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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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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백산> 2018.5 루계221 댓글:  조회:797  추천:0  2019-07-15
장백산 총221호 2018 제5호   권두칼럼 최홍일   위기에 처한 우리 문학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한영남   손톱(단편소설) 한영남   문학주름 만들기(작가노트) 우상렬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리호원   병든 개의 교활한 문학(작가평)   기획련재 김혁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 련재11)   박초란소설코너 박초란   월광곡月光曲(단편소설)   계렬칼럼 김병민   대학정신과 교장 그리고 보직자들(칼럼) 김병민   학문은 인격으로 한다(칼럼) 김병민   교수는 먼저 한우물을 잘 파야 학문에서 대성한다(칼럼) 김병민   ‘인재쟁탈전’과 ‘양귀비꽃’(칼럼)   시인시전 심명주   탈춤(시 외7수) 미주     아방가르드한 시의 향연(시평)   창작마당 장학규   개미 투(단편소설) 김경화   알바트로스(중편소설) 전향미   뜻밖의 쪽지(단편소설) 김두필   꿈은 깨고 나니 또 ‘꿈’(수필) 송련희   라목(수필) 김정권   상처(시 외1수) 방태길   신선 같은 세월(시 외1수) 장향화   6월 련서(시 외2수)   8090문학코너 조은경   한낮의 맥노리(단편소설) 김화     다녀茶女(시 외2수)   문학과 비평 손경란   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령혼의 메아리(평론) 리해연   리상각,그는 누구인가(평론)   중국문학 김인순   고려와 나(단편소설/왕염려 옮김)   장편소설련재 김혁     무성시대(장편소설 련재5) 구호준   여백(장편소설 련재3)
8    리해연: 리상각, 그는 누구인가(평론) 댓글:  조회:510  추천:0  2019-07-15
리상각, 그는 누구인가 리해연     들어가는 말 리상각(李相珏 1936-2018)은 해방 후 중국조선족사회의 전개와 변화과정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면서 각고의 노력으로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진행한 시인으로서 중국 조선족 시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30여년간 문학잡지 편집사업에 종사하면서 민족문학의 발전을 위해 청춘을 불태웠고 동시에 후대양성을 위한 사업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근 반세기 동안 시인으로서, 문학잡지 편집일군으로서 많은 업적을 쌓아온 리상각시인은 2018년 8월 17일 생을 마감하였다.  본고는 리상각시인이 걸어왔던 발자취에 따라 그의 삶을 돌아보고 그 속에 내포된 시인의 인생과 문학에 대한 태도를 두루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1. 후대양성과 민족문학의  발전을 위한 발걸음   리상각은 1936년 조선 강원도 양구 해안면 만대리(조선전쟁 전에는 북에 속했고 전쟁 후에는 분계선의 변동으로 남에 속하게 됨)에서 태여났다. 그의 아명은 리상봉으로 리백설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8년, 세살 된 리상각은 부모님의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넜고 중국 길림성 도문图们을 거쳐 흑룡강성 목단강 마도석磨刀石에 정착하였다. “만주에 가서 3년 동안 농사를 지어 부자가 되여 고향으로 돌아가자”던 리상각 일가의 꿈은 년년이 흉년이고 재난의 련속이라 환향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웠다. 극심한 생활고로 리상각의 부모는 중쏘中苏변경인 부금현富锦县 대면성촌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고 친척 할머니들과 고모는 다시 강원도로 돌아갔다. 1945년 고향땅은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리상각 일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혈육들과 영원히 생리별을 하였다.  리상각은 1943년 1월, 흑룡강성 부금현 대면성소학교에, 1949년 1월, 밀산密山중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그 곳에서 스승 한창립선생님을 만나게 되였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슬하에서 문학에 흥취를 가졌던 그는 스승의 지도하에 문학창작 능력을 제고할 수 있었는데 1950년 3월에는 그가 창작한 서사시 〈백설〉과 우화 〈메기와 붕어〉가 중학교 작문 1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1년 흑룡강성 상지尚志에 있는 사범학교에 입학한 그는 교내의 등사본 잡지인 《동학》의 주필을 담당하면서 잡지를 3기까지 출간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그립고 고향마을이 그리웠던 리상각은 편지를 써서 고향 친구들에게 띄우기도 했고 방학이면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 학교에 남아있으면서 도서관에서 문학서적을 빌려보기도 했다. 겨울방학 동안 50권의 문학서적을 읽을 정도로 문학에 흥취를 갖고 있던 그는 오래전부터 시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졸업 후인 1954년 8월 리상각은 벌리현勃利县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했고 교육사업에 종사하면서도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56년에는 처녀작 시 〈아침〉을 《연변문예》에 발표하였고 1957년 7월에는 시 〈수수밭에서〉를 사천성의 《별星星诗刊》 잡지에 한문으로 발표하였다. 같은 해 8월 연변대학교 조문학부에 입학한 리상각은 시문학단체인 ‘시와 랑송’이라는 써클을 조직하였고 등사본 잡지인 《대학생》의 주필을 담당하면서 잡지를 출간했다.  1961년 대학교를 졸업한 뒤 리상각은 《연변문학》 월간지의 편집부에 취직하였고 1981년부터 16년 동안 《연변문학》의 총편집 직무를 맡게 되였으며 1996년에는 36년간의 근무생활을 끝마치고 정년퇴직을 하였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애착과 열정으로 들끓었던 리상각은 30여년을 하루와 같이 후대양성과 민족문학 발전을 위해 청춘을 불태웠다.   열정의 사나이였던 리상각은 깊은 산골과 농촌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문학창작을 진행하던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1962년 이른봄, 그는 시공부를 착실하게 하던 허흥식을 찾아 동불사향 영승촌으로 갔고 1963년에는 동요창작과 구전민요를 정리하던 나젊은 리룡득을 찾아 차조구로 갔으며 같은 해 겨울에는 한수동편집과 함께 몇십리의 눈길을 걷고 달려 숭선골안에 있는 차룡순을 찾아갔다. 그 외 연길현 태양공사 횡도대대에 살던 서광억, 연길현 팔도구 쌍봉촌의 김재권, 화룡 룡호촌의 정세봉 등 ‘숨어있는 별’들을 찾아 연변주 내 곳곳을 이리저리 뛰여다녔다. 그는 또 문학을 배우고저 하는 후대들을 위해 배움의 터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1984년 5월, 《천지》 월간사에서 꾸린 문학창작 통신학부가 정식으로 개학을 맞이하였는데 리상각은 통신생들의 작품들을 《천지》와 《개간지》에 실어줄 것을 약속하면서 학생들의 문학열과 창작열을 북돋아주었다. 뿐만 아니라 중한 수교 이후 그는 한국의 학자, 시인들과 부지런히 교류하면서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발전을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한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이며 마광수의 지도교수인 연세대학교 신동욱교수와 한국의 저명한 시인 황송문선생을 연변대학교에 초청하여 특강을 조직하는 등 문학도들에게 학술적 시야와 사유체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창조해주기도 했다.  리상각은 문학잡지사에 편집으로 배치를 받으면서부터 민간문학 수집 활동에 나섰다. 그는 조선족 민간문예 수집조 성원으로 있으면서 9개월 동안 발품을 팔아 민족민간문예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였다. 그는1980년에 《중국조선족구전민요집》을 출간(1995년에는 한국에서 재판)하였고 2000년에는 《북간도유머집》을 출간했으며 2007년에는 《조선족문단리면록》을 《연변문학》에 련재하였다. 뿐만 아니라 ‘민생단사건’에 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한 기초에서 그것을 작품화하여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잡지 《문학사계》(한국, 제38호부터 48호)에 《동만혈전비사东满血战秘史》를 련재하기도 했다. 력사적 사실로 인정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와 시인들이 과감히 언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리상각은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긴 노력과 용기로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리상각은 또 전통시조의 창작기법을 준수하는 기초상에서 현대시조를 창작할 것을 고수하면서 시인들을 동원하여 시조 창작에 열을 올렸다. 1989년 8월 15일, 한국 《시조생활》잡지사의 사장과 발행인 류성규박사가 연길을 찾아 《천지》 월간사와 결연을 맺었고 연변에서는 한국의 시조와 론문을 소개하였으며 시조 창작에 궐기하기 위해 몇차례에 걸쳐 시조묶음을 편찬하였다. 1990년부터 《도라지》와 《천지》는 서로 협력하면서 잡지에 시조를 대량적으로 실어내기 시작했다. 시조창작열이 고도로 팽창되면서 리상각은 시조문학단체를 결성하려는 의지가 강해졌고 시조선집을 출간하려는 념원이 갈수록 굳어졌다. 1990년 봄에는 송정환이 연변으로 와서 리상각에게 시조단체를 결성하자고 제의했다. 허룡구, 리해산 두 교수가 준비사업에 착수했고 500수에 달하는 시조를 묶어 《시조선집》을 민족출판사에 교부했다. 1994년에는 민족출판사를 통해 《중국조선족시조선집》을 출판하였으며 1993년 10월에 연변시조시사를 정식으로 설립하였다. 1994년 《천지》는 8월까지 65수의 시조를 발표했고 《료녕일보》에서도 시조와 시조평론을 자주 실었다. 리상각은 이처럼 20여년간 한국의 시조단체 및 시조시인들과 교류하고 중국조선족시인들과 련합하며 동료와 후배들에게 시조를 창작할 것을 제기하면서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어릴 적부터 고집불통이라고 소문이 난 그는 민족문학을 위한 사업이라고 인정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무조건 밀어붙이고 실시하였다. 그가 발품을 팔아 수집하고 정리했던 민간문학 자료들은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떠나 그 자체가 갖는 사료적 가치를 따져볼 때 리상각은 중국조선족의 민족사와 민족문학사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시적 주장과 창작의 자세 시란 무엇이고 시를 어떻게 써야 하며 시인은 무엇을 써야 하는가? 이는 모든 시인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인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견해와 세계에 대한 견해를 가지기 마련인데 시인은 보통 이런 인생관과 세계관을 삶의 기본토양으로 하여 울울창창한 시의 숲을 창조해낸다.  리상각은 시란 ‘언어의 그림’이고 ‘인생의 거울’이라고 했다. 그는 “시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인생의 고통, 슬픔, 고뇌, 추악한 것을 불사르기 위함이고 인간미를 찬양하기 위함이며 따라서 시인은 반드시 인생을 열렬히 포옹하고 인간미를 찬양하는 일에 자기의 령혼을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상각은 사랑의 감정과 서정의 미를 보여주는 것을 자신의 시의 천직으로 삼고 이를 통해 자신의 미학관을 표출하였다. 문학창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로동으로서 로동자로서의 작가와 시인은 창작에서 자기만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 리상각에게 있어서 시란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그려주는 예술이지만 그 속에 숨쉬는 인생의 꿈과 환상과 신념을 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였다. 그는 “가령 나에게 청춘이 사라지고 사랑과 인정이 말라버리고 희망이 떠나버리면 시신도 나를 저버리고 말 것”이라고 하면서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를 쓸 것을 주장했다. 리상각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삶을 돌아보면 행복했던 순간보다 슬펐던 순간들이 더 많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삶의 고독과 절망, 방황과 우울 등으로 시를 비극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시련과 고통을 딛고 열정과 희망과 신념을 불어넣기를 강조했다.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어도 결코 절망하거나 비관하지 않았다. “인생살이가 아무리 지옥 같은 것일지라도 꿈을 잃지 않고 분투하면 나아갈 길이 열린다.”라고 말했던 리상각은 오히려 곤경 속에서 더욱 강해지고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살려고 노력하였으며 그것을 작품을 통해 표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문학창작을 하면서 민족혼을 기본으로 하고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쓰기를 제창하였다. 그는 “시는 언어예술이지 말장난이 아니며 심장으로 뿜어내는 진실한 감정을 감명깊게 그려주는 예술이므르 시인은 언제나 추호의 허풍도 떨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시를 쓰되 그 속에 시대의 변혁을 쓸 것을 호소했다.  이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시적 주장을 수립하고 창작활동을 진행해온 리상각은 1956년부터 반세기가 넘는 동안 총 642수에 달하는 시, 442수의 시조, 147수의 가사, 338편의 산문과 실화문학 및 평론,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각각 1편을 창작하였다. 그는 1980년 처녀시집 《샘물이 흐른다》를 시작으로 시집 14권, 시조집 6권, 가사집 1권, 수필집 2권, 문집 4권, 시론 1권, 민간자료집 1권 등을 중국과 한국의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였다. 이상의 사실들로 알 수 있듯이 리상각은 다산작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리상각은 일생에 거쳐 향토적 서정시, 랑만주의적 경향의 사랑시와 송가, 현실비판과 자아반성의 풍자시들을 대거 창작함과 동시에 시조 창작과 그 발전을 위한 일에서 그 어느 시인보다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풍자시 창작에서도 선두주자로 나섰다. 일찍 리상각은 올곧은 성격 탓에 늘 ‘바른 소리’를 잘하여 가끔은 타인들의 미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러한 시인의 올곧은 성격이 바로 그가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예리하게 직시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는 받침돌이 되는 것이다. 평생 동안 열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삶을 대하며 미래지향적 정서를 작품에 담아냈던 리상각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변화되는 인간사회와 민족문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바로잡아 보다 건전하고 밝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여 그는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추한 내면을 작품 속에 담아냈던 것이고 이러한 작품들은 개혁개방 후기의 우리 민족 사회의 한 면을 보아낼 수 있는 좋은 증거가 되였다. 리상각은 해방전 강원도 시골마을에서 태여나 흑룡강성을 거쳐 연변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으며 제3의 고향인 연변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산출하였고 평생을 문학창작과 민족문학 발전과 후대양성을 위해 살아왔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의 그의 작품들은 중국조선족문학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된다.  나가는 말 리상각은 암울한 일제식민시기에 조선에서 태여나 국경을 넘어 중국에 정착하여 평생을 중국조선족으로 살아왔다. 그의 삶에는 식민지시대의 잔상과 격변했던 중국 당대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해방 후 중국조선족문학의 발전력사, 중국조선족의 정치적, 사회적 특성 및 주체의식이 여실히 반영되였으며 향토적, 민족적 색채가 다분하며 디아스포라로서의 의식형태가 잘 드러나고 있다. 리상각은 현대시와 시조를 대량적으로 창작한 동시에 가사와 수필은 물론 오체르크, 단편소설과 장편소설도 창작하였으며 민간문학 수집 정리에도 열정을 쏟아부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반평생 문학창작과 문학잡지사 편집사업을 병행하면서 후대양성을 위한 사업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중국조선족문학의 발전을 위해 고뇌하고 사색하면서 방법을 모색하였는바 반평생을 시인으로서, 문학잡지 편집일군으로서의 사명감을 온몸으로 실천하였다. 일찍 “잊어다오 나를 / 나는 민들레 / 무덤가에 조용히 / 피였다 마는 / 못 본듯이 가다오 / 그대 갈길을.”(〈묘비에 쓴 시〉 중에서, 1992.)라고 했던 리상각시인, 그는 잊어달라 했으나 후세인들은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중국조선족문학의 발전을 위해 평생 자신의 정열을 불태우면서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던 리상각시인, 그는 떠났지만 떠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시인과 그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더욱 활발히 진행할 것을 약속하면서 또한 이러한 작업이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되기를 기대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출처:2018 제5호
