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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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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라지>>2017년 제6기 목록 댓글:  조회:1225  추천:0  2019-07-18
특별초대인 - 강효근 흙냄새(단편소설) 무엇을 깔아야 할가?(창작후기)   삼인 초대석 금  희 붉은 닻(단편소설) 남영도 장춘의 여백의 미(외1편)(수필) 변창렬 무지개(외6수)(시)  남영도 고부간의 일상 그리고 소소한 행복(수필) 수필 마당 - 리화편 가을을 만나다 맥맥데이트 그 작은 그림과 큰 여백 지진소동,그 하루의 반추   시조명 - 박춘월편 박춘월 고향(외8수) 함  소 시어들의 현란한 춤사위 그리고 그 상상의 변두리를 더듬어(비평)   하이프시 특집 방순애 성밖에서 (외1수) 한설매 비(외2수) 정두민 7월의 호수(외1수) 김향옥 상처 (외2수) 황희숙 책(외2수) 강시나 천년나무(외2수) 박문희 폭풍취우(외1수) 방산옥 빨래 (외2수) 최룡관 돌들 이야기 윤옥자 믿음(외2수) 신금화 여우 (외3수) 성  윤 무인도(외1수)   창작 무대 구용기 여기 저기 거기 (단편소설) 김경화 손가락 감싸면 주먹인 것을(단편소설) 류서연 삭발(수필) 김  단 '사이'의 온도(수필) 박금아 조률사(수필) 유자효 죽음(외5수)(시) 진명화 깨여진 거울(외3수)(시)   계렬칼럼 리여천 살며 생각하며   길림지구작가특집 김충국 동창생(벽소설) 김설연 마음의 풍경(수필) 김해숙 민들레(수필) 김향화 오늘밤 눈은 내리고 (수필) 리미란 빨간 자전거(수필) 리정철 누나,나 그리고 조카(수필) 김형권 란초(외1수)(시) 지미란 개나리(외1수)(시) 리영남 리별(외2수)(시)   장편소설 량춘식  한몽가(련재4)   시인과 시 최화길 바다를 마주하고 문학사 회원 3행시 모음  
3    [수필] 가을을 만나다-리화 댓글:  조회:807  추천:0  2019-07-18
리화  가을을 만나다   가을이면 의례 맑아지는 것이 있고 물드는 것이 있다. 하늘이 그렇고 땅이 그렇고 그사이에 나마저도 어디 숨을 곳이 없다. 아직 촐랑거리는 정도의 내 감성과 엷은 내공으로는 이 계절을 읊고 노래하기가 부끄럽다. 다만 그 속에서 한껏 맑아지고 깊게 물들기만 해야 한다. 야트막한 산에 올라 누렇게 물든 풀밭에 앉아서 멍을 때리던 어느 가을날이 있었다. 굳이 가을정취를 느끼려 산에 오른 것은 아니였지만 하늘은 그렇게 높게, 그렇게 푸르게 걸려있었다. 마치도 대지의 아픔을 거둬가기라도 하듯이. 그 맑고 푸른 빛은 구천에서 주렴처럼 드리워 산과 나무와 풀밭과 그 우에 앉아있는 나를 관통해 땅속 깊이 스며들었다. 눈 맞추는 잎새마다 얼굴 살짝 붉히고 풀잎들은 바스락거린다. 나무와 풀들은 저마다 예쁘게 물들면서 한여름의 탁하고 무겁고 치열했던 삶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어떤 것은 그 삶의 정화만 동그랗게 남겨두고 또 어떤 것은 굳이 열매 맺을 필요가 없다는듯 소탈하게 겨울차비를 서두르며. 매년 립추가 시작되면 나는 늘 가을을 찾아 서성거렸고 그러는 나에게 가을은 늘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으며 고스란히 내 안에 와주기만 했다.   익어라 가을   가을이 왔다. 위챗에도 가을이 왔다. 곱게 물든 단풍사진이 똘깍 소리와 함께 핸드폰을 물들이고 있다. 가을날의 안부는 이처럼 단풍사진 한장 만으로도 충분하다. 촬영관련 위챗계정들은 가을 려행지와 가을촬영에 대한 글들을 도배하고 있다. 한편한편 열어보면 어느새 그곳의 가을 속에 빠져버린다. 가까운 곳에 있는, 그 전해에 다녀왔던 은행나무숲으로 향한다. 가슴 설레이며 도착한 은행나무숲,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숲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벌거벗고 신음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는 나무가지들이 떨어져있었고 숲 전체가 강탈을 당한 느낌이다. 땅에는 계절을 앞당겨 떨어진 푸른 잎새들이 죽어가고 가지에는 몇몇 남지 않은 아픈 잎새들만 겨우 물들고 있었다. 그 전해의 황금빛 가을숲은 어디로 간 걸가. 그때 이 숲으로 왔을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였고 저녁해살에 숲 전체가 노란 물결로 반짝이고 있었다. 