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날과 지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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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재혼가정 이붓남매의 사랑이 낳은 비극 댓글:  조회:5722  추천:0  2011-12-07
     1988년에 형양시에서 태여난 정효도는 훤칠한 체격에 귀인티가 나는 외모가 돋보이는 미남이였다. 2005년에 어머니가 병으로 사망되자 아버지 정만민은 주위사람들의 소개로 일찍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지내고있던 주수근과 재혼했고 그렇게 이뤄진 재혼가정은 나름대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주수근의 딸 단문은 정효도보다 2살 년하였는데 불산시의 한 전자상가에서 일하고있었다.      2007년 국경절, 호남성 형양의 한 호텔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고있던 정효도는 저녁에 일찍 집에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갔을 때 집에는 이미 이붓녀동생 단문이 와있었다. 단문의 얼굴에는 옅은 홍조가 어려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단문이 어머니를 도와 설겆이를 하는 사이에 정만민은 아들의 손목을 잡아끌고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단문에 대한 인상이 어떠냐고 물었다. 정효도가 얼떨떨해있자 정만민이 입을 열었다.      “효도야, 이번에 너와 단문이를 집에 부른건 너희 두 사람의 혼인대사를 상의하기 위해서란다.”      “네?”      정효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정만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효도야, 나와 너의 새어머니는 너희들 두 사람이 이붓남매사이를 넘어 부부로 되였으면 하는 생각이다.”      워낙 재혼가정재산분할문제로 사회상에서 이런저런 모순이 많이 발생되는것을 안 정만민과 주수근은 우려끝에 두 이붓자식들이 부부로 되면 앞으로 재산문제로 인한 모순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단문 역시 훤칠하고 남자다운 이붓오빠 정효도에게 호감을 느끼며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효도야, 결혼에 대해 너무 부담을 느끼지 말고 련애생활을 하면서 천천히 감정을 키워보거라.”      귀밑머리가 희슥해진 아버지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면서 정효도는 할말을 잃고말았다. 그후 정만민과 주수근은 의식적으로 정효도와 단문이 만날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마련해주었다. 정효도는 이붓남매에서 하루아침에 련인이 되여버린 단문과의 만남이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게다가 정효도는 말주변이 없고 활기가 없는 단문과 만날수록 고민만 깊어갔다. 아버지를 찾아 자신의 의사를 전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간곡한 어조로 아들을 달랬다.       “네가 단문이를 거절하면 우리 부부도 감정이 상할테고 그러면 우리 가정의 행복도 뿌리채 흔들리게 될거다. 부탁한다 아들아.”      아버지의 행복이 자신의 두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정효도는 숨이 꺽 막혔다. 결국 그는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2009년 음력설기간, 부모의 뜻에 따라 형산으로 려행을 떠났던 두 사람이 저녁무렵이 되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돌아왔다. 단문이 한바탕 하소연을 했다.      “오빠는 정말 너무해요. 등산하는데 저의 손도 잡아주지 않는단 말이예요.”      정효도 역시 넋나간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단문이랑 저는 정말 더이상은 안될것 같습니다.”      정만민이 깊은 탄식을 쏟아냈다.      아버지의 실망한 표정은 또한번 정효도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한참 고민에 잠겼던 정효도는 아버지의 두손을 잡고 말했다.      “아버지, 제가 다시 잘해보겠습니다.”      정만민은 기대에 찬 눈길로 아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오묘한것이였다. 하루하루 자신의 목을 졸라대는 단문때문에 정효도는 홀로 쓰디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2010년초, 단문은 정효도가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생일선물을 보내주지 않았다며 또다시 한바탕 행악질을 해댔다. 참다못해 정효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 차라리 헤여지기요. 난 더이상 단문이랑 억지사랑을 이어갈수 없을것 같소. 아버지를 생각해서 여직껏 참았는데 이젠 더이상 참을수가 없소.”      “당신이 나랑 헤여지면 나는 엄마더러 당신 아버지곁을 떠나라고 할거예요.”      “단문이…정말…너무하는구만…”      정효도는 또다시 아버지의 행복앞에 머리를 숙이고말았다. 어느날, 정효도가 몇몇 고객들과 상담하고있을 때 마침 단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에서 녀자의 음성이 들려오자 단문이가 단통 소리를 질렀다.      “곁에 있는 녀자는 누구예요?”      “지금 고객과 상담중이요.”      통화를 마친후에도 단문은 끊임없이 문자메시지(短信)를 보내와 누구랑 있는지, 언제 퇴근하는지, 당장 화상통화를 하자는둥 앙탈을 부렸다. 단문의 막무가내에 정효도는 귀찮은 나머지 핸드폰을 꺼버렸다. 단문은 또다시 어머니에게 전화해 울며불며 하소연했다. 주수근과 정만민은 정효도에게 전화해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정효도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단문과의 관계를 정리하리라 다짐하고 또 했다. 정효도가 집에 들어서자 주수근이 달려나오며 두손을 잡아끌었다.      “배고프지? 얼른 와서 밥부터 먹거라. 정말 미안하구나. 단문의 성격이 워낙 유별나서 네가 많이 힘들거다. 나를 봐서 한번만 용서해주려무나.”      계모의 진심어린 말에 정효도의 다짐은 결국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집에서 나온 정효도는 주동적으로 단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미안하오. 다시는 안그러겠소.”      정효도는 다시 감정을 추스리기로 결심했다. 그 쯤에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한 처녀가 정효도의 마음속에 들어왔던것이다. 라림림이라 부르는 그 처녀는 정효도가 근무하는 호텔의 신입사원이였는데 성격이 활발하고 항상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였다. 정효도는 그녀의 쾌활함에 마음이 끌렸지만 단문이를 떠올리면서 애써 마음을 눅잦혔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사랑표현을 하면서 다가서는 라림림과 그런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리고도 주동적으로 행복을 쟁취할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2010년 6월의 어느날, 며칠동안 생각을 굴리던 그는 큰 결심을 내리고 호텔측에 청가를 맡은후 불산행 기차에 올라탔다.       밤 10시경, 정효도와 단문은 단문의 회사근처에 있는 한 려관방에서 만났다. 단문은 려관에 들어서자마자 장효도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얇은 옷우로 단문의 풋풋한 육체가 느껴지는 순간 정효도는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잊은채 알수 없는 뜨거운 충동에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두 사람은 결국 도덕의 방선을 허물고야말았다…이튿날 잠에서 깬후 정효도는 랭정하지 못했던 자신의 처사가 죽도록 후회스러웠지만 엎질러진 물이라 어쩔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밖에서 식사를 마치고 다시 려관방에 돌아왔다. 단문이 또다시 정효도의 목을 끌어안고 애교를 부렸지만 정효도는 랭정하게 단문을 뿌리치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오. 사실은 단문이랑 헤여지기 위해 불산에 왔소. 엊저녁의 실수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하오.”      “뭐라구요? 좋아요. 나는 지금 당장 전화해서 엄마더러 당신 아버지와 리혼하라고 하겠어요.”      “당신하고는 정말 도리가 통하지 않는구만. 당신은 미쳤소. 진작 당신과 관계를 끊어야 했는데…”      말을 마친 정효도는 단문을 와락 밀쳐버렸다. 바닥에 넘어진 단문은 가까이에 놓여져있던 과일칼을 집어들고 당장이라도 찌를 기세로 달려들었다. 정효도는 민첩하게 피하면서 칼을 빼앗았다. 단문과 정효도는 엉켜붙어 몸싸움을 벌렸다. 그러나 혼란중에 정효도는 손에 든 과일칼로 단문의 가슴을 찌르고말았다. 단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그녀의 고함소리에 리지를 상실한 정효도는 황망히 단문의 입을 틀어막았다. 한참후 단문은 숨을 거두었다. 시간은 새벽 3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정효도는 급히 사건현장을 재물을 노린 강탈사건현장으로 위장했다. 그리고는 려관주인을 찾아가 3일간 더 머물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려관비를 지불하고 려관을 빠져나왔다. 그 길로 형양에 도주했던 정효도는 사태를 알아보기 위해 다시 불산에 돌아갔다가 경찰들에게 덜미를 잡혔다. 경찰에 나포된 정효도는 실성한듯 울부짖었다.      “단문은 줄곧 부모의 행복을 미끼로 저를 압박했습니다. 저는 지난 2년동안 너무 힘들고 괴로왔습니다.”      자신들의 욕심이 자녀들의 피비린 참극을 초래했다는 죄책감에 주수근과 정만민은 가슴을 치며 통탄했고 결국 가정도 파탄된채 뿔뿔이 헤여져야 했다. 2011년 3월, 불산시 증급인민법원에서는 고의살인죄로 정효도를 사형에 처했다. 《지음》
78    탐욕의 늪에서 자멸된 한가족 댓글:  조회:4566  추천:1  2011-12-07
       광주시 반우구에 한 고급별장이 있다. 3층높이에 388평방메터의 별장은 주강을 사이두고 푸른 수림이 우거진 그림같은 풍경이 어우러진 환상의 집이였다. 별장의 주인은 장씨성을 가진 50대의 남자로서 해산물장사를 하는 광주의 이름난 부자였다.        2008년 늦가을은 37살난 리춘매가 장씨집에서 보모로 취직된지 5년이 되는 때였다. 그녀는 청순한 외모와 수수하면서도 깔끔한 몸단장 그리고 모든 일에서 잽싸고 깨끗하게 처리하는데다가 료리실력 또한 뛰여나 장씨부부의 깊은 신임을 받고있었다. 장씨부부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그녀는 매달 3600원의 로임을 받았는데 이는 보모로서 받을수 있는 최고의 로임이였다. 리춘매의 고향은 소양시의 한 시골이였다. 어린 아들을 시부모에게 남겨두고 광주에 온 리춘매는 장씨네 별장에 보모로 취직했고 남편 주홍림은 근처의 한 건축공사장에 일군으로 취직했다. 그녀는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맡은바 직책에 충실했다. 장씨부부가 돈지갑을 아무데나 두고다녀도 그는 종래로 돈지갑에 손을 대는 법을 몰랐고 남새사러 다녀도 일전한푼 허투로 쓴적 없었다.        2008년 년말, 장씨부부는 미국에 있는 아들한테로 가면서 그녀에게 집을 맡기기로 했다. 집에서 키우던 6마리의 물고기와 애완견 한마리를 돌봐주는 대신 로임은 일전한푼 곯지 않고 그대로 주기로 했으며 설명절이 되면 식구들을 별장에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별장 곳곳의 열쇠를 모두 그녀에게 맡기며 창고를 잘 정리하고 수시로 해볕쪼임을 시켜 습기가 차는것을 방지하라고 당부했다. 식구들을 별장에 데려다 함께 지내라는 말에 리춘매는 기뻐 어쩔줄을 몰라했다. 장씨부부가 금방 출국하자마자 리춘매는 방학하고 집에서 놀고있던 아들 주달위와 남편을 별장으로 불러들였다.          전을 방불케 하는 별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주홍림과 주달위는 눈앞이 황홀해졌다. 보잘것없는 시골집에 비해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그들이 상상했던것보다 훨씬 화려했다. 리춘매가 두 사람을 객실 한가운데 있는 어항앞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이 어항속에 있는 물고기를 좀 보세요. 이 물고기 한마리의 가격이 200만원이 넘어요. 이런 물고기가 모두 6마리나 돼요.”        어머니가 자신을 제쳐두고 부자집 애완견을 돌보고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화가 난 주달위는 다짜고짜 애완견을 주어들어 저만치에 확 던져버렸다. 강아지는 깽깽 비명을 지르며 짖어댔다. 화들짝 놀란 리춘매가 허둥지둥 달려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상처가 없는지 확인하는 한편 아들의 경망함을 나무람했지만 이는 오히려 주달위의 화를 돋궈주는 격이 되였다.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제가 애완견보다도 못합니까?”        아들의 말에 리춘매도 마음이 저려났다. 주달위는 홱 몸을 돌리더니 집안 곳곳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장씨부부의 아들이 살던 방안에 들어선 주달위는 방안의 풍경에 또한번 입을 딱 벌렸다. 각양각색의 문방구들이 줄느런히 놓여있었고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희귀한 장난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가 하면 매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진렬돼있는 명품옷들을 보며 주달위는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주달위는 가지런히 정리되여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입어보면서 삽시에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리춘매가 다급히 제지시켰지만 주달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머니, 이렇게 많은 옷들중에서 제가 몇견지 가져가도 눈치채지 못하겠죠?”        “안돼, 그러지마.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면 안돼.”        하지만 주달위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욕심스레 옷들을 감싸안았다. 모처럼 화기애애한 설명절을 보내려고 했었지만 아들과 남편의 무례함때문에 리춘매는 속만 상했다.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여있던 집안은 남편과 아들이 들어오는 날부터 엉망진창이 되였고 자주 씻지 않는 두 사람때문에 리춘매의 잔소리가 그칠날이 없었다. 그통에 세 사람사이의 모순은 커져만 갔다. 어느날, 집안 창고에서 비싼 양주를 꺼내 마신 세 사람은 술이 거나해지나 마음속말을 터놓기 시작했다. 리춘매가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공부를 잘해 외국류학을 다녀와서 우리에게도 이 별장보다 더 멋진 집을 지어주렴. 엄마는 너를 믿는다.”        “어머니, 외국류학을 갈수만 있다면 이따위 부자집 도련님보다 더 멋진 삶을 살수 있을거예요.”        주달위는 휑하니 자리를 떴다.        “아들이 저렇게 류학가고싶어하는데 보내줄가요?”        “미쳤소? 우리에게 무슨 돈이 있어 외국류학을 보낸단 말이요?”        “아들에게 미안해서 그래요.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우리가 좀 더 고생해야죠.”        “그럼 당신이 저 물고기를 가져다가 파오. 그럼 돈이 많이 생기잖소.”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순간적으로 리춘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 이 집안에는 비싼 물건들이 많고도 많아.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을 가져다 팔아도 발견하지 못할거야. 그렇게 천천히 아들의 류학비용을 마련해야지.)        리춘매는 자신의 생각을 남편에게 털어놓았고 남편 역시 찬성했다. 음력설이 지난후 주달위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작별을 앞두고 리춘매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너를 류학보내기 위해 우리가 힘쓸거니깐 외국어공부에 더 열중하거라. 알겠니?”        류학을 보내준다는 말에 주달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알았어요, 어머니.”        2009년 6월, 장씨부부가 미국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양주를 비롯한 값진 물건들이 잃어진건 감감 모른채 말끔히 정리된 집안과 창고를 둘러보고 오히려 그녀의 깔끔한 일솜씨를 치하하며 로임외에도 1000원을 장려금으로 얹어주었다. 하지만 부부는 리춘매가 이미 “장원한 계획”을 세우고 집안 곳곳의 출입문열쇠들을 한개씩 복제해두었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리춘매는 2일에 한번씩 남새사러 가는 기회를 리용해 검은 비닐주머니에 값진 양주거나 골동품, 공예품 등 물건들을 담아서는 별장구역밖의 구석진 울바자틈사리에 가져다가 감춰두었다. 그러면 주홍림이 몰래 와서 물건을 가져다가 은밀히 팔아 돈을 모으군 했다.         2010년 초봄의 어느날 아침, 리춘매는 부부침실을 정리하던중 침대머리에 놓여진 두툼한 돈뭉치를 발견했다. 리춘매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그중의 일부를 슬쩍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다행히 며칠이 지나도록 장씨부부는 리춘매가 3000여원을 훔쳐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번 도적질을 계기로 리춘매의 담도 점점 커져만 갔다. 저금통장에 저금된 금액도 눈덩이 불듯 커져만 갔다. 하지만 장씨부부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        드디여 드러난 꼬리        2011년 3월의 어느날, 주달위가 학교에서 친구와 몸싸움을 벌려 크게 다쳤다는 말에 적지 않게 놀란 리춘매는 급히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장씨집에서 도적질해온 값비싼 옷과 들가방으로 자신을 화려한 귀부인처럼 단장한 뒤 담임교원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담임교원의 주머니속에 옥팔찌를 밀어넣으며 아들을 때린 그 학생을 엄하게 징벌해달라고 요구했다. 담임교원은 행여나 하는 마음에 금은방을 찾아 옥팔찌의 진가를 물었다. 놀랍게도 옥팔찌의 가격이 1만여원이나 된다는 말에 놀란 담임교원은 주저없이 팔찌를 학교령도측에 바쳤다. 학교령도측에서도 평범한 가정집보모가 스스럼없이 통큰 선물을 내밀수 있다는 사실에 저으기 의심이 들었다.         사실 그 옥팔찌는 얼마전에 리춘매가 장씨부인의 친구의 가방속에서 몰래 훔쳐낸것이였다. 그 친구는 장씨부부에게 리춘매를 경계하라고 귀띔했고 그제야 장씨부부도 점차 리춘매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게 되였다. 리춘매 역시 장씨부부가 자신을 의심하는것을 눈치챘다. 그녀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있을 즈음 주달위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이번 시험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어요. 영어에만 집중하다보니 다른 과목을 홀시한것 같아요. 저의 출로는 이젠 류학밖에 없어요. 어서 저를 류학보내주세요.”        아들의 말에 더욱더 조바심이 난 리춘매는 남편과 상의한 끝에 한번 크게 일을 벌리기로 했다. 2011년 7월 26일 오전, 장씨부부가 외출한 틈을 타 리춘매는 집안에 있던 작은 보험궤짝을 비닐로 칭칭 동인 뒤 무진 애를 쓰며 문앞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그리고 얼마 안돼 주홍림이 나타나 택시차에 보험궤를 싣고 유유히 자리를 떴고 리춘매 역시 태연스레 별장을 빠져나갔다. 그날 밤 9시경에야 집에 돌아온 장씨부부는 보험궤가 사라진것을 발견하고 즉시 경찰에 제보전화를 했다. 보험궤속에는 외화와 금은보화를 통털어 160만원에 상당한 귀중품들이 들어있었다.         제보를 접수한 형사경찰대대 경찰들은 즉시 현장에 당도해 사건수사에 달라붙었다. 경찰들은 별장구역내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통해 택시를 타고 보험궤를 절도해간 절도범의 행적을 추적해냈고 순조롭게 리춘매와 주홍림부부를 나포했다. 장씨부부는 자신들도 모르게 이다지도 많은 물건들을 절도당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리춘매를 향해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왜 이런 짓을 저질렀소? 아들을 류학보내고싶으면 우리한테 부탁하면 되잖소. 얼마든지 도와줄수 있었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자신의 류학비용때문에 절도범으로 나포되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주달위는 며칠간 식음을 전페하더니 결국 눈물을 머금고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2011년 8월 23일 새벽, 그는 촌민들에 의해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때로부터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한편 감옥에 갇힌 리춘매와 주홍림부부는 아들의 자살소식에 엉엉 통곡하며 자신들의 무지함을 통탄했지만 모든것은 때늦은 후회였다.  《지음》
77    “달팽이혼인”이 불러운 피비린 참극 댓글:  조회:4315  추천:0  2011-12-06
      “달팽이혼인”은 인터넷에 떠돌고있는 신형의 결혼방식이다. 즉 리혼한후에도 한집에서 사는 현상을 뜻한다. 하남성의 조군은 친구의 안해를 사랑했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혼인을 결속짓고 새롭게 부부로 되였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달팽이혼인”생활을 면치 못했고 나중에 피비린 살인극으로 막을 내렸다…       1976년에 태여난 왕옥생은 남구시 한 공장의 오랜 직원이였다. 그의 안해 리숙민은 한 슈퍼마켓의 종업원이였고 딸 왕효애는 중학생이였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화목한 가정이였다. 2007년 년말, 왕옥생은 뜻밖에 정리실업을 당했다. 얼마후,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왕옥생은 몇몇 지인들과 함께 강소성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한 가공공장을 도급맡기로 합의를 본 이들은 자금을 모으기 위해 6월말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날, 안해가 샤와하고있는 틈을 타 무심결에 안해의 핸드폰을 열어 본 왕옥생은 안해의 핸드폰속에서 애틋한 사랑의 말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短信)를 대량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문자메시지의 주인은 다름아닌 이웃에 사는 오랜 친구 조군이였다. 조군은 왕옥생보다 7살이나 어렸는데 당지의 한 공장에 출근하고있었다. 그의 안해 류홍려는 부근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경영하고있는데 그들사이이에는 6살난 아들이 있었다. 집을 떠나기전에 조군에게 안해와 딸을 보살펴달라고 부탁한적이 있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불륜을 야기시켜주는 계기가 되였을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왕옥생은 피가 거꾸로 솟는것만 같았다. 왕옥생은 샤와를 마치고 거실에 나온 안해에게 조군과의 관계에 대해 따졌다. 안해는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과 조군사이의 일화를 털어놓았다.       행복에 겨워 서둘러 결혼등록을 마친 두 사람앞에 뜻하지 않은 장벽이 생겼다. 바로 신혼집이였다. 리혼전에 살던 집은 각자 절반의 재산소유권이 있었지만 아이를 부양하는 상대방이 계속 집에서 살게 되다보니 이들은 게도 구럭도 다 놓친셈이 되였던것이다. 게다가 량측 모두 생활형편이 어려웠기에 마땅히 나눌만한 재산도 없었다. 두 사람은 할수 없이 작은 려관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려관에서 생활한 한달동안 두 사람은 4000원의 생활비를 소비했다. 이는 두 사람의 두달 로임에 맞먹는 액수였다. 게다가 려관에서 장기간 생활하다보니 이웃들은 두 사람의 불륜에 대해 알게 되였고 결국 두 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에 리숙민과 조군은 얼굴을 들고 다닐수가 없었다. 2008년 8월에 두 사람은 부근에 작은 세집을 얻었다. 하지만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도적이 드는 바람에 그나마 얼마 안되는 가장집물을 모조리 잃어버리고말았다. 리숙민은 참담한 현실앞에서 대성통곡했다. 자신이 꿈꿨던 행복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아빠트를 장만해볼 생각으로 부동산시장에 가서 알아봤지만 선불금만 10여만원이 들어야 한다는 말에 두 사람은 맥없이 돌아서야 했다.       2009년 음력설이 지난후,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게된 두 사람은 결국 체면을 무릅쓰고 조군과 류홍려가 살던 집으로 갔다. 류홍려는 두 사람의 행실이 아니꼬왔지만 집의 절반은 자신몫이라고 주장하는 조군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두 사람을 집에 들였다. 