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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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무제 댓글:  조회:2929  추천:78  2007-11-16
  뚜푸~ 연변이 어떤 곳이냐?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이니 술놀음이 많은 곳. 그렇다. 그래서 나는 연변에 있을 때 술에 절여 있었다. 몸에서 술 냄새가 풀풀 났다. 1차, 2차, 3차에 새벽에 두부-뚜푸~ 소리가 날 때까지 퍼 마시다나면 녹초가 될 때가 많았다. 여기에 이튼 날 땡하고 해 뜰 날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하고 머리가 땡 해나서 하루 점도록 누워있는 꼬락서니는 내 스스로도 못봐주겠다. 그래서 이제 술은 절대 안 마셔, 술 마시면 개아들놈이야 하면서도 또순이, 갑순이, 금순이를 붙여주면 또 한잔 하는 내 꼬락서니라구야 정말 못 말리지. 그리고 또 후회하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저 멀리로 도망가기. 그런데 바로 이때 학교당국에서  포스트닥인지 무언지 나도 잘 모르는 닥을 하러 저 멀리로 가라니 어디 이렇게 아다리가 맞아떨어질 수 있으랴! 이래저래 나는 복 있는 놈이다. 그래 나는 비행기를 타고 훨훨 날아 이 머나먼 남쪽 땅에 와 있다. 처음에는 그래도 노마에 가면 노마법을 따르는 식으로 적응을 하느라고 호기심에 신비감까지 느끼며 그럭저럭 보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영 말이 아니다. 내 꼬락서니를 좀 보라. 하루 점 도록 앉아 하는 짓이란 책하고 씨름하기. 그래 이젠 지겹다, 지겨워, 책도. 어떤 놈도 나를 한잔 하자고 불러주지 않는다. 연변에서 그렇게 흔하게 마신 술 한 잔 할 친구 없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내 친구가 없다. 외롭다. 쓸쓸하다. 왕따 당한 느낌이다. 한없이 잡쳐지는 기분. 그래서 ‘잔 들고 권할 이 없으니/달을 불러 마시노라/달빛에 내 그림자 해서 세 사람이니/술 맛이 절로 나네’,「月下獨酌」의 이백시가 절로 읊어진다. 나도 시인이 되려는가봐. 오랜만에, 정확히 말해서 가물이 콩 나듯이 어쩌다 술 장소가 생기면 나의 기분은 붕 뜬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나의 기분은 풍선이 펑 하고 터지듯이 곧바로 터지고 만다. 술은 있으되 술 마실 친구들이 없다. 냠냠 맥 물 같은 포도주나 맥주를 한 잔 부어놓고 마시는 흉내만 내고 안주만 냅다 먹어주기에 여념이 없는 작자들. 점잖고 세련된 척 하지만 먹기에 바쁜 너희들, 내 보기에 탁하다 못해 민하다. 그래서 내가 붙여준 이름 먹자주의들, 딱 맞다 딱 맞아. 모두들 잘 먹어 얼굴에 게기름이 번지르하다. 못 먹은 나만은 비루먹은 개처럼 깨죄죄하다. 실은 술만 퍼 마시는 사이 먹자주의자들이 어느새 싹 먹어치우고 말았으니, 못 먹는 것도 당연지사지. 아, 연변아, 그립다.‘床前明月光,疑是地上霜./擧頭望明月,低頭思故鄕.’이백의‘靜夜思’가 아니라 나의 ‘靜夜思’로 받아주렴. 나의 그 술친구들 그립다. 먹자주의자들보다 세련되지 못한 것 같지만 훨씬 멋이 있는 나의 마시기주의 친구들이 그립다. 철이야, 돌이야, 땡이야, 내 연변에 가면 술 사줘야 해. 많이많이. 내 여기서 마시지 못해 기갈 들었던 만큼. 아니, 더 많이. 또순이, 갑순이, 금순이도 부르고. 우리 술상에서 세속의 골치 아픈 모든 거 다 털어버리고 형님에, 동생에, 아저바이, 조카... 권커니 작커니 참 재미있고 멋있었다. ‘한 잔 먹세그래, 한 잔 먹세그래...’‘將進酒 ’의 송강정철이 우리가 아니냐? 그래 영웅호걸이 따로 있냐?  한 잔 하고 호쾌하게 천하를 호령해보는 것도 내 멋이지. 사실 나는 영웅호걸이고 자시고 다 떠나 그저 통하는 수컷들 몇이 만나 별 볼 일 없이 한 잔 하며 시시컬컬 희희작작 거리는 것이 내 인생의 최대낙의 하나다. 여기에 암컷 몇이 끼어들면 더 좋고. 암컷이야 통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다다익선. 아이 다 키운 놓은 아준마들이 할 일 없이 만나서 맥 물 놓고 인생에 최대의 낙인양 수다를 떨듯이 말이다. 근엄한 책보기와 논문 쓰기에만 돌입한 중대가리 같은 내 여기 인생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말해준다.    그래 술 마신다고 못해내는 일이 어디 있냐? 더 잘 해내는 우리가 아니냐? 잘 나도 내 청춘, 못 나도 내 청춘... 우리 내 멋대로 살기요. 이제 우리 연변에서 뚜푸~ 소리날 때까지 마시기요! 2007.11.1 中國左翼作家聯盟 1920-30년대는 적어도 동아시아 범위에서 무산계급문학운동이 팽배하던 시기이다. 일본, 조선, 중국에서 무산계급문학단체들이 연이어 결성되었다. 일본의 ‘나프’, 조선의 ‘카프’, 중국의 ‘左聯’이 그 전형적인 보기다. ‘左聯’은 ‘中國左翼作家聯盟’의 약칭으로서 1930년 3월 2일 上海犊樂安(DARROCK)路233號에 있는 중화예술대학 청사에서 성립을 선포했다. 