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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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2017년 09월 25일 11시 12분  조회:642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감기
김영분
 
12월이 되였다. 고향에는 함박눈으로 뒤덮혔을 엄동설한이다. 하지만 청도는 아직도 포근한 나머지 길가에 가로수도 겨울 답지 않게 파랗게 뒤덮여져 있다.  
휘끄무레한 동북농촌에서 상경한 조선족들이 청도 곳곳에 들어앉아 있다. 자신의 지혜와 끈질긴 노력으로 풍성한 결실을 듬뿍 따안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12월이 되니 곳곳에서 송년회파티가 열리고 소주잔 기울이며 위하여를 신나게 웨치는 소주멜로디 소리가 울려퍼진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취기도 있고 만족함도 있는가 하면 애석함도 묻어나 있었다. 애들은 노는 시간은 거의 빼앗기다싶이 되였고 기말시험이 코앞인지라 시험연습지에 허리가 휘여질 정도고 주말이면 악기를 메고 부시시한 머리로 악보 훈련하러 다닌다.

나도 12월이 되니 바쁜 행보에 숨 돌릴 새가 없다. 그러더니 쉬여가라고 귀띔을 하기라도 하듯 심한 감기에 걸려버렸다.
년말 바쁜 회사일에 들쑥날쑥 여러번 참가한 년말 파티에 알쑹말쑹 애들 공부에 여러가지로 신경을 썼더니 내 몸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온것이다. 예사로운 감기인줄 알고 집근처 약국에서 약을 사서 혼자 먹었다. 내가 혼자 이전에 사 먹던 기억으로 몇가지 약을 지목해서 샀더니 약국 언니가 심드렁한 표정에 이 약으로는 감기를 퇴치할수 없다면서 견적이 좀 나오는 약으로 대체해주었다. 비싼 약 먹으면 빨리 나을가 하는 마음을 안고 집에 와서 열심히 일주일을 먹었지만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약을 먹은 탓인지 최면술에 걸린듯 머리가 어리둥절하고 속이 메슥거리고 급기야 밥맛도 떨어졌다. 오한에 걸린듯 온몸이 오싹오싹 추워나고 목줄기를 타고 불이 타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픔에 손마디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심지어 뼈속까지 송곳으로 찌르는듯 아팠다. 그야말로 탈태환고(脱胎换骨)의 무아지경이였다.    

감기바이러스 수명은  길어야 일주일이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행운을 빌었다. 이젠 약도 일주일을 먹었으니 더이상 약먹을 필요가 없다. 나을 감기면 언녕 나았을거다. 나는 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밥맛이 똑 떨어져 더 이상 쌀 한알도 넘길수가 없었다.
그날밤 열이 펄펄 났다. 눈에서 확확 불이 이는것만 같았다. 눈동자가 녹아 내릴것 같앗다.
“쯧쯧.옛날에는 뜨끈한 생강물에 정통편 한 알 먹고 땀 푹 내면 감기 뚝 떨어 지는데 지금은 감기가 참 질기다.”
엄마가 가슴 아파 말씀 하신다. 꿀 넣고 생강을 푹 우려서 내앞에 떡 하니 가져오셨다.

생강차 한 사발 들이키고 나는 이불 뒤집어쓰고 드러누웠다. 땀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불덩이 같이 달아올랐지만 땀은 좀체로 나지 않았다. 나는 저녁내내 킁킁 소리를 내면서 비몽사몽 헤메면서 고열과 씨름했다.
오기가 생겼다. 에라. 죽기야 하겠는가. 감기야. 덤벼봐라. 대체 누가 이기나 한번 지켜보자.
고열은 거센 공세를 펼쳤다. 저녁 내내 내 눈을 녹일 기세로 화염을 토하더니 새벽이 되니 그제야 고열도 힘들었는지 땀이 되여 쑥 내려갔다.  암세포는 고열에 살아남을수 없다는 설이 있는데 아마도 내 몸안에 잠자고 있던 암세포들도 모두 다 뜻하지 않는 감기 횡포에 앗 따가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장렬히 희생했으리라 믿는다.

열이 내리니 살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먹을수가 없었다. 목이 아파서 넘길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강물만 먹어야 했다. 곁들여 후식으로 배와 꿀을 닳인 엄마표 간식만 조금씩 먹을수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삼일을 쌀알 한알 안 먹고 생강물로만 견지해봤다.

이전에 다이어트 한다고 여러날 밥을 안 먹는 사람들을 보고 대단하다고 감탄을 했었는데 정작 굶어 보니 견딜만 했다. 본의 아니게 굶었지만 그 덕인지 감기도 서서히 꼬리를 감추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애시당초 밥을 안먹고 삼일을 버텼더라면 감기가 이 지경으로 심하게 나를 괴롭히지 않았을거라는 생각도 해봤다. 비우고 나면 병도 퇴치가 되는것 같았다. 감기는 피곤해서 쉬라고 보내는 신호라고 하던데 아마도 마음을 비우고 속도 비우니 감기가 나아지는것 같았다.

12월이 빨리 지나야 할텐데. 우리 집 아저씨는 연달은 송년회때문에 마냥 행복한것만은 아닌것 같다. 즐거워서 초대받고 가야 할 자리에 걱정을 반쯤 메고 가는 아저씨들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엄마.빨리 기말시험 끝났으면 좋겠어요.”

우리 애들은 하나같이 나만 보면 투정이다. 그도 그럴것이 초중 3학년에 다니는 아들은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 시험지때문에 눈빛이 퀭한지가 오래되였다. 지나친 공부때문에 힘들어하는 우리 애들을 보면서 “그래.12월이 끝나고 기말시험이 끝나면 푹 쉬게 해주마. 마음껏 비우고 즐겨라.”하면서 나혼자 되뇌여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할것없이  이 세상에서 흩날리는 한올의 미세한 먼지와 같은 존재이다. 복잡하고 욕심 많은 머리를 깨끗이 씻고 비울때면 아마도 조금 더 개운해지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감기가 낳는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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