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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양력 생일이 지나갔다. 신분증에 기록된 생일이라 카드를 사용한 곳에서 적지 않게 생일축하메시지가 날아왔다. 고마운 일이다. 나도 모른체하는 양력 생일을 기억해 축하까지 해주니 황송할수 밖에. 그것도 대형백화점에서, 집앞 미장원에서, 어느날 우연히 길을 걷다가 들린 옷가게에서도 축하메시지가 날아왔다.
우리가 얼마나 친절한 사회속에 행복을 누리고있는지 나는 감사해야 했다. 물건을 산 인연으로 그 사람의 생일을 잊지 않고 축하메시지를 보내는것은 어쩌면 아름다운 상거래의 례의인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아주 무심히,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귀찮은듯 삭제했다.
한편 내 리기적행위의 귀찮은듯한 짜증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졌다. 문득 우리는 지금 과다한 친절속에 던져져있는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걱정하고 우리를 위해 로심초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가? 아침 신문을 펴면 줄줄이 달려오는 광고지들은 우리에게 어디로 오면 무엇을 먹을수 있다는 친절한 정보로, 어디로 오면 무엇을 얼마나 싸게 살수 있다는 정보로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대출도 얼마든지 해주겠다는 친절한 사회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욱 외롭다고 아우성이다.
아마 친절은 쓸모없는 곳에서 범람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닫힌채 꽁꽁 얼어있어 그런건 아닐가? 정작 친절을 베풀고 소통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닫고 의심하고 가까이하기를 꺼리는듯하다.
다니고있는 직장건물밖 한쪽 구석은 늘 석탄가루를 발라놓은듯 때와 흙먼지로 범벅이된 큼직한 발바닥의 로숙자가 차지하고있다. 덥수룩한 머리에 넝마를 두른 사내가 몸을 움츠리고 옆으로 누워있다. 미동도 하지 않는걸로 보아 깊은 잠에 빠진듯한 그 사내의 옆을 하루에도 수백명의 사람이 코를 막고 송충을 보듯 슬슬 피해다닌다.
나날이 진화하는 과잉친절의 울화에 습관되여가는 우리는 그 과정에서 우리들에게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는 진정한 친절의 의미, 인간적배려를 잃어가고있다고 감히 말하고싶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웃도 제대로 없는 아빠트생활에서, 직장에서, 잦은 모임에서 정말 우리가 얼마나 사람과 소통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 많다.
오늘날의 과다한 친절속에서 진정한 친절의 의미를 잃어가는 사람들은 고립된 외로움에 부대끼고있다. 이제 우리는 쏟아져 들어오는 공허하고 필요하지 않은 친절이 아니라 랭랭한 사회를 따뜻하게 보듬는 진정한 친절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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