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입한 중년협회에서 금년에도 “3,8부녀절”축제가 있다기에 부푸는 가슴에 기대를 안고 떠났다. 활동장소까지는 지하철을 리용해야 했는데 려로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하여 나도 젊은이들처럼 핸드폰을 꺼내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지난해 “3,8부녀절”축제때 찍은 사진들이 생각나 사진첩을 뒤적여보기 시작하였다. 지난해 “3,8부녀절”사진은 세가지로 분류되여 있었는데 하나는 중년협회 축제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이모의 위챗모멘트에서 복제해온 사진들이였고 또 다른 하나는 고향마을위챗그룹에서 복제해온 사진들이였다. 사진속의 사람들이 다르고 축제현장이 다르지만 모두다 “3,8부녀절”에 찍었다는건 같아서 복제해온것이다.
우리 중년협회는 행사때마다 악대가 있어 지난해에도 관악대가 합주곡을 연주하고 무용대가 그간 준비한 무용을 선보이고 노래교실에서 소합창을 내놓아 말그대로 축제의 분위기가 짙었으며 장내는 시종 박수갈채가 끊기지 않았다.
이모의 위챗모멘트에서 복제해온 사진속에는 한국에서 이모또래들이 “3,8부녀절”이라고 빙둘러 앉아 식사하는 모습과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들이 포착되여 있었다. 전에는 한마을에서 살았던 분들이였는데 지금은 찬찬히 뜯어보아야 누구인지를 알아볼수 있었다. 이젠 모두가 고래희의 막바지를 톺는 나이인데다가 오래동안 보지 못하고 또 한국에서 힘든 일로 고생해서가 아닐가 생각해보는 순간이였다,
고향마을그룹에서 복제해온 사진속에는 마을에서 살고있는 이들 모두가 “3,8부녀절”이라고 한자리에 모여앉았지만 30여명밖에 않되는데다가 여자는 몇않되고 거의가 남자들인 이들이 집체사진을 찍고 모두가 얼굴이 불그레해서 먹고 마시는 장면도 포착되여 있었다.
그렇게 사진첩을 뒤적여 보노라니 어쩐지 공연히 가슴이 답답해나면서 좀처럼 진정할수가 없었으며 자기도 모르게 40여년전의 “3,8부녀절”이 떠오르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전에 촌에서는 “3,8부녀절”이면 마을의 부녀들이 한자리에 모여 “3,8부녀절”의 유래에 대한 학습을 간단히 하고 모범부녀들에게 상품을 발급하였는데 상품이라야 세수소래나 세수수건, 비누 등 일상 생활용품들이였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면 각 소대별로 소대에서는 또 부녀들을 또래별로나누어 창고에 비축해둔 입쌀싸래기를 나누어주면 그걸로 가루를 내여 떡을 빚어 먹는것으로 부녀절을 보내였다. 그렇게 의미있는 부녀절을 보내다가 어느 해인가부터 남자들도 동참하게 되였는데 남자들이 동참하면서 “3,8부녀절”은 일년중 큰 명절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촌에서는 일반적으로 양력설, 음력설, 정월보름, “3,8부녀절”까지 쇠고나서 모상판 벼뿌리를 치고 두엄을 실어나르기 시작하는걸로 일년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개인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3,8부녀절”은 마을의 남녀로소 모두가 참여하는 모두의 명절로 되였으며 그날 하루만은 온마을이 명절의 분위기로 들끓었다. 경제가 펴이면서 더는 집체로 나누어주던 싸래기를 바라지 않고 또래끼리 모여 닭이나 오리, 게사니를 잡던데로부터 개나 양을 잡아 엎어놓고 며칠씩 모여들어 먹고 놀았다. 그때 이모네 패들이 중장년패였는데 마을에서 제일 통크게 노는 패들이였다. 개를 잡아 먹고 마신후에는 장단을 치면서 뛰놀았는데 한손으로 코방울을 쥐고 다른 한손의 식지로 바이올린을 켜듯이 코등에서 왔다갔다하여 코바이올린 아저씨가 된 코바이올린 아저씨의 코바이올린 연주에 리아저씨의 두다리를 건뜻건뜻 들었다 놓는 쏘련딴스(댄스), 정아저씨의 건드러진 “홍도가”와 타령은 보는 이들이 배를 끌어안고 눈물을 찔끔거리도록 하였다. 지어 어떤 해에는 너무 뛰고 굴러서 구들장이 깨지는 일까지 생기기도 하였다. 그렇게 몇해동안 “3,8부녀절”이면 마을이 흥성흥성하여 사람사는 마을같았으며 금년 “3,8절”을 쇠고나면 다음해 “3,8”절이 기다려지군 하였다. 헌데 지금은 어떠한가? 전에120여 가구의 마을에 30명도 채않되게 그것도 녀자는 몇안되게 남을 정도로 한국으로 연해도시로 이동하였으니 실로 민족의 대이동이다. 이런 민족의 대이동은 마을이 거의 비여가고있는 현실을 초래할수 밖에 없다.
모두가 살던 고향마을을 떠나 타국으로, 타향으로 갔지만 생활문화는 그대로 간직하고 가서 옛날을 떠올리며 유쾌한 하루를 보내고있을것이다. 내가 가입한 중년협회회원수는 60명으로서 옛날 큰마을의 중년수와 맞먹는다.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위해서 남단까지 왔지만 “3,8부녀절”을 잊지 않고 모여서 즐겁고 뜻깊게 보내는 모습들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3,8부녀절”이건만 고향을 떠나온 이들은 좀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금년 “3,8부녀절”에는 나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내여 향수에 푹 빠져보려 한다. 20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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