현재의 上海多倫路文化名人街에 있는 虹口區多倫路201弄2號가 그 자리다. 이 청사는 남향으로 좌정한 3층 서양식 건물이다. 이 청사는 1980년 상해시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고 2003년 1월에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명명되었다.               ‘左聯’성립대회가 열린 중화예술대학청사정면   ‘左聯’성립대회터기념관의 1층에는 성립대회터가 있다. 당시 50여명이 성립대회에 참석했다. 연단 바로 앞 석에는 대회에서 천거한 3인의 주석단성원인 魯迅,沈端先(夏衍), 钱杏顿이 앉았다.         ‘左聯’성립대회가 열린 회의실   ‘左聯’성립대회에서 潘汉年이 중국국공산당을 대표하여 연설을 했다. 그리고 冯乃超가 준비경과보고를 하고 郑伯奇가 강령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그 다음 ‘左聯’의 이론강령과 행동강령을 통과하고 ‘맑스주의문예이론연구회’를 성립하였다. 마지막에 魯迅이 「좌익작가연맹에 대한 건의」란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대회에서는 魯迅,沈端先、冯乃超,钱杏顿,田汉,郑伯奇,洪灵菲으로 구성된 7인 집행위원을 선거하였다. 그리고 蒋光慈,周全平이 후보집행위원으로 선거되었다. 魯迅을 비롯한‘左聯’의 7인 집행위원   회의는 오후 2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되었다. ‘左聯’성립대회터기념관 2층에는 ‘창건․발전’, ‘문학성과’, ‘반항․희생’,‘기념․연구’4개 부분으로 된 전시관이 있다. 그리고 별도로 한 칸에는 ‘左聯’맹원들이 사용하던 일부 유물들이 놓여져 있다. ‘左聯’맹원들이 사용하던 일부 유물 ‘左聯’의 길은 험난하였다. 그것은 국민당 반동정부의 진압을 받기도 한 피비린내 나는 길이었다. ‘左聯’5열사는 이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1931년 1월 17일, 5명의 ‘左聯’맹원이 漢口路에 있는 上海東方旅館에서 회의하다가 반역자의 밀고로 체포되었는데 결국 2월 7일 龍華에서 희생되었다. 魯迅은 ‘左聯’5열사의 비보를 듣고는 馮雪峰과 더불어『前哨 ․ 紀念戰死者專號』라는 ‘左聯’기관간행물을 펴냈다. 그리고 국민당 반동정부를 성토하는 많은 글을 썼다.「잊어버리기 위한 기념」이라는 유명한 글은 바로 이때 쓴 것이다. ‘左聯’성립대회터기념관 뒷 화원 내에는 ‘左聯’5열사의 조각상이 있다. ‘左聯’5열사 조각상 ‘左聯’은 1936년 봄에 해산되었다. ‘左聯’은 중국공산당이 리드하고 魯迅을 기수로 한 혁명문학단체였다. ‘左聯’은 ‘5.4’신문학전통을 계승하고 맑스주의문예이론을 소개하고 전파하였으며 무산계급혁명문학을 제창하고 진보적인 문예대오를 육성하였으며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문예작품을 창작하였고 국민당의 반혁명문화 ‘토벌’을 분쇄하는 등 면에서 휘황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중국현대문학사 및 혁명사에서 빛나는 한 폐지를 장식하고 있다. ‘左聯’은 새 중국의 혁명문학 전통의 시원으로 된다. 그런 만큼 상해의 ‘左聯’성립대회터는 중국 무산계급 혁명문학의 한 메카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2007. 10. 30 바가지콤플렉스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넓은 세상에 짧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여행이 많이 커버해주니 말이다. 새로운 곳에 가서 호기심과 신비감의 만족과 충족만으로 나는 만족한다. 그런데 여행자들 제일 골치 아픈 거 하나가 바가지콤플렉스다. 형형색색의 토산품들이 구매욕을 자극한다. 그런데 사자니 바가지요금을 안기지 않는지~ 맞아, 바가지요금이다하고 제풀에 놀라 구매욕이 쏙 수그러들고 만다. 그래 집에 돌아가서는 샀어야 되는데, 샀어야 되는데 후회막급이다가 인편에 다시 부탁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기도 한다. 바가지콤플렉스에 놀아난 것이다. 인간의 악마 같은 존재와 요사한 존재가 만들어낸 바가지콤플렉스. 이 바가지콤플렉스는 우리를 괴롭힌다. 특히 여행의 암적 존재다. 즐거운 여행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이 바가지콤플렉스를 떨쳐버려야 한다.    자, 그럼 바가지콤플렉스를 떨쳐버리는 비결 공개. 아예 안 사는 원칙. 아무리 싸게 주니깐 사라고 물고 늘어져도 본체만체 안 사주기. 그런데 이것은 너무 소극적이고 쫀쫀하다 보니 쉽게 기분 나쁘게 번질 수 있다. 그러니 적극적이고 대범하게 생각해보자. 모든 것은 생각의 문제이니 말이다. 그래 道적인 경지로 생각을 바꾸어보자. 적어도 道敎적인 경지로 말이다. 大音稀聲, 大象無象이 아니냐. 그러니 大買無買 경지를 창출하면 된다. 