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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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21세기 官场现形记(우상렬102) 댓글:  조회:4697  추천:66  2007-10-23
21세기 官场现形记우상렬 우리 아버지는 지금도 내가 한 자리 하지 못했다고 아니꼬운 눈길로 보신다. 아무런 长자라도 하나 하라는 눈치다. 내일 모레 아홉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소박한 염원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해 참 죄송스럽기만 하다. 내 주제에 한 자리 하기는 다 글렀으니 그래 우리 아버지 위안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21세기 官场现形记를 횡설수설 주어대기~ 첫째, 한 자리 하기 참 힘들다. 줄을 잘 서야 한단다. 줄을 어떻게 서야 되냐 하면 일단 위 사람 눈치 잘 보기. 여하튼 위 사람의 구미에 맞추어 기분 좋게 해주며 충실한 후계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니 林彪처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알랑방귀를 뀌도 무방하지. 한 자리 하기란 피라미트식 사닥다리 오르기다. 위에 놈 밑구멍을 보며 구린 줄도 모르고 열심히 바라 오르기다. 그런데 그 위에 놈이 나를 차버리거나 깔아뭉개지 않도록 헤헤 웃으며 기분 좋게 해줘야 한다. 官大一级压死人이 아니냐. 위에 놈 앞에서는 미워나 고워나 차렷자세하기. 그리고 허리 굽실굽실하기. 차렷자세와 굽실굽실은 기본. 그러되 약삭발라야 한다. 눈치코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가려운 데를 금방금방 알아서 슬슬 긁어주는 거야. 그것이 엉치든 어디든 관계 없이. 그리고 자네 君子들 사귐처럼 淡如水가 아니라 명절 때마다 코밑치성 잘 하여 浓酒 관계가 되어야 한다. 코밑치성은 아니아니, 그만그만의 말쌈을 잘 이해하고 神不知鬼不知, 天知地知你知我知식으로 해야 한다. 참, 그리고 위 사람이 문을 나설 때는 재빨리 문을 열어주고 승용차라도 탈 때는 그 존귀한 머리 문 위 가장자리에 부딪치지 않도록 재빨리 손을 갖다 댈 줄 알아야 한다. 출세가도 三字经을 한 마디로 개괄하면 줄 잘 서서 感情投资하기. 요새 우리 연변애들 보니까 핸드폰 착신 노래까지 전부 제 위 사람 좋아하는 걸로 했더라. 그래도 우리 연변애들이 기발한 착상이 많고 또렷또렷한 거야. 그런데 이 줄서기의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는 내가 모실 위 사람의 주제를 알아야 한다. 겨우 제 자리를 유지하거나 제 코도 닦기 힘들어 하는 주제는 안 된다. 이때는 똥오줌 버리듯이 가차없이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를 확실하게 밀어줄 파워풀한 다른 위 사람 뒤에 재빨리 서야 한다. 그리고 신주단지 모시듯 새로운 모시기를 시작하고 언제 물에 빠진 애 끌어올리듯이 머리카락 잡고 끌어올려 주기를 내심이 기다려야 한다. 소학교 때부터 줄을 잘 못 선 나, 항상 삐어져 나오기만 했으니 외목에 나기만 했으라.    둘째, 그래 하루 아침에 출세를 했다 하여 안하무인 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항상 겸손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무슨 인민의 노복이요, 머슴이요, 청지기요 하는 말들을 입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 옷도 버젓한 양복보다는 김정일동지처럼 항상 일하는 모습을 보이는 소박한 작업복이 좋다. 그러되  新官上任三把火, 반드시 위엄은 보여야 한다. 시찰, 이른바 아래에 사업 지도하려 내려가기. 물렀거라, 어른신 나가신다~ 敲锣鸣道는 기본. 아래 것들 서슬푸른 내 위풍을 알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굳이 三把火는 놓지 않더라도 杀一警百 쯤은 해야 한다. 유비가 눈물을 뿌리며 마초를 죽이는 일도 눈물이 아니라 서슴지 않고 해야 한다. 그래야 아래 것들 벌벌 떤다. 그리고 君子一言驷马难追이라고 말이 적어야 한다. 할 말만 소리 부러지게 딱딱 해야 한다. 나처럼 말이 많아서는 안 된다. 이거 해. 음, 그래. 그렇겠지… 기껏해서 할말만 하기. 농담 같은 것은 절대적인 금물. 농담을 하기 시작하면 근엄한 이미지가 흐트러지기 쉽다. 그래서 우리의 지도자동지들은 항상 근엄하시다. 얼굴이 딱딱하고 어깨에 힘을 주고 유머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어쩌다 농담 한 마디라도 하면 그 자애로움과 친절에 아래 것들은 감격에 목이 매여 운다. 그리고 싸인 위풍 살리기. 싸인은 중요하다. 니 권력행사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다. 이 싸인 하나 아래 것들 죽였다 살렸다 한다. 그래 한 자리 하는 사람들 대가리에 들은 거는 별로 없어도 싸인 잘 못 하는 거 누가 보았더냐. 다 명필 싸인이다. 말그대로 일필휘지에 명필이다. 서예시합에 나가면 다 당당히 1등할 명필들이다. 어느 크게 한 자리 하는 친구 싸인 재미에 희대의 에피소드를 만들고 말았다. 그 친구 공술 너무 많이 먹다 보니 왼쪽 뇌혈관이 터지며 오른팔을 못 쓰게 되었단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서도 열심히 연습하여 왼손으로 명필 싸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떻게 된 문서인지 이번에는 왼손이 마비되어 못 쓰게 되었단다. 그래서 그 친구 이번에는 발가락 사이에 필을 넣고 싸인하기를 연습했단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발가락으로 하는 그 싸인도 명필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그래서 모두들 이 친구 退休해도 밥은 먹겠구나 하고 안심을 했단다.셋째, 一个中心,俩个基本点 틀어쥐기.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의 사업방향이라 할까, 전략이라 할까. 여하튼 한 자리 하는 사람치고 이거 모르는 사람이 없다. 一个中心,俩个基本点을 단단히 틀어쥐자면 안계가 넓어야 한다. 집안만 바라 볼 것이 아니고 전반 사회를 내다 보아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俩个基本点은 그래도 돌출하여 틀어쥐기 좋은데 一个中心은 잘 안 보여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이고 핵심인 만큼 一个中心에 모를 박아야 한다. 요새 한 자리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 하고 있단다. 그래서 마음이 놓인단다. 넷째, 업그레이드. 이전에는 무식쟁이들이 막 한 자리도 했지만 이제는 안 된다. 적어도 컴퓨터가 무언지는 알아야 하겠지. 그리고 자꾸 무슨 졸업증이요, 학위요, 자격증 같은 것을 요구하니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따놓아야 한다. 그래야 출세가도를 빨리 달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졸업증, 학위, 자격증 같은 것들이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는 데 골치가 아프다. 지난 세기 80년대까지만해도 대학졸업증 하나만 있으면 떵떵 큰소리 치며 잘 해 먹었는데 90년대가 되니 석사쯤 되어야 하고 현재는 박사쯤 되어야 한다. 사실 이것은 별 문제 될 것이 없다. 한 자리 하는 우리 친구들은 적어도 대학을 졸업하고 그 어려운 공무원시험을 거쳐 출세했으니 다 수재들이고 천재들이다. 그들더러 박사를 하라 해도 느끈이  해 치울 수 있다. 문제는 一个中心,俩个基本点을 틀어쥐느라고 그들이 언제 시간이 있어 공부를 하며 학문(발음주의. 항문이 아니라 반드시 학문)을 닦겠나 말이다. 그래서 이해가 가기도 하고 동정도 간다. 그래서 우르륵 우리한테 몰려와서 학문 닦는 흉내를 내며 삭삭 굽실거리는 모양새를 볼 때는 아니꼽다가도 불쌍해 나기도 한다. 그들은  우리처럼 지긋이 앉아 열심히 깔끔하게 학문을 닦지는 못 하되 公과 私의 열성을 보이며 열심히 도금을 한다. 그러니 이것은  진짜 업그레이드하고는 거리가 멀고 거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박사요, 뭐요 하면서 官场에서는 버젓이 통한단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도금한다고 투자한 비용도 뽑고 관록도 오른단다. 한심하여라!다섯째, 줄을 잘 못 서 짤리우거나 별 볼일 존재로 전락되거나 退休라도 하는 날의 비극. 한 자리 하는 사람들, 이런 거 제일 무서워한단다. 가장 정상적인 退休라는 거도 그렇단다. 退休하는 날에는 한 자리 할 때 문전성세를 이루던 것이 곧 바로 도토리 개밥 신세가 된단다. 세상 인심의 冷暖을 가장 잘 맛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官场이란다. 그래서 인생 무상과 허무를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는 한 자리 하는 사람들. 그렇다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자고 무슨 일이나 좀 찾아서 하자고 하면 한 평생 해온 짓이 이래라 저래라 사람들 부려먹기가 전부였으니 官场밖에서는 무용지물이 될수 밖에. 우리네 교수처럼 늙으면 늙을수록 빛이 나는 실무적 직업이 아니니 말이다. 서글프기도 하여라! …  아, 한 자리 하기란 이렇게 힘이 들고 기형화되어야 하고 허무한 것인가? 아버지, 그래도 한 자리 하랍니까? 아니 그만둬! 싹 때리 치우고 니 좋아하는 공부나 해! 2007-06-07
99    졸업하면 되지 뭐!(우상렬101) 댓글:  조회:4353  추천:65  2007-10-23
졸업하면 되지 뭐! 우상렬고중 때하고 대학 때 무엇이 다르냐? 고중 때는 60점을 맞아서는 안되지만 대학 때는 60점을 맞아도 괜찮다. 고중 때 60점 만세를 부르면 좋은 대학은커녕 일반대학조차도 붙기 힘들다. 그래서 고중은 100점 만세다. 이것이 고중생들을 죽인다. 그러나 대학은 60점 만세 불러도 안일무사. 얼마든지 졸업한다. 대학 왜 붙냐? 졸업할려고 붙지. 그럼 홀가분하게 60점 만세를 불러버려. 성적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데. 대학은 자유를 누리는 거야. 그럼 무슨 자유냐? 공부 안 하는 자유? 물론 그것은 아니야. 내 멋대로 하고픈 공부를 하는 거야. 그럼 무슨 공부냐? 니 흥취에 따라 한다 이거야. 예컨대 전공과와 비전공과가 있다 하자. 니 아무래도 전공과에 흥취 가겠지? 무슨 정치사상교육이요, 도덕사상교육이요 하는 공통과 같은 비전공과는 진저리가 나지? 그러면 졸업할 정도의 60점 만세를 부르는 거야. 适者生存이 아니냐? 그러나 전공과는 100점 만세를 부르는 거야. 그런데 전공과 가운데도 하기 싫은 거 있고 하기 좋은 거 있지? 우리 조선언어문학 전공이라고 하자. 니는 딱 문학만을 좋아하는데 무슨 뚱딴지같이 고대조선어요, 현대조선어요 하는 것들이 또 튀어나온다 이거지? 그럼 그것도 훅 불어버리, 60점 만세로. 이런 하기 싫은 공부는 60점 만세로 상식적인 차원에서 떼우면 되는 거야. 그럼 문학 공부는 어쩌지? 그것은 100점 만세. 물론 문학 가운데도 문학사가 있을 거고 문학창작이 있을 거고 문학이론이 있을 거야. 여기에도 흥취에 따라 공부하는 논리가 적용되는 거야. 물론 이 3자는 문학의 유기적인 三足鼎立 형국을 이루고 있는 지라 어느 하나를 제멋대로 偏废해서는 안 되지. 이 세상에 절대적인 자유나 절대적인 흥취는 없는 거야. 물론 작가가 안 될 바에야, 아니 글쓰기에 흥취가 없다면 굳이 문학창작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 나는 대학교 때 문학이론과 문학사 관련 과목에 좀 미쳐났지. 문학이론 과목은 너무 좋아하여 돈이 그리 여유 있는 것 아닌데 그 당시 교수들만 주문해보는 전문잡지까지도 사사로이 주문하여 보기도 했네. 그러다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문학연구생 시험을 주로 전공과목으로 문학이론과 문학사 관련 시험을 보는 지라 연구생도 떼놓은 당상으로 붙은 셈이지. 내 자랑 같아서 좀 안 되었네. 그럼 왜 흥취를 강조하지? 흥취는 바로 니 개성과 특장과 연결되기 때문이야. 흥취는 무의식적인 것으로서 한 사람의 천성적인 개성과 특장을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내지. 물론 흥취를 후천적으로 키울 수 있겠지만 그것의 가장 치명적인 허점은 바로 그 사람의 천성적인 개성과 특장과 이탈되는 거야. 심층심리학적으로 놓고 볼 때 자기의 흥취에 맞게 몰입하다 보면 그 고유의 개성과 특장도 살아난다는 논리다. 흥취 만세를 부르는 것은 바로 자기에게 충실한 것으로 자기의 타고난 개성과 특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본 출발점. 현재 세계 최고의 갑부하면 누구지?  단연 가장 작은 규모의 회사로 가장 큰 이윤을 창출하는 빌게이츠. 그럼 빌게이츠는 어떤 사람이냐? 미국의 어느 별 볼일 없는 대학에 2학년인가 3학년에 다니다가 자기의 컴퓨터 흥취와는 전혀 맞지 않으니까 다 팽개치고 나와 친구와 남의 창고를 빌어 컴퓨터회사를 꾸려 컴퓨터매니아가 된 것이 오늘날 세계 굴지의 IBM 회사의 출발점.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흥취는 성공의 어머니야! 알았어?  흥취에 따른 대학공부, 그래 쉽고 재미나쟈? 그래 흥취에 따라 공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매니아가 되는 경우가 많아. 매니아, 자기가 좋아하는 그 무엇에 푹 빠지는 거.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이나 전공에 푹 빠지는 것도 매니아야. 매니아는 행복해. 일단 하루하루가 충실해 공허할 때가 없어.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 최고의 즐거운 일일진대 다른 그 어떤 부러운 것이 없어. 그러니 대학교 때 가장 신경이 쓰이기 쉬운 장학금의 멍에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별 볼일 없는 身外之物인 학생회 간부니 무어니 하는 데에도 초탈할 수 있다. 그러니 일종 도적인 경지야. 밥을 몇 끼 안 먹어도 별로 배고프지 않을 거야. 옷을 좀 초라하게 입어도 안 벗었으면 되었지 하는 식으로 웃어넘길 수도 있는 거야.이 매니아가 되고 보면 내가 흥취를 느끼고 좋아하는 과목은 100점이 아니라 그 이상도 맞을 수 있으며 정말 그 분야의 최고---베트랑이 될 수 있다. 몰론 그 밖의 과목 점수는 60점 만세나 그 이하로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전반 졸업 과목점수를 보면 들쑹날쑹. 어떤 과목은 여러 번 보충시험에 겨우 60점 턱걸이를 한 흔적도 역연. 그래서 100점 만세의 우수 졸업생하고는 인연이 멀다.그러나 이런 매니아 졸업생은 사회적응력이 훨씬 강하다. 사회는 이런 매니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세밀한 분공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高分低能의 ‘通才’보다는 한 곬을 깊게 판 매니아---除你莫属가 더 수요된다. 이를테면 외국어 하나만 놓고 보아도 무슨 시험점수니 자격증을 떠나서 그 나라 사람처럼 자유자재로 하는 매니아---베트랑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사회는  어중간한 一人多役보다는 바로 매니아적인 一人一专의 베트랑을 수요하고 있다. 2007-06-05
98    나도 개처럼 살고 싶다 (우상렬100) 댓글:  조회:4435  추천:73  2007-10-21
나도 개처럼 살고 싶다 우상렬 개는 먹고 싶으면 먹는다.나도 개처럼 먹고 싶다. 개는 자고 싶으면 잔다.나도 개처럼 자고 싶다. 개는 하고 싶으면 한다.나도 개처럼 하고 싶다. 한국의 어느 톡톡 튀는 교수가 쓴「나는 개처럼 살고 싶다」의 시다. 적어도 나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내 몸이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 얼마나 좋냐. 우리는 이 세상에 이 좋은 노릇을 하러 왔다. 그런데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궁회귀본능이 발동되며 배고프거나 춥다고 칭얼대면 飯來에 張口, 衣來에 伸手하게 되던 동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훌쩍 커버린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나는 요새 애들이 부러워나기도 한다. 요새 애들은 정말 개처럼 산다.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키스하고 싶으면 키스하고 갈라지고 싶으면 갈라지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한다. 개처럼 홀가분하게 산다. 도저히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사랑하고 싶어도 못하고 키스하고 싶어도 못하고 갈라지고 싶어도 못하고 이날 이때까지 이 모양, 이 대로 살아왔다. 스스로 좀 비참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모양, 이대로를 못 고칠 것 같다. 사실 나는 이 모양, 이대로로가 그리 싫지 않은 걸. 기다리고 참고 견디며 사는 내 인생도 재미가 있는 걸. 결혼 첫 날, 그 신비하고 짜릿함이여, 사랑의 정열은 봄물처럼 터지고... 그래 그 개처럼 홀가분하게 사는 너희들, 이 맛 볼 수 있느냐? 너희들은 첫날도 사랑의 정열이고 뭐고 그저 심드렁하게만 느껴지겠지? 첫날의 신비함과 짜릿함을 개처럼 사는데 다 날려버렸으니깐. 그런데 가만, 기다리고 참고 견디며 사는 것도 맥이 진하는 거야, 너무 힘드는 거야. 그리고 ‘첫날’ 같은 인생고비는 얼마 안 되고, 인생의 보다 많은 허구한 세월은 그저 그렇고 그런 과정적인 삶이라 할 때 개처럼 사는 것이 더 실속 있다하겠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개처럼 살고 싶어하는 거야. 인간은 동물성을 거부하고 인간성을 추구해왔다. 이것이 극단으로 나갈 때 다른 결벽주의가 생겨난다. 사실 인간의 동물성과 인간성은 부정과 긍정의 흑백논리로만 치닫는 것이 아니다. 부정의 부정의 변증법적 논리로 인간성의 최고경지는 보편적인 동물성으로 나타난다. 물론 그 동물성은 순화되고 승화된 것이다. 세상이 나선형으로 돌고 도는 격으로 말이다. 바로 이 순화되고 승화된 동물성이 인간성의 진정한 한 내용을 이루고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싶다’형이 아니고 ‘개처럼’ 무난히 통할 때 참 편안한 삶이 되겠다.  
