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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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전체 [ 39 ]

39    에필로그 댓글:  조회:3755  추천:38  2009-05-06
에필로그 동북아시대를 위해, 그리고 그 시대와 함께 웅비하는 민족의 미래를 향한 꿈을 위해, 하루같이 달려온 18년 세월, 그 세월을 돌아볼 때면 늘 떠오르는 시 한수가 있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시인 김상용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괭이로 파고 호미로 풀을 매며 묵은 땅을 기경하며 살았던 시인 김상용. 그는 결국 땀 흘림을 통한 자기혁신과 나눔 그리고 더불어 사는 정신을 통해 진정한 자아실현의 삶으로 가는 여정을 이 짧은 한 수의 시에 담았다. 그래서 그는 시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도인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다. 어느 구절 하나 간결하면서도 그 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구절이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가장 흔드는 구절이 있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얼마 가지 않아 우리 동북인들 사이엔 이런 관용과 나눔과 더불어 사는 삶의 전통이 피어날 것이다. 오직 그 날을 기대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나는 훌훌 털고 김상용시인처럼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 햇볕 잘 드는 양지의 밭뙈기를 일구며 늙어가는 이름없는 인생이어도 좋으리라. 그리고 어쩌다 누군가 내게 찾아와 묻기라도 하면 어지러운 시절을 허허롭게 살다간 시인을 떠올리며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왜 사냐고 묻거든           웃지요.    목차  프롤로그    85년, 비닐하우스의 봄 나이 마흔 셋, 문득 달음박질을 멈추다 환갑나이, 낯선 화두에 목숨 건 백발의 청년 나의 아버지와 테라우치 문고 첫 번째 이야기  동북아는 우리의 미래다 동북아 시대가 오고 있다  <新 풍속도> 한중일의 국경이 무너지고 있다  동북아시대의 신호탄, 아시아경제가 살아난다 두 번째 이야기 동북아시대의 주역들    아시아의 블랙홀, 중국의 비상 제 2의 이자나기 신드롬을 꿈꾸다, 일본의 부활 반도국가 한국의 두 가지 얼굴 신이 내려준 축복, 반도성 한반도는 동북아시대의 성지    세 번째 이야기  동북아네트워크를 구축하라 -FTA와 T&T 시대의 키워드 FTA와 T&T 동북아FTA와 한국의 손익계산서 KTX 등장과 한반도의 미래 한일해저터널, 어떻게 볼 것인가 한일해저터널건설은 시대의 흐름이다 한중해저터널 논의의 출발점 세계의 해저터널과 동북아 T&T 한중해저터널을 뚫고 T&T 시대로  한·중·일 해저터널과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  네 번째 이야기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라 흥부의 재해석, 포용의 성공전략 길을 닦아라, 미래는 꿈꾸는 게 아니라 달려가는 것이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먼저 이야기 하라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 섬김을 받으려면 경쟁을 포기하라. 이기고 싶다면    문제가 아닌 꿈을 공유하라 다섯 번째 이야기 중화를 품고 중원을 넘어가라 중화경제권이 뭉치고 있다  인류역사상 최강의 요새, 중화(中華)의 현주소 중국, 패권주의와 평화공존의 기로에 서다    조선족 사회 대망론(待望論) 한․중․조 삼자합작, 두만강유역개발사업에 거는 희망 여섯 번째 이야기  희망의 역사를 위하여   중국땅에 꽃피운 동북아의 희망, 연변과기대 연변과기대의 성공비결 북한 영변과 두 가지의 핵폭탄 사랑의 핵폭탄, 평양과기대를 낳다 평양과기대, 남북한이 함께 만든 기적  일곱 번째 이야기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민박회 사람들 경희궁의 밤 백두산의 소수민족 올림픽 오리엔탈 쇼크, 중국과의 미래를 기대하며 역사는 서쪽으로 흐른다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운동 거듭나는 천년의 꿈 여덟 번째 이야기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요한바오로 2세와 마하트마 간디 일곱가지 사회악과 일곱가지 리더십 네덜란드식 리더십 - 공백 제로의 원칙 T림프구의 상생 매직-공생을 위한 후퇴 에필로그
38    T림프구의 상생매직-공생을 위한 후퇴 댓글:  조회:3718  추천:40  2009-05-06
  여덟 번째 이야기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T림프구의 상생매직-공생을 위한 후퇴 우리 몸은 매일 수많은 바이러스, 세균 등의 외부침입자와 싸워야한다. 침입자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이에 대항하는 아군인 면역세포의 종류도 다양한데 이 면역세포의 대장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게 T림프구라고 하는 세포다. T림프구는 병원균과 싸우기도 하지만, 어느 것이 병원균인지를 구분해 다른 면역세포들에게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인체에서 세포의 수가 제한돼있기 때문에 T림프구의 ‘레퍼토리’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의 T림프구는 항상 제한된 수임에도 최대한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몸을 보호하는데 T림프구가 어떻게 다양성을 확보하는가 하는 경로를 밝히는 것이 지난 10년간 생명공학자들의 주요한 연구대상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미 국립보건원 산하의 국립암연구소(NGI)에 있는 한 한국인 생명공학자 박정현 박사가 그 비밀을 풀었다. 권위 있는 전문면역학회지인 이뮤니티(Immunity)에 실린 그의  논문에 따르면, T림프구는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인터류킨7이라는 호르몬을 차지하려고 경쟁한다는 것이다. 인터류킨7은 T림프구에 ‘여기 공간이 충분하니 여기서 살라’는 생존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체내에는 일정한 양의 인터류킨7만 존재한다. 때문에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T림프구만 살아남고, 결국 T림프구는 특정 종류만 남아 다양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T림프구는 늘 특정한 수를 유지하며 몸의 항균체제를 유지해왔다. 학자들은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경쟁과 다양성의 패러독스’로 부르며 불가사의하게 여겼다. 그런데 박 정현 박사는 철학자인 아버지 박순영 교수의 조언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조언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경쟁만으론 사회가 건강하게 생존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선 나눔과 양보가 필요하다 박 정현박사는 아버지의 조언에 영감을 받아 생태계의 생존원칙인 ‘약육강식’과 강자생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T림프구를 다시 관찰했다. 그 결과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됐다. 한번 인터류킨7의 생존신호를 받은 T림프구는 12시간 동안 다시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다른 T림프구가 인터류킨7을 차지할 수 있도록 양보하는 것이다. 이걸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T림프구는 인터류킨7을 흡수하는 수용체를 몸 안으로 끌어들인 뒤 12시간동안 밖으로 내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전자가 GF11이다.   박정현박사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쥐의 몸에서 GF11유전자를 제거했다. 그러자 이 쥐의 T림프구는 보통 T림프구와 달리 인터류킨7을 끊임없이 독식하기 위해 수용체를 들이밀었다. 그 결과 전체 T림프구의 수와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신체의 면역기능이 떨어졌다. 결국 평균 수명이 2년인 실험쥐는 3개월도 못돼 죽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인체의 면역세포 속에 상생의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무척 감동스러웠지만, 그보다도, 과학자인 아들에게 경쟁과 다양성의 패러독스를 넘어 공존과 상생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을 마련해준 철학자 아버지의 도덕적 영성에 더 탄복했다. 몸속이나 인간세계나 다를 게 무어 있으랴.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대 강국들의 패권주의적인 대립과 알력,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의 진로, 남북한 통일과 인접국가간의 영토분쟁 및 역사왜곡현상 등 이 모든 동북아 국제관계의 문제들을 풀어내는 데도 이런 ‘상생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중국 북경대 탕웨이교수는 21세기를 가리켜 ‘동서문화가 서로 대립하고 배척하는 몰이해의 세기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보완하며 서로 배우며 성장하는 세기’라고 정의했다. 미국의 저명한 문명비평가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 21세기의 핵심역할을 할 나라가 한국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대부분 극단적인 집단주의에 빠지고 있지만, 한국은 아시아적 특징과 함께 미국적 개인주의와 유럽적 가치관을 모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오랜 세월, 주변강대국의 거센 영향력 속에서 생존해오는 동안, 한국은 독보적인 생존의 면역시스템을 갖추게 되었고, 공존과 상생을 생존원칙으로 하는 글로벌시대이자 지식정보화 시대인 오늘날에 와서는 그 중간자적 정체성(Identity)과 민첩한 위기관리능력이 Digital Multiple Leadership으로 발전하는, 전화위복의 행운을 안았다는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 박사는 바로 이 점에 착안, 한국의 경쟁력과 다양성 있는 미래가치를 한류(韓流)열풍과 연계시켜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평가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한국을 멸시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 여성들이 한 한국 남성배우, 그러니까 누구더라, 아, ‘욘사마’를 쫓아다닌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하하, 만약 유럽연합(EU) 모델이 아시아로 수출된다면, 한국이야말로 아시아 연합을 주도할 가장 이상적인 국가다.” 작년 연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한 일간지를 통해 같은 조언을 한 바 있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크며,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 성장속도도 가장 빠르다. 동시에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도 갖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의 비중은 기대만큼 크지 않다........         아시아는 현재 통합공동시장이 없는 유일한 대륙이다. 중남미와 북미는 자유무역지대 건설을 꿈꾸고 유럽은 단일국가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아프리카연합도 아프리카합중국 건설을 열망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아시아 함중국 건설은 안된다는 말인가. 물론 아시아만의 특수성이 있을 것이다.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 끊이지 않는 정치영토 분쟁, 다자간 협력 경험의 부족, 한 두 국가에 집중된 권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노력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인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나는 변화를 보고 싶다. 아시아가 통합되고 국제사회와 연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특히 나는 조국인 한국이 큰 일을 해나가길 기대한다.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한국은 북핵 6자회담에서 다자외교의 수완을 보여주었다. 이제 한국과 아시아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성공경험을 국제 현안 해결에 쏟아부어야 할 차례다. 여기에 대해 세계적인 석학인 미국 예일대 폴 케네디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네 마리 코끼리 사이에 앉아있는 작은 동물이다. 이런 작은 나라의 생존전략은 네마리 코끼리와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들이 날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섣불리 친 중국정책을 펼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어느 쪽이든 치우치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세계는 한국의 그런 역할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의 말에 동감이다. 그는 한국이 작은 나라라고 해서 강대국들 사이에서 위축될 필요가 없이 오히려 지정학적인 위치를 이용해, 네 나라가 자유롭고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 역할이 마치 강대국을 세계무대 위에 올려놓고 평화와 화합의 춤을 추도록 하는 조련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친(親)중국이니, 反美니, 적이니, 동지니 하며 네 편, 내 편을 가를 이유도 없어진다. 네 마리의 코끼리들에게 한반도가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인 존재임을 부각시키면서, 세계 역사 진로의 새로운 드라마를 연출하는, 동북아의 피스메이커의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여기에 우리의 살길이 있다. 네 마리의 코끼리 모두가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씨를 뿌리려면 먼저 밭을 갈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동북아 FTA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이 서로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모두의 평화공존과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갈등을 통합하고 역사를 바꾸어가는 진정한 리더십(Syncretic & Transforming Leadership)이 필요하다. 미국 윌리엄스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제임스 맥그리거번스는 그런 리더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위대한 리더는 사람들을 높은 가치목표로 이끌어야 한다. 경제적 번영은 실제적인 문제이며 어느 곳에서나 항상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리더는 단지 실제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큰 목표로 사람들을 끌고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리더의 모습이다. T&T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동북아시대를 열어가야 할 동북아인 모두가 바로 이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 각자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야 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입장에서 공동선을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통합적인 사고의 능력을 키워야 할 때다. 국가 간 개체의 한계와 속성을 뛰어 넘어 ‘인류라는 큰 틀’의 경지를 통해 새로운 국제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각국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굴, 확장해나가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화 시대의 국제협력 흐름에 적합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문화와 전통을 이끌어가는 것이 이 시대 우리 동북아 인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사명이요 그 의무가 아닐까.   인체의 면역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룰이 아니었다. T림프구의 상생본능이 인체를 건강하게 지켜가는 것이다. 생태계에서 물리적으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T림프구가 인터류킨7을 혼자 독식하지 않고 다른 T림프구와 나누고 양보함으로써 자신의 역할도 완수하고 자신의 생명도 최대로 연장시켜가는 상생의 본능! 지금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발휘해야 할 역할이 바로 이 상생본능을 전파하는 것이다.  동북아의 미래는 동북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중․일 삼국이 새로운 공동체적 대안을 갖고 서로 벽을 허물고 상생, 협동, 융합의 신문명 시대를 열어가기만 한다면, 그 흡인력으로 아시아를 품고 인도와 중앙아시아, 중동까지 융합시키는 Fusion Power가 되어서 마침내 아시아 합중국시대를 열 수 있게 될 것이다.
37    네덜란드식 리더십 - 공백 제로의 원칙 댓글:  조회:4367  추천:33  2009-05-06
  여덟 번째 이야기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네덜란드식 리더십 - 공백 제로의 원칙 몇 년 전 암스텔담을 간 적이 있다. 제4차 CBMC유럽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인천국제공항에서 11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기내 TV화면에 나오는 항공노선을 계속 관찰했다. 한반도에서 북서향으로 방향을 잡은 비행기는 북경을 거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지나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바이칼호 부근, 세계 최대 천연가스전 개발지역)를 향했다. 거기서 노선을 서쪽으로 고정시킨 채 장시간 시베리아를 횡단한 후 모스크바와 발틱해를 지나면서 남쪽으로 기수를 돌리면 유럽의 관문 암스테르담에 이른다.  나는 이 비행노선을 따라가면서 마음속으로 도쿄에서 런던까지 달려가는 KTX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첫째:TSR(시베리아 대륙횡단철도)과 연결되는 노선         일본(도쿄 – 오사카 – 후쿠오카 – 쓰시마) – 한반도(①부산– 동해선– 원산– 청진, ②부산– 서울– 평양–원산 – 청진) – 러시아(나호드카– 보스토치나–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유럽(암스테르담/로테르담– 브뤼셀– 파리/런던) 둘째:TCR(중국횡단철도)과 연결되는 노선         일본– 한반도(부산– 서울– 평양– 신의주)– 중국(심양– 북경–서안)– 중앙아시아(타지크스탄– 천산산맥– 우즈베키스탄)– 러시아(모스크바)– 유럽 셋째:TMR(만주통과철도)과 연결되는 노선         일본– 한반도– 중국(북경)– 몽골(울란바토르)– 러시아(TSR과연결)– 유럽 장차 KTX는 남북 경제협력과 사회통합을 유도하는 대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유럽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의 주역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한반도를 동북아 물류의 중심축`(HUB)으로 발전시켜 가는 동북아시대의 새 역사, 상생하는 역사의 진로를 선도하는 교통혁명의 대안이 될 것이다. 동북아의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유럽연합이 부러워진다.  ‘인류 최대의 경제실험’으로 불린 유로화 도입에 성공하고 ‘인류 최대의 정치실험’으로 불렸던 동구권 10개국의 EU가입도 성공적으로 잘 이루어냈다. 그 결과 회원국 27개국에 인구 4억 5천만 명으로 팽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로 분열됐던 유럽을 EU라는 하나의 지붕아래 결속시키는 ‘정치 빅뱅’이자 역사상 최대 국가연합의 탄생을 실현하는 위업을 성취한 것이다. 나는 EU 회원국 대표들이 모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통합의 시대를 열어간 그들의 리더십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들이 일궈낸 상생의 역사는 인류사회의 발전과 문명의 척도를 향상시키는 참으로 위대한 흔적이 되어 그 길을 따라가는 이들에게 빛이 되어 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한민족 공동체와 한반도 통일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리더십이 우리사회 안에서 ‘큰바위 얼굴’처럼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곤 한다.   네덜란드의 개성상인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보나미덱스 박영신회장은 29년 전 (주)선경의 주재원으로 네덜란드에 건너가 단돈 200길더(한화 12만원)로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유럽 의류업계의 거상(巨商)이 됐다. 지금도 1년이면 4,5개월씩 세계 각국을 누비는 국제상인으로 장사 잘 하기로 소문난 네덜란드의 유태상인들마저 경쟁을 회피할 정도다. 그는 유럽인에게 옷을 가장 많이 판 동양인으로 유명하지만, 또한 네덜란드 유태인 거상인 미슈밤 영감을 양아버지로 모시고 끝까지 그의 인격과 상술과 경영방식을 배울 만큼 자신의 인생을 세일즈 하는데 철저했던 인물이다. 30년 가까운 장기간의 이민생활을 통하여 유럽 현지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히딩크를 키운 나라, 네덜란드>란 저서에서 월드컵 당시 히딩크의 엄지손가락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의 개척정신과 일본 도쿠가와 막부를 설득해 무역을 했던 상인정신을 함께 보았다는 내용과 함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금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뿌리 저변은 네덜란드에 닿아있다. 또 일본이 400여년간 조용히 서양식 문화를 흡수해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게 된 뿌리에도 네덜란드 상인이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두 나라는 지금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 되었다.  한국은 350여년 전 하멜이라는 네덜란드인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지만 그들의 정신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가 네덜란드인을 제대로 발견하게 된 것은 히딩크를 통해서였다. 그가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히딩크십은 미국과 일본에서처럼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유럽의 오래된 속담 중에 ‘네덜란드를 알아야 세계가 보인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세계화에 일찍 눈뜬 네덜란드 사람들의 경제 감각을 배우라는 뜻이다. 또 일본인들에게 어느 나라 사람을 가장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의외로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일본의 명문사학 게이오 대학을 설립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일본 개화기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도쿠가와 막부 말 네덜란드에 유학했던 사람이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일본의 개화가 시급하다면서 1858년 양학숙(洋學塾)을 세웠으며 그 후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1868년 양학숙을 게이오 의숙(慶應義塾)으로 개명하고 유럽의 선진문화를 보급하는 창구로 삼았는데, 이것이 지금의 게이오 대학의 전신이다. 또한 큐슈지역과 네덜란드와의 오랜 교류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네덜란드는 일본의 개화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친 나라다. 어디 그뿐인가. 1620년 9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던 영국 청교도들도 네덜란드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영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던 100여명의 청교도들은 아메리카로 가기 전 10여 년 동안 네덜란드에 피해 살면서 그들의 배려와 도움 속에 근검, 절약, 정직, 능률의 덕목을 훈련하면서 자신들의 종교적 뿌리를 완성했다. 한마디로 초강대국 미국의 건국정신의 토대를 만든 사람들이 네덜란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국도 거스 히딩크라는 불세출을 감독을 통해 네덜란드의 힘을 실감한 바 있다. 히딩크라는 인물의 탁월함은, 그가 우리에게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적인 역사를 만들어주어서라기 보다는, 최근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 스스로 막연히 생각해오고 기대했었던 그러나 한번도 속 시원히 발휘해보지 못한 우리의 잠재력과 놀라운 응집력을 우리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확인시켜주었다는 데 있다. 