아무 것도 안 샀지만 모든 것을 산 듯한 그런 느낌. 여기에 身外之物 운운까지 곁들이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정말 物外에서 노는 道적인 경지를 맛보게 된다. 그리고 가령 바가지를 썼다고 하자. 바가지를 썼으니 기분 좋을 리 없지. 그렇다고 안달아 해보았자 내속만 더 상하기. 그러니 아Q적인 정신승리법이 없지 않아 있지만 베푼다고 생각하면 홀가분하다. 거지한테 베푼다는 그런 식 말이다. 내 소비수준에서 놓고 볼 때 바가지가 아니다는 생각. 일반적으로 자기 나라보다 뒤떨어진 나라에 가면 돈이 맥 있어 진다. 그래서 일반 소비는 느끈이 감당할 수 있다. 그 나라 생활수준에서 보면 비싸게 바가지를 쓴 것 같지만 자기 나라 수준에서 보면 그리 부담되는 소비는 아니다. 내 소비가 감당할 수 있을진대 왜 하필 바가지로 생각하겠는가? 기분 나쁘게 스리 말이다.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진짜 베푸는 신사숙녀 스타일도 이런 것이다. 적어도 이 몇 가지를 뇌리에 떠올려보면 바가지콤플렉스는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 2007.11.1 나와 선생 인생은 아이러니다. 내가 샌님이 되었으니 말이다. 워낙 나와 선생은 악연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선생들한테 많이 당한 느낌이다. 소학교에서 중학교로, 학벌이 높아지면 질수록 더 그런 것 같다. 그 중에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몇 가지를 들어본다. 소학교 때 별로 잘 못한 거 없는 것 같은데 젊은 체육선생한테 한번 맞아 터졌다. 초중 때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여 내내 지각을 지는데 세워놓고 제 자리로 잘 들여보내지 않는데 불만을 표시하느라고 항상 쉬엇 자세로 비뚤하게 서 있다가 그만 우리 담임선생한테 복사뼈가 채여 탱탱 부어나기도 했다. 내가 다리를 저는 것을 본 우락부락 싸움 잘 하기로 이름난 둘째 형이 주먹을 휘두르며 윽윽 하자, ‘거저 때렸겠나? 맞을 짓을 했으니깐 때렸지. 뇌두라! 고운 아이 매 하나 더 준게다’라고 아버지가 으흠하며 말렸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고중에 올라와서 수학시간에 소설 <수호전>을 보다가 수학선생한테 들켜 그 남한테 빌린 소설을 갈기갈기 찢기우기도 했다. 나의 문학꿈이 산산이 쪼각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소학교에서 고중을 다닐 때까지는 분명 사도존엄을 비판하던 때이건만 우리 선생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드센지? 우리는 많이들 기가 죽어 있었다. 그래서 선생지위 臭老九고 무어고 떠나 선생하면 질색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 연변대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았을 때 졸업하면 중학교 샌님이 된다는 말에 입학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대학 붙기가 하늘에 별 따기건만. 그런데 그때 입학통지서가 온 대학에 가지 않으면 1년간 대학입학시험 자격을 취소하는 판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간 것이 연변대학교이다. 1년간 놀며 그럭저럭 공부하다가 돌아오기로 작심하고. 그런데 1년간 공부하는 사이에 어느 새 대학공부가 재미났고 연변대학에 정 들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샌님으로 배치 받아가는 나는 꼭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가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강의는 그럭저럭 떼우고 이판사판으로 석사연구생시험을 준비했다. 붙으면 새로 공부하고 못 붙으면 下海하고. 그런데 개빵으로 붙었다. 연구생공부를 무난히 끝마쳤다. 그런데 운명의 신은 나를 대학교 샌님으로 들어앉힌다. 대학교 샌님이고 뭐고 선생노릇은 딱 질색이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하면 된다, 잘 한다 식으로 짜른 바지 춰주는 바람에 그럭저럭 한 2-3년하고 박사를 한답시고 한국에 유학행을 떠났다. 그런데 지도교수와의 악연은 나를 너무나 피곤하게 하였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번역 출판한 책을  갖다 바치면 그 책을 탕, 탕 책상에 매치며 전공에 아무런 관계도 안 되는 이 잘난 책을 왜 번역하는가하며 야단이다. 용돈 좀 마련하느라고 진행한 번역을 이렇게 닥달하니 나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가난한 중국유학생의 처지를 못 알아주는 지도교수가 너무나 야속하고 얄미웠다. 