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들도 때로는 나쁜 놈들만큼이나 당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후안 엔리케스의 ‘무엇이 옳은가’ 중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식품의약국(FDA) 의약품 승인 담당자였던 존 네스터는 ‘어떤 의약품이든 승인 이전에 반드시 안전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법조문에 따라 재임 중 단 하나의 신약도 승인하지 않았다. 시민운동가였던 랠프 네이더는 그가 해임되었을 때 공중의 건강을 지켰다며 복직 소송을 대신 제기하여 승소하였다. 안전을 중시한 감독관, 그를 보호한 시민운동가. 이 ‘좋은 놈들’로 인해 백신 개발비는 천정부지로 솟았고, 백신 개발을 포기하는 제약회사들이 속출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해 사망했다.
무엇이 옳은가? 후안 엔리케스는 이런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궁극의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윤리도 변한다. 과학의 발전은 그 변화를 가속한다. 2세기 전 노예 제도는 얼마든지 정당한 일이었지만, 산업혁명으로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노예 소유는 상상할 수 없는 불법이 되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지금도 논쟁거리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손자가 유전자 결함을 안고 태어났는데 주저하다가 병을 고치지 못했다면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손자에게 고소당할 수도 있다. 유전자 편집은 미래에 일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편을 가르는 일이 극심해졌다. 내 편은 좋은 놈들이고 반대편은 나쁜 놈들이다. 가짜뉴스는 판을 치고 온갖 소음과 분노에 휩싸인다. 내 편은 좋은 놈들이기 때문에 논의할 필요도, 양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성과 과학적 추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각과 상상만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에게 요즘 쉽게 찾아보기 힘든 단어 하나를 제시한다. 바로 겸손이다. 누구나 인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을 가지고 건강한 논쟁과 토론에 나설 때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규범과 제도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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