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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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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장백산》2017.6 루계216 댓글:  조회:1683  추천:0  2019-07-19
장백산 루계216  2017제6호   기획조명-작가와작품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단편소설)  조원 아픔과 치유(작품평)  우상렬 고향의 개울물은 오늘도 소리내여 흐른다(작가평)  김경화   노벨의 향연 떠도는 환상과 그 아래 깊은 골짜기(만필)  김혁 기획련재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 련재6)  김혁   조광명소설코너 소설 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중편소설)  조광명   계렬수필 눈섭이 없는 녀자(수필)  허무궁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수필)  허무궁 나에게는 매일 하루가 챙겨진다(수필)  허무궁 감지하는 가을(수필)  허무궁 관념세계의 실존,그 안의 수많은 존재들(수필평)  김홍월   시인 시전 인생은 홀로서기가 아니라도 좋다(시 외6수)  강혜라 시로 씌여진 한영남의 인생감오(시평)  최삼룡   창작마당 그 여름의 끝(단편소설)  김경화 ‘딸님이’와 ‘딸내미’(수필)  장문철 나의 황금시대(수필)  장범철 추억의 이름은 사랑(수필)  리려 세월1(시 외1수)  김철호   대학생코너 한류풍파(단편소설)  김소연 바다의 관용(수필)  김해옥 마음의 면역력-자존감(수필)  박예령 비행소녀(수필)  오춘지 사람의 숲에서 사람이 그립다(수필)  리은혜 잃어버린 색을 찾습니다(수필)  주미화 스무살의 향기(수필)  윤설화 치열하게 부드럽게(시)  우향정 기억을 걷는 시간(시)  석설령   중국소수민족문학 마지막 사나이(단편소설)  알라트 아쓰무 지음                         천년목 옮김   장편소설련재 산귀신(장편소설 련재18)  림원춘 해볕이 춥다(장편소설 련재7)  구용기
22    강혜라: 인생은 홀로서기가 아니라도 좋다(시, 외6수) 댓글:  조회:784  추천:0  2019-07-19
인생은 홀로서기가 아니라도 좋다 강혜라   인생은 굳이 홀로서기가 아니라도 된다 세상사람 모두 홀로만 선다면 너무 가슴 시려 어떻게 살아가랴 내가 홀로 서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내남을 속이는 시시한 변명 따윈 하지 말자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나와 그 사람이 다같이 설 수 있다면 서서 저 멀리 험한 인생길 헤쳐갈 수 있다면 보다 따슨 기운이 감돌 터이다 인생은 굳이 홀로서기만 고집하지 않아도 좋다     별자리   별이 차거운 허공에서 투욱 터진다   터진 별이 밀어낸 자리가 거뭇하게 남는다   별이 뜨거운 가슴에서 투욱 터진다   터진 별이 머물던 자리가 따스하게 남는다   새벽이였다     세월   나중엔 알겠지 되돌아가려고 아우성치는 물을 본 적 있던가 지팽이 바꿔쥐고 지친 땀 훔치노라면 유채꽃 흐드러진 들판 나타나겠지 밤하늘이 푸르게 빛나는 건 별 마음 닮아서겠지 드러눕지는 않으리 물 실려 흐르리      봄꽃   누가 흘리고 간 봄입김이 여기 후둑후둑 떨어져 민들레로 피였을가   하늘이 넌지시 푸르러지면 픽픽 향기 터지는 정향꽃 자꾸 그리워   민들레 하나로 봄을 그려보라지 정향꽃 개나리 버들개지까지 저리 봄봄거리는데   영 봄이기를 바란다고 있어줄가마는 달래 한알 파내도 봄인 게지 서두르지 말자 익어서 감주처럼 여름 목메이는 향이 되도록     인생 배워서 사냐   아무리 옳은 말이고 아무리 좋은 말이고 아무리 진리 같아도 인생 배워서 사냐 웃기지 말아 그렇게 말하는 너도 너덜너덜한 삶을 살고 있더라 책 한줄 읽고 세상 사는 도리 다 깨친 것처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느니 저렇게 살면 안된다느니 웃기지 말아 책 보고 배워서 사는 인생이더냐 누가 그러는데 그건 안된다고 하오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하오 웃기지 말아 다 살아본 사람도 죽기 전에 인생은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거늘 정말 웃기지 말아 인생 배워서 사냐 배워서 사는 게 인생이냐고     청동거울   청동거울의 깊이 다 지나고 나면 어느덧 만져지는 푸른 무늬 그 무게와 그 너비와 그 아픔과   청동거울의 무늬 다 만지고 나면 마침내 느껴지는 이 초라함 이 부끄러움과 이 쑥스러움과 이 안스러움과   다 지나지 말자 다 만지지 말자   바람에 풀잎 흔들리듯이 결 고운 물결 되여 물주름 만들며 흐느끼듯 가자 그리하여 마침내 청동거울 다 지나면 그렇게 잊으리     하늘 걸린 외길   가다가 타는 목 랭수 한모금으로 적시며 멀리 지평선 바라보다   거울 속 박제된 햇꿈을 만지며   어느새 세월 언저리 부서진 서러움 주어모으다 아픔이야 남겠지   세상은 말해주지 않아도 락타의 외줄기 길은 하늘에 걸려있다 출처:2017 제6호
관념세계의 실존, 그 안의 수많은 존재들 김홍월   허무궁의 네편의 수필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마치 대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바람이 밀려오는 것과 같은 환청이 들린다. 수많은 인파, 수많은 존재들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압도하듯 우리 앞에 놓인다. 그 환각은 너무나 뚜렷해서 그 대지와 수많은 존재들이 실존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환각의 세계는 너무나 거대한 미지여서 인간의 자대로는 쉽게 단정하고 평가할 수 없는 무위(无为)자연의 실존과 같다. 다시 말해 허무궁은 네편의 수필을 통해 수많은 존재들이 있는 어떠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세계는 실제 존재하는 것만 같아서 실존적이며 잘 정돈된 세계가 아닌 혼란스럽고 복잡한 무위의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세계인 것만 같아서 실존적이다. 허무궁이 전하는 환각, 그 세계는 바로 관념의 세계이다. 네편의 수필 속에서 끊임없이 이뤄지는 화자의 공상들은 수많은 관념들로 이루어져있다. 이러한 수많은 관념들을 화자는 마치 눈에 보이는 사람, 사물처럼 대한다. 이러한 관념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떠한 사건들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현실 세계 이외의 관념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세계가 탄생된다고 볼 수도 있다. 허무궁은 관념세계가 실존한다는 인상을 강화하기 위해 두가지 교묘한 방법을 쓴다. 그 첫째는 관념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타자들의 부각이다. 그는 화자 이외의 수많은 타자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념의 세계에도 삶이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하여 관념세계가 실존한다는 인상을 강화한 것이다. 두번째로는 관념세계의 무위성의 부각이다. 그는 관념세계를 잘 정돈된 세계가 아닌 여전히 미스테리하고 고민스럽게 남아있는 무위의 자연으로 보여줌으로써 실존한다는 인상을 강화한 것이다. 관념세계의 실존성과 그 안의 수많은 존재들의 등장을 공통적 기반으로 하여 네편의 수필 속에서 화자는 각기 다른 색채의 고민을 한다. 각기 다른 색채의 고민이기는 하지만 네편의 작품은 〈눈섭이 없는 녀자〉,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 〈나에게는 매일 하루가 챙겨진다〉, 〈감지하는 가을〉을 순서로 련결되며 하나의 일종의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눈섭이 없는 녀자〉,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없는 눈섭이 놓여있다. 없는 모습으로 놓여있다. 다시 말하면 없는 게 놓여있다. 다시 말하면 없는 존재가 있다는 말이다.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 없다와 있다는 동시에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왜 없는 존재가 있다고 하는 것일가? 눈섭이 없는 녀자에게 눈섭은 없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있는 것은 무엇인가? 눈섭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있는 것, 존재하는 것은 화자의 ‘없다’라는 관념이다. 없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없다’라는 관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화자는 관념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함을 전하려 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대상은 ‘없다’라는 관념 이외에도 많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모든 관념들이다.   트윗이 매일 매스컴을 못살게 군다. 혹시 이 땅에 무서운 전쟁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없던 전쟁도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공포심, 그 두려움은 없는 것을 있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가상의 전쟁이 벌어진다. 사람들의 마음속 전쟁이 관념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관념으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요소들은 때에 따라 부정적인 모습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화자는 군중을 이리저리 휩쓰는 다양한 정보 매체와 그것에 휩쓸려다니는 군중을 비꼰다. 그러나 정작 〈눈섭이 없는 녀자〉에서 중요한 것은 화자가 관념이 물질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점에 있다.   눈섭이란 꼭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일반 물질로서는 인간의 눈 우에 붙어있는 것이 상례다. 그 모양에 따라서 인물이 평가되기까지 하는 것을 봐선 미크론물질(청화대학 생명과학 학자 시일공)의 세계에서는 한 물질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화자는 일반적 물질과 미크론 세계의 물질을 나누고 있다. 심미적 령역, 즉 관념적 령역은 당연히 일반적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미크론 세계의 물질에 해당할 것이다. 화자는 관념을 물리적 실제라고 주장할 만큼 관념세계의 실존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 타자들에 대응하는 개인 〈눈섭이 없는 녀자〉에서 그려진 군중은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에서도 나타난다. 다만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에서는 그 군중에 대응하는 화자 개인이 함께 부각된다.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의 화자는 민주가 가로막혔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민주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집중은 고독이다. 민주를 집중시켜야 하는 행위는 홀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을 하고 독단적으로 받아안아야 할 고독이다.   여기에서의 집중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중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하나의 방향을 도출해내는 것으로서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있는 민주를 집중시키는 것은 다수의 타자들의 의견에 개인이 대응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대응이 쉽지 않다. 다양한 의견중 하나의 방향만을 도출해내는 것은 화합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소외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완전히 충족되는 것은 리상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만인에 대한 개인의 투쟁’으로서 그 집중이 이뤄질 수 밖에 없다. ‘만인에 대한 개인의 투쟁’은 곧 개인에게 고독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다수의 타자의 의견에 대한 개인의 대응이 곧 투쟁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집중의 무게를 두고 화자는 끝내 이렇게 말한다.   고독할 때 생각한다. 고독할 때 랭정해진다. 고독할 때 성장한다. 고독을 터득하면 훌륭한 경영자로 될 수 있다. 거짓말 같지만.   〈나에게는 매일 하루가 챙겨진다〉, 분렬된 미시적 개인 타인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면 어떤 면에서 우리는 소외를 느낀다. 화자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친구들마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불안을 느낀다.   ‘나’는 부모님이 불러주시던 어린 나의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여기에 버젓하게 남아있는 ‘나’는 나와는 다른, 나의 흉내를 내는 ‘내’가 아닌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내 이름이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대체될 때부터가 아니였던지 모르겠다.   이러한 자아의 정체성에 화자는 자신의 본명에 대한 고집을 꺾음으로써 해결한다. 화자는 자기 자신을 고정시켜둘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즉 자기에 대한 자기의 편견을 벗어던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 클락에 와서는 또 영어로 폴이라고 불리워 난 이젠 아예 자기가 대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얼렁뚱땅 얻어가진 영어 이름인데 일사천리로 성장하는 나의 인생의 궤도에 따라 이 폴이라는 이름도 하얀 셔츠에 잉크가 스며들듯이 쫙 펴지기 시작한다. 나의 인생이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피여가는 것이다. 나의 새로운 하루하루가 시작이 되여가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렇게 영원히 매일 하루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다른 내가 존재를 약속하고 있는 하루도 있다.   화자는 계속해서 새롭게 태여날 수 있는 다수의 타자인 ‘나’와 투쟁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 대신 화자는 덤덤히 다수의 타자와 같은 다수의 ‘나’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분렬된 나들은 분렬된 나중에 하나인 나의 립장에서 보면 다수의 타자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내’가 밀려나는 것에 부정적 반응도 하지 않는 것처럼 공평하게 또 다른 ‘나’를 환영하지도 않는다. 그저 덤덤히 다수의 ‘나’에게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감지하는 가을〉, 개인적 관념세계의 사건 세상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관념적 측면이 개입한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다 보면 그것에는 의미나 감성이 생기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 속에 세계를 관념적으로 승화시키며 변형한다. 세계를 적절한 비유들로 설명하고 리해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기본적 습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감지하는 가을〉에서는 현실을 관념을 통해 리해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 자체를 현실에 앞서게 만드는 인상을 준다.   오는 것인지 우리가 그리로 가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하여튼 모두가 가을을 ‘온다’고 하면서 나름대로 감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화자는 시작부터 의심을 품는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계절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려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한 계절은 ‘올’ 수 밖에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화자는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의심은 결국 화자가 가을을 ‘우연히 만남’으로써 결실을 맺게 된다.   가을을 갖다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가을이 있는 곳에 내가 찾아온 것이다. 바꿔말하면 내가 찾아간 곳에 가을이 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방식에 있다. 화자는 현실의 시간을 잊음으로써 현실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가 위치한 현실의 공간에는 가을이 없다. 그러나 화자는 여전히 현실의 계절체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4계절 세분화된 계절을 망각하지 않는 이상 그는 가을이 없는 남국의 계절체계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한다. 그의 관념중 일부는 현실의 계절을 빠져나와 가을이 있는 관념의 계절을 재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의 계절을 넘어선 계절은 일반적인 시간개념에서처럼 천천히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관념이 언제 어디서든 상관없이 불쑥 재생될 수 있듯이 관념 속의 계절은 우연히 마주치듯, 누군가 가져다놓은 듯이 공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즉 화자는 관념 속의 계절을 통해 현실의 계절의 법칙인 ‘온다’를 깨뜨리고 ‘만났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만남은 ‘무한히 즐거운 자극’이 되였다.   관념세계의 스펙트럼-군중에서 개인까지, 투쟁에서 수혜까지 각기 다른 주제와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네편의 수필은 저마다 다른 층 우에서 관념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눈섭이 없는 녀자〉에서는 없는 것의 존재함을 보여준다. 또한 〈눈섭이 없는 녀자〉에서는 ‘관념’들을 물리적 실제로 만들어낸다.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에서는 군중과 개인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직접적으로 관념세계를 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은  〈눈섭이 없는 녀자〉와 〈나에게는 매일 하루가 챙겨진다〉에서 다뤄지고 있는 다수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두 작품에 등장하는 다수의 존재들의 성질을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에서는 군중의 다수의 의견들 속에서 고독해지는 화자를 그리고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여기에서의 의견이라는 것은 관념에 해당하기도 한다. 따라서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에서도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관념세계 속의 군중·타자들과 나·개인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에게는 매일 하루가 챙겨진다〉에서는 ‘나’의 분렬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분렬된 수많은 미시적 군중이자 타자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눈섭이 없는 녀자〉,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 〈나에게는 매일 하루가 챙겨진다〉는 각각 관념세계에 존재하는 ‘타자들의 집단(군중)-타자들과 개인-미시적인 타자와 미시적 개인’을 그리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점진적으로 그 관념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이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나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점차 더 작은 존재, 더 작은 개인에 초점을 맞춰가고 있는 것이다. 즉 관념세계의 거시적인 사회를 그린 후에 그 안의 미시적인 구체적 존재를 그리는 것이다. 허무궁은 군중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제시함으로써 관념세계의 실존적 성격을 부여한다. 한편 〈눈섭이 없는 녀자〉,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 〈나에게는 매일 하루가 챙겨진다〉는 순차적으로 군중·타자들의 공포스러운 거대한 힘을 묘사하는 데에서 시작해 군중·타자 앞에서 용기를 내는 개인을 묘사하는 것으로 초점을 이동시킨다. 즉 관념세계의 존재들의 부정성을 강조하다가 점차 긍정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부정성과 긍정성은 전체적인 초점에만 그칠 뿐 화자는 관념세계 자체에 대한 부정성이나 긍정성을 확정적으로 부여하지 않는다. 화자는 자연계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전달하듯 담담하게 관념세계에 관한 일들을 전달한다. 관념세계는 실제 현실의 세계와 같이 무위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은 관념세계에 대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대응은 투쟁이 될 수도 있고 단순한 반응에 불과할 수도 있고 수혜일 수도 있다. 〈고독으로 리해하는 민주와 집중〉, 〈나에게는 매일 하루가 챙겨진다〉, 〈감지하는 가을〉에 나타난 화자는 점차 세계에 대한 대응을 ‘투쟁-반응-수혜’로 바꿔간다. 이는 인간의 세계에 대한 ‘부정-긍정’의 스펙트럼을 꼼꼼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관념세계에 실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감지하는 가을〉에서는 관념세계에 대한 긍정성이 최고점에 이른다. 화자가 우연히 행복을 얻었기 때문이다. 〈감지하는 가을〉에서는 앞서 언급한 관념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의 구체성이 최고점에 이른다. 〈감지하는 가을〉에서는 관념세계의 화자·개인에게만 주어진 상황과 또 그 개인의 상황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룸으로써 개인을 좀더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허무궁은 군중에서부터 미시적인 개인까지, 관념세계에 대한 투쟁에서부터 수혜까지 꼼꼼히 그리고 있다. 이러한 넓은 스펙트럼에 이를 만큼 관념세계는 실존하는 것으로 그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허무궁은 관념세계를 실존하는 것처럼 그릴가? 허무궁은 관념세계를 실존으로 그림으로써 세계에 대한 리해의 폭을 크게 확장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허무한 공상에 그쳐 쓸모 없을 것만 같은 생각들은 관념세계를 실존하는 세계로 뒤바꾸는 그의 묘수를 통해 흥미롭고 의미 있는 것으로 뒤바뀐다. 출처:2017 제6호
20    김혁: 떠도는 환상과 그 아래 깊은 골짜기(만필) 댓글:  조회:857  추천:0  2019-07-19
떠도는 환상과 그 아래 깊은 골짜기 -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문학세계 김혁   10월의 점술가(占术家)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조선족 문단에서는 또 한번 내가 맨 첫 사람(?)으로 랑보를 전한 것 같다. 스웨덴 한림원이 10월 5일 저녁 7시경,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이시구로를 선정한 소식이 터져 5분도 안되는 사이 위챗 모멘트에 따끈한 속보를 발표했고 이어 수상자의 십여폭의 사진을 올리며 바다 건너의 소식을 오지의 문객들에게로 속전(俗传)했다. 이튿날에도 관련 인물을 조명하는 글들을 모아 모멘트와 문학 블로그에 륙속 올렸다. 근 10년래 해마다 가을이 오면 나는 ‘랑군의 알성급제 빌고 기다리는 춘향’의 심정이 된다. 그리고는 수상자들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글들을 평론, 칼럼, 만필 등 형식으로 시효성 있게 여러 간행물에 소개해왔다. 어떤 이들에게는 해마다 되풀이하는 나의 ‘짓거리’가 한갖 ‘호사가(好事家)’의 맹랑함으로 보일 터지만 문학의 위상이 사정없이 찬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오늘날에도 문학초학도와도 같은 초심을 간직한 나의 이러한 행위들이 아직도 고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동인들과 꿈을 키우고 있는 문학도들에게 응분의 메시지와 기운을 안겨주리라고 나는 아집으로 믿고 있는 터다.   올해도 노벨문학상에 대한 무수한 ‘점괘’들이 빗나갔다.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젊은(력대의 노벨수상자로 비추어보면 60대 초반의 수상자는 파란 청춘이라 해야겠다) 작가가 선정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젊은 데다 대중적 인지도 높은 편이 아니여서 상대적으로 수상 가능성이 낮게 점쳐졌다. 사실 돌이켜보면 흥감스러운 ‘문학 점술가’들에게서 근년래 노벨문학상 예측이 한번도 제대로 점쳐진 적이 없다. 사실 나는 은근히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번에는 수상할 수 있지 않을가 하고 심중으로 점쳐보았었다. 하지만 하루키는 그야말로 ‘노벨상의 불운한  아이콘’이였다. (올해 금방 나온 그의 신작 를 남먼저 읽고 “역시 무라카미” 하고 감흥을 머금었었는데…) 또 한번의 하루키의 좌절에 그의 전부의 작품을 읽었고 오랜 마니아를 자처했던 나는 저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흘리고 말았다. 어제도 그제도 하루키를 두고 흘렸던 꼭같은 탄식이였다. 다행히 하루키는 이시구로와 절친한 사이로 “동시대에 이시구로라는 작가와 함께 할 수 있어 큰 기쁨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루키는 2010년 영국에서 출간된 연구서 《가즈오 이시구로―현대 비평의 시간》 서문을 맡은 적 있는데 “지금까지 이시구로의 작품을 읽어오면서 실망하거나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한번도 없다”고 서문에 썼다. 나와 같은 하루키의 골수팬들은 이 같은 사실로 하루키의 또 한번의 노벨문학상 좌절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무라카미 하루키가 10년이 넘는 노벨문학상 단골후보였던 것처럼 연거퍼 ‘고배’를 마신 또 한 사람이 있다. 한국의 원로시인 고은할아버지이다. 문학상 발표를 불과 이틀 앞두고 문학상을 점치는 사이트(영국에 진짜로 그런 사이트들이 있다고 한다)들에서 10위에서 4위로 갑자기 순위가 뛰여올라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왕년처럼 또 기자들이 온 하루 시인 할배의 집앞에서 우르르 카메라를 들고 포진하고 기다렸다. 역시 꼭같은 진부한 풍경을 연출하며 돌아서고 말았다. 하지만 감질나게 기다렸던 베일을 벗고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수상자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나는 또한 환성을 질렀다. 뜻밖에 수상자는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작가였다. (솔직히 재작년에는 수상자로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세이비치라의 이름이 호명되자 생경함에 우두망찰 굳어져버리기도 했었다.) 이시구로는 사실 영화로 퍽 오래 전에 접했다. 영국의 원로배우 안소니 홉킨스의 주연으로 된 영화 《남아있는 나날(长日留痕)》로 이시구로의 작품을 접했다. 문단에서도 꽤 알려진 극성스러운 영화광인 나였기에 거의 20여년 전인 95년경에 이미 이 영화를 접했다. 물론 그 때는 이 영화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안소니 홉킨스라는 배우에 매료되여 보았고 그 때 벌써 이 작품 DVD를 소장해두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그 날 저녁으로 이 영화를 빼곡한 CD장 더미에서 기어이 찾아내여 영화 케이스의 겉장을 찍어서는 위챗 모멘트에 올렸다. 안소니 홉킨스는 《침묵하는 양》이라는 영화로 오스카 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널리 알려진 배우이다. 영화의 그 원작소설 을 우리 말로는 1990년대 초반 할빈의 《송화강》지에서 련재한 데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수상소식을 접하고 《남아있는 나날》을 다시 보았다.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 대작인 《쉰들러의 명단》에 비견할 만큼 오스카상 수상 호성이 높은 영화였다. 안소니 홉킨스는 《남아있는 나날》에서의 열연으로 1994년 런던영화비평가협회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다시 보니 그야말로 이시구로의 원작의 진수를 그대로 소화해낸 완성도 높은 영화였다. 십여년 전에는 어떤 중년 집사의 사랑을 그린 로맨틱 영화 정도로 알고 보았으니 내가 이시구로의 인물들이 겪어낸 복잡한 회한을 제대로 알고 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시구로의 수상 소식을 접하고 다시 꺼내본 영화는 나에게 전혀 다른 감수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몇해 전 상해에서 소집한 로신문학원 강습반에서 늦깎이 공부를 할 때 복단대학의 캠퍼스내 서점에서 이시구로의 소설 《우리가 고아였을 때》와 《남아있는 나날》을 사들여 소장했었다. (《우리가 고아였을 때》의 중역본은 그 제목이 《상해고아(上海孤儿)》이다. 소설이 1930년대의 상해를 소재로 했기 때문.) 그 외도 한국의 지인에게 부탁하여 《위로받지 못한 자》 등을 소장하여 그의 8부 되는 작품중 5부를 이미 소장하고 읽었었다.    이시구로의 수상과 함께 이런 통계가 나왔다. 영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는 2007년 도리스 레싱 이후로는 10년 만이다. 일본계로는 1968년 저 유명한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1994년에는 오에 겐자부로에 이어 이시구로가 세번째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 이런 통계도 있다. 이시구로의 수상으로 력대 동양인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1913년 인도 시인 타고르, 1968년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1994년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2000년 프랑스 국적의 중국인 고행건(高行健), 2012년 중국의 막언 등 총 6명이 됐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지역이나 성별, 쟝르적 측면에서 ‘문학 점술가’들 그리고 연구가들에게 복잡한 난제를 안겨주었다. 그가 일본계 영국인이였기 때문이다. 동년에 영국으로 이주했다고 하니 어릴 때부터 떠돌이의 운명이 락인되여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 부유하는 그의 년보를 세독(细读)하기로 하자.   부유하는 년보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 11월 8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여났다. 여섯살 나던 해 아버지가 영국 국립해양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두 녀동생과 함께 가족을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가족이 정착한 런던 부근의 자그만 현성은 추리소설 대가 ‘애거사 크리스티 미스터리의 배경이 될 법한 호젓한 곳’이였다. 그래서인지 소년 이시구로는 추리소설에 빠져들었고 다른 책들에는 무관심했다. 음악에 호감을 보여 다섯살부터 피아노를 쳤고 열다섯에는 기타를 시작했다. 영국 켄트대학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해 100곡 이상을 작곡했지만 여기저기에서 거절만 당했다. 소설을 발표하기 전 작사, 작곡, 자창의 싱어송라이터를 꿈꾸어온 경력이 있기에 그의 작품에서는 팝가수의 노래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 모티프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또한 부드럽고 정교하게 흘러가다가 말미에는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잔잔한 클래식 같은 힘을 발휘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영국인 안해는 남편의 미래를 실패한 록스타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사회복지사 사업을 하면서 어쩌다 지원한 문예창작 석사과정에 덜컥 합격했고 결국 1981년 세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 이듬해인 198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탄 피폭의 아픔을 그린 소설 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로써 전업작가의 생활을 시작했고 영국 시민권도 취득했다. 1986년 를 발표하면서 유수의 문학상들을 수상했고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다. 불과 3년 만에 세계 3대 문학상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1989년 로 수상한 것이다. 그로써 세계에 문명(文名)을 알렸고 세계적인 작가의 반렬에 올랐다. 이 소설은 영국의 톱배우 안소니 홉킨스와 에마 톰슨의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일본말 못하는 서른다섯 일본계 영국인에게 부커상을 안겨준 작품 은 그 전성기의 서막이였다. 1995년에 을 발표했다. 2000년에 펴낸 《우리가 고아였을 때》가 또 부커상 후보로 선정되였다. 2005년에 《날 떠나지 마》를 출간했고 몇해 후 작품이 동명 영화로 제작되였다. 대영제국 훈장, 프랑스 문예훈장, 전미 비평가협회상 등 묵직한 상들을 련이어 받았고 2008년에는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명단에 그 이름을 올렸다. 데뷔 이후로 꾸준히 장편창작에 매진하다가 2009년에 첫 단편소설집 《녹턴: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가지 이야기》를 출간했다. 2015년 신작 장편 《파묻힌 거인》을 출간했다. 조선민족 문학과도 인연이 닿을듯,  2017년 제7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 5명에 이름을 올렸으나 수상은 그와 같은 영국 작가인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에게 돌아갔다. 펴내는 작품마다 편편이 묵직한 상들을 연거번거 수상했지만 한국에서만 유독 그에게 린색했던 셈이다.   유려한 문체와 다양한 쟝르: 대표작 순람 노벨상위원회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에는 위대한 정서적인 힘이 있다”면서 “강력한 정서적 힘을 지닌 작품 속에서 인간을 세계와 이어주는 환상의 심연을 드러냈다”라고 선정리유를 밝혔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35년간의 집필 기간 동안 여덟부 정도의 작품을 남긴 과작(寡作)의 작가이다. 하지만 편편마다 유수의 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그의 창작성향과 매력을 충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중 적지 않게 소장하고 읽어봤으므로 나의 열독 리력에 의해 또 유관 평문들을 다듬어 모아 그중 대표작으로 일컫는 몇부를 소개하기로 한다.         《창백한 언덕의 풍경》(한국 민음사, 2012년 출간.) 1982년에 발표된 이시구로의 첫 장편이다. 태평양 전쟁과 원자폭탄 투하 이후 일본의 황량한 풍경을 투명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그려보이고 있다. 중년의 녀인 에츠코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여나 영국에 살고 있다. 일본인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첫째 딸은 자살하고 남편과는 사별했다. 영국인 두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 니키와 함께 에츠코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 둘 회상해나간다. 회상 속에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지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이고 련결된다. 작품은 한 과부의 시선을 빌어 나가사키의 파괴와 재건을 이야기한다. 원폭 이후의 일본을 보여주지만 막상 작품은 원폭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일본 재래의 ‘원폭문학’과는 다르다. 