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령혼의 메아리 손경란     숙아, 너는 구름을                       박장길 산으로 들로 아침 먹으러 가자고 양우리문을 열면 숙아, 네 구름떼 흘러나온다지   어서 가자 빨리 가자 쨩쨩  채찍소리 울리면 하늘의 구름이 내린듯 숙아, 네 구름떼 산과 들을 덮는다지   해가 솟으면 산을 감았던 안개는 걷히지만 해가 솟으면 숙아, 네 구름떼는 피여난다지   굴리는 눈덩이 같이 커만 가는 양떼를 앞세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들에 가는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   이 시는 박장길시인의 처녀작으로서 1979년에 창작되여 1980년 8월호 《연변문예》 (지금의 《연변문학》)에 발표되였고 그 이듬해인 1981년에 한어로 번역되여 《민족문학》에 발표되였다. 그러니까 이 시는 공교롭게도 필자가 태여나던 해에 창작된 시이다. 문학작품은 부동한 시대 부동한 독자들에 의해 새롭게 또 다양하게 읽히울 수 있다. 이 또한 문학작품의 생명력이기도 하다. 박장길시인의 이란 처녀작은 발표된 시간이 오래된 만큼 아마 많이 읽히웠으리라 믿는다. 39년이란 유구한 세월이 흘러 이 시를 처음 읽어보는 독자로서 필자는 시의 행간에 살아숨쉬는 그 진미와 향기를 느껴보고저 한다.  이 시는 양치기 처녀 ‘숙이’와 그녀의 양떼를 시적 대상으로 표현한 시이다. 시 은 발화체 형식의 제목으로 시작된다. ‘이름짓기’ 문화는 시대적인 특징을 보이는 바 70, 80년대까지만 해도 ‘숙’자는 우리 민족 녀자들의 이름자에 흔히 애용되던 글자이다. 영숙이, 옥숙이, 경숙이… 등 녀자들의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략칭하여 ‘숙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이렇게 미루어볼 때 ‘숙이’라는 인물은 분명 우리 민족 녀성이다. 이어서 ‘너는 구름을’으로 이어지는 제목은 두개의 시적 대상물인 ‘숙이’와 ‘구름’이 어떤 련관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호기심은 곧바로 시의 제1련에서 풀린다. 첫련 “산으로 들로 / 아침 먹으러 가자고 / 양우리문을 열면 / 숙아, 네 구름떼 흘러나온다지”에서 시인은 풀빛으로 물든 산과 들에 방목되고 있는 하얀 양떼들과 하늘의 하얀 구름떼의 류사성을 발견하고 시적 합일을 이루어낸다. 산과 들에 펼쳐진 짙푸른 풀빛, 파아란 하늘빛, 하얀 구름빛과 양떼빛 그 속에 서있는 한 처녀… 그야말로 한폭의 목가적인 풍경화이다. ‘숙이’와 ‘양떼’, ‘하늘’, ‘구름’, ‘산’과 ‘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조화를 이룬 평화로운 세상이다. 이 련에서 사용된 시어들은 사물을 지칭하는 ‘산’과 ‘들’, ‘양우리’, ‘구름떼’ 등 명사적 낱말들로 되여있고 수식어인 ‘푸르다’, ‘하얗다’ 등 색채 형용사가 빠져있기에 오히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제2련 “어서 가자 빨리 가자 / 쨩쨩 채찍소리 울리면 / 하늘의 구름이 내린듯 / 숙아, 네 구름떼 산과 들을 덮는다지”에서 ‘쨩쨩’ 울리는 채찍소리로 청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산과 들을 순식간에 덮어버린 양떼들을 하늘의 흰 구름이 내려앉은 이미지에 비유함으로써 생동한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제3련 “해가 솟으면 / 산을 감았던 안개는 걷히지만 / 해가 솟으면 / 숙아, 네 구름떼는 피여난다지”의 시구를 보면 해가 솟아나는 시점에 양치기 처녀 ‘숙이’의 방목은 시작된다. 부지런한 양치기 처녀의 삶은 자연의 리듬과 일치해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삶과 존재의 모델을 시인은 양치기 처녀에게서 발견했던 것이다.   제4련 “굴리는 눈덩이 같이 / 커만 가는 양떼를 앞세우고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들에 가는 /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에서 ‘숙이’의 양떼는 굴리는 눈덩이같이 커져간다. 산과 들에 흘러가면서 하루하루 살찌는 양떼들의 모습이 눈덩이가 굴러가면서 커지는 이미지에 비유되는 이 시구에서는 양치기 처녀의 고생이 결실을 맺어 보람된 로고로 이어지고 있다. 1, 2, 3련의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에 풍요로운 이미지가 가미되여 느껴진다. 또한 양치기 처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방목을 멈추지 않는다. 산과 들은 그녀의 삶의 터전이며 그 속에서 ‘숙이’의 충만된 끊이지 않는 하루 일상은 계속된다.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양치기 처녀 ‘숙이’의 정신력과 삶의 자세에 대한 감동과 찬미이다. 자연 속에서 점점 더 강인해지는 그녀의 찬란한 아름다움은 말없이 불타는 생명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전반 시의 시어 구성을 보면 형용사는 절제하고 동사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형용사가 사물의 성질, 감각, 색갈, 시간, 수량 등 정지 상태를 표현하는 데 반해서 동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력동적인 어휘이다. 동사가 움직이는 선이라면 형용사는 고정되여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각 련에 사용된 ‘열다’, ‘흘러나오다’, ‘가자’, ‘울리다’, ‘덮는다’, ‘피여난다’, ‘앞세우고’ 등 시어들은 양치기 처녀 ‘숙이’의 방목과정을 동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으며 시의 력동성을 더해주어 시가 살아 꿈틀거리며 뛰여가게 하고 날아가게 한다.  또한 각 련의 마지막 시구는 모두 “숙아, 네 구름떼…”란 반복구로 시적 리듬을 살려내며 음악성을 짙게 한다. 양떼는 구름떼가 되여 흘러나오고 산과 들을 덮고 피여난다. 이렇게 양치기 처녀 ‘숙이’는 “구름을 몰고 있”다. 마지막 시구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란 시적 표현과 함께 구름을 탄 ‘선녀’의 모습이 확연히 안겨온다. 순간 “와!” 하는 감탄이 흘러나오며 독자의 시선은 다시 양치기 처녀와 양떼에 주목된다. 그러면서 “왜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였을가 하는 의문의 여운이 안겨온다.  양치기는 일명 목자라고도 부른다. 양치기는 소아시아에서 5000여년 전을 시작으로 가장 오래된 직업들 가운데 하나이다. 젖과 양고기, 특히 양털을 위해 양을 길렀다. 이후 수백년에 걸쳐 양과 양치는 일은 유라시아를 통해 퍼져나갔으며 양치기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고 양치기는 이야기문학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헤라클레스, 오이디푸스, 다윗 등 인물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양치기이다. 이 외에도 더 잘 알려진 양치기가 있다. 심심풀이를 하고저 “늑대가 왔다!”라고 거짓말이나 해대는 양치기 소년을 우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양치기 하면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시는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 ‘숙이’와 그녀의 양떼를 시적 대상으로 표현한 시이다.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의 등장에 호기심이 더해진다. 우리 민족은 농경민족인 만큼 양치기 처녀의 모습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때문에 박장길시인의 에 등장하는 양치기 처녀는 더욱더 독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정열로 불타는 19살 남자 시인의 감성으로 담아낸 20세기 우리 민족 양치기 처녀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잔잔한 감동으로 독자들의 가슴에 녹아들고 있다. 시인은 그의 시집 《너라는 역에 도착하다》(2016년 3월, 연변인민출판사) 후기에서 《시와 시창작》에 대한 시인의 견해를 피력하는 대목에서 “전통을 타파하지 않으면 거기에 얽매이게 된다. 하지만 전통이 없으면 목동이 없는 양떼와 같고 혁신이 없으면 시체와 같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는바 목동과 양떼가 어우러진 풍경은 이미 시인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녀작이란 첫 시적 체험인 만큼 그의 처녀작 은 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시인의 령혼의 메아리이다.  출처:2018 제5호
6    조은경: 한낮의 맥노리(단편소설) 댓글:  조회:373  추천:0  2019-07-15
한낮의 맥노리 조은경   “오는 일요일에 시간 좀 내라.” 오랜만이였다. 아버지가 시간을 내라고 전화한 것이.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주동적인 부름은 늘 불길함을 몰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자 윤주는 아버지와의 소통이 조금씩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윤주가 다니는 중학교에 찾아왔던 날도, 하숙하고 있는 친척집에 먹을 것을 한아름 사가지고 불쑥 나타났던 날도. 예고 없는 아버지의 방문은 윤주에게 반가움에 이어 의아함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아버지는 리혼과 출국을 그런 방식으로 통보했다. 윤주에게 혼자라도 괜찮니 하고 묻는 것 따위의 의논은 하지 않았다.  윤주는 갑작스러우면서도 낯설지 않은 느낌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시간이 있다고 말하기도, 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하여 잠간 멍하니 있었다. “…” “성주가 결혼한다는구나. 다같이 밥이라도 한끼 먹어야 되지 않겠니…” 처음에 시간을 내라고 했을 때의 명령조와는 달리 아버지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버지의 그런 말투는 당신의 주장이나 의견에 자신 없어하는 것처럼 들렸다.  “네 어머니가 련락했더라. 결혼식에 올 수 있겠냐고.” 성주에게서 ‘나 결혼할지도 몰라.’라는 문자는 며칠 전에 받았다. 그런데 성주도 아닌 엄마가 직접 아버지에게 련락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자식의 결혼을 부모가 아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윤주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르는, 은근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긴! 글루건 심에 열을 가하여 떨어졌던 물건을 도로 붙여버리는 것처럼 끊길듯 이어지는 게 부모자식의 인연 아닌가. 그리고 자식을 둔 부부는 언제든 필요에 의해 련락을 지속해야 될 의무가 있었다.  엄마는 성주가 아버지처럼 리기적이고 폭력적이며 분노에 젖어있는 사람이 될가 두렵다고 했다. 사람이 어찌 평생 그런 태도로 살아가겠냐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엄마의 인식은 완고하여 부자간의 만남이라면 치를 떨 정도였다. 그런 엄마가 성주의 결혼 소식을 전하려고 아버지에게 먼저 련락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성주가 장손이라는 게 마음에 걸려서 아버지에게 련락한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성주의 결혼자금을 조금이라도 보태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올 수 있겠냐는 말은 또 뭔가. 오라면 오고 오지 말라면 안 가는 거지. 또 오지 말라고 해도 아버지인데 가고 싶으면 가는 게 아닌가. 윤주가 아는 한 아버지는 자식 일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아버지 가슴 속의 정체 모를 울분과 분노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옅어졌고 언젠가부터 딸의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 챈 지 꽤 됐다.  윤주는 별일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저절로 눈살이 찌르려졌다. 아버지에게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그래서요?”  “새아버지가 있은 지 오래 됐고 성주는 대부분 엄마가 키웠으니 나까지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모양새가 안 좋을 것 같아서 결혼 전에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했다. 부모 된 도리는 해야지. 그 자리에 너는 있어야 되지 않겠니? 몇년 만의 가족모임인데.” 부모 된 도리는 어떤 건데요, 하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친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성주에 대해선 스쳐가는 궁금증도 내비치지 않던 아버지였다. 가끔 윤주가 일부러라도 ‘성주 한국에 왔어요.’, ‘요즘은 공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공단 그만두고 무슨 학원 다니고 있어요.’ 하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는데 윤주는 그 순간 서운함이나 미안함 같은 것이 얼핏 서렸다고 생각했다. 기죽은듯한 아버지의 모습을 인지한 윤주는 성주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말해줄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윤주는 가족모임이라는 단어를 마치 오래 전부터 말해온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입 밖에 내는 아버지가 생경했다. 윤주네 부부와 식사하는 것조차 어색해하던 아버지가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였나 싶었다.  풍성한 료리들을 앞에 놓고 서로 눈을 맞추는 부부, 수시로 목소리를 높이는 토끼 같은 아이들, 그런 손주와 자식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어른들 등 삼세대가 함께 모인 풍경이 떠올랐다. 윤주는 왜 가족이라면 늘 오순도순 모여앉아 밥 먹는 장면부터 떠올리는지 모른다. 가족끼리의 만남이란 모름지기 그런 풍경이여야 될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하는 가족모임에 대해서 윤주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따가운 직사광선 때문에 눈 뜨기 힘든 것처럼 현기증이 일었다.  “야야! 말을 했는데 왜 대답이 없니?”  아버지가 질책하듯 소리쳤다. 윤주는 아버지의 다그침 속에서 식사자리에 꼭 참가하여 중간다리 역할을 해달라는 간절함을 보아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아버지는 어지간히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정확하게 십팔년 만에 네 식구가 모이는 자리이다. 아니, 구성원이 다섯일지 여섯일지 모른다. 갈가 말가. 엄마가 자신을 통해서도 아니고 아버지에게 먼저 련락했다는 소외감 때문에 윤주는 가족모임에 갈지 말지 망설여졌다.  영원히 여덟살 꼬마여야만 할 것 같은 성주가 다른 사람과 가족을 이룬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게 했다. 윤주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련락할 수 있는 애인 같은 동생이였다. 불현듯 성주가 또다시 윤주의 손안에서 스르르 녹아버려 혼자 남을 것 같은 쓸쓸함이 갈마들었다.  “꼭 와야 된다. 전날에 내가 시간이랑 장소 문자로 보낼게. 들었니?” 언제부터 이런 열성을 보였나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목소리는 격앙돼있었다. 윤주는 떨떠름한 채 예, 예, 하는 말만 남기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날 지연이랑 만나기로 약속돼있었다.  아버지는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아 정한 한정식집이라며 정중해보이는 게 가족모임 장소로는 정말 근사하지 않느냐고 윤주에게 자꾸 물었다. 나름 정성을 기울이고 격식을 차리기 위해 신경 썼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보였다.  윤주는 이게 뭐라고, 하는 생각에 성가셨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아버지가 누구에게든 말을 걸고 싶어도 마땅한 대상이 윤주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안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아버지,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이건 제가 준비한 선물인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민아가 준비한 것은 닥스 로고가 박혀있는 와인색에 빗살무늬를 곁들인 넥타이였다.  아버지는 고맙다며 멋적게 웃었는데 윤주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표정이였다. 아버지의 웃음이 수줍고 밝아서 윤주는 그만 짜증이 났다.  저런 넥타이를 매려면 정장도 한벌 있어야 되지 않나. 민아가 처음 만나는 아버지에게 넥타이만 준비한 게 마치 엄마 탓이라도 된 양 윤주는 엄마를 흘끔 쏘아보았다. 엄마는 아직도 윤주 앞에만 서면 움츠러들곤 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데도 엄마는 매번 주눅이 든 모습으로 윤주를 불편하게 했다. 그 때마다 윤주는 원망과 련민이 뒤섞인 마음을 자제하지 못하고 기어이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라면 자식한테 헌신적인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윤주는 엄마가 자신을 먼저 배려하는 다소 리기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주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네요. 아버지도 과묵하실 것 같아요.” 아버지는 알코올만 섭취하지 않으면 이 말을 꽤 자주 듣는 편이다.  “그 놈의 술만 없었으면 네 엄마하고 잘살았을 텐데 어찌 술만 들어가면 그렇게 란폭해지는지… 네 아버지는 사는 게 뭐가 저리도 억울한지 모르겠다.” 고모할머니가 문턱을 넘어서는 아버지의 등뒤를 아리게 쳐다보다가 윤주를 향해 혀를 차던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 이제 집에 와도 엄마와 성주가 없다고 말해줬던 그 날의 아득했던 기억과 함께.  윤주는 세살 때부터 애비 없이 자라서 그래요, 라는 말이 입안에 가득찼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좋아하는 건 아니였다. 그러나 윤주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아버지를 비난하는 주체가 되거나 그런 류의 말들에 동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족이라고 여겼다.  “어머니, 이 나물 맛 좀 보세요. 쌉싸름한 게 자연의 맛이 느껴져요. 이 집 정말 좋은 것 같지 않아요?”  민아는 처음부터 말머리에 아버지, 어머니를 붙였다. 그 호칭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어서 윤주는 들을 때마다 뜨악했다. 아버지는 어색함과 반가움이 뒤섞인 웃음을 희미하게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는 그래, 그렇구나 하며 가볍게 맞장구를 쳤다.  윤주는 민아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인간관계란 참으로 오묘하다고 생각하면서 윤주는 맞은편에 앉은 성주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성주는 민아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말없이 저가락만 들었다 놨다 했다. 자신 때문에 이 자리가 마련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대화에 낄 생각이 없어보였다.  성주는 아버지와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눈 후로는 눈도 마주치는 것 같지 않았다.  윤주는 웬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났으면 했다. 그러나 한정식은 윤주의 마음과 달리 찔끔찔끔 계속해서 나왔다. 하필이면 한정식집에 와서 제일 비싼 코스요리를 주문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언니,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요즘은 다들 그렇게 불러요.” 느닷없이 민아가 훅 치고 들어왔다. 스스럼없는 호칭에 윤주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얘 좀 봐라, 하는 뜻으로 성주를 쳐다봤다.  내내 말이 없던 성주가 윤주를 보더니 가만히 웃었다. 그 순간, 윤주는 가슴 속에 맺혔던 응어리가 갑자기 풀어진 것처럼 울컥했다.  윤주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축하에 앞서 “누나, 나는 누구랑 같이 산다는 게 싫어.” 하고 말해서 황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어린 것이 외삼촌 집에 얹혀사는 동안 하루이틀 사이에 생긴 감정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윤주는 가슴이 아팠다. 사람은 늘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데 그 인간관계가 낯설고 기피하고 싶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아서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방금 전 성주의 웃음은 윤주에게 안전감과 의아함이 뒤섞인 요상한 감정이 생기게 만들었다. 윤주는 낯설고도 야릇한 느낌에 눈을 몇번 깜박이다 말했다. “그럼요. 성주와 동갑이라고 하니 나보다 한창 어린데,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요.”  윤주는 어느새 자신을 무장하고 있던 까탈스러움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불현듯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지금 이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해야 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결혼식은 한국에서 해요? 오월의 신부, 너무 근사한데. 민아씨네 가족은 어디서 살아요? 알다 싶이 우리 가족은…” “누나!” 성주가 날카롭게 윤주의 말을 가로챘다.  윤주는 성주를 향해 눈을 부릅뜬 채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다시 민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버지가 좀더 당당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꼭 고백하고 넘어가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가족은 아니예요…”  “그만해! 누나가 말을 안해도 다 알아. 가족사도 모르고 만나는 사람이 있냐?” 성주가 짜증 내며 쏘아붙였다. 순간 남편을 떠올린 윤주는 허를 찔린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찌릿했다.  남편은 오늘의 가족모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에게는 건방진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둘러댔다. 그럴 사람도 아니지만 혹여 남편이 “뭐? 그게 어떻게 가족모임이야?” 하고 묻기라도 한다면 윤주는 모멸감을 느낄 것 같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직도 할아버지의 형제 넷이 살아계시는 대가족 속에서 성장한 남편은 결혼 전에 윤주네 가족에 대해 물어보더니 “그럼 친척이 별로 없네.” 