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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도리와 품위있는 죽음
2014년 09월 02일 15시 32분  조회:4961  추천:3  작성자: 玄盛元

죽음의 도리와 품위있는 죽음
(이 글에서의 사람 죽음에 대한 토론은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 비정상 죽음을 제외한, 순 평화시기 자연사에 준합니다.—편자주)
 
1/
죽음에 관한 화제는 상당히 신중한 화제로서, 일반 사람들은 보통 불길하다고 여기여 몹시 꺼립니다. 그 누가 때와 장소에 틀리게 죽음 화제를 경솔히 꺼냈다가는,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핀잔을 받기가 십상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들이 죽음을 이렇게 싫어하는 그 심리적 근원이 우리민족 전통 생사관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기실 그것은 지금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몰리해와, 그로부터 오는 공포감과 거부감, 그리고 문화적 빈곤에서 오는 우매하고 유치한 심리를 반영할 따름입니다.
인생의 도리가 천가지, 만가지 있지만 결국은 모두 죽음에 귀결됩니다.죽음이란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의 하나로서, 인생이란 것도 그 운행법칙을 놓고보면 기실 태여나서부터 죽음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생로병사의 과정입니다. 죽음문제를 두려워 하고, 배척만 하면서 참답게 연구하지 않는다면, 정확한 죽음관을 수립할수 없고, 진정한 인생의 도리와 가치를 깨달을수 없으며, 참다운 가족관, 민족관에 대하여서는 더구나 운운조차 할수 없게 됩니다.
지금 죽음의 도리는 사람들에 의하여 엄중히 추악화, 마귀화 되여 있습니다. 반드시 죽음에 대한 비뚤어진 태도를 바로잡고, 이 도리에 대담히 접근하고, 문화적, 종교적, 철학적으로 심도있게 연구하여, 문명하고 인간성 있는 죽음관을 창도함으로써 그로부터 많은 적극적인 인소들을 발굴해 내야 할것입니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한번 죽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후대를 낳아 키워 자기를 계승시켜야 할 리유가 생겼고, 능력을 키우고, 재부를 창조하여 우월한 조건을 마련해야 할 리유가 생겼으며, 건강과 미를 확보하여 충분히 즐겨야 할 리유가 생겼습니다.
중국에는 《홍백희사》라는 설법이 있는데, 결혼하는것을 《홍희사》라고 하고, 사람이 죽은것을 《백희사》라고 합니다. 여기서 《희사》라는 말은 음식을 차리는 《연회》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기쁜 일》이라는 뜻에서도 완전히 틀리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은 마치도 공공뻐스와 같이 승객들이 부단히 교체됩니다. 먼저 뻐스에 오른분들이 자기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림으로써, 또 다른분들이 오를수 있게 됩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이 세상에 오신분들이 일정하게 생존하신후 기꺼히 사망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여 생존하고 발전할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의 탄생과 죽음은 모두 사회가 발전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연적인 조건들입니다. 만일 2천여년전의 공자나 진시황같은 분들이 자기들은 위대하다는 리유로 《장생 불로약》을 먹고는 오늘까지 죽지않고 살아 계실수 있었다면, 지구에는 언녕 대 재난이 폭팔하여, 인류는 지금쯤 거의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되였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의 죽음은, 한방면으로는 기존 재부의 손실이면서도, 또 다른 한방면으로는 일종의 공간적인 공헌으로도 됩니다. 즉 일종의 《희사》이지요.