작품은 과장된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담담한 서술로 “피여오르는 원자폭탄의 버섯구름 하나 없이, 폭격의 굉음, 처절한 비명 하나 없이” 인간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보이고 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될 때 이시구로의 어머니가 현장에 있었다. 당시 10대 후반의 나이였던 어머니는 폭탄파편에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이런 가계사가 녹아있는 작품이다. 첫 작품으로 이시구로는 “ ‘영국 문학의 새로운 사자’의 출현을 알린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한국 민음사, 2015년 출간.) 작품은 1945년 패전 이후 재건을 겪고 있는 일본의 어느 도시를 무대로 펼쳐진다. 은퇴한 화가 마스지 오노는 스승의 순수 예술적 정신을 배신하고 전쟁과 천황을 찬양하는 그림을 제작하여 명예와 부를 누린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 둘째딸 노리코가 어느 명망 있는 집안과 혼담이 오가고 친지들은 맞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오노의 과거사에 대해 미리 조치를 취해놓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우려한다. 오노는 자신으로 인해 둘째딸의 혼사길이 막힐 것을 념려하여 과거의 인물들을 한명씩 찾아가기 시작하고 그렇게 오노의 과거 행적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오노는 과거 일본의 그릇된 외교정책을 옹호했다는 점으로 신세대로부터 비난받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손자로 대표되는 근대 세계의 리상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다. ‘부유하는 세상’이라는 단어에 담긴 중의적인 의미가 이 소설에서 지닌 뜻은 특별하다. 한 화가의 내면에 몰아치는 현실 참여에 대한 욕구와 신념, 반대로 세상과 동떨어져 예술가의 기존 예술계의 관행 사이에서 인간 오노는 고뇌하고 비난받는다. 강력한 심리적 디테일이 보여주는 작품은 엄청난 심리적 압박상황에 놓인 화자를 내세워 인간의 헛된 신념과 그 기억을 거슬러올라가며 전후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한 화가의 삶에 대입해 해부하듯 그려낸다.   《남아있는 나날(长日留痕)》(译林出版社, 2011년 출간.) 유서 깊은 귀족 저택의 장원을 자신의 세상 전부로 여기고 집사로서 평생을 보낸 남자의  6일간의 려행을 그렸다. 집사 스티븐스는 주인의 저택이 판매되자 저택의 옛 동료였던 켄턴을 찾아 6일간의 려정에 나선다. 그의 회고 속에 30년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금씩 밝혀진다. 그가 평생 헌신해온 영국 최고 저택의 주인이 나치 지지자였음을 알면서 스티븐스는 허망한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맹목적인 믿음으로 모셨던 이미 죽은 주인이 고용주로서는 훌륭한 사람이였다고 생각하는 스티븐스는 이 괴리 때문에 괴로워한다. 집사로서 직업의식이 투철한 그는 일외의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을 옆에서 지키지 못한 것, 자신에게 다가왔던 켄턴에게도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채우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 떠나가는 것조차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던 자신을 다시 떠올리며 회한을 머금게 된다. 스스로 개인적인 삶을 철저히 무시하며 살아왔지만 스티븐스는 과연 자신이 제대로 살아온 것인지 회의를 가진다. 그는 인생의 황혼기에 와서야 소박하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작품은 스티븐스의 가족과 련인 그리고 30여년간 모셔온 옛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근대와 현대가 뒤섞이면서 가치관의 대혼란이 나타난 1930년대 영국의 격동기를 들여다본다. 특히 인생의 황혼 녘에 깨달아버린 잃어버린 사랑의 허망함과 애잔함에 관해 내밀하게 써내려갔다. 이 소설은 큰 찬사 속에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사람들은 이시구로가 도착하기 훨씬 전 영국에서 사라진 문화를 그가 어떻게 이렇게 훌륭하게 그려냈는지 감탄해마지 않아했다. 개인의 인생과 격변하던 시대에 대한 력사적 조망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세심하고도 폭 넓은 통찰력으로 인간의 품위에 대해 말한 작품은 이 때까지 발표됐던 이시구로 소설들 중 가장 성공하였다는 평을 받는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无可慰藉)》(상해역문(译文)출판사, 2013년 출간.) 초현실적인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현대인의 쓸쓸한 자화상과 심리를 그려낸 작품이다. 《남아있는 나날》로 맨부커상 소설부문을 수상한 후, 이시구로의 다음 소설은 놀랍고도 대담한 일탈을 보여줬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은 과감하게 그의 이전 작품들의 형식과 주제를 무너뜨렸다. 몽환적인 배경에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는 초기 작 세편과는 달리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인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피아니스트 라이더는 연주려행차 중부 유럽의 어느 소도시를 방문한다. 이름도 없는 이 가공의 도시에서 시간과 공간은 크게 뒤틀려있다. 여기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황당무계하여 꿈인지 현실인지 종잡을 수 없다.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한 남자의 인생 전체가 가상의 도시에서 한 시간대에 펼쳐진다. 작품은 젊은 날 놓쳐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난날에 대한 회한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초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고아였을 때(上海孤儿)》(역림출판사, 2011년 출간.) 작품은 이시구로의 개인적 체험이 가장 많이 담긴 사적인 소설로 꼽힌다. 1930년대의 상해를 배경으로 중국에서 태여나 자랐던 영국 소년의 어린 시절 추억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아편을 수입해 중국인들에게 파는 상해 주재 영국기업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상해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질 만큼 아름답고 우아한 어머니와 어린 소년 크리스토퍼는 상해의 외국인 조계지를 고향으로 여기며 자란다.  그러나 크리스토퍼의 어머니는 중국인을 아편중독에 빠뜨리는 데 일조하는 남편 회사의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아편수입 반대활동에도 참여한다. 그러다 크리스토퍼가 열살이 되던 무렵, 부모님이 차례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된 크리스토퍼는 영국의 이모에게 보내지고 거기서 상류층 청년으로 자란다. 몇해 후, 영국 최고의 사립탐정이 된 크리스토퍼는 어렸을 적 상해에서 실종된 부모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상해를 찾는다. 세밀한 조사와 어린 시절의 흐릿한 기억을 되살리며 과거로 거슬러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사를 계속해나갈수록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이 감추고 있던 추악한 비밀에 대해 깨닫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이시구로는 고전적인 추리소설들을 패러디한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동년의 극적 사건을 통해 정체성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보여준 소설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 질투, 배신, 충격적인 비밀을 깨닫게 되는 반전이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순수함과 그 리면에 감추어진 비밀을 서서히 밝혀가는 긴박감이 더해져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다시 부커상 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된 이 소설 속에서 고국은 영국이되 중국에서 태여나 정체성을 고민하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작자 이시구로의 개인적 체험이 진하게 녹아들어있다.   《나를 보내지 마》(한국민음사, 2009년 출간.) 1990년대 후반 영국, 캐시는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기숙학교를 졸업한 후 간호사로 10여년간 일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복제인간이다. 심장병이나 암에 걸린 인간에게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 배양된 복제아이들은 외부와 차단된 기숙사에서 자란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르고 미래에 대해 저마다 신나는 꿈을 꾸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 미래는 없다. 그저 장기기증을 하다가 죽는 길 하나 뿐이다. 복제인간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이 캐시의 담담한 독백으로 전개되는 슬프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복제인간의 삶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서 과학환상소설, 성장소설로도 읽힐 수 있다.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성을 진지하게 성찰한 작품은 2005년 부커상 소설 부문을 비롯해 다른 명망 있는 문학상들의 최종 후보작에 그리고 ‘타임이 선정한 2005년 최고의 소설’ 및 ‘100대 영문 소설’로 선정되였다. 1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였고 2010년에 영화로도 각색되였다.   들쭉날쭉이 없이 편편마다 수작을 펴낸 가즈오 이시구로, 무엇을 고르건 장편소설 7권, 단편집 1권이란 한 작가를 알아가기에는 적절한 분량이요, 독서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다.   ‘낯설고 깊은 상실’ 속 본령의 감성 스웨덴 한림원이 이시구로를 노벨상 수상자로 선택한 것은 지난 2년간의 수상자를 감안하면 ‘전통문학’으로의 복귀로 읽힌다. 앞서 2015년 논픽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난해에는 록가수 밥 딜런이 이례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림원은 크고 작은 론난에 시달렸었다. 매체들은 알렉시예비치와 딜런에게 노벨상을 안기며 2년간 파격을 택했던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다시 전통으로 되돌아가 가장 문학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는 순 문학을 꾸준히 창작해온 꾸준함에 대한 존경과 경의로도 읽힌다. 이시구로는 가장 문학의 본령에 충실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은 인간의 존재 자체에 주목하고 인간의 삶의 방식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두면서 1인칭 화자의 시선을 통해 내면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린다. 그의 작품 속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기억, 회상, 상실, 그것에 대한 극복의지 등이 모두 녹아있다. 흔히 영국을 배경으로 세밀한 감정을 포착하고 인간의 고독한 정서를 내밀하게 그려냈다. 그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절제와 장악력은 독자의 마음속에 잔이랑을 일으키다가 결국은 큰 파고(波高)를 일으키며 삶에 관한 궁극적인 인식에 도달하게 만든다. 이런 점들로 인해 이시구로는 ‘현대 영미문학의 표본’으로 통하기도 한다. 이시구로는 영화와 TV 씨나리오를 쓰기도 했고 심지어 재즈가수 음반의 작사가로도 이름을 올리며 전방위적 글쓰기를 진행해왔다. 노래말이 그의 1인칭 시점의 화자 서술방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그는 말한 바 있다. 그의 소설은 거의 모두가 1인칭 시점인데 화자의 담담한 회상은 조용히 일상의 균렬들을 서서히 드러내며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남아있는 나날》의 대성공은 일본 이야기와 영국 이야기를 자유롭게 구사하던 이시구로에게 뭐든 시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를 주었다. 그리하여 력사소설에서 추리소설, 과학환상소설, 판타지까지 다양한 쟝르를 섭렵했다. 이시구로는 지금까지 쟝르물로 구분될 수 있는 작품을 세권 정도 썼다.   하나는 영국과 상해를 배경으로 한 추리물로 볼 수 있는 《우리가 고아였을 때》, 다른 하나는 과학환상소설로 볼 수 있는 《나를 보내지 마》, 마지막은 고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로 볼 수 있는 《파묻힌 거인》이다. 이 소설들은 론난을 일으켰다. 론난을 주도한 이들은 이른바 순수문학주의를 주창하는 이들이였다. “왜 이토록 훌륭한 재능을 그토록 하찮은 쟝르에 랑비하는가?”  쟝르소설을 경원시(敬远视)하던 사람들은 이시구로의 신작을 두고 혼란에 빠졌고 그 론난은 《나를 보내지 마》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하지만 론난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내지 마》는 《타임》 창간이래 발표된 가장 위대한 영어 소설 100편 중 하나로 선정됐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이시구로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이시구로는 쟝르소설의 형식을 빌어 사람들을 탐구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전문 쟝르 작가가 가는 길과는 많이 다른 곳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쟝르상의 모든 구분을 무화시켜버리면서 다만 문학의 본령에서만이 경험할 수 있는 령혼을 뒤흔드는 순간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노벨상을 받은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쟝르소설을 쓴 사람들은 많다. 이시구로가 태여난 일본만 봐도 그에 앞서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 역시 과학환상소설을 펴냈었다. 이시구로가 이민해 살고 있는 영국에서는 10년 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중 상당수가 과학환상소설과 판타지의 령역의 작품들이다. 또 우리가 익숙한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송이 장미》의 윌리엄 포크너, 중국 소재의 《대지》의 펄 벅, 20세기 최고의 극작가 버나드 쇼, 《분노한 포도》의 존 스타인벡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모두 추리소설을 창작한 바 있다. 여전히 쟝르물로서의 특수성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제 추리물이나 과학환상소설 쟝르는 누구나 꺼내 쓸 수 있는 이야기의 도구가 되였다. 중국에서도 지난해 류자흔(刘慈欣)의 과학환상소설 《삼체(三体)》가 중국인 최초로 ‘과학환상소설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하면서 중국 문단에서 과학환상소설 창작열이 뒤미처 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읽었다고 해서 더욱 화제가 된 《삼체(三体)》는 중국 국내에서만도 300만부라는 판매량을 기록했고 영화로도 제작되였다. 쟝르문학과 순수문학을 구분하는 론쟁에 대한 의미도 낡은 사유로 치부되고 그 경계가 허물어져버린 오늘날 우리 조선족문단에서는 아직도 쟝르물들을 하위문학으로 취급하며 지어 간행물에 싣기조차 주저하는데 이는 웃기는, 락오된 발상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10여년 전 이제는 간행물 이름이 개명이 돼버린 《문학과 예술》지에 쟝르물들이 우리 문단에도 나와야 한다며 문학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평론을 실어 질호한 적 있다. 또한 조선족문단 처음인 판타지 소설 《불의 제전》으로 2005년 ‘연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금껏 이러한 쟝르물들이 우리 문단에는 아직도 거의 한편도 없이 감감 전무한 실정이다. 오늘날 같은 정보와 문자의 과잉 시대에는 문학과 독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시점에서 쟝르물들이 우리가 흔히 접해온 근대 문학 양태의 외양과 다르다고 해서 쉽게 배척하는 것은 날로 변화하고 있는 문학을 동조하지 못하는 게으름과 무지의 소산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이시구로는 종당에는 “우리 시대의 상실을 유려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 상실의 정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여나 1960년 영국으로 가족이 이민을 떠나면서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이방인 처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신의 고향인 일본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영국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던 탓일가? 그는 작가란 “트라우마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뭔가 평형을 잃은, 어렸을 때 절대 낫지 않는 일종의 상처를 받은” 존재들이라면서 “몇주씩 방에 갇혀서 힘들게 소설을 쓰는 것은 말하자면 그 상처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라고 언급한 적도 있다. 여러 지역을 부유하며 꿈꾸어온 갖가지 환상으로 결국에는 온 누리 인간의 삶이라는 ‘심연’을 같은 정서의 눈길로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섯살에 영국에 이민 왔기 때문에 영어 구사에 막힘이 없지만 그럼에도 이시구로는 “영어는 일본어 만큼 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필명으로 쓴다면 사람들은 그 작품이 일본에서 태여난 사람이 쓴 소설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국인 또는 일본인 중 어느 쪽의 특성이 강하냐 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이시구로는 “일본어를 쓰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부모가 일본적 가치를 가르치는 데 책임감을 가졌지만 사람은 3분의 2는 무엇이고 나머지는 무엇이라는 식으로 명쾌하게 나눠지지 않는다”면서 “점점 더 세계는 문화적 인종적 배경이 섞인 재미있는 균일 혼합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구로는 영국이 ‘백인들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선입견도 없고 자신이 ‘낯선 서양땅의 동양인 남성’이라는 정체성에도 그닥 집착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렇게 동양인이면서도 결코 동양인 티를 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력사와 사회 속에서 개인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를 아름다운 문체로 나직하고 운률 있게 펴낸 그의 작품 속에는 사실 특유의 동양적 분위기가 조용히 숨겨져있다.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에 들 만큼 현대 영미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를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명성보다는 동양과 서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시구로만의 ‘낯설고 깊은 상실’이라는 평가를 받게 한 신분과 배경이다. 그렇게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며 반복되는 정체성에 대한 확인을 비현실적인 소설세계에서 구축하다가 작품의 최후의 순간 이시구로는 자신의 현실에 도달하곤 한다. 하여 비평가들은 이시구로의 문학에 대해 “인간의 결함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것이 서양문학의 비극적 핵심인데 이를 동양적인 감성과 잘 결합했다”고 정평을 내렸다.   일본 출신의 영국 소설가가 영어로 쓴 일본, 영국 그리고 중국 배경의 이야기를 조선말 혹은 중문으로 읽는다는 것은 흥미롭다. 앞서 언급했다 싶이 필자는 그의 다섯부의 작품중 3부는 중문으로, 2부는 조선문으로 읽었다. 그리고는 다시 중문으로 읽었던 그의 작품들을 한국어 판으로 구입했다. 이제 서로 다른 어종이 주는 감수와 차이를 대조하면서 읽어갈 참이다. 우리 조선족 작가들의 작품에도 이처럼 이민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중국의 소수민족 작가로 분류되여 무어지고 발전해온 우리 조선족문단은 거대한 중국의 주류문단과 접목하고 동질성을 가진 한국문단, 나아가 요원한 세계문단에로 나아가려고 오래동안 꿈꾸어왔고 그 고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바다 건너에서 일본계 영국인이 세계문단 굴지의 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우리도 지정학적인 인식과 자세를 갖추고 오지의 편협한 사유에서 벗어나 변방에서 더 넓고 큰 중심으로 다가가야만 이에 우리 문학의 비전이 있지 않을가 하는 명료한 사색을 다시금 되뇌고 머금어본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이시구로는 영국국영방송 BBC를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은 대단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밟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매우 감동적이다”, “불확실한 순간에 있는 우리에게 노벨상이 긍정적인 힘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학적 랑보와 경험들이 불확실한 과정과 침체기에 있는 우리 조선족문단에서도 환상을 버리지 않고 ‘심연’에서 솟아오를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참고문헌: 《지금 여기를 다르게 보여주는 나직한 목소리》 (민음 북클럼) 김남주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한국민음사 2015년 출간) 邱华栋 (凤凰文化 2017年10月15日) 梅丽 (上海外国语大学法学院 副教授) (豆瓣读书2014年5月20日) (环球时报2017年10月9日) 田切让(2016北京大学 硕士研究生) 출처:2017 제6호
19    <장백산>2017.5 루계215 댓글:  조회:747  추천:1  2019-07-18
장백산 루계215  2017제5호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그가 가는 곳(단편소설)  허련순 산 자의 고별식(수필)  허련순 이색적인 수필과 소설 읽기(작품평)  우상렬 뿌리는 껍질 안에서 길을 찾는다(작가평)  엄정자   작가를 말하다 생활 속에서 소설을 낚아올리다(대담)  림원춘&김홍란   기획련재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 련재5)  김혁   조광명소설코너 위대한 밥(중편소설)  조광명   계렬수필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수필)  리화 페의 슬픔과 미학(수필)  리화 그리움의 단상(수필)  리화 탐닉으로의 유혹,내적 희구로의 전환(수필평)  김홍월   시인 시전 겨울강과 사슴(시 외5수)  리성비 리성비 시의 새로운 경제(시평)  최삼룡   창작마당 붉은 달(단편소설)  장선자 출세와 효도의 갈림길에서(수필)  허룡석 인생의 첫 단추(수필)  김두필 죽음은 삶의 결정(수필)  김철웅 담배불(시 외2수)  김철호 진달래(시 외2수)  윤청남 가을무정(시)  임은숙   인물탐방 궁극 부장의 ‘오색인생’(인물탐방)  신기덕   중국문학 새끼새들이 노래 부른다(단편소설)  왕회우 지음                                   김홍란 옮김   장편소설련재 산귀신(장편소설 련재17)  림원춘 해볕이 춥다(장편소설 련재6)  구용기 무소유(장편소설 련재끝)  정용호
18    왕회우: 새끼새들이 노래 부른다(단편소설) 댓글:  조회:532  추천:0  2019-07-18
새끼새들이 노래 부른다 왕회우 지음 · 김홍란 옮김   1.   내가 살고 있는 곤난해결주택단지(解困小区)의 이름은 동태가원(同泰家园)이며 성서(城西) 평안가 66번지에 위치해있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단지의 이름과 거리와 골목 이름이 길해서인지 수년간 주택단지를 드나들 때마다 나는 이곳의 공기로부터 류달리 상서로운 냄새를 맡게 되는 것 같다. 일년 전, 나는 예상 밖에 새 이웃을 발견하게 되였으며 주택단지 안에 갈수록 짙게 풍기는 상서로운 분위기는 바로 지척에 있는 이 새 이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였다.   그것은 겨울의 어느 날 오전이였다. 내가 다니는 택배(快递)회사가 잠시 체화(滞货)되는 바람에 출근을 가지 않고 있었다. 어쩌다 한가한 시간을 가진 나는 너무 심심하여 침실의 북향 창문에 매달려 바깥풍경을 구경하였다. 그러던 나는 부지불식간에 뭔가를 본 것 같았다. 맞은켠 아빠트의 굽인돌이에 있는 에어컨 도관 구멍에서 작은 머리 같은 게 살짝 보였다가는 신속히 사라지는 것을 어렴풋이 보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이어 나는 그 작은 머리가 또다시 불쑥 나오는 걸 제대로 포착했다. 분명히 어떤 살아있는 생명체가 그 에어컨 도관 구멍 안에서 기생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저 어두운 구멍 안을 드나드는 건 대체 뭘가? 이는 어릴 적부터 강했던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쥐와 박쥐라는 두가지 동물이였다. 그러나 전자는 금시 나에게 부정당했다. 쥐일 리가 없다. 쥐는 굴을 저렇게 높은 곳에 만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박쥐일 확률이 더 높다. 도대체 뭘가? 호기심 많은 나는 줄곧 창문에 매달려 그 구멍어구를 지켜보았다. 반시간이 지나 피로한 두 눈이 시큼해날 무렵, 드디여 참새 한마리가 날아왔다. 참새는 우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나무가지에 앉아 잠간 숨을 돌렸다. 그런 후 서두르지 않고 주위를 몇바퀴 돌더니 그제야 문득 그 구멍 안으로 신속히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 참새 두마리가 선후로 짝을 지어서 그 곳에서 날아나왔다… 그제야 나는 완벽하게 수수께끼를 맞출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 곳은 새둥지였던 것이다! 오, 워낙은 집주인에게 버림당한 에어컨 도관이 귀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쌍의 참새들의 따뜻한 ‘집’으로 변하였구나!   참새의 ‘집’이 마치 남의 집에 곁방살이하는 것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 콘크리트 도시에서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가장 리상적인 ‘집’인 셈이다. 인류의 전기드릴에 의해 뚫린 구멍은 정제된 것이고 정밀하며 또한 그 어떤 절벽에 있는 천연동굴보다도 더 안전하고 믿음이 갔다. 견고한 아빠트가 무너지지 않는 한 새둥지는 비바람 속에서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니까. 도시에서는 사처로 유렵(游猎)다니는 매와 새매가 거의 없고 자유롭게 타고 오르는 뱀과 전갈도 보기 드물며 날이 갈수록 살이 찌고 있는 집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미끄럽고 가파로운 그 높은 벽을 기어오를가봐 근심할 필요는 더구나 없다. 새둥지는 천적에서 멀리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도 멀리 피하였으며 장난꾸러기 애들로부터 뜻밖에 인재를 받을 일은 더구나 없다. 그러고 보면 참새의 가족은 정말 무탈해보였다. 그 당시 내가 속으로 부러워하며 되뇌였던 말이 생각난다. “련애중에 있는 인류는 모두 바보스럽고 련애중에 있는 참새는 참으로 총명하구나. 저 총명한 새들이 정말 제대로 보금자리를 찾아낸 걸 봐. 나도 달마다 주택 대부금을 천여원씩 내야 하는데 저 둘은 면비로 아빠트에 살고 있잖아.”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단지 내의 C동에서 산다. 애초에 가격을 고려하여 아빠트 가장 서쪽 벽을 끼고 있는 소형주택을 구매했던 것이다. 새둥지는 맞은편 D동의 남향집 굽인돌이 쪽에 위치하고 있다. 역시 3층이며 가장 변두리의 창문 웃쪽에 있다. 새둥지는 나의 침실에서 그닥 멀지 않으며 직선거리는 틀림없이 10메터를 초과하지 않는다. 새둥지는 서쪽 사랑채에 상당하며 오전에만 해빛을 볼 수 있다. 난방 시각에서 보면 새둥지는 가장 서쪽벽을 끼고 있는 나의 집보다 못하다.   온 겨울 동안 두마리의 참새는 둥지 안에 있는 시간이 적었으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둥지 밖의 해빛 아래에서 서로 기대고 있었다. 매번 찬바람이 솔솔 부는 속에 전화선 우에 앉아있는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부터 동병상련의 친절감이 생기군 했다.   봄이 찾아오고 꽃들이 활짝 피자 참새들은 더는 둥지 옆의 전화선 우에만 앉아있지 않았으며 새둥지 주변의 광활한 천지에서 활약하였다. 그들은 주변 몇십메터의 범위 내에서 나풀나풀 춤을 추었고 특히는 아빠트단지 안 록화지대의 높고 낮은 나무가지에서 재롱 부리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정녕 열련중에 있는 두마리의 장년에 들어선 참새임에 틀림없다. 봄 내내 두마리의 참새는 줄곧 고도로 되는 흥분상태에 빠져있었으며 마치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듯했다… 그야말로 기세 드높고 장기간 지속된 사랑의 쇼였다.   나의 수많은 아침잠은 이 이웃의 지절대는 소리에 깨여나군 한다. 나는 필경 서른을 넘긴 로총각임에도 아직 결혼은 막연하고 출세는 가망이 없다. 생계를 위해 매일마다 어김없이 전동차를 몰고 도시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녀야 하며 나귀마냥 계단을 오르내리며 우편물을 날라줘야 한다. 기분이 나쁠 때면 참새들이 일부러 나 앞에서 뭔가를 과시하는 것 같았으며 그럴 때면 부러움으로부터 질투와 미움으로 바뀌군 했다. 기분이 더 악화되면 나는 지어 어릴 때의 고무총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릴 때야말로 고려하는 게 많지 않았었다. 저토록 방비를 안하는 참새는 진작 나의 묘준 목표가 되였을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참새들이 추운지, 련애를 하는지, 집이 있는지 하는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내 기분이 극도로 나쁠 때에 언뜻 스치는 생각이다. 실제로 나의 기분이 늘 그렇게 엉망인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나는 선하고 착할 때가 더 많다. 나의 기분이 구름이 많이 끼였다가 조금이라도 개이는 기미가 보이면 나는 또다시 그들의 모습에서 평온한 냄새를 맡아낼 수가 있다. 내 마음 안의 불만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즐겁게 노는 두마리의 참새는 더구나 사랑스럽게 보이고 평범하고 단조롭게 들리던 그들의 지절대는 소리도 점점 귀맛 좋게 들린다…   초여름이 되자 두마리의 참새에게 자식이 생긴 것 같다. 자식들을 돌보느라 두마리 참새가 지절대던 소리는 분명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그 소리는 원래보다 훨씬 급촉해졌고 쉬여있었다. 그들은 훨씬 바빠진 것 같았으며 매일 끊임없이 둥지를 드나들었다.   자식들이 제때에 배를 불리도록 하기 위해 두마리의 참새는 분주하게 날아다녀야만 했다. 몇번이라도 더 날아다니기 위해 그들은 지어 줄곧 행적을 감추어오던 천성마저 막무가내로 포기해야 했다. 그들이 입에 곤충 같은 식물을 물고 총망히 날아와서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새도 없이 바로 새둥지로 들어가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때로 귀 기울여 들어보면 새끼새들이 부모들을 보고는 음식물을 서로 먹겠다고 다투면서 기뻐 어쩔 줄 몰라 내는 짹짹거리는 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듯하다. 구멍에서 새여나오는 것처럼 어렴풋하고 미약하게 들리던 그 날의 짹짹거리던 소리 역시 바로 저 둥근 구멍 안의 아득히 깊은 곳에서 새여나왔었다…     2.   침실 맞은켠의 아늑한 새둥지는 내 동년의 기억을 자주 떠올리게 한다. 나의 동년은 농촌에서 보냈다. 그 시절, 우리 고향의 언어환경에는 ‘참새(麻雀)’라는 학명이 아직 없었으며 나는 ‘집새(家雀儿)’라고만 알고 있었다. 도시에 와서 생활한 지 20여년이 되였지만 아버지와 년장자들은 지금도 습관적으로 ‘집새’라고 부른다.   ‘집새’는 일년 사계절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계절 따라 찾아오는 ‘산새(山雀儿, 侯鸟)’보다 훨씬 령리하다. ‘집새’가 비록 늘 눈 가까이에 있지만 아이들이 잡자고 하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도무지 잡지 못하면 어떤 애들은 애가 나서 그놈들을 ‘집도적’이라고 모질게 욕한다. ‘집새’는 비록 인류와 조석으로 함께 지내며 공존하지만 그러나 절대 인류의 사육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불행하게 잡힌 성년의 ‘집새’는 먹는 걸 거부하며 최후의 결과는 거의다 숨이 끊어져 죽는 것이다(어릴 때부터 인공적으로 키워진 ‘집새’는 례외). 그들의 이런 강직한 기개를 매우 숭경하다 보니 나는 ‘집새’에 대한 인상이 줄곧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집새’거나 ‘산새’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농촌아이들의 야만적인 오락의 리상적인 상대로 충당되였었다. 세세대대를 이어 ‘집새’와 ‘산새’들은 줄곧 농촌아이들과 함께 했으며 ‘새’잡이 놀음은 거의 모든 농촌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지울 수 없는 생명적 표기였다.    봄이 되면 여러 품종의 ‘산새’들은 련애시기에 들어선다. ‘산새’들은 워낙부터 상대적으로 단순한데 련애를 할 때면 더욱 둔감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산새’는 아이들의 우선적인 사냥물이 되였다… ‘산새’들이 오면 아이들의 손에 들린 고무총과 허리에 차여있던 덫은 몽땅 사용되며 뒤이어 ‘유혹’을 핵심으로 하는 살륙유희가 한바탕 진행된다.   해마다 ‘곡우’가 지나면 농촌에는 각종 ‘산새’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종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수량도 방대하다. 낮에 들에서 싸운 아이들은 밤이면 꿈에 온통 날아다니는 새들로 벅적인다. ‘소만’ 전후에는 살륙유희의 최고봉을 이룬다. 어른들이 농사일로 바쁠 때면 아이들은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쟁기를 뒤따르고 한편으로는 반공개된 덫을 놓으며 또 한편으로는 각양각색의 ‘산새’시신들의 전리품을 줏는다… 어쩌다 살아있는 새를 잡게 되면 아이들은 설이라도 쇨 것처럼 온 들판을 뛰여다니며 한참이나 새를 휘둘러댄다…   찌물쿠는 점심이 되면 아이들은 덫을 몽땅 집중시켜서는 희소하나 물이 적은 작은 물구덩이 주변에 촘촘히 포위시켜놓는다… 그런 방법으로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러 오는 ‘산새’들을 잡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마냥 좋아하는 이런 날도 오래 가지 못한다. 봄과 여름 사이의 짧은 환절기는 금방 지나가고 ‘하지’가 되면 ‘산새’들은 더는 떼를 지어서 단체로 먹거리를 찾으러 다니지 않는다. 그들은 앞다투어 가정을 이루고 산림 속으로 흩어져가서 각자의 생활을 시작한다. 해마다 이 시기면 아이들은 불현듯 ‘산새’들의 그림자를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으며 그제서야 오랜 동반자인 ‘집새’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또 습관적으로 자꾸 잊어버리는 한가지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일년 사계절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집새’들이야말로 수시로 아이들을 동반하여 생사유희를 놀아줄 마지막 배역이라는 것을.   ‘집새’를 잡는 말만 꺼내면 아이들은 당장에서 흥분해한다. 그들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동분서주하고 온 정신을 집중하며 재미에 빠져 피곤한 줄을 모른다.   내가 도시의 소학교에 온 후부터는 농촌의 그런 광활한 전야가 없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쩍하면 학교 교수청사의 천장에 올라가 ‘집새’둥지를 들춘다. 때로 아이들은 새끼‘집새’와 새둥지를 함께 들고 내려와서 갖고 놀기도 한다. 아이들은 새끼‘집새’가 인공양육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기어이 며칠간 키우면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새끼‘집새’가 결국 엉망진창으로 죽고 나서야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 다음의 살아있는 목표를 찾아간다… 그 때는 아이들이 ‘집새’의 느낌을 배려하는 걸 못 배웠고 ‘집새’들이 그들의 손안에서 살아주기만을 희망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소유하고 손에 들고 감상했었다. 