황금을 모아놓으면 이처럼 노랗게 반짝일가. 엄마는 그속에서 아이처럼 신나하시고 은행나무 잎들을 두 손으로 받쳐 우로 날리신다. 한잎한잎 내리는 노오란 잎새들 사이로 엄마의 웃음이 더 환하시다. 수북한 락엽 우에 앉아서 잎새들을 다리 우에 올려놓으며 ‘소꿉놀이’도 하신다. 엄마, 엄마의 가을이 너무 이쁘닷… 우리 딸 가을도 이처럼 아름답게 물들 거야… 그럴가? 노랗게 물들고 싶어… 이 잎새들처럼… 그럴 거야. 너 노란 조각달 좋아하잖아. 너의 가을은 분명 노랗게 물들 거야. 그해 가을 속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잎새를 단 은행나무가 가지를 뻗어있었고 숲의 노란 물결사이로 보라색 외투를 걸친 엄마가 천진란만하게 웃고 계셨다. 그러나! 지금은?! 살펴보니 은행 열매를 털어간 흔적이 력력했다. 은행 열매를 얼마나 털었으면 온 은행나무숲이 다 멍들고 벌거벗었을가…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는 열매를 미리 떨어뜨린 사람들, 사람들의 사심으로 생긴 악과였다. 분노가 일었다. 언젠가 집앞 거리에 심어진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익자 긴 막대기를 들고 가지를 툭툭 치던 사람모습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그럼 이 은행나무숲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막대기를 휘두르며 혹은 사다리로 올라가 은행 열매를 털었던 것일가. 짐작할 수가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털어서 팔면 수입이 많아질 것이니 모조리 깡그리 털어간 것 같았다.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사람들이지. 모든 것은 돈과 초점을 맞춰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보며 씁쓸해졌다. 손으로 이 숲들의 나무를 다 만져주면 이 숲의 아픔은 조금이라도 사라지는 것일가. 이 숲을 바라보며 아파했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서 미안하다고 얘기해주면 조금이나마 위안이라도 될가. 숲은 여전히 말이 없다. 잎새도 다 요절되여 서걱이며 대답해줄 수가 없다. 모처럼 아픈 가을을 만났고 숲은 나보다도 더 아프면서 침묵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탐욕은 락엽의 계절도 앞당겨 온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사심으로 잎새는 고운 바람 한번 제대로 들지 못하고 요절하고 만다. 온 세상이 물들어 황홀해야 할 이 가을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익어가야 할 이 가을을, 부디 다치지 말자. 가을바람이 불어도 물들 잎새가 없는 가을은 삭막하다. 잎새야, 바람 들어라.   빛나라 가을   익어서 다가오는 가을은 풍요로움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헛헛하고 아픈 마음을 얹어주기도 한다. 십자거리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문득 싸늘한 이 공기와 십자로 놓여진 길이 겹치면서 추억의 정경 같은 막연한 그리움이 몰려든다. 담배진처럼 지독한 이 그리움의 정체는 무엇일가… 이 정체 모를 무엇인가를 찾아서 길에 오르고 싶어진다. 새벽부터 길에 올라 떠돌이를 하고 싶어진다. 길에 오르면 내가 원하는 뭔가를 만나거나 느낄지도 몰라. 새벽 장거리 뻐스에 오르자 세상은 그제서야 고요히 열리기 시작했다. 재빛, 푸름푸름, 연홍빛, 엷은 젖빛 물안개… 이런 것들이 내가 찾는 막연한 정체인 걸가. 세상이 고즈넉하고 평화롭게 밝아온다. 새벽길에 오르면 새들의 지저귐도, 이른아침 어느 산사의 고요한 정적도, 아침해살에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숲도, 레루 우에서 빛나는 가을 해살도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솔잎, 그 파아란 바늘 끝 마다에 령롱한 이슬이 맺힌 천년로송도 만날 수 있다. 발뒤축을 들고 입술을 가져다댈 수 있는 행운이 이어지고 솔향이 스며든 이슬이 입술을 달게 적셔준다. 행인에게 내려주는 하늘의 은혜 같은 것일가. 