집안을 크게 일으켜서 부러운 것이 없었지만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꼭 하나 있었다. 김진사도 자손만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김진사도 이 집안에 양자로 들어 왔었다. 자식 복은 없었다. 김진사의 아들도 양자였다. 좀 떨어진 마을에서 집안 지체가 못하지만 참한 규수를 하나 데려왔다.

     손주를 하나 얻은 다음에야 정식으로 며느리를 삼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남의 눈도 있고 해서 갖출 것은 다 갖추고 데려 왔다. 그러나 결혼한 지 3년이 되어도 손주를 볼 수가 없었다. 김진사는 급한 마음에 신체 건장하고 잘 생긴 하인을 밤에 몰래 며느리 방에 밀어 넣었다. 며느리는 남정네가 병약한 남편이 아닌 것을 알았다.

     며느리는 그 날 밤에 이 절벽에 와서 목을 매 달았다.

     길지 않은 그 세월에 구박인들 오죽 받았겠는가.

     그때부터 이 마을에 염병이 돌았다. 그 하인은 도망가다가 급살을 맞아 죽었다. 그리고 김진사 집뿐만 아니라 온 마을을 싹 쓸었다. 그리고 고기도 한 마리 안 잡혔다. 나라에서 무당을 불러 점을 쳐보니 그 새댁의 원혼이 저주를 해서 그렇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 뒤로 그 새댁을 후히 장사지내 주고 그녀의 원혼을 모셨다. 그녀는 특히 아기에 대해서 시기와 질투가 심했다. 그녀에게 빌면 자식을 잘 점지해 주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조금만 소홀해도 그 보복은 철저했고 악착같았다.

     누구의 입에선가는 모르지만 정실부인이 못된 것이 한이 되어서 그 한을 풀어 주자고 정실몽주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오사리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마을에서 풍어제를 지낼 때마다 시어머니는 그 굿을 도맡아서 했다. 그 모든 제기들과 모든 물건들에는 시어머니의 신기(神氣)가 그대로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을 볼 때마다 신이 뻗힌다. 촛불을 켤 필요가 없었다. 달빛이 암자 안의 정면에 그대로 내리 비쳤다. 그녀가 그것들을 볼 때마다 징소리가 들리고 요령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옷들을 입고 춤을 춘다. 요령을 흔들면 주문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또 배우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 주문이 입에 배어 있었다.
 

      동방에 지국천왕(持國天王) 님하

      남방에 광목천자천왕(廣目天子天王) 님하

      북방산의 아 비사천왕(毘沙天王) 님하

      다리러 대리러 로마하

      도람다리러 다로링 디러이

      내외예 황사목천왕(黃四目天王) 님하
 

     배우려고 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 때부터 물려 받은 주문이다. 그녀가 추는 춤도 벌써 30여 년을 춘 춤이다.

     그녀가 시어머니와 굿판을 한번씩 벌릴 때마다 오사리 남정네들은 모두들 넋을 잃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그 옛날 젊었을 때는 상당히 고혹적(蠱惑的)인 미모임을 쉽게 연상시켜 줬다.

     그녀는 굿을 하면서 살아 왔다. 한번씩 굿을 벌리면 제물이 풍족했다. 생활이 어렵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그녀의 남편을 바다의 풍랑에 일찍 앗겼다.

     이 집안에 시집와서 물려받은 것이 있다면 하나는 남편을 바다에 일찍 잃은 것이고 또 하나는 시어머니를 따라 정실몽주님을 모시면서 여러군데 각종 굿판을 따라 다니면서 각종 굿을 벌인 일이다.

     그녀도 끝식이를 배고 남편이 풍랑으로 죽었다. 남겨 놓은 유산은 없었다. 오직 시어머니와 굿을 하고 점을 쳐서 살았다.

     오사리댁이 끝식이를 뱃사람은 안 만들려고 했지만 하긴 이 마을에 그것 아니면 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돌이 많고 염분이 많은 박토여서 농사가 되지 않았다.

     끝식이는 학교보다 바다를 더 좋아했다. 시어머니가 돌아 가시자 그녀는 시어머니를 대신해서 모든 굿을 다 치렀다. 그럴 때마다 자식은 집을 나가있을 때가 많았다. 끝식이는 징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몰려서 굿 구경하는 것을 싫어했다. 신이 들려서 춤을 출 때는 하얀 허벅지가 다 들어났고 굿을 구경하는 사내들은 탐욕의 눈으로 그녀를 위에서 아래까지 죽 훑어 내려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끝식이는 어머니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같은 착각을 했다. 엄마의 그 따스한 품 속은 자기 혼자서만 가져야 했다. 끝식이는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뺏긴 서러움에 집을 뛰쳐 나가곤 했다.