하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각자 책임지고 양육한 자식들은 그렇다 치고 리혼한 지 이십년이 다돼가는 옛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하는 게 가능하냐며 의아해할지도 몰랐다. 가족 모두가 성주를 특별하게 여기는 게 확실하니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까지 창피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윤주는 남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었다. 언제 튀여나올지 모르는 윤주를 비난하는 말 속에 가족이 포함된다면 그보다 더 비참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더우기 엄마는 윤주가 결혼하기 전에 둘을 불러 밥을 사주면서 남편이 경제력도 없고 시댁에서 특별히 해주는 것도 없다며 트집을 잡아 윤주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딸에 대한 걱정인지 사위를 향한 비난인지 알 수 없었다. 윤주는 그 순간 엄마에게 결혼 소식을 전한 것을 후회했다. 이번에도 남편에게 “학위를 따긴 딸 거냐? 아이는 언제 낳아서 키울 거냐? 돈은 남자가 팍팍 벌어야 되는데!” 따위의 말로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예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윤주는 잔잔한 호수와 같은 결혼 생활에 한가닥의 물결조차 이는 것이 싫었다.  엄마는 사위 될 사람이 술에 련련하지 않는 것이라든지 성격이 유순한 건 마음에 드는데 연구소에서 받는 그 토끼꼬리 만한 연구비로 당장 밥을 먹고 살 수는 있는 거냐며 정색했다. 윤주는 돈은 내가 벌면 되지, 누가 벌면 어때 하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특권을 존중해주고 싶었고 남편에게 내 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아버지와 같은 류형의 사람인지 아닌지만 확인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듯이 엄마는 윤주의 결혼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썩 내켜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윤주는 엄마의 미지근한 태도를 두고 직접 양육하지도 않은 자식 인생에 깊게 개입하는 것은 례의가 없거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멋대로 믿어버렸다.  “민아는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셔. 없는 게 아니라 만나고 살지 않아. 할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착하고 똑똑해. 정도 많고.” “엄연히 살아있는데 민아씨네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말이 왜 네 입에서 나와? 부모님 만나는 봤니? 그럼 결혼식은 어디서 하는 건데? 할머니는 어디 계셔?” 윤주는 궁금한 것 투성이라 성주의 말을 급하게 받아쳤다. 어쩐지 이 식사모임이 성주의 결혼식을 대신하는 자리일 것 같은 불길함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시누이의 존재감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급함도 일었다.  어릴 적, 외삼촌에게 반말조로 말했다고 거의 한시간 동안 혼난 기억이 있는 윤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얄미웠다. 성주의 무례함을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닐 텐데 짐짓 모르쇠를 놓는 아버지가 딱해보였다.  민아는 언제 ‘아버지’, ‘어머니’를 불렀냐 싶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성주가 노기를 품은 채 윤주의 말을 잘랐다.  “그런 거 없어, 결혼식 하고 싶지도 않고.” 엄마는 뭔가 말할듯 입을 실룩거리다 성주의 결연함에 눈을 내리깔았다.  성주는 당장 누구 하나라도 팰듯 눈에 독을 품었고 민아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실내에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 때였다. 아버지가 딸꾹! 딸꾹! 하고 딸꾹질을 시작한 것이.  민아의 가족사가 못마땅한지 아니면 짧고 건조하게 내던지는 성주의 화법에 놀랐는지 아버지는 한번 시작한 딸꾹질을 쉽게 멈추지 못했다. 뜻하지 않은 불청객에 아버지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는 애들 앞에서 이게 무슨 경우냐는듯 도끼눈을 떴다.  윤주는 이런 걸 예상하지도 않고 아버지에게 련락했냐는 원망을 담아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윤주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민아에게 반찬을 집어주는 행위에 열중했다. 그 풍경이 다정한 모녀 같아서 윤주는 민아가 성주와 결혼한다고 해도 호감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빈 속에 마신 소주가 내장을 훑고 내려가는듯한 불안감이 마음속을 후렸다.  정적을 깨뜨리는, 간간한 딸꾹질 속에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먹는 데에만 몰두했다.  갑자기 성주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그런 성주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체념과 간섭이 엇갈린듯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윤주는 그만 울고 싶었다. 한참 뒤에 들어온 성주에게서 담배냄새를 맡은 윤주는 당장 담배 한대 빌리고 싶어졌다. 아버지의 딸꾹질 소리와 그릇에 저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이따금씩 들리는 식사시간은 질식할 정도로 느리게 흘러갔다. 이러려고 모이자고 한 게 아닌데 하는 자책이 력력한 아버지의 표정을 보면서 윤주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아버지에게 성주의 결혼식에 올 수 있냐고 련락했던 엄마는 정작 말을 몇마디 하지도 않았다. 양꼬치 장사를 할 땐 멋있기만 하던 엄마는 왜 자식 앞에서는 이렇게도 눈치를 보고 자기 몫의 말도 못하는가.  “언니, 우리 친하게 지내요.”  헤여지면서 민아가 윤주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애가 당돌한 거야 친화력이 좋은 거야 하는 생각도 잠시, 윤주는 민아에게서 다치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건 마치 언니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감정이 낯설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던 묵혀두었던 서글픔이 다시금 살아났다.  윤주는 아무런 거부감도 표현하지 못한 채 민아의 휴대폰에 번호를 찍어주고 말았다.    별다를 게 없었다. 고중 동창 지연과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한두달에 한번 정도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보글보글 끓는 전골에서 사이좋게 갈비를 건져먹었고 날치알에 배추김치와 김가루를 곁들인 볶음밥까지 해먹었다. 불룩한 배를 슬슬 만지며 스타벅스에서 티라미슈를 가운데에 놓고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잔을 마주쳤다. 겨우 한모금 될가 말가 하게 담겨있는 커피잔을 홀짝이는 윤주를 보더니 지연이 “독한 년”이라며 웃었다.  “그냥, 아메리카노는 좀 싱거워.” 속으로 ‘그래, 나 독한 년이다. 독하고 멋진 년이 되고 싶다.’ 이렇게 되뇌며 윤주는 지연의 표현이 바람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신을 인지할 때마다 윤주는 이건 쉬이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에 초라해졌다. 말하자면 납작 엎드린 자존감 같은 것.  이 때다 싶어 며칠 동안 입가에 맴돌았던 말을 꺼냈다.  “지연아, 왜 은화랑 려행 간 걸 비밀로 한 거야?” 머그컵을 입가로 가져가던 지연이 동작을 멈춘 채 윤주를 쳐다보았다. 윤주를 빤히 쳐다보던 지연은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그 순간 윤주는 자신이 뭔가 크게 잘못한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나 내가 없는 말을 지어냈나 하는 생각에 이내 당혹감을 느꼈다.  둘이 몰래 려행 간 것은 부부동반 모임에서 은화네 부부가 소리 낮춰 이야기하는 걸 의도치 않게 엿듣고 알았다. 그 순간 윤주는 두 사람이 급격하게 가까워져서 배신감을 느낀 게 아니라 그걸 비밀이랍시고 귀속말로 하게 만든 지연이 때문에 수치심을 느꼈다. 게다가 대학을 함께 다닌 은화와는 지연이처럼 각별하게 지내는 편도 아니였다. 짐짓 못 들은 척 먹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윤주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 저가락질 하기도 힘들었다.  “윤주야, 사실 그동안 은화랑 쇼핑하고 커피 마시고 려행까지 가면서 많이 친해졌어. 널 통해서 알게 됐지만 너는 만날 먹고 사느라 바쁜 것 같아서 은화 만날 때 너에게 말을 못했지. 내 딴엔 널 배려하느라고 말을 안했는데 넌 그걸 리해 못하는 거야? 내가 일부러 너는 모르게 하자고 했어.” 지연이 윤주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쯤은 오랜 시간 이어온 우정을 통해 체득했다.  ‘내가 왜 너의 그 말도 안되는 배려를 리해해야 되는데? 그게 굳이 비밀로 할 일이야? 내가 화를 내는 게 정말 뭔지 몰라서 이래?’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지연의 억울함과 원망이 섞인듯한 표정을 보는 순간 윤주는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결혼생활은 윤주에게 때로 적라라하게 까발리거나 지나치게 모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적당히 눈 감아주고 슬쩍 넘어가야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윤주는 매번 그게 어려웠다.  뻐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오랜 기간의 련애를 끝낸 것 같은 후련함이 가슴을 후볐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굳은 표정을 본 윤주는 저도 모르게 민아를 떠올렸다.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지방 쪽으로 가면 서울의 삼분의 일 만큼만 줘도 비슷한 평수의 아빠트를 살 수 있대.” 지연의 말을 듣는 순간 떠올랐던 생각이 내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지연인, 내가 자신과 같은 수준이 되는 걸 싫어하는구나. 이상한 권유와 배려로 타인을 위로하려 드는구나.’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저도 몰래 한숨이 나왔다. 윤주는 삐딱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아빠트를 마련한 지연에게 축하를 건넸고 주변에 자랑도 했다. 그러나 만날 때마다 할부금 타령을 하는 건 지겨움을 넘어 혐오감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냥 듣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꼭 한마디를 던지고야 말았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누군 편하게 사니?” 사실 그건 지연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라도 하고 싶었던 말이였다.  언제부턴가 윤주는 지연과 만날 때마다 모든 비용을 자신이 지불해야 될 것 같은 부담감에 시달렸다. 금액을 떠나 그런 마음으로 지갑을 열면 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둘이 간단하게 먹는데 세트정식으로 주문할 것까진 없잖아. 단품으로 시켜도 충분할 것 같아. 내가 살게.” 음식을 주문할 때면 마치 윤주를 배려하듯 말하는 지연이 뻔뻔스러워보였다. 윤주는 자신이 밥을 사겠으니 근사한 걸로 먹자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포기할 때가 많았다. 누가 밥값을 내든 메뉴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건 무의미한 감정랑비라고 생각했다.  윤주가 집이 있는 지연에게 부러움을 드러내면 “집이 있으면 뭐 해. 같이 살 남자도 없는데. 너는 그래도 남편이 있잖아.”라든가 “살아봐. 한순간 뿐이지 혼자만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은 아무런 감흥이 없어.” 하고 말했다. 그 말은 윤주에게 묘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기분이 잡치게 만들었다.  “남편이 있으면 뭐 해… 내 방도 없는데.” 그 때마다 윤주는 적의와 좌절감이 뒤섞인 감정을 짓누르며 시니컬하게 대꾸하려 노력했다.  이젠 자신의 렬등감을 드러내는 말을 들어줄 친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뜻밖에 외로움이 잔잔하게 차올랐다.    엘레베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이에 아버지에게서 부재중전화가 와있었다.  윤주는 오늘 같은 날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중얼거리며 커피머신에 진한 그린색상의 캡슐 하나를 집어넣었다.  윤주는 필요한 용건 외에는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버지와 통화할 때마다 뭔가를 해결해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서 싫었다. 무엇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아서 늘 긴장을 풀 수 없었던 아버지가 윤주 앞에서 점점 나약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가 증오의 대상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대놓고 허탈할 때가 많았다.  준비하지도 않았던, 가시 돋친 말이 튀여나갈 때마다 윤주는 머리 속에 리기적, 무책임, 불효 등 단어들을 라렬해보곤 했다.  “왜 전화를 안 받니?”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아버지가 또 전화를 걸어왔다. 윤주는 아버지가 꺼낼 말들을 알 것 같다는 생각에 피로감이 밀려왔다.  “낮에 봤는데 왜 또 전화까지 걸어요? 안 받으면 못 받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뭘 그렇게 따지고…” 아버지가 가족일로 의논할 상대가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딴청을 부렸다.  “네 생각엔 어떠니?” “뭐가?” “성주랑 그 아이.” “알아서 잘살겠지, 뭘 걱정해요? 언제 그런 걱정을 하고 살았다고. 나 결혼할 땐 아무 말도 없었으면서.” “먹고야 살겠지. 그것보다 결혼식을 안하겠다는 성주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네 엄마는 결혼식을 했으면 하던데 성주가 말을 안 듣는단다. 결혼식 비용은 나도 보태줄 수 있는데. 식을 해야 책임감도 생기고 어른도 되지.” 엄마가 아버지에게 련락한 리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여태 지인들의 결혼식에 뿌렸거나 뿌려야 될 부조돈이 있을 것이고 한국에 와서 늦깎이 대학생이 된 아들자랑도 은근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엄마는 성주를 직접 양육하지 않은 데서 오는 죄책감을 결혼식을 잘해주는 것으로 해소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돈 때문이 아니잖아요.’ 하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고루한 화제거리의 꼭지를 트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성주는 싫은가 보지… 아니면 필요 없거나! 사실 식이 뭐 꼭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됐다! 넌 뭐가 그렇게 시들하니?” 아버지는 자신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윤주가 못마땅한듯 벌컥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윤주는 아버지의 소통방식은 화끈한 것 같으면서도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성주에게 따지고 싶은 말을 윤주에게 하고 있다는 느낌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윤주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다시금 떠올리며 진한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넘겼다. 아버지는 내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걸가. 다혈질적인 성격과 폭력적인 언행을 싫어하는 엄마 때문에 아버지는 리혼 후 성주를 거의 만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가끔 부모 구실을 못했다는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윤주는 ‘꼭 술이 한잔이라도 들어가야 저런 말을 하지.’ 하는 야속한 마음에 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었다.  윤주는 아버지가 성주 때문에 자신에게 화를 낸다는 게 당황스러웠고 서운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른들끼리 리혼을 결정했고 성주는 엄마와, 자신은 아버지와 살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윤주는 그저 모든 게 싫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술만 마시면 자식들을 쥐 잡듯이 교육하는 방식으로 화풀이를 하려 들고 기물 파손에 폭력까지 행사하는 아버지는 가족 내에서도 소외의 대상이였다. 그런데 엄마가 평소에 그렇게도 의지하던 윤주를 아버지에게 맡겨버리다니. 아버지가 술에 취했거나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웃방에서 소리 죽여 우는 성주를 안고 있으면 그나마 불안감이 누그러들던 느낌이 생생했다. 윤주가 아버지와 살게 됐다는 건 이제 그런 것들을 혼자 감당해야 된다는 걸 의미했다.  이미 외삼촌 집으로 짐을 옮긴 엄마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말도 잘 듣고 성주도 잘 돌볼 테니 제발 아버지와 살지만 않게 해달라고. 엄마는 눈물 한방울 떨어뜨리지 않았고 함께 산 세월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막 학교생활을 시작한 성주만 눈치를 보며 윤주에게 자꾸 말을 걸고 싶어했다.  엄마는 “아버지는 술만 마시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니 네가 좀 참아라.”고 윤주를 달랬다. 좋은 사람인데 더이상 부부관계를 지속하지 않는 리유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윤주는 오기에서인지 복수심에서인지 그런 엄마에게 두번 다시 매달리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윤주는 친척집에 하숙했고 한주에 한번씩 집에 갔다. 그러나 부모의 리혼 후 윤주는 아버지만 있는 집에 발을 들여놓기가 싫었다. 엄마 없는 공간은 온기가 없었고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성주가 눈에 밟혀서 울컥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술을 마실가봐 가슴을 바싹 졸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가면서부터 윤주는 더이상 아버지 때문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윤주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홀가분함과 외로움이 뒤섞인 생활에 길들여진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인내와 포기를 필요로 했다.  “윤주야, 생각 같아선 너랑 성주 둘 다 껴안고 살고 싶었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렇게 쉽니? 나도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 눈치가 보이고… 그럴 땐 손주들 맡아줄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린 세상 천지에 부모 형제라곤 딸랑 네 엄마랑 나 둘 뿐이잖니. 리혼한 지 얼마 안돼서 네가 엄마랑 살게 해달라며 왔다 간 날에 누나가 그렇게 매정하게 널 돌려보내놓고 정말 많이 울었다. 엄마가 그래서 너한테는 늘 꼼짝 못하는 거 알지?” 윤주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 외삼촌은 엄마가 한국에서 송금해준 돈을 전달하면서 말했다. 변명이고 자기 합리화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느 정도의 진실도 포함돼있었기에 윤주는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렸다. 아직 자식도 없었던 외숙모가 조카 둘을 한꺼번에 품을 수 없다는 것 쯤은 윤주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리해했다. 그러나 윤주가 느꼈던 배신감과 불안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튀여나오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윤주는 진작 알았다. 