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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언론인들에게 답하노라
2022년 02월 10일 10시 12분  조회:23383  추천:0  작성자: 오기활

한복 론난=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다

필자는 북경동기올림픽개막식을 화제로 한국에서 불어치는 엉뚱한 "한복 론난" 무감각한듯 방관할 수 없어 끝내 필 들었다.

필자는 친히 겪은 력사와 지나온 체험을 시간적 순서로 글을 엮었다.

1

필자는 중국 조선족의 3세로 1947년 음력 5월 9일에 왕청현 석현진 수남촌 달라자툰(현 도문시 석현진)에서 태여났다.

달라자는 1911년에 건툰(建屯)한 자연마을이다.

나의 할아버지 오창범은 조선 함경북도 온성군 온성읍 미포면 장덕리 장덕동에서 태여나서 살다가 일제의 가혹한 통치와 련속되는 재황을 못이겨 살길을 찾아 1920년에 큰아들 오광준(1911년생), 둘째아들(1917년생), 세째아들 오형준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도문 곡수촌에 정착하여 몇년간 살다가 젊은 나이에 부모가 사망하자 1929년에 오광준(필자의 백부)이 오씨네가 모여사는 강건너 달라자로 이사했다.


         
오광준(백부)
 
필자는 어린나이에 말을 알아 듣기 시작하여 동네사람들이 백부를 조선옷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확실히 그랬다. 필자는 조실부모하고 어려서부터 큰집에 얹혀 살았는데 백부님은 집에서나 동네돌이 할 때 늘 입는 옷이 조선 바지저고리에 조끼를 받쳐 입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달라자의 최년상이며 달라자 총통으로 불린 최주해(최중길)도 그냥 조선옷차림이였다.

 최주해(1891.1.29ㅡ1978.9.15)의 원적은 조선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면, 28살인 1920년에 큰 아들(최철산 (1913ㅡ 1969)이 7살 때 두 아들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왕청현 석현진 하룡성마을에서 살다가 1943년에 달라자로 이사왔다. 
최주해의 조선옷은 큰 며느리(최보옥)가 손수 지은 것이다. 그에 따라 할아버지의 옷차림을 보면서 자란 최주해의 손자 최정욱(1938년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네가지 낡은 것”(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전통, 낡은 풍속)을 타파”하는 “문화혁명”의 대반란  때 결혼(1966.1.21.)하였는데 그가 결혼식에 “조선옷차림”을 하겠다고 하기에 어머니가 손바늘질로 아들,며느리의 결혼옷을 마련했다. 그래서 동네서는 “대통령”네를 “조선 고태네”라고 불렀다.




달라자 '대통령' 최주해.
 
 
이렇게 달라자의 원주민들의 거의 모두 조선 함경북도의 출신으로 동네의 례복은 “조선옷”이 였다.

그러니까 필자는 어려서부터 들은 말이 조선사람, 조선바지저고리, 조선치마저고리, 조선색동저고리, 조선중의(조선 중들이 입는 승복), “조선옷 매대”...였다.

연변에서 “한복”이란 말이 돌기는 조선족들이 한국나들이 하면서부터다. 특히 연길 성보백화에 “서울 한복”이란 옷매대가 있은 후부터 “조선옷매대”가 “한복매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한국이란 나라가 서기 전인 1920년대에 중국에 온 조선인들을 “한국인”이라고 부르고 그들이 입은 조선옷을  “한복”이라고 하니 실로 몰라도 한심하게 모른다.

2
필자는 1986년 4월에 “중국 고국방문단”의 성원으로 조선 평양을 방문하였다.

필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귀국하는 환송대회에서 조선 해외동포담당국 책임자가 우리들에게 부탁했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 중국은 다민족 국가입니다. 중국서 조선족들이 제일 선진민족으로 되기 위해 노력하세요.  조선족이 중국서 제일 선진민족이면 중조 두나라의 친선이 앞으로 갈수록 점점 더 두터워질 것입니다.”

“한족들의 민족정신을 따라 배우세요. 세계에 널려 사는 조선인들을 살펴보세요. 미국서는 미국사람을 본받고 일본서는 일본사람을 본받고 쏘련서는 쏘련사람을 본받습니다. 그러나 한족들을 보십시요. 한족들은 어느 나라에서 살든지 자기민족의 옷(녀성들의 치포, 남성들의 헝컾단추를 단 당복)을 입습니다.”