그가 처음 한국 대표팀을 맡았을 때, 축구팀은 스포츠맨쉽이 아닌 한국 사회의 뒤틀린 원칙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었다. 뿌리 깊은 인맥과 선수선발과정에서의 편파적인 기준, 개인의 능력만을 과신하는 스타 선수들의 불성실한 훈련과 지나친 자만심 등으로 상징되는, 도무지 팀이라고 할 수가 없는 조직이었다. 그런 한국의 축구팀의 내부 상황을 몰랐던 한국인들은 대대로 감독만을 탓했고,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심지어는 민족성과 연결시켜 한국인은 안돼 라는 자기열등감에 시달리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일본축구팀과 경기를 할 때면 야수처럼 죽을 힘을 다해 달려드는 이상한 팀이었다. 그 때문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일본팀은 번번히 한국 때문에 월드컵 본선진출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본선에 진출해서는 일본팀보다도 훨씬 더 약체인 팀에게조차 단 한 게임도 이기지 못하고 귀국길에 올라야 하는 이상한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히딩크는 그 이유를 딱 한가지로 진단했다. 상당한 기술과 탁월한 재능, 그리고 열정을 지닌 선수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생명인 팀웍과 경기능력 향상을 위한 기초체력과 이론적인 실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분석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은 역대 감독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히딩크가 다른 감독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히딩크를 흔히 그라운드의 음유시인으로 부르기도 하고 그와 함께 변화하는 선수들을 보며 그를 마법사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원칙에 충실할 뿐이다. 그는 팀의 상황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데 매우 신중하고 섬세하다. 그러나 그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는 무서우리만치 단호하고 철저하다. 이것이 그의 독보적인 탁월함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또 누구에게도 절대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것은 예외가 있을 경우 생존자체를 위협받는 네덜란드의 자연조건에서 성장한 그들만의 철저함에게 기인됐다. 히딩크를 알기 전 내가 알고 있던 네덜란드에 관한 기억은 어렸을 적 읽은 동화속의 소년이다.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강물을 막은 댐에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생긴 것을 보고 그것을 처음엔 손바닥으로 막다가 그 구멍이 점점 커지자 두 손으로 막고 나중엔 마을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갔던 동생이 돌아올 때까지 차가운 바닷물에 몸이 어는 줄도 모르고 온 몸으로 그 구멍을 막아낸다. 물을 막은 댐에 구멍이 생기면 죽는다는 그 절체절명의 원칙을 그는 팀에 적용했다. 구멍이 생기면, 즉 예외가 생기면 선수도 죽고, 팀도 죽고 게임도 잃는다는 그 원칙을 선수들에게 철저하게 가르쳤다. 그는 한국팀이 월드컵본선 징크스를 깨기 위해 필요한 훈련의 내용과 양을 결정하고 그 훈련을 완성할 때까지 냉정하고 혹독한 조련사처럼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인맥이고 학맥이고 스타고 뭐고 없었다. 그는 선수들에 관한 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고 어떤 외부로부터의 평가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해진 훈련량을 소화하고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선수들을 냉정하게 가려내고 그 선수들만으로 팀을 꾸렸다. 아무리 스타플레이어라 해도 자신의 재능만을 믿고 훈련을 게을리하고 팀에 불안한 공백을 만드는 선수에겐 전혀 미련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몸값이 얼마건, 그가 얼마나 유명하건, 그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스타플레이어는 그라운드에서 제 실력을 발휘해야 진짜’라고 말하며 그렇지 못한 스타선수들을 가차없이 제명시켰다. 약체인 팀과의 평가전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라며 일체 하지 않았다.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만 골라서 평가전을 가졌다.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내용 만으로 선수들과 축구관계자, 그리고 여론의 우려와 걱정을 잠재웠다.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비기거나 이겨서 온 나라가 들뜰 때도 그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팀과 붙어도 이길 수 있는 ‘징크스’없는 팀, 전천후 팀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 후에 그가 선수들에게 심어준 것은 생존의 기술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상대팀의 선수구성, 감독의 주요 전략구사범 등을 모든 정보를 선수들과 똑같이 공유했다. 그는 선수들을 감독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으로 키우지 않고 그라운드안에서 공백이 생기면 자신의 포지션에 상관없이 스스로 달려가 막아내도록 훈련시켰다. 그런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선 수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감독으로 키운 것이다. 선수들은 점점 공백에 민감해졌고 그만큼 수비가 강해졌다. 동시에 상대의 공백을 발견하는 눈도 그만큼 빨라졌다. 어떻게 공의 흐름을 유도해야 하고 어떻게 수비선수들의 파울을 유도해 내며, 어느 지점에 공백을 유도해야 골을 넣는 데 유리한 지를 본능적으로 파악하면서 전체의 흐름 속에서 팀의 공백을 먼저 달려가 손바닥으로 막아내는 것이 자신을 살리고 팀을 살리고 경기를 이길 수 있는 길이란 확신을 주었다.   그 확신의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세계의 축구팬들이 보는 앞에서 한국 축구는 그야말로 가공할 힘을 발휘했다. 무명의 한국 젊은이들은 세계의 축구강호들과 맞붙어 한몸 같은 팀웍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 그리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을 구사하며 유감없이 자신의 능력을 폭발시켰고, 세계 축구 강호들은 젊은 한국축구 앞에서 차례로 침몰해갔다. 공백과의 싸움에서 이긴 한국축구는 단번에 선진축구팀으로 도약했다. 유럽의 허브 랜드Hub Land라고 불리는 네덜란드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국토 면적은 우리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41,500㎢`남짓밖에 안 되는 작은 국가이고 국토의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인 악조건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유럽의 주요시장에서 반경 500킬로, 즉, 하룻밤 운송거리 면 갈 수 있는, 유럽 최고의 물류중심에 위치해 있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변강대국들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느라 바람 잘 날이 없는 나라였다. 이런 점에서 네덜란드는 유럽의 코리아라고 할 만큼 비슷한 역사를 헤쳐왔다.  하지만 결국 네덜란드는 그런 상황을 탓하면서 자기비관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끈질긴 생존의지와 개척정신으로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지리적 잇점을 최대한 이용해 오늘날 유럽의 허브가 되는 데 성공했다. 유럽 최고의 항공화물센터인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과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항인 로테르담 항, 그리고 세계 중요언어를 동시적으로 구사하면서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한 암스텔담 서부의 텔레포트를 한데 묶어 흔히 TRI-PORT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파리행 TGV 고속철도까지 연결돼 있어 명실공히 유럽 최고의 물류왕국이라 불린다.  네덜란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유럽의 한가운데 놓인 약소국, 그래서 수없이 많은 강대국의 침략과 약탈을 받아야만 했던 나라, 우리에겐 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한이 있듯 그들에게도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적 악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유럽의 허브국가이자 동시에 세계적인 강국이 된 미국과 일본에 부와 선진국으로서의 국가경영정신을 전수해준 대부와 같은 나라로 우뚝 섰다. 네덜란드를 배운 나라는 모두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네덜란드가 유럽 물류의 중심이듯이 한국 역시 동북아의 중심이다. 그리고 우리는 EU의 5억 인구보다 무려 세배가 넘는 15억의 소비자를 가진 시장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더구나 세계 경기를 아시아가 먹여 살린다고 할 만큼 역사적인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더 이상 망설여선 안 된다. 분단국가라는, 혹은 약소국이라는 그런 자기비하와 열등의식에 빠져 있는 건 바보짓이다. 네덜란드 식이라면 이 천혜의 지리적 잇점을 활용해 동북아의 허브로 도약해야 한다. 그래서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세계적인 강호 이탈리아와 16강전을 앞둔 선수들에게 히딩크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만들어보자 (Let's make a history)!
36    일곱가지 사회악과 일곱가지 리더십 댓글:  조회:4506  추천:40  2009-05-05
여덟 번째 이야기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일곱가지 사회악과 일곱가지 리더십 인도 뉴델리의 야무나Yamuna강변에 있는 간디 추모공원 라즈 가트 Raj Ghat를 흔히 간디의 묘지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간디의 유해는 힌두교 관습에 따라 화장을 했고 이곳은 그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이곳엔 마치 병풍처럼 간디의 묘지를 둘러싸고 있는 화강암돌벽이 있는 데 그 위에 간디의 ‘7대 사회악’이 새겨져 있다. 이 ‘7대 사회악’은 간디가 인도의 지도자로 부상할 무렵인 1925년, <영인디아Young India>라는 신문에 처음 실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칙없는 정치 (Politics without principle)   둘째,   노력없는 재력 (Wealth without work)   셋째,   양심없는 쾌락 (Pleasure without conscience)   넷째,   인격없는 지식 (Knowledge without character)   다섯째, 도덕없는 사업 (Commerce without work)   여섯째, 인간없는 과학 (Science without humanity)   일곱째, 희생없는 신앙 (Worship without sacrifice) 이와 함께 교황 바오로 2세가 일생을 통해 실천했던 7가지 덕목을 살펴보자. 이는 교황 선종 그 이듬해 USA투데이가 실은 특집기사 ‘Business leaders can learn from pope’에서 소개됐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희생(Sacrifice)         모범적인 최고경영자(CEO)나 대학총장, 지도자치고 개인적 만족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교황은 자신의 죽음과 그 죽음을 위엄있게 처리하는 방법에서조차도 희생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둘째 : 진심(Be genuine)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을 하는 리더가 이성에만 의존하는 리더를 이기는 법. 많은 사람이 교황과 의견을 달리했지만 교황의 정직과 관심은 반대를 완화시켰다. 그의 온화함과 인정미는 도덕적 권위를 더해줬다. 셋째 : 용기(Be courageous)         교황은 자신에 대한 암살 미수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에서부터 자본주의까지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그의 도덕적 용기 때문이었다. 넷째 : 솔선수범(Lead by example)         교황은 타인에 대한 공감, 신뢰, 자기절제를 솔선수범했다. 그는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실행하는 사람이었지, 바티칸에 지시나 하는 행정가가 아니었다. 다섯째 : 탐구(Be knowledgeable)         교황은 윤리학 교수였으며 극작가요 시인이었다. 두개의 박사학위를 받았고 폴란드가 나치에 점령됐을 때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지적이었고 자신의 핵심 신념과 그 신념대로 사는 데에 필요한 행동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 여섯째 : 소통(Communicate)         교황은 중부 유럽의 잠재적 민족주의와 소통할 수 있는 위대한 의사전달자였기 때문에 냉전을 종식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영혼 대 영혼으로 말했다. 일곱째 : 영감(Be inspirational)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지 못하거나 그들이 자신보다 큰 무엇의 일부라는 것을 느끼게 하지 못하면 감동적일 수 없다. 교황은 영혼의 관대함과 겸손함의 모범이었다. 간디의 ‘7대 사회악’과 요한 바오로 2세의 ‘7가지 리더십’엔 분명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양자로부터 제기된 일곱개의 항목들을 나열해놓고 서로 뜻이 통하고 의미가 부합되는 항목을 연결해보면 알 수 있다. 즉, 간디의 비판적인 부정문(negative form)에 요한 바오로 2세의 긍정적인 용어를 연결하면 일곱 개의 새로운 문구가 완성되는데 그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원칙없는 정치 + 용기 ⇒ 용기있는 정치(Politics with Being courageous) 2) 노력없는 부 + 솔선수범 ⇒ 솔선수범하는 부(Wealth with Leading by example) 3) 양심없는 쾌락 + 진실성 ⇒ 진실성있는 쾌락(Pleasure with Being genuine) 4) 인격없는 지식 + 지식 ⇒ 인격있는 지식(Knowledge with Character) 5) 도덕없는 상거래 + 소통능력 ⇒ 소통능력 있는 상거래(Commerce with Communicate) 6) 인간성없는 학문 + 영감 ⇒ 영감있는 학문(Science with Being inspirational) 7) 자기희생없는 신앙 + 희생 ⇒ 희생하는 신앙 (Worship with Sacrifice) 마치 간디의 ‘7대 사회악’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요한 바오로 교황이 실천한 일곱가지 덕목을 통해 우리에게 해결책(solution)을 주는 것 같지 않은가? 종교와 시공을 뛰어넘는 두 성자의 삶 - 동서양의 만남, 힌두교와 카톨릭의 만남-이 참다운 인성에 눈 뜨게 하고, 인류공영을 위해 우리가 경쟁해야 할 일곱가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첫 번째로 ‘용기있는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를 ‘인간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립을 조정하여 통일된 사회질서를 유지하도록 하는 모든 행동’이라고 정의할 때, 이 정치적 행동에는 각 사회마다 대원칙이 있다. 용기란 바로 그 원칙이 무너지거나 누군가가 침해할 때, 올바른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헤 소리를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정치의 가장 큰 역할이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또한 이는 정치지도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종 결정자의 위치에 선 사람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직면하게 되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자신의 결정 하나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앞에서 지도자는 절대고독을 체험한다. 절해고도에 혼자 있는 듯한 느낌, 그때 그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용기다. 용기란 부담을 지는 것을 함축한다. 자신의 결정과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용기이며, 그 부담을 기꺼이 지겠다는 것이 용기다. 이것이 곧 주역에서 말하는 지도자의 덕목인 ‘강인함’이며, 석가가 말한 지도자의 덕목 중 ‘앞장섬’인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용기있는 정치가 한 사람이 사회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링컨과 간디가 그랬고, 처칠이 그랬으며, 세종과 정조가 그러했다. 지금도 우린 절실히, 그리고 간절히 그런 정치와 정치가를 기대하고 있질 않은가. 두 번째로 ‘솔선수범하는 부’란 두말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올바른 가치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는 ‘부유층’을 말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 형성에 기여하는 덕목이다. 땀 흘리지 않고 편법과 불법적인 거래로 부가 형성되는 사회는 건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개인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솔선수범하는 부란 사회의 빈곤과 소외와 불균형의 해소를 위해 있는 자가 솔선수범하여 나눔과 희생의 삶을 사는 것, 바르고 정직하게 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것까지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성실하게 자기 삶을 경주할 때, 그 사회엔 건강한 생존활동이 형성되고 평화와 안정이 깃든다. 생물학자이자 뛰어난 교육가인 데이비드 스타 조단은 이렇게 말했다. ‘지혜란 다음에 할 일을 아는 것이고, 덕은 그 할 일을 실행하는 것이다’ 라고. 솔선수범 그것은 곧 할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실천하는 덕이다.   세 번째, ‘진정성있는 즐거움’이란 뭔가. 이것은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충족감을 주는 즐거움. 아니 희열에 가깝다. 이 사회에는 감각을 만족시키는 쾌락이 만연해있다. 이것들은 일상생활에 지치고 상처받은 인간들을 유혹한다. 음주, 흡연, 간음과 약물 등......하지만 그런 쾌락은 오래 가지 못할뿐더러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족도 주지 못해 결국은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만이 남을 뿐이다. 그런데 반해 정신적인 충족감을 주는 즐거움은 삶의 의욕을 북돋워주고 자존감을 높여서 인간을 더욱 성숙하게 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정신을 충족시키는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까. 문학과 예술 등 우리의 영혼을 살찌울 유익한 즐거움과 쾌락의 산물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은 성취감일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의 발행인 월터 배조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그 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라고. 위대한 문학가 앙드레 지드도 ‘행복의 비결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데 있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쾌락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삶과 인생을 성숙하게 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삶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즐거움이다. 한순간의 짜릿한 쾌락으로부터의 유혹을 이기고 나 자신과 시대와 인류사회를 살찌울 진정한 쾌락에 도전할 때, 우리의 삶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인격을 바탕으로 한 지식’이란,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교육문제와 직결된다. 인성교육이 선행된 지식교육, 그런 배움의 자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상당수가 남들보다 더 나은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 공부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틈만 나면 아이들을 학원으로 외국으로 보낼 줄만 알았지, 집에서 작은 일 하나라도 기꺼이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지 못했다. 아예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사라져서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 사이 우리 사회속에서는 염치와 예절을 알며 남들을 배려하는 법과 스스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운 세대는 사라졌다. 지금 이 덕목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명백하다. 양심과 상식과 배려와 감사를 아는 인간성과 전문지식을 함께 갖춘 인간이 되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2세를 키우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한 가지를 제안하자면 가정 안에서 공동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조금씩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그런 가정교육, 가정문화의 새 흐름을 꽃피워야 한다. 다섯 번째, ‘소통능력이 있는 상거래’라 함은 정직한, 투명한 경제 질서를 말한다. 흔히 부정직한 거래를 암거래라 한다. 투명하지 못한 거래, 불법과 부정, 뇌물과 불합리함이 난무하는 시장질서는 상거래의 상식적인 의사소통과 재화의 흐름을 방해한다. 정직하게 땀 흘린 사람이 땀의 댓가를 받을 수 없는 사회를 만든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재화가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상거래에서의 투명성과 정직성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기업 내에서의 바른 재화 흐름, 기업과 기업간의 투명한 재화이동, 거래의 성사과정이 곧 그 사회의 도덕성과 가치기준을 형성한다. 깨끗한 상거래문화가 형성되어야 사회가 그만큼 건강해진다.    여섯 번째, ‘영감있는 학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창조적인 학문이라고나 할까. 원리원칙을 밝히는 학문에만 머문다면 그 학문은 새장 안에 갇힌 새와 같은 것. 갇힌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이를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학문이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를 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때문에 학문이라는 세계에는 이를 세상으로 인도할 영감이라는 길이 필요하다. 대학의 연구소 안에서 위대한 기술과 학문적, 과학적 성과들을 이루어내는 사람은 수천명이 넘지만 사실 이런 성과들을 세상으로 이끌어내 전기를 발명하고 비행기를 제작하며, 핸드폰이나 MP3, 인터넷, 방송망을 만든 사람들은 뛰어난 영감을 가진 몇몇 사람이 이루어낸 것이다. 뛰어난 영감, 그것이 위대한 학문적 성과와 만날 때, 인간의 삶은 한 단계, 한 단계 역사적인 도약과 진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일곱 번째, ‘희생하는 섬김’. 이것에 대해 우리는 뚜렷하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일상생활에서는 가장 잘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가장 약한 면을 드러낸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의 예를 들어 설명해본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마시기 위해 아무 곳에서나 마시지 않는다. 아무 종류의 커피를 마시지도 않는다. 콩의 종류도 가려가며 마신다. 자기 입에 맞는 커피를 만들어 주는 카페를 찾아가기 위해 커피값의 몇 배나 되는 석유값을 투자하며 차를 몰고 간다. 가는 동안은 아무리 커피가 마시고 싶어도 참는 인내를 발휘한다. 비싸도 꼭 그 집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과 마음과 육체적 인내라는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결코 힘들어 하지 않는다. 십대들이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 쏟는 헌신은 거의 경탄스러울 정도다. 팔천원짜리 헤어컷을 하기 위해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미용실을 찾아가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브랜드의 옷을 부모가 사줄 때까지 단식투쟁을 하는 아이도 많다. 그에 반해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정작 그 만한 희생과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공하고 싶다. 가정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라가 안정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원하면서도 심지어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성공을 위해, 가정의 행복을 위해, 나라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위해 구체적이고도 치열한 희생과 헌신을 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이 한 잔의 커피보다, 일 년이면 유행이 지날 브랜드의 옷보다 더 못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쪽에선 은근히 ‘운’과 ‘부모의 재력’과 ‘배우자의 사회적 능력’과 ‘인맥’을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희생이 없는 섬김. 희생이 없는 숭배. 희생이 없는 신앙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간디가 자신의 평생을 인도독립과 비폭력무저항주의의 실천을 위해 희생했듯이, 요한 바오로 2세가 육신을 괴롭게 하는 갖가지 질병을 안고도 백 여개국을 순방하는 치열한 희생으로 종교간, 이념간의 벽을 허물었듯이. 희생은 얼핏 무기력하고 무의미하게 보이지만, 그것만이 이기적인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되고, 정체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 대상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라. 그것이 희생이다. 그리고 그 희생위에서만 세상은 평화와 희락과 안정이라는 열매가 풍성이 열리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지금도 인도의 간디기념공원이나 바티칸에 있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념관에는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순례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들의 삶을 추모하고 그들이 이 땅에 남긴 위대한 족적을 기억하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 그들이 일생을 바쳐 남긴 지혜가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그것을 힘써 지켜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행렬이 지구 끝까지 이어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35    요한바오로 2세와 마하트마 간디 댓글:  조회:4640  추천:41  2009-04-30