     그녀는 자식을 학교에 잘 보내어서 읍사무소에 면서기를 시키는 것이 큰 꿈이었지만 자식은 한번씩 굿판이 벌어지면 집을 나갔다. 처음은 한두달 정도 집에 안 들어오더니 점점 집을 버리고 부두에 아무데서나 잔심부름을 해 주면서 살았다.

     끝식이는 어머니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했고 기어이 배를 탓고 바다로 나갔다. 배를 타고 심부름도 해주고 견자꾸 그물 놓는 법도, 오끼야 보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하면서 바다에서 뼈가 굵어졌다. 끝식이는 결국 어머니의 의도를 배반하고 학교에 안 갔으므로 그래서 면서기가 될 수 없었다.

     오사리댁은 처음에는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고 버티었다. 자식이 한 몫의 어부로 자라는 동안 그녀는 점점 늙고 외로와졌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주위의 이야기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끝식이가 어머니에게 무당을 버릴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끝식이는 죽마진의 '만조'(滿潮)에서 연화(連花)를 봤다. 만조는 술집이었다. 끝식이는 연화를 보자 아주 그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녀의 고향은 황지의 절골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끝식이와 살면서 골네댁이라고 불렸다. 그녀는 자기의 이야기는 안했지만 끝식이의 집안 내력은 다 알고 있었다.

     술집은 바닷가가 바로 보이는 좀 높은 산기슭에 있었다. 연화와 같이 창문을 통하여 바다를 보면 어항의 많은 배에서 켜놓은 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한데 어울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는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았다. 삽쌀한 바람이 감미롭게 불어 왔다. 끝식이는 그런 분위기보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준 연화를 더 좋아했다.

     끝식이는 오징어잡이를 하러 갔다오던 날 밤, 둘은 바닷가의 넓적바위 위에서 만났다. 그날 밤은 파도가 푹 갈아앉아 있어서 파도소리가 잔잔했고 보름달의 파란 달빛이 그녀의 얼굴에 곱게 부서졌다. 남정네는 그 유혹적인 분위기에 참지를 못했다. 서로는 거의 알몸으로 누워서 파도소리를 들었고 곱게 쓰다듬어 주는 달빛을 받았다.

     그녀는 남정네의 가까히 다가오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막으면서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무당이라면서... ..."

     "누가 그래."

     "그것도 모를라구, 다 아는데, 사람들이... ..."

     연화는 주모에게서 그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좀 께름칙한 대로 무당이 되면 어쪄랴마는 그러나 내림무당이 된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남편은 언제나 바다에서 일찍 죽었고 과부가 된다는 말이 무서웠다.

     연화는 끝식이에게 시어머니가 풀어 먹고 사는 것을 버리라고 당부했다. 외아들 하나만 낳고 남자가 금방 죽어버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금찍했다. 끝식이의 집안은 죽마진에서는 이미 이력이 나 있는 무당집인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음, 그 집 며느리로 들어가면 내림무당이 되고, 과부 살이 있는지 남자가 아들 하나만 낳았다 하면 죽는 집안이야."

     주모는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 했었다. 끝식이는 연화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연화는 왜 집을 나왔어?"

     "그런 걸 알아서 뭘 해?"

     "그냥 알고 싶어."

     "시시한 이야기야. 가난이 죄고..... 아버지의 술주정, 어머니의 도망, 뭐 그런 거야. 매일 맞았으니까."

     그녀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기운이 있는 한 가족들을 때렸다고 했다. 그 중에서 연화는 제일 맏딸이었으므로 도망간 어머니 몫까지 맞았다.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가난과 술주정 때문에 어머니가 도망가 버리자 의부는 술을 마시고 연화를 기절시키도록 때려 놓고 강간을 했다. 어느 날, 비가 몹시 퍼붓던 날 집을 뛰쳐 나왔다고 했다.

     서로들 그런 시시한 이야기는 무드를 잡친다. 필요없는 이야기가 되겠다.

     한 남정네와 한 여자는 아주 쉽게 요구와 순응을 동시에 했다. 그 사이사이에 높아지는 비음(鼻音)의 교성을 파도소리가 아주 익숙하게 감춰줬다.