97    武侯祀와 杜甫草堂 (우상렬99) 댓글:  조회:4287  추천:57  2007-10-21
武侯祀와 杜甫草堂우상렬사천 성도에는 명승고적들이 참 많다. 3국시기 蜀나라 수도의 흔적의  일단으로 武侯祀와 당나라 詩聖 杜甫가 머물었던 杜甫草堂은 그 전형적인 한 보기가 되겠다.  武侯祀, 성도시 남문 무후사대가에 위치해 있다. 蜀한 말년의 승상 武侯 諸葛亮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명초에 재건할 때 유비를 제사지내는 ‘漢昭烈廟’를 옮겨왔다. 현재 祀 내에는 蜀漢 인물조각이 47개, 碑碣이 53개가 있어 그때의 역사 현장을 떠올려준다. 이 祀는 諸葛亮의 옷과 모자를 묻었다 한다. 그리고 유비 및 그의 甘, 吳 두 부인의 합장묘가 劉備殿 서쪽 대나무숲속에 있다. 祀 내의 현재 殿宇는 청나라 강희 11년(1672년)에 재건한 것이다. 祀 내에는 唐碑 하나가 있는데 唐朝의 재상 裴度가 글을 지었고 서법가 柳公卓이 글자를 썼고 名匠 魯建이 글자를 새겨 세칭 ‘三絶碑’라 한다.杜甫草堂은 현재 성도시 1환로 밖의 浣花溪가에 있다. 杜甫草堂은 杜甫가 안사의란을 피해 유리전전하다가 성도에 왔을 때 친구 高適 등의 도움 하에 浣花溪가에 지은 것이다. 그래서 浣花草堂이라고 하기도 한다. 杜甫는 여기서 4년 가까이 지내면서 247수의 시를 지었다. 유명한 시「茅屋为秋风所破歌」는 바로 이때 지은 것이다. 현재의 杜甫草堂은 梵安寺와 梅園을 끌어들여 부지 20여만 평방미터의 규모를 이루고 있다. 시내물이 구불구불 흐르고 여름에 연꽃이 물위로 피어나고 있으며 겨울에는 매화가 오연히 피어 있고 대나무가 죽죽 뻗어있다. 그리고 亭, 臺, 樓, 榭가 갖추어져 있다. 매년 정월 초이레(人日이라고 속칭한다)에 사람들은 杜甫와 高適의 진지한 우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기에 와서 노닌다. 그리고 杜甫 詩才의 蔭德도 입겠노라고 시회도 잘 가진다. 杜甫연구소 같은 관련 기관들도 여기에 있다.武侯祀와 杜甫草堂은 깔끔하게 잘 정리되고 다듬어져 있다. 오히려 너무 잘 정리되고 다듬어져 골동품을 너무 깔끔하게 닦아놓아 고색창연함을 잃어버린 듯한 일말의 아쉬움도 남는다. 나는 武侯祀와 杜甫草堂을 거닐 때마다 생각해본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武侯祀와 杜甫草堂을 찾는 이유를! 주지하디시피 諸葛亮은 智의 화신이다. 삼국시기 주유요, 노숙이요, 방통이요 , 그리고『수호전』속의 오용이요, 공손찬이요, 하는 智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많지만 전반 중국 고대 역사를 통털어 그를 따를 자 없다. ‘草船借箭’, ‘空城計’, ‘舌戰群儒’ 등은 너무나 잘 알려진 諸葛亮의 智의 걸작들이다. 사람들은 일단 諸葛亮의 이 智에 공감한다. 그러면서 諸葛亮은 智의 神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 혹은 우리 자식들도 諸葛亮처럼 똑똑해지게 해달라고 빈다. 그래서 오늘도 향불이 끊이지 않는다. 諸葛亮의 智는 조조의 간교나 주유의 밴댕이 속궁리하고는 다르다. 그의 智는 오로지 정의를 구현하고 사악함을 징계하는데 사용된다. 前後「出師表」, 鞠躬尽瘁, 死而後已의 師表. 민족과 국가를 위한 귀감. 그리고 그의 智는 德의 감화와 연결되어 있다. 孟獲을 7번 잡아 7번 놓아주었다는 ‘七擒七縱’-德의 감화의 파노라마.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속마음을 다 털어서 감복하게 만든다. 이른바 口服心服의 경지를 창출한다. 諸葛亮은 오늘날 미스 유니버스대회의 眞, 善, 美로 볼 때 착실한 미스터 眞이 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 杜甫를 보자. 杜甫는 李白과 더불어 李杜라고 병칭되며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詩聖이라고 불린다. 그의 시는 자기 시대의 아픔을 속속들이 읊었기에 詩史라고 칭송되고 있다. 杜甫는 盛唐시기 전형적인 사실주의 시인이다. 그는 盛唐의 화려한 허상 속에 쌓여있는 사회부패를 여지없이 까밝힌다. ‘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 영원히 우리에게 사회빈부 차이나 대립의 경종을 울린다. 사실 杜甫는 ‘一饭未尝忘君’이라 충의지사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어려움에 처했어도 항상‘穷年忧黎元’을 잊지 않았다. 그가 허름한 杜甫草堂에 살 때다. 하루는 비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자기의 초가지붕을 걷어 날린다. 집안으로 비바람이 막 불어 들어온다. 그래서 절로 나온 것이‘茅屋为秋风所破歌’. 그러나 그가 생각한 것은‘安得广夏千万间,广庇天下寒士尽欢颜。’사실 杜甫는 ‘一句三年得’의 苦吟스타일이다. 어떻게 보면 시 한수를 아주 어렵게 쓰는 ‘둔재’다. 그럼 그가 문학사에 남고 사람들에게 잊어지지 않고 자꾸 외우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지? 그것은 바로 그 정의감과 더 넓은 인도주의에 다름 아니다. 杜甫은 오늘날 미스 유니버스대회의 眞, 善, 美로 볼 때 착실한 미스터 善이 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2007. 10. 5
96    부부사이 못 말려! (우상렬98) 댓글:  조회:4877  추천:61  2007-10-21
부부사이 못 말려!우상렬우리 부부 간은 싸움을 참 잘 한다. 다른 사람이 보면 저래 가지고 살겠는가 할 정도로. 그런데 참 묘하다. 한 바탕 와장창 싸움을 하고 난 뒤 우리 둘은 각 방을 쓴다. 그리고는 씩씩 열 받은 김에 옷도 벗지 않고 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튼 날 깨여보니 어느새 우리 부부는 전라의 사랑신이 되어 한데테 얽혀 있다.   또 한 바탕 와장창 싸움을 하고 난 뒤 우리는 서로 앵돌아져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튼 날 내가 씩씩 거리며 집에 들어오는 길로 밖에서 누구와 싸우고 온 흉내를 낸다. 그 새끼, 개 같은 새끼... ‘열’에 받쳐 어쩌고 저쩌고 하다나면 ‘어, 여보, 누구와 싸웠어, 어, 어떤 놈인데...’ 이렇게 어느 덧 나와 한 편이 되는 아내. 부부는 한 배를 탔어요.또 한 바탕 화장창 싸움을 하고 난 뒤 어딘가 아픈 흉내내기. ‘아~ 아, 아파 죽겠어. 당신 그 손으로 내 이 배 좀 문질러주면 안 아플 것 같애. 빨리, 빨리...’ 내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손을 들이미는 아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못 말려! 누가 부부간 아니라 할가봐.2007.10.5
95    달변과 어눌 (우상렬97) 댓글:  조회:4521  추천:56  2007-10-21
달변과 어눌우상렬나는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과 외국, 아니 외국이라 해야 기껏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인들과 비교를 좀 해본다. 사실 이런 한 자리 하는 사람이나 그런 정치인들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 다름 아니다. 각 나라 사정에 따라 그렇게 좀 다르게 불릴 뿐이다. 그리고 비교라 해봤자 구변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을 잘 하고 못 하고 그런 거.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은 구변이 참 없고 외국의 정치인들은 구변이 참 좋다는 느낌이 든다. 그 기본 표현의 하나는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은 대중연설을 할 때 꼭 이른바 연설고읽기 식으로 하는데 외국의 정치인들은 즉흥연설식이니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이 연설고를 읽어대는데 정말 진절머리가 난 반면에 외국의 정치인들이 연설고 없이 즉흥적으로 하는 연설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 레이건, 카트, 클링턴, 그리고 현재의 부시...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배우들 같은 말주변에 정말 깜박 간다. 정말 레이건은 배우 출신이니 그렇다치고 나머지 대통령은 어째서 그렇게 말을 잘 하지하고 머리가 갸웃거릴 때가 많다. 먼 미국은 그만 두고라도 가까운 한국만 보더라도 정치인들 모두들 달변이다. 대통령 출마에 나온 정치인들 보라. 우선 말을 잘 못 하면 정치인이 될 수 없고 대통령후보나 대통령은 더구나 될 수 없다.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말을 잘 못 하는 편이다. 어눌하다 해야 할지. 자기가 발언할 때가 되면 미리 준비한 장편원고를 세월아 네월아하고 내리 읽는다. 밑에 관중석의 듣는 사람들이 꺼벅꺼벅 조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 중경시에서 지도자들이 연설을 할 때 3분인가 5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제도를 내왔다는데 참 환영할 일이다. 언젠가 주용기가 총리를 했을 때 참 인기가 좋았다. 많은 인기 가운데 주용기가 연설고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스럼없이 하는 달변에 있었다. 그가 기자회견을 할 때면 유모아를 곁들인 답변이 정말 인기 절정이었다. 그럼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의 어눌과 외국 정치인들의 달변의 갈림길은 어디에 있는가? 1차적으로 학교 기초교육에 있다. 우리의 강의는 선생 중심의 주입식으로 많이 이루어져왔다. 학생은 듣는 로봇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애초에 받지 못했다. 요 근간에야 무슨 계발식이니 創新이니 하며 떠들어댄다. 좀 늦기는 했지만 반길 일. 그러나 외국에서는 오픈된 세미나나 토론식 강의를 언녕부터 많이 해왔다. 누구든지 자기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가지며 또한 꼭 해야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2차적으로 정치 형태나 행태에 있다.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은 직승비행기를 탄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거저 위 사람의 구미만 잘 맞추면 된다. 한 자리 하기란 이렇게 안일한 것일가. 선거경쟁 따위에 그리 신경을 안 써 왔다. 그러나 외국 정치인들은 끝없이 경쟁자들을 제끼고 올라오다보니 자기 의사를 정리하고 표현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이골이 튼 사람들이다. 대통령출마라도 하는 날이면 끝임 없는 연설경쟁에 사실 강연고 쓸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전반 사회적인 분위기를 보아도 정치인이라면 일반연설 같은 것은 강연고 없이 쉽게 느끗이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기본 요구사항이다.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처럼 굳이 비서진에 의뢰해 강연고 로봇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잘 못이나 실수는 내가 책임진다는 책임의식문제다.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이 강연고를 보고 읽기 좋아하는 것은 틀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 강연고는 정책, 노선, 방침이요 하는 여러 사항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사전에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 생각은 없지만 대정방침하고는 틀리지 않는 두리뭉실한 것. 그래서 누가 어쩌고 저쩌고 험 잡을 데가 없다. 그래서 강연고 대로 읽으면 문제가 적게 생기거나 안 생긴다는 우리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의 알량한 생각. 아래의 구체적 상황은 어떤지를 떠나서. 그러나 외국 정치인들은 틀리고 맞고를 떠나 어디까지나 자기의 독특한 아이디어나 생각들을 풀이해야 먹혀들어가든지, 환영을 받는 판이니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발언을 해야 한다. 여기에 지역자치제니 뭐니 하니 이런 자기 식이나 나름대로의 식이 더 돋보이는 시대가 되니 모두들 톡톡 튀는 발언을 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내 발언 내용은 진리라고 견결히 주장하며 만약 틀릴 경우에는 내가 책임진다는 식으로 밀고 나간다. 그러니 전적으로 그 누구한테 강연고를 의뢰해서 만사대길일 수 없다.    정치가의 연설은 내실을 기하지 못해도 안 되거니와 내실을 기하되 표현을 잘 못 해도 문제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의 어눌은 하지만 신중한 발언과 외국 정치인들의 달변이지만 말잔치나 겉치레가 거세되고 실속을 기한 발언이 결합되었으면 가장 이상적인 정치발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7. 10.4  