이 감로수를 받아서 차 한잔 달여내면 또 얼마나 향기로울가. 가을의 투명한 빛 아래 세상도 빛나고 있었다. 헛헛하고 아픈 것들이 조금 눅잦혀질 것만 같다. 이런 헛헛함과 아픈 것들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아니여서, 마치도 매년마다 가을이 오듯이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기에, 이 투명한 가을 해빛 아래 자주 바래주어야 한다. 물든 가을잎새마냥 스스로 그 투명한 해빛 아래서 더 짙게 물들고 더 순하게 반짝일 수 있어야 한다. 그해도 나는 가을 속의 물든 잎새 한장인듯 그렇게 가을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제법 잘 익은 어느 가을 잎새를 닮은 그런 색 코트 목깃을 세우고, 짙은 회색 스키니 바지를 입고, 두 어깨에는 해골도안이 찍힌 큼직한 배낭을 멨다. 목에는 회색 목수건을 두르고. 하늘은 파랗게 빛나고 다리 밑으로는 가을 해볕만 흐르고 있었다. 다리 량켠으로는 나무들이 빨갛게 노랗게 물들어있었다. 나는 그 속에 있었다. 그 속에서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숨차게 걷고 있었다. 사람들의 물결 속을 비집고 씨엉씨엉 걸어가는 그대의 걸음이 버겁게 빠르다. 부지런히 뒤따르지만 그대의 발꿈치를 따르지 못한다. 올리막길을 한참 걸어서 도착한 곳은 가을 단풍산의 산자락이였다. 울긋불긋 커다란 가을산이 빛나고 있었다. 잠간 현기증이 들었다. 노랗게 빛나는 잎새가 춤추듯이 떨어진다. 그 나무 아래로 다가서니 노란 잎새들이 머리에도 어깨에도 살풋이 내려 내 머리며 내 어깨에 빛을 더해준다. 한켠에서는 단풍나무가 빨갛게 빛나고 있다. 그대는 그 빨간 빛 속에 흠뻑 빠져있는 것 같다. 산이 빛나고 사람이 빛나고 세상이 빛나고 있었다. 삶에는 늘 빛이 고여있는듯 싶었다. 가을산에 오르면 이런 가을에 빠져서 돌아오고 싶지가 않다. 조금만 머물러있어도 잘 익은 저 나무잎들마냥 열매들마냥 성숙한 녀인으로 무르익고 빛날듯 싶다. 무성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그 삶의 방증과 훌훌 털어버리고 소탈하게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저도 몰래 가을의 성품도 닮아가고 싶어진다. 절정에 오른 가을 단풍산. 그 속에는 나도 있고 그대도 있었다. 잠간이였지만 우리는 벌써 물들어있었다. 우리는 벌써 빛나고 있었다. 그대는 빨갛게 나는 노랗게. 서산 우로 노을이 타오르고 우리는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다그쳤다. 그것은 수년전 어느 늦가을이였다. 출처:2017년 제 6기 목록  
2    [수필]‘사이’의 온도-김단 댓글:  조회:790  추천:0  2019-07-18
김단  ‘사이’의 온도   1. 말주머니 여는 온도   창 밖은 노랗게 달아오른 해살에 아스팔트가 끈적해지고 내 마음에서는 심열이 솟구쳐 안팎으로 열기가 후끈후끈 해난다. 무더위 속 도심에는 행인의 그림자를 보기 드물다. 모두들 에어컨 바람이 제대로 나오는 상가를 찾아 맛있는 점심을 즐기고 있지 않으면 도시를 벗어나 어느 시원한 계곡에 맥주와 수박을 담궈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이참에 도시도 내면의 무게를 비우고 나른한 휴식을 즐길 모양이다. 날씨도 덥고 입맛도 없으니 외출하지도 말고 오늘은 집에서 시원한 오이랭국이나 해먹을려고 오랜만에 랭장고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랭장고 신선실에 챙겨놓은 야채가 보였다. 게다가 크고 작은 반찬통들이 살을 맞대고 빼곡이 들어앉아있다. ‘오이랭국이고 뭐고 랭장고 청소부터 해야겠구나…’ 손이 가는 대로 제일 앞에 있는 반찬통을 열어보았다. 시큼한 냄새와 함께 소고기고추졸임 사이사이에 파랗고 하얀 솜 같은 곰팡이들이 듬성듬성 들어앉았다. “랭장고에 보관했다가 며칠 지나서도 다 못 먹으면 한번 데웠다가 식혀서 다시 랭장고에 넣어둬라.” 엄마가 당부했던 것처럼 소고기고추졸임의 온도를 조금만 조절해주었더라면 ‘수명’을 조금이나마 더 늘일 수 있었던건데… 그 외에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음식들이 가득했다. 