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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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민박회 사람들 댓글:  조회:2600  추천:30  2009-04-28
  일곱 번째 이야기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나의 인생은 황량한 중국의 동북에서 새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땅은 늘 나에게 배움의 땅이요 개척의 땅이요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오늘의 나를 잊고 미래를 향해 뛸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준 수많은 스승들이 있다. 그래서 그 땅은 내게 미래의 땅이요, 거듭남의 땅이다.  민박회 사람들 북경 아시안 게임이 열리기 직전이었던 1990년 10월 초, 북경에서 우연한 기회에 김진경 총장님을 만나 뵙고 난 이후 그에게 감동을 받아 연변과학기술 대학 사역에 동참 해 온지 올해로 18년째다. 내 인생의 후반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사역 기간을 통하여 중국 인민과 조선족 사회를 마음에 품을 수 있게 된 것을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값지고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총장님의 권면과 집사람의 내조에 힘입어 북경에 있는 중앙민족대학 박사 과정에 입학한 것이 2003년 9월이었다. 나는 기업인이었고 더군다나 5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연변과기대를 통해서 면학 분위기를 익히고 산학협동 프로젝트를 주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법으로 배움의 길을 택하게 된 셈이다. 중앙민족대학 사회학학원은 민족학계와 사회학계로 분류된다. 나는 민족학계 부문을 전공하면서 중국의 소수민족정책과 변경지역 이중문화 형성 및 변천 과정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중국 동북지역에 입주한 한민족 이민들의 토지 개척사로부터 항일 독립투쟁 및 중국 공민(조선족)으로의 전환, 1978년 개혁개방 후 국내대도시 진출 및 해외 노무진출에 따른 조선족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붕괴현상에 이르는 일련의 사회문화 변천과정을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동북아 정세의 시대 변화에 따라 단련되고 축적된 조선족 사회의 문화적 특질을 오늘날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어떻게 적응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열린 민족주의 차원에서의 접근을 연구 테마로 삼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 「동북아 국제협력시대 조선족사회문화기능 연구」 라는 제목의 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졸업 1년 후인 2007년 가을에,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이라는 단행본을 한국의 학술전문출판사인 「박영사」에서 출판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이 금년 3월에 중국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의 감수를 거쳐 세계지식출판사에서 중국어판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나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족 사회를 위해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 되었다. 나는 감히 이 저서를 내 인생을 통하여 얻은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열매라고 여기며, 책이 출판되기까지 도와주고 협조해 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런 가운데 각별히 잊지 못할 특수집단(?)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민박회다. 민박회란 ‘중앙민족대학 박사학위 동학회’를 줄여서 쓰는 말이다. 2006년도 졸업 민족학계 동기생들이 약 15명 정도 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소수민족 출신들이며, 소수민족 언어학과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일부 한족 출신들로 구성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지방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상당한 지위를 갖고 교수 및 연구 활동을 해온 삼십대 후반에서 오십대까지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중국 학계에도 해외 유학파들의 귀국이 대폭 늘어남에 따라, 그동안 석사 자격만 갖고도 교수 생활을 해왔던 인력들이 교수 직책을 계속 유지하려면 박사 학위를 받아야한다는 규정이 생겨서 어렵사리 파견근무 형태로 북경에 와서 공부를 하게 된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과의 만남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 나는 누구를 만나던 그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가치있고 창의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는 일을 좋아했다.  졸업이 다가오자 나는 만학을 하는 내게 특별한 우정을 나누어준 이들과의 만남을 계속하고 싶어 나의 가장 가까운 동기인 전신자 교수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2006년 민족학계 졸업동기생 모임을 만들어 방학을 이용해 일년에 한번씩이라도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역을 순회여행하면서 토론도 하고 서로의 연구실적을 나누는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동기생들 모두가 이 제안을 환영해 모임이 만들어졌다. 내가 가장 연장자이며 모임의 제안자라는 이유로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내몽고 대학 예술학원 교수인 서영(徐英)박사를 부회장으로, 연변대학 사회학과교수인 전신자(全信子)박사를 총무로 임명했다. 그렇게 만학의 추억을 나눈 중국의 소수민족 10여명과 함께 민박회를 만들게 됐던 것이다. 이후 우리는 작년 2007년 여름에 내몽고 자치구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시에서 첫 번째 민박회모임을 가졌고, 올해는 8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4일간의 일정으로 연변조선족 자치주 연길에서 두 번째 모임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는 연변과기대 일로 연길을 자주 다니다가 지난 8월 7일에는 특별히 민박회모임을 위해 연길로 향했다. 그리고 이날부터 3박 4일간의 여정을 통하여 세계역사의 새로운 흐름을 깨닫는, 역사의식의 전환과 변곡점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12    『희망의 역사』12 (이승률21) 댓글:  조회:3025  추천:93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Ⅻ. 나는 금년 5월 중순경에 하와이 출장 계획이 잡혀있다. 9월 5일 개교 예정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소식을 교민사회에 전하고, 개교 준비에 필요한 교육기자재 지원업무와 교수인력 교류를 상담하기 위해 각계 기관과 하와이 대학을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하와이 대학에서는 특별히 미래전략센터 소장인 짐 데이토(Jim Dator, 73세) 교수를 만나도록 약속이 되어있다. 그는 미래학의 대부로 불리고 있으며, 1967년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협회’를 만들어 미래학(future study)이란 학문 분야를 처음으로 개척한 선구자다. 그는 지난 1월 초 한국을 방문 했을 때 “정보화사회 다음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는 해일이 밀려든다”고 단언했다.(chosun.com 1월 8일 기사 참조) 그는 ‘드림 소사이어티’가 꿈과 이미지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경제의 주력엔진이 ‘정보’에서 ‘이미지’로 넘어가고, 상상력과 창조성이 핵심 국가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이 ‘드림 소사이어티에 진입한 세계 1호 국가’라고 평가했다. 한국이 “한류(韓流)”라는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상품으로 포장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짐 데이토 교수가 사용하는 전문용어들 가운데 이런 게 있다. 국민총생산(GNP) 대신에 국민총매력(GNC: Gross National Cool)이란 지표를 쓰자고 하는 제안이 그것이다. GNP가 한 나라 국민이 생산한 모든 상품가치의 합, 즉 물질(재화․서비스의 총생산)에 기준한 것이라면, GNC는 한 나라가 얼마나 쿨(cool, 매력적)한가에 의해 그 나라의 부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이미지의 생산, 결합, 유통이 주 평가요소가 된다. 나는 짐 데이토 교수를 만나면, 동북아사회의 새로운 미래가치 창조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볼 작정이다. 그의 대답이 벌써부터 자못 궁금해진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쩌면 우리 동북아 국민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상호호혜주의에 입각한 퓨전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퓨전(fusion)을 길게 늘여 쓰면 future vision이 된다. 동북아사회의 future vision을 ‘fusion’에 두고, 그 핵심역량을 ‘사랑’이라고 하는 이미지에 결부시켜 보자. “사랑으로 융합된 힘” 이것이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가치를 이끌어내는 이미지 파워(Image Power)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이미지 파워를 가진 신크래틱스 리더십(Syncretics Leadership : 갈등을 통합하는 리더십)들이 각국에서 왕성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과거사에 묶여있는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천박한 패권의식의 한계(레드 오션)를 벗어나 국민들의 마인드 세트(Mind Set)를 개방적인 대아(大我)의 경지 ― 선린공동체의식으로 전환시켜 나감으로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해저 깊이 잠복되어 있던) 잠재능력과 상상력과 창의성을 통합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이 융합된 지식과 힘을, 정치․경제․사회․산업․기술․과학․교육․문화 등 여러 부문에 적용하여 새로운 가치 개혁의 국제 클러스터(International Cluster)를 구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주창하는 ‘동북아 연합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비전이 우리를 「드림 소사이어티」로 향하게 하는 시대정신이요,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블루 오션으로 나아가게 하는 「희망의 역사」다. 일본 열도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한 몸의 공동체로 융합하고 연결하는 일은, 동양의 선진들이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대동사회」로 진입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나는 신명을 다 바쳐 이 길을 예비하고 개척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사회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정보공동체로 변모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 정보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국민총매력(GNC)의 이미지 파워가 우리들의 의식구조와 제도와 생활양식을 통째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하는 신문명 시대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 간에 기득권을 고집하며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는 정략배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그 묵은 관습의 껍질이 얼마나 누추하게 보이는지! 이제 그만 우리 새로워지자. 새로운 꿈과 이미지로 우리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자. EU(유럽연합)의 통합정신을 본받아 우리 아시아권(圈)에서도 각 국가의 지도자들과 인재들이 서로 내면적 소통을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아름다운 기회를 만들어보자. 이를 위한 상징적 대안으로 나는 「2008년 북경올림픽 기념 평화철도 운행계획」을 적극 추진할 것이며, 그리고 이 계획이 성사되면 그때 아키히토 일황 가족들을 「평화철도」의 VIP로 정중히 초대코자 한다. 아키히토 일황과 나루히토 왕세자가 나란히 평화열차를 타고 한반도(남북한)를 거쳐 중국의 수도 북경역에 도착하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라! 과거 「명치(明治)유신」시대였다면 정복자로, 지배자로, 허리에 총칼을 차고 근엄한 얼굴로 입성했을 일황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대상황을 잘 분별하고 있는 아키히토 일황은 「명인(明仁)유신」의 화해자로, 섬기는 자로, 만면에 배려 깊은 사랑과 겸손과 양보의 미소를 띠며 평화의 사도로 그곳에 당도할 것이다. (*여기서 큰 고민이 생긴다. 1860년대 도쿠가와 막부 때 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과 조직력을 갖춘 일본의 현 집권당과 정부 관료들이 아키히토 일황의 「명인유신」을 인정하고 그 대열에 순순히 따라 나설지가 미지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미리 알고,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위해 창의적인 개혁의 길을 걸어가고자 꿈꾸는 인재들은 반드시 있으리라! 당시 「명치유신」을 일으킬 때는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경향에 따라 자국의 부국강병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지만(대표적 인물: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 화폐 만엔권 도안 인물), 이제는 지구촌 정보사회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세계화 경향에 따라 통합적인 사고의 지도력으로 지역공동체 경제발전 및 집단 안보체제를 이끌어가야 할 시대이다. 꿈과 이미지와 사랑으로 융합하는 퓨전의 정신을 겸비한 신크래틱스(Syncretics) 리더들이 아키히토 일황을 모시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가치개혁을 이루어 나간다면, 이들이야말로 내가 제안한 「명인유신」의 비전을 실천하는 핵심역량의 인재집단이 될 것이다.) 나는 상상해본다. 평화열차를 타고 2008년 북경올림픽이 열리는 중국을 향해 나아갈 때, 한반도(남북한)를 통과하는 아키히토 일황의 심정은 어떠할까. 아마도 그는 故 이수현 군을 마음속 깊이 추모하면서, 고인이 보여주었던 헌신과 희생의 정신, 그 사랑의 복음적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려고 노력할 것 같다. 일본을 상징하는 신분으로서 국제평화를 위해 故 이수현 군처럼 살신성인하는 자세를 보이고 싶어 할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진정으로 그렇기만 하다면, 우린 일본을 용납해야 되지 않겠는가. 일국을 대표하는 왕의 신분으로, 죽음을 각오하는 마음으로 과거사의 과오를 씻어내려고 한다면, 그 점을 우리는 높이 평가하고 새 시대의 동역자로, 친구로 받아들여야 되지 않겠는가. (*이 점에서 나는 또 고민이 생긴다. 