 

     자식은 오랫만에 오사리댁을 찾아갔다. 곧 며느리가 생길 것이란 이야기를 했고 무당을 버릴 수만 있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겠다고 했다. 오사리댁은 그녀의 외로움을 결국 자식과 며느리에게 의탁하기로 했다. 그러나 처음 수삼년은 미친 듯이 내리는 신기(神氣)를 스스로 달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큰 병을 앓았다. 거의 일주일을 아무 것도 못 먹고 열병에 시달렸다. 자꾸 뭔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허공을 응시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때는 눈이 하얗게 내린 겨울인데 도저히 방안에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가슴을 쥐어 뜯는 아픔이 끊임없이 몰려 왔다. 
     삭망을 지난 달빛이 내리 비치고 있었다. 그녀가 밖으로 뛰쳐나가보니 사립문 밖에서 큰 것이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것을 보자 그녀는 지금까지의 아픔이 말끔히 씻기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큰 것의 의도를 알아 차렸다. 그녀는 큰 것의 인도를 받으면서 당골로 밤길을 떠났다. 당골에 가서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사흘을 쓰러져 있었고, 그리고 다시 밤길을 큰 것의 인도를 받으면서 집으로 돌아와서 이틀을 더 누워 있다가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문득문득 신이 내리면 거의 사흘씩 먹지도 않고 잠도 안자고 소복을 한 채 큰 것을 기다렸다. 그것은 하나의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자식과 며느리는 그것을 눈치챘다. 눈이 온 새벽에 밖에 나가보면 큰 것의 바자국 앞에 앙증스런 시어머니의 고무신 자국이 찍혀 있었다. 결국 두 젊은 내외는 그것만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3년만에 석동이가 태어났고 지금 앓고 있는 석동이는 다섯살인 것이다. 시어머니는 신이 내리면 며느리를 앙칼지게 노려보면서 저주를 했다. 그때마다 시어머니의 저주 때문인지 골네댁은 머리가 쪼개지는 것처럼 아프고 열이 나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리고 저절로 신이 나서 춤이 나왔다. 춤을 출 때는 자신도 몰랐다. 정신없이 춤을 추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들었다. 골네댁의 의식 속에서 뭔가 자꾸 거부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이 들곤 했지만 그것이 뭔지는 구체적으로 의식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정신이 들면 그때 비로소 한숨을 쉬면서 그대로 며느리를 재우고 그 다음날 아침이 되면 골네댁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멍청하게 일어났다. 그러기를 일년에 두서너 번씩 했다.

     그렇게 골네댁은 시어머니의 그 집념과 저주를 앙칼지게 억척으로 버티고 이겨냈던 것이다. 그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시어머니는 돌아가실 즈음에 유언처럼 헛소리를 했다.

     "네 이년, 네가 안풀어먹고 살면 이 집안이 거덜이 난다. 그냥 집안 문 닫는 거야. 석동이나 애비를 생각해서라도 풀어먹고 살아야 해. 이 집안은 조상대대로 신이 내린 집안이야. 네가 고집 부리면 내가 갈 곳을 못 찾아가. 그때는 내가 네년을 꼭 데려 간다."

     이렇게 골네댁을 저주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정신이 들면,

     "얘 애미야, 우리집이 망하지 않으려면 자신은 없지만 내 말 명심해라. 우리 집에 신이 내린 것은 네 시증조모 때부터다. 본래 우리 집은 자손이 귀해서 네 시증조모가 아기를 얻을 때, 정실몽주님께 백일 치성을 드렸지. 정실몽주님은 어리석은 우리들의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셨다. 풍어제도 거기서 지냈고, 아기를 얻은 것도 거기서지. 네 시증조모가 백일기도만에 아기를 얻었는데 바로 그 아기가 네 시조부가 된다. 그리고 두번째 아기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죽었다. 아무 병도 없이 갑자기 죽었지. 그러니까 시증조모가 정신을 놓았었지. 사람들이 네 시증조모를 보고 곧 죽을 거라고 했었지. 자식 죽고, 죽은 자식이 애미 잡아 간다고 야단이었지. 아기가 죽고 닷새가 지나도 사람들이 아기를 내다묻지 못했지. 그 노할머니가 꼭 안고 놇아주지를 않았지. 그러더니 어느날 갑자기 노할머니께서 벌떡 일어나더니 아기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지. 다 죽게 된 당신이..... 사람들이 무서워서 막지를 못했지. 시증조모는 아기를 안고 당골로 갔지. 그 아기를 정실몽주 앞에 눕히고는 예, 그저 바칩니다. 하나면 됐는데 그저 어리석은 마음에 욕심이 과해서..... 이제 이 아기를 바치니 노여움을 푸시고 그저 우리 집안 대대로 자자손손 번창하게 해 주시옵고,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그때부터 당신에게 신이 내렸지. 그 뒤로 아기는 바닷가로 난 소나무 밑둥에다 묻고 그 소나무에 금줄을 치고 내리 당골에서 살았지. 정실몽주 모시고 점도 하고 굿도 하면서. 우리집은 그때부터 정실몽주님이 돌보아 주신단다. 너도 석동이를 뱄을 때 꿈을 꾸었지. 우리 집안은 여자들만 거의 비슷한 태몽을 꾼단다. 시할머니도 그랬고 또 나도..... 그것이 다 정실몽주님이 돌보아 주신다는 증거다."

