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도 겨울내 움츠렸던 몸을 추슬린다. 그런데 웬걸 때아닌 큰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온 겨울 눈이 그림자도 안보여 서움함이 많았었는데 봄날씨에 봄비가 눈이 되여 펑펑 내리고 있다. 계절을 우롱이나 하듯이 정말 많이도 내린다. 장인의 손놀림이 필요없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여기저기서 눈의 변신이 바쁘다. 복설같은 존재라 계절에 관계없이 포근함과 깨끗함을 안고 사람들에게 애교부리며 다가선다. 아지랑을 싣고 여기저기에서 기웃거리던 봄소식은 어느새 종적을 감췄다. 눈은 우아한 자태로 그리움이든 기다림이든 관계없이 제멋에 취해 춤추며 내린다.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보니 빌딩도 가로수도 그리고 힘들게 움직이는 차량과 행인들 모두가 굳어진듯 하다. 앨범의 경물마냥 세상이 고정되여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이런 날씨에는 당나라 시인들의 명시를 읊으며 와인을 한잔하는것도 랑만이 아닐까 싶다.
여유와 오만함으로 공간을 꽉 채운채 날려오는 눈송이 그리고 눈송이와의 숨박꼭질에 신난 바람은 어쩌면 한쌍의 련인마냥 정답고 행복해 보일까. 함박눈은 기이하고 아름다운 화폭이 되여 황홀함과 무한한 상상에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눈이 잠시 멈춘듯 하더니 구중천에 떠있는 태양은 혼이 나간듯 뿌연하늘에서 정신을 가다듬느라 바쁘다. 빌딩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해빛들은 어쩐지 어색한 모습이다. 자연의 변화는 참말로 신기하다.
멀리 바라보니 광야를 뒤덮은 대설들은 웅위로움에 신나있고 은빛으로 황홀하다. 무거운 눈덩이에 휘여진 길가의 나무들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흔들 그래도 신사마냥 겸허하다. 대설은 사람들의 행보를 느리게 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기지 않는다.
나는 봄날의 피곤함도 없이 기대감을 안고 창가에 서서 춤을 추는 눈송이를 유심히 살펴본다. 눈이 오면 겨울추위가 다가옴을 알려주지만 이번 눈은 의미가 달라진다. 봄날의 정기를 느끼게 하고 봄날의 따사롬을 한결 돋구어준다.
봄날의 눈은 포근하고 겨울처럼 무정하지 않다. 봄날의 눈은 희망을 주고 겨울처럼 삭막하지 않다. 봄날의 눈은 색다른 경관을 보여주며 한수의 시 한폭의 그림 한곡의 감동을 주는 선률과도 같이 찬란한 계절이 되여 우리에게 무한한 동경을 가져다 준다.
눈의 세계에 빠져드니 눈의 사심없는 기여가 고맙기만 하다. 이슬로 녹아 물로 녹아 생명을 다한다 할지라도 짧은 생애에 인간들에게 아름다움을 남겨주고 자신에게는 가장 평범하고 무미한 순간만 남긴다. 백옥같이 눈부신 눈으로 변신하기까지 기나긴 기다림과 모대김을 견디면서 말이다. 그러다가도 자신을 보여주고 자랑할때 복잡한 심경으로 성공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의 결과는 생애의 전부를 인간과 자연에게 선뜻 바치는것이다.
눈꽃은 요란스럽지 않고 정갈하며 우뢰처럼 떠들썩하지 않고 정적을 지키며 바람처럼 변덕이 많지 않고 집착하며 비처럼 애절함에 좌절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리며 소리없이 땅에 내려와 마음의 짐을 벗어내린다.
눈꽃마다 반짝이고 부드럽고 까다롭다. 미미한 기류의 이동과 함께 방향없이 란무하며 뒹굴기도 하는 모습이 무용수의 헌신적인 춤의 세계를 보게 하는듯 하고 힘없이 유리창에 키스하다 내려앉는 모습이 련민과 아쉬움에 지친 모습인듯 하다. 그 아쉬움을 달래려는듯 하늘에서 수많은 눈꽃들이 나타나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바람타고 날려온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눈덩이를 이루며 새로운 변신을 하고 있다. 어느새 대지는 말그대로 하얀 세계가 되여 동화속의 이야기를 현실로 재연한다.
나는 손을 내밀고 하얀 눈송이를 담아봤다. 나의 따뜻함에 감동을 하였는지 순식간에 손바닥에서 한방울의 눈물이 되여 사라진다.
나는 너무도 눈을 기다렸다. 지어는 꿈에서도 백설같은 겨울의 경치를 보군 하였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눈이 끝내 나의 세계에 찾아들었고 아직도 펑펑 쏟아지고 있다.
나는 나의 두눈에 천신만고끝에 찾아온 새하얀 눈을 오래오래 담아두련다. 두다리로 천산만수를 지나서라도 내가 기대하던 황홀한 눈을 찾아보련다. 눈이 오고 세월이 가고나면 남는것은 생활과 생명이 남겨준 무한한 감개와 감사의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눈이 언제 오는냐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려주고 하늘하늘 춤을 추는 눈을 지켜주고 메마른 령혼을 적셔주면 되는것이다.
이런 날씨 맞게 떠오르는 정감을 살리려면 친구들과 모여앉아 술이나 커피를 마시면서 욕심과 스트레스를 떨쳐버리고 눈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워지고 눈처럼 집착하고 시인이 되여주는것이다.
래일은 눈이 있을라나. 봄날의 눈물에 나의 꿈이 깨지지나 않을란지. 꿈이 깨지면 류랑이나 보내지. 세월에 남겨진 숙제는 너무도 많으니까 추억이라도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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