혹시 일부 한국인들이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상기하면서, “중국을 치려니 길을 비켜달라”고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명가도(征明假道)」론을 다시 들먹이며, 나를 민족의 반역자쯤으로 몰아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시대의 메가트렌드인 Open Mind & Network의 물결이,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치고 바다로 나아가듯, 우리를 진보적인 존재가치와 「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등을 떠밀고 있음이 자명하지 않는가!) 이로서 일본은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씻고, (독일처럼) 주변국가들과 함께 손잡고 화해하며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거듭난 모습으로 세계 속에 부각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되어야만,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주변국가들의 적대적 감정을 해소하고, (일본)스스로 가해자로서 느끼는 가책의 족쇄를 풀고 일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화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GNC(국민총매력) 강국으로서의  ‘새로운 일본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이 진정한 국제평화주의자로 거듭나는 것이 또한 동북아 평화발전의 새 길을 열어가는 대안이 되지 않겠는가. 한반도의 통일문제와 북핵문제도 자연스럽게 고차적인 협상의 단계로 업그레이드(Up-Grade)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며, 그리고 평화발전정책을 국가발전의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있는 중국 후진타오 정부의 위상을 (경제대국에 이어) 외교 강국으로까지 끌어 올리는, 획기적인 진보의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30년 전에 일본을 방문했던 등소평 주석의 “열정”이 기억난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 당시 등소평 주석은 신칸센을 타고 일본 주요도시 여러 곳을 탐방하면서 특히 일본의 과학기술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었다. 이 일이 중국의 개혁개방과 근대화를 이루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던가. 어쩌면 2008년 북경올림픽에 참가할 아키히토 일황 일행들이 중국의 여러 도시를 탐방하면서 중국의 신경제개발지역과 신기술산업단지를 둘러볼 기회를 가진다면, 그 역시 중국의 저력과 장미빛 미래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 않겠는가. 이 일이 또한 일본과의 새로운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는 지름길이 되지 않겠는가. “일본의 이미지를 바꾸라” 비행기가 현해탄을 건너 한반도의 내륙으로 진입하자 나는 조용히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지난 3박 4일 동안의 큐슈 여행을 통하여 듣고 보고 느낀 점을 감안하여,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에게 한마디 권면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보니, 바로 이 말이 떠올랐다. 현해탄의 해저터널은, (내가 믿기로) 언젠가는 건설될 것이다. 아키히토 일황께서 그때까지 생존해계셔서 (지금은 후쿠오카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나 쾌속선을 타고 건너가지만) 언젠가 신칸센과 KTX 고속열차를 타고 현해탄의 해저터널을 건너 “도쿄에서 런던까지” 유람하는, 아름다운 「희망의 역사」를 실현하는 기회를 더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한일양국에서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조선시대 한일간 교류의 첨병이었던 ‘조선통신사’가 다녔던 도시들을 주축으로 지역주민들이 저마다 경쟁적으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를 TV를 통해서 본 바가 있다. 예를 들면 나가사키, 야마구치 현(縣)과 시즈오카, 하코네 시(市) 등의 주민들은 부산에서 준비하고 있는 행사에 참석해 자기 지역 마쓰리(축제)행사를 선보이고, 또 부산 시민들은 쓰시마, 도쿄 등지를 찾아가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한다고 한다. 2000년에 있었던 일본․네덜란드 교류 400주년 기념행사 중의 하나로 실행되었던 대륙간 철도여행이, 나의 이번 큐슈여행을 통해 새로운 창의적 대안(‘도쿄에서 런던까지’)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올해 4월말 경에 열리게 될 한국․일본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하여 무엇인가 한일간에 새롭고 진취적인 가치개혁의 지평(地平)이 열렸으면 좋겠다. 비행시간 내내 깊은 묵상에 빠져있던 나는 목적지에 다 와 간다는 기내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눈을 떴다. 옆자리의 아내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 머리를 매만지며 입국할 준비를 한다. “이번 여행, 참 좋았어요. 다음에 또 데려가줘요.” 아내로부터 큰 점수를 땄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한마디 응해주었다. “그래. 우리 늘 함께 다닙시다. 당신 멋져. 사랑해.” 아내가 소녀처럼 해맑게 웃는다. 얼마 있지 않아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영종도에서 산동반도를 바라보는 쪽의 서해바다가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중국에서 불어온 황사현상 때문인가? 오늘따라 유난히 붉은 노을이 피를 토하듯 붉고, 그 아래 「레드 오션」으로 불리울만한 붉은 물결이 대륙풍 바람에 떠밀려 거세게 출렁대고 있었다. (끝)
11    『희망의 역사』11 (이승률20) 댓글:  조회:2821  추천:96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Ⅺ.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에서 삼삼회 창립10주년 기념행사를 마친 우리 일행들은 골프장과 일본야쿠르트사(社) 관계자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후쿠오카 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주말 서울행 여행객들이 많아져서 공항이 붐비고 또 요즘은 소지품 검사가 까다로워져서 출국수속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출국수속을  밟고 있는 동안 나는 「후쿠오카 일한친선협회」에 근무하는 박용득(재일 조선인 3세) 사무국장께 전화를 했다. 이시이 회장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으며, 또한 우리가 함께 논의했던 2008년 북경올림픽기념 평화철도운행계획(“도쿄에서 런던까지”)을 잘 준비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끝까지 힘을 합쳐 나가자는 뜻을 다시 한번 진중히 전달해주기를 요청했다. “박 국장님, 이번에 처음 만났지만 낯설지가 않고 집안 친척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앞으로 자주 연락하고, 서로 돕고,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남 같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실천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또한 재일 조선인 3․4세들이 장차 이중국적을 갖고 한일간 관계 개선을 위해 퓨전반도체(*삼성전자에서 최근 개발한 신기술 제품)의 칩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출국 수속을 끝내고 쇼핑점에서 손자 녀석에게 줄 선물(과자류)을 고르고 있는데 한국에서 장거리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부산발전연구원에 있는 실무자 한 분이, 4월 말경에 있을 한일간 국제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해줄수 있겠는가 하는 문의를 해왔다. 특히 이번 세미나는 해저터널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일본과 부산 지역 간의 교통물류 확대발전 방안을 토론하게 된다고 한다. 나는 쾌히 승락했다. 이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마도 지난해 11월 초, 부산시청이 주최했던 제1회 국제한상세미나에 초청되어 가서 “동북아 물류중심도시로서 부산의 발전방안”을 발제한 것이 인연이 되었는가 보다. 그때 부산시 관계자들과 전문인력 및 시민 청중들 앞에서  “부산(釜山)이 발전하려면 부산을 뛰어넘어야 한다. 한일간에 해저터널을 뚫고, 거제도(巨濟島)와 쓰시마(對馬島)를 묶어 상호출자형 한일공동자유무역지대로 만들면서 부산 신항과 신국제공항을 연결하여 부산만 일대를「거부(巨釜) TRI PORT」로 육성하는 것이 21세기형 국제항만도시로서의 부산 발전방안이라고 본다. 이래야만 부산이 일본과의 역조를 뛰어넘고 뒤따라오는 중국과 상해 신항(新港)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기염을 토한 바 있다. 아무튼, 부산발전연구원에서 이를 평가하여 한일간 국제세미나에 다시 발제자로 초청해주겠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 세미나에서는 내가 그토록 깊은 관심을 가져왔던 한일간 해저터널건설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고 하지 않는가. 비행기 탑승시간이 됐다. 일행들은 기내 좌석에 앉자마자 대부분 눈을 감고 쉬는 모습이다. 며칠간 계속 운동을 했기 때문에 많이 피로했던 것 같다. 나도 조용히 눈을 감고 (호텔 온천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단전에 힘을 모으고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깊은 묵상에 빠져 들어갔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3박 4일간의 행적이 하나의 원형도표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떠오른다. 첫날 저녁, “당신 멋져”라는 건배 구호를 외치며 기분 좋게 출발했던 만찬 분위기. 다음날 오후, 바쁘게 콜택시를 타고 가서 만난 이시이 회장과의 뜻 깊은 대화 ― 일본과 네덜란드 교류 400주년을 기념하는 24일간의 대륙 철도여행, 부산․후쿠오카 간의 1일 생활 문화현상, 그리고 마침내 “도쿄에서 런던까지” 이어지는 북경올림픽 기념 평화철도계획에 대한 논의 등이 꿈결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 셋째 날 아침, 새벽 온천에서 느낀 카타르시스의 경험과 말할 수없는 영적 기쁨의 힘, 그날 낮에 18홀을 돌면서 12번이나 벙커에 빠져 쩔쩔맸던 모습. 산기슭 언덕에 외롭게 피어있던 늙은 매화나무 가지의 작은 꽃잎들, 그리고 밤늦도록 “설중한매와 진달래”의 향기에 젖어 만취했던 저녁 만찬. 만찬 이후 온천장(옥외탕)에서 만난 신지 사장과의 대화 ― 故 이수현 군에 관한 영화 이야기, 아키히토 일황의 약속과 평화주의자로서의 이미지, 인시아드(INSEAD) 김위찬 교수의 「블루 오션 전략」복습, 그리고 마침내 일본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명인 유신」의 제안 등이 천둥처럼 뇌리를 울린다. 마지막 날 아침, 카네자키 항에서 현해탄을 바라보며 올린 새벽기도, 함께 믿음의 고백을 나눈 부부애, 그리고 (어깨가 아파서) 마음을 비우고 몸의 힘을 빼고 부드럽게 스윙을 한 결과 싱글에 가까운 실력(83타)을 회복한 마지막 라운딩. 이 모든 장면들이 영화처럼 파노라믹하게 망막에 떠오른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생각의 깊이가 더해진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의식의 흐름이 굽이치는 강물처럼 뇌리 속을 엄습한다. 지난 5월 중순 (터키 에베소에서 열린) 유럽CBMC 대회를 가는 도중에 들렀던 두바이 지역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꿈꾸는 지도자가 나라를 살린다” 이 말은 두바이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를 일컫는 말이다. 창조적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사막과 바다에 세계 최고급의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불세출의 인물이다. 단적인 예로 70㎞ 해안을 1,700㎞로 늘리는 기적을 연출했다. 바다를 메워 세계지도를 본떠 대형 공원을 만든 후, 해당 국가의 기업인들에게 휴양지로 팔아먹는 상술이다. 그는 정치지도자라기 보다는 유능한 CEO에 가까운 통치자다. 또 꿈을 팔아먹는 기가 막힌 천재가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사(社)의 빌 게이츠 회장은, 지난 1월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최대 IT전시회인 ‘CES 2007’의 기조연설을 통하여, MS(마이크로 소프트)가 수년간 공들여서 만든 신상품인 ‘가정용 윈도 비스타’를 소개하면서, 소비자들이 모든 종류의 컴퓨터와 준(MP3플레이어), X박스(게임기)뿐만 아니라, 이제는 거리에서도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가전제품과 연결되는 ‘윈도 홈서비스’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각종 기기를 연결해서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연결된 경험(connected experiences)’이라고 표현하면서 “융합하고 연결하라, 꿈의 디지털 세상이 우리 곁에 펼쳐진다”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가전제품을 위시한 모든 하드웨어가 24시간 연결된 상태에서 생활하게될 신세계의 꿈을 팔아먹겠다는 내용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팔아먹을 것인가? 우리 동북아 3국에 ‘두바이의 기적’과 같은 일을 실현할 만한 대안은 없는가? 또 빌게이츠의 ‘꿈의 디지털 세상’과 같은 신기술상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다팔 수 있는 재능은 없는가? 우리 한중일 3국이 힘을 합하여, 이런 일을 감당할만한 창의적인 인재집단을 키워낼 수는 없을까? 지속적인 가치개혁과 미래지향적인 역사의식을 한데 융합하고 연결하는, 동북아 블루 오션의 새로운 인프라 스트럭쳐(new  infrastructure)를 구축할만한 야심과 기개는 없는가? (계속)