하지만 워낙 성격이 칼날같은 류홍려는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때문에 두 사람은 매일 죄지은 사람들처럼 류홍려의 눈치를 살피면서 발뒤꿈치를 들고 다녀야 했는데 조군이 집에 없는 날이면 리숙민은 살얼음판에 서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게다가 밤에 조군과 리숙민이 부부관계를 시작할라치면 어떻게 낌새를 차렸는지 류홍려가 청소한답시고 비자루로 방문을 탕탕 치는가 하면 늦은밤에 빨래를 널어야 한다며 침실과 이어진 베란다에서 부산을 떠는 바람에 두 사람은 제대로 된 부부생활을 할수가 없었다. 그럭저럭 한달이 지나갔다. 어느 주말, 두 사람이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고있는데 7살난 조군의 아들이 벌컥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버지, 아버지와 아지미가 집에 들어온후부터 공부에 집중할수가 없어요. 곧 3학년생이 되는데 아버지때문에 도저히 공부를 못하겠어요. 아버지, 아지미를 데리고 우리 집에서 나가주세요.”       안해가 아들을 조종하고있음을 잘 알고있었지만 아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 조군은 결국 집을 나가기로 했다. 이튿날, 짐을 챙겨들고 두 사람이 다시 찾아간 곳은 다름아닌 왕옥생의 집이였다. 왕옥생 역시 달갑지 않았지만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한채 결국 두 사람을 집에 들였다. 워낙 심성이 착하고 너그러웠던 왕옥생은 친구에게 안해를 빼앗겼다는 배신감때문에 창업의 의욕마저 잃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있었지만 애써 자신을 눅잦히며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았다. 고중생인 딸 효애는 학교기숙사에서 생활하기에 집에 돌아오는 차수가 적었다. 왕옥생은 전처와 조군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이 집에 있을 때면 조용히 집을 나와 밖에서 할일없이 떠돌아다녔으며 늦은 밤 두 사람이 잠든후에야 조심조심 집에 돌아와 새우잠을 자군 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가봐 조군과 단독으로 마주하는 기회를 애써 피했다.        리숙민은 조군과 식사할 때면 전남편 왕옥생을 불러 함께 할것을 요구했다. 번마다 거절하긴 했지만 왕옥생은 그나마 마음속으로 작은 위안을 느꼈다. 그렇게 왕옥생의 “노력”덕분에 이들은 5개월간 별다른 마찰이 없이 “위험한 동거”를 이어갈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군과 리숙민의 조심성은 점점 대담하게 번져갔다. 먹다 남은 음식과 그릇들을 조리대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기가 일쑤였고 전기세, 물세, 가스비 등 기본적인 생활비마저 한푼도 내놓지 않았다. 그 일때문에 이들 사이에 난처한 일이 자주 발생하군 했다.왕옥생을 더욱더 화나게 한 일은 바로 두 사람의 대담한 애정행각이였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는 왕옥생의 눈치때문에 방문을 꽁꽁 닫아걸고 부부관계를 했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행위도 대담해졌던것이다. 거실에서 텔레비죤을 보다가도 곁에 있는 왕옥생을 투명인간취급하면서 면전에서 낯뜨거운 애정행각을 서슴치 않았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두 사람의 신음소리에는 눈꼽만치의 거리낌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애써 억누르던 욕정이 살아나면서 그는 안해를 빼앗아간 조군이 죽이고싶을만큼 미웠지만 극력 자신을 억제했다. 그후부터 왕옥생은 고의적으로 두 사람을 불편하게 굴기 시작했다. 따라서 세 사람사이의 모순도 잦아져갔다. 10월초, 조군과 리숙민은 상의끝에 각자의 전처와 전남편에게서 응당한 재산을 요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리혼으로 인해 창업의 기회마저 포기한데다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생활이 쪼들리기만 했던 왕옥생은 두 사람이 자신을 구렁텅이로 밀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중순의 어느날, 리숙민이 외출하자 집에는 왕옥생과 조군만 남았다. 조군은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고싶은 마음에서 왕옥생에게 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왕옥생은 화가 났다.        “빚이 있다고 해도 숙민이한테 있는건데 당신이 뭐가 대서 나한테 돈타령이요?”       “숙민이는 이젠 나의 안해요. 그러니 숙민이 돈이면 바로 내돈이요.”       “사람을 죽일 잡도리요? 당신이 나의 안해를 빼앗고 내집에 얹혀사는건 참을수 있소. 그런데 지금 나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런 요구를 한다는건 너무하지 않소?”       결국 두 남자는 목에 피대를 세워가며 한바탕 말다툼을 했다. 마침 리숙민이 집에 돌아왔기에 “전쟁”은 일단락되는듯했다. 11월 17일 밤, 왕옥생은 밖에서 애꿎은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잠에 곯아떨어졌다. 마침 그날 조군도 밖에서 술을 마시고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집열쇠가 없는 조군은 문을 탕탕 두드리면서 소리질렀다.        “숙민이,  문을 열어주오.”       숙민이가 집을 비운 사이였기에 할수 없이 왕옥생이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조용히 하오. 한밤중에 그렇게 소리를 치면 어떡하오?”       그러자 조군이 맞받아쳤다.        “입닥치란 말이야. 당신을 죽여버리겠어.”       그동안 참았던 화가 한꺼번에 치밀어오른 왕옥생은 문가에 세워두었던 쇠몽둥이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문을 열자마자 조군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사정없이 뭉둥이를 날렸다. 왕옥생은 쓰러진 조군의 머리를 향해 계속하여 몽둥이질을 해댔다. 조군이 죽었음을 확인한 왕옥생은 쇠몽둥이를 든채 부근의 파출소를 찾아가 자수했다.       사건발생후 왕옥생의 가족은 조군의 가족측에 경제손해비로 3만원을 배상하고 조군의 가족들은 왕옥생의 범행을 용서하고 법원에 경하게 처리해줄것을 요구하는것으로 민사배상협의를 달성했다. 2011년 3월 15일, 법원측에서는 왕옥생에게 고의살인죄로 유기도형 15년, 경제손해비 1만 1976.3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지음》
76    그는 왜 20대 녀성을 토막살해했는가 댓글:  조회:4378  추천:0  2011-12-06
       11월 15일 새벽, 합비시의 한 주민아빠트에 설치된 쓰레기통에서 녀인의 토막시체가 발견돼 주변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제보를 받은 경찰들은 신속히 전문수사조를 내오고 수사를 펼쳤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아빠트주민들은 공포감을 감추지 못한채 쓰레기통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초조함을 달랬다. 가장 먼저 시체를 발견한 사람은 아빠트주변에서 쓰레기를 주어 생계를 유지하는 숭모녀성이였다. 당일 아침 6시경, 숭모는 쓰레기를 회수하기 위해 아빠트에 설치된 쓰레기통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는 쓰레기통속에 버려진 검은색 비닐주머니를 발견했다. 살짝 아구리를 열어보니 뼈다귀가 보였다. 숭씨는 돼지뼈인줄 알고 그대로 지나쳤다. 하지만 비슷한 시각, 같은 아빠트의 또다른 쓰레기통을 뒤지던 녀인도 쓰레기통속에서 심상치 않은 물건을 발견했다. 쓰레기통속에 검은색 비닐주머니가 꽁꽁 동여진채 버려져있길래 행여나 아구리를 열어본 결과 주머니속에서 사람의 손같은것이 보였다. 숭씨는 그 녀인의 말을 듣고나서야 좀전에 자신이 보았던 검은색 비닐주머니속의 내용물이 석연치 않은 물건임을 직감했다. 두 녀인은 당황한 나머지 아빠트구역에 살고있던 한 경찰에게 알렸고 그 경찰이 즉각 공안국에 제보전화를 한것이였다.       제보를 받고 도착한 경찰들은 아빠트주변에 설치된 40여개의 쓰레기통을 면밀히 조사하며 검은색 비닐주머니에 담긴 토막시체를 찾아냈다. 숭씨녀성이 보았던 “돼지뼈”는 사실 녀인의 륵골이였다. 40여개의 쓰레기통은 즉각 당지 장의사로 옮겨졌고 법의에 의해 시체의 손, 발, 몸통은 모두 찾았지만 유독 피해자의 머리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피묻은 장갑       경찰들은 군견을 내세워 아빠트주변에 대해 깊이있는 수사를 했다. 시체가 발견된 주변으로부터 샅샅이 냄새를 맡으며 추적하던 군견이 드디여 수백메터거리에 있는 47동아빠트건물 2단원입구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전문수사조는 즉시 47동 2단원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곳은 10여명의 족부안마원 직원들이 거주하고있는 아빠트였으며 벽 하나를 사이둔 옆에 간부휴양소가 있었다. 경찰들은 간부휴양소내에서 피묻은 흰색 장갑을 발견했다. 그리고 얼마 안돼 시체의 머리부분이 발견되였다.        드디여 잡힌 꼬리       사건이 발생한후 한 주민의 반영에 따르면 시체가 발견되기 전날인 11월 14일 밤 9시경, 그는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와 한 녀인의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시체가 발견된 당일 저녁 9시경, 경찰들이 조사를 위해 37동 304호를 찾았을 때 홀로 땅콩안주에 맥주를 마시던 한 로인이 태연하게 경찰들을 맞아주었다. 얼마뒤 경찰들은 방안 화장실에서 소량의 피흔적을 발견했고 뒤이어 주방에 있는 식칼과 가위에서도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집안 옷장에서는 젊은 녀성의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이 발견되였는데 안에는 왕림이라 부르는 한 젊은 녀성의 신분증과 돈지갑 등 소지품들이 들어있었다. 경찰들은 그 남자에게 중대한 혐의가 있음을 직감하고 즉각 나포했다. 범죄혐의자는 놀랍게도 올해 61살나는 왕계륜이였고 피해자는 그의 동료의 딸인 24살 왕림(가명)이였다.        왕계륜은 처음에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극구 부인하다가 얼마 못가 심리방선이 와그르르 무너져 범행사실을 이실직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와 피해자 왕림의 아버지는 예전에 동료로 지낸적이 있으며 두 집의 안로인들도 무척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왕계륜은 왕림의 성장과정을 죄다 지켜볼만큼 오랜 이웃이였고 왕림은 평소에 왕계륜을 왕아저씨라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그는 왜 20대 녀성을 죽였을가       왕계륜은 2000년경에 합비시의 한 직장에서 퇴직한후 줄곧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 얼마전에 며느리가 출산하는 바람에 왕계륜의 안해는 아들집으로 갔고 술을 마시기 좋아하는 왕계륜은 혼자 집에 남게 되였다.       11월 14일 밤 7시경, 왕계륜은 왕림에게 수차 전화하고 문자메시지(短信)를 보내 자신의 거처에 오라고 했다. 왕계륜의 거듭되는 요청과 감언리설에 왕림은 아무런 위기감도 못느낀채 밤 9시경에 “왕아저씨”의 집으로 갔다. 왕림이 방안에 들어서자 왕계륜은 오래동안 참아왔던 욕정이 생겼다. 그는 왕림을 폭행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녀의 거센 반항에 맞닥뜨렸다. 두 사람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렸고 화가 난 왕계륜은 왕림을 목졸라 죽였다. 그리고는 집에 있던 식칼과 가위로 왕림의 시체를 토막냈다. 15일 새벽 3시경, 왕계륜은 토막낸 시체를 여러개의 비닐주머니에 담아 아빠트구역내에 설치된 쓰레기통에 버렸다…       딸애의 참혹한 죽음과 지인의 만행에 왕림의 부모는 도저히 믿을수가 없다는듯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다가도 몇번이고 기절했다. 왕계륜의 안해와 아들 역시 왕계륜이 그런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질렀음을 믿지 않았다.       그는 왜 그토록 잔인한 수법을 사용했을가       경찰들은 조사에서 몇가지 의문점을 제기했다.       의문점 1: 왜 시체를 토막냈는가?       답: 피해자의 신분을 은페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가능성을 덮기 위해서였습니다.       의문점2: 왜 시체를 앞 쓰레기통에 버렸는가?       답: 가까울수록 의심하지 않을것 같아서였습니다.       의문점3: 왜 피해자의 소지품을 집안에 보관해두었는가?       답: 가방안에 신분증과 기타 소지품들이 많아서 서뿔리 버렸다가 오히려 신분이 인차 들통날가봐 두려웠습니다.       본 사건은 현재 진일보로 심사중에 있다. 《신화넷》
75    실성한 장인에 의해 사위는 숨졌다 댓글:  조회:4627  추천:0  2011-12-01
무기력한 사위의 고충       포산시 남해구역에서 장사일을 하는 65살 리선주와 그의 안해 라수지에게는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 리리가 있었다. 리리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과분한 총애때문에 모든 일을 부모에게 의지할 정도로 의뢰성이 심했다. 2007년 11월, 리선주는 포산시에서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25살 장동성이라는 남자를 알게 되였다. 훤칠한 키에 반듯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이였고 게다가 사교성과 붙임성까지 좋은 장동성이 은근히 맘에 들었던 리선주는 장동성과 딸애를 맺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얼마후, 리선주의 주선밑에 리리와 장동성은 만남을 가졌고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련인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2008년 5월에 리리와 장동성은 모두의 축복속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로 되였다. 결혼식 당일, 리선주는 다소 격동된 어조로 장동성에게 말했다.       “동성이, 오늘부터 나는 내 딸 리리를 자네한테 맡기네. 내 딸을 잘 보살펴주고 사랑해주게나.”       “장인어른, 걱정하지 마십시오. 리리를 평생 아끼고 사랑해줄것입니다.”       리선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후 리선주는 딸내외에게 널직한 아빠트와 자가용차를 마련해주었고 사위의 창업을 위해 거금까지 투자했다.  시골출신으로 줄곧 평범한 생활을 해왔던 장동성은 그렇게 결혼과 함께 하루아침에 벼락출세를 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환상에 젖어들었고 자신을 믿어주고 힘을 부여해주는 장인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였다. 그는 장인에 대한 고마움을 곱절의 사랑으로 바꿔 안해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부부는 알콩달콩 행복한 신혼을 보냈다.        널직하고 편안한 집에서 안정된 생활을 시작한 장동성은 안해에게 시골에 있는 부모를 모셔오자고 제안했지만 안해와 장인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별수없이 부모를 모셔오는 일을 잠시 포기했지만 그는 그런 안해가 내심 서운했다. 2008년 8월, 리리가 임신했다. 장동성은 임신한 안해를 보살펴야 한다는 핑게로 드디여 시골에서 부모를 모셔왔지만 그로써 고부간의 심한 갈등이 시작되였다. 안일한 도시생활에 물든 리리는 투박한 시골생활에 습관이 돼온 시부모의 거친 생활방식을 리해하지 못했고 로인들은 그런 며느리가 버릇이 없다고 늘 투덜거렸다. 리리는 속옷과 겉옷을 따로 씻지 않았다고 시도 때도 없이 시어머니에게 원망을 퍼붓는가 하면 시아버지가 담배를 피워 담배재가 사처에 날린다고 투덜거리더니 말 한마디없이 아예 친정으로 가버렸다.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딸애를 보자 화가 난 리선주는 사위에게 전화해 당장 집으로 오라고 소리질렀다. 장동성이 허겁지겁 처가집에 도착하자 리선주는 불문곡직하고 장동성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으면서 당장 딸에게 사과하고 부모를 시골로 돌려보내라고 호통을 쳤다. 장인의 기세에 눌린 장동성은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가슴 한가득 아들과의 재회에 젖어있던 량주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시골로 돌아갔다. 그제야 리리는 못이기는척 남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에 대한 미안함때문에 의기소침해있는 장동성에게 리리가 속옷을 벗어 팽개치면서 말했다.        “어서 저의 속옷을 씻어줘요.”       울화가 치민 장동성은 “나는 당신의 남편이지 보모가 아니오!”라고 소리를 지른 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남편의 거동에 화가 난 리리는 또다시 친정으로 돌아가버렸다. 그통에 장동성은 또한번 장인앞에 무릎을 꿇고 손이야 발이야 빌어서야 안해를 겨우 집으로 데려올수 있었다. 그뒤로 장동성의 마음속 울화도 점점 커져갔다. 따스함을 찾아 탈선한 사위       2009년 4월, 리리는 순조롭게 아들을 출산했다. 아들의 출산과 함께 부부의 갈등도 심해갔다. 리리는 아들에게 빠져 남편을 더욱더 홀시했고 그런 안해때문에 장동성은 심한 소외감을 느꼈다. 장동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해는 쩍하면 친정집으로 달려가 하소연했고 그럴 때마다 장동성은 장인앞에서 자존심을 구겨가면서 사정하고 끝없이 반성해야 했다. 그러던 장동성은 우연한 기회에 따뜻한 마음을 지닌 녀인 리나를 만나게 되였고 그녀에게서 전에 없던 가정의 따스함을 느끼며 사랑에 빠져들었다.        2010년 5월 21 일, 남편이 한 녀인과 팔짱까지 낀채 다정하게 걸어가는것을 본 리리는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배반감에 곧장 아버지에게 전화해 남편의 외도를 고자질했다. 리선주는 암암리에 개인정탐회사를 찾아 사위에 대해 조사해줄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며칠 안돼 철같은 증거가 리선주의 손에 넘어왔다. 리선주는 다른 녀인과 함께 있는 낯뜨거운 사진재료들을 장동성의 얼굴에 뿌리며 철썩 귀쌈을 때렸다. 장동성은 장인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일시적인 탈선을 이실직고하면서 백배사죄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내쫓고싶었지만 어린 손자를 봐서 리선주는 장동성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온 장동성은 장인앞에서 항상 고양이앞에 쥐신세같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 나머지 안해에게 사정했다.        “여보,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해 부부사이의 사소한 일들은 장인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소? 내가 당신과 아들을 두고 잠간 한눈을 판것도 그때문이였소. 당신은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장인에게 일러바쳐 나를 난처하게 굴었소. 그때문에 나는 늘 장인앞에서 숨도 바로 쉴수가 없었소. 그래서 잠시나마 나에게 따뜻한 정을 베풀어주는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던것이요.”       리리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 자신의 처사에 약간의 후회가 갈마들었다. 장동성과 외도한 녀인의 이름은 리나였는데 워낙 집안형편이 좋은데다가 옷가게까지 경영하는 재벌녀인이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장동성을 사랑하고있었다. 두 사람이 몰래 밀회를 즐길 때면 그녀는 장동성의 돈을 일전한푼도 쓰지 않았고 장동성의 처지에 가슴아파하면서 안해와 리혼하고 자신과 함께 살자고 했다. 리나와 함께 있을 때면 장동성은 비로소 진정한 남자로 된듯한 자부심을 느낄수가 있었다. 자신의 체면을 팍팍 세워주는 리나가 늘 고마왔고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마음속의 상처가 말끔히 치유되는듯했다. 하지만 아들과 안해를 버리고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할수는 없다고 생각된 장동성은 결국 리나에 대한 마음을 애써 접고 리리에게 충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성한 장인, 사위에게 칼부림       그후, 안해에 대한 미안함때문에 장동성은 리나와 관계를 끊고 더욱더 살뜰하게 안해를 대해주었다. 부부는 다시 평온한 삶을 되찾은듯했지만 리선주는 사위에 대한 의심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딸을 꼬드겼다.       “리리야, 세살때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법이다. 남편을 너무 믿지 말고 많이 견제하거라. 남자들은 돈이 많으면 자연히 녀자들을 찾게 돼있으니깐 모든 경제원천을 끊어버리고 한달에 300원의 생활비만 주거라.”       리리는 고분고분 아버지의 뜻에 따랐다. 하지만 이는 결국 장동성의 마음에 찬물을 붓는 격이 되였다. 경제원천까지 끊어버리고 조롱하듯 300원의 생활비를 던져주는 안해에게 철저히 마음이 식어버린 장동성은 결국 모진 마음을 먹고 리혼을 제기했다. 리리는 남편의 리혼요구에 길길이 날뛰면서 아버지에게 전화해 한바탕 하소연했다. 리선주는 또다시 장동성을 불러놓고 협박조로 말했다.        “네가 감히 내 딸을 버릴 생각을 해? 그렇다면 여직껏 내가 해줬던 모든것을 토해놓고 빈몸으로 집을 나가거라.” 장동성도 더이상 참지 않았다.        “당신은 악마입니다. 나와 리리가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압니까? 바로 당신의 지나친 간섭때문입니다. 이제 저도 더이상 참을수는 없습니다. 리리와 리혼하고 알몸으로 집을 나가겠습니다.”       남편의 강한 태도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리리는 남편을 끌어안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면서 사정했지만 이미 식어버린 장동성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력부족이였다. 더이상 아버지에게 의지하지 않겠다고 사정하고 심지어 자살시도까지 했지만 장동성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딸애의 측은한 모습이 내심 안스러웠던 리선주는 그길로 깡패들을 찾아가 돈을 안겨주면서 장동성을 혼뜨검내달라고 부탁했다. 깡패들은 약속대로 장동성을 랍치해 한바탕 매질을 퍼부으면서 리혼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지만 모든것이 장인의 소행임을 잘 알고있었던 장동성은 더욱더 리혼결심을 굳혔다. 사위가 점점 더 강한 태도를 보이자 리선주는 자기가 직접 나서서 사위의 마음을 돌려보기로 했다. 2011년 3월 12일, 그는 또다시 깡패들을 찾아 5만원을 주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비수를 차고 깡패들과 함께 장동성을 찾아갔다. 퇴근무렵이라 손님이 뜸한 틈을 타 가게로 쳐들어간 리선주는 다짜고짜 장동성을 벽에 밀어붙이며 말했다.       “네가 감히 내 딸과 리혼해?”       “이러지 마십시오. 저도 참을만큼 참았습니다.”       장동성의 견결한 태도에 리지를 상실한 리선주는 품에 지녔던 비수를 꺼내 장동성의 하체를 향해 사정없이 칼질을 했다. 리선주의 돌발행동에 깡패들도 놀란 나머지 급급히 자리를 떴고 리선주 역시 비수를 버린채 황망히 도주했다. 병원에 옮겨진 장동성은 결국 사망됐고 리선주는 안해와 딸의 충고로 며칠후 경찰에 자수했다.       철창속에 갇힌 리선주는 뒤늦게야 딸의 혼인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해 딸의 행복한 혼인생활을 파탄시켰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이미 모든것은 엎질러진 물이였다. 본 사건은 현재 진일보 심사중에 있다. 《지음》
74    딸애의 조기련애때문에 목숨잃은 어머니 댓글:  조회:4733  추천:0  2011-11-29