이래저래 나는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꼬이고 꼬여 결국 박사학위 논문도 10년 가까이 가서야 겨우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나의 박사학위는 정말 눈물 젖은 박사학위.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줄곧 대학교 샌님노릇을 해왔다. 어쩐지 이때쯤은 대학교 샌님이 싫지 않았다. 나는 항상 학생들을 너그럽게 대해왔다. 嚴師出高徒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하고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로 대입해본다. 선생은 시어머니, 학생은 며느리, 여기에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듯이 학생도 선생으로 될 수 있고... 그리고 시어머니가 된 며느리가 새로운 며느리를 대하는 상반되는 두 가지 태도를 상정해본다. 시어머니 위엄을 살려 내가 당했으니 너도 한번 당해보아라하는 식. 그리고 이해심이 앞서며 오히려 인간적인 배려를 많이 해주는 식. 선생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이 두 가지로 상정해볼 수 있다 할 때 나는 단연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웃으며 매부 좋고 누이 좋은 식으로 보다 많이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자율에 맡기는 유연함을 보인다. 2007. 11.2   작은 것의 미 미학에는 어떤 대상물이 미로 되는 데는 적중한 크기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적중함을 벗어나는 적중함보다 큰 것에서 미를 찾기 좋아하는 듯하다. 여하튼 많이, 큰 것, 다다익선... 맹목에 가까운 아집. 인간의 욕망의 팽창으로 보아야 하나. 그런데 인간은 분명 적중함보다 작은 것에서 미를 찾는 경향도 있다. 작은 것의 미가 바로 그것이겠다. 멋대가리 없이 훌쩍 커버린 어른보다는 강보에 싸인 어린이가 고와 보인다.  우리가 애완용이라고 키우는 것들도 보면 전부 손에 가지고 놀게 좋도록 작은 것. 큰 개가 아니고 강아지... 이런 거. 커쿨지게 큰 남자보다는 가날프게 작은 여자가 곱다. 조비연, 중국 한나라 때 미인. 작은 미인. 너무 작아 한성제의 손바닥에서 춤을 출 정도였다고 한다. 정말 매미허리에 버들가지 같은 작은 유연함에 바레라도 추었겠지.  등소평, 이름처럼 작고 평평한 머리. 큰 것들은 쿵 하고 넘어져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 해도 넘어졌다가는 다시 일어나군 하는 영원히 넘어질 줄 모르는 오또기. 작은 고추 매운 식의 작은 거인. 이런 역설이 등소평을 더 없이 멋있는 사나이로 만든다. 서양사람과 우리 동양사람을 비하면 우리 동양사람이 작다. 육식을 하는 그들과 곡식을 먹는 우리의 차이라 할가. 서양사람은 키가 큰 만큼 주먹질 권투에 능하다. 그러나 작은 우리는 아랫도리 발놀림을 잘 한다. 중국의 무술이고 한국의 태권도라는 것도 주로 이런 발놀림이다. 키가 작은 한국군인하고 키가 큰 미국군인이 싸움을 할 때 키가 작은 한국군인이 발놀림으로 키가 큰 미국군인의 아랫도리를 공격하면 이기기는 떼놓은 당상이라고 한다. 그 거시기라는 것도 그렇단다. 여자들 꺼는 잘 모르지만 남자들 꺼는 분명 ‘양놈’들이 우리보다 크단다. 그래서 우리를 기죽게 한단다. 그런데 우리 것은 작지만 그들보다 더 빻빻하게 뻐기고 고사포를 더 멋지게 쏴댄단다. 사실 이런 힘의 논리만이 아니고 작은 취미를 많이 드러내는 우리 동양은 바로 이 작은 것으로 승부한단다. 미국사람, 마우제이의 한 종류. 기발한 창의력은 있어 기상천외의 희기한 것을 잘도 만들어낸다. 반도체 라디오, 처음 그들이 만들어낼 때 들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정도로 컸다고 한다. 그런데 모방을 잘 하는 일본이 어느새 모방하여 포켓 반도체를 만들어내니 그것이 세계에 유행했단다. 그리고 미국에서 컴퓨터를 집채 같이 크게 만들어내니 일본에서는 깜찍하게 만들어내고 냉장고를 우둑지게 만들어내니 산듯하게 만들어내고... 결국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벌어들이는 격. 그래서 미국에서 무슨 세계지식재산권보호니 하는 것을 만들어내기에 용을 뺏다는 것이다. 깜직한 소일본은 분명 작은 것의 미의 재미를 톡톡히 본 듯하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한국의 석학 이어령이 지적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정말로 적중하다.   나는 조 작달마한 새기들이 어떻게 시집가지 하고 항상 노파심을 태울 때가 많다. 그런데  고 작달마한 새기들이 시집만 잘도 간다. 나는 한국 드라마『소문난 칠공주』를 보면서 고 조그마한 땡칠이를 누가 데려갈고 하고 은근히 근심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법대생이 프러포즈고 자시고 막 달려들지 않는가? 