만약 자신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없었다면 ‘집새’들은 잘 살았을 것이란 것에 대해 아이들은 종래로 상상해보지 못했다.   어느 한번 나는 학교의 천장에 올라가서 새끼‘집새’를 꺼냈다가 아직 털이 자라지 않은 걸 보고 너무 작아 재미 없을 것 같아서 다시 둥지에 넣어주었다. 십여일이 지나 다시 가보니 새끼‘집새’들은 몽땅 날아가고 없었다. 비록 한둥지의 ‘집새’를 몽땅 잃어버려 여러날 동안 짜증 나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중요한 지식을 얻기도 했다. 그로부터 나는 ‘집새’는 부화해서부터 날 수 있을 때까지 정확히 며칠이 걸리는지를 알았다 - 겨우 반달간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때로 아이들은 지꿎은 장난을 치며 금방 잡은 새끼‘집새’를 한자 길이의 끈에 묶어서 땅에다 고정시키고는 주변에 덫을 한바퀴 놓아둔다. 그렇게 해서 새끼를 보러 온 ‘집새’의 엄마와 아빠를 잡는 것이다. 새끼‘집새’의 여린 부름소리에 평소에 총명하던 어른 ‘집새’들의 지능지수는 급격히 떨어진다. 굶주리고 있는 가련한 새끼 앞에서 어른 ‘집새’들 눈에는 덫 우에 물려있는 살찐 벌레만 보일 뿐이고 놀랍게도 거대한 음모와 치명적인 위험을 무시하게 된다…   지나간 일은 차마 다시 돌이키기 싫다. 지금 생각해보면 농촌에서든 도시에서든 아이들의 놀이방식은 참으로 너무나 잔혹했다. 가련한 새끼‘집새’들에게는 정말 과분할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일이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더없이 즐거워하면서 ‘집새’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근년에 와서 도시에 사는 ‘집새’가 농촌보다 더 많아졌다. 원인은 ‘집새’들이 농촌에서 더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농약과 비료의 대량적인 사용이 한개 측면이고 어떤 촌민들은 지어 새들이 종자를 훔쳐먹는 걸 방지한다며 종자를 뿌릴 때 많은 종자들에 아예 독을 묻히기까지 한다. 장기간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집새’들은 부득불 농촌을 멀리 떠나 할 수 없이 몹시 붐비는 도시에 이사와서 살길을 찾게 된다. ‘집새’들은 도시에서 곤충과 곡류를 찾아먹기가 쉽지 않았으며 도시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주어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도시사람들과 똑같이 혼탁한 공기를 마시고 도시사람들과 똑같이 찝찝한 물을 마시였다…   ‘집새’의 털은 워낙 갈색이였는데 나는 도시에서 가지각색의 ‘집새’를 자주 보게 된다. 검은 것도 있고 흰 것도 있고 빨간 것도 있으며 지어 노란색과 분홍색을 띤 것도 있었다... 공업오염이 갈수록 엄중해지는 도시는 한창 ‘집새’들을 알락달락하게 단장시키고 있었다.   인류의 무절제한 개발은 ‘집새’들의 생활공간을 점점 좁히고 있다. 그럼에도 ‘집새’들은 완강하게 살고 있다. 현재의 그들은 최선을 다해 워낙 적응되지 않던 도시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 아마도 ‘집새’들은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괴로울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집새’들은 정말 쉽지 않다. 앞으론 진짜 잘 대해줘야지.   밤이 깊었다. 바깥에 있는 이웃인 작은 새를 떠올리며 나는 텔레비죤의 소리를 더 낮추었다…     3.   북방도시의 주민들이 겨울을 좀더 무난히 나게 하고 동시에 그에 알맞게 도시의 모습을 미화하기 위해 내가 거주하고 있는 북방도시에서는 한창 대규모적인 주민아빠트 보온개조공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명 난방공사(따뜻한 집 만들기 공사, 暖房子工程)라고 한다. 듣는 말에 의하면 공사를 끝낸 집은 겨울에 실내온도가 평균 3도 내지 5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난방이 줄곧 잘 안되던 아빠트단지의 주민들에게는 진정 하늘에서 호박이 넝쿨 채로 떨어지는 셈이다. 몇년을 기다려 이번엔 끝내 동태가원의 차례가 되였다. 오랜 세월 추위에 떨던 아빠트단지의 주민들은 다들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서로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다.    나도 물론 이 고대하는 사람들 속의 한 성원이며 그중에서도 문제해결이 절박히 수요되는 ‘심각한 재해를 입은 가구’이다. 몇년 전부터 나는 이런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렸었다. 우리 집은 서쪽 벽에 기대여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아빠트 맨 서쪽벽을 차지한 영낙없는 ‘제일 서쪽집’이였다. 워낙 주택단지 내의 난방이 그닥 좋지 않은데다 우리 집 온도는 다른 집보다 더 낮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겨울만 되면 끊임없이 재채기를 하고 코물이 흐르는 건 말할 것 없고 그보다 더 짜증나는 건 서쪽벽 전체에 습기가 차는 것이다. 공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나의 옷장과 책장은 몽땅 방의 서쪽면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차거운 벽은 옷장과 책장의 뒤면에 항상 서리가 끼게 하였으며 습기가 심하다 보니 서쪽 벽에는 온통 보기 흉한 검은 반점들이 더덕더덕 생기였다. 우리 집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건 비현실적인 일이며 그런 것은 이미 하나의 지나친 욕망으로 진화되였다. 옷장 안의 옷이 눅눅해지든 말든 나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가 보물처럼 아끼는 그림책이 책장 안에서 훼손되지 않을가가 가장 근심된다. 나는 별다른 애호가 없으며 그림책 모으기가 유일한 애호이다. 그러다 보니 매년 겨울과 봄이면 나는 속상한 마음으로 책장 안을 여러차례 뒤적거리며 책을 정성스레 살펴보군 한다.    1층에 사는 이웃인 장할아버지는 원적이 산동이며 늘 짙은 산동방언으로 말한다.    “다들 그러는데 난방공사가 끝나면 서쪽집들이 습기 차고 추운 문제가 몽땅 해결된다우.”   장할아버지는 또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이상하잖수? 적잖은 아빠트단지들에서 원래는 잘 안 팔리던 제일 서쪽 집이 지금은 불티나게 팔린다우. 사람들 인상에 상하좌우의 중간에 끼여있는 집이 좋다던 게 지금은 되려 잘 안 팔린다우.”   나와 함께 일하는 어느 동료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중간 집은 때론 화장실 냄새가 역하고 음식 만들 때의 연기도 잘 안 빠져나가지… 그러나 제일 가에 있는 집은 보통 개방식 화장실과 통풍 잘되는 주방을 갖추고 있어.   한동안 나는 난방공사에 관련된 일에 특별히 신경이 쓰이였다. 내가 관찰한 데 의하면 도시의 난방공사는 흔히 봄에 시작한다. 로동자들은 자신을 도시의 반공중에 매달아놓고는 고도가 다르고 신구가 일치하지 않은 아빠트 벽체를 오르내리면서 원래 회색 투성이던 아빠트 벽체에 흰색의 옷을 튼실하게 입혀놓는다. 도시건설부문에서는 한지역, 한지역 기획하고 로동자들은 한단지, 한단지씩 시공한다. 그렇게 날마다, 달마다 쉬임없이 일하고 해를 거듭하며 일하는 그들은 해마다 늦은 가을, 얼기 전까지 바삐 보낸다. 비록 로동자들이 고생이 많고 하는 일이 매우 위험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의 몸이 하루빨리 우리 단지 내의 아빠트 벽체에 걸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때로 나는 물건을 배달하는 틈을 타서 그중의 한 사람을 오래도록 주시하는데 그들이 공중에서 무거운 두 팔로 이마에 흐르는 시커먼 땀을 닦아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때로는 그들이 높은 곳의 모래바람 속에서 야채말이 떡이거나 건두부 대파 말이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에때우는 걸 볼 수도 있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높은 곳에서 한번 내려오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줄곧 선의적인 호기심을 갖고 있다.     4.   아버지가 사는 단지는 성동(城东)에 있으며 난방공사를 한달 전에 벌써 끝냈다. ‘아버지의 날’에 나는 시간 내여 아버지를 보러 갔다. 속으로는 가는 김에 시공 후의 모습이 어떤지도 보고 싶었다. 아빠트단지 전체의 모습이 완전히 새롭게 변하여 몰라볼 지경이였다. 원래 허술하기 짝이 없던 낡은 아빠트는 로동자들의 표구와 분칠을 거쳐 새 아빠트처럼 변했다. 각종 불법광고에다 벗겨진 벽, 인위적인 상처 등 눈 뜨고 볼 수 없던 모든 흉한 것들이 몽땅 다 없어졌다. 정말 너무 멋졌다!   아버지가 그러는데 멀리 출장 갔다가 돌아온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변화가 너무 커서 자기 집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단다.   풍습이 있어서 줄곧 추운 걸 두려워하시던 아버지는 기뻐서 나에게 난방공사가 가져다줄 여러가지 좋은 점을 말씀해주셨다. 아버지는 신문 한장을 찾아들고 말씀했다. 여기 신문에서도 소개했잖니. 공사가 끝나면 집이 따뜻해질 뿐만 아니라 소음도 막고 지어 방화작용도 할 수 있다니 사전에 전혀 생각 못한 것들이 아니구 뭐냐.   아버지는 난방공사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말씀하시더니 봄날에 본 또 다른 얘기를 하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는 단 한가지에 대해 말씀했다.   “이 공사가 좋긴 하지. 사람들이 따뜻하게 살 수 있으니까. 근데 집새들이 고생이란다. 로동자들이 시공할 때면 처마 밑의 새둥지를 허물 수 밖에 없어. 집새들이 언제 이런 상황을 당해봤겠니? 마구 날며 듣기 거북한 소리로 막 울어대지 않구 뭐겠냐. 어느 날엔가는 낮잠도 안 자고 온 하루 울어대더라. 이젠 한달 넘게 지났건만 아직도 어떤 새들은 돌아갈 집이 없어서 마구 날아다닌단다… 보고 있자니 너무 불쌍해서 참.”   처음에 나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그냥 례의적으로 아버지를 따라 몇번 탄식했을 뿐이다. 그러나 한참 지나 나는 별안간 리유 없이 우려되고 근심스러워졌다. 그렇지, 우리 집 맞은켠에 있는 새둥지는 그 때 가서 어떻게 되는 거지? 역시 철거해야 하는 건가? 나는 마음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이번 기회에 새둥지도 우리랑 함께 따뜻해지겠다고 생각했는데 철거라니? 가장 안전하던 곳이 갑자기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변한단 말인가?   우리 단지의 난방공사는 그 시간배치가 참으로 리상적이지 못했다. 이른봄에 시공을 시작했다면 새끼참새들이 아직 부화되지 않아서 참새 부부가 알을 포기한 채 날아가버리면 그만일 거고 만약 늦은 가을에 시공한다면 새끼 참새들은 이미 날아다닐 수 있겠는데 이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한여름에 배치되다니 이 시점의 새끼참새는 한창 자라날 때다… 참새는 다른 포유동물과 달라서 위험에 맞닥뜨리면 새끼들을 마음대로 옮겨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근심은 나로 하여금 다시 동년의 기억을 훑게 했다. 성인 참새가 언제 둥지를 틀고 언제 알을 낳고 언제 알을 품던가? 새끼참새는 며칠이면 부화되고 며칠이면 털이 무성해지고 며칠이면 날 수 있던가… 나는 조금도 빈틈없이 계산하고 또 계산해보았다. 그 때 가서 새끼 참새들이 못 날면 어쩌지? 그렇다고 난방공사를 중도에 멈출 수도 없는 일이잖아.   애초에 나는 총명한 참새들이 버려진 에어컨 도관을 리용한 것에 갈채를 보냈었고 사람들이 안 쓰는 에어컨 도관을 버리지 않은 것에 갈채를 보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심으로부터 참새를 원망하고 인류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참새야, 참새야, 너희들이 너무 소홀했구나. 갈수록 미덥지 않은 인류를 어쩌면 그리도 쉽게 믿어버리냐? 인류여, 인류여, 너희들은 너무나 책임감이 없구나. 왜 진작 페기한 에어컨 도관 구멍을 틀어막지 않았지? 더 질 높은 삶을 살기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는 건 크게 비난할 바 못 되지만 그러나 사용하지 않을 때면 도관 구멍을 막아버렸어야지! 그랬다면 참새는 여기에 집을 잡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근심스러운 결과에 닥치지도 않았을 게 아닌가…   요즘 나는 내내 이런 근심과 우려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 퇴근하면 될수록 빨리 집에 돌아왔고 모든 교제활동을 거절한 채 시시각각 난방공사의 진전을 주목했다. 마치 공사와 밀접한 상관이 있는 공사감독일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혹시 그 때 가서 로동자들이 묘한 방법을 생각해낼 수도 있겠지? 로동자들도 그 작은 생명을 무시하진 않을 거야? 여러 날 동안 나는 줄곧 이런 생각만 하느라 한밤중이 지난 시간에야 가까스로 잠들 수 있었다.      5.   워낙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C동의 시공이 끝나면 일심정력으로 일하러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맞은켠 D동을 언제 시공하고 또 어떻게 시공하는지 하는 것은 지금 내가 무엇보다 면밀하게 주시하는 초점문제로 되였다.    C동 주민아빠트 시공이 끝났으니 정상 대로 하면 며칠 안 지나 곧 D동 차례가 되는 것이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나는 가능하게 시공을 시작할 것이란 근심에 일하면서도 집중이 잘 안되였다.   그 후의 며칠간 나는 줄곧 이런 상태에 처해있었다. 나는 내내 마음이 조급해났고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했다. 택배회사의 일이 조금만 덜 긴장해도 나는 틈을 타서 집으로 달려오군 했다. 내가 현장에 없는 시간에 D동의 벽에 난 구멍 안의 새둥지가 로동자들에 의해 막혀버릴가봐 겁났던 것이다.   내 손에 있는 우편물 몇개를 제때에 배달하지 못한 관계로 고객들이 회사 총부에 신고전화를 했다. 항상 온화하던 주관경리 ‘안경쟁이’마저 나한테 화를 내며 ‘계속 할 생각이냐?’고 련거퍼 세번이나 물었다. 후날 총화대회에서도 ‘안경쟁이’는 은근히 헐뜯는 어투로 나를 몇마디 찔렀다.   금요일이면 택배회사는 일이 많다. 나는 다시는 차실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허둥대며 모든 우편물을 몽땅 배달하고 나니 다섯시가 넘었으며 그제야 나는 급급히 집으로 향했다. 길에는 차량이 가장 붐빌 때라 길이 심하게 막혔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해질 녘이 되였으며 로동자들은 아니나 다를가 D동 주민아빠트에서 시공하고 있었다. 로동자들은 한창 아래서부터 우로 올라가며 벽에다 스치로폼(泡沫砖)을 붙이고 있었으며 내가 대문에 들어섰을 때는 로동자들이 2층까지 끝낸 상태였다.   저녁밥을 지어야 하건만 나의 눈은 그냥 유리 너머 맞은켠 D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로동자들이 그 구멍 안의 새둥지와 새끼참새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두고 보는 중이다. 나는 급해서 안달이 난 참새 부모들을 곧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즙액이 포만한 벌레를 입에 문 채 불안한 마음으로 로동자들의 머리 우에서 뱅뱅 돌고 있었다…   동태가원은 록화가 잘되여있었다. 주민아빠트 아래에는 라이라크나무가 수북이 자라고 있었고 가지 끝에서는 한창 분홍색 꽃이 활짝 피여있었다. 참새 부모들은 너무 지치면 라이라크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쉬였다. 그러나 잠간 숨을 돌리고는 곧바로 가장 마음이 죄여드는 그 곳으로 날아간다…   반공중에 매달려있는 로동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구멍 속의 새둥지를 처리할 기미가 안 보였으며 숙련된 솜씨로 계속하여 한장 또 한장의 스치로폼을 신속히 벽에 붙이였다… 로동자들의 빨간색 안전모가 이미 그 구멍어구에 닿았고 손에 들린 스치로폼으로 마침 그 곳을 맞춰보고 있었으며 아직 점착제를 안 붙였을 뿐이다… 그 시각 참새 부모들은 자지러지듯 울어댔다. 그들은 최대의 노력을 다하고 가장 큰 모험도 무릅쓰며 끊임없이 굴어구로 돌격했다. 굴어구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1초 밖에 안되더라도 그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할 것 같았다…   황혼빛 속에 멀리서 바라보니 그것은 두마리의 참새가 무척 초조해서 비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두개의 돌덩이가 컴컴한 굴어구를 끊임없이 치고 있다고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일각도 지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창문을 열고 맞은켠의 로동자들을 향해 고함질렀다.   “저기요! 방법 좀 대보세요. 그 구멍을 막아버리지 말라구요! 안 보여요? 그건 새둥지라구요! 그 안에 새끼새가 몇마리나 있어요!”   하지만 로동자들은 내가 뭐라고 고함지르는지 못 알아들은 것 같다. 그냥 굳은 표정으로 소리나는 내 쪽을 얼핏 보았을 뿐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막 아래층으로 내려가 로동자들을 제지하려는데 로동자들이 갑자기 일을 멈추었다.    어떤 로동자가 먼곳에서 큰소리로 하는 말이 들렸다.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으니 일 끝내고 가서 술이나 마시기오…”   술의 력량이 나의 고함소리보다 훨씬 큰가 보다. 나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창턱에 기대여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로동자들이 내려오기 바쁘게 두마리의 참새는 성급히 둥지 안으로 들어갔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두마리의 참새 부모들이 이 밤이 마지막 밤이 되리란 걸 안다고 한들 그들에겐 이미 새끼새들에게 배불리 먹여 마지막 길을 보내줄 능력이 없었다. 참새는 야맹증이 있어서 어두워진 날씨는 그들이 나가서 먹이를 찾을 수 없게 했다. 온종일 별로 음식을 먹지 못한 새끼들은 영낙없이 썰썰해나는 배를 안고 야릇한 이 밤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것이 부모님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란 걸 모르고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참새의 부모들은 끝내 둥지  안의 자식들과 만났다. 총명한 참새의 부모들도 이 밤이 자식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밤이란 걸 알가? 그들은 한없이 조용하게 있었으며 더는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낮 동안 내내 불안정하던 새둥지는 어둠 속에서 드디여 안정을 찾았다. 시커먼 둥근 구멍은 마치 부들부들 떨면서 이제 닥쳐올 려명을 피하려는 것 같다…   천둥소리가 한바탕 울고 지나가더니 곧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다. 하늘은 갑자기 훨씬 캄캄해졌고 나는 번개불을 빌어 비 속에서 흠뻑 젖은 채 살길을 갈구하고 있는 동굴어구를 어렴풋이 보았다.   인류의 행복한 거주공사가 같은 처마 아래에 사는 참새들에게는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 재난을 가져다주게 된다는 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참새 일가족에게는 금년의 한여름에 들어서서부터 평안가 66번지의 동태가원이 더는 평화롭지 않았다.   나는 온밤 실면하면서 동년시대의 아이들이 새를 박해하던 여러가지 정경을 떠올렸고 한동안 새에 대한 동정과 참회 속에 잠기였다…     6.   이튿날은 토요일이였고 나는 오후근무였다. 온밤 눈을 못 붙인 나는 아침잠도 자고 싶지 않아 일찌감치 일어나 창문에 매달려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온 단지 안이 쥐죽은듯 고요했다. 출근을 안해도 되여서 9시가 넘도록 기다렸지만 일하러 나오는 로동자들이 안 보였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웃쪽으로 눈을 주어 당장 흰색 스치로폼(泡沫砖)에 막혀버릴 것 같은 굴어구와 그 스치로폼 우를 드나드는 두마리의 참새를 곧바로 발견했다. 그 참새들도 갑자기 공사가 정지된 것에 이상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비몽사몽 같아 갈팡질팡하면서 끊임없이 날아들어갔다가 날아나오면서 본능적이고 기계적으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식들을 위해 최후의 헌신을 다하는 것이다…   후에야 나는 부근의 다른 아빠트단지의 로동자들도 몽땅 일을 멈추고 단체로 말없이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회의를 하는 것 같았으나 또 사회를 하거나 회의를 모집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 보기엔 누군가 또 로동자들의 로임을 제때에 지불하지 않은 게 틀림없다. 신문에서 봤는데 많은 로동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로임을 요구한다고 한다.   두시간 후에야 나는 장할아버지한테서 사실의 진상을 알게 되였다. 워낙은 어제 갑자기 내린 뢰우에 다른 한 단지에서 일하던 농민공 두명이 의외로 작업대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며 부상 1명에 사망 1명의 가슴 아픈 사고가 생겼다고 한다. 내 심정도 따라서 무거워졌다. 어른이 계시고 아이가 딸렸을 텐데 그들의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도시사람들이 겨울에 좀더 따뜻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두 농민공은 소중한 몸과 목숨을 바쳤다. 멀리 고향에 있는 그들의 부모님과 처자와 자식들은 온기를 얻지도 못한 채 이제 한가족이 의지하고 살던 기둥을 잃어버린 것이다.   가족들은 마침내 각자의 먼 고향으로부터 달려왔다. 불현듯 혈육을 잃은 가족들은 지극히 비통해하며 구곡간장이 녹을 정도로 울고불고했다. 하지만 아무리 울고불고한들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이고 산 자는 또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다른 산 사람을 향해 배상금을 좀더 많이 얻어내거나 나중엔 사망자 가족의 이름으로 친지도 없는 사람한테서 될수록 많은 돈을 받아내는 수 밖에 없다.   그 때로부터 우리 아빠트단지 내의 공기 속에 자꾸 불길한 징조가 감도는 듯했다. 며칠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공사를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한창 진행중이던 공사는 줄곧 그렇게 방치되여있었다… 장할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로동자들은 단체로 사망자와 부상자의 가족을 도와 청부업자한테 법으로 따지며 배상금을 독촉하고 있다고 한다.   장할아버지는 또 난방공사가 비록 정부에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은 청부업자가 책임진다고 한다. 로동자들도 모두 청부업자가 직접 모집한 것이니 사상자가 생기면 청부업자가 가장 골치 아픈 것이다. 이건 거액의 배상금문제와 관련되며 잘못하면 일년을 헛수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엔 로동자가 반칙작업을 했는지, 개인상해보험에 들었는지, 도시호구가 맞는지 등등 많은 복잡한 문제가 관련되며 그것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담판을 해야 했다…   나는 은근히 난방공사가 이대로 오래 정체되여 굴 속 새둥지 안의 새끼새들이 날아나올 때까지 지연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난방공사는 수시로 시공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시공복구시간을 잠시 확정하지 못할 뿐이다. 며칠 안 지나서 평안가 66번지 동태가원의 난방공사는 틀림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로동자들의 고공작업은 확실히 위험하다. 제발 다시는 사고가 안 생겼으면 좋겠고 안전하고 순조롭게 시공하기를 기대한다. 로동자들도 안전하고 참새 가족도 안전하기를… 나는 속으로 묵묵히 기도했다.   나는 매일 밖에 나가 일해야 하기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집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후에 나는 아래층의 장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나의 근심거리를 그이에게 말씀해드리면서 나를 도와 시시각각 새둥지를 지켜보다가 필요할 땐 꼭 나한테 전화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장할아버지는 내 말귀를 잘못 알아듣는 것 같다. 그이는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나한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우? 대체 무슨 말이우?”   나중에야 장할아버지는 내 체면을 많이 봐준다는듯 요구를 들어주겠다며 내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이는 무뚝뚝하게 한마디 보충했다.    “쓸모 없당께. 내가 봐선 쓸모가 없어.”     7.   이틀 후, 택배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장할아버지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장할아버지는 급할수록 산동 방언이 더 짙었다. 그이가 전화기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말해도 쓸모 없는지라. 로동자들이 당장 시공 시작할 모양인 게 얼씨덩 오게.”   나는 그릇 안의 음식을 다 먹을 념도 못한 채 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를 굴려서 평안가 66번지를 향해 질주했다…   내가 집에 당도했을 때 로동자들은 이미 일을 시작했다. 역시 그 몇사람이였는데 정해진 순서대로 그 날 중단했던 나머지 일을 이어서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하는 게 질서정연했고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검고 여윈 로동자가 그 날 재여놓은 스치로폼에 점토를 발라 그 굴어구에 붙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두마리의 참새 부모는 한창 그들의 머리 우에서 맴돌고 있었다. 두마리의 참새는 며칠 전 황혼이 깃들던 그 때보다 더 절박하고 더 처참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검고 여윈 로동자의 기계적인 동작은 물론 무서웠으며 그의 굳어있는 표정은 더더욱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그들은 마치 정상적인 정감이 없는듯 줄곧 머리 우에서 감돌며 비명을 지르는 참새들을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하고 있었다. 설마 생존의 압력이 너무 커서 그들로 하여금 원래는 마땅히 돌봐야 할 생활의 세부를 돌볼 겨를이 없게 만들었단 말인가?    나는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가며 고함질렀다.   “새가 우는 소리 안 들려요? 제발 빌어요. 수고스럽지만 스치로폼에 구멍 내서 새들에게 출구 좀 만들어주면 안되겠어요?”   내가 아무리 말해도 검고 여윈 로동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윽하여 그 검고 여윈 로동자는 무던한 동북말투로 나를 보고 말했다.   “형님, 안됩니다. 어떻게 가능하죠? 도시의 아빠트 벽들에는 새둥지가 가득한데 그걸 다 남기면 벽이 온통 채가 되지 뭡니까?”   “이번만 파격적으로 하면 어때요? 딱 이것만요?”   나는 계속 간절히 부탁했다.   “형님, 정말 안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검고 여윈 로동자는 또다시 그 스치로폼을 들어올렸다.   급해난 나는 말이 거칠어졌다.   “xx, 왜 안돼?”   검고 여윈 로동자는 여전히 무던한 말투로 말했다.   “형님, 안된다면 안되는 겁니다.”   나는 끝내 억제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고함질렀다.   “제기랄, 넌 량심도 없냐? 정 안되면 그 안에 있는 새끼새들은 꺼내줄 수 있겠지?”   검고 여윈 로동자는 나와 맞대고 고함지르지 않고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했다.   “형님도 살려낼 수 없어요. 참새는 성격이 아주 셉니다. 우린 농촌에서 와서 참새에 대해 잘 알죠.”   “그럼 그렇게 숨 막혀 죽게 하겠다는 거야?”   나는 올라오는 화를 겨우 참아냈다.    “형님, 그래요. 저기… 이게 가장 좋은 결과입니다. 솔직히 저희들도 새끼새들이 숨 막혀 죽는 게 싫어요. 자세하게 보지도 못한다구요. 실제로 도무지 도울 방법이 없잖아요. 두드려볼 수 밖에 없어요. 날 수 있는 것들은 될수록 날아가게 하죠.”   “허튼소리 하고 있네! 그런다고 무슨 소용 있지? 새끼새들이 금방 털이 나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날 수 있냐고!”   나는 울부짖었다.   검고 여윈 로동자는 말대꾸를 하지 않고 대신 또 다른 도리를 설명했다.   “형님, 그리고 벽에다 구멍을 내면 공사검수에 통과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로임을 못 받게 되고 우린 헛수고만 하게 되죠. 저희들은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합니다 형님.”   “딱 이것 하나만 구멍 남기는 걸로 하자구. 내가 대신 로임 주면 될 거 아닌가?”   나는 화가 치밀어오른 채 최후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형님, 그래도 안돼요. 진짜 소용 없다구요. 설령 파격적으로 이 구멍을 안 막는다고 해도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은 참새는 다시는 새둥지로 경솔하게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형님, 우린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검고 여윈 로동자는 손에 들고 있던 스치로폼을 굴어구에 붙이고 꾹꾹 눌렀다.   나의 심장이 세차게 떨렸다. 총망히 돌아와서 그냥 구경군 노릇 밖에 못할 줄은 생각 밖이다. 그것도 눈을 펀히 뜨고 그 거대한 흰색의 스치로폼이 굴어구를 든든하게 덮어버리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그것은 먹이를 달라고 짹짹거리며 울고 있는 새끼새가 몇마리 그 안에 있는 굴어구였다! 그 굴 안의 몇마리 새끼새의 최후는 과연 어떤 모습일가? 새끼새들은 틀림없이 예전처럼 부모들이 먹이를 가져다주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으니까. 한가닥의 빛이나 한줌의 신선한 공기마저 없어져 새끼새들은 그대로 암흑 속에서 천천히 죽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심장이 칼로 에이는듯 아팠다.   조금 지나니 벽 전체가 온통 흰색으로 변했다. 나는 여태껏 벽 전체가 흰 것이 이토록 공포스러운지 몰랐다! 두마리의 참새 부모는 어찌할 바를 몰라 흰색의 스치로폼으로 뒤덮인 아빠트 벽체에서 미친듯이 오르락내리락 날며 고막을 찢을듯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마치도 악독한 이 세상을 저주하는 것 같았다. 부모새들의 극도에 달한 비명소리는 동병상련에 처한 다른 참새들을 불러왔으며 갈수록 많은 참새들이 이 비명의 대오에 합류했다… 나는 그들이 틀림없이 이 백색의 공포를 눈에다 꼭 기록했을 것이라 믿는다.     8.   그 후의 며칠간, 그 암흑 속의 새끼새 몇마리가 그냥 내 꿈속에서 맴돌며 나로 하여금 텔레비죤 뉴스에서 본 문천대지진 때 영수중학교의 페허 속에 갇힌 아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 당시 나는 내내 아이들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차마 상세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때와 마찬가지로 새끼새들이 이제 어떻게 그 어린 생명을 끝내게 될지 차마 찬찬히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도시의 모든 에어컨 도관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닭창자처럼 각종 모양을 한 채 도시의 아빠트 벽체에 로출되여있는 에어컨 도관을 보면 도시인들의 일관적인 구차하고 지어 허위적인 면을 떠올리게 된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게 어디 이것 하나 뿐이랴. 다른 령역에선 이보다 훨씬 많다. 나는 특히 도시의 아빠트들에서 페기하고 사용하지 않는 에어컨 도관 구멍을 보기 싫다. 불쑥 나타난 그런 블랙홀을 볼 때마다 나는 감정을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이 모골이 송연해지고 소름이 끼친다…   반달이 지나갔다. 아침마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고 더는 나의 아침잠을 깨우는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나는 사는 게 재미가 적어졌다. 창 밖의 나무가지에는 더는 재잘거리는 새가 없었고 라이라크나무도 별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으며 매일매일이 목적없이 적막하고 텅 빈 채 지루하기만 했다…   3개월이 지나갔다. 나는 줄곧 그 참새 부모들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새로 몸 담을 곳을 찾은 것인가? 아니면 화김에 죽어버린  것인가? 나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빠트단지 전체가 말처럼 따뜻해졌다. 우리 집도 전보다 많이 따뜻하다. 나는 더는 재채기를 하지 않았고 더는 코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눈처럼 하얗던 서쪽벽에도 더는 서리가 끼지 않았고 습기가 차지 않았으며 반점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또 자신의 회사를 차렸고 사랑스런 녀자친구도 생겼다. 그럼에도 나는 할 일 없을 때면 여전히 창문을 통해 맞은켠 아빠트의 굽인돌이를 자주 바라보군 한다. 나는 마치 갈수록 맞은켠 아빠트단지 주민들의 진실한 존재에 대해 희미해지는 것 같았고 자꾸만 동태가원 C동의 맞은켠은 D동이 아니라 새끼새들의 가냘픈 묘지 같아 보였다.    또다시 봄이 찾아왔고 창문 밖에서는 어쩌다 멀리서부터 새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창문을 통해 D동 굽인돌이 쪽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것은 정녕 평평하고 튼튼한 아주 큰 벽이였다. 세월이 오래 지남에 따라 나는 마치 환청에 빠지는 모병이 생긴 것 같다. 특히 깊은 밤, 사람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새끼새들이 가느다란 음성으로 “짹짹짹짹” 하고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출처:2017 제5호
17    장선자: 붉은 달(단편소설) 댓글:  조회:767  추천:0  2019-07-18