10    『희망의 역사』10 (이승률19) 댓글:  조회:2978  추천:84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Ⅹ. 마지막 날(넷째 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대로 아내와 함께 카네자키 항으로 갔다. 지난밤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되어, 아내를 설득한 후 호텔 프론트에 내려가서 콜택시 하나를 (새벽에 이용할 수 있도록) 미리 부탁해 놓았었다. 현해탄을 바라보며, 직접 그 푸른 바다의 새벽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네자키 항은 호텔에서 차량 거리로 불과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항구는 아직 날이 깨지 않아 어둡고 조용했다. 선착장 입구의 주차장에 택시를 주차시켜 놓은 후 나와 아내는 일본인 운전기사의 안내로 부둣가로 다가갔다. 새벽 조업을 하기 위해 어부들 7-8명이 두 척의 고깃배를 드나들면서 출항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부둣가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에 비친 어부들의 표정이 조금은 긴장되어 보이는 기색이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숭고하다. 오늘은 또 어떤 하루의 역사를 우리들에게 제공해줄 것인가. 택시기사에게 저들이 주로 어떤 고기를 잡느냐고 물어봤더니, 손수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아라까부’라는 고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큰 것은 1마리에 500¥까지 팔린다고 하면서, 해안으로부터 5~10km이상 떨어진 곳에서 릴낚시로 조업을 한다고 했다. 출항준비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차츰 수평선 저 너머 멀리서부터 날이 밝아오는 감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포구를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탁본을 뜰 때 나타나는 글자와 그림처럼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해탄의 새벽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 이 현해탄의 해저에 새 길을 열어 주십시오. 항공과 해운으로만 운송되던 물류가 철도와 도로를 통해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새 길을 열어 주십시오. 그래서 빙산의 일각으로 교류하던 수준을 뛰어 넘어, 수면 속에 잠복되어 있는 모든 인적․물적 자원의 잠재능력을 총체적으로 시너지화 할 수 있도록 새 길을 열어주십시오. 상품과 기술과 문화와 자금과 인력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 교류협력 할 수 있는 자유무역의 새 길을 열어주십시오. 새 시대, 새로운 역사발전을 위한 대동맥의 통로를 열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마침내 과거사로부터 떠밀려온 한일간 레드 오션의 운명을 미래지향적인 블루 오션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변화시켜 주십시오. 서로의 장점을 나누어 가짐으로서, 서로의 강점과 비전을 창의적으로 융합함으로서 더 큰 진보를 이룩해가는 창조적인 가치개혁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시오. 블루 오션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동북아의 새로운 새벽을 깨우는 현해탄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먼동이 트는 바다를 응시하며, 뜨거운 울음을 삼키듯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아내가 곁에서 팔로 내 등을 감싸안은 채 함께 마음을 모아주었다. 하늘이 점점 더 밝아지면서, 항구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새 날이 열리는 현해탄의 푸른 파도가 더없이 정답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마침내 조업을 준비하던 고깃배 두 척이 선착장을 떠나 출항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손을 흔들어주며 그들의 하루 일과를 축복해주었다. 선착장에 오래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어 주차장으로 가서 택시를 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며 또 한번 이렇게 속삭였다. “나, 잘했지. 내가 생각해도 참 잘한 것 같아. 그리고 당신 멋져.” 예고 없이 새벽 일찍 요란(?)을 떨며 데리고 나온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스럽기도 해서 한 말이다. 아내는 처음에는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나”하는 투로 생각했지만, 막상 카네자키 항에 와서 현해탄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기도할 때는, 남편의 생각과 뜻이 자신에게도 전해져서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일체화되는 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의 신앙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히브리서 11장 1절)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구하면, 그 믿음을 통하여 우리들의 바라는 바 꿈과 소망이 하나님 뜻 안에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믿음이 신앙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한일간 해저터널」이 한일간의 관계개선과 동북아 평화발전의 공동선을 창출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하는 것을 면밀히 목도하고 싶어진다. 나는 택시 안에서 아내의 손을 잡은 채 우리들의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기면서 겐까이 로얄호텔로 돌아왔다. 새벽부터 돌아다녀서 그런지 아침 조찬이 더욱 맛있었다. 우리 삼삼회 일행들은 호텔 체크아웃을 마친 다음 어제 갔던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으로 다시 갔다. 36홀 골프장이라서, 어제와는 다른 코스로 라운딩을 했다. 날씨는 여전히 좋았고, 스코어도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좋게 나왔다. 함께 라운딩을 했던 이은선 회장께서 칭찬을 해주셨다. “이 부총장은 몸이 불편하다 하면서도 좀체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을 비워서 그런가, 스윙 폼도 부드럽고 퍼팅 감각도 매우 안정되어 있어.” 이 말씀을 듣고 나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 사람을 얼마나 안정되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어렵기도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이라고 누군가 말해주던 것이 기억났다. 개인 간에, 단체 간에, 국가 간에도 이러한 절제의 미학과 능력이 잘 훈련되어서 각자의 컨디션을 안정되게 이끌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내가 잘나서 마음을 비운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깨가 몹시 아파서 어쩔 수없이 하프 스윙 정도로 한다는 게 마음을 비운 꼴이 되어 결과적으로 플레이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 것이다. 이런 깨우침이 들자,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에 관한 일화가 다시 생각났다. 그는 일본 「마쓰시다 전기」의 창업자로서, 일본인들이 뽑은 지난 1천년간의 가장 위대한 경영인으로 추앙받은 인물이다. 흔히 일컬어지고 있는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3가지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첫째 : 11세에 조실부모했기 때문에, 철이 일찍 들었다. 둘째 : 어릴 적부터 건강이 나빴기 때문에, 늘 건강을 조심하여 95세까지 장수(1894-1989)할 수 있었다. 셋째 :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한 후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배움에 겸손하게 되어 그 결과로 경영의 귀재(National 社,  Panasonic 社 운영)가 되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아픔과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겸손히, 성실하게 정진해 나간다면, 그 아픔과 약점이 우리의 인생을, 기업을, 국가를 오히려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터닝포인트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얼마 전(EU탄생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이스라엘을 방문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Markel) 총리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을 방문하고 남긴 글이다. 용기 있게 자신의 과오와 약점을 인정하고 주변국가와 함께 손잡고 화해의 길로 나선 독일 덕분에 지금 유럽은 국경도 허물고 각종 제도를 통일시켜 가면서 공동의 번영을 꾀하고 있다. 독일과 나란히 2차대전의 전범국가였던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금 유럽에는 독일이 “또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없고 또 메르켈 총리가 발 벗고 나서면 유럽과 세계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크게 각광 받는다. 반면에 일본이 힘을 과시할 조짐을 보이면 주변 국가들은 바짝 긴장하고 의심부터 하게 된다. 고이즈미 전(前)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때도 그랬거니와, 아베 현(現) 총리의 종군위안부 발언만 해도, 주변국가의 만류와 우려를 무시한 채 국제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고서야 누가 일본 총리의 리더십을 존중해 주겠는가? 도대체 무엇이 독일과 일본을 이렇게 차이나게 만드는가?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의 마지막 코스를 라운딩하면서 나는 일본 지도자들이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의 일생과 독일의 경우를 교훈삼아 자신과 국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에 성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절제하는 미덕으로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자신의 아픔과 약점과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면서, 겸허하게 이웃과 벗하면서, 함께 더불어 사는 정신으로 공동선을 이루어 나간다면, 동북아 평화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일본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블루 오션의 대로가 열리지 않겠는가? (계속)
9    『희망의 역사』9 (이승률18) 댓글:  조회:2753  추천:59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Ⅸ. 겐까이 로얄호텔로 돌아온 우리 일행들은 간단히 온천을 마친 다음 2층에 있는 일본식당 오토메(浜乙女)에 모여 큐슈여행의 마지막 만찬을 함께 했다. 조선인 3세(女)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이름을 물어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었지만, 우리를 특별히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평일에 한산했던 호텔이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갑자기 붐비기 시작했다. 이 오토메 식당도 손님들로 가득 찼다. 호텔 투숙객보다 일반 손님들이 더 많았고, 그들 대부분은 회식을 하기 위해 온 일본인 직장단체팀들이었다. 좌장격인 이은선 회장께서 저녁 만찬을 위해 내게 건배사를 해주기를 요청하셨다. 나는 현해탄 해안도로를 달리며 느꼈던 소감을 잠시 이야기 한 후, 누구에게나 다 내일을 향한 꿈을 갖고 살아야 된다는 뜻으로 ‘진달래’ 구호를 선창했다. “진정으로 달콤한 래일(내일)을 위하여” 술잔이 오고가면서 “위하여(與), 위하야(野), 위하세(世), 위하고(高)” 등등의 후렴이 계속 터져 나왔다. 오늘 술(정종)은 김경철 회장께서 만찬을 위하여 낮에 쇼핑할 때 준비해놓으신 것인데, 식당 주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 뒤 사용했다. 술병에 붙어 있는 상표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 「설중한매(雪中寒梅)」 홀연히 나는 오늘 낮에 라운딩을 하던 중에 보았던, 산기슭 후미진 곳에 외롭게 서있던 늙은 매화나무의 잔가지에 피어난 작은 꽃잎들을 다시 한번 망막에 떠올렸다. 새삼스레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뇌리 속으로 한가닥 영감의 빛이 빠르게 지나갔다. 「설중한매와 진달래」 어쩌면 이 두 가지 소재는 오늘날의 동북아 시대상황을 적절히 대변하는, 새봄을 알리는 첫 화신(花信)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끝나기 전, 아직도 눈이 덮여 있는 산골짜기에 찬바람을 맞으며 피어나는 매화의 꽃잎처럼, 지난 2월 13일 북경에서 타결된 6자회담의 공동성명은, 어쩌면 아직도 많은 의구심과 살벌한 탐색전이 남아 있는 한랭전선 속에 피어난, 새로운 협상과 해결책을 위한 작은 신호가 아니겠는가? 「악의 축」이라고까지 불리던 저 엄혹한 동토의 대지 위에도 새 봄의 꽃은 피려나? 「설중한매」의 향기에 취하여 술기운이 고조되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한번 건배사를 외쳤다. “진달래! 진정으로 달콤한 한반도의 내일을 위하여 건배!” 술기운 탓인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김소월(金素月)이 노래한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을 속으로 암송해봤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저렇게 아름다운 영변의 땅 속에 핵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재앙의 불씨가 숨겨져 있다니! “오, 하나님! 영변의 약산 진달래가 진정으로 달콤한 한반도의 내일을 위한 새봄의 꽃이 되게 해 주십시오. 칠천만 온 민족이 한마음으로 즈려밟고 가도 좋을, 핵이 제거된 그 땅을 넘치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달려갈 수 있도록 새 봄의 길을 열어 주십시오. 다시 한번 일본과 한반도와 중국이 실질적인 평화체제의 한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우리 모두를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주십시오.” 「설중한매」의 향기에 취하고, 「진달래」의 감동에 취하여 그날 밤 나는 크게 만취하였다. 식당마감시간인 밤 10시가 지나서야 우리 일행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행들과 헤어진 후 나와 아내는 어제 밤처럼 또 중정에 나가 산책을 했다. 벤치에 앉아 아내를 내 가슴에 끌어안고 한참동안 잠자듯이 휴식을 취했다. 마음에 큰 위로와 행복이 넘쳐났다. 아내의 제안으로 우리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가 휴게실 안마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몸을 풀고 나서 또 온천을 했다. 우리 내외만큼 온천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온천을 하면 심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크게 증대되는 것을 느낀다. 일본에 여행을 올 때마다, 일본에서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일본의 온천 문화다. 이 겐까이 로얄호텔의 온천장도 수질이 뛰어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애용한다고 한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천장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또 옥외탕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옥외탕에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반신욕을 하면서  시원한 밤공기를 가슴 속 깊숙이 들이마셨다가 내뿜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술기운이 확 깨고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심신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인간의 폐를 펼쳐 놓으면 정구장 크기만큼이나 된다고 한다. 호흡을 깊고 길게 하는 훈련은 폐활량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잠재된 정신력의 깊이를 확장하는데 매우 좋은 훈련이 된다. 이는 마치 깊은 샘에서 청량한 물을 길어 올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얼마동안 심호흡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3․40대로 보이는 일본인 두 사람이 조용히 옥외탕 안으로 들어와 앉는 게 눈에 띄었다. 나는 심심하던 차에 그들 곁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미숙한 영어이지만, 웃으며 천천히 말을 건넸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영어에 대해서는 콤플렉스를 느끼고 도망치듯 피하는 게 예사인데, 두 사람 중 한 분이 다행히 영어를 잘 알고 있어서 나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의 이름은 신지 오야마, 나이는 38세, 원래 고향은 나라 현(縣)이었으나 지금은 나가사키 시(市)에서 살고 있고, 그곳에서 무역상을 하고 있으며 7살난 아들 한명이 있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다른 또 한 분은 후쿠오카 시내에서 도서출판회사의 중역으로  있으며, 나이는 45세, 고향은 오사카 태생이고 이름은 나까무라 겐죠라고 했다. 