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보내는 축복
누군가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
그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해 줄 사람이 있다면
나는 더욱 행복하다
내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모를수록 나는 더더욱 행복하다
…
―김성년의 시≪누군가를 위하여≫에서
최근들어 가는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래서인지 늘쌍 마음이 조급해지고 자신을 주체못한다. 무엇을 해도 여유와 넉넉함이 없고 그저 세월에 쫓기고 쫓기는 기분이다. 이렇듯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일상에 쫓기면서도 때로는 조용히 혼자 걷고 싶은 충동을 불쑥 느낀다. 혼자 걸으면서 나만의 세계를 가지고 싶고 그 세계에서 나만의 마음의 자유를 만끽하고싶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난 이 거리를 걷는다. 떠들썩한 거리의 목소리를 등뒤에 남겨둔채로 말이다. 세속의 소란함과 번잡함이 나와는 전혀 무관한듯 나의 사색도 혼자 달리다가 멈추고 또 달린다…
문득 그녀가 생각난다. 하필이면 그녀일가? 물찬 제비처럼 쭉 빠진 몸매에 웃는 눈을 가진 그녀, 년하이지만 나이 이르게 헴이 들고 이상누이처럼 챙겨주던 그녀…
≪곡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진(曲终人散)≫ 오늘의 마당에 그녀가 생각났다는것은 나로서도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면서 마음구석엔 언제나 가정을 위해 로심초사하는 집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슬그머니 괴여오른다. 그 미안함이 마음의 배반의 빌미가 될수 있는 나의 생각을 제자리에 비끄러매려고 지꿎은 노력을 경주한다. 하지만 숨기고 또 숨기는 자체가 사랑에 대한 더 큰 배반이고 불충이 아닌가 하는 변명같은 생각때문이여서인지 추억의 렬차는 몸을 멈칫하다가도 또다시 달린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또다시 추억의 향연이 되여 나의 머리속에 풍성하게 챙겨진다. 허나 추억은 꽁꽁 덮어두었던 마음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놓아 나를 몸 둘바를 모르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한다. 부끄럽고 치졸하고 얄팍한 자신이 지금도 돌이켜보기가 역겹다.
역겹고 아프고 또 오해를 사기도 다반사지만 세월의 흐름에 모든걸 묻어버리기엔 자신이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아서 적어보는 글, 어쩌면 되새겨보았자 아픔만 남는 추억이고 또 자신에 대한 변변찮은 변명의 소지가 될수도 있지만 진실한 자신을 마음의 천평에 거리낌없이 담아보는것도 역시 당당함이고 용기가 아닐가싶다.
다행스럽다 할가? 운명의 배치라할가? 지금은 그녀도 잘살고 있다고 들었고 나역시 그녀와는 상극의 성격과 타입이지만 나름대로의 매력과 우점을 가진 미더운 안해와 남부럽지 않게 살고있으니 마음 한구석이 차분해지기도 한다. 그녀의 신상에 나쁜 일이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만 들려와도 아마 난 영원히 벗을수 없는 마음의 오라를 지고 살것 같다. 난 진정으로 그녀가 잘되기를 빌고 빌었다. 그건 나의 고상함도 련민도 량심의 발견도 아닌것 같다. 아마도 나의 욕심때문이라고 표달하는것이 더 적절할것 같다. 그녀가 잘 되여서 나의 량심과 나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자는… 그래서 난 때로는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자사적이였나 하고 마음에 채찍을 안겨보기도 한다.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에 이런 생각도 많이 가졌다. 그 어떤 조건부도 없는 순수한 감정으로 내가 눈동자처럼 아끼는 녀자와 인생을 함께 하리라고. 하지만 사회생활의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나한테 주어진것과 보여진것은 그 생각을 깨고도 남음이 있었다. 4년이란 대학시절을 보내고 하늘까지 치솟았던 오기와 자부심을 구기고 그때만 해도 가난하고 사회지위 낮다고 저마다 등을 돌리던 중학교교원으로 남게 된 나다. 권세없고 돈없는 부모도 원망해보고 때아니게 들이닥친 정치기후도 탓해보았지만 결국은 사정때문에 엄연한 현실을 정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출근 첫날, 구질구질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학교에서 숙소라고 정해 준 학생숙사의 어느 한칸에 이불짐을 들여다 놓고 농촌의 작은 거름산처럼 무져있는 숙사안의 쓰레기를 퍼내고나니 온몸이 다 해나른해났다. 어느덧 땅거미가 깃들고 저녁때가 지난지도 이슥했지만 난 저녁이고 뭐고 귀찮아서 삐꺽거리는 침대에 그대로 몸을 던져버렸다. 거미줄이 여기저기 데룽데룽 달려 그네를 뛰는 숙소의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난 처음으로 좌절감과 실의에 몸을 떨었다. 출근하여 첫 몇달은 그야말로 하루 보내기가 지겨웠고 인생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으려고 헤매보기도 했지만 우연하게 맡게 된 학급담임사업에 그만 넋을 빼앗겨버리고 그애들만은 내손으로 졸업시켜 볼 욕심에 바람속의 갈대처럼 우왕좌왕하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렸다. 하지만 홀애비 살림에 이 서말이라고 늘쌍 호주머니 사정으로 전전긍긍하는 어려운 생활형편과 따분하고 무료한 생활은 새파란 나이의 나에게 점차 지극히 공리주의적인 생각을 심어주었다. 