  여덟 번째 이야기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온 위인들에겐 몇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종종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 모든 덕목들이 지향하는 것은 늘 하나의 가치다. 그것이 바로 상생이다.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가야 할 시대적 소명을 요구받은 우리도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살아간 이들의 흔적을 따라 가보려 한다.  요한바오로 2세와 마하트마 간디 1978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즉위한 지 34일 만에 선종 고해성사를 하고 죄가 없는 상태로 죽음을 맞음 하자 콘클라베 캐톨릭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최고의회 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여덟 번의 거듭된 투표 결과, 455년만에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주교 카롤 요제프 보이티야. 당시 공산국가였던 폴란드 출신의 그가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이유는 단 하나, 냉전시대와 함께 위기를 맞은 교회를 이끌 지도자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27년간 ‘행동하는 순례자’로 불리며 세계인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을 받게 되는데, 그가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다.     그는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고국 폴란드를 선택했다. 공산주의 압제에 시달리던 폴란드 국민의 자주노조를 지지함으로써 동유럽 해체에 물꼬를 텄다. 카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진화론을 인정했고, 지동설을 부인한 교황청의 4백 년 전 잘못도 공식 사과했다. 카톨릭 교회의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고, 99년에는 티벳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광주 사태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죽어간 직 후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을 비롯해 백여 개 국가를 다니며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이끌어갔다. 2000년도엔 가톨릭 사상 처음으로 참회 미사를 집전했다. 그는 십자군 전쟁과 종교재판, 유대인 박해 등 가톨릭의 실수에 대해 진심어린 용서를 구했다. 또, 다른 종교에도 진리의 씨앗이 있음을 인정했고,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을 야기시켜 종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비록 여성사제 임명과 낙태, 동성애 등에 대해서는 절대 불가 입장이어서 진보적인 사제들의 저항을 받기도 했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 쇄신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데 치열하게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2005년 4월2일,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례식은 100여 개국 정상 및 타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몰려든 40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교황, 용서와 화해의 큰 목자였던 요한 바오로 2세. 그의 존재를 영국의 타임지(誌)지는 이렇게 평했다.   “2천년 교황청 역사 중 그만큼 강력한 목소리를 낸 교황은 없었다. 그는 도덕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이 시대를 향해 선한 인생의 비전을 제시하고 세계가 이를 따르도록 몸소 먼저 실천했다” 요한 바오로 2세 못지않게 성자라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인물이 있다. 인도의 문호 R. 타고르가 ‘마하트마(Mahatma:위대한 영혼)’라고 칭송했던 인도 건국의 아버지이자 비폭력무저항주의로 인도를 독립시키고 인도인을 각성시켰던 위대한 지도자 간디다. 1870년 인도의 서부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대에서 법률을 공부한 간디는 인도로 돌아와 변호사가 됐다. 그러던 중 자신이 맡은 소송사건 때문에 남(南)아프리카 연방의 더반으로 가게 됐는데, 이 여행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놓았다. 당시 남아프리카에는 약 7만 명의 인도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백인에게 박해를 받고 있었다. 그들의 인권보호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간디는 이후 남아프리카 연방 당국에 대항할 인종차별 반대투쟁 단체를 조직, 1914년까지 그 지도자로 활동했다. 투쟁에 있어 간디가 택한 방식은 ‘아힘사(ahim  sā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불살생)’이었다. 이곳에서 전개한 ‘인종차별과 압박에 대한 투쟁’(사티아그라하:satyagraha)과 자아실현을 위한 인격도야와 수양의 노력은 훗날 간디가 인도에서 전개한 독립운동의 모형이 되었고, 또한 인도인의 정신개조계획의 기초가 됐다. 그로부터 약 8년 동안 간디는 인두세(人頭稅)를 비롯한 갖가지 인도인 차별법 철폐를 목표로 타이아그라하 행진을 계속했다. 특히 1913년에 간디가 선두에 서서 나탈주(州)에서 트란스발주(州)까지 걸어갔던  ‘사티아그라하 행진’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간디를 비롯한 행진 참가자 4,000명은 남아프리카 당국에 체포되었으나, 악법을 반대하는 간디의 비폭력무저항운동은 세계의 여론을 감동시켰고 결국 당국을 굴복시켰다. 이후 인도인에 대한 차별법은 모두 폐지됐고, 간디는 남아프리카의 간디에서 일약 세계의 간디가 되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자신의 할 일을 끝낸 간디는 1915년에 조국으로 돌아온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인도독립의 약속을 어기고 반란 진압법까지 선포하자, 간디는 사티아그라하 운동으로 이에 맞섰다. 납세거부·취업거부·상품불매 등을 통해 영국에 비폭력 저항을 전개하는 한편 인도인의 자아각성을 촉구했으며 61세가 되던 1930년부터는 소금세 신설 반대운동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영국은 인도의 동의도 없이 인도인을 전쟁에 투입했다. 이에 대대적인 반영불복종운동을 전개하던 간디는 73세의 노령으로 체포돼 1년 9개월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전쟁 후에는 팔순이 가까워오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힌두·이슬람의 화해를 위한 연설을 하며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1948년 반(反)이슬람 극우파인 한 청년의 흉탄에 쓰러진 것이다. 간디의 죽음을 전해들은 세기의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런 인물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걸어 다녔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요한 바오르 2세와 마하트마 간디, 이 두 사람은 비록 종교는 달랐지만 주어진 삶을 통해 ‘성자’의 반열에 들었던 점에서 공통점이 많은 인물이다. 이런 성자들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상생의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성자의 ‘다른 꼴 상생’의 삶 속에는 ‘닮은 꼴 생각’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간디가 지목한 ‘일곱가지 사회악’과 요한 바오로 2세가 제시한 ‘일곱가지 리더십’이다. 일곱가지 사회악과 일곱가지 리더십 인도 뉴델리의 야무나Yamuna강변에 있는 간디 추모공원 라즈 가트 Raj Ghat를 흔히 간디의 묘지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간디의 유해는 힌두교 관습에 따라 화장을 했고 이곳은 그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이곳엔 마치 병풍처럼 간디의 묘지를 둘러싸고 있는 화강암돌벽이 있는 데 그 위에 간디의 ‘7대 사회악’이 새겨져 있다. 이 ‘7대 사회악’은 간디가 인도의 지도자로 부상할 무렵인 1925년, <영인디아Young India>라는 신문에 처음 실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칙없는 정치 (Politics without principle)   둘째,   노력없는 재력 (Wealth without work)   셋째,   양심없는 쾌락 (Pleasure without conscience)   넷째,   인격없는 지식 (Knowledge without character)   다섯째, 도덕없는 사업 (Commerce without work)   여섯째, 인간없는 과학 (Science without humanity)   일곱째, 희생없는 신앙 (Worship without sacrifice) 이와 함께 교황 바오로 2세가 일생을 통해 실천했던 7가지 덕목을 살펴보자. 이는 교황 선종 그 이듬해 USA투데이가 실은 특집기사 ‘Business leaders can learn from pope’에서 소개됐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희생(Sacrifice)         모범적인 최고경영자(CEO)나 대학총장, 지도자치고 개인적 만족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교황은 자신의 죽음과 그 죽음을 위엄있게 처리하는 방법에서조차도 희생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둘째 : 진심(Be genuine)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을 하는 리더가 이성에만 의존하는 리더를 이기는 법. 많은 사람이 교황과 의견을 달리했지만 교황의 정직과 관심은 반대를 완화시켰다. 그의 온화함과 인정미는 도덕적 권위를 더해줬다. 셋째 : 용기(Be courageous)         교황은 자신에 대한 암살 미수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에서부터 자본주의까지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그의 도덕적 용기 때문이었다. 넷째 : 솔선수범(Lead by example)         교황은 타인에 대한 공감, 신뢰, 자기절제를 솔선수범했다. 그는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실행하는 사람이었지, 바티칸에 지시나 하는 행정가가 아니었다. 다섯째 : 탐구(Be knowledgeable)         교황은 윤리학 교수였으며 극작가요 시인이었다. 두개의 박사학위를 받았고 폴란드가 나치에 점령됐을 때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지적이었고 자신의 핵심 신념과 그 신념대로 사는 데에 필요한 행동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 여섯째 : 소통(Communicate)         교황은 중부 유럽의 잠재적 민족주의와 소통할 수 있는 위대한 의사전달자였기 때문에 냉전을 종식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영혼 대 영혼으로 말했다. 일곱째 : 영감(Be inspirational)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지 못하거나 그들이 자신보다 큰 무엇의 일부라는 것을 느끼게 하지 못하면 감동적일 수 없다. 교황은 영혼의 관대함과 겸손함의 모범이었다. 간디의 ‘7대 사회악’과 요한 바오로 2세의 ‘7가지 리더십’엔 분명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양자로부터 제기된 일곱개의 항목들을 나열해놓고 서로 뜻이 통하고 의미가 부합되는 항목을 연결해보면 알 수 있다. 즉, 간디의 비판적인 부정문(negative form)에 요한 바오로 2세의 긍정적인 용어를 연결하면 일곱 개의 새로운 문구가 완성되는데 그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원칙없는 정치 + 용기 ⇒ 용기있는 정치(Politics with Being courageous) 2) 노력없는 부 + 솔선수범 ⇒ 솔선수범하는 부(Wealth with Leading by example) 3) 양심없는 쾌락 + 진실성 ⇒ 진실성있는 쾌락(Pleasure with Being genuine) 4) 인격없는 지식 + 지식 ⇒ 인격있는 지식(Knowledge with Character) 5) 도덕없는 상거래 + 소통능력 ⇒ 소통능력 있는 상거래(Commerce with Communicate) 6) 인간성없는 학문 + 영감 ⇒ 영감있는 학문(Science with Being inspirational) 7) 자기희생없는 신앙 + 희생 ⇒ 희생하는 신앙 (Worship with Sacrifice) 마치 간디의 ‘7대 사회악’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요한 바오로 교황이 실천한 일곱가지 덕목을 통해 우리에게 해결책(solution)을 주는 것 같지 않은가? 종교와 시공을 뛰어넘는 두 성자의 삶 - 동서양의 만남, 힌두교와 카톨릭의 만남-이 참다운 인성에 눈 뜨게 하고, 인류공영을 위해 우리가 경쟁해야 할 일곱가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첫 번째로 ‘용기있는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를 ‘인간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립을 조정하여 통일된 사회질서를 유지하도록 하는 모든 행동’이라고 정의할 때, 이 정치적 행동에는 각 사회마다 대원칙이 있다. 용기란 바로 그 원칙이 무너지거나 누군가가 침해할 때, 올바른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헤 소리를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정치의 가장 큰 역할이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또한 이는 정치지도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종 결정자의 위치에 선 사람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직면하게 되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자신의 결정 하나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앞에서 지도자는 절대고독을 체험한다. 절해고도에 혼자 있는 듯한 느낌, 그때 그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용기다. 용기란 부담을 지는 것을 함축한다. 자신의 결정과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용기이며, 그 부담을 기꺼이 지겠다는 것이 용기다. 이것이 곧 주역에서 말하는 지도자의 덕목인 ‘강인함’이며, 석가가 말한 지도자의 덕목 중 ‘앞장섬’인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용기있는 정치가 한 사람이 사회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다. 링컨과 간디가 그랬고, 처칠이 그랬으며, 세종과 정조가 그러했다. 지금도 우린 절실히, 그리고 간절히 그런 정치와 정치가를 기대하고 있질 않은가. 두 번째로 ‘솔선수범하는 부’란 두말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올바른 가치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는 ‘부유층’을 말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 형성에 기여하는 덕목이다. 땀 흘리지 않고 편법과 불법적인 거래로 부가 형성되는 사회는 건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개인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솔선수범하는 부란 사회의 빈곤과 소외와 불균형의 해소를 위해 있는 자가 솔선수범하여 나눔과 희생의 삶을 사는 것, 바르고 정직하게 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것까지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성실하게 자기 삶을 경주할 때, 그 사회엔 건강한 생존활동이 형성되고 평화와 안정이 깃든다. 생물학자이자 뛰어난 교육가인 데이비드 스타 조단은 이렇게 말했다. ‘지혜란 다음에 할 일을 아는 것이고, 덕은 그 할 일을 실행하는 것이다’ 라고. 솔선수범 그것은 곧 할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실천하는 덕이다.   세 번째, ‘진정성있는 즐거움’이란 뭔가. 이것은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충족감을 주는 즐거움. 아니 희열에 가깝다. 이 사회에는 감각을 만족시키는 쾌락이 만연해있다. 이것들은 일상생활에 지치고 상처받은 인간들을 유혹한다. 음주, 흡연, 간음과 약물 등......하지만 그런 쾌락은 오래 가지 못할뿐더러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족도 주지 못해 결국은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만이 남을 뿐이다. 그런데 반해 정신적인 충족감을 주는 즐거움은 삶의 의욕을 북돋워주고 자존감을 높여서 인간을 더욱 성숙하게 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정신을 충족시키는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까. 문학과 예술 등 우리의 영혼을 살찌울 유익한 즐거움과 쾌락의 산물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은 성취감일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의 발행인 월터 배조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그 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라고. 위대한 문학가 앙드레 지드도 ‘행복의 비결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데 있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쾌락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삶과 인생을 성숙하게 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삶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즐거움이다. 한순간의 짜릿한 쾌락으로부터의 유혹을 이기고 나 자신과 시대와 인류사회를 살찌울 진정한 쾌락에 도전할 때, 우리의 삶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인격을 바탕으로 한 지식’이란,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교육문제와 직결된다. 인성교육이 선행된 지식교육, 그런 배움의 자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상당수가 남들보다 더 나은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 공부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틈만 나면 아이들을 학원으로 외국으로 보낼 줄만 알았지, 집에서 작은 일 하나라도 기꺼이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지 못했다. 아예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사라져서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 사이 우리 사회속에서는 염치와 예절을 알며 남들을 배려하는 법과 스스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운 세대는 사라졌다. 지금 이 덕목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명백하다. 양심과 상식과 배려와 감사를 아는 인간성과 전문지식을 함께 갖춘 인간이 되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2세를 키우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한 가지를 제안하자면 가정 안에서 공동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조금씩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그런 가정교육, 가정문화의 새 흐름을 꽃피워야 한다. 다섯 번째, ‘소통능력이 있는 상거래’라 함은 정직한, 투명한 경제 질서를 말한다. 흔히 부정직한 거래를 암거래라 한다. 투명하지 못한 거래, 불법과 부정, 뇌물과 불합리함이 난무하는 시장질서는 상거래의 상식적인 의사소통과 재화의 흐름을 방해한다. 정직하게 땀 흘린 사람이 땀의 댓가를 받을 수 없는 사회를 만든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재화가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상거래에서의 투명성과 정직성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기업 내에서의 바른 재화 흐름, 기업과 기업간의 투명한 재화이동, 거래의 성사과정이 곧 그 사회의 도덕성과 가치기준을 형성한다. 깨끗한 상거래문화가 형성되어야 사회가 그만큼 건강해진다.    여섯 번째, ‘영감있는 학문’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창조적인 학문이라고나 할까. 원리원칙을 밝히는 학문에만 머문다면 그 학문은 새장 안에 갇힌 새와 같은 것. 갇힌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이를 창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학문이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를 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때문에 학문이라는 세계에는 이를 세상으로 인도할 영감이라는 길이 필요하다. 대학의 연구소 안에서 위대한 기술과 학문적, 과학적 성과들을 이루어내는 사람은 수천명이 넘지만 사실 이런 성과들을 세상으로 이끌어내 전기를 발명하고 비행기를 제작하며, 핸드폰이나 MP3, 인터넷, 방송망을 만든 사람들은 뛰어난 영감을 가진 몇몇 사람이 이루어낸 것이다. 뛰어난 영감, 그것이 위대한 학문적 성과와 만날 때, 인간의 삶은 한 단계, 한 단계 역사적인 도약과 진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일곱 번째, ‘희생하는 섬김’. 이것에 대해 우리는 뚜렷하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일상생활에서는 가장 잘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가장 약한 면을 드러낸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의 예를 들어 설명해본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마시기 위해 아무 곳에서나 마시지 않는다. 아무 종류의 커피를 마시지도 않는다. 콩의 종류도 가려가며 마신다. 자기 입에 맞는 커피를 만들어 주는 카페를 찾아가기 위해 커피값의 몇 배나 되는 석유값을 투자하며 차를 몰고 간다. 가는 동안은 아무리 커피가 마시고 싶어도 참는 인내를 발휘한다. 비싸도 꼭 그 집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과 마음과 육체적 인내라는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결코 힘들어 하지 않는다. 십대들이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 쏟는 헌신은 거의 경탄스러울 정도다. 팔천원짜리 헤어컷을 하기 위해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미용실을 찾아가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브랜드의 옷을 부모가 사줄 때까지 단식투쟁을 하는 아이도 많다. 그에 반해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정작 그 만한 희생과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공하고 싶다. 가정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라가 안정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원하면서도 심지어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성공을 위해, 가정의 행복을 위해, 나라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위해 구체적이고도 치열한 희생과 헌신을 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이 한 잔의 커피보다, 일 년이면 유행이 지날 브랜드의 옷보다 더 못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쪽에선 은근히 ‘운’과 ‘부모의 재력’과 ‘배우자의 사회적 능력’과 ‘인맥’을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희생이 없는 섬김. 희생이 없는 숭배. 희생이 없는 신앙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간디가 자신의 평생을 인도독립과 비폭력무저항주의의 실천을 위해 희생했듯이, 요한 바오로 2세가 육신을 괴롭게 하는 갖가지 질병을 안고도 백 여개국을 순방하는 치열한 희생으로 종교간, 이념간의 벽을 허물었듯이. 희생은 얼핏 무기력하고 무의미하게 보이지만, 그것만이 이기적인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되고, 정체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 대상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라. 그것이 희생이다. 그리고 그 희생위에서만 세상은 평화와 희락과 안정이라는 열매가 풍성이 열리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지금도 인도의 간디기념공원이나 바티칸에 있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념관에는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순례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들의 삶을 추모하고 그들이 이 땅에 남긴 위대한 족적을 기억하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 그들이 일생을 바쳐 남긴 지혜가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그것을 힘써 지켜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행렬이 지구 끝까지 이어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34    연변과기대의 성공비결 댓글:  조회:4331  추천:41  2009-04-24