오기로 버텨냈던 세월 동안 윤주 마음속의 비장이 점점 두꺼워졌음을.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엄마의 선택과 아버지의 삶을 리해할 수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서른을 넘기고 결혼을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것에 태연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날카롭게 튀여나오는 자기방어 때문에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때마다 윤주는 수치심과 억울함이 교차한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를 썼다.  엄마에 대한 애증이 반비례를 이루지 않아 괴로웠다. 미워하는 마음이 크면 그리움이라도 적었으면 좋겠지만 산다는 건 만만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두려울 때 윤주는 저도 모르게 엄마를 불렀다. 처음 남자친구와 헤여졌을 때 윤주는 엄마에게 남자친구에 대한 뒤담화를 시시콜콜 하고 싶었다. 처음 휴대폰을 갖췄을 때 엄마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걸고 싶었다. 대학입학 통지서를 받았을 때 윤주는 이제 혼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윤주는 정작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아는 단둘이 맛있는 밥을 먹고 쇼핑도 하고 카페에서 노닥거리고 싶다고도 했다. 련인이나 친한 친구끼리 하는 짓을 하필이면 어려워해야 할 상대인, 시누이가 될지도 모르는 자신과 하고 싶다는 게 윤주는 못마땅했다. 어찌됐든 민아를 한번은 만나야 될 것 같은 책임감 때문에 약속을 잡았다.  베이지색상의 트렌치코트에 굽이 없는 옥스퍼드화를 신은 민아가 윤주를 보자 손짓하며 다가왔다. 크로스백을 벗은 민아는 손에 들었던 쇼핑봉투를 윤주에게 내밀었다. 생각보다 큰 부피에 갈마든 기대감도 잠시, 윤주는 이걸 내가 왜 받아야 되냐는 눈빛으로 민아를 쳐다보았다.  “언니. 부담 갖지 마세요. 저 좀 잘 봐달라는 뜻으로 딱 한번만 뢰물을 드리는 거예요.” 민아의 말에 윤주는 흠칫했다. 어떤 기대를 했든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고마워요. 일단은 잘 받아둘게요.” 민아가 고른 선물은 네이비색상의 가방이였다. 디자인이 심플했다. 윤주는 민아가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아 흐뭇하면서도 언제 성주에게 흘렸던가 하는 알쏭함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언젠가 “너는 왜 남자들이 다 하는 그 흔한 문신 하나도 없냐.”, “누난 왜 핸드백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냐.”고 웃으면서 서로를 ‘비난’했던 기억만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무심하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의외로 속이 깊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말 놓으셔도 돼요, 언니.” 윤주는 말을 놓아달라는 건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미이고 그건 뭔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이 생겼다. 민아가 과도한 친밀감을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  “그런데 결혼식은 어떻게 된 거예요?” 윤주는 고르곤졸라 피자 한조각을 민아에게 내밀면서 망설였던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아버지가 끝내 성주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또 윤주에게 물어올 것이였다.  “어머니는 결혼식을 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성주는 그러고 싶지 않은가 봐요. 식을 한다고 잘사는 것도 아니고 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라면서. 그리고 성주가 나이는 있지만 대학 졸업하려면 아직 삼년이나 남았잖아요.” “부모님 세대는 결혼식도 치르지 않고 사는 걸 남사스럽게 생각하니까. 그럼 민아씨 생각은 어떤데요?” 윤주는 어느새 자신도 결혼식을 치르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민아에게 부모세대처럼 가르치려 들거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이 성취하기를 강요하는 사람으로 보여질가봐 창피했다.  “나는 뭐, 성주랑 생각이 같아요. 잘살고 못사는 게 결혼식과 관련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뭔데요?” “아니예요. 어쨌든 난 성주랑 살 거고… 가족은 만드는 것보다 어떻게 유지해나가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윤주는 민아가 삼켜버린 내용이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집은 엄마가 마련해준 오피스텔이 있으니 성주만 들어오면 돼요. 전 엄마가 같은 동생도 있고 아버지가 같은 동생도 있어요. 한국에 올 때 엄마가 절 데리고 살지 못하겠다며 오피스텔을 사줬어요. 전 위챗으로 옷을 팔고 있는데 장사 잘돼요. 연길에 있을 때부터 해온 일이라 단골 고객이 많아서 먹고 사는 데 걱정이 없어요. 이제 아이템도 더 늘여갈 예정이예요.” 민아가 미리 준비라도 한듯 자신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아…” 윤주는 의무적이면서도 사무적으로 말하는 이 아이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오늘 언니랑 저 만나는 거 성주는 몰라요. 나중엔 알게 되겠지만 미리 말을 못했어요.” 윤주는 민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예감이 사실로 변한 것 같아 오늘의 만남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강하게 밀려왔고 어서 빨리 이 자리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웬 일인지 엄마가 끝끝내 윤주에게 등을 돌렸던 그 날의 참담한 심정이 되여가면서 성주가 보고 싶었다.  식당을 나서면서 민아가 묻지도 않고 윤주의 팔짱을 꼈는데 기분이 묘했다.  둘은 올해 여름에는 린넨 재질에 심플한 디자인, 밝은 색상 계렬의 옷이 류행될 거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백화점 구석구석을 돌았다. 두시간을 내리 돌고 기진맥진했을 무렵, 민아가 카페로 윤주를 이끌었다. 윤주는 갑자기 급하게 처리해야 될 일이 생겼다고 말해버렸다. 거짓말인 줄을 민아가 눈치챘을 것이라는 짐작에 얼굴이 뜨거워났다. 그렇지만 이 쯤에서 헤여지는 게 민아나 성주, 자신에게 좋을 것 같았다.  윤주에게 다음에 또 만나요, 하고 손을 흔들 때까지도 민아는 성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윤주는 민아가 보기보다 강하고 속이 깊은 아이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성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결혼, 하고 싶은 거야? 하기 싫은 거야? 성주는 윤주만 집에 있을 때 잠간 들리겠다고 했다. 윤주는 성주가 자기 결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에 대해 누나한테라도 설명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생긴 것이라 생각했다. 늘 그렇듯 성주는 말이 없었다. 술이 한잔이라도 들어가야 막혔던 말문이 트이는 걸 보면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확신이 단단해졌다. 그 때마다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안심한 적이 많았다.  술이라면 질색하는 윤주를 잘 알기에 성주는 맥주 두캔만 사들고 올라왔다.  “민아가 뭐래?” 민아의 자백이 생각보다 빠르다고 생각했다. 민아의 그런 면이 과묵한 성주와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무 것도.” “걘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안해.” “그럴 것 같더라.” “누난 왜 이렇게 화가 나있는데?” “몰라. 속에서부터 뭔가 자꾸 끓어올라.” 매사에 랭소적인 성주가 민아를 제법 잘 리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윤주는 어쩌면 민아가 자신보다 성주에 대해 더 잘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별안간 적의가 생겼다. 그제야 윤주는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감정의 실체가 질투임을 알았다. 그런데 질투의 대상이 민아인지 아니면 지연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화가 났다.  “난 사실 누나는 결혼 같은 거 안할 줄 알았어.”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중학교 때부터 련애를 하고 다닌 걸 몰라?” “몰라… 후훗! 그냥, 누나가 결혼하는 건 날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했지. 우리 사이엔 어렸을 때부터 그런 무언의 약속 같은 게 있어왔다고 생각했나 봐.” “어쩜! 너 혼자만?” “집이라는 게 나는 너무 지겨워. 누나는 하숙하고 자취하고 기숙사에 살고 그렇게 혼자 살았지만 난 고중 가기 전까지 9년이나 삼촌 집에서 학교 다녔잖아. 그것도 고중에 입학해서는 같은 도시에서 뭔 자취냐며 펄쩍 뛰는 것도 내가 바락바락 우겨서 겨우 독립했다. 아마 삼촌은 내가 없으면 돈줄이 끊길가 두려웠을 거야.” “알지. 삼촌이 보기엔 멀쩡해도 끈기가 없잖아, 눈치도 무디고!” “말끝마다 자기 집처럼 편하게 있으라고 했지만 삼촌과 숙모가 싸우면 나 때문인 것 같고. 사촌동생이 밖에 나가서 다쳐도 나 때문인 것 같고. 삼촌이 자꾸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난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어.” “우린 집이 없었지…”  “응. 지금은 엄마도 아버지도 한국에는 자기 집이 없지만 연길엔 다 있잖아. 우리가 언제 돌아가도 눈치 안 보고 먹고 잘 수 있는 집. 그런데 그 집이 다 비여있어. 집이 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냐. 그 집에서 살 사람도 없는데. 그런데 말이야, 엄마나 아버지는 왜 늘 집이 없이 사는지 모르겠어. 집이 없는 곳에서만 사는지 모르겠어.” “…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야.” “엄마가 날 맡기고 미안해서 삼촌네 생활비까지 다 보내주는 건 알았어. 그런데 집안엔 늘 랭랭한 기운이 돌아서 늦게까지 돌아다니다 들어갈 때가 많았지. 어릴 때 그렇게 방황하며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난 지금 쯤 대학 나와서 다른 삶을 살고 있을가?” 윤주는 말없이 성주를 향해 맥주캔을 내밀었다.  “엄마는 날 키운다는 명분일 뿐 삼촌 집에 던져놓고 돈만 보냈어. 난 차라리 먼 친척집에서 하숙하는 누나가 부러웠다? 혼자라면 오히려 자률성이 강한 아이로 성장했을지도 모르잖아?” 윤주는 혼자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기나 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혼자라는 단어가 가지는 결의 다양함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성주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형성하는 것 따위의 문제로 민아와 의견충돌이 생겼다면 어떻게 조언해줘야 될가. ‘가족은 말이야, 싸우다가도 마주보며 웃고 반목과 화해를 거듭하는 구성원이야. 게다가 특별한 의식 같은 게 없어도 화해가 가능해.’ 어른스럽게 그럴듯한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윤주는 도리질했다.  윤주 역시 가족끼리의 반목과 화해라는 의미를 잘 몰랐다. 남편은 윤주의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립장이였기에 결혼한 지 2년이 넘도록 그렇다 할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주는 남편의 눈에 씌운 콩깍지가 언제 벗겨질지 자신 없었다. 사실은 아직까지 자기 주장을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아서 사소한 문제라도 수면 우로 떠오르지 않았는지 모른다.  성주를 볼 때마다 ‘이 아이에게 혈육이라는 명분으로 관심과 책임을 강요하지 말아야지. 나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없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긴장을 풀지 않았다.  성주가 그다지 밝은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단 한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한지? 괜찮은지?  윤주 역시 이런 질문에 답해본 적이 없었다.  “민아는 착하고 영악한 애야. 어디 내놔도 똑 부러지게 살 걸?”  윤주는 그런 민아랑 가족이 되는 게 왜 두려운지 묻고 싶었다. 민아에 대해 왜 그렇게 모순적으로 평가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왜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랑 민아가 주도적으로 결정한 거야. 그래서 그 날 결혼식 같은 건 안한다고 못을 박았잖아.” “그 때서야?” 그런 변명 따윈 집어치우라고 욕을 하고 싶었다. 네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했으면 여기까지 올 일이 없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다 귀찮아.” 귀찮다는 말이 지금 성주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말일지도 몰랐다. 윤주에게는 그 단어가 두렵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럼 뭐 어때서. 살다가 헤여지면 그만이지. 다들 그렇게 살잖아? 아버지도 엄마도, 민아네 부모도, 심지어 삼촌네도 결국은 리혼했잖아.” “미쳤어? 그런 마음을 품고 어떻게 형이랑 살아?”  성주가 눈을 흘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가 두렵다는 건지 목적어를 밝히지 않았지만 성주가 두려워하는 것의 실체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람을 가볍게 여기라는 게 아니라 네가 선택한 연缘에 확신과 책임을 가지라는 거지…” “작년 여름인가. 민아 할머니의 일년 기일이 지난 지 얼마 안돼서, 어느 날은 나에게 임신했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더라. 그 날 저녁 누나에게 먼저 말할가 엄마한테 말할가, 온밤을 뜬눈으로 새면서 어떻게 해결해야 되나 고민했어.” “그런 고민은 아버지랑 공유해야 되는데.” “글쎄… 2주 정도 지나서 우연하게 민아가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걸 목격했지. 그 순간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윤주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성주를 옭아매고 싶었던 걸가. 그런데 그 대상이 성주가 아닌 다른 남자라도 가능하지 않았을가 하는 추측에 윤주는 조금 아연해졌다. 여태 민아에게 가졌던 믿음이 날아가버리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민아는 거짓말이 발각된 줄도 모르고 계속 나에게 아이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거야.” “거짓말? 그래서?” “헤여지자고 하고는 잠적해버렸지, 물개처럼.” “비겁하다. 그런데 우리 남매는 의외의 지점에서 공집합이 생기는 것 같다. 난처하면 화제를 돌려버린다든가 말없이 등을 돌려버린다든가.” “응. 그냥 민아가 자꾸 따지고 밀어붙이는 게 싫어서 그랬는데 말하고 나서는 나도 깜짝 놀랐다? 누나도 극단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향이 있잖아. 언젠가 분명 누나가 잘못했는데도 매형에게 적반하장 격으로 선수를 치는 걸 보고 이게 누나가 사는 방식이구나, 우리 누나는 어이없게 버텨왔구나, 하고 생각했지.” “알면서도 그래. 상처 받을 바엔 차라리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버리고 버림받고. 그 다음엔?” “몰라. 엄마나 아버지는 뭐 자식이 둘이나 있으면서 그 다음을 생각하고 리혼했대?” “형이 가끔 나 밥 사주는 거 얘기하는지 모르겠네? 형은 부모님도 사이가 좋고 성격이 모나지도 않고 그래서 여태 누나랑 문제없이 사는지 모르겠어. 누나가 자신을 누르고 살 위인은 못 되잖아? 나는 가족이 뭔지도 모르겠고 가족을 만들 자신도 없어. 그냥 살 공간이 있으면 집이야? 사람 같은 사람이 살아야 집이고 가족이지. 살면서 엄마와 애틋했던 적은 없지만 아버지랑 헤여진 건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많아.”  이상하게 윤주는 피붙이로부터 리해받는 느낌이 들어 목이 메여왔다. 위축되고 억울한 마음을 종종 공격적으로 표현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성주야, 결혼 같은 거 안해도 되고 민아랑 그냥 살아도 되고 헤여져도 돼. 누구한테든 미안할 거 하나도 없어. 엄마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건지 모르겠다.”  성주가 맥주캔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린 게 무슨! 그냥 자기만 생각하면서 사는 거지. 그걸 알면 이 따위로 살겠니?”  윤주는 성주의 머리를 쥐여박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둘은 환풍기를 켜고 나란히 담배를 태웠다.  성주가 스무살 되던 해의 어느 날, 윤주는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던진 한마디 때문에 한동안 충격에서 헤여나오지 못했다.  “누나. 나 유부남이 됐다.” 윤주는 아이가 생겼을가, 크게 꼬투리를 잡혔나, 녀자가 집착이 심한 건가 온갖 상상을 다하며 안절부절했다. 윤주는 스무살의 유부남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녀자 친구네 집에서 부동산을 분양받기 위해 부부관계를 증명하는 호적이 필요한데 자기가 남편으로 이름을 올려주는 대신 사례금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녀자 친구 집에서 호적을 깨끗하게 처리해주기로 약속했고. “누나, 신기하게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 결혼 같은 거 누구랑 해도 상관이 없나 봐.” 윤주는 그 때 느꼈던 놀라움과 씁쓸함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호적은 깨끗해지겠지만 이토록 자신의 인생에 무책임한 아이라니.  “돈은 어디다 썼는데? 엄마가 돈 넉넉하게 주잖아?” “돈이야 늘 모자라지. 술 먹고 나이트 가고 련애도 하고… 벌써 다 없어졌어.” 몇만원 되는 돈을 그리 허망하게 써버렸다는 게 한심하고 그렇게라도 자신을 함부로 굴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주가 가여웠다.  윤주는 그 때 처음으로 담배를 입에 대봤다.  아버지는, 이제야 술과 담을 쌓은 아버지는 자식들이 이렇게 시시하게 살고 있는 걸 알기나 할가. 윤주는 저도 몰래 맥주캔을 옥여쥐였다. 모든 문제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기라도 한듯이 손마디에 힘을 실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됐으면서도 윤주는 그 감정의 끈을 쉽게 놓지 못했다.    원래는 두달 전부터 지연이랑 오기로 약속되여있던 경주행이였다. 무료로 문화탐방을 시켜준다는 공지를 보고 지연에게 련락했고 지연이도 그 즈음엔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윤주는 최근 지연이 은화와 가까워진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지연과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윤주는 집안 행사가 있어서 못 갈 것 같다고 했고 지연이도 공교롭게 그 즈음에 스케줄이 생겼다고 했다.  윤주의 제안에 민아는 문화탐방인데 언니랑 1박2일로 붙어다니는데 왜 안 가겠냐며 반색을 했다. 민아와 함께 뻐스에 오를 때 윤주는 맨 뒤자리에 앉은 낯익은 얼굴들을 보았다. 윤주는 지연과 은화가 모자를 눌러쓴 자신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도무지 가라앉혀지지 않는 분노에 가슴이 콩콩 뛰였고 숨 쉬기도 가빴다.  담당자에게 원래 함께 신청한 친구 대신 다른 사람과 동행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잠간 침묵이 흘렀던 리유를 알 것 같았다. 윤주는 나중에 따로 탐방을 가느니 ‘무료’와 ‘단체’라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액의 비용을 치르고 한둘이 총총거리며 다니기보단 여럿이 복작거리면서 어울리는 게 더 효률적이지 않을가 싶었다.  윤주의 신경은 온통 뒤자리에 쏠려있었다. 들떠서 이것저것 묻는 민아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연아, 나 문화탐방 가는 뻐스 안이야. 윤주는 이따가 뻐스에서 내려서 어색하게 마주치기보다는 미리 동행을 알리는 게 나을 것 같아 문자를 보냈다.  “윤주야!”  지연과 은화가 손나팔을 한 채 동시에 윤주를 불렀다. 고개를 돌린 윤주는 그들을 향해 손짓하며 엷게 웃었다.  