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9월 8일 교구초대소에서 길림시 제1차 조선족문예창작대회 거행
1977년
5월 조선문 종합성문예간물 창간(도라지전신)
12월 15일부터 25일까지 강성극장초대소에서 길림시 제2차 창작학습반을 열었다.
1979년
7월 잡지(제4기)가 로 개칭
1980년
1월 잡지는 비정기적인 간행물로부터 계간물로 되였다.
8월 4일부터 8일까지 길림시교구 호점자에서 길림시 제3차 조선족 작가문학창작회를 열었는데 저명한 작가들인 임호,김철, 최현숙,작곡가 동희철,중앙방송국 조선어조 기자 김형식등이 참가하여 강의했다
1982년
3월 잡지는 제2기부터 잡지로 개칭.
8월 7일 편집부 전체인원들은 저명한 극작가 오족광과 평극표현예술가 신풍하의 강연을 들었다.
1983년
1월 잡지사에서는 20여일동안의 길림지구조선족 창작학습반을 개최했다.
3월 창작편집부에서는 영길현 구전에서 영길 창작중심소조를 건립했다.
1984년
1월 잡지는 계간으로부터 쌍월간으로 변했다.
8월 11일,중공길림성위 선전부에서는 잡지를 1985년부터 국내공개발행을 비준했다.신문잡지대호는 14---128호 선전부비준번호는 1984년 15호이다.
9월 9일부터 13일까지 잡지사에서는 전국조선족 소설가, 시인 필회를 개최했다.저명한 작가들인 리근전,조성일,남영전,류원무등 27명이 참가했다.
10월 30일 길림시 조선족예술관에서 발행 공개모임을 가졌다 모임에는 각현시 민족상무위원회 주임들과 각 조선족중소학교 교장들이 참가했다.
1985년
1월 잡지는 1기부터 국내외 공개발행으로 고쳤다.
1월 14일 문학상시상의식을 거행했다.수상작품들로는 류재순의 단편소설 ,리태근 단편 소설, 윤하룡의 시< 우리부녀려행가가.>, 금동춘의 시 , 장풍조의 민간이야기 이다.
1월 25일 부터 2월 2일까지 도라지 잡지사 김재국부주임은 반석에가서 조선족업여작가들에게 강의했다.
8월 27일 부터 31일 잡지사에서는 길림종이공장 초대소에서 전국조선족중청년작가 필회를 열었다.
9월 21일 길림시위선전부 부부장 정악봉,길림시문련상무부주석 위명거,길림시 문화국부국장 장지존,길림시 조선족군중예술관 부관장 남영식등동지들은 회의를 열고 길림시저선족문학예술련합회에서 잡지 주최단위로 한다고 토론결의했다.
1986년
8월말,영길현 알라디에촌에서 길림지구조선족 문학창작회를 열었다 40여명이 참가.
1987년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창간 10돐 기념행사를 가졌다.
1988년
7월 25일부터 28일까지 송화호에서 제4차중국조선족당대문학 연구회가 있었다.
1989년
8월 영길현 알라디촌에서 중국조선족 중청년작가 창작회가 있었다.전국각지에서 50여명작가들이 참가.
1992년
1월 21일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제1기 만석문학상시상식이 거행되였다.수상자들로는 남영전,한창선,강효근,김홍란,김재국,들이다.후원인은 길림시조선족 기업가 허만석.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잡지사는 길림시조선족문학예술연구회에서는.송화호에서 전국조선족 중청년 작가4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조선족 중청년작가필회를 가졌다.
1993년
1월 길림시 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는 제2기 시상의식이 있었다.
12월 17일 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는 길림지구 중점작가 좌담회를 소집했다.
1994년
5월 7일 도라지잡지사에서는 길림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1995년
3월 25일 잡지사에서는 길림시 은도빈관에서 제5기 시상시상식을 가졌다.
정세봉의 가문학상을 받았다.40여명이 참가했고 후원인은 한국 김철수박사.
4월 1일 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제3기,제4기 시상식이 있었다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잡지사와 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에서는 련합하여 길림시송화호가에서 제2기 소설탐구회를 조직했다.전국각지에서조선족작가 평론가 60명이 참가했다.
8월 3일부터 4일까지 잡지사와 잡지사에서는 련합하여 길림시 영길현 차로향 에서 전국조선문간행물합작회를 열었다.각잡지사 사장,총편등책임자 40여명이 참가.