고 작지만 또르르한 땡칠이의 눈에 법대생은 빠져들고 말았네. 세계 많은 도시를 죽 살펴보면 수도는 한 개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많은 것의 중심지가 되면서 인구, 면적 할 것 없이 비대해진다. 사람이 바글바글 하다 보니 사람이 귀찮아질 때가 많다. 그러나 저 흑룡강 북대황에 사람이 하도 적다 보니 사람을 보기만 해도 반가울 때가 많단다. 비대해진 수도를 줄이기 위해 왕왕 주위에 작은 위성도시를 건설하여 인구의 흐름을 유도한다. 나는 북경이나 상해 같은 큰 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 하나 만나자해도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지하철 타고 찾아가기가 바쁘다. 만나는 즐거움보다 가는 과정이 더 고통스럽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기가 반갑지 않다. 아예 포기하고 싶을 때가 더 많다. 나는 우리 연길을 좋아한다. 걸어서 1시간 이내로 동서남북 어느 방향이든지 가 닿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연길의 아담사이즈보다도 작아 보이는 1시간 생활권이 참 좋다. 현재 연룡도니 뭐니 하며 큰 도시를 만든다고 야단들인 것 같은데 나는 그리 반갑지 않다. 현재 내가 잠간 와 있는 가히 세계적으로 제일 큰 도시라고 할 수 있는 3200만 인구의 중경직할시를 보니 시내에서 한 번 옮기는데 차만 타다나면 하루해가 어느새 다 가고 마니 좋은 세월 다 보낸 셈이다. 그래서 나는 땅이 넓은 중국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워낙 출장을 가기 좋아하고 여행을 하기 좋아하는데 정말 내 인생에 지겨운 차속에서 보낸 시간만 해도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안티테제로 한국을 좋아한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1일 생활권의 소한민국이 좋다. 하루면 온 나라 어디든지 휘젖고 다닐 수 있어 좋다. 어느 경제학자의 말을 들어보니 현 단계 전 세계가 시장경제의 네트웍으로 돌아가는 마당에는 덩치가 작은 나라가 기동영활하게 잘 적응하고 대처할 수 있어 좋단다. 같은 논리로 대기업이나 그룹보다는 중소기업이 시장경제를 휘젖고 다닐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고 한다. 우리는 어쩌면 분명 작은 것을 더 선호해 왔다. 러시아 마우제이 큰 명태보다는 우리의 작은 명태가 더 맛있고 좋다. 한족들 큰 오이보다는 작은 조선오이가 더 좋고, 한족들 큰 고추보다는 작은 조선고추가 더 맵고 맛있고. 그렇쟈? 2007. 11.12 내 이름은 돈 개도 안 먹는 돈, 더러워! 퉤 하고 땅에 던져 보았다(나는 이렇게 부실하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개미떼들처럼 달려든다. 너도 나도 줏겠느라고. 에익, 사람들 개보다 더 더럽다. 나는 매일 강의를 한다. 학생이고 자시고 고 새별 같은 눈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금전으로 되어 보인다. 식당에 손님들이 와자작 들어온다. 순간 식당사장의 눈에 와그르르 돈이 굴러들어오는 모습으로 변한다. 의사는 병 주고 약 준다. 죽기는 바라지 않는다. 죽지 않고 겔겔 하면서 비싼 약 많이 쓰기 바란다. 병 주고 약 주기의 아이러니, 이 역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지? 세계 예술거장 챠플린은 자기의 영화『도시의 빛』인가에서 아이가 유리를 깨면 어른이 가서 해 넣어주고 돈을 버는 이 세상 돈에 얽힌 황당한 먹이사슬의 세태를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돈이 생겨나서부터 이런 거다. 見錢眼開가 아니냐? 돈이 우상이다. 그러니 세계문학사에 3대 수전노가 생겨나지 않았느냐? 쉐익스피어 주인공의 돈타령-검은 것을 희게 하고 파파 늙은 노파를 새파란 처녀로 둔갑시킨단다. 우리 문학사의 흥부의 돈, 돈, 돈 돈타령... 나는 요새 이상한 병에 걸렸다. 돈병에 걸렸다. 나도 이제는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는지 아랫도리가 맥이 쫙 빠지는 것이 두 다리가 휘청휘청해난다. 그래서 부부 간에 천륜지락이고 자시고 정말 귀찮기만 하다. 그런데 나의 거시기는 돈을 보면 흥분한다. 그래서 우리 마누라가 그 짓을 하고 싶으면 야, 돈 봐라! 하고 빨락빨락 백 원 짜리 한 장 내들고 꼬신다. 그러면 그 놈은 슬슬 발동이 걸린다. 그기에 야, 한 장 더 하면, 좀 더 머리를 쳐들고, 잘 한다, 또 한 장 더 하면 머리를 중천에 들고 , 잘 한다, 또 한 장 더 하면 완연한 고사포가 된다. 그래서 우리 마누라가 나에게 지어준 이름-남자기생. 2007. 11.13 하늘을 쳐다 봐!