      2007년 7월 18일, 이날은 중경시 장수구 룡흥가에 사는 리민정의 15살 생일이였다. 그의 어머니 장춘영은 딸애에게 《성인세계 9가지 비밀》이라는 책을 선물로 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민정아, 어느새 어엿한 성인이 되였구나. 이제부터는 뭐든 너절로 하는 습관을 키우려무나. 그리고 조기련애는 절대 하지 말거라. 특히 남학생들이 너의 몸에 함부로 손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거라. 알겠니?”       민정은 귀여운 미소로 어머니에게 화답했다. 장춘영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대학꿈을 딸애가 꼭 이뤄줄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 하나로 딸애를 각별히 엄격하게 교양했다. 게다가 사춘기에 접어들수록 또렷한 이목구비와 미끈한 체격이 같은 또래의 녀학생들중에서 단연 돋보일 정도였던 딸애였기에 장춘영의 우려는 딸애의 성장과 함께 깊어만 같다. 장춘영의 우려는 얼마 안돼 현실로 다가왔다. 중학교시절 내내 학급의 앞자리를 놓치지 않더니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중경시 중점고중에 입학한 딸애에게서 점차 묘한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던것이다. 외모에 그닥 신경을 쓴적 없던 딸애가 거울앞에 붙어있다싶이 하며 얼굴단장에 신경을 쏟더니 뒤이어 학습성적이 형편없이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그는 딸애의 핸드폰에서 미처 지워버리지 못한 한통의 문자메시지(短信)를 발견했다. 메시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뭘 하고있니? 너무 보고싶어…”       그는 화김에 딸애의 귀쌈을 때리며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리민정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모녀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렸다. 이튿날 저녁 11시경, 귀가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딸애가 귀가하지 않자 초조해난 장춘영은 딸애마중을 나섰다. 갓 아빠트단지를 벗어난 장춘영은 먼 발치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 딸애였다. 딸애는 한창 같은 또래로 보이는 남학생의 품에 안긴채 행복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장춘영은 피가 거꾸로 솟는듯했다. 생각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 남학생의 귀쌈을 갈기고싶었지만 가까스로 꾹 참고 집으로 돌아와 묵묵히 딸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자정이 거의 될 무렵에야 살금살금 집에 들어온 리민정은 불꺼진 객실에 돌부처처럼 앉아있는 어머니 장춘영을 보고는 그자리에 풀썩 물앉고말았다. 리민정이 더 놀란건 바로 어머니의 얼굴을 흥건히 적시고있는 눈물이였다. 강한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의 눈물앞에 민정이는 무릎을 꿇었다. 그는 더듬거리며 엽호와의 련애사실을 털어놓았다. 딸애와 련애를 하는 엽호가 고작 가정불화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가난뱅이라는 말에 장춘영은 억이 막혔다. 장춘영은 머리를 벽에 마구 쪼으며 대성통곡했다. 깜짝 놀란 민정은 어머니의 팔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어머니, 엽호랑 헤여질게요. 이러지 마세요.”       “그럼 래일 당장 그놈과 헤여지거라. 그리고 다시는 련락하지도 말거라.”       리민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민정이가 하학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장춘영은 다짜고짜 엽호와의 관계정리여부를 캐여물었다. 리민정이 두려움에 찬 어조로 말했다.       “나랑 헤여지면 죽어버리겠대요.”       “너를 겁주기 위한 거짓말이야. 래일부터는 엄마가 너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저녁이면 데리러 갈게. 그러니깐 엽호가 너에게 접근할 기회를 주면 안된다. 알겠니?”       이튿날부터 장춘영은 약속대로 아침에는 학교문앞까지 바래다주고 저녁이면 일찌감치 교문앞에서 기다리면서 딸애의 든든한 수호천사로 나섰다. 그 바람에 엽호는 좀처럼 리민정에게 접근할 기회를 잡지 못해 애간장이 탔다. 어느날 학교의 보안일군이 리해가 안된다는 어조로 장춘영에게 물었다.       “민정이는 학교의 모범생인데 왜 그렇게 시름을 놓지 못하는겁니까?”       “사춘기딸을 둔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수 있겠습니까? 딸애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학에 가는것이 저의 욕심인데 같은 학급의 엽호라는 남학생과 조기련애를 시작했더라구요. 도저히 시름을 놓을수 없다니깐요.”       “네? 엽호라구요? 그럼 정말로 딸애단속을 잘해야겠네요.”       “왜요?”       “엽호는 소문난 불량학생입니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퇴학당하는 바람에 우리 학교에 전학을 왔단 말입니다.”       보안일군의 말에 장춘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냥 가난뱅이인줄로만 알았던 엽호에게 그토록 “화려한 경력”까지 있다니. 그는 직접 엽호를 만나기로 작심했다. 이튿날, 그녀는 학교문앞에서 하학하고 터벅터벅 교문을 나서는 엽호를 불러세웠다.       “너같은 불량아가 감히 우리 딸에게 침을 흘리다니 어이가 없구나. 분수를 알아야지. 우리 민정이곁에 얼씬도 하지 말거라.”       “저는 진심으로 민정이를 사랑합니다. 제발 우리사이를 갈라놓지 말아주세요. 지금 안된다면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교에 간 다음에 민정이와 다시 만날게요.”       “어림도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너같은놈에게 내 딸을 줄수 없으니깐 그리 알거라.”       “아무리 그래도 전 민정이랑 헤여지지 않을거예요.”       화가 치민 장춘영은 결국 담임교원을 찾아가 엽호가 딸애를 괴롭힌다고 말했다.그러고도 성차지 않은듯 딸애의 학급친구까지 “매수”해 딸과 엽호의 동정을 살피도록 했다. 몽롱한 호기심으로 충만되였던 엽호의 사랑은 장춘영의 폭풍같은 반대에 부딪치며 점차 분노와 집착으로 바뀌여져버렸다.        2011년 8월 7일, 리민정의 아빠트부근에서 기다리고있던 엽호는 때마침 미술학원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 민정이를 만날수 있었다. 엽호는 한달음에 리민정의 앞에 달려가 말했다.        “민정아, 나도 더이상 너의 앞길을 막을 생각이 없다. 더이상 귀찮게 굴지 않을테니 오늘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식사나 하자꾸나.”       리민정은 할수없이 엽호를 따라 음식점으로 갔다. 하지만 식사를 마칠 무렵이 되자 엽호가 또다시 리민정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한번만 더 너의 어머니에게 사정해보면 안될가?”       엽호의 변덕에 리민정은 귀찮은듯 툭 쏘았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오늘도 우리 어머니가 너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깨끗하게 물러나주려무나. 다신 날 귀찮게 하지 말고.”       리민정의 말에 엽호는 장춘영과 최후의 결판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9시경, 장춘영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집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뒤따르던 엽호가 약삭바르게 방안에 성큼 들어섰다. 엽호의 거동에 적지 않게 놀란 장춘영이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냐? 어서 썩 나가지 못해?”       “아지미, 제발 저랑 민정이 사이를 갈라놓지 말아주세요. 지금은 아지미의 말대로 민정이를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 그때는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할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너같은 불량아가 감히 내딸을? 꿈도 꾸지 말거라.”       “아지미, 사랑은 자유입니다. 어떻게 딸의 감정을 아지미의 뜻대로 좌우지할수 있습니까? 제가 기어코 민정이랑 헤여지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셈입니까?”       엽호의 당당함에 장춘영은 억이 막혔다. 엽호는 장춘영의 위풍을 꺾기 위해 거짓말까지 둘러댔다.       “아지미, 저와 민정이는 이미 깊은 관계까지 맺은 사이입니다. 이래도 계속 반대할겁니까?”       “뭐라고? 네까짓게 감히 내딸한테 무슨짓을 저지른것이냐? 이 나쁜 자식!”       엽호의 거짓말에 화가 폭발한 장춘영은 경찰에 제보해 강간범으로 감옥에 보낼것이라고 행악질하며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장춘영의 돌발행동에 깜짝 놀란 엽호는 전화기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었고 그통에 두 사람은 쫓고쫓기는 추격전을 벌였다. 위협을 느낀 장춘영은 과일칼을 들고 엽호에게 휘둘렀다. 급한김에 엽호가 칼날을 손으로 잡는 바람에 손바닥이 쭉 찢어지면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리지를 잃은 엽호는 미친듯이 달려들어 장춘영의 손에서 칼을 빼앗은 뒤 장춘영을 향해 무자비하게 휘둘렀다.장춘영은 온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내장기관이 몸밖으로 와그르르 쏟아지면서 결국 숨을 거두었다. 엽호는 두눈을 부릅뜬채 숨을 거둔 장춘영의 시체를 멍하니 보며 그제야 덜컥 무서운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는 반창고를 가져다 장춘영의 손과 발을 꽁꽁 묶은 다음 욕실에 있는 옷궤속에 시체를 감췄다. 그리고는 장춘영의 귀걸이, 목걸이 등 장신구들을 챙긴후 집안 한구석에 숨어 리민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참후 리민정이 집으로 돌아왔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와 객실에 그대로 남아있는 피자국에 리민정은 그자리에 굳어졌다. 엽호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변명했다.        “이 피는 내 손에서 흘러나온 피이다. 너의 어머니는 내가 휘두른 몽둥이에 잠간 정신을 잃고 지금 방안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있으니깐 조금만 지나면 깨여날거다.”       그때 리민정을 집에까지 데려다주었던 아지미가 집안에 들어섰다. 화들짝 놀란 엽호는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늦게야 옷장속에서 참혹하게 숨을 거둔 장춘영의 시체를 찾은 두 녀인은 아연실색했다.        8월 8일 오후 6시경, 엽호는 한 친구의 집에서 경찰에 의해 덜미를 잡혔다. 경찰조사에서 엽호는 사태가 그렇게 악화될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고 장춘영을 죽음에로 몰고갈 뜻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본 사건은 현재 진일보 심사중에 있다. 《지음》
73    녀성을 감금해 성노리개로 삼은 지방간부의 말로 댓글:  조회:6857  추천:0  2011-11-29
      하남성 락양시경찰들은 일전에 4메터깊이의 지하실에 6명의 녀성을 감금하고 성노리개로 삼은 한 지방간부를 나포했다. 락양의 성노리개사건은 중국전역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사건의 주인공은 올해 34살난 리호이다. 그는 9년간 소방부대에서 군인으로 있다가 제대한 뒤 당지의 질량기술감독국에서 일했다. 2년전부터 그는 안해 몰래 한 아빠트의 지하실을 사들인후 혼자손으로 1년간의 공을 들여 지면에서 약 6메터깊이의 땅굴을 팠다. 그리고는 선후로 6명의 녀성을 지하실에 끌어들여 성노리개로 삼은후 그녀들을 인터넷화상채팅의 라체표현에까지 내몰았다…       매음녀의 제보로 드러난 죄행       지난 9월초의 어느날, 23살난 한 녀인이 황급히 락양시공안국을 찾아 사건을 제보했다. 그녀가 자신이 또 다른 5명의 녀성들과 함께 아빠트지하창고에 감금된채 한 남자의 성노리개로 살았으며 6명중 2명은 이미 그 남자에 의해 살해되였다는 말에 경찰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경찰들은 즉시 전문조사조를 내오고 사건수사에 달라붙었다. 사건현장은 락양시 서공구 개선로부근의 한 주민아빠트였다. 얼마뒤 경찰들은 그녀의 안내하에 문제의 “비밀지하방”을 급습해 다른 세명의 녀인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해냈다. 그리고 구출된 녀성들의 진술에 근거해 그녀들이 살고있던 바로 그 지하창고바닥에서 살해된채 매장된 두명의 녀자시체를 찾아냈다.       깊은밤 녀자들을 지하실로 유인       경찰들은 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락양시기술감독국 집법대대의 사업일군 리호를 유력한 범죄용의자로 지목하고 그에 대한 나포작전을 시작했다. 작전시작 48시간만에 경찰들은 타지방으로 도주하려던 리호를 나포하는데 성공했다.       올해 34살난 리호는 9년간 소방부대에서 군인으로 있다가 제대한후 락양시기술감독국에 배치받았으며 자기보다 10살 년하의 녀인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둔 평범한 남자였다. 4년전에 리호는 안해 몰래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한 아빠트단지의 지하실을 사들였고 약 1년간의 공을 들여 직접 지하땅굴을 파 비밀의 장소로 마련했다. 만단의 준비를 마친 리호는 2년동안 락양시의 나이트클럽과 노래방을 드나들며 아가씨들을 목표물로 정한 뒤 밤을 같이 보내자고 좋은 말로 구슬려 미리 준비해두었던 아빠트에 유인해왔다. 그리고는 녀인들을 억지로 지하창고에 감금시키고 장기간 성노리개로 삼았는바 그렇게 2년동안 그의 덫에 걸려든 녀인이 무려 6명이였다. 지하실이 있는 아빠트는 평범한 주민아빠트였는데 아빠트주민들은 누구도 주변에서 이같이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있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땅굴을 파는 1년동안 그는 낮에는 출근하고 밤이면 땅굴을 팠으며 새벽에 흙을 메여다 버리는 등 치밀하게 계획하고 행동했기에 누구도 그의 이상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게다가 그가 녀인들을 땅굴에 유인해온 시간도 대부분 새벽녘이였기에 더욱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았던것이다.       구출된 녀인       지하실은 면적이 겨우 20여평방메터밖에 안됐고 하나밖에 없는 작은 창문도 꽁꽁 봉쇄되여있었다. 지하실 내부는 정교하게 설계되여있었다. 경찰들마저 그 내부구조에 감탄할 지경이였다. 지하실은 총 4개 부분으로 나뉘여져있었다. 동굴입구는 직경이 약 60센치메터가량밖에 안됐는데 이는 성인남자 한명이 겨우 드나들수 있는 크기였다. 입구를 통해 안에 들어가면 좌측으로 한사람이 겨우 기여다닐수 있는 정도의 굴이 있었다. 그 굴을 빠져나가면 제일 안쪽에 작은 규모의 방 2개가 있었는데 그 작고 습기가 눅눅한 방에 4명의 녀인들이 함께 살고있었다. 녀자들이 도주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하실은 겹겹이 철문을 설치한 상태였으며 리호는 이틀에 한번꼴로 녀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군 했다. 지면과 거의 6메터나 떨어져있었고 제대로 된 환풍기 하나 없었던 탓에 지하실내부는 습기가 많고 악취가 진동했다. 감금된 녀성들은 식사는 물론 대소변까지 모두 작은 공간에서 해결해야 했기에 악취가 나는것도 당연한 일이였다. 리호는 녀인들에게 밥을 날라다 줄 때마다 녀인들이 배출한 오물을 밖으로 나르군 했다. 경찰들이 처음 지하실에 모습을 드러내던 날, 자신들을 감금한 “오빠”인줄로만 알았던 녀인들은 떡하니 눈앞에 나타난 경찰들을 보자 목놓아 통곡했다. 당시 녀인들의 방에는 컴퓨터까지 버젓이 놓여있었지만 인터넷기능은 없이 다만 비디오를 감상하고 심심풀이삼아 유희를 노는 기계로만 사용되고있었다.        감금된 녀성들 단합은 커녕 질투심만 커       경찰들이 리해할수 없었던건 감금된 녀성들의 태도였다. 녀성들은 감금된후 수시로 “오빠”와 성관계를 발생해야 했지만 반항하기는 커녕 매일 “오빠”와 함께 자는 문제로 서로 질투하면서 싸우군 했다는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녀인들은 그런 생활에 물젖어갔고 리호를 “오빠” 혹은 “여보”라고 다정히 불렀다. 1년전의 어느날 밤, 감금된 두명의 녀인은 서로 “오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말다툼을 벌렸다. 그리고 리호는 그 두명중 한명과 손잡고 다른 한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그리고는 시체를 태연하게 지하실바닥에 묻었다. 그전에 이미 자기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는 리유로 한 녀인을 살해해 지하실바닥에 묻은적이 있었기에 그의 살인행각에도 녀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6명중 제일 처음 땅굴에 온 녀인은 무려 2년간 땅굴생활을 했으며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녀인은 불과 2개월전에 감금되였다고 한다. 4명의 녀인들은 구출된후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고 그중 리호와 함께 녀인을 살해했던 녀인은 구출직후 간수소에 감금되였다.        죄악의 종말       경찰에 나포된 리호는 경찰수사에 적극적으로 배합하면서 자신의 죄행을 솔직하게 탄백했다. 리호는 인터넷을 통해 라체채팅이 목돈을 벌수 있는 지름길임을 알게 되였고 몇년간의 치밀한 계획을 통해 상술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수시로 녀인들을 내세워 라체채팅을 하게 했으며 혹여 녀인들이 상대방에게 구조요청이라도 보낼가봐 늘 곁에서 감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간혹 “말 잘 듣는”녀인을 밖으로 데리고나가 매음하게 했으며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사치한 생활을 했다. 사건이 드러나게 된 그날에도 리호는 한 녀인을 끌고 매음장소로 향하던중에 리호가 방심한 틈을 타 녀인이 도주하는 바람에 죄행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였던것이다.       누구보다 이 사건에 큰 타격을 입은건 바로 리호의 안해였다. 그녀는 남편이 체포된후에도 그같이 극악무도하게 랍치, 강간, 살인까지 저지른 장본인이 바로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리호는 땅굴을 파기 시작해서부터 안해에게 다른 직장에서 “밤당직”을 서는 일을 겸해 하고있다고 둘러댔던것이다. 그 덕에 그는 밤에 집에 돌아가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노리개들인 귀여운 “녀동생”들과 어울릴수 있었다.       리호는 어떤 사람인가?       하남성 남양시 신야현 왕장진 수태자촌에 살고있는 리호의 부모는 뒤늦게야 경찰들을 통해 아들이 천인공노할 죄행을 저질렀음을 알게 되였다. 늙은 량주는 아들의 죄행에 분개해하며 차라리 피해자가족들이 쳐들어와 자신들을 때려죽였으면 훨씬 마음이 편할것 같다고 밝혔다. 량주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묵묵히 밭일에 매달리며 마을사람들의 눈을 피하고있다. 마을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솔직하고 성실했던 리호가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도저히 리해할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입대해 군인으로 지낸 9년동안 리호는 2등공 1차, 3등공 2차를 세웠으며 5차례나 “우수사병”, “우수사관기준병”, “강위련병훈련기준병”으로 당선되였고 소방대대의 무술시합에서도 번번이 앞자리를 차지할만큼 우수한 군인이였다.        현재 리호는 간수소에서 법의 엄한 징벌을 기다리고있다.        《신화넷》
72    사춘기 소년소녀의 비뚤어진 사랑 댓글:  조회:4472  추천:1  2011-11-28
      하북성 패주시에 살고있는 16살난 고중생 송우는 일반 직장인이였던 부모밑에서 금지옥엽처럼 자랐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16살의 송우가 조기련애에 맛을 들이면서 씻을수 없는 죄인으로 전락될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그녀의 비뚫어진 사랑은 4명의 남자를 구렁텅이에로 몰아갔다       2009년 9월, 송우는 우연한 기회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18살의 두춘휘를 알게 되였다. 당시 고중 3학년생이였던 두춘휘는 학교기숙사에서 생활하고있었는데 소문난 불량자였다. 두춘휘는 송우의 천진함과 순수함에 마음이 끌렸고 송우는 그런 두춘휘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패기넘치는 남자로 느껴졌다. 심지어 두춘휘의 손에 이끌려 수업시간에 뺑소니를 치고 하루종일 PC방에 가서 유희를 노는 것도 송우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주변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비밀련애를 즐겼다. 2010년 2월 12일, 두춘휘는 또한번 송우를 이끌고 PC방으로 갔다. PC방에도 그렇게 호화롭게 설계된 단칸방이 있다는걸 송우는 그날 처음 알게 되였다. 작은 방안에는 2대의 컴퓨터와 쏘파, 침대 그리고 샤와시설까지 구전했다. 단칸방에 들어선 두춘휘는 문고리를 잠근 뒤 이상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 성인비디오를 본적 있니?”       “뭐?”       “놀라긴? 어른들은 매일 하는 일인데…한번 볼래?”       송우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전에 두춘휘는 숙련된 솜씨로 인테넷검색창에 사이트주소를 써넣었다. 알마 안돼 인터넷화면에 남녀의 정사장면이 적라라하게 펼쳐졌다. 송우는 어쩔바를 모르며 얼굴을 감싸쥐였고 두춘휘는 그런 송우를 와락 껴안은 뒤 거친 숨을 내뿜었다. 그렇게 송우는 처음으로 남녀간의 “진정한 사랑”이 뭔줄을 깨닫게 되였다. 그날이후 두춘휘는 송우를 이끌고 교외의 한 편벽한 시골병원에 가서 절육기를 자궁내에 장착하는 수술을 받게 했다. 피임조치까지 완벽하게 끝낸 두 사람은 그뒤로 틈만 나면 함께 호텔, 려관, PC방을 전전하면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송우는 점차 그런 방탕한 생활에 물들어갔다.       2010년 6월, 대학시험에서 락방된 두춘휘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갔다. 고중 2학년생이 된 송우는 공부보다는 남녀간의 사랑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학급을 새로 편성하면서 그는 학교의 모범생 장자건과 같은 학급에 편입되였으며 우연히 한책상에 앉게 되였다. 장자건은 학습성적이 우수한데다가 외모까지 준수해 뭇 녀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있었다. 송우는 장자건과의 만남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모아적인 말투는 물론 자신을 무척 존중해주는 장자건과 접촉할수록 미묘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송우는 장자건이 다른 녀학생들과 웃거나 대화하는것을 보아도 질투심이 북받치고 심통이 났다. 그는 두춘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장자건에게 정식으로 사랑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2010년 10월, 송우는 일심전력으로 공부에 몰두할것이라는 핑게로 두춘휘에게 헤여질것을 요구했다. 두춘휘는 마지 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뜻대로 두춘휘와 헤여진 송우는 기다렸다는듯이 장자건에게 애정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장자건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다른 녀학생들과 똑같이 자신을 대해주는 장자건때문에 애가 탄 송우는 결국 극단적인 방법으로 장자건의 마음을 잡기로 했다. 장자건이 인터넷유희를 배우고싶어한다는것을 알게 된 송우는 넌지시 장자건에게 말했다.       “이번 주말에 함께 PC방에 가자꾸나. 내가 유희를노는 방법을 배워줄게.”       장자건은 유희를 배워주겠다는 말에 흔쾌히 허락했다. 11월 7일, 그날은 주말이였다. 하지만 그날은 또한 비극의 시작이였다. 장자건과 함께 PC방의 호화단칸방에 들어선 송우는 주저없이 안으로 문을 잠근 뒤 기다렸다는듯이 장자건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장자건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송우는 야릇한 미소를 날리며 하나 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상반신을 모두 벗어버리고 반라체가 된 송우는 어리벙벙해있는 장자건의 손을 잡아끌었다. 송우의 로골적인 유혹에 장자건은 끓어오르는 욕구를 억누르지 못한채 송우를 품에 꼭 안고 거친 숨을 내쉬였다…송우는 드디여 장자건을 자기의 소유로 할수 있게 되였다는 희열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한바탕 격정이 지나자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된 장자건은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남긴채 송우를 뿌리치고 황급히 PC방을 빠져나갔다. 송우는 장자건이 부끄러움때문에 그러는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였다. 그날이후로 장자건은 의식적으로 송우를 피해다녔다. 수업시간에도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쳐다보기가 일쑤였고 먼 발치에서 송우의 모습이 보이기만 해도 급급히 숨을 곳을 찾아헤매였다. 송우가 연유를 캐여묻자 장자건은 “그날은 정말 미안했다. 우리 열심히 공부만 하자꾸나”라고 둘러했다. 송우는 또다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장자건이 다른 친구들과 대화하는 모습만 봐도 혹시 자기의 흉을 보는건 아닐가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주위 친구들이 자기를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천박한 녀자라고 조롱하는것 같아 견딜수가 없었다. 그는 장자건이 미워났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현실을 회피하기만 하는 그의 태도가 미웠다.       “복수할테야!”       송우는 두춘휘를 떠올렸다. 두춘휘라면 자신의 복수를 도와줄수 있을것 같았다. 2010년 12월말, 송우는 두춘휘에게 전화를 했다. 헤여진지 반년만에 걸려온 옛 녀자친구의 전화에 두춘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오랜만에 호텔에서 격정을 불태웠다. 한바탕 운우지정을 나누고난 송우는 억울한듯 두춘휘의 품에 안겨들면서 하소연했다.       “저의 학교에 장자건이라는 남학생이 있는데 자꾸 저를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굴어요. 저를 릉욕하기도 했어요.”       말을 마친 송우는 없는 일까지 꾸며대면서 장자건이 자신을 릉욕했다고 한바탕 거짓말을 둘러댔다. 