94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상렬96) 댓글:  조회:4314  추천:55  2007-10-20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상렬내가 조선에 실습교원으로 있을 때다. 하루는 모모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로동신문』을 쫙쫙 잡아 찢었다. 곧바로 고발이 들어갔다. 그 유학생은 안전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왜서 신성한『로동신문』을 찢었는가 하는 질문에 그 친구 대답이 참 재미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과 자기네 나라 대표단이 만나는 뉴스를 보도하는데 굳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나주셨습니다로 표현했기 때문에 반발한 것이다고 했다. 그 친구 말 들어보니 그럴 듯 했다. 확실히 조선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이 외국 대표단을 만날 때는 꼭 신문이나 라디오, TV 같은 매체에서 ‘만나주셨습니다’로 표현한다. 어디까지나 위대한 장군님이 주체이니 만나주고 안 주고는 전적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의사에 달렸다. 그러니 만나주는 것은 하나의 대단한 恩典에 다름 아니다. 감지덕지해야 할 일, 이러루한 의미로 풀이가 되겠다. 그러니 그 유학생이 반발도 할 만 하다. 자기네 나라 대표단을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유학생 조선말을 참 잘 배운 모범생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유학생 소속국 대사관에서는 그 유학생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래서 그 ‘만나주셨습니다’ 사건은 유야무야 희미작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럼 왜 굳이 ‘만나주셨습니다’가? 그것은 극단적인 색채가 없지 않아 있지만 수령의 주체적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임금들이 전통적으로 이 눈치 저 눈치 보기에 바쁜데 우리의 수령은 당당한 주인이 되어 척 앉아 있는다. 그러면 다른 나라 대표들이 만나주시기를 바라며 너도나도 찾아뵙는다... 인민들이 보기에 얼마나 당당하고 주체적인 우리의 수령이냐! 그런 식이다.그렇다. 내가 언젠가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에 갔다가 본 김일성이 즉흥시로 읊었다는「묘향산 가을날에」라는 시 한 수가 떠올랐다.                                 로대 위에 올라서니 천하절승 예로구나묘향산 절경이야 태고부터 있는 것을전람관 여기 솟아 푸른 추녀 나래 펴니민족의 존엄 빛나 비로봉 더욱 높네 만산에 붉은 단풍 가을마다 붉었으리노동당 새 시대에 해빛도 찬란하니단풍도 고와라 더욱 붉게 물들면서산천에 수 놓누나 이 나라 새 역사를 사대로 망국으로 수난도 많던 땅에 온 세계 친선사절 구름같이 찾아 든다5천년 역사국에 처음 꽃 핀 이 자랑을 금수강산 더불어 후손만대 물려주리    이 시는 제목이 ‘묘향산 가을날에’이지만 실은 묘향산 가을을 노래한 것은 아니다. 醉翁之意不在酒. 이 시에서 김일성은 묘향산 가을날을 빌려 외국 정상이나 사절 및 저명인사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선물한 물건들을 전시한 국제친선전람관의 상징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를테면 옛날에 우리가 사대로 남에게 갖다 바치기만 했다면 오늘은 우리도 당당히 남이 갖다 바치는 것을 받는 반만년 역사에 있어서의 새 시대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5천년 역사국에 처음 꽃 핀 이 자랑을’거늘! 순화되고 세련된 말로 다듬어진 마지막 단락의 ‘온 세계 친선사절 구름같이 찾아 든다’는 바로 이러한 뜻을 한 번 더 코멘트하는 詩眼. 이 시에서 김일성은 ‘민족의 존엄을 빛내’고 ‘이 나라 새 역사를’ 이끄는 조선 현시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일국의 수령으로서의 기개가 잘 나타나 있다 하겠다. 물론 유아독존이나 자아중심의 극단으로 흘러서는 안 되겠지만 인간은 주체적인 모습이 없어서는 안 된다. 주체와 객체의 바란스와 텐션을 잘 이루어나갈 때 인간이든 정치든 제대로 설 줄로 안다.   2007. 10.4
93    만세콤플렉스 (우상렬95) 댓글:  조회:4452  추천:47  2007-10-20
만세콤플렉스우상렬노무현 대통령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만세, 만세, 만만세 소리가 아직도 귀전에 쟁쟁하다. 또 한 번 조선은 참 만세를 잘 부른다는 감이 들었다. 사실 조선만의 얘기가 아니고 한국도 만세를 잘 부른다는 감이 든다. 만세 3창이 아닌가.여하튼 우리 민족은 만세를 잘 부른다. 나는 우리 민족에게 만세콤플렉스가 있다는 감이 들었다. 만세를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콤플렉스.우리 민족은 옛날 동북아세아의 광활한 지역을 무대로 활약한 줄로 안다. 기마민족 고구려의 호령소리와 날랜 말발굽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그러다가 역사는 돌고 돌아 그 호령소리와 말발굽 소리는 저 멀리로 비껴가기만 하고. 부여, 국내성, 평양으로의 고구려 수도 천도는 어쩔 수 없이 행해진 축소일로에 다름 아니다. 고구려의 멸망과 더불어 우리네 역사는 반도 속에 꼴깍 갇힌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구려는 하나의 가실 수 없는 아, 고구려의 恨으로 남는다. 그러다가 역사는 또 돌고 돌아 근, 현대에 들어서면서 북으로는 러시아, 동으로는 왜, 서로는 청, 하는 식으로 죄여오는 대국들의 등쌀에 숨 쉬기 조차 힘든 형국이 되고 만다. 결국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역사는 또 돌고 돌아 겨우 명맥을 유지했는데 대국의 틈서리에서 숨 쉬기 힘들기는 마찬가지. 현재도 그 형국은 마찬가지.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약소민족, 주변의 대국들이 못 살게 구는 약소민족. 살아남기가 바쁘다. 반만년 역사에 그렇게 많은 동이족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되 우리가 살아남은 것만도 기적이다, 기적. 감사할 일. 그런데 앞으로도 살아남을 일, 좀 유식한 말로 하면 민족, 국가의 생사존망이 가장 큰 이슈다. 대국의 그 틈바구니 속에서. 그래서 일단 悲願 하나가 생겨난다-우리나라 만세! 이것이 만세콤플렉스로 자리한다. 대한제국 만세! 그리고 3.1운동 때의 만세소리, 8.15광복 때의 만세소리가 바로 만세콤플렉스의 발산. 이 悲願, 이 만세콤플렉스는 國歌까지도 애국가라 불러야 직성이 풀린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길이 보전하세’ 여기서는 만세콤플렉스가 ‘길이길이’의 영원함으로 승화된다. 여기에 ‘하느님이 보호하사’가 업그레이드될 때 만세콤플렉스는 확실하게 확 풀린다. 우리는 고구려가 꺾이면서 천여 년의 역사에서 대국의 속국으로 많이 전락되어 왔다. 신라는 당을 섬겨왔고 고려는 송, 원을 섬겨왔고 조선조는 명, 청을 섬겨왔다. 이른바 사대외교를 해왔다. 대국의 임금은 황제고 우리는 왕밖에 안 된다.대국 황제 자리 뒤에는 용 도안이 새겨지지만 우리 왕 뒤에는 봉황 도안밖에 새겨지지 못한다. 그러니 머리를 조아리며 조공을 해왔다. 대국 황제는 만세고 우리 왕은 천세다. 만세 소리 한 번 못 듣는 우리 임금 불상도 하지. 우리네 백성들 한 맺힌다. 자기도 모르게 쌓이는 만세콤플렉스. 그러다가 1897년 대한제국의 성립 및 고종의 황제 선언은 우리의 이 만세콤플렉스를 한방에 확 날려버린다. 그런데 好景不長이라 일제가 대한제국을 밀어내고 새롭게 군림한다. 이에 새롭게 쌓이는 것은 만세콤플렉스.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이여, 부를 수도 없는 그 이름이여. 산산이 조각난 그 이름이여... 그러다가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등장하는 조선의 수령, 만세, 만세, 만만세! 우리의 만세콤플렉스를 마음껏 발산한다. 우리에게도 만세로 통하는 수령이 있다. 우리도 러시아의 ‘우라’나 중국의 萬歲와 동등하게, 아니 그것보다 더 크게 부를 수 있다. 만세, 만세에 만만세다! 기분은 한 없이 붕 뜬다. 여기에 가족적인 분위기의 어버이가 가미되니 만세, 만세, 만만세가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고 감정적 승화를 가져오며 그 도가 배가 된다. 그래서 눈물범벅이 되어서도 만세, 만세다. 금상첨화 격이니 그럴 수밖에.이래저래 우리에게는 만세콤플렉스가 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발산 차원이 아니고 통일을 이루고 민족의 집결점을 이루며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에너지로 승화시킬 때다. 2007. 10. 4   
92    지퍼를 채워주세용! (우상렬94) 댓글:  조회:4562  추천:50  2007-10-20
지퍼를 채워주세용! 우상렬나는 싸움 한번 하지 않고 잘 산다는 잉꼬부부들 부럽다. 그런데 부부 간 싸움 한번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참 기적처럼 생각키운다. 우리 부부는 종종 싸우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도 잘 붙어산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 나한테 사랑의 비결 물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한 마디 한다는 소리가 지퍼를 채워주세용!이다.우리 집 사람은 좀 보수적인 편이다. 원피스 하나만 놓고 보아도 알만 하다. 앞이나 옆으로는 빈틈 하나 주지 않고 꽉 막히고 뒤로 지퍼를 채워는 그런 옷들이다. 결혼 20년 육박에 결혼기강이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나로서는 아내가 무슨 옷을 입든 별로 신경이 안 쓰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원피스들 때문에 불똥이 나에게로 튀니 말이다. 워낙 그런 원피스는 혼자 입기에는 불편한 옷이다. 혼자 지퍼를 기껏 채워보았자 중간 등허리 부분까지가 최고 상한선일 뿐 그 이상 최고 상한선인 목덜미 부분까지는 안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아내는 꼭 내 손을 빌린다. 자기야, 하며 무조건 등을 들이밀 때 나는 입으로 시끄럽게 굴기는 … 하면서 어쩐지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스르륵 목덜미까지 지퍼를 잘도 채워준다. 은근히 너는 내 여자야! 어떤 놈이든지 다치기만 해보라, 그저 없다하면서.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한 바탕 싸우고 난 후다. 우리 집 사람은 낯이 좀 두꺼운 편이다. 내가 뿌루퉁해서 누워있는데도 자기야, 이 원피스 … 지퍼, 코맹맹이 볼멘소리로 들이댄다. 조금은 무엇해 하는 듯하면서. 나는 누구하고 한번 싸우고 나면, 가볍게 말다툼 했을 경우에도 몇날 며칠을 앵돌아져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옹졸하다. 그런데 나는 아내의 자기야, 이 원피스 … 지퍼, 이 코맹맹이 소리만 들으면 그만 신들린 사람처럼 온 몸이 나른해지면서 돌아누웠던 몸이 절로 다시 돌아눕게 되며 언제 싸웠는가싶게 그 모양 그 본새로 지퍼를 채워주고 만다. 그러면서 또 한번 심심히 느끼는 것은 부부간 싸움 칼로 물베기. 우리 집 사람은 여기에 재미를 붙였는지 나하고 싸우고 나기만 하면 원피스 지퍼를 나한테 들이민다. 추운 겨울 원피스 입는 계절도 아니건만.요새 아내는 한 술 더 뜬다. 뒤로 지퍼를 채우도록 된 치마를 입을 때도 좀 뾰루퉁한 표정으로 자기야, 하며 그 큰 엉덩이를 나한테 들이민다. 분명히 자기 절로 채울 수 있는 지퍼건만. 나는 거저 못 이기는 척하고 그때그때 대충 채워준다. 그러면 아내의 얼굴은 삽시에 환한 밝은 표정을 짓는다. 그때마다 나는 한다는 얘기가 어떤 놈이 그런 비루먹을 옷을 만든 거야, 하고 조금은 툴툴 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지퍼를 채워주세용! 옷을 만든 ‘놈’을 참 대단하게 생각했다. 사랑의 옷, 사랑의 베트랑… 쯔쯔! 귀여운 놈. 사랑의 노벨상 탈 놈! 2007. 9.29
91    物以類聚와 人以群分 (우상렬93) 댓글:  조회:5306  추천:60  2007-10-14
物以類聚와 人以群分 우상렬 연변대학 교수현재 내가 잠간 살고 있는 중경의 이 翰林景園이라는 동네는 잘 사는 동네 같다. 景園 안에는 십 몇 층의 엘리베이터 고층아파트들이 죽죽 일어서있고 놀이터에 수영장까지 갖추고 정자 아래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완연한 공원분위기다. 경비도 防盜門에 사람 지킴이에 이중삼중이다. 이런 것보다도 景園정문을 나갈 때면 유니폼을 입은 경비서는 총각들이 차렷 자세를 하며 경례를 착착 해주는 데는 좀 살맛이 난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도 보면 배가 좀 나오고 얼굴에 기름기가 돌고 배포유한 표정들을 지은 족속들이다. 여기 사람들 먹고 살만해서 그런지 개, 아니 애완견도 참 많이 키운다. 저녁에 산보 나오는 모양들을 보면 전부 애완견 한 마리 내지는 두 마리씩을 딸려 나온다. 사실 애완견은 여기 사람들만이 아니고 이 景園 밖의 사람들도 많이들 키운다. 景園 밖을 나서도 애완견 천지니 말이다. 한마디로 중경 사람들은 애완견 키우기를 좋아한다고 할밖에. 그런데 이 景園 주위의 동네들은 땟국이 덕지덕지 흐르는 올망졸망 초라한 단층이나 고물처럼 허줄하게 서 있는 2~3층짜리 재래식 층집들이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런 별 볼 일 없는 존재들 같다. 그리고 이 景園 정문 밖의 화단 가장자리에는 중경 특유의 막벌이군들인 棒棒軍이 죽 처져 앉아있고 길가로는 1원짜리 구두닦이들이 빼곡히 앉아있다. 이들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꾀죄죄하고 가련해보인다. 그리고 이들보다 좀 나아보이는 摩的나 일반택시들도 늘어서 있다. 인간먹이사슬의 한 광경인 것이다. 잘 사는 景園 안 사람들의 소비돈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景園 안의 사람들은 景園 밖의 초라하고 안쓰럽고 꾀죄죄한 건물이나 사람들로부터 은근히 더 없는 행복감을 느끼는 듯하다. 景園 안과 밖, 같은 푸른 하늘 아래 한 세상이건만 이렇게 다르게 돌아간다. 여름철 저녁 때 쯤 되면 景園  안의 사람들이 부부 동반으로 큰 파초 부채를 휘휘 저어며 산보하기가 바쁜데 景園 밖의 사람들은 돈 하나라도 더 벌겠다고 사구려를 외치며 아글타글 한다. 景園 안팎의 사람들은 분명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를 못하고 따로따로 놀아난다. 한번은 景園 정문 바로 들어서는 자그마한 광장에서 무슨 翰林景園 건립 10주년 기념으로 야외영화를 돌리는데 景園 안의 사람들은 광장에 놓인 걸상에 편안히 앉아 부채를 슬슬 부치며 편안히 보고 景園 밖의 사람들은 경비들이 죽 줄을 서 경비선을 늘인 정문 밖에서 게사니 목을 빼들고 우죽죽 영화관람을 하겠다고 야단들이다. 또 평시에 이 자그마한 광장에서 景園 안의 유한부인들이 저녁밥을 먹고 다이어트를 하느라고 춤을 추고 있을라면 景園 정문 밖에서는 못 먹어서 그런지, 일을 많이 하여 살 질 사이가 없어서 그런지 양 볼이 홀쪽한 아줌마들이 눈이 휘둥그래서 그 춤추는 모양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참 재미나는 것은 그 애완견들이다. 애완견들은 景園 안팎을 잘 가리는 것 같지 않다. 저녁 때 쯤 산보하러 나오는 주인들을 따라 정문 밖으로 나온 景園 안의 포동포동하고 보시시한 애완견들은 景園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밖의 여위고 꾀죄죄한 애완견들과 하나가 되어 돌아간다. 안의 애완견들이 달려 나오면 밖의 애완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 달려간다. 주인들이 달려가서 떼놓으려 해도 막무가내다. 주인한테 끌려가다가도 조금 틈만 있으면 서로 달려와 어울린다. 고 짧은 쇼타임이건만 어느새 사랑의 짝짜쿵도 놀아 배가 불어 오르는 놈도 있다. 참, 그들은 잘 살든 못 살 든, 깨끗하건 더럽건, 동양종이건 서양종이건를 관계하지 않는 듯하다. 그저 개면 되는 것 같다. 그들은 그저 개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그래서 내가 여기 와서 절실히 느낀 것 하나가 그 누가 말했던가-物以類聚와 人以群分. 조선조 말기 소설-<장끼전>, 과부가 된 까투리에게 뭇 짐승들이 청혼한다. 그러나 까투리는 그 많은 멋진 포로포즈의 유혹들을 다 뿌리치고 결국은 장끼한테 재가를 한다. 유유상종을 하겠단다-物以類聚. 인간의 무리는 꼭 적어도 빈곤층, 중산층, 부유층 하는 식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동병상린의 빈곤층과 안하무인의 부유층의 두 극단, 여기에 比下有餘, 比上不足의 그렇고 그런 중산층들 하는 식으로 끼리끼리 놀아난다. 빈곤층이 탁구를 하면 중산층은 테니스를 하고 부유층은 골프를 한다는 식으로. 이런 식이 장식이 되어 사회적으로도 알게 모르게 사람을 쪽 놓게 된다. 