 여섯 번째 이야기  희망의 역사를 위하여 연변과기대의 성공비결 그 첫 번째가 탁월한 리더십이다. 김영길 총장 없는 한동대도, 김진경 총장 없는 연과기대도 생각할 수 없다. 모두가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끝까지 신념을 가지고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인 시각과 믿음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뜻을 결행한 두 사람의 탁월한 리더십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고 완성됐다. 그들에게는 부르심(Calling)에 대한 남다른 소명의식이 있었고, 빼어난 사명감과 열정으로 가득 찼다. 꿈을 가졌고, 이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강인한 추진력과 헌신이 있었다. 앞을 내다보는 분별력과 미래가치를 위해 위험을 보지 않고 목표만을 바라보며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를 가졌다. 나아가 주위에 잠자고 있는 인력들을 일깨워 자신의 동역자로 삼는 선구자적인 능력도 갖췄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약점과 실수를 스스로 자인하는 인간적인 매력과 도덕성을 지녔으며, 무엇보다 남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용서와 화해의 포용력을 발휘해온 지도자들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믿음과 신념의 그루터기 위에서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끌어온 지도력이야말로, 열악한 환경과 악조건을 이겨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강점으로 변환(變換)시킨 탁월한 리더십이 되어 오늘날의 한동대와 연변과기대를 성립시켜 왔다고 나는 단언한다. 두 번째로 강한 비전 공동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김영길 총장과 김진경 총장의 탁월한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추종하고 지지하는 동역자들(Fellowership)로 하여금 강한 비전공동체를 만들도록 이끌어갔다.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멀리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럽과 호주에서 가깝게는 중국과 일본에서 수많은 젊은 일꾼들이 사명감과 영감에 이끌려 한 명씩 두 명씩 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교회와 KOSTA(한국유학생수양회)를 통해, 대학 강단과 학회와 사회단체를 통해 선발되고 추천된 유능한 비져너리(Visionary)들이 끊이지 않고 포항으로 연길로 찾아왔다. 이들뿐만 아니라 (나처럼) 어떤 경로로든 인생의 후반전을 좀 더 보람있고 의미있게 살아보겠다고 작정한 적지 않은 수의 장년층 인사들도 함께 뜻을 같이했다. 누구는 교수로, 누구는 직원으로, 누구는 후원자로, 누구는 중보자로 어떤 형태로든 그들은 그 속에서 배우고 자라는 학생들과 함께 거룩한 소망의 동역체 — 꿈과 비전이 넘치는 신교육 공동체를 이루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지칠 줄 모르고 달려가는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활력(성장동력)은 바로 이와 같이 리더십과 펠로우십의 조화를 통해 나타나는, 강한 비전공동체 즉, 한몸으로 승화된 시너지(상승효과)현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세 번째, 신지식과 열린교육으로 승부했다는 점이다. 지식정보화시대와 글로벌시대로 특징지어지는,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대학이 적응해나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학생들로 하여금 천부적으로 주어진 개성과 재능을 잘 살려서,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유익한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한동대와 연변과기대는 지극히 심플한 대안(실천방안)을 내놓는다. 그것은 한마디로, “신지식을 수혈하여 열린 교육 시스템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 예로, 한동대학의 무전공, 무학과 입학제도는 기존의 대학개혁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교육방법이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미리부터 전공과 학과를 선택하지 않고 입학 후 상당기간이 지난 후에 전공을 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이와 더불어 복수전공제를 실시하여, 자신의 전공에 대한 심도깊은 전문성과 함께 인접학문에 대한 연관적인 지식을 습득해 나갈 수 있도록 보완하는 개방적인 시스템도 아울러 장치했다. 연변과기대는 중국 대학교육제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전공, 무학과 입학제도는 실행할 수가 없다. 그 대신 국제사회와의 폭넓은 교류와 협력을 통해 끊임없이 신지식을 유입하고 이를 중국현실에 맞게 적용시키는 과정에 특별히 다중언어습득훈련과 자발적이고 실무적인 부전공제도를 강화하여 연변과기대의 특질을 향상시키는 교육효과를 얻고 있다. '열린교육'은 지금껏 '닫혀있음'으로 인해 여러 병폐를 야기한 학교교육의 규정된 양식을 깨뜨림으로써 새로운 교육의 성과를 기대해보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모리슨(Morrision)과 같은 학자는 ‘열린 교육’을 인간의 개별화를 인정하고 독립심과 자유를 장려할 뿐만 아니라 학생에 대한 존중심을 보이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전형적인 학교 시스템을 재구조화(Reengineering)하는 교육방식이라고 정의했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는 저마다 갖고 있는 한계상황 즉 한국의 지방대학과 중국의 변방대학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지식정보화시대와 글로벌 시대의 현실상황에 최대한 ‘시대공감’하면서 학생들 개개인의 자유성과 천부적인 능력을 최적화(Optimization) 시키는 교육적 스펙 (Spec)을 차곡차곡 쌓아온 특성화 교육시스템에 성공한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네 번째로 미래지향적인 창의성을 중요시했다. 사이파이 커뮤니케이션스社의 CEO 토드 사일러 박사가 몇 년 전에 매일경제가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초빙되어 왔을 때 이런 말을 했었다.         ‘국가 경쟁력은 지식에서 나오며, 지식은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학습에서 나온다’ 나는 이 말에 크게 공감하여 지금도 메모용 수첩의 첫 장에 적어놓고 수시로 펴 읽어보곤 한다. 최근에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美EIA상을 탄 삼성전자 황창규(삼성반도체총괄사장)사장도 그의 수상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그렇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가 시행하고 있는 ‘신지식 열린교육’의 학습제도 및 교육방법은 결과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미래지향적인 창의성(내용 : Open Mind & Network, Global Standard, Positive Sum Game 등)을 계발할 수 있도록 이끌어줌으로써 나아가 한국과 중국의 미래지향적인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 유명한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도자는 미래가 있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가 있는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 요청하는 것이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학생들이 바로 이와 같이 미래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 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인재들이 다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다섯 번째, 헌신적인 삶의 모범이 있었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가 오늘날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 데는 수많은 동인(動因)들이 있겠다. 그 가운데 특히, 탁월한 리더십과 강한 비전 공동체, 신지식 열린교육과 미래지향적인 창의성 등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성장요인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요인들이 아무리 중요하고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고 해도, 이 대학들의 성장과 발전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결정적인 힘의 모멘트는 삶으로서의 헌신, 즉, 총장으로부터 모든 교직원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이 ‘헌신적인 삶의 모범’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가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인격은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 —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소유와 재능과 여건과 목숨까지도 바쳐서 남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인격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알고 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노래하며, 버려진 한국 동해안의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그곳에 한동대학이라는 신천지가 임재 할 수 있도록,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깨우치고 돌보는 일에 젊음을 불태워 왔던 수많은 유학파 엘리트들을 나는 알고 있다. 한겨울에 영하 30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는 중국변방의 동토, 저 어둡고 황량한 공동묘지의 터 위에서, 개인의 명예와 안락함과 출세에 이르는 모든 인간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오직 '푯대를 향하여' 남을 위해, 공의(公義)를 위해 헌신해왔던 수많은 연변과기대 교수들의 그 눈물 젖은 사랑의 행로를 나는 알고 있다. 어린 자식이 석탄가루 매연과 추위에 견디다 못해 폐렴으로 쓰러져 있는데도, 집에서 급히 연락을 받고 뛰어나가 교통사고 난 학생을 들쳐업고 500m가 넘는 밤길을 넘어지며 걸어가서, 3일 동안이나 병원에서 꼬박 밤을 새우며 간호했던 한 교수의 고백을 들어보자.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입니다. 사랑은 죽은 생명까지도 살리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학교캠퍼스 안에서 학생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공부하고 뛰놀고 노래하며 생활하는 사이에 학생들은 교수들로부터 삶으로서의 헌신적인 모범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이 그들의 감성을 울리고 지성을 새롭게 하고, 영성을 깨우치게 한 근본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것이 연변과기대를 중국 안에서 선진적인 일류대학이 되게 했으며 또한 외자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력집단이 되도록 만든 궁극적인 핵심가치가 된 것이다. 여섯 번째 참된 제자훈련이다. 교수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참된 제자훈련일 것이다. 자신들이 힘들고 외롭고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으나, 제자들이 잘못되고 비뚤어지고 소외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한동대와 연변과기대 교수들도 같은 입장이다. 그런데 그들은 제자들을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칭찬하고 자랑한다. 개교 때부터 실시한 한동대의 무감독 양심시험은 이미 유명해진 일이다. 미래 세상을 바꾸는 지도자는 무엇보다 진실하고 정직해야 된다는 학교방침을 학생들도 잘 수행하고 있다. 실제적인 학습관리를 통하여 인성교육이 몸에 베도록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연변과기대에서는 ICM(Integrity Campus Movement)이라 하여 무감독시험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대안적 시범교육이 되고 있다. 이 무감독시험제도가 실시되었을 때 처음에는 학생들이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많은 학생들이 정직하게 시험을 치렀으나 일부 학생들이 커닝하는 양심불량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래 편지는 한 학생이 나중에 지도교수에게 반성문 형식으로 보낸 글이다.         「양심」         “전번 시험 때에는 여러 가지 고려가 많았습니다. 보고 쓰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고, 보지 않고 쓰려니 밑지는 것 같고, 결국에는 내 양심을 버리고 커닝을 하였습니다. 훌륭한 21세기의 리더를 키우는 우리 대학의 과학사 중간고사에 커닝을 하였습니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양심과 정직성은 나의 손과 눈에 의하여 여지없이 짓밟혔습니다. 커닝을 하면서 전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머릿속은 끊임없는 내부 전쟁을 하였고, 시험지에 꽉 차게 적어놓은 답안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주일을 힘들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너무도 민망하여 교수님의 얼굴을 도무지 쳐다 볼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읽으신 동학들의 글은 채찍이 되어 나의 마음을 후려쳤습니다. 숨을 쉬고 있는 것마저도 나에게는 그렇게 큰 부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양심적으로 다시 채점하라는 말에 나는 내 인생의 1949년이 온 것만 같았습니다. 해방된 기분이었습니다. 성실하게 채점 해보니 49점이었습니다. 무려 23점이나 감점되었지만, 나의 정직을 찾았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동학들의 뉘우침과 성실한 고백을 듣고, 그렇게 열심히 양심 채점을 하는 동학들을 보면서 이번 무감독 시험이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잃었던 양심을 되찾고, 정직의 중요성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연변과기대의 신입생으로서 기둥이 되어야 할 내가 우리 대학의 취지, 정직을 잃을 뻔한 가슴 아픈 교훈,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나의 성적을 위하여 양심을 버리는 일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양심을 되찾도록 이끌어 주신 교수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H학생)” 이와 같이 학생들은 흔들리면서 자란다. 도종환 시인이 지은「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가 있다. 1연만 인용해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요즘 들어 연변과기대 교수들은 내게 이렇게 간증한다.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것이 훈련되고 습득이 되니까 이젠 학생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정직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참된 제자훈련은 바로 이와 같은 인성교육과 자율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통하여 드러난다. 정직운동을 통하여 건전한 사회를 이끄는 도덕적인 리더십,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성, 그리고 지역과 세계를 섬기는 봉사활동을 통해 인간관계의 순도를 높여가는 참사랑의 섬김운동은,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교수들로 하여금 제자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든 참된 제자훈련의 고귀한 성과들인 것이다. 나는 김영길총장과 김진경총장 그 두 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 또한 한동대와 연변과기대의 모든 교직원들과 학생들을 동일한 마음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 인생의 후반전에 이토록 아름다운 사역과 봉사의 기회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33    중국땅에 꽃피운 동북아의 희망, 연변과기대 댓글:  조회:4217  추천:35  2009-04-22
  여섯 번째 이야기  희망의 역사를 위하여                                                     연변과기대는 그 설립 자체만으로도 기적의 동산으로 불린다. 중국안에서 외국인에 의해 세워진 유일한 사립대학일 뿐 아니라 최단기간에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성장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 크리스챤 교육자의 헌신과 소명이 암담했던 조선족의 미래에 희망을 선사한 것이다. 그런데 기적은 전염되는가 보다.  연변과기대가 고립과 빈곤으로 꽁꽁 얼어붙은 암담한 동토의 땅 북한을 녹여 평양과기대라는 또 하나의 기적을 낳았다. 중국땅에 꽃피운 동북아의 희망, 연변과기대 필자가 김진경 총장을 만난 때로부터 2년 뒤인 1992년 9월 16일, 연길시 북산가 언덕 위 삼십만 평의 땅위에 연변과기대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원래 조선족들의 공동묘지였다가 황무지처럼 버려져 있던 그 땅 위에 연변과기대가 세워지던 날, 그것도 우리 민족의 힘으로 조선족의 땅에 교육의 상아탑을 높이 세우던 그날에, 나는 마치 새로 태어나는 듯한 희열과 감격을 체험했다.   이후 연변과학기술대학(YUST)은 중국에서 외국인이 설립한 유일한 4년제 사립대학으로 중국의 신교육정책에 따른 100大중점대학육성계획에 포함되어 그 지명도를 높여왔으며, 최근에는 북경대, 청화대, 인민대 등과 같이 신입생 1차 선발대학에 지정됨으로써 속칭 일류대학으로 꼽힌다. 그래서 연변과기대는 흔히 기적의 동산(miracle campus)이라고 불린다. 중국 변방 소도시의 황량한 공동묘지 터 위에 세워진 이 대학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이런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김 진경총장의 철저한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개혁적인 교육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변과기대는 진리·평화·사랑의 교육 이념 아래, 뜻을 함께 하는 꿈과 Vision을 품은 전 세계 13개국에서 모여든 300여명의 교직원들이, 정직한 인격과 최고의 지식을 갖춘 전문인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해 학생들을 자식같이 사랑하며 성심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창의-협력-봉사의 실천 강령을 따라 국제 사회의 경쟁력을 지닌 창의형, 쓸모형, 인격형 인재를 양성하여 다가오는 동북아 시대의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리 대학의 교육 기본입니다.         따라서 우리 연변과기대는 전공 지식과 응용력을 겸비하며 건전한 인성과 사회성, 다음 세대를 내다보는 안목과 세계적인 비전을 갖추어, 다가오는 시대를 변화시키고 이끌어 나갈 각 분야의 지도자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공과 전산의 실무지식을 구비하고, 의사소통에 필요한 다중 언어(중국어, 한국어,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를 통해 중국의 급속한 기술발전과 개방적 산업 환경 속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통한 동북아 시대의 미래 일꾼들을 키워내는 뜻있는 사업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연변과기대의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높은 뜻에 부름을 받아 기쁨으로 동역하는 대학, 그것이 연변과기대의 정신입니다." 현재 이 대학의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한국 교계와 미국 교민사회에서 지원하는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교학 및 연구분야는 자원봉사로 참여한 수많은 교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급속히 발전해왔다. 이와 같은 기부문화와 자원봉사정신이 함께 꽃피운 연변과 기대는, 공산사회의 폐쇄적인 기존교육체계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으며, 나아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21세기 동북아시아의 국제교류 및 협력을 이끌어 가는 신사고·신기술교육의 시범학교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고 동북아를 비롯한 중국의 핵심지도층에 교육의 국제협력에 관한 깊은 신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실제로 대학을 방문한 사람들은, 학생들의 친절과 자신감에 찬 환한 미소에 반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대화를 해보면 더욱 놀라는데 기대이상으로 국제사회 즉 시장경제자본주의체제에 대해 지식과 정보가 충분하고, 오픈 마인드로 세계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족 80%, 한족 17%, 고려인 및 기타 3%로 구성된 학생들이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캠퍼스 공용어인 중국어, 한국어, 영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컴퓨터 능력까지 갖춰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력집단으로 변모했고, 결국, 연변과기대는 취업률 100%를 자랑하는 명문대학이 됐다. 이 대학의 졸업생들이 중국과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며 동아시아의 평화와 경제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새로운 교육 혁신의 모델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연변과기대와 비슷한 시기에 개교한 한동대학(경북 포항 소재)도 국내에서 가장 성취도가 높은 대학으로 유명하다. 이 두 대학의 특질을 비교 검토함으로서 연변과기대의 성공비결을 정리해 본다.