두춘휘가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그놈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감히 내 녀자를 넘보다니!”       두춘휘는 즉시 죽마고우인 리초와 리군을 불러왔다. 네 사람은 함께 장자건을 혼내줄 계략을 연구했다.       2011년 1월 10일, 두춘휘는 작은 소형차를 몰고 리초, 리군과 함께 학교부근에 도착했다. 오후 5시경이 되자 두춘휘는 송우에게 전화했다. 송우는 때가 되였음을 알고 마침 학교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장자건을 불러세웠다.        “할말이 있는데 나랑 함께 가자꾸나. 그러면 래일부터 다신 널 귀찮게 하지 않을게.”       잠간 생각에 잠겼던 장자건은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송우를 따라 교문을 나섰다. 교문을 나서서 200여메터쯤 걸어가자 두춘휘의 차가 보였다. 그곳에는 다니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송우와 장자건이 모습을 드러내자 두춘휘 등 세 사람은 기다렸다는듯이 차에서 내리더니 강박적으로 장자건을 차에 태웠다. 다섯 사람을 태운 차는 어둠속에서 한적한 교외를 향해 달려갔다. 얼마후 차는 인적이 드물고 나무가 빽빽이 우거진 숲가에 다달았다. 두춘휘 등 세 사람은 달려들어 장자건을 바줄로 꽁꽁 묶었다. 그통에 장자건은 옴짝달싹할수 없게 되였다. 게다가 솜으로 입까지 틀어막히는 바람에 비명소리조차 지를수 없었다. 두춘휘일행은 장자건을 땅바닥에 쓰러뜨린후 사정없이 발길질해댔다. 삽시에 장자건은 피범벅이 되였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가 감히 송우를 겁탈해? 죽고싶어 환장했지?”       두춘휘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장자건을 잘 지키라고 말한 뒤 송우와 함께 차를 몰고 어딘가로 향했다. 한참후 다시 돌아온 두 사람의 손에는 휘발유통이 들려져있었다.        “리군아, 저 녀석의 몸에 휘발유를 쏟아부어라.”       리군은 두춘휘가 장자건을 제대로 혼뜨검내려는줄 알고 시키는대로 장자건의 몸우에 휘발유를 쏟아부었다. 두춘휘가 라이타를 리초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       “리초야, 저놈의 몸뚱이에 불을 달아버려!”       리초와 리군은 놀란 나머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두춘휘를 바라보았다. 리초가 벌벌 떨면서 라이타를 켤념을 하지 않자 두춘휘는 와락 달려들어 리초의 손에서 라이타를 빼앗아냈다. 순식간에 놀라운 사태가 벌어졌다. 두춘휘가 라이타를 켜자마자 거대한 화염이 일면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송우 역시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놀라 아츠러운 비명을 질렀다. 이들의 시야에 불길에 뒤덮인채 안타깝게 몸부림을 치고있는 장자건의 애처로운 모습이 안겨들었다. 무고한 소년은 그렇게 불속에서 고통스레 생을 마감했다. 혼비백산한 네 사람은 휘발유통과 라이타를 챙긴 뒤 차에 올라 현장을 빠져나갔고 뿔뿔이 살길을 찾아 도주길에 올랐다…       이튿날, 한 농민이 우연히 숲가에서 타죽은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제보했고 일련의 검사를 통해 시체가 바로 장자건임을 밝혀냈다. 경찰들은 신속히 사건수사에 달라붙었고 얼마 안돼 송우와 두춘휘가 나란히 나포되였다. 그리고 7일후, 리초와 리군 역시 강소성경찰측에 나포되였고 1월 19일에 다시 패주경찰측에 련행되였다. 2011년 8월, 하북성 랑방시중급인민법원에서는 고의살인죄로 두춘휘를 사형, 송우를 유기도형 15년, 리군과 리초를 각각 사형 집행유예와 유기도형 10년에 언도했다.       5명의 10대소년은 한명은 죽고 한명은 사형수로, 나머지 3명 역시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사춘기소녀의 비뚤어진 사랑은 결국 뼈아픈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말았다.  《지음》
71    승냥이굴에서 호랑이굴로 들어간 녀인 댓글:  조회:5078  추천:0  2011-11-25
      “급히 신분증을 만들려고 합니다. 절 도와줄 친구가 없나요?”       2011년 4월 28일, 강소성 회안시의 소녀 방안기는 QQ를 통해 채팅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글을 남겼다. 방안기는 겨우 16살밖에 안된 소녀였지만 매끈한 체격에 발육이 유난히 빠른편이여서 나이보다 훨씬 성숙된 모습이였다. 친구를 따라 상해로 일자리 찾으러 가고싶었지만 신분증을 발급받지 못했던 방안기는 채팅친구들의 도움으로 신분증을 만들어볼 심산이였다. 잡화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들은 매일 일에 매달려살다보니 딸애에게 관심을 베풀 사이가 없었기에 방안기는 공부는 뒤전이고 아예 PC방에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2010년 6월, 방안기는 고중시험에서 락방되였다. 하지만 부모는 여전히 가게일에 바삐 돌며 딸애의 진로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방안기는 거리낌없이 PC방에 드나들며 QQ를 통해 적지 않은 친구들을 사귀였다. 그중에 팽효명이라고 부르는 25살 청년이 각별히 방안기에게 관심을 보이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매번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방안기는 인터넷을 통해 팽효명과 마음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점점 더 가까와졌다. 매일 일에만 빠져 자신을 관계하지 않는 부모와 달리 자신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다가서는 팽효명에게서 그녀는 따뜻한 사랑까지 느꼈다.        2011년 3월, 방안기의 생일이 되자 팽효명은 택배(快 )를 통해 방안기에게 커다란 꽃다발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뜻밖의 선물에 방안기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급히 신분증을 만들고싶어하자 팽효명이 선뜻 나섰다.        “나의 한 친구가 파출소에서 일하는데 3일이면 신분증을 만들수 있다고 하오. 하지만 신분증에 넣을 사진을 찍어야 하니깐 래일 만나기요.”       신분증을 만들수 있다는 말에 흥분된 방안기는 만나자는 팽효명의 요청에 두말없이 응낙했다.       5월 12일, 방안기와 팽효명은 약속된 장소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몇마디 인사말이 오간 뒤 팽효명은 방안기의 손을 끌고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는 이리저리 골목을 에돌아 교외의 한 평범한 주민집에 당도했다. 방안기가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친구가 있는 파출소로 간다고 하더니 왜 여기로 왔나요?”       “사실 그 친구의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집에 두고왔소. 잠간만 들려서 가지고가기요.”       방안기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팽효명을 따라 그의 세집에 들어섰다. 그녀가 신기한듯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고있는 사이에 팽효명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출입문을 안으로 잠궈버렸다. 그리고는 덥썩 방안기를 품에 안았다.       “왜 이래요?”       “오래전부터 안기를 좋아했소. 허락해주오.”       “안돼요. 우리는 나이차이도 많고 서로에 대해 아는것도 별로 없잖아요.”       방안기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했다. 하지만 그냥 포기할 팽효명이 아니였다. 그는 굶주린 늑대마냥 와락 달려들어 방안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팽효명은 방안기를 무자비하게 릉욕했다…       한바탕 야욕을 채우고난 팽효명은 울고있는 방안기를 품에 안으며 달래주었다.       “걱정마오. 녀자들은 첫경험을 겪어야 더 성숙해지오. 안기가 나의 녀자친구가 되여준다면 뭐든지 다 해줄거요.”       방안기는 대답 대신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한참후 팽효명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미친듯이 문을 박차고 도망쳤다. 겁에 질린 팽효명은 공안국에 갈념을 하지 않고 곧장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경찰에 제보하면 자신의 체면이 구겨질수도 있다는 우려심때문이였다. 하지만 련며칠 방안기는 혹시 임신이라도 되지 않을가 하는 걱정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컴퓨터를 마주하기도 싫고 친구들을 찾아 마음을 터놓고싶어도 그럴 용기도 나지 않았다. 방안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속만 까맣게 재가 되여갔다. 며칠후, 방안기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조심스레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임신은 어떻게 되는거예요?”       “어린 나이에 왜 그런걸 물어? 부끄럽지도 않니?”       어머니의 훈계에 화들짝 놀란 방안기는 휑하니 자리를 떴다.        며칠후, 감기에 걸려 어지럽고 구토증상까지 보이자 그녀는 더욱더 안절부절못했다. 방안기는 결국 인터넷을 통해 임신증상을 알아보기로 했다. 금방 QQ에 접속하자 한 채팅친구가 보내온 쪽지가 눈에 띄였다. 장화강이라고 부르는 22살난 남자는 뒤늦게야 방안기가 남긴 신분증을 만들고싶다는 글을 보고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전해왔던것이다. 방안기는 그간의 고민을 잊고 장화강과 대화를 시작했다. 자신을 한 회사의 보안일군이라고 소개한 장화강은 그녀에게 자신의 “영웅적 사적”에 대해 루루이 설명했다. 방안기는 그런 장화강이야말로 진정한 남자다운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장화강을 오빠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처지를 친구의 조우로 둔갑시켜 장화강에게 털어놓으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장화강이 말했다.       “임신증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것이 없지만 월경이 제때에 있기만 하면 임신이 아니라고 들었소.”       “그럼 며칠을 더 기다려봐야 알겠네요.”       방안기가 락심하고있는데 장화강이 다시 말했다.       “그런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 혹시 안기가 아니요?”       방안기는 더이상 숨길수 없음을 직감하고 결국 자신의 고충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장화강은 대화창을 통해 장미꽃그림을 보내주면서 위안했다.       “그건 안기의 탓이 아니요. 내가 만약 안기의 남자친구라면 안기를 리해해줄거요.”       장화강의 꿀발린 말에 방안기는 큰 위안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장화강이 계속하여 말했다.       “이런 일은 소문나봐야 좋을것 없소. 내가 그놈을 혼내줄게. 그걸로 화풀이하오.”       자신을 도와 분풀이를 해주겠다는 말에 방안기는 힘이 솟구쳤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튿날 약속장소에서 만났다. 장화강이 진작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건장한 체격에 남자다운 패기가 넘치는 장화강을 보는 순간 방안기는 웬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졌다. 장화강이 방안기의 손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이렇게 예쁜 녀인에게 그런 못된짓을 저지른놈이 누굴가? 내가 오늘 제대로 혼내줘야지.”       하지만 두 사람이 팽효명의 집에 도착했을 때 팽효명은 이미 이사를 간 뒤였다. 방안기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장화강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언젠가는 꼭 찾아서 혼내줄게. 걱정하지 마오. 내가 맛있는 료리를 해줄게. 우리 집에 가서 식사하기오.”       방안기는 며칠전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전에 또다시 처음 만난 남자를 따라 그의 집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에돌아 도착한 장화강의 세집은 그녀에게 더 큰 치욕을 안겨주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장화강은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아내고 겁탈한 뒤 도망치지 못하게 그녀를 꽁꽁 묶어놓았다. 그녀가 화장실에 갈 때면 화장실앞에서 감시했고 외출할 때면 창문과 출입문을 꽁꽁 잠가놓아 외부와 접촉할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저녁에 잠을 잘 때에도 손과 발을 꽁꽁 동여놓고야 시름을 놓군 했다. 방안기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였다. 매일매일 한치의 자유도 없이 얽매여 생활하고 시도 때도 없이 장화강의 수욕을 만족시켜주면서도 방안기는 마귀의 소굴을 벗어날 방도를 연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장화강의 경계심을 풀고 자유를 얻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을 깨달은 방안기는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 이렇게 된바에 우리 정식으로 련애합시다. 저도 오빠가 맘에 들어요.”       말을 마친 방안기는 팔을 걷어붙이고 방안을 깨끗이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료리를 한다, 빨래를 한다 하며 부산을 떨었다. 그날밤, 장화강이 또다시 노끈으로 그녀의 손발을 묶으려고 하자 방안기가 애교스런 목소리로 애원했다.       “저의 진심을 아직도 모르겠나요? 전 오빠를 진심으로 사랑해요. 계속 이렇게 죄인처럼 묶어놓으면 전 제대로 잠을 잘수조차 없단 말이예요.”       방안기의 뜻밖의 고백에 마음의 탕개가 풀린 장화강은 슬그머니 노끈을 버리고 그녀와 함께 자리에 누웠다. 방안기가 쿨쿨 “잠든”것을 보고서야 장화강은 비로소 시름놓고 잠에 빠져들었다. 한편 자는척하며 장화강을 안심시킨 방안기는 그가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자 살금살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뿔리 도망치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가봐 두려웠던 그녀는 장화강의 호주머니를 들춰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낸 다음 아버지에게 구조요청하는 문자메시지(短信)를 보냈다. 하지만 며칠동안 “실종”된 딸애가 어느 PC방에서 유희를 놀고있을것이라고 믿고있었던 부모는 딸애가 보낸 구조문자조차 제때에 확인하지 않았다.       5월 22일 새벽 2시경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복이 없자 방안기는 결국 용기를 내여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여나갔다. 그녀는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미친듯이 앞으로 내달렸다. 겨우 택시를 잡은 그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삼검불처럼 헝클어진 머리로 집안에 들어선 딸애를 보는 순간 부부는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뒤늦게야 딸애가 당한 조우를 알게 된 부부는 자신들의 무심함을 통탄하면서 딸의 손을 이끌고 공안국으로 향했다.        5월 23일, 장화강과 팽효명은 선후로 경찰에 나포되였다. 경찰조사에서 밝혀진데 따르면 장화강은 두번이나 철창신세를 진적 있는 석방인원이였는데 그는 “그녀를 속이기 너무 쉬워서 그랬다”고 범죄동기를 밝혔다. 팽효명과 장화강을 기다리는건 법의 엄한 징벌뿐이다.    《지음》
70    구김없는 참사랑이 가정행복을 지켜냈다 댓글:  조회:4909  추천:0  2011-11-24
                      한차례 교통사고가 아니였다면 림아청은 남편한테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것이다. 1993년 5월 9일에 림아청이 집에 들어서자 남편 류범무가 갑자기 “폭탄발언”을 했다.       “여보, 미안하오. 사실 나한테 밖에 녀자가 있소. 왕수라는 녀자인데 내 아이까지 낳았소. 이제 막 첫돌이 되여오는데 불행하게도 엄마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소. 아기는 머리를 크게 다쳐서 지금 남양시제1인민병원에 입원해있소. 렴치없는 부탁이지만 당신이 아기를 살려주오.”       그 순간 아청은 피가 거꾸로 솟는것만 같았다. 배반, 분노, 치욕… 한순간에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갑자기 남편이 무릎꿇고 애원했다.       “여보, 제발 아기를 살려주오.”       아청은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아기이름을 물어보았다.       “류동이라 부르오.”       남편은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먼저 병원으로 가보세요. 제가 인차 따라갈게요.”       남편이 떠나간후 아청은 대성통곡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남편을 만나 행복했던 지난날들이 영화필림처럼 스쳐지나갔다.       1989년에 대학을 졸업한 아청은 남양시제1병원 산부인과 의사로 취직했고 2년후에 군인 류범무와 결혼했다. 남편은 제대하자마자 장식회사를 꾸려놓고 눈코뜰새없이 바삐 보냈다. 아청도 사업때문에 분주하게 돌아쳤다. 서로 바쁜지라 그들 부부는 잠시 아기를 갖지 않기로 했다.       3년뒤에 아청은 산부인과 부주임으로 승급했고 범무는 잘 나가는 사장이 되였다. 그 기간에 범무는 아기를 가지자고 여러번이나 아청을 설득했다. 그러나 아청은 승급할 기회를 놓치고싶지 않다며 번마다 거절했다.       1991년초에 아청은 반년동안 북경으로 연수를 떠났다. 그런데 그녀가 어찌 상상이나 했으랴? 집을 비운 반년사이 남편이 밖에 녀인을 두고 아이까지 보게 되였을줄을…       사실 범무의 정부 왕수는 그와 어릴적에 헤여졌던 한고향친구였다. 1991년초에 범무와 왕수는 우연하게 길에서 마주쳤다. 범무는 리혼한 왕수가 홀로 힘들게 사는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그녀를 회사직원으로 채용했다. 회사에서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자 범무는 왕수한테 빠져버렸다.       혼외련애에 빠진 4개월후에 범무는 안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왕수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 바로 그때 왕수가 임신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왕수가 자신의 아기를 가졌다는 말에 범무는 격동을 금치 못했다. 곧 애아빠가 될수 있다는 황홀감에 빠져버린 범무는 아기의 출생을 막지 않았다. 1992년 5월 12일에 왕수는 건강한 남자아기를 낳았고 이름을 류동이라 지었다. 범무는 친구한테 부탁해 류동을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그때부터 “두집살림”을 차린 범무는 아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와지자 렴치불구하고 의사인 안해한테 도움을 청했던것이다.       아청은 남편의 배반에 치가 떨렸지만 의사의 책임을 미룰수 없어 병원으로 부랴부랴 달려가보았다. 왕수는 이미 숨을 거두었고 온몸에 붕대를 감은 아기만이 병실침대에 누워있었다. 류동임이 틀림없었다. 아청의 친구이자 류동의 주치의사인 당주임은 “아기가 속히 급성뇌수종과 두개골안의 어혈제거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교통사고를 낸 운전사가 6만원을 내놓자 류동은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이튿날에 류동은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16만원의 수술비가 수요되고 속히 수술을 받지 않을 경우 식물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것이였다.       사실을 접한 범무는 안절부절못했다. 거액의 돈을 마련할 뾰족한 방법이 없었던것이다. 사생아를 살리겠다고 안해한테 손을 내밀수도 없었다. 그때 안해가 은행카드를 내밀면서 말했다.       “제가 류동한테 재수술을 해달라고 당주임한테 부탁했어요. 이 은행카드에 10만원이 들어있어요. 이것으로 발등의 불부터 끄세요…”       범무는 안해의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재수술을 받은 류동은 혼미상태에 빠졌다가 7일만에 간신히 눈을 떴다.       “어~엄마!”       류동은 아청을 엄마인줄로 착각했다.       (이것이 아이의 본능이란 말인가?)       아청은 류동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       “류동아, 엄마가 여기 있어. 무서워말거라.”       그날 저녁에 범무는 무릎꿇고 용서를 빈후 아기부양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아기를 남에게 주든 부양하든 모두 아청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립장이였다.       아청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남편을 미워할수도 없고 용서할수도 없어 온밤을 앉아서 지새우며 고민했다. 아직도 남편을 깊이 사랑하고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녀는 가정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넓은 아량으로 남편의 사생아까지 부양할 큰 결심을 내렸다.       이튿날에 아청은 류동을 부양하자고 말했다. 범무는 눈물을 흘리면서 연신 “미안하오, 고맙소!”라는 말만 반복했다.       1993년 7월에 류동이 퇴원하자 아청은 본격적으로 “엄마”노릇을 시작했다. 그녀의 살뜰하고 따뜻한 보살핌속에서 류동은 몰라보게 커갔다. 범무는 “무던한” 안해가 고마와 더욱 악착같이 장사에 매달렸다. 류동이 3살때 범무는 이미 부자행렬에 들어섰다.       1998년 4월에 아청은 건강한 딸애를 출산했고 이름을 류요라고 지었다. 아청은 딸애보다 류동한테 더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엄마의 과분한 “사랑”이 화가 되였는지 초중 3학년이 된 류동은 말썽을 피우는 “골목대장”이 되였다. 인터넷유희에 중독되여 수업을 빼먹지 않으면 아이들을 때려놓아 거액의 벌금을 하기도 했다. 2007년의 겨울방학에는 학교절도사건에 가담해 열흘동안이나 치안구류를 했다.       아청은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범죄의 길에 들어설가봐 더럭 겁이 났다. 하여 남편과 상의한후 류동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냈다. 어느날인가 아청은 류동을 조용히 불렀다.       “아빠는 회사가 파산되여 외지로 떠났다. 엄마도 직장을 잃었다. 집과 차는 모두 압수당했다. 래일 우린 세집으로 이사가야 한다.”       뜻밖의 소식에 류동은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이튿날에 아청은 허름한 집으로 이사했다. 그후 학잡비가 비싼 학교에 다니던 류동을 보통중학교로 전학시켰고 밥상도 소박하게 차렸다. 류동과 류요한테 주는 소비돈도 절반으로 확 줄였다. 순식간에 달라진 환경에 애들은 적응하기 무척 힘들어했다. 그러나 아청은 “연기”를 멈출수 없었다.       사실 아청은 단위에 1년동안 휴가를 냈고 범무는 딱친구한테 회사를 맡긴채 외지로 출장을 떠났던것이다. 그녀는 부러움없이 자란 류동이가 고생을 겪어보면 철이 들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아청은 실감나는 “연기”를 펼치기 위해 친구한테 부탁하여 슈퍼마켓의 판매원으로 취직했다. 8시부터 저녁 10까지 팽이처럼 돌아치는 바람에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에 류동은 어머니가 신도 벗지 못한채 쏘파에서 자고있는것을 보았다. 류동은 어머니 신을 벗겨주다가 어머니의 발이 물집투성이에 피멍이 든것을 발견했다. 순간 류동은 눈굽이 젖어들었다. 그는 힘들게 돈을 버는 어머니가 불쌍해 처음으로 국수를 삶아 어머니께 대접했다. 국수를 먹는 아청의 눈에는 맑은 이슬이 맺혀졌다.       2008년의 “5.1”절 휴가기간에 아청은 류동을 데리고 귀주의 농촌으로 생활체험을 떠났다. 동갑내기 애들이 힘들게 농사일을 하는것을 본 류동은 하루밤사이에 철이 든것만 같았다. 그후부터 그는 집안일도 거들어주고 공부에도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때라싶어 아청은 아들에 대한 고무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자신심을 되찾은 류동은 2008년 여름에 우수한 성적으로 남양고중에 입학했다. 입학통지서를 받던 날에 아청은 “연기”의 진실을 털어놓았다. 다시 고급승용차를 타고 집에 나타난 아버지를 본 류동은 “그동안 속을 썩여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범무는 “엄마한테 감사드려라. 엄마는 너와 날 위해 많은것을 희생했어”라고 말했다.       2011년 6월에 류동은 화중과학기술대학에 입학했다. 학교로 떠나기전날에 범무는 아들한테 아청이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류동은 놀라서 한참을 멍해있었다.       그제야 범무는 황당했던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진실을 듣고난 류동은 아청을 붙잡고 흐느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제 존재가 어머니한테 큰 상처가 되였다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이런 저를 친자식처럼 키워준 어머니는 제 친어머니입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아들의 말에 아청은 눈물범벅이 되였다.       남편의 사생아를 위해 흘린 그녀의 눈물은 그 얼마였던가? 쏟은 정성 또한 그 얼마였던가? 그녀의 넓은 흉금이 가정을 지켜냈고 아낌없는 정성이 행복을 만들어냈다. 사랑은 행복을 지켜주는 “명약”임에 틀림없다.    《지음》
