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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운동대회에 참가하던 그날
2020년 05월 02일 18시 00분  조회:3957  추천:0  작성자: 오기활
올해 내 나이 76살, 지금까지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세가지를 잊을 수 없다.
하나는 11살에 왕청현소학생운동대회 육상 선수로 선발된 것이다. 두번째는 처음 기차를 타 본 일이며 세번째는 지난해 75세 나이에 시급 로인운동대회에서 오성붉은기를 손에 들고 주석대 앞을 지나며 검열을 받은 것이다.
소학생 때 달리기를 잘한 나는 학급 1등은 내몫이였다. 1956년 ‘6.1’절에는 왕청현운동대회 100메터 달리기경기에서 2등을 따내 상품으로 필기장과 연필을 타기도 했다.
 
                                   지난해 로인절 활동에 참가한 필자(앞줄 오른쪽으로부터 네번째)

당년에 석현진(왕청현 제7구) 대표로 선발된 륙상 선수로 진내 몇개 소학교에서 선발된 선수들과 함께 석현에 모여 집체훈련을 받고 ‘6.1’ 절에 왕청현소학생운동대회에 참가하게 되였던 것이다.
그때 나는 11살이였다. 처음 기차를 타 보는 기쁨으로 련며칠 밤잠을 설치며 그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였다.
우리 마을(달라자) 바로 앞은 곡수 기차역이기에 우리는 밤낮이 따로 없이 분주히 오가는 기차들을 다 보면서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정작 운동선수로 선발되여 기차를 타고 왕청에 간다고 한 다음부터는 지나가는 기차를 볼 때마다 언제면 저 기차에 앉아 볼가는 생각만 했다. 어떻게 기차에 올라가는지, 기차 안엔 전기불이 있는지, 기차에서 대소변을 보려면 어떻게 하는지… 별의별 오만가지 의문들이 다 있었다. 생각 할수록 마음이 급해났다. 그때 기차라는 말만 들어도 걱정스러웠는 데 아마 우리 할아버지께서 하신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할아버지는 60대 중반이였는 데 그때까지 기차를 타 보지 못했다면서 한번은 맹랑하게도 발길이 몇걸음 늦어서 눈앞에서 기차를 놓쳐버렸다 했다.
그때 나보다 한살 아래인 외사촌 남동생이 겨울방학에 왕청에서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 돌아 갈 때 할아버지께서 손자를 기차에 태워 보내려고 곡수역까지 데리고 갔다. 마을 앞 도문북강(해란강과 가야하가 곡수에서 합쳐서 도문북강을 이룸)의 얼음강판이 너무나 미끄러워서 조심스레 걷다보니 그만 시간을 지체해서 곡수역 대합실에 금방 들어서자 기차는 고동을 치며 떠나려 했다. 이에 너무나도 다급했던 할아버지는 허둥지둥 대합실을 나서 문앞에서 두손을 마구 흔들며 “여보! 여보! 조금만 기다려 주오, 여기 왕청 갈 얼나(어린애)가 있소!” 하고 높은 소리로 기차를 불렀단다. 하지만 무정한 기차는 들었는둥 말았는둥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떠나더니 점점 더 빨리 달아나더라는 것이였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나의 귀전에서 맴돌며 나의 마음이 한없이 불안했다.
드디여 그날이 왔다. 우리 선수들은 줄을 서서 석현역 플래트홈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기쁨과 설레임과 함께 나의 마음은 행동이 늦으면 기차를 타지 못할가봐 초조함으로 가슴이 풍덩풍덩 뛰였다. 순간 저 멀리서 “뿡!ㅡ” 하는 기적소리가 울리며 달려오던 기차가 어느덧 “칙~푹~” 하면서 눈앞에 와 섰다. 뒤따라 멋진 철도복을 입은 렬차원들이 기차문을 쫙 열더니 손님들이 하나하나씩 층계를 밟고 내리자 우리 일행은 우쭐우쭐 층계를 밟고 기차에 올랐다. 그날 선수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나 같은 촌닭들이 많아서인지 우리 일행은 안으로 밀고 들어갈 념은 안하고 문어구에 콩나물마냥 빼곡히 붙어서서 밀치락닥치락 하면서 다음 역(삼도구)까지 서서 갔다. 그래도 기차를 타고 간다는 기쁨과 자부심에 둥둥 떠 있었다.
삼도구역에서 승객들이 줄줄이 내리더니 렬차원은 한무리나 되는 우리들을 떠밀며 안으로 들여보냈는데 나는 뜻밖에도 운 좋게 빈자리가 있어서 자리에 앉아 가게 되였다. 두리번두리번 기차안을 살펴보니 천장에는 전기불이 켜져있고 유리창문으로 바깥세상 구경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에서인지 누가 말하는지 “다음 역은 신흥역이니 내리실 분들은 미리 준비하여주십시오”라는 말까지 들렸고 대소변을 해결할 수 있는 칸까지 있다기에 너무 놀랐다.
기차에서 내린 후 우리는 운동회 현장에 도착했다. 나는 농촌에서 태여나서 농촌학교에 다니다나니 성대한 운동대회나 검열식을 본적이 없다. 처음 수천명 학생들이 집체복장 차림으로 나란히 줄을 지어 검열하는 모습을 보니 꿈만 같았다. 맨 앞엔 대대장들이 교기를 들었고 그뒤로 항아리 만큼 큰 대고를 앞에 멘 녀학생들이 둥~둥~ 대고를 두드르며 주석단을 지나가고 그 다음으로는 나팔수와 관악대들이 띠띠따따를 불며 지나갔다. 그 뒤를 따라 새하얀 치마에 해군복 적삼을 바쳐입은 소고대가 소고를 두드리며 주석단 앞을 지나며 검열을 받았다.
나는 그저 눈이 휘둥글해지며 “야! 야!” 하며 황홀하기만 했다. 한편 검열대오 밖에 서있는 나 자신이 점점 초라해보이고 실망스러웠다. 선수로 뽑혀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까지 깜박 잊었다.
그처럼 멋지고 자랑스럽던 그들이 너무 부럽기만 했다.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느해인가 도문시제2소학교 ‘6.1’절 경축대회에서 나의 딸들이 고운옷차림에 소고를 치고 새장구를 치며 경축활동에 참가했을 때 나의 소원이 성취한 것처럼 생각하고 흥이나서 더 열심히 박수를 치고 남들앞에서 더 많은 자랑을 늘여놨다.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 어제일 같지만 세월은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어 내 나이가 벌써 70대 중반이 되였다. 마음이 늙지 않아 북 치고 장구 치며 선수로서 우쭐거리고 싶었는데 할머니가 되여 로인활동실에서 만년을 보내게 되였으니 믿어지지 않는다.
때마침 지난해 ‘8.15’ 로인절에 도문시 로간부국에서 로인들을 조직하여 운동대회를 열었다. 나는 물찬 제비마냥 새파란 적삼에 흰바지를 받쳐입고 머리엔 새하얀 모자까지 쓰고 오성붉은기를 흔들며 씩씩한 모습으로 주석대 앞을 활보하며 검열을 받았다.
멋지고 자랑스러우며 행복했던 그날의 모습을 나는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하련다. / 최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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