아무리 人不可相貌라 하지만 옷차림만 보고 입장불허가가 나고 고급차만 보면 허리 굽실거리고 부자동네, 달동네 하는 식으로 사는 지역에 따라 다른 대접을 하는 둥-人以群分.사실 이런 얘기는 인간 실존의 한 양상들인 종족, 민족이니 나라, 그리고 이런 것의 부산물인 종교니 신앙이니 하는 것들이 나타나면서 일종 전 세계적인 파노라마로 펼쳐나간다. 백인이니 흑인이니, 동양인이니 서양인이니 하며 우리는 서로 종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3.8선 하나 사이 두고 같은 민족이면서 나라가 달라 총부리 겨눈단다. 여기에 또 기독교권이니 이슬람교권이니 하며 몇 천 년의 앙숙의 역사가 펼쳐진다. 이런 비극의 역사는 현재 확장 진행형이다.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의 쪽 놓기, EU 등 일련의 블록화, 인간의 골은 깊어만 간다. WTO도 어쩌면 선진국의 횡포다. 보편적인 인류 정의의 대표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UN이 있기는 하나 그것이 무색해질 때가 많다. 나는 국경, 비자, 불법체류니 하는 것들을 인간의 가장 서글픈 한 형태로 본다. 인간이 이 세상에 왔을 때 무슨 국경이요, 비자요, 불법체류요 하는 것들이 있었겠는가? 인간은 人以群分이라 요렇게 울타리를 치고 내국인이요, 외국인이요, 합법체류요, 불법체류요 하며 한바탕 수다를 떨어야 직성이 풀리는 법인가. 나는 그 어느 나라를 입국하기 위해 비자를 받거나 통관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그 시각보다 답답하고 서글퍼날 때가 없다. 특히 턱 없이 문턱이 높은 이른바 선진국의 비자를 받거나 입국을 서두를 때는 더 그렇다. 사실 멀리 것을 얘기할 필요 없고 나는 코앞의 두만강을 대하기만 하면 그것은 아직도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밖에 안겨오지 않는다. 그러나 내 일 개인으로서는 무자비하게 해대는 그런 국가의 ‘횡포’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무정부주의자가 되고픈 충동을 자주 느끼곤 한다. 나라고 국가고 무엇이고 다 때리부시고 싶다. 나는 국가들의 ‘國歌’를 우습게 본다. 이런 ‘國歌’들이 우리나라의 우리를 각인시키면서 얼마나 매정한 비인도주의적으로 흐르게 하는지 모른다. 저 어느 곳에 국제여객항공기가 하나 추락했다. 시문기자요, 라디오기자요, TV기자요, 무릇 기자라는 놈들은 다 달려가 한다는 얘기가 ‘전원 사망’이요, 어쩌고 안쓰러운 소리를 하는 듯하다가 ‘그 속에 우리나라 탑승객은 없었다’라고 하거나 좀 더 무지막지한 놈은 한 술 더 떠 ‘다행’이라는 말꼬리까지 내뱉는다. 가장 객관적인 보도를 해야 될 기자들이 ‘우리나라’에만 기울어지니 일반 무지랭이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 인간은 동물을 우습게 보지만 분명 동물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한다. 적어도 物以類聚를 배워야 한다. 동물지간에도 왜 싸움이 없겠느냐만은 동종끼리는 절대 죽기내기 정도로 하지 않는다. 속임수를 쓰지 않는 공정한 룰 속에서 강자와 약자의 판정승일 뿐이다. 우리 인간들처럼 허망한 그 어떤 이념에 놀아나 한 번 싸운다 하면 몇 백만 내지 몇 천만이 죽어나는 그런 싸움은 아니다. 동물은 분명 우리 인간들처럼 群分이 아니라 끈끈한 동류의식 속에 서로 쪽 두지 않는 그런 類聚를 한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도 실천은 잘 안되었을망정 적어도 이념이나 이상으로 그런 ‘物以類聚’가 있어 왔다. 인간의 올된 이성이나 양지가 그렇게 시켰다. 기독교나 불교 같은 종교, 하느님이고 부처고 무어고 떠나 한마디로 말하여 사랑이다. 인간지간의 사랑이다. 바로 테러사 수녀가 헌신적으로 실천한 이 세상 가장 어려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사랑. 프랑스 19세기 낭만주의대가 빅또르 · 유고, 그가 ‘비참한 세계’에서 보아낸 것은 다름 아닌 인간 화해의 사랑의 감화, 19세기 러시아의 유명한 사실주의대가 톨스토이, 그가 ‘부활’에서 보아낸 것은 인간 개개인의 도덕적 자아완성, 杜甫, 중국 唐나라 시기 유명한 시인, 그가 ‘茅屋爲秋風所破歌’에서 보아낸 것은‘安得广夏千万间,广庇天下寒士尽欢颜。’이것을 보편적 인도주의, 아니 추상적 인도주의라해도 좋다. 오늘날 글로벌시대니 뭐니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도 人以群分의 인간소외가 심한 이 시점에서 그것은 더 없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나는 사회주의를 좋아한다. 일단 공유제 하나만이라도 자본주의 사유제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재부는 원래 우리 인간의 공동재산이거늘 거기에 무슨 놈의 이 땅이 내 것이고 저 산은 니 것이요고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서로 돕고 이끄는 인간의 화기애애한 관계가 좋다. 그리고 자기 재간 껏 일하고 수요 껏 배분한다는 인간의 대동사회로서의 공산주의사회가 좋다. 그 반면에 자본주의는 너무 돈, 돈, 돈이다. 돈이 가치판단의 모든 척도가 되고 돈에 의해 인간이 쪽 지어진다. 자본의 투자와 이윤 논리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생존경쟁 그 자체. 인간의 동질성에 기초한 따뜻한 융합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최저 생활금을 보장하고 세금 메커니즘에 의해 부유 상류층에 세금을 많이 안겨 빈곤 하류층에 풍기고 빈곤 하류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기 바쁘다. 대통령이 하는 일 가운데 이것이 주요한 일인 줄로 안다. 人以群分을 막는데 비교적 효과적인 것 같다. 그래서 사회주이고 공산주의가 이념이나 이상형에 치우치고 실천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기술적으로 막아주는 듯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서로 간의 프러포즈에 의한 제3의 길이 필요하다. 그것이 복지사회주의건 복지자본주의건 관계없다. 人以群分의 비극을 갈무리하는 융합을 가져오면 되니깐. 현재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여 그래도 희망적이다.  2007. 9. 29
90    마초이즘(machoism) (우상렬92) 댓글:  조회:4462  추천:50  2007-10-14
마초이즘(machoism) 우상렬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 남자들이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모르게 주입된 남자됨의 깡다구다-마초이즘. 남자라는 게 울기는, 아버지의 한 마디에 우리는 대뜸 눈물을 닦았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그거 떨어진다, 할머니의 한 마디에 우리는 부엌에 들여놓았던 발을 대뜸 거둬들인다.그럼 남자다움은 누구를 위한 것이지? 여자. 우리는 여자 앞에서남자다워진다. 아니, 남자다워지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무의식이 먼저 알아 그렇게 행한다. 우리는 색시를 얻어도 꼭 자기보다 한 둬서너 살 어리고 키도 자기보다 좀 작으며 학식이나 학벌, 나아가서는 집안도 자기도다 좀 못한 여자를 선호한다. 바로 이런 여자 앞에서 우리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도 남자인 내가 더 낫지, 그래서 남자인 내가 보호하고 아껴줘야지, 하는 남자다움의 깡다구가 살아난다-마초이즘.나는 미국 할리우드의 근육질이 불끈불끈 살아나고 불사조가 되어 일당백의 기세로 뚜르룩 해제끼는 영웅이 미녀를 구하는 영화나 이것을 이어받아 역시 영웅+미녀 패턴의 周潤發이나 劉德華 영화의 매력도 그들 남자다움의 깡다구-마초이즘에 있는 줄로 안다. 이런 남자다운 깡다구가 넘치는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남자다움에의 향수를 느끼고 여자들은 든든한 핵우산의 포근함을 맛본다. 그러나 현실의 마초이즘,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일종 강박관념으로 되어 우리를 죄어온다. 우리는 이 강박관념에서 홀가분해져야 한다. 마초이즘은 워낙 물리적인, 육체적인 힘의 논리가 통하는 전 근대적인 유물의 냄새가 많이 풍기거늘. 현대는 소프트시대. 마초이즘이 와그르 무너지기도 한다. 연상의 여인을 찾아 포근한 젖가슴에 안기는 마마보이 같은 애숭이들이 속출함에라! 힘든 현실에서 우리의 다른 한 무의식이 살아난다. 여기에 남자들 뺨칠 정도의 女强人도 속출함에라! 우리에게는 이제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현대는 포스트모던적인 섹슈얼크로스시대. 그러니 識時務者俊傑라 굳이 외곬으로 흐르는 원색적인 마초이즘이 아니고 유연하고 원만한 마초이즘이 필요하다.2007. 9.10  
89    내 이름은 아Q (우상렬91) 댓글:  조회:4563  추천:41  2007-10-14
내 이름은 아Q우상렬중국 사람치고 아Q하면 기분 좋아할 사람 없다. 중국 사람들에게 아Q는 그렇게 못나 있다. 나도 아Q를 우습게 보아왔다. 중학교 때 <아Q정전>을 배울 때 머저리 아Q하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요새 내가 점점 아Q를 닮아가니 참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아Q, 너는 누구냐? 뿌리칠 수 없는 혼령이여!이 세상 사람들 돈 잘 벌어 떵떵 거리며 사는데 나는 돈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한다는 얘기가 요새 돈 잘 버는 놈 개아들 놈이나 잘 벌지, 나 같은 정인군자는 별 수 없지.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뱉는 말이 그 잘난 개도 안 먹는 돈, 나도 안 먹는단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내 인생 한 자리 하기는 다 글렀다. 四十不惑라 적어도 40대 초반이면 한 자리 한다고 하든데 나는 내일 모레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 벼슬꼬리도 못 쥐었으니 거저 요 모양 요 대로 살밖에. 그래도 속은 내려가지 않아 한다는 얘기가 우리 8대 조상도 벼슬을 했다 말이요. 우리 집은 중앙에 모모씨하고 친척이다 말이오. 우리 집도 정말 양반이다 말이요. 그 잘 난 벼슬, 하기 싫단 말이요.영웅호색. 나도 영웅이다. 이 세상 고운 여자들 다 차지하고 싶다. 내 주위에 3천 궁녀를 만들고 싶다. 그런데 그것은 그림에 떡. 그래서 나는 꿈의 신기루를 쌓는다. 오늘은 이 미녀와 내일은 저 미녀와...나는 글을 잘 못 쓴다. 그래서 글 잘 쓰는 ‘놈’들 보면 배가 아프다. 文人相輕, 이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문인 축에도 못 드니 말이다. 그래서 한다는 얘기가 너희들 밥 먹고 할 일 없냐? 그 잘난 글 쓰는 꼬락서니라구야! 그렇게 쓰면 누가 못 쓰나. 나는 눈 감고도 쓰겠다. 안 쓰서 그렇지. 참!나는 오늘도 터벅터벅 6층 집을 올라간다. 힘이 들다. 그래서 생각한다는 것이 누가 1층집을 못 들어 6층집을 드는 줄 아냐? 누가 엘리베이터 있는 집을 못 들어 이렇게 터벅터벅 하는 줄 아냐? 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지. ...아Q가 되면 요렇게 편한 데가 있는걸. 그래 아Q로 남을 것이냐? 남기도 하고 떠나기도 해야지. 2007. 7. 10
88    홰불축제(火把節) (우상렬90) 댓글:  조회:4921  추천:41  2007-10-10
홰불축제(火把節) 우상렬이번 방학 간 우연한 기회에 雷波縣 정부의 초청을 받아 火把節라는 것을 구경할 수 있어서 내 생에 또 하나의 두고두고 흥분과 기쁨을 더 할 소재를 만들어서 좋았다.   雷波縣은 사천성 남쪽에 있는 凉山彝族自治州에 있다. 金沙江을 사이에 두고 운남성의 永善縣과 마주보고 있다. 나는 같은 소수민족 처지라 해서 그런지 일단 彝族에 대해 구미가 버쩍 동했다. 彝族, 약 3백만 인구에 사천 凉山지구에 많이 사는데 줄곧 노예제사회에 머물러 있다가 새 중국이 성립되면서 하루아침에 ‘一步跨千年’을 하여 사회주의사회로 들어섰다고 한다. 彝族의 彝자는 바로 위로는 쓰고 살 집, 중간에는 먹을 쌀과 입을 옷, 아래는 부엌을 나타내는 글자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당년에 모택동이 이 彝자를 이렇게 풀이하면서 彝族의 휘황찬란한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고 한다.   火把節는 彝族의 전통적인 축제라고 한다-驅蟲祈福과 스스로 즐기는 축제. 凉山彝族自治州의 수부인 西昌에서는 이미 국제적인 명절로 부상하여 이번 8월 6일을 기해 제5차 중국 凉山彝族國際火把節狂歡夜를 가졌다한다. 적어도 3년마다 이런 火把節狂歡夜를 한 번씩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중심에는 火把廣場까지 만들어 놓았다. 雷波縣은 이번 8월 29일을 기해 처음으로 火把節를 개최한단다. 그래서 사람들 많이 들떠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들은 자기네 火把節를 아예 東方狂歡節이라고 부른다. 彝族들은 축제 전날부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화려하고 천, 지, 인이 잘 조화된 뜻 깊은 민족복장으로 단장을 한다. 彝族 여자들의 머리에 얹는 기와장 모양의 머리장식이 참 인상적이다. 그리고 우리 남자 한복 가랑이를 뺨칠 정도로 무지하게 넓어 치마를 방불케 하는 남자들의 바지와 이마를 비롯한 머리가장 둘레를 머리테처럼 감아싼 듯한 둥근 모양의 검은 모자에 오른 쪽 옆으로 삐죽이 나온 뿔 모양이 참 인상적이다. 그리고 여느 명절 때처럼 소나 양을 엎어 잡는다. 그리고는 집안끼리 모여 그 소나 양을 먹어주기란다. 彝族들은 가문, 집안 의식이 대단히 강하다한다.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온 가문, 집안이 한데 모여 북적인다한다. 내가 이들 모임에 가보니 이들은 아직도 형님, 동생 부어라, 먹어라 하며 태고적 인심이다. 그리고 이들이 먹는 방식이래야 양념을 약간 곁들인 삶은 大塊大肉를 뜯거나 삶은 감자나 옥수수를 먹는 지극히 간단한 조리법의 음식들이었다. 술은 또 얼마나 잘 마시는지 부어라, 마시라 모두들 근들이다.       火把節 당일 오전 9시부터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雷波縣 공설운동장 주위로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서고 운동장 가운데 민속공연팀들이 도열하자 모모한 분의 火把節 선포와 더불어 주석대 모모한 분들이 죽 내려와 운동장 중간에 설치한 높이 3-4미터 받침대에 놓여진 직경 1-2미터 크기의 나무무지에 손에 든 작은 횃불들로 불을 지핀다. 삽시에 횃불이 확 타 오른다. 운동장은 온통 환호성이다. 풍선이 날아오르고 비둘기가 우르르 날아간다. 그 다음 모모한 분들의 한 바탕 축하연설이 있은 후 민속공연이 펼쳐진다.   민속공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孟獲무사대가 전신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하고 방패와 번쩍이는 검을 들고 베고 막고 하는 무예쇼는 그럴 듯 했다.『삼국연의』의 제갈량의 ‘七擒七縱’에 나오는 孟獲이 彝族 무사들의 神인 것이다. 孟獲의 사당이 중국의 3번째 高山深水湖로서 경치수려한 馬湖에 있다. 