붉은 달 장선자   1. 언제부턴가 왼쪽 가슴 쪽으로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좁쌀알 만한 것이 한개 나더니 그 주위로 빼곡하게 여러개 나서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열꽃마냥 빨갛고 반달 모양 비슷하게 자리잡은 두드러기는 없어지지도 않고 더 크게 번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동전 크기도 안되는 두드러기를 갖고 병원을 찾으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한심해보일 것이 걱정되여 병원행은 그만두었지만 그냥 놔두기에는 자꾸만 손이 가게 가려웠다. 낮에는 별일 없다가도 잠이 들 무렵이면 어둠과 함께 가려움이 스멀스멀 시작되였다. 달 밝은 한밤에 집을 염탐하는 도적처럼 아주 슬그머니 찾아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손톱으로 빡빡 긁을 만큼 사무치는 가려움이 아니라 은은하고 간질간질하게 퍼지는 가려움이였다. 가려움이 시작되여서 보름이 지나자 자기 전에 먼저 그 부분을 거울에 비춰보는 것이 의례가 되였다. 그 놈들은 달 모양을 이룬 채 하얀 살갗에 문신처럼 박혀있었다. 붉은 달. 오돌오돌 튀여나온 놈은 짜면 빨간 좁쌀알 같은 것이 튀여나올 것만 같았다. K는 그것들을 짜보려다가 생각을 접었다. 왠지 원래 붙어있던 살을 떼내는 것처럼 아프고 자국이 남을 것만 같았다.  K는 할 수 없이 약방을 찾았다. “문신 같네요.” 약방 녀자는 스스럼없이 한껏 보여주는 두드러기를 언뜻 들여다보더니 무심한듯 한마디 던졌다. 그리고는 잠간 망설이다가 습진고약을 떼주면서 며칠 발라보다가 낫지 않으면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피부병은 대개 스트레스가 쌓여 면역력이 떨어져 걸리는 병이라고 덧붙였다.   K는 약방을 나와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눈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K는 거의 석달째 밤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년말이 다가오면서 정부의 회의가 많아지고 또 그 회의자료를 준비하는 데 눈코 뜰 새가 없었다. K는 하루를 팽이처럼 돌아치면서도 늘 둥둥 구름 우를 걷는 기분이였다. 남들은 밤중에도 달리는 야근이 힘들다, 주말에도 편하게 쉬지 못하는 일이 힘들다고 말이 많았지만 K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K는 항상 반듯하게 다린 셔츠 바람으로 사무청사 이곳 저곳을 가볍게 뛰여다녔다. 다들 뒤에서 일 잘하는 로봇이라고 칭찬처럼 비꼬았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았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그동안 명령 대로 움직이기만 했던 로봇은 갑자기 신체구조가 와해되는 느낌을 받았다. 대뇌가 스트레스를 의식하자 그동안 꽁꽁 숨어서 별짓을 다하던 스트레스들이 낄낄 웃으며 단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았던 어깨 중심 부위가 갑자기 무수한 침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왔고 누가 뒤에서 당기는 것처럼 목덜미가 뻐근했다.   K는 갑자기 찾아온 아픔에 뒤목을 부여잡고 한참 서있다가 그 부근에 있는 ‘금새 맹인안마’라고 간판을 건 안마방에 들어갔다. 출퇴근길에 눈에 띄웠던 안마방이였다. 다름이 아니라 가게명 때문이였다. 한자로 보면 ‘금으로 된 새’라는 뜻이였는데 아픈 곳이 ‘금세’ 나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어쩌면 사장이 이를 꾀하고 일부러 그렇게 단 것일지도 모르겠다. 안은 겉모습처럼 화려하고 촌스러웠다. 천정이며 벽에 주렁주렁 단 장식품들이 너무 반짝반짝거려서 무대에 올라선 것마냥 어수선하고 어리둥절한 느낌을 주었다. 계산대가 문 바로 왼쪽에 있었고 중간에는 접대용 쏘파와 유리탁자가 꽉 끼여있었다. 그리고 쏘바 뒤켠으로 그리 길지 않은 좁은 복도가 있었는데 좌우로 작은 방이 서너개는 있는 것 같았다. 맹인 안마방 치고 내용물이 너무 꽉 차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어서 오세요.” 나가려고 돌아서는데 뒤통수로부터 어떤 녀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간 애교가 섞인 듯한 듣기 좋은 목소리이다. 돌아서보니 키가 작고 마른 녀자였다. 눈섭을 덮은 가쯘한 앞머리에 작고 갸름한 얼굴, 거기에 커다란 선글라스가 절반 얼굴을 덮고 있었다. 몸에는 회색 와이샤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샤츠가 너무 커서 무릎까지 내려와있었다. 흑백사진 같다고 할가 그런 가운데 발그스레한 입술만이 오물오물 귀엽게 움직이며 생기를 뿜고 있었다. 가운으로 바꿔입고 마사지 침대에 엎드렸다. 라벤더향이 나기 시작했다. “양초를 켰어요. 냄새가 좋죠?” 녀자는 어깨부터 가볍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낯선 녀자의 향기도 같이 풍겨왔다. “어깨가 많이 뭉쳤네요.” 녀자의 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작은 손은 피아노 건반을 치는 것처럼 리듬을 타면서 바닥 같이 딴딴한 어깨와 잔등을 눌렀다. 심하게 뭉친 부분은 팔뒤꿈치로 풀어주었다. K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팠지만 꾹 참았다. 집에 와서 더운물에 샤와까지 하니 몸이 훨씬 가뿐해졌다. 저도 모르게 그 녀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까만 선글라스 뒤에 숨어있는 두 눈이 궁금했다. 그 검은 선글라스 안에 가려진 두 눈이 마치 무언가를 가득 담고 있는 동굴처럼 느껴졌다.   K는 련속 세날씩 밤잠을 설칠 때면 그 안마방을 찾았다. 신기하게도 녀자의 마사지를 받고 있는 사이에는 잠을 잘 수 있었다. 녀자의 안마방에는 젊고 이쁜 안마사가 셋이나 되였다. 하지만 예약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던 날에도 녀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자기가 직접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녀의 작고 여윈 손은 볼품 없었지만 신기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닿기만 하면 몸에 굳어있던 혈액이 찌릿한 전률을 느끼다가 깊은 잠에서 깨여난 뱀처럼 스르륵 몸 구석구석을 돌면서 소생의 즐거움을 발산했다. 어떤 때에는 요란하게 구불구불 S자를 쳐대고 어떤 때에는 먹이감을 발견하기라도 한듯이 빠르게 직진했다. 또 갑자기 몸이 나른해진 것마냥 동그랗게 꽈리를 틀고 게으름을 피웠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것은 즐거운 려정이였다. 푹신푹신하게 쌓인 겨우내 락엽 밑으로 울퉁불퉁한 나무 그루터를 지나 오불고불 인척이 드문 오솔길을 가로지나고 퐁퐁 생명이 솟는 샘물터의 흥건한 흙에서 몸을 적셔보았다. 화들짝 놀라 정신 없이 몸을 숨기는 쥐를 보면서, 눈 깜짝할 새로 나무 중턱까지 올라가 깜장눈을 반짝거리는 청산가리를 보면서, 짹짹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들을 보면서, 겨우내 허기진 것조차 잊어버린 채 뱀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익숙한 것과 알은 체를 하고 새로운 것과 인사를 나누었다. K는 마음속 깊이 고팠던 것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손이며, 그녀가 피워주는 양초며, 그녀의 웃음마저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겹고 고마웠다.   은싸락이 화사하게 퍼지는 밤, 술이 거나해진 K는 굳이 안마방 문을 두드렸다. 한참 있다가 녀자가 나와서 문을 열어주고는 가게 불을 켰다. K는 마사지 침대에 엎뎌있다가 술내를 풍기며 킥 하고 웃었다. “앞이 안 보이는데 불은 왜 켜?” 내장 깊숙이 파고드는 알콜 때문인지 자꾸만 실없는 소리를 하고 싶었다. “눈은 왜 그렇게 됐지?” 녀자가 어떤 표정이였을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차거운 손이 목에 닿더니 가볍게 주물럭거린다. 힘을 력도 있게 균형적으로 준다. 그러더니 잠결에 녀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릴 때 고향 마을에 쌍둥이가 있었어요. 다들 그 집 할아버지를 백살구집이라고 불렀는데 쌍둥이가 태여난 후로 쌍둥이집이라고 고쳐불렀대요. 그 집 할아버지가 쪽박 차고 두만강을 넘어오면서 백살구 애나무를 갖고 왔는데 그 덕에 연변땅에서도 백살구를 먹게 되였다 그러데요. 아무튼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말랐고 할머니는 키가 작고 통통한 축에 속했어요. 두만강 저쪽 땅에서는 머슴이였는데 이쪽으로 오면서 땅굴을 짓고 부지런히 살림을 가꿔서 남 부럽지 않게 살게 되였지요.  헌데 슬하에 줄줄이 딸만 여섯을 낳다가 마침내 귀한 아들을 보게 되였는데 그 아들이 장가를 가서 쌍둥이 아들을 덜컥 낳으니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겠어요. 헌데 그중 하나가 좀 모자란 놈이였죠. 입이 언청인데다 한손에 손가락이 두개 밖에 없었어요. 다들 임신 때 크게 놀라서 그런게 아닌가 하며 말이 분분했죠. 애 엄마가 임신 여섯달 땐가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오는데 좀 모자란 시집 조카가 그 다리를 훌렁 걸어 넘어뜨렸다고 합디다∼   2. 그 곳은 산과 물을 다 갖춘 풍요지였다. 그 옛날 변강을 지키던 장수들이 오래도록 자리를 잡고 싶어했을 만큼 소소리높은 산은 아츨한 자연요새를 이뤘고 산기슭에서 두만강 쪽으로 훤히 펼쳐진 벌은 넉넉하고 비옥했다. 사람들은 칼날 같이 날이 선 산을 검剑산이라고 불렀다. 검산이 지켜선 드넓은 벌은 금방 해산한 아낙네의 젖무덤마냥 푸근하고 도처에서 달큰한 생명줄기가 솟아오른다고 해서 아낙벌이라고 불렀다. 백살구집은 예로 이 고장에서 소문난 목수였다. 이 동네는 물론 옆동네까지 땅 우에서 굴러다니는 수레바퀴란 바퀴는 모두 그 손을 거쳤는데 어찌나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몇년이고 바꿔달라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처음으로 터를 잡고 든 초가집도 모두 그 손이 만든 작품이였다. 한치 머슴으로 살았던 백살구집한테 이처럼 대단한 손재간이 있을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사람들은 백살구집이 땅굴에서 여섯번째 딸을 잃은 후부터 저런 손재간이 갑자기 생긴 게 아닌가고 가당치도 않은 말들을 했다. 백살구집은 확실히 여섯번짼가 다섯번짼가 하는 딸을 잃었다. 하루종일 황무지를 일구고 오니 폴싹 무너앉은 땅굴이 보였고 허겁지겁 손으로 파보니 일곱달 난 딸자식이 어느새 싸늘하게 숨을 거두고 있었다. 그 이후로 백살구집은 무슨 일을 하나 더 빈틈없이 깐깐히 진행했다. 딸만 줄줄이 낳다가 마지막에 얻은 아들이 장가를 가던 해, 백살구집 로인은 아들딸 자식들을 줄줄이 키운 초가집 앞에 번듯한 기와집을 지었다. 빨간 기와를 얹고 하얀 칠을 한 기와집은 집 뒤에 높지 않은 산을 하얗게 덮은 백살구꽃과 더불어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냈다. 이듬해 백살구꽃이 또 한번 풍경화를 그려낼 즈음 로인은 쌍둥이 손자를 보았다. 그중 작은 아이는 검산의 기운을 타고났다. 버들잎마냥 길게 째진 봉안丹凤眼은 날이 선 검마냥 매끈하고 차거웠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얼굴 뿐만 아니라 성격마저 지 어미를 똑 떼닮은 것 같다고 숙덕거렸다. 아이 엄마는 속이 깊은 녀자였다. 특히 그 기다란 두 눈은 생체가 살지 않는 늪마냥 깊고 아늑했는데 아이를 낳은 다음부터 그 늪에 언뜻언뜻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를 닮은 아이는 나서부터 온순하고 조용했다. 갑자기 잘 빨던 젖꼭지를 빼도 울지도 않고 까맣고 긴 눈으로 엄마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금방 먹고도 또 울어번져지는 언청이형에게 젖꼭지가 물리우는 것을 보고도 아이는 이상하리 만치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아버지가 떠주는 암죽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차차 엄마는 형의 차지가 되고 아이는 자리에 누워서 아버지가 떠주는 암죽을 받아먹게 되였다.  나도 젖. 아이는 분명 저도 젖을 달라고 입을 오무리고 죽을 거부해보았다. 해서 엄마가 가엾은 아이를 안아주려고 품안의 것을 내려놓으면 엄마 품에서 한창 흥창망창 젖을 빨아대던 언청이가 고래고래 목청을 뽑으며 용을 써댔다. 언제나 침착하던 엄마는 힘이 다 빠져서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버렸다. 그렇게 언청이형은 또 거마리가 되여 엄마 품에 딱 달라붙어있었고 아이는 자리에서 눈을 껌벅이며 엄마만 쳐다보았다. 로인은 돼지를 키워도 된다는 정부의 허가가 있어서부터 주욱 굴암퇘지를 키워 새끼치기를 했다. 몇년을 산 굴암퇘지는 중소를 따라갈 만큼 덩치가 육덕지고 컸다. 여러배 치 새끼를 생산한 굴암퇘지는 큰 벼슬아치나 된 것처럼 날이 갈수록 못되게 굴었다. 돼지죽을 줄라 치면 바가지로 한창 구유를 두드리며 소리를 쳐서야 굴 안쪽에서 뻘건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나와서는 삐죽한 코로 돼지죽을 막 휘저어대며 심통을 부렸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동생과 숨박곡질을 놀던 언청이는 높다리 지은  돼지굴 바자를 올라타더니 쿵하고 그만 굴 안에 떨어졌다. 이제 금방 말을 배운 아이는 형이 재롱을 피우는 줄로 알고 눈만 멀뚱하니 뜨고 지켜보기만 했고 높은 데서 떨어진 언청이는 놀란 나머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이 때 지푸라기 속에 태평하게 누워있던 굴암퇘지가 뻘건 두 눈을 뜨더니 거친 코숨을 내쉬며 언청이에게 다가왔다. 돼지는 자신의 거대한 몸집에 놀라서 울어대는 언청이를 한참 지켜보다가 갑자기 화가 난듯 코로 들이박고 입으로 물기 시작했다. 언청이의 아찔한 비명소리에 심히 놀란 아이는 황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하얗게 질린 아이의 얼굴과 돼지굴 쪽에서 들려오는 언청이의 비명소리에 어른들은 맨발바람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아버지가 돼지굴에서 언청이를 건져냈을 때 언청이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여있었다.  그 날 오후 아이는 몇시간이고 혼자 집안에 남아 놀았다. 저녁이 되여서 배가 꼬르륵거리는데도 어른들은 밥을 주지 않았다. 아이는 어정어정 걸어서 늘 새하얀 이밥이 나오던 쇠가마 뚜껑을 힘껏 밀었다. 탕 하고 뚜껑이 가마목에 떨어지면서 안에서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무리 봐도 먹을 수 있는 밥이 아니라 돼지굴에서 봤던 돼지죽이였다. 아이는 잠간 서성이다가 다시 찬장을 열었다. 사발에 담겨있는 감자볶음을 보고 손으로 마구 움켜쥐고 입에 넣었다. “어찌 됐수?” “살았다오.” 할아버지가 담배를 말며 집안에 들어섰다. “허이구∼” 온 오후 집안을 들락날락하던 할머니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가마목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도투는 어찌하우?” 할아버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듯 씽하니 밖으로 나갔다. 감자볶음만으로 성치 않았던 아이는 종종걸음을 놓는 할머니 뒤를 따라 돼지굴로 향했다. 씩씩거리며 야수마냥 미쳐날뛰던 그 거대한 굴암퇘지가 돼지굴 한가운데 축 늘어져있었고 빨간 피가 그 주위를 흥건하게 적셨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파리떼가 정신 사납게 날아다녔다. 마침 피빛 석양이 서쪽 하늘을 빨갛게 태우고 있었다. 빨간 석양 아래 빨갛게 물든 돼지굴 안에 목 박힌듯 서있는 로인의 모습은 그렇게 괴이했다. 아이는 손수건을 꺼내 눈굽을 찍는 할머니의 치마폭을 꽉 움켜쥐였다. “이구 어찌오? ” “못난 자식 같으니, 성질머릴 하곤.” “그래 제 새끼 잡아먹는데 가만 놔두겠소?” 할아버지는 잘 든 낫날에 단번에 잘리워 쩍 벌어진 돼지의 목 부위를 발로 툭 건드렸다. 한껏 드러난 시뻘건 살에 붙어있던 파리떼가 윙하니 반공중에 날아오르더니 다시 달라붙었다. “그 놈 공헌이 많소. 애비 장가도 보내고∼” 할머니가 넉두리처럼 울먹거렸다. “그 잘난 것두 사람새끼라고. 차라리 없기보다 하오?” 할머니를 등지고 서서 얼굴을 볼 수 없는 할아버지가 말했다. 피빛 석양을 마주한 아이에게 들려오는 괴이한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후둑후둑 정신없이 뛰는 심장은 아이를 숨가쁘게 만들었다. 아픈 손. 엄마는 언청이형을 ‘아픈 손’이라고 했다. 아이는 아픈 손이 결국 남들이 꺼리는 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엄마는 한시도 언청이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듯 그 아픈 손을 더욱더 으스러지게 감싸쥐였다. 여덟살을 먹던 해, 머리가 커진 아이는 마침내 온 가족을 위한 결심을 내렸다. 아이는 형을 데리고 마을 중간을 가로지나는 강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이 논에 물을 대려고 끌어온 두만강 물이였는데 어른의 배꼽 정도 오는 깊지도 얕지도 않은 강이였다. 아이는 소용돌이 치는 수문 쪽을 찾아서 형에게 뛰여내리라고 꼬드겼다. 하지만 뱅뱅 도는 소용돌이에 겁을 먹은 언청이는 선뜻 뛰여내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뒤걸음을 치는 형을 뒤에서 확 밀었다. 형은 그렇게 물에 빠졌다. 아이는 눈깜짝할 새로 물살에 휘감겨 허우적거리는 형을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웠다. 온 누리로 쫙 퍼지는 해살이 아이의 정수리도 따뜻하게 내리비췄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본 상점집 녀자애가 어른들을 불러 다 죽어가는 언청이를 구했다. 언청이는 또 한번 목숨을 건졌고 사람들은 언청이가 어쩜 팔자에 있는 재를 세고비만 넘기면 귀인贵人이 될지도 모른다고 제멋대로 점을 쳤다. 형을 안고 눈물을 쏟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는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물에 빠진 놈은 이튿날로 멀쩡히 뛰여다녔지만 형을 물에 빠뜨린 놈은 고열로 며칠간 크게 앓았다. 고열로 의식을 잃은 사이에 아이는 엄마를 보았다. 곱게 차려입은 엄마가 살구꽃이 하얗게 핀 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손짓하더니 갑자기 사라지는 꿈이였다. 견디기 혹독했던 그번 열병은 마침내 아이의 가슴에 작은 불씨를 심었다. 손톱눈 만큼한 작은 불씨는 그날 석양처럼 강렬한 피빛을 보이며 가물가물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신의 계획을 망가뜨린 사람에게 벌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지켜본 그 눈알이 가증스러웠다.   3. 해가 높다. 한겨울 스모그를 이기고 해가 솟았다. 그리고 온 누리를 비춘다. 아빠트 꼭대기의 적설이 한겨울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면서 창가에 선 사람들의 볼거리가 되였다. 어느 커플이 펼치는 깜짝 이벤트처럼 반짝반짝 은빛 싸락이 창가 풍경을 만들었다. K는 안마방을 찾아서 어제 미처 못 들은 이야기를 마저 들려달라고 했다. “저는 쌍둥이와 동갑인지라 늘 붙어 놀았지요. 동생은 엄마를 닮아 잘생긴 아이였어요. 얼굴은 하얗고 갸름했으며 입술은 항상 빨갰어요. 어딘가 사람을 끄는 조용함과 우울함이 있었어요. 못생기고 천방지축인 언청이형에 비해 동생은 그럴듯한 멋과 분위기가 풍기는 아이였어요.” K는 가슴 한구석이 짠해났다. 목덜미를 누르는 그녀의 손가락이 간지럼을 타는 것마냥 온몸이 근질근질해났다. “언청이는 덩치가 크다고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굴었어요. 다른 아이가 괴롭힘을 당해서 소리를 지르면 동생이 다가와 형을 조용히 쏘아보았죠. 그러면 언청이는 주밋거리며 괴롭히는 행동을 그만두었어요. 가끔 그만두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발을 들어 언청이의 배를 걷어찼어요. 언청이는 왝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집으로 달려갔지요. 언청이는 동생을 형처럼 따랐어요. 자기가 형인 줄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다하고 혼내도 찍소리 않았어요. 그러나 동생은 애어른으로 소문났기에 형에게 나쁜 일은 절대로 시키지 않았어요. 기껏해 밖에서 놀면서 손이 더러워지면 ‘내가에 가서 손을 씻어라, 얼굴을 씻어라.’하고 어른처럼 챙겨주었을 뿐이였죠. 그렇다고 특별히 아끼는 것도∼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언청이가 물에 빠져 죽을 번했는데 사실 그 동생이 뒤에서 밀었거든요. 그 때 제가 봤어요. 어른들에게 말하면 그 애가 야단맞을가봐 말하지는 않았어요.” K는 심장이 쿵쿵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그런 자신이 발각될가봐 그는 마음을 조이고 또 몸도 조였다. 녀자가 웃는 것 같았다.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깨고소하다는듯 비웃음 비슷한 그런 웃음을 말이다. 그녀는 갑자기 마사지를 멈추고 한껏 쫄아든   K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옆에 놓인 쏘파에 털썩 몸을 맡겼다. 한참 정적이 흐르더니 바스락바스락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들렸다. 녀자는 테이블에 놓여있던 과자 한조각을 먹고 있었다. “그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날이 너무 좋아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죠. 애들 몇이서 뒤산에 가 놀려고 쌍둥이 집 앞에서 기다리는데 언청이만 덜렁거리면서 나오는 것이였어요. 우리는 뒤산에 올라가 들국화를 꺾으며 즐겁게 놀았어요. 그 날 기분이 엄청 좋았어요. 하늘은 눈 시리게 파랗고 해살은 눈부시게 따스했죠. 우리는 날다람쥐가 되여 높지도 않은 뒤산을 마구 쏘다녔어요. 한창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꽃을 꺾는데 언청이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저를 확 미는 것이였어요. 저는 미처 어찌할 새도 없이 땅에 주저앉았죠. 그러더니 그 놈이 제 얼굴에 손을 뻗치는 것이였어요. 제가 손으로 그 손을 뿌리치려고 하자 그 놈이 저를 깔고 앉아서 한손으로 제 두 손을 꼭 붙잡고 다른 한손으로 제 눈알을 뽑았어요!” 녀자의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예감 좋은 날에 눈알을 빼앗겼던 공포가 온 방안을 삼키고 있었다. “겨우 한눈은 살렸어요. 다행히 힘줄이 끊기지 않아서 다시 박아넣었거든요. 다른 한눈은 개눈알을 넣었어요.” K는 죽은듯이 엎드려있었다. 사지는 김 빠진 풍선마냥 축 늘어졌고 머리만 나무판처럼 빳빳했다.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왜 그랬∼” K는 저도 모르게 혼자말을 하고 있었다. 그 기여들어가는 자그마한 소리를 들었는지 녀자는 한쪽 눈에 웃음을 담는 것 같았다. “내 눈알이 이뻐서.” 킥킥 웃는 웃음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늦었어. 뭐라 해도 내 눈알은 돌아오지 않을 거야.” 녀자는 웃는지 우는지 이상한 소리를 꺼억꺼억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동안 꽁꽁 닫고 있었던 기억들이 단번에 터져나와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내 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여 몸을 찌르고 있었다고, 그래서 자신은 이미 너덜너덜한 시체가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녀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4. 언청이가 왜 잘 붙어놀던 상점집 녀자애의 눈알을 빼려고 했는지 그 리유에 대해서는 누구도 몰랐다. 누구도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정상이 아닌 놈이 정상이 아닌 짓을 하니 다들 당연하게 여기면서 기가 차서 혀를 끌끌댔다. 아이 엄마가 언청이를 붙들고 왜 그랬냐고 다그쳤지만 언청이는 째진 입으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실실 웃기만 했다. 마을 사람들의 비난은 쌍둥이집 어른들, 특히 아이엄마에게 돌려졌다.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기에 저런 끔찍한 놈을 낳았는가고 수군거리면서 제 집 아이들을 단속하기에 바빴다. 상점집 일가친척 한무리가 아이집으로 몰려왔다. 그리고는 살풍경이 벌어졌다. 일방적인 욕설이 란무하더니 마지막에는 주먹이 날아들어왔고 상점집 아낙네가 아이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뜯었다. 마침내 경찰이 들이닥쳤고 아이 부모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녀자애 집에서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으니 한번만 용서하라고 빌었다. 상점집 아낙네는 아무 것도 필요없다고 하면서 그 집 언청이 눈알 한개만 빼게 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을 듣는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러면서 우리 애는 안되고 대신 자기 눈알을 빼가라고 했다. 그 순간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아이의 처음으로 어린애다운 앙 하고 울음소리가 났다. 울음소리가 어찌 크고 슬펐는지 어른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아이만 바라보았다.     5. K는 빨간 두드러기가 난 가슴이 유난히 따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귀에 쟁쟁거리면서 가슴이 빨갛게 빨갛게 타들어갔다. 왜 그 녀자를 그런 곳에서 만났을가? 그 녀자를 만나기 전 K는 어릴 적 기억들과 알게 모르게  담을 쌓고 살고 있었다. 십년 전에 잃어버린 모자란 형과 그 뒤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뜬 엄마, 그리고 지금은 새 가정을 이룬 아버지, 풍지박산이 난 집처럼  K의 어릴 적 기억은 산산쪼각이 나있었다. 유일하게 가슴에 박혀있던 기억이라면 한가지-백살구꽃이 만발한 그림 같은 언덕에 엄마가 서서 곱게 웃으면서 K를 향해 어서 오라 손짓하는 것이였다. 그게 어느 날 밤의 꿈이였는지, 과거에 있었던 한소절의 추억이였던지 K는 지금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K는 한달간 안마방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모든 게 운명의 장난인 것 같았다. 인과보응. K는 이 상황에 걸맞는 성구를 생각하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언청이형이 갑자기 사라지고 엄마가 앓다 죽고 아버지와 인연을 끊다 싶이 사는 이 모든 리유, 그리고 자신이 텅 빈 집에서 로봇처럼 무의미한 생활을 하는 리유를 알게 되였다.   K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K는 며칠이고 밤을 새면서 생각한 끝에 이 일을 리성적으로 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또 며칠이고 밤을 새면서 고민한 끝에 마음속에 있는 답을 얻었다.  첫째, 이 녀자한테 큰 죄를 졌다. 둘째, 그래서 이 녀자가 싫다. 셋째, 그래서 이 녀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K는 자석에 끌린 것처럼 이틀이 멀다 하게 안마방을 찾았다. 아주 리성적인 고민 끝에 K는 이 녀자가 손바닥 만한 이 도시에서 사라질 수 없는 한 그녀와의 신체적 정신적 스킨십을 통해 자극을 받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정면돌파였다. K는 그녀로부터 꾸준히 마사지를 받았다. 그녀가 다른 손님을 마사지하고 있어도 괜찮다며 두시간 넘게 기다려서 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의 까실까실하고 작고 여윈 손이 K의 등과 허벅지를 만질 때마다 K는 흠칫흠칫 몸을 떨었다. 마치 칼도마에 오른 물고기마냥 처절하기까지 했다. K는 마사지를 받는 내내 그런 무서움과 처절함을 떨쳐내면서 머리 속으로 방도를 강구했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그녀는 그것도 모르고 열심껏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래 저 눈∼ 저 눈, 저 눈알, 그녀의 눈알을 내가 빼갔으니 그녀더러 내  눈알을 빼라고 하면 공평하지 않을가? 그 때 그녀의 부모들처럼 간단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가? K는 불현듯 떠오른 기발한 생각에 무릎을 탁 치고 싶을 만큼 희열을 느꼈다. 헌데 그러기엔 너무 살벌하지 않을가? 사람 모르는 곳에 가서, 아니, 그 때 그녀가 눈알을 빼앗겼던 고향의 뒤산에 가서 언청이가 그녀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더러 내 눈알을 뽑게 하면 안될가? ∼ 그래, 좀 살벌하지. 그녀가 그렇게 하자고 할가? 아니 그러면 피도 엄청 흘려야 하는데 얼마나 아플가? 빨간 피가 뒤산의 보라색 꽃을 다 적시는 정경을 떠올리며 K는 피부로 느껴지는 아픔과 끔찍함에 몸을 떨었다. 어느 해살이 유난히도 따스한 봄날,  K는 마침내 완벽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의학의 힘을 빌자. 수술대에서 내 눈알을 빼서 그녀에게 주자. 그러면 그녀는 복수도 하고 앞도 볼 수 있잖아. 나도 덜 아프고. 내가 빼앗아간 눈알을 돌려주면 그녀는 날 용서할 수 있을 거야. “저기, 안구이식은 안된대?” K는 한창 발마사지를 하고 있는 녀자에게 넌지시 말을 던졌다. 녀자는 소뿔편으로 발바닥을 빠악빠악 긋더니 뾰족한 데로 발바닥 혈을 꾹꾹 찔렀다. “병원에서 그게 안된대?” 대답이 없자 K는 상체를 일으켜 힘겹게 목을 돌려 그녀 쪽을 바라보며 다그치는 조로 또 물었다. “글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녀자는 마지 못해 대답하는 것 같았다. “왜 생각해본 적이 없어? 이식하면 앞을 볼 수도 있잖아.” 녀자는 갑자기 K와 눈을 맞추며 이상하리 만큼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왜요? 제가 눈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녀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했다. “아니∼ 겉이 이렇게 멀쩡한데 눈이 안 보이니 좀 그렇잖아.” K는 그녀의 눈을 피해 고개를 홱 돌려서 다시 마사지 베드 구멍에 얼굴을 박았다. “내가 병원에 가서 알아볼가?” K는 등뒤가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때문인지 가슴도 뭔가 이름 못하게 따뜻해지고 있었다.   6. K는 끝내 자신이 안구이식을 해주고 싶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자신의 눈을 줄 거라는 말을 꺼내야 하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하여 괜스레 더욱 빈번하게 안마방을 찾았다. 어떤 날에는 마사지를 받지 않고 그녀를 끌고 나와서 동네 까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어느 폭염이 쏟아지던 날, 그녀가 하얀 발에 하늘색 샌들을 신은 날, K는 그녀와 둘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원하지 않았던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오렌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은 해빛 아래 붉은색과 노란색이 엇갈리며 반짝반짝 눈이 부셨고 알릴락말락 연한 립스틱을 바른 입술은 청순미가 묻어났으며 핑크빛 매니큐어를 한 손은 유난히 길고 하얬다. 오른쪽 귀에만 건 이어링은 갸날픈 어깨 우에까지 드리워 각별히 눈길을 끌고 있었다. 그녀는 멋스레 선글라스를 낀 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기분 좋게 웃고 있는데 검은 선글라스 안에 숨은 두 눈도 반달모양이 되여 웃는 것만 같았다. K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고향 뒤산에 피여있던 보라색 들국화를 떠올렸다. 더위가 다 물러간 시원한 산과 들에서 이리저리 기꺼이 바람에 몸을 맡기면서 자유를 부르는 그 꽃이 생각났다. 탁 트인 푸른 하늘 아래 유유한 몸짓으로 산과 들에 녹아드는 고향의 령혼이였다. K는 속이 움찔해났다. 내가 왜 그 꽃이 생각날가? K는 꽃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를 보면서 무언가를 떠올려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이 이름 모를 감정은 또 뭐란 말인가? 그녀를 보면서 왜 들국화가 떠오르고 고향이 떠오르지? 그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온몸의 전률을 느꼈다.    7. 이상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힌 K는 말을 꺼낼 수 있는 타이밍을 찾다가 려행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몇번을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려행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건의했고 그녀는 이튿날로 “가요.”라고 답장이 왔다. 그들은 서장을 목적지로 정했다. K일행을 태운 차는 40대 중반을 넘긴 로양이라는 남자가 운전했다. 십년 전에 온 가족이 서장에 려행을 왔다가 아예 서장에 눌러앉았다는 로양, 천로天路의 투박함과 창망함은 그 남자에게 예리한 눈빛과 기분 좋은 웃음소리와 겉늙은 외모를 만들어주었다.   K는 로양한테 매일 보는 서장의 풍경이 지겹지 않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로양은 허허 웃더니 “매일 봐도 여전히 아름답죠. 필경 기후와 위치가 다르면서 그 아름다움도 다 다르잖아요.” 하고 사람 좋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앵두색 큰 스카프로 검은 선글라스만 내놓은 채 머리와 온몸을 감고 있었다.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은 곳에서 보는 풍경이 다 다를 거예요. 그러니 그런 천만가지의 아름다움을 다 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K는 그녀를 보고 씨익 웃었다.   K일행을 태운 차는 318국도를 따라 빠른 속도로 달렸다. 해발 5천메터의 미라산 입구에서 동방 스위스로 불리우는 린즈까지, 피곤하긴 하나 더없이 즐거운 려정이였다. 인도양의 따뜻하고 습윤한 기류가 린즈를 침윤하여 서장의 투박한 인상을 걷어주고 대신 풍만과 윤택을 안겨주었다. 남차바르와봉은 하늘 높이 우뚝 솟고 노란색과 자주색의 들꽃이 산비탈을 덮고 있는 가운데 간혹 가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덩치 큰 야크가 꽃밭 속을 느릿느릿 걸어다녔다.  한자리에서만 굽어보고 올리봐도 크고 작은 풍경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수미秀美와 장활壮阔, 신성神圣과 령동灵动, 사람들이 려행을 통해 추구하는 원소가 이 림해중에서 의탁을 찾을 수 있었다. K일행은 라싸에서 하루 묵고 곧장 남초호로 향했다. 하느님이 인간세상에 하사한 ‘푸른 보석’, 인간이라면 보는 순간 반드시 마음을 빼앗기게 되여있는 매우 아름다운 호수라고 한다. K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앞에서 그녀에게 눈을 주고 싶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그런 아름다움 앞에서라면 그녀도 자신을 용서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K는 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호수를 앞에 두고 넋을 잃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모든 게 용서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 뭐가 두려운가. 이 아름다운 호수 앞에서 내 마음속의 사랑과 두려움을 말하자. “내 눈 줄게. 내 눈알을 이식해.” K는 그녀와 나란히 서서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그 순간이였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안온히 자리잡고 있던 것이 장과 식도를 역류하면서 입안에까지 치밀어올라왔다. 그것은 그녀의 눈알이였다. 검은 동공이 동그랗게 떠있는 피투성이의 눈알이였다. 언청이의 무자비한 손갈퀴에 끊어진 힘줄이 아직도 흔들거리는 그 작은 탁구공 같은 눈알이였다. K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상황에 토할 것만 같아서 헛구역질했다. 정말 눈알이 나왔을가?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풍겼다. K는 후둑후둑 세차게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간신히 서있었다. 그녀는 그런 K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눈은 여전히 호수를 향하고 있었다. 앵두빛 빨간 스카프는 호수가에 물든 한점의 노을마냥 붉디 붉었다. “싫어.”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마치 오래전에 예상했던 말을 들은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난 당신만 있으면 돼요.” 호수의 쪽빛 물결이 록색 물결로 변했다가 다시 쪽빛으로 변했다. 될 수만 있다면 피비린 눈알이 아니라 아름다운 저 호수를 그녀의 비여있는 한쪽 눈에 박아넣고 싶었다.  K는 입안에서 풍기는 피비린내를 겨우 참아내며 힘겹게 또 입을 열었다. “내 눈을 주고 싶어. 내가 뽑아갔으니.” 위가 거세게 요동치더니 또 눈알이 입안으로 치밀어올랐다. 힘 있는 손이 아가리를 쫘악 벌려주었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수천개가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한껏 벌려있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검은 동공마저 희미해진 눈알들이 폭포처럼 사정없이 쏟아지더니 호수에 퐁당퐁당 떨어졌다. 쪽빛 호수는 순간에 피빛으로 변했다가 다시 쪽빛으로 변하는 것을 반복했다. K는 아름다운 호수 앞에서 마음속에 있던 공포스러운 눈알들을 쏟아냈다.   8. 유별나게 달이 붉은 밤. 검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우로 빨간 점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빨간 점은 달모양을 하고 붉게붉게 타올라서 검은 하늘을 태웠다.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하늘을 더욱 검게 만들었고 그 속에서 붉은 달은 더 강렬하게, 더 요염하게 하늘을 태웠다. 걷잡을 수 없게 맹렬해진 붉은 달은 마침내 화산이 되여 폭발하고 온 대지가 빨갛게, 뜨겁게 변해버렸다. K는 빨갛고 뜨거운 액체가 몸 구석구석의 빈 곳을 채우고 있음을 느꼈고 순식간에 차오르는 그 물건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서장에서 돌아온 지 한달이 지났으나 그 사이  K는 감히 그녀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남호초 앞에서 모든 걸 고백하긴 했어도 그에게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호수 앞에서 그의 고백을 듣고 말없이 흘리던 그녀의 눈물이 호수에 떨어져 쪽빛 물결로 사라졌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서던 빨간 뒤모습이 따가운 점이 되여 가슴 속 붉은 달로 떠올랐다. K는 고통으로 이 모든 고난을 결속짓기로 했다. 그 날 밤, 가슴에 있던 붉은 점은 더욱 붉어졌다. 마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문신은 빨간 빛을 토했다.   며칠 후 는 기사가 대문짝처럼 조간지에 실렸다. 조간지 김기자는 년말에 큰 걸 건졌다며 답례로 꽤 고급진 호텔에서 한상을 차렸다. “눈은 확실히 먼 녀자인 거 같았는데∼” 김기자는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K는 그런 김기자한테 미소를 지어보였다. 입귀가 천천히 올라가면서 얼굴이 흉물스럽게 쪼그라드는 자신의 얼굴표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K는 김기자한테 자신이 서장에 갔다온 이야기를 장황하게 널어놓았다. 김기자는 거기에 가는 사람은 거의 다 마음의 세례를 받기 위해 간다고 하면서 무슨 수확이 있냐고 물었다. “느낀 게 많지. 사람이란 게 너무 틀에 쪼여있으면 안돼. 자연과 어울려 자연의 일부가 돼야 하거든. 자꾸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너도 자연의 일부인 동물이란 걸 알아야 돼. 거긴 계급이 없어. 계급장 같은 건 개나 줘라 해. 거기 대소사 앞의 개를 봐. 그리고 야크들도 사람이란 물건을 의식하지 않아. 걔들은 우릴 딱 보고 저희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옷을 걸쳐입은 우습강스러운 개나 소로 생각하지. 거긴 다 평행선이야. 사람이 정해준 질서 대신 자연의 질서에 맞춰 충돌 없이 잘산다니까.” “그래요? 한번 가봐야겠네.” 김기자가 호기심이 바짝 동한 눈으로 K를 보며 말하자 K는 또 얼굴이 이그러지게 웃었다. “사람이 지겨워. 난 말이야. 다시 태여나면 대소사 불향을 맡는 개가 될 거야.”   9. 술이 거나해진 K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끌고 안마방을 찾았다. ‘금새안마방’ 간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가게 안은 캄캄했다. K는 문을 탕탕 두드렸다. 까만 집안에서 불이 탁 켜지더니 녀자가 코트를 걸치면서 걸어나왔다. “그간 별일 없었지?” 녀자는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맨눈으로 안부를 묻는 K를 쳐다보았다. K는 그 무섭고 공포스러운 눈을 외면한 채 비칠비칠 집안에 들어섰다. 방을 찾아 웃옷을 훌렁 벗고는 침대에 엎뎌 마사지 베드 구멍에 얼굴을 박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가? 늘 그랬듯이 라벤더향이 퍼지면서 조그맣고 힘있는 손이 목 부위부터 주물렀다.  이 손, 이 손 때문에 내 몸은 곧 시원해지겠지. 내 몸은 더는 아프지 않고 시원해질 거야. 조그마한 손은 금세 쇠고랑이라도 된 듯 힘을 썼다. 목을 꼭 죄인 K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조그마한 몸으로 K를 타고 앉아서 목을 누르고 있었다. “미친 놈! 변태새끼! 니 땜에 내 인생이 또 날아갔어. 내가 널 가만둘 거 같아? 니 놈이 내 눈알을 빼가게 놔두어도 이번엔 아니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 미친듯이 울부짖던 문죄는 대뜸 하소연처럼 들리다가 마침내 울음소리로 변해버렸다. 그러더니 K의 목을 누르던 손의 힘도 사르르 녹아들었다. “다 왔는데 왜?” K는 이대로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그녀의 손에서. “미친 새끼!” 녀자는 주르륵 K의 등에서 내리더니 그 옆에 있는 쏘파에 미끄러지듯 물러앉았다. K는 죽은듯이 누워서 숨만 헉헉댔다.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여서 코로 한껏 내보냈다. 거대한 악마가 등에 걸쳐앉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했다. K는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커다란 대못으로 박아놓은 것처럼 아무리 발악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언가 딴딴한 것이 K의 뒤통수를 세게 강타했다. 머리가 뗑하더니 뜨거운 액체가 흘러 목덜미를 적셨다. 하지만 K는 여전히 얼굴 구멍에 얼굴을 들이민 채 꼼짝할 수가 없었다. 눈물인지 무엇인지 뜨거운 액체가 크게 뚝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새끼! 병신새끼!” K는 조용히 누워서 기다렸다. 가슴 속에서 아직도 활활 타오르는 그 불을 꺼주기를 기다렸다. 이 불타는 가슴을 잠재워줄 그런 차거운 액체 같은 것을 기다렸다. 그 액체가 홍수가 되여 내 가슴 속 붉게 타오르는 그것을 시원하게 덮칠 때, 스나미가 되여 그 작은 것을 한입에 삼켜버릴 때 그 작지만 빨갛게 독을 쓰던 붉은 점은 강바람 속의 초불마냥 삶에 대한 집착을 깜빡이면서 마지막 숨을 고르리. 그리고는 살아있던 것이 없어진 것처럼 긴 여운과 텅 빈 공백을 남겨 내 가슴 속 달은 다시 노오랗고 따스하게 환생하리. 새해 첫 해돋이마냥 감동과 감탄, 희망과 기쁨을 자아내며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우에서 탁구공처럼 퐁 튀여나오리. 그러면 불타는 지옥에서 벗어나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희열과 사랑과 자유에, 내 미소는 환해지고 내 마음은 따뜻해지리.   출처:2017 제5호
