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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 연구학자와의 인터뷰
2012년 12월 01일 15시 16분  조회:4079  추천:0  작성자: 회장
죽음학 연구학자와의 인터뷰
_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기계_
 
죽음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놀라울 만큼 적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아는 것이 없다. 죽음을 다룬 책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종교적 관점에서 쓴 책 말고는 별다른 저작물이 없었다. 그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죽어본 사람만이 죽음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 있을 테니까. 미국 예일대 철학과 교수 셸리 케이건(Kagan·58)은 1995년부터 17년간 '죽음(Death)'이란 제목의 강의를 해오고 있다. 그의 강의는 '열린 예일 강좌(Open Yale Courses)'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공개돼,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서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교탁에 앉아 강의하는 그의 친근한 모습도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그가 올 4월 펴낸 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가 최근 한국에서 출판됐다(엘도라도 刊). 이 책이 미국 밖에서 번역돼 나온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이 책은 '죽음'을 주제로 한 철학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은 존재하는가? 영혼이 있다면 영생하는가? 죽음은 나쁜 것인가? 영원히 살고 싶은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음 직한, 그러나 논리적으로 따져보지 않았을 질문들에 대해 집요하게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묻고 대답한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케이건은 조목조목 대답을 내놓고 있지만, 자신의 결론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번쯤 이 질문에 답해보라'고 권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런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독서다. 이 '교탁 위의 철학자'를 지난달 23일 미국 뉴헤이븐(코네티컷주)에 있는 예일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죽음의 철학자'라는 선입견과 달리 청바지와 체크무늬 셔츠, 운동화를 신은 그는 매우 유쾌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이 책이 다른 나라에서도 출판될 계획이 있습니까.

"한국어판이 처음이고, 중국어판이 진행 중입니다. 솔직히 제 책이 두 나라에서 먼저 번역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기쁘고도 놀랐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번역됐고 한국 기자가 찾아온 셈인데, 왜 한국에서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걸까요.

"한국에서 온 당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이 겪어야 하는 경험인데 왜 한국일까? 몇 달 전에 중국 베이징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갔다가 예일대 졸업생인 서울대 철학과 이석재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엄청나게 팔렸다'고 하더군요. 한국 인구가 5000만명인데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고요. 인구에 비춰 보면, 미국에서는 고전을 제외한 어떤 책도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책은 심각하고 학술적인 내용인데요. 한국이 특히 지적인 사회이거나 '정의'에 민감하기 때문일까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내 책이 처음 번역된 것과 무관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죽음이나 정의 모두 인간 삶의 중심적 질문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쩌면 한국의 대학 강의실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샌델 교수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사례 중 '정의란 무엇인가'와 유사한 것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 사람을 희생시켜 장기를 이식하면 5명을 살릴 수 있다고 가정할 때, 그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이 옳은가' 하는 사례 같은 거죠.

"그것은 비슷한 게 아니라 똑같은 비유입니다. '장기이식 사례'라고 부르는 건데, MIT(매사추세츠공대)의 철학 교수 주디스 톰슨이 만들어낸 사례입니다. 나와 샌델은 이 사례를 각각 다른 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죠. 어쩌면 두 강의가 비슷한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일지도 모릅니다."

'장기이식 사례'는 공리주의(功利主義)를 설명하는 데 쓰인다. 샌델은 정의를 논하면서 이 사례를 들었고 케이건은 자살에 관해 강의할 때 이 사례를 거론한다.

―제 생각엔 '죽음'과 '정의' 두 강의나 책이 소재만 다를 뿐 결국 '철학 입문' 수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학부생에게 가르치는 강의라는 것이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샌델의 강의는 정치학의 입문 코스이고, 내 강의는 철학의 입문 수업입니다. 두 강의 모두 많은 주제를 넓게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샌델은 정치철학자이기도 하지요. 내 저술은 대부분 전문 철학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죽음'은 평범한 개인들을 위한, 누구나 생각해 봄 직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그동안 아무도 많은 대중과 공유하려고 하지 않았던 주제였죠. 나는 수업시간에 칸트나 밀, 흄, 홉스에 대해 말하지만 학생들이 진정 그런 위대한 철학자를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철학이 어떤 학문인지, 어떻게 논리적이고 신중하게 생각할 것인지 배우길 바랄 뿐이죠. 죽음과 사후, 영혼에 대해 논하면서 이런 논쟁적인 문제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내 강의의 목표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특정한 관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관점을 갖게 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학생이나 독자는 당신으로부터 올바른 관점을 배우려고 하지 않을까요.

"강의하는 방식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 관점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 거예요. 내 카드를 가슴 가까이 대고 안 보여주는 거죠. 이를테면 제가 가르치는 윤리학 강의는 그런 식으로 합니다. 그렇지만 죽음 강의에서는 내가 옳다고 믿는 관점을 말합니다. 마치 과학 강의처럼 말이죠. 과학 선생은 '지구가 둥글다는 관점이 있고 평평하다는 관점이 있다.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둥글다는 이론을 지지한다'고 하겠죠. 다만 죽음 강의에서 저는 제 관점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여러 가지 관점을 배우고 자신만의 관점을 갖길 바라는 것이죠."