나는 그날 밤에, 이번 큐슈여행 중 일본인들과의 만남 가운데 (이시이 회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의미 있는 만남이라고 여겨질 만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대화는 주로 신지 사장과 나누었으며, 30분 넘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신지 사장은, 내가 나가사키市를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도시라고 추켜세우고, 또한 네덜란드와 큐슈 간의 교류가 일본 근대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나가사키市 부근에 네덜란드 풍으로 건설한 신도시 「하우스텐보스」야말로 동서문화의 융합을 대표할만한 국제문화자산이라 생각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자 기분이 좋았던지 좀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계속 싱글벙글거렸다. 이렇게 되자 그도 내게 친근감을 나타내며, 6년 전에 도쿄의 한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해놓고 숨진 한국인 유학생 故 이수현 군에 대해 칭찬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대뜸 이수현 군을 기리는 추모영화가 얼마 전에 개봉되었는데, 그걸 봤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했고, 한국에서는 방영되지 않았다고 대답해줬다. 그러자 신지 사장은 요즘 일본 여성들 사이에 우상이 되어 있는 몇몇 한국 연예인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들보다 이수현 군이 얼마나 더 훌륭한 사람인가를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여기서 나는 일본 남성들이 한국 연예인 인기남들을 싫어하고 견제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내가 보기에 성격이 매우 활달해 보이는 신지 사장은, 이수현 군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계속 지껄이도록 내버려두고 주로 듣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지난 1월 26일, 故 이수현 군의 6주기를 맞아 한국과 일본이 합작해서 만든 추모영화 시사회에 일본 천황 부부가 참석한 사실에 대해 무척 자랑스럽다는 뜻을 나타냈다. “It's great, It's great!" 신지 사장은 연거푸 이렇게 외치듯 말했다. 이수현 군의 선행도 훌륭하지만, 일본 천황이 이수현씨 부모와 5년 전에 한 약속을 지켰다는 점을 매우 중시하는 어투였다. 그의 얼굴에 일본인 특유의 애국심이 번졌다. 나도 이수현 군에 대한 뉴스를 국내 언론을 통해서 여러 번 듣고 있어서 잘 알고 있던 터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약 한 달 전쯤에 읽었던 신문기사가 기억이 났다. “「너를 잊지 않을거야」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이날 오후 도쿄 일본 소방회관에서 공개됐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이수현씨가 숨진 이듬해 고인의 부모를 도쿄 왕궁으로 초청해 위로했다. 이때 이수현씨 추모영화가 만들어지면 시사회에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신지 사장은 옥외탕의 물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면서까지 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며 말했다. (나는 그가 「나라」현 출신이라서 그의 선조가 혹시 백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인인 내게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일본 천황이 한국 관련 민간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일본 황실이 한일 관계의 개선을 희망하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면서, 일황의 이런 행보가 그동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일본 정부요인들이나 우파 집단에 대해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평소 일본인들이 황실의 근황에 대해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나는  지난 1월 중순경에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우정의 가교 콘서트 2007’이라는 행사에 일본의 나루히토(德仁)왕세자가 비올라 연주자로 직접 참여했다는 뉴스를 인터넷신문에서 본 바가 있다. 그리고 그때 그 왕세자는 연주를 마친 뒤 무대에 올라가 “대단히 귀중한 경험을 얻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한․중․일 3국의 우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례적인 즉석  연설을 했다는 기사를 읽어서 기억하고 있다. 또한 (내가 알기로) 아키히토 천황이 2005년 6월 사이판 섬을 방문했을 때, 그 행사일정 첫 번째 순서로 한국평화기념탑을 참배한 바 있으며, 여러 차례 일제 군국주의의 한반도 지배를 사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또 기자회견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세계 속에서 일본 황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하는 등 ‘평화주의자’로서의 인식을 높여주었다는 평가를 들은 기억이 났다. 신지 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일본의 국민들이 아키히토(明仁) 일황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를 무척 존경하고 있으며, 또한 고이즈미 전(前)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서 군국주의 패권의식을 조장하려고 했던 사실에 대해 황실이 결코 동의하지 않았음을 (내게) 알려주려고 애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지 사장과 그의 동료는, 끝으로, 이수현 군의 추모 영화제목을 인용하여 내게 “이 선생님, 저도 이 선생님을 잊지 않을 겁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넨 후 조용히 먼저 온천장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후에도 나는 한참동안 멍한 상태로 그냥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온 얼굴과 가슴에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어쩌면 아키히토 일황이 바라는 한중일 3국 간의 평화는 진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수현 군의 6주기에 참석하여 5년 전에 이군의 부모들과 약속했던 바를 지켰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든 심경적 진실이 무엇이었겠는가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단연코) 이수현 군이 보여주었던 희생적인 사랑의 능력이 일황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또 이러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이야말로 앞으로 이 시대 한중일 3국 간에 새로운 평화체제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 같았다. 이러한 ‘황실의 판단’은 나로 하여금 이번 큐슈여행을 통해 줄곧 생각해왔던 동북아시대 「희망의 역사」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이수현 군이 우리에게 보여준 헌신과 희생의 정신, 그 사랑의 복음적 능력이 곧 우리 시대의 현안 문제를 풀어가는 키워드(key word)가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나는 차제에 일본 황실과 일본 정부에 대해 감히 이와 같은 제안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최근에 세계경영계를 열광시키고 있는 책이 하나 있다. 제목이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인 이 책은, 2005년 2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판사에서 발간된 이래 182개국에서 32개 언어로 번역되는 초(超) 베스트셀러가 됐다. 저자인 김위찬 교수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럽경영대학원(INSEAD) 석좌 교수로 있으며, 한국 출신이다. 이 책의 주제인 블루 오션의 세계관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산업분야는 레드 오션(red ocean)과 블루 오션(blue ocean)의 두 가지 시장(市場)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드 오션은 유혈의 경쟁공간이자, 시장 참가자들이 제한된 포화(飽和)시장을 놓고 목을 조이는 출혈경쟁을 벌인다. 반면 블루 오션은 가치혁신을 통해 다시 창출된, 새로운 시장공간이다. 전혀 새로운 가치 도약을 통해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김위찬 교수는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늘 이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쟁을 포기하라” 김위찬 교수는 그의 신실한 파트너인 마보안 교수(INSEAD)와 함께 지난 120년 동안 역사에 기록된 동서양의 혁신 사례를 조사해 보았는데, 그 결과 전략적 사고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전략적 사고에는 ‘환경 결정론’과 ‘재구축주의’의 두 가지 패러다임이 있다. 그리고 혁신에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후자 쪽이며, 그들은 가치혁신을 통해 환경을 뛰어넘거나 아니면 아예 환경자체를 새로 구축한다. 이와 같이 새로운 가치 창조를 통해 경쟁으로 붉게 물든 유혈의 바다에서 벗어나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신세계로 나아가는 전략 ― 블루 오션의 사고방식과 방법론을 먼저 체득하는 기업과 국가가 21세기의 세계 경제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는 김위찬 교수의 「블루 오션 전략」을 여러 번 탐독하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한 창조경영이야말로 이 시대의 화두이며, 나아가 한중일 3국 간에도 이와 같은 가치혁신의 창조적 대안을 적용해 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의인(義人) 이수현 군이 우리에게 남겨두고 간 진실은 무엇인가? 일본 천황이 5년 간을 기다리며 애써 지키려고 했던 그 약속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수현 군과 아키히토 일황의 영적 만남으로 나타나는 이 참된 사랑의 능력, 이 배려 깊은 사랑의 능력이야말로 앞으로 우리들의 과거사 속에 맴돌고 있던 레드 오션을 벗어나 미래의 푸른 바다 ― 블루 오션으로 나아가게 하는 새로운 가치 창조의 힘이요 그 대안이 되지 않겠는가?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근대화를 성공시킨 명치유신은, 그것을 주도한 인물들이 대부분 사무라이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이미 「레드 오션」적인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경쟁과 승부를 통해,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유혈의 권력투쟁 속에서 개인의 영달과 국가의 위업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왔다. 그 결과로 그들은 일본을 세계 제2의 경제대국과 군사강국으로 만들었지만, 그들 자신의 속성 때문에 지금 벗어나기 힘든 한계 속에서 맴돌고 있다. 지난날에 있었던 주변 국가에 대한 침략과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도 일본은 패권의식과 국수주의적인 지배욕과 우익집단의 편견 때문에 군비를 재확충하고 기술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며 동북아 국제사회에 예기치 못한 심각한 갈등과 긴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쟁을 포기하라” 김위찬 교수의 이 역설적인 메시지가 이 경우에도 명쾌하게 적중하리라고 본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다시 한번 선진국가로서의 진정한 리더십을 회복하려면, 국민의 마인드 세트를 블루 오션 형(型)으로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시대 이래 인류가 지켜왔던 문명의 세계에는 다음 두 가지 가치론이 있다. 하나는 소유가치요, 다른 하나는 존재가치이다. 전자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욕심에 이끌리는 가치요, 후자는 인간의 보편적인 목적이 이끄는 삶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진정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고, 만일 자기 욕심대로 살면 끝내 죽고 말 것이다. 선한 가치를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다시 살고,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살고자 하는 자는 결국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도덕적인 지상명령(至上命令)이 있다. 나는 (또 비약하는지 모르겠지만) 생각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가운데, 이수현 군을 추모하는 영화 시사회에 오신, 아키히토(明仁) 일황께서 어쩌면 속으로 이렇게 조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수현씨, 나는 당신을 결코 잊을 수가 없어요. 그대가 흘린 고귀한 희생의 피, 그 아름다운 사랑의 혼이 나를 감동시켰고 또 우리 일본 국민 전체를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되고 있어요. 당신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일본이 다시 한번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나는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이수현씨, 나는 앞으로 이런 정신으로 내 생애를 다하기까지 한일간의 관계 개선과 동북아와 세계를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고 봉사하면서, 새로운 국제평화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소. 그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 길이 우리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이 길을 지키며 걸어가겠소!” 다시 한번 나는 여기서 감히 제안한다. 만일 아키히토 일황께서 진심으로 그렇게 반성과 감사의 마음을 다해 이수현 군을 추모해주셨다면, 나는 그분의 연호(年號)를 좇아 이 2007년 1월 26일을,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과 용서와 화평의 감동이 넘치는 새로운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로 나아가는 “明仁유신의 첫 날”이라고 선포하고 싶어진다. 1867년 12월 9일, 「왕정복고의 대호령」이 떨어진 날로부터 시작된 명치(明治)유신의 항로가 사무라이 식(式) 무사도정신과 군국주의가 판을 쳤던 지배욕구의 소유가치에 물든「레드 오션」의 길이었다면, 이제 2007년 1월 26일, 「너를 잊지 않을 거야」라는 영화로부터 시작한 “명인(明仁)유신”의 항로는 21세기 국제사회의 새로운 가치 창조 ― 즉, 쌍방간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면서 각자의 Identity와 Image를 창조적으로 극대화시켜나가는 희망찬 「블루 오션」의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이야말로 마땅히 우리 동북아시대를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이끌어나갈 「희망의 역사」가 되어줄 것이다. 땀을 비오듯 쏟으며, 단전호흡을 하는 자세로 앉아있던 자리에서 나는 벌떡 일어나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우거진 송림 사이로 검푸른 하늘이 열려 있고, 거기 높은 하늘 위에 별들이 보석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계속)
