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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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왕자
2017년 09월 25일 11시 16분  조회:926  추천:1  작성자: 하얀 진주
수필
남편은 왕자
                                                           김영분
 
요즘 사람들은 핸드폰에 배우자이름을 아주 재치있고 사랑스럽게 저장한다. 어떤 사람은 “내 사랑”이라 저장하고 어떤 사람은 “귀요미”라고 저장하기도 한다.

나도 핸드폰이 생긴뒤로 남편 이름 저장하는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었다. 실랑이라고 저장할가 아님 남편이라고저장할가?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왕자라고 저장하기로 했다. 왕자라는 이름이 제일 맘에 들었다.
 
나의 어렴풋한 기억에는 왕자(王子)는 멋있는 남자이다. 왕이나 왕의 아들로서 대개는 동화속에서 봄바람이 몸을 살포시 감싸듯 따뜻하게 공주를 사랑해주고 보호해주는가 하면  때로는 질풍같이 말을 타고 번쩍이는 칼을 치켜든채 한나라의 평화를 위해 싸우기도 하는 그런 로망의 남자이다.왕자(王子)는 또한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서양에서는 황족이나 왕족의 남자나 특정의 영역을 지배하는 귀족을 칭한다고 한다.나는 어린시절에 어쩌면 동화책을 보면서 아마도 왕자를 맘속으로 은근히 흠모한 모양이다. 그래서 결혼해서 핸드폰이 생긴후 남편 이름을 심사숙고한 뒤에  왕자라고 저장했다.

그런데 왕자란 이름을 지키지도 쉽지는 않았다.

한번은 우리 큰애가 안방에서 아빠 전화로 내한테 장난전화를 해왔다. 마침 애아빠가 안방에 놔둔 나의 전화기를 나한테 넘겨주려고 안방에서 거실로 나오다가 액정에 왕자란 이름이 뜨니까 기분이 언짢아졌는지 따지고 들었다.
“야.이게 도데체 누구야? 누군데 왕자야?”
그 왕자가 자신이 였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싱겁게 머리를 젓기도 했다. 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몸조리 할때 우리 친정엄마가 와계셨다. 어느날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핸드폰을 가지고 와서는 황당한 얼굴빛을 해가지고 속삭였다.
“얘.왕자란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러고는 못마땅한지 질책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데 이름이 왕자야?이름도 이상하네.”

우리 집은 통 애교가 잘 통하지 않는  집안이라 식구대로 무뚝뚝한 성격 소유자이시다. 우리 부모님은 따뜻하게 유머 한번 쓴적이 없었다. 묻는것도 답하는것도 간단명료하다. 아버지가 일하시고 들어모면 세수대야에 물을 부어서 후룩후룩 소리를 내시면서 세수를 하신다. 내친김에 머리에 까지 물을 끼얹으며 뒷목까지 깨끗이 씼으신다. 맞춤하게 엄마가 알아서 밥 상 차려주시면 아버지는 그냥 묵묵히 차려논 음식 말씀 한마디 없이 수걱수걱 드신다. 식사후 뒤로 물러 앉으시면 엄마가 슬쩍 슬쩍 설겆이를 한다. 대화를 척척 몸으로 하시는지 눈으로 하는지 알수 없지만 아무튼 용케도 두분이 척척 손이 맞아 돌아갔었다.

동생이 한국에 일하러 간뒤 엄마랑 드문드문 통화할때면 옆에는 듣는 내내 답답하기 그지 없다. 엄마가 쉽지 않게 입을 열려는 순간 전화 저쪽에서 동생이 미처기다리지못하고 말을 이어간다. 그러면 엄마는 또 “그래 니 말해봐라.”하시고 동생은 또 동생대로 엄마가 아마 할말이 있나보다 생각하고 하던말을 끊는다.결국  두사람은 10여분을 통화했지만 아무런 얘기도 나누지 못하고 끊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집안의 딸이 글쎄 시집을 가더니 실랑 이름을 왕자라고 저장했으니
엄마는 그 왕자가 사위인줄 상상도 못했으리라.엄마는  내가 남편과 통화하는것을 지켜보고 또  전화기 로부터 흘러나오는 대방의 목소리가 확실히 사위인것을  확인한후에야 마음이 놓이는지 미소를 떠올렸다.그래도 웃긴다는듯이 한마디 하신다.
 “왕자는 무슨…”

엄마앞이라 그런지 더 몸둘바를 몰랐다. 그래도 내 사랑은 내가 가꾸어야 하니 쭈욱 내 방식대로 왕자로 저장할거라고 다짐했다.
이렇게 내가 실랑을 왕자라고 저장한 일이 입소문을 타고 울집 식구들이 다 알게 되였다. 첨에는 좀 부끄러웠는데 한동안 쓰고 나니 얼굴이 좀 뻔뻔해져서 이젠 제법 머 어떻냐 하는 배짱이 생겨서 애들 앞에서도 실랑을 우리 왕자님 왕자님 하고 불렀다. 그런데 더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한번은 실랑 친구가 외지에서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이 친구는 우리 실랑이랑 짜개바지 친구란다.청년시절에 같이 시골에서 닭도 도둑질 해먹고 머리도 같이 길게 길러본 친구였다고 한다. 우리 실랑도 애교가 적은 사람이라 청년때는 아주 무뚝뚝했다고 한다.
그 친구가 울집에 들어서면서 애한테 니가 모모아들이구나 하면서 남편이름을  부르는데 가지런히 섰던 우리 애들 두놈이 일제히 대꾸한것이다.

“아니예요. 우리 아빠는 왕자예요. “
“엥. 왕자라니. 너네 아빠이름을 왕자로 고쳣어?”
“네. 엄마가 아빠 이름을 고쳤어요.”
나나 애 아빠나 너무 민망해서 어쩔줄 몰랐다. 그 친구는 우리 남편을 보면서 배를 끌어안고 웃는다.
“아이고 니가 무슨 왕자야 왕자는?지나가는 소가 웃겠다. 하하하하”

소꿉친구앞이라 남편은 창피해서 얼굴이 벌개져서 절절 맨다. 쥐구멍이라도 있음 찾아들어갈 기세다. 아주 큰 망신을 한셈이다.
에효. 왕자라고 부르기도 쉽지 않구나. 고귀한 혈통이 아니라서 그런가 아님 말타고 싸우면서 나라를 구하지 않아서 그런가.
그래도 나같은 근사한 공주는 지켰는데말이지.
그래도 나는 쭈욱 왕자라는 이름으로 사랑해 가리라.
행복과 사랑은 내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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