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짧은 인생에 다람쥐 채 바퀴 돌 듯 요 연길 좁은 세상에만 맴돌아 치겠나, 이 넓은 세상에 말이다. 이렇게 생각만 하면 나는 곧 바로 떠나간다. 저 멀리로. 기차를 탄다. 지겹도록 타는 기차에 좀 질린다. 그래서 옆에 사람과 말을 걸어본다. 그런데 말은 한두 마디 안팍에 끊기고 만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는 말을 하기 싫어하는 법인가봐. 그래서 저 앞에 예쁜 처녀동지를 미학적으로 감상한다. 그런데 그 처녀동지는 나의 정겨운 눈을 ‘流氓’이라는 한 마디 말로 밀막아 버린다. 참,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말할 사람이 없고 보아 줄 사람이 없다. 외롭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차창으로 저 먼 산, 먼 하늘을 바라보기. 세월아, 네월아, 하루 종일 쉼 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영혼은 흰 백지상태가 되고 만다. 나는 이 백지상태의 영혼으로 이곳저곳을 헤맨다. 이곳저곳을 헤매다보면 오만가지 사람을 다 만나건만 나는 늘 외롭다 못해 쓸쓸해난다. 그러면 나의 영혼은 멍해진다. 그래서 나는 내가 떠났던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여기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참 많다. 우리는 만나 왁자지껄 한 잔 하며 잘 놀아댄다. 그런데 나는 계속 외롭고 쓸쓸하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처럼 자기를 알아 줄 사람이 어디 있나 말이다. 자기 스스로도 자기를 잘 모르는 인간이 아니냐? 그래서 옛 사람들은 말했던가, 한 생에 知己 하나만 생겨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일이라고. 그래서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오늘도 산을 찾아 간다. 李白의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의 「獨坐敬亭山」을 외우며. 산꼭대기에 앉아, 외롭고 힘이 들 때는 하늘을 봐!하고 외쳐본다. 2007. 11.12 바가지콤플렉스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넓은 세상에 짧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여행이 많이 커버해주니 말이다. 새로운 곳에 가서 호기심과 신비감의 만족과 충족만으로 나는 만족한다. 그런데 여행자들 제일 골치 아픈 거 하나가 바가지콤플렉스다. 형형색색의 토산품들이 구매욕을 자극한다. 그런데 사자니 바가지요금을 안기지 않는지~ 맞아, 바가지요금이다하고 제풀에 놀라 구매욕이 쏙 수그러들고 만다. 그래 집에 돌아가서는 샀어야 되는데, 샀어야 되는데 후회막급이다가 인편에 다시 부탁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기도 한다. 바가지콤플렉스에 놀아난 것이다. 인간의 악마 같은 존재와 요사한 존재가 만들어낸 바가지콤플렉스. 이 바가지콤플렉스는 우리를 괴롭힌다. 특히 여행의 암적 존재다. 즐거운 여행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이 바가지콤플렉스를 떨쳐버려야 한다.    자, 그럼 바가지콤플렉스를 떨쳐버리는 비결 공개. 아예 안 사는 원칙. 아무리 싸게 주니깐 사라고 물고 늘어져도 본체만체 안 사주기. 그런데 이것은 너무 소극적이고 쫀쫀하다 보니 쉽게 기분 나쁘게 번질 수 있다. 그러니 적극적이고 대범하게 생각해보자. 모든 것은 생각의 문제이니 말이다. 그래 道적인 경지로 생각을 바꾸어보자. 적어도 道敎적인 경지로 말이다. 大音稀聲, 大象無象이 아니냐. 그러니 大買無買 경지를 창출하면 된다. 아무 것도 안 샀지만 모든 것을 산 듯한 그런 느낌. 여기에 身外之物 운운까지 곁들이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정말 物外에서 노는 道적인 경지를 맛보게 된다. 그리고 가령 바가지를 썼다고 하자. 바가지를 썼으니 기분 좋을 리 없지. 그렇다고 안달아 해보았자 내속만 더 상하기. 그러니 아Q적인 정신승리법이 없지 않아 있지만 베푼다고 생각하면 홀가분하다. 거지한테 베푼다는 그런 식 말이다. 내 소비수준에서 놓고 볼 때 바가지가 아니다는 생각. 일반적으로 자기 나라보다 뒤떨어진 나라에 가면 돈이 맥 있어 진다. 그래서 일반 소비는 느끈이 감당할 수 있다. 그 나라 생활수준에서 보면 비싸게 바가지를 쓴 것 같지만 자기 나라 수준에서 보면 그리 부담되는 소비는 아니다. 내 소비가 감당할 수 있을진대 왜 하필 바가지로 생각하겠는가? 기분 나쁘게 스리 말이다. 같은 값이면 분홍치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진짜 베푸는 신사숙녀 스타일도 이런 것이다. 적어도 이 몇 가지를 뇌리에 떠올려보면 바가지콤플렉스는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 2007.11.1