8    『희망의 역사』8 (이승률17) 댓글:  조회:2833  추천:87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Ⅷ. 일본야쿠르트(주)에서 운영하는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은 개장된 지가 30년이 넘는 골프장이다. 클럽하우스 시설은 낡고 규모가 작아서 시대에 뒤쳐져 보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LPGA를 개최할 정도로 이곳 큐슈지역에서는 전통적인 명문 골프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우리 일행들이 도착하자 골프장 사장과 지배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준비해간 선물(한국산 인삼 엑기스)을 증정해드린 후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한국야쿠르트(주)에서 오랫동안 대표이사를 역임하셨던 이은선 회장께서, 1969년에 일본야쿠르트(주)와의 기술제휴를 통해서 합작 설립한 한국야쿠르트(주)의 발전사를 자세히 소개해주셨다. 그동안 꾸준히 지속되어온 양사간의 변함없는 우정과 성실한 동반자관계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유를 발효시켜서 만든 야쿠르트처럼 우리 한일간 역사발전에도 지속적인 우정과 동반자의식을 발효시키는 신물질(?)과 같은 어떤 새로운 대안을 하나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운딩을 하는 동안 나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온화한 날씨에 푸르고 맑은 하늘이 참으로 쾌청했다. 그동안 왼쪽 어깨의 통증(2년 전부터 회전낭대파열이 생겨서 지금까지 큰 고생을 하고 있다)으로 오랫동안 골프를 못했는데, 이번 큐슈 여행에서는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마음을 비워서 그런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경기 내용이 좋았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그날따라 유난히 타구가 벙커에 많이 들어가서 애를 먹은 점이다. 18홀 코스에서 12번이나 벙커에 들어갔으니, 같이 라운딩을 하던 이인혁 회장께서 “이 부총장은 왜 그리 벙커를 좋아하시오”라고 놀릴 정도였다. 공이 자꾸 벙커에 빠지자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북한 핵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씨름을 해왔던 6자회담이 지난 2월 13일 북경에서 극적인 타협을 보게 되어 앞으로 북미간․중미간․남북간․북일간에 상당한 수준의 해빙무드가 조성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 2.13 공동성명은 골프로 치자면 벙커에 빠진 공을 쳐서 겨우 페 어웨이로 옮겨 놓은 상태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우선 기분은 좋지만 앞에 여전히 험난한 코스를 남겨두고 있지 않는가? 러프와 해저드와 OB라인이 있을 뿐만 아니라 벙커도 여기 저기 남아 있어서 또다시 모래밭에 공을 처박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이와 같이 험난한 코스의 절반도 돌지 못한 상태에서 당사국들이 내기 게임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그런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골프장을 계속 라운딩하면서 나는 벙커에 공이 빠질 때마다 6자회담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각국의 협상 당국자들이 상호간에 얼마나 힘든 게임을 벌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아무튼 이제 북경 6자회담이 이루어놓은 2.13 공동성명은 동북아정세에 따뜻한 새봄을 예비해준 셈이다. 동토의 대지에도 조만간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 주변국가와 세계 앞에 평화의 잔치를 베풀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핵을 가진 북한과 함께 추구하는 평화는 진정 어떤 평화인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어쩌면 2.13 해빙의 급물살에 덤벙대다가 대한민국이 저 멀리 떠내려가는 위험한 비극의 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코스 이동을 하다가 문득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골프장 곳곳에 새봄을 알리는 꽃들이 군데군데 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 자연의 새 봄이야말로 인위적으로 가꾸는 한반도 해빙의 봄과는 사뭇 다르리라. 특히 산기슭 후미진 곳에 내가 좋아하는 매화가 피어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푸른 잎 사이로 많은 꽃을 달고 있는 나무는 역시 동백이었다. 겨우내 계속 피는 동백의 붉은 꽃잎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 곁에 외롭게 서있는 매화나무의 잔가지에 피어있는 작고 흰 꽃잎의 품격이 내 마음에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찬 눈바람 속에서 피어나는 일지매(一枝梅)의 고아한 기상, 그 아름다운 절개(節槪)의 미(美)를 감탄하는 마음이야 한일간에 공통된 감성이 아니겠는가! 복숭아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고, 여기저기 우뚝 서있는 목련과 벚나무의 가지에 이제 막 꽃망울이 맺히고 있는 모습 또한 귀하게 보였다. 봄에 나뭇가지에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누가 마술을 부리는 듯하다. 생명이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다. 저마다의 존재이유와 목적을 자유롭게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일이다. 자연의 개체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생명도 이러하리라. (생각이 자꾸 비약하는지 모르지만) 이번 큐슈 여행은 본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자유와 평화의 꿈을 일깨워주는 멋진 여행으로 인식된다. 오후 일찍 라운딩을 마친 우리 일행들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두 군데 명소를 구경하러 다녔다. 먼저 간 곳은 -----에 있는 「龜의 尾」라는 상표를 내걸고 정종을 만드는 술도가였다. 한 집안에서 290년간 대대로 이어왔다고 한다. 전통의 미학이 예술처럼 느껴지는 명문주가였다. 소문난 그대로 술의 종류가 다양했고 (종류마다 조금씩 맛을 봤는데) 맛과 향기도 뛰어났다. 두 번째로 옮겨간 곳은 ------에 있는 쇼핑센터였다. 대규모 할인매장으로 실용적인 상품들이 많았다. 함께 쇼핑하는 중에 이은선 회장께서 또 한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 “이 물가가 10년 전과 똑같아. 그만큼 일본의 과거 물가가 비쌌고 거품이 많았다는 증거야. 그러다가 버블현상이 붕괴되면서 경기침체가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은 고생 끝에 이룬, 기초가 잘 다져진 기반같아. 이런 기반 위에서 경제가 다시 발전한다면 결코 우리가 따라잡지 못할지도 몰라.” 아내가 「패션 안경」을 하나 고르려고 하자 종업원이 아내의 시력과 얼굴형에 맞춰 열 개도 넘는 안경테를 꺼내놓고 재료와 타입에 대해서 하나씩 자세히 설명해준 후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를 수 있도록 끝까지 친절하게 잘 처리해주었다. 아까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마친 후 캐디가 골프백 정리를 할 때 골프채 14개를 다 꺼내놓고 하나씩 끝까지 정성스럽게 닦아주던 모습이 연상된다. 마무리 공정이 뛰어난 일본 제조기술산업의 특성이 온 국민들의 몸에 습관처럼 배어있는 듯 했다. 새삼스럽게 일본인들의 「친절과 정성」에 대해 실감나는 공부를 하게 된 셈이다. 언젠가 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는, 미국인 장군이 독일인 참모를 데리고 일본인 사병을 지휘하는 군대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약한 군대는, 중국인 장군이 일본인 참모를 데리고 이탈리아인 사병을 지휘하는 군대이다” 각 국가의 국민성을 잘 반영한 말로 들렸는데, 세계 최강 군대의 일본인 사병은 이해가 되나, 세계 최약 군대의 일본인 참모는 이해가 잘 안되었다. 아마도 중국인은 조직적인 리더십이 부족하고 일본의 참모진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맹종만 했지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융통성 있는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것 같고, 이탈리아인은 다들 개성이 강해서 제멋대로 놀기 때문에 통솔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하는 정도로 해석해볼 수밖에 없었다. 또 얼마 전에 두레교회의 김진홍 목사님 설교 테이프에서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본인이 과거에 화장품회사 외판원 시절을 거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배운 바로, 일본 여성들은 기초화장에 충실한 반면에 한국 여성들은 색조화장술이 뛰어나며, 미국 여성들은 얼굴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머리카락, 손톱, 발톱관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였다. 외국에 나오면 자국과 타국을 비교하는 얘기를 자주하게 된다. 일행들이 쇼핑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아내가 최근에 사회교육(SERI CEO 강좌)을 통해서 배운 얘기 한 가지를 들려주었다. “한중일 3국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일본은 섬나라이고 영국을 성장모델로 삼았으며, 매우 보수적이고 난이도가 높은 정밀분야 생산력에 강하다. 한국은 반도국가이고, 이태리와 기질 및 성향이 비슷하며, 매우 진보적이고 융통성과 창의적인 응용기술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중국은 대륙국가로서 미국과 같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용광로와 같고 융화적이고 다양성이 뛰어나며 응집력이 강하다. 특히 한국인의 기질적인 특성을 살펴보면, 스피드가 빠른 반면에 조급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창조성에 민감한 반면에 변화기복이 심하고, 신명이 있어서 흥이 많아 응원문화가 발달했으며, 남에게 지기 싫어하거나 또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과거에는 체면문화, 오늘날에는 성형문화가 횡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심지어, 지는 놈은 죽어야하고, 못난 여자는 여자도 아니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지경까지 되었다.”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일행들은 나의 특별한(?) 제안을 받아들여 현해탄을 끼고 있는 해안도로로 드라이브했다. 푸른 송림과 검은 암석들이 잘 어우러져 있는 해안으로 현해탄의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현해탄을 가깝게 접해본 우리 일행들은 기분이 동(動)해서 모두 대포라도 한잔 하자는 의견이었다. 혹시나 선술집 같은 게 있나 해서 바닷가 근처 동네를 여기저기 찾아다녀 봤지만 관광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술파는 집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이 부근에서 가장 이름 있는 항(港)이 카네자키 항(KANEZAKI PORT)인줄을 알게 되었다. 릴낚시를 하는 어부들이 주로 어업활동을 하는 조그만 항구였다. 북동쪽으로 세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포구를 둘러싸고 있는, 작고 평온하기 짝이 없는 아름다운 항구였다. 내 생각 같아서는 혼자 남아서 배를 빌려 타고 저 멀리 바다 안으로 달려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일행들을 감안해서 꾹 참았다. 되돌아오는 해안 길이 점차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왠지 내 마음에 찡한 슬픔이 밀려왔다. 푸른 송림이 우거져 있는 절벽 아래 해안선을 따라 검은 암석을 때리며 하얗게 울부짖고 있는 현해탄의 파도가, 떠도는 재일동포들의 한을 노래하고 있는 듯해서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 저 길을 뚫자. 저 현해탄 바다 밑으로 터널을 뚫어 역사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재일동포들의 인생에 쌓인 한을 풀어드리자. 죽은 혼령들조차도 마음껏 자유롭게 고국을 드나들 수 있도록 대로를 열어보자. 거기에 한일간 역사발전의 새 길을 열어보자. 동북아시대 국제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기획하여 상호간에 새 시대의 희망을 창출하는 기적의 새 날을 열어보자!”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넘실대는 현해탄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면서 신음을 토하듯 이와 같이 다짐했다. (계속)
7    『희망의 역사』7 (이승률16) 댓글:  조회:2540  추천:88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Ⅶ. 셋째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대로 곧장 온천장으로 가서 몸을 풀었다. 나는 실내탕보다 건물 바깥에 만들어놓은 연못형의 옥외탕(‘岩風呂’)을 더 많이 애용했다. 울창한 송림 사이로 서서히 밝아오는 새 하늘의 여명을 바라보며 온천에 몸을 담근 채 폐부 깊숙이 시원한 새벽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없는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때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묵상에 한번 빠져보라! 새벽에 옥외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조용하기도 하려니와,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은 묵상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몰아의 경지에 다다른 듯한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때 느끼는 특별한 인식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표피적인 감각 즉 물 위에 떠있는 빙산의 일부를 보고 느끼는 정도의 감각이 아니라, 물속에 잠복되어 있어서 그 깊이와 부피를 알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힘의 세계에 이르는 인지능력을 체득하게 해준다. 그날 아침 나는 30분이 넘도록 반신욕을 하면서 조용히 묵상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 특별한 인식을 통하여 자아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인간 본연의 존재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능력을 훈련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온천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아랫배(단전)에 힘을 모으고 천천히 심호흡을 반복하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땀을 줄줄 흘리듯) 하나씩 정리해나가다 보면,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평소에 잘 깨닫지 못했던) 영적 기운이 온천수처럼 뜨겁게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 새로운 영적 기운은 강력하고 순수하며 몰아적인 힘을 증대시키면서 자신의 폐쇄적인 아집의 틀을 뛰어넘도록 만드는, 무소부재에 가까운 소통의 감흥을 불러일으켜준다. 이것을 나는 개체의 한계를 벗어나 자타를 함께 공유하는 대아(大我)의 경지라고 부르고 싶다. 이 대아의 경지를 통해 우리는 자타의 존재가치를 더욱 확장해서 이해하게 되고, 마침내 “인류 공동선”이라고 부를만한 보편적인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습득하게 된다. 온천에 몸을 담근 채 한동안 새벽 묵상의 재미에 빠져있던 나는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환하게 밝아진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옅은 구름이 새의 깃털처럼 표표히 떠있는 광경이다. 오늘도 날씨가 무척 좋겠다는 감을 느끼며 다음과 같은 염원을 가져보았다. 우리 한중일 3국간에도 국민적 감성 즉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의 기복을 통하여 쌓여진 민족의식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한 통합적인 학습의 훈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서로 소아병적인 민족감정을 앞세워 끝없는 소모전을 펴면서 적대시하기만 해야 하겠는가? 