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사일 연구와 우주개발의 대부격인 원로 과학자 전학삼 박사가 31일 북경 자택에서 향년 98세로 별세했습니다.
언론들은 전학삼 박사의 별세 소식을 일제히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 그의 업적과 생애, 지도부와 얽힌 일화 등 각종 소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항주에서 1911년 출생한 전학삼 박사는 상해교통대학과 청화대 공대를 거쳐 미국에 유학해 세계적인 항공우주 학자로 성장한 인물입니다.
1939년 20대의 나이에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항공우주 및 수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땄으며 2차대전 당시엔 미국 국방과학위원회 미사일 주임으로 재직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1950년 고국에서 로켓을 개발하고픈 희망에 자료를 챙겨 귀국하다 스파이로 몰려 고초를 겪기도 했으며, 5년 후 미·중간 협상을 통해 고국에 돌아와 중국 국방부의 전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우주개발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중국 과학원 력학연구소를 창설한 그는 중국의 미사일 개발과 항공학 연구를 주도해 1960년대 중국의 첫 핵실험과 1970년 지구위성 발사 등에 성과를 올렸고 2003년 유인우주선 발사의 토대도 닦았습니다.
공직으로 기계공업부 부부장과 중국 과학협회 부주석, 중국 역학학회 명예회장,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등을 지냈으며, 1991년 과학자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난해 중국 CCTV가 선정한 '중국을 감동시킨 10대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모택동 주석과 주은래 총리는 그가 귀국한 지 얼마되지 않은 1956년 그를 찾아가 손을 붙잡고 "미국에서 당신은 5명의 과학자를 합친 것보다 더 훌륭한 능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면서 "연구에 매진해 중국을 건설하는데 이바지해 달라"고 당부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현 지도부 역시 그를 존경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음력설을 앞둔 지난해 1월에는 호금도 국가주석이, 건국 60주년 국경절을 앞둔 지난 8월에는 온가보 총리가 전박사의 자택을 찾아 존경과 감사를 전할 정도로 현 지도부 역시 그를 원로 과학자로 각별히 대했습니다.
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뒤 중국 전체도 우주개발의 대부이자 로켓왕인 전 박사를 추모하는 물결로 가득합니다.
그의 북경자택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그의 출신학교인 교통대학에도 별도 추모 행사가 마련됐으며 인터넷 상에서도 추모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장례식을 공산당 중앙위원회 차원에서 거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부인 장영과 백년해로 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애국심과 소박한 생활을 강조하는 각종 어록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 성이 전(錢)씨지만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사업과 성과는 모두 중국에 있고 나의 조국은 중국이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보험을 들지 않은 리유는 나는 중국인이기에 평생을 미국에서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등의 어록을 남겼습니다.
한편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전영건(錢永健.미국명 로저 첸)은 전 박사의 5촌 조카로 집안의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출처; 연변인터넷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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