16    김홍월: 탐닉으로의 유혹, 내적 희구로의 전환(수필평) 댓글:  조회:402  추천:0  2019-07-18
탐닉으로의 유혹, 내적 희구로의 전환 김홍월   감상에 대한 탐닉은 무엇인가? 세련된 문장을 제공함으로써 문학은우리를 감상에 빠지게 하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러나반대로 문학이 우리를 감상의 탐닉자로 만듬으로써 우리를 감상에 이르게 하고 문장을 세련되고 아름답게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실마리를 리화의 세편의 수필이 제공한다. 너무 달콤해서 혀가 아릴 만큼 강렬한 감상적이며 화려한 문장들이 세편의 수필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이러한문장들은 단순한 강렬함에 그치지 않고 리화는 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탐닉에 빠지도록 유혹을 시도한다. 정확히말하면 리화는 문체의 리면적 공간 속에서 치밀한 계획을 통해 우리를 탐닉자로 유혹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탐닉자로 만드는 그 치밀한 계획은 무엇인가? 리화는 넌지시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을 제시한 후 그 대상의 쟁취에 대한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대상이아닌 대상을 욕망하는 내면과 그 욕망 자체의 아름다움, 완결성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즉 리화는 표면적이고 외적인 희구에서 눈을 돌려 표면적 욕망의근원에 있는 내적인 희구를 품어가는 과정을 작품 리면에 배치해둔 것이다. 리화의 치밀한 계획은 세편의 수필에 거쳐 동일하게 나타난다. 환희, 련민, 그리움으로 변주되는 희구에 대한 서사가 세 수필의 리면을 관통하고있다. 정확히말하면 희구를해소하는 과정에 대한 서사가 세 작품의 리면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희구를 해소하는 과정은 서사적 단계를밟아가며 차근차근 치밀하게 우리의 관심을 외적 희구에서 내적 희구로 이끈다.   그리움의 별빛, 환희의 희구 첫 수필 는 중2 때 선생님이 수정해준 화자의 작문이 지면에 발표된 후 선생님이 돌아갔다는 내용으로부터 시작된다. 선생님의 죽음은 화자를 스스로 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독립시켜주었다고 볼 수 있다.이후 사십대를 바라보는 화자는 같은 제목으로 글을 다시 쓰게 된다. 화자는 유년기부터 별을 무작정좋아하였고 별에 애착을 가졌으며 그 애착을 넘어서 집착까지 하였다. 성인이 되고서도 별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변함이 없으며 한낮의 태양보다는 밤하늘의 달이나 별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화자는 자신이 ‘녀아대장부女汉子/womenman’가 아니라 아마도 ‘여린 녀자’인것 같다고 한다. 미래를 향해가는 것이 남성성, 태양이고 과거를 향해가는 것이 녀성성, 달, 별이라고 상징할 수 있다면 화자는 사라져간 것들, 죽어간 것들에 더 예민한 녀성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자는 오리온자리와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아서 라는 소설을 쓴 적도 있다고 한다. 오리온자리가 ‘산에 자주 다니셨던 그분’의 별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 분’이 누구임이 수필 속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화자의 선생님일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죽어서 사라져간 것들이 ‘그 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죽어서 별이 된다고 여기는 화자의 태도를 볼 때 별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죽어가고 사라져간 모든 것에 대한그리움일 수 있다. 성인이 된 화자는 그토록 별을 좋아하는 리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별들 사이에 막연한 이음이 있는것 같다는 수수께끼를 낸다. 막연한 이음은 ‘사라져버려 그리운 것’에 대한 상징으로 놓인 별과 화자 사이에있는 이끌림이다. 화자가 별을 그리운 대상의 상징으로 여기는 대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술을 마신 날이면 밤하늘의 뭇별들은 더반짝거렸고 좀 어두운 별들을 향해 “어험! 어서 밝게 나오지 못할가!”하면서 주정도 부렸다. 내가 어려서부터 좋아한 너희들이기에 수십년이 지나면 내 머리에 내려달라고 부탁까지했다.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가 통채로 내려와 내 머리를 은빛폭포처럼 반짝이게 해달라고.   화자는 별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 별들을 당겨서 한눈으로 보려고도 한다.좋은 장비를 갖춘 카메라를 가지고 산에서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별들을 담아보려고도 한다. 그러나별에 다가가고 싶어하는 화자의 욕망은 번번이 좌절된다. 그러다 결국 포기한다. 포기하니화자는 외려 그 날의 밤하늘은 유난히 맑게 보였고 쏟아지는 별들의 정겨운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환희를 느꼈다. 별이담겨있는 사진이라는 외적 희구가 아니라 화자 마음속의 내적 희구로 점점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자신의욕망 자체의 파도를 타고 있는 것이다. 별이라는 외적 희구의 포기는 내적 희구의 발견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친구들과 별빛 아래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떨다 화자는 친구들을 모두 별로 칭한다.친구들을 별로 칭하는 대목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닌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에 대한 화자의 발견을 의미한다.원래는 잃어버린 것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고 그리웠는데 이제는 옆에 있는 대상에 대해 소중함과 그리움을 느낄 줄 알게 된다. 꼭 잃어버리지 않아도 그리운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그리움이 내면에 내재되여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별로 보이는 화자는 자기 내면의 ‘별을 바라볼 수 있는 눈’, ‘소중함을느낄 수 있는 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화자는 자신의 내면에 별이 살아있음을 발견한다. 내면에별이 있기에 별에 다가가고저 했던 욕망이 채워질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별로 보이고, 또한 외적 희구를포기할 수 있었다. 내적 희구는 ‘소중한 것’이라는 외적 대상보다는 소중한 것을 대할 때 마음속에 피여오르는‘환희’라는 내적 대상에 대한 욕망에 가깝다. 그리운 것을 바라보는 환희를, 별빛이없는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내적 희구를 화자는 알게 된 것이다. 화자는 친구들과의 수다, 그 행복한 시간 속에서 별을 볼 때의환희를 발견했던 것이다. 에서 직접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화자가 발견하고 대면한 것은 별의 내부와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던 ‘소중한 것을 간직할 때의 환희’였다. 그러한 환희는 비단 친구들과의 수다 뿐 아니라 삶의 어떤 곳에서든 발견될 것이다. 사실화자가 친구들에게서 외적인 별, 실제 별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화자는별을 볼 때와 같은 환희를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발견했다. 화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환희를 느끼고 가치를 발견케하는 스스로의 내면에 눈을 뜬 셈이다. 이로써 화자는 외적 추구가 아닌 내적 추구를 하게 된다.   구제와 창조의 욕구, 련민의희구 두번째 수필 에서 화자는 조각나고 부서진 도자기를 수선하는 공법, 즉 상처를 붙이고여며서 더 아름다운 가치로 환생시키는 수선 공법을 접하게 된다. 그 후 화자는 깨진 물건들을 휴지통으로 버렸던자신의 과거 행위에 후회한다. 사물이 표면상의 수명을 다해 가치가 상실된 것처럼 보여도 창조적 재생산을 통해또 다른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가치는 사물의 최초 가치가 아닌 재생산을 통해 형성된 가치이다. 버려진 것들에서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사물은 충분히 구제, 재활용될 수 있으며 사물에 잠재되여있는 가능성을 함부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함부로 여기지 않는 마음, 잠재성의 발견은 창조적 욕망을 통해실현된다. 수선 공법은 수선공예가의 욕망으로 창조해낸 방법이다. 창조적욕망이 있어야 잠재성에 눈을 뜰 수 있는 것이다. 재생산된 가치에는 수선공예가의 상상과 정성어린 손길, 따스한 마음이 스며있었다. 수선 공법을 통해 수선공예가의 페품을 버리지 않으려고, 되살리려고 하는 마음, 구제의 강한 심리를 보여주었다. 화자는 수선공예가의 내면을 통해 자신의내면을 발견했을 수 있다. 수필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리고 나는 나의 마음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페도 보여지기시작했다. 그 페 때문에 마냥 눈물을 흘렸던 자신이 떠올랐고 이제는 그 페도 그 눈물마저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웠다.”는 것처럼 화자는 자신의 마음속에있는 휴지통에 버려진 페품을 발견한다. 그 페 때문에 흘린 눈물이 아름다웠다는 것은 페품에 잠재되여있는 가치를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의 가치의 구제는 창조적 욕망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창조적 욕망이 있어야 잠재성에 눈을 뜰 수 있으며 ‘다시 바라본 세상은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창조적 욕망은 잠재성을 발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으며 창조적 욕망은 사물에 따스한 마음을품어야 생기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화자의 함부로 여기지 않는 마음, 측은한마음은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생을다하니 저렇게 페기처분되는구나∼ 하는 허탈함으로 눈물이 솟아올랐다. 모든 사물은 운명을 다하면 사람들처럼저세상으로 가고 이곳이 바로 페차들이 잠들어있는 무덤이구나∼ - 세월이 좀 됐지∼ - 그러네∼ 슬프게 아름답네∼ 나는 그만 이 곱돌들의 아픔과 아름다움, 묵묵함에 울컥해졌다.   - 맛있는 음식 잘 부탁할게. - 아깝게 바라봐줘서 고마워.   화자의 측은한 감정이 사물을 의인화하는 련민에 이르고 있음을 드러낸다.화자는 사물이 살아있다고 느낄 만큼 련민을 강하게 품고 있었다. 사물의 내적 가치는 창조적 재생산에의해 발견되고 창조적 재생산은 창조적 욕망을 통해 실현되며 창조적 욕망은 사물에 대한 측은한 미련, 즉 련민에의해 형성된다. 사실 수필 속에서 화자는 구제의 가치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물들에게서도 무차별적으로 련민을느끼며 가치를 다시 부여하고 싶어한다. 즉 련민이 있기에 구제의 창조적 정신이 발휘된 것이며 이 구제의 가능성을통해 사물에는 내적 가치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화자가 구제한 사물들은 기능적 측면을통해서만 그 가치를 회복한 것이 아니다. 외려 파괴된 상태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사물들의 애처로운 모습이화자의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그 사물들은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은 면이 크다. 작품 속에서 화자는 내내 심미적측면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의 제목이 인 것부터 사물의 기능보다는 심미적 측면을 강조하고있음이 예측된다. 련민은 기능적 측면보다 심미적 측면에서 쉽게 발생될 것이다. 따라서심미적 측면을 먼저 느끼며 강조하고 있는 화자는 사물에 리성적 가치보다는 감성적인 련민을 먼저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화자가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사물의구제를 가능케 하는 창조정신, 그 창조정신을 일으켰던 내면의 감정인 련민인 것이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구제와 창조의 욕망, 그 희구가 외적 희구라면 이러한 희구를일으킨 련민은 내적 희구라 할 수 있다. 화자는 이러한 련민을 탐닉하는 자세를 취한다고 할 수 있다. 화자는 표면적으로는 구제의 가능성 때문에 사물에 련민을 보이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화자는 련민의 대상을 구제하며련민의 욕구를 해소시키고 있었다.    그리움의 희구 마지막으로 에서는 와 의 리면에 구성되여있던 외적 희구에서 내적 희구로의 전환에 대한 비유를 통한 담론으로 이루어져있다. 에서 보여주는 담론의 구조는 매우 선명하며 간략하다. 땅은 하늘과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비를 그리워한다. 그런데 자세히살펴보면 땅이 하늘을 그리워하는 것은 짝사랑이 아닌 서로간의 사랑임이 확인된다.   하늘은 하늘 대로 높고 땅은 땅 대로 낮고그대들은 이렇게 비며 눈이며 바람이며 해살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만나자고 얘기를 나눈 것은. -꼭 한번 가야겠네∼ 올해는 꼭 봤으면 좋겠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늘그립다는∼ -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거주하는 남과 북 사이 어디 쯤 만나볼가요? 재밌겠다∼ 이렇게 가운데 쯤 만나면요∼   이렇듯 하늘과 땅은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이이다. 이들의만남은 그리움 그 자체만으로도 이루어진다. 땅과 하늘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하면 그 안타까움이비를 내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움, 만나고 싶은 욕망 자체에 욕망의해소가 내재되여있는 것이다. 혹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욕망의 해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면 이미 그리움의 해소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움자체에 만남이 내재된 것이라면, 욕망 자체에 그 욕망의 해소가 내재된 것이라면 욕망의 대상보다는 욕망 그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욕망의 대상이라는 표피가 아닌 근원인 그 욕망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의 대상과 욕망 자체에 대한 대비는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요. 수필도 한 둬편 나와야겠지요. 그보다도 우리는 정말로 만나야겠지요. 만남의 희열과 환희는 살짝 가라앉히고 숨소리와눈빛으로 우리만의 이 순간을 깊게 느끼는 겁니다. 내면으로 흐르는 이 기쁨은 오래가도 잊혀지지가않을 것입니다.   인용문에서 ‘수필’은 만남을 이루는 현실적방법이다. 이러한 현실적 방법을 제쳐두고 당장 만나자고 하는 것은 욕망 자체를 부각시킨다. 또한 욕망을 실현시킨 증표인 ‘희열’과 ‘환희’를 제쳐두고 그에 대비되는 내면에 흐르는 ‘기쁨’을 위해 ‘숨소리’와‘눈빛’에 집중하는 것은 내면의 욕망에 집중하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렇듯 욕망의 대상에 집중하는 시각과욕망 자체에 집중하는 시각이 대비되면서 욕망 자체에 눈을 돌리게 된다. 욕망의 대상에 대한 집중이 외적 희구라면욕망 자체에 대한 집중은 내적 희구라 할 수 있다.   탐닉 세편의 수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리면의 구도는 내적 희구로의 전환이다. 즉 욕망 자체의 자기 완결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리화는 주장하며 우리를 설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설득의 방식은 직접적이지 않다. 설득하고저 하는 바를 작품의 표면이 아닌리면에 간접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내적 희구로의 전환’이라는 주제는 부지중에 스며들듯 전달된다. 외적 희구의대상을 통해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 사이에 슬며시 리면의 주제를 전달시키며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설득은 점진적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에서는‘별에 대한 욕망(대상에 대한 희구)-좌절(외적희구에 대한 좌절)-환희의 재발견(욕망의 내적 희구)’이라는 점진적 단계를 거쳐 내적 희구라는 주제에 빠져들게 만든다.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여기서는 거꾸로 ‘사물에대한 련민의 강조(욕망의 내적 희구)-사물의 재생산 가능성(욕망의 내적 희구를 실현시키는 기제)-창조를 통한 재생산(욕망의 대상 희구)’의 역전된 흐름을 보여준다.에서는 ‘만남의 좌절(욕망의좌절)-그리움에 대한 관찰(욕망에 대한 관찰)-그리움의 자체적 해소(욕망의 내적 희구)’의점진적 흐름을 보여준다. 리화는 내적 희구로의 전환이라는 주제를 작품의 리면에 배치함으로써 그리고 점진적 단계를 거쳐 형성시킴으로써자연스러운 설득을 이뤄낸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설득 덕분에 우리는 어느새 내적 희구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즉 리화의 세편의 수필을 읽으며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내적 희구를 추구하는 탐닉자가 되는 것이다. 내적 희구의 추구, 즉 욕망 자체에 대한 집중이자 내적 탐닉이기도 하다. 탐닉에 빠진 독자에게는 서두에서 언급했던 ‘너무 달콤해서 혀가 아릴 만큼 강렬한 감상적이며 화려한문장들’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지평을 얻게 된다. 사실 리화의 문장이 제공하는 강렬함은 깊은 울림을 이끌 수도있지만 반대로 독자의 감각을 마비시켜버릴 수도 있는 량날의 검과 같은 것이였다.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지나치게화려하면 감각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리화는 우리를 탐닉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작품을 마냥 편하게 읽게만든 것은 아니다. 우리를 탐닉자로 만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화려한 인상을여전히 조금은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리면적 주제를 리해하지 못하면 극단적으로 진부한 감상적 문장들로리해될 수 있다. 하지만 리화는 그만의 치밀한 계획으로 독자를 내적 희구로 이끌어 탐닉자로 만듬으로써 독자의감각이 쉽게 마모되지 못하게 만든다. 탐닉자는 강렬한 자극에도 쉽게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세편의 수필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감상적이며 화려한문장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상당 부분의 화려한 수사들이 화자의 욕망, 희구에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욕망은 화려하게 표현될수록 타인에게 전이될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라캉의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욕망에 대한 화려한 수사도 리면적 주제와 마찬가지로 독자를 탐닉으로 유혹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출처:2017 제5호
15    리화: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수필, 외2편) 댓글:  조회:526  추천:0  2019-07-18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 리화     아마도 중2 쯤이였을 것이다. 선생님이 제목 여러개를 내주시고는 우리들한테 그중 하나를 골라서 작문한편을 지어오라고 하셨다. 어느 청소년잡지에 보내는 글이라고 하시면서. 그 제목 가운데서 내가 선택한 것은 ‘별빛 흐르는 저 언덕’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내용으로 작문을 지었던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작문을 완성하고바쳤을 때 선생님은 허허 웃으시면서 다음날 나에게 새롭게 수정한 글을 보여주셨다. 내가 쓴 작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글이였다. 그리고 ‘별빛 흐르는 저 언덕’이라는 ‘내 글’이 처음으로 지면에 발표되였고 고1 때 료녕성에 있는 어느 학생으로부터 공감의 편지도 받았으며 그 무렵 선생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비보까지 들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나는 그만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약한 체구에 늘 갈색 안경을 착용하신 큰아버지 같았던 선생님. 시원한 목소리와 털털한 성격을 소유하신 선생님. 언제나 스승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배움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셨고 삶의 자세를가르쳐주셨던 선생님. 바로 우리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사십대 후반, 오십대 초반이나되셨을가∼ 다시는 들을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그 모습을 회억하며이젠 사십을 바라보는 성인이 된 이 학생이 새롭게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를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다. 벌써 축축해진 눈가와 가슴에 선생님이 다시 떠오르고 저 하늘의 별로 반짝일선생님께 쫑알쫑알 별과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아, 그리고 선생님께서 수정해주신‘별빛 흐르는 저 언덕’의 글 속에 등장했던 영희와 나, 언덕에 앉아서 도란도란 나누었던 우리의 우정과 성장이야기도언덕 우로 흐르는 그 별들마냥 반짝반짝 영원히 지지 않을 것이다.   유년의 별하늘은 아름다웠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은 아름답다. 나의 유년 시절(사실은 시골에서자란 모든 아이들의 유년 시절)은 검푸른 하늘에 저마다 꼬옥꼬옥 박혀있는 별들을 볼 수 있었고 나는 그 별들을보면서 커왔다. 밤이면 밤마다 별구경을 했고 무작정 좋아했다. 그 시절내가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엄마는 제일 밝은 별을 가리키며 새별이라며, 계명성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한참은 커서 알게 되였지만 그 별은 금성이였으며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면 새별, 또는계명성이라 부르고 해가 진 뒤 서쪽 하늘에 뜨면 개밥바라기별이라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였다. 그토록 별을좋아한 리유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미 성인이 된 지금 나의 느낌을 적는다면 나와 저 별들 사이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막연한 이음이 있는 것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과학이라는 학과를 배웠고 밤하늘의 별들도 별자리로나뉘여지는 것을 알게 되였다. 그 후로부터 나는 밤하늘에 더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와겨울 밤하늘의 오리온자리, 사계절 내내 밤하늘을 지키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자리 등 많은 별과 별자리를 찾고짚으면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언젠가는 부모님 따라 놀러 갔다가 한밤중에 돌아오는 길에서 동생이랑 함께손잡고 올려다본 밤하늘의 월식이며 비자루 같은 꼬리를 달고 하늘을 가로질러가는 혜성을 보면서 질렀던 환호소리며∼ 밤하늘은 늘 나에게 신비한 세상을펼쳐주기만 했다. 아마도 별에 대한 애착을 넘어선 집착이 나더러 ‘별빛 흐르는 저 언덕’을찜하도록 이끌었던 것 같다. 천체현상이 생긴다 하면 거의 놓치지 않고 도구들을 준비하며 설쳤던 어린시절은 어느덧 흘러가고 이제는 훌쩍 커버린 성인인 내가 서있다. 어린 시절 그 별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뜨고지면서 변함이 없는 것처럼 별에 대한 나의 사랑은 지금도 다름이 없다. 한낮의 태양보다는 밤하늘의 달이나별을 더 좋아하는 나는 아마도 여아대장부女汉子/womenman가 아닌 은은하고 여리여리한 녀자인 것 같다.   별과의 대화 어둠의 장막이 일찍 내리는 겨울날의 퇴근 무렵이며, 술 한잔 가볍게 걸친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며, 어렴풋이 새벽이라고느끼면서 깨여나는 날이며∼ 나는 늘 별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고 더 가까워지려고 했다. 술을 마신 날이면 밤하늘의 뭇별들은 더 반짝거렸고 좀 어두운 별들을 향해“어험! 어서 밝게 나오지 못할가!” 하면서 주정도 부렸다. 내가 어려서부터 좋아한 너희들이기에 수십년이 지나면 내 머리에 내려달라고 부탁까지 했다.여름 밤하늘의 은하수가 통채로 내려와 내 머리를 은빛폭포처럼 반짝이게 해달라고. 그럴 때마다별들은 촐랑거리는 나를 향해 더 반짝여주었다. 수년 전에는 사계절중 가장 휘황찬란한 겨울철 밤하늘의 별자리인 오리온자리와텔레파시가 통하여 버젓이 라는 제목으로 기승전결이없는 ‘수필식 소설’을 쓴 적도 있다. 오리온자리에 위치한 오리온성운은 수많은 별들의 탄생지이며 아기별들이 태여나서새로운 별자리를 만드는 데 충실하는, 화려한 빛을 뿌리는 아름다운 천체이다. 여기서부터시작한 나의 ‘수필식 소설’은 인간도 큰 성운을 품고 지상에서 아기별들을 탄생시키면서 빛을 뿌리는 별무리이며 나중에 생을 마감하면 자신의 별을찾아 승천하는 것이라고 이어나갔다. 이런 생명의 별무리들과 용맹한 사냥군-오리온을결합시켜 오리온자리가 산에 자주 다니셨던 그 분의 별이고 그 분의 아득한 전생의 모습이라고 믿었다. 그 때부터하늘에 있는 내 별이 궁금해졌고 나는 대체 어떤 별의 운명을 타고 태여난 것인지, 저 하늘의 수많은 별들가운데서 어느 별이 내 것인지 찾기 시작했으며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망망한 우주 어느 한 귀퉁이에는 분명 내 별도 깜빡이면서 날 굽어보고 있을것이라고 적었다. 멋진 구상을 가지고 그린 그림은 이러한 내용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기승전결이없는 엉뚱하고 황당한 ‘수필식 소설’로 마무리가 되였다. 텔레파시가 제대로 통하지 못했나봐∼ 하고 반성하며 바라본 밤하늘에는 오리온자리가더 름름하게 서있었다. 나와는 멀리멀리 사이를 두고. 별은 너무 멀리 있는 거야. 분명짜릿~ 하고 텔레파시가 통했는데∼ 안되겠어. 별을 당겨와야겠어. 바로 눈앞에 놓고 바라볼 수 있게. 그림처럼 척 펼쳐놓고 마주보며 진지하게이야기를 해봐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언젠가는 저 별들을 내 앞에 당겨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머리 속에는 벌써 류성우처럼 휘우듬하게흘러간 수많은 별들의 궤적이며 기준물체를 중심으로 별들이 소용돌이를 이룬 그림이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많이봐오던 그림이라 머리 속에 그대로 재현이 되였다. 맞어! 내 손으로 찰칵찰칵하면서무한한 하늘의 별들을 축소판으로 만들어 한눈에 보는 거야! 기다리던 여름이 다가오자 마음은 더 급해졌다.맞춤한 날자를 잡아서 친구들과 캠핑을 가기로 했다. 목적지를 쿤위산으로 정했다. 도심을 멀리 떠나 산으로 가면 빛오염이 적어서 카메라에 잘 담길 것 같았다.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거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거다. 별들과온밤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쿤위산으로 출발하기 전 나는 카메라에 단렌즈와 줌렌즈 두개, 삼각대, 무선 리모콘 등 장비들을 갖추었다. 거대한별들의 강이 밤하늘을 가로지나간 그림을 담기 위해 사전에 촬영지식도 꼼꼼히 찾아보고 암기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가 않는 수많은 별들의 강을 렌즈에 담아야지. 따라오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촬영하기 맞춤한 곳에 장비를 설치한 후 사전에찾아봤던 촬영지식을 더듬으며 밤하늘에 앵글을 맞췄다. 어두운 밤하늘에 대고 찰칵찰칵한 지도 한참이 지났다. 야심찬 나의 기대와는 어긋나게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처럼 나를 심쿵하게 해준 그림은 한장도 담기지가 않았다. 별무리에 관한 첫 촬영이라서 촬영환경이나 기준물체 선정, 조리개 값, 셔터스피드, ISO 감도 등 설정에 서툰 것도 있겠지만 이건 너무했다. 결국 어깨를 떨구고텐트로 돌아가자 친구들이 예쁘게 담겼냐며 물었다. 한장도 못 건졌다는 나의 얘기에 그럼 누워서 쏟아지는 별이나구경하라고 했다. 가까운듯 아슴한 별무리들, 나에게는잘 다가오지 않는 별무리들이였다. 대신 그 날 밤은 참 오랜만에 맑은 밤하늘을 볼 수 있었으며 쏟아지는별들의 정겨운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별들의 수다 쿤위산에서 돌아온 후 나는 별무리 사진촬영지식을 더 많이 찾아보고 저장해두었다. 나중에 카메라를 통한 별과의 대화를 다시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들이모이기만 하면 꼭 시간을 내서 쿤위산으로 가자고 거듭 강조했다. 별무리 사진을 담고야 말겠다는 나의 의지를확고히 밝혔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나한테 ‘별타령’만 하지 말고 앞에 놓인 술이나 마시자고 했다. 찰랑찰랑 술잔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오늘밤 저 하늘에는 별들이 떴는가. 유리잔이 오색령롱한 전등에 반사되여 반짝반짝거린다. 저 하늘의 별들이 술잔으로 다 내려온듯 빛나고 있다. 술 한잔이 넘어가며 우리들의 수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늘에서 땅까지, 고대에서 현대까지, 나라에서 민족까지, 어른에서 아이까지, 아픔에서웃음까지, 영화에서 현실까지, 우리에서 우리까지∼ 마주앉은 친구들을 바라보니 이름에 다 별 ‘성’자가 들어간 친구들이였다. 어허? 이제 보니 다들 별이네. 반짝반짝거리는 내 곁의 별무리들∼ 그래, 니들은 다 별에서 온 그대가아닌 별에서 온 친구들이다. 별나라, 별사랑, 빛나는 별∼ 별아, 노래 불러줄가? 별아, 술 한잔 쭉~ 건배! 별아, 영화보러 가자. 한명한명 별이라고불러주면서 ‘수작’을 걸어보았다. 어? 그러네! 그러니까 우리가 니 곁에 별이네. 이제 더는 ‘별타령’ 하지 않겠네~ 하하하하 별들의 수다는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이어지고 수십년이 지나도 우리의 우정은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 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페의 슬픔과 미학   1. 여차여차한 일로 차량견인보관소에 들리게 되였다. 대문을 들어서자 한눈에 헤아릴 수 없는 ‘문제차량’들이 안겨왔다. 작게는 교통규칙을 어겨서 ‘자유’를 잃은 차량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크게는 접촉사고거나 큰 사고로 모셔진 차량들도적지 않은듯 싶었다. 또 페기된 차량들도 안쪽 구석에서 시간의 먼지를 쌓아가고 있었다. 아직 숨 쉬고 있는 차량들과 이미 숨을 거둔 차량들이 내보내는 한숨 같은것과 음산한 기운, 그런 것들이 황량하게 내 몸을 엄습해왔다. 입에서는저도 모르게 하∼ 하는 작은 소리가 새여나왔다. 저마다 사연이 있어 이곳에 모여진 차량들이였다. 일부 차량은 사연을 얼추 짐작할 수도 있었다. 누구의 탈 것으로 존재하다가 이젠 기각된 차량이 보였다. 정확히 그것은 이미 차량이 아니고 껍데기였다. 대만 남은 모습을 봐서는 아주 오래전의 차량 모델이였고 바람과 비와 해볕에녹이 쓸어있었다. 적갈색의 페차. 어느 시대 유물이고 혼자의 박물관인듯그 차량은 거기 숨을 죽이고 살아있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다치기만 해도 바스라질 것만 같이. 아직 흙으로 먼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간 속에서 툭 끊어지고 부스러지는순간을 기다리는듯이. 혹은 누가 어서 흙으로 먼지로 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듯이. 세월에 풍화된 저 적갈색과 텅 빈 저 껍데기는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그것은 시간이 내린 색이였고 그 색에는 길에서 씽씽 달렸던 열정과 로고함, 수많은로정의 풍경들이 침착되여있었다. 생을 다하니 저렇게 페기처분되는구나∼ 하는 허탈함으로 눈물이 솟아올랐다. 모든 사물은 운명을 다하면 사람들처럼 저세상으로 가고 이곳이 바로 페차들이 잠들어있는 무덤이구나∼ 저쪽에 페기된 뻐스 한대도 눈에 들어왔다. 그 뻐스도 역시 ‘골격’만 남아있었다. 유리창은다 깨졌고 텅 비여있는 내부와 곳곳에 파괴된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뻐스 곁에 놓여진 신발 한짝. 불의의 사고에서 크게 다쳤을 어느 길손의 신발 같은. 혹은 어느 망자의 가져가지 못한 신발 같은. 한짝만 남은 신발 우로 오후 해살이 환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 아픈 사연에 해살이 내려와 음침하고 스산한 기운을 거두어주고 있었다. 시간이 퍼그나 지났지만 그 날 오후 그 차량견인보관소에서 마주쳤던 페의구석구석들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직 숨이 있어서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것들보다는 세월의 끝자락에 서있는, 세월의 풍상고초를 고이 받은 모든 것들을 위하여 해살은 좀더 찬연해져야 할 것이다. 