이제는 우리가 달라져야 하겠다. 각자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야 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통합적인 사고의 능력을 키워야 할 때다. 국가 간 개체의 한계와 속성을 뛰어 넘어 ‘인류라는 큰 틀’의 경지를 통해 새로운 국제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각국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굴, 확장해나가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길을 찾아가야 할 때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화시대의 국제협력 흐름에 적합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문화와 전통을 수립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 동북아인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사명이요 그 의무가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반성과 함께 그동안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며 구상해왔던, 한중일 3국간에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사회를 열어가기 위한 대안(an alternative plan for new dream society)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것은, 한일간 해저터널 건설을 기초로 하여 동북아지역 철도 및 도로망을 대폭 확충하고, 동시에 동북아 물류시스템의 국제통합모델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동북아FTA 및 경제공동체 구성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보자는 의견이다. (*한미FTA협상이 지금 금년 3월말 시한부로 한미 양국간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나는 한미FTA가 성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의 한명인데, 이 협상이 성사될 경우 그 파급효과로 한중FTA․한일FTA협상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며 이렇게 되면 한국이 국제유통시장의 교차점이 되어 동북아FTA 및 경제공동체의 새로운 한마당을 여는 기회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만일 이러한 대안이 채택되어 각 민족, 각 국가 간의 가슴 속에 쌓여 있는 불신과 불화의 벽을 허물고 한중일 3국간에 자신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만드는, 성숙한 자기인식의 인지능력을 학습하고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다면 동북아 3국은 지금까지 과거사에 묶여 있었던 질곡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자국 중심의 냉전적 사고와 단절된 역사의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열린 마음’과 ‘함께하는 정신’으로 공동선(共同善)의 대로를 열어가기만 한다면 이 길은 우리 모두를 평화롭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묵혀 있었던 각국의 현안문제들을 새롭게 풀어나가는 번영의 기회를 맞도록 해줄 것이다. 그래서 이 길은 마치 한국 속담에 있는 것처럼 ‘도랑치고 가재잡는 식’의 입체적인 역사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면서 우리 동북아지역에 희망의 새 시대를 연출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길은 일본의 속담에 ‘힘든 일이 당신을 보배로 만든다’는 말처럼, 우리 모두를 21세기 국제사회의 정련된 보배로 거듭나게 해줄 것이다. 온천을 하는 동안, 자신을 얽매고 있던 관습과 아집의 사슬들이 하나씩 둘씩 풀려가는 듯한 감을 느끼면서, 이런 깊이 있는 자기성찰의 생각과 함께 “이것은 한번 해볼 만한 일이다”라는 결단의 확신이 생기자 나는 그만 주체할 수 없는 심경이 되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온 힘을 다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소리쳐 기도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한일 해저터널과 함께 동북아에 새로운 교통의 대로를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이 대로에 연접되어 있는 모든 묵은 땅을 기경하게 해 주시고, 나아가 한중일 3국이 한마당의 판을 벌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마침내 이 동북아 연합의 기초 위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거듭나는 새로운 희망의 역사, 꿈의 실크로드를 완성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나는 이런 기도를 하면서 영적으로 주어지는 무한한 기쁨의 힘을 느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다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완성해주고 있다는 감을 느끼게 되자 나의 마음은 하늘의 깃털구름처럼 가벼워졌다. 온천을 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이런 환희의 감정과 함께 승화되어, 마치 이 일이 당장 이루어진 듯한 환상을 갖도록 만들어주었다. 밝아 오는 새 하늘이 점점 더 푸른색을 띄면서 빛나기 시작했다. 빛의 감성이 내 영혼 깊숙한 곳까지 비쳐 오는듯한 느낌이다. 한중일 3국 국민들 가슴 속에도 내가 느끼는 이와 같은 자기 인식에 대한 객관적 인지능력의 훈련이 숙달되어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껴안아주며 새로운 융합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공동체 의식이 하루 빨리 확산되기를 희망하면서 새벽 온천을 마쳤다. (계속)
6    『희망의 역사』6 (이승률15) 댓글:  조회:2622  추천:87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Ⅵ. 호텔에 도착하여 간단히 온천을 마친 다음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구내 중국식당으로 갔다. 이제 막 만찬을 시작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이시이 회장과의 담론을 요약하여 설명해 드린 후, 2008년 북경올림픽을 빌미로 삼아 “도쿄에서 런던까지” 연결되는 대륙간 철도운행 프로젝트를 한번 추진해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행들이 크게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이 일이 꼭 성사되어서 장차 한일간 해저터널 건설과 동북아 FTA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만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격려의 말씀을 여러 분들이 해 주셨다. 만찬이 진행되면서 우리들은 그동안 자신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듣고 보고 느낀 점을 기탄없이 쏟아내며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 중 귀담아들어서 기억해둔 이야기 몇 가지를 적어보면 이렇다. 이은선 회장 : “여기서 한 시간쯤 가면 이쓰까라고 하는 조그만 도시가 있는데, 이곳은 일제치하 때 조선인들이 많이 징용당해 와서 일한 곳이야. 무연탄, 석탄을 캐는 탄광지역인데, 그때 캐낸 양이 산을 이룰 만큼 고생들이 심했다고 하지. 그때 징용 온 사람들을 보국대라고 불렀는데, 주로 군수산업이나 물자공급을 위해 노역했던 분들이야. 그때 그분들의 후예들이 집단적으로 정착해서 사는 마을이 이쓰까야. 지금도 조선인 3세․4세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많이 살고 있어. 그런데 내가 정말 더 마음 아파하는 것은, 조선인 3세․4세들의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 문제야.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은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야. 도대체 자기들이 누구인지, 또 누구여야 하는지 이리저리 방황하며 살고 있는 실정이야. 최근에 일본 정부가 출산율 감소를 줄이기 위해 재일동포들에게 귀화를 독려하고 있고, 또 교육과 취업조건을 완화시켜 주어서 청년들이 많이 귀화하고 있다고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정작 일본인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아직도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도 많아.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없어. 일부 지식인들과 기업인들이 한국 정부에 참정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그게 어디 쉽게 허용되겠어? 그냥 외국인 취급이나 하고 말지 뭐. 또 한국에 유학 온 재일동포 학생들을 봐. 그들을 일본학생 취급을 하면서 무관심하게 버려두고 냉대하는 실정이니 이래서야 어디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볼 수 있겠나” 이인혁 회장 : “오늘 골프장에서 몇 홀인지는 모르지만, 그린 뒤 언덕 잔디밭에 푸른 물감을 먹인 것 보셨지요. 제초제와 성장활성제를 섞어서 뿌렸겠지만, 사실 난 원래 축산과 출신이 아니고 공대 섬유과 출신입니다. 축산을 해서 돈을 버니까 다들 내가 축산과 출신인줄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옛날에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일본 친구로부터 옷감에 칼라 먹이는 기술을 도입해서 돈을 약간 벌었어요. 그때 번 돈을 갖고 나중에 축산업을 하는 기초자금을 만든 셈이지요. 지금도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생명공학연구소는 일본과 기술제휴해서 연구하는 게 많습니다. DNA분야 연구를 보면 일본 기술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있는 게 사실이고, 또 그런 기술을 잘 이용해야 큰돈을 벌 수 있겠지요.” 김경철 회장 : “나는 1975년부터 78년까지 중앙일보 동경특파원으로 나와 있었는데, 그때 이병철 회장님께서 일본에 오시면 가끔 수행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삼성그룹을 키워 오신 비사(秘史)를 조금씩 얘기 듣곤 했는데, 말씀하실 때마다 일본과의 신의를 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하셨어요. 사실 삼성이 큰걸 보면 거의 일본을 벤치마킹 한 것 아닙니까? 지금은 오히려 일본 기업들이 삼성을 배우려고 야단들이지만... 70년대에 용인 자연농원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랬어요. 재벌기업이 땅장사 한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비난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그때 그만한 땅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서울근교에서 1시간권 안에 그런 큰 휴식공간을 만들 수 있겠어요? 그때 이 회장님께서는 한국에 자연농원 같은 게 적어도 세 군데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도시 근로자들이 주말에 휴식을 취하거나 놀러갈 데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한마디로 선견지명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언젠가는 또 연초에 몸이 불편하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문안을 갔더니, 어제 수술하셨다고 하신 분이 침상에 꼿꼿이 몸을 세우고 앉아서 운기조식하고 계시는 모습을 봤어요.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해오신 분이지요. 그때 회장님께서 저보고 이렇게 느닷없이 물으시더군요. 김군, 요즘 북한 정세가 어떤가? 문제는 없는가? 나라가 잘되고 회사가 잘되려면 우선 북한 문제가 안정이 돼야해. 북한이 시끄러우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닙니까? 역시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은 전체를 크게 보시더라고요.”   안광우 회장 : “신한은행 부행장으로 있다가 신한투자신탁 사장으로 갔을 때 일이지요. 제가 제일 먼저 신경 쓴 게 예절교육이었어요. 일본에 있는 은행 본사에 출장와보면, 이 분들의 손님 대하는 모습이 꼭 머슴이 상전 대하는 것 같았어요. 그냥 90도 넘게 허리를 굽혀 몇 번씩이나 절하면서 하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하이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하는데, 제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도 투자신탁의 직원들과 임원들까지 무조건 손님을 보면 90도 절하기 운동을 했었지요. 나중에 그게 회사 실적을 올리는 데 큰 효과를 봤어요. 사실, 앞에서 이인혁 회장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제가 볼 때는 한국이 일본에 비해 20년은 뒤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기술이나 조직관리 면에서 우리가 배울 게 아직도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요새 우리가 IT, 반도체, 그리고 조선이나 제철, 자동차 부문에서 조금 잘나가고 있으니까 그냥 기고만장해서 야단인데, 보세요. 일본이 이제 그동안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부흥단계로 들어서면 아마도 무섭게 발전할 겁니다. 우리 한국기업들 분발해야 해요. 지금 핵문제, 남북문제로 시끄러운데 이거 잘 대비해야 해요.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정부는 수치놀음이나 하고 기업들은 분식회계나 하고 있으면 되겠어요? 이 부총장께서 늘 걱정하듯이 중국의 동북공정만 해도 그래요. 동북공정 문제를 극복하려면, 우리 정부와 기업이 더 경쟁력 있는 사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뿐만 아니라 이제 몇 년 안가서 중국의 발전 속도에 눌려 꼼짝 못할 때가 와요. 진짜 우리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도 있어요.” 남상해 회장 : “제가 옛날에 소방관협회 회장을 할 때였어요. 일본에서는 경찰보다 소방관을 더 우대하고 최고 대접을 해줘요. 지진이 많은 나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사회질서는 안정이 되어 있지만 자연질서는 언제 지진이 터질지 모르니까요. 위급한 사태가 나면 소방관이 제일 먼저 달려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소방관을 최우대 해주는가 봐요. 그래서 저도 큰 대접을 받았지요. 행사장에서 테이프커팅 할 때나 연설, 또 차량이동 할 때도 제 차가 제일 먼저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가는 겁니다. 제가 한국에서 훈장이나 표창장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인줄 일본사람들도 아는가 보지요(웃음). 그게 아니라, 실제로 소방관을 그렇게 소중하게 대접해주는 사회입니다. 위급할 때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남의 생명을 돌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제가 그때 일본에 갔을 때 놀란 게, 하루는 비가 와서 접어서 쓰는 우산을 하나 샀었는데, 그게 고급우산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비싼 걸 샀겠어요. 그런데 제가 호텔에 그냥 두고 나온 우산을, 아, 글쎄 그걸 호텔 측에서 공항까지 호텔 직원이 직접 와서 전달해주는 게 아닙니까? 그것도, 체크아웃을 할 때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호텔 지배인의 편지까지 붙여서 말입니다. 이게 일본이에요. 그때 저, 일본, 참 많이 배웠어요.” 우리 일행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일본과 맺은 개인의 특별한 인연들을 재미있게 소개하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만찬 회식이 끝난 후 나는 시간이 꽤 늦었지만 곧바로 객실로 돌아가지 않고 아내와 함께 1층에 있는 중정(中庭)으로 나가서 산책을 했다.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면서 “오늘, 참 기분 좋다. 멋진 날이야. 당신, 오늘 더 멋있어 보이는데?”라고 속삭여주었다. 아내가 내 품에 안겨오면서 “아냐, 당신이 더 멋져요. 당신, 정말, 고마워요.”라고 하면서 금세 눈물방울이라도 떨어뜨릴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때 다시 한 번 크게 깨달았다. 아, 한마디 칭찬과 스킨십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가깝게 있다고 소홀히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정을 표시하며 스킨십을 해줄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동북아지역에서 가장 가깝게 있는 우리 한일간부터, 또 남북한과 한중일 3국 간에도 이런 국가간 스킨십, 기업간 스킨십, 개인간 스킨십이 평소에 자주 있어져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친밀해지고 융통성 있는 생각과 우정으로 선린의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박한 희망을 가져보았다. 특히 각국 지도자들 간에 서로 자주 만나서 격려하고 칭찬하며 껴안아주는 태도를 보인다면 각국 국민들이 얼마나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스스로 감동이 되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리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계속)