69    사랑의 힘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련인 댓글:  조회:4945  추천:0  2011-08-11
1987년에 사천성 남부현에서 태여난 왕봉은 어려서부터 학습성적이 우수해 주변사람들의 칭찬을 들었다. 고중에 입학한후에도 왕봉은 전 학년에서 1등을 두번이나 차지해 학교에서 유력한 대학입시장원후보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중 2학년때부터 인터넷유희에 빠지기 시작한 왕봉은 고중 3학년때에는 아예 학교수업에도 참가하지 않고 늘 PC방에만 붙어있었다. 그바람에 학습성적은 일락천장이 되고말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말리기 위해 학교부근에 세집을 맡아놓고 아침마다 그를 학교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러자 왕봉은 수업시간에 뺑소니를 쳐서 PC방으로 달려갔고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또 아들이 PC방을 다니면서 나쁜 학생들의 꼬임수에 들가봐 걱정되여 집에 컴퓨터를 사놓았다. 그랬더니 왕봉은 하루종일 유희에 빠져 학교에 가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왕봉한테 제발 유희에서 손을 떼고 학교로 가라고 애원도 해보고 설득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미 유희에 중독된 왕봉은 어머니의 권고를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2005년 12월에 학교측에서는 왕봉한테 휴학통지서를 보내왔다. 화가 난 어머니는 왕봉을 홀로 남겨놓고 집에서 나갔다. 어머니가 집문을 나서자마자 왕봉은 또 유희을 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에 왕봉은 인터넷을 뒤지다가 아이디가 “방초”라는 녀자애가 만들어놓은 블로그(博客)가 개성이 있는것을 발견했다. 평소부터 홈페지( 站)제작에 흥취를 갖고있던 왕봉은 즉시 마우스(鼠 )를 누르고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가보았다. 순식간에 마우스가 한마리의 날아다니는 올챙이로 변했다. 올챙이가 마우스를 따라 움직이자 왕봉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블로그에 “당신의 블로그는 참 독특하네요. 저한테도 이런 동영상을 만드는 법을 좀 가르쳐주면 안될가요?”라는 말을 남겼다. 반시간후에 그 녀자애는 왕봉의 QQ에 들어와서 “사실 제 블로그는 제가 만든것이 아니라 친구가 만들어준거예요”라고 말했다. 왕봉은 꽤 실망스러웠지만 아이디를 “방초”라고 달아놓은 녀자애도 독특한 개성을 지녔을것이라고 생각되여 그녀와 채팅을 시작했다. 호호라고 부르는 그 녀자애는 제남시에서 태여났고 왕봉과 동갑내기였다. 중학교때에 학교장거리운동선수로 활약했던 호호는 2002년 11월초에 학교의 추천으로 산동성체육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공교롭게도 이때 호호는 홍반성낭창에 급성척수막염까지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중추신경이 손상을 받은 호호는 일주일동안이나 혼미상태에 빠졌다가 구급치료를 받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호호는 그만 반신불수가 되고말았다. 그후에 호호는 2년동안이나 산동성교통병원에서 강복훈련치료를 받다가 2005년 10월 8일에 퇴원하여 고향인 제남시로 돌아갔다. 낮에 부모님들이 출근하면 호호는 홀로 침대에 누워 책을 보지 않으면 컴퓨터를 켜고 자신의 블로그를 둘러보군 했다. 왕봉은 어린 나이에 반신불수가 된 호호의 기막힌 처지를 알고나서 그녀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고독한 호호의 채팅친구가 되여주겠노라고 자진해나섰다. 왜 학교를 다니지 않는가는 호호의 물음에 왕봉은 자신도 아파서휴학하고있는중이라고 둘러댔다. 그후 왕봉은 날마다 호호와 채팅을 했고 유희을 노는 시간외에는 인터넷에서 홈페지제작기술을 자습했다. 눈깜짝할사이에 2006년 음력설이 다가왔다. 이때에야 호호는 왕봉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진짜원인을 알게 되였다. 호호는 공부할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학업에 열중하지 않는 왕봉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호호는 왕봉을 다시 학교에 돌아갈수 있게 자신이 꼭 도와주리라 속다짐했다. 2006년 2월의 어느날에 호호는 왕봉과 음성채팅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 왕봉씨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어요. 전 학교에 다니고싶어도 못다니는데 왕봉씨처럼 총명한 사람이 왜 유희에 빠져서 전도를 망치나요? 유희에 중독되여 학업을 포기하는 왕봉씨를 보면서 부모님들이 얼마나 속상하셨겠어요? 부모의 마음은 항상 자식과 련결되여있는거예요. 이젠 정신을 차리세요.” “…” 호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예전에 전 며칠동안이나 혼미상태에서 깨여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인가 간호원이 저한테 주사침을 찌르는것을 어렴풋하게 느낄수 있었어요. 바로 그때 의사선생님은 아버지한테 제가 다시 깨여나지 못할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거예요. 전 깨여났다고 말하고싶었지만 표현할수 없었어요. 그때 아버지는 제귀에 대고 만약 제가 죽으면 아버지도 자살할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순간에 전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제가 꼭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어요. 자식과 부모는 이렇게 항상 함께인거예요. 왕봉씨도 더 늦기전에 부모님한테 사과를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세요.” 그녀의 말을 들던 왕봉은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직껏 자신때문에 속을 태웠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모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온저녁 뒤치락거리면서 잠을 못이루던 왕봉은 드디여 이튿날에 다시 학교로 돌아갈 큰 결심을 내렸다. 학교측에서도 유희에 중독되였던 학생이 새출발을 결심한것은 좋은 일이라면서 환영을 표시했다. 다음날부터 왕봉은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후에 왕봉은 스스로 유희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여가시간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는 정신을 공부에만 몰두하면서 자신한테 잡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또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를 보면 유희을 하고싶어질가봐 컴퓨터를 팔아버렸다. 그리고 주말이면 핸드폰으로 호호한테 메시지(信息)를 보내여 자신의 상황을 알렸다. 한동안의 노력끝에 왕봉은 점차 유희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였다. 2006년 6월에 왕봉은 호호의 응원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대학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두달후에 왕봉은 사천대학소프트웨어( 件)공정학원의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입학통지를 받은 날에 왕봉은 너무도 기뻐서 호호한테 “이 모든것은 다 호호의 덕분이요. 정말 감사하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호호는 내 정신적기둥이요. 내 녀자친구가 되여주오”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호호는 반신불수인 자신이 당당한 대학생이 된 왕봉과 짝이 기운다고 생각되여 단호하게 거절했다. 대학생이 된 왕봉은 공부에 눈코뜰새없이 바빴지만 날마다 호호한테 안부의 전화를 걸어왔다. 호호가 장기간 병치료를 받은 까닭에 그녀의 집안형편은 더 말할나위가 없이 가난했다. 호호는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고싶었다. 이때 왕봉은 호호한테 한 인터넷상점의 업무원일을 추천해주었다. 주요하게 인터넷에서 련락실무와 물품운송을 책임지는 일이였다. 덕분에 호호는 자체로 돈을 벌수 있었다. 실무에 점점 능숙해진 호호는 또다른 인터넷쇼핑몰( 上 物)의 업무원일까지 겸해서 했다. 수입도 날따가 높아져 부모님의 경제적부담을 덜어주었다. 2008년 8월에 왕봉은 방학동안에 가정교사일을 하여 모은 돈을 가지고 호호를 만나러 제남시로 떠났다. 8월 9일 아침 6시경에 왕봉과 호호는 처음으로 만나보게 되였다. 사실 호호는 왕봉이가 자신을 직접 보고 실망하여 등이라도 돌릴가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왕봉은 호호를 보자마자 너무도 반가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날 저녁에 왕봉은 호호네 집부근의 려관에 투숙했다. 이튿날에 왕봉은 호호를 휠체어( 椅)에 앉히고 백화상점도 구경하고 공원을 산보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또 연을 사다가 광장에서 호호와 함께 연놀이를 했다. 그날 저녁에 왕봉은 다시 한번 호호한테 “내 녀자친구가 되여주오. 난 이미 오래전부터 호호를 좋아했소. 호호가 반신불수라도 난 상관없소. 나한테 기회를 주오. 평생 호호를 잘 보살펴주겠소”라고 고백했다. 순간 호호는 눈물을 흘리면서 와락 왕봉의 품에 안겼다. 이때 남자친구의 넓은 품에 안긴 호호는 꼭 사랑하는 사람한테 짐은 되지 않으리라고 속다짐했다. 그래서 이튿날부터 휠체어에서 내려오는 련습을 했다. 얼마후에 왕봉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자 호호는 본격적으로 재활훈련을 시작했다. 한동안 진땀을 빼며 휠체어에서 내려오는 련습을 해보았지만 아무런 감각도 없는 다리는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호호는 이를 악물고 계속 훈련을 견지했다. 그러던 어느날에 호호는 훈련하다가 부주의로 땅바닥에 넘어졌다. 그 순간에 오른쪽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오는것이였다. 6년동안이나 감각이 없었던 다리에 마침내 반응이 오기 시작한것이였다. 호호는 너무도 기뻐서 당장에서 전화를 걸어 왕봉한테 이 사실을 알렸다. 이튿날부터 호호는 훈련강도를 더 높였다. 2009년 방학에 왕봉도 녀자친구한테 달려와 날마다 몇시간씩 팔다리를 안마해주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2009년 8월중순에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호호는 쌍지팽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천천히 발걸음을 뗄수 있었다. 무한한 사랑의 힘이 기적을 만들어낸것이였다. 2010년 5월에 호호는 지팽이를 짚고 자체로 길을 걸을수 있게 되였다. 2010년 7월에 왕봉은 대학교를 졸업한후 항주시의 한 회사에 들어가 기술일군으로 사업했다. 호호도 남자친구를 따라 항주시로 떠났다. 11월 17일에 호호는 자체로 인터넷상점을 개업했다. 왕봉과 호호는 2011년 3월말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했다.                              《지음》  
68    유복자를 업고 고소길에 오른 녀인 댓글:  조회:4985  추천:0  2011-08-09
 2008년11월의 어느날에 산동성 제남시의 한 진에 아기를 업은 녀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조소녕이라고 하는데 그해26살이고 광동성 청원시 주심진에 살고있었다. 그녀가 업은 아이는 류치백인데 태여난지 몇개월밖에 안되였다. 그녀는 사처에 수소문해서 개체업주인 부립정을 찾았다. 그녀는 한 마음씨 좋은 사람의 도움으로 립정을 만나자 다짜고짜로 부양비21만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부립정은 낯도 코도 모르는 녀인이 본적도 없는 아이를 업고와서 돈을 요구하자 일시 멍해졌다. “난 당신을 모르오.  본적도 없는 아이를 데리고와서 부양비를 내라니? 당신이 사람을 잘못 찾아오지 않았소?” “제가 왜서 천리밖의 광동성에서 아이를 업고 여기까지 왔겠어요. 바로 당신한테서 아이의 부양비를 받기 위해서예요.” 주위사람들은 부립정이 어느새 사생아를 만들었다고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부립정은 급히 변명했다. “난 광동성으로 한번도 간적이 없는데 무슨 말을 하는거요?” “저도 당신을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고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왜서 나한테21만원이나 되는 부양비를 요구하는거요? 이 아이와 내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거요?” “당신은 류검천을 아시나요?” 류검천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부립정은 누군가 몽둥이로 내리치는듯 머리속에서 “윙” 소리가 났다. 몇달전에 있었던 악몽같은 사건이 그의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났다. 2008년3월17일에 친구를 공항에 바래다주기 위해 부립정은 승용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비행기시간이 급하기에 부립정은 속력을 냈다. 저녁6시가 되였을 때 그는 앞에 트럭 한대가 서서 차수리를 하고있는것을 보았다. 처음에 그는 앞에 차가 서있는지 아니면 앞으로 가고있는지 똑똑히 몰랐다. 나중에 차가 서있는것을 발견하고 방향을 돌리려고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차가 부딪친후 그는 혼미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몰랐다. 병원에 실려간 그는 구급을 거쳐 생명을 구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깨여났을 때는 눈앞에2명의 교통경찰이 나타나 길에서 트럭을 수리하고있던 수리공이 그가 모는 승용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알려주었다. 사망자는 바로 류검천인데 이번 사고에서 부립정은 전부의 책임을 져야 했다. 교통경찰은 그를 보고 사망자가족한테23만5000원의 손해배상비용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립정은 비록 부유하지는 못했지만 자책감으로 하여 사처로 뛰여다니며 자금을 마련하여 사망자가족인 류검천의 부친과 큰 형님에게 전부의 손해배상비용을 물어주었다. 그후 부립정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 박혀있으면서 악몽이 잊혀지기만 기다렸다. 그러다가 최근에 마음의 평정을 찾고 새롭게 출발하려고 했는데 한 낮선 녀인이 나타나서 사망자의 이름을 외우며 부양비를 내놓으라고 했던것이다. 더욱 놀라운것은 부립정이 아이의 아버지를 죽였기때문에 아이의 부양비를 내야 한다는것이였다. 아이의 아버지가 바로 류검천이라고 했다. 부립정은 류검천에게 안해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번 사고를 처리했던 교통경찰 추민도 류검천에게 아버지와 형제자매외에는 안해가 있다는 정황을 사망자가족한테서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제는 이미 사고처리를 마무리했는데 난데없는 사망자의 안해 조소녕이 나타나서 부립정에게 부양비를 요구하고 또 교통경찰에 사고손해비용을 다시 인정해줄것을 요구해나섰던것이다. 교통경찰 추민은 이 일이 매우 괴상하게 느껴졌다. 조소녕이 왜서 사고처리가 끝나고 사망자를 화장까지 한 몇달후에야 나타났는가? 사망자 류검천은 미혼임에 틀림없는데 어디서 안해가 있고 아이까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런 의혹을 제기하자 조소녕이 추민앞에 결혼등록증을 내밀었다. 추민은 어리둥절해졌다. 이미 결혼하였다면 왜서 사망자가족에서 며느리가 있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도 않았겠는가? 추민은 그녀의 말을 경솔히 믿어서도 안되고 또 경솔히 부인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결혼등록증을 자세히 살펴본 추민은 두 사람의 사진형태와 위치가 부동한것을 발견하였다. 결혼등록증을 발급한 기관인 광동성 청원시 주심진정부에 련계하여 알아보니 결혼등록증은 가짜였다. 진짜결혼등록증은 응당 《청원시 주심진사회사무판공실》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조소녕의 결혼등록증엔 《청원시 주심진인민정부》도장을 박았던것이다. 결혼등록증이 가짜라면 조소녕이 사기치려고 한것이란 말인가? 교통경찰측은 조소녕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소녕은 외지에 나가 일할 때 류검천과 알게 되여 사랑하게 되였는데 동거한지 거의2년이 된다고 했다. 류검천이 사고를 당했을 때 그녀는 이미 임신했다고 했다. 가짜결혼등록증을 만든것은 동거관계가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배상비용을 받지 못할가봐 저지른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에서 거짓을 찾아볼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왜서 몇달후에 나타났을가? 사고당시 그녀는 어디에 있었을가? 조소녕은 친정이 호남성 마양에 있는데 그 당시 임신하게 되자 친정으로 갔던것이다. 그리고 류검천이 사고를 당한 몇달후에야 이 악몽같은 사실을 알게 되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는 출산날자가 눈앞에 다가와서 슬픔을 참고 친정에 눌러있을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이가 태여나 한달이 지나자 아이의 장래생활이 근심스러워 배상비용을 요구할 결심을 했다는것이다. 그렇다면 부립정이 이미23만5000원을 사망자가족에 배상해주었는데 조소녕이 이 일을 모른단 말인가? 류검천의 부친은 자칭 류검천의 동거녀라는 이 녀자를 어떻게 생각할가? 류검천의 아버지 류덕상은 아들의 생전에 동거녀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조소녕의 아들을 손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류검천의 둘째형 류지홍은 아이가100%로 자기의 동생 류검천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아이의 생김생김이 류검천의 어릴 때와 너무도 똑같는데 왜서 진짜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뿐만아니라 이웃들도 아이가 류검천을 딱 닮았다면서 진짜가 틀림없다고 했다. 이웃들은 조소녕과 류검천이 장기적으로 함께 다니는것을 보았다고 했다. 한 이웃은 류검천과 조소녕이 광동에서1년남짓이 함께 살았는데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을뿐이지 부부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였다. 이웃들이 다 알고있는데 왜 류검천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있었을가? 이에 류지홍은 자신의 아버지가 손자를 인정하지 않는것은 돈때문이라고 했다. 류검천의 부친 류덕상은 배상금23만5000원을 모두 가졌다. 조소녕이 그 돈을 나눌것을 요구했으나 류덕상은 동의하지 않았다. 조소녕은 류덕상을 법에 고소했다. 후에 법원에서 조해하여 류덕상은 조소녕에게4만원을 주었다. 아이가 진짜로 사망자 류검천의 유복자라면 류검천을 사망에 이르게 한 부립정이 응당 아이의 부양비를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아이가 진짜로 류검천의 아이인가 하는것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조소녕이 임신기간에 했던 병원의 B초검사보고단을 내놓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임신했었다는 증거는 되지만 배속의 아기가 류검천의 아이란 증거는 될수 없었다. 그 아이는 다른 남자의 아이일수도 있었기때문이다. 조소녕은 더 유력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관은 아이가 류검천의 아이인가 하는것을 판단하는 방법은 오직2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하나는 두 사람의 혼인이 법적보호를 받을수 있는 결혼등록증이고 다른 하나는DNA친자감정을 하는것이다. 조소녕의 경우 결혼등록증을 내지 않았으니 오직 친자감정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사실 이 방법에 대해 조소녕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법원에 친자감정을 해줄것을 요구했을 때 법의는 류검천의 유체는 이미 화장하고 유골밖에 남지 않은것을 발견했다. 법의는 현재의 과학기술수준으로는 골회로 친자감정을 할수 없다고 했다. 법의는 류검천의 사고가 중대한 교통사고이기때문에 사망자의 머리카락이나 혈액을 남겨둔것이 있으리란 일루의 희망을 품고 당시 사고처리를 담당했던 교통경찰 추민과 련계했다. 그러나 추민은 사망자가족에서 요구하지 않았기에 그런 물건을 남겨두지 않았다고 했다. 2010년9월에 산동성 제남시 력성구인민법원에서는 공개법정을 열고 이 사건을 처리했다. 법원에서는 법률의 규정에 근거하여 원고 류치백이 류검천과 부자관계라는것을 증명하려면 반드시 조소녕과 류검천이 부부관계라는것을 증명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친자감정을 통하여 확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원고측에서 이 방면의 증거를 제공할수 없으니 응당 증거를 내놓지 못한 후과를 책임져야 한다고 인정하고 원고 조소영의 상소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조소녕의 아들 류치백이 류검천의 친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많다. 하지만 법률의 규정은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기때문에 방법이 없는것이다. 조소녕은 당시 결혼등록증을 내지 않은것을 몹시 후회했다. 결혼등록증만 있었더라면 아이의 부양비를 받는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해도 쓸데없는 일이 되고말았다. 《법제일보》    
67    자그마한 장난으로 인한 비극 댓글:  조회:5390  추천:0  2011-08-04