민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윤주에게 아는 사람이 더 있었냐고 물었다. 하필이면 출발시간에 맞춰 도착한 것이 짜증 났다. 윤주는 민아만 아니라면 당장 길가에 차를 세워 내리고 싶었다.  중간에 들린 휴계소에서 윤주는 지연과 은화와 태연하게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뾰족하게 말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모든 게 예전과 똑같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건 윤주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자연스럽게 둘씩 짝을 지어 다녔고 윤주는 언뜻언뜻 지연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그만한 대가는 당연히 치러야 되는 게 아니냐는듯 윤주는 일부러 지연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언니, 난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문화유적 같은 거 잘 몰라요.” 하며 어딜 가나 슬쩍 눈길만 주던 민아는 뜻밖에도 종소리에 관심을 드러냈다.  “언니, 종소리 한번 들어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울컥하지?” 경주박물관에서 민아는 신종의 디지털 종소리에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종소리가 울리고 나서도 오래동안 그 여운이 가셔지지 않는 게 마치 할머니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고 했다. 민아는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좀 쉬여가자는 시늉을 하며 윤주를 끌어당겼다.  “맥노리현상 때문에 이런 소리가 난대요. 원래부터 이런 소리를 내는 게 아닌데도. 딱 요 정도로만… 부딪쳐 살면서 이런 소리를 오래도록 맑게 내면 얼마나 좋겠어요, 언니.” 민아는 휴대폰으로 성덕대왕 신종에 대해 검색하다 말고 갑자기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 맞는 장사잖소…” 하고 중얼거렸다. 윤주는 웬 애늙은이 같은 노래냐는 생각에 피씩 웃었다.  “우리 할머니도 이렇게 맑고 여운이 가시지 않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가요. 노래를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가사가 나오는 한국노래를 자주 들었어요.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김혜자 배우가 혼자 들었다는 노래. 난 드라마를 보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하도 흥얼거리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부를 줄 알게 됐어요. 날 두고 그렇게 급하게 갈 필요까진 없었는데. 쓸데없이 난 좋아하지도 않는 민들레를 꼭 아침시장에 가서 사야 된다고 새벽같이 나서더니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할머니의 보살핌이 딱 거기까지였던가 보네. 자책하는 순간 너는 잉여인간이 될지도 몰라. 삶의 마디마다 구구절절 후회가 갈마들고 결국은 거기에 빠져서 헤여나오지 못하게 되겠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며칠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텅 빈 집에서 나 혼자 자고 깨고 자고 깨고… 엄마는 내 기분이나 절망 따위엔 관심도 없이 빨리 한국으로 나오라는 말만 반복하고 아버지는 혹여 내가 재혼한 가정에 들어붙기라도 하면 어쩔가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아마도 부모 잃은 슬픔보다 갑자기 책임져야 할지도 모를 자식이 더 부담스러웠겠죠? 어떻게든 살아야 되니까. 성인이 된 내가 살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다 자기 생을 살 뿐인데 꼭 누가 누굴 책임져야 되는 것처럼 끔찍해하는 게 싫어요. 그냥 부딪치면서 맑게 빛나게 살면 되는 건데 그게 이렇게 어려워요.” “그래서 다들 피하고 도망가고 떠나고 그러나 봐. 그렇게 하면 지금과는 다른 생이 펼쳐지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에.” 윤주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민아에게 말을 놓은 자신을 발견했다.  “성주를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동갑이라고 해서 동창인 줄 알았는데?” 윤주는 우리 남매는 사실 서로의 인간관계에 대해 터치하며 왈가왈부하는 편이 아니라는 변명은 하지 않았다. 친남매인데 생각보다 살갑지 않네요 따위 의도가 불분명한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뭐 틀린 말도 아니죠. 제가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한동안 애를 좀 먹였어요. 비행소녀라 고중 때 친구랑 도둑담배 피다 걸린 적이 있어요. 수업시간에 따로 벌을 서는데 다른 반 남자애들이 대여섯 잡혀왔어요. 다들 뭔 녀자들까지 잡혀왔지 하는 눈길로 훔쳐보는데 성주는 감시하던 선생님이 자리만 뜨면 휘파람을 불며 “담배 피다 걸렸는데 뭘.” 하며 옆의 남학생이랑 속닥거렸어요. 설마 하며 우리를 쳐다보는 남자애들의 시선이 너무 싫어 나중에는 망신을 주고 싶은 마음에 작정하고 쫓아다녔죠.” “나쁜 놈이네! 그런 애랑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이를테면! 동질감 같은 것?” “흠…” 성주는 삼촌 집에서 나와 살면서 모든 것에 시큰둥해있었다. 거칠고 반항적이고 예리해서 윤주조차 함부로 말을 걸지 못했다. 성주는 “누난 뭐 말썽 없이 컸어?”, “그렇게 참견을 안해도 잘하고 있다고!”, “누구 좋으라고 착하게 살아?”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바쁘게 이런 대답들로 윤주의 입을 막아버렸다.  “모르죠? 성주 자퇴하겠다는 걸 설득해서 이번 학기에는 휴학했어요.” 민아가 윤주를 쳐다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휴학했다는 말을 웃으면서 하는 게 괘씸했다.  “무슨 소리야?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고졸이라 걱정하던 차에 외국에서라도 대학 들어갔다고 모두들 얼마나 좋아했는데…”  “이 나이에 졸업하면 몇살이냐고. 자기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입에 달고 사는걸요. 질풍노도의 시기가 왔나 봐요. 그런데 그런 불안, 좋다고 생각해요. 그 끝에는 잔잔함이 있으니까.” “나한테는 아무 말도 없더니. 길이 어디 따로 있다고!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사는 거지.” 윤주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해야 된다는 말을 자신한테 최선을 다해 살아야 된다는 것으로 둔갑시켜 말하는 스스로에 놀랐다.  “뭔가에 몰입하고 뭔가를 책임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민아는 웃음기를 살짝 띠운 채 담담하게 말했다.  어디선가 불협화음의 소리가 퍼져왔지만 윤주는 잠자코 들었다.  “언니가 좋아요. 예뻐서라고 하면 립서비스라고 할 거죠? 새침해서 피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을 땐 안아주고 싶고 부드러워서 모든 걸 나눠줄 것 같을 땐 한없이 기대고 싶고. 할머니랑 오래 살면서 저도 모르게 익숙해진 것들이 있나 봐요.” 민아가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났다.  “에이. 칭찬이야 욕이야? 무슨 그런 낯 간지러운 말을 해?” 윤주는 쑥스러운듯 민아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나중에 손톱 네일을 예쁘게 해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갚겠다고 했다.  옆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디지털 종소리에 귀 기울이는 민아를 보는 윤주의 마음속에는 종소리의 여운 만큼이나 안도감이 퍼져왔다.  갑자기 눈을 뜬 민아가 윤주를 향해 한마디 던졌다.  “저기 언니 친구들, 언니를 좋아해요. 그게 느껴져요, 저는.” 민아의 말에 윤주는 가만히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미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때리는 어느 오후, 윤주는 인견이불을 뒤집어쓴 채 텔레비죤 채널을 돌리다가 노릇노릇 구워진 막창을 보여주는 데에서 멈췄다.  같이 먹으러 갔었는데 하고 중얼거리다가 지연이 궁금해졌다.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지연인 사람을 좋아하니까.  문화탐방을 다녀온 뒤로 지연이를 만나지 않았다. 지연이 먼저 련락 못할 것을 알면서도 윤주는 부러 모질게 후덥지근한 한여름을 보냈다. 윤주는 지연에게 웃으면서 말을 건네려면 자기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턴넬을 통과해야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턴넬 속 어둠을 떨쳐내지 않고서는 어떤 말도 자연스럽게 토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 날 이후, 무가내한 표정을 짓던 지연이 가끔 마음에 걸렸지만 애써 다른 것에 몰두했다. 그렇다고 지연을 련락처에서 삭제하거나 위챗에서 차단하는 따위의 짓은 생각지도 않았다. 지연이와 함께 지낸 시간들이 있었고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아도 생겨나는 믿음이 있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가라앉는 무언가가 있어서 예전과 달라진 감정으로 서로를 마주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몰래 가졌던 가족모임에 대해 설명하느라 부모님이 사위에 대해 전혀 불경스럽다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고 변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런 자의적인 결정은 리혼 사유가 될 수도 있다고 조곤조곤 말하는 남편을 보면서 윤주는 결혼한 이래 처음으로 긴장했다.  정말 아무런 의식도 치르지 않은 성주의 결혼을 두고 집요하게 트집 잡는 아버지를 향해 크게 화를 냈다. 이번에는 아버지도 제법 오래동안 윤주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 윤주 탓이 아닌데도 아버지는 자꾸만 윤주에게 서운함을 내비쳤다.  매일 네일샵을 열심히 운영했고 짬짬이 선배가 론문 집필에 필요하다며 부탁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에 열중했다.  일부러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서도 일상은 소란스럽게 굴러갔다.  민아가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안고 윤주 앞에 나타났다. 같이 살기로 마음먹었던 차에 윤주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강아지를 좋아하던 지연이 생각났다.  “거의 죽어가는 강아지를 안고 택시에 앉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흐르는 거야. 조금만 더 버텨줘,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조금만 더… 하고. 강아지를 길에서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몇년 동안 나를 지켜준 강아지가 제대로 죽지 못하면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을 것 같아서…” 지연이 위로가 될 거라며 분양받으라고 그렇게 권고해도 윤주는 매번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윤주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털이 날리는 게 짜증 났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강아지의 눈길도 싫었다. 심지어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타인의 취향에 대해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싫다고 말하는 것과 진짜로 싫어하는 게 다른 것처럼.  오늘은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고 싶은 날이였다.  출처:2018 제5호
5    신선 같은 세월(시, 외1수) 댓글:  조회:486  추천:0  2019-07-15
신선 같은 세월(외1수) 방태길     할머니는 멀리 간 손주놈 그리워 휴대폰 만지작 화상채팅 기다린다 하늘은 파랗게 뱅글뱅글 웃고    구름은 내려와 할머니를 간지른다    손주야, 도시는 찬바람도 많이 분다는데 와글와글 승냥이 같은 차도 많이 뛴다는데 길 나서면 동서남북 열심히 살펴야 한다  폰에는 고향의 개 닭 울음소리 없고 동네 앞 왜글왜글 달리는 시내물도 없고 하늘에 기대고 서있는 버드나무도 없고… 그래도 손주놈이 반짝반짝 웃어주니 좋다   그래서 할머니는 화상채팅 기다린다   인제는 어른 된 손주놈이 헤벌쭉  휴대폰 저쪽에서 반갑게 부를 때 휴대폰의 파란 곳을 꼭 누르면  천리 밖의 빙글빙글 웃는 층집도 보고 천당에서 온다는 손님도 본다    할머니는 폰 안의 신선 같은 세상 본다 래일은 저승 간 할배하구 화상채팅 해야지 이승에서 한 십년 더 멋지게 살겠다고… 할머니는 자기도 신선 되는 세월이라 한다      바람이 오면 바람이 오면 그리움도 온다 바람이 오면 멀리 돌섬을 넘어 푸르던 바다도 날아온다 그립던 꽃도 날아온다   눈물 나게 그립던 바람이여 청춘이 예쁜 꽃 바래며 눈물 지을 때 열매 위해 지는 꽃 사랑하라고 물같이 섬세한 마음으로 알려주었지 그래서 바람이 오면 추워도 행복했고 슬퍼도 행복했고 성숙을 위해 리별하고 고독해야 하는 십자로에서 웃으면서 울었지   그래서 바람이 오면  찬 돌멩이도 안 버리고 안아주고 외로운 나무도 안 버리고 살펴주며 엄마한테서 배운 사랑 하고 싶다 속삭인다   그래서 내 마음은   바람을 보내고는 또 그리는 거다 출처:2018 제5호
4    송련희: 라목(수필) 댓글:  조회:386  추천:0  2019-07-15
라목 송련희     뻐스는 내가 사는 작은 현성을 벗어나자 그리 넓지 않은 향촌길로 접어들었다. 차창 밖의 미끄러지듯 스쳐가며 물러가는 한그루 또 한그루의 가을나무들을 바라보며 난 나도 몰래 깊은 상념에 잠겼다. 아- 소학교를 졸업한 후 30년 만에 소학교 담임선생님을 뵈러 떠나는 이 심정을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가. 내가 졸업한 동광소학교는 흑룡강성 계림조선족향 로씨야 변경에 위치한, 전교 학생이라야 마흔두세명 밖에 안되는 작은 시골 소학교였다. 이처럼 작고 편벽한 시골 학교에서 우리들의 생활이 얼마나 단조로왔을가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린 박철규 담임선생님께서 항상 함께 해주셨기에 잊지 못할 동년의 추억들이 참으로 많았다. 남녀, 학년의 계선이 없이 함께 고무줄 뛰기, 제기차기를 놀던 일, 파란 운동장에 발자국 찍으며 박선생님이랑 함께 뽈을 차고 술래잡기를 놀던 일, 박선생님의 경쾌한 손풍금 소리에 맞추어 〈아동단단가〉를 배우던 일… 매양 아침이면 우리 9명 꼬맹이들은 박선생님의 손을 잡기 위하여 서로 승벽을 내며 학교로 일찍 갔었다. 운동장에서 뛰여놀다가도 우린 먼곳에서 선생님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만 하면 죽기내기로 선생님께 뛰여갔다. 먼저 달려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학교로 오는 것이 어쩌면 그처럼 즐거웠던지. 그 때 선생님의 손을 잡지 못한 애들은 선생님의 옷자락을 쥐고 뾰로통해 따라오면서 투덜거렸다. “야- 선생님의 손이 세개였으면 좋겠다야…” “애두, 그러면 선생님 《서유기》에 나오는 요귀가 되라고.” 매양 그 때면 박선생님은 제자들이 종알거리는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며 “허허-” 웃으시군 하셨다. 선생님은 또 손마디가 불뚝불뚝 튀여나온 손으로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익살을 부려가며 날마다 우리들의 연필을 정성 들여 깎아주었다. 선생님께서 연필을 깎을 때면 우린 선생님의 주위에 오구구 모여앉아 살진 고사리 같이 포동포동한 손으로 연필을 높이 쳐들고 서로 자기의 연필이 더 뾰족하다고 자랑하였다. 그 때 코흘리개들의 눈엔 농촌 일에 장알이 큼직큼직하게 박힌 선생님의 투박한 손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였다. 3학년 때의 어느 겨울날 방과 후였다. 우리들이 박선생님이랑 함께 눈싸움을 마치고 짝짜그르르 웃으며 집으로 가는데 불쑥  몇몇 웃학년 애들이 길목을 막는 것이였다. “야, 너들은 손이 없어? 왜 절로 청소를 하지 않고 계속 선생님만 청소 시켜? 너들 박선생님 얼마나 바쁘신 줄 알기나 알어!” 그들의 노기등등한 모습에 기가 눌려 우리는 두눈이 올롱해졌다. “선생님은 우리가 아직 어리다구 비자루를 들지 못하게 하는데 뭐. 그리구 우리가 학교에 등교했을 땐 선생님께서 이미 청소를 다해놨어…” 그 날 우리는 찍소리도 못하고 웃학년 선배들에게 호되게 닦이웠다. 그리고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박선생님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겨울철 날 밝기 전에 출근하여 난로불을 후끈후끈 지펴놓고 교실 청소를 깨끗이 해놓는가를 알게 되였다. 동광소학교는 교사가 엄중하게 부족한 상황이라 학과 분공이란 것이 없었으며 한 교원이 담임 직을 맡으면 거의 그 학년의 모든 과목을 도맡았다. 게다가 향촌 교사들은 한편 농사까지 지어야 했기에 더욱 팽이처럼 돌아쳤다. 하지만 박선생님께서는 이런 육체적인 고달픔보다도 더욱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아픔이 있었다. 바로 뇌성마비脑瘫로 다리를 심하게 절고 생활을 자립하지 못하는 4살 난 아들 상민이였다. 선생님은 퇴근 전후의 시간을 타 짬짬이 농사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또 공급판매합작사供销合作社에 출근하는 사모님과 륜번으로 상민이를 돌봐야 했던 것이였다. 박선생님이 우리들의 담임을 맡았을 땐 둘째아이 딸 건아를 금방 보았을 때였다.  일상 생활 속에서의 선생님은 우울한 눈빛의 과묵한 분이셨다. 흥성흥성한 놀음자리, 회식자리를 피하셨고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셨으며 조용히 책읽기를 즐기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학생들 속에만 오면 완전 눈부셨다. 밝게 웃었고 목소리가 우렁찼으며 온몸이 활기로 넘쳤다. 우리가 제일 애타게 기다린 날은 매주 금요일이였다. 금요일 소선대활동 시간만 되면 선생님은 전교 학생들을 5학년 교실에 모여놓고 《홍길동전》, 《림해설원》, 《몽떼 크리스토 백작》 등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기 때문이였다. 우리들이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이야기는 곡파曲波의 《림해설원》이였다. 창밖엔 흰눈이 펄펄 날리고 교실엔 눈 덮인 망망한 림해林海를 누비며 적들을 소멸하는 소분대의 이야기가 한창 절정으로 치닫고… 선생님께서는 손짓 발짓 해가며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리들은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숨을 모으고 조마조마해 앉아있기도 하였고 두눈이 휘둥그래서 “어머나!”하며 새된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으며 서로의 잔등을 콩콩 두드리며 박장대소하기도 하였다. 박선생님은 《림해설원》 중의 호접미蝴蝶迷의 모양에 대하여 어찌나 생동하게 묘사하였는지 “얼굴이 옥수수대처럼 길다랗고 얼굴에 잔뜩 난 주근깨를 덮어감추기 위하여 분을 떡반죽처럼 발랐는데 눈을 끔쩍끔쩍할 때마다 분이 찔끔찔끔 떨어졌다”는 호접미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보는듯 생생하다. 내가 문학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때부터였다. 박선생님과 함께 한 나날들 중 우리들의 성장에 참으로 큰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영화 《소년범죄자少年犯》를 관람한 것이였다.  소학교 5학년 때 《소년범죄자》란 영화가 20여리 상거한 향소재지 계림영화관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상영되였다. 보고 온 사람마다 교육가치가 대단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나 그 땐 계림으로 뻐스가 통하지 않을 때여서 우리 시골 애들은 그저 귀동냥이나 하여 영화 줄거리를 둬마디씩 주어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 때 박선생님은 참 큰 결정을 내렸는데 바로 마을의 핸드트랙터手扶拖拉机가 있는 학부형을 동원하여 우리 9명을 싣고 계림에 가서 그 영화를 관람시키는 것이였다. 아, 북경유람을 갔으면 그처럼 신났을가! 우린 너무 흥분되여 밤잠마저 이루지 못하였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동지달, 핸드트랙터의 뒤바구니에 앉아 20여리 길을 달려가 영화관람을 한다면 지금 애들은 무슨 고역인가고 아우성을 칠 테지만 우리들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었다. 곧 영화를 보게 된다는 흥분 그리고 우리들이 선생님과 함께 그 어떤 장거를 이루어내는듯한 격동은 우리들로 하여금 매서운 북방의 추위를 거뜬히 이겨내게 했던 것이였다. 우린 추위로 덜덜 떨면서도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선생님- 저 길가의 나무들 봐요. 막 뒤로 휙휙 달아나는 것 같아요!” “야! 나무에 하얀 눈꽃이 피니 진짜 예쁘네!”  “선생님, 선생님- 근데 저 나무들이 이렇게 추운 겨울에 나무잎들이 하나도 없어 춥지 않을가요?” 