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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와 입술의 사이 댓글:  조회:2339  추천:1  2013-05-27
한사무실에서 일보는 젊은 동료의 아이가 이번학기 소학교1학년에 입학하였는데 요즘들어 소선대에 가입한 뒤를 이어 소대장까지 되여 팔에 두줄배기를 달고다니니 젊은 동료는 입이 헤벌쭉해서 벙어리 례단받은듯 그저 웃음뿐이다. 매일 하학하고는 넥타이를 팔랑거리며 두줄배기가 달린 팔을 휘젓고 가방멘 어깨를 달싹이며 학교와 가까운 아빠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들어설 때면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돌도 귀여워서 다시 한번 더 쳐다보게 되며 어쩌면 젊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아이를 키워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어서기도 한다. “아, 그때 리혼하지 않기를 천만 잘했습니다” 사무실에 나와 젊은 동료 두사람만이 조용히 있을 때 젊은 동료가 걸어오는 말이였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난 그 동료를 다시한번 쳐다보면서 시간의 흐름이 사람을 성숙으로 이끄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였다. 몇년전 젊은 동료는 안해와 작은 일로 다투게 되였는데 둘다 젊음의 오기와 자존심으로 서로 구부러들지 않아 작은 일이 점점 크게 번져지게 되였었다. 결국 리혼이라는 막바지까지 닿게 되여 나도 찾아 이야기를 하게 되였다. 부부가 살면서 싸울수도 있는데 절대로 승부를 가르는 싸움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것, 서로 한발작씩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금시 풀릴수 있다는것 등으로 내가 걸어온 길과 더불어 이야기를 했으나 그 당시로서는 그들 서로의 귀에 들어갈리가 만무하였다. 당시 그들은 서로 한발작도 뒤로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으니깐. 하다보니 단위의 령도를 포함하여 모두가 알게 되였으며 거듭되는 조해로 리혼만은 피하게 되였다. 그렇게 리혼을 피하고 차츰차츰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이 다시는 얼굴을 붉히며 싸운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으며 지금은 가방멘 아이를 학교에 함께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좋은 풍경을 만들어가고있어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실은 부부란 남남이 인연이 되여 연분을 맺은것이다. 우리 말 속담에 “부부는 돌아누우면 남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과 같이 그만큼 부부는 일단 갈라서면 완전히 남이 될수도 있지만 때로는 싸우더라도 조금만 양보를 하면 금시 싸웠던가싶게 원래로 돌아갈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나름대로 생각해보게 된다. 매일과 같이 함께 하는 부부일지라도 한번도 싸우지 않는다는건 현실을 떠난 이야기이며 오히려 싸우지 않는것이 더 정상이 아닌 이상이다. 왜냐하면 서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한다면 싸울 일이 없을것인즉 그러면 그건 이상이 아니겠는가. 입안의 혀도 씹을 때가 있고 이발이 입술을 씹어놓을 때도 있는데 하물며 감정동물인 남녀가 함께 서로를 관심하면서 살다보면 모순이 생기지 않을수 없다. 그러니 모순속에서 서로의 정이 돈독해지고 두터워진다면 어떨가? 문제는 서로의 위치를 알고 서로 존중해주는것이 아닐가 생각한다. 부부사이를 어쩌면 이와 입술사이같다면 가장 적절할것 같다. 이와 입술은 어찌보면 서로 각자의 일만 하면 될것 같지만 서로 없어서는 않되는 존재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려서 어쩔수 없을것이며 이가 없다면 입술이 안으로 오그라들어가서 보기가 흉하게 될것이다. 하기에 이와 입술은 서로 잘 맞추어가고있다. 때로는 이가 부주의로 입술을 씹어놓을 때도 있지만 몸의 그 어디에 난 흉터보다도 재빨리 아물어지며 입술이 초들초들 말라있으면 이는 혀를 재촉하여 입술을 추겨주게 하고  입술은 모든걸 개의치 않고 항상 이에게 바람이 들어갈세라 든든히 막아주고있다. 생을 함께 하려고 언약을 맺었다면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서로가 함께 해야 할것이며 항상 서로를 리해해주고 믿어주면서 보다 넓은 마음으로 포섭해주어야 할것이며 항상 양보할줄도 알아야 할것이다. 또한 서로의 고충과 고통을 함께 해야 할것이며 항상 자신을 바쳐 대방을 위한다면 리혼이란 말은 절대로 쉽게 나오지 않을것이며 부부라는 그 이름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갈것이다. 
15    깨알도 줏기 나름이다 댓글:  조회:2407  추천:1  2013-05-27
어릴때 읽은 동화인데 제목은 기억되지 않으나 매미와 개미의 이야기임은 틀림없으며 내용도 기억에 또렷하다. 매미가 온여름 나무그늘밑에서 노래로 세월을 보낼 때 개미는 작은 먹이일지라도 부지런히 메여날라 굴에 저장하였으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이 닥쳐오자 매미는 먹을것이 없어 결국 개미네 집을 찾아 먹을것을 동냥하는 처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이다. 그늘밑에서 목청껏 노래부르는 매미는 작은 몸뚱이로 작은 먹이일지라도 쉬임없이 부지런히 메여나르는 개미를 보고 즐기며 살줄 모른다고 웃었을것이다. 허나 결과적으로는 개미는 한겨울에 뜨뜻한 집에서 이미 저장한 먹이로 근심걱정없이 보낼수 있었으나 매미는 함박눈을 헤가르며 먹을것을 얻어러 다녀야했으니 동화로서는 너무도 의미심장하고 마음에 닿는다. 우리 집 근처에 대형슈퍼가 있어 간혹 들러보는데 언젠가 돼지고기 정육매대에서 월로임 1200원에 일군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걸어넣고있어 눈에 띄였었다.  썩후에 가보아도 역시 그대로 걸려있기에 물어보았더니 응시자가 없고 있다해도 마땅치 않다고 하는것이였다. 정육매대를 떠다는 나의 발걸음은 자연 무거워졌었다. 작은 현성에서 월로임 1200원이면 너무 적은 돈은 아닐텐데 응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니 나로서는 리해가 가지 않았다.  돌아오면서 내가 살고있는 아빠트단지에 거의 다달을 때 보니 기패실(棋牌室)이라고 간판을 건 집안에서 서너팀이 앉아 한창 마작놀이에 열을 올리고있는것이 얼핏 눈에 띄였다. 아빠트단지에 들어서서 복도에 들어섰을 때도 마작섞는 소리가 층계복도에까지 요란스럽게 들려왔었다. 그때 어쩌면 동화속의 매미가 다시 떠오르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출국하면 고생하더라도 돈을 빨리 벌고 많이 버는것만은 의심할바 없는 현실이다. 하기에 이미 나가서 많이 벌어온 사람도 있고 또 나가서 벌려는 사람도 있다. 벌어온 사람은 벌어왔다고, 벌러 가려는 사람은 갈때를 기다리느라고 매일과 같이 하는 일이 마작에 혼을 빼앗기고 마작과 씨름하는것이다. 모두가 큰것을 바라고있으며 그 큰것을 바라고 작은것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으며 큰것을 쥐였다고 또 작은것은 성차지 않아하는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런데 아무리 큰것을 벌어와도 가만히 앉아서 허문다면 금시 곰이 옥수수를 따는 격이 될것이며 아직 큰것도 벌지 못하고 그걸 바라고 앉아있는 사람은 결국 작은것을 메여나르는 개미를 웃다가 개미한테 동냥을 간 매미의 신세처럼 될것이다. 큰것도 좋지만 작은것도 모아지면 큰것이 되는것은 정해진 도리이다. 그런데 첫눈에 크고작기가 눈에 뜨이게 알려서 사람들은 왕왕 큰것에 눈을 돌리고 작은것은 홀시하거나 아예 눈길도 돌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작은것은 항상 외면을 당하기가 일쑤이다. 모두들 작은것을 주어 모은다면 쉽게 없어지지 않지만 큰것은 빨리 이루어지는만큼 없어지는것도 빠르다는걸 때로는 홀시할 때가 있다. 비록 힘이 들더라도 큰것이 차례지기전까지는 작은것을 주어모은다면 후날 큰것이 차례지지 않는다할지라도 삶의 방법과 지혜를 터득한만큼 두려움이 없을것이며 비록 작은것이라도 주어서 모아놓았기에 걱정은 없을것이다. 큰것이 있다고 곰이 옥수수따기가 되지 말고 작은 것이라고 눈길을 돌리지 않는 매미대신 작은 몸뚱이로 작은 먹이라도 부지런히 메여나르는 개미가 된다면 행복도 이어질것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깨알도 부지런히 줏는다면 넘쳐날때가 있음을 명기하자.