그들이흙으로 가는 길이나 무덤가에 아름다운 미소가 피여날 수 있도록.   2. 차주전자 뚜껑이 부주의로 깨지자 휴지통으로 던져버렸던 것은 수년 전의일이였다. 귀하게 선물받은 다기세트였고 단아한 모양새로 드물게 아끼던 물건중의 하나였다. 속상한 마음은 금할 수가 없었지만 이미 파괴되여 완정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버렸다. 그리고그 일을 기막히게 후회한 것은 바로 반년 전의 어느 날이였다. 우연하게, 조각나고 부서진 도자기를수선하는 공법을 접하게 되였고 그 수선공법에 감탄했다. 사진을 보니 얼기설기 붙여져있는 모습이 완정할 때보다더 아름다운 것이였다. 조각나고 부서진 상처자국은 금빛으로 된 선과 무늬와 도안으로 붙여지고 장식되여있었다. 그 아픈 곳에는 수선공예가의 상상과 정성어린 손길, 따스한 마음이 스며있었다. 상처를 붙이고 여며서 더 아름다운 가치로 환생시킨 기막힌 수선공법이였다. 파괴된사물에 대한 존중과 결여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의 마음 앞에서 나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끼던 그 도자기도 버리지만 않았더라면∼ 그 도자기는 벌써 흙으로 된 지 오래되였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뚜껑만 깨진 그 차주전자는 꽃병으로 남겨도 단아했을 거였고 깨진 뚜껑을 건사라도 했더라면 나중에 수선공예가의 손끝에서새롭게 탄생할 수도 있었던 거였다. 이젠 파괴된 사물들을 쉽게 버리기 없기다. 아직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깐.   3. 그리고 문득 어느 날, 우리 집에온 곱돌들이 그랬다. 다년간 맛집에서의 사명을 완성하고 우리 집으로 오게 된 이 곱돌들은 첫눈에보니 순 돌을 깎아서 만든 것이였고 아직은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이였다. 곱돌 세개 모두가 불에 심하게 그을렀고 물때,기름때,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그러나 질박한 미가흐르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비교적 완정했고 다른 하나는 밑굽의 사분의 일 정도가 얕게 떨어져나가있었다. 아마 손님 밥상에서 치우거나 설겆이를 하다가 떨어뜨렸거나 가장 취약했던 부분이 불의 세례에 못이겨 파괴된 것이리라. 또 다른 하나는 곁부분의 도드라져나온 부분이 약간 떨어져있었다. 세월의 때를 몸에 가득 두른 이 곱돌들은 아직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존재의 가치를 위한 고생고생을 다했겠지만 아직도 더 살아있을 가치가 있다는듯 생의 메시지를 나에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 세월이 좀 됐지∼ - 그러네∼ 슬프게 아름답네∼ 나는 그만 이 곱돌들의 아픔과 아름다움, 묵묵함에울컥해졌다. 감히 그 아픔을 만질 자격은 나에게 있는 것인가. 조심스럽게떨어져나간 부분을 만지는데 가슴이 저릿저릿해왔고 나는 이 곱돌들을 오래오래 손에서 놓지 못했다. - 맛있는 음식 잘 부탁할게. - 아깝게 바라봐줘서 고마워. 그래. 때묻은 너희들이 더 좋고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너희들이 더 멋있다. 조금씩 상처가 난 곱돌이라도 된장국이나 청국장을 끓이면 맛이 일품일 것이다. 곱돌에서 우러나는 맛과 질박한 분위기의 만남이니. 혹은 화로에 목탄불을 붙이고 곱돌을 올려 손질한 조개살을 넣고 맛있는양념까지 곁들이면 또 다른 료리도 완성되지 않는가. 아니면 송이버섯 밥을 지어도 구수한 누룽지까지 먹을 수 있어서 금상첨화일것이다. 곱돌의 사용용도를 생각하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감돌았다.   4. 페, 세상 곳곳에 있는 숨이 있거나없거나 하는 존재들. 슬픔과 아름다움이 함께 공존하는 것들. 시간이많이 쌓여져 누구도 흉내를 낼 수가 없는 것들이였다. 그들의 아픔에 슬퍼하고 그 살아온 세월의 흔적에서 아름다움을 보아내며충직하게 살아온 그들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먹먹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마음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페도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 페 때문에 마냥 눈물을 흘렸던 자신이 떠올랐고 이제는 그 페도, 그 눈물마저도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시바라본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웠다.     그리움의 단상   하루 폭우 기상예보가 내려졌습니다. 천둥번개에 강풍을 동반한 폭우라고 합니다. 어떤지역에는 우박도 내린다고 하네요. 하늘에는 먹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열린 창가로 비바람 내음이 들어옵니다. 많이 내려야지∼ 억수로 내려야지∼ 초봄부터 비상인 가뭄피해에 땅은 메말라가고쩍쩍 갈라지고 있습니다. 내 가슴 한구석도 가뭄이 든듯 메말라있습니다. 땅의 절규가 들리는듯합니다. 하늘이 그리워서, 하늘이 내려주는 사랑이 그리워서 땅은 절규하고 있는 걸가요. 나도 막연한 누군가가 그리운 걸가요. 하늘은 하늘 대로 높고 땅은 땅 대로낮고 그대들은 이렇게 비며 눈이며 바람이며 해살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겠지요. 나에게 든 가뭄도 감성을 말라 비틀어버리는듯합니다. 그리운 사람을 너무 오래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가요. 그래서 비가 내리면, 땅이 흠뻑젖어들면 나도 덩달아 촉촉해지고 생기를 찾을 것만 같습니다.   이 틀 그리고, 그 날이였습니다. 우리가 만나자고 얘기를 나눈 것은. -꼭 한번 가야겠네∼ 올해는 꼭 봤으면 좋겠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늘그립다는∼ -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거주하는 남과 북 사이 어디 쯤 만나볼가요? 재밌겠다∼ 이렇게 가운데 쯤 만나면요∼ -하하하 그런 방법도 있네요∼ 수필 한 둬편 나올 것 같은 느낌인데요∼ 그래요. 수필도 한 둬편 나와야겠지요. 그보다도 우리는 정말로 만나야겠지요. 저 푸른 록음마저도 숨막히게 드리우는 그런 여름이 시작되고 있네요. 우리는 만나야 해요. 잦은 만남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끔씩이라도 만나야 해요. 만나서 눈빛도 나누고 서로의 가슴을 적셔주어야 해요. 서로의 령혼에 스며들어야 해요. 내가 그대를 쫓아가던가. 그대가 나를 따라오던가. 아니면 가운데 쯤 어디서 만나야 해요. 사람은 결국 자신을 가장 닮은 것을 찾아가게 되는 거지요. 눈빛도 마음도 령혼까지도∼   사 흘 따뜻합니다. 뜨거운 물을 따라놓은 지 두시간이 다되는 이 다관이 아직도 온기가 있습니다. 저으기 놀랐습니다. 보이차를 우려놓고 감감 잊은 시간에도날 따스한 온기로 기다려준 다관입니다. 두손으로 다관을 감쌉니다. 어떤 흙으로 빚어지고 어떻게 구워졌길래 너는 잘 식지도 않는구나. 나도 이 다관처럼 오래오래 따뜻한 사람이였던지 생각해봅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이 만큼 살아왔으니 마음도 이 만큼 넓어지고 따뜻해졌다는 것”이라고. 아닙니다. 이 만큼 살아왔는데 마음은 더 좁아지고 서늘해진 것 같습니다. 저으기 자신이 미워집니다. 언제부터 시작되였는지 조금만 어떡해도 언짢아지는 세상입니다. 가끔은 참 시시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미간도 자주 찌프려서 하천 ‘천’자 주름이 제대로 찍혀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넓어지고 따뜻해지려면 한참은 멀었습니다. 그래도 이 다관처럼 오래오래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은 욕심일가요? 이 다관처럼 오래오래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이 다관 속의 보이차처럼 숙성미가깊은 사람을 만나 내 몸에도 깊은 향이 배이고 그 향 또한 오래오래 내 몸에 머무르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 역시 향기로워지고 따뜻해지겠지요. 만남은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겠지요.   나 흘 오후입니다. 작열하는 초여름의 태양도 서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해도 저기 서산마루에 붉게 걸리겠네요. 하루도 다 지나가버립니다. 만난 사람도 없이. 해놓은 일도 없이. 갑자기 누군가가 그리워집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너무 오래동안 그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대도 내 맘처럼 내가 그리운 걸가요. 그대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립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싫습니다. 힘든 고역입니다. 마음과 령혼을 한곬으로 흐르게 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마구 헛갈리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한사람씩 만나고 싶습니다. 그냥 마주앉아서 침묵을 해도 좋습니다. 서로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더 좋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이렇게 만나고 생의 일부분을 동행하고있는 것입니다. 만남의 희열과 환희는 살짝 가라앉히고 숨소리와 눈빛으로 우리만의 이 순간을깊게 느끼는 겁니다. 내면으로 흐르는 이 기쁨은 오래가도 잊혀지지가 않을 것입니다.   닷 새 새벽부터 비가 내립니다. 그대, 나의 상공 지나며 가슴 저릿하셨나봅니다. 지나간 자리 비로 내리며 그대, 나를 푹 적셔주네요. 이렇게 우리는 서로 스며들었습니다.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습니다. 가사가 없는 순수한 선률입니다. 슬픔이 잔잔하게 깔려있는 선률이 가슴으로 흘러듭니다. 만남과 리별과 세월이 가득 고여있어 나를 흠뻑 적십니다. 비가 내리고 내가 젖고 오늘은 한결 고와진 하루입니다. ∼ ∼ ∼ ∼ ∼ ∼   무한 겁 언제나 그랬습니다. 하늘이 있고땅이 있고 그대가 있고 내가 있습니다. 출처:2017 제5호
14    김혁: 스마트폰 전성시대의 문학(권두언) 댓글:  조회:402  추천:0  2019-07-18
스마트폰 전성시대의 문학 김혁   요즘 나의 손에서 핸드폰이 떠날 새가 없다. 꼭 마치 독실한 신자가 경서를 가슴노리에 꼭 품고 다닌다고나 할가, 핸드폰은 꼭 챙기는 지갑이나 열쇠처럼 몸에서 떨어질 수 없는 생필품이 되여버렸다. 현재 나는 몰아지경으로 위챗을 많이 한다. 몇해 전까지는 새로운 창작물, 창작담이나 일상에서의 명상과 같은 게시물들을 블로그에 실어왔다. 그것도 문학, 뉴스, 력사로 분류하여 무려 다섯개의 블로그를 쟝르별로 나누어 거의 십여년간 꾸려왔다. 하지만 이제 그 양상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핸드폰에 개인 위챗계정을 만들고 블로그와 더불어 나의 신작들을 실시간 올리면서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고 있다. 나의 위챗계정의 이름은 고향 룡정에 있는 오프라인의 나의 서재의 이름과도 꼭같은 ‘청우재(听雨斋)’, ‘소설가 김혁의 위챗서재’라는 부제 아래 그 키워드를 문학, 력사, 영화, 음악, 동물 등등으로 정하고 매일이고 게시물들을 나름 선정해 올리고 있다. 작은 핸드폰 속에 세상만사, 천태만상, 사방오방을 다 담으면서 구지욕에 넘쳐 ‘작은 드레박에 우물 통채로 담으려’하고 있다. 위챗계정에 문단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련재하여 뜻밖에 전에 없던 새로운 단맛을 보기도 했다. 십여년 전에 출간되였던 나의 첫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수상의 특혜로 나온 책이라 겨우 200권 밖에 출간되지 못했는데 위챗련재를 하면서 일 조회수 천여명을 초월했다. 게다가 댓글 기능까지 있어 독자들과의 소통도 원활하게 가능했다. 이러한 시도는 박봉을 털어 자비로 낸 종이책을 지인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주고 보면 시장류통이라는 환절이 탈락되고 책을 낼수록 외려 가난을 초래하던 불운한 문단풍토에서 벗어나 문학이 새롭게 독자들과의 만남과 호성을 불러낸 놀랍고 기꺼운 효과였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전성시대이다. 거리의 인도에서나 뻐스에서, 상가에서, 직장의 랑하에서, 기타 공공장소 어디에서나 저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스마트폰을 주무르고 있는 장면은 요즘 들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야말로 스마트폰 열람족들이 홍수를 이룬다. 수불석권(手不释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수불석기(手不释机), ‘손에서 기계를 놓지 않는’ 모습들이 되여버렸다. 이에 “독서공간, 깊이 있는 사유의 공간을 스마트폰이 침노(侵掳)하여 재래의 독서방식을 버리게 한다”고 지성인들은 우려의 이마살을 모으고 있다. 고민해야 할 테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인터넷 등 기술의 진보는 독서의 퇴보를 낳는 병페가 되였는가! 그 답안이 획일적이지만은 않다. 요즘 많은 잡지사나 매체들에서는 스마트폰의 기능으로서 독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보고 다운로드받게 해주는 써비스를 실시하기 시작하고 있다. 실제 《연변일보》, 《흑룡강신문》, 중국국제방송 조선말판 등 우리의 여러 매스컴 그리고 연변작가협회 등지에서는 위챗계정을 이미 출범시키고 폰으로 보는 세상, 폰으로 읽는 작품들을 시효성 있게 게재하고 있다. 웹 공간을 통한 문학과 뉴스의 독자와 청중과의 만남, 우리가 적극 받아들여야 할 긍정적인 변화이다. 불과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 형님 세대는 ‘종이책 독서 세대’였지만 그 아들, 그 동생, 그 손주 세대는 ‘기기 독서 세대’로 구분지어졌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앞섶에 만년필 두세개를 꽂고 두툼한 6권사전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며 지식인의 외양을 뽐내던 툽상스러운 시대는 지났다. 고리타분한 책내음이 짙게 깔린 서재의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두툼한 부피의 책을 훑는 독서도 독서일 테지만 붐비는 출근뻐스에서 스마트폰으로 하는 독서 역시 독서일 것이다. 문학을 담는 그릇은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또 변할 수 밖에 없다. 죽간(竹简)이나 양피지(羊皮纸)를 사용하던 시대에는 값싼 종이책에 외려 령혼이 없다고 보았다. 모바일 기기 등을 문학의 적으로 생각하는 부정적,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문학의 타락 또는 상실이라고 보면 더구나 안된다.  문학이 삶의 다양한 양태를 다루는 쟝르일진대 그렇다면 시대적 변화와 손을 잡아야 한다. 문학의 위기를 부르짖는 대신 득달같이 다가온 기계혁명에 적극 부응할 때 그것은 위상이 바닥에 내쳐진 문학을 새롭게 촉발시키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하다’는 그  용어를 다시 살펴본다. 스마트하다는 ‘몸가짐이 단정하고 맵시가 있거나 그 모양이 말쑥하다, 총명하고 민첩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스마트폰시대, 스마트한 자세로 시대에 락오되지 않는 스마트한 문학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꿈꾸어본다. 출처:2017 제5호
13    <장백산> 2017.4 루계214 댓글:  조회:886  추천:0  2019-07-18
장백산 루계214  2017제4호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중편소설)  박초란 에 대한 미니멀리즘적 분석(작품평)  김경훈 작은 풀의 숨소리를 듣다  조원   작가를 말하다 문학을 살아내는 작가(대담)  허련순&김홍란   기획련재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 련재4)  김혁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 별빛은 묘지 우에(시)  김혁 백년을 날아온 사람아,사람아(수필)  심명주 눈 내리는 모교(수필)  김명숙 윤동주와 그의 시에 나타난 향토애(평론)  오광욱   조광명소설코너 킬리만자로의 달(단편소설)  량영철 량영철의 인생고뇌와 거리미학(소설평)  최삼룡   계렬수필 봇나무(수필)  장정일 뒤켠 켐파스의 웅장한 소리(수필)  장정일 손녀의 초대(수필)  장정일 자연,음악 그리고 인생의 아리아(수필평)  권혁률   시인 시전 락엽을 태우며(시 외6수)  박장길 세월 깍아 시로 우뚝 서네(시평)  함소   창작마당 비련(단편소설)  리원길 암야의 시절(수필)  김의천 돈!돈!돈!(수필 외1편)  강해봉 숙소(수필)  김광영 오중의 두 명물(수필)  엽재/김견 옮김 고슴도치(시 외3수)  김학송 유리쪼각(시 외2수)  리주천 그 눈길(시)  금빛   장편소설련재 산귀신(장편소설 련재16)  림원춘 해볕이 춥다(장편소설 련재5)  구용기 무소유(장편소설 련재14)  정용호
12    심명주: 백년을 날아온 사람아, 사람아(수필) 댓글:  조회:461  추천:0  2019-07-18
백년을 날아온 사람아, 사람아 심명주   1. 2월의 룡정 동산, 깊은 겨울에서 깨여난 날씨가 거둬가지 못한 싸늘한 바람으로 성성하니 산길을 맴돈다. 이른아침이라 얼음이 미끌거리는 위태위태한 산등성이를 톺아 동산마루 큰길에 들어섰다. 낯선 듯 익은 산의 기운들이 확 안겨온다. 립춘이 지난 뒤에 추운 날씨가 이토록 바장이는 것은 해빛의 세례가 아직 완연하지 못한 까닭이요 더구나 바람을 안고 갈 길을 담금질하는 사람 맘이 은근한 초조함과 벌써부터 맞혀오는 그리움으로 얽혀있는 까닭이다. 동산의 산마루에 올라 익혀둔 큰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니 ‘윤동주묘소’라고 쓴 패쪽이 타향에서 만난 지인처럼 반갑게 안내해준다. 얼마 전에 내린 흰 눈들이 아직 도톰한 이불인양 갖가지 옛말이 다듬이된 줄느런한 묘소들을 메워주는 사이사이를 가로질러 정갈한 정원을 방불케 하는 윤동주의 봉분 앞에 다다랐다. 소담하게 쌓인 묘 앞켠 량쪽에는 키높이로 자란 소나무 두그루가 변함없는 푸름을 선사하고 다시 그 뒤 량옆으로 장성한 박달나무 두그루 역시 어전의 문무호위인 듯 혹은 시인의 성품인 듯 어질게 그러나 드팀없이 서있다. 눈이 내리고 또 바람 불기를 몇십성상이던가. 잠간 광명을 선사한 해돋이는 어느 사이 모습을 감추고 낮은 하늘에는 묵직한 구름층이 덮여있다. 그들의 보우로싸하던 바람날씨에서는 봄을 예고하는 훈훈함이 묻어난다.   룡정·윤동주연구회(룡윤회)의 주최로 진행될 ‘백명의 시민, 백년의 시인을 노래하다’라는 테마의 윤동주 추모행사에 동참하고저 조금 뒤 이곳으로 200여명의 시민들이 모일 것이니.   2. 윤동주, 일제 암흑시기 만주 북간도의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여나 오늘날 추앙의 성좌로 하늘에 새김된 시인, 여기서 잠간 윤동주의 가문과 시인의 생애를 간략해 본다.    -1886년 관향은 파평으로 증조부 윤재옥에 의해 함경도 종성에서 간도의 지동으로 이주했다. -1900년 조부 윤하현이 명동촌으로 이주했으며 이보다 한해 전(1899년)에 외삼촌 규암 김약연이 이주했다. -1910년 윤동주 일가와 김약연이 기독교에 입문했다. -1917년 12월 30일 파평 윤씨 윤영석(부)과 김룡(모) 사이에서 가문의 맏아들로 윤동주가 태여났다. 아명은 해환, 당시 부친은 명동소학 교원이였다. -1925년 명동소학 졸업했다. 급우들과 함께 《새명동》 동시 잡지 발간했다. -1932년 고종 송몽규, 동기 문익환과 함께 룡정 은진중학교에 입학, 가족이 룡정으로 이사했다. -1935년 9월 평양 숭실중학교에 편입했다. -1936년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학이 페교되여 룡정 광명중학으로 편입되였다. -1938년 연희전문대 입학. 시 로 시형태를 변경했다. -1942년 도꾜 릿꾜대학 입학, 같은 해 도지샤대학 영문학과 입학했다. -1943년 7월 일본경찰에 체포되였다.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일본감옥에서 생체실험품으로 옥사했다.   짧은 생을 마감하고 이 세상을 떠난 시인,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의 글이 지치지 않는 생명을 발산하고 있는 원인은 다만 명경지수의 진솔한 고백인 그의 시 때문만이 아니다. 조상으로부터 이어온 대높은 굳은 지조의 가문에서 윤동주는 잉태되면서 이미 몸에 민족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고귀하고 섬세한 기품을 서리높이 품은 령혼이였다.   그가 살아온 시대는 동트기 전의 새벽 같이 어둠이 가장 창궐하던 시대였다. 현대사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자신의 글들을 낯 뜨거운 변절로 얼룩지게 만들었던 하많은 문인들 속에서, 윤동주만은 자신의 시를 뛰여넘어 시종일관 순절이라는 지조 높은 후광을 떳떳이 발산한 사람이다.  그의 평범한 듯 맑고 지극스러운 성정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숨 멎도록 뭉클하고 따뜻한 무언의 기운이 팔다리, 어깨까지 포근히 얹혀져 심방을 적시여온다. 인성이 마멸되고 시비가 전도된 불우한 시대에 태여났으나 그것에  한치 타협함이 없이 자아성찰과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오롯이 인간의 순수함을 지향하고 민족을 지키고 진리에 대한 열정의 추구를 지조로 삼아온 시인이다.  지난 세기 그가 선득거리는 칼 같은 순절로 암흑시대를 가로질렀다면 오늘날 그의 순절은 라태하고 꿈을 잃어가는 우리에게 부드러운 채찍으로 되여 자근자근 다져주는 아름다운 편달이다. 이 또한 윤동주가 세상을 뜨고 다시 40년 뒤 1985년에 우리들 앞에 시성으로 부활된 리유이리라.   그런 윤동주가  2017년인 올해 청청한 백세의 로인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2월 16일 이날은 또 그가 옥사한지 72돐이 되는 날이다. 생생한 육필체가 기다리는 윤동주의 생가를 이웃하고 삶을 갈무리해간다는 것은 우리가 받은 천운이요, 그의 묘소가 자리잡아 빛이 나는 동산으로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서 숨을 쉬고 있음은 우리에게 부여된 감격과 자랑이다. 그러니 우리가 반드시 시인을 추앙하지 않을 리유가 무엇일가.  이런 뜻깊은 한해를 맞아 룡윤회에서는 백명의 시민과 더불어 그의 옥사일인 2월 16일, 그이의 묘소를 경배하는 행사를 펼치기로 기획을 세웠다.   3. 행사기획과 더불어 룡윤회의 행보가 부지런히 움직여졌다. 우선, 룡윤회 임원들의 지원으로 손수 묘소 앞 두그루의 소나무를 장식할 5백여송이의 흰꽃을 한송이 한송이 수제로 만들기로 했다. 꽃이 만들어지자 꽃송이를 나무에 매여다는 작업이 난제로 떠올랐다. 그러자 한번 비틀면 쉽게 매달 수 있는 장식용 쇠줄로 꽃을 달자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제기되였고 그러다가 쇠줄의 특정상 자연파괴와 소나무의 생태보존에 불리하므로 나중에 풍화작용으로 자연에 녹아버릴 노끈이나 실끈으로 수제꽃을 만들자는 의견으로 번복이 되였다. 이미 만들어진 쇠줄끈의 꽃들은 죄다 다시 노끈이거나 실끈으로 바뀌는 번거로움을 겪었지만 어느 한사람 불평이 없었다.  성원에 힘입어 함께 동참할 시민이 백명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따라서 묘소에서의 질서유지 문제가 시급했다. 이에 룡윤회 몇십명 임원이 하나같이 동원되여 솔선수범으로 행동을 보여주며 시민대오를 이끌기로 약속을 모았다. 특히 행사 당일 윤동주 묘소 외 주위의 다른 묘소들에 대한 침례를 의식하여 마음대로 다른 무덤들을 밟지 말거나 청결을 보장해줄 것 등 당부 메시지를 미리 십수차 시민들께 올렸고 또한 고인에 대한 애도의 뜻으로 어두운 계렬의 복장을 통일로 착복하며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해줄 것도 곁들여 주문하는 등 세세한 전제 작업들이 이어졌다.  진정성이 바탕이 된 행사 동원으로 참여 시민이 한명한명 늘어나 끝내는 백오십명을 넘치였고 행사 전날이 되여 결국 이백여명으로 치달았다…   2월 16일 오전 9시 반, 묘소 봉분 량옆의 푸른 소나무에는 룡윤회 회원들이 아침 새벽 먼저 와서 직접 손으로 한송이 한송이 정성들여 만들어 달아놓은 몇백송이 희디흰 종이꽃들이 목련마냥 소담히 피여있었다. 시인 묘소의 제단에는 성의가 한가득한 제물이 차려져있었고 흰 생화로 광주리 가득 메운 꽃바구니도 묘소 곁에 다복이 놓여있었다.  범상치 아니한 시인의 과거를 뜻하는 듯 옅은 흙색을 바탕으로 프린트된 대형 프랑카트가 맨 먼저 묘소에 세워졌다. 그 오른쪽 크낙한 한면을 감성적이나 강인한 시인의 흑백 모습이 바탕색과 강렬한 조화를 이루어 눈길을 끌고 프랑카트 왼쪽은 짙은 락엽색의 손바닥인양 ‘윤동주’라는 검은 테의 하얀 이름 석자를 오연히 떠받치고 있다. 하늘과 땅을 오롯한 병풍처럼 두개의 대형 프랑카트는 묘소 뒤 그리고 묘소 맞은편 나무에 각각 세워져 서로 호응하듯 어우르듯 곧 도착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을 기다려 일사불란히 달려온, 유표한 명찰을 앞섶에 드리운 룡윤회 회원들은 새벽 일찍부터 나와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묵묵히 대기중이였다. 지원자로 자처한 중학생과 대학생들이 함께 수백송이 흰 꽃을 달고 두 팔 걷고 묘소 주위를 깨끗이 거두었다.    9시 50분 좌우, 드디여 서향받이 묘소의 비탈 뒤로 재를 넘어 길게 뻗은 큰길에 대형 뻐스 3대가 나란히 도착했다. 초봄 속에 무연히 스러진 길 곁의 허랑한 옥수수밭을 배경으로 정거한 차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질서정연하고 숙연한 분위기의 검은색 물결이 묘소 쪽을 향해 천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석대의 차량 속에서 세줄기로 나뉘여 흘러내리던 물결들은 자드락에 누운 묘소를 겨냥한 사이곬에 들어서면서 이윽고 한갈래의 길고 장중한 모듬강줄기로 변하여 묘소를 향해 흑룡인 양 검게, 유연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푸른 잎을 띄운 작고 아담한 흰 조화를 정중히 달고 천편일률로 고인명복을 기원하는 무거운 분위기의 복장을 착복한 사람들. 그 시민들 속에는 머리발이 하얀 팔십여세 지존의 어르신이 계시는가 하면 이제 눈발을 헤치고 곧 봄눈을 녹이며 땅속에서 돋아오를 햇풀 같이 싱싱한 칠팔세 받이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하나같이 장중하고 엄숙하며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녀로소 세대가 폭넓게 포용되여 운집된 사람들 속으로 맑고 발랄하고 깨끗한 눈망울의 고인 윤동주의 어린 모습이 보였다가 백년을 날아 잠시 지상을 소풍하러 내려온 하늘의 별-희끗한 머리발의 백세 윤동주의 환영이 엇갈려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4. 기승 부리던 산바람이 잠풍으로 가라앉았고 몇백명 시민들의 움직임마저 짓누른 고요가 묘소 주위를 틈없이 꽉 메웠다. 드론의 비행소리가 나지막이 창공을 가르며 예언자인 듯 시간의 흐름을 가리켜주고 이미 사람들은 시인의 령혼에 빙의된 듯 절절한 추모에 젖어들었다. 제전에 따라올리는 한잔한잔의 술들은 그리움의 이슬이요, 저승강에 흩날리는 파도가 아닌가.     1917년에 태여나 1945년에 떠나기까지 순간인양 짧았던 시인의 생몰력사이다. 어두운 시대와 타협하여 범인凡人으로 함몰되기를 거부하고 하늘, 바람과 별에 의탁하며 끝없는 성찰과 참회로 거듭나기를 이어온 백년의 우주 소울-윤동주, 그 앞에 따르는 제전술은 그이의 령혼과 만나는 징검다리임에랴. 어두운 낮구름과 하늘과 땅 사이를 에도는 바람의 흔들림 속에서 남녀로소 시민들의 시 읊기 향연이 펼쳐졌다. , , , … 세파를 가르는 굵직하고 묵직한 음성이 울리는가 하면 카랑카랑 맑은 어린이 음색까지, 묘소 앞에서 읊는 시인의 시 한수 한수 그대로가 다시 여운으로 회귀되여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기를 받아이음이려는가, 마지막으로 이백여명의 시민은 동성으로 시인의 를 읊었고 그 소리가 조용히 울려 하늘가에 닿았거니. 기획과 준비로 장장 한달 여 시간을 품을 들인 룡정·윤동주연구회의 이 행사는 시작처럼 조용히 결속되였다. 분명한 것은 이번 룡윤회 행사로 그동안 알려진 우리 민족의 시성-윤동주가 더욱 깊숙이 더욱 자랑스럽게 시민 속으로 스며들었다는 점이리라. 그리고 백년 맞이 윤동주의 붐은 오늘부터 더욱 널리 휘날릴 것이리라. 불우한 시대를 거쳐 하늘을 가로지른 혜성인 양 세상에 굵직하게 이름을 박은 별의 시인은 백세를 맞아 오늘 저 창공 어딘가에 서서 회심의 미소를 보내고 있을가. 백년을 거쳐 이곳에 다시 날아온 사람아, 사람아, 시인이여! 출처:2017 제4호
11    <장백산>2017.3 루계213 댓글:  조회:763  추천:0  2019-07-17
장백산 총213호 2017제3호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마지막 미쟁이(중편소설)     리승국 도시화 시대 소외자의 삶에 대한 관조(작품평)  장춘식 짜개바지친구-작가 리승국(작가평)   채운산   작가를 말하다 “내게서 문학을 뺴면 난 ‘령’이 될 터이니(대담)   김혁&김홍란   기획련재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련재3)   김혁 필끝에 건곤세상 있나니(련작칼럼,련재끝) 김혁   제11회 중한작가회의 특집(3) 자연을 경청하는 7가지 방식(산문,외1편)  호동림(중국)                                          권혁률 옮김 바람(산문)   포르키 원야(중국)                    김견 옮김 해바라기씨까기(산문,외1편)  조배광(중국)                             김견 옮김 어둠의 단애(시,외6수)       류인서(한국) 정육점 녀자(단편소설)       권지예(한국) 일상적 삶의 변화와 시 읽기의 어려움(평론)   홍정선(한국)   조광명소설코너 무등을 켜라(단편소설) 조광명   계렬수필 살춘각 참꽃(수필)  량영철 살춘각 돼지(수필)  량영철 살춘각 일기(수필)  량영철 살춘각 수필의 세속화와 지저분함과 신사실주의(수필평)  최삼룡   시인 시전 너를 보면 내가 보인다(시,외5수)  도옥 칼과 옥의 시(시평)  우상렬   창작마당 빛의 함정(단편소설)  연서 실면하는 밤의 저 끝에서 들려오는 소리(수필)  김재국 그 녀자의 하모니(수필)  류재순 발이야기(수필)   엄정자 때늦은 귀가(시,외3수)  김옥결 복수초(시,외1수)  리명희   문학과 비평 경도된 상을 보여주는 파편적구성의 집합체(론문)  김홍월   장편소설련재 산귀신(장편소설,련재15)     림원춘 해볕이 춥다(장편소설,련재4) 구용기 무소유(장편소설,련재13)     정용호
10    도옥: 너를 보면 내가 보인다(시, 외5수) 댓글:  조회:433  추천:0  2019-07-17
너를 보면 내가 보인다 도옥   꽃 본 듯이 너를 보면 내가 보인다 내 안에 꽃처럼 들어온  너의 향기가 나를 신사로 만든다 지난 겨울 낡은 외투에 티끌의 세월은 시원히 사라지고 상긋함의 겨울길이 환하다 너를 보면 내가 보인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 눈송이처럼 너에게 내리고 싶다 망설임 없이 서성댐이 없이 화려한 타개로 령롱한 눈빛 지니리 너를 보면 앞길이 환하다!     떠나는 그대에게    잠시 떠난다고 말하라 봄이 꽃을 피우고 잠시 땅속에 스며들듯이 눈물자리에 꽃을 피워놓고 떠나는  그대여 잠간 갔다 돌아온다고 말하라 슬픔의 꽃은 지고 열매가 오듯 향기론 그대의 꽃말 속에도 계절은 가고 펑펑 그리움은 눈이 되여 내린다 눈사람 되여 하얀 발자국 심고 떠나는 그대여 잠간 갔다   돌아온다고 말하라 강남 갔던 제비새 돌아오듯이 봄강물 여울치는 여기가  네 태초의 모태라고 말하라.  떠나는 그대여!     어둠과 빛 사이 사랑이   기다림이 어둠이란 사실을 그대를 잠간 보내고 알았습니다   어둠에서 익어 무르익어 태여난 빛이 그대와의 만남임을  깊은 밤 별빛을 쌓아올리며 느꼈습니다   빛과 어둠 사이 그대와 나 어둠과 빛 사이 나와 그대   시간은 소리가 없습니다 모든 진동이 우주의 바퀴를 굴려가듯 밝음으로 오는 사랑은 당신입니다   그대의 빛나는 아침을 위하여  저는 창창 어둠의 새벽을 불타는 폭포처럼 뛰여내립니다   당신은 빛의 신입니다  저는 당신을 받쳐올리는 거대한 어둠의 그릇 되겠습니다   어둠과 빛 사이 흔들리며 피여오르는 한송이 꽃이여!     매돌   돌밭에서 하얀 세월 기여나왔다 해살이다 사랑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월 속 눈물의 강물 굽이쳐가고 엄마의 눈물 어린 꿈들 새파랗게 파도쳐갔다 아이 눈망울에 붉은 저녁이 익어 슬픈 그림자 흔들며 돌아서고 할아버지 하얀 기침소리 노란 옛말 하얀 모국어로 사립문가 하얀 향기로 피여올랐다   활화산 설설 끓던 전설 천지인 가슴가슴 굽이쳐 쇠물로 흐르다가 비탈길 진붉은 진달래 피워내고 강물에 조약돌 쟁쟁한 노래로 살다가 향수처럼 온돌방에 올라서 구름석가래 틀고 앉아 빙빙 둥그렇게 돌아갔다 세월이 돌아갔다 수레바퀴가 돌아갔다 천년이 돌아갔다     바다에서 온 것들이 돌아가고 땅에서 온 생명들 다시 부활하는 자리에서 빙글빙글 우리가 돈다 베옷이 돈다 흰 넋이 돈다 오천년 화려한 오방색 무궁화가 어진이 하얀 마음 하얀 평안 하얀 전설로 빙글빙글 찬란한 옛말 속에 매돌은 하얗게 앉아 돌아간다…     흙의 재해석   우주의 먼지들이 모여앉아 역설의 열매를 빚다 죽은 공룡의 뼈가 나무로 서서 감탄으로 문명을 연출하고 웅녀의 마지막 밤이 꽃으로 피여나 인간을 노래했다 흙의 반역 난바다 벽파도 새벽하늘 작은 희망 걸어놓고 다시 돌아온 아침 우리는 시퍼런 삽날로 흙 속에 진리를 파내고 있다 검은 태양과 붉은 달 어제로 돌아가는 수레바퀴가 데굴데굴 굴러와서 풍화된 세월 회색으로 메웠다 하얗게 멈춰선 시간들이 다시 돌처럼 굳어져 우리의 오늘 새겨넣고 있었다     마음   어느 날 시가 나에게로 왔다    가만히 돌아보니  시는 그대와 내 눈빛 사이  해살 같이 내려와 있었다    그 해살 한줌 너에게 쥐여주었다    어둡던 너의 미소가  빛을 머금고 있었고  주변이 황홀해지기 시작하였다   너는 그 해살  주머니에 집어넣고 돌아섰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늘 함께 있었다    그것은 그 날 내가 너에게 준  마음 한줌 때문이였다!   출처:2017 제3호
9    김혁: 필끝에 건곤세상 있나니(칼럼, 련재끝) 댓글:  조회:481  추천:1  2019-07-17
