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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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설 아닌 설날
2019년 07월 14일 09시 24분  조회:800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설 아닌 설날

정호원

 

세월의 한고개 또 올라서도 갖고 온 솔방울은 여전히 꿈의 씨앗이다! 이제 넘을 언덕길에서 상록수 한그루 심으라고 전설처럼 들려주는가 싶다. 그래서 제야의 종소리도 새해의 일출도 공론화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속세의 멤버들과 속심을 나누고 일상을 토론하고 싶은가 보다. 본연의 숨결이 빚는 향기 속에 력동적인 스토리를 엮자고 말이다. 살았던 나날의 바라지가 살아갈 마무리를 전담한다니 다행으로 추억은 예이제 없이 아름다울 것이다! 

그런데 올 송구영신에도 은근히 품은 유감은 여전히 발작한다. 왜 굳이 설빔이라는 대목에서만 인사하고 안부를 전하나 하는 반발 같은 의심이다. 혈통의 정영수와의 밀회 같은 커뮤니케이션도 무덤으로 통하는 터널이다. 장벽의 길은 폭파하고 파괴하고 나중에 정복이다. 기실 우리에겐 365일을 제외한 시간이 아닐지라도 얼마든지 교류할 공간이 푸짐하다. 그럼에도 종무식, 시무식 같은 고비사위에야 부랴부랴, 그것도 경직되고 고루한 축복이나 메시지가 오가는 게 심히 비좁고 액색한지도 모르겠다. 설에 나누는 덕담이 물론 훈훈하고 여유롭게 들려 회고와 감회를 유발하면서 새날의 희망과 새해의 다짐이 될 에너지가 맞는다. 

허나 가급적 설이 아닌 평소에도 늘 따뜻하고 규칙적인 인사수작 내지 안부인정을 버릇하자는 게 발설의 단초이다. 그런 교류가 빈번하게 치러질 경우 전환기에 담긴 자타의 일상이나 여유는 늘 풋풋하고 활기로 넘칠듯 싶다. 그래서 올해는 나부터 설보다는 원단 춘절 전날이나 이튿날 혹은 련휴나 토요일, 일요일 등 범상한 나날에도 지인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동향인에게 무작정 정례회처럼 공식적으로 파티를 가지거나 회식을 조직해 제목 없는 편안한 교류를 시도할가 한다. 무화과나무가 자살의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면 배신자는 올가미를 받아야 한다. 시행착오를 단죄하고 구새 먹은 신화는 곰팡이를 벗겨야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된 원고와 피고간의 소송처럼 세말사엔 거창한 설법이 점철된다. 설에 죽음을 떠올리는 건 생명의 시한부를 전달해줄 의무에서다. 난청지대엔 전화도 걸고 타인을 통해 문안도 전해주면서 소통의 장을 극대화하련다. 각주구검에서 해탈되는 패턴이렷다. 매일과 같이 명절기분으로 상차림을 마련해 초대하고 환대하는 인정이 출범한 계기이다. 보다 넉넉하면서도 딱딱치 않은 리셉션이 되기를 바라는 설맞이 소감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대련의 와방점에 진출한 숙부댁을 독행으로 찾았다. 명절을 앞둔 인사였건만 내심으론 겸연하다. 방문자 역시 경직되고 고로한 답습에 로봇으로 작동되는 례속에 시달린다. 세간의 전통적인 세시풍속이라기보다 기존의 틀에 얽매인 수동이였으니 말이다. 차량의 동음이 드릴로 정서를 갉아먹는다. 쿠션도 송곳방석으로 배기다. 내가 조금만 생각을 달리한다면 이런 불행은 자초를 피면할 텐데 말이다. 하여 각도를 바꾸어 숙부를 내 위치에 모셨다. 나를 찾아오시면 어떠랴 하고 감히 주제넘은 망상을 발설한 계기이다.