그들은 제갈량의 ‘七擒七縱’을 소설적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부정한다. 그리고 彝族의 전통적인 혼속을 반영한 공연이 참 재미있었다. 일단 처녀총각지간에 프러포즈의 情歌가 오가고 서로 눈이 맞아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신부 집으로 간다. 그러면 신부 집 사람들은 물을 뿌리며 신랑 쪽 사람들을 막는다. 그렇지만 신랑 쪽 사람들이 용감무쌍하게 밀고 들어가 신부를 빼앗아낸다. 이른바 搶婚 형식이다. 그렇지만 신랑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신부에 대해서는 신랑 쪽의 가까운 사람이 신부를 업어서 모셔 들여야 한다. 이외에 彝族 전통적인 처녀들의 노란 양산춤이나 물 긷기 춤도 정말 근사했다. 괴성을 지르고 이상한 동작을 하며 귀신들을 쫓는다는 무당들의 춤도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기상천외의 맛이 있었다. 오전은 이러루한 재미나는 민속공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으로 ‘신선놀음’을 했다. 오후는 각종 경연이 벌어진다. 彝族미녀선발대회, 민요경연대회, 彝族민속씨름경연대회, 경마경연대회, 소싸움, 양싸움, 그리고 蘇尼들의 특기쇼 등이 이어진다. 彝族 鬪鷄도 유명하다던데 이번에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빠졌다. 이런 경연들은 세 장소에 나뉘어 진행되는데 시간상 관계로 동시에 진행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걸 보자면 저걸 못 보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나는 주저 없이 먼저 彝族미녀선발대회로 달려갔다. 내 같이 엄큼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아니, 미에 대한 흥취는 사람들 살아있다는 징표니 곱게 봐주자. 彝族 전설 속의 미녀 呷嫫阿妞조각상이 있는 锦屏광장의 야외대회장은 어느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래도 나는 VIP佳賓이라 좋은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일반 彝族 여자들을 보니깐 고산지대 자외선이 센 곳이라 그런지 얼굴이 좀 붉어스레하거나 감장색을 띠어 피부색은 별론되 했는데 여기에 나온 미녀들은 정말 월드미스선발대회에 내놓아도 추호의 손색이 없을 정도로 미녀, 미녀들이다. 彝族 미녀는 雷波縣 옆에 있는 凉山彝族自治州에 속하는 屏山縣에서 많이 난다고 한다. 햇살이 너무 눈을 시려 미녀들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없어 아쉬움을 느꼈는데 그날 저녁 연회에 이 미녀들이 와서 술 한 잔씩 부어주고 민요 한 곡씩을 불러주니 정말 평생원을 껐다. 彝族 미녀선발대회에 이어 진행되는 민요경연대회도 계속 보고 들었다. 독창, 對唱, 組唱, 다양한 방식의 경연이었다. 그런데 민요를 부르는 아가씨들을 보니깐 앞에서 미녀선발대회에 나왔던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彝族은 미녀들도 노래를 참 잘 부르고나라고밖에 결론지을 수 없었다. 彝族 민요의 특성은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소리로 톤을 매우 높게 떼는 만큼 고음일색인 것 같다. 그리고 여자들의 음성이 특히 명랑하고 맑진데 있다. 모르긴 해도 톤을 좀 낮게 떼고 점점 고음으로 올라가되 어딘가 모르게 쓸쓸함이 묻어나며 탁한 감을 많이 주는 우리네 선율하고는 정반대인 것 같다. 그 원인을 물었더니 彝族 민요는 金莎江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던 노래라는 것이다. 사품치는 金莎江 물소리를 누르자니 그렇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雷波縣은 중국 彝族민요의 고향으로 이름이 나 있다. 彝族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민요를 잘 부르는 것은 정평이 나 있다.   민요경연이 마무리되기 바쁘게 나는 부랴부랴 공설운동장으로 달려갔다. 蘇尼들의 특기쇼를 보기 위해서다. 재수가 있을라니 공설운동장에서 경연이 좀 늦어지다 보니 소싸움 막판에 양싸움이 시작될 판이다. 소싸움이나 양싸움은 출전 소나 양의 주인들이 자기 소나 양을 부추켜 상대방의 소나 양과 정수리를 부딪치는 것으로 판정승이 난다. 소나 양은 정수리를 부딪쳐봐서 적수가 자기보다 한수 위에다 싶으면 두말없이 물러서 달아나는 것으로 깨끗한 승복을 한다. 그러면 이긴 놈도 더 쫓지는 않는다. 우리 인간이 한수 배울 바가 있다. 소싸움은 우리 연변 도문에서 진행한 상황과 비슷하다. 소싸움에 이어 양싸움이 벌어지는 사이에 운동장 한쪽  켠에서는 불무지 세 개가 활 타오르고 있었다. 蘇尼들의 특기쇼를 준비하는 중이다. 양싸움이 끝나자 蘇尼들의 특기쇼가 시작되었다. 먼저 오른쪽 불무지와 중간 불무지 옆에 각기 좀 나이 지긋한 蘇尼와 젊은 蘇尼가 앉더니 소고를 뚜드려대며 주절주절 주문을 외운다.   이 사이에 조연들이 불무지들을 뚜져 타나남은 나무토막들을 걷어내고 시뻘건 숯만 남은 불무지를 고루고루 잘 다진다. 숯밭을 만든다. 이때 쯤 되면 두 蘇尼의 소고 뚜드리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주문 외우기도 더 빨라진다. 이렇게 빨라, 빨라지면서 그들의 몸도 부르르 떨더니 신이 드는가 싶다. 드디어 그들은 펄펄 뛰기도 한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그런 경황 속에서도 그들은 자기가 신은 신발을 벗는다. 그리고 양말도 벗는다. 그리고는 맨발상태에서 또 한바탕 뚜드리고 외우고 뛰고 야단법석을 피우더니 그 붉은 불이 이글거리는 숯밭을 걸어갔다 걸어왔다 한다. 삽시에 운동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람이 신들리면, 제 정신이 아닐 때는 저런 기적 같은 일도 해내구나하고 나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불무지의 두 蘇尼의 특기쇼를 보고는 사실 이것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구나, 정말 특기쇼의 일종 뉴스에 불과한 걸 하는 감이 들었다. 그럼 마지막 불무지의 蘇尼들이 어떤 특기쇼를 하는가하면 그 불무지에서 일단 벌겋게 단 보습날(우리의 보습날보다는 좀 작고 폭도 좁다)을 꺼낸다. 그리고는 두 蘇尼가 집게로 보습날을 집고는 노려보며 ‘붇다붇다’라는 주문을 반복적으로 외운다. 그러다가는 광천수를 한 모금 입에 넣고는 보습날에 확 뿜는다. 그러자 흰 김이 확 피어오른다. 그러면서 ‘붇다붇다’라는 주문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또 광천수 한 모금 뿜고 ‘붇다붇다’ 외우기를 반복하더니 기상천외의 쇼를 펼친다. 혀를 날름거리더니 그 뜨거운 보습날을 핥는다. 신경이 곤두서는 순간들이다. 그리고는 혀를 쑥 내밀어보인다. 별일 없다는 것이다.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이번에는 맨발로 보습날을 힘껏 비벼댄다. 그리고는 맨발바닥을 쓱 들어서 보인다. 발바닥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蘇尼들의 특기쇼가 끝나자 쇼장소를 정리하던 조연들이 보습날에 물을 부어 식히는데 그때까지도 보습날에서 흰 김이 확 피어올랐다. 그날 이 蘇尼들의 특기쇼가 절정을 이루었는데 중앙텔레비며 각종 매체들이 취재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蘇尼, 蘇尼 하니 무언가 했더니 우리네 무당들하고 비슷하다. 우리네 무당들이 대개 여자로서 일인다역으로 이런 특기쇼도 했다면 蘇尼들은 대개 남자로서 전문 특기쇼만 한다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거나 벽사기복의 행사를 하는 司祭者는 별도로 따로 있다는 것이다.   날이 어두무레해지는 저녁 정각 8시, 정말 火把節 이름에 걸 맞는 횃불축제가 시작된다.   일단 彝族의 전설 속 呷嫫阿妞미녀조각상이 있는 锦屏광장에 사람들이 모인다. 정각 8시가 되니 광장 중간에 큰 횃불이 타오른다. 현장을 비롯한 모모한 분들로부터 각기 손에 든 작은 횃불에 불을 단다. 그 다음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불을 단다. 불을 달고는 두 줄로 서서 현장을 비롯한 모모한 분들의 뒤를 따라 공설운동장으로 향한다. 횃불은 대개 사천지역에 흔한 대나무로 만든 것이 대종을 이루었다. 대나무 끝에 참대조각이나 나무조각들을 붙들어매고 그기에 불을 부치는 그런 식이였다. 锦屏광장으로부터 공설운동장까지 가는 데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이 두 갈래 길은 온통 횃불을 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높은데서 보면 마치 두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듯 했을 것이다. 정말 헬레곱타라도 타고 이 광경을 봤어야 되는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도 횃불을 높이 들고 대열 속에 끼어들었다. 한 낮의 더위가 아직 식지 않고 확확 열기를 내뿜건만 사람들의 흥분의 도가니와 타오르는 횃불은 한 낮의 열기를 쫓아낸 듯했다. 以熱治熱, 여하튼 사람들은 더위를 까맣게 잊고 희희닥닥 거리며 주거니 받거니 웃음꽃을 피우며 걸어 나갔다.   일부 사거리 같은 데서는 어느새 사람들이 던진 횃불로 작은 불무지가 이루어지고 그 불무지를 중심으로 알든 모르든 처녀총각들이 손에 손을 잡고 어울려 둥근 원을 그리며 彝族 특유의 達體舞를 추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횃불을 아래위로 흔들어대고 환호성을 울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약속된 공설운동장으로 들어서니 어느새 인산인해. 날은 완전히 저물었고 하늘에는 둥근 달이 뜨고 별들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한동안 북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네 뎃 곳에 불무지가 타오른다. 사람들은 손에 쥔 타나 남은 횃불을 그 불무지들에 던져 넣는다. 어느새 곡이 꽝꽝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각기 불무지를 둘러싸고 약속이나 한 듯이 손에 손 잡고 達體舞를 춘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우~ 우~ 괴성을 질러댄다. 達體舞는 추기 참 좋다.   그저 손에 손 잡고 불무지를 빙빙 돌되 곡에 맞추어 두발을 번갈아 가면서 앞뒤로 차면 된단다. 처음 내가 어리벙벙해 하니 내 손을 잡고 추던 彝族 복장을 입은 고운 처녀애가 깜찍한 동작까지 해보이며 그렇게 살듯이 알려준다. 그래서 한번 해보았더니 그 처녀애 말대로 쉽게 추어졌다. 達體舞 추다보면 연애도 쉽게 이루어진다던데 정말 연애충동이 불끈불끈 솟아났다.   내 손을 잡은 彝族 복장을 입은 고 고운 처녀애하고 연애를 하고 싶었다. 내 친구 한 놈은 중앙민족대학교를 다녔는데 바로 彝族年마다 학교 캠퍼스 안에서 추는 達體舞가 인연이 되어서 멋진 彝族 처녀와 연애도 해보았단다. 나는 그 친구한테 얼마나 시샘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래 오늘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차례지는 것은 아닌지. 나는 흥이 도도해졌다. 그래서 붉은 불에 상기된 내 곁의 고 고운 彝族 처녀애를 한번 훔쳐보았다. 순간 나는 너무 실망하고 말았다. 나의 마음은 삽시에 주저 않고 말았다. 고 여자애가 너무도 애티났던 것이다. 이제 한 열 몇 살이나 되겠는지, 처녀라기보다는 소녀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낫겠지. 연애하기에는 너무도 나이를 많이 먹고 너무도 밉게 훌쩍 늙어버린 나. 나는 제풀에 그만 한풀 꺾이고 말았다. 그리고 고 도덕관념이요, 윤리관념이요 하는 것들이 나를 꽁꽁 얽매놓는다. 정말 나는 고 소녀의 야리야리한 작은 손을 잡기조차 민망해났다. 참, 못난이 같으니라구!   達體舞를 출 때 중간의 활활 타오르는 불무지는 나에게 태양으로 안겨왔다. 그리고 그 불무지를 빙빙 도는 우리는 마치 태양을 싸고도는 달 같이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우리의 달춤-강강수월래가 생각키웠다. 정말 達體舞와 우리의 강강수월래는 비슷한 데가 있다. 손에 손을 잡고 빙빙 돌며 원무를 추는 것이 비슷하다. 그리고 그 정열이나 활력 면에서도 비슷하다. 그런데 남녀가 손을 잡고 불무지를 중심으로 거저 돌기만 하고 변화가 적은 것이 우리와 다르다. 달의 이지러지고 차는 모습을 나타내는 강강수월래의 역동성이 없다. 그러나 돌고 돌다 나면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고 몇 겹의 원을 이루어 추는 중층의 원무는 彝族 여자들이 입은 치마에 밑으로부터 위로 몇 겹으로 색무늬결이 올라간 모양을 방불케 한다. 達體舞는 彝族 여자들이 춤을 출 때 치맛자락이 날리며 그 무늬결이 빙빙 돌아가는 모양새 같기도 하다. 나는 이 達體舞를 추다가 또 자기도 모르게 조선의 4.15태양절 김일성광장에서 추던 청춘남녀들의 원무가 생각키웠다. 원무는 원무니까 達體舞와 비슷한 데가 있다해야 하겠다. 그런데 조선의 원무는 達體舞보다 이듬이 약하고 절주가 좀 느리다. 그러나 ‘옹해야!~’, 처녀총각 손을 잡고 원무를 추되 전통민요 가락에 맞추어 처녀총각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 짝이 되어 돌아가기도 하는 역동성이 있어 좋다...   중간의 불무지의 불도 얼마간 사그라지고 사람들도 어지간히 기진맥진한듯하다. 그런데 바로 이때 예포소리가 연발 하더니 하늘 공중으로 오색찬란한 무지개 색갈의 예포들이 앞다투어 터지면서 온 하늘을 온갖 꽃무늬로 장식을 한다. 그리고 그 꽃무늬의 줄기들은 우리 머리 위로 축복의 구술 알이 되어 떨어지는 듯하다. 순간 너무도 황홀한 정경에 사람들은 達體舞를 추던 손발을 멈추고 너도나도 아~ 환성을 지르며 하늘을 장식하는 꽃무늬들을 보느라고 모두들 머리를 뒤를 젖혔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하늘에 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꽃무늬들도 원무를 추고 있지 않는가. 사람들은 다시 손을 잡았다. 다시 達體舞를 추기 시작했다. 머리 위 하늘에 예포는 계속 터지고 꽃무늬 원무도 계속되고... 땅 위 사람들의 達體舞도 계속되고... 하늘과 땅이 하나의 원무가 되어 돌아간다. 그런데 불무지의 불은 마지막 열과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그 마지막을 아쉬워하며 達體舞를 더 빨리, 더 힘껏 추댄다. 일종 광란의 도가니에 빠지는 듯하다. 東方의 狂歡節이라는 말이 몸에 와 닿는 순간이다. 그런데 哪有不散的宴席呀! 불무지는 사그라지고 사람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체 흩어진다. 젊은이들은 괴성을 질러대기도 한다.   그렇다. 횃불은 사그라졌다. 그러나 사람들 마음속의 횃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마음의 횃불을 계속 활활 태우고 있다. 彝族들의 열정적인 손님접대에서 나는 이 횃불을 보았다. 彝族들의 정열적인 사랑에서 나는 이 횃불을 보았다. 彝族들의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나는 이 횃불을 보았다.  