죽음이 있었으므로 하여, 인류는 한세대 한세대 계승되고 발전하여, 오늘의 고도로 발전한 문명세계에 까지 이를수 있었던 것입니다. 장원한 견지에서 볼때, 한사람의 죽음은 장구한 사회발전 행정에서 무수한 사회성원들의 부단한 교체과정의 한 순간입니다. 이런 교체과정이 부단히 지속되면서, 사회가 점차 보다 높은 경지에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견지에 서서, 사람의 죽음을 《생명의 종말》, 《사상의 정지》로만 인식하는 것은 소극적인 사유방식입니다. 이런 사유방식 때문에 몇천년을 내려오면서 사람의 죽음은 공포의 대상, 절망의 대상으로 밖에 될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관적인 견지에 서서, 사람의 죽음을 《인생의 완성》, 《사상의 승화》로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적극적인 사유방식입니다. 종교를 하지않는 사람일 지라도, 진정 이런 사유방식으로 죽음을 대할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기 인생의 원만한 완성을 위하여 열심히 생명을 빛내일 것이며, 자기 사상의 승화를 위하여 깨끗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것입니다.
 
2/
사람들의 인생을 년령단으로 크게 세개 단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번째 단계는 태여나서 부터 시작하여, 30세 까지로 하였습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주로 발육 성장하고, 지식과 재능을 배우고, 학위를 따고, 직업을 얻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등등의 일들을 하는데, 주요하게 금후의 본격적인 인생을 위하여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두번째 단계는 31세부터 시작하여, 60세 까지로 하였습니다;
바로 인생의 주체를 이루는 본격적인 운영단계로서,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을 각자 자기 방식대로 운영하여, 자기가 지향하는 인생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고심하게 분투합니다.
마지막 세번째 단계는 61세부터 시작하여, 사망하기 까지로 하였니다;
이 단계는 인생의 고급 단계로서, 한편으로는 인생 마무리 단계라고도 합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보통 젊어서부터 추진하여 오던 뜻과 사업을 정리하고, 그 기초상에서 새로운 고급적인 노년인생을 시작하게 되는데, 각자 장악하기에 따라서 그 의의가 많이 달라지며, 저 앞에 막연하게 보이는 인생 종착역과의 거리를 점점 좁히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회가 점차 노령화 되면서 지금 국제적으로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이란 말이 상당한 인기화제로 나서고 있습니다.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사전적 의미로는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과 행복, 복지와 안녕을 의미하고, 사회적 의미로는 물질적 부유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부유도 추구하면서, 진정으로 삶의 질을 강조하는 생활 방식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웰빙(well-being)이란 우리말로는 《훌륭한 삶》, 《참다운 삶》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웰다잉(well-dying)이란 말은 원래 서방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안락사》나 《호스피스》리념에서 출발하여 제출되였는데, 그 기본내용을 적극적인 견지에서 우리의 리념으로 리해하고, 해석한다면, 인생을 원만하게 마무리하고, 생명의 존엄을 잃지않는 《훌륭한 죽음》, 《품위있는 죽음》이란 뜻이 되겠습니다.
천백년래 사람들은 모두 잘 살기 위하여 분투하여 왔으며, 행복하게 살기만 꿈꾸어 왔습니다. 이렇게 천년만년을 살것처럼 열심히 노력하며 살다가, 결국은 백년도 못 살고 어쩔수 없이 때가 되여 죽어야만 했는데, 보편적으로 상당히 피동적인 처지에 빠지여 슬프게 죽어야만 했습니다.
시대가 오늘에 이르러,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시대배경에서, 이제부터 사람들은 인생의 더 높은 차원의 질과 완미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죽음의 품위까지 강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진대, 삶의 도리뿐만이 아니라, 죽음의 도리도 명확히 하여야만 완정하게 인생의 도리를 터득할수 있습니다. 품위있는 죽음은 생명에 대한 최후의 존경이며,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성 있는 완성이며, 생명혜택에 대한 완미한 보답으로 됩니다.
한 사람이 젊어서는 아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었는데, 늙으막에 와서 어렵게 살다가 처량하게 죽는다면, 그런 인생은 완미한 인생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한 사람이 젊어서는 많은 고생을 하면서 파란많은 인생을 살았었는데, 늙으막에 와서 행복하게 살다가 품위있게 죽는다면, 그런 인생이야 말로 참으로 완미한 인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3/
그럼 평화년대에 어떻게 죽는것이 품위있는 죽음이고, 어떻게 해야만 품위있게 죽을수 있겠습니까? 기실 이 문제에서는 절대적인 통일표준이란 있을수 없으므로, 문제 제기방식을 바꾸어, 어떻게 노년인생을 충실하게 사시다가,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하겠는가? 하는 식으로 해석하여 봅니다.