립장이 다르니 견해도 부동하다. 버릇 따윈 차치하고 모던시대에 이런 통설이 정립되기까진 아직 시간과 과정이 필요함을 안다. 몸이 추워난다. 감수가 얼어든다. 문전옥답에서는 밭두렁, 논두렁 사이 두고 오곡백과를 가꾸면 능히 풍성한 결실은 가능하다. 먼곳의 어르신을 조카 앞으로 세배를 오라는 건 당연히 불효라고 자타가 꾸지람할 것이다. 과연 개념적이고 형식적인 제례除例로도 누리고 즐기고 풋풋한 여백의 지속으로 되는 일상은 설만이 아닐 것이다. 룰을 허물고 장벽을 없애는 통일의 오픈이 되는 타깃이 이 설에서 출발해야 함을 원하지만 말이다. 조금 위안스럽고 느긋한 모꼬지인 것 같다.

나부터 설을 쇠는 의미에 안주함이 우선이렷다. 제야의 종소리나 음력설의 폭죽소리 들리는 시점에서 정초의 다른 정설을 글로벌 화두로 제기하련다. 세초를 통해 설음을 토로한 것 같아 안스럽지만 언젠가 이런 구상이 보다 활기로운 맥락이 되지 않을가 싶다. 더는 옹색하고 경직된 세리머니의 타성에서 맴돌지 말고 이제라도 살아가는 울렁임의 비공식적인 퍼레이드가 되길 바라는 설의 입문개입이자 존속가치이다. 씁쓸하게 자제하는 컨트롤로 개년改年의 또 다른 모멘트이자 잠재력을 이끌어낼 의향은 그래서 가변성을 견주는지 모르겠다. 

와방점에서 아니나 다를가 곤혹을 치렀다. 다음 해엔 숙부가 날 방문하라는 악의 없는 익살에도 대방은 대뜸 노기등등해 야단친다. 항간의 프로필이자 시대의 자화상이다. 난 개의치 않는다. 이미 준비한 바가 있었다. 굳이 규정된 스케줄에 얽매워 일맥상통이 아닌 허례허식의 수다를 떨거나 맞절을 주고받는 게 작히나 꼭두각시 탈춤이랴? 설에 미루었던, 묵었던, 겹쳤던 인사나 효도 혹은 안부를 한꺼번에 쏟아내 봉창하는 것 같아 심히 찜찜하고 꿀꿀한 것은 몇년 전부터의 고민이였다. 해프닝이지만 내심을 원맨쇼로 보여주어 드디여 조금 개운하다. 이제 세수岁首 아닌 평일에도 해후 같은 기분을 동반한 인사수작이 빈번할 때 우리 동네, 우리 회사, 우리 혈육, 우리 친구, 우리 패밀리가 더 밀도 있는 통기성을 가질게 아닐가? 평소에 눅잦혔고 숨겼고 스쳤던 진실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설의 편협적 타이틀에 도전했다. 명절의 새삼스런 의의가 푸짐하다. 틀에 박힌 답습을 당장 전격 소환해 응징하고 보다 참신하고 활성화된 페스티벌을 확실하게 발족, 보급함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조카, 가만히 보니 네 말이 일리 있다. 담 설엔 내가 연변 가마!…

며칠 뒤 숙부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고백과 탄백이 동시에 묻어났다. 일요일이나 명절 아닌 평소에 마주치는 막걸리사발이 설에 마시는 모태주보다 더 향기로울지 모르겠다. 부담없이 자작자음하듯이 자유롭고 편안한 심성이 휴식과 차분함의 감미를 시식하게 할 테니깐. 설이 기다려진다. 숙부를 맞이할 준비에 설렘을 눙친다. 아니 할랑거린다. 서재의 독실에라도 궁궐처럼 환대하련다. 어쩌면 최초의 새해맞이 법전인지도 모른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이다. 매년 설이면 년하장, 엽서, 선물들이 전보, 우체국, 교통도구를 리용해 배달되던 진력하고 질린 이왕지사들을 현재 나로부터 외면하며 선웃음을 짓지 않는가? 자업자득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이제는 보다 똘똘 뭉치고 짱짱하게 빈틈을 메울 살맛 나는 만남을 핍진하게 가질 수 있을가? 더는 세배나 안부가 설에만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나서 보다 광역화를 노린다는 점에서는 나중에 마침내 공감에로 골인할 것임을 믿어의심치 않으련다. 