14    간판이 얼굴이라면 언어는 생명이다 댓글:  조회:3053  추천:0  2013-05-20
음식점을 꾸리든 회사를 꾸리든 모두가 간판에 무척 신경을 쓰게 된다. 한것은 간판은 이제 곧 시작하게 될 그 업종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때문이다. 특히 봉사항업인 음식점일경우에는 음식점의 맛과 특점을 간판에서 그대로 보여주기위하여 천방백계로 특색을 요구하는데 그 취지는 참으로 좋으며 경영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헌데 문제는 간판의 언어가 너무도 규범화되지 못하여 얼핏 보는 순간 낯이 뜨거워지다가 찌프려지면서 마치 맛갈좋은 음식에 재수없게도 파리가 떨어진 껄끄럼한 기분이 되는건 어쩔수가 없다. 내가 살고있는 이곳도 이 몇년간 음식점을 비롯한 호푸집, 술집들이 하루밤만 자고 나도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있다. 일상을 보내다보면 간혹 음식점이나 호푸집으로 드나들 때가 있는데 그때 간판에 우리의 말을 함부로 옮겨 쓴것을 보면 금시 가슴이 무거워나면서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게 된다. 한번은 산보겸 간판도 보려고 시내를 한바퀴 돌게 되였는데 틀린 글들이 많아 말그대로 엉망진창이라면 가장 적절할것 같다. 하여 일부러 업주를 찾아서 글이 틀렸다고 말해주면서 고쳤으면 좋겠다고 덧붙여 말하기까지 하였었는데 업주들은 휘둥그런 눈으로 나의 아래우를 훓어보고는 별 싱거운 사람 다 있다는 식으로 코방귀를 뀌면서 글이야 어떻게 되였든 장사가 잘되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는 휭하니 바람처럼 자리를 뜨는것이였다. 가장 대표적인 례로 소학교 유치원생이라도 알수 있는 “맛좋은 채소, 비빔밥”을 “맞좋은 채소, 비빔밤”으로 “술집”을 “슬집”으로 써서 버젓하게 걸어놓았으니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 아닐수 없다. 그외 한자를 조선어로 번역한것도 역시 틀린것이 적지 않았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우리 글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배우기 쉽고 아름다운 글이다. 더우기 우리 말과 우리 글은 하루가 다르게 인기도가 높아져 국내의 많은 대학에서 전문학부를 설치하고 다투어 배우는 열조가 일어나고있는것은 자타가 다 아는 일이다. 헌데 이런 우리의 글을 제마음대로 엮어서 걸어놓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어도 한참은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틀린 글을 올린 사람은 몰라서 그랬다치더라도 그런 글이 바뀌여지지 않고 그대로 버젓이 걸려있는것이 문제다. 누구도 거기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참여하지 않는것이 더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한두사람의 힘으로는 될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모두가 한결같이 입을 모으고있는데 실제행동으로 한결같이 지키는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가. 아직까지 이런 상관부서가 없는것을 감안한다면 그래도 우리의 민족간부들이 먼저 나서서 유관부문과 교섭하여 부끄럽게 씌여져 버젓하게 걸려있는 간판언어의 규범화를 촉구하는것이 바람직할것 같다.  업주가 자신의 영업장소에 걸려있는 간판이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면 언어는 한민족의 생명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의 글을 그렇게 엉터리없이 만들어 놓는다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나 우리의 글을 아는 타민족에게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자신의 얼굴을 다듬는데는 리해가 가지만 자신의 생명을 아낄줄 모른다면 리해가 가지 않을것이며 생명인 언어를 금싸락같이 아껴야 민족의 자부심도 높아갈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13    마음을 열면 고마움이 보인다 댓글:  조회:2069  추천:0  2013-05-20
지난주일 어쩌다 휴식일이 차례졌는지라 낚시질을 떠나게 되였는데 정작 떠나려고 보니 오토바이에 기름이 부족하여 결국 먼저 주유소로 향하게 되였다. 주유소에서 바게쯔에 기름을 받아 오토바이에 넣게 되였는데 오토바이의 기름통에는 기름이 거의 차가고있었지만 바게쯔에는 기름이 퍼그나 남게 되여 공연히 기분이 잡치였다. 그때 나이 지숙한 분이 걸어와서 내가 기름넣는걸 바라보고있었다. 흘낏 바라보니 그도 기름을 넣으려고 온 모양인데 저쪽에도 바게쯔가 있건만 하필이면 내가 쓰는 바게쯔를 기다리고있는듯 하였다. 기름이 남게 되여 가뜩이나 기분이 잡쳐있는데 그 남은 기름을 탐내서 온듯 싶어 볼부은 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저쪽에 바게쯔가 있잖아요. 하필이면 이 바게쯔를 기다릴거 있나요?” “괜찮습니다. 천천히 넣으세요” 그 사람은 나의 퉁명스런 말에는 상관없이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상냥스럽게 말하면서 더 다가오는것이였다. 그는 나의 오토바이기름통을 들여다보더니 “뒤바퀴가 들려있어 그렇네요”하면서 오토바이의 뒤를 눌러주는것이였다. 그렇게 되자 바게쯔안에 남아있던 기름을 기름통에 깡그리 쏟아넣을수 있었다.  “자, 어서 덮개를 닫아요. 흘러나오지 않게 말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기름통덮개를 다 닫은후에야 누르고있던 오토바이뒤를 천천히 내려놓는것이였다.  나는 바게쯔를 들고 돌아서는 그를 넋놓고 바라보다가 어망결에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하였는데 그 순간 얼굴은 화가마같이 화끈거림을 어쩔수 없었으며 그렇듯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보기는 처음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그날 낚시질은 참으로 재미가 좋았다. 한창 신나게 낚시에 열을 올리고있는데 핸드폰이 울릴줄이야. 낚시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낚시에 열을 올릴 때 핸드폰이 울리는것도 귀찮은 일이다. 그런대로 핸드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누르니 참으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일줄이야. 대방은 남방말투였는데 아무개의 가장이 아니냐, 자기는 아무개의 반주임인데 아무개가 오늘 점심에 식당에 식사하러 갔다가 불시로 쇼크하여 넘어가서 병원에 호송한 결과 급성으로 위에 구멍이 났는데 지금 대수술을 해야 하므로 돈이 수요된다는것이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이 금방 대학공부를 시작하였는데 대수술이라니? 나는 금시 눈앞이 새카매났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좀후에 집에 도착할테니 다시 전화하자고 약속하고 털썩 그자리에 주저앉으면서 보니 옆에서 낚시질을 하던 20대의 젊은이가  나의 통화를 듣고 어느사이 나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오래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그 젊은이를 넋없이 쳐다보았다. “여보세요. 마음을 갈아앉히십시오. 그말을 그대로 곧이듣지 말구 우선 아들한테 전화를 해보십시오”  젊은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충고를 주면서 지금 너무도 많은 사기군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기를 치니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여 말하는것이였다. 그 젊은이의 말을 듣고나니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급급히 핸드폰을 꺼내 아들에게 전화를 넣게 되였다. 결국 아들은 무탈하게 있었으며 걸려온 전화는 사기전화임이 드러나게 되였다. 나는 그 젊은이가 너무도 고마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기에 이르렀었다. 그후에도 사기전화는 련속 걸려오게 되자 그곳에서 낚시하던 낚시군들 모두가 나에게로 다가와서 여차여차하라고 일러주기도 하였는데 그들 모두가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전같으면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속으로 원망하겠지만 그날은 나에게 충고와 가르침을 주는 그들이 진정으로 고마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니만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있다. 헌데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가 말그대로 쉽지만은 않다. 그 주요한 원인은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아가기때문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항상 드바쁜 일상에 쫓기여 살다보면 자기위주가 되고 또 자기위주가 되다보니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살아가기때문에 마음을 쉽게 열지 않게 된다. 마음을 연다면 함께 어울리기도 훨씬 쉬워질것이고 또 매일, 매 순간마다 고마움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내가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을 때도 조금 남는 기름이 탐나서 다가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좀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혹은 “절 도와줄수 있나요”하는 느긋함을 보여주었다면 그분과의 어울림도 훨씬 윤활해질수 있을것이고 고마움도 훨씬 더 마음에 닿을수 있었을것이다. 사기전화를 받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더니 낚시군들 모두가 다가와서 중구난방으로 하는 말도 너무 고맙게 느껴졌던것이다. 검은 안경을 걸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어둡겠지만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울것이며 고마움이 다가오게 될것이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태양아래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듯이 이 세상 곳곳도 밝지만은 않은것이다. 그렇다하여 항상 검은 안경을 걸고 본다면 마음을 열수가 없을것이지만 맑은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아름다움과 고마음을 마음으로 느끼게 될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여는것이 아닐가. 이제부터라도 항상 마음을 열고 고마움을 느낄뿐만아니라 고마움을 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리치를 깨닫고보니 마음은 즐거움이 한가득 괴여올랐다.