32    인류역사상 최강의 요새, 중화(中華)의 현주소 댓글:  조회:3829  추천:28  2009-04-08
  다섯 번째 이야기 중화를 품고 중원을 건너가라 인류역사상 최강의 요새, 중화(中華)의 현주소 중국 북경의 관문인 서우두(首都)공항 제3터미널이 개통한 것은 지난 3월 26일. 내가 타고 들어간 아시아나 항공의 승객들은 한국인으로서는 제3터미널로 입경하는 첫 손님이 된 셈이다. 2004년 3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던 제3터미널 신청사의 건축규모는 연면적 98만 6,000㎡로 단일 터미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며, 인천공항의 1.5배가 된다. 홍콩 첵랍콕 공항을 설계했던 영국의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이 터미널은 지붕에 황금빛 알루미늄 합금 금속판으로 만든 300여개의 채광창을 돌출시켜 놓았는데, 이 채광창을 열 경우 비늘을 세운 채 엎드려있는 용(龍)의 형상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언론들은 제3터미널 신청사를 “중화(中華)의 힘이 응축된 건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앞으로도 항공여객이 급증 할 것으로 보고 2010년 안에 북경 제2공항을 착공한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 말 현재 147곳인 중국 전역의 공항을 2020년까지 244곳으로 늘려 1,000km마다 공항을 하나씩 건설하기로 계획하고 추진 중이다.  중국 경제의 발전상은 이제 항공부문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북경 올림픽을 정점으로 중국의 모든 국가 역량이 집중되고 있는듯한 긴박감을 느끼며 제3터미널의 광활한 구조물 안으로 첫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중국 당국은 최근 신청사 개장과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내․외국인의 출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내․외국인이 내던 기존의 검역카드와 관세카드는 모두 사라졌으며, 내국인은 아예 출입국 신고 카드조차 없앴다고 한다. 한마디로 거대한 통제사회가 무서운 속도로 서비스 사회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의 변화는 국가 정치체제가 보장되는 범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규제의 덫에 걸려 있는 한국의 관치행정 실정에 비해, 중국의 규제철폐 및 완화 속도는 적진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군마처럼 빠르고 용감하다. 중국의 ‘한국 따라잡기’는 이제 태풍에 밀려온 파도가 방파제를 곧 덮칠듯한 기세로 육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방파제는 중국이라는 이름의 이 거대한 붉은 파도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서우두(首都)공항의 제3터미널을 빠져 나오는 나의 마음 내면에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뒤엉켜 있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김설송사장(청화대 출신 조선족, 전 다산네트워크 중국지사장)과 함께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중국 국제핵공업전람회가 열리고 있는 <북경농업전시회관>이었다. 중국 핵공업총공사, 중국원자력학회, 북경시 상무국이 공동주최한 이 전람회에 GE, 웨스팅하우스 등 16개국 100개사 이상이 참여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두산 중공업 등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가했다. 나는 중국핵공업총공사의 한국 에이전터 역할을 하고 있는 김설송 사장을 한전 관계자들에게 소개시켜서, 한전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원전 수출 및 핵폐기물 처리기술 이전에 대한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본 전람회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전람회의 한수원측 실무책임자인 김현철 부장과 두산 중공업의 중국 총대표인 김정수 상무이사를 만나 한국 원전의 기술력과 운영체계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15년에 걸쳐 한․중간 발전설비 기술교류를 위한 추진과정에 있었던 많은 애로점과 에피소드를 전해 들었다. 오늘날 온실가스 규제와 원자재 가격 급등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원자력 발전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발전업체들이 원전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은 이미 검증된 원전의 친환경성과 경제성 때문이다. 원전은 화력발전과 달리 이산화탄소(CO₂)등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데다 kw당 전력 생산비용이 39원으로 유연탄(42원), 가스(100원)에 비해 저렴하다. 이런 원전 산업의 시장성을 가늠할 때 기술력만을 놓고 보면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한국은 1970년대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원천기술을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20기의 원전을 건설하면서 한국형 표준 모델인 OPR1000, 독자 모델인 APR1400 등을 만들어 왔다. 특히 기술자립도가 95%를 넘는 APR1400은 kw당 건설비가 2,000달러 수준으로 3,000달러 수준인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경쟁모델보다 30%이상 저렴하다. 다만 원자로에 대한 원천기술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전 수입국이 한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을 요구할 경우 일일이 웨스팅하우스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한국형 원전 수출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원천기술업체인 웨스팅하우스가 장차 경쟁 대상국이 될 한국의 발전업체에게 기술이전 문제를 쉽게 허가 해 주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국형 원전을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으로 지목한 바 있다. 한국전력 등 국내 발전업체들은 다음 달 터키정부가 발주할 예정인 원전 국제입찰에 국내 자체기술로 개발한 독자 모델 ‘APR1400’으로 출사표를 던질 계획이다. 원천기술의 장벽 때문에 40여기의 원전 건설 물량이 준비되어있는 중국 발전산업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전의 실상을 바라보면서 한탄스러운 마음으로 전람회장을 나오는데 늦은 오후의 햇살이 내 눈을 찌른다. ‘너는 무엇으로 중국을 대응할 것인가’라고 따갑게 쏘아부치는 것 같았다. 1990년 가을이후 지금까지 18년간이나 중국을 드나들면서, 중국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만큼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2,3년 사이 중국은 전혀 다른 나라로 변했다. 잠깐 방심한 사이 그들은 예측 불가능한 거대한 공룡으로 성장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대로 그들의 행보를 놓쳐버리면 그들과의 평화로운 공존 역시 함께 멀어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새롭게 변한 중국, 그 중국을 다시 연구하고 그 행보를 앞서 예측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동북아시대로 가야 하는 우리가 당면한 과제다.
31    중화경제권이 뭉치고 있다 댓글:  조회:3419  추천:29  2009-04-07
  다섯 번째 이야기 중화를 품고 중원을 건너가라                                         1억 5천 인구를 가진 미국의 최고 부자는 유태인이다. 그들은 미국과 전세계 돈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   4억 5천 인구를 가진 유럽 국가들의 막대한 물동량은 인구 겨우 70만(*확인필요), 서울의 약 1/4의 면적을 가진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텔담을 거쳐 돌아간다. 네덜란드는 유럽의 물류를 장악하고 있다. 흐름을 장악하는 자가 역사의 주인이다. 중국이 지금 거세게 용트림 치며 물길을 찾고 있다. 그 흐름을 감지하는 것, 거기에 우리의 밝은 미래가 있다. 중화경제권이 뭉치고 있다  지난 여름 도널드 창 홍콩 행정장관이 랴오닝(요녕), 지린(길림), 헤이룽장성(흑룡강성)의 중국 동북3성을 방문했다. 그의 방문기간 동안 홍콩의 일간지들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의 동북행에는 100여 명의 거물급 홍콩 기업인들이 동행했다. 이들은 대련의 조선소와 장춘의 자동차공장, 하얼빈의 공업대학을 차례로 찾아 투자 조건을 탐색했다. 이들의 관심은 당연 동북3성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관광개발이 가능한 지역들에 집중됐고 동북3성에서는 백두산관광 중점 홍보지역으로 홍콩을 선택하는 한편 발달한 홍콩의 금융업계가 동북3성에 대거 진출해 주기를 요청했다. 방문 일정이 끝난 뒤 홍콩의 일간지들은 ‘홍콩의 정계와 재계가 새로운 비전을 찾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홍콩은 북한까지 넘보고 있다. 도널드 창 홍콩 행정장관은 단동의 변경무역에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중국대륙을 발판삼아 북한과의 교역에 관심을 표명했다. 이에 가장 긴장하고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홍콩의 동북3성 진출은 곧 동북아에 새로운 중화경제블록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2003년, 중국은 동북3성 진흥계획을 착수하면서 홍콩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그 결과 작년말까지 랴오닝성의 경우만 봐도 홍콩의 투자계약액은 470억 달러를 넘어섰고, 올 상반기까지 선양에 진출한 홍콩기업이 무려 2천 5백 여개에 이른다. 중국은 지금 동북 3성에 북한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경제허브구축을 추진중이다. 이를 위해 대만의 투자도 과감하게 수용하고 있다. 대만도  최근 대만 기업의 중국 투자 상한선을 순자산의 40%에서 60%로 완화하며 이에 부응하고 있다. 중화경제권 조성이라는 공동의 이익 아래 유사 이래 단 한번도 연합한 적 없었던 중화권 삼국의 손발이 착착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동북 3성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장차 동북 3성에서 홍콩과 대만 자본과의 충돌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한족)이라는 감정적인 연대로 인해 한국의 기업들이 그만큼 불리한 위치에 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은 이미 현실로 변해가고 있다. 얼마전 연변과기대 후원사업을 위해 북경에서 중국의 기능성 화장품 개발업체와 만나기로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쪽에서 제안한 상품이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는 이유를 내세워 만나기로 했던 중국업체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고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최근에 한국기업들이 중국 파트너들로부터 이렇게 일방적으로 무시당하거나 피해를 입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과거에는 한국업체가 하자는 대로 따라오던 중국기업인들이 이제는 한국산 최고 브랜드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외자유치 및 해외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있고, 또한 북경올림픽 수요로 인해 국내 건설경기가 과열되자 경제안정화조치(Soft Landing)를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외국기업들에 대한 세무 및 노동법 규정을 강화한 것이  큰 족쇄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작년 연말 이후 산동성 지역의 한국업체들이 ‘야반도주’ 사태를 일으키고 있다는 신문 보도를 읽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내막도 잘 모르면서 야반도주라는 표현은 하지 말아달라며 울분을 터뜨리곤 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잘 안 될 수도 있고, 그래서 한국사업가가 자기의 지분과 소유를 모두 다 포기할 테니 그냥 맨 몸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관리들과 합작파트너 , 그리고 종업원들은 막무가내로 그동안 받았던 외자기업으로서의 수혜와 밀린 세금 및 노임을 다 청산해 놓고 가라고 우긴다. 생각해보라. 그걸 갚을 돈이 있으면 차라리 재투자해서 사업을 연장시켰을 것이다. 적자를 견디다 못해 파산 신청하면 파산조치를 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치는 해주지 않은 채 계속 협박을 해대니 할 수없이 도망이라도 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나 역시 중국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헛걸음을 했으니 그 날은 몹시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기분은 나빠도 그것이 중국의 오늘날의 현실이었다. 기록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중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중국은 이제 한국이 전혀 아쉽지 않은 나라다. 아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중화경제권을 만들어 되려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 시장은 이미 세계에서 최고가는 상품 또는 독점 품목이 아니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무한경쟁적인 시장구조로 변하고 있다 중국 국내기업들은 그들의 처지에 맞는 여러 등급의 내수용 시장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외자기업인 경우에는 기술과 투자규모도 중요하지만 먼저 상표로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므로 최고의 브랜드가 아니면 마켓팅에서 상당히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즉, ‘알려지지 않은 것은 팔리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유명브랜드가 되기 위한 홍보와 마케팅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문제는 브랜드 가치를 높일 때까지 기다려주는 중국인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외국기업들과 함께 노력해서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기 보단 이미 기성화된 브랜드를 헐값에 사 들여와서 비싼 값으로 포장해서 팔려는 상술인 것이다. 중국에선 중국식이라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상술이자 생존전략인 중화(中華)의 마각이 이제 한국을 향해서도 서서히 그 무시무시한 날을 다시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 
30    문제가 아닌 꿈을 공유하라 댓글:  조회:3413  추천:39  2009-04-02
네 번째 이야기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라 문제가 아닌 꿈을 공유하라 나는 지난해 5월 하와이에 다녀왔다. 1년 후 개교 예정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소식을 교민사회에 전하고, 개교 준비에 필요한 교육기자재 지원업무와 교수인력 교류를 의논하기 위해 관련기관과 하와이 대학을 방문하게 됐다. 하와이 대학에 갔을 때 거기서 나는 미래전략센터 소장인 짐 데이토 (Jim Dator, 73세)교수를 만났다. 그는 미래학의 대부로 불리고 있으며, 1967년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협회’를 만들어 미래학(future study)이란 학문 분야를 처음으로 개척한 선구자다. 그가 몇 년 전에 한국을 방문하여 특강했을 때 이렇게 말했었다.         “정보화사회 다음엔 드림 소사이어티라는 해일이 밀려들 것이다‘ 그는 ‘드림 소사이어티’를 꿈과 이미지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고 정의했다. 경제의 주력엔진이 정보에서 이미지로 넘어가고, 상상력과 창조성이 핵심 국가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이 ‘드림 소사이어티에 진입한 세계 1호 국가’라고 평가했다. 한국이 한류(韓流)라는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상품으로 포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얘기로 그는 국민총생산(GNP) 대신에 국민총매력(GNC: Gross National Cool)이란 지표를 쓰자고 주장했다.  GNP가 한 나라 국민이 생산한 모든 상품가치의 합, 즉 물질에 기준한 것이라면, GNC는 한 나라가 얼마나 매력적인가로 그 나라의 부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이미지의 생산, 결합, 유통이 주 평가요소다. 그 좋은 예를 두바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꿈꾸는 지도자가 나라를 살린다 여기에서의 지도자란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를 가리킨다. 그는 창조적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사막과 바다에 세계 최고급의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불세출의 인물이다. 그는 70㎞ 해안을 1,700㎞로 늘리는 기적을 연출했다. 바다를 메워 세계지도를 본떠 대형 공원을 만든 후, 해당 국가의 기업인들에게 휴양지로 팔아먹는 상술이다. 그는 정치지도자라기 보다는 유능한 CEO에 가까운 통치자다. 그런가 하면 빌 게이츠는 꿈을 팔아먹는 천재다. 지난해 1월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최대 IT전시회인 ‘CES 2007’의 기조연설을 통하여, MS(마이크로 소프트)가 수년간 공들여서 만든 신상품인 가정용 윈도 비스타를 소개했다. 그 자리에서 빌 게이츠는 소비자들이 모든 종류의 컴퓨터와 MP3플레이어 그리고 게임기와 휴대폰으로 어디서든 가전제품과 연결되는 윈도서비스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각종 기기를 연결해서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연결된 경험 (connected experiences)’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융합하고 연결하라, 꿈의 디지털 세상이 우리 곁에 펼쳐진다 한마디로 가전제품을 위시한 모든 하드웨어가 24시간 연결된 상태에서 생활하게 될 신세계의 꿈을 팔아먹겠다는 내용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팔 것인가. 우리 동북아 3국에 ‘두바이의 기적’과 같은 일을 실현할 만한 대안은 없는가? 또 빌 게이츠의 ‘꿈의 디지털 세상’과 같은 신기술상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다팔 수 있는 재능은 없는가. 우리 한ㆍ중ㆍ일 3국이 힘을 합하여 이런 일을 감당할만한 창의적인 인재집단을 키워낼 수는 없을까? 지속적인 가치개혁과 미래지향적인 역사의식을 한데 융합하고 연결하는, 동북아 블루 오션의 새로운 꿈의 인프라 스트럭쳐(new dream infrastructure)를 구축할만한 야심과 기개는 없는가. 나는 그 해답을 상호호혜주의에 입각한 퓨전의 정신에서 찾았다. 퓨전(fusion)이란 흔히 섞인 상태를 의미하지만 나는 이를 future vision의 줄임말로 쓰고자 하는 것이다. 동북아사회의 future vision을 ‘fusion’에 두고, 그 핵심 역량을 ‘사랑의 기술’이라고 하는 이미지에 결부시키려는 것이다.   나는 사랑을, 소통(Communication)과 육성(Cultivation), 그리고 창조(Creation)의 정신으로 상대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나는 이를 3C전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3C를 통하여 하나의 꿈을 실현하는 사랑의 기술이야말로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가치를 이끌어내는 전략이요 그 이미지 파워라고 확신한다. 이 ‘사랑’의 기술만이 과거사에 묶여있는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천박한 패권의식의 한계(레드 오션)를 벗어나 개방적인 대아(大我)의 경지인 선린공동체의식으로 나아가 각 민족의 잠재능력과 상상력과 창의성을 통합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신크래틱스 리더십(Syncretics Leadership : 갈등을 통합하는 리더십)을 가능케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리더들이  왕성하게 일어나기를 희망한다. 그 상생의 지도력을 정치ㆍ경제ㆍ사회ㆍ산업ㆍ기술ㆍ 과학ㆍ교육ㆍ문화 등 여러 부문에 적용하여 새로운 가치 개혁의 국제 클러스터를 구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동북아연합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작년에 있었던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행사는 화해와 교류라는 측면에서 무척이나 인상적인 행사였다.  조선시대 한ㆍ일간 교류의 첨병이었던 조선통신가 다녔던 도시들을 주축으로 지역주민들이 저마다 경쟁적으로 기념행사를 준비했으며, 또한 나가사키, 야마구치 현(縣)과 시즈오카, 하코네 시(市)의 주민들이 부산에서 준비하고 있는 기념행사에 참석해 자기 지역 마쓰리를 선보이기도 했고, 또 부산 시민들은 쓰시마, 도쿄를 찾아가 조선통신사 의 행렬을 재현했던 일은 상징성이 매우 큰 한·일간 역사문화교류의 한 예다. 감히 견원지간이라고 할 만큼 오랜기간 대립각을 세워왔던 중·일간에도 새로운 변화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 바로 죽의 장막에 갇혀있던 중국을 개혁, 개방의 시대로 이끈 ‘작은 거인 덩 샤오핑’의 일본기행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전, 일본을 방문했던 덩 샤오핑의 열정은 일본과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당시 신칸센을 타고 일본 주요도시를 빠짐없이 방문하면서 일본의 과학기술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었다. 이 일이 중국의 개혁개방과 근대화를 이루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사회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정보공동체로 변모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 정보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국민총매력(GNC)의 이미지 파워가 우리들의 의식구조와 제도와 생활양식을 통째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하는 신문명 시대에 이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본 열도와 한반도 그리고 중국을 한몸의 공동체로 융합하고 연결하는 일은 어쩌면 동양의 선진들이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대동사회로 진입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 간에 기득권을 고집하며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는 정략 배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그 묵은 관습의 껍질이 얼마나 누추하게 보이는지! 문제를 공유하면 과거에 집착하게 되고 꿈을 공유하면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동북아시대의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 길을 준비하고 개척해 갈 것이다. 그러니 친구들이여. 이제 그만 우리 새로워지자. 새로운 꿈과 이미지로 우리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자. EU(유럽연합)의 통합정신을 본받아 우리 아시아권(圈)에서도 각 국가의 지도자들과 인재들이 서로 내면적 소통을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아름다운 기회를 만들어보자. EU 회원국이 25개국으로 확대되고 냉전의 잔재가 유럽대륙에서 사라진 2004년 5월 1일, 유럽 전역에서는 축제가 고조됐으며, 이날 동서독 통일과 EU통합에 지대한 공헌을 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다음과 같이 그 소감을 발표했었다. “EU의 확대통합만이 유럽에서 피의 세기를 마감하는 유일한 길이며,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전쟁을 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한·중·일 3국간에도 멀지않은 장래에 이와같은 놀라운 통합의 역사가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그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고 촉진시키는 인재집단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배출되기를 기원 해 본다.
29    경쟁을 포기하라. 이기고 싶다면 댓글:  조회:3917  추천:31  2009-03-31
  네 번째 이야기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라 경쟁을 포기하라. 이기고 싶다면    2005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발간한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은, 182개국에서 32개 언어로 번역된 초(超) 베스트셀러다. 저자인 한국인 김위찬 교수는 프랑스 파리 유럽경영대학원(INSEAD) 석좌교수로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그는 저서에서 현대의 산업공간을 바다에 비유해 레드 오션(red ocean)과 블루 오션(blue ocean)으로 분류했다. 레드 오션은 유혈의 경쟁공간으로 시장 참가자들은 제한된 시장안에서 서로 목을 조이는 출혈경쟁을 벌인다. 반면 블루 오션은 가치혁신을 통해 다시 창출된 새로운 시장공간으로, 공존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가치 도약을 통해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김위찬 교수는 그의 파트너인 마보안 교수와 함께 지난 120년 동안 역사에 기록된 동서양의 혁신 사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전략적 사고의 차이가 성패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략적 사고에는 ‘환경 결정론’과 ‘재 구축주의’의 두 가지 패러다임이 있다. 그리고 혁신에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후자 쪽이며, 그들은 가치혁신을 통해 환경을 뛰어넘거나 아니면 아예 환경자체를 새로 구축한다. 이와 같이 새로운 가치 창조를 통해 경쟁으로 붉게 물든 유혈의 바다에서 벗어나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신세계로 나아가는 전략 ― 블루 오션의 사고방식과 방법론을 먼저 체득하는 기업과 국가가 21세기의 세계 경제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그가 주창한 블루오션은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쟁을 포기하라” 역사시대 이래 인류가 지켜왔던 문명의 세계에는 다음 두 가지 가치론 이 있다. 하나는 소유가치요, 다른 하나는 존재가치이다. 전자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욕심에 이끌리는 가치요, 후자는 인간의 보편적인 목적이 이끄는 삶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동시에 두 사람이 경쟁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소모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기준에 의해서건 비교우위를 가지는 분야를 서로 공유하면서 함께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여름 일본의 저명한 지역경제 및 물류 전문가인 야나이 마사야(일본 동북학원대학)교수는 독특한 ‘찌개’론으로 한일경제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일본 도야마에서 열린 한국관련 경제포럼에서 동아시아 경제를 찌개를 끓이는 것에 비유하면서 각국이 서로를 상호 보완하는 분업과 교역을 통해 각국이 비교우위를 갖는 분야(재료)를 한데 모아 완제품(찌개)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정의했다. 한국과 일본도 이처럼 서로 비교우위를 갖는 분야에서 상호 협력한다면 큰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는 특히 첨단기술과 물류분야에서의 교류를 그 예로 들었다.   아냐이 교수는 물류컨설팅업체인 J&K 로지스틱스의 조사자료를 인용해 일본 내 10개 주요 지역이 도쿄와 오사카를 물류 허브로 이용하는 것에 비해 부산항을 허브로 이용하는 것이 12.4%나 물류비용 절감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미쓰비시의 소형 제트 여객기 개발사업처럼 기술력이 높고 파급효과가 큰 분야에 한국기업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 신종사업 분야로 개척해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즉, 한일간의 FTA를 통해 물류분야에선 한국이 일본을 돕고 일본은 한국에 첨단 신기술을 이전, 공유한다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경쟁을 하는 대신 자신의 장점을 상대와 공유함으로서 함께 발전하며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결국 모두가 목표를 이룰 수 있고, 거기에 더 중요한 건, 경쟁 상대였던 사람과 둘도 없는 협력관계가 되는 블루오션을 이룰 수가 있게 될 것이다.