5    『희망의 역사』5 (이승률14) 댓글:  조회:2429  추천:104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Ⅴ. 숙소인 겐까이 로얄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이시이 회장께서 상담을 마칠 즈음에 난색을 표하며 마지막으로 확인해주신 말씀을 줄곧 음미해 보았다. “이 박사님, 설사 북한이 길을 열어주어 남북한 철도가 연결된다고 하더라도 아직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그는 곧바로 자신이 먼저 단호하게 답변을 했다. “그건 북한이 저지른 납치사건입니다. 이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일본 정부에서는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북한을 경유하여 중국으로 여행하는 길을 막을 것입니다. 십중팔구 그렇게 할 것입니다.” “아니, 이시이 회장님. 납치문제가 아베 총리의 국내정치용 이슈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할지라도, 아무렴 북경 올림픽기간 동안에는 여행을 허락하겠지요. 물론 올림픽 전에 이미 그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해결이 되겠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물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래서 북한의 성의있는 조치로 납치문제가 해결되면 일본은 미국에 뒤따라가는 형식으로 북일정상회담과 수교협의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국민 모두가 완전히 납득할 만한 수준에까지 이르러야만 북한을 용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국민 모두가 완전히’라는 말이 또 마음에 걸린다. 도대체 일본 국민들은 언제까지 집단주의체제에 매여 있으려고 하는가.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세력을 결집시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납치 문제에 대해초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뉴스평론을 들어서 잘 알고 있다. 또한 일본 아소 외상이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에 1엔도 원조해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일국 외상의 발언으로는 너무 경망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와 아소 외상에게 되묻고 싶어진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태도로 책임을 물으면서도, 정작 일본인들 자신에 의해 강제동원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며 ‘허구’라느니,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등의 망언을 서슴없이 뱉어내고 있는데, 과연 일본의 국가적 양심은 남아 있는가? 심지어는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종군 위안부 동원 과정에 일본군과 일본 관리들이 관여했다고 스스로 인정한 발언(소위 “고노” 담화)조차도 재검토할 의도를 갖고 있다는데, 이것이 과연 선진대국의 리더로서 취할 태도인가를 묻고 싶다. 만일 아베 총리가 계속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모순된 조치를 취한다면, 일본은 세계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미국 의회에서나 언론에서도 이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는데, 차제에 아베 총리 및 일본 정부는 폐쇄적인 집단논리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왕따당하거나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회장님, 저는 이시이 회장님의 말씀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북경올림픽을 기회로 삼아 아시아대륙과 유럽을 연결해서 세계 최장의 철도여행을 계획한다는 일은 앞으로 일본의 대륙진출과 함께 동북아 평화체제를 이끌어 낼만한 세계적인 이슈인데, 이걸 마다하고 일본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은 도무지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 “아니 그럼 일본 정부에서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자 합니까?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인 납치사건이 일본으로서는 매우 큰 문제라고 하더라도 세계적인 진로의 발돋움을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이런 정도의 한계는 벗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의 도발적인 질문에 이시이 회장은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륙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나라 사람들은 자기 논리에 강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요. 이 박사님께서 우리 일본을 더 잘 이해해주셔야 되겠습니다.” 섬나라 사람들이라고해서 꼭 그렇겠는가? 대륙의 울타리에 갇혀 대국의 그늘 밑에 속국처럼 지내왔던 많은 소수민족 국가들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선 한반도의 과거 역사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독립된 공간에서 대양을 향해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보며 자란 섬나라 사람들이 더 개방적이고 우호적으로 교류협력하기 쉬운 사람들일 수 있지 않은가. 개인이나 집단도 결국은 생각하기 나름인데, 일본이 진정으로 일본답기 위해서는 일본을 뛰어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겐까이 로얄호텔까지 타고 오는 택시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념을 정리해 보면서 앞으로 나도 일본과 일본인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하겠구나 하는 반성을 가졌다. 갑자기, 이시이 회장이 곁에 있으면 “당신 멋져” 이렇게 외쳐주고 싶은 충동이 뭉클 일어났다. (계속)
4    『희망의 역사』4 (이승률13) 댓글:  조회:2306  추천:96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Ⅳ. 나는 이시이 회장으로부터 2000년도에 있었던 11개 국가간 장거리 철도여행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와 더불어 최근에 호조를 보이고 있는 부산-후쿠오카 간 쾌속선 사업의 결과로 한일 간에 1일 생활문화권이 형성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기발하고 거대한(?)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다음과 같이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시이 회장님, 저는 중국 정부가 2008년 북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투자와 정책적 배려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이 그동안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군부의 반대와 고위급회담의 정치적 타결이 이루어지지 못해 아직도 불통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건데, 이제 보십시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초긴장 상태였던 북미관계도 지난 2월 13일 6자회담의 합의를 계기로 새로운 협상의 길목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부시 정부가 그동안 완강히 거부해왔던 북미간 직접대화의 길을 스스로 자청해서 터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기를 보였던 중국이 미국의 태도 변화에 힘입어 다시 밀월관계를 회복해가고 있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2008년 북경올림픽을 잘만 준비하면 지금까지 있었던 올림픽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국제평화무드의 축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미소 양대진영의 화해를 이끌어 낸 탈 냉전적 평화의 축제였다면, 2008년 북경올림픽은 북미 간의 긴장해소뿐만 아니라 남북한 공존 및 6자회담 당사국들 간의 동북아 국제협력시대를 이끌어내는 기념비적인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유럽과 아시아대륙을 하나의 선린공동체로 연결하는 세계 최대의 평화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자꾸 들어요. 이를 위한 저의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이시이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2000년도 일본-네덜란드 간 국제교류행사를 좀 더 크게 확장하는 것입니다. 우선, 영국 런던에서 출발하는 떼제베 열차가 파리(프랑스), 브뤼셀(벨기에)을 거쳐 암스텔담역(네덜란드)까지 오면 거기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차량을 이용하여 베를린(독일), 프라하(체코), 바르샤바(폴란드), 모스크바(러시아), 이르쿠츠크(러시아), 울란바토르(몽골)를 거쳐 중국 북경역에 도착하는 A구간 노선을 정해봅시다. 다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출발하는 신칸센 열차가 오사카를 거쳐 후쿠오카에 도착하면, 거기서 후쿠오카-부산 간 쾌속선으로 갈아타고 부산항에 내린 후 부산역에서 KTX열차를 타고 출발하여 서울역까지 와서 다시 일반 열차로 갈아탄 후 개성, 평양, 신의주를 지나 단동, 심양을 거쳐 북경역에 이르는 B구간 노선을 정해봅시다. 북경 올림픽 참관을 위해 영국 런던에서 출발한 유럽, 러시아 참관단과 일본 도쿄에서 출발한 일본, 남북한 참관단들이 북경역에서 서로 함께 상봉한다고 한번 가정해봅시다. 이 만남은 얼마나 통쾌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입맞춤이 되겠습니까? 또한 이 북경 올림픽 기간 동안 유럽인들은 B구간을 이용하여 한반도와 일본을 방문하고, 또한 동북아 인사들은 A구간을 활용하여 러시아와 유럽까지 방문단을 구성하여 상호 내왕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도쿄에서 런던까지” 이어지는 꿈의 철도 여행을 기획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한일간 해저터널이 건설되지 못해 아직은 후쿠오카-부산 간에는 쾌속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 그 길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의미 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등장하는 것이 결국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인데, 아마도 북경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북한도 선심을 쓸 것이고 또한 중국의 후진타오 정부도 국제사회에 주변국가와의 ‘평화발전’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북한에게 이의 성사를 종용할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유럽의 끝(영국)에서 아시아 대륙의 끝(일본)으로 이어지는 이 평화 철도 운행계획이 결코 헛된 꿈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와 같은 대안을 양국 정부의 전문기관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제안해볼 뜻을 지금 가져봅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아태연구소를 통하여 중국 지도부에게 이 대안을 건의해 볼 생각이며, 또한 한국의 통일부 및 건설교통부(주무기관 : 한국철도공사)와 북한의 민화협을 통하여 북한 지도부에게 이 대안을 건의해 볼 생각입니다. 다행히 그동안 저희 연변과기대에서 자매학교로 건설해온 평양과기대가 올해 9월 5일부로 개교할 예정인데, 이 평양과학기술대학이야말로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을 성실하게 건의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국제대학으로서의 통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 이시이 회장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그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어떤 새로운 희망의 길을 내다보는 듯, 감동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떨리고 있었다. 나의 생각과 비전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 같다. 오늘 잠시 틈을 내어 콜택시를 타고 ‘미션벨리’에서 ‘니씨데쓰 그랜드호텔’로 달려왔지만, 기실 그렇게 와서도 이와 같이 유익한 대화를 나누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냥 만나보고 싶었고 공동관심사에 대해 약간의 의견을 나누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도우사, 우리는 서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꿈의 세계 ―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동북아 연합의 꿈과 동북아 평화체제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것이 어찌하여 하필이면 일제 치하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던 한국의 국경일 3.1절을 기념하는 날에 생겨진 일인가? 또한 이것이 어찌하여 하필이면 그 옛날 1860년대 개화기 때 일본 명치유신을 성공시킨 부국강병론자들을 대거 배출시킨 큐슈 땅에서 생겨진 일이란 말인가? 이런 특별한 감동을 느끼면서 본인은, 우리 한국인들도 이제는 3.1절을 일제시대 기미독립만세 사건이라는 과거사 속의 한 장르로만 계속 기억할 것이 아니라, 21세기 탈냉전, 탈이념 국제협력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국제시민으로서, 한중일 3국이 “삼자가 하나” 되듯 한 몸으로 거듭나는 공동체 역사의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기념일로 이해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가장 가깝게 위치해 있는 큐슈를 계속 한 개의 「섬」으로만 남겨놓지 말고, 한반도와 직결되는 교통인프라(해저터널)를 건설하여 서로가 하나의 생활문화공동체를 이룸으로서 명실공히 큐슈지역의 인재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사무라이式 사고체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의 신천지, 평화의 신세계를 향해 새로운 개화의 꿈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한반도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 유익한 길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구상도 생긴다. 아, 무엇이 과연 우리 동북아시대의 새로운 희망을 이끌어가는 역사의 진로인가? (계속)