12    고향의 영웅 댓글:  조회:2103  추천:0  2013-05-15
“영웅”이란 단어를 사전에서는 조국이나 사회를 위하여 뛰여난 공을 세운 사람을 일컬어 말한다고 하였은즉 영웅이란 단어는 여러분야에 두루 쓰인다고 할수 있다. 나는 오늘 그 “영웅”이란 단어를 지금 고향을 말없이 굳건히 지켜가고 또 건설해가는이들에게 주고싶어 이 글을 쓴다. 얼마전 흑룡강신문에 녕안시 와룡향 근로촌의 리광진당지부서기가 고향건설에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1만원을 기부하면서 촌민들을 이끌고있다는 기사가 실리였다. 지난해 녕안시 민족종교사무국의 주최로 열린 녕안시조선민족간부사업좌담회때 취재로 참가한적이 있다. 그날 회의에서 리광진당지부서기는 벼합작사경험을 소개하였었는데 촌의 흩어진 토지를 거두어 들이고 통일적으로 관리하면서 규모화, 기계화, 유기농농사를 해나가려고 모지름을 쓰는 그 마음이 회의참가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었다. 그날 회의에서 리광진당지부서기는 고향건설목표와 계획을 내놓으면서 이제 꼭 강서촌을 따라배울뿐만아니라 따라잡겠다고 다지기까지 하여 회의참석자들의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금년 청명에 고향에 있는 아버지산소에 다녀오면서 고향에 어머니와 녀동생앞으로 있는 땅을 양도하게 되였는데 친구형님의 일에 감동을 먹기까지 하였다. 고향으로 떠나기 며칠전에 전화로 사연을 이야기해놓았더니 고향에 도착하여 십분도 걸리지 않아 친구형의 주선으로 땅을 양도해줄수 있었다. 친구의 형은 촌의 모든 일을 떠맡고 매일과 같이 자기의 오토바이를 타고 향정부로 오르내리면서 촌민들의 일과 촌의 일을 봐주고있다고 한다. 고향이라야 모두 떠나고 이제 정말 오십여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친구의 형마저 관계치않거나 떠나가버린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기조차 싫어진다. 그런데 친구의 형 이 하는 한마디말에 나는 사뭇 존경어린 마음으로 그를 다시 쳐다보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든지 한국에 갈수 있지만 다 포기하고 말았어. 이제 나까지 떠나면 이 마을은 누가 관계하겠나? 마지막까지, 모두가 돌아올때까지 지켜보련다” 그 어떤 미사려구도 없는 소박하고도 진실하며 꾸밈없는 말이면서도 또 내 고향을 지키려는 드팀없는 신념도 내비쳐지는 말이다.  고향마을이 비여가는 현실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하여 고향마을을 어떻게 지켜가야 할지에 대해서 리론적으로는 많이들 풀이하고있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잘 되여가고있지 않다. 가장 좋기는 귀향객이나 귀농객이 많았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그것도 잘 되지 않고있는 현실이고보면 고향을 건설하고 고향을 드팀없이 지켜간다는 자체가 말그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리광진당지부서기나 나의 친구형같은 분들은 모든 곤난을 박차면서 묵묵히 해나가고있다. 그들이 바라는것은 무엇일가? 오직 하나, 내 고향을 지키고 내 고향을 건설하자는것이며 이제 멀지 않아 꼭 귀향객과 귀농객들이 늘어 그들을 맞이하려는것뿐일것이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들이 간혹 고향을 들려볼수 있지 않는가! 나는 이들에게 영웅칭호를 수여하고 영웅훈장을 드리고싶다. 왜냐하면 이들이 바로 고향을 위하여 공을 세우고있는 사람들이며 영웅이란 이름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이기때문이다. 이런 영웅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고향의 미래 또한 더 밝을것임은 의심치 않아도 될것이다.
11    따뜻한 품 댓글:  조회:2102  추천:0  2013-05-10
언젠가 미술잡지에서 본 한폭의 그림인데 너무도 인상적이여서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대로 생생히 떠오른다.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품고있는데 어미품에 안긴 병아리들이 어미닭의 날개털사이로 노란 머리를 빠끔히 내밀고있는 그림인데 따뜻한 엄마의 품에 안긴 병아리들이 너무 좋아 여기저기를 휘둘러보면서 마치도 “삐약, 삐약”거리며 흥얼대고있는것만 같았다. 간혹 이 그림을 떠올릴 때면 지난해 여름에 있었던 일들이 그대로 생생히 살아나는건 나로서도 어쩔수가 없다. 지난해 여름 한국으로 연수를 가게 되였는데 외국으로 떠나고 또 체류할 시간도 꽤 되기에 바퀴달린 큼직한 트렁크를 끌고 아빠트문을 나서게 되였다. 그때 마침 한 아빠트에서 사는 할머니가 예닐곱살되는 녀자애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고있었다. 한 아빠트에서 살다보니 할머니도 잘 알고 할머니가 손잡고있는 녀자애도 잘 알고있었다. 녀자애는 이제 유치원에 다니고있는데 엄마아빠 모두가 한국으로 가다보니 부모들이 전에 한마을에서 살았던 이 할머니를 믿고 전탁으로 맡겼던것이다. 엄마의 품속에서 응석과 재롱을 부리면서 자라나야 할 어린나이에 생면부지의 집에 더부살이격으로 얹혀 살면서 생면부지의 할머니가 유치원에 데려가고 데려오고있었는데 그날도 유치원으로 데려가려는 중이였다. “어데로 가시나요?” 한 아빠트에서 살다보니 할머니와는 아주 익숙한 사이였는데 바퀴달린 큰 트렁크를 끌고 나서는 나를 보고 조금은 이상한듯 물어왔다. “아, 한국에 연수로 다녀오려구요” 나는 대답하면서 머루알같이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길로 나를 빠끔히 쳐다보는 녀자애가 귀여워 한발 다가서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군요. 그럼 잘 다녀와요” 할머니는 아빠트를 나와서 갈림길에서 갈라지면서 인사하고는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녀자애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고맙습니다. 그사이 건강하세요!” 할머니의 고마운 인사에 나도 답례하였다. 그러면서 트렁크를 끌고 둬발작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니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있는 녀자애가 그때까지도 머리는 나쪽으로 돌리고 그 머루알같이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있었는데 그 눈길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나로서도 무어라 형언할수 없었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니 나의 옆자리에는 할머니와 손주로 되여보이는 예닐곱살 됨직한 남자애가 이미 올라와 앉아있었는데 마침 같은 민족이여서 참으로 반가웠다. 어린 남자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다가는 다시 기창으로 밖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였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였는데 남자애는 할머니의 손주가 아닌 한마을의 애였다. 엄마아빠가 다 한국으로 나가고 이모할머니네 집에서 생활하다가 려행으로 엄마아빠보러 가게 되였는데 마침 할머니가 한국으로 가게 되여 이렇게 맡게 되였다는것이다. 이제 인천에 도착하면 엄마아빠가 마중나와 있을것이니 거기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면 된다는것이다. 새까만 눈을 깜빡이면서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던 남자아이는 그때뿐 또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움직이면서 “이제 얼마 더 가야 해요?” 하고 물어오기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는 남자애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웬지 그날의 비행기속도가 굉장히 늦지나 않나 의심해보기까지 하였다. 연수중 한국전라북도 전주한옥마을에서 생활체험을 하게 되였는데 한옥마을어귀에서 본 은행나무는 지금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고있다. 백년도 더 되는 은행나무는 어른이 셋이서 팔을 벌려 안을만큼 굵었는데 참으로 가관이였다. 헌데 그보다는 그 굵은 은행나무와 한뼘 간격을 두고 팔뚝만큼 실한 은행나무가 자라고있었는데 당지의 가이드말에 의하면 은행나무가 새끼를 낳아 품에 안고 키우고있다는것이다. 두 나무의 친자감정을 해보니 확실하다는것이다. 생물학적연구나 해석은 그만두고 나무의 바로 밑에서 심지도 않은 나무가 자란다는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수 없으며 더우기 품에 안듯이 그렇게 좁은 간격을 두고있다는것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기에는 너무도 충분하였다. 한옥마을을 떠나기전 나는 다시 그 은행나무를 찾았으며 품에 안겨있는 어린 나무를 쓰다듬으면서 엄마은행나무를 따라서 무탈하게 백년이고 천년이고 살면서 또 새끼은행나무를 낳아 키우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언젠가 책에서 본 이야기이다. 부주의로 닭들이 사는 헛간에 불이 나게 되였는데 닭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였다. 이때 수탉을 비롯한 다른 닭들은 모두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품에 병아리를 품은 암탉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결국 암탉은 까맣게 타죽고 대신 어미닭의 품에 든 노란 병아리들은 그대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미물인 짐승도 엄마품이 그렇듯 따스하고 좋은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품이 엄마품이기에 동양이든 서양이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단어가 어머니인가 본다.
10    재미있는 공부, 신나는 공부 댓글:  조회:1993  추천:1  2013-05-10
일전에 한사무실에 있는 젊은 동료교원이 하는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그자리에 목석처럼 굳어지기까지 하였었다. 이제 겨우 유치원에 다니는 그 동료선생의 아이가 월요일만되면 “왜 월요일은 이렇게 빨리도 찾아옵니까? 월요일이 없고 일요일만 있는 주일은 없답니까?”하고 말한단다. 너무도 천진란만한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참으로 심사숙고해보지 않을수 없다. 생각대로라면 월요일아침이 되면 “왜 월요일아침이 이렇게 늦게 찾아옵니까? 일요일이 없는 주일은 없답니까?”라는 말이 나와야 할텐데 말이다. 아이가 그렇게 말한 내심은 즐겁게 뛰논 일요일이 지나간것이 너무도 아쉽고 다시 학교로 가야 할 일이 아득하게만 느껴지기때문이였다. 집에 있는것이 싫어서 학교로 가고파해야 할 대신에 학교가기 싫어 근심하는 아이가 어쩌면 불쌍하고 가엾기까지 하다. 시 중소학생문체예술절을 맞이하여 학교에서 집체무를 련습하게 되였는데 평시에는 오후 자습시간을 점하다가 마지막 총련습때는 별수없이 수업시간도 점하게 되였다. 생각같아서는 학생들이 학습시간을 떼워서 아주 가슴아파할것 같았으나 그것이 아니였다. 뙤약볕아래에서 살갗이 타지만 그래도 집체무련습이 공부하기보다는 더 재미있다는것이였으며 얼굴에서 싫어하는 빛을 조금도 찾아볼수 없었다. 고중3학년을 맡았을때도 보면 대학입시를 눈앞에 두고있다할지라도 일단 휴식만한다면 학생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웃음꽃이 활짝 피여올랐으며 휴식일이면 교실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는 학생은 정말 말그대로 쌀의 뉘격이였다. 공부가 얼마나 힘겹고 지겨웠으면 학생들이 “고학3년, 행복일생(苦学三年,幸福一生)”이라고까지 써놓고있겠는가! 사실 따져보면 우리의 학생들은 말그대로 교과서와 련습집에 파묻혀서 숨도 바로쉬지 못하고있다면 가장 적절할것이다. 좋든 싫든 아침에 학교로 와서 아침랑독으로부터 시작하여 해넘어갈때까지 줄곧 교과서를 읽고 문제풀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하며 저녁술을 놓기 바쁘게 또다시 학교로 달려와서 밤늦게까지 자습에 참가해야 하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학교와 숙사(집), 화장실사이의 행동반경이 끝날때였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언제 신문한장 제대로 읽어보거나 읽고싶은 책한권 읽을수가 없으며 뉴스도 시청할 사이가 없다. 조선어문과에서 론설문을 쓰게 되면 읽어본 책이 없기에 사실적론거를 들수가 없으며 거기다 장악한 어휘가 없다보니 글이 깡깡 메말라 읽을 맛이 없다. 소학교도 천진란만한 아이들의 특점을 떠나다보니 실제능력을 운운하기 어렵다. 모두가 학생들을 종일 붙잡고있으니 나혼자만 그러지 않을수 없는 현실이고 또 교수조건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떤 일은 해도해도 싫증을 느끼지 못하지만 어떤 일은 왜 해도해도 싫증이 나면서 하기 싫어지는가? 그건 바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였기때문이며 재미가 없기때문에 해도 신날수 없다. 공부는 정신적활동으로서 재미를 느끼는가 느끼지 못하는가가 자못 중요하다. 일단 재미를 느낀다면 신날것이며 신나면 그 효과도 좋을것이다. 재미를 느끼게 하는데는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주객관에 다 달렸겠지만 배워주는 우리의 교육이 우선 아이들에게 배우기 싶어하고 배울수록 즐거워서 신나는 배움이 되게 해야 할것이다. 계속되는 피로전보다는 효률을 높이기에 더 치우치고 정해진 수업후에는 학생의 실제에 따라 장기를 배양하는데 모를 박는다면 발전도 좋고 효과도 좋을것인바 학생들의 개성배양은 물론 심신도 즐거울것이다. 요즘 진행되고있는 과정개혁의 궁극적인 목적도 학생들이 진정 배움의 주인이 되게 하는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리해하기 쉽게 재미나는 공부, 신나는 공부로 만드는것이라고 했으면 좋겠다.
