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화
어느 자전거와의 인연
날이 좋아서 자전거를 타려고 벼른지도 며칠이 지난 주말 아침이였다.
그전날만 해도 봄우뢰소리가 우렁찼고 번개가 재빛구름을 번쩍번쩍 가르며 강한 바람에 비줄기도 세찬 하루였는데 언제 그랬냐는듯 맑은 아침이 열렸다. 저으기 흐뭇해지는 마음으로 오늘은 자전거를 빌려서 래일 쯤 자전거 려행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식후, 아침시장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나는 벌써 이곳저곳에 전화를 넣기 시작했다. 나의 들뜬 마음을 골려주기라도 하는듯 전화속으로 되돌아오는 답은 전부 실망으로 이어졌다.
어디서 빌리면 될가? 아니면 집에 있는 자전거라도 타야 하나?
사실 집에 자전거가 없는 것은 아니였다. 칠년전에 산 자전거이고 ‘영예훈장’을 달아줄 만도 한 자전거이기도 하다. 사자마자 이십여키로메터를 달려서 새 자전거를 길들였고 수년후에는 또 연태--청도, 이백여키로메터에 성공적으로 도전했으며 또 어느 날 ‘나 홀로 자전거 려행’이라는 테마를 걸고 굽이굽이 산길을 오십여키로메터 달렸었다. 그 사이사이에 아빠가 낚시하러도 다녔고, 여느 자전거나 다름없이 편하고 유용하게 사용되였던 자전거였다.
이런 자전거가 지난해 봄부터는 아빠트 1층 현관에 세워두지 못한다는 규정하에 다른 집들의 자전거, 오토바이와 함께 밖에 세워지게 되였다. 정차구역시설도 없고 게다가 큰길곁이라 먼지는 물론이고 비바람과 눈세례를 맞으면서 1년이 지나다 보니 겉면에 씌워둔 비닐도 찢어졌으며 자전거는 녹이 많이 쓸어있었다.
어차피 자전거를 빌리지 못할 바에는 ‘영예훈장’ 자전거를 닦고 손봐서 타야겠지라고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아침시장 남문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늘 붐비고 있는 이 도매시장은 자칫하면 주차할 자리도 찾지 못한다. 운이 좋아서인지 그날 우리 차는 도착하자마자 남문 맞은켠에 주차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별일이라면서 나와 남편은 서로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남편이 먼저 차에서 내리고 나는 뒤좌석에 있는 가방을 챙기고 조수석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남편쪽을 바라보는데 웬 청년이 남편 앞에 다가왔다. 몇발자국 걸어서 다가가 보니 새 자전거를 사겠냐며 말을 걸어왔다. 그 순간 우리는 또 서로 마주보며 웃음을 지었다. 서로 눈이 반짝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청년이 이끄는 대로 길건너 남문앞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또 한 청년이 서있었고 아직 조립하지 않은, 포장을 뜯지도 않은 자전거도 있었다.
말도 없이 그냥 서로 웃기만 하고 있는 우리한테 두 청년이 자전거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자전거판매가게에서 자전거를 백대 들여올 때 증정용으로 주는 자전거란다. 브랜드에는 꽝인 나에게 자전거업계에서 유명한 ××브랜드이며 가격표까지 보여주었다. 정가 2798원이였다.
남편이 얼마에 팔겠냐며 묻자 두 청년은 머뭇머뭇거리더니 800원이라고 했다. 남편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나는 500원이면 이 자전거를 가지겠다고 말했다. 가격이 너무 낮다고 좀더 보태달라는 청년들에게 나는 그냥 이 가격으로 결정하자고 했다. 그중 한 청년이 뜸을 들이더니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자전거 포장을 뜯어보지도 않은 채로 차에 실어버렸다. 담배값이라도 좀 얹어달라며 말하는 두 청년을 뒤로 하고.
새 자전거를 실고도 우리는 그냥 웃기만 했다. 사실 그 청년이 우리한테 다가와서 자전거가 있다며 얘기하는 순간부터 길건너 남문앞에 놓여진 자전거는 벌써 내 자전거가 되여있었다. 이미 나와 인연이 닿아있었던 것이다. 남편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였음을 나는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새 자전거를 조립하는 과정에 부품이 모자라거나 나사못 하나라도 부족하지 않을가 하는 걱정이 없진 않았지만 부품이 모자라면 이 자전거에 맞는 부품을 사면 되고 나사못이 부족하면 조립하는 아저씨한테 부탁하면 된다고 우리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 자전거를 실어놓고 아침시장에서 일을 보는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 내면으로 자전거와의 인연을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 자전거와의 인연으로 또 어떤 인연이 이어질가?”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이런 물음을 해왔다.
인연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인연이라…
인연도 막연한데 인연으로 이어지는 인연은 나한테 어떻게 다가올 것인지를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집에 있는 자전거를 닦고 손보기 귀찮아서라도 자전거 려행을 하지 않을 수가 있었지만 새 자전거가 인연으로 다가오니 나의 자전거 려행은 무조건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새 자전거의 조립과 려행중에 스치고 만나는 사람들과 바람 한점, 꽃 한송이, 잎새 한장, 해살 한톨, 혹은 비방울마저도 다 새로운 인연이 아닐가. 이런 인연들은 또 어떻게 나의 삶에 스며들 것이고 나에게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며 혹은 슬프고 아픈 스토리를 들려줄 것인가. 나 또한 이 인연들과 하나가 되면서 깊이 느껴지는 것들을 어떻게 글로 적어내려 갈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 스치고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겨왔던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자신을 반성해보았다. 고운 인연, 미운 인연 앞에서 제대로 숨 고르지도 못하던 내가 떠올랐다. 아직도 버벅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얼기설기 짜놓은 인연의 그물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듯했다.
남편이 툭 치면서 새 자전거를 조립하러 가자고 해서야 나는 인연에 대한 막연한 생각의 골짜기에서 헤여나올 수가 있었다.
우리는 ‘영예훈장’ 자전거를 늘 손봐주던 자전거수리부로 찾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자전거수리부 아저씨는 머리도 많이 빠져있었고 흰머리도 많이 나있었다. 그 아저씨는 익숙한 솜씨로 새 자전거를 척척 조립해주었고 불편한 곳이 없는지 한번 타보라고 했다. 다행히도 부품들은 모자라지가 않았고 나는 새 자전거로 집까지 안전운행을 할 수 있었다.
새 자전거라는 희열과 새로운 인연이라는 내면의 행복감에 사로잡혀 나는 올케와 함께 바로 이튿날 아침 일찍 바다가 려행을 하게 되였다. 파아란 아기 부채잎을 내민 은행나무 아래에서 신나게 달렸다. 도로 군데군데 화단에는 다양한 봄꽃들이 활짝 피여있었고 봄바람은 싱그러웠으며 바다는 황홀하기만 했다.
날이 좋아서 오늘은 좋은 봄날이네!
그리고 어느 드라마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그랬다.
새 자전거와의 인연이 좋았고 함께 달려주는 올케가 있어서 좋았고 달리면서 스치고 만나는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파장과 어쩌다 부딪쳐서, 혹은 겹치고 맞물려서, 혹은 나란히 함께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연들이 있어서 좋았다.
출처: 2017년 제4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