     사실 그랬다. 골네댁은 동쪽으로 난 소나무 옆의 큰 돌을 붙잡고 그 돌 주위를 빙빙 도는 꿈을 꿨었다. 그것이 하도 이상해서 시어머니에게 물어보니 태몽이라고 해서 아기 이름을 석동(石東)이라고 지었던 것이다.

     시어머니는 가래가 끓는 목소리를 억지로 열면서 다음 말을 이었다.

     "지금 이야기하는 방법은 아주 위험한 방법이다. 그러나 너나 애비가 굳이 정실몽주님을 거슬리니 안할 이야기다만 한다. 내가 한이 많이 죽으면 귀신말명이 될 것이니 어디 제 길을 찾아갈지 모르겠다. 무당 죽은 귀신은 사귀나 악귀가 된다고 했으니 잘 달래어서 뒤웅박 속에 가두고 혹시 치성을 잘 들여 보아라. 귀신을 살살 달랠 때는 동쪽으로 난 소나무 가지나 복숭아나무 가지를 갖고 달래도록 하여라. 그리고 바다에서 잡은 제일 첫 새벽에 잡은 고기를 정갈하게 해서 치성을 들여 보아라. 그 동안 내가 정실몽주님을 잘 모셨는데 이제 이 집안이 큰일 났구나. 그러잖아도 걱정이 되어서 각시무당 하난 신딸로 들여 앉혀 놓긴 했다만 나만큼 정실몽주님을 잘 위할런지..... 이 집안이....."

     그러더니 시어머니는 얼마 뒤에 다시 눈이 새파랗게 돌아가면서 부릅 뜬 눈으로 다시 골네댁을 노려 보았다.

     "네 이년, 풀어먹고 살아라. 안그러면 이 집안 내가 가만 둘 줄 아느냐. 나보다도 정실몽주님의 노여움이 그냥 있을 줄 아느냐?"

     말을 했다면 분명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부릅 뜬 눈으로 뭐라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릅 뜬 눈으로 사흘을 버티더니 결국 눈도 못 감고 그 새파란 눈빛으로 돌아 가셨다.

     시어머니의 그 눈을 아무리 감기려고 해도 결국 감기지 못했다. 아무리 눈을 쓸어도 감겨지지가 않았다. 그때 끼치는 귀기와 전율..... 그때의 그런 음습한 분위기에도 달빛은 왜 그리도 파랬던지..... 염습을 할 때도 시어머니의 그 눈빛이 무서워서 한지로 얼굴을 가리고 염(殮)을 했었다. 그렇게 해서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도 끝내고 열흘만에 남편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으로 죽은 것이다.

     골네댁은 생각다 못하여 마지막으로 당골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조상대대로 내려온 그 뿌리의 질김 때문에 골네댁은 몸서리를 쳤다. 한잠도 못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석동이를 묵호댁에게 맡기고 집을 나섰다. 석동이를 업고 가고 싶기도 했지만 그 멀고 험한 길을 더구나 이 추위에 혹시 데리고 갔다가 병이 덧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시어머니가 가르쳐 준 오사리 마을은 사실 멀었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도 저녁 늦게야 도착했다. 생각해 보면 골네댁은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그렇게도 그악스레 시어머니의 신딸 되기를 거부했지만 그러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안이 시어머니 저주대로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가끔 시어머니가 신이 내려서 몸부림을 칠 때를 보고 그녀는 몸서리를 쳤었었다.

     이제는 후회해도 너무 늦었고 또 새삼스레 후회한다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오고 죽은 남편이 다시 살아 올 리도 없을 것이다.