9    배려는 자기를 잊어야 댓글:  조회:1688  추천:0  2013-05-07
지난 7월중순 어학연수기회가 차례지여 며칠동안 강의를 듣게 되였는데 그때따라 삼복의 무더위가 시작되는 때라 곤혹을 겪게 되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것은 강의를 듣는 회의실에 에어콘장치가 잘되여서 강의를 듣는 시간에는 무더위를 피할수 있었다. 매일 아침 점심 시간맞추어 회의실에 들어서면 관리일군이 에어콘을 켜놓고 조절하여놓았기에 서늘한 감을 주어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 에어콘의 조절기가 자주 변하여 돌려질줄이야. 강의를 들으려고 밖에서 금방 회의실에 들어온 사람은 금방 땀을 흘렸으니 에어콘이 작동하고있었지만 큰 감촉이 없는지 들어와서 걸상에 좀 앉았다가는 인차 일어나서 에어콘조절기가 있는데로 가서 다시 자기에게 맞게 조절하는것이였다. 그렇게 좀 지나자 조절한 에어콘은 좀전보다는 더 서늘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좀 일찍 와서 자리잡고있은 미니스카드나 짧은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곧바로 에어콘조절기있는데로 가서 다시 조절하는것이였다. 물론 서늘한 감을 줄이려는것이였다. 이렇게 에어콘의 조절기는 하루에도 몇번씩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변해야 하였는데 조절하는데따라 실내의 온도는 오르내리였으며 그렇게 빈번히 오르내리니 사람들의 에어콘적응력도 떨어지게 되였다.  그런 정경을 말없이 지켜보노라니 어쩐지 저도 모르게 나의 낚시친구가 떠오르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언젠가 함께 낚시를 갔는데 그날따라 고기가 잘 물리여 저녁늦게까지 낚시질을 하게 되였다. 낚시를 해본 사람은 거의 알지만 낚시군들 거개가 담배를 피우며 또 낚시를 하면 담배를 더 피우게 된다. 그날은 늦게까지 낚시질을 하다보니 가져간 담배가 다 떨어지게 되였는데 담배인이 올라와 결국 참을래 참을수 없어 친구한테 어색하게 담배청을 들게 되였다. 그때 친구의 담배곽에는 담배가 한대밖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친구는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그 한대뿐인 담배를 나한테 건네주는것이였다. 그때 친구도 담배생각이 간절했겠는데 말이다. 하긴 담배가 몸에 나쁘지만 인이 박혀 담배생각이 간절할 때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담배를 나에게 건넬수 있은것은 친구가 자기를 잊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앞섰기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회의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강의를 들을 때는 관리일군이 여러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고 또 체감적응력을 고려하여 에어콘을 조절하였을것인데 자기만 생각하고 조절기를 돌리니 실내의 온도는 오르내릴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자기 중심적이였기에 배려라는 말은 하기가 어렵게 되였던것이다. 배려라는 말을 하기 어렵게 되니 조절기는 제멋대로 돌아갈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야 하고 또 베풀면서 덕을 쌓으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종종 말하군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 않고있음도 속임없는 현실이라고 할수 있다. 실은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가면 그렇듯 즐거운데 말이다. 헌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원인의 하나가 바로 자기를 잊지 못하고 본의아닌 본성으로 자기를 내세우기에 배려가 따라가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아주 사소한 작은 일에서일지라도 자기를 잊는다면 남을 먼저 생각할것인즉 그러면 배려나 베품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것인즉 그 순간은 스스로가 느끼지 못한다할지라도 타인은 그대를 우러러볼것임은 의심치 않아도 될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라도 자기를 잊는 습관을 가져보자. 그러면 우리의 생활이 더 활력적일것이고 더 즐거울것이다. 나 역시 이제부터 나를 잊고 우선 남을 떠올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여 나름대로 보다 즐거운 삶을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임을 이실직고하는 바이다.
8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댓글:  조회:2495  추천:1  2013-05-06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남영선 우리 말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다. 뜻인즉 겉모양이 보기 좋으면 그 내용도 충실하다는 말로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겉모양도 보기 좋아야 함을 비겨 한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용이 충실할바에야 겉모양도 보기 좋으면 더 좋지 않을가 하는 말로도 해석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아침운동을 마치고는 아침장마당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장마당 한귀퉁이에서 울려오는 우리 말 사구려 소리에 저도 모르게 발목이 잡혀 끌려가보게 되였다. 가보니 여러가지 김치, 된장, 고추장, 청국장, 김밥 등 우리 민족음식을 벌려놓고 팔고있었는데 순수한 우리 민족이여서 너무도 반갑고 보기가 좋았다. 하여 난 사지도 않으면서 넋을 놓은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게 되였는데 생각보다는 사는 손님이 적어서 저으기 아쉬웠으며 매장을 차린 그들을 대신하여 마음이 아파나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이 매대를 차리고 파는 모습을 보노라니 자연 나로서의 생각이 파고 들었다. 그들은 각종 김치나 장류를 그대로 통에 담아 벌려놓은채로 팔고있었으며 김밥도 그대로 펼쳐놓고있다가 요구하면 팔군하는것이였다. 그러는것이 어쩐지 나의 눈에도  마땅치 않게 안겨왔으며 께름직해났다. 거기다 그들이 입은 옷 역시 평시 입는 옷이여서 사람들의 눈길도 끌지 못하고있을뿐만아니라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되여 인상이 좋지 못하였다. 김치류의 각종 짠지는 물론 장류와 김밥에 이르기까지 알뜰하게 포장하여 판다면 어떨가? 물론 접시에 시식으로 갖가지를 조금씩 담아놓고 손님들로 하여금 맛보게 한다음 포장한것을 판다면 보기도 좋고 위생적이기도 하지 않을가? 옷도 그렇다. 평시 옷보다는 흰가운을 입고 머리에도 흰 위생모를 쓴다음 이쁜 앞치마를 두른다면 볼바에도 정갈해보여 손님들의 눈길을 끌것은 물론 정신상으로도 시원한 느낌을 줄것이며 위생적으로도 합격일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깨끗한 민족이 아닌가! 그렇게 깨끗한 차림으로 우리 민족 음식을 깔끔하게 포장하여 판다면 아마도 잘 팔릴것은 물론 수입도 배로 늘어날것이리라 생각해본다. 그러노라니 한국 TV에서 자주 보아오던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한국의 농산물들도 별다를게 없지만 그들은 어느것 하나 그대로 들고나가서 무더기로 무져놓고 파는것이 아니라 알뜰하게 정선한다음 깔끔하게 포장하여 시장에 내놓는데 얼핏보기만해도 눈길이 가고 저도 모르게 손이 가서 덥석 잡게 될것 같았다. 우리가 늘 접하는 부추 한단, 파 한단도 모두 정성들여 알뜰하게 포장하는 그들이 생각하는것은 무엇일가? 바로 보기 좋아야 팔기도 좋을것이며 사는 사람도 사기가 좋아야 먹기도 좋을것이라는것이 아니겠는가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짠지나 장류를 파는 경우는 더 말할것 없다. 그대로 다 펼쳐놓고 판다면 위생적으로도 너무 불결하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장거리여서 병균이 류행되지 않는다고 결단할수 없는만큼 펼쳐놓기보다는 포장한다면 보기가 좋은건 더 말할것도 없겠지만 그것보다는 위생적이여서 더 좋을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는 먹기위하여 먹는것보다는 따져서 먹는 쪽으로 나가고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음식점의 경우도 음식점의 음식이 맛좋아야 하지만 그 분위기도 따라가야 손님들을 끌수 있음을 이제 우리는 너무 쉽게 알고있다. 음식점 복무원들의 옷에 때가 덕지덕지 가득하고 음식그릇이 이가 떨어지고 음식점의 벽에 파리똥이 가득 게발려있으며 파리가 윙윙 기승을 부린다면 그집 음식이 아무리 맛좋다할지라도 손님들은 기절초풍하여 돌아설것임은 가히 상상해볼수 있다. 반대로 음식점 복무원들이 깨끗하게 옷을 차려입고 식기도 하얗게 깨끗하며 인테리어도 깔끔하게 잘해놓은데다 음식맛도 좋다면 아마도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라도 그집 음식을 먹으려 할것이다. 그러니 내용도 좋아야겠지만 겉모양도 좋아야 할것이다. 내용물이 아무리 좋다하여도 겉모양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비위에 거슬린다면 좋은 내용물이 제 빛갈을 발산하지 못하게 될것이다. 이러한것이 장사의 노하우란것을 모르는 이가 없지 않겠지만 아무리 작은 장사에일지라도 모두 적용되지 않을가 싶어서 한마디 해보는것인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으며 먹기 좋은 떡일바에야 보기도 좋으면 먹는 기분도 따라서 좋아질것이 아니겠는가!