언제 료리 의욕이 충만했던 날에 사두었던 기본재료들인지 아니면 지나가던 길에 그냥 행사가격이여서 통 크게 샀던 음식들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이어트를 결심했던 날에 샀던 바나나 한뭉치도 그 고운 살결에 주근깨가 다닥다닥 돋아나있었고 더위에 물컹물컹해져 냄새가 나기 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될듯 싶다.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건 류통기한이 지난 음식뿐만 아니였다. 자연과 인간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동물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 등 세상 모든 것이 온도에 의해 가늠이 되였다.   온도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변질돼가는 사이사이가 점점 위태롭다. 사람사이에 류통기한이 박혀있는 것도 아니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 뒤 변했다고 쓰레기통으로 버릴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둘의 온도   “나는 아이가 생기면 이렇게 피곤하게 살지 않을 거예요.” “직접 나서 키워보면 알게 될게요.” 결혼생활 1년차, 동료들의 얘기가 새삼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아이까지 생기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줄어들 것이다.       리허설 없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인생무대에서 난생처음 엄마라는 역할을 맡게 되는 우리는 때로는 서툴게, 때로는 설레이게 아이와의 온도를 맞춰간다. “어제 밤에 아이가 여러번 잠에서 깨는 바람에 난 선잠을 잤어. 아휴 피곤해.” 아이는 엄마에게 쾌적한 거리감각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다. 숨막히고 뜨겁도록 가까운 사이를 원한다. 엄마는 그 뜨거운 사이에서 자신을 소진시키기도 한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어쩌다 니가 올린 글을 읽어볼 여유가 생겼어. 나이가 들면서 자꾸 늘어가는 배역에 가끔 힘이 부친다. 엄마배역만 하다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10분, 이런 마음이 뻥 뚫리게 좋은 글 더 부탁해.” 대학동창생이 밤 11시에 위챗 모멘트에 올린 나의 글을 읽고 나서 올린 대글이였다. 요즘 위챗 모멘트에 아이 엄마들은 자신의 일상보다는 아이와 함께 보낸 일상을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아이가 있는 동료 언니들은 출근하여도 얼굴에는 항상 피곤한 기색이 력력하다. 낮에는 열심히 근무하고 퇴근후면 집으로 돌아가 아이와 놀아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나는 가끔 리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나는 절대 피곤하게 아이를 키우지 않을 거라는 다짐도 미리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고 엄마가 되기 위한 온도는 원초적 본능이였다. “집에 먹을 반찬은 있니? 된장하고 고추가루 더 가져다줄까? 새로 해둔 게 있는데…” “집 아래에 왔다, 내려오라.” “올라오세요, 쉬다가요.” “할 일이 많아서 먹을거리만 주고 가야 한다. 얼른 내려오라.”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생활했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소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엄마는 늘 외국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엄마 냄새가 배인 옷을 꺼내 눈을 감고 킁킁 맡았다. 향긋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면 엄마가 바로 내 곁으로 소환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을 한 뒤 엄마는 며칠에 한번씩 여러가지 반찬거리를 날라주셨다. 다리가 아프니 무거운 걸 들고 오지 말고 내가 가지러 가겠다고 해도 고집스럽게 꼭 들고 오셨다. “끼니를 해먹을 시간이 없으면 반찬 꺼내먹으면 편하다.” 