연길처녀를 얻어서 살아라는둥 가정조건이 중요하다는둥 인물 뜯어먹고 못산다는둥 주변 사람들의 선의적인 권고도 변주곡처럼 귀가 따갑게 가끔씩 들려왔다. 변명같지만 아마 나도 저도모르게 그런 생각의 포로로 된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출근 첫날부터 학생식당의 밥을 같이 먹으면서 항상 옆에 두고 보는 착실하고 예쁘고 사리밝은 그녀한테 눈길이 가지 않을수가 없었다. 누가 어떻게 어느 시간에 서로의 마음을 고백했다고 구태여 적고싶지는 않지만 아무튼 우리는 같이 ≪한솥밥(숙사밥)≫을 몇년 먹은 다음인 그것도 내가 다른 곳으로 일터를 옮길 무렵에야 비로소 앞날을 약속하게 되였다. 정리에 서투른 나, 그때로부터 아마 난 더러워지고 주름으로 구겨진 옷을 단 한번도 입고 다닌적이 없은것 같다. 그처럼 나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그녀는 누이처럼 모든걸 꼼꼼히 챙겨주었다. 하지만 다른 회사로 간후로부터 잠 잘 자리마저 마땅치 않아서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펴놓고 잤고 학교식당에서 그 나마 보장이 되던 하루세끼도 제가 알아서 챙겨먹어야 하는 어려운 생활은 나로 하여금 또다시 실리라는 얄팍한 생각을 되새기게 했다. 어찌보면 나의 마음구석에 늘 잠들고 있던 생각이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결혼하면 정말 잘 살아나갈수 있을가? 아무도 믿을구석이 없는 우리들이 정말 이대로 계속 살아나간다면 어떻게 될가? 또…)
때아닌 의문과 속된 생각이 나의 머리속에 자꾸 자꾸 꼬리를 물고 그려졌다. 그녀의 집은 연변이 아닌 외지에 있었다. 게다가 나이차가 얼마 안되는 동생들도 둘이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가정형편도 농촌인것만큼 별로 넉넉하지 못했다. 이런 계산이 결국은 속물밖에 안되는 나의 마음을 좀먹으면서 우리 둘 사이는 소원해졌고 결국은 파국에로 치닫았다. 지금도 가슴에 아픈 응어리로 남아있는 일― 나의 부모님의 회갑이 띄웠을 때 난 그녀의 그 절절한 눈빛을 등뒤에다 뿌리치고 혼자서 집으로 향했었다. 참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자신이 죽도록 미워진다. 내가 정말로 그밖에 못되는 인간이였던가고?! 그리고 씀씀이가 헤프고 정리가 서투른 내가 로임도 나보다 적고 두 동생이 연길에 와서 공부해 부담이 태산같은 그녀한테 시뻘건 손을 내민 일은 또 어쩌고…내가 언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속물로, 시정배로 변했는지 지금도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 마음의 참궤지감을 어디다 더 표현하랴. 결국 난 그녀가 싫어서가 아니라 소위 현실생활을 정시해야 한다는 짧은 생각에 소중한 사랑을 실리라는 저울에 올려놓았던것이다. 후에 와서 땡전 한푼없이 잔치하고도 잘만 사는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난 자신의 암둔함에 질려본적도 있다.
세상에는 귀중한것이 많다. 필요되는것도 많다. 난 내가 필요로 하는 소위 현실생활에서 더 쉽게 살아남기 위한 방편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것을 포기하고 속물로 변신했던것이다.
현실과 사랑의 틈서리에서 우왕좌왕 갈등하는 이들이 어찌 한둘이랴? 생활을 택하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택하자니 울며 생활해야 한다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진정한 사랑을 모독하는 구차한 변명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는 허황한 꿈에 고무풍선처럼 잔뜩 부풀어서 사는 유토피아적인 사람도 있고 시정배처럼 모든걸 저울에 다는 못난이도 있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유상종이나 천차만별이라는 말 그대로 삶의 방식과 사랑에 대한 인식은 제가끔 다르다. 다만 실제생활을 위한 소위 방편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것은 자신을 잃는것이고 자신마저 잃었을때는 결국 모두를 포기하는것이나 진배없다.
아직도 다 풀지 못한 내마음의 십자가를 벗기 위해 난 지금도 주변의 모두를 열심히 사랑하고 삶에 충실하려고 모지름을 쓴다. 그러면서 난 또 두손모아 빈다. 그녀 또한 어디에서라도 부디 잘 살아주기를…언젠가 따뜻한 차 한잔에 이 모든것을 부담없이 주고 받을 날이 있으리라는 믿음이 차곡차곡 가슴에 겹친다. 모든것을 초탈한 풍요롭고 느긋한 마음의 대문을 분명 보았기때문이다. 걱정하고 축복해주고 나누어주는 마음이 퐁퐁 솟음쳐나오는 샘물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정갈하게 씻어내고 서로를 이어줄 때 세상은 그야말로 살맛나는것이 아닐가?
혼자 바장이며 하염없이 걷는 나의 눈앞에는 어느덧 천고마비의 가을의 하늘이 펼쳐진다. 가을은 성숙의 계절이고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또한 담박한 계절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화끈한 여름을 담담한 가을빛밖에 몰아내고 한가롭고 유유하고 멀고멀어서 바라볼수 있지만 가까이 갈수 없는 그런 가을이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의 하늘은 높고 푸르다. 가슴을 확 틔워주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풍요로운 가을의 선물인듯 얼굴에 와 닿는다. 그리고는 총총걸음으로 하늘가 저 멀리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가을바람은 저 멀리 그녀한테에도 가리라. 보이지 않는 바람이지만 느껴지는 바람이기에 나의 진정과 축복을 타고 멀리 갈것만 같다. 풍요롭고 유유하고 편한 가을의 모든것과 함께.
2004년 가을 연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