28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 섬김을 받으려면 댓글:  조회:3990  추천:46  2009-03-30
  네 번째 이야기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라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 섬김을 받으려면 작년 초 도쿄에서 열렸던 열린 ‘한중일 우정의 콘서트’ 행사에 일본의 나루히토왕세자가 비올라 연주자로 직접 참여했었다. 그때 나루히토 왕세자는 연주를 마친 뒤 ‘귀중한 추억을 갖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한중일 3국의 우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례적인 즉석연설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한 가지 기억나는 사실이 있는데 2005년 여름쯤이었을 것이다. 아키히토 천황이 싸이판 섬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한국평화 기념탑을 참배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여러차례 일제 군국주의의 한반도 지배에 대해 사과를 표명했다. 나는 일본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아키히토(明仁) 일 황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를 무척 존경하며 고이즈미 전(前) 총리를 비롯한 우파정치인들이 군국주의 패권의식을 조장하려고 했던 사실에 대해 일왕실이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변해주기 위해 무척 애쓴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히 호전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그런데 그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이 바로 고 이수현군이다. 그즈음 일본에선 지하철에서 일본인을 구하고 숨진 이수현 군을 기리는 추모영화가 개봉됐다. 그런데 그 영화 개봉에 앞서 시사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 일왕부부가 참석한 일이 화제가 됐었다. ‘너를 잊지 않을 거야’라는 제목의 영화개봉을 앞두고 아키히토 일왕은 이수현군의 부모를 왕궁으로 초청해 위로하며 영화가 개봉하면 시사회에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했었고, 그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일왕이  한국 관련 민간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일왕실이 한ㆍ일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으며, 동시에 야스쿠니신사참배를 강행한 일본의 우파집단에 대해 무언의 압력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소식을 접하면서 조금 다른 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일왕이 이수현 군의 기일에 참석해서 이군의 부모와 했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보다도 그런 일왕실의 행보에 일본국민들이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이수현군을 국민적 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뜻 깊게 여겨졌다. 살신성인의 사랑! 한 한국청년의 그 희생적인 사랑의 힘이 전 일본국민을 감동시킨 것이었다. 아직도 일본이나 일본인을 생각할 때 결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없는 우리들이다. 일본인들도 그 사실에 대해 결코 냉정해지지 못한다. 그 해묵은 감정의 벽은 그동안의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그런 한국에 대해 일본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한국청년 앞에서만은 그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벽이, 아무런 장애도 위력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수현군이 보여준 희생의 의미를 단순한 미담으로 희석시켜서는 안 된다. 한류스타들에게 열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이수현군에 대해서는 마치 일본인처럼 애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사랑이란, 모든 벽을 허무는 절대적인 힘이란 사실을 다시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한일 관계 속에 이 사랑이라는, 흔하디 흔한 개념을 적용시킬 생각은 한국의 그 누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수현군의 죽음은 그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랑할 수 없는 천만가지 이유가 있다 해도 일단 사랑하는 것, 자기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마저도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허물지 못할 장벽이 어디 있으랴.
27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댓글:  조회:3799  추천:37  2009-03-27
네 번째 이야기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라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지난해 EU 탄생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Merkel) 총리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을 관람하고 남긴 글이다. 용기있게 자신의 과오와 약점을 인정하고, 주변 국가와 함께 손잡고 화해의 길로 나선 독일 덕분에 지금 유럽은 국경도 허물고 각종 제도를 통일시켜 가면서 공동의 번영을 꾀하고 있다. 독일과 나란히 2차 대전의 전범 국가였던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금 유럽에는 독일이 “또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없고, 또 메르켈 총리가 발 벗고 나서면 유럽과 세계평화를 위한 외교노력으로 크게 각광받는다. 반면에 일본이 힘을 과시할 조짐을 보이면 주변 국가들은 바짝 긴장하고 의심부터 하게 된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때도 그랬거니와, 아베 전 총리의 종군위안부 발언만 해도, 주변국가와 국제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아소 다로 총리 역시 한반도 관련 망언의 또 다른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런 인물들이 이끄는 일본이 과연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누가 인정하며 안심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일본사회 곳곳에는 고질적이고 전근대적인 집단의식이 잠재돼 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용출될 지 예측 불가능한 일본인 특유의 집단성! 그것 때문에 그들은 20세기 초 아시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것을 부인하려 한다면 일본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사회 속에서 결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언젠가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일본인들이 일본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경영인으로 서슴없이 손꼽는 인물이다. 그는 3가지 행운 때문에 사업에 성공했다고 흔히 말하곤 하는데 그가 말하는 3가지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첫째로 나는 11세에 조실부모했기 때문에, 철이 일찍 들었다. 두 번째로 나는 어려서부터 건강이 나빴기 때문에 늘 건강을 조심하여 95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한 뒤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배우는 일에 겸손했고, 그 결과로 경영의 귀재가 됐다.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자신의 아픔과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이를 솔직히 인정했으며 더 나아가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해 겸손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매진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삶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스스로의 아픔과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만이, 자신의 인생을, 기업을, 국가를 오히려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지혜를 일깨워준다. 나는 일본 지도자들이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의 일생과 독일의 경우를 교훈 삼아 자신과 국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에 성공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하며 이웃국가와 평화공존을 위해 발 벗고 나서기를 두손 모아 기도한다. 그것이야말로 동북아시대로 가기 위한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는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본과의 마주 앉으면 거의 본능적으로 과거문제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고질병이다. 이 현상이 반복되는 한 우리는 그들에게 단 한발짝도 더 다가갈 수 없다. 일본과 해원할 일이 없다는 게 결코 아니다. 그 일이 결코 의미 없다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일본의 태도를 보면 과거 그들의 자(?) 잘못을 따져서 받을 거 받고 풀 것을 다 풀려면 앞으로 귀중한 시간을 얼마나 더 쏟아 부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일본과의 감정문제, 과거사문제를 청산하는 것이 더 쉬우리라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는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지금도 여전히 감정에 휩쓸려 울컥 울컥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여. 언제까지 그 감정싸움에 촌각을 다투며 소모전으로 우리의 역사를 올인 할 것인가.  역사청산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그만 두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이 최우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의 관계에 집중해 양국의 관계를 풀어가다 보면, 과거의 일은 생각보다 쉽고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의 공감을 얻으며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능력과 그들의 경계심 뒤에 일렁이는 인간미와 감성을 먼저 인정해주자. 그렇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미래를 먼저 이야기 하자. 미래에는 하나가 되기 위해 내가 받은 상처일랑은 묻어두고 모든 것을 양보하자. 과거 청산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들이 마음을 열고 우리와 하나가 되면 그 과거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은 반드시 온다. 우리가 만일 진정으로 그들과 마음을 열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손을 내민다면. 그것이 흥부식 포용이고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26    과거가 아닌 미래를 먼저 이야기 하라 댓글:  조회:3499  추천:29  2009-03-24
  네 번째 이야기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라 과거가 아닌 미래를 먼저 이야기 하라 그런데 무슨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장애물을 만나기 마련이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게 큰 감동을 주었던 이시이회장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한 말 중에 한가지 내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일본에서 유럽까지를 연결하는 대륙횡단루트를 제안했을 때 전혀 뜻밖의 사실에 이시이회장이 우려를 나타냈다.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일본국민 전체가 용서하고 합의를 하지 않으면 북한과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큰 그림을 품고 있는 이시이 회장에게서  ‘전국민의 합의’라는 표현 속에 내재돼있는 일본인 특유의 전근대적인 집단의식을 확인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한계임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한 과거 때문에 북한과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면 일본으로부터 36년간이나 강제점령을 당한 한국은 일본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또 중국과 다른 아시아국가들과는 어떻게 미래를 도모하려 그러는가. 일본에서는 내년 3월에 발표할 새 검정 역사교과서에도 일본의 아시아침탈이 아시아해방전쟁이라는 논조가 그대로 반영돼있다. 그것은 일본의 동아시아를 보는 시각이 결코 변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도도히 흐르는 평화공존의 물결 속에서도 일본은 전혀 방향선회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더욱 극단적인 길로 치닫고 있는 일본 보수 우경화 현상은 주변 국가들을 몹시 당황스럽게 한다. 사실 오늘날 아시아사회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역통합이 늦어지는 이유는 지난 세기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 자행한 역사적 만행의 후유증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 스스로도 아시아인이면서 다른 아시아인들에게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라고 세뇌시켰으며 결과적으론 서로를 불신하고 무시하는 반 아시아적 시각을 심어주었다. 일본이 아시아지역에 저지른 범죄는 단순한 물적, 인적 범죄를 넘어 반아시아적인 씻을 수 없는 범죄였다. 그런 일본이 이제 와서 북한이 불과 몇 백명 되지 않은 일본인을 북송했다고 해서 북한과 공조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논리는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어렵다. 아직도 일본은 맘속으로 탈아시아를 외치며 아시아를 자신의 점령지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지난해 EU 탄생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Merkel) 총리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을 관람하고 남긴 글이다. 용기있게 자신의 과오와 약점을 인정하고, 주변 국가와 함께 손잡고 화해의 길로 나선 독일 덕분에 지금 유럽은 국경도 허물고 각종 제도를 통일시켜 가면서 공동의 번영을 꾀하고 있다. 독일과 나란히 2차 대전의 전범 국가였던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금 유럽에는 독일이 “또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없고, 또 메르켈 총리가 발 벗고 나서면 유럽과 세계평화를 위한 외교노력으로 크게 각광받는다. 반면에 일본이 힘을 과시할 조짐을 보이면 주변 국가들은 바짝 긴장하고 의심부터 하게 된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때도 그랬거니와, 아베 전 총리의 종군위안부 발언만 해도, 주변국가와 국제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아소 다로 총리 역시 한반도 관련 망언의 또 다른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런 인물들이 이끄는 일본이 과연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누가 인정하며 안심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일본사회 곳곳에는 고질적이고 전근대적인 집단의식이 잠재돼 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용출될 지 예측 불가능한 일본인 특유의 집단성! 그것 때문에 그들은 20세기 초 아시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것을 부인하려 한다면 일본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사회 속에서 결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언젠가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일본인들이 일본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경영인으로 서슴없이 손꼽는 인물이다. 그는 3가지 행운 때문에 사업에 성공했다고 흔히 말하곤 하는데 그가 말하는 3가지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첫째로 나는 11세에 조실부모했기 때문에, 철이 일찍 들었다. 두 번째로 나는 어려서부터 건강이 나빴기 때문에 늘 건강을 조심하여 95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한 뒤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배우는 일에 겸손했고, 그 결과로 경영의 귀재가 됐다.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자신의 아픔과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이를 솔직히 인정했으며 더 나아가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해 겸손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매진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삶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스스로의 아픔과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만이, 자신의 인생을, 기업을, 국가를 오히려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지혜를 일깨워준다. 나는 일본 지도자들이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의 일생과 독일의 경우를 교훈 삼아 자신과 국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에 성공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하며 이웃국가와 평화공존을 위해 발 벗고 나서기를 두손 모아 기도한다. 그것이야말로 동북아시대로 가기 위한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는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본과의 마주 앉으면 거의 본능적으로 과거문제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고질병이다. 이 현상이 반복되는 한 우리는 그들에게 단 한발짝도 더 다가갈 수 없다. 일본과 해원할 일이 없다는 게 결코 아니다. 그 일이 결코 의미 없다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일본의 태도를 보면 과거 그들의 자(?) 잘못을 따져서 받을 거 받고 풀 것을 다 풀려면 앞으로 귀중한 시간을 얼마나 더 쏟아 부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일본과의 감정문제, 과거사문제를 청산하는 것이 더 쉬우리라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는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지금도 여전히 감정에 휩쓸려 울컥 울컥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여. 언제까지 그 감정싸움에 촌각을 다투며 소모전으로 우리의 역사를 올인 할 것인가.  역사청산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그만 두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이 최우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의 관계에 집중해 양국의 관계를 풀어가다 보면, 과거의 일은 생각보다 쉽고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의 공감을 얻으며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능력과 그들의 경계심 뒤에 일렁이는 인간미와 감성을 먼저 인정해주자. 그렇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미래를 먼저 이야기 하자. 미래에는 하나가 되기 위해 내가 받은 상처일랑은 묻어두고 모든 것을 양보하자. 과거 청산은 그 이후의 일이다. 그들이 마음을 열고 우리와 하나가 되면 그 과거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은 반드시 온다. 우리가 만일 진정으로 그들과 마음을 열고 그들의 미래를 위해 손을 내민다면. 그것이 흥부식 포용이고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25    길을 닦아라, 미래는 꿈꾸는 게 아니라 달려가는 것이다 댓글:  조회:3572  추천:30  2009-03-20
 네 번째 이야기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라  길을 닦아라, 미래는 꿈꾸는 게 아니라 달려가는 것이다    작년 봄 일본 큐슈에 갔을 때 마침 3월 1일이었다. 일본 땅에서 3.1절을 맞기는 처음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던 그날 오후, 전 큐슈지역 철도청장을 역임한 이시이 요시타카 (石井幸孝) 회장을 만났다. 나가사키현 출신인 그는 정년퇴임을 한 뒤, 후쿠오카 일한친선협회를 이끌며 한일간 FTA성사를 위한 민간경제협력 및 항만교류 업무를 위해 뛰고 있다. 그가 한국에 왔을 때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난 뒤 두 번째 만남이었다.  이시이 회장을 만난 나는 한 달 전에 일어로 번역해서 보내준 나의 졸저 <동북아 연합의 꿈>을 읽은 소감이 어떠냐고 성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비교적 차분하게 나의 주장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하면서 동북아시대의 국제협력모델 창출방안 즉 한ㆍ중ㆍ일 3국을 ‘한 몸’으로 연결ㆍ입체화 시키는 상호주의 관계구조를 높이 평가했고, 또한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인프라인 한일해저터널과 철도연계망 확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동의해주었다. 더불어 이시이 회장은 이 일이 막대한 시간과 자금 그리고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삼국 간 관계자들의 심도 깊은 교제와 토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례 포럼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 예로서 그는 2000년도에 <일본·네덜란드 교류 400주년 기념행사>를 설명해주었다. 당시 일본 철도공사가 주관했던 이 행사는 네덜란드 덴 하그역에서 중국 북경에 이르는 장거리철도여행플랜이었는데 그는 각 국가 간 노선도까지 직접 그려가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참고로 일본 큐슈 지역은 일본 개화기인 1860년대부터 네덜란드와 활발한 교류를 해왔고, 지금도 면적과 인구, 개인소득이 비슷해 여러모로 서로에게 각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 관계다.  이시이 회장이 말한 유럽과 아시아 대륙 간 철도대장정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1980년대 말 일본 국철이 민영화되자 큐슈의 철도공사와 네덜란드 철도국은 더욱 밀접한 교류를 해왔는데, 마침 2000년도가 양국 간 교류 400주년이 되는 해였고 양국 철도당국과 전문가들이 모여 2000년 9월과 10월 사이에 네덜란드 수도 덴 하그에서 출발해 체코 프라하, 폴란드 바르샤바, 러시아 모스크바,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 타쉬켄트, 알마티, 키르키스탄(옛 실크로드 지역)을 거쳐 중국 북경 역에 도착하는 실크로드 대장정을 이루어냈다. 모두 11개 국가를 거쳐 24일 동안 달려온 이 철도대장정은 침대칸이 딸린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차량을 이용하였으며, 여행 참가인원은 일본인 60명, 네덜란드인 40명이었다. 당시 이 기념행사는 개인이 200만엔(¥)의 경비를 부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유럽과 중국, 러시아ㆍCIS 국가 간의 철로 폭이 달라 도중에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도 있었지만 이 국제간 장거리 철도여행 행사를 무난히 성공시킨 양국 철도청 당국자들은 앞으로도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추진하기로 결의했었으나 불행히도 그 다음해인 2001년도에 영국에서 열차테러사건이 발생하자 후속계획이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이시이 회장은 늘 마음속에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거쳐 중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에 이르는 ‘신 실크로드 철도 대장정’ 을 꿈꾸어왔다. 그는 실제로 큐슈 철도청장 직을 퇴임한 후 후쿠오카와 부산을 오가는 쾌속선 ‘제트포일’을 운행하는 항운사의 초대 사장을 맡기도 했다. 1987년 당시 초기에 배 한 척으로 시작했던 쾌속선 사업이 이제는 본격화되어 7척의 배가 매일 8회 왕복 운행하는 황금노선으로 발전했다. 