우린 확 다가오다가 어느새 훌쩍 멀어지는 겨울 벌판의 라목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까륵까륵 웃음을 토했다. 《소년범죄자》는 내가 여직 본 영화 중 그 어린 나이에도 ‘난 꼭 착하게 살아야지!’ 하며 눈물을 펑펑 쏟으며 본 가장 감명 깊은 영화였다.  세월은 흘러흘러 우리들이 선생님의 품을 떠난 지도 어언 30년이 되였다. 수십년의 흐름 속에서 선생님의 한기 또 한기의 제자들은 모두 큰 도시로, 외국으로 지구가 작다고 이 세상을 주름잡았고 한번 떠나간 제자들은 황페해진 고향으로 거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허나 선생님만은 여전히 교육의 터전을 경건히 지켰다. 변한 것이라면 선생님의 허리가 휘여지고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해진 것이였으며 조선족학생들이 적어지며 시골학교들이 페교되여 인젠 전교 학생이라야 역시 50명도 안되는, 예전 몇백명 학생들로 흥성했던 계림향중심소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였다.  선생님의 제자들 중 난 유일하게 고향에 남은 제자였다.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평생 직업으로 교사직을 선택하였고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계동현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전 현 조선족 교사 연수회에서 여전한 중산복 차림의 선생님을 가끔 만난 적도 있었지만 내가 “아! 선생님-” 하며 반색하며 달려가 선생님의 팔에 매달릴 때면 선생님은 어른이 되여 나타난 제자를 보고 몹시 쑥스러워했다.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조선어문 교사로 성장한 것을 무척 기뻐했다.  “음- 련희가 계동조중에서 조선어문을 잘 가르치고 있단 얘길 들었어. 학생 때부터 조선어문을 남달리 좋아했잖아. 훌륭해! 그래, 참 훌륭해!”  하지만 그것 역시 아주 잠간, 선생님은 인츰 우울한 눈빛의 조용한 선생님으로 변했고 선생님의 그 짙은 고독 속엔 일종 범접하기 어려운 엄엄함이 흘렀다. 그 때 선생님과 한학교에서 근무하는 선배가 하던 얘기는 지금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이, 박선생님께서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 첨 봐요. 평소 학교에선 다른 교원들과 얘기도 별로 하지 않고 동료들의 크고 작은 대사에도 일절 다니지 않죠. 십여년을 함께 근무하였지만 박선생님 댁에 가본 사람은 손 꼽을 수 있답니다. 모두들 뒤에서 박선생님을‘갑속에 든 사람’이라고 부르죠…”   난 선배님으로부터 박선생님과 사모님은 이미 헤여진 상태고 선생님 혼자서 뇌성마비에 걸려 행동이 불편한 상민이를 돌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공급판매합작사는 부도가 나 사모님은 직장을 잃게 되였고 사모님은 선생님이 박봉의 교사 직업을 버리고 애들을 친척집에 맡긴 후 함께 한국으로 나가 돈을 벌기를 바랐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직업과 상민이 그 어느 하나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였다. 선생님과 헤여진 후 난 선생님이 애달파 내내 가슴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박선생님을 만나기가 두려워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나와 선생님 사이에 두터운 장벽이 형성되였을가 두려웠고 현재 꽁꽁 닫힌 선생님의 심문을 열 수 있을가고 심히 고민되였다.  2017년 9월 18일, 내가 박선생님을 추억하며 쓴 수필 〈저 멀리 아름다운 별이 있다〉가 한국 KBS한민족방송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서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여 전파를 타게 되였다. 내 글이 처음 한국 KBS한민족방송에서 방송되여 설레이고 가슴이 부풀기도 했지만 그 때 심사위원장이신 이상문선생님의 한 한마디가 참으로 채찍처럼 내 가슴을 아프게 때려오며 날 내내 부끄럽게 하였다.  “네, 그렇다면 세월이 흐른 뒤에 인생의 존경하는 큰 별이신 선생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어떠했을가요? 무척 궁금하시죠? 문장의 결말에서 선생님과 제자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씌여졌더라면 더욱 좋았을것 같습니다. 왜냐면 어렵게 큰 은혜를 입었으면 잊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가능하면 작은 것으로도 갚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거든요…” 방송을 들을 땐 깊은 밤 홀로였지만 난 가슴이 저려오며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아- 난 왜 글로만 떠벌이며 불과 10여리 밖에 떨어져있지 않는 은사님과 따뜻한 밥 한끼 함께 나누지 못하였고 작은 선물 하나 드리지 못했으며 참으로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 직접 전하지 못했을가? 삶은 파란만장하고 세월의 강은 분명히 앞으로 흘렀지만 치졸한 난 선생님과 우리들의 이야기에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동화童话식 결말을 맺곤 선생님의 오늘은 아예 직시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였다. 한세대 또 한세대의 동년을 밝혀주신 선생님- 선생님은 분명 저 멀리에서만 아름다운 별이 아닌, 우리 삶의 영원한 멘토였던 것이다! 솔직히 사람들과의 만남을 싫어하는 선생님께 제자로서 30년 만에 불쑥 만나뵙고 싶다는 전화를 올리는 데는 참으로 용기가 필요했다. 조마조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선생님은 전화 너머 내 목소리를 듣고는 마냥 목소리도 밝아졌고 만남을 부담스러워했지만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을 동의했다. 난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 피천득선생님의 수필집 《인연》과 근년 한국 KBS방송국에서 조직한 ‘북방동포체험수기공모’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을 작품집으로 묶은 책자 세권을 준비하였다. 추억의 늪에 잠기다가 갑자기 뻐스가 “칙-” 하고 멈춰서더니 주위가 소란스러워졌고 어느새 선생님이 살고 있는 계림촌에 도착한 것이였다. 그제야 난 깊은 추억 속에서 헤여나오게 되였다. 하지만 차창 밖을 내다보는 순간 난 그만 “아!” 하고 환성을 지르고 말았다. 선생님이 마중을 나왔다. 선생님은 재빛 티셔츠에 미황색의 코트를 입었고 눈빛은 웅숭깊으면서도 평화로왔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선생님을 보는 순간 난 마치 또다시 동년의 세계로 돌아간듯 싶었다. “와! 우리 선생님 여전히 멋지십니다!” 난 저도 몰래 또 한번 환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시며 “에이- 퇴직을 앞둔 령감이 멋지긴. 오랜만에 학생을 만난다고 머리랑 염색해 그렇지. 아니면 온통 흰머리요.” 하며 수줍게 웃었다. 나와 선생님은 자그마한 간이음식점에서 식사를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4학년 적 교사절 축하공연 때 우리 반 애들이 〈금실북과 은실북金梭和银梭〉이란 류행가에 맞춰 처음으로 디스코를 선보여 전교 사생들의 찬탄을 받은 일, 진달래가 온 산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던 봄날 남산으로 원족을 가기 위하여 선생님들이 나루배로 황니하黄泥河 량안을 수없이 오가며 학생들을 실어나르던 모습, 계림향조선족소학생 운동대회에서 우리 학교가 기타 6년제 학교들과는 아예 비기지도 못하고, 교사의 부족으로 역시 5학년제로 꾸린 유일한 경쟁자인 동명소학교를 이기고는 전교 사생들이 북을 치고 징을 울리며 환락의 도가니 속에 빠지던 장면도 떠올렸다. 허나 감회에 젖어 옛이야기를 하던 선생님은 동광소학교는 한족들의 소외양간牛棚으로 변했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 다음 난 또 선생님과의 얘기 중에서 제자인 나마저 2014년에 이미 중학교 고급교사로 평선되였는데 래년이면 퇴직을 맞게 되는 선생님이 여직 소학교 특급교사(소학교 특급교사는 중학교 고급교사에 해당함)로 평선되지 못하였다는 것도 알게 되였다. 선생님은 예전 동광소학교에서 대과교원으로 있다가 썩 늦어서야 정식교원으로 되였고 게다가 동광소학교가 페교되며 교원들이 여러 학교로 배치되였는데 대부분 변두리 교원 취급을 받으며 중시를 받지 못하였다는 것이였다. 특히 직함평의는 학력, 임무량, 공개수업, 론문발표 등을 종합적으로 보는데 한창 학교 골간으로 활약하는 젊은 교원들과는 아예 비길 수 없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애석해하는 나와는 달리 선생님은 “허허-” 웃으시며 소탈하게 말했다. “그래두 지금 정책이 좋아 해마다 로임이 올라 얼마나 좋소. 우리 딸애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내 로임으로 나와 상민이가 생활하는데 매달 다 쓰지 못하고 남소.” 내가 상민이의 안부를 묻자 선생님의 얼굴은 금시 환해졌다. “양, 그 앤 지금 못하는 게 없소. 노래랑 한번 척 들으면 흥얼거릴 수 있고 컴퓨터랑 휴대폰이랑도 얼마나 통달했는지 이웃들 전자제품이 고장 나면 모두 우리 상민이를 찾소. 요 몇년 전엔 또 전기자전거电动自行车를 운전하는 것을 배워 마을 젊은이들 하구 전기자전거 몰고 연길까지 갔다왔소.” 선생님은 퇴근 후의 시간엔 손풍금을 치고 터전과 과일나무를 가꾸는데 올해엔 사과가 참 잘 달렸다는 것이였다.  “난 지금 소학교 2학년을 가르치오. 애들 모두 둘이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애들에게 사과를 한호주머니씩 뜯어다 주는데 허허허- 두 꼬맹이 놀가지처럼 홀짝홀짝 뛰며 와늘 맛있다고 야단이요.”   신나 두 꼬맹이의 이야기를 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엔 어느새 풋풋한 웃음이 싱싱하게 피여났다. 하지만 불현듯 잠간 침묵하더니 “사실 오늘 련희에게도 사과를 가져다 주고 싶었소. 그러다 다시 생각한 것이 몇십년 만에 제자를 만나는데 촌스럽게 터전의 사과를 들고 다니는 것 같아서…” 하며 쑥스러움에 넘쳐 얘기하시는 것이였다. 아! 순간 난 눈시울이 확 뜨거워났다. 불혹의 문턱에 올라서도록 여직 철 못 든 우리들,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선생님의 마음속엔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는 아이였기 때문이였다. 난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축축히 젖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선생님, 분명히 사랑하여 교사사업을 선택하였지만 오늘까지 걸어오며 참 많이 방황했었습니다. 세상은 크고 눈부신데 젊은 난 편벽한 현성에서 청춘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우울했고 또 내 자신이 있는 자리와 자신이 하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고 뜨거운 땀방울을 쏟고 있을 때 조선족 학교들이 하나하나 페교되여 혹 저희 세대 교사들이 우리 조선족 학교 력사상의 마지막 조선어문 교사로 남지 않을가 하는 애끓는 아픔을 면대하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외롭고 힘들 때마다 전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같은, 학생들의 삶을 밝혀주는 따뜻하고 사명감 있는 교사로 성장하겠다는 초심을 더욱 굳건히 하였습니다.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천만번이라도.’ 선생님께서 훤한 미소를 지으시고 늘 하시던 그 말씀 영원히 가슴 속에 새길 것입니다. ”  “련희가 훌륭하게 커줘서 정말정말 고마워!” 선생님의 두눈도 어느새 흥건히 젖어있었다. 난 나를 향해 오래오래 손을 저으시던 선생님과 작별하고 뻐스에 몸을 실었다. 뻐스는 무연하게 펼쳐진 논밭들 사이를 질주했고 나무잎이 한잎 두잎 지기 시작하는 백양나무들은 누런 논판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북방의 나무답게 어깨 겯고 름름히 서있었다. 겨울날의 가장 감동스러운 풍경이 될 나무들을 바라보며 난 그 추웠던 겨울 선생님과 나눈 대화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였다. “선생님, 선생님- 근데 저 나무들이 이렇게 추운 겨울에 나무잎들이 하나도 없어서 춥지 않을가요?” “허허- 물론 추울 테지. 하지만 이 라목들에겐 겨울 내내 소중히 품었다 봄이면 혼신의 사랑으로 키워야 할 어린 싹들이 있기에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거란다…”  출처:2018 제5호
3    전향미: 뜻밖의 쪽지(단편소설) 댓글:  조회:403  추천:0  2019-07-15
뜻밖의 쪽지 전향미     길림화공병원에서 서의 연수를 할 무렵이였다. 연수 과정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향진병원에서 보낸 연수생을 어느 과에서도 선뜻 받으려 하지 않았다. 맥을 짚는 중의 출신이고 림상경험이 짧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듯했다.   돕다니? 배우러 왔지.  소개신을 들고 찾아들어간 병원 의무실에서 나는 주눅이 들어 앉아있었다. 의무과 선생은 전화기를 붙들고 서서 “아, 네, 아, 네.”를 련발하며 안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표정 뒤에서 얼른거리는 동정심 같은 것에 짜증이 밀려올 즈음, 심전도실에 파견하기로 결정이 났다.   “심전도 보는 법을 먼저 배우시오. 그러고 나서 다음 과로 배치해주지요.”  직원 기숙사로 나를 안내하며 의무과 선생은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네. 그러지요.”  나지막하게 대답하며 선생을 따라 기숙사로 향하는데 음달에 무더기로 남아있는 겨울눈이 3월의 봄 속에서 하얗게 웃고 있다. 병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문진부와 입원부 건물이 8층으로 되여 앞뒤로 서있고 건물 왼쪽으로 나있는 돌계단을 따라 산비탈에 오르면 내가 류숙해야 할 기숙사가 있었다. 1년 동안 나는 이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진정한 의사로 거듭나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였다.    의무실에서 배정하는 대로 심전도실에서 2주 배우고 심혈관내과에 갔을 때 그녀가 하얀 가운을 입고 앉아있었다. 이름이 랭정이며 나를 책임질 지도의사라고 했다. 차가울 랭冷에 조용할 정静, 이름 그대로 차겁고 조용한 분위기가 느껴왔다. 자그마한 키에 통통한 몸매, 외꺼풀의 작은 눈에서 뿜어나오는 랭철한 눈빛이 인상적이였다. 환자의 고통을 정확히 집어낼듯한, 카리스마 있는 눈매라고 생각하니 존경스런 마음이 들었다.  “중의를 배운 미녀의사가 우리 과에 연수하러 왔어요. 랭의사와 나이가 비슷하니 통하는 데가 있을 겁니다. 랭의사가 맡아 지도하는 거로 하지요.” 미녀의사라는 말에 의사 사무실의 눈길이 쏴~하고 내 몸에 떨어졌다.  “랭의사는 서른 전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의료사업에 몸을 바치겠답니다. 아직 남자친구도 없어요. 랭의사한테서 많이 배우시오.” 주임이 소개하는 말에 그녀는 손가락을 코에 갖다 붙이며 살짝 웃었다. 그 웃음 뒤로 강렬한 눈빛이 터져나와 내 시야를 찔렀다. 그녀는 엑스레이 사진 찍듯 내 몸을 궤뚫고 그 검사 소견을 읽는듯했다.          나는 나보다 한살 어린 그녀를 랭선생이라 깍듯이 불렀고 그럴 때마다 조용한 미소가 응답이 되여 돌아왔다. 랭선생은 지도선생 답게 기회만 있으면 서의지식을 전수했고 나는 필을 휘갈기며 공책에 기록하군 했다. 혼자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뒤죽박죽 써갈긴 공책을 갸웃이 넘겨보며 흑흑 웃는 랭선생이 귀엽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이지? 사흘이 지나지 않아 내리막길을 사정없이 떠밀려 내려가는 기분이 되여버렸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녀 때문에 의학실습에 집중해야 할 신경이 조금씩 불쾌한 잡념으로 빠지는 것이 안타까왔다. 입을 오무리고 웃다가도 눈길이 마주치면 늦가을 된서리 내려앉은 영채밭처럼 서늘한 빛이 감도는 것이였다.  랭선생의 말에 토를 달았던 그 날부터 변화가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그 날은 병실에서 고혈압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링겔주사를 맞고 있던 환자가 눈을 반짝거리며 궁금한 게 있다고 했다. 중국 간호사들은 링겔주사를 눈 감고도 팍팍 찌르는데 외국 간호사들은 어설프다고 하더라. 실전 경험이 많고 적어서라고 들었다. 중국에서는 왜서 링겔주사 치료법이 성행하는가?… 환자가 묻는 말은 이러루한 문제였는데 랭선생이 말을 아끼면서 중국 실정에 맞는 치료법을 쓰는 것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하는 것이였다. 만족하지 못하는 환자의 눈길을 지나치지 못하고 내가 말을 늘구어서 보충설명을 해줬다. 친절한 미녀의사라는 칭찬을 받고 의사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랭선생은 화가 나있었다. “의사는 말이 많으면 안돼요. 랭정함을 잃어서는 안돼요. 환자를 생각한답시고 친절 이상을 베풀면 안된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자아보호의식이 십분 이십분 강해야 한다구요.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다가 말꼬리 잡히고 죽음으로 내몰리기도 하죠. 환자와 의사간 불신의 골이 아주 깊단 말입니다. 의사의 한쪽 발은 병원에, 다른 한쪽 발은 법원에 있다는 말이 그저 나온 게 아니지요. 언니도 제 말을 새겨들으면 본인에게 유리할 겁니다.” 그런데 내 입에서 바로 튀여나온 짤막한 응대가 랭선생의 비위를 긁어놓을 줄이야. “불신의 골이 깊기 때문에 환자들을 경계하기에 앞서 우리 의사들도 자신을 검토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싸늘한 눈빛이 내 얼굴을 무섭게 쓸어갔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대화를 차단한 것이다. 심장이 철렁해지는 순간이였다. 그 날부터 시작된 썰렁한 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불편한 감정을 누르면서 배움의 길을 헤쳐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낮에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랭선생 꽁무니를 바지런히 따라다녔고 야간근무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남아서 함께 당직을 섰다.   부모가 지어주었을 이름에 미안하지 않을 만큼 랭정은 랭정한 녀자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야간근무에 나오는 나를 달갑지 않게 바라봤고 병실에서 환자의 호출이 있어 따라붙으면 차거운 얼굴이 되여 매정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따라올 필요 없어요. 그냥 누워 자세요.” 야간근무에 누워서 자라니? 말도 안되는 말이다. 하얀 옷을 입은 천사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음부터 저녁 당직 때 나오지 말아요. 기숙사에서 편히 쉬면 좋잖아요.” 편히 쉬라고? 흥! 나는 응대 한마디 않고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무응대는 무시다. 무시당하는 느낌 당신도 맛보시지.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에게 쉬라고 하는 그 저의가 무엇인가?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있다면 배우려고 한 죄 밖에 더 있는가?  그렇게 찬바람 쌩 일다가도 금새 진지한 얼굴이 되여 심방세동 심방조동과 같은 부정맥에 대해 요점을 딱딱 집어내여 말해주기도 하는 것이였다.   “우리 심혈관내과처럼 바쁜 과도 아마 없을 겁니다. 여기서 잘 단련되면 절반의사는 되는 셈이지요.” 병동이 조으는 느른한 오후 시간에 차물을 홀짝홀짝 들이켜며 말을 못해 환장이 난 사람처럼 수없이 많은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심혈관내과는 병세가 복잡하고 다변해요. 관심병이나 심부전 같은 병은 잠재적인 위험이 커서 수시로 경각성을 높여야 하지요. 응급상황이 나타나면 여러 원인을 고려할 수 있는 폭 넓은 지식과 경험으로 신속하게 판단하고 처리해야 되지요. 환자에게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지표가 이상일 경우에도 면밀히 관찰해서 바로 처리해야 돌발상황을 모면할 수 있어요. 언니도 알고 있을 테지만 1년차 의사를 큰 의사라 하고 2년차 의사를 작은 의사라 하고 3년차 의사는 병을 볼 줄 모르는 의사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지금 병을 볼 줄 모르는 의사예요.” 랭선생은 마시던 차잔을 소리나게 탕 내려놓고 덧이를 드러내며 무기력하게 웃었다.  “시한폭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무서워요. 의사 직을 택한 것이 잘된 일이였나 싶기도 하고 겁이 날 때도 있어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류마티스 심장병 환자였지요. 28살 녀성, 혈전이 형성된 상태였구요. 주임의사가 회진을 하는데 약을 지어서 퇴원하겠다고 하더군요. 혈전이 떨어질 위험이 있어 안된다고 주임의사가 구구절절 설명을 해줘도 환자는 춤을 추듯이 손발을 너울거려 보이며 봐요, 별일 없지 않아요. 힉힉 웃으면서 기어이 퇴원하겠다고 하더군요. 