―이 강의를 17년간 해오고 있다면서요.

"예일대에 온 것이 17년 전입니다. 죽음 강의는 이전에 있던 시카고 일리노이주립대에서부터 했어요. 그게 1985년이니까, 최소 25년은 했을 겁니다. 교수로서 첫 직장은 피츠버그주립대였습니다. 거기서 저는 주로 윤리학을 가르쳤는데, 일리노이주립대로 옮길 때 그 대학 학과장이 '죽음에 대해 가르쳐볼 생각 있느냐'고 하기에 좀 생각해보고 '하겠다'고 했어요. 그것이 이 강의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어요. 아까 내 수업을 '철학 입문'이라고 했는데, 어떤 입문 강의는 경품 주머니(grab bag) 또는 뷔페 테이블(smorgasbord) 식으로 하는 게 좋을 때가 있습니다. 몇 해 동안 이 강의를 하다 보니 다양한 주제를 넓게 다루는 방식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묘사할 수 있는가, 죽으면 존재가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죽음이 두려울 수 있는가 하는 생각들이 떠오른 것이죠. 그런 식으로 내 강의의 스토리라인을 짜게 된 것입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당신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영혼이 있다고 믿음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죠.

"물론입니다. 영혼을 믿는 것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지요. 특히 많은 사람은 종교적인 이유로 영혼을 믿습니다. 물론 내 강의나 책의 목적이 그런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려는 것은 아닙니다(웃음). 그렇지만 진실은 때때로 불편한 것이죠. 아이들도 자라면서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잖아요?"

―이를테면 산타클로스의 존재 같은 건가요.

"그렇죠. 아주 익숙한 사례입니다. 또 아이들은 자라면서 세상에는 나에게 해로운 것이 많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나는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보게 해주려는 겁니다. 그것이 설령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더라도 말이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왜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단계의 위안이나 평안을 얻을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인간은 로봇보다 나은 기계에 불과하다'는 식의 주장은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습니까.

"나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기계라고 생각합니다. 기계와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은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 기계이며, 어떤 계기를 통해 자유의지를 갖게 된 것이지요."

어쩌면 그의 책에서 이 부분이 많은 독자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그는 영어판에서도 'machine'이란 용어를 쓰면서 인간을 기계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 결함 없는 기계로 태어나 점점 낡게 되고 부품을 교체하기도 하지만, 결국 고장나서 어느 날 쓸모없이 돼버린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죽음의 요체다.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이나 기르던 개나 고양이의 죽음, 심지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죽음을 상상하곤 합니다. 그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죽음과 일치합니까.

"그렇죠. 토끼나 금붕어, 낙엽과도 다를 것이 없어요. 만약 내가 망치로 당신의 스마트폰을 부숴버린다면 미안하지만 스마트폰은 '죽어'버릴 것입니다. 기능을 멈추는 것이죠. 살아있을 때 하던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상태가 죽음입니다. 그런 개념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 내 강의의 요점이기도 해요. 내 삶은 우리 집 오디오가 낡아서 고장나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 고장나고 결국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설명을 영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친구나 가족, 아이가 죽는다면 무척 슬프고 화가 나지요. 그렇다면 영원히 산다는 것은 좋은 것일까요? 영생이 나쁜 것이기 때문에 죽음 그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거나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시간여행도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아, 어려운 질문인데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시간여행이 과연 말이 되는가'와 '시간여행이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두 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사람이 팔을 빨리 휘저으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죠. 나는 항공역학(aerodynamics)은 잘 모르지만, 개념상으로는 인간이 날 수 있을 만큼 빨리 팔을 휘저으면 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과연 그렇게 빨리 팔을 휘젓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아마도 아닐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죠. 시간여행 역시 관념적으로는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물리적으로는, 글쎄요.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가능한지는 물리학자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수업시간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매우 많은 다양한 질문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큰 질문(big question)은 학생들 스스로 물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영원히 살고 싶은가' 하는 질문이죠. 아무도 나에게 '영혼이 있습니까' 하고 묻지는 않아요.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알기 때문이죠. 학생들의 질문은 대개 세세한 부분에 대한 것들입니다. 사례를 들어 설명할 때 질문이 많아집니다. 내가 물리적인 존재, 기계에 불과하다면 사후의 삶이 가능한가? 신이 우리를 부활시킬 때 죽어서 썩은 시체를 다시 조립해 부활시키면 그것은 과연 나인가? 내 시계가 고장나서 일부 부품을 교체했다면 그것은 여전히 내 시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죠. 내 아들이 나무블록으로 쌓은 탑을 '엄마에게 내일 보여주겠다'고 한 뒤 잠들었어요. 그런데 내가 실수로 그걸 무너뜨렸습니다. 그래서 설명서를 보고 그것과 똑같이 다시 쌓은 뒤에 아내에게 '이것 봐, 우리 아이가 쌓은 탑이야'라고 한다면 과연 두 탑은 똑같은 탑일까요? 이런 얘기를 하면 질문도 많고 말도 많아집니다. 흥미로운 사례 하나를 더 말해보죠. 의학적으로 뇌 이식이 가능해져서, 뇌를 이식하면 모든 기억이 그대로 옮겨진다고 가정합시다. 내가 큰 사고를 당해 뇌만 남고 모든 신체 기능이 죽어있는데, 존스라는 사람이 뇌만 죽고 신체만 멀쩡하다고 칩시다. 내 뇌를 존스의 몸에 이식해서 그 사람이 깨어났다면, 그 사람은 존스인가요, 나인가요? 심지어 뇌를 두 개로 나눠서 두 사람에게 똑같이 이식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두 사람의 몸에 나의 뇌가 반씩 이식되는 것은 '두 명의 나'가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의학적으로 성공일까요, 실패일까요? 내 강의는 한 학기 내내 이런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케이스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학생들은 스스로에게 물을 질문을 만들어 가는 것이죠."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기보다 원치 않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요. 일찍 죽는다든가 사고로 죽는다든가 하는….