하남성 초작시의 한 부동산총재의 아들로 태여난 왕가화와 왕가준은 평소에 아버지의 장사를 도와주는 외에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었다. 형제간의 정이 매우 깊었기때문에 왕가화는 동생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2008년 9월초에 왕가준은 인터넷유희를 놀다가 초작시의 모 학교 예술전업반에 다니는 녀학생 장가려를 알게 되였다. 그들은 유희에서 “련인”으로 되여 “려행”을 하면서 함께 꽃도 키우고 과일도 가꾸었다. 그후 QQ로 채팅을 하면서 더욱 친숙해진 그들은 국경절 오전 10시에 장가려가 다니는 학교의 문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상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있었다. 이때 왕가준은 18살이고 왕가화는 20살이였다. 왕가준은 벌써부터 련애를 하면서 녀자친구에게 단속을 받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형더러 대신 가서 장가려를 만나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왕가화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 대신 가는건 괜찮지만 류정이가 오해하면 큰일이야.” 류정은 왕가화의 녀자친구였다. 그들은 고중 2학년때부터 련애를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류정은 정주의 한 대학 1학년에 다니고있었다. 형이 망설이는것을 본 왕가준은 형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정말로 만나서 사귀라는것이 아니라 유희처럼 놀아보라는거요. 그리고 류정이도 이곳에 없는데 한번 만나서 장가려가 무슨 말을 하는가 들어보기요.” 이리하여 그들 형제는 2008년 10월 1일 오전 10시에 약속한 지점으로 가서 장가려를 만났다. 키가 크고 영준하게 생긴데다가 시체옷까지 차려입은 왕가화는 가을해빛보다 더 밝게 빛나서 학교문으로 출입하는 녀학생들이 다시 돌아보군 했다. 당시 15살인 장가려는 상상속의 백마왕자가 눈앞에 나타나자 기쁨으로 가슴이 활랑거렸다. 왕가화가 곁에 있는 왕가준을 동생이라고 소개해주었지만 이미 왕가화한테 반해버린 그녀는 진짜 인터넷련인인 왕가준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왕가화의 팔에 매달려 참새처럼 이말 저말 늘여놓으며 재잘거렸다. 주로 유희를 놀 때의 말을 했는데 그녀와 함께 유희를 놀아보지 않은 왕가화는 긴장하여 모르는것도 아는척 “응, 응”하고 짧게 대답만 했다. 저만침 떨어져서 걸으면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있던 왕가준은 자신이 꾸민 못된 장난에 도취되여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그날 점심에 왕씨형제는 학교부근의 고급술집에 한상을 크게 차려놓고 장가려의 기숙사자매들을 모두 청했다. 술상에서 장가려는 왕가화의 손을 잡고 뽐내면서 모두에게 “나의 남자친구야”하고 소개했다. 장가려가 진짜로 나오자 난처해난 왕가화는 곁에 앉은 동생에게 귀속말로 “사실대로 말할가”하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재미있는 연극이 갓 시작되였다고 생각한 왕가준은 웃으면서 “두려울게 뭐요? 재미있는 일인데 뭘”하고 말했다. 점심식사가 끝난후 그들은 노래방으로 갔다. 왕가화가 노래도 가수처럼 잘 부르는것을 본 장가려는 그한테 완전히 빠져버렸다. 왕가화도 예쁘게 생긴 소녀와 잠시 함께 노는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가려가 매일 전화를 하면서 만나자고 하는 바람에 왕가화는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남자친구로 생각할가봐 급해났다. 어느날, 그는 동생을 보고 말했다. “장가려가 날 너로 오해하고 자꾸만 만나자고 한다. 주말에 류정이가 오겠다고 전화가 왔는데 장가려가 자꾸만 시끄럽게 굴면 큰이야.” 왕가준도 장난때문에 형의 녀자친구가 오해하면 큰일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는 QQ에 접속하여 “가려야, 미안해. 사실 네가 만난건 나의 형이야. 그때 함께 갔던 그 동생이 바로 나야. 장난을 한거니깐 네가 마음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련계해”라는 내용의 글을 남겨놓았다. 그런데 그 글을 본 장가려는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감사해. 네가 그렇게 훌륭한 형을 나의 남자친구로 소개해줘서…너의 형한테 전해줘. 내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한다고. 그리고 너의 형도 나를 사랑하고 나를 받아들일거라고 난 믿는다”고 회답했다. 그리고 이튿날에 전화를 걸어 왕가화의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왕가화는 하는수없이 커피점에서 그녀를 만났다. “내가 가준의 형인걸 알면 이제부터 련계하지 마. 가준이가 널 오해하게 했으니 미안해.” 왕가화가 이렇게 사과했지만 장가려는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난 가준이가 아니라 오빠를 사랑해요. 오빠도 내가 싫지 않죠?” 왕가화는 장가려의 자존심이 상할가봐 단도직입적으로 싫다고 할수 없었다. “그런건 아니지만 일이 이렇게 되는건 좋잖아.” 그런데 그 말이 일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장가려는 너무 기뻐서 방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니깐 더욱 좋잖아요. 오빠는 내가 제일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남자예요. 지금부터 정식으로 나의 남자친구로 돼주세요!” 왕가화는 단마디로 거절할수 없어 “아니, 아니”하며 머뭇거렸다. 장가려는 계속 웃으면서 “오빠가 지금은 날 좋아하지 않아도 앞으로는 꼭 날 좋아하게 될거예요. 내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테니깐요”라고 말했다. 그후부터 장가려는 백마왕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 왕가화가 스키타기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은 그녀는 수업시간에 도망쳐서 이틀동안이나 스키타기를 배우느라고 넘어져서 상하기까지 했다. 혼자서 스키를 탈수 있게 되자 장가려는 왕가화한테 전화를 걸어 함께 스키를 타러 가자고 청했다. 왕가화는 어물거리다가 스키탈줄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장가려는 화를 내지 않고 이튿날에는 목도리까지 사서 왕가화한테 선물했다. 그날 저녁에 왕가화는 목도리를 동생한테 던져주면서 장가려가 그냥 달라붙는다고 하면서 빨리 떼여놓으라고 했다. 왕가준이 QQ를 통해 “나의 형에겐 정주대학에 다니는 녀자친구가 있는데 서로 몹시 사랑해. 그러니깐 네가 나의 형과 만난것을 가상적인 유희를 놀았다고 생각하고 이젠 제발 그만두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가려는 이튿날에 왕가화에게 “오빠처럼 훌륭한 남자에게 녀자친구가 있는건 정상적인 일이예요. 오히려 녀자친구가 없다면 이상한 일이죠. 이전에 난 오빠의 핸드폰을 몰래 훔쳐보고 오빠한테 녀자친구가 있다는걸 알았어요. 이름이 류정이죠? 난 류정의 전화번호도 기억해두었어요. 난 류정이와 경쟁하여 오빠를 빼앗아올거야”라는 내용의 핸드폰메시지(短信)를 보냈다. 그런 다음 류정한테 전화를 걸어 “가화오빠는 지금부터 나의 남자친구예요. 당신은 이후부터 다시는 가화오빠를 만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런 전화를 받은 류정은 화가 나서 그번 주말에 정주에서 기차를 타고 초작시로 찾아왔다. 동생 왕가준까지 나서서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류정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왕가화는 하는수없이 류정과 동생을 데리고 직접 장가려의 학교로 찾아가서 류정을 가리키면서 “나에게는 녀자친구가 있으니 이후부터 다시는 치근거리지 마”라고 말했다. 장가려는 숱한 동창생들앞에서 거절을 당하자 자존심이 상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난 그녀는 꼭 복수하겠다고 별렀다. 2008년 10월 28일에 장가려는 몇몇 친구들을 불러가지고 몰래 왕가화의 뒤를 미행했다. 그날에 왕가화는 류정과 동생 왕가준을 데리고 체육관부근으로 놀러갔다. 장가려는 왕가화와 왕가준이 화장실로 들어가고 류정이 혼자서 기다리고있는것을 보았다. 좋은 기회가 왔다고 여긴 장가려는 친구들에게 눈짓을 했다. 몇몇 녀학생들은 와락 달려들어 류정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장가려가 숱한 녀자애들을 데리고와서 류정을 때리는것을 본 왕가화와 왕가준은 쏜살같이 달려갔다. 왕가준은 화가 나서 달려나가면서 몇몇 녀자애들에게 주먹을 안겼다. 왕가화는 녀자친구한테 달려가서 많이 맞았는가고 물어보았다. 류정은 노란머리를 염색한 녀자애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계집애가 먼저 저의 얼굴을 여덟번이나 후려쳤어요. 그 다음에 다른 애들이…” 왕가화는 화가 나서 노란머리를 염색한 녀자애의 귀쌈을 여덟번이나 후려쳤다. 이 노란머리를 염색한 녀자애는 장가려의 친구 엄리리였다. 엄리리는 매를 맞자 화가 나서 전화로 남자친구 왕준을 불러왔다. 왕준은 자기의 친구 류군을 데리고와서 왕씨형제와 싸웠다. 왕준은 휴대하고 다니던 칼로 왕가준의 가슴과 허리를 마구 찔러놓고 왕가화와 싸우고있는 류군을 도와 왕가화의 가슴도 찔러놓았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경찰에 제보전화를 걸자 장가려, 엄리리, 왕준, 류군과 다른 녀자애들은 황망히 도망쳐버렸다. 왕가화와 왕가준은 제보전화를 받고 달려온 초작시공안국 산양분국의 경찰들에 의해 병원에 호송되였다. 하지만 동생 왕가준은 이미 사망되였고 형 왕가화만이 내장이 상하지 않았기때문에 13곳의 상처를 봉합하고 살아날수 있었다. 2010년 6월 13일에 초작시인민법원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장가려는 사건당시 만 16살이 되지 않았기때문에 형사책임을 면하게 되였고 함께 류정을 구타한 자매들은 각각 1~2년의 유기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엄리리는 고의상해죄로 유기형 8년에, 류군은 고의상해죄로 유기형 7년에에 언도되였다. 왕가준을 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왕준은 고의상해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정치권리를 종신박탈당했다. (이 글에 나오는 인명은 왕준외에 모두 가명임)                                              《법제일보》  
66    영원히 살아숨쉬는 소녀의 심장 댓글:  조회:5768  추천:0  2011-08-03
 1992년5월초에 한차례의 황사가 하북성 장가구시를 휩쓸었다. 시중심에 위치해있는 한 병원의 소아과에서 태여난지6개월이 되는 한 녀자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아기를 자세히 진찰하던 의사는 아기가 선천성심장기형증에 걸려 심방과 심실이 채 발육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런 아기는 대부분이 첫돌을 넘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너무나도 뜻밖의 진단이라 아기엄마인 조미영은 믿을수 없었다. 불안해난 그녀는 아기를 안고 부근의 다른 병원들을 다 찾아갔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조미영은 눈앞이 캄캄해나면서 아기의 미래가 걱정되였다. 그후 아기는 엄마와 아빠의 보살핌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7개월이 되자 아기는 생글생글 웃기 시작했고 첫돌이 되자 말을 번지기 시작했다. 딸애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조미영은 아기 이름을 장효라고 지었다. 생각밖으로 심장이 채 발육되지 않은 장효는 아주 총명했다. 3살때에 벌써 텔레비죤을 보면서 련속극대사를 줄줄 외웠다. 부모의 사랑에 떠받들려 몇번이나 생사고비를 넘긴 장효는 어느덧 학교에 다닐수 있게 되였다. 비록 집과 몇백메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학교였지만 장효의 걸음으로 학교에까지 가려면 반시간이 넘어 걸려야 했다. 그래서 조미영은 아침마다 장효를 업어서 학교에까지 데려다주었다. 6.1아동절날, 장효는 동학들이 무대에서 신나게 뛰여노는것을 보고 부러움을 금치못했다. 이때 선생님은 그의 마음을 궤뚫어보기라도 한듯이 한번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불러보라고 말했다. 장효는 날듯이 기뻐서 인차 무대에 올라가 “세상에서 엄마가 좋아”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구절쯤 불렀을 때 가슴이 막 답답해났다. 장효는 하는수없이 노래를 멈췄다.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온 장효는 엄마를 보고 울면서 말했다. “엄마, 전 왜 노래조차 부를수 없는건가요? 제가 이렇게 살아서 뭘 하나요.” 엄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얘야, 내가 널 이렇게 낳아줘서 미안하구나. 오늘 내가 너한테 함께 놀수 있는 친구를 소개시켜주마.” 한참후에 장효는 엄마와 함께 관학주라고 부르는 아저씨네 집에 도착했다. 집이 꽤 부유해보이는 관아저씨한테는 장효와 동갑내기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애는 벙어리였다. 또래친구를 보자 신이 난 남자애는 비싼 장난감들을 가득 꺼내놓았다. 장효는 그 남자애와 함께 난생 처음 본 장난감을 갖고 재미있게 놀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가 입을 열었다.  “장효야, 넌 그 남자애를 보고 뭘 느꼈어? 관아저씨네는 남부러울것이 없는 부자이지만 아들이 벙어리란다. 이처럼 좋은것은 한사람에게만 차례지는것이 아니란다. 그 애는 뛰여다닐수 있지만 말을 못하잖니. 넌 비록 뛰여다닐수 없지만 걔보다 총명하잖아.” “엄마, 전 오늘에야 알았어요. 세상에 저만 힘든것이 아니라는것을…전 다시는 병때문에 울지 않을거예요.” 이튿날부터 장효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더는 자신의 병때문에 속상해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모든것을 이겨내려고 애를 썼다. 학교도 홀로 다니겠다며 자진해나섰다. 그후부터 장효는 이른아침에 집을 나가 수십번씩 쉬였다 걸었다를 반복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더구나 겨울철에는 하루에 몇번씩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장효는 이를 악물고 홀로서기를 견지했다. 강렬한 삶의 의욕을 보이는 딸애를 보면서 엄마는 꼭 딸에게 건강을 되찾아주리라 속다짐했다. 2001년8월에 조미영은 딸애를 데리고 북경시의 한 병원으로 찾아갔다. 의사는 장효가 심장수술을 받으면 증세가 조금 완화될수 있다며 수술비는15만원정도 수요된다고 알려주었다. 째지게 가난한 조미영부부에게는15만원이란 수술비가 천문학적수자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맥을 버리지 않고 이튿날부터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2개월후에 두 사람의 로임을 다 모아봤지만 수술비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들의 딱한 사정을 잘 아는 한 이웃은 매체의 힘을 빌어보는것이 어떠냐며 제의를 했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던 조미영은 이튿날에 하남인민방송국으로 찾아가 사정을 말한후 도움을 청했다. 결국 텔레비죤방송국의 호소하에 많은 사람들이 장효한테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2001년11월2일에 장효는 하남성아동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심장수술을 받았다. 퇴원할 때에 장효는 달음박질치면서 엄마품에 와락 안겼다. 그후 장효는 동학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주말이면 엄마를 도와 집안일도 거들어주었다. 1년후의 어느날에 장효는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되여 병원에 호송되였다. 의사는 장효가 재수술을 받을수 없다고 진단했다. 할수없이 장효는 심장병이 발작할 때마다 병원에서 간단한 구급치료를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장효는 배움에 한치의 게으름도 피우지 않았다. 심지어 병원침대에 누워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성적은 늘 학급에서 최고를 자랑했다. 그후에도 조미영은 딸애의 병치료를 위해 선후로11번이나 북경에 다녀왔다. 그러나 장효에게 재수술을 해주겠다는 전문가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중 조미영은 북경대학인민병원 심장외과의 리교수가 심장수술에 용하다는 소문을 듣게 되였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조미영은 딸을 데리고 부리나케 북경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장효를 자세히 진찰해보던 리교수는 “장효한테 재수술을 해줄수는 있지만 수술의 성공여부는 담보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가닥 희망이라도 놓치고싶지 않았던 조미영은 리교수를 붙잡고 “선생님, 꼭 제 딸을 구해주십시오. 전1%의 희망이라도 놓치고싶지 않습니다. 제 딸을 수술해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이튿날에 장효는 전면검사를 받았는데 비장이 없고 간, 위 등 기관의 배렬방향도 건강한 사람과 반대라는 진단을 받았다. 검사결과에 리교수도 놀라서 말했다. “비장이 없고 심장이 채 발육되지 않은 환자는 대부분이 짧아서 첫돌, 길어서3살밖에 살지 못합니다. 장효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다시 한번 기적을 창조해봅시다.” 이튿날부터 조미영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처로 뛰여다녔다. 어머니가 아무리 애를 써도 고작 몇만원의 돈밖에 마련하지 못한것을 본 장효는 직접 교육국, 부련회와 당지 정부, 장가구적십자회 등 해당부문으로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해당부문에서는 딱한 그의 사정을 헤아려 몇만원의 돈을 보내주었다. 병원에서도 부분적인 치료비를 면제해주었다. 2009년11월7일은 장효가 수술받기로 한 날였다. 수술실에 들어가기전에 장효는 리교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선생님, 만약 제가 수술대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면 저의 유체를 병원에 기증해주세요. 절 실험용으로 하여 선생님들께서 하루빨리 저같은 환자의 치료방법을 찾아내기를 희망합니다.” 2009년11월 7일 오전8시에 장효는 북경대학인민병원의 수술실에서 복잡한 심장개입수술을 받았다. 7시간을 거쳐 진행된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였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였다는 말에 조미영부부는 병원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수술후 장효의 건강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 얼마후에는 퇴원할수 있었다. 2010년7월에 장효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우수한 성적으로 꿈에도 그리던 장가구시제1중학교에 입학하였다. 7월23일 오전에 장효는 엄마와 함께 학급지원서를 가지러 시1중으로 떠났다. 이들 모녀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뻐스에 올랐다. 이때 그 누구도 예견치 못했던 재앙이 그들을 덮쳤다. 비길에서 쏜살같이 달리던 뻐스가 운전수의 잘못으로 완전히 뒤번져졌던것이였다. 차안에 앉았던 손님중에10명이나 중상을 입었고3명은 당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3명중의 한사람이 바로 장효였다.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장효의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여직껏 병마에 시달려왔던 딸이 이제야 건강을 되찾았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질줄이야? 장효가 비로소 오매불망 그리던 학교에 붙었는데 이토록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다니? 사고를 당한 조미영은 중상을 입고 해방군251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구급치료를 받았다. 일주일후에야 겨우 혼미상태에서 깨여난 조미영은 눈을 뜨자마자 딸부터 찾았다. 장효가 죽었다는 말에 엄마는 또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며칠후에 조미영은 혼미상태에서 깨여났고 점차 정서가 안정되였다. 그러나 그녀는 딸이 생전에 했던 말이 귀가에 맴돌아 쏟아지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엄마, 만약 수술이 성공하지 못하면 제 유체를 의학부에 기증해주세요. 심장병치료방법을 연구할수 있게 말이예요. 제가 죽어도 엄마는 상심해마세요. 다른 사람이 제 장기를 기증받는다면 전 다시 태여날수 있잖아요. 그럼 엄마는 다시 날 만날수도 있잖아요.” 며칠후에 조미영은 눈물을 머금고 딸의 유체를 병원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녀의 생각에 남편도 울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2010년11월13일 오전10시경, 장효의 유체기증의식이 장가구시 장의사에서 거행되였다. 사회 각계층의200여명 인사들이 의식에 참석했다. 장효의 유체를 기증받은 하북북방학원의 장휘교수는 “우린 여러 병원의 각 전문가들과 함께 힘을 합쳐 꼭 새로운 치료방법을 찾아낼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의식이 끝난후에 장효생전의 동학들은 점점 멀어져가는 령구차를 보면서 장효와 함께 불렀던 “당신과 함께”라는 노래를 불렀다.                                                           《지음》  
65    고부불화로 안해를 죽이고 자살한 석사연구생 댓글:  조회:8190  추천:0  2011-07-31
1979년에 사천성의 한 시골마을에서 출생한 왕정이는 1998년에 북경의 한 중점대학에 입학했다. 그녀와 같은 반인 단해청도 사천성에서 왔는데 외아들로 곱게 자라다보니 대학생이 되도록 양말 한짝도 빨아보지 못했다. 그는 늘 어머니한테 의거했는데 그에게 어머니는 지고무상의 존재였다. 단해청은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어머니가 곁에 없다보니 습관되지 않아 어찌할바를 몰랐다. 어느 한번 왕정이는 남성기숙사에 놀러왔다가 단해청의 침대밑에 더러워진 옷이며 냄새나는 양말들이 꽉 차있는것을 발견하고 가져다 빨아주었다. 그때로부터 두 사람은 서로 호감을 가지다가 사랑하게 되였다. 하지만 단해청의 과거를 알게 된 왕정이는 크게 실망했다. 단해청에게는 어머니한테 심하게 의거하는 경향이 있었던것이다. 단해청의 어머니는 아들을 곱다고 어루만지기만 하다보니 다 큰 아들을 세살짜리 어리애처럼 생각하면서 자그마한 일도 대신 해주고있었다. 단해청은 처음에는 왕정이와 약혼한 사실을 어머니한테 숨겼다. 어머니가 녀성강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것을 너무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연구생공부를 하던 첫 방학때 단해청의 어머니는 그들의 관계를 알아버리고말았다. 왕정이의 성격을 알게 된 단해청의 어머니는 보배아들이 며느리의 업신여김을 받는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해청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의 말이라면 무조건 들었지만 이번만은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왕정이는 어느새 그가 새로 의거하는 녀인이 되였던것이다. 그는 왕정이가 없으면 양말도 빨줄을 몰랐다. 2005년에 단해청은 석사공부를 마치고 어느 항천기구에 들어가 과학연구사업을 했고 왕정이는 박사공부를 하느라고 대학교에 계속 남아있었다. 한 사람은 수입이 안정된 국유기업의 과학연구일군이고 다른 한사람은 명문대학의 박사연구생이라 그들의 완미한 사랑은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2005년 겨울에 단해청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러 북경으로 왔다. 아들의 기숙사에 들어선 그녀는 방안이 돼지굴 같고 더러워진 옷과 냄새나는 양말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는것을 보고 기분이 나빴다. 단해청은 어머니가 오해할가봐 황급히 “정이는 매일 실험실에서 실험하느라고 새벽 3시까지 밤을 새워요”라고 해석했다. 단해청의 어머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며느리가 3년동안 박사공부를 하는 동안 아들이 고생할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온종일 눈물을 흘렸다. 그날 저녁에 왕정이가 찾아왔는데 식사할 때 단해청의 어머니는 “녀자가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남편이 될 사람의 옷도 빨아주지 않느냐? 해청이는 공부외에 아무일도 모르기때문에 네가 많이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왕정이는 화가 나서 “어머닌 아들에게 나쁜 습관을 키워줬어요. 곱다고 아무일도 안시키면 그건 아들을 해치는거예요. 전 일부러 옷과 양말을 빨아주지 않았어요. 어느때건 냄새를 견디지 못해 저절로 빨겠지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단해청의 어머니는 너무도 기가 막혀 아무말도 못했다. 왕정이가 돌아간후 단해청의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들이 위안하자 “이후에 네가 고생하게 생겼는데 내가 어찌 마음을 놓을수 있겠니”라고 말했다. 단해청이 “근심마세요. 제가 일하는걸 배우면 되지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더욱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아서 견딜수 없었다. 왕정이가 박사공부를 마치자 단해청은 관계를 통해 그녀를 자신이 근무하는 단위에 취직시켰다. 사업이 안정되자 단해청은 왕정이를 보고 결혼하자고 했다. 그런데 왕정이는 자신의 명의로 집 한채를 사줘야 결혼하겠다고 대답했다. 단해청은 출근한지 3년밖에 안되는데다가 왕정이의 학비를 대주고 생활비에 쓰고나면 로임에서 남는 돈이 없었다. 게다가 북경에서 집을 사려면 선불금만 해도 40~50만원을 내야 했다. 단해청은 하는수없이 렴치불구하고 부모한테 손을 내밀었다. 단해청의 부모는 며느리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모은 돈 10여만원에다가 친척들에게서 꾼돈 10만원을 보내주었다. 그래도 모자라자 30만원을 받고 집까지 팔아서 보태주었다. 2008년 8월에 단해청과 왕정이는 결혼식을 올렸고 2009년 3월에 고층아빠트에 입주했다. 그러나 단해청의 부모는 집을 팔고 시골에 있는 낡은 집으로 이사를 갔기때문에 뻐스를 타고 출근해야 했다. 단해청은 여러번이나 부모한테 전화를 걸어 “아들이 불효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를 고생시킵니다”라고 했다. 그때마다 단해청의 부모는 너희들만 화목하면 된다고 위안했다. 단해청은 왕정이를 보고 부모를 북경에 모셔오자고 했지만 왕정이는 이런저런 리유를 대면서 거절했다. 그러던 왕정이가 얼마후 자신의 부모를 모셔왔던것이다. 2009년 8월에 왕정이는 임신했다. 왕정이의 어머니는 몸이 불편했기때문에 딸을 보살펴줄수 없었다. 왕정이는 하는수없이 시어머니를 모셔왔다. 단해청의 어머니는 며느리가 싫었지만 후대를 위해서 북경에 들어와 며느리를 보살펴주었다. 단해청의 집은 침실 2개에 객실 하나였는데 단해청부부가 침실 하나를 차지하고 다른 침실은 왕정이의 부모가 차지하다보니 단해청의 어머니는 객실의 쏘파에서 자는수밖에 없었다. 단해청의 어머니는 밤중에 기침을 심하게 했다. 왕정이는 시어머니가 기침을 할 때마다 “기침을 자꾸 하니 잠을 잘수 없어요. 제발 소리내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다. 단해청은 안해가 침실로 돌아오자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 그러는데 기침을 참으면 병이 더 커지지 않겠소”라고 나무람했다. 그러자 왕정이는 “내가 자지 못하면 배속의 아기가 어떻게 건강할수 있어요? 당신 어머니가 중해요? 우리 아이가 중해요?”라고 하면서 대들었다. 왕정이의 아버지는 일이라도 하여 딸을 돕겠다고 하면서 단해청의 어머니한테 무슨 일을 하면 돈을 벌수 있는가고 물었다. 단해청의 어머니는 페품을 주으면 돈을 벌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왕정이의 아버지는 중고인력삼륜차를 사가지고 생수병을 줏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게 된 왕정이는 단해청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버지한테 사람 망신을 시키는 일을 시켰다고 생수병을 던지면서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왕정이의 아버지는 단해청의 어머니한테 미안하다고 생각되여 2009년 10월에 안해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사돈이 돌아가자 단해청의 어머니는 사돈이 들어있던 침실로 옮겨갔다. 시어머니가 자신의 부모를 쫓아냈다고 생각한 왕정이는 시어머니를 더욱 증오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트집을 잡아서 욕을 해댔다. 2010년 5월에 왕정이가 딸을 낳자 가족에서는 모두 기뻐했다. 단해청의 아버지는 고향에서부터 먼 북경까지 달려와서 축하해주었다. 단해청의 어머니는 손녀가 태여나면 집안이 화목해지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정반대로 되였다. 왕정이는 시어머니한테 “남새를 사오고 밥을 지으세요”, “아기의 기저귀를 빨아놓으세요”, “아기한테 우유를 먹이세요”, “우는 아이를 달래서 재우세요” 등등의 일을 시켰을뿐만아니라 자신의 빨래까지 빨아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늘 옷을 깨끗하게 빨지 못했다느니 다림질을 잘 하지 못했다느니 하면서 잔소리를 해댔다. 그 바람에 단해청의 어머니는 마음이 황황하여 어느 일부터 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맬 때가 많았다. 그런 광경을 목격한 단해청은 왕정이를 나무람하면서 이후부터 그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왕정이는 남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2010년 11월 21일에 연장근무를 끝내고 7시에 집에 돌아온 단해청은 어머니가 왕정이의 속옷을 빨고 왕정이는 컴퓨터앞에 마주앉아 채팅을 하는것을 보고 화가 나서 견딜수 없었다. 단해청은 사업이 바쁘고 집식구들을 먹여살리느라고 바삐 돌아치다보니 원래 정신적압력이 컸다. 그런데다가 이런 광경을 목격하게 되자 참을수 없어서 안해의 귀쌈을 후려쳤다. 왕정이도 단해청의 옷을 잡고 발로 남편을 차고 손으로 얼굴을 허비면서 지려고 하지 않았다. 단해청의 부모가 달려와서 말렸지만 그들을 떼여놓을수 없었다. 아들의 얼굴에 할퀸 자리가 있는것을 본 단해청의 어머니는 무릎을 굻고 앉아 울면서 빌었다. “제발 싸우지들 말아라. 난 너의 아버지와 함께 래일 아침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다 내 잘못이라고 하면 되잖니? 제발 손들을 놓거라!” 그제야 두 사람은 손을 놓고 싸움을 그만두었다. 단해청의 부모는 아들과 며느리가 싸우지 않는것을 보고 바람이나 쏘이자면서 집에서 나갔다. 부모가 나가자 단해청은 안해를 죽여버리고 자기도 죽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는 식칼을 찾아들고 침실로 들어가 누워있는 안해를 찔러서 죽였다. 그 다음 옥상으로 올라가 목을 메여 자살했다. 단해청의 부모는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에서 피비린내가 나고 며느리가 침대에서 숨이 끊어져있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더구나 아들이 옥상에 올라가 목을 매고 자살한것을 보고 혼절하고말았다. 온 집안에서 6개월된 단해청의 딸만이 쏘파에 누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애고사리같은 손을 꼼지락거리고있었다.         《법제일보》