87    학위콤플렉스 (우상렬89) 댓글:  조회:4701  추천:49  2007-09-27
학위콤플렉스우상렬동물은 학위콤플렉스가 없어서 참 좋겠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참 많은 콤플렉스를 만들어간다. 학위콤플렉스가 그 중의 하나. 요새 한국에서 가짜학위파문으로 시끌벅적한 것은 그 한 보기. 사실 그리 시끌벅적할 것도 없다. 학위 일방통행사회에서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사건이 우리의 학위콤플렉스를 자극하면서 학위가 뭐길래하는 생각을 해보게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쩌면 이런 콤플렉스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하나하나의 통과제의인지도 모른다. 학위콤플렉스를 보자. 너도나도 똑똑하단다. 그러니 머리만 까딱 놀리고 입만 냠냠 놀리며 큰 떡 먹겠다고 개미떼처럼 몰리기. 그래서 똑똑度 차원에서 레벨을 두는 학위제도라는 것을 내왔지.   그리고 바로 이 맹목성이 없지 않아 있는 학위제도건만 현실에 안주하고 나태하기 쉬운 인간을 분발하고 향상하게 하는 하나의 기폭제이기도 하지. 옛날에는 소학교만 졸업해도 대단한 학위 맞잡이였는데 현재는 대학교가 다 뭐야, 석사, 박사가 줄을 서 있다. 여기에 또 박사후(포스트닥)라는 것이 척 죽 치고 앉아 있다. 정말 이 산 올라가면 저 산 높고 저 산 올라가면 또 ...... 끝없는 학위의 바벨탑, 바라보기조차 아득하다. 그러나 인간은 이로부터 큰다.  그런데 이런 콤플렉스가 분명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런 콤플렉스를 날려버릴 방법을 생각해본다. 우선 학위를 우습게 보자. 학위가 빛 좋은 개살구일 수 있다는 거, 기억하자. 턱걸이 하듯이 겨우 학위를 딴 것도 있다는 거, 기억하자. 그럭저럭 내지는 얼렁뚱땅 학위도 있다는 거, 기억하자. 여기에 좀 더 심하면 가짜 학위도 있는 법. 결론적으로 학위는 별 볼일 없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학위 없이도 대성을 하여 명인이 되고 위인이 된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학위제도는 현재 별 수 없이 취하게 되는 인간사회의 苦肉제도의 하나. 그러니 학위를 위한 학위, 학위를 위해 전 생을 거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한다. 앞으로 학위제도가 없는 사회가 오겠지! 그럼 학위콤플렉스는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그리고 眞才實學가 진정으로 통하는 사회가 올 것이다. 한국에서 고시시험 때 학위고 자시고 오로지 그때 시험성적에만 따라서 인재를 선발하기, 그리고 일부 대기업에서 고정관념을 깨고 무슨 졸업증이고 학위고 자시고 실무시험이나 실제 면접시험을 통하여 직원을 채용하는 것은 학위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한 길을 틔운 셈이다.    우리 한번 기대해보자!  
86    농민콤플렉스 (우상렬88) 댓글:  조회:4694  추천:58  2007-09-27
농민콤플렉스우상렬 인간은 이 세상에 와서 땅을 뚜지는 것으로 기본 생계수단의 하나로 삼아왔다. 그래서 背朝天, 脸朝地, 농민이 생계를 위하여 치르게 되는 고역이다. 노동의 신성함이고 자시고 땅뚜지기는 일종 고역이다. 햇빛에 얼굴은 가마 잡잡해지고 ‘베적삼이 흠벅 젖는 것’이 우리 농민의 자화상이다. 농민 스스로가 주눅이 들어 허리 굽혀진다. ‘시내놈’에 비긴 스스로의 자조 섞인 ‘우리 촌놈...’, 우리 어릴 때는 중국의 10억 인구에 8억이 농민. 物以稀爲貴 차원에서도 농민은 많은 것이 문제라 천대꾸레기. 그래서 자연히 쌓이는 것이 농민콤플렉스. 내가 소학교에 다닐 때다. 우리 집은 워낙 시교에 있은 지라 내가 다닌 학교에도 工人(그때 우리는 노동자를 이렇게 불렀음) 자제와 농민 자제가 섞여 있었다. 그때는 工人階級이 領導一切할 때라 그 기세가 욱일승천할 때다. 학교에까지 工人선전대가 들어오고.그래서 우리 소학교에서도 工人자제들은 좀 우쭐렁거린다. 그 대신 우리 농민자제들은 기가 죽는다. 그때 工人자제나 농민 자제를 판단하는 데는 겉모양만 보고도 곧바로 알 수 있다. 工人들은 대우가 좋은지라 그 자제들은 얼굴도 해맑고 옷도 깔끔하다. 그러나 우리 농민자제들은 얼굴도 디디하고 옷도 데데하다. 그때 쩍 하면 工人호구나 농민 호구를 조사한답시고 工人호구 손 들엇, 농민호구 손 들엇 하던 선생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工人호구 손 들엇 하면 工人호구 자제들은 기분이 좋아 손을 높이높이 들지만 농민호구 손 들엇 하면 농민호구 자제들은 기분이 잡쳐 손을 보일락말락하게 든다. 나는 그때 학교운동대회가 제일 싫었다. 그때는 운동대회를 할 때면 학부모들이 동참하도록 되어 있다. 바로 이 운동대회 때 나는 주눅이 든다. 우리 ‘촌놈’ 부모들은 너무 겉늙었고 시커멓고 데데하다. 여기에 반비례하여 ‘시내놈’ 부모들은 젊어 보였고 희어멀끔하고 깔끔하다. 이는 우리 ‘촌놈’ 부모 자제들을 기죽인다.   전 사회적으로 죽으나 사나 工人階級이 되고 볼 판이다. 그때 농민이 工人으로 되는 것은 일대 출세! 工人이 되면 皇粮을 먹게 되고 이런저런 부대적인 대우도 받게 된다. 그래서 농민들은 목을 쭉 빼들고 工人을 쳐다본다. 그리고 농민자제들은 너도나도 군에 지원한다. 군에 갔다 오면 대개 工人으로 직업배치를 해주기 때문. 그러다가 대학문이 열리자 죽기 살기로 모여든 곳이 대학입시. 光宗耀祖고 자시고 그저 대학에 입학하여 촌놈 딱지를 떼는 것이 유일한 소원. 내가 대학에 입학하니 모두들 축하한다는 말이 출세했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 개천에서 용이 나듯 촌놈 딱지를 떼어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해 보니 우리 반에는 이 촌놈 딱지를 떼기 위해 대학시험을 네댓 번 친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그때 처녀들도 工人에게 시집가기가 붐. 工人이면 코가 눈덩에 붙었어도 장가는 가는 세상.   오늘날 工人이 下崗하는 세상, 그 대신 농민이 農民工으로 부상.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농민콤플렉스를 떨쳐버리는 듯하여 좋다.   어느새 우리 중국의 농촌이 근대화 바람을 타고 도시화에로의 박차가 가해지고 있는 듯하다. 새 농촌 건설의 국가적 정책과 더불어 아스파트길이 쭉쭉 들어오고 기와집이 쭉쭉 일어선다. 눈에 띄는 하드는 그럴듯하다. 이른바 새 중국이 성립되어서 공산주의 실현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농민과 工人의 차이, 농촌과 도시의 차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이 등 3대  차별 가운데 첫 번째, 두 번째 차별소멸을 실현하는 듯하다. 많은 곳에서 농촌호구와 도시호구 구별제를 폐지하고 있다. 전국 각 곳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는 農民工 및 이들에 대한 권익보호는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현재 내가 있는 중경에서는 농촌인구의 도시진출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데 어떤 데서는 정착금에 장려금까지 준다고 한다. 농민 자제들도 부담 없이 시내학교에 다닐 수 있단다. 농민콤플렉스가 확 풀리는 듯하여 좋다. 그런데 여기에는 가장 핵심적인 농촌의 도시화와 더불어 농민이 얼마나 실속 있게 사회보장을 받는가 하는 소프트문제가 놓여있다. 생계보장, 의료보장, 퇴직보장 등 생로병사에 관계되는 일련의 보장이 뒤따르는가 하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의 고향인 심양 소가툰의 일부 조선족촌의 농민들은 이런 아무런 보장도 없이 땅을 팔아 일시불로 돈을 얼마씩 챙기는 것으로 농민딱지를 떼며 만사대길인 줄로 안다. 그들의 앞으로의 생계는 무엇으로 하겠는지?  
85    척병시리즈(1) (우상렬87) 댓글:  조회:4038  추천:65  2007-07-29
척병시리즈(1) 우상렬문학예술가들은 제2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현실에 제일 안주할 수 없는 족속들이다. 욕구불만의 덩어리들이다. 그래서 현실을 반영하는 문학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안주할 수 있는 제2의 문학예술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務實와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를 추구한다. 19세기 프랑스문학대가 발자크는 항상 자기의 작품세계에서 노닐다보니 현실의 자기를 망각하고 있는지라 산보하다가 자기 집문 앞까지 와서는 자기가 써놓은 ‘발자크는 산보를 가고 없음’이라는 쪽지를 보고는 돌아서곤 했다. 그리고 프로벨도 자기의 ‘뽀파리부인’이 비상을 먹고 죽을 때 그 스스로가 비상을 먹은 듯 혀가 뻣뻣해나기도 했으며 ‘뽀파리부인’이 죽었을 때는 ‘뽀파리부인’이 바로 자기라 하며 통곡하기도 했다. 문학예술가들은 바로 자기가 짜놓은 예술세계에서 노닐기에 현실감각이 떨어지거나 현실에 잘 적응하지를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修邊服하는 등 현실적 생활의 디테일하고 멀다. 그래서 自然渠成으로 꾀죄죄하기도 하고 머리칼이 텁수룩이 길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관계도 원활하지를 못하다. 발자끄는 한평생 사랑을 추구했음에도, 그 문학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없었으며 결국 저 북구의 별 볼일 없는 한 과부에게 반해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그들은 자기의 문학예술세계에 빠져 현실세계에 적응을 잘 못할 때 결국 정신병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파 예술의 거장의 하나인 화가 반 · 고흐가 바로 그렇다. 그는 정신이 오락가락한 가운데 스스로 자기 귀를 베면서도 아픈 줄 몰랐고 귀가 떨어진 나간 상처를 싸맨 자화상을 스스로 그리기도 한다. 결국 그는 자살로써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자기의 문학예술세계에만 도취되어 있는 문학예술가들이 일단 자기의 문학예술세계의 마지막 한계를 느낄 때 그들이 택하는 길은 자살밖에 없다. 노벨문학수상자인 일본의 川端康成이 전형적인 이 경우에 속한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적 인간들이 보기에 괴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프로이드가 말한 문학예술가들은 백일몽을 꾸며 그 속에서 노닌다는 명제는 천만지당하다.그런데 문제는 우리 현실에서 문학예술가들의 이런 삼매경을 진실로 이해하거나 터득하지도 못하고 문학예술가연듯한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일부러 머리칼을 길게 하거나 수염을 이상하게 기르거나 해괴망칙한 옷을 입기 등등 만화경. 이것이 우리 현실의 척병의 하나다. 그들은 진짜 문학예술가들의 皮毛나 배웠지 그 치열한 혼은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다분히 造謠過市의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2007. 7. 6
84    문학상에 한 마디 부쳐 (우상렬86) 댓글:  조회:3862  추천:61  2007-07-26
문학상에 한 마디 부쳐 우상렬우리 문단은 무슨 상 평심이 끝날 때마다 시끌벅적하다. 잘 했소, 못했소, 평심들을 둘러싼 공방이 난무하다. 정상이다. 입 가진 사람들은 다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대명천지거늘. 그러나 우리가 그 별 볼일 없는 상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상이 무엇이냐? 그것은 제3자가 ‘나’한테 대한 평가이다. 旁觀者淸이니 가장 공정한 평가일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왜 안 됬지? 꼭 내가 되어야 한다는 과대망상증을 버려야 한다. 깔끔한 승복의 미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在局者迷라 하지만 그래도 사실 이 세상에서 자기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그래도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 당선되었다 해서 기고만장할 필요가 없고 낙선되었다 해서 비관실망할 필요가 없다.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래야만이 당락의 연결선상에서 자기 위치를 잘 파악하게 되며 노력의 방향설정이 이루어진다.  나는 나다. 확실한 주체성의 방향이 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있고 상이 있었지, 상이 있고 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상을 타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다. 그러니 상을 쫓아 글을 쓰는 것은 웃기는 일. 글은 내가 좋아서 쓰는 것이다. 내 멋에 쓰는 것이다. 재미로 쓰는 것이다. 좋아서, 내 멋에, 재미로 쓰지 않는 글은 일종 억지고 고역이다. 내 글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상까지 타게 된다면 그것은 금상첨화 격이고 우연히 주어진 뽀나스에 지나지 않는다. 상을 우습게 볼 줄 알아야 한다. 그 잘난 상, 할 줄 알아야 한다. 문학은 생겨먹기가 그리 빤한 것이 아니다. 미묘한 감정에, 아리숭한 가치판단을 씨줄과 날줄로 하여 얼기설기 짜 놓은 것이 문학이다. 그러니 仁者見仁, 智者見智, 나름대로의 가치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한명의 헴리트에 천명의 독자’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냉철한 이성을 가진 심사위원들이라 해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에 심사위원들도 사람인지라 안면이나 시장조작 같은 것들이 개입될 때 그 상은 정말 개망태기가 된다. 그래서 요새 권위적이고 귀족적인 심사위원제도 대신에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인터넷심사제도로 나가자는 경향이 대두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터넷 点擊率이나 댓글 등에 의한 수상작 선정하기. 그런데 이것도 그리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点擊率 조작은 민주주의적 허상만 부풀리고 중구난방의 즉흥적이고 선정적인 댓글은 오리무중에 빠지게 하기만 한다. 그리고 상이라는 것이 아무리 공정성을 기한다 해도 그것은 현실적 공리성이 가미되기 마련이다. ‘문화대혁명’시기 적어도 ‘高大全’ 식의 긍정적 형상을 부각하거나 빠뽀스를 토로해야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의 좌적인 정치적 공리가 절대적으로 작용한 까닥이다. 그리고 대중들의 현실적 구미가 크게 작용하는 수가 많다. 센세이숀을 일으킨 작품들이 현실적 구미에 잘 영합한 경우가 많다. 이래저래 별 볼일 없는 작품이 당선되고 오히려 인류보편의 가치를 다룬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명작들이 매장되는 수도 있다. 그래서 문학사에서 작품발표 당시 별 볼일 없다가 세월이 얼마 흘렀거나 작가가 세상 뜬 썩 후에야 이른바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상이라는 것은 상 성립자의 의도나 취지, 그리고 이러저러한 명목이나 명분 때문에도 절대적인 공정성을 기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상을 거부할 줄도 알아야 한다. 샤르트는 노벨문학상까지 거부한다. 그는 구경 실존주의철학가였던 것이다. ‘타인은 나의 지옥’ 같은 치열한 생존경쟁이 난무하는 개코같은 인간실존임에 그 잘난 상은 한바탕 눈요기하기 좋은 신기루에 다름 아님에라.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盖棺定論이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한 작가가 죽고 난 후, 그 작가와 이래저래 알고 있었던 같은 시대 사람들이 죽고 난 후, 즉 그 작가와 이해관계나 현실적 공리성을 벗어난 시대에 가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줄로 안다. 그러니 이것은 문학사에 명작으로 영원히 남는 상이 심사되는 레벨일 것이다. 코앞의 그 허황한 상에 아웅다웅하지 말고 이런 큼직한 상을 기대해보자! 2007.7.5