7    마음이 곬을 이루면 하는 일이 신난다 댓글:  조회:2220  추천:0  2013-04-22
마음이 곬을 이루면 하는 일이 신난다 남영선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참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다른건 그만두고라도 전에 현시마다 있던 조선족가무단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에 따라 조선족문화관들의  사업에 많은 애로점들을 가져다준것도 사실이다. 조선족들의 출국붐과 더불어 남방으로의 대거진출로 피페해져가는 농촌은 물론 도시에도 조선족전통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게 되였는데 이런 현상들을 어느 한두사람의 힘으로는 돌려세우기 힘들었지만 다행히 우리의 조선족문화관들에서 불리한 여건들을 극복하면서 사력을 다해가고있어 참으로 보기 좋았을뿐만아니라 너무나 감동적이였다.  녕안시문화예술센터에 자리한 녕안시조선족문화관을 오전에 찾아가면 흥겨운 가락에 땀벌창이 되여 춤연습하는 장면을 볼수 있는데 이는 바로 녕안시조선족예술단성원들의 하루 일과라고 할수 있다. 여기서 특기할만한것은 이 예술단이 민간단체라는것이다. 애초에 예술단을 발족할 때는 2명의 악단에 몇명밖에 되지 않는 무용수들이였지만 지금은 14명의 악단에 26명의 무용수들로 구성되였으며 악단의 평균년령은 62세이고 무용수들의 평균년령은 60세이다. 지금 무슨 일이든 하자면 경비난으로 몸부림쳐야 함은 누구나 다아는 일이다. 이 예술단 역시 악기와 음향설비 그리고 무용복에 이르기까지 준비하려니 만만치 않았지만 예술단성원들이 한결같이 하나의 마음이 되여 사재를 털어 지금은 비교적 구전하게 갖추게 되였으며 매일 반나절씩 아무런 보수도 요구없이 연습을 하고있다. 얼핏 보면 세상을 놀래우는 큰일은 아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자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마음이 통일되니 그것이 곧 행동으로 옮겨지고 서로가 손맞추어 일하니 자못 신나게 된것이다. 이러한 단체는 녕안뿐만 아닌 곳곳에 있는데 노을예술단도 좋고 문학가협회도 좋고 모두가 민간단체로서 자체로 묶어졌으며 한사람이 아닌 회원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여 뜻을 모으고 지혜를 모아 하나가 되였으니 그 어떤 난관도 모두 뚫고 나갈수 있으며 모두가 사재를 선뜻이 털어 어려운 여건들을 극복해나가고있으며 불평이란 단어는 잊고 오직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빛내는것밖에 모르고있다. 그러니 비록 민간단체지만 문화예술사업이 차질없이 적극적으로 진행될뿐만아니라 우리의 문화전통도 그 맥을 잃지 않고 전해내려가는데 크게 한몫하고있다. 이런 민간단체들이 용솟음치고 또 민족문화예술발전에 한몫할수 있게 된것은 한 사람이 아닌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마음이 하나가 되고 또 그 하나가 된 마음이 힘이 되여 곧 행동에 옮겨지게 되였으며 신나게 되였던것이다.  한줄기 작은 시내물이 제아무리 돌돌 소리내며 구을러 흘러도 망망대해로 가는 도중에 말라버리고 말것이지만 여러개의 시내물이 모여 하나의 강을 이룬다면 사품치면서 흘러 종당에는 망망대해로 흘러들어갈것이다. 같은 도리로 우리의 민족문화사업을 위하여 한두사람이 발바닥이 닳게 뛰여다니고 비지땀을 흘린다면 노력과 성적의 비례치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지만 하나의 조직을 이루어 모두가 한마음이 된다면 일의 진척도 빠를것이고 그 효과는 더 말치 않아도 알수 있을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어떻게 뜻을 모아 하나의 조직을 이루며 또 그 조직이 한사람같이 단합되여 마음이 곬을 이루게 하겠는가 하는것인데 취미와 애호도 좋지만 사명감도 빼놓을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일단은 취미와 애호로 시작할수 있지만 사명감이란것을 자각하고 의식한다면 마음은 쉽게 하나로 될수 있을것인바 그러면 모든 일의 진척이 빠를수 있을뿐만아니라 모든 곤난도 무난히 넘길수 있을것이다. 문화대건설을 호소하고있는 오늘이지만 아직도 많은 면에서 여건이 여의롭지 못한바 뜻을 모아 우리의 문화예술사업을 발전시키고 민족문화전통을 이어간다는것은 자못 중요한 일이 아닐수 없다. 마음이 곬을 이룬다면 하는 일이 신날것인바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어려운 여건들을 이겨나가면서 우리의 민족전통문화를 그대로 계승발전시키는데 한몫한다면 후날 되돌아보아도 자랑찰것이다.
6    깔개가 없으면 습기가 올라온다 댓글:  조회:3517  추천:3  2013-04-18
깔개가 없으면 습기가 올라온다 남영선 큰범위는 제쳐두고라도 지방의 “장”자를 가진 령도간부들의 순위를 놓고보면 농촌마을의 지서, 촌장이 제일 말등석임은 틀림이 없다. 비록 제일 말등석을 차지한 지서, 촌장이지만 전에는 마을과 그 마을에 사는 촌민들을 위하여 불철주야로 뛰여다니면서 로고를 아끼지 않고 많은 일들을 하였는데 그러다보니 많은 지서, 촌장들이 몸에 치유할수 없는 병을 갖고도 불평불만이 없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혀를 내두르지 않을수 없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대가를 따지지 않았으며 그 직을 맡았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것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일해왔던것이다. 공신이란 바로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면 어떨가. 이제 사회가 발전하면서 많은것이 달라져가기 시작하였는바 제일 말등석에 쪽걸상을 가지고 앉은 한 마을의 지서, 촌장의 로고를 알아주기 시작하여 몇년전부터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일년동안의 수고비를 년말이면 괜찮게 지불해주어 그런대로 위안이 되고 또 일하는 지부서기나 촌장도 그런대로 자신들의 로고를 알아주니 힘을 갖게 된다고 할수 있다. 또한 현재 비여가는 마을을 지켜가면서 새 농촌건설의 선두에서 땀흘리며 달리고있는 이가 바로 지서, 촌장들이니 그들의 로고를 알아주는것은 천만 무방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해외나들이와 더불어 연해도시로의 진출로 우리의 조선족사회가 흔들리고있으며 우리의 조선족농촌마을들이 비여가고있는 현실쯤을 지금 조선족사회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비여가는 마을을 지키면서 마을을 알뜰하게 꾸려나가는것은 자못 중요한 일이 아닐수 없으며 이런 일들을 하고있는 이들의 가슴에 마땅히 꽃다발을 달아주어야 한다. 여기서 물론 말등석에 쪽걸상을 놓고 앉은 우리의 지서, 촌장들이 선두로 나서고 자신을 바쳐가고있어 다소라도 위안이 되여가고있으며 또한 앞날이 기대되기도 한다. 헌데 살펴보면 말등석에 쪽걸상을 놓고 힘다하는 지서, 촌장들의 뒤에 쪽걸상도 없이 쪼크리고 앉았지만 묵묵하나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촌로년협회회장들이다. 이제 어느 마을이나 찾아보면 젊은이는 지체자나 장애자를 제외하고는 근본 찾아볼수 없으며 중년이나 장년들도 쌀에 뉘격이며 오직 늙은이들뿐이다. 전에는 마을마다 청년조직이 있어 마을에 생기가 넘친것은 두말할것없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젊음이들이 힘차게 밀고나갈수 있어 참으로 든든하였다. 허나 이제 늙은이들뿐인 마을에서 그런대로 마을을 지키고 또 마을을 꾸리면서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는 조직이 곧 로인협회인데 그 조직을 맡아 선두에 서서 모든 일들을 밀고 나가는 사람이 바로 로인협회회장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서, 촌장까지는 말등석의 위치에 놓고 쪽걸상이라도 주면서 로고를 알아주지만 로인협회회장만은 위치도 없고 로고도 말로만 진행되니 어딘가 서운한 느낌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 마을에서 평생을 살면서 잔뼈를 굳히고 갖은 풍상고초를 겪어온 분들이라 칭찬이나 로고를 따지는 일없이 오직 마을을 위한다는 그 한곬으로 마음을 쏟고있으니 참으로 감격한 일이 아닐수 없지만 경제사회이니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들의 로고를 알아준다면 어떨가? 그러면 그들도 그것이 자각이 되고 동력이 되여 더 열의를 쏟을것이며 비여가는 우리 마을들을 더 잘 보살필수 있을것이다. 자고로 한 사회나 한 단체를 이끌자면 사람마다의 위치가 달라야 함은 의심할바 없는 일이며 또 그 위치에 의하여 순위가 결정되는것이다. 푹신한 의자로부터 쪽걸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앉을수 있다는것은 보기 좋으나 깔개도 없이 앉은 사람은 보기 좋을수가 없다. 물론 순위가 없으니 걸상은 바라지 않지만 깔개쯤이라도 주어 습기가 올라오지 않게 해주면 좋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깔개가 없이 앉으니 습기가 올라오고 그 습기가 오래되면 앉을수 없을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년세가 있어 가지고도 한마음으로 마을의 대소사를 위하여 헌신하는 로인협회도 돌봐야겠지만 그 선두에 서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일정한 대가가 차례진다면 힘이 되고 열이 될것이다. 마치 습기가 올라오지 않는 깔개에 앉은듯이 말이다.  