-복무대로 랭면 한그릇이면 만족이야! 글구 썩장과 도라지무침… 투도온면도…

숙부가 이튿날 또 전화를 주셨다. 초대에 부담을 덜련다는 의지가 내비쳤다. 메뉴선정이 고작 토속적이고 꽤 사치한 저급이다. 그럼에도 일파만파로 퍼지는 설의 또 다른 기류가 동네방네 안방을 감돌아든다. 도시와 외곽 그리고 해내외를 풍미하면서 새 전설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선명하고 간절하다. 파격적이고 이설적인 돌직구일지라도 나중엔 초연하게 동조하리라 본다. 리액션보다 실험 내지 호응 또는 관행이 이뤄지지 않을가 하는 호기심은 사유기제전환이 완성할 여분의 잠재력이다. 

-아니요, 숙부님! 제가 실례했습니다. 제가 담해도 찾아가 세배 드리고… 대련  해산물 생회로 청도맥주 나눕시다!

이번엔 내가 사과와 감응으로 굴복과 투항을 선고한다. 설의 래왕에서 세태의 보완과 향유를 달성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첫눈에 반한 이성은 덧정이 들고 처음 타개한 민속은 실행으로 고착된다. 설 아닌 설날이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 포지션을 갖다줄가? 떡국, 삼색나물, 찹쌀식혜, 나박김치의 또 다른 맛을 그런 퍼포먼스로 걸맞게 만끽할가 한다. 

숙부를 떠올리며 또 아직 개방적으로 통하지 못한 구석을 포함해 가깝게 부닐고싶다. 설익은 설보다 설설 끓는 또 다른 설날에 우리 자주 상봉할 시대적 감수성에서이리라! 드링크는 물론 새 메뉴들의 무한리필은 계절 없이 오픈해 성업 중에 있다. 오시라, 혼행처럼 부담없고 완주처럼 스릴을 감내하며 환득환실할 것이깐. 

-흐흐… 그럼 조카가 나한테 장훈을 친 걸 되물리나? 빅장?!…

숙부가 변죽을 울린다. 난 도전에 태클을 당한 역습이지만 되려 흐뭇하다. 비난의 블랙홀은 명절콘서트로도 규정이 가능한 리유에서다. 한결로 엉켜 스케줄이 담뿍 찬 설을 비우고 보다 풍성한 실속을 누림이 소원이다. 이것 또한 레지스탕스와 자률의 오케스트라 통합이라 할가 한다. 진부한 고태의연에서 떠나 새 마을, 새 도시로 옮기는 게 의식전환이자 사상해방이다. 설에 대한 외곡 내지 롱간이 이제 어떤 풍파 내지 물의를 일으킬 걸 미리 감오한다. 추세이자 동향이렷다. 

꺾이는 상승세와 급증하는 신드롬의 대결이 시나브로 교체기를 만든다. 아직은 자원봉사자나 시민단체에서조차 발기된 청원서와 전단지도 없는지라 그냥 일각에서는 나름 대로 제안하는 바이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건 숙부처럼 혁신으로 다가오는 선각자가 간세지재처럼 계시여 덜 불미스럽다. 자기를 허물고 신선한 것이라면 바이러스조차 수납할 그릇뚜껑을 여는 손짓이 돋보일 따름이다. 정경유착 있듯이 전통세시와 시대민속의 접목합성이 치르는 미풍량속의 새 버전 콤비이다. 몸집을 크게 불린 설 아닌 설날을 자수서처럼 낱낱이 이실직고하며 그렇게 쇠고 싶다. 

설 아닌 설날이 더는 핫이슈가 아닐 줄 믿어야 하는 까닭을 오프라인 모멘트에 게시한다. 장님도 귀머거리도 까꿍- 한번 불러주면 어떠랴 싶다. 초강수의 앵글숏인지 몰라도 감히 배독을 권장할가 한다. 갑질고객처럼 잡음을 튕긴다고 구시렁거린들 아직은 참작할 시점인 까닭도 짓씹자고 말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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