83    成都와 날씨 (우상렬85) 댓글:  조회:4617  추천:71  2007-06-20
成都와 날씨우상렬사천성 성소재지 성도란 곳에 와보니 매일매일 날씨가 흐리터분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霧都-안개의 도시 중경이 이런 줄 알았는데 100보에 50보라 할가 성도도 거기서 그기. 중경보다 단지 안개가 좀 적을 뿐. 금방 와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눈을 뜨면 시침은 아침 9시에 육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침에 워낙 해가 늦게 뜨는데다 그 해라는 것이 뜨는 둥 마는 둥 하니깐 집안은 오전 8~9시가 되어도 희여뿜하다. 그러다가 밖에 비라도 오는 날에는 집안은 온통 까막 나라가 되고 만다. 3월 달 쯤 되어도 아침 6시면 환히 밝는 세상에서 온 나로서는 아침의 이런 희여뿜하거나 까막 나라에서는 아침 기상감각을 잃고 만다. 그래서 결국 할 수 없이 알람시계를 사놓고 강박적인 기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달팠다. 나만이 머저리가 된가 했더니 한번은 농촌으로 놀러 갔다가 아침도 한참 지난 오전에 시도 때도 없이 꼬기요~ 울어대는 닭들을 보고는  저것들도 나하고 같은 꼬라지(꼴)구나 하면서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   가만히 보니깐 성도는 경도 상 우리 연길보다 한 2시간 해가 늦게 뜨는 것 같다. 사실 성도는 동쪽에 해가 뜬다고 해야 거저 희여뿜한게 흉내만 낼 뿐이다. 그리고 낮에는 중천에 해가 걸렸는지 말았는지, 그리고 저녁에는 해가 지는지 마는지 도저히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동서남북의 방향도 따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집 방향도 남향이고 무어고 거저 막 짓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집안은 낮에도 항상 희끄무레하다. 전등을 켜야 한다. 그런데 전기 값이 아깝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은 희끄무레한 대로 그대로 산다. 바로 이 희여뿜하고 흐끄무레한 자연적 풍토에서 벗어나고자 성도지역의 전통적인 가옥은 기와는 검은 기와를 뒤집어 썼으되 벽만은 흰색을 칠해놓고 있다. 검은 지붕에 흰 벽의 전형적인 남방가옥이 그것이다. 우리 연변의 조선족들이 깨끗함을 추구하여 흰 벽을 칠한 것과는 좀 다르다. 성도지역의 현대건축들은 이런 자연적 풍토를 커버하는 면에서 좀 화려한 색상의 겉모양새라도  많이 갖추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직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   미인이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보여 줄듯 말듯 성도의 해님은 쉽사리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미인, 아니 그 해님이 더 값진 줄로 안다. 보라, 어쩌다가 그 해님이 얼굴을 내밀면 사람들의 얼굴은 삽시에 밝아지고 일종 축제분위기에 들어간다. 해님을 보지 못해 우울하고 찌부둥했던 기분들을 날려버린다. 내가 있는 사천대학교 캠퍼스만 해도 학생들은 옷가지나 이불 같은 것을 말린다, 그리고 해쪼임을 한다 부산을 피운다.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아침 해 찬란히 일찍 뜨서 조선이라 했다는 조선,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것 같지만 해 잘 뜨는 우리 연길이 부럽고 그립다. 한 번은 성도 미인보고 한다는 소리가 야, 우리 그기, 찬란한 해 뜨는 우리 그기에 가 나하고 살자~ 싱거운 나는 못 말려! 그랬더니 성도 미인 정색을 하며 하는 말이 그런 강한 햇빛 속에는 피부에 치명적인 자외선이 많아 피부를 까맣게 태우거나 거칠게 하고 심할 경우에는 피부암까지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는 미인의 첫째 조건인 흰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런 곳에 가서는 못 산다는 것이다.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보니 아닌게 아니라 얼굴은 뽀얗게 희다. 목덜미를 보니 목덜미도 희다. 그 아래를 좀 더, 좀 더 자꾸만 내려가면서 보고 싶었는데 볼 수 없어서 아쉽다. 그놈의 옷이 웬쑤다. 아니, 엄큼한 나지. 무슨 미인이고 자시고 성도여자들은 성도가 최고란다. 왜서 그런가하면 해가 적게 뜨는, 그리고 해가 뜨 봤자야 강렬한 빛을 발하지 않는 성도의 해님인지라 여인들의 피부를 흰 색으로 만들 수밖에 없단다. 정말 그런가, 긴가민가. 사천여자들을 데리고 사는 우리 북방 남자들한테 은근히 물어보았더니 확실히 그렇단다. 사실 그럴 듯하다.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감방에 오래 갇혀있는 죄수들의 얼굴이 햇빛을 적게 보는 만큼 희지 않는가. 창백하기는 해도. 그러니 성도 미인의 말도 일리는 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성도 여인들의 보드라운 피부를 만드는 데는 아마도 성도의 바람 한 점 없는 잠풍한 날씨 덕택이 아닌가고 생각된다. 성도는 1년 사시절 가도 바람이 불지 않는다. 산들 바람이라도 좀 불었으면 하는데 바람이 부는 것 같지 않다. 여기에 1년 사시절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지 않으니 서리가 앉지 않는다. 그러니 풍상고초를 겪지 않는 성도 여인들의 피부는 부드러울 수밖에. 사실 성도여인들은 피부뿐이 아니고 성정도 대단히 부드러운 편이다. 사천 辣妹는 다른 얘기고. 성도여인들이 코가 좀 맨 듯한 코맹맹이 소리로 大哥 할 때는 정말 사람 죽인다. 성도는 전반 날씨가 음기가 성하니 여자가 잘 될 수밖에.여하튼 성도는 이래저래 해가 적게 뜨는 것만은 확실하다. 해가 적게 뜨니 성도는 바다를 멀리 한 내륙에 있지만 날씨는 습하다. 바로 이 습한 날씨 때문에 성도를 비롯한 남방의 전통적인 집들은 대개 2층 집을 짓는데 1층은 식사칸이나 창고로 쓰고 2층에만 사람이 기거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습한 날씨 때문에 성도 음식에는 花椒가 약국에 감초처럼 꼭 들어간다. 이 얼얼하게 맺게 하는 麻辣맛을 풍기는 花椒가 바로 去濕-습함을 제거한단다. 그리고 플라스 알파로 바로 이 去濕하는 花椒가 성도여인들의 피부를 희고 보드랍게 한단다. 그리고 해가 적게 뜨는 만큼 성도는 춥다. 물론 우리 연길처럼 영하로 내려가는 하늬바람이 부는 그런 추움은 아니다. 이른바 陰冷, 습기가 있는 음산한 추위라는 것이다. 여기에 비라도 구질구질 내리는 날에는 정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찌부둥해진다. 陰雨가 사람 기분을 잡친다. 그런데 巴山夜雨라 중경 쪽이 그런가 했더니 성도의 비라는 놈도 夜行晝伏性을 가졌는지라 밤에 잘 내리는 반면에 낮에 잘 내리지 않아 그런대로 괜찮다. 그런데 우뢰나 번개를 잘 동반하지 않는 그 구질구질한 비는 정말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성도 사람들은 음산한 추위에 대단히 못 견디는 것 같다. 3월 달인데도 파카를 입고 다니는 양반들이 심심찮게 눈에 뜨이니 말이다. 내가 좀 두꺼운 와이샤츠 하나에 좀 두꺼운 양복을 하나 달랑 입고 다니니 다 놀라운 눈치다. 성도 사람들은 바로 이 추움을 견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우리처럼 늘얼하게 맵은 고추가 아니고 톡 쏘듯이 매우면서 화끈하게 땀을 나게 하는, 우리가 말하는 남방고추를 기를 쓰고 먹는다. 辣椒去寒이란다. 참 그래서 사천 음식에 안 들어가는 곳이 없는 花椒辣椒,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사천 음식에 열을 올리는, 풀풀 끓여 먹는 찌개류(火锅도 이런 유로 볼 수 있을 듯)가 많은 것도 이런 去濕去寒의 한 방편이겠지.해가 늦게 뜨고 늦게 지는 성도. 그러니 사람들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자는 것도 자연의 순리에 맞는 법. 사천대학교 학생 식당도 아침식사시간이 아침 7~10까지다. 오전 일찍 수업 있는 놈은 일찍 먹고 늦게 있거나 없는 놈은 천천히 먹어라는 것이다. 참 느긋하다. 출근시간도 물론 학교 같은 데는 8시에 수업을 시작하지만 일반 사업단위나 기관은 대개 8시반이나 9시에 출근이란다. 점심시간은 일반적으로 12시부터 2시30분까지, 이 기간에 낮잠은 필수란다. 저녁은 6시에 퇴근. 겨울 때도 저녁 6시는 아직 밝은 세상인 성도. 그래서 밤생활이 풍부한 성도. 한 번은 저녁 늦게까지 책을 보다가 산보를 하느라고 사천대학교 동문을 나서서 빈둥빈둥 걷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앞에 불빛이 현란하여 발이 끌리는 데로 가보았더니 요란한 먹자거리가 아닌가. 성도시를 꿰찔러 흐르는 錦江기슭을 따라 난 좁은 길 왼 편에 술집들이 죽 늘어섰다. 남방풍치를 살린 대나무숲집이며 북경풍치를 살린 ‘四合院이며 북구 해적들의 소굴을 모방한 듯한 집이며 제법 각양각색으로 분위기를 살렸다. 집안뿐만 아니라 바깥마당에까지 술상을 벌려놓았다. 거창하게 왕창 술을 퍼 마시는 것 같은데 가만히 보니 우리 연길하고는 게임이 안 될 정도로 거저 작은 맥주 몇 병 시켜놓고 떠들어들 대고 있었다. 그렇지만 분위기만은 무르녹는 듯 했다. 술 한 잔 못 얻어 마시는 내가 가련해나기도 했다. 밤생활에 술이 곁들어지고 길어지니 로맨스도 많은 법. 저기 벌써 쌍쌍이 사랑을 하러 가는 놈, 아니 벌써 키스에 사랑의 열을 올리고 있구나... 성도 사람들 말로는 성도 날씨도 1년 사계절이 분명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리 변화가 없는 것이 성도 날씨다. 하루 날씨만 보아도 해가 뜨는 둥 마는 둥 지는 둥 마는 둥 거저 그렇고 그렇다. 1년 사계절도 그저 그렇고 그렇겠지. 아니, 1년 사시절 햇빛이 비축하고 비축하여 여름 한철에 집중적으로 내리 쬐이니 여름은 찌물쿠고 찌물쿨 수밖에. 성도사람들 말로는 悶熱 그 자체다. 그러니 적어도 겨울과 여름은 변화가 있다고 보아야 하겠지. 그러나 그것도 반짝 한 두 달 뿐이라니 예외로 치자. 그러니 성도 날씨는 변화 없는 것을 특색으로 꼽을 수밖에. 그러니 사람들 세월의 흐름에 둔감하고 세월아 네월아 니 가느냐 마느냐 하고 여유작작하게 사는 줄 안다. 모든 것이 아직 느리고 편안한 줄 안다. 좀 조용한 골목들을 찾아 들어가면 늙은이고 젊은이고 마작판이나 카드판이 한창이다. 성도사람들은 개혁개방 현대화의 빠른 절주를 잘 모르는 듯하다. 아니, 그들은 천성적으로 그런 빠른 절주를 싫어하는 듯하다. 이제 서부대개발이요 하며 들이닥치는 진정한 성도의 개혁개방 바람에 성도 사람들은 자기네를 잘 살게 한다하니 좋아하는 듯하면서도 자기네들의 여유작작한 생활이 깨여지는 듯해서 그런지 심드렁해하는 표정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좀 어렵더라도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현재의 자기네 생활이 더 좋다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외지인들한테 항상 자랑 비슷이 하는 얘기가 성도는 悠閑한 도시라고 한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있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뜻인지 養老할 도시라고도 한다. 2007. 4. 5                  
82    四川辣妹와 조선여자 (우상렬84) 댓글:  조회:4884  추천:87  2007-06-02
