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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전"(련재 12)
2020년 05월 01일 05시 55분  조회:4197  추천:0  작성자: 오기활

“후날에 봅시다!”

1977년에 <길림성중약재표준>을 제정할 때 나는 동천궁(东川芎), 동당귀(东当归), 매발톱나무, 개암나무, 화서 등 중초약식물들의 약효, 세포조직해부, 분말현미경구조 등 부분을 담당하고 감정통과를 하여 해당 부문과 권위학자들의 절찬을 받았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연변주약검소에서는 나를 약검소 임직원들과 다름이 없이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손형범은 연변주약검소의 요원으로서 ≪중국민족약지(中国民族药志)≫를 편찬할 때 적지 않은 부분의 편집을 담당했었다. 그 때 그는 동천궁, 동당귀의 조직해부도와 분말현미경구조 등 나의 자료들을 그대로 ≪중국민족약지≫에 편집해넣었는데 내가 이 약지편찬에서 큰 공을 세웠다며 ≪중국민족약지≫ 두권을 나한테 선물로 주었다.

그 후부터 나와 손형범은 더욱 가까운 사이로 지냈다.

1980년 10월 3일, 우리는 함께 중초약탐사로 룡정시 지신향 큰 쓰레산으로 가자고 약속하였다. 큰 쓰레산은 가파로운 벼랑이라는 뜻으로 작명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탄 택시가 지신향 원동골 산길을 따라 큰 쓰레산 기슭에 당도했을때는 오전 10시경이였다. 우리는 택시를 돌려보낸 후 가파로운 벼랑을 톺아오르기 시작했다. 산꼭대기에 오르니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더 나아가려고 했지만 무성한 나무숲들이 꽉 들어찬 데서 우리는 길도 없는 산정에서 헤매기 시작했다.

도시락으로 저녁을 대충 때운 우리는 풀밭을 담요로, 저 하늘에 떠도는 구름을 이불로 삼고 잠자리에 누웠다.

다행히도 내가 신문지 두장을 갖고 왔기에 한장은 깔고 다른 한장으로는 배를 가리웠다. 우리는 추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왕년 같으면 10월 3일이면 서리가 내렸을 수도 있었지만 마침 흐린 날씨 때문이라고 할가, 아니면 하늘이 우리를 측은히 생각했다고 할가 다행히도 서리가 내리지 않았다.

날이 희붐히 밝아오더니 동녘하늘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님이 방긋 웃으며 솟아올랐다. 해님은 우리의 몸을 녹여주기라도 하려는듯 따스한 해 빛을 더 밝게 비춰주는 것이였다. 하늘의 덕분으로 우리는 감기에도 걸리지 않고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지신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는 길가에서 여러가지 약초와 풀, 나무들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지친 줄도 모르고 또다시 식물조사에 나섰다.

지신에 도착하니 그동안 겪었던 모든 어려움들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푸짐한 점심상을 마주한 우리는 권커니 작커니 술을 마시면서 고진감래의 즐거움 속에 빠져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손씨가 나의 팔을 끌어당기며 기어코 연길로 가자고 청을 들었다. 그러자 나는 “난 오늘의 일을 절대 래일로 미루지 않습니다. 후날에 봅시다!”라고 말하며 손씨와 헤여진 후 곧바로 나의 연구실이 자리한 삼성촌으로 발길을 돌렸다.

“후날에 봅시다!”라는 약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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