일주일에 며칠씩 꼬박꼬박 날라다 주는 그 보자기 속 반찬들은 내가 지치지 않고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힘이 되여주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옷장 습기가 큼큼하게 배여있는 엄마 옷에 코를 갖다대면서 증발된 엄마의 흔적을 애타게 더듬어낼 필요가 없었고 휴일날 외국에서 걸려올 엄마의 전화를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외국으로 돈 벌러 갔을 때 엄마 나이는 기껏해야 서른다섯, 지금의 나보다 고작 세살 더 많은 녀자였다. 서로 떨어져있어도 아이인 나는 엄마의 온도가 항상 부드럽고 따뜻했다. 꼭마치 내가 엄마의 자궁 속에서 하나의 우주로 자라날 때의 그 부드러웠던 물마냥… 그리고 나도 서서히 그 온도를 지니게 된다. 내 몸속의 새로운 우주의 기원을 위하여.   너와 나의 온도   “오늘 저녁엔 뭘 먹으러 갈까?” “아무거나 니들 먹고 싶은 거로.” “양고기뀀 먹으러 갈래?” “어제 뀀 먹었어.” “그럼 어디 갈건데?” “아무래나, 니들 가고 싶은 대로.” “아, 몰라 너희 둘이 결정해라, 밥한끼 먹기 힘들구나.” “그래 먹지 마, 먹지 마.” 머리를 맞대고 뭘 먹을가 서로 열을 올리다가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셋 다 동시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그중 한 친구가 갑자기 음악을 틀고 살풀이 무용을 추기 시작한다. 하나 둘 입으로 구호를 중얼거리며 추는 걸 보아서는 공연안무를 익숙히 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또 한명은 아예 커피숍 쏘파에 드러누워서 식지로 핸드폰 화면을 부단히 밀어올린다. 저 추임새는 인터넷 쇼핑을 하기 위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는 것임이 틀림없다. 나는 한쪽으로 이들을 보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갓 구워 올린 피자를 입으로 밀어넣으면서 허기진 배를 달래기에 바쁘다. 얼굴은 편안하고 표정은 소박하며 몸은 자유로워지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제일 행복한 온도를 느끼고 있다. 목에 피대를 세우고 얼굴이 벌개지도록 열 띤 토론을 하다가 갑자기 대화가 뚝 끊겨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간간히 일 얘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 어떤 획기적인 결론이거나 큰 성과를 내야 하는 회의와는 다르다. 가끔 인과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이 질서 없이 마구 툭툭 튀여나와도 우리는 매끈하게 얘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누구의 말을 자르고 앞다투어 대답을 하든 누구의 말에 집중을 하지 않고 또다른 엉뚱한 말을 내뱉든 이런 것들은 우리 사이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질풍노도의 감정 얘기도 빠질 수가 없다. 말하는 사람이 온도를 높여가면 듣는 사람은 비난과 질책이 아닌 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을 가지면서 상대방의 온도를 조절해준다. 말하는 사람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뻔히 알고 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으니 듣는 사람이 공감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사회에 나가면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라는 말에 반박이라도 하는듯 나는 현재 제일 친한 친구들을 학교에서가 아닌 사회에서 만나 지금까지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 우정의 기원에 대해 우리 서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 누구도 서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얘들아, 한시간째 못 결정하고 있다. 