3    『희망의 역사』3 (이승률12) 댓글:  조회:2187  추천:88  2007-04-25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Ⅲ. 일본의 큐슈지방은 면적이 네덜란드와 비슷하고 소득수준(GDP)도 비슷해서 여러 면에서 비교대상이 될 만하다. 역사적으로도 1860년대 일본 개화기 때 큐슈지역이 일본열도 가운데서 가장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때 네덜란드 상인들과의 교류가 가장 빈번했으며, 나가사키 항이 그 대표적인 무역항이었다. 당시 도쿄를 중심으로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도쿠가와 막부에 대항하여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앞세워 일본 천황을 실질적인 국가권력의 상징으로 삼고, 부국강병론과 함께 「탈아입구(脫亞入歐)」설을 주창하며 명치유신(明治維新)이라는 일본 역사상 최대의 위업을 이룬 인물들의 대부분 출신 지역이 큐슈지방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7세기부터 오랜 기간 동안 네덜란드 상인들과의 무역을 통하여 축적된 선진문명의 지식과 기술과 부와 자산이 그들 개화파의 입지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때 형성된 부국강병을 위한 중상주의 정경유착 정책과 군국주의적 국수주의가 마침내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일본제국사 흥망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경유착과 국수주의적 전통이 지금까지도 일본 정치와 국론을 지배하고 있는 힘의 근간이 되고 있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나는 이런 상식을 기초로 하여 이시이 회장께서 들려주신 유럽-아시아 대륙간 철도대장정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경청하였다. 1980년대 말 일본 국철이 민영화된 이후 큐슈철도공사와 네덜란드 철도국간에 더욱 밀접한 교류가 있었는데, 마침 2000년도가 양국간 교류 400주년이 되는 해 임을 상기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양국 철도관계자들이 모여 큰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9월과 10월 사이에 네덜란드 행정수도인 덴하그(영어로는 The Hague)에서 출발한 열차가 체코 프라하, 폴란드 바르샤바, 러시아 모스크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지역(사마르칸트, 타쉬켄트, 알마티, 키르키스탄 수도 등)을 거쳐 중국 북경역에 도착하는 실크로드 대장정을 실행하게 되었다. 도합 11개 국가를 거치면서 24일간이나 걸린 이 철도여행은 침대칸이 딸린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차량을 이용하였으며, 여행 참가인원은 일본인 60명, 네덜란드인 40명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이 기념행사는 개인이 200만엔(¥)의 경비를 부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5:1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유럽, 중국(표준궤)과 러시아, CIS국가(광궤) 간에 철로 폭이 달라 도중에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도 있었지만 이 국제간 장거리 철도여행 행사를 무난히 성공시킨 양국 철도청 당국자들은 앞으로도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추진하기로 결의했으나, 그 다음해인 2001년도에 영국에서 열차테러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모든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큐슈철도공사의 자문역으로 이 행사에 깊이 관여했던 이시이 회장은 지금까지 중단되어있는 일본-네덜란드 간 철도교류업무를 못내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 후 틈만 나면 한일간 해저터널 건설에 관한 여론을 주의 깊게 관찰해온 그는, 일본 열도로부터 한반도를 거쳐 중국과 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에 이르는 “신 실크로드 철도 대장정”을 한 번도 잊지 않고 꿈꾸면서 지내왔노라고 회고하였다. 미간에 못다한 꿈을 그리는 노장의 연민에 가득 찬 감정이 일순 지나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좀 굳은 표정으로 상대방을 직시하자 그는 금세 분위기를 바꿔 유쾌하게 웃으면서, 최근 후쿠오카와 부산 간에 운행되고 있는 쾌속선(제트포일)사업으로 화제를 돌렸다. 큐슈 철도청장직을 퇴임한 후 곧바로 이 쾌속선 항운사의 초대 사장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1987년 당시 초기에 배 한척으로 시작했던 쾌속선 사업이 이제는 본격화되어 7척의 배가 매일 8회 왕복 운행하는 황금노선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하면서 그는 몹시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시이 회장의 말을 빌리면, 부산과 후쿠오카는 이미 1일 생활권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부산 여성들이 후쿠오카 텐진(天神)에 떼 지어 쇼핑하러 몰려오고, 후쿠오카 직장인들도 생일이 되면 아침 8시에 출발, 2시간 50분 만에 부산에 도착하여 점심때 갈비를 먹고 오후에는 쇼핑한 후 자갈치 시장이나 삼계탕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다가 마지막 쾌속선을 타고 후쿠오카로 돌아오는 코스가 요즘 유행이라고 한다. 덧붙여 그는 한일간에 해저터널이 건설되어 철도와 차량이 자유왕래하기 전까지는 부산-후쿠오카 구간에서는 비행기보다 오히려 쾌속선 사업이 더 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년간 60만명 수준의 여객이 이용했으며, 이제 몇 년 안가서 100만명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시이 회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부산과 후쿠오카 간, 아니 한국과 일본의 지역 항만도시 간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1일 생활문화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 사실에 그저 놀랍기만 했다. 또한 동북아연합의 새 시대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조짐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많은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 주었다. 부산과 후쿠오카 간의 이 항로는 옛날 고대인들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갈 때 이용했던 ‘도래인(渡來人)’들의 항로가 아니었던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의 길목에서 부산-후쿠오카 간의 항로가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잇는 첩경이 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 나는 깊은 감회를 갖게 되었다. 왜냐면 이 길이 언젠가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일본 열도와 한반도 전체가 한 몸이 되어 국가간 통합시장경제공동체로 거듭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감은 앞으로 우리나라를 그리고 한일 양국의 미래를 어떠한 역사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계속)
2    『희망의 역사』2 (이승률11) 댓글:  조회:2459  추천:123  2007-04-21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Ⅱ. 둘째 날, 3월 1일의 새 아침이 밝아왔다. 겐까이 로얄호텔의 창문으로 현해탄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맞는 3.1절 국경일의 아침햇살이 유난히 밝고 환하다. 하늘도 푸르고 현해탄의 물결도 푸르다. 덩달아 내 마음도 푸르러진다. 우리 일행들은 오전 중에 인근에 있는 「미션벨리 칸츄리클럽」으로 가서 라운딩을 했다. 신설된 지 얼마 안 되는 골프장으로 지형지세가 아름답고 난이도가 골고루 갖춰져 있어서 세련미가 돋보이는 골프장이었다. 나는 라운딩을 마치는 대로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미리 불러놓은 콜택시를 타고 후쿠오카 시내 중심지에 있는 「니씨데쓰 그랜드호텔」로 달려갔다. 오후 4시에 이시이 요시타카(石井幸孝) 회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 분은 나가사키현(縣) 출신으로서 큐슈지방 철도청 청장을 역임하셨으며, 정년퇴임 후에도 「후쿠오카 일한친선협회」의 회장으로 계시면서 한일간 FTA성사를 위한 민간경제협력 및 항만교류업무에 열중해 오신 국제통 지식인이시다. 작년 가을, 대전에 있는 「한국테크노마트(사)」의 김철우 이사장을 통해서 소개받은 뒤, 한국에 출장오셨을 때 서울에서 만나본 후 이번이 두 번째 상면하는 자리이다.(*참고로 김철우 이사장은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을 설립할 때 박태준 회장을 도와 기술담당 부사장을 지내셨던 분으로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동포 2세이다. 동경대 금속학과를 졸업하고 석․박사를 마친 후 재일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동경대 교수가 되신 제철분야의 석학이시다. 그는 포항제철을 퇴임하신 후 한국의 후학들을 위해 자비로 한국테크노마트라는 사단법인을 세워 일본의 선진기술을 한국에 이전, 육성, 지원하는 일과 함께, 대전에 있는 배재대학을 도와 한중일 3국간 환황해권 총장회의를 개최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으신 분이다) 그랜드호텔 커피숍에서 이시이 회장을 반갑게 만난 나는 (평소 버릇대로) 자리에 앉자마자 시간을 정해놓고 바로 본격적인 실무 상담에 들어갔다. 통역은 “후쿠오카 일한친선협회”에서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박용득 선생(재일조선인 3세)께서 맡아 주셨다. 이 분은 앞으로도 계속 본인과 이시이 회장 간에 진행될 민간교류업무의 통역 및 행정을 지원해주실 분이다. 나는 성급하게 이시이 회장에게 질문부터 던졌다. 한달 전에 일어로 번역해서 보내준 졸저 “동북아 연합의 꿈”에 대한 본인의 소견과 평가를 듣고자 하는 질문이다. 그는 비교적 차분하게 내 책에서 주장하는, 동북아시대의 국제협력모델 창출방안 즉 한중일 3국을 ‘한몸’으로 연결․입체화 시키는 상호주의 관계구조를 높이 평가했고, 또한 이 일을 잘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통인프라로서 한일간 해저터널 및 철도연계망을 확장해 나가는 일이 매우 긴요하다고 동의해주었다. 더불어 이시이 회장께서는 이와 같은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시간과 재정계획 및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동북아 3국 간에 관련분야 인사들의 심도 깊은 교제와 토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례적인 포럼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을 내놓으셨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2000년도에 「일본-네덜란드 교류 40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큐슈 철도공사가 중심이 되어 시행했던, 네덜란드 덴 하그로부터 중국 북경에 이르는 장거리 철도여행 행사를 각 국가 간 노선도를 직접 그려가면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계속)
1    『희망의 역사』1 (이승률10) 댓글:  조회:2866  추천:133  2007-04-21
『희망의 역사』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 부총장 Ⅰ. 해변을 따라 길게 펼쳐진 송림의 숲 너머로 푸른 현해탄이 바라다 보이는 겐까이 로얄호텔(玄海ロイヤルホテル) ― 2년 만에 다시 찾아와 여장을 푼 것은 지난 2월 28일 저녁 무렵이었다. 1997년 봄 학기,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최고경영자과정)에 입학했던 3기 3조 동문들이 그동안 10년 가까이 소그룹 친교모임을 계속해 왔는데, 올해 3월 3일이 10주년 창립기념일이 되는 날이다. 3월 3일에 개학했고 또 3기 3조로 모인다고 해서 “삼삼회”라 이름을 지은 이 모임을 나는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 이 모임의 초대 회장은, 재임 당시 한국야쿠르트(주)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셨고 지금은 고문으로 남아 한일간 관계 업무를 측면 지원하고 계시는 이은선 회장이시다. 재작년에는 설날(春節) 연휴를 틈타 다녀왔었는데, 올해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이은선 회장을 단장으로 모시고, 일본 야쿠르트(주)에서 운영하는 “후쿠오카 국제칸츄리클럽”을 친선 방문하여 운동을 하면서 며칠간 휴가를 보내고자 3박 4일 일정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2년 마다 한 번씩 오기로 했으며, 올해는 부부조 세 커플과 싱글 네 명이 참가하여 모두 10명이다. 부부조로는 “삼삼회”의 현 회장직을 맡고 있는 본인(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 내외와 한국 축산업의 선두주자인 (주)선진의 이인혁 회장 내외, 그리고 신한투자신탁 대표이사를 거쳐 지금 국영기관인 한국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으로 계시는 안광우 회장 내외가 참석했다. 싱글조로는 앞에서 소개한 이은선 회장과 1970년대 중앙일보 일본특파원 출신으로 전 코리아헤럴드, 내외경제신문사 대표이사를 역임하셨던 김경철 회장, 한국 요식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최근에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서울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하림각」의 대표 남상해 회장(저서 “나는 오늘도 희망의 자장면을 만든다”), 그리고 부인께서 갑자기 병이 나셔서 참석치 못해 대리인 자격으로 합류한 이은선 회장의 아들 이주원 사장(진원코리아 대표) 등이다. 첫날 저녁 무렵 여장을 푼 우리 일행들은 호텔 대욕장(大浴場)에서 온천을 한 후 남녀 모두 실내복 차림으로 식당에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만찬을 즐겼다. 방문단 단장이신 이은선 회장께서 먼저 최근에 유행하는 건배사라고 소개하면서 한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 “당신 멋져” 내용인 즉, 당당하게 살자, 신나게 살자, 멋지게 살자, 져 주면서 살자 라는 말의 첫 머리 글자를 합성해서 만든 건배사다. 우리는 연신 상대방에게 “당신 멋져”를 외쳐 주면서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모든 한국적 현실의 갈등구조와 시비상황을 떠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아내에게 “당신 멋져”라고 속삭여 주었다. 아내는 기분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끝말이 좋단다. 져 주면서 살자 라는 말의 뜻이 그녀가 평생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한을 풀어준 듯하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우리 한국이 일본을 이기고자 한다면, 질곡과 같은 과거사와 민족주의 감정의 늪을 뛰어 넘어 진정으로 극일하는 길은 어쩌면 “져 주면서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져 주면서 함께 공존하고 상생하는 길이 한일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동북아 평화체제의 새 길을 열어가는 대안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되새기면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평안하고 행복한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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