이시이 회장은 이 쾌속선의 운항으로 부산과 후쿠오카는 이미 1일 생활권으로 변했다고 평가하며 부산 여성들이 후쿠오카 텐진(天神) 백화점에 쇼핑하러 오는가 하면, 후쿠오카 샐러리맨들도 생일파티를 하기 위해 아침 8시에 후쿠호카를 출발해서 2시간 50분 만에 부산에 도착해서 점심에는 한국식 갈비를 먹고 오후에는 쇼핑을 한 뒤, 저녁에는 자갈치 시장이나 삼계탕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다가 마지막 쾌속선을 타고 후쿠오카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한일 해저터널이 완성되고 철도와 차량이 자유왕래하기 전까지는  부산-후쿠오카 구간에서는 비행기보다 오히려 쾌속선 사업이 더 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균 한 해에 60만 명가량의 여객이 오고가고 있으며 이제 곧 연인원 100만 명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겨우 한 개 항로의 쾌속선 운항만으로도 한국과 일본의 지역 항만도시가 일일생활권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다. 마치 동북아연합의 서막이 민간차원의 수요에 의해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설레임도 있었다. 부산과 후쿠오카 항로는 고대 일본으로 건너갔던 한반도 ‘도래인(渡來人)’ 들의 항로가 아니던가? 세월은 가고 사람은 바뀌어도 길은 여일하게 남아, 고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일간 평화 교류의 통로가 되어온 사실이 남다른 감회로 전해져왔다.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동북아연합체에 대한 화두를 가지고 한국에서 속 시원히 생각을 나눌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역시 한일해저터널의 시대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 시대가 언제 열릴 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시이회장은 그저 앉아서 미래를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그저 꿈꾸고 있지 많은 않았다. 미래로 가기 위한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또한 그의 페리호로 한국과 일본을 오간 사람들에게 한일해저터널 시대를 기대하도록 했고,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삶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생생한 사례를 선사해주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한일해저터널건설의 밑 걸음이 될 것이고, 장차 동북아공동체를 여는 동력이 될 것이다. 돌아오는 길, 문득 오늘이 3.1절이라는 사실이 다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의 선조들이 일제의 강제적인 국가주권침탈에 항거하며 목숨 바쳐 독립만세를 외쳤던 날. 그 아프고도 자랑스런 기억이 있는 날에, 하필이면 나는 일본 땅에, 그것도 일본의 개화기 때 일본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켜 부국강병을 주장하며 한반도강점을 주도했던 인물들을 대거 배출시킨 큐슈 땅에 와 있었던 것이다. 당시 큐슈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야망에 불탔던 일본의 자신감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바로 그 땅에서 나는 동북아시대에 한국이 선진국의 꿈을 품고 힘차게 비상할 수 있는 활주로를 닦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탈냉전, 탈이념 국제협력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국제시민으로서, 진정한 한국의 선진입국을 위해서는 이 날을 한ㆍ중ㆍ일 3국이 ‘삼자가 하나’ 되듯 한 몸으로 거듭나는 공동체 역사의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기념일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국경에 갇히지 말고, 과거에 묶이지 말고,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가장 가깝게 위치해 있는 큐슈를 이국의 섬으로 외면하지 말고, 해저터널를 통해 오히려 한반도의 일부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서로의 상처와 한계를 치유해주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배우고 용납하는 역사를 함께 써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동북아의 장을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 날의 선조들이 피 흘려 지킨 조국을 반드시 동북아의 주역으로 날아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을 위해 끝까지 나는 이 활주로를 놓을 것이다. 아니, 그 옛날 독립만세를 외치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처럼 차라리 비상하는 조국을 위해 기꺼이 내 자신이 활주로가 되고 싶다. 내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24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라 댓글:  조회:3620  추천:39  2009-03-19
네 번째 이야기  코리안 섬 게임을 창출하라                                         지금까지는 다가오는 동북아시대의 동향과 주변국 중국과 일본의 발전상황, 그리고 그 가운데 위치한 우리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론은 동북아시대의 평화공존과 발전을 위해 우리가 중국과 일본의 중간 결속지대가 되어 동북아를 유럽과 대서양으로 연결함으로써,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흥부의 재해석, 포용의 성공전략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 자원부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김영호박사는 <21세기 키워드 시리즈>라는 컬럼에서 <흥부의 재해석>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남겼다.         “흥부와 놀부에 대한 가치판단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창작 당시에는 물론 놀부는 악(惡)의 상징이며, 흥부는 선(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삶의 방식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이들 두 인물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가장 큰 사건의 하나는 옛 소련의 몰락이라기보다 오히려 일본의 등장인지도 모른다.         특히 1980년대 일본은 한때 세계 금융자본 약 40%를 점유하면서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 이래 역사상 최대의 채권대국이 되었는데, 그것은 사무라이적 인간상에 의해 주도됐다. 사무라이식 자본주의는, 안으로 일본 시민사회의 미성숙과 밖으로 세계 경제의 불균등성을 매개하고 있고, 최근 일본 시민사회의 성장과 세계경제의 균형회복으로 심각한 후퇴를 맛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떠한 인간상에 의하여 주도될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나는 흥부적 인간상이라고 하고 싶다. 흥부는 제비도 끌어안고 뱀도 끌어안고 박도 끌어안고 모든 이질적인 요소를 끌어안고 결합시키면서 혁신을 연출했다. 가난한 사람도 포용하고 심지어는 자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간 놀부형 인간도 포용하고, 그리고 모든 것을 나누어준다. 그는 남의 부(富)를 이전받아 자신의 부를 늘리는 제로섬 게임의 승자가 아니라, 타인의 부를 창출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나누어줌으로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포지티브 섬 게임의 승자이며, 그러한 포지티브 섬의 결과를 공동체의 구성원과 함께 나누어 가지면서 화해의 공동체를 이룩해간다. 한국은 동북아의 틀 속에서 경합하고 있는 4강을 끌어안고 화해시키면서,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흥부적 화해상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 흥부의 성공전략을 동북아관계에 적용시킨다면, 중국과 일본의 모든 이질적인 요인을 포용해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혁신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중국은 한국의 고토(故土)인 고구려를 자기들 역사의 울타리 안에 예속시키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의 역사 개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차후 21세기 동북아의 국제질서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일본 또한 뒤질세라 그동안 계속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몇 년 전에는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을 초청해놓고 그가 동경 하네다(羽田) 공항 도착 1시간 전, 일본의회에서 유사법안을 통과시키는 파렴치한 일까지 저지르기도 했다. 특히 일본은 마치 잽을 하듯 지난 역사속에서 늘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는 식으로 한반도를 괴롭혀왔다. 우리는 지금 이런 두 이웃나라와 미래의 생존을 함께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과 일본은 전혀 상반된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다. 우리의 반도문화와도 이질감이 없지 않다.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그들의 모든 것을 포용하기란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 하지만 흥부식 성공전략은 일부 학자의 특수한 견해가 아니다. 최근 세계적인 법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서구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예일대 법대 에이미 추아교수도 최근 자신의 저서 <제국의 미래>에서 초강대국의 최우선 조건을 ‘관용’이라고 정의해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추아교수가 말하는 관용이란 단순히 인권과 같은 현대적 의미가 아니라 이질적인 집단이 특정 사회안에서 뿌리내리고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초강대국을 탄생시킬 수 있는 인적자원과 능력은 어느 특정 민족이나 종교집단에서만 배출되는 게 아니므로 최고의 인재를 원한다면 인종, 종교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충고했다. 고대 그리스국가 스파르타도 제한된 시민들로만 전사들을 충당하려다 실패했으며 16세기 초강대국이었던 스페인 역시 유대인과 무슬림을 배척하고 동원 가능한 인적·물적 자본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된 데 반해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하나의 커뮤니티 안에서 소통하고 존중하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미국이 앞으로도 이를 지켜가려면 미국의 정체성을 하나의 고유한 인종집단 혹은 종교 집단에 묶어 놓으려는 시도나 제국의 야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라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의 전통, 역사, 문화안에 갇혀 주변국가와 손잡기를 머뭇거린다면 스스로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야말로 동북아시대의 평화공존을 위해 흥부처럼 또 추아교수가 분석한 바 2천년 인류역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도 끌어안고 중국도 끌어안고 주변국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끌어들여 품고 가겠다는 자기 희생의 비장한 각오가 없다면 동북아시대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이며, 선진국의 꿈도 더 나아가  초강대국의 꿈도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국가와 관계맺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중국은 무엇이든 삼켜서 중국화하는 전형적인 대륙문화이고, 일본은 외부로부터의 반응에 민첩하게 자신을 변화시켜 배타적인 자신만의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전형적인 섬나라문화, 즉 해양문화권이다. 우리에겐 이 두 가지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전통과 경험과 역사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부터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흥부식의 포용전략으로 동북아 FTA와 T&T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나는 이것을 제로섬 게임의 반대개념인 포지티브 섬 게임에서 차용하여 코리안 섬 게임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2천년의 역사를 가진 반도의 나라, 동북아의 허브인 한국이 창출한 포용과 상생의 게임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코리안 섬 게임을 수행해나갈 것인가. 이를 위해 그간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를 오가며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실제적인 접근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23    한,중,일 해저터널과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 댓글:  조회:3691  추천:36  2009-03-17
 세 번째 이야기  동북아네트워크를 구축하라 -FTA와 T&T              「한․중․일 해저터널과 동북아경제협력체 구상」 “오늘날 많은 나라들이 세계화의 흐름에 편승하는 한편, 인접 국가들과 보다 밀접한 경제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발전을 지속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EU(유럽연합),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블록화 현상은 동북아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중․일 3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일어난 동아시아 통합운동 즉, ‘ASEAN +3(한․중․일)’정상회의와 같은 지역경제권(Regional Economic Block)활동에 적극 동참하면서, 자체적으로 동북아 역내 국가들간의 교류와 결속력을 높여 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한․중․일 3국간의 FTA를 기초로 하여 동북아 경제협력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방안이 이러한 노력의 한 예입니다.         최근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연관된 미국식 투자은행(IB)의 몰락이 세계적 금융공황을 촉발할 수 있음을 보면서 동아시아 역내 국가간 금융협력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입니다. 국제금융을 다루고 있는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로 위안 화와 엔 화가 기축통화로 자리잡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지금이 바로 동북아시아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해 매진 할 때라고 지적하곤 합니다.         이와 같은 제도금융의 기능적 통합은 한․중․일 3국에 국제협력을 통한 지역안정과 공동번영의 길을 개척하는 한 대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동북아 3국의 미래 발전과 결속을 이끌어 줄 국가간 SOC정책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의 블록화 현상으로 지역통합경제권이 형성됨에 따라 그 통합경제권의 중심지 역할을 맡기 위한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이른바 허브 공항, 허브 항만이 되기 위한 경쟁이지요. 이러한 가운데 최근에 다시 논의가 재개된 한․일 해저터널과 지난해부터 급속히 열기를 띠고 있는 한․중 해저터널에 대한 국가간 SOC정책이 또한 한․중․일 3국을 결속시키는 동북아 블록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적인 경쟁관계(Zero-Sum Game)를 뛰어넘어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기반으로 윈윈 패러다임의 공동선(Positive-Sum Game)을 추구함으로써 국가간 소통과 교류의 폭을 확장시키는 역내 대중교통인프라 구축이 그 목표입니다.         다시 말해, 저는 오늘 한․일 해저터널과 한․중 해저터널을 복합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일본 열도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하나의 거대통합시장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리라는 비전을 갖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동안 한․일간 해저터널 구상은 집권 정부의 의도에 따라, 또 이를 취급하고 추진하는 민간단체 및 연구기관의 의도에 따라 많은 편차와 논란을 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2008.6.27) 부산시에서는 「부산발전연구원」을 중심으로 교통․물류․사회․문화․경제분야 등 전문가 8명을 위촉, ‘한․일 해저터널 TF'팀을 구성하여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만 논의해 왔던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공식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이 일에는 일본측 연구기관으로「일․한 터널연구회」,「일·한터널 추진동맹」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 부산-거제간 거가대교 3.7km 침매터널 공사를 하고 있는 아시아나 그룹의 대우건설 측에서도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경기도에서는 산하기관인「경기개발연구원」주최로 중국 국무원발전연구중심 관계 인사들을 초빙한 가운데 ‘동북아 협력체계 강화를 위한 한․중 해저터널 구상’을 주제로 하는 국제세미나를 지난 5월 14일 서울에서 개최한 바가 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연 평균 10%대에 달하는 중국의 성장을 배경으로, 한․중․일 3국의 교역액이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대를 넘어서고 있으며, 또한 동아시아 역내 GDP의 9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동북아 지역의 경제성장과 물동량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동북아 물류체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다양한 복합운송시스템 구축에 대한 검토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항공 및 항운 산업뿐만 아니라 한․일간 (카)페리, 한․중간 (카)페리 노선의 확대 방안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운송시스템은 연계 수단, 승객 및 노선 증설에 대하여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므로, 보다 대중적인 교통운수인프라로 이른바‘T&T Project(한․일 Tunnel & 한․중 Tunnel)’라고하는 한․중․일 복합해저터널계획이 급부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직도 항간에는“한․중 터널은 되어도 한․일 터널은 안된다(민족감정 문제). 한․일 터널도 안되는데 한․중 터널은 더욱 구름 잡는 이야기다(비용 및 효과문제).”하는 식의 비판론이 거셉니다.   반면에, 국가 100년 대계를 내다보고 한반도 전체를 일본과 중국을 연결하는 중간거점 자유무역지대로 개방하여 동북아 3국간의 국제분업을 유도하고 조정하고 촉진하는 개방형 클러스트 국가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이 경우 한․중 터널의 노선 설정에 따라 남북한 분단 상태가 큰 장벽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고속철도 및 도로의 인프라건설이 오히려 남북한 경제공동체 실현을 앞당기는 활로가 되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은 궁극적으로 TCR, TSR, TMR등과 연결됨으로서 장차 아시아와 유럽을 하나의 경제협력체로 거듭나게 하는 대륙횡단 교통인프라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라시아 대륙의 경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동북아 역내 국가들간의 신속한 정보교환과 정보비용을 줄이기 위한 국제정보통신망 연계사업, 역내 국가간의 인적․물적 교류 확대를 위한 국제고속도로망(Asian Highway) 및 고속전철 연계사업을 추진하는 일은, 이른바 3통(통신․통행․통관)을 기반으로 하여 베세토(베이징-서울-도쿄) 도시회랑의 축을 따라 대륙과 해양을 한 몸으로 연결하는 ‘동북아시대의 뉴 실크로드’를 창출해 낼 것입니다.         순수한 민간 투자로 이루어졌던 영-불 해저터널 건설사업이 아직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점 때문에, 한․일터널이나 한․중터널 건설에 대하여 찬반 양론이 대립하고 있으나, 상기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중․일 복합해저터널이 건설될 경우, 이 해저터널은 장기적으로 볼 때, 동북아 블록의 시너지 원(源)이 되어 중추지구(Hub Zone)인 한반도의 경제발전은 물론 일본과 중국 양국의 사회․경제 및 국토, 환경적 측면에서 다양한 파급 효과를 유발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는 지역 다자안보와 통합시장 기능을 튼튼히 묶는 거대한 끈이되어 동북아 지역을 평화와 번영의 길로 인도할 것이며, 나아가 한자문화와 유교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역사공동체문화권으로 거듭나게 하는 통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중국과 한국에 대해 배타적인 경향을 보여 온 일본을 아시아적 협조사회(Cooperative Society)의 틀 안으로 유도하는 화해의 장치가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중․일 3국의 내해(內海)와도 같은 환황해권 경제수역을 중심으로, 동북아지역사회가 제29차 북경올림픽의 슬로건처럼 ‘One World, One Dream'를 지향하는, 창의적인  '미래공동체사회’로 나아가는 기회를 잡게 될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오늘 한․중․일 3국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고 있는 이 환황해권 경제․기술교류 전체회의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연구 방안을 건의코자 합니다.         첫째,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중․일 해저터널 계획을 한․중․일 정부간 합동 SOC정책 프로젝트로 승격해서 추진해 주기를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탐사․설계․시공에 관련된 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투자, 기금운용, 인력개발, 교통 및 물류체계관리 방안에 이르기까지 한․중․일 3국이 대등한 수준으로 공동투자 개발하는 방식을 취하며, 이를 위한 기초 단위로 ‘한․중․일 해저터널건설기획단’설립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둘째, 한․일 FTA, 한․중 FTA, 중․일 FTA를 포함하여 한․중․일 3국간 FTA 결성을 추진하기 위한 ‘동북아경제협력재단’설립을 제안합니다. 이 재단은 장차 ‘동북아개발은행(NEADB)’을 설립하기 위한 전 단계로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며, 관할지역 범위는 1단계:환황해 중심의 한․중․일, 2단계:러시아 극동지역과 몽골 및 북한까지 포함하는 광역 경제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구의 조직 및 운영은 한․중․일 3국의 산․학․관 합동 연구개발(R & D)시스템을 기본으로 하여 각 정부와 기업이 대등한 수준으로 출연하고 공동관리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셋째, 상기 두 항목에서 제안한 ‘한․중․일 해저터널건설기획단’설립과 ‘동북아경제협력재단’설립을 지원하기 위한 상설기구로“환황해 경제․기술교류회의”산하에 실무기획단을 편성, 운영할 것을 건의합니다.  이로써 지금까지 순수한 대화, 친교, 정보협의체 형태로 존속해 왔던 “환황해 경제․기술교류회의”가 국제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거래와 기간산업발전 및 에라스무스(ERASMUS)제도와 같은 인재양성 프로그램과 국제 인턴십 활동을 촉진시키는 실질적인 ‘동북아경제공동체 산․학․관 국제협력기구’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2    한중해저터널을 뚫고 T&T 시대로 댓글:  조회:4314  추천:34  2009-03-13