     저녁 늦게 오사리 마을이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뒷산에 도착했다. 이상하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먹었는데도 배고픈 줄을 모르겠다. 마을이 보이는 뒷산으로 뚫린 길을 따라서 또 한참을 걸었다. 달빛이 예리하도록 파랗게 온 산에 꽂혔다.

     순간, 골네댁은 아, 하고 무서움에 온 몸을 떨었다. 바로 그 길이었다. 꿈에 본..... 시어머니가 꿈 속에서 따라오라고 재촉했던 그 길이 달빛을 받고 구비구비 뻗혀 있었다.

     그리고 파란 달빛 아래서 바로 저 앞에서 소복을 하고 돌아가실 때, 눈을 못감고 그 외경스런 눈빛으로 흘겨보면서 시어머니가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소리도 안하고 스적스적 걷다가는 자꾸 뒤를 보면서 손짓을 했다. 거리는 더도 덜도 아닌 꼭 고만한 거리였다.

     골네댁은 순간, 제 정신이 아니었다. 소름이 쭉 돋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자기도 모르게 끌려 갔다. 마음 속으로는 안 따라가려고 했지만 몸이 마음처럼 되지가 않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온 산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바닷가에는 소나무가 동쪽으로 뻗어 있었고 그 소나무 가지에는 금줄이 쳐져 있었고 약발을 받아서 새빨간 고추가 촘촘히 매달려 있었다. 그 소나무 옆에는 석동이를 뱄을 때 봤던 바위가 우뚝 서 있었다. 골네댁은 마음 저편으로는 거부를 하면서도 시어머니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시어머니를 따라서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덩골 입구의 맞은 편에 정실몽주의 목각인형이 모셔져 있고 그 옆에 시어머니가 앉아서 그 독이 오른 파란 눈으로 골네댁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이년, 내가 너 때문에 찾아갈 데를 못찾아가고 있어. 오늘 네가 네 발로 잘 찾아 왔다. 어쩔 테냐? 풀어먹고 살면서 석동이를 살릴 테냐? 아니면 집안 문을 닫을 테냐?"

     시어머니는 쇠된 목소리로 다그쳤다. 골네댁은 그때,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석동이 생각도 안났고, 그대로 도리질만 쳤지만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의 몸은 저절로 춤을 추고 있었다. 징소리, 북소리, 요령소리 이 모든 소리가 그녀의 귀에 멍멍하도록 꽉 찼다. 시어머니는 점점 더 빠르게 요령을 흔들면서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골네댁은 정수리에 예리한 빛살이 꿰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고, 머릿속이 갑자기 밝아졌고, 그 밝음 저 밑바닥에 거부의 조고마한 그림자가 남아있는 것을 의식했지만 그러나 머리는 아프지 않았고, 자꾸 이러면 안된다는 의식은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춤을 추면서도 시어머니 앞에서 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 줄곧 떠올렸다. 그래서 그녀는 그대로 춤을 추면서 암자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고 그 침묵의 공간은 이윽고 파도소리가 들어 찼다.

     암자 밖은 큰 것이 버티고 앉아 있었다. 파란 달빛의 큰 것의 눈동자에 반사됐다. 골네댁은 큰 것을 봐도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푸근했다.

     그녀가 돌아가는 길에 큰 것이 뒤따라 왔다. 큰 것은 꼭 알맞은 거리를 두고 소리없이 따라왔다. 골네댁은 자꾸만 걷다가는 뒤를 돌아보곤 했다. 큰 것이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걸었다. 큰 것이 따라오니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샛별이 서산에 걸려있는 새벽에 골네댁은 집으로 돌아 왔다. 사립문이 보이는 집 앞에서 골네댁은 비로소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큰 것은 이미 없어졌다. 골네댁은 기다시피 방으로 들어와서 누웠다. 이내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헛소리를 했다.

     "빨리 뒤웅박 갖고 와. 제까짓 것이 나를 누를라고 그래,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묵호댁은 안고 있는 석동이를 골네댁의 품에 안겨주고 뒤웅박과 근래에 잡은 명태를 가져왔다. 촌에서 뒤웅박은 꼭 필요했다. 봄에 심어서 가을에 꼭지를 따고 속을 파내어서 그 안에다 귀중한 물건을 넣어두기도 했고, 아니면 반으로 쪼개어서 속을 다 파내고 허드레 바가지로 쓰기도 했다.