四川辣妹와 조선여자우상렬조직에서 사천 가 한 1년 있으라니 지극히 흥분되었다. 단방 떠오르는 것이 四川辣妹. 그런데 다음 순간 별론걸 하고 심드렁해진다. 四川辣妹, 작달막한 키에 이마뻬기 톡 튀어나오고 눈확이 좀 꺼지고 또 광대뼈까지 튀어나오고 여기에 하가 빠진 것이 뛸 데 없는 원숭이상. 그리고 얼굴은 가마잡잡한 것이 떼국을 못 벗어난 촌스러운 상. 막 주물러 만들었다할가, 아니면 모양새가 없게 아무렇게나 생긴 못난 토종감자라할가... 여하튼 四川辣妹가 나한테 준 인상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 사천에 가서 볼라니 나의 눈은 빛구리가 된다. 얼굴이 희고 쫑쫑빵빵한 것이 단방 나의 눈을 끌었다. 남자들 다 이런가? 어느 외딴 곳에 가면 그곳 여자들 훔쳐보기에 바쁘다. 여자의 맛을 알대로 다 안 나 같은 나그네는 더 한가봐. 쫑쫑빵빵에 포인트를 맞춰 굴레 벗은 말처럼 무한한 상상을 날리기. 그리고는 깜박 잘 못 하다가는 개꼴망신하기. 그런데 고 잘록한 허리에 뛰뚱뙤똥 걸어가는 모습만 보아도 그 노긋노긋함이 묻어나는 데는 나로서는 또 어쩌라 말이야! 여기에 양양 코맹맹이 소리로 말을 걸어올라치면 그 애교성에 그만 껌벅 죽는다 죽어. 사천 말은 부드럽다. 사천사람들은 중국어 일, 이, 삼, 사성에서 뻑센 사성발음을 아예 하지 않고 전부 부드러운 이성이나 삼성으로 해치운다. 그러니 사성 발음을 해야 할 四도 이성 발음인 十과 거의 같게 발음한다. 금방 와서 슈퍼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카운터 四川辣妹가 十块라 하기에 10원인갑다하고 10원짜리를 하나 내 주었더니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이며 해쭉 웃는다. 그러자 4원인 줄로 알았다. 그 후 여러 곳에서 두루 물건을 사보았는데 四川辣妹는 4가 들어간 돈 액수를 말할 때는 10과 구별시켜 준다고 정답게도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인다. 그리고 四川辣妹는 자기 의지를 나타낼 때도 우리 북방 여자들처럼 직설적으로 툭툭 하는 것이 아니고 ‘我們一起去嚒~’식으로 어린이가 어른한테 귀여운 떼 질을 쓰듯이 종결토 ‘嚒’를 좀 길게 뺌으로써 결국 자기의 의지를 관철하는 그런 미묘함을 풍긴다. 以柔克剛이라 할까. 四川남자들이 이렇게 말을 할 때는 참 메스꺼운데 四川辣妹들이 이렇게 말을 할 때는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몸을 좀 꼬기라도 하고 엉치를 조금 흔들어대기만 하면 남자들 뽕 가고 만다. 똑 마치 우리 연변의 여자들이 ‘야양 가기시오~!’, ‘아이 가겠습니꺄~?’할 때 사랑스러운 것과 같은 경지라 할까. 그럼 四川辣妹와 우리 연변 여자 누구 더 곱지? 한번은 이런 시시껄렁한 문제로 사천대학의 모모한 치들과 쟁론이 붙었다. 나는 단연히 우리 연변 여자가 곱고 그들은 단연 四川辣妹가 곱단다. 그들 말로는 四川辣妹 피부 희고 부드럽고 애교성에 최고란다. 그러면서 요 얼마 전에 세계 무슨 미인대회가 있었는데 중경 처녀 둘이 冠亞軍을 했단다. 중국의 미녀는 항주고 대련이고 다 제쳐두고 중경이 최고란다. 그래도 내가 우리 연변 여자 더 곱다고 하니 그들은 연변 여자들 못 봐서 모르겠단다. 그래서 내가 들이댄 것이 우리 연변 여자는 전통적으로 말할라치면 다 부드러운 춘향 같고 현대적으로 말하라 치면 다 한국의 톡톡 튀는 김희선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입을 하 벌리며 좀 수긍하는 표정을 짓는다. 춘향이나 김희선은 알고 있은 듯 모양이다. 四川辣妹, 발본색원! 四川辣妹, 왜서 四川辣妹라 했는지 아느냐? 매운 거 잘 먹는다고? 아니, 고추처럼 맵다해서, 고 작은 남방고추처럼. 절반 맞았음, 50점. 사실 고 고추처럼 맵기만 한 것이 아니고 ‘독’한데도 있더라. 언젠가 성도의 地方名小吃음식절에 가 보았더니 곱상스레 생긴 四川辣妹 둘이서 시커먼 날 것 가재를 와삭와삭 씹어먹으면서 시식을 해보이는데 어지간히 놀랐다. 四川辣妹, 성격이 潑辣하고 火辣해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럼 성격이 왜서 潑辣하고 火辣하지? 그녀들이 생활의 전부 짐을 매고 나가다보니 그렇게 되었단다. 그렇게 潑辣하고 火辣하지 않으면 그 많은 식구의 생활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활의 강인함이 그녀들을 그렇게 만들었단다. 그럴 듯도 했다. 중국에서 그 많은 특구나 경제개발구의 노동력 수요를 만족시키는데 바로 이 四川辣妹가 톡톡히 한 몫 한다. 그녀들은 억척스레 일을 해서 한푼 두푼 돈을 모아서는 집으로 부친다. 그녀들은 자아희생적인 일벌레로 정평이 났다. 그래서 四川辣妹는 전국 어디서나 통하는 일벌레의 대명사로 되었다. 그 가마잡잡하고 화장끼와 먼 토종 四川辣妹는 사랑스럽다. 나는 四川辣妹와 우리 조선여자들을 매치시켜본다. 정말 비슷한 데가 있다. 우리 여자들도 ‘베적삼이 흠뻑 젖’도록 일밖에 몰랐지 않았느냐? 나는 우리 여자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지금도 한국으로, 저 먼 미국으로, 유럽으로 일하러 간다. 억척스레 벌어 아이며 남편이며 온 가정을 먹여 살린다. 어디 이뿐인가. 돈을 벌어서는 투자할 줄도 안다. 우리 연길의 잘 나가는 식당이나 노래방이나 사우나 같은 제3산업은 이런 여성들에 의해 일떠섰다. 그런데 나는 우리의 여자들이 四川辣妹보다 불쌍해난다. 四川辣妹는 전통적으로 女主內, 男主外에 관계없이 집안일, 바깥일 가리지 않고 다 해치웠단다. 지금도 시내에 다니다 보면 공사판에서 여자들의 활약이 보인다. 그러면 남자들은 뭐 하지? 했더니 남자들은 논단다. 休閑한단다. 차물 마시며 와작작 마작하기. 남자기생! 우리 남자들도 좀 그렇다. 아니, 더 하다. 뒤짐 지고 팔자걸음하기 좋아하는 우리, 그리고 세월아, 네월아~ 술 마시고 놀아나기 좋아하는 우리, 사천남자들 뺨 친단다. 四川 남자들은 요새 와서는 四川辣妹가 힘들어 할세라 바깥일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일도 잘 한단다. 그래서 四川辣妹들 웃음꽃 핀단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집안일 하는 ‘놈’ 몇 놈이나 되는고? 言歸正傳, 四川辣妹는 영원히 사랑스러운 妹로 남고 싶단다. 사천에서는 식당 같은 서비스업종에서 小姐라는 말은 잘 안 통한다. 小姐하면 그 기생적인 냄새에 그리 좋아하지 않는단다. 妹子라야 되돌아보며 해쭉 웃으며 기분 좋아한다.  四川辣妹, 한번 데리고 살고 싶다. 아니, 품에 안고 싶다. 언감생심! 엄큼한 나그네 생각. 외로운 나그네 신세거늘 이해하시라!   阿妹~ 阿妹... 你要老實講, 今天是否喜歡我!
81    행복한 낮잠자기 (우상렬83) 댓글:  조회:4502  추천:57  2007-05-24
사천성 소재지 성도, 서부 대 개발 중추역의 하나. 나는 무슨 서부대개발이요, 뭐요 하니깐 성 도 사람들 붕붕 뜨서 들볶아치는 갑다 생각했다. 그런데 성도에 도착해서 볼라니깐 여기의 잠풍한 날씨마냥 여기 사람들 조용하다. 나른하게 조용하다. 얼마나 조용한가 하니 낮잠을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잘 자는 사람들이다.   내가 성도에 제일 처음 오기는 지난 12월말, 한겨울. 물론 한겨울이래야 우리 동북의 겨울  하고는 게임도 안 되는 꽃샘추위 같은 추위. 그런데 나는 사천대학의 하루 출퇴근시간표를 보고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특히 점심 12시부터 오후 2시 30반이라는데 머리가 갸웃해졌다. 적어도 우리보다는 1시간쯤 길다. 점심시간 왜 이리 긴 거야, 하고 그 영문을 알아보니 낮잠 자기 위해서란다. 어, 낮잠 자기~ 한 겨울철에도 낮잠 자기를 공식 출퇴근시간표에서 배려하니 이 아니 신선노름인가? 한번은 2시 30분이 되어 내가 소속된 학과사무실로 일을 보러 갔더니 비서노릇을 하는 아가씨, 아니 아줌마라 해야 더 적절하겠지, 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하~하~, 하품을 하고 앉아있는데 오늘 낮잠을 잘 못 자 피곤하다는 둥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눈에 노란 눈곱이 묻어있는 걸 봐서는 열심히 잤겠는데 말이다. 사실 나도 낮잠 자기다. 아니, 나는 여기에 아침잠자기에 저녁잠자기까지 합해 정말 못 말리는 잠자기다. 나는 아침밥을 먹고 한잠, 저녁밥을 먹고 한잠이니 낮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원래 식곤증이란 것에 약한가봐. 밥만 먹으면 잠이 오니 말이다. 그래서 언제가 병원에를 찾아 갔더니 의사선생님 말쌈이 원래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밥만 먹으면 포만감에 식곤증이란 것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상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때까지 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소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점심때 한잠 재워주는 것이었다. 나는 불쌍하게도 유치원이란 걸 못 다녀봤으니깐 더 행복했을 유치원 때 낮잠 잔 기억 같은 아쉽게도 없다. 그때 책상을 아무렇게나 쭉 이어놓고 담요 한 짝 덮고 자는 것이 하루 학교생활에서 제일 달콤한 시각이다. 그러다가 나의 낮잠 자기는 위 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아니 나이가 들수록 무형의 그 무엇에 빼앗기고 말았다. 고중 때 대학시험을 칠 임박에는 마치 누가 낮잠을 안  자고 밤잠을 적게 자는가에 따라 대학입학의 입낙이 결정된다는 착각 하에 정말 낮잠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냈다. 우리 선생님들이랑 부모들이 정색해서 하시는 말쌈이 잠을 적게 자는 놈이 대학입학이란다. 그러니 점심밥을 먹고 밀려오는 식곤증에 눈을 비비고 잡아 뜯으며 싸움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깜박 머리를 책상에 처박고 한잠 자고는 머리가 개운해지기는커녕 자서는 안 될 잠을 잔 죄책감에 그만 머리가 띵 해나기만 한다. 정말 고중 때 낮잠 안자고 공부해서 그런지 대학에는 겨우 붙었다. 그래서 이제는 한숨 훌 쉬면서 그 자고픈 낮잠을 푹 자자고 맹세했다. 그런데 이것이 또 개맹세될 줄이야! 내가 대학을 입학한 1980년대 벽두에는 전국이 4개현대화를 실현한다고 야단법석을 피울 때다. 그때 세계 선진국 일주를 시찰하고 돌아온 어마어마한 분들이 쩍 하면 하는 소리가 왜 선진국이 발전했는지 아오, 그 사람들은 낮잠을 안잔다 말이요. 우리가 낮잠을 잘 때 그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으니. 그때 내가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아주 존중하는 한 조선족의 거목도 한다는 소리가 꼭 이런 소리다. 그래서 나는 낮잠공포증에 걸렸다. 4개현대화를 위해서는 낮잠 자서는 안 된다. 낮잠 자면 개새끼. 이것이 나의 신조였다. 그래서 나는 또 지겨운 낮잠 자기와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대학교시절은 그래도 나의 주체사상이 확고하게 서 가던 시기였다. 그래서 낮잠 자기와 한참 싸움을 하다가 4개현대화고 무어고 60점 만세에 낮잠이 오면 오~ 왔냐? 반갑다하고 한잠 푹 자기. 사실 나는 낮잠을 자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대학교 때부터 나의 낮잠자기는 굳어진 습관으로 되었다. 내가 낮잠을 잘 자서 그런지 그래도 대학을 원만히 졸업하고 연구생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나의 이 낮잠 자기는 박사공부한답시고 한국에 유학가면서 흐지부지해지고 말았다. 한국은 이른바 현대화사회라는 것이다. 사람들 무엇이 바쁜지 종종 걸음들이다. 낮잠 잘 시간도 없어 사람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는 꺼벅꺼벅 잘들 존다. 쯔~쯔~, 불쌍한 사람들. 낮잠 잘 시간도 없다니. 나는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좀 지날라니 내가 그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낮잠을 자자니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모두들 안자는 분위기가 나를 기죽이고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저 사람들 안자고 어떻게 견디나 했더니 커피를 뽑아 훌쭉훌쭉 마시며 정신을 차린단다. 그래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나도 훌쭉훌쭉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정신이 좀 맑아지는 듯 했다. 그런데 그놈 커피 많이 마시면 억지로 낮잠귀신은 몰아내되 코카인 중독에 속이 망가진단다. 그래서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다시 낮잠이 오면 오~ 왔냐? 반갑다, 한잠 자자이다. 마치 그립던 연인을 만난 듯이 말이다. 그때 나는 은근히 한국친구들로부터 저 봐, 중국 사람들은 저렇게 낮잠을 자니깐 못 살지 하는 눈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아, 네월아~ 나의 낮잠은 그 모양 그 대로.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낮잠효용론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낮잠자기거부종주국인 미국에서 어떤 대단한 신경과학가의 연구에 의하면 점심식사 후 한잠 자는 것은 몸에 그렇게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거저 약 10분간을 눈을 감았다 뜨도 그렇게 좋단다. 그러기에 차 운전할 때 식곤증이 올 때는 갓길에 들어서 한잠 자라는 것이다. 고속도로 갓길이 낮잠자기장소로 둔갑하는 순간. 송이송이 해바라기 미국을 따라가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낮잠자기에 대한 시각교정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약삭 바른 일본에서 화이트칼라들의 점심낮잠자기를 곁들인 휴게소들이 성업 중이란다. 점심 밥 먹고 곧바로 가까운 휴게소로 달려가 국부마사지나  받으며 눈 지긋이 감고 낮잠 흉내 내기가 가장 행복한 시각이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나는 낮잠옹호론자고 만세론 자인 것 같다. 천하 낮잠 없이는 못살 것 같으니 말이다. 여자, 애인은 없어도 살겠는데 말이다. 낮잠 한번 자고 나면 그렇게 정신이 거뿐하기로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사천성 성도에 오니 눈꼴사납고 꼴 볼견이 많다. 그런데 유독 세월아, 네월아~ 낮잠 잘  자는 내 친구들이 많아서 좋다. 나랑 어느새 친구가 되어버린 四川辣妹의 말이 재미있다. 자기는 여름이 무더우면 무더울수록 좋은데 그때 낮잠이 제일 달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세월아, 네월아~ 여름아 빨리 오너라하고 애인을 기다리듯이 기다린단다. 그리고 자기는 낮잠을 많이 자야 미녀가 된단다. 四川辣妹뿐이 아니고 여하튼 성도는 세월아, 네월아~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낮잠 없이는 하루의 즐거움을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성도는 休閑城市란다. 그래서 그들은 서부대개발이니 뭐요 하며 현대화요 뭐요 하며 낮잠을 빼앗아갈 가봐 은근히 두려워하는 듯도 하다. 사실 서부대개발이요, 현대화요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복된 삶을 위해서다. 점심밥을 먹고 나면 식곤증이 오는 것, 그래서 한 잠 자고 나면 거뿐한 거, 행복한 거…이것도 인간의 조그마하나마 복된 삶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잠이 오면 자는 거, 억지로 커피니 뭐로 부산을 피우지 말고 한잠 자는 것이 자연 거스르지 않고 순리대로 사는 만병통치약이다. 그러니 세월아, 네월아~ 낮잠 잘  자는 우리 족속들, 할 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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