110    거식(拒食)(우상렬110) 댓글:  조회:4516  추천:84  2007-11-06
거식(拒食)우상렬 인간은 이 세상에 먹기위하여 온 듯 하늘에 것, 땅에 것, 바다 속에 것, 안 먹는 것이 없다. 어떤 것은 인간이 먹어 치워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먹어 치우는 맘모스. 그런데 인간은 분명 먹기 싫어하는, 안 먹는 면도 있다.인간은 기분을 잡쳤거나 어떤 것에 열을 받았을 때 식욕이 떨어지고 먹기 싫어진다. 일종 무의식적인 거식 자아징벌로 볼 수 있다. 이것이 심하게 나타날 때는 거식 자학광이 되겠다.그러나 사실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해 의지적으로 거식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이 동물하고 다른 점이다.거식증, 얼마나 먹기 싫어했으면 症적 정도까지 되었겠는가? 이 거식증은 요새 주로 다이어트하는 여자들 사이에 먹어 살이 찌는데 대한 반대급부로 취한 치열한 거식이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거식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거식할 수도 있다. 이 점, 동물하고 질적으로 다른 인간의 고상한 면이다. 인간은 적은 밥이 남는다, 그러나 동물은 많은 먹이도 모자란다는 말은 이 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영화 <山甘岭>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동굴에 갇힌 지원군들이 오래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여 목이 마르고 입술이 다 부르텄다. 이때 지도원이 유일하게 남은 사과 한 알을 부상병에게 먹으라고 준다. 그러나 부상병은 먹지 않고 냄새만 맡고 옆의 전우에게 넘겨준다. 그러자 그 전우도 냄새만 맡고 또 자기 옆의 전우에게 넘겨준다. 그러자 그 전우도… 이렇게 사과는 돌고 돌아 다시 부상병에게 돌아왔다. 부상병은 다시… 이렇게 한 알의 사과는 그대로 남는다. 나는 한국에서 아프리카빈민들을 위한 굶기운동이나 종교단체에서 금식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바로 인간의 고상한 인도주의를 느꼈다. 정양완 교수, 내가 한국에 유학 가서 제일 처음 지도교수로 모셨던 분이다. 정양완 교수에게는 마음의 아픈 상처가 있다. 6.25때 아버지인 위당 정인보 선생이 북으로 납치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는  크리스찬으로서 수시로 북한동포들을 위한 금식기도를 한다. 원수도 포용하는 금식기도, 정말 인간만이 창출할 수 있는 멋진 미덕이다. 나는 쓸데없이 많이 먹어 살이 너무 졌다. 중증 비대증이다. 나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거식의 미를 배울란다. 그러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2007-06-12  
109    선생콤플렉스(우상렬109) 댓글:  조회:4631  추천:79  2007-11-06
선생콤플렉스우상렬 선생노릇하기 대단히 좋아 보이쟈? 거저 서서 말만 하면 되는 갑쟈? 야, 사실 그런 것도 아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 못해 한다.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 개새끼는 똑똑하다. 선생은 가난하여 그 똥도 기름기가 없고 별로 먹을 것이 없는 것을 잘 안다. 그래 선생이 어디 한 자리 하는 사람처럼 배가 많이 나왔더냐? 남은 날아가는 돈도 잘 잡는다고 하던데 우리는 겨우 쥐꼬리만한 월급에 매여 산다. 그래서 오바하여 학생들 돈 뜯어먹기도 한다. 선비는 청빈해야 하거늘 하면서도 돈 없는 콤플렉스에 기가 죽는다.臭老九, 구린내 나는 아홉째라네. 몽고족이 원나라를 세워 사람들을 10등분하여 다스렸는데 선비들을 마지막으로 두 번째  등급인 9등급에 매겼네. 전대의 송나라에서는 선비들이 그래도 대접을 잘 받았는데 정말 일락천장이네. 여기에 선비들을 키워내는 우리 선생들이 포함됨은 더 말할 것도 없네. 그래서 비참하게도 우리 선생 별명이 臭老九가 되고 말았네. 그런데 새 중국이 들어서 문화대혁명시기 臭老九가 死灰复燃해서 또 우리를 괴롭힐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 그래서 호요방이 올라와 교사절을 정해주니 우리는 감지덕지. 그래도 사회에 나가 办事 하나 하자 하면 우리 선생 말이 안 먹혀 들어간다. 출세 뭇 한 콤플렉스가 뼈저리게 스며든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닭 모가지 하나 비틀 맥도 없는 갸날픈 선비라고 하네.   선생은 깔끔해야 한다. 