필끝에 건곤세상 있나니(련재) 김혁   마른 붓, 적실 먹이 없소이다 -원고료의 인상   대회 기간 개막식과 작가협회 장정 심의, 위원 선발 등 정례적인 일정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은 분조토론으로 이어졌다.  분조토론 기간 가장 도마에 오른 문제의 하나는 바로 작가들의 원고료 문제였다.  원고료의 상향조절에 대해 대표들은 앙분한 모습으로 열변을 토했는데 그 와중에 절강의 모 잡지사 녀주필의 발언은 그야말로 메가톤급이였고 우리는 그만 ‘경성에 온 촌닭’ 격으로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새해부터 우리 잡지에서는 고료를 매 천자에 1,000원 표준으로 올리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강건너 꽃’과 같은 그 경상과 바닥에서 굼닐고 있는 우리들의 고료 표준을 비해보며 조선족 대표들은 그만 씁쓰름한 미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원고료 문제에 대한 열규(热叫)는 작금의 일이 아니다. 대표들의 열띤 토의에 귀를 기울이며 다시 한번 우리 문단에서는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원고료 문제에 대해 환기해보았다.    옛적부터 청고함으로 무장한 문인들은 돈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다. 그래서 원고료라는 말도 제 입으로 번지기 싫어 ‘그것’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불렀다. 그러다 자못 아치(雅致)한 이름인 ‘윤필(润笔)’이라 바꾸어 지칭했다.  ‘윤필’이라는 말은 맨 처음 《수서권삼십팔·정역전(隋书卷三十八·郑译传)》에서 연유되여 나왔다.  어느 한번, 수나라의 수문 황제가 천하의 문장가 고영더러 조서를 지으라고 불러들이였다. 하지만 고영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찾아온 궁중사자에게 “소생은 필이 말랐소이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조서를 지어 먹을 살 돈냥도 안되는데 어찌 필을 적시겠나이까?” 하고 덧붙여 말했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원고료를 가리켜 필을 적신다는 뜻에서 ‘윤필’이라고 이름해 불렀다고 한다.  남송시대의 학문을 집대성한 경전고서인 《용재수필(容斋随笔)》에서 “윤필은 진나라 때부터 있었고 당나라 때 흥성했다. 문장을 지어주면 인사를 받았다.”고 적고 있는데 원고료 제도가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찌되여 자고로부터 글 읽는 사람은 가난하기만 했다. 청고를 품덕으로 알았던 문인들은 체념하고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가난하면 정신이 맑고 뷰유하면 정신이 혼탁하다고 생각했다. 령혼에 살이 붙으면 필이 둔감해지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선비란 무릇 가난한 법이니 가난이 곁에 있음을 근심하지 말라”고 서로를 이르기도 했다.   글쟁이들의 형편이 곤궁한 것은 어제오늘의 흥감스러운 문제가 아니였다.  조선시대 시인들의 작품을 집대성한 《풍요속선(风谣续选)》을 보면 이런 발문으로 시작된다.     “아! 이 《풍요속선》에 이름이 나란히 렬거된 사람이 삼백여명이나 되고 시가 칠백여수가 되지만 불우함을 슬퍼하고 의식을 걱정하는 사람이 거의 삼분의 이가 되니 선비가 글을 잘하면 곤궁하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처지가 곤궁한 뒤라야 글을 잘하게 되는 것인가?” 비탄(悲叹)으로 가득한 이 발문에서 시를 숭상했던 조선시대에도 문인으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돌아보면 근, 현대에 이르러서도 수두룩한 천재문인들이 가난에 숨통을 옥죄이며 살아갔고 가난을 못이겨 스러져갔다.   가까이 전례를 봐도 지난 30년대 연변 일대에서 활동했던 프로레타리아문학의 대표인물인 최서해, 강경애도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난한 나머지 최서해는 일습을 개비하지 못하여 여름에도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다녔고 강경애는 경성을 놀래운 유명한 녀문인이라지만 내내 빠진 앞이발도 해넣지 못하고 처량한 웃음을 남겼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문학사의 한획을 그은 문호들임에도 ‘체험문학’, ‘빈궁문학(贫穷文学)’이라는 새로운 문체의 대표자로 각인되기도 한다.  그렇게 이들에게서 글은 리상이였지만 막상 먹고 입고 자는 것은 현실이였다.  최서해, 강경애가 전설로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글만 쓰며 살아가기란 여전히 어렵다. 누구나 한번 쯤은 시인과 작가를 꿈꾸지만 글은 밥이 될 수 없음은 여전히 엄혹한 어제이자 현실이다. 오늘날에도 문학은 살아나가는 실용적인 방편이 돼주지 못한다. 꿈이 아무리 아름답다 손 쳐도 현실의 밥과는 달리 먹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문인들은 글로는 앞장서 달리며 세상을 향해 ‘사자후’를 내지르지만 현실에서는 생존의 대렬에서 뒤처져 그저 끼리들이 고담준론을 소곤거릴 뿐이다.   글품을 파는 사람들 치고 누구나 한번 쯤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개탄을 뿜어봤을 것이다. 글의 갈피에도 적어봤을 것이다.  조선족 문인들은 작가협회에 회원으로 등록된 이만 해도 전국에 600여명은 더 된다. 여기에 협회에 가입하지 않고 문필생활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아 인구비례수로 말하면 조선족 문인수는 여타 민족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글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문인은 한손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도 없다. 아예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원고료 수입만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작가는 전무, 0%라는 랭혹한 수치다.  제도적 혜택도 있고 기업가들의 간혹 되는 지원이 있다고 하나 그것은 ‘덴 손에 침 바르기’요, 추위에 들썩이는 헌옷을 림시로 꿰매기로 미봉책(弥缝策)이다.  우리 말로 된 월간,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간행물은 수십종이 넘는다. 순 문학지만 해도 4종이나 된다.  하지만 원고료는 일률적으로 낮다. 어섯눈 금방 뜬 신인이건 수십년 필밭에서 등허리 휜 원로건 구분 없이 낮다.  가난한 잡지사에 가난한 작가들 뿐인 우리들의 엄연한 현실이다.  일개 문인으로서 글은 쓰되 원고료는 받지 않아도, 적게 받아도 괜찮다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다. 글에 열성을 보이는 신진들은 원고료를 별로 못 받아도 흔쾌히 작품을 기고한다. 글 쓰는 일에 마음을 앗겨, 자신의 작품을 빛 보이기 위해 보수 먼저 글을 내미는 신출내기 작가들의 심정을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붓대에 기대여 이슬만 먹고 살려는 그런 선비는 과연 몇이나 될가! 글을 쓴 대가로 원고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말하는 일이 부끄러운 일처럼 되고 있으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원고료 문제를 의안에 올린 지 어림 30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문인들은, 우리 문학은 절규하고 있다.   우리 말 간행물들에서는 전대미문의 동란이 결속되고 문인들이 옥죄인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필을 달리던 1970년대 말께부터 문학원고료를 지불하기 시작했다. 당시 1,000자 당 원고료가 5원 좌우였다. 그때의 평균로임 수준 40원을 참조하면 표준이 엄청 높은 편이였다.  필자의 경우 1985년에 발표한 처녀작 단편소설 이 75원의 고료를 받았다. 지금도 보풀이 일어 나달나달해진 당시의 원고지를 간직하고 있는데 자수가 1만 8,000자 가량이였다.  당시 스팀관과 하수도 덮개를 만드는 룡정 주물공장의 용광로 앞에서 위험과 로역(劳役)을 감수하며 일했던 필자의 급여가 한달에 겨우 30원 정도였다. 그에 비하니 필대 하나로 벌어들인 원고료가 금맥이라도 만난 듯 일확천금 같은 액수였다. 그 원고료로 난생처음 양복을 맞추어 입었고 편집선생들을 근사한 식당에 청하고도 30원 가량, 내 한달 급여 만큼의 액수가 남았다. 당시 열아홉살 신출내기였던 나는 처녀작의 발표로 인한 기쁨보다는 굉장한 액수의 원고료에 당혹스러워 두 눈을 호동그랗게 치떴던 기억이 남아있다.  당시 젊은이들이라면 거개가 문학애호가로 자처했다. 종합지는 물론 문학지의 말미에 어김없이 등장했던 혼인구애광고에 ‘문학을 애호함’이라는 조건을 현요한 위치에 적었는데 그것은 요즘의 ‘집과 차가 있음’이라는 홍보물보다 더 강력한 유혹이였다. 따라서 문학지는 문전성시요, 잡지의 발행부수도 천정부지로 높뛰였다. 《천지》와 같은 주요 문학지는 8만부라는 전무후무의 발행 진기록까지 남겼다.  문학에 몰부어진 광휘는 단 그때 뿐이였다. 90년대 이후, 문학과 문인들의 처지와 위상은 추락을 거듭했다. 당년에 문단의 상아탑 우에서 광택이 빤드르르했던 우리의 문필가들은 현실의 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그에 따라 우리의 원고료도 볼썽사납게도 성장판이 닫힌 주유(侏儒) 꼴이 되고 말았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생산과 효률을 무엇보다 우에 놓고 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시대를 향해 흘러갔다. 오로지 공명과 리욕에만 사팔뜨기가 된 근시안의 시대에, 문화도 수익산업으로 인정받아야 살아남는 시대에 문인들이 표방하는 순 문학주의는 무용한 열정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얻은 것은 높은 효률이였지만 잃은 것은 문학과 예술이였다.  이러한 풍토에서 문인들에게 부여되는 보수는 ‘붓을 적실’ 량도 못되였다. 문학도 돈이 돼야 살아남는 시대, 문인들에게는 쥐꼬리 만한 원고료라는 것이 늘 마음에 차지 않았다. 1999년 에서 제정한 원작, 개편과 번역 작품의 표준은 1,000자당 원고료가 각기 30-100원, 10-50원, 20-80원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중국 문단, 내지의 문단의 표준이고 조선족 문단의 표준은 이 규정에서 가장 하위인 30원에 머물렀고 간혹 조금 웃도는 표준이였다. 그 표준을 우리는 내내 정량(定量)으로 알고 잡지사들에서는 게면쩍게 고수해왔고 작가들은 온곱게 받아들였다.  이제는 근 20년도 되는 때에 제정한 기본 원고료 표준으로 현재의 수입수준, 소비가격지수 및 물가 상승폭도를 감안해 따져보면 이는 현실과 엄중하게 탈절되여 간극 나아가 괴리를 초래했다. 따라서 문학작품의 응분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게 되였다. 게다가 일부 잡지사들에서는 이런 낮은 표준마저 리행하지 못했거나 아예 체불까지 하는 현상도 적지 않았다. 필자의 경우 과거 받지 못한 원고료가 정작 따지고 들면 예상 외로 많다. 하지만 문학에 옹근 생을 기약한 사람으로서 큰소리로 채문하지도 못하고 그저 벙어리 랭가슴 앓듯했을 뿐, 이제는 꿩 구워먹은 소식이 되였을 뿐이다. ‘돈을 꾼 자는 기억 못하지만 꾸어준 자는 기억’하는 꼴이 된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랭가슴을 앓아본 이들이 우리 문인들중에 한두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내내 정열을 삭이지 않고 비 내리지 않는 척박한 땅에 필 보습을 대고 문학이라는 사래 긴 밭을 그악스럽게 갈고 두엄 주고 씨 뿌리고 풀 잡고 하며 부지런을 떠는 우리 작가들이야말로 경의로움의 대상이 아닌가!  작가들의 뜨거운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낮은 원고료의 ‘방자’함은 창작대오를 위축시키고 정품창작을 정체시키고 문학후비군의 단절을 초래하는 ‘도미노 효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체념에 빠진 우리 작가들은 그 진동도 괴멸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초미(焦眉)의 형국이다.  2013년 9월 국가지적재산권국은 드디여 을 발포해 원고료 표준 및 판권세률을 높였다. 희보에 의하면 원작 작품의 원고료 표준은 매 1,000자 당 100-500원, 개편, 번역 작품은1,000자 당 각기 30-150원, 80-300원이였다.  “에헤야, 원고료가 세배, 네배 껑충 뛰여올랐네.”라며 문단은 희열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 희열은 또다시 남의 몫, ‘강건너 꽃’이였다. 기타 소수민족들 신강, 서장, 내몽골, 청해 등 지역의 원고료는 130-300원으로 새로운 표준에 보조를 맞추었다. 하지만 왜서인지 우리 조선족 문단만은 잠잠했다. 그냥 18년 전의 원고료 표준이 시행되였다. 도저히 생활의 방편으로 못되는 ‘조족지혈(鸟足之血)’ 즉 ‘새발의 피’ 같은 얄팍한 원고료를 우리 작가들은 무가내로 그를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잡지사가 좋은 원고를 기고한 작가에게 높은 원고료를 주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지극히 당연한 이 일이 오래동안 외면되고 정례화처럼 받아들여진 현실이 참담했다.  따라서 존립하고 있는 문학지 모두가 원고료 발부에 대해 오래동안 고심해왔다. 우리 말 기본 원고료 지불 표준을 장기간 매우 낮게 책정한 탓으로 잡지사들도 난감함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열성을 다하는 작가들에게는 내내 미안쩍은 마음들이다. 작품을 게재해준 것만 해도 시혜를 베푼 것으로 착각하고 목에 힘을 주는 잡지사나 편집자들이 요즘 들어 찾아볼 수 없게 되였다. 주눅이 들어 조심스럽게 작가들에게 원고 청탁하는 그들의 심경은 착잡할 것이고 로고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조선족 작가들의 최악의 원고료 문제는 인민대표대회, 정협회의에도 상정되였던 현안이였다. 우리의 작가들은 수차 정협회의에 을 내놓았고 “정부에서 시대발전에 따른 원고료 표준을 제정해 소수민족 문학 발전을 추진하기를 바란다”는 제안을 수차 간했다.                   연변작가협회 최국철 주석의 지론에 따르면 《연변문학》, 《도라지》, 《장백산》 등 대표적인 주류 문학지가 일년에 지불하는 원고료가 모두 합쳐 20만 좌우라고 한다. 거기에 《송화강》, 《연변일보》 ‘해란강’문학부간을 비롯하여 《길림신문》, 《흑룡강신문》, 《료녕신문》 문예부간들의 원고료를 모두 합쳐도 30만원에 못미치는 액수이다.  “요즘 개인집들에서 갖출 수 있는 자가용 한대 값 정도인데 한두 사람도 아니고 전반 문단을 아우른다고 할 때 이만한 액수조차 해결할 방법이 없냐”고 최국철 주석은 안타까움과 개탄을 내비쳤다.  순 문학의 성질로 볼 때 무작정 시장경제에 투신해서 그 사명을 완수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우리의 지도간부들이 소외된 문인들의 신음에 귀 기울이고 조선족 언어문자 신문, 출판, 방송에 중시를 돌려 ‘문학의 배고픔’을 덜어줘야 한다. 문인들의 사기진작과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기본적인 원고료 문제부터 해결하여 우리의 문인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문학의 꽃을 더 화려하게 오래도록 피울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성원과 배려가 있기를 오늘도 주문해본다.    반가웁게도 작가대표대회가 끝난 지 두달도 못되여 랑보(朗报)가 들려왔다.  60년 경륜을 자랑하는 우리 말 문학지 《연변문학》이 참으로 오랜만에 원고료를 상향조절한 것이다. 새로 출두한 연변작가협회 지도부가 더 직접적으로 문인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지원제도를 만들고저 고심을 거듭하고 파워 있게 진척한 기꺼운 결과이다.  새해 첫기 톱자리에 소설과 칼럼을 발표했던 필자는 행운스럽게도 수십년 동안의 불문률을 깬 문단희사의 첫 수혜자로 되였다. 평소보다 3배나 더 높은 원고료를 받아드니 첫 원고료를 받아들고 가슴 높뛰던 문학도 시절 때처럼 문학의 의미와 작가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새로웁게 가져보았다.  비록 원고료가 조금 인상은 되였지만 아직 한곳의 문학지 뿐이고 중국 문단이나 타민족 문단에 비하면 우리의 원고료는 아직도 턱없이 적은 액수이다. 그 인상은 미흡하지만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긍정적인 발상이요 바람직한 과정이라고 문단은 일단 갈채를 보내고 있다.  차거움을 밀어내는 훈풍과 더불어 우리의 작가, 편집들이 고개를 쳐든 원고료와 함께 더 높은 곳을 지향해야 함이 제기되고 있다.  작가대표대회 기간 어느 한 대표가 원고료를 두고 한 생동한 지론을 인용해본다. “원고료 인상은 중국 축구와 마찬가집니다. 높은 보수로 주가가 높은 선수를 들여왔다면 단기간 슛하는 수자는 늘 테지요. 하지만 장원한 관점에서 보면 이는 중국 축구의 발전에 그닥 큰 작용을 놀 수는 없을 겁니다. 현저한 본질의 제고를 가져오기 어려워요. 문제는 전반 팀의 기술의 높이와 더불어 축구시장 기제의 원숙함과 수준 높은 팬들의 부응이 따라가야 하니깐요.” 원고료의 인상이 문학의 생존현황을 당장에 개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의 작가들이 더욱더 필을 진중하게 들고 우리의 문학지들이 정품으로 꾸며져야 날로 높아가는 독자들의 맛망울과 시장의 수요에 부응할 수 있고 잡지가 생존할 수 있으며 작가들의 높은 원고료 또한 장기적인 보장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대표대회 기간 예언을 보였듯이 올 들어 중국 문단에서는 기본 원고료 표준이 또 한번 큰 폭으로 껑충 상향될 전망이다. 중국의 주요 매체들이 라는 표제로 사설을 발표, 이 한 변화에 긍정을 표했다.  원고료를 올리는 것은 이미 문단의 대세로 대두하였다. 아무리 시장경제가 선점하고 있는 현실이라 해도 문학에 대한 요구와 소비는 계속될 것이다. 때문에 원고료의 인상은 문인들을 위무해주고 격려해주는 ‘청심환’이며 문화에 대한 존중의 후례厚礼가 아닐 수 없다.  분조토론이 끝난 후의 오찬시간, 호텔 식탁에서 강소의 작가 소동과 마주쳤다. 지난 1997년 석가장에서 열린 전국청년작가창작회의에서 유일 조선족 대표로 참가한 나와 소동은 회의 기간 내내 이웃좌석이였다.  장예모의 영화 《붉은 등롱 높이 걸렸네》의 원작 소설 작가로 널리 알려진 소동은 나보다 두살 손우였지만 막언, 여화, 필비우와 더불어 전국에 문명文名을 떨치고 있었다. 그때 소동이 원고료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은 적 있다. 당시 소동은 《신 란세가인》이라는 텔레비죤드라마의 씨나리오를 역시 문명이 하늘로 치솟아있던 왕삭과 함께 기획, 창작한다고 했다. 그때 소동이 원고료를 한회 당 30만원씩 받는다고 곁에서 소곤거렸다. 그 후 《신 란세가인》은 전국의 여러 텔레비죤 채널에서 방영되며 브라운관을 달구었다. 향항의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드라마는 저그만치 33부의 장편드라마였다. 그러면 그 원고비는? 나는 그만 아득함에 부지중 짧은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그런 문인, 그런 풍토가 부러웠다.  20년 전의 치기로 얼룩졌던 생각이 오늘날 문단 정상의 자리에 오른 소동을 다시 만나는 순간 또 한번 떠올라 나는 감회의 미소로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조선족 문단도 지금 ‘가장 낮은 원고료’라는 불명예와 불문률의 봉인을 뜯어젖혔고 작가들은 의욕을 보이며 소명에 답하는 마음으로 ‘소매를 걷고’ 있다.  바야흐로 높은 원고료를 지급하는 문학지가 더 많이 생겨나 문인들의 자긍심과 용기를 심어주었으면 한다. 앞으로는 원고료 지급 경쟁이 일었으면 하는 욕심 아닌 바람을 가져본다. 이제 원고료를 주며말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주느냐에 따라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마른 붓을 적시고 얼마나 당찬 작품을 내놓느냐로 경쟁의 구도와 내용이 바뀔 터이니 말이다. 이런 ‘우후개화(雨后开花)’의 날이 우리 문단에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기대해본다.  (련재끝) 출처:2017 제3호
8    <장백산>2017.2 루계212 댓글:  조회:786  추천:0  2019-07-17
장백산 총212호 2017 제2호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상냥한 친구들(단편소설)  금희 단편소설의 서사적 특징(작품평)  김영옥   작가를 말하다 조선족문학,그 사랑에 빠지다(대담)  김홍란&오상순   기획련재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련재2)   김혁 필끝에 건곤세상 있나니(련작칼럼,련재2)  김혁   제11회 중한작가회의 특집(2) 아버님 산소(시,외5수)     장홍파(중국)                           연영 옮김 9월이면 끝나리(시,외5수)  임백(중국)                           연영 옮김 “미霉”자로 단어를 만들어보세요(단편소설)  왕소왕(중국)                                          천년목 옮김 사랑의 꿈1(시,외6수)       정현종(한국) 사랑보다 낯선(단편소설)     박상우(한국) 오늘의 한국시와 타자의 언어(평론)   오생근(한국)   시인 시전 락조(시,외5수)    리임원 리임원의 시가 닿은 사랑과 평화의 경지(시평)   최삼룡   계렬수필 나를 부탁해(수필)         주향숙 나의 별것 아닌 날들(수필) 주향숙 어떤 기다림(수필)         주향숙 자신을 향한 내밀한 반성  강혜라 세상을 향한 따스한 시선(수필평)   창작마당 미미(단편소설)  해주 채소밭에서 수확한 사색쪼각(수필)  신기덕 흔적(수필)      김광영 비상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수필) 김옥화   장편소설련재 산귀신(장편소설,련재14)     림원춘 해볕이 춥다(장편소설,련재3) 구용기 무소유(장편소설,련재12)     정용호
7    김혁: 필끝에 건곤세상 있나니(칼럼, 련재2) 댓글:  조회:464  추천:0  2019-07-17
필끝에 건곤세상 있나니(련재2) 김혁   셋째도련님의 등장 -제9차 전국작가대표대회 수감록(4)   대회에 참석한 대표들 중에 이색적인 이름 하나가 있었다. 이색적이다 못해 듣는 이들로 하여금 당혹감의 눈초리를 쳐들게 할 이름이였다.  ‘당가삼소(唐家三少)’-‘당씨네 셋째도련님’이라는 무협지나 사극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름이 대표명단에 올라있었다. 관변적이고 정례적인 전국작가대표대회에서 이런 파격적인 이름의 출현은 그야말로 ‘이단아’의 등장이나 다름 아니였다.  사실 ‘당씨네 셋째도련님’은 인터넷 문학계에서 언녕 그 문명을 알리고 있었다. 이름이 있었을 뿐더러 거의 ‘신화’적 존재로 ‘존앙’받고 있었다.  ‘당가삼소’는 본명이 장위(张威), 1981년 북경에서 태여났다. 현재 현세당문문화투자유한회사(炫世唐门文化投资有限公司)의 리사장 직을 맡고 있다.  하북대학 정법학원을 졸업한 그였지만 전공을 버리고 문학 쪽에로 매진했다. 명문가의 도련님처럼 하얀 피부에 훤칠한 키꼴의 귀골스러운 30대의 청년은 기성문단이 어딘가 외면하는, 온라인에서 맹활약하는 ‘군주’로 떠올랐다.  ‘당가삼소’는 대표작인 인터넷소설 《콘드라 대륙(斗罗大陆)》의 출판수익 및 각종 판권 계약으로만 약 1,680만딸라를 벌어들였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에서는 온라인문학이 큰돈이 된다”며 성공한 인터넷 소설가로 당가삼소(唐家三少)의 사례를 전문 소개, 이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 등에 견줄 만한 수준이라고 찬탄했다.   12월 3일에 결속된 대표대회에서 ‘당가삼소’의 이름은 또 한번 그의 작품과도 같은 최다 클릭수를 보였다. 이 온라인의 ‘도련님’이 중국작가협회 주석단 위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중국 문단에서 인터넷 작가로는 처음이고 주석단 위원으로서도 가장 어린 나이였기에 그 파장은 컸다. 미모의 녀작가 철응이 두번 련속 작가협회 주석으로 당선된 이슈에 못지 않은 인기였다.  그 날 저녁, 여러 매체의 취재를 받는 ‘당가삼소’가 뉴스에 나타났다.  “인터넷문학대오의 성장은 중국문학의 판도를 바꾸고 있습니다.”라고 말머리를 뗀 ‘당가삼소’는 중국 인터넷문학의 전망에 대해 락관을 표했다.  “인터넷문학은 대중문학 소비의 다른 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문학의 건실한 성장은 중국문학에 유력하고 방대한 후비력량을 보충해주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몇십년래 우리 나라에는 몇백만에 이르는 인터넷작가들이 나타났는데 이는 세계문단에 놓고 봐도 그 어느 나라도 흉내낼 수 없는 가관적인 수자일 것입니다.  문학이 발달했다는 나라들로 봐도 겨우 몇백명, 몇천명에 이를 뿐 이처럼 방대한 작가군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대표대회에 참석했던 북경대학의 진효명(陈晓明)교수도 동감을 표했다. 진교수는 이 몇백만명의 인터넷작가들 중에 “백분의 일, 천분의 일만 정품을 내놓아도 놀라운 수자이며 중국문학은 희망이 보일 것”이라고 했다.  ‘당가삼소’는 “인터넷문학군체는 마치 하나의 탑을 방불케 합니다. 탑의 기초가 깊을수록 탑은 더 높게 솟을 겁니다.”며 인터넷문학이 평지로부터 고봉에로 치달아오르기를 희망했다.   인터넷문학에서의 활약은 이 ‘셋째도련님’ 뿐만이 아니다. 일전 중국 인기 온라인 소설작가들의 2015년 판권가격이 공개됐다. ‘당가삼소’의 2015년 판권수입은 1억 1,000만원으로 1위, 랭킹 2위인 천잠감자(天蚕土豆)는 4,600만원, 3위 양진동은 3,800만원을 각각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상위 10위 작가들은 모두 천만원이 넘는 판권수입을 올려 사회의 부호대렬에 합류했다. 불과 3년 전인 2012년에 비해 이 인기작가들의 판권가격은 무려 17배 수준으로 폭등했다. 놀라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1980년 이후 태여난 20, 30 대 젊은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감각적인 필력으로 인터넷시대, 모바일시대 독자들의 감성을 파고 들며 일약 명문을 알렸거니와 부호의 대렬에 합류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 인터넷 소설작가의 수는 현재 200만명이며 그들에 의해 매년 7만부의 작품이 새로 탄생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작가들이 창작한 인터넷소설은 또 영화, 게임, TV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지며 수천만원의 수익을 내는 다양한 문학, 인문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모바일 독서앱을 통해 전자책을 내려받아 읽는 독자층은 무려 7억에 육박한다고 한다. 거대한 전자책 독자층들은 중국 전자책 시장을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에 올려놨다.  한편으로는 온라인 작가들을 신흥의 백만장자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이 영화나 TV드라마, 게임으로 만들어져 국내 혹은 해외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할 경우 작가들은 말 그대로 ‘돈벼락’을 맞는 것이다. 글솜씨 하나로 1년에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벌어들이는 온라인 소설가들이 부지기수이다. 이 몇년 간 서점가를 강타하고 브라운관을 달군 베스트셀러, 인기 드라마인 《무덤도굴기(盗墓笔记)》, 《서장의 비밀코드(藏地密码)》, 《두라라 승진기(杜拉拉升职记)》, 《견환전(甄嬛传)》, 《보보경심(步步惊心)》, 《랑아방(琅琊榜)》, 《화천골(花千骨)》, 《청운지(青云志)》 등이 모두 이들 인터넷작가들의 손을 거쳐 나온 작품들이다.  중국의 오락게임 사이트인 성대(盛大)가 운영하는 기점중문(起点中文)넷에는 하루 1,100명의 작가가 글을 쓴다. 그처럼 인터넷 주가를 올리고 있는 문학사이트들인 진강晋江넷과 홍수첨향(红袖添香)넷에는 매일 3,400만자의 새로운 글이 쏟아져 나오고 독자들의 하루 클릭수도 4억회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성대문학 사이트는 고정 고객만 3,500만명을 보유하고 있고 이중 400만명은 유료 고객이다. 중국 작가들에게 요즘 인터넷 창작공간은 돈이 쏟아지는 화수분이다. 중국문단에는 더 이상 ‘글쟁이는 청빈하게 산다’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알리바바의 회장 마운도 문학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영화, 드라마 회사와 계약을 하며 투자를 하던 데 이어 인터넷문학의 플래트홈까지 그 투자를 확장하고 있다. 중국을 움직이는 거대 기업가도 이미 인터넷 사이트와 손을 잡은 것이다.    인터넷이 새로운 창작공간으로 정착한 것은 중국문단으로 말하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일찍 1998년 이후 인터넷소설이 등장했고 그 후 우후죽순으로 성장해나가기 시작해 현재까지 강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터넷소설은 재빨리 동영상, 애니메이션, 게임 등과 같은 문화산업의 령역과 융합했고 따라서 인터넷 문학산업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각 지역마다 인터넷소설협회가 생겨나고 있으며 정부의 관심 또한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번 제9차 전국작가대표대회에 발탁된 900여명의 대표들 중 인터넷작가는 30명을 넘겼다. 그 전기인 제8차 전국작가대표대회에서 인터넷작가 수는 고작 ‘당가삼소’ 한사람 뿐이였다. 이는 인터넷문학의 지명도와 중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 만한 무대가 없다 싶을 정도로 해마다 발전하며 한층 성숙해지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는 인터넷문학이다. 작품이 경박해지고 정통문학에서 멀어진다는 걱정과 별개로 인터넷세대들의 문학코드는 명징하다. 그 소재로 력사, 무협, 공포, 미스터리물들이 주로이지만 직장인들의 애환과 성공, 사회의 음양을 그려낸 력작도 적지 않다. 이들의 인터넷 문학작품들에서 달콤한 로맨스나 칼과 검이 수풀처럼 일어서는 무협지 등이 단골소재만이 아니라 지금 사회의 일단면도 신랄하게 엿볼 수 있다.  ‘셋째도련님’도 인터뷰에서 자신은 작품 속에 시종 “계시적인 인문관심을 관통하려 했다”고 그 창작의 자세를 표명하였다.  지난해 중국 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의 하나인 ‘모순矛盾’문학상에 처음으로 인터넷소설 《무덤도굴기》가 거론되였고 ‘당가삼소’가 중국작가협회 위원으로 선거되는 등 이젠 엄숙하게 문학의 형성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작가협회에서도 인터넷소설을 지체높은 문학의 ‘상아탑’에 들이고저 하는 분위기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들도 최근 인터넷 발전과 함께 급속도로 류행하고 있는 중국의 인터넷문학이 정통문학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오래전부터 인터넷문학에 대한 긍정과 수긍의 자세를 보였다. 원로작가 왕몽(王蒙)과 작가협회 주석 철응은 몇해 전에 이미 북경국제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철응은 “최근 발달한 인터넷문학은 정통문학과 공존하고 있지만 치명적인 타격이나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닉명성을 특징으로 한 인터넷문학이 중국인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문학의 다양성을 제고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역할이 있음을 인정했다.  왕몽 역시 “한번도 인터넷이 진지한 정통문학을 창작하는 작가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말해본 적이 없다”면서 “인터넷문학과 정통문학은 서로를 자극해 상생하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정통문학과 인터넷문학의 일부 작품들은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이는 문학계가 지불해야 할 대가”라며 원로로서의 걱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문단이 인터넷 공간을 자신들의 시스템 안에 적극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문학지들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던 시절과 달리 문학의 만남이 기존 무대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다른 무대를 마련해주고 있는데 그에 따른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문학이 인터넷으로 옮겨왔을 때 새로운 내용과 형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디어의 변화가 작가들의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우리는 따져봐야 한다. 그렇다면 인터넷과 문학의 접속은 어떠한 사회적 맥락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가? 이것이 우리 조선족문학에 미치는 영향은 또 무엇일가? 조선족의 온라인 활용 상황을 살펴보면 사용자의 태반이 해외의 사이트를 리용하는 외 조선족이 직접 일군 사이트도 적지 않다. 일반 대중들은 이러한 사이트들을 리용해 메일로 친지, 친우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통상적인 활용법이다. 그중 ‘모이자’, ‘조글로’, ‘조선족문화통신’ 등 용량이 큰 사이트가 근년래 활약 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이트들은 저 마다 문학코너를 공간을 크게 할애해 마련하고 있다.  거기에 작가 개인이 스스로 개설한 블로그와 문학까페를 더해보면 제법 작지 않은 ‘인터넷문학공간’이 마련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이트들에서는 기성작가의 문학작품이나 명사들의 칼럼을 싣고 또한 네티즌 독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한달에 20-30여편, 기성작가 뿐만 아니라 신진, 문학지망생들의 작품도 올라오고 있는데 누리군들의 호응이 높다.   인터넷문학이 본격화된 것은 잡지사, 출판사들의 운영 전략과 작가들의 욕구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문학을 지향하는 신진들은 문학지 등을 통해 확보하고 있는 기존 문학무대에 재빨리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 공간은 이런 측면에서 데뷔의 벽을 낮췄다. 그만큼 이야기도 다양하고 쟝르도 다양하다. 우리가 듣지 못한 낯선 작가도, 낯선 작품도 많다. 기성 작가와 아마츄어 작가가 온라인 우에서 격세지감을 떨치고 동등하게 활동을 펼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문학지들은 변혁기의 소용돌이 속에 부대끼는 와중에 작자와 독자의 급감으로 기존방식으로는 시장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됐다. 여기에 문학지 이외에는 소설을 발표할 지면을 얻기가 어려웠던 신진작가들의 욕구가 겹치면서 인터넷문학이 문학인구가 적은 우리 문단에도 조용히 수용되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종이책의 비싼 출간비용 때문에 출간을 엄두 못 내고 주저하던 작품을 온라인에서 전자책으로 출간하면서 그 출간의 소망을 이룰 수도 있다. 종이책의 경우 편집자와 잡지사 출판사의 엄격한 기준의 자대를 거쳐 출간된다. 그러다 보니 투고되는 원고의 많은 부분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만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그 출판이 오프라인에 비해 손쉬워진 것이다.  인터넷과 책이 련결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결과를 놓고 보면 오히려 인터넷을 통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재빨리 현시되고 다시 출판계와 책으로 이어지게 된다. 다르다면 해외나 중국 문단의 경우 인터넷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들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데 반해 우리 문단은 책으로 출간된 다음 다시 인터넷에 작품이 뜨는 ‘역행’적인 경우가 보통이다.    필자의 경우, 수상의 혜택으로 겨우 몇백부 인쇄되여 서점가에도 오르지 못했던 첫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가 인터넷과 위챗을 통해 다시 절찬을 받으며 련재되여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기도 했다.  인터넷문학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작품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인터넷독서를 체험한 독자들이 그 작품이 종이책으로 출간된 후 확장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서 먼저 선보여 독자가 재빨리 접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해외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태여나고 기존의 출판 관문을 이미 넘은 기성작가들도 인터넷이라는 관문을 다시 넘어야 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는 이와 많이 다르다. 인터넷에 나간 작품이면 종이지면을 절대 탈 수 없다고 어떤 편자들은 우직한 자대를 들이댄다.  필자 역시 개인 블로그에 먼저 게재됐다는 리유로 어떤 편집들로부터 야박한 거절을 당한 적 있다. 하지만 그 거절당한 작품이 다른 잡지의 톱에 버젓이 실렸던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편집자들과 수많은 누리군들이 소통에 동참하면서 작가를 격려하고 집필과 발표, 출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학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종이매체를 통해서는 쉽지 않았던 독자들과의 쌍방향 소통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종이책과는 달리 댓글을 통해 누리군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접하게 되는 인터넷 공간이 작가들의 작업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누리군들의 대부분 댓글은 작가들을 격려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댓글을 달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무플’이라고 한다. 인터넷 공간에 떠오른 우리 작가들의 많은 글은 ‘무플’로 괴잠잠하다. 그만큼 문학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현상으로 읽을 수 있겠다. 문제는 그보다 악플 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 문단에 악플러도 분명 있다. 성숙하지 못한 누리군들이 닉명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을 악용해 작품에 대해 딴죽을 걸거나 악플을 다는 경우도 많다. 때로 사이트 편집자들이 특정 작가에게 몰부어지는 밤새 떠오른 악플 지우기에 힘들다는 고소도 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코너를 페쇄한 작가도 한둘이 아니다. 댓글이 도를 지나쳐 악플러의 아이피를 추적하여 잡은 경우도 있다.  그 와중에 이미 충분한 대중적 인지도와 숙련된 기량을 갖추고 있는 중견작가들이 인터넷시대 문학의 변화와 새로운 가능성을 감지하고 인터넷작품을 긍정하는 립장이라면 젊은 작가들의 경우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늘어났다는 점을 인터넷문학의 장점으로 꼽는다. 예전에는 문학지 겨우 몇개로 지면이 한정돼 있는데다가 문단의 인지도가 있어야만 작품발표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은 젊은 작가들에게도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주 고무적이다. 문학의 위상이 바닥으로 떨어져 독자인구가 가련할 정도로 적고 절대부분의 작가들이 문학을 생계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삼을 수 없는 우리 문단의 상황에서 사이트의 문학공간은 지속적으로 작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지레대’ 구실을 은연중에 하고 있다.  인터넷문학을 비롯한 쟝르문학 작품들은 우리가 갖고 있던 작품에 대한 정의와 가치기준으로 보면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기존의 문학이나 소설에 대한 정의, 역할 등 면에서 현격한 관점의 차이를 보이면서 기존의 양식과 구분되고 있다. 요즘의 인터넷문학을 보면 인터넷작가들만의 환상작인 소재, 파격적인 구성방식, 그들만이 오가는 은어, 전용어 즉 축약되거나 변용된 부호의 인용, 마치 삽화처럼 사용되고 있는 이모티콘 등으로 그들만의 창작방식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터넷 문학작품들에서는 그러한 요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에 오른다고 해서 그것이 인터넷문학인 것은 아니다. 그런 만큼 인터넷문학 또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의 장점을 최대한 리용할 수 있는 형태의 문학을 탐구하는 작가들이 더욱더 많아져야 한다.  우리 문단에서 20대, 30대는 물론 50대까지는 인터넷 활용이 그나마 능란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들은 조선족 유명 사이트들에서 개설해준 자체 코너를 가지고 있는가 하면 스스로 개설한 개인 블로그를 가지고 있고 까페도 운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터넷문학 세대는 60대부터 편을 가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70대의 작가들 중에도 컴퓨터를 두드려 창작하고 메일을 사용하여 작품을 투고하는 이들도 있지만 인터넷문학 공간을 폭넓게 활용하는 작가는 한손에 꼽을 정도로 극히 적다. 우리 문단의 문학세대의 구분에 대해 고민하는 평론가들을 보았는데 이 또한 하나의 구분점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기존의 문인들은 이를 문학의 정통을 헤집는 불편한 도구 쯤으로 보고 있는 시각도 있다. 아직도 이메일조차 사용할 줄 모르는 작가도 분명 있다. 손글씨라도 자신의 글이 나간다며 인터넷을 ‘시들방귀’로 폄하하는 작가들도 있다. 인터넷세대들이 그들의 문법으로 쓰고 읽고 류통하는 방식에 기성세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제 우리의 기성작가들은 적극 이 마당으로 뛰여들어야 한다. 문단의 기존 성과나 명망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요즘 독자들과 새로운 사유, 새로운 기기와 소통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문학에는 신진들의 가벼운 글 뿐만 아니라 순수 작가들의 힘있고 진중한 언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후하게 이어져 내려온 만년필과 원고지 뿐만 아니라 인터넷 또한 문학의 또 다른 도구일진대… 그 와중에 초기의 우려와는 달리 지금의 인식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잡지라는 전통적인 산물을 배제하고 우리 문학에 부수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확산시키고 발전시킨다는 긍정적인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터넷문학은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생산한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긍정적 측면으로 읽힌다. 더우기 우리 문학처럼 위축된 지금의 상황에서 말이다. 전통문학과 인터넷문학의 결합은 축하할 일이지 결코 배척과 매도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인터넷문학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비평가는 ‘인터넷문학은 량날의 검’이라고 했다. 부면적인 영향도 작지 않게 표출되고 있다.  몇몇 방송 사이트들에서는 인터넷매체의 장점을 살려 유명 작가들의 시작품들을 육성으로 랑독한 오디오 파일도 올리고 있다.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전파되는 모습을 자못 ‘므흣(기쁘거나 만족된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말을 뜻하는 인터넷의 신조어)’하게 바라본 적 있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의 유명 문학지들이 자체의 사이트조차 없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문단의 거의 모든 문학지들이 사이트를 용유하고 있는데 비하면 락오된 인식의 차이로 볼 수 밖에 없다. 독자와 작가, 작가와 잡지사들 지간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쌍방향 소통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전문 사이트의 개설은 필요할 뿐더러 중요한 플래트홈 작용을 할 것이온데…  기존 문학지와 인터넷 사이의 ‘역할분담’은 앞으로 그냥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존속을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 문단과 출판계에 있어서 이러한 새로운 시도, 소통과 소비가 획일화로 결과되던 우리 문학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과히 나쁜 발상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 영향이나 위세가 점점 약화되고 있는 우리 문학의 처지에서 인터넷의 원활하고 우수한 가능성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에 떠오르는 작가들의 창작자세가 많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작가들의 편의에 따라 량산되는 작품들 중에 진중한 이야기보다는 가벼운 이야기로, 다듬어진 문체보다는 쉬이 필을 댄 조잡한 글들이 란무하는 경향이 있다.  지면이 많고 쉽게 지면을 가질 수 있다보니 작품을 람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는 작품들이 과거의 기존의 투고와 발표의 형식으로 굳혀져온 관례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지켜봐야 할 일이다.  몇해전에 우리 문단에서 참으로 반갑게 전문 인터넷문학상이 공모되였는데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응모에 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생각되는 바가 많았다. 인터넷문학이라는 쟝르문학의 요소에 거의 근접하지도 못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였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심사위원들 대부분이 우리의 인터넷작가들의 문학 전반에 대한 리해와 예술적 안목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정평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참여의식과 열기는 보였지만 우리의 인터넷문학이 문단에서 하나의 새로운 력량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은 아직 성급한 판단이라고 본다. 해외에서도 학자들이 인터넷소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는 “기존의 소설양식이 가지고 있는 구성의 치밀성과 예술성이 떨어지고 언어에 대한 투철한 자각이 결여되여있어 민족어의 상실과 그로 인한 민족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의 인터넷문학에도 적용되는 말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여러모로 아직도 독자와 편자, 평단 사이의 성숙의 궤도에 오르지 못한 우리 인터넷문학의 병페를 살펴보면서 인터넷문학이 먼 도정 우에 있는 우리 문학의 또 하나의 플래트홈으로 자리잡기를 소망해보는 것은 필자 한사람만의 넓은 오지랖이 아닐 것이다. 다만 인터넷이 문학에 끼친 각종 영향을 평가하고 향후 문학과 인터넷이 상생하며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하는데 우리 문단에서 이러한 테마의 평론이 전무한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문단에서 인터넷문학이 언제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안타깝지만 당장은 어려워보인다.  새로운 지면이 사라지고 태여나는 현상에 대해 우리 작가들은 어떤 립장을 취해야 할가?  우리 문단에서 이러한 당혹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다음호에 이음) 출처:2017 제2호