64    불치병에 걸린 남편곁으로 되돌아온 안해 댓글:  조회:4903  추천:0  2011-07-29
2010년 4월 6일에 련운항에서 자가용차를 타고 떠나 태주에 도착한 라민은 아들 도도가 다니고있는 유치원으로 찾아갔다. 유치원문앞에 차를 세워놓고 차창밖으로 바라보니 아들을 데리러 온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남편의 동료 마명이였다. 마명은 그녀의 옛동료이기도 했다. 라민은 차를 천천히 몰고 마명과 아들의 뒤를 바싹 따랐다. 이상하게도 마명은 도도를 남편의 집에 데려가는것이 아니라 자기집으로 데리고가는것이였다. 마명한테 전화를 걸어보고서야 그녀는 남편이 골격생장이상종합증에 걸려 양주시인민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1979년 8월에 련운항에서 출생하여 2000년 9월에 소주시대학에 입학한 라민은 2002년 2월에 학교로 향하는 뻐스안에서 오장흥이라는 남자를 만났다.오장흥은 당시 소주시공예미술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였다. 뻐스안에서 우연하게 만난 그들은 서로 상대에게 호감을 가졌고 차츰 달콤한 사랑에 빠졌다. 2002년 6월초에 라민은 오장흥을 부모한테 인사시켰는데 그녀의 부모는 오장흥의 가정이 가난하다는 리유로 그들의 련애를 반대했다. 오장흥이 여러번이나 찾아왔지만 라민의 부모는 번마나 문전박대를 했다. 결국 부모들의 압력을 못이긴 라민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오장흥은 아쉬운대로 헤여졌다. 가슴아프게 헤여진 둘은 후에 서로 련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2004년 7월에 라민은 대학을 졸업한후 태주시의 한 회사에 취직했고 거기에서 지금의 남편 진가홍을 만났다. 라민보다 2살 년상인 진가홍은 인간성도 좋고 회사에서 실무능력도 뛰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였다. 라민은 진가홍의 도움으로 점차 회사의 실무를 익혔고 얼마간의 성적까지 올렸다. 그러는 사이에 서로 정이 든 둘은 2006년초에 결혼식을 올렸고 이듬해 2월에는 보배둥이 아들까지 보았다. 그러나 결혼후에 라민은 평범한 결혼생활에 점차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더구나 라민은 농촌태생인 진가홍의 부모와 의견이 맞지 않아 늘 남편과 다투었다. 어느 한번은 남편과 싸우고 한달동안이나 “랭전”을 벌린적도 있었다. 2009년의 5.1일절휴가기간에 라민은 고향에 내려갔다가 우연하게도 백화상점앞에서 첫사랑이였던 오장흥과 딱 마주쳤다. 그동안 만난적이 없었지만 둘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련운항에서 수정장사를 하고있다는 오장흥은 어느새 자가용차에 호화로운 집까지 소유하고있는 부자로 되였다. 오장흥이 자신을 잊지 못해 여태껏 결혼하지 않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민은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을수 없었다. 2009년 11월의 어느날에 오장흥은 태주에 있는 라민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청혼했다. 가슴아프게 떠나보냈던 첫사랑을 후회한적도 있었던 라민은 옛시절로 돌아가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11월 21일에 라민은 남편한테 리혼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리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12월초에 라민은 남편과 아들을 태주에 남겨놓고 오장흥과 함께 련운항으로 떠났다. 그후 라민은 핸드폰번호를 바꾸고 오장흥이 사준 분홍색자가용차를 몰고다니면서 그의 수정장사를 도왔다. 2010년 4월 6일에 아들이 보고싶어 차를 몰고 태주로 왔던 라민은 남편이 골격생장이상종합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부근의 PC방에 가서 인터넷을 통해 골격생장이상종합증에 대해 알아본 그녀는 불치병이나 다름없는 이 병이 몇개월내에 급성백혈병으로 전이되고 얼마후이면 사망될수도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날 저녁에 라민은 심한 자책감에 모대기다가 한밤중에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 바싹 여윈 남편이 나타나 “난 늘 당신한테 진심이였는데 당신은 왜 이토록 날 비참하게 만드오?”라고 말하는것이였다. 깜작 놀란 라민은 울면서 잠에서 깨여났다. 그후 며칠동안에 라민은 자신을 항상 배려해주던 남편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떠올라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러다가 그녀는 더 늦기전에 남편한테 돌아가 최소한 안해의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그녀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남편의 곁으로 돌아갈 결심을 내렸다. 2010년 5월 25일에 라민은 오장흥이 출장을 간 틈을 타서 아들 도도를 데리고 남편의 병실로 찾아갔다. 남편은 자주 고열로 쓰러진 탓에 마른 장작개비처럼 바싹 마른 체구에 피기없는 얼굴을 하고있었다. 도도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울면서 아빠를 불렀고 남편도 흐느껴울면서 아들을 품에 안았다. 부자의 상봉을 지켜보는 라민은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다. 라민이 쪼그리고앉아 “여보, 많이 아파요? 열이 많이 나요?”라고 묻자 남편은 “나가, 당장 나가”하고 소리를 질렀다. 라민은 무릎꿇고 말했다. “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제발 절 내쫓지 마세요.” 이때 옆에서 지켜보던 시어머니가 아들을 설득했다. “얘야, 라민이 잘못을 뉘우친것 같은데 용서해주려무나.” 진가홍은 격동된 나머지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더니 벽쪽으로 머리를 홱 돌렸다. 죄인처럼 머리를 수그리고있던 라민은 그제야 병실을 청소한다 남편의 옷을 씻는다 하면서 분주하게 돌아쳤다. 그날 저녁에 라민은 시부모님과 아들을 병원부근에 맡아놓은 세집에 보낸후 밤새 남편의 곁을 지켰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여난 진가홍은 침대머리맡에 엎디여 자는 안해의 모습을 보자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그토록 안해를 원망했건만 정작 자고있는 안해의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약해졌다. 이때에야 진가홍은 아직 안해에 대한 사랑이 미움보다 더 크다는것을 느꼈다. 진가홍은 추워서 몸을 옹송그리고있는 안해한테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튿날 아침에 라민은 일어나자바람으로 용서를 빌었다. “여보, 저한테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주어서 고마와요. 전 끝까지 당신곁을 지킬거예요.” 그러자 진가홍이 말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수 있지. 당신이 돌아왔으니 지난일은 묻어두기요. 허나 난 지금 불치병에 걸린 환자요. 난 당신한테 짐밖에 더 되지 않소. 우리 아무래도 리혼하는게 좋을것 같소.” “아니예요. 여보, 당신은 나와 도도를 위해서라도 꼭 힘을 내야 해요. 전 예전에 첫사랑 남자한테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어서 그만 죄를 저지르고말았어요. 허나 당신이 병으로 앓아누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 머리속에는 온통 당신걱정뿐이였어요. 그제야 저는 제 마음을 알게 되였어요. 그래서 렴치가 없지만 더 늦기전에 당신한테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후 안해와 아들이 곁을 지켜준 덕분인지 진가홍의 정서는 점차 안정되였다. 6월 1일에 출장에서 돌아온 오장흥은 라민한테 어디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라민은 전화에서 “제 남편이 불치병에 걸렸어요. 그이는 제가 필요해요. 저도 이젠 남편곁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당신한테는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오장흥은 “난 오래전에 이런 날이 올줄을 예감했소. 당신과 함께 했던 나날을 잊지 못할거요. 당신 남편이 빨리 쾌차하길 바라오”라고 말했다. 2010년 7월초에 라민은 남편을 소주시인민병원으로 옮긴후 골수이식수술을 해줄 의사를 찾았다. 라민의 끈질긴 설득에 감동된 진가홍의 누나도 동생한테 골수를 기증하겠다고 대답했다. 8월말에 라민은 그동안 모아온 전부의 재산과 살림집을 판 돈으로 남편의 수술비를 마련했다. 9월 22일에 진가홍은 골수이식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였다. 수술후에 진가홍은 무균병실에 옮겨졌고 라민은 날마다 무선전화로 남편을 고무격려해주었다. 10월 4일에 라민은 남편의 몸에 새 골격이 형성되여 새 혈액이 조성되고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게 되였다. 라민은 신발이 벗겨지는줄도 모르고 한달음에 남편한테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 순간에 부부는 격동되여 부둥켜안았다. 이윽고 라민은 “저와 아들을 위해서 당신은 제때에 약도 자시고 밥도 드셔야 해요. 저와 도도는 당신이 빨리 일어나기를 바라요”라고 말했다. 진가홍은 눈물이 글썽해서 안해를 바라보면서 “여보, 당신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오?  혹시 내가 건강해지면 당신이 내곁을 떠날가봐 겁이 나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라민은 웃으면서 “절대 그런 일은 없을거예요. 당신이 절 용서해주어서 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제가 당신한테 준 상처를 치유해주려면 아마 평생의 시간으로도 부족할거예요. 당신이 퇴원하면 우리 집을 세맡고 다시 시작해요”라고 말했다. 2010년 10월중순에 병세가 호전된 진가홍은 퇴원할수 있게 되였다. 라민은 병원부근에 세집을 맡고 다시 남편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골수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는 반년동안에 배척작용이 있을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라민은 한시도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치료비가 모자라자 라민은 남편을 시어머니한테 맡긴후 부근의 백화상점에서 판매원일을 시작했다. 오늘도 그녀는 직장일로 몹시 지친상태이지만 남편을 보살피는 일에 등한할세라 열심히 살고있다.           《지음》                                                     
63    우여곡절끝에 다시 맺어진 사랑 댓글:  조회:4484  추천:1  2011-07-26
1983년에 감숙성 여호시 여성진에서 태여난 우해흠은2002년에 대학을 졸업하고2008년에 친구와 함께 소주에 들어가 광고회사를 차렸다. 그해7월에 우해흠은 인터넷채팅을 하다가 동진이라는 연구생처녀를 알게 되였다. 하남성 보정시에서 태여난 동진은 흑룡강성 모 대학교의 연구생과정을 마치고 천진시의 한 무역회사에서 번역사업을 하고있었다. 동진과 채팅을 하면서 우해흠은 그녀의 딱친구가 공교롭게도 자신이 대학시절에 짝사랑했던 팽옥패라는것을 알았다. 그때 팽옥패에게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기때문에 우해흠은 짝사랑을 가슴속에 묻어두었었다. 채팅하면서 동진과 퍼그나 익숙해진 우해흠은 자신의 짝사랑이야기도 서슴없이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2008년9월5일에 우해흠은 천진시로 출장을 갔다가 동진한테 전화를 걸어 팽옥패와 함께 만날것을 요구했다. 그날 오후에 동진은 팽옥패를 데리고와서 함께 우해흠을 만났다. 이는 동진과 우해흠의 첫 만남이였다. 동진은 비록 우해흠이 자신의 딱친구를 좋아하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지만 정작 훤칠한 키에 영준하게 생긴 우해흠을 보자 그한테 첫눈에 반해버렸다. 2008년12월의 어느날에 팽옥패가 실련당했다는 전화를 걸어오자 우해흠은 천진시로 달려와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우해흠은 천진시에 도착하자마자 동진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한참후에 동진이도 실련당한 딱친구를 위안해주러 달려왔다. 그날 저녁에 동진은 용기를 내여 우해흠한테 사랑을 고백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우해흠은 동진한테 호기심은 있었지만 몇년동안이나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짝사랑을 쉽게 포기할수 없었던것이였다. 우해흠한테 거절을 당한 동진은 한달동안이나 그와 련락하지 않았다. 2009년2월말에 우해흠은 동진의QQ공간을 둘러보다가 백혈병에 걸려 몇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그녀의 일기를 보게 되였다. 깜짝 놀란 우해흠은 동진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제야 동진은 울면서 자신이 만성백혈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이튿날에 우해흠은 동진이가 알려준대로 천진시에 있는 그녀의 세집으로 달려갔다. 동진의 신체상황은 그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좋아보였다. 동진은 병이 안정된데다가 비싼 치료비를 이어대기 힘들어 집에서 치료를 받는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해흠은 그녀한테 “동진이, 난 팽옥패를 보러 가야겠소”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동진은 울면서 “해흠씨, 전 당신한테 첫눈에 반했어요. 전 당신이 팽옥패를 짝사랑하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어요. 하지만 전 몇달후이면 저세상사람이 돼요. 전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만큼은 꼭 행복하고싶어요. 이 행복은 당신만이 저한테 줄수 있어요. 이 시간동안 당신이 가여운 저와 함께 있어주면 안되나요?”라고 말했다. 우해흠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그녀의 간절한 애원에 못이겨 머리를 끄덕였다. 며칠후에 우해흠은 빠른 시일내에 다시 천진으로 돌아오겠다고 동진과 약속을 한후 소주로 돌아갔다. 2009년3월12일 저녁7시경에 우해흠은 소주기차역에 도착했다는 갑작스러운 동진의 전화를 받았다. 우해흠이 기차역으로 달려가보니 동진은 추워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그 모습에 우해흠은 가슴이 쓰려났다. 그때 우해흠은 이토록 총명하고 선량한 처녀의 마지막 소원을 끝까지 들어주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받았다. 그날 저녁에 동진은 우해흠의 집에 주숙했다. 며칠후에 아름다운 신부가 되고싶다는 동진의 소원을 들어주고저 우해흠은 그녀와 결혼사진까지 찍었다. 동진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우해흠은 어느새 그녀한테 정이 들었다.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우해흠은6월에 진정한 그녀의 남자친구가 되였다.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동진이가 따뜻함과 사랑을 느끼게 하기 위해 우해흠은 최선을 다했다. 그의 따뜻한 관심속에서 동진이도 유쾌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2009년9월의 어느날, 우해흠은 동진의 서적을 정리하다가 책속에 끼워놓은 북경시해방군307병원의 병례를 발견했다. 유심히 살펴보니 병례는 동진이가2006년11월에 백혈병진단을 받았고2007년에 골수이식수술을 받았다는 내용이였다. 골수이식수술을 받은 환자가2년동안의 회복기를 걸치면 건강이 기본상 회복된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상식쯤은 우해흠도 잘 알고있었다. 이때에야 우해흠은 건강을 회복한 동진이가 불치병에 걸렸다고 자신을 속였다는것을 알았다. 우해흠은 병례를 동진의 눈앞에 갖다놓으면서 영문을 따져물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있던 동진은 흐느껴울면서 “미안해요. 제가 당신을 속였어요. 제가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놓치고싶지 않아서 이런 짓을 했어요. 전 당신의 동정을 사서라도 당신을 곁에 두고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우해흠은 화가 나서 “당신이 어쩜 날 기만할수 있단 말이요? 그런 수단으로 날 곁에 붙잡아둘수 있다고 생각하오? 난 더이상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소”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동진은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짐을 쌌다. 우해흠은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2009년9월28일에 동진은 다시 천진으로 돌아왔다. 얼마후에 동진은 속이 메스꺼워 병원을 찾았는데 뜻밖에도 임신이였다. 동진은 그만 아연실색해지고말았다. 골수이식수술을 받으면서 대량의 화학약물을 복용한 자신이 임신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는것을 그녀도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임신될줄이야? 하늘이 내려준 선물에 감동된 동진은 황급히 우해흠한테 메시지로 임신사실을 알렸다. 10여분후에 우해흠한테서 “당신은 또 무슨 연극을 꾸미고있는거야”라는 메시지가 왔다. 동진은 북받쳐오르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홀로 아기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을 내렸다. 그날부터 동진은 태아를 위해 회복치료에 도움되는 모든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회복치료제를 복용하지 않은탓에 동진은 수시로 위험에 빠질수 있었다. 얼마후에 동진은 부모님이 계시는 보정시로 돌아갔다. 2010년5월5일, 해산일을 코앞에 둔 동진은 갑자기 고열이 나기 시작했고 설사까지 했다. 그녀의 부모들은 부랴부랴 딸을 병원으로 호송했다. 병원검사에서 동진은 배척반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은 상황이 위급하니 즉시 락태하고 산모를 보호하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하지만 동진은 절대 락태할수 없다며 견결한 태도를 보였다. 이튿날 아침에 동진의 어머니는 우해흠한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날 저녁11시경에 동진은 코피를 흘리며 류산할 징조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어머니, 제가 만약 죽게 되면 즉시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세요. 이 아기는 제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의 결정체예요. 제가 죽는한이 있더라도 아기는 꼭 살려내야 해요”라고 부탁했다. 딸의 말에 어머니는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2010년5월9일 이른아침에 동진은 혼미상태에 빠졌다. 이때 한 젊은 남자가 동진의 담당의사를 찾아와 “전 우해흠이라고 합니다. 제가 배속아기의 아빠예요. 제가 담보할테니 빨리 아기를 류산시키고 산모를 구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결국 의사는 혼미상태에 빠졌있는 동진한테 락태수술을 해주었다. 10시경에 혼수상태에서 깨여난 동진은 배속아기가 없어진것을 발견하고 대성통곡을 했다. 이때 우해흠이 병실에 나타났다. 동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우해흠은 그녀의 침대곁에 다가가 “동진이, 너무 상심해하지 마오. 당신이 몸을 추스리는것이 중요하오. 아기는 후에 다시 가지면 되잖소”라고 말했다. 사실 우해흠은 동진과 헤여진후에 고통속에서 몸부림쳤다. 자신을 기만했던 동진을 용서할수 없었지만 그녀와의 행복한 나날을 떠올려보면 자꾸 눈물이 났다. 매일 밤마다 꿈속에서 동진을 만났는데 깨여나면 그녀가 보고싶어 미칠 지경이였다. 우해흠이 다시 그녀를 찾아갈 준비를 하고있을 때 바로 동진의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던것이다. 병원에서 우해흠은 동진의 손을 잡고 “난 다시 당신곁으로 돌아오고싶소”라고 말했다. 동진은 눈물을 흘리면서 “예전에 전 건강을 회복했기때문에 당신을 곁에 붙잡아두려 했어요. 하지만 지금 전 다시 병이 발작했으니 당신한테 짐이 되고싶지 않아요. 당신처럼 우수한 사람은 꼭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야 돼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우해흠은 무릎을 꿇고 “난 한평생 함께 하자는 우리의 약속을 꼭 지키고싶소. 이 모든것은 다 내 잘못이요. 난 더이상 당신을 떠나서는 살수 없소”라고 말했다. 동진은 와락 우해흠의 품에 안겨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랑의 묘약이 큰 효험을 발휘했는지 동진은 며칠후에 열이 내리기 시작했고 설사도 점차 멎었다.  량가집 부모들의 동의를 거친 우해흠과 동진은2010년9월5일에 친척과 친구들의 축복속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우해흠은 중화골격창고에 동진의 자료를 보냈는데9월25일에 중화골격창고에서 그녀한테 맞는 골수기증자가 나타났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져왔다. 우해흠은 여직껏 모아온 저금과 부모님한테서 빌린 돈으로 동진의 수술비를 마련했다. 2010년11월중순에 동진은 북경시해방군307병원에서 재차 골수이식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은 성공적으로 되였다.                                                       《지음》
62    사랑을 양보하다가 비참하게 죽은 쌍둥이자매 댓글:  조회:5452  추천:0  2011-07-25