 
첫째; 삶의 열정을 계속 확보해야 하겠습니다.
노인들이 즐기는 노래에서는 《육십이 청춘》이요,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아.》…등등의 내용들이 많은데, 어찌보면 이런 내용들은 젊은인생의 미련을 못 버리고, 늙음을 긍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혐의가 있습니다. 늙은이가 어째서, 꼭 젊음을 빌어서 고무 받아야만 합니까? 기실 노년인생이 체질상에서 젊은이들만 조금 못하겠지만, 다른 각 방면에서는 보편적으로 젊은인생을 초월하는 고 효률적인 인생입니다. 퇴직을 하고는 무료하게 시간을 허송하면서, 막연히 죽음을 기다리는것이 노년인생이 아니라, 파란 많았고 유치했던 젊은시절의 중급인생에서, 보다 성숙된 고급인생에로 승급하는 것이 노년인생입니다.
노년기에 열정을 잃지 않고, 노년기의 특점에 맞게 계속 열심히 살아 간다면, 노년기에도 여전히 위대한 업적을 창조할수 있습니다. 력사상 강태공은 80세에 승상이 되여, 무왕을 도와 상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습니다. 강태공이 우리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면, 최근에도 그런 근거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최근 세계 력사상의 불후 업적들을 통계한 자료에 근거하면; 35%는 60-70대 노인들이 창조하였고, 23%는 70-80대 노인들이 창조하였으며, 6%는 80대이상 노인들이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세계 력사상의 불후 업적의 64%가 60대 이상 노인들에 의하여 창조된 셈이죠.
사람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면서, 앞으로는 세계 불후 업적의 70%이상을 60대 이상 노인들이 창조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둘째; 노년기에도 인생 목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출생하면서 세월과 《수명계약》이 체결되는데, 첫째; 유효기한내에 반드시 죽어야 하고, 둘째; 죽을 때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야 하고, 일푼도 갖고 가지 못하며, 셋째;… … 《수명계약》의 유효기한은 일반적으로 백년을 초과하지 못합니다. 이 기초상에서 자기 運의 발휘 정도에 따라 유효기한이 많이 앞당겨 질수도 있고, 또 조금 연장될수도 있습니다. 목표없이 살다보면 백년이라는 인생도 결국에는 최후 하루밤의 긴꿈에 불과 하겠지만,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살아 간다면 몇십년 사이에라도 천년업적 쌓을수 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의의는 오래 살았다 하기보다, 자기가 죽은 후에라도 자기가 생전에 이룩해놓은 그 무엇들이(자식들을 포함하여) 계속 사회에 유익하게 리용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기실 대자연으로 되돌아 간다는것을 의미할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한번밖에 다시 없는 인생인데, 자기 노년의 인생목표와 계획을 최소로 한 백살까지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짜로 백살까지 살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랑패 될것이 무엇입니까? 《수명계약》이 만기 되여 죽어야 할때 가서 선뜻이 죽으면 되니깐요. 한 장수노인은 환갑때에는 60성상 자기 인생 성과를 놓고, 하늘 높은줄 모르고 자랑을 늘여 놓았었는데, 90세 장수피로연에서는 허송한 지난 30년이 너무 아까워 비감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로년기에 들어서면, 젊은인생때의 목표와 계획이 기본상 완료된 형편에서, 노년인생으로 과도하는 새 목표와 새 계획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노년인생은 마치도 세월의 바다에 버려져서 정처없이 표류하는 단풍잎처럼, 하루하루 무료하게 허실됩니다. 기실 그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으로 밖에 되지 않으니, 슬픈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세째; 유언장을 미리 써 놓읍시다.