6    <장백산>2017.1 루계211 댓글:  조회:745  추천:0  2019-07-16
장백산 총211호 2017 제1호 기획조명-작가와 작품 한락연평전(장편인물평전,련재1)              김혁 필끝에 건곤세상 있나니(련작칼럼,련재1)  김혁   작가를 말하다 고향을 쓰는 작가(대담)     최국철 김홍란   제10회 중한작가회의 특집(1) 사랑시(단편소설)          김인순(중국)                            천년목 옮김 하얀 운동화(단편소설)     왕가심(중국)                           권혁률 옮김 회전식당에서 들려준 이야기(단편소설)  구소빈(중국)                                       김견 옮김 이장동화(단편소설)        김주영(한국) 인터넷 대중과 문학적 실천(평론)       김주연(한국) 정님이(시,외5수)          이시영(한국)   조광명소설코너 두팔을 펼치면 날개인것을(단편소설)    조광명   소설광장 블랙 블랙 블랙아웃(단편소설)          조원 새로운 체계로의 진입을 위한 의도적 블랙아웃(소설평)  리태복   시인 시전 마늘(시,외5수)    리상학 그리움의 울타리 그리고 추억(시평)   김몽   계렬수필 지하철 오감도(수필)  리은실 랭면 쏘나타(수필)    리은실 데지 않을만큼,춥지 않을만큼...(수필)  리은실   창작마당 개미(단편소설)   장학규 고개 숙인 벼이삭들을 보면서(수필)  강효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것들(수필)     김점순 락화(시,외2수)   김정권 겨울밤을 걷습니다(시,외1수)  임은숙   장편소설련재 산귀신(장편소설,련재13)      림원춘 해볕이 춥다(장편소설,련재2)  구용기 무소유(장편소설,련재11)      정용호  
5    김혁: 왕붓으로 돋을새김할 그 이름들 댓글:  조회:507  추천:0  2019-07-16
왕붓으로 돋을새김할  그 이름들 김혁   십여년전부터 나는 내 고향 룡정의 력사와 인물을 정리하는 작업에 투신하기 시작했다. 중국조선족문화의 발상지이자 민족의 독립과 반일의 전초였던 룡정에 대한 긍지와 자호감을 머금고 시작한 벅찬 작업이였다. 휴일을 타서 혼자거나 혹은 동인들을 휘동하여 력사전적지 수십여곳을 일일이 답사하고 수백명의 관련 증인, 유가족, 학자들을 찾아 취재한 끝에 50만자에 달하는 장편력사기행 “일송정 높은 솔 해란강 푸른 물”을 집필하여 대형문학지에 3년간 련재를 마쳤다. 그 와중에 한락연이라는 이름과 다시금 만나게 되였다. 비록 예전의 력사총서들에서 한락연에 대해 접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룡정의 대사기, 룡정이 배출한 인걸들의 력사를 세세히 쫓는 가운데서 나는 한락연은 응당 기행문의 한단락으로 쉽게 묘사할 인물이 아니라 대서특필해야 할 인물, 작은 글체로써가 아니라 대문자로 돋을새김해야 할 인물임을 황연대오(恍然大悟) 느끼게 되였다. 한락연, 그를 지칭하는 칭호는 많다. “인민예술가”, “정치활동가”, “반파쑈투사”, “동북지구 공산당의 초기 창시자”, “조선족 첫 공산당원”, “중국의 피카소”… 여러가지 타이틀로 력사의 갈피에 그 이름이 우람하게 적혀있다. 한 사람을 두고 이렇듯 평가가 다채로운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이 그만큼 다채롭다는 방증이다. 이주민의 후예로서 룡정에서 출생한 한락연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행동반경은 실로 종횡무진이였다. 세상의 모습을 올곧게 그려내는 한편 그는 그림에만 매달리는 다른 화가와 달리 좁은 화폭안에서 살아가는 화가로 만족하지 않았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의 사명을 짊어지고 거대한 중국대륙을 무대로 혁명투쟁에 혼신을 바쳤으며 국공량당의 통전사업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또한 서역의 문화재 발굴에 선구자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락연은 그야말로 예술가로서, 열렬한 사회활동가로서, 굳건한 “력사문물의 지킴이”로서 시대적사명에 충실한 지성인들의 귀감이였다  .  그 생애에 초연이 피여오르는 력사의 현장에서 수많은 역경을 겪어왔지만 운명의 굴레에 짓눌려 지내지 않고 예술가적 기질을 보이고 실천한 동시에 고매한 혁명가적 기질로 커다란 업적을 남긴 한락연을 통해 우리는 예술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과 고난을 대하는 그의 락관주의적 풍모를 대할수 있을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비록 그가 살았던 세상과는 상전벽해라고 할 정도로 많은것이 바뀌여버렸지만 그가 보여준 진취적인 삶과 정신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본다. 주은래총리가 생전에 “왜 한락연을 위한 전기물이 나오지 않냐”고 애석해했듯이 그에 대한 조명은 여러모로 진행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정한 인물전의 결여로 그의 생애는 편파적으로 알려져있으며 이로써 커다란 유감을 남기고있었다. 중국에서도 그에 대한 추모문집 한두부가 나왔을뿐이고 해외에서도 그에 대해 조명한 문장이 더러 있으나 겨우 수만자 미만, 몇편 정도의 미비한 량에 그쳐있었다.  중국조선족의 수많은 인걸들중에서도 혁혁한 인물인 그에 대한 체계적인 인물평전조차도 없다는것은 어찌보면 우리 후세로서는 결례요, 실책이라 말해야 할것이다. 그리하여 한 고향의 위인에 대한 숭모의 감정을 품고 인물전기 집필에 열정을 불살라 착수했다.  2008년부터 사비를 털어 한락연의 자취를 찾아 심양, 할빈, 치치할, 상해, 중경 등 지역을 답사하였다.  그를 바탕으로 한락연 관련 신문기사, 인물소개들을 다각적인 쟝르를 동원하여 수차 간행물들에 기고, 발표하였고 《연변일보》 《종합신문》 주간에 그의 인물전기를 8개월간 련재하였다. 그리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한락연 인물전기를 책자로 묶었다.  한락연이라는 인물에 천착되여 관련 연구를 감행한지도 어언 8년 철이다. 그만큼 힘든 시간, 벅찬 시간들이였다. 그리고 속필을 자랑하는 나였지만 감불생심 평전에 필을 대는 가벼움이나 서두름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한락연의 일대기에 대한 나의 집필은 선인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진지함을 기하는 진행형이라 해야 할것이다.    근년래 우리 문단에서도 뒤미처 인물전기서들의 “보물”이 터진듯하다.  문학적 감동과 학술적 객관성을 함께 지닌 묵직한 분량의 인물전기들은 침체화, 단일화 경향을 보이던 우리 문단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입해주고있다. 품격이 두드러진 인물전기 수작(秀作)을 읽을수 있기를 우리의 출판과 독자들은 바라고있다.  그에 편승하여 이 십여년동안 나는 한락연외에도 자치주 창립의 산파인 주덕해, 겨레의 창공에 “별”처럼 빛나는 민족시인 윤동주, “조선족문단의 거목” 김학철, 상해와 태항산을 주름잡으며 일제와 싸운 항일녀걸 리화림, 무성영화시대 오렷한 소리와 자취를 남긴 “영화황제” 김염 등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인걸들을 장편소설, 인물평전, 청소년전기 등 픽션과 논픽션물로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하여 관련서적들이 이미 출간되였거나 바야흐로 출간중에 있다.  수십년동안 매체의 기자와 소설가로서의 삶을 병행해 살았던 나에게 있어 “문학적 다큐멘터리”로 특징지을수 있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남들과 차별화된 나만의 창작성향이라고 말하고싶다.   사학자들은 력사란 “인간이 거쳐온 모습이나 인간의 행위로 일어난 사실을 말하는 단어”라고 정의하고있다.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개인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한 시대와 만나고 그 시대의 공과를 헤아려볼수 있다. 변화의 시대를 보아내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인물전기들은 갖게 한다. 여기에 인물전의 매력이 있다.  시대에, 제반 분야에 굵직한 획을 그은 우리의 위인들을 조명하는 작업은 현재 변혁기의 소용돌이에 꺼둘리고있는 민족의 발전과 우리의 삶에 기气를 불어넣고 비젼을 제시하는 좋은 작업으로 될것이라고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왕붓을 무겁게 고누고 만방에 자호할 우리네 인호(人豪)들의 진영(真影)을 한획, 한자 경필(劲笔)로 그리고있다. 굵다랗게 돋을새김하고있다.    출처:2017 제1호
4    리은실: 지하철 오감도(수필, 외2편) 댓글:  조회:496  추천:0  2019-07-16
지하철 오감도 리은실   사시장철 끝도 없이 늘어선 지하철역의 출근족 대오는 우리 나라 수도 북경의 한폭의 풍경선이다. 손에 “유툐(油条)”, 콩물 등 아침 먹거리를 들고 선 사람들, 아직 잠이 덜 깨 연신 하품을 하고있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어디론가 향하여 가고있는 사람들이다.  곁눈질을 할 여유가 없이 달려가고있는것이다.   아침 지하철은 이같이 아직 해가 뜨기전부터 한무리의 사람들을 맞으며 비로소 하루를 시작한다.  지상에서 달리는 차들은 변수에 로출되기 쉽다. 교통체증을 만난다거나 교통사고가 일어난다거나 혹은 갑자기 다이야가 터져버린다거나 하는 등등이 모두 그 변수이다. 그러나 지하철은 매우 온건하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사람들을 정해진 곳까지 여간해서는 변수가 없이(상대적으로) 빠르게 데려다준다.  그것이 이 도시 출근족들이 지하철을 애용하는 절대적인 리유이다. 서로에게 눈길 한번 줄 여유도 별로 없는 고단한 인생들의 집합체인 지하철안에는 그래서 별의별 사연과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이야기 하나 직장의 파견을 받고 나는 오늘부터 해정구(海淀区)에 있는 교육기지로 닷새동안 연수받으러 다녀야 한다. 어떤 리유로든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건 매우 설레고 행복한 일인줄 알았다. 지하철에 오르기전까지는…   습관처럼 매일 서던 위치에 가서 줄을 섰다. 멀리서 전동차가 달려오는걸 넋 놓고 바라보다 그제서야 아차- 하고 놀랐다. 오늘 가야 할 연수기지는 회사와는 정반대쪽 방향이 아닌가? 서둘러 씩씩거리며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이쪽도 줄이 길기는 마찬가지다. 예상대로 첫 차에는 탑승을 못했다. 두번째 차가 오자 이번에는 어떻게든 올라타야지 마음 먹고 령장류의 어떤 동물처럼 날렵하게 렬차안으로 몸을 던져넣고는 손잡이를 단단히 잡았다. 다음역은 “룡택(龙泽)”역. 역에 도착하자 또 한무리 사람들이 아등바등 올라탄다. 내 몸은 간신히 손잡이에 매달려 무기력하게 휘청이고있을뿐. 심장이 옥죄여드는것만 같았다. 그다음은 “서이기(西二旗)’역이다… 아, 이렇게 촘촘한 인파는 일찍 본적이 없다. 콰악 밀치며 서너명의 녀자가 뿌려져 들어왔다. 뭉클한 가슴으로 나를 압박해온 녀인은 표준적인 녀장부였다. 나보다 키가 한뼘은 더 큼직한 그녀는 내 얼굴쪽을 향해 거친 숨을 내뿜었다. 아침메뉴는 닭알과 부추로 소를 넣은 만두를 드셨는가보다! 눈을 감았다. 코를 막는게 더 시급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꽉 끼인 내가 할수 있는건 재빠르게 눈을 감는 일밖에는 없다. 그런 상황이 “상지(上地)”, “오도구(五道口)”까지 지속되였다. 회사로 가는 길은 그나마 편한것이였구나 하는 위안이 마음 한구석을 찾아들었다. 이 고행을 앞으로 나흘동안 여덟번을 오가며 해야 하다니 눈앞으로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는듯하다…   이야기 둘  조금 일찍 떠나서 그런지 오늘은 어제보단 사람이 좀 적은것 같다. 그러나 웬걸, “룡택(龙泽)”역에서부터 밀물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서이기(西二旗)”역에 도착해서부터는 좌석쪽으로 밀려오기 시작한다. 겨우 발을 딛고 서보니 어딘가 요상한 그림이 연출되고말았다. 좌석에 앉은 한 남자는 생각없이 다리를 벌리고있었을테고 밀리운 나는 그 다리사이에 밀려들어가게 된것이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한발 물러서려고 했지만 그럴 틈이 없다. 괜히 이 남자에게 미안해진다. 뒤에 멘 가방때문에, 밀고닥치는 사람들때문에 몸은 자꾸 앞으로 쏠린다. 필사적으로 손잡이를 꽈악 잡았다.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놀라 뛰고 어깨에 뭉친 근육들이 쩍쩍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팔에 힘이 풀려 약간이라도 느슨해지면 앞으로 쏠린 내 상반신에 그 남자의 머리가 포근히 안길, 정말이지 위험천만한 사태였다. 안되기는 이 남자도 마찬가지다. 다리는 왜 벌려가지고 이 “쩍벌남”의 교훈도 만만치 않을것이다. “우리”는 어쩔수없이 야릇한 포즈를 취한채 “상지”를 지나 “오도구”까지 10여분을 그런 상태로 함께  했다. 한시간 같은 10분이였다.   이야기 셋 오늘은 출근 체크를 하는 날이다. 가장 붐비는 시간대의 지하철을 타는 날이기도 하다. 집문을 나서면서부터 굽 높은 구두를 신은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운 좋으면 좌석 하나 얻어 걸릴지도 몰라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지하철에 올랐는데 내 꿈이 너무 야무졌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매의 눈으로 쫙- 관찰을 했다. 좀 피곤한듯 하품을 하는 저 남자는 아무래도 먼곳까지 갈것 같다. 그옆에 창밖을 부산스레 내다보며 무릎우에 놓인 아이패드를 케이스에 접어 넣는 녀자가 보인다. 곧 내릴것 같다. 그앞에 가서 섰다. 그 녀자의 정수리만을 응시하며 다음역에서 내릴것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그옆에서 하품하던 남자가 일어설줄이야…내 예상은 한번도 적중한적이 없다. 머피의 법칙인가? 창밖을 부산스레 내다보던 녀자는 그 다음역에서 올라오는 동료로 짐작되는 다른 녀자를 향해 손짓하더니 자기 앞으로 불렀다. 동료 녀자가 밀고 들어오고 급기야 난 설자리마저 잃었다. 심각한 판단오류이다. 줄을 잘 서야 한다는게 이런건가? 정말 담번부턴 줄을 잘 서야겠다. 매번 얻는 교훈이다. 어느 역에서 내릴지 목에 명찰 같은걸 달면 안되려나? 그럼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만 몰릴테지? 눈썰미가 없는 나 자신이나 탓할노릇이다.   이야기 넷 고봉기를 살짝 피했더니 지하철안이 거짓말처럼 한적하다. 앉을 좌석이야 물론 없지만 다리를 어깨너비로 충분히 벌리고 서도 방원 50센치메터안은 거칠게 없다 간만에 독서나 해볼가나?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쳐들었다. 왼쪽에 선 남자의 높은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커플싸움의 중재자인듯하다. 둘이 사는게 뭐 있냐며 사소한 일은 넘기라며 조언을 하고있다. 그 남자가 거의 전화를 끝낼무렵 오른쪽에 선 녀자의 고음이 오른쪽 귀를 때린다. 목소리가 매우 날카롭다. 전화상대는 친정엄마인듯하다. 새로 찾은 직장은 야근도 없고 상사도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꼭 저렇게 높은 소리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편에서 웅글진 목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는 남자는 보험설계사인것 같다. 보험내용을 고객에서 설명해주고있다.   엿들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워낙에 목소리가 너무 컸다. 심호흡 한번 하고 책을 덮었다. 이 수준들하고는, 한 나라 국민의 목소리의 높낮이가 경제수준에 반비례한다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이 순간만큼은 남편의 일가견이 지구는 둥글다고 했던 코페르니쿠스의 정의만큼 위대하게 느껴졌다. 진동모드로 해놓은 주머니속 휴대폰이 징~ 하고 진저리를 친다. 택배기사의 전화다. 닷새전에 보낸 택배건에 대한 문의이다. 갑자기 짜증이 솟구쳤다. 이게 어느때냐고? 아직도 배송을 안한거냐고? 다른 택배회사 알아볼거라고 역정을 냈다.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듯이 보였던 아줌마가 졸음이 채 안 가신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내 생각보다 소리가 컸던가보다. 나는 “저기, 아주머니, 저는 소리를 지를만한 상황이였거든요.”라는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나부터 잘해야지. 갖가지 소음들로 떠들썩한 아침 지하철안에서 깨우친 교훈이다.   매일 두시간 넘게 출퇴근길에서 보내야 하는 도시인의 삶은 고단하다. 그러나 지하철안에는 힘들고 지친 이야기만 있는것이 아니다. 가끔 가다 랑만도 있다. 임신때 내게 자리를 양보했던 붉은 넥타이 맨 소학생 꼬마도 있었고 무거워보이는 내 가방을 받아주었던 할머니도 계셨고 키가 작은 나에게 손잡이를 양보해주고 짐짓 모른척해주던 멋진 키다리남자도 있었다.   다람쥐 채바퀴 도는듯한 내 생활에 지하철은 멍하니 생각을 쉬울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가끔은 일과 육아에 지친 내가 독서를 할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앞으로 몇십년을 더 지하철을 타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마 지하철을 안 타도 되는 때는 내 육신이 세월의 년륜을 새기며 저 멀리 황혼의 언덕을 바라보는 시기일것이다. 단지 목적지가 같다는 리유 하나만으로 한 시공간에 던져진채 오감을 공유해야 하는 지하철안은 어쩌면 우리네 삶의 한 축소판이기도 하다.  살과 살을 비비고 체취를 공유하면 또 어떠하리… 이 거대하고도 비좁은 지구 어디인들 우리네 사는 모습이 다 그러하지 않은가.     랭면 쏘나타   북경으로 간 연길 랭면 사무실 동료 선생님들이 자주 찾는 랭면집이 있다고 했다. 그 랭면을 얘기할 때면 저마다 눈가가 촉촉해서는 입을 다시길래 저으기 호기심이 동했다. 랭면의 종가라 불려도 좋을만한 평양랭면, 연변랭면, 계서랭면을 제치고 그 맛이 단연 랭면중 으뜸이라고 하는 선생님도 계셔서 내 호기심에 더욱 불이 붙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무실 뒤자리 동료 선생님이 고맙게도 그 맛을 느끼게 해주시겠다며 나를 데리고 그 식당으로 갔다. 시내뻐스를 타고 흔들흔들, 북경 2환의 고풍스러운 전통적인 옛 거리를 지나, 전혀 랭면집이 있을것 같지 않은 골목에 “화천연길”이라 씌여진 록색 간판이 눈에 띄였다. 낯선 북경의 옛 주택구에서 우리 글을 보니 퍼그나 정겨웠다. 식당으로 들어가니 입이 떡 벌어진다. 빼곡이 놓여진 테이블마다에 사람들로 꽉 찼고 카운터앞에서부터 입구까지 랭면 먹으러 온 손님들이 줄 지어 서있는것이였다. 겨우 자리를 찾아 앉고 간단히 랭면 두그릇에 고향 연변의 랭면집에선 듣도보도 못한 장졸임 비슷하게 생긴 반찬을 주문했다. 음식을 시키고 식당내를 휘휘 둘러보니 그래도 조선족 음식점임을 고집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보였다. 벽에 걸린 민속풍경화가 그랬고 한족 복무원의 몸에 입혀진 개량한복이 그랬다. 이윽고 랭면이 상에 올랐다. 아, 고향에서 먹었던 랭면도 이랬던가? 북경 왕징에 있는 평양식당의 랭면도 이랬던가? 그래도 랭면이라고 하면 사리를 곱게 틀어서 말간 육수에 댕그랗게 놓고 우에는 엷게 썬 사과나 배, 채 썬 오이, 삶은 닭알 등 고명을 보기 좋게 올려놓은 그런 모습 아니던가? 간장물 같은 거무튀튀한 육수에 면가락은 제멋대로 늘어져있고 또 일부는 그릇벽에 붙어 존재감을 뽐냈으며 투박하게 썰어놓은 사과조각도 미관에 상관없이 육수에 둥둥 떠다니고있었다. 면발은 또 왜 이렇게 굵은지, 좀 과장한다면 아기손가락 굵기만큼한 면발이 랭면임을 한껏 뽐내는듯도 했다. 한가닥 집어 입에 넣었다. 바오라기 같은 면발을 씹으니 밀가루맛이 물씬 풍겨온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육수에서는 진한 간장맛과 고추장맛이 은은히 풍겨오고 육수를 한술 떠서 마셔보니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그 육수맛 또한 텁텁하니 요상하다. 랭면도 온면도 아닌 “미면“(미지근한 면)이라 하면 어떨는지…   “선생님은 진심 이 랭면이 맛있습니까?” 참지 못하고 마주앉은 선생님께 물었더니 “나도 처음엔 뭐 이런 랭면이 다 있나 그랬어. 근데 먹을수록 생각나는 맛이야. 맛은 없는데 맛이 있어. 한동안 안 먹으면 그 맛이 생각나고 말이야.” 하고 아리송한 대답을 한다. 거 참, 맛이 없는데 맛있는 맛이란 도대체 어떤 맛이지…   너희가 랭면 맛을 알아? “화천연길”이라는 이 연변음식점은 1943년도에 북경에 섰다고 한다. 리씨 성을 가진 한 조선족 할머니가 몇몇 북경의 젊은이들과 함께 랭면을 해서 팔다가 후에 연길식당으로 이름을 고치고 경영했다고 한다.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북경의 연변음식점인셈이다. 지난 세기 80년대에 대학입학으로, 취직으로 북경에 온 조선족 젊은이들에겐 어려우나마 고향음식을 맛볼수 있는 귀한 곳이였다고도 한다. 지금처럼 한국음식점들이 많지도 않았을 때고 주머니사정도 여의치 않았던 그들은 삼삼오오 이 가격 착한 랭면집을 찾아 랭면을 먹었을테고 그것으로 향수를 달랬을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타향의 랭면맛에 점차 길들여지다보니 그만 이 랭면을 사랑하게 되였다고 한다. 점차 조선족의 대도시 진출이 용이해지고 또 북경에도 왕징이라는 코리안타운이 형성되면서 민족음식점은 예전처럼 귀한 존재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반시간 정도 차를 타고 나가 정통 평양랭면을, 연변랭면을 어렵지 않게 맛볼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직장의 50대, 60대 로선배님들은 아직도 이 집 랭면맛이 최고라고 추켜세우신다. 음식은 맛만으로 먹는게 아닌가보다. 남의 주관적인 느낌을 감히 짐작해보겠다는 주제넘는 생각을 해본다면 그들에게 이 랭면은 추억이고 향수이지 않았을가? 젊은 시절에 대한 추억과 고향에 대한 향수 그 모든것이 이 랭면에 들어있지 않았을가? 북경 생활 8년차인 나는, 결핍의 시대를 겪지도 않았던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 맛의 소중함을… 얼마전 조선족이 꾸린 한 위챗계정에서 이 집 랭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조선족의 정통랭면도 아니면서 한족들 입맛에 맞게 변질된 랭면을 갖다가 조선족랭면이라고 하는것은 명백한 사기 행위라는 지적이였다고 한다.  달리 생각해본다. 한 음식이 그곳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토착화되고 또 그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되였다면 음식의 정통성 여부가 그때에도 중요한것일가? 랭면을 먹기 위해 길다랗게 줄 지어선 사람들을 보며 그런 충동이 일었다. “여러분이 지금 먹으려는 랭면은 오리지널이 아니요. 더 맛있는 우리 민족의 정통랭면을 맛보세요.” 하고 웨치고싶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이 “변질”된 랭면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맛이란 가히 주관적인것이다. 북경 생활 8년차, 내 입맛도 서서히 변하고있다. 두눈 튀여나올 정도로 얼얼하게 매운 음식을 좋아하던 내가, 뒤골이 뗑~ 해지도록 차거운 얼음물을 좋아하던 내가 더 이상 그것들을 안 찾게 되였다. 갓 북경에 왔을 때, 질질 끓는 북경의 여름을 뜨거운 차물을 불어 마시며 견디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고 어느새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즐기게 되였다. 시원한 맛에 마신다는 맥주를 뜨뜨미지근한것으로 마시니 처음에는 입맛이 무척 썼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니 구수한 호프의 맛을 더 잘 느낄수 있어 그 맛 또한 새롭다. 10년, 20년, 앞으로 이제 내 입맛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변해간다는것이, 나를 잃어가는것 같아 저으기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다시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작업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가슴에 맞혀오기도 한다. 그러나 간장 고추장 육수속에서도 굵은 면발을 자랑하며 랭면의 “정체성”만은 잃지 않으려 했던 이 집 랭면처럼, 북경의 전통 옛 거리에서도 우리 글 간판을 걸고 한족들 몸에 어울리지 않는 한복을 입고서라도 우리 민족 식당임을 애써 지켜보려는 이 음식점처럼 그 무엇인가는 상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변했다면, 그 변한만큼의 차이가 바로 내가 이 타향에 발 붙이고 살기 위해 애썼던 노력의 흔적들이 아닐가 하고 생각한다.     데지 않을만큼, 춥지 않을만큼…   어쩌다가 여러가지 조건들이 맞물려서 한국에서 몇달간 생활할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집이라고 터를 잡고 살아보니 전에 몇번 관광으로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젖어왔다. 말로 다 할수 없는 살가움과 무작정 내 맘을 끄는 감성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퍼그나 정답게 느끼게 해주었다. 아이를 데리고 근처 공원에라도 나가면 공원 벤치에 앉아 한담을 나누시던 아주머니들이 아이가 예쁘다고 말을 걸어주시고 간혹 과자 같은것도 건네주며 친절을 베풀었다. 인간의 탈을 쓴 몇몇 못된 놈들의 아동랍치사건으로 전체적인 사회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어 아이를 밖에 데리고 나가도 필요이상으로 경각심을 높여야 하는 북경과는 딴판이였다. 한국은 “정”의 문화라더니 아니나다를가, 그 따뜻한 “정”에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매일 근처 공원에 나간지 며칠만에 자주 마주치는 한 아주머니랑은 안부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였다. “새댁은 중국서 왔어?” 나의 어눌한 한국말 억양에서 바로 티가 났나보다. “네. 북경서 왔어요.” 하고 곱게 대답하니 “신랑도 같이 왔어?” 하고 물으시길래 “네. 세 식구 다같이 왔어요.” 하고 대답했다. “신랑은 어느 직장 다녀?” 한참후, 신랑 직장에 나이까지 줄줄이 고백하는 나를 발견했다. 첩보요원도 아니고 딱히 비밀에 붙일것까지야 없다지만 이런 개인사까지도 말해도 되나싶은 생각이 번쩍 들어 머쓱하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럼, 이만 가볼게요.” 하고 말하고는 어수선하게 그 자리를 떴다. 이튿날부터는 왠지 그 아주머니를 피하고싶어졌다. 콕 집어 말할수 없는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근처 정육점에서 고기를 어쩌다 한번 사게 되였는데 정육점 주인 아저씨 또한 열정적인분이셨다. 그 열성스러움에 처음 간 날 생각에도 없는 삼겹살 두근을 덜컥 사버리고말았다. 그후로 아저씨는 나만 보면 특유의 그 충청도 억양으로 “어디 가슈?”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걸어오고 가끔은 아들애에게 장난감도 쥐여주었다. 그럴 때면 나는 괜히 고기를 사지 않는것에 자책감까지 가지게 되였다. 근처에는 이틀에 한번 집으로 반찬을 배달해주는 열정적인 반찬가게 아주머니도 계셨다. 배달을 오실 때면 아들애 이름을 친절하게 불러주기도 하고 손을 꼬옥 잡아주기도 했다. 세살짜리 아들애가 크레용을 들고 마구 설치면 아이에게 흰종이를 주어 락서를 하게 하라고 조언을 주시기도 하고 아이를 따라다니며 밥을 먹이는건 옳지 못한 육아법이라고 따끔히 지적도 해주셨다. 분명 좋은 말씀들인데 어딘가 불편한 느낌은 아주머니가 다녀가신후에야 스멀스멀 찾아왔다. 그후로는 그 아주머니가 배달을 오신다 하면 괜히 긴장해졌다. 집이 어질러져있지는 않나? 아들애가 오늘은 장난을 많이 치지 말아야 할텐데 하면서 괜한 걱정까지 하게 되였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혹시 그분들 나름의 마케팅전략 아닐가? 고기나 반찬을 더 팔려는 그런 전략?” 하고 반문해왔다. 그분들의 따뜻한 진심에 대해선 의심하고싶지 않았다. 그분들은 진심으로 중국에서 온 이 동포 새댁에 관심을 가졌을것이고 천방지축으로 허둥대보이는 어린 새댁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하고싶었을것이다. 그러나 그런 따뜻함에 조금씩 피로감이 느껴지는건 나도 어쩔수가 없었다. 차번호 하나 따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운 북경에서 자가용 차가 없는 우리는 외출할 일이 있으면 등씨 성을 가진 한 기사아저씨의 택시를 자주 리용하군 하였다. 수없이 많은 차가운데서 그 기사의 택시만 4년 넘게 리용한데는 나름의 리유가 있었다. 크고작은 일에 4년 넘게 그 차를 리용했지만 등씨 성을 가진 그 아저씨는 한번도 개인사에 대해 물어본적이 없었다. 북경에서 택시를 타보면 우리끼리 하는 얘기를 듣고 기사님들이 곧잘 하는 질문이 있다.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냐?” 하는것이다. 방언도 아닌것 같고 그렇다고 외국사람도 아닌것 같은데 당신들이 하는 말을 자기는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다고 하면서 호기심에 물어올 때가 많다. 조선족이라고 하면 일부 기사들은 알은체를 해오며 “쓰쌘주마?(是鲜族吗?)”라고 하신다. 그냥 무시해버리면 좋으련만 또 틀린걸 보면 지적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에 “선족”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반드시 “조선족”이라 불러야 한다며 꼬치꼬치 지적을 해주고나면 급피곤이 몰려오군 하였다. 그런 번거로움을 여러번 겪다보니 그런 질문따위를 일체 하지 않는 등씨 성을 가진 그 기사아저씨를 유난히 선호하게 되였다. 오래동안 자주 만나다보면 가끔은 옛다, 기분이다 하고 에누리를 해줄법도 한데 등아저씨는 언제나 칼 같았다. 거스름돈 받기가 번거로와 더 드려도 엄격하게 계산해서 돌려주었고 가끔은 좀 깎으려고 해도 언제나 그렇듯이 단호했다. 그 기사아저씨의 신상정보에 대해서는 아는것이 전무했지만(등씨 성을 가졌다는것만 알뿐) 우리는 누구보다 그 아저씨를 신뢰하고있었다.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차거운 등아저씨를… 새삼 한국의 “정”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서로 돕고 상부상조하는 삶속에서 형성된 “정”문화, 그것은 이 힘든 세상을 헤쳐가는데 빛이고 소금이였을것이다. 서로를 걱정해주고 다독여주는 따뜻함. 그런데 나는 왜 그 따뜻함에 데기라도 한듯 몸을 움츠리는것일가? 어린 시절 내가 살던 향진의 작은 마을은 그 시절 다들 그랬듯이 따뜻하고 화기로왔다. 이웃들은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함께 나누었고 걱정이 있어도 함께 나눴다. 비 오는 날, 엄마가 만든 오그랑죽을 들고 뒤집 해화언니네 집에 가져가다 엎어져 온몸이 죽범벅이 된채 울음보를 터뜨리던 내 모습도 기억에 선하다. 남편에게 손찌검을 당해 울면서 집에서 뛰쳐나온 새댁을 자기 집에 숨겨주고 그 남편을 찾아가서 화통하게 욕사발을 안겨주던 옆집 아주머니도 계셨다. 그 새댁이 이튿날 바로 남편곁으로 달려가서 그 아주머니를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멀리 왕청 춘화라는 곳에서 시집 와서 친정 식구도 하나 없는 타향에서 새댁이 혹시나 서러워하지나 않을가싶어서 아주머니가 나선것이였다…  요즘 같았으면 주책이라고 손가락질 받고도 남을 일이다. 간섭은 어쩌면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는 누구도 그것을 간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고 모든게 조화로왔던것 같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저마다 칸을 치고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놓고 빗장을 닫고 산다. 관심은 자칫하면 간섭으로, 부담으로 여겨지기가 일쑤이다. 이웃간에 따뜻한 떡그릇 오가던 그 옛날의 추억은 추억일뿐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간주되는 현대사회에 불쑥불쑥 예고없이 떡을 들고 이웃집 문을 노크하고 찾아가는것도 어쩌면 비현실적인 일이기때문이다. 서글픈 일이다. 유리벽을 친 각자의 방에서 우리는 먼발치서 서로를 바라보며 외롭지 않으려고, 고립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있는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이 외로운 현대인을 구원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가? 역시나 서로에 대한 따뜻한 관심만이 그 해답이 아닐가? 그렇다면 그 따뜻함의 적정 온도는 몇도쯤 될가? 50도? 60도? 따뜻함을 유지할수 있는 적당한 거리는 얼마나 될가? 데이지 않을만큼, 춥지 않을만큼의 적당한 온도와 거리는 도대체 어느만큼일가?   어쭙잖게 이 외로운 현대인들을 구원하고싶은 돈끼호떼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서로의 온기를 따뜻하게 나누기에 가장 적당한 랭정과 열정사이의 그 어느 지점을 찾아 돈끼호떼의 마음으로 갑옷 입고 투구 쓰고 나서볼가싶다. 나랑 동행할 사람 게 누구 없소?  나지막이 지기들을 입속으로 불러본다. 출처:2017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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