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벨. 게이츠의 눈물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4
벨. 게이츠의 눈물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
우연하게 벨.게이츠가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읽어보고 느낀바가 있어서 적어본다. 내용인 즉 지난번 사스가 우리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을 때 대륙의 부자들 중 10만 이상 헌금한 사람이 몇 명 안된다는 소식을 듣고 벨.게이츠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사회에 보답할 줄 모르고 죽어가고 있는 생명을 보면서도 끄떡하지 않는 사람이 아무리 부자가 된다한들 사회에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벨.게이츠가 눈물을 흘린만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조선족사회를 돕고 있는 고마운 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을 하지 않았는지를 한번쯤 반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사실 현재 200만 조선족들 중 생활여건이 어려운 분들이 많다. 주변의 학교들을 살펴보아도 경제난으로 학업에 영향 받는 학생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행이도 우리는 한국의 일부 단체와 개인들의 고마운 소행으로 이들에게 얼마간이라도 장학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 자신이 여기에 어느 정도 동참하고 있는가? 남들의 후원한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때 한번쯤 나도 학생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는지? [물론 신문기사화 할 수 있는 불치병학생을 위한 전교적인 행위를 제외하고] 간단한 실례지만 매번 학부모회의가 끝나면 관례대로 돈을 거두어 선생님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하군 하지만 이 돈으로 자기 반급의 어려운 학생을 돕고자 한 반주임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어려우면 습관적으로 정부에 손을 내밀고 기업에 도움을 청하지만 항상 자기 자신은 소외시킨다. 항상 뢰봉식 봉사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자기는 소속시키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고 자기도 참여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호소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된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공익사업에 동참하는 것은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풍족해서가 아니다.
성경의 한 구절 인용해 본다면 “백만을 내놓은 부자와 1전을 내놓은 거지가 누가 더 성의가 있을까? 분명 거지가 더 성의가 있는 것이다. 필경 그는 자기의 전부 재산을 내놓기 때문이다.” 많고 적음은 단지 화페로 환산되는 것만 아니다. 화페의 뒷면에는 맑고 깨끗한 심령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심령으로 우리들이 구호가 아닌 실천하는 배려의 문화, 베푸는 문화를 형성해 나간다면 우리는 정녕 조화로운 사회를 이룩하게 될 것이며 벨.게이츠도 눈물이 아닌 환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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