     묵호댁은 건너방에 상을 차렸다. 아직 시어머니의 상청을 치우지 않았다. 뒤웅박을 상 위에 놓고 그른 명태와 몇가지 음식을 진설하고 정화수 한 그릇을 떠다놓고 빌었다.

     안방에서는 골네댁이 끊임없이 구시렁대고 있었다.

     "오사리 할매, 제발 이것 잡수시고 우리 석동애미와 석동이 보살펴서..... 부디 노여움 푸시고....."

     묵호댁은 하루종일 빌었다. 그러나 골네댁은 묵호댁의 비는 소리를 계속 구시렁거리고 따라하면서 빙정댔다. 골네댁은 계속 헛소리를 하면서 묵호댁이 건너방에서 비는 말을 안방에서도 똑같이 그 말을 받아서 빈정댔다.

     대청마루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지만 묵호댁은 그 소리를 듣자 소름이 끼쳤다. 묵호댁은 그 순간, 자기 집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골네댁은 미친 년, 하면서 석동이를 안고 건너방으로 비틀거리며 건너가더니 그 상을 발길로 차서 엎어 버렸다. 그 바람에 석동이가 그악스레 울기 시작했다. 석동이의 울음소리가 송곳으로 귀를 후벼파는 것 같았다.

     "... ... 또, ... ..., 그놈의 울음소리가... ..."

     골네댁은 석동이의 목을 눌러 죽여 버렸다. 울음소리가 그치자 골네댁은 석동이를 안고 그냥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틀 뒤에 묵호댁이 다시 와보니 골네댁은 그냥 자고 있었다. 묵호댁이 조심스레 흔들어 깨우니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지 묵호댁을 똑바로 쳐다봤다. 비로소 골네댁은 시어머니의 귀신말명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골네댁이 정신을 차리고 석동이를 찾았을 때는 이미 석동이는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그 뜨겁던 열도 식었다.

     "... ..., 내 애기, 애기가, 석동아... ..."

     석동이가 죽은 것을 본 순간, 골네댁은 누구에겐가 모르게 저주를 하면서 방문을 박차고 뛰쳐 나갔다. 석동이를 가슴에 안은 채 집 뒤꼍으로 가서 낫을 번쩍 치켜 들고 사립문 밖으로 내달렸다. 묵호댁은 달빛이 낫에 반사되는 것을 본 순간, 그냥 그 자리에 누질러 앉아 버렸다. 골네댁은 공동묘지로 난 바닷가의 가파른 외길로 뛰쳐 나갔다. 그 길은 높고 험한 절벽을 끼고 있었다. 골네댁은 위태위태하게 그 길로 치달렸다.

     석동아- 석동아-

     달빛이 절벽을 내리치고 있었다. 동짓달의 바닷바람이 맵차게 골네댁을 때렸지만 그녀는 의식하지 못했다.

     드디어 시어머니의 무덤까지 왔다.

     "이년, 뮈라고, 집안 문을 닫는다고... ... 그래 닫아라, 이제는 더 망할 것도 덜 망할 것도 없다. 네년이 눈을 못 감는다고... ..., 그래, 네년의 그 눈을 이걸로 감겨 줄께... ..."

     골네댁은 낫으로 무덤을 자꾸 팠다. 처음 봉분 위의 흙은 얼어서 굳어 있었지만 그 위를 벗겨 내자 이제 무덤 쓴 지 두 달이 채 안되므로 아직 얼지 않은 부드러운 흙들이 쉽게 부서졌다. 골네댁은 석동이를 무덤 곁에 내려 놓고 무덤을 계속 파헤쳤다. 손등에서 피가 나도 아픈 줄 몰랐다. 관이 나왔다. 바닷바람이 골네댁의 머리를 더욱 헝클어 트렸다. 달빛에 비치는 골네댁의 얼굴에는 귀기(鬼氣)가 서렸다.

     관의 뚜껑을 낫으로 찍었다. 둔중한 소리가 공중을 울렸다. 관의 뚜껑을 깨자 수의를 입은 시신이 나왔다. 머리를 염한 베조각이 잘 안풀어지자 낫으로 끊었다. 머리를 받쳐 들자 뼛소리가 났다.

     죽을 때도 감지못한 그 눈은 골네댁을 파랗게 노려보고 싸늘하게 비웃고 있었다.

     "... ... ..."

     골네댁은 그냥 쓰러졌다. 그 순간, 아기의 울음소리가 온 산을 뒤흔들었고, 그 사이사이를 차가운 파도소리가 악착같이 채워주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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