1996년
10월 24일 잡지사에서는 제5기만석문학상시상식을 가졌다 정세봉,고신일등이 수상.30여명 참가.
12월 11일 길림시창이구정부회의실에서 제1기 “록원문학상”시상식이 있었다.길림시 조선족 각계인사 대표 40여명이 참가,수상자들로는 리원길 정세봉,허련순,최홍일.등이고 후원인은 연길시조선족기업가 박향숙이다.
1997년
6월 2일부터 3일까지 연변작가협회 김학천주석일행 4명은 예술관을 방문했고 만석문학상시상식에 출석했다.
6월 3일 길림시 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제6기 도라지만석문학상시상식을 열었다.수상자들로는 최홍일,조성희,리임원등이다.후언인은 길림시조선족기업가 허만석.40여명이 참가했다.연변작가협회주석김학천이 참가했고 길림지구조선족작가들과 좌담을 진행.
6월 16일 연길시 록원호텔에서 제2기,제3기 시상식이 있었다 수상자들로는 김홍란,석화 최홍일,우광훈,등이다.후원인은 한국 김철수 박사.60여명이 회의에 참가.
12월 16일 길림시 설류빈관에서 창간 20돐경축활동이 있었다. 길림시위,김림시정부및 길림시조선족각계인사들과 전국각지의 조선족작가 잡지사책임자등80여명이 참가했다.
12월17일 잡지사에서는 전국조선족작가,평론가들의 좌담회를 조직했다.
12월 잡지 창간 20돐기념작품집 을 출판했다.
1998년
6월 20일 연길시 록원호텔에서 제7기 만석문학상,및 제4기 문학상시상식이 있었다.후원인은 허만석기업가,한국 김철수박사,수상자들로는 류연산,허련순,량영철이다.
1999년
1월 14일 잡지사와 연변부녀발전촉진위원회에서는 공동으로 길림시 빈관에서 제2기 “중국조선족우수녀성,우수어머니”시상식이 있었다.41명이 참가.
9월 28일 연길시 송기호텔에서 제5기 문학상시상식이 있었다.길림시 문화국 부국장 리인옥녀사가출석,수상자들로는 리혜선,김혁,류연산,리동렬들이였고.후원인은 조선족녀성기업가 박향숙.50여명이 회의에 참가했다.
2000년
4월 11일 잡지사잡지사,길림시조선족문학예술연구회에서는 련합하여 길림시 “자광원”호텔에서 를 가졌다.전국각지의 조선족 작가,평론가,및 길림시조선족각계인사 25명이 참가했고 6편의 론문이 발표됐다.
7월 25일 길림시 동관빙관에서 제6기 문학상시상식이 있었다.원 길림시인대부주석 박규식출석.수상자들로는 리동렬,장혜영,윤림호,김관웅,등,한국 조천현기자가 후원 50여명이 출석.
10월 12일 잡지사와 연변작가협회,흑룡강성조선족창작위원회에서는 연길시 연변빈관에서 “류연산작품연구회”를 조잭했다.회의에는 전국각지 문학인 80여명이 출석했다.
11월 16일 길림시 교통호텔에서 제8기 만석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수상자들로는 김혁,리승국,장정일,리태복,등.36명이 회의에 출석했다.
2001년
4월 10일 잡지사는 북경에서 “북경시조선족 저명인사 좌담회”를 조직. 작가 김철,교수 황유복,기자 박일선,기업가 허만석등 30여명이 출석했다.
5월 30일 잡지사는 길림시조선족 군중예술관에서 길림지구 문학창작 좌담회를 조직.20여명이 출석했다.
8월 10일 길림시 강성호텔에서 제7기문학상과 제9기 만석문학상시상식이 있었다.수상자들로는 리원길 ,최국철,권선자,최순희,우광훈,리태복,서영빈,리선희,김춘옥,등.후원인은 한국 조천현기자와 조선기업가 허만석 등 60명이 회의에 출석했다.
2002년
7월 고신일소설,“9월은 울고있다”가 제7기 전국 소수민족 준마상을 획득.
8월 22일 강성호텔에서 제10기및 제8회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원 길림시 인대부주석 박규식이 출석.후원인은 북경 허만석기업가와 한국 조천현기자.수상자들로는 김훈,산천,임범송,고설봉,최국철,김성호,조룡남,조광명등이다.70여명이 출석.
2003년
2월 잡지사에서는 황유복교수의 보도자료집 “영원으로 뻗은 꿈의 길”을 출판했다.
7월 잡지는 길림성 1급간행물로 평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