5    갈고 닦으면 쓸데가 있다 댓글:  조회:2217  추천:0  2013-04-15
갈고 닦으면 쓸데가 있다 남영선 전에 공부할 때 우리를 맡았던 지선생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귀전에 새롭다. 그때 선생님은 늘 “글을 배우고 재간을 닦아두면 언젠가는 꼭 사회가 알아줄것이며 쓸데가 있을것입니다” 아주 알아듣기 쉽지만 의미심장한 이 말을 그때는 미처 깊이 깨닫지 못하였으며 더우기 피부로는 느껴보지 못하였다. 헌데 시간이 흘러 지천명의 나이에 이를때에야 피부로 실감할줄이야. 금년 여름 한국에 연수갔던차 한국생활을 피부로 체험하고싶은 생각으로 일하게 되였는데 내 힘에 알맞는 일이 주방설거지일것 같아 주방설거지일을 하게 되였다. 그날 내가 일하러 간곳은 용산역근처에 있는 드레곤 힐스파 일품면옥집에서 운영하는 치킨집이였다. 드레곤 힐스파는 1층부터 5층까지 모두 목용탕과 찜질방, 야외수영장, 놀이방으로 구성되였는데 일품면옥은 3층에 자리하고있었으며 치킨집은 5층에 자리하고있었다. 일품면옥에서는 한식을 위주로 한다면 일명 하늘정원이라고 이름한 치킨집에서는 닭고기튀김과 돼지고기구이인 바비큐를 하였었다. 하늘정원이라 이름한 5층의 치킨집은 밖에 나무를 심고 정자를 만들어놓아서 앉아 휴식하기에는 안성맞춤하였다. 그러니 드레곤 힐스파를 찾은 손님들은 목욕하거나 수영하고나서는 5층의 하늘정원으로 올라와서 휴식하면서 치킨이나 바비큐를 시켜 맥주를 마시면서 휴식의 한때를 보내군 하였다. 아직 손님이 들이닥치기전이라 주방설거지로 간 내가 좀 한가하게 보내게 되자 실장님은 나에게 칼로 바비큐로 나갈 돼지고기를 손질하는 방법을 배워주면서 그렇게 하라고 하는것이였다. 실장님이 하는것을 눈여겨보고 그대로 따라 하게 되였는데 칼이 말그대로 도끼등같아서 돼지살코기도 잘 베여지지 않았다.  “실장님, 칼이 너무 무디네요. 숫돌이 없나요” 무딘 칼을 들고 내가 실장님을 보면서 물었다. “왜요? 아저씨 칼갈줄 아나요?”실장님은 이외라는듯 나를 뚫어지라 바라보면서 조금은 투박스럽게 물어보는것이였다. “한번 갈아보지요” 내가 자신있게 말하자 사장님은 한쪽켠에서 숫돌을 찾아 나의 앞에 내밀면서 역시 짧지만 굵게 말하였다. “자요. 갈줄알면 한번 갈아봐요” 실은 쟁기를 가는 일은 나로놓고 말하면 자신있는 일이였다. 전에 농촌에 있을 때 낫, 칼, 가위, 도끼는 물론 대패, 톱까지 나절로 갈아서 썼으니 칼을 가는것쯤은 말그대로 식은죽먹기였다. 나는 실장님이 내준 숫돌을 받아들고 칼을 갈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실장님은 여기저기서 다섯자루나 되는 칼을 찾아서는 나의 앞에 갖다놓는것이였다. 나는 아무말없이 한자루한자루 정성들여 갈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한식경이 지나 다섯자루의 칼을 몽땅 가니 실장님이 다가와 그중 한자루를 쥐고 칼날을 손톱에 대여보고는 다시 돼지고기를 손질해보는것이였다. “아저씨, 칼가는 재간있네요” 실장님은 얼굴에 만족한 웃음을 띄우고 나를 바라보면서 너무도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는것이였다. “다른건 몰라도 쟁기를 가는데는 자신이 있습니다” 원체 쟁기를 가는 일은 손에 익게 해본 일이라 나는 실장님의 칭찬에 한수 더 올려붙이기까지 하였다. 그러고나니 자연 그제날 지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귀가에 쟁쟁히 울리는것 같았다. 그날 하루는 비록 힘들었지만 기분은 종잡을수 없게 흥분되여 있었다. 쟁기를 가는 재간은 뭐 자랑할만한 재간은 아니지만 농촌에 있을 때 배워둔 재간을 써먹게 되였는데 그것도 멀리 한국에 와서 써먹게 될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였다.  우리는 글을 배우거나 재간을 익힐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것이 그것이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 수요하는것이며 또 능히 써먹을수 있을가 하는것이다. 물론 그런것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지만 배워둔 학문이나 익혀둔 재간을 잠시는 써먹지 못한다해도 속을 썩이거나 애를 끓이지 말아야 한다. 또 속을 썩이거나 애를 끓인다해서 곧 써먹게 되는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그 배워둔 학문이나 익혀둔 재간은 써먹게 될것이라는 굳은 신심을 가지고 더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둔다면 말그대로 갈고 닦아둔다면 어느날인가 정말 크게 쓰일데가 나타날것임은 의심치 않아도 될것이다.   쟁기를 날이 서슬푸르게 갈았는데 그 쟁기를 쓸 일이 없어 한켠에 고이 보관해둔다해서 그 서슬푸르게 간것이 무디여지는것은 아닐것이다. 비록 겉보기에는 녹이 쓸어 보면 눈에 차지 않겠지만 그 쟁기를 쓸 일이 있어 쓰게 된다면 처음은 녹때문에 좀은 지장이 되겠지만 금방 그 서슬푸름을 자랑하게 될것이며 그 쟁기로서 할 일을 시원스럽게 마칠수 있게 할것이다. 학문과 재간은 갈고 닦는다면 언젠가는 쓸데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가져보았다. 2012년11월7일 립동의 날에
4    고생은 생존의 밑거름으로 된다 댓글:  조회:1698  추천:0  2013-04-07
고생은 생존의 밑거름으로 된다 남영선 사회가 일사천리로 발전하니 갈수록 살기가 편해져서 좋지만 대신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가 전보다 훨씬 피곤해지고있는건 사실이다. 그렇지않으면 이 사회에서 자신의 립지를 찾고 살아갈수 없기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사실 전에 큰가마밥을 먹던 평균분배시기에는 늘쩡거려도 살수 있었기에 피곤하게 사는것이 무엇인지 감지하지 못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허나 시장경제이고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오늘은 늘쩡거리다가는 말그대로 밥도 먹기 힘들게 된다. 지난 여름 한국의 일식집에서 며칠동안 일하게 되였었는데 그때의 만났던 사람들과 일하던 전경은 지금도 눈앞에 그대로 삼삼히 떠오르면서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내가 일한 일식집은 한국에서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는 “보따쥬”라는 첫일식집이였는데 주방장과 부장님이 30대이고 그외 주방보조로부터 홀서빙에 이르기까지 모두 20대와 10대들이였다. 첫날 일식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너무나 젊어 나의 자식벌되는 그들을 보고 좀은 어리둥절했으나 영문을 알고는 항상 그들을 주시해보게 되였다. 20대초반과 곧 20대에 진입하게 되는 그들은 대학생과 고등학교 학생들이였는데 방학간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는 중이였던것이다. 오전 10시부터 저녁10시까지 일하는 그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그저 시키는대로 곰상곰상 일하였으며 정한 식사시간도 없이 늘 손님이 많아 주방에 들어가 잠간 서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는 또 일에 열중하는데 일하는 모습과 그들의 나이를 도무지 련계시켜 생각해볼수가 없었다. 그렇듯 피곤하게 일하면서도 항상 웃음띈 얼굴로 그 나이에 어울리게 희희락락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방학간 아르바이트로 새학기학비와 생활비에 보탬도 주고 또 사회생활도 체험하련다는 그들의 말을 듣고 나는 우리의 학생들을 머리에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의 초중학생이나 고등학교학생들 그리고 대학생들을 보면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학비나 생활비를 보태는 학생이 너무나 적어 정말 말그대로 쌀에 뉘격이라고 할수 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작은 현성 시내이지만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몇원씩하는 삼륜차나 택시를 리용하여 집으로 가거나 학교로 오는 일은 아주 정상이 아닌 정상적인 일로 되였으며 업간휴식시간에 간이상점으로 가서 먹을것을 몇십원어치씩 사서 들고 다니는것도 역시 보기쉬운 일로 되고있을뿐만아니라 산 물건이 입에 맞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예도 없이 쓰레기통에 집어넣는것 역시 보기쉬운 풍경으로 되고있다. 학교에 매일 광천수를 운반해주나 그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병에 몇원씩하는 물이나 음료를 사서 마셔야 성차한다. 학교식당이나 기숙사에서 오히려 가정에서 먹을때보다도 더 잘해먹이건만 하루 소비가 20원에서 50원인 학생이 태반이니 정말 돈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건 생각없이 소비하는데는 달인이 되여간다고 해야 적절할것 같다. 집과 가까운 대학에 간 학생들을 보면 우리 나라에서 황금휴가기라고  일컫는 “5,1”절과 “10,1”국경절에 며칠간 생활체험겸 돈을 벌 생각같은건 아예 하지도 않고 차비를 팔면서 집으로 달려온다. 