세 번째 이야기  동북아네트워크를 구축하라 -FTA와 T&T 한중해저터널을 뚫고 T&T 시대로    한중해저터널 노선은 다음의 네 가지 노선을 검토 중이다. 각 구간별 거리와 장단점은 다음과 같이 조사됐다. (경기개발연구원. 2008. 5)    구  간 거  리 장   점 단   점 1안 용연-위해 198km -거리가 짧아 공사비 저렴 -부산 등 남쪽지역에서 이용할  경우 통행거리가 길어짐 -경부고속도로 연결을 위해   90km의 철도신설 필요. 2안 인천-위해 362km -항공과 철도로 영종도와 중   국을 직접연결 -인천공항철도를 이용하므로,  철도추가건설필요는 없으나,  구간속도가 늦다는 게 단점. 3안 화성-위해 374km -인구와 경제비중을 고려하면  한국 전역으로의 접근성양호 -포승/평택간 산업철도와 고  속철도를 연계, 인입선로공사  비 절감가능 -화성 유니버셜스튜디오등 관  광지개발로 중국연계한 세계  적인 테마파크 가능   4안 태안-위해 320km -서해안개발 병행추진할 경우  접근성&발전가능성 매우높음 -서울에서의 우회거리 증가.  -경부고속철도 연결을 위해  60킬로의 철도신설 필요함.          터널은 일단 철도구간 건설을 기본으로 논의 중이다. 자동차 이용객을 위한 차량터널로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를 해 볼만 하지만, 관련 노선 연장과  배기가스 처리 등의 환경문제를 고려 할 때 운행속도 시속 350km인 고속열차를 이용해서 승객과 화물을 수송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해저터널이란 암반가운데를 통과하기 때문에 외부 지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해저는 지상에 비해 지진에 안전하며 1978년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 주변의 지진발생 분포도를 살펴보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중해저터널이 지나갈 지역에서는 리히터 규모 5 이상의 지진은 1번 밖에는 관측된 바 없다. 또한 해저터널이 지나가게 될 서해안의 최대 수심은 80m, 평균수심은 40m로 매우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질의 경우 터널 굴착을 위한 기반암으로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해저터널구상과 함께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화두가 바로 인공섬이다. 공해상에 해저 터널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공 섬을 만들어야 한다. 인공 섬이란, 시공 중에는 시공 장비 및 자재반입, 터널버력 반출을 위해 공사작업용으로 사용되다가 터널이 완공된 후에는 환기와 배수, 재난 시 긴급대피용으로 활용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한중해저터널의 경우에는 300여 킬로미터가 넘는 초유의 최장터널이 될 예정이므로 25-50킬로마다 한 개씩의 인공섬을 건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인공 섬은 한중해저터널의 새로운 상징이자 명소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사 중에는 공사와 유지관리를 위한 시설로 활용하다가 공사가 끝난 뒤에는 호텔, 컨벤션, 카지노, 레포츠 등을 포함한 새로운 멀티 여가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또한 �한중해저터널은 평균 수심이 40m 이하이기 때문에 인공섬을 설치할 경우 그 중 한 곳 정도는 공해 상에 큰 규모로 조성해서 해저도시를 건설하는 구상도 연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가 수심 20미터의 깊이의 ‘하이드로폴리스’라는 수중호텔을 건설계획을 추진 중이고 피지에서는 12미터 깊이의 바닷속에 ‘포세이돈 언더시 리조트’라는 해저리조트를 조성해 새로운 차원의 관광문화를 창출할 목적으로 진행 중이다. 동북아에 꿈의 공동체 시대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한일·한중 복합해저터널건설은, 그러나 기대만큼이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초유의 건설공사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유럽통합의 물꼬를 튼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는 유로해저터널은 1802년에 최초로 구상된 이래, 1994년에야 개통식이 이루어졌다. 무려 192년이 걸린 것이다. 지브롤터 터널은 1980년 스페인과 모로코간 협력협정체결 이후 현재까지 진행중에 있어 거의 3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단일국가내 해저터널인 일본의 세이칸터널도 1939년에 최초로 구상이 시작돼, 1964년 3월에 착공해서 1988년 봄에 개통했다. 개통 1988년 3월로 건설기간 21년을 포함하여 총 49년이 걸렸다. 이는 대부분 막대한 예산과 핵심기술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중터널의 경우, 공사비는 km당 공사비는 개략 2,000억 원∼3,500억 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으로 잡는다 해도 70조원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이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유로해저터널의 경우는 주식공모와 은행융자를 통한 순수한 민간재원으로 건설했다. 지브롤터 해저터널은 보조터널 건설은 스페인과 모로코정부가 경비를 부담하고 본 터널은 민간에서 비용을 조달했다. 한중해저터널의 경우, 아직 �정밀한 기술조사 및 타당성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재원 조달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한다는 것이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공자금, 민간자금, 국내자본, 국제자본 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대안이 가능하다.         - 한중민간기업 컨소시엄 방식         - 한중 관민공동의 제3섹터 컨소시엄 방식         - 국제기업 간 컨소시엄: 미국 및 유럽, 아시아 자본 등 이 같은 사례를 감안해볼 때, 한중�해저터널 추진을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조사와 해당국 당사자간의 긴밀한 연구 및 협의가 요구된다. 따라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한국과 중국 간에 연구협의체를 구성해서 분야별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객 및 화물 물동량 예측과 공사비 산정, 경제적 파급효과와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공동연구와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연구협의체는 우선 민간차원에서 연구소ᆞ대학 등 연구기관, 엔지니어링 업체 등으로 구성하여 추진하되, 민간의 연구가 어느 정도 성과와 진전이 이루어진 다음에 정부차원에서 실무회의 및 협의기구를 설치해 �향후 국가 R&D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이와 함께 꼭 생각해봐야 할 또 한가지 문제는 핵심기술개발이다. 해저터널건설기술은 이미 일본이 세이칸 해저터널(연장 23.3km), 동경만 해저터널(9.5km) 등의 건설을 통하여 해저지반 조사, 설계, 시공 및 유지관리 등에 관한 핵심기술을 오래 전부터 축적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의 삼성건설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시공하고 있는 ‘버즈 두바이’건물은 착공 3년 2개월 만에 높이 630m를 돌파해 세계 최고층 빌딩으로 자리매김함으로서 그 기술을 세계에 과시한 바 있다. 한국은 해저터널 기술에 있어서도 상당한 경험을 쌓고있다. 부산 가덕도와 경남 거제시를 연결하는 총연장 8.2km의 거가대교 공사가 진행 중인데, 그 중 3.7km가 침매터널식 공법으로 시공하고 있는 해저터널이다. 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측이 시공하고 있는 이 해저터널 공사의 경험이 향후 한중터널공사에서 빛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해저터널 건설의 핵심기술개발은 단순히 한·중·일 해저터널건설이 최종목표가 아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해저터널 시장규모를 살펴보면, 발주물량은 많지 않으나 해저터널의 건설 특성상 대규모 사업으로 발주될 경우가 많으므로 잠재적인 시장 규모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또한 가속화 되고 있는 지역경제블록화 현상을 고려해볼 때 이제까지보다는 훨씬 더 많은 해저터널공사가 계획되고 실제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 시장의 성장가능성도 매우 고무적인 편이다.  따라서 한·중·일 해저터널건설 경험을 계기로 세계 해저터널 건설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수준의 핵심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 연구는 2005년 건설교통부에서 건설핵심기술연구개발사업의 하나로 ‘해저시설물차폐기술개발’을 위한 연구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여기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이 참여해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저터널과 함께 새로운 관광거점으로 떠오를 인공섬 개발을 위한 노하우 개발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추세와 발전방향을 종합하여 한국정부와 국민들 앞에 제안하고 싶은 사안이 바로 이것이다. 즉, 한·중·일 복합해저터널 건설을 기초로 하여 동북아지역 고속철도 및 국제도로망(Asia Highway 연결구간)을 완비하고, 이를 기반으로 동북아 물류시스템의 국제통합모델을 구축함으로써 동북아FTA 및 경제공동체 구성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보자는 것이다. 이 일은 그 동안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며 구상해왔던 것으로서, 한·중·일 3국간에 동북아의 ‘새로운 미래사회를 열어가기 위한 대안(an alternative plan for new dream society)’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각 민족, 각 국가 간의 가슴 속에 쌓여 있는 불신과 불화의 벽을 허물고 한ㆍ중ㆍ일 3국간에 자신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서 과거사의 질곡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자국 중심의 냉전적 사고와 단절된 역사의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열린 마음’과 ‘함께하는 정신’으로 공동선(共同善)의 대로를 열어가기만 한다면 우리 모두를 평화롭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묵혀 있었던 각국의 현안문제들을 새롭게 풀어나가는 번영의 기회가 다가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한중일 삼국은, 한국의 옛 속담처럼 ‘도랑치고 가재 잡는 식’의 입체적인 역사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면서 동북아지역에 희망의 새 시대를 연출하게 될 것이다. 일본 속담에도 ‘힘든 일이 당신을 보배로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선택이 우리 모두를 21세기 국제사회의 정련된 보배로 거듭나게 해줄 것이다. 특히 국제안보와 군사전략 측면에서 보면 결론은 더 명확해진다. 동북아 삼국이 서로의 이익을 위한 상생관계가 되면, 러시아와 미국 등 주변국들도 이 균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이 상생의 룰 안에 들어올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것이 21세기 국제 역학관계의 최대관심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동북아 지역의 이상적인 힘의 균형이다. 앞으로 한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겨냥하여 중국과 연합해서 일본을 적대시 하게 되면, 아마도 일본은 미국을 부추겨 중국과 한국(북한 포함)에 대해 더 한층 강력한 긴장상태를 이루려고 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동안, 일본은 줄곧 미국을 등에 업고 한반도를 쐐기로 삼아 중국과 러시아의 힘과 무게를 견제해 온 것이 사실이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반도국가인 한국과 북한을 창으로 사용하여 미국의 비호아래 환태평양 사회를 계속 주도하려고 하는 일본을 대항해 온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틈바구니를 이용해 북한은 또한 자신의 체제보장을 위해 위험천만한 벼랑 끝 전술로 핵 게임을 목전에 벌여놓고 미국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 중이 아닌가. 이와 같은 각축과 대결의 관계에서 북한 핵문제를 포함하여 동서 양 진영의 안보적 입장을 조율하고 군축 및 선린외교를 통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유도할만한 중립국가적 조절 매체가 또 누가 있겠는가. 18년 전에 시작된 동북아시대를 향한 나의 길, 그 길에서 내가 바라는 소원은 단 하나, 한ㆍ중ㆍ일 3국이 서로를 용납하고 껴안아주며 새로운 융합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갈 미래의 동북아 모습을 나는 매일 치열하게 상상하고 기다리며 기대한다.
21    세계의 해저터널과 동북아 T&T 댓글:  조회:3699  추천:70  2009-03-12
 세 번째 이야기  동북아네트워크를 구축하라 -FTA와 T&T   세계의 해저터널과 동북아 T&T 원래 해저터널(Undersea tunnel)이란, 기존의 육상, 해상 및 항공 교통수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동차 또는 기차로 해저에 건설된 터널을 통과해서 국가와 연륙간을 연결하는 교통시설을 말한다. 최근 해저터널 건설은 전 대륙에 걸쳐 붐을 이루고 있다. 이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해저터널은 5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현재 건설 중인 두 개의 해저터널을 비롯해 전 대륙에서 구체적인 건설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해저터널은 무려 7개나 된다. 지역경제블럭화를 가장 먼저 시작하고 현재까지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성장시키고 있는 유럽공동체의 각국들은 해저터널을 지역블럭화의 첨병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유로터널(Eurotunnel)이다.  영국의 Folkestone과 프랑스의 Calais를 연결하는 이 해저터널은 1988년에 공사에 착수해 6년만에 개통했다. 총연장 50.45km로서 이 중 38km가 도버해협을 통과하는 해저터널이다. 바다밑 25미터- 75m 깊이에 건설됐고 건설비용은 우리돈으로 약 16조원이 투자됐다. 전액 주식공모와 은행융자를 동원한 순수 민간재원이었다. 당초 계약에 따라 착공시점으로부터 65년 뒤인 2052년에 양국정부에 그 소유권을 넘겨주게 돼있다. 유로터널은 단일터널이 아닌 3개의 터널이 연결돼있는 형태다. 직경 7.6m의 철도전용 단선터널 2개가 연결되는 중간에 유지보수와 터널내 고장 및 사고시 승객의 비상탈출을 위한 직경 4.8m의 서비스터널이 있다. �유로터널은 자동차, 버스, 트럭 등을 운반하는 차량수송전용 열차인 르셔틀(Le Shuttle)과 여객 및 화물용 고속열차인 유로스타(Eurostar)를 운행하고 있는데, �유로스타의 해저터널구간 운행속도는 시속 150km로 이용객은 2003년 630만명에서 2007년에는 830만명으로 연평균 8% 이상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해저터널이 입지한 영국의 켄트 지역과 프랑스 관련지역은 고용증대, 관광확대, 지역경제 활성화 등으로 지역개발효과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유로터널은 개통이후 유럽의 공간적 통합을 이루어내어 실질적인 경제통합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됐고, 더 나아가 유럽통합의 상징으로 인식돼, 유럽 국가들의 응집력을 높이는 주요한 프로젝트로 평가받았다. 터널을 통한 유럽대륙의 통합의지는 2000년에는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스웨덴의 말뫼를 연결하는 외레순 해협의 외레순 다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1년 덴마크와 스웨덴의 공식 합의에 따라 2000년 7월에 완공됐는데, 총 길이 15.4킬로미터인 다리는 교량, 인공섬, 터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터널은 3.5킬로미터다. 외레순 다리의 총 공사비용은 약 3조원이 소요됐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도 두 대륙이 만나는 배링해협에도 해저터널을 추진 중이다. 시베리아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으로 미국대륙에 공급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러시아와 알래스카를 연결하는 6,000km의 수송로 중 약104km을 베링해협 해저터널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 구상은 이미 1905년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짜르 니콜라스 2세에 의해 처음 구상됐지만 1차 세계대전이 터져 무산됐었다. 현재 배링해협 해저터널공사는 러시아와 미국의 정부기관과 민간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TKM-World Link가 주도하고 있는데, 소요예산은 우리 돈으로 약 65조원이며 완공까지는 적어도 10년에서 15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터널이 완공되면 중동의 원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러시아의 석유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간의 무역이 가속화 될 것이며, 터널이 들어설 러시아와 미국의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역경제가 형성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서 한중일 삼국 사이에 두 개의 터널을 이용한 지역경제통합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평택과 위해간의 연장 374킬로미터의 한중해저터널이 연결됐을 경우, 시속 350㎞의 고속철도가 달린다고 가정했을 때 서울-위해구간(434㎞)이 1시간 15분, 서울-북경(1,366㎞)이 4시간, 서울-상해(1,800㎞)로 5시간이면 되므로 항공이용시간(공항접근시간+대기시간+비행시간)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한일해저터널(연장 231㎞)까지 연결되면 일본, 중국, 한국이 일일생활권으로 연결되는 이른바 T&T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T&T(turnnel & turnnel)란, 즉 한일해저터널과 한중해저터널 두 개의 터널로 동북아전역을 하나의 통합물류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꿈의 전략이다. 한일해저터널이 T&T의 시작이라면 한중해저터널은 T&T의 완성이다. T&T의 완성으로 동북아고속철도망이 완비되면 한·중·일 삼국에는 지역간  대중교통운송시대를 맞아 관광, 서비스, 물류이동 등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유럽공동체와 같이 국경이 무너지고 문화차이와 역사적 장벽도 극복하는 다문화적 소통의 체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생체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15억의 한중일 삼국의 구성원들은 서로가 서로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알게 되고 그동안 사고의 장벽으로 인해 풀지 못했던 역사적 문제들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해가게 될 것이다. 경쟁의 관계에서 공생의 관계로, 견제의 대상에서 협력의 대상으로 바뀌는 새로운 신사회 미래공동체. 동북아! 이것이 바로 T&T를 통해 열고자 하는 동북아시대의 청사진이다.
20    한중해저터널 논의의 출발점 댓글:  조회:3753  추천:38  2009-03-11
 세 번째 이야기  동북아네트워크를 구축하라 -FTA와 T&T  한중해저터널 논의의 출발점                                                  요즘 한중간의 인적 물적 교역량은 고무풍선에 바람 들어가듯 팽창하며 성장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사람이 하루 1만 명이 넘고 비행기는 매주 400편 이상의 비행기가 한국과 중국을 왕래한다. 중국인의 한국방문객수가 최근 5년간 연평균 20%이상 증가해서 2005년의 경우 59만명에 이르며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의 수도 최근 5년간 연평균 50%이상 증가해서 2005년의 경우 295만명에 이르렀다. 화물량도 급증해서 대중국수출액은 최근 7년간 연평균 20%의 증가율을 보이며  2007년의 경우 820억불(3,322만톤)규모로 성장했다. 대중국수입규모 역시 최근 7년간 연평균 30%의 증가율을 보이며 작년말기준으로 629억불(6,146만톤)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2007년 총수출대비 22.1%로 1992년보다 무려 7배가 증가했고 같은 기간 내에 대중국수입은 4배나 늘었다. 한중일 삼국간의 교역량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각국간의 교역비중이 1992년 12.7%에서 2007년 21.6%로 껑충 뛰어올랐다. 앞으로는 더 빠른 증가율을 보이며 상호교역량이 팽창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효율적인 물류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통합운송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동북아 지역의 통합운송망은 주로 한일 해저너털 건설과 함께 북한, 중국(TCR)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대륙 철도운송망 중심으로 논의를 해왔다. 실제로 내륙간의 고속철도망구축은 상당부분 이미 가동중이다. 일본의 경우 홋카이도-도쿄-큐슈를 연결하는 신간센을 운영하고 있고 한국도 서울-부산간을 3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KTX가 운행중이다. 중국도 북경과 상해를 오갈 연장 1,318㎞의 고속철도가 2013년에 완공예정이다. 지난 5월 경기개발연구원이 주최한 한중터널 구상에 관한 세미나에서 ‘한·중해저터널 건설의 타당성’ 발제를 한 바 있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리홍 교수는 2030년엔 한·중 연간 방문객수가 4천 만 명에 이르고 연간 화물 운송량은 3.4억 톤으로 전망하면서 급증하는 물류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한·중간 해저터널과 철도를 활용하는 방안이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강조했다. 때문에 한중일의 학계, 기업계 그리고 많은 정부관계자들은 한일해저터널을 추진하는 동시에 북한지역내의 철도운송망만 완성되면 한중일이 오래도록 기다리던 ‘꿈의 동북아 통합운송망 시대’가 열리게 될 것으로 기대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내부 상황이 불투명한 상태인데다 그들의 의지를 확인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중간에는 한국과 중국의 연결지점 역시 인구밀집지역을 우선적으로 연결하여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서, 북한을 경유하는 대륙철도망보다는 황해바다를 가로질러 한국과 중국을 직접 연결하는 한중해저터널에 관한 쪽으로 논의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 활동의 하나로 올해 초 경기도가 한중해저터널 건설사업을 위한 여론 몰이를 시작했다. 김문수 도지사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이 사흘간 배를 타고 서해와 산동성을 오가며 서해권역 발전을 위한 방안중 하나로 한중 해저터널의 본격적 검토에 착수한 일이 그것이다. 경기도가 구상하고 있는 한중해저터널은 평택(미정)과 산둥성 위해를 잇는 374km 구간의 해저터널이다. 하지만  교량으로 바다 중심을 가르는 덴 한계가 있다. 수심이 70여m이고, 선박 이동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양국의 해안에 8km짜리 인공섬을 만들어 현수교로 연결시키고 350km 길이의 해저구간은 TBM(터널공법)으로 뚫는 방법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안전을 고려해 해저터널 구간엔 25km마다 환기구를 해면 위로 뽑는 인공섬을 만들고 이 중 몇 개는 공해상의 관광거점으로 활용한다는 내용까지 거론됐다. 해저터널은 세계최대 길이로 공사기간 20년, 소요예산 70-80조원에 이를 것이므로 국가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대형사업인 만큼 경기도는 끊임없는 검토를 통해 계획의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현재 서해안에서 위해를 가려면 배로 14시간이 걸린다. 평택에서 산동반도까지는 길게 잡아 약 400km정도의 거리인데, 이 거리는 서울-부산보다 가까운 거리로 KTX로 가면 불과 3시간 이내다. 이는 한국과 중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변하게 할 것이다.  참고로, 황해도 용연에 있는 장산곶에서 경기도 백령도를 거쳐 산동성 위해에 이르는 구간은 불과 194km이다. 만일 남북통일이 되거나 또는 현재 상황에서도 남북한 합의에 의하여 이 구간을 한중해저터널 구간으로 활용하게 된다면, 건설 공사비와 소요기간을 대폭 줄일뿐만 아니라 장차 남북한경제공동체 및 한반도 전체 국토균형개발을 위해 획기적인 대안이 형성 될 것이다. 아무튼 이 과제는 차치하고라도, 현재 경기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중해저터널 계획(안)은 환황해 지역경제권을 새로운 판도로 탈바꿈시키기에 충분한 Key-Plan이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기도에서 1,600킬로미터 떨어진 베이징까지 해저터널과 육로를 통해 4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시대를 기대한다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말은 결코 허황된 주장은 아니라고 본다. 그는 또한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국 사이에서 한발 빨리 움직이면 호랑이 등에 올라타지만 자칫 시기를 놓치면 코끼리 발에 밝히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비유하며 한중해저터널은 물론 일본열도와 연결되는 한일해저터널도 완성시켜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며 강한 추진의사를 밝혀 한중해저터널 시대를 기대하는 관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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