저녁을 어디 가 먹니?” “그냥 전번에 갔던 데로 가자.” “그래, 그러자.” 매번 치열한 토론을 해도 결국은 문턱이 닳토록 다니던 단골 맛집을 가군 했다. 우리 사이 마음 온도는 늘 36.5도로 순환되면서 처음이나 지금이나 우리 사이를 맴도는 공기는 부드럽고, 기쁨과 슬픔, 한숨과 침묵이 과장되는 법이 없이 단순하게 넘나든다.   마무리 온도   “만나면 같이 밥 먹자.” “응, 알았어.” 사이의 온도를 알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반가우면 다음에로 미루지 말고 마주친 순간에 마음의 주파수를 맞춰 바로 식사를 하면서 술이라도 한잔 기울였으련만…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인사에 “응, 알았어.”라고 미리 정해둔 건설적인 답도 있다는 점이다. 짧은 인사뒤 이내 어색한 기운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간다. 만약 엘레베터와 같이 사방이 막힌 좁은 공간에서라면 온몸이 간지러워나 견디기 힘든 증상은 더 빨리 나타난다. 마침 그날 입은 옷에 호주머니도 없다면 갈 곳을 잃은 두 손은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찾아갔을 것이다. “전화번호나 위챗 알려줘 후에 전화할께.” 위챗을 추가하고 전화번호를 저장했지만 우리 서로는 일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말 그대로 전화번호와 위챗아이디만 저장된 ‘아는 사이’로 존재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의 접촉이 더 빈번해진다. 정이 많아 따뜻한 사람, 마음이 닫혀있어서 미지근한 사람, 때론 상대방의 온도가 높아서 당황할 때도 있고 너무 차가워서 오싹해날 때도 있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사람들 사이의 온도 때문에 나는 명치끝에 바위가 걸린 듯한 체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차가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현기증을 느끼기도 한다. “넌 정말 최고야”로 나의 열정에 불쏘시개를 넣어주다가도 “이것밖에 안되니”로 찬물을 확 끼얹는다. 두뇌를 가동하고 몰두하여 일을 하고 있는데 “쟤네들은 정말 쉽게 일한다.”는 공기의 궤도에 따라 우리의 고막을 간지럽힌다. 이렇듯 사이의 온도는 언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친절한 인사에도 사이 좋은 대화에도 진심어린 부탁에도 나는 스스로 온도를 부단히 내려 조절한다. 표정은 무뚝뚝하게 언어는 차갑게 행동은 무관심하게 늘 그런 온도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또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내가 변함없이 0도를 유지해도 상대방은 더웠다 차가웠다를 반복하면서 나를 녹였다 끓였다 한다. 롱락당한 느낌만 들 뿐이다. 무기력한 관계 속에서 때로는 쓰레기가 아닌 진심도 관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마음속으로 얼려둔 ‘감정 쓰레기’들은 하나둘 늘어난다. 자신의 온도를 무조건 낮춘다 해서 혼탁하던 ‘사이’의 공기가 순식간에 맑아질 수는 없을 터이니 다른 사람들과도 36.5도의 쾌적한 마음의 온도를 가져보는 건 어떨가?  공동체적 삶을 살았던 예전 사람들은 무리를 떠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관계에 금이 가면 직접적으로 생존에 협박이 가기 때문이다. 째지게 가난했던 시절도 그들 사이는 쾌적한 36.5도를 유지하면서 살아갔다. 음식에 대한 불안이 크지 않은 현대인들 ‘사이’는 오히려 조화롭지 못하다. 환경과 사람 사이의 온도 때문에 지구는 매일 민감해지고 있다. 몇도의 차이로 우리는 삶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지만 정작 북극곰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위험에 빠진다. 지구의 온난화로 북극곰은 ‘온도의 피해자’로 되고 사람들은 온도의 과잉 혹은 온도의 부족으로 점차 ‘감정의 난민’으로 된다. 탈출이 불가한 우리들 ‘사이’에는 파괴성적인 재앙을 막아낼 수 있는 적절한 ‘온도’가 필요하다. 출처: 2017년 제6기 목록  