하다보니 현재 대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보내여 4년간 공부를 시키려면 최저로 12만원씩 들어야 하니 그 돈을 들이대느라고 등이 휘여지는 우리네 부모들이 불쌍하기만 하다.  지금 많은 부모들이 말하고있다. 대학을 나와 사회에 진입하여 일자리를 찾아서도 얼마간은 돈을 보내줘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이 무엇과 련계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유치원부터 대학공부가 끝날때까지 부모가 대주는데만 의거하다보니 자립의식이 너무나 결핍한것으로 인한것이 아닐가. 자기의 두손으로 돈을 벌어보고 또 사회단련도 해보았더라면 돈도 아껴쓸것이고 그 어떤 곤난도 두려움없이 이겨나갈수 있을것이다.  온실안에서 바람한점 맞지 않고 자란 식물은 미끈하여 눈으로 보기에는 좋지만 일단 온실밖을 나서면 처음으로 맞이하는 해빛의 직사광과 바람에 의하여 인츰 시들어버리여 볼품없이 되고 만다. 허나 자연에서 떨어진 씨앗일지라도 바람에 여기저기로 구을러다니다가 흙이 조금만 있는 돌틈에 떨어진다면 인츰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우면서 나름대로 꿋꿋하게 자라는것을 우리는 심심치않게 볼수 있다.  학비와 생활비에 보탬을 주고저 방학시간을 리용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국학생들은 곤난도 이겨나갈수 있었을뿐만아니라 사회도 료해할수 있었으니 참으로 일석이조가 아닐수 없으며 그것은 또한 그들이 앞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좋은 밑거름으로 될것이다. 우리도 이제 더는 우리의 학생들을 어리다고, 귀엽다고 쓰다듬고 끌어안는데만 그치지 말고 곤난을 겪어보게 해야 할것이며 우리의 학생들 역시 돈이 어디에서 오며 어떻게 써야 할지를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고 곤난을 겪는것이 자신을 단련하는 좋은 기회라는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초년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산다”는 말은 곧 젊어서 겪는 곤난은 앞으로의 생존에 밑거름으로 된다는 뜻으로 리해하면 좋을것 같다.
3    한복의 의미 댓글:  조회:1853  추천:0  2013-04-01
한복의 의미 남영선 지난 8월말의 어느날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일본에서 사업하는 제자의 결혼식사회를 보게 되였다. 그날 사회때 새로 맞춘 하늘색 한복을 입고 나섰더니 모두들 한결같이 참 보기좋다고 입을 모았었다.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기분은 날듯이 좋아졌으며 다시한번 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보기까지 하였다. 그러노라니 어쩌면 자신이 진정 백의겨레의 일원이 된 느낌이여서 설레여오는 가슴을 억제할수 없었다. 한복이라면 그저 우리 백의겨레가 입는 전통적인 의상쯤으로 알았지 그 기원이나 멋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하여서는 크게 생각을 가져보지 못하였기에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오른 연기자들이나 대형활동때 남녀가 입은 한복을 볼 때마다 한복을 입으니 참 보기좋구나 하는 생각밖에 해보지 못하였다. 지난 여름방학 한국재외동포재단의 요청으로 한국외국어대학 용인글로벌 캠퍼스에서 두주일간 연수를 받으면서 한복에 대하여 똑똑히 알게 되였으며 그 진정한 의미도 나름대로 가슴으로 느끼였었다. 첫날수업은 시인이고 한국문화연대 대표인 고경희교수님의 “조선어교육의 중요성”이라는 강의였는데 고경희교수님은 고운 한복차림으로 강단에 나서서 참으로 의색적이였으며 보는 느낌이 너무나 푸근하고 정다웠었다. 고경희교수님은 자신은 일년사계절 한복을 입고 나서고있으며 한복만해도 보통의상과 같이 여러벌씩 된다고 하였다. 특히 출국할 때면 꼭 한복을 입고 나서는걸 잊지 않고있으며 그것도 여러벌씩 준비하여 갖고 가서는 자주 갈아입는다는것이다. 이는 자신이 자랑찬 한민족임을 과시하고 또 자랑찬 한민족이 된 자호와 긍지를 가슴뿌듯이 느낀다고 하였다. 그렇듯 화려한 미사려구가 아닌 말이였지만 고교수님의 페부에서 우러러나오는 진솔한 감정이 담긴 말을 듣는 순간 다시한번  님을 우러러 보게 되였으며 그 말이 여운이 되여 오래도록 가슴에서 메아리로 되여와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순간도 귀가에 쟁쟁히 울려오고있다.  연수중 전라북도 전주의 한옥마을을 참관하고 한옥마을에서 하루밤 체류하면서 체험생활을 하게 되였는데 그중 가장 인상깊은 일이라면 한복을 입는 방법과 자세를 배우고 직접 체험한 일이다. 그날 나는 강사님의 부름으로 연수생들앞에 나서서 한복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량반들이 쓰던 갓과 정자관을 쓰고 나서는 행운을 가지기까지 하였었다. 물론 그런 복색차림으로 나선 나는 평소와는 다른 나였기에 연수자일행들의 포복절도를 자아냈지만 난 그 순간이 어쩌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으며 지어 행복하기까지 하였고 또 그런 복색으로 당장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참으로 잊을수 없는 순간이여서 지금도 잊을수 없는 그날의 장면을 찍은 사진을 자주 보군 한다. 한복은 력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구려시기에 기원하였으며 그로부터 오랜 시기를 거치면서 생활의 편리에 따라 개량되였다. 지금의 한복은 생활의 편리에 따라 많이 개량되였지만 전과 같이 가볍고 입기 편리한 특점은 여전히 변함없다. 특히 계절에 따라 색상과 원단이 다를뿐 평민이든 대통령이든 모두 같은 한복을 입는다는것이 한복으로서의 특점이라고 할수도 있다. 한복은 지금까지 우리 백의겨레만의 복장으로서 입으면 반듯하면서도 화사한 느낌을 주고있다. 귀국하기전에 서울 동대문시장을 돌아보게 되였는데 촘촘히 들어앉은 가게마다 각양한 옷을 전시한 광경이 눈길을 끌었으며 더우기 손님을 깍듯이 대하는 태도는 시장을 나오는 내내 즐거운 마음이 되게 하였다. 동대문지하철을 리용하려고 역에 들어서니 한복전문 매점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눈이 부시게 화려한 원단들이 눈길을 끌고 발목을 잡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거기다 온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친절하고도 자상하게 원단과 한복의 종류를 설명하는 사장아저씨의 모습은 너무나 보기 좋았다. 연수에서 한복을 알게 되였고 또 한복에 갓과 정자관을 쓴 잊을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 있는데다 원단 또한 너무도 좋아 결국은 하늘색 한복 한벌을 맞추기에 이르게 되였다.  비록 옛식이 아닌 개량한복이지만 색상이 우아하고 또 가볍고 입기 편하여 새로 맞춘 한복을 입어보는 순간 실로 말그대로 날듯한 기분이였으며 이름할수 없는 심정이였다. 집에 돌아와 한복을 옷장에 정히 걸어놓으면서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복은 우리 민족 고유의 민족복장으로서 한복에는 민족의 넋과 얼이 그대로 슴배여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한복을 모르고 한복을 잊는다면 결국 민족의 뿌리를 모르고 민족의 정신을 잊는다는것과 다름이 없을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족이다. 한복자락을 날리면서 일제의 통치에 맞섰고 한복자락을 날리면서 구국의 길에 나섰으며 한점 후회없이 젊은 청춘을 바쳤었다. 또한 한복자락을 날리면서 남부녀대하여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살길을 찾아 여기 만주로 건너와 삶의 터전을 닦고 이제는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여 자신의 삶을 떳떳이 영위해나가고있다. 지금도 단오명절이나 추석명절 그리고 큰 행사나 모임, 환갑잔치나 결혼잔치때면 남녀로소가 한복을 입고 어울려 즐거움을 나누는데 보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며 타민족의 부러움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한복은 이렇듯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서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으며 또 지금도 함께 해오고있다. 나는 오늘도 옷장에 정히 걸려있는 한복을 보면서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한복을 입는것도 좋지만 우리 민족의 넋과 얼을 잊지 않을것이며 더우기 우리 말과 우리 글을 가르치는 신성한 사업을 하는 나로서는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우리 말과 글은 물론 우리 민족전통문화도 옳바로 전수하여 그들이 계승발전시키게 할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복을 입어도 떳떳할것이며 또 한복을 입은 나를 보고 모두가 보기 좋다고 칭찬한다면 진정 마음으로 부끄럼없이 받아들일수 있을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복을 입는 나로서의 진정한 의미가 될것이다.