그는 또 중국이 타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사례, 중국 해관의 수출입상품문서를 곁들면서 우리에게 “중국의 민족정신을 따라 배우라”고 부탁하였는데 그때 부탁이 필자의 가슴속에  뿌리를 깊이 내렸다.



죄정욱 결혼기념 

3
 중국에서 “남조선”을 “한국”이라고 부르기는 1990년 9월에 열린 제11차 북경아세아운동회 때 부터다.

그때 필자는 연변일보 특파기자로 파견되여 모든 신문기사에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밝혔다.

내가 쓴 “한결 돋보이는 조선족녀성”이란 연변일보(1990.9.26.)기사는 9월 2일 11차 북경아세아운동회 개막식날 천안문광장에서 중국에 처음 온 남조선관광객들이 조선옷차림을 한 연변녀성관광팀을 보고 너무나 좋아서 손벽치며 소리치고 찾아가서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기념사진을 남긴 내용이다.(사진배합)

2일 저녁 개막식현장에서 발생한 일이다.

그때까지 비록 중한이 수교를 하기 전이였지만 남조선에서는 매우많은 관광퇀을 북경에 파견했다. 하여 개막식날 관중석에 남조선사람들이 차지한 구역이 꽤나 많았다. 남조선 사람들은 사전에 미루 준비했는지 아무튼 많은 한국사람들이 저마다 크고 작은  국기를 휘두르며 고성으로 “대한민국...”을 웨치기에 안내 방송에서 “남조선관괙들이 개막식질서를 조용히 지키라”고 몇번 련속 방송했다. 그러자 남조선사람들이 사처에서 높은 소리로 “왜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부르는가?”며  항의했다. 이에 안내방송에서 “13억 중국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모르기에 남조선이라고 불러야 어느 나라인가를 압니다. 한국이라고 하면 13억 중국국민들이 어느 나라인지 모릅니다...”고 방송하자 떠들어 대던 한국사람들이 조용하기 시작했다.

그때 관중석에서 처음보는 남조선사람들을 취재하던 필자는 그네들을 보기가 정말 어색하였다.

중국서 남조선을 한국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데가 겨우 30년이 푼한데 100여년 전에 중국에 온 조선족을 한국인이라고, 조선족 후대들이 입은 “조선옷”을 “한복”이라고 우겨대는 것이 실로 어이가 없다.



오기활 신문기사

3.
다음은 온가보 총리의 한국방문때 일이다.

온가보 총리가 한국을 두번 방문할 때( 2007년.2010년)는 한국에서 중국과 “동북공정”이니 고구려 때 “령토문제”니 하며 떠들 때이다.

필자가 어느 신문에서 본 기사이다.

 중한간의 “령토문제”(분쟁)에 관한 어느 신문기자의 질문에 온총리가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종래로 령토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그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한국이란 나라가 건국된지 근70년, 중한 량국이 수교한지가 근 30년밖에 안되는데 말이다.

한국인들에게 묻고 싶다.

가출을 했거나 해외 결혼을 한 조선(한국) 남녀들이 입은 “옷”을 당신들의 말대로 한다면 그들이 부모들의 옷을 “훔쳤갔다”고 해도 된단 말인가?

     4

한복 론난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는 격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에 조선족녀성을 돋보인 것은 그야말로 조선족의 자랑이고 지구촌의 모든 조선민족이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한국서 한국 론난을 이르켜 해내외의 모든 조선족들이 분노로 성토한다.

일례로 이번 한복 론난이 터진 후 지난 6일 아세아컵 중한녀자축구경기에서 중국이 역전으로 승리하자 거의 모든 조선족들이 모두가 속이 씨원하다며 대단히 기뻐했다.

만약 한복 론난이 없었더라면 어쨌을가?

포용심과 아량이 없이  나무만 보고 숲을 못보는 그들보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이 글을 대한민국 림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내무총장을 지낸 안창호(1878.11. 9, - 1938. 3. 10.)“우리 민족의 정의를 배양하는 데 관한 로 마무리 한다 .

과거나 현재나 우리 동포들은 어디 모인다 하면 으레 싸운다. 남의 결점을 지적하더라도 결코 듣기 싫은 말은 사랑으로써 해야 할 것이다.

 남의 일에 개의치 말라. 우리는 걸핏하면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데 이제는 자기 허물만을 스스로 고치기에 전념하자.

 개성을 존중하자. 남의 성격이 나와 틀리다고 해서 나무랄 것이 아니다.

 자유를 침범하지 말자. 남을 내 맘대로 리용하려다가 듣지 않는다고 욕하면 안된다.

오기활
2022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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