다른 병실을 돌고 있는데 그 환자 가족이 소리를 질러서 뛰여가보니 글쎄 환자 입이 비뚤어져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순식간에 반신불수가 되였지 뭡니까. 젊은 나이에 너무 안됐지요. 심혈관 질병은 변화가 너무 빨라 정신을 도사리지 않으면 안되지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 쪽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우리 의사들의 몫이니까요.” 랭선생은 말을 하면 할수록 비 맞은 병아리처럼 폴싹해져서 한숨까지 내쉬는 것이였다. 그는 눈을 내리 깔고 책상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생과 사가 오가는 병원생활이 힘들어요. 피비린내 나는 침침한 곳이지요. 우리 엄마가 의사를 숭배했어요. 엄마는 소아마비증을 앓는 남동생을 둘쳐업고 학교를 다니면서 동생이 너무 애처로웠대요. 장차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되여 동생 같은 불쌍한 애들을 치료해주려고 결심했는데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끝까지 못했다고 해요. 엄마는 저에게서 당신의 꿈을 보상받으려 했던 거예요. 의학원에 지망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제가 좋아하는 금융 쪽으로 일하고 있을 테지요.”      랭선생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치렬한 노력을 해서 능수능란한 의사로 되겠다는 투지가 불타오르는 것이였다. 자신의 열정에 감동된 나머지 내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노래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말이지요. 명의가 되는 것이 꿈이였어요. 의술과 인술을 갖춘 훌륭한 의사가 되여 환자들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이 꿈이였어요. 그래서 대학지망을 쓸 때 부모님께 얘기도 드리지 않고 무조건 중의학원에 제1지원을 했지요.” 후줄근해있던 랭선생의 눈길에 짜증이 벌겋게 피여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황급히 화제의 방향을 돌렸다.  “류마티스 심장병 환자에 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젊은 녀자가 입원 도중에 혈전이 떨어져 입이 돌아갔다는 사실은 너무 비참해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명의 편작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에게는 의사인 형이 둘이 있는데 모두 의술이 뛰여났다고 해요. 위나라 임금이 편작에게 삼형제 중에서 누구의 의술이 제일 높은가고 물었을 때 큰형의 의술이 최고라고 대답했답니다. 큰형은 환자에게 고통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큰 병을 알고 미리 치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지요. 우리 의사들도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젊은 녀성환자의 비극을 막을 수 있을 테지요.”  랭의사는 공감하는 태도였지만 이미 대화를 단절했다는듯 또 한번 입을 봉해버렸다.  그러한 대화가 있은 후로 내가 열정에 기름을 쏟아붓고 배우려고 달려들면 입에 자물쇠를 닫아걸고 눈빛이 매서워지는 것이였다.  어른도 사춘기가 있나? 그녀 때문에 나는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 되여있었다. 배움의 압력이 태산이 되여 가슴을 짓누르는 와중에 시간을 짜내여 랭선생과 나 사이를 진단해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중의를 배우고 향진병원에 배치받은 녀자,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면 농촌의 빈약한 의료시설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는 의사이다. 혀를 가로물고 밤낮없이 배워야 하는 리유다. 랭선생 당신은 누구인가? 운이 좋은지 뭐가 좋은지 도시의 큰 병원에 배치받은 녀자, 빠른 시간 내에 의술을 익힐 수 있는 잘 짜여진 시스템 내에서 어깨에 힘을 주는 녀자… 그 뿐이지 않은가? 아니 또 있지. 중의를 개무시하는 분위기에 은근히 동조하는 녀자…  점심식사가 끝난 어느 날, 트림을 껄-하고 나서 주치의사인 심의사가 말했다. “난 중의를 믿지 않아. 확실하지 못해. 202호 환자가 얼마나 중약 타령을 하는지 말이야. 관심병에는 중약이 좋다고 나를 막 가르치려 드네. 누가 의사고 누가 환자인지 모르겠어.” 그 때 흥흥 코맹맹이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랭선생이였다. 무심코 내 얼굴을 스치는 눈길에 악의 없는 웃음이 배여있었지만 내 표정이 굳어지는 찰나의 모습을 그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공연히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제 나는 그녀를 싫어할 구실을 찾았다. 싫어하고 싶다. 싫어할 테다. 도도하던 그녀가 허접하게 보이며 함부로 대해도 될 것 같은 오기 어린 심리가 발동되는 순간이였다.    중의가 확실하지 못한 건 아니지요. 중의학에 대한 지대한 자부심과 애정으로 몸과 맘을 불태우며 중의세계에 빠져들었던 학창시절이 있었답니다. 황제왈, 기백왈, 음양론, 오행론을 풀기 시작하면 그 장면 어련하겠습니까.  솔직히 나는 중의를 모르는 사람들과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남들이 모르는 내 우울했던 지난날의 상황을 념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니깐. 우여곡절 끝에 향진병원에 배치를 받았고 취직해서도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중의문진에 파견되여 로중의의 맞은켠에 앉았다. 새파란 중의의사에게 맥을 짚어보라고 손목을 들이댈 환자가 어디 있겠는가? 로중의의 비위 허약이니 간기 울결이니 병 보는 소리를 귀 따갑게 들어가며 시간 보내기가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생 시험에 도전할 것을 선포하였고 새롭게 펼쳐질 앞날을 기대하면서 병원을 떠났었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연구생 시험을 포기하고 사회에서 뒹굴다가 다시 병원으로 회귀한 그 날부터 서의의술을 익힌 중의사로 변신해야만 시골의사의 위치를 굳힐 수 있다는 비장한 결심을 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연수기회는 의사의 길을 성공적으로 걷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목에 있는 것이라고 인생의 사활을 걸 만큼 중대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였다.  이러한 과거를 시시콜콜 펼쳐보일 필요는 없는 일, 진료차트에 눈을 박고 있는 나는 얼굴에 명랑한 웃음을 만들어 가지고 만사 제쳐놓고 배워야 하는 목적만을 생각할 뿐이다.                     연수하러 온 첫날에 만났던 의무과 선생은 그 후 세번이나 나를 의무실로 불렀다. 농촌에서 똥비누라고 부르는 누르끼레한 빨래비누를 쥐여주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들었다. 후날에 틀림없이 향진병원의 원장감이 될 사람이다.”고 입에 침을 바르고 칭찬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시오. 잘 배울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겠습니다.” 보글보글 거품이 일면서 빨래가 잘 씻기는 똥비누가 고맙고 병원의 따뜻한 관심에 마음이 후더워나지만 칭찬을 받는다고 기뻐서 날뛸 내가 아니였다. 랭선생과 벌이고 있는 미묘한 신경전을 생각하면 나오던 웃음도 서리 맞은 배추처럼 시들해지고 굳어버린다. 랭정. 참 변증이 어려운 녀자이다. 중의학 4진四诊으로 감당이 될 거 같지 않다. 의학의 성인으로 불리우는 장중경의 상한잡병론을 들이댄다면 모를가마는.   창문으로 해살이 부서져내리는 어느 날, 진료차트를 보고 있던 나는 귀신에게 홀린듯 잠간 랭선생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앉아있는 그녀는 얼음을 뚫고 나온 복수초 같았다. 얼음 같은 랭랭한 공기가 그의 주변을 감돌았다.  랭정은 대체 어떤 의사일가?   흘끔 쳐다보는 내 시선을 잡으며 랭선생이 서류철을 들고 일어섰다. “우리 219호 병실에 가봅시다.” 219호는 복도 끝머리에 있는 고급병실이다. 길림북화대학 교장이 관심병으로 입원해있다. 58세이다. 하얀 가운을 입은 두 녀자는 소리 없이 복도를 걸어갔다. 쥐 죽은듯이 고요한 복도에서 나는 갑자기 입을 놀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랭선생, 우리 의사들은 걸을 때 이렇게 발자욱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되여있잖아요. 특히는 심혈관 병동. 그래서 우스운 일이 있었지요.” “흐흥?” 그녀가 힐 웃는 모습이 곁눈으로 느껴졌다. 우습지 않아도 웃어주겠다는 여유가 보인다. “대학 3학년 후학기 때, 병동에서 중간실습을 하고 있었지요. 의사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는 겁니다. 우리 실습생들은 눈치를 주고받으며 재빨리 따라붙었지요. 선생은 앞에서 걷고 서너명 되는 학생들은 뒤에서 발볌발볌 따라가고… 하얀 옷을 입은 한무리 사람들이 음을 소거한 귀신연극을 벌이는듯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소리 없이 걷고 걸어 선생이 어디로 들어갔게요? 화장실로 쑥- 사라져버리겠지요.”  큭- 랭선생의 반응이 총알보다 더 빨리 날아왔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힘을 얻어 219호 병실과의 남은 거리를 가늠하며 이야기 하나를 더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 순간 번개 치듯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예비의사들의 실습풍경이 의대생 시절을 거쳤던 랭선생에게도 익숙해마지 않는 정경일 테고 의대를 졸업해서는 실력 있는 의사로 인정받기 위해 치렬하게 배우고 익혀야 하는 직업특성을 랭선생 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뼈속깊이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였다. 그렇다면 배움에 열중하는 사람에게 무질서로 발병하는 랭선생의 차거움은? 내가 너무 설쳐댔나? 한술에 배부르려는 조급한 모습이 눈에 거슬렸고 그래서 때로는 나를 쫓아버리고 싶도록 꼴도 보기 싫었던 걸가? 랭선생의 ‘간헐적 랭담증’에 대해 추측을 하면서 서둘러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동 순회시간이였어요. 의사와 실습생들이 적의 보루를 점령하듯 환자를 꽉 에워싸고 있었지요. 주임선생이 근엄한 얼굴을 하고 환자의 심장에서 나는 휘파람소리를 실습생들에게 들어보라고 했어요. 내 차례가 되여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대고 열심히 들었어요. 긴장으로 몹시 떨렸지만 문풍지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제대로 들렸지요. 그런데 누워있는 그 환자가 눈을 껍쩍껍쩍하며 자꾸 암호를 보냅디다. 청진기가 제 귀에 꽂혀있지 않았던 거죠. 목에 건 채로…”  “풉.” 랭정다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의과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번한 에피소드 두개를 공유하고 나서 219호 문을 밀고 들어설 때 나와 랭정은 모두 흐물흐물 웃는 얼굴이 되여있었다. “아이구, 서의와 중의 모두 오셨군요.”  앞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빗어넘긴 교장선생이 반겨주었다. 대학교 요직에 몸 담고 있은 세월의 품위가 병실을 옹근히 채우고 있었다.    “교장님, 어때요? 바깥에 온통 봄이 널렸는데 이렇게 화사한 봄날에 몸이 좀 가뜬하신가요?”  랭선생이 말을 건네고는 청진기를 교장선생의 가슴에 조심스레 갖다 댄다. 말에 향기가 있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놓고 말하는 것인가 보다. 랭선생이 평시에 하지 않던 말투와 한껏 웃는 얼굴을 보이고 있어 나는 새삼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청진기를 대고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사색 어린 하얀 얼굴 우로 속눈섭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발자국 하나 없는 눈 벌판 우에 태양이 걷고 있는 그림자가 얼른거리는 정경이 떠오른다.      “봄이 밖에 가득하다구요? 빨리 나아서 봄을 만나러 나가야겠는데.” 교장선생이 그윽한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교장님, 봄아씨 고게 쌀쌀맞아요. 환절기 감기는 무조건 사절하세요. 그러다가 페감염이라도 되면 치료기간이 더 길어지고 고생하게 되지요.” 청진기를 둘둘 말아 호주머니에 넣으며 랭선생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교장님 많이 좋아지셨어요. 더 괜찮아질 겁니다.”   “네, 네, 주의하지요. 의사선생 말씀은 어명이니까요. 당신들 같은 의사가 있으니 나는 걱정 없어요.”  여기까진 참 분위기 좋았었다…  교장선생이 이런 칭찬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 의사선생은 하얀 옷을 입은 천사라는 말이 딱 어울려요. 보기만 해도 병이 절반은 나아지는 것 같답니다. 아름다움을 보면 마음이 즐거워지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겸손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 뒤끝에 고마운 표정을 곁들인다. 미녀의사라는 칭호에 짝지지 않을, 좋은 의사라는 칭호까지 따내야 한다는 압박을 심하게 느끼면서. “생긴 건 괜찮은데 병을 엉터리로 보는 그 녀자의사 있잖습니까.” 이런 평가는 절대 나라는 사람의 몸에서 연출되여서는 안될 것이다.        랭선생의 표정은 이미 굳어있었다. 병실을 떠나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연기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처럼 방금 전의 웃음을 싹 거두어들이고 랭정한 얼굴이 되여버리는 것이였다. 봄이 오다가 홱 머리를 돌려 겨울로 가버리듯이.   연수생으로 병원에 도착한 첫날, 산비탈에 있는 기숙사로 가면서 음달에서 보았던 눈이 새하얀 광채를 잃어버리고 물기 서린 푸석한 모습으로 봄 속에 잦아들고 있음을 아침 출근길에 분명히 보았다. 봄은 완연하게 온 것이다.   눈이 녹아 땅 속에 잦아드는 소리와 봄바람 휘휘 돌아다니는 소리가 기숙사가 있는 산비탈에서 아스라하니 들려온다.   그로부터 련일 화창한 봄날이 쭉 이어졌다. 이렇게 좋은 날씨가 지속되는 꼬라지를 보면 악기후로 돌변할 징조라고 남자처럼 거쿨진 체격을 가진 왕의사가 창밖을 내다보며 궁시렁댄다. 왕의사는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되던 1977년 첫해에 길림의학원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의사’라는 직업인생에 대해 류달리 깊은 애정과 감회를 품고 있었다. 입학통지서를 받은 날, 강변에 달려가서 둥실둥실 떠내려가는 얼음덩이를 바라보며 목 터지게 울던 일, 대학 5년 동안 갈증이 나서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정식교재도 없는 의학공부의 날을 헤쳐온 일, 해부실에서 다른 동학들에게 빼앗길세라 두개골을 꼭 끌어안고 뼈와 뼈 사이 경계와 련결을 찾아내던 일… “우리 77급 말이야.”는 그의 입버릇으로 굳어있고 77은 그의 별명으로도 통한다. “그 때 우리는 미친듯이 공부했어. 누구도 말릴 수 없었지. 몸을 불사르며 배웠다니까. 지금의 당신들은 죽었다 깨도 리해 못할 거야. 그 처절한 배움의 욕망을 말이야.” 끝도 없이 감개무량하는 왕의사를 보면서 그가 나의 지도담당이 되였더라면 하는 애석함이 파도처럼 밀려오군 했다. 배움의 갈증을 심하게 느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목마름을 헤아릴 수 있을 테지. 선생을 잘 만나야 해. 무시할 수 없는 관건이지. 이런 생각에 빠져들 때면 또다시 화가 울컥 치솟는 것이였다. 남경의 어느 대학교에서는 “지각하는 자 빵점, 숙제를 바치지 않는 자 빵점,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자 빵점.”이라고 규정한 선생님을 한개 반 학생들이 련명으로 탄핵했다는데 책임감이 강한 엄한 선생님 밑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전혀 모르는 놈들이다. 나는 제한된 연수시간 내에 깨칠 것을 깨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혀 ‘책임감 없는 선생’으로 랭선생을 몰아부쳐 탄핵할 생각을 했는데 말이다.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 초보인 나에게 실력파 선생을 배치하지 않을 때는 그럴 만한 생각이 있었겠지. 심혈관내과에 들어온 첫날 주임이 말하지 않았던가. 랭의사와 나는 나이가 비슷하니 잘 통하리라고.  “로자의 말씀 중에 반자도지동反者道之动이란 것이 있어.”라고 중얼대며 77왕의사는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섰다. 어떤 것이든 극에 달하면 반전이 된다는 건데 이게 곧 도道의 움직임이라는 뜻이지. 좋은 날씨가 쭉 이어지다가 최고로 좋은 날을 맞이했다고 생각할 무렵에 날씨가 확 얼굴을 바꿔버리는 거야.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란 것도 그러하겠지만. “아. 맞아요. 맞아. 날씨가 확 변해버릴 것 같네요.” 랭선생도 점심 무렵의 창밖을 내다보며 깊이 공감한다.   로자의 말씀은 처음 듣는 소리라 잘 모르겠고 중의 음양학설에는 한寒이 극에 달하면 열热이 생기고 열이 극에 달하면 한이 생긴다는 음양전환의 리론이 있는데 지금 당신들이 하는 얘기와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전통의학이 얼마나 넓고 깊은가를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중의에서 말하는 오운륙기五运六气 학설만 봐도 그렇다. 작게는 인체의 질병을 연구하고 크게는 우주의 생사까지 탐구하고 예측한다. 이로써 볼 때 중의는 어디 의학의 범주라고만 간단히 말할 수 있으랴! “서의는 강대하고 중의는 위대하다.” 어느 교수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구절을 매우 흔상한다. 왕의사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듯 저녁 무렵이 되자 화창하던 날씨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더니 세찬 비바람이 병원을 집어삼킬듯 세차게 몰아쳤다. 굵은 비줄기가 후닥후닥 창문을 쳐갈겼다.    그렇게 시작한 봄비는 며칠이 지나도록 끊지 않았고 랭선생이 저녁당직을 하는 저녁에도 계속되였다. 질건질건 내리는 비는 온 세상을 축축하게 젖었다. 랭선생의 야간근무에 내가 껌딱지처럼 따라붙었다. 랭선생은 기숙사에서 자고 있으라는 말을 더는 하지 않았으며 내가 몰래 훔쳐보고 지켜보듯이 그도 나를 슬쩍슬쩍 훔쳐보는 곁눈길이 느껴졌다. 나를 연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시골병원에서 온 연수생이 눈에 쌍불을 켜고 의학 수련에 열중하는 모습이 연구의 대상이 되였을지도 모른다.  간혹 그는 힐 웃으며 진지하게 말할 때도 있었다. “210호 협심증에 중약을 쓴다면 어떤 방제를 처방해야 되지요? 어떻게 변증을 하지요? 음양허실이 어떻게 되지요? 예후가 어떻다고 보나요?” 그럴 때면 철색인 내 얼굴색은 끄떡 변함이 없지만 몸 안은 쇠덩어리를 달군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른다. 아직은 중의와 서의 모두 어설프기만 하고 이도 저도 숙련치 못한 아마추어 의사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랭선생이 음울한 얼굴로 차디차게 나를 대하는 그런 순간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미숙한 자신에게서 털끝 만한 경험이라도 캐내려는 나의 열정에 거부감이 들었을 테고 미주알고주알 물음에 대답이 궁색할 때는 스스로 화가 나고 속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병을 보는 도중에 중의방제가 생각나지 않을 때면 화장실 간다는 구실로 현장을 빠져나와 어느 구석에 숨어 호주머니 책을 꺼내보고 다시 진료에 림하라는 중의대 선생님의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생각나지만 랭선생은 몰아붙이듯하는 나의 물음에 어디 가서 답안을 얻어오랴. 아직은 주치의사나 주임의사의 지도를 받고 있는 일반의사의 한계를 느긋하게 배려해줄 수 없었던 나의 불찰이라면 불찰이지만 나 또한 느긋하게 배울 여유가 아니였던 것이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랭선생과 나는 윤활이 부족한 삐걱거림 속에서도 전쟁터와 다름없는 병동 생활에 미혼의 청춘을 온전히 투입시키고 있었다.    야간근무가 시작되여서부터 랭선생과 나는 머리가 팽팽 돌 정도로 바삐 돌아쳤다. 련일 이어진 침침한 날씨로 심혈관 질환이 증가된 탓인가 응급실을 통해 환자 4명이 륙속 입원해 들어왔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랴 입원일지를 쓰랴 처방을 내리랴 보호자 면담을 하랴 정신없이 움직였다.  시침이 밤 11시를 넘어서고 있을 즈음 나는 병동을 떠나 산비탈에 있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위중환자가 없는 날에는 자정이 지나서 별로 할 일도 없으니 기숙사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여 이튿날 낮출근을 계속하는 것이 더 효률적이였다.  밤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 듬성듬성 서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푸실푸실 흩날리는 봄비를 보며 나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이튿날, 직원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이른 시간에 병동으로 향했다. 