2    숨쉬는 솔방울 댓글:  조회:2124  추천:0  2013-03-29
숨쉬는 솔방울 남영선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을 접속하여 사이트에서 솔방울의 효능에 대하여 알아보게 되였는데 솔방울이 치통에도 고혈압에도 고혈지에도 좋으며7, 8월경의 솔방울은 술에도 담글수있고 가을의 솔방울은 천연가습기로도 제격이라는 글을 보게 되였다. 여름철이 지난 초겨울에 접어들다보니 솔방울술을 담글수는 없기에 일단 가습기로 사용해보기로 하고 등산도 할겸 솔방울을 주으러 가기로 작심하였다. 마침 난방이 되는때라 집안이 건조하여 가습기가 필요한데 솔방울이 천연가습기로 으뜸이라니 더는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소나무에 달려있는 솔방울은 색상도 곱고 깨끗하여 좋으련만  너무 높이 달려있어 할수없이 땅에 떨어져 가맣게 된 솔방울을 주어오는수밖에 없었다。땅에 떨어져 활짝 피여있는 솔방울을 주어다가 깨끗이 씻어서 참대바구니에 담은다음 화분에 물을 뿜어주던 분무기로 물을 듬뿍 뿜어주면서도 이것이 과연 가습기작용을 할가 반신반의였다. 저녁운동을 하는 내내 물을 뿜어준 솔방울이 어떻게 되였을가 하는 의문이였으며 운동이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는 쫓기우는 사람처럼 숨돌릴 사이도 없이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오기까지 하였다.  집으로 달려와 문을 열고 객실의 한켠에 놓아두었던 참대바구니에 담긴 솔방울을 보는 순간 두눈이 휘둥그래지지 않을수 없었다. 활짝 피여있던 솔방울이 그사이 모두 원상태로 돌아가 오무라져 통통해 있었다. 너무도 신기하여 그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기까지 하였다. 그날저녁 은은한 솔향기가 풍기는 방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달콤한 잠을 자게 되였다. 그러면서 이제 래일 아침이면 솔방울이 어떻게 될가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기 바쁘게 솔방울이 담겨있는 참대바구니앞으로 달려가 눈을 비빌 사이도 없이 솔방울을 바라보고 또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물을 맞고 원상태로 돌아가 오무라져 통통해있던 솔방울들이 모두 내가 줏어올때처럼 활짝 피여있지 않겠는가! 그후로 솔방울은 물을 뿜어주면 원상태로 돌아갔다가 물이 마르면 다시 활짝 피여있군 하면서 솔향기를 은은히 풍겨줄뿐만아니라 습도까지 더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나갔다. 가습기로서는 천연적이고 무공해여서 참으로 나무랄바가 없이 좋았는데 그보다는 물을 뿜어주면 원상태로 오무라들었다가 습기가 빠지면 다시 활짝 피면서 솔향기를 은은히 풍기는 솔방울이 숨쉬는것 같아 숙연해지는 마음이였다. 솔방울도 역시 꽃을 피우고 맺힌 열매이다. 소나무의 열매로 소나무에 달려서 소나무씨를 품고있다가 가을이 되여 활짝 피면서 자신이 품고있던 씨앗을 토해내고는 결국 소나무를 떠나 땅에 떨어지게 되는것이다. 이쯤이면 소나무는 자신의 사명을 다한것이니 말그대로 땅에 떨어진대로 귀근하는 일만 남게 되였다고 할수 있다. 헌데 다시 물을 주니 원상태로 돌아가면서 솔향기를 은은히 풍기는것은 숨쉬는것이며 마지막까지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면서 사람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각인시켜주는것이니 한낱 자연이 선사한 보잘것없는 물체지만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하였다. 예로부터 우리 말에는 “짐승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라”는 말이 있다. 이 땅우에서 사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체는 생과 사가 있는 법이거늘 어느날인가는 이 땅을 떠나게 될것인즉 떠나기전에 값있게 살아 떠난후에도 누구인가 잊지 않게 살아야 할것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삶이라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자신의 평생 글짓기작업에서 최소 한편의 글이라도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주어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후에도 후대들이 즐겨읽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마 글쓰기 작업을 하는 작자들의 공동한 마음일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난 문호들의 글들은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지 몇십년 지어 몇백년이 되였지만 오늘도 우리들은 그들의 글을 읽고 감동을 금치 못하고있지 않는가! 몸은 비록 갔지만 그들이 쓴 글은 지금도 숨쉬고있으며 그 글만이 가지고있는 향기를 그대로 내뿜고있기때문이다. 이 시각 장편소설 “춘향”으로 제10회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을 획득한 조선족녀류작가 김인순이 한 말이 생각난다. “ 내가 죽은후에도 나의 소설이 단 몇편이라도 계속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힘들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는 우리 모든 글쓰는 이들의 바람이라면 가장 적절할것 같다. 2012년11월7일 립동의 날에
1    모난 그릇에 모서리가 없다 댓글:  조회:1892  추천:0  2013-03-28
모난 그릇에 모서리가 없다 남영선   조선족들이 한국을 비롯한 외국과 연해도시로의 대거진출로 말미암아 조선족사회가 비여가고있으며 모진 진통을 겪고있음을 조선족사회인이라면 거의 모르는 이가 없다. 이러한 현실앞에서 우리 조선족사회가 어디까지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두고 학자들을 비롯한 지성인들 나아가서 우리의 민족간부들까지 동참하여 참으로 보기좋은 풍경을 이루고있으며 또 여러가지 난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있어 앞날이 밝아져오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다. 크고 작은 회의는 물론 작은 모임에서일지라도 민족의 앞날을 두고 열변을 토하는것을 심심찮게 볼수 있는데 그 문제의 해결책은 잠시후에 보더라도 민족에 대하여 관심하고있다는 자체부터가 참으로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렇듯 민족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민족문화사업을 위한 지방단체들이 우후죽순마냥 나타나 민족문화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것을 임무가 아닌 의무로 간주하고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일심으로 바쳐가는 이야기들을 듣노라면 정말 감동을 금할수 없으며 우리의 전통문화도 그대로 계승발전시킬수 있겠다는 신심이 북받쳐오르군 한다. 또한 많은 지성인들과 민족간부들이 자금을 인입하고 자금을 해결해주어 민족의 전통문화를 고양하는 굵직굵직한 행사들을 개최하고있는데 그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공신들이라고 해도 과찬이 아닌것 같다.   이렇듯 눈물나게 고마운 일들을 고마운 분들이 해나가고있어 자호와 긍지를 느낄수 있는 반면에 서운한 일들도 따라서고있어 말하지 않을수가 없다. 회의연단에서나 모임에서는 목에 피대를 세워가면서 민족사업의 중요성과 민족사회를 위하여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는데 듣는 사람들이 눈물이 날 지경이여서 참으로 감격을 금할수가 없으며 이런 민족간부들이 있기에 우리의 민족사업이 잘될수 있겠다는 마음을 가져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회의나 모임이 끝난다음이다. 지금은 그 어떤 일을 하려해도 제일 먼저 나서는 과제가 경비문제이며 경비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촌보난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지방단체에서 작은 일들은 사재를 털어가면서 진척하다 더는 해결할수 없을 때 회의나 행사에서 열변을 토하던 그분이 떠올라 얼굴에 철판을 깔고 찾아 청을 들게 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싶게 백팔십도로 돌아서서 힘에 알맞게 하라고 되려 충고를 주면서 자기 고충만 한바탕 늘여놓는다니 참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에 찬물을 끼맞고 돌아서는 기분이 아닐수 없다고 한다. 하긴 우리의 민족간부들 역시 사업에서 많은 고충을 겪고있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민족을 두고 열변을 토할 때는 어느 때였던가를 한번쯤 생각해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든 사촌에게 기와집을 지어주는 큰소리쯤은 다 해볼수 있지만 말한것을 실행에 옮기는것은 결코 누구나가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하여 민족을 위하여 크게 말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실행에 옮길수 있는 말이라면 백번천번해도 좋으며 백성들은 바로 그런 말을 듣기를 원하고있다. 일단 지금 차지하고있는 자리를 떠나게 된다면 해보고싶어도 또 해주고싶어도 할수 없게 되거늘 있을 때 민족사업을 위하여 팔을 걷고 나서서 실행한다면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기억할것이다. 우리는 흔히 지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이미 저 세상사람이 되였거나 혹은 집에서 만년을 보내는 분들을 두고 그때 그분은 참으로 민족사업을 위하여 헌신하였는데 하는 말을 듣게 되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   간혹가다 우리는 무더운 한여름에 맑고 푸른 하늘 저 멀리에서 우릉우릉 우뢰소리가 울리는것을 들을 때가 있는데 우뢰소리뿐 비는 한방울도 없어 너무 슴슴해나 허구픈 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우뢰가 울었으면 비가 와야지 우뢰소리뿐 비가 없으면 너무나 멋적기때문이다. 모난  그릇도 마찬가지이다. 둥근 그릇은 둥근 그릇으로의 미가 있다면 모난 그릇의 미는 모서리가 있는데 있는데 모난 그릇이 모서리가 없이 둥그스럼하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것이여서 미는 둘째로 보기조차 흉할것이다.    살같이 달려가는것이 세월이라면 세월따라 늙어가는것이 우리 인간임은 속일수 없는 일이다. 민족을 위하여 일할 시간도 제한되여 있거늘 모난 그릇에 모서리가 있어 나름대로의 멋이 있듯이 민족을 위하여 말보다는 실행에 옮긴다면 그 업적이 각인될것임은 의심치 않아도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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