1    [시] 무지개1(외6수)-변창렬 댓글:  조회:598  추천:0  2019-07-18
 변창렬  무지개1(외6수)   애꿎은 길손으로 지나가는 소나기의 얄궂은 눈웃음이다 찌프린 하늘에 대충 갚으려는 버거운 품삯이였지   너무 희게 보이면 수건 하나의 값 뿐이고 너무 붉게 나타나면 꽃 하나의 값 뿐이라 무작정 비싼 값으로 황홀하게 바치는 품값 꿈틀거리는 씨앗들도 가는 손가락 올리밀어 탐내는 품삯이다   부아통 터진 햇쌀은 심술이 나서 눈 깜짝할 새에 허공은행에 저축하고 만다   텅 빈 들판은 멍청스레 하늘만 더듬고 잃어버린 눈섭 찾고 있다 찾는다고 칠색마저 찾아올 것이가   무지개2   비로 씻은 거울에 서 있는 나 두 다리 곧게 하고 두 팔 뻗친 체조시간이다   늘어나는 다리와 길어지는 팔 누군가 입혀준 색동저고리   거울이 너무 작아 땅속으로 뿌리내린 두 팔과 다리 솟는 것이 힘이다 칠색조가 난다 신나게 부푸는 하늘 내가 펼친 하늘이다   잠자리   울타리에서 졸다가 신이 내렸는지 나의 손가락에 옮겨앉아 점을 치고 있다   여섯 발가락으로 수십년 찌든 때가 끼인 나의 손가락 하나 붙잡고 동양철학을 풀고 있나 부다   애매한 잔금에는 흙과 돌 그리고 물등으로 기구하게 헷갈린 문드러진 흔적 뿐인데   땅에서 걷는 놈과 허공에서 나는 놈을 마구잡이 뜯어 고칠려나 무치하게 간지러워진다   요리조리 굴러대는 눈망울에는 나의 눈빛이 스며있어 들숨날숨까지도 한박자 되는 순간이다   뭔가 알아차렸는지 훌쩍 날아가버려 다시 들여다봤더니 손금이 몽땅 없어진 것이다 훔쳐갔을 거다   꿈은 아니여도 생시는 아닌 철학풀이가 풀어졌단 말인가?!   입   골짜기는 거멓게 그슬어있다 그 속에 묻힌 그늘은 발버둥쳐도 나올 수 없어 몸부림 끝에 바람으로 쓰러진다   쓰러진 귀신딱지는 잡풀을 뒤집어쓰고 애매한 넉두리로 헐떡이다가 토해낸 것이 계곡의 물이였다   숱한 아가리가 게워낸 타액은 지독스레 맑아서 차가워진다 속일 수 없는 설음이 썩을 수 없어 뒹굴며 떨어지는 목덜미에서 또다른 숨소리로 울먹이고 있다   크게 벌린 아가리에는 점 하나로 찍힌 입 달린 두 발 짐승들이 걸어서 들어온다   죽어서 가야 할 성산이라고 찾아가서 낱낱이 뒤지는 곳 아가리는 아가리 속에 살고 싶어 또다른 아가리 만들고 있다   껍질이 얼굴로   장고는  얼굴이 두개나 있다   늦고 빠른 흐느낌은 소의 소리와 개의 소리로 말라든 껍질 속에 젖어든다   밭 가는 소의 소리는 지는 해를 새김질하여 밥그릇에 담긴 신음소리 되고 뼈 핥는 개의 이갈이는 뜨는 달을 삼킨 채 목에 걸린 탁한 게 석쉼한 부르짖음이다   소의 머리에는 뿔이 있어도 찌를 줄 모르는 쑥스런 해돋이의 그늘이 있고 개의 얼굴에는 뿔은 없어도 이빨이 있어 지는 해를 물어뜯는 찢어진 그늘이 있다   장고의 두쪽에 씌워진 껍질 우는 소 웃는 개의 빳빳한 가죽으로 낯설어 남의 껍데기가 나의 얼굴로 맞고 사는 쓰라린 통곡은 참고 있다   거리   동전 하나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높이 던졌다   떨어지는 그 사이에 초로 계산되는 거리가 있다 바람도 지나가고 구름도 지나가고 해빛도 비집고 지나갔다 아직도 채 떨어지지 않은 그 찰나에 잠자리 하나도 에돌아갔다 이때 지나가던 지렁이가 멈춰섰다 온몸을 배배 꼬면서 뒹군다   동전도 멈추었다 떨어지면 박살나는 게 지렁이가 아니란 걸 안다 천천히 떨어졌다 내 손바닥이다 손바닥에는 바람과 구름 해빛들의 마구잡이 냄새가 구수하다   동전은 가치가 있다 땀이란 액체가 동전이란 고체로 반전할 때 그 거리에서 꽤나 버거울거라   던지는 속도보다 더 빠른 떨어지는 거리여   구멍은 점이 아니다   새들은 눈부시여 하늘에서는  눈을 감고 난다고 한다 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 구름이 들어갈가 봐 눈을 감는지 누구도 모른다   새는 날면서 길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하늘에 터널을 만드는 것이다 그 터널에서 혼자만이 지나가면 없어지고 마는 터널이라 왜서인지 그림자도 없었다   넓은 하늘에는 티도 없는데 새는 점이 되여 작은 구멍으로 뚫려있는지 스스로가 알 수 없었지   땅 우에 사는 우리의 눈으로 하늘에서 나는 새가 점 하나로 보일 뿐 구멍으로 보일 수 없다만 구름의 눈에는 하늘의 구멍은 새 뿐인가 할거다 출처:2017년 제6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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