병동 입구에 이르자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듯했다. 평시와 다른 괴괴한 침묵의 냄새가 심혈관 병동에 푹 드리워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간호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직이 알려줬다. “219호 사망했어요. 새벽 4시예요. 주임도 왔어요.” “네?”  나는 깜짝 놀라 저도 몰래 소리를 질렀다. 교장선생이 왜? 호전세를 보이던 환자인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주임까지 출동된 일이면 심상치 않은 일인데? 내 소리에 놀랐는지 간호사는 흠칫 떨며 총망히 자리를 떴다. 의사 사무실에 들어서니 주임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있었다. 랭선생은 진액이 빠져버린 사람처럼 책상모서리에 기대여 쓰러질듯 서있었다. 밝기 조절이 안되는 전등이 천정에 달라붙어서 이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참담한 표정으로 락담하고 있는 랭선생의 모습을 나는 왜서 그렇게도 집요하게 관찰했는지? 그녀의 비참한 얼굴에서 떨어지는 눈물도 놓치지 않고 똑똑히 지켜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의사들이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하고 환자 가족들이 떼를 지어 들이닥치고 사무실에 환자 가족들의 울음이 터지고 사망병례토론이 있고… 이러면서 하루가 지났다. 그러기를 또 며칠 지났다. 랭선생은 련일 초점 잃은 눈으로 여기저기 불려다녔다. 열흘 후 랭선생의 모습은 더는 병동에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몸져누워 당분간 집밖을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의료사업에 몸을 바치련다는 랭선생에 대해 주임의사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심혈관 병동은 여전히 전쟁터마냥 바빴고 이미 발생한 일들에 생각이 머물러있기에는 빡빡한 시간이 허용치 않았다. 랭정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멀어져갔다.  심혈관내과에서 연수가 끝나갈 무렵, 77급 대학생인 왕의사의 수하로 되여 정신없이 돌아치는 어느 날 나는 소포를 받았다. 두꺼운 수첩이였다. 파란색 바탕에 하얀 눈꽃이 그려져있는 겉표지가 산뜻했다. 뚜껑을 펼치자 하얀 쪽지가 미끄러져 나왔다.  “언니의 꿈을 응원해요. 좋은 의사가 될 거예요. 꿈에 미쳐있는 언니가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났어요. 언니의 아름다움도 저를 무척 속상하게 한 거 알지요? ㅎㅎ 저는 지금 새롭게 태여나고 있어요. 저도 꿈이 있어요. 응원받고 싶어요. 랭정 드림.” 또박또박 곱게 씌여진 글씨가 눈꽃이 피여있는 수첩에 내려앉았고 창밖의 하늘을 내다보고 있는 랭정의 얼굴도 함께 와 놓였다.   “랭정, 랭의사… 아니 이젠 의사가 아니지.” 갑자기 울컥하고 마음이 시려왔다. 그녀가 앞에 있다면 뜨겁게 눈길을 주면서 환자 이야기도 아니고 의학 이야기도 아닌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서로의 꿈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을 것만 같은 이 충동은 무엇일가?… 뜻밖의 쪽지에 나는 한참이나 할 일을 잊고 있었다.     출처:2018 제5호
2    심명주: 탈춤(시, 외7수) 댓글:  조회:343  추천:0  2019-07-15
탈춤(외7수)  심명주   한삼 자락 길게 뽑아  구름을 서리하고   바람 빌어 육신으로 혼을 떨며 다가오는    희디흰 심장에 푸른 한을 덧얹어 운우 너머 흩뿌리는 망각의 무리들, 홀씨의 넉두리들   새 순을 내뱉어  아픈듯 넋을 흔들어 파가한 하루,    얼굴을 벗는다 눈 감고 줄을 내리운다 마음에 구멍 뚫는 저 광대가     담쟁이풀 한철만 겨냥하는 담바라기가 시든듯 피는 푸름이가 사느라 아우성 치는  덩굴의 저 무리가    바람이 오면 바람 타고 비 쏟치면 비를 품고 별이 보이면  별을 본따   어디까지 태워주려 모래 같이 흐트러지고 숲처럼 모여,   아,  혼자조차 버거운 이 계절에 하필 내 앞에 다가왔는가   릉소화도 아닌 것이  이토록 뭉클하게   추석달 복사꽃 하나가 떠온다 시원하고 맑으니 도화맛 같은   낮부터 흘러 숙야에 다다르니 어둠길이 춤추고 꽃가루 날리여   내 앞 창문이 너로 해 루추하고 구월 처마가 깊으게 호젓하노니   빌어빌어 또 빌고 다시 비노니 하늘이 밀린다 계절이 떠간다   가을을 쏟으려고 하얗게 청천에서 꽃 하나가 익어간다     봄을 추모하다 봄은 장송곡이다  세상에 푸른 서리를 드리워 생명에게 제주祭酒를 건네며 오가는 길손을 제멋대로 갈무리한다   사랑하는 것들은 것들끼리 비웃고 비웃는 것들은 것들끼리 짝을 지어 시작이 죄받이로 자처하는  긴 쇠길 우에다가 늙은 하루를 팽개치는,   봄아, 총 같은 사람아 천연스러이 한눈을 치켜뜨고 오늘은 또 무슨 음모를 장탄하고 있는가   바람이 설음을 실어주는 길에 시간을 효시하며 너는 오늘도 어김없이 세상과의 하직을 꾀한다     감나무 여름 막바지부터 꼬박 초겨울 한낮까지 정원에서 만났던  한그루 인연, 침묵을 력사처럼 남긴   혼자 찾아갔다가 혼자 바라보다가 끝내는 가지 끝 하늘에 앉아 내려오지 않던  열매 하나만 간혹 한여름 꿈이면  가을을 쥐고 우수수  나무는  자기가 낳은 감들을 가득 품은 채 부메랑처럼 달려온다    꽃 피울 때부터 열매는 노란 리별을 꿈꾸었을 거다 아마 감은 떫은 침묵 같은 등껍질을 벗어    나를 만나  속살을 흐트리려 했을 것이다     파장 몇십년을 하루같이 바람을 손님으로  공원다리 연집강은  장터로 지내온다   새벽 세시면  강을 탄 기운들과 풀숲과 벌레들이 잠자코 기다려주는 시간 먹을거리와 숨소리와  여럿 내음을 겉절이처럼 섞어 세상을 주무르는 등허리들 물소리들 풀소리들 살아나는 소리들 사그러지는 소리들   해가 나오고 다른 세상 소리 피기 시작하면 이곳은 겸손하게 입 닦고 손 씻고, 다리 털고 끝냄을 알린다  언제 그랬는듯이.   그리고 또 누구의 시작은 여기 파장에서 잉태난다     씀바귀 나물에 밥 말다 울컥하는 날 아버지는 밥상이다   수저 한쌍 밥 한알  그리움 한톨   자식 넷을  세상에 차려놓고 잠간 나물이라도 캐시러  하늘 나가셨나   내 아들을 눈에 비벼 밥에 말아 아버지를 먹는  그런 날 나는 바람 속에 서성이는  한잎의 씀바귀이다      해가 온다 점괘 하나 찾아 비가 오면 하얀 색으로 해가 오면 거품으로   “커피를 마실가 자살을 할가” 책제가 유난스러운 날   얼핏 블랙 알맹이와 떠있는 빛과 검은 공기들과  불쑥 옛 마을 입구 솟대까지   차이를 가늠해보다가 액즙을 추출한 뒤 혈관으로 추방시켜  다시 쓴맛과 체온과 비릿함들의 반란을 노린다   특기할 만한 날도 아닌 오늘 음식에다 생사를 버무리하는 날   내게는 해가 온다 가까이  큰 해가 머리 우로 쏟아진다 출처:2018 제5호
1    미주: 아방가르드한 시의 향연(시평) 댓글:  조회:335  추천:0  2019-07-15
아방가르드한 시의 향연 미주   한낱 뜨내기인 나에게 시평의 기회가 찾아왔다. 심명주시인님의 시라고 한다.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올해에 들어서 제목부터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닌 작가님의 수필은 여러편 읽으면서 시도 어서 보여주십사 하고 학수고대해왔다. 이하 설레이는 마음을 눅잦히고 따끈따끈한 신상 시들을 맛보면서 어줍잖은 품평을 시도해보도록 하겠다.  . 춤추는 자가 우를 향해 팔을 치켜드는 찰나에 령민한 시인께서는 기회를 놓칠세라 시상이라는 셔터를 재빨리 누른듯하다. “한삼 자락 길게 뽑아 / 구름을 서리하고 / 바람 빌어 육신으로 / 혼을 떨며 다가오는”이라는 춤 속에 자연이 녹아든 명장면이 미세한 떨림을 전하면서 서서히 인화될 때 저도 모르게 감탄을 쏟게 된다. 큐레이터인 시인의 주문에 따라 한삼 자락을 주목해보도록 하자. 하늘과 맞닿은 탈을 쓴 자의 한삼 자락은 절묘하게도 구름과도 같은 흰색이다. 이 아름다운 증좌로 인해 무자舞者는 빼도 박도 못하고 구름을 서리했다는 “덤터기를 쓴”다.  계속되는 춤구경에 혼마저 쏙 빼앗겨 한시라도 눈을 떼지 못한 채 템포가 늦은 춤사위를 쳐다보고 있느라면 육안으로는 보아낼 수 없는 것들까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즉 물物에서 정신에 이르게 된다. “희디흰 심장에 / 푸른 한을 덧얹어”라는 묘사에서는 눈부신 흰색 주변을 감싸는 푸른빛과 흡사한 백의민족이 지닌 한의 정서를 그린다. “운우 너머 흩뿌리는 / 망각의 무리들, 홀씨의 넉두리들”. 어찌할고? 한을 죄다 털어버리고저 곱게 흩뿌리지만 사라져버리지 않는다. 다만 망각된다. 그것도 잠시, 이는 또다시 홀씨로서 생명력을 형성하게 되고 ‘새 순을 내뱉’는다.  이윽고 춤은 끝나고 춤추던 자는 탈이 아닌 ‘얼굴을 벗는다’. 시종일관 같은 표정일 수 밖에 없는 탈이 갖는 특성상 철저한 포커페이스를 자처하며 오로지 ‘넋을 흔드’는 춤을 추는데 집중한 그에게 있어 탈은 곧 얼굴이다. ‘진짜 얼굴’보여주기(얼굴 알리기)를 포기하고 보는 이의 ‘마음에 구멍을 뚫’는 춤군인 그는 ‘광대’로 불리운다. ‘광대’는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자에 대한 단순한 호명이 아니다. 심혈을 기울여 민족의 얼을 표현해내고 예로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전통문화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데 대한 최고의 찬사이다.  . 세상에 영원이란 없는 법이다. 흔히들 ‘예쁜 꽃도 한철이다’, ‘피여보지도 못하고 진다’ 등의 표현으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아쉬운 유감들을 전한다. 이 기준에만 근거하여 같은 덩굴과인 릉소화(여름에는 꽃 피고 가을에는 열매 맺는)와 비교해볼 때, 모름지기 한철만 푸른 담쟁이의 ‘삶’은 한없이 초라해보일 수도 있다.  “바람이 오면 바람 타고 / 비 쏟치면 비를 품고”. 얼핏 보면 담쟁이는 맞닥뜨린 상황들에 수긍을 하면서 무난하게 살아가는듯하다. 하지만 비바람에 담쟁이 잎 전부가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이를 상기해본다면 비와 바람은 단순히 자연현상이 아니라 살기 위해 힘겹게 이겨내야 하는 역경이다. 힘이 들 때 바라보게 되는 하늘의 ‘별을 본따’ 곁잎이 다섯으로 갈라지는 담쟁이 잎사귀 형태는 곧 희망이다. 희망은 판도라 상자 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처럼 흐트러’져있다.  희망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리’가 되고 나아가 ‘숲’을 이룬다. 부지런히 담만 타는 담쟁이를 통해 시인은 “형태는 흐트러졌으나 정신은 흐트러지지 않形散神不散”은 한편의 훌륭한 수필을 읽어낸듯하다. 담쟁이가 전하는 ‘뭉클’함은 ‘혼자조차 버거운 계절’에 왜 ‘하필이면’ 시인을 찾아왔을가? “사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자를 위해 죽을 수 있士为知己者死음에 그 답이 있다. 릉소화 뿐만 아니라 담쟁이도 아는 시인은 나름 대로 치열한 삶의 가치를 보아내고 긍정해주는 혜안을 가진 자이다. . 이 시에 대한 전반적인 감수는 요즘 류행하는 신조어인 ‘과즙미’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싱그러운 매력이 터져나올듯 흘러넘침을 뜻한다. 가을을 맞아 땅 우에서 무르익은 백과를 제쳐두고 하필이면 하늘에 떠있는 둥근달에서 과즙미가 느껴지는 걸가? 이는 추석달에 대한 시인의 전반적인 낯설게 하기 시도 때문이다.  시에서는 밤하늘에 달이 뜬 모습을 “복사꽃 하나가 떠오른다”고 했다. 일정한 주기에 따라 변하는 달의 모습은 결코 둥근 원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꽃모양이라 하다니. 복사꽃이 둥그런 모양인지 하는 의심이 싹 가시기도 전에 “시원하고 맑은 도화맛 같다”고 하는 행이 이어진다. 한입 베여물고 싶은 미각적인 충동이 저도 모르게 일게 된다. 2련에서는 쏟아내리는 달빛을 두고 “꽃가루 날린”다고 했다. 눈부신 달빛을 두고 꽃가루 흩날리는 것이라고 한데 대해 수긍을 하게 된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시인의 표현에 ‘완전히 낚’여 영낙없이 달을 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겹겹이 쌓인 선입견의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기억의 저편에 자리하고 있는 달을 길어올려보자. 달은 원체 둥그런 것이 아니지 않는가. 옳거니, 시인이 알려준 대로 달은 복사꽃으로 피여났고 꽃가루가 내려앉아 간절한 소원에 수정을 이루게 된다면 이는 다시 탐스러운 백도로 영글어져가는 것이다.  에서 시인은 봄이면 만물이 소생한다는 기본 통념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죽음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그리하여 흥쾌한 멜로디가 아닌 장승곡을 봄노래로 선곡했다. ‘세상에 푸른 서리를 드리’운다고 하였는데 의문이 든다. 서리가 어떻게 되여 푸른색일가? 색상으로 짐작하건대 이 ‘서리’는 봄을 맞아 돋아난 새싹들을 말한다. 1련에서 ‘오가는 길손’은 봄이 되여 나타나는 새로운 기상들이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지나간 겨울을 위해 준비된 제주를 건네받아 마신다. 3련에서는 ‘긴 쇠길’이 등장한다.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쇠길은 무엇일가? 해석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듯하다. 필자는 ‘늙은 하루’가 팽개쳐지는 이 길을 기온이 상승하면서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며 형성된 진탕길로 풀이하고저 한다. 시간이 흐르며 봄이 깊어지고 봄이 아닌 흔적들은 하나씩 사라져간다. 이를 두고 4련에서는 봄을 ‘총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봄이라고 하는 스나이퍼의 위세는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봄도 언젠가는 자신이 물러나야 함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리하여 불어오는 바람에서 설음을 느낄 수 있고 날마다 세상과의 하직을 꿈꾼다. 이 시는 그동안 봄바람에 취해 영생만을 떠올렸던 자들에게 한치를 차이둔 거리에 사死가 존재함을 일깨워주는듯하다. 궤변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가 원체 난해하게 씌여져 필자의 해석이 맞을 거라는 속단을 내리기가 주저된다.  . 심명주작가의 작품에 감나무가 등장하는 것은 로신문학원에서의 연수생활을 쓴 수필 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인 것 같다. 수필 속 “감이 익기 시작하여서부터 완숙되여 절로 떨어질 때까지, 그리고 끝까지 높이 매달려 까치밥으로 남던 마지막 한알의 감이 바람과 해빛에 쪼그라들어 기어이 푸석하게 변해서는 자연으로 돌아가던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는 작가의 고백이 인상적이였다. 수필 속 그 감나무를 시에서 또 만나게 된다. 시적화자는 정원에 있는 한그루의 나무와 인연을 맺는다. 돈독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열매가 남을 때까지 기나긴 시간 동안 찾아주고 바라보는 등의 로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말할 수 없는 나무의 침묵 속에서 시적화자는 세심한 관찰을 통해 나무의 가을에 감들이 가득 달리는 꿈 및 노란 리별의 꿈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아마 감은 / 떫은 침묵 같은 등껍질을 벗어 / 나를 만나 / 속살을 흐트리려 했을 것이다”면서 시는 끝난다. 감이 자의에 의해 외피를 벗고 자신을 드러내보일 것이라는 추측은 무한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였음을 자부하는 것이다. 시에서는 감나무와 인연 맺기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 옳바른 교우자세를 제시하고저 했다.  . 데면데면한 필자는 1련에 등장하는 ‘공원다리 연집강’, ‘장터’만을 포착하고는 좌표를 수상시장으로 잡고 달리려다 말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아래동네에서 비인간 군상들이 모여 이렇게 재밌는 시장놀이를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무려 ‘몇십년’이나 되는 나름의 력사가 있다. 상상만으로라도 쌩할 바람이 손님이라고 하니 호객행위하기 참 힘들겠다. 그럼에도 벌레들의 기척마저 느끼기 힘든 새벽 3시라는 이른 시간부터 등허리를 주무르면서가 아니라 등허리들이 오히려 세상을 주물러가며 ‘각종 내음이 섞여’ 시장에 들고 갈(?) ‘겉절이’는 만들어진다. “물소리들 / 풀소리들 / 살아나는 소리들”로 북적이는 자연의 아침시장이 개장한다. “칵테일파티 효과”란 바로 이런 것이다. 자연의 일거수일투족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인지라 귀를 귀울여 “시장 아래 시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인은 이 장터의 매력을 때가 되며는 “해가 나오고 / 다른 세상소리 피기 시작하면” ‘겸손하게’ 물러날 줄 아는 데서 찾는다. 공생관계에 있어 굳이 ‘본의’는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진 에티켓으로 인해 ‘또 누구의 시작’이 잉태될 수 있다. 결속의 의미로서 파장이 새로운 시작에 파장을 미치게 됨을 떠올려볼 때 끝남에 대한 아쉬움 또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는 사부곡이다. 아버지가 그리워난 것은 “나물에 밥을 말다 말고”이다. 촉물생정触物生情이라고 했다. 나물 때문에 아버지 생각이 나는 것으로 류추하건대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네 자식을 먹이려고 나물을 자주 캤었다. 그리하여 시적화자는 돌아가서 계시지 않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잠간 나물이라도 캐시러 하늘 나가셨나’는 생각을 한다. 1련에서는 ‘아버지는 밥상’이라고 했다. ‘밥상’을 아버지의 형체라고 생각하여 그 우에 ‘수저 한쌍’, ‘밥 한알’과 함께 절절한 ‘그리움 한톨’까지 얹어놓는다. 아버지 생각에 울컥한 날이 있다면 ‘아버지를 먹는 날’도 있다. 우선 공포감을 조성하는 이 식인의식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형체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륜리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내 아들을 눈에 비벼 밥에 말아’ 아버지를 먹게 된다. 눈에 비벼도 아프지 않은 내 자식인 ‘아들’은 할아버지인 나의 아버지를 닮은 것으로 사료된다. 아들을 보고 아버지를 떠올리며 밥을 먹었다. 이로써 ‘아버지 먹기’는 가능하다. 화자는 먹기 방식을 벗어나 아버지와의 만남을 꾀하고저 한다. 그것은 ‘내’가 ‘바람 속에 서성이는 한잎의 씀바귀’가 되는 것이다. 나물이 되여 아버지한테 캐여지고 싶다. 아버지는 밥상이니 나물인 ‘나’는 아버지 우에 차려진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전반 시의 곳곳에 리해에 어려움을 주는 난해한 표현들을 배치하여 곱씹어읽기를 유도한다. ‘나’의 영원한 식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리해하겠으나 ‘내’가 수많은 나물을 제쳐두고 굳이 씀바귀이고 싶은 리유는 끝끝내 찾지 못했다. 시인만 알고 있는 사연이 있는 걸가? 그 궁금증은 쉬이 해소되지 않는다. . ‘커피를 마실가 자살을 할가’는 고민을 하는 시적화자에게 “그것도 고민이라고 해, 당연히…” 하고 면박을 주려다가 멈칫하게 된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은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을 ‘블랙 알맹이’, ‘떠있는 빛’, ‘검은 공기’, ‘옛 마을 입구 솟대’ 등의 차이를 그는 굳이 가늠해보았다고 한다. 동원된 시적 이미지로부터 보아낼 수 있듯이 그의 기분은 너무 다크하다. “액즙을 추출한 뒤 혈관으로 추방시키”는 것은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는 것을 련상시키지만 그 결과물은 커피가 아니라 이름하여 ‘쓴맛과 체온과 비릿함들의 반란’이다. 그렇다면 시적화자는 왜 기분이 울적할가? ‘큰 해가 머리 우로 쏟아진다’고 했지만 해는 결코 원인 제공자가 아닌듯하다. 기분이 울적하다 보니 해가 내 머리 우에 드리우는 것 또한 싫은 것이다. 시는 난해함을 꾀하며 다음과 같은 리치를 전하고저 한다. 모든 일이 인과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기분에 충실하는 것은 진실된 자아를 만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해를 굳이 의식하지 말라. 때가 되면 스스로 지고 뜬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의 여름도 이제는 막바지에 들어섰고 슬슬 가을이 다가옴을 기대해볼 법도 하다. 심명주시인님의 8편의 시작품은 이러한 타이밍에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여름 내내 머리에 이고 있었던 뜨거웠던 해에 대한 짜증 나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잠시나마 땀을 들일 수 있던 식물들로부터 전해지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주는 시원한 기억도 있다. 이 또한 다 지나갈 것이라는 리치를 전하면서 가을의 표상들을 슬그머니 내놓는다. 시인님의 기발한 센스가 넘치는 8편의 시에 ‘좋아요’를 꾹꾹 눌러주고 싶다. 그리고 이들 중 몇편의 시에는 커다란 물음표 이모티콘도 잊지 않고 남겨야 될 것 같다.  출처:2018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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