"물론 그렇죠. 스무살에 죽는다면 너무 일찍 죽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여든살에 죽어도 일찍 죽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기 때문에 대략 50세가 지나면 낡아지기(wear down) 시작해서 기능이 저하되고 결국 죽음에 가까워집니다. 80세가 됐을 때 30년을 더 보장받는다면 그것은 선물(present)인가요, 저주(curse)인가요? 조너선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생의 나라를 처음엔 환상적으로 묘사했지만 결국 끔찍한 형벌이라고 썼지요. 그것처럼 인간은 늙고 병들기 마련이기 때문에, 죽음은 때때로 구원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고 죽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나도 할 수만 있다면 100세까지 철학 공부를 하고, 물리학 공부를 100년, 음악 공부에 100년, 세계 여행에 100년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너무 일찍 죽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면, '어차피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데 열심히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죽음이 끝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 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내 인생이 의미 있는 것이 될까, 하고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심오한 사실은 '내가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70억명과 함께 같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다음에 해야 할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선한 것인가'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진정한 가치를 찾은 뒤에 그것을 목표로 삶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인생입니다. 결국 내가 학생들이나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도 그들의 인생이 앞으로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게끔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명함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이메일 주소를 적어준 쪽지 뒷면에는 공교롭게도 이번 학기 '죽음' 강의의 리포트 과제가 인쇄돼 있었다. 그 문제는 이러했다. "고대 로마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죽은 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나쁘다면 태어나기 전에 내가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기분 나빠야 할 것이다. 태어나지 않아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에 대해 기분 나쁠 수는 없으므로,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기분 나빠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주장에 대해 5페이지에 걸쳐 논하라." 그의 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이런 종류 질문들의 향연(饗宴)이다.

―책의 가장 마지막 장에서 자살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살에 반대하는 것 같은데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회복 불가능한 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권리 같은 것까지 자살에 포함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쟁터에서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는 자살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강의를 듣는 아이들이 누굽니까. 스무살 안팎의 아이들입니다. 특히 예일대 학생들은 엄청나게 똑똑하고 재능이 있으며 대단한 기회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 누구라도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확신을 주고 싶습니다. 특히 미국의 10대들은 너무 시야가 좁아서 자살을 택합니다. 그것을 막으려는 것이 이 강의와 책에서 자살을 다루는 이유입니다."

―학기 말쯤 되면 학생들 상당수가 당신의 관점에 동의합니까.

"놀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런 걸 물어보지 않습니다. 학기 초에나 학기 말에나 '여러분 중 얼마나 영혼을 믿나요?' 하고 묻지 않는다는 거죠. 아마도 자신의 관점을 바꾼 학생도 있겠고 아닌 학생도 있겠죠. 학기 말에 학생들로부터 짧은 평을 받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낸 강의'라는 평부터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한 학기'라는 양극단의 평가가 나옵니다. 이것은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학생들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것이니까요."

―학점을 짜게 주는 사람으로 유명하던데, 그것 역시 학생들이 '가치있는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인가요.

"나는 학점 짠 사람(hard grader)으로 유명한 것 맞아요. 이유는 아주 단순해요. 학생들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학생에게 좋은 학점을 준다면, 누군가 특별한 성취를 했을 때 어떻게 구별해 줄 수 있죠? 모두가 A학점을 받는다면 전체 평점이 올라가고 나중에 취직할 때 좋겠지만, '내가 A학점을 받을 만큼 했구나' 하는 성취감은 없어지는 거죠. 예일대에 진학했다는 것은 정말로 뭔가 성취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A학점을 줄 수는 없죠. 그리고 예일대 가이드북에 따르면 B학점은 잘했다(good)는 의미입니다. 많은 학생이 잘 하고 있기 때문에 B학점을 받는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함께 '죽음' 강의가 열리는 강의실로 향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창문이 장식된, 2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아름다운 교실이었다. 마침 추수감사절 휴일이어서 텅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죽음을 토론함으로써 삶을 얘기해왔다. 그가 교탁 위로 풀쩍 뛰어올라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교탁 뒤에 서 있으면 불편해서 견딜 수 없단 말이죠. 한국 사람들도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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