쌍둥이자매인 장아아와 장정정은 1983년에 안휘성 녕국시 갑로진의 한 아름다운 산골마을에서 출생했다. 언니 장아아는 2006년 여름에 남경리공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녕국시의 한 건축재료회사에 취직했다. 그해 9월에 장아아는 회사부근의 요가(瑜伽)중심에 갔다가 한 청년이 녀자들틈에 끼워 땀을 흘리면서 요가동작을 하고있는것을 보고 웃음이 나오는것을 겨우 참았다. 장아아는 요가훈련이 끝나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다가 문어구에서 또 그 청년을 만났다. 그녀는 호기심이 들어 “남자들도 요가를 하나요?”라고 물었다. 그 청년은 미녀가 묻는것을 보고 웃으면서 “나의 수하가 요가를 하면 사업압력을 풀수도 있고 기분도 전환할수 있다고 해서 해보는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후 요가중심에서 함께 요가운동을 하면서 장아아는 그 청년의 이름이 황위이며 그해 29살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2000년에 안휘성의 한 대학을 졸업한 황위는 건축재료회사를 꾸려 몇년간 분투한 결과 2006년에는 회사의 자산이 1000만원을 초과하게 되였다. 황위가 젊고 재간이 있는것을 본 장아아는 주동적으로 호감을 표시했다. 황위도 예쁘게 생긴데다가 사업에서도 부지런한 장아아를 마음에 들어했다. 2007년 2월에 안휘상업전문학교를 졸업한지 6개월이 되는 장아아의 쌍둥이녀동생 장정정이 녕국시로 돌아와서 취직했다. 장아아는 그날밤에 녀동생과 함께 자면서 자신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흘후 장아아는 황위와 식사할 때 장정정을 데리고갔다. 그런데 황위는 생김새는 똑같지만 장아아보다 눈길이 더욱 부드럽고 성격이 더 좋아보이는 장정정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그후부터 그는 장아아를 피해다니면서 장정정을 만났다. 장정정도 그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언니의 남자친구인지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2007년 8월에 황위는 장정정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장정정은 자신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핑게를 대고 거절했다. 하지만 몇달후 장정정에게 남자친구가 없다는것을 알게 된 황위는 다시 장정정을 찾아다니면서 사랑의 공세를 들이댔다. 2008년 9월의 어느날, 장아아는 황위한테 전화를 걸어 함께 식사하자고 약속했는데 황위는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장아아는 하는수없이 녀동생과 함께 식사하려고 녀동생의 단위로 찾아갔다. 그런데 황위가 녀동생단위의 문앞에 서있었던것이다. 장아아가 의심하는것을 눈치챈 황위는 그녀를 데리고 커피점으로 들어가 모든것을 털어놓았다. “난 이전에 아아를 좋아했댔소.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였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아가 아니라 정정이요!” 장아아는 멍해졌다. (황위가 내 녀동생을 사랑하다니?!) 집으로 돌아온 장아아는 대성통곡했다. 그녀는 장정정이 퇴근하여 돌아오자 “황위가 날 사랑하지 않고 널 사랑한다는데 그게 정말이냐”라고 물었다. 장정정은 “황위가 날 좋아한다고 말한적은 있어”라고 대답했다. 장아아는 눈물을 흘리더니 “정정아, 네가 황위를 좋아한다면 이 언니가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우린 영원히 친자매간이야. 그런데 넌 왜 여태껏 말하지 않았니”라고 물었다. 장정정은 장아아가 몹시 속상해하는것을 보고 말했다. “언니, 포기하지 마. 난 중간에 끼여들지 않을거야. 황위는 내가 좋아하는 류형이 아니야.” 그후 장정정은 장아아가 황위를 찾아가지는 못하고 전화만 기다리고있는것을 지켜보면서 몹시 괴로왔다. 그러면서도 “황위가 언니를 사랑하지 않고 두 사람이 만나 사실을 털어놓았으니 내가 황위를 좋아해도 되지 않을가”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2008년 11월의 어느날 저녁에 장정정은 장아아가 침실에서 자고있는데 곁에 놓여있는 핸드폰이 빛을 뿌리고있는것을 보았다. 찬찬히 여겨보니 핸드폰의 화면에는 황위의 전화번호가 나타나있었는데 장아아는 그때까지 발송단추를 누르지 않고있었다. 그것을 본 장정정은 언니가 자매의 정때문에 황위에 대한 깊은 사랑을 억제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 순간 “내가 황위를 좋아해도 되지 않을가”하는 생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말았다. 그녀는 2주일동안 황위가 자신한테는 계속 메시지(短信)도 보내고 전화도 하면서 언니한테는 메시지 한번도 보내주지 않고 고통스러워하는 언니를 보는척도 하지 않는것을 지켜보면서 화가 나서 견딜수 없었다. 장정정은 이튿날에 황위를 만나서 그의 귀쌈을 후려치면서 왜서 언니를 괴롭히느냐고 따지고들었다. 그러다가 황위가 손으로 뺨을 막고 눈물을 흘리는것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장정정은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건 승인해요. 하지만 장아아는 나의 친언니예요. 우리는 쌍둥이자매이기에 몸과 마음도 하나여서 누구 한사람이 아프면 상대방도 함께 아파요! 내가 어떻게 내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언니의 남자친구를 빼앗을수 있겠어요? 당신이 언니와 화해하세요. 네?”하고 말하고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황위는 장아아와 헤여지고 장정정과 결합해야겠다는 마음을 더욱 단단히 먹게 되였다. 집으로 돌아간 장정정은 장아아를 보고 “언니가 황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걸 알아. 포기하지 마. 그와 다시 잘 될수 있을거야”라고 말했다. 그동안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던 장아아는 평온을 되찾았다. 그녀는 황위를 찾아가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09년 2월 23일 저녁에 장정정이 연장근무를 하자 장아아는 황위를 집으로 불러놓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우리 먼저 결혼하자요. 내가 당신을 사랑할 기회를 주세요. 내가 꼭 당신의 좋은 안해로 되여드릴게요. 만약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난 녀동생을 데리고 여기서 떠나가겠어요!” 원래부터 장아아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황위는 이 말을 듣고 머리가 막 어지러웠다. 그렇다고 결혼하지 않자고 하니 사랑하는 장정정을 다시는 볼수 없게 되겠으니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난 아아와 결혼할수 없소. 나의 결혼상대는 정정이요!” “제동생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니요. 정정은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 말했소!” “좋아요. 정정이 당신한테 호감이 있다고 하자요. 하지만 당신은 그 애와 결혼하려니 꿈도 꾸지 마세요. 그 애는 래일 내가 소개해준 남자와 만날거니깐요!” 황위는 장아아가 장정정에게 남자를 소개해주자 화가 나서 견딜수 없었다. 장아아가 있는한 장정정을 얻을수 없다는 생각이 든 그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그녀를 쏘파에 밀어던졌다. 그리고 두손으로 힘껏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조였다. 장아아가 움직이지 않자 죽었다고 생각한 황위는 그녀를 안아다가 옷장에 밀어넣고 나중에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옷장이 움직이는 소리에 놀라서 돌아다보니 장아아가 거품을 문채 발로 옷장을 차고있었다. 깜짝 놀란 그는 전기선을 가지고와서 그녀의 목을 힘껏 조여 숨지게 했다. 시신을 다시 옷장에 넣고나서 아직 밤이 깊지 않았기때문에 시신을 처리하기 이르다고 생각한 황위는 객실에 앉아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자정이 되여 집에 돌아온 장정정은 언니가 보이지 않고 황위가 혼자서 텔레비죤을 보고있는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언니는 어디 갔어요”라고 물었다. 황위는 당황해하면서 림시로 일이 있어서 연장근무하러 갔다고 둘러댔다. 그 말을 들은 장정정은 “언니와 화해했어요?”라고 물었다. 황위가 머리를 끄덕이자 장정정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목욕을 한후 자신의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잠을 잤다. 황위는 장정정이 깨여날가봐 날이 밝기전에 시신을 옮길 엄두를 못냈다. 그는 아침에 장정정이 출근한후 시신을 처리하려고 장아아의 침실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아침에 깨여난 장정정은 옷을 갈아입으려고 장아아의 침실로 들어와 옷장을 뒤지려고 했다. 장아아가 장정정의 시신을 발견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한 황위는 급히 막아서며 “정정의 옷은 어제 언니가 빨아서 욕실에 걸어놓았소”라고 거짓말을 했다. 장정정이 욕실로 가는것을 보고 황위는 바싹 뒤따라갔다. 욕실의 목욕통에는 잠을 자기전에 장정정이 목욕을 하고나서 남긴 물이 가득차있었다. 장정정이 다시 돌아가 옷장을 뒤질가봐 겁이 난 황위는 미친듯이 달려들어 그녀를 목욕통의 물속에 처넣고 머리를 꽉 눌렀다… 장정정을 죽이고난 황위는 살았을 때 그녀의 몸을 점유할 기회가 없었는데 죽어서라도 한번 그녀의 몸을 점유해보고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그는 장정정의 시신을 건져서 욕실바닥에 놓은후 옷을 벗고 시간했다. 변태적인 욕정을 해결한후 황위는 쌍둥이자매의 핸드폰으로 각각 그녀들의 단위에 전화를 걸어 휴가를 맡아놓고 도망쳐버렸다… 이튿날에 딸이 거주하는 집으로 찾아온 쌍둥이자매의 아버지는 집문이 잠궈진것을 보고 딸들의 단위로 찾아갔다. 두 딸이 모두 단위에 없고 핸드폰도 통하지 않는것을 본 그는 이상하여 공안국에 제보전화를 걸었다. 얼마후 현장에 도착하여 쌍둥이자매가 거주하는 집문을 마스고 안으로 들어간 경찰들은 쌍둥이자매의 시신을 발견했다. 꽃같은 딸들이 비참하게 죽은것을 본 쌍둥이의 아버지는 너무도 비통하여 방바닥에 쓰러졌다. 경찰들은 사건현장분석과 장정정의 질속에 들어있는 정액에 의해 황위한테 중대한 혐의가 있다고 인정했다. 며칠후 경찰들은 멀리 도망치려는 황위를 렬차우에서 붙잡았다. 2010년 9월에 선성시중급인민법원에서는 황위를 고의살인죄와 시신모독죄로 사형에 처하고 정치권리를 종신박탈한다고 판결했다.               《법제일보》  
61    녀배우와 얽힌 영화감독습격사건 댓글:  조회:4155  추천:0  2010-12-02
중국의 이름난 청년영화감독 언파가 2010년 6월 8일 오전 11시 4분에 북경시 조양구에서 칼을 든 4명의 습격자에게 40여곳을 찔렸고 10곳이 골절되였다. 《남방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북경군구총병원에서 구급을 받아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오른팔이 불구로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1969년 1월 5일에 출생한 언파는 2001년에 인기배우 매정과 결혼했다가 2007년 3월 16일에 리혼했다. 그는 현재 다른 한 인기배우 리소염과 련애중이다. 매정(1975년 4월 30일 출생)은 《아스피린》, 《도화운》, 《핸드폰》, 《새 결혼시대》  등 수십부의 영화와 텔레비죤련속극에 출연하여 이름을 날렸고 리소염(1976년 4월 10일 출생)은 《무인운전》, 《애?부애》,집》, 《남하》 등 수십부의 영화와 텔레비죤련속극에 출연하여 인기를 끌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영화감독 고군서는 “녀영화배우 안도(殷桃)와의 밀애가 화근이였다. 언파가 리소염과 뜨겁게 련애하면서 비밀리에 안도와 만났기때문에 화가 난 안도의 남편이 사람을 시켜 한짓”이라고 했고 다른 한 영화감독 륙천은 “흉수는 오래동안 미행하다가 람도청사부근에서 손을 썼는데 이렇게 계획적으로 행동한것을 보아 깡패세력의 행위가 틀림없다. 내지 영화계에도 모순충돌과 더불어 깡패세력이 끼여들고있다”고 말했다. 2010년 6월 9일 오후에 언파가 감독을 맡은 영화 《쟈즈의 혼약》 첫 상영식이 있게 되였는데 언파는 전날에 습격을 당하는바람에 자신이 찍은 영화의 첫 상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또 다른 한 설은 리소염의 전 남자친구인 향항사람 A선생이 사람을 시켜 언파를 습격했다는것이다. 리소염도 이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내가 남자친구를 잘못 사귀였기때문입니다”고 말했다. A선생은 매우 극단적인데 헤여지자는 리소염의 제의를 줄곧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만나자고 하였기에 이 몇년동안 리소염은 핍박에 못이겨 외지에 나가 영화촬영을 하였다. 병원에서 언파를 간호하고있는 리소염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파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그의 건강상태는 주치의사의 최후진단을 기다려야 확인할수 있습니다. 나와 그의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치료에 배합하고있습니다. 나는 언파의 녀자친구로서 보도매체에서 다시는 근거없는 추측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런 엄중한 악성사건에 대해 우리는 응당 법률의 무기로 공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하며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나는 4년동안 줄곧 위협과 공갈을 겪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무일 없는것처럼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일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립정신이 강해서 내 힘으로 번 돈만 쓰면서 살았습니다. 나는 그저 아주 정상적인 련애를 한번 했을뿐인데 이런 위협과 공갈을 받으니 너무 억울합니다. 나는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것도 잘못이란 말입니까?   이로 하여 무고한 사람이 이처럼 엄중한 상처를 입어야 한단 말입니까? 난 정말로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나에게 최대의 용기를 준 사람이 바로 상처가 채 낫지 않은 언파씨입니다. 그는 매우 굳셉니다. 그에게 감사를 드리며 나를 지지해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경찰들이 빠른 시일내에 흉수를 잡아낼것이라고 믿습니다.” 언파를 습격한 지점은 북경시 조양구 람도청사부근의 지하차고였다. 사건현장 세차로동자의 말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그날 언파가 자가용차를 몰고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4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중 3명이 수박을 쪼개는 칼을 들고 언파를 쫓았다. 언파는 50메터쯤 달아나다가 승강기 가까이까지 갔을 때 갑자기 넘어졌다. 3명의 남자는 번개같이 달려와서 칼로 언파를 찔렀다. 10여초동안에 일어난 일이였는데 3명의 흉수는 사건을 저지른후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그날 오후 기자들이 사건현장에 달려가보니 현장은 깨끗이 청소되여있었지만 땅바닥의 피흔적은 그대로 있었다. 제보를 받은 북경시공안국에서 현재 이 사건에 대해 전면적으로 수사하고있다.                  《신경보》    
60    “잠자는 공주”를 깨워준 “백마왕자” 댓글:  조회:3646  추천:0  2010-11-17
왕문양(32세)은 성도시 한 소프트웨어( 件)연구제작회사의 기술일군이였다. 부모들이 자꾸 아들에게 결혼을 독촉하는 바람에 녀자친구가 없었던 왕문양은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였다. 더우기 곧 다가올 음력설에 꼭 녀자친구를 집에 데려오라는 부모들의 명령에 왕문양은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그러던중 그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애인을 세줌”이라는 전문란을 보게 되였다.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진효정(29살)이라는 처녀와 련계를 취한후 직접 만나보았다. 원래 그녀는 성도시 한 전자회사의 출납원이였고 훤칠한 키에 이쁘장하게 생긴 처녀였다. 진효정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던 왕문양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날 도와주오. 효정이가 내 애인으로 가장하고 부모한테 인사만 드리면 되오. 부모님이 하도 결혼을 독촉하는 바람에… 사례금은 2000원을 주겠소”뜻밖에 진효정은 자신도 왕문양과 같은 처지라고 말하는것이였다. “사실 저도 문양씨와 동병상련이얘요. 제 부모님도 자꾸 결혼을 재촉해요. 문양씨도 가짜애인으로 되여 저의 부모님한테 인사드리면 돼요. 전 사례금은 받지 않겠어요.”음력설을 5일 앞둔 어느날, 왕문양은 “세맡은 애인”과 함께 할빈시의 고향집에 도착했다. 왕문양의 부모들은 며느리감을 보자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저녁식사후 진효정은 왕문양과 함께 할빈시의 큰 공원으로 놀러 갔다.   그림같은 풍경아래에서 두 사람은 마치 개구장이 애들처럼 즐겁게 뛰놀았다.그날 저녁에 진효정은 침실에서 잠을 잤고 왕문양은 객실의 쏘파에서 잠을 청했다. 침실의 불이 꺼지는 순간 왕문양은 귀여운 진효정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의 심장은 당금이라도 밖으로 튀여져나올것만 같았다. 이튿날 아침, 왕문양이 그녀의 침실문을 열어보니 진효정은 아직도 꿈나라에 빠져있었다. 그녀가 늦잠꾸러기인줄로 착각한 왕문양은 진효정을 깨우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4시가 되도록 깊은 잠에 빠져있는 그녀를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든 왕문양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깨를 흔들었다.   하지만 진효정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였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 왕문양은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건강상태를 자세히 진찰해보던 의사는 모든게 정상적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의사도 그녀가 긴시간동안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는 원인을 알지 못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날 저녁, 왕문양은 병원에서 진효정을 보살폈다. 달콤하게 자고있는 진효정의 얼굴을 바라보던 왕문양은 문득 그녀의 부모가 생각났다. 그들은 며칠동안 감감무소식이 된 딸을 얼마나 애타게 찾고있을가?  허나 진효정은 그가“세맡은 애인”인지라 그녀에 대해 아는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급해난 왕문양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냅다뛰는것이였다. 깜짝 놀란 왕문양은 그녀를 뒤쫓아가면서 “효정이, 어디 가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진효정은 “화장실로 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나온 진효정은 곧추 병실로 달려가더니 또 깊은 잠에  빠지는것이였다. 그제야 그녀가 혹시 몽유병에 걸린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 왕문양은 급히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진효정의 맥박, 심장박동 등을 검사해보더니 모든게 정상이라는것이였다. (혹시 그녀가 몽유병에 걸린것처럼 꾸미고 돈을 사기치려는것일가? 만약 그렇다면 이 모든것은 그녀가 꾸민 자작극이란 말인가?)이렇게 생각한 왕문양은 등골이 오싹해났다. 이틀, 사흘, 나흘… 진효정은 여전히 “잠자는 공주”로 있었다. 왕문양네 식구들은 그녀가 영원히 깨여나지 못할가봐 송곳방석에 앉은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왕문양은 “세맡은 애인”이 이토록 시끄러울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왕문양의 부모들은 빨리 진효정의 부모한테 련락을 취하라고 아들을 독촉했다. 하는수없이 왕문양은 그녀가“세맡은 애인”이라고 이실직고했다. 아연실색해진 두 량주는 땅바닥에 그만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닷새후, 진효정은 마침내 잠에서 깨여났다. 진효정은 왕문양의 부모한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한후 자신의 병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작년 음력설기간, 진효정은 된감기에 걸려 5일동안이나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여났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아무 리유없이 련속 4일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또 저절로 깨여났다. 후에는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날이 점점 길어만졌다. 하여 용하다는 의사들을 다 찾아가보았지만 의사들마다 이런 괴상한 병을 진단조차 내리지 못했다. 이런 괴상한 병때문에 진효정은 몇번이나 회사에서 사직당했고 결혼에 대해선 꿈도 꾸지 못했다.여기까지 말하고난 진효정은 긴 한숨을 내쉬는것이였다. 이튿날, 진효정은 성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 왕문양은 그녀의 호주머니에 현금 2000원을 찔러주었다. 진효정이 떠난후 왕문양은 집안이 텅텅 비여있는것만 같았고 밥맛도 잃어버렸다. 이때에야 왕문양은 자신이 진효정한테 호감이 생겼다는것을 느꼈다. 2주일후, 뜻밖에도 왕문양은 진효정이 부쳐온 우편물을 받았다. 우편물안에는 은행카드와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에는“문양씨, 전번에 페를 끼쳐서 미안해요. 이 카드안에 2600원이 들어있어요. 당신이 저한테 주었던 돈과 제가 입원했을 때 썼던 돈이예요”라고 씌여져있었다. 순간, 왕문양은 코마루가 찡해났고 괴상한 병에 시달리고있는 선량한 처녀를 평생 보살피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튿날, 왕문양은 휴가를 내고 진효정의 회사로 달려갔다. 은은한 가로등 불빛아래에서 왕문양은 그녀한테“효정씨, 난 당신을 좋아하오. 이제부터 내가 당신을 보살피겠소”라고 고백했다. 허나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있는 그녀는 그럴수 없다고 오금을 박아 말했다. 하지만 왕문양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날마다 진효정한테 찾아가 그녀를 즐겁게 해주었다. 진작부터 자상한 왕문양한테 호감을 가지고있었던 진효정은 끈질긴 그의 사랑에 감동되여 마음의 문을 열었다. 며칠후, 왕문양은 친구로부터 그녀의 병에 용하다는 상해시의 인제병원을 소개받았다. 의사는 효정이가 극히 희소한 신경성질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이 병은 발작성이 강하며 발작할 때 짧아서 4~7일정도, 길어서 30일정도 수면상태에 빠질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직까지 이런 병은 치료될 가능성이 극히 드물고 다만 장기간의 중의침구료법으로 모종 혈을 자극할 경우 약간의 효험을 볼수 있다는것이였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싶다고 진효정과 왕문양은 한가닥의 희망이라도 놓치고싶지 않았다. 이튿날 왕문양은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전문적으로 중의학원의 리교수한테서 중의침구료법을 배웠다. 또 왕문양은 날마다 맹인안마중심에 가서 안마기술도 익혔다. 한동안의 피타는 노력끝에 왕문양은 마침내 진효정한테 침구치료와 안마를 해줄수 있게 되였다. 매번 그녀를 안마해주고나면 그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진효정은 육체의 고통보다도 땀벌창이 되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감동되여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행복의 꽃물결이 넘실거렸다. 2009년 11월, 진효정은 또다시 병이 발작하여 2일동안이나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이 기간 왕문양은 줄곧 그녀한테 침을 놓고 안마를 해주면서 그녀가 깨여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사흘이 되던 날, 왕문양은 그녀의 어깨에 침을 깊게 찔렀다. 순간 진효정이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자신의 곁을 지키고있던 남자친구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그도그럴것이 그녀는 병이 발작한후 이번이 혼미상태에 빠져있었던 시간이 가장 짧았던것이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왕문양의 침구가 현저하게 효험을 보았던것이다. 그후에도 왕문양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녀자친구한테 침을 놓고 안마를 해주었다. 2010년,  진효정은 더는 병이 발작하지 않았다. 음력설기간, 왕문양은 녀자친구를 데리고 할빈시에 계시는 부모님한테 인사드리러 갔다. 건강해보이는 효정의 모습에 왕문양의 부모님도 그들의 결혼을 허락해주었다. 그날저녁에 왕문양은 금목걸이를 녀자친구의 목에 걸어주면서 “효정이, 난 이 목걸이처럼 당신을 한평생 내옆에 묶어두고싶소”라고 말했다. 진효정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넓은 품에 안겼다. 2010년 4월 28일, 왕문양은 진효정을 데리고 다시 상해시인제병원을 찾았다. 그녀를 자세히 진찰하던 의사는 왕문양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젊은이,  녀자친구의 병세는 기본상 호전되였소. 이제 발작할 가능성은 적소. 자네들이 기적을 창조해냈네.” 삽시에 왕문양과 진효정은 눈물범벅이 되여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들은 무한한 사랑의 힘으로 병마와 싸워 이겼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사랑의 힘으로 기적을 창조해낸것이였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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