전통관념에서 유언장을 쓴다하면 이제 곧 죽기나 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겠지만, 기실 현대심리학의 연구에 근거하면, 노인들이 유언장을 미리 써 놓음으로써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더욱 유쾌하게 살수 있고, 더욱 오래 살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유언장을 쓸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 이미 어느정도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품위있는 죽음》을 죽을수 있는 선제 조건중의 하나입니다. 유언장을 쓴다는 것은 한 사람이 사회나 가정에 자기의 지혜를 공헌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이렇게 보귀한 기회를 대부분 사람들은 아쉬위 할줄 모르고 무책임 하게 버립니다. 유언장은 유산 상속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량전통을 전수하고, 자기의 인생경험을 전수함에 있어서도 아주 적극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노인들마다 모두 자기 나름으로 터득한 인생의 철리가 있습니다. 이런것들은 인류의 공동한 정신재부에 속합니다. 이렇게 보귀한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죠. 그런것들을 유언장 형식으로 써서 사회에 남긴다면, 보귀한 정신유산으로 될수 있습니다. 아직 사유가 건전할때 자기로, 혹은 젊은이에게 위탁하여 책임성 있는 유언장을 한장 써서는, 살아 가면서 고치기도 하면서 완미화 시키여, 일단 죽을 때에 자기 인생의 종지부로 멋지게 턱 찍어 놓는다면, 그런 죽음이야말로 한결 더 품위가 돋보이는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만년에 들어서서 자기가 수시로 죽을수 있다는 점을 가볍게 받아 들이고, 죽음에 대비하여 적극적으로 필요한 준비를 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평소에 죽음에 대한 소극적인 심리를 극복하고, 하루하루를 마치도 세월이 주는 액외 혜택인양 소중하게 받아 들이며, 질량있는 만년을 충실하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전통적으로 결혼해서부터 수의를 만들기 시작하는 풍속이 있었으며, 자손들이 어르신들의 장수축하 선물로 수의나 관재널을 드리는 풍속도 있었는데, 고급적인 효행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자기는 영원히 죽지않을 것처럼, 죽음문제라면 무조건 거부하고 회피한다 하여도, 그 어느날엔가 반갑지 않은 죽음의 영예는 불가피적으로 당신에게 차려지게 됩니다. 죽음에 대하여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아무런 대비조치도 없이 하루하루 허송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몸이 이상해지고, 급기야 죽음을 당한다면, 그런 죽음은 초라할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의 지난 인생을 돌이켜 보노라면, 저마다 풍부하고 전기식적인 경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파란만장 헤치며 어렵게 살아온 자기인생을 한포기 마른풀처럼 초라하게 끝내 버린다는 것은, 자기에게 미안한 일일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미안한 일이며, 자손들에게도 미안한 일입니다.
죽음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삶을 점검해 본다는 것으로 되고, 삶을 충실히 이끌어 가는 원동력으로 됩니다. 따라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대답은 결국 어떻게 마지막 까지 잘 살아야 하는가로 귀착됩니다. 죽음에 대해 준비하고, 사유가 헝클어지기 전에 유언장을 미리 써 놓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며, 신체단련과 심리단련을 가강하여 삶의 속도를 늦추고, 미루었던 일은 즉시 시작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이란 못다한 계획을 실천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죠.
아침마다 깨여나서 눈을 뜨면서, 《오늘도 좋은 하루!—》, 신심에 차 웨치면서, 매일매일 새 아침 밝혀주는 하늘에 감사 드리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 갑시다. 저 멀리 막연하게 보이는 인생의 종착역, 거리는 하루하루 좁혀 지고 있지만도, 우린 일부러 세월과 장난을 치며, 한 삼백년 바라고 살다가 갑시다.
 
성원 씀
201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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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독자
날자:2014-09-07 20:37:45
삶과 죽음은 인생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소박한 문체로 이 중요한 테마를 알기 쉽게 풀이하셨느데 동감이 갑나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   작성자 : 차선생
날자:2014-09-04 17:35:26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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