학생들 앞에 나서는 직업이니 의포단장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값이면 잘 생겨야 한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이전에 사범류 학교에는 지체장애자들을 받지 않았다. 지체장애자들의 선생진출을 원천봉쇄한 셈이다. 그래서 선생이 강의 들어가기 전에는 정장 차림에 면경을 보고 또 보며 깔끔하게 해서 들어가란다. 나처럼 데데하거나 못난 놈은 항상 어깨가 처진다. 깔끔콤플렉스.선생은 근엄해야 한다. 선생의 그림자는 밟아서도 안 되는 거룩한 존재거늘 어찌 嬉皮笑脸할 수 있다더냐? 값이 떨어지게 스리! 선생의 기본 자세는 站如松이라 소나무처럼 꼿꼿하게 서야 하고 음성은 으험, 으험이 기본 톤이여라. 그리고 선생은 누구하고나 얘, 습니까, 습니다의 최대 정중성의 수양이 깃든 彬彬有礼를 나타내야 한다. 근엄한 선비콤플렉스. 嬉皮笑脸하는 나하고는 영 안 맞다.선생은 꼿꼿해야 한다. 선생은 真,善,美를 가르치는 지성이다. 이 세상 다들 假,恶,丑로 놀아도 선생만은 出污泥不染.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는 존재-꼿꼿콤플렉스. 선생은 최고의 지성. 먼저 생겨나 소금 한 알이라도 더 먹었으니 말이다. 알 것은 다 안다. 특히 이 세상의 비리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눈꼴 사나운 것이 많다. 그러나 敢怒不敢言, 뒤에서 불평불만만 많다. 그래서 지행합일이 잘 안 되는 명철보신파-명철보신콤플렉스.선생은 무엇이나 다 아는 척 해야 한다. 적어도 학생들은 우리 선생이 무엇이나 다 아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 기대에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공자가 知之而知之,不知而不知为知라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선생 위신 쫄딱 녹아난다. 틀리게 가르치고도 옳다고 증명하고 모르면서 아는 척 해야 박학다식해 보인다. 그래야 학생들 존경 받는다. 아는척콤플렉스. 2007-06-12
108    학생콤플렉스(우상렬108) 댓글:  조회:4838  추천:85  2007-11-02
학생콤플렉스우상렬조직에서 나보고 포스트닥을 하러 가란다. 또 한번 조직의 배려에 감지덕지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속으로 그리 달가와하지 않았다. 나는 워낙 다시 학생이 되는 것이 싫었다. 아니, 두려웠다. 학생이 무엇이냐? 열심히 배워야 하고 선생을 깍듯이 모셔야 하고 또 어쩌고 저쩌고… 학생콤플렉스가 나를 확 감싼다. 두렸다. 인생은 가정, 학교, 사회 이 3부곡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학생콤플렉스는 숙명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나는 워낙 절대자유를 추구하는 놈이라 소학교에 다닐 때 선생이 두 손을 엉치위 뒤허리 부분에 갖다 붙이고 온 몸을 걸사에 착 갖다 붙인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하며 손을 들 때는 머리 위로 기껏 뻗지 말고 머리 높이까지 착 들 것을 요구할 때부터 나는 학생신분이 지겨워나고 역겨워났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가기 싫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질도 써보았다. 그때마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사람이 안되!하며 엄하게 노려보는 아버지의 눈길이 두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항상 형님 손에 끌려 학교에를 다녔다. 아니, 아니 해서 술 석잔이라고 그것도 소학교부터 죽 박사생까지. 지금은 또 포스트닥을 하고.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인가봐. 사실 소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대학교, 대학교에서 석사생, 석사생에서 박사생… 이렇게 죽 올라가는데 학생콤플렉스는 점점 줄어드는 것이 분명하다. 학교나 선생이 이래라 저래라 하기보다는 자기가 알아서 하기가 점점 많아지니. 학생콤플렉스는 점점 해소되고 자유도는 점점 많아진다는 말이 되겠다. 대학교에 처음 들어와 공부하는 것이 왜 그리도 홀가분한지. 중학교에서는 하루 종일 공부했는데 대학교는 반나절만 공부한다. 그리고 석사생을 붙으니 또 얼마나 좋든지. 강의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전적으로 알아서 공부하기다. 이런 멋이 없으면 나는 정말 언녕 학생되기를 그만 두었을 것이다. 그래도 학생콤플렉스는 남는다. 성적콤플렉스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그래 학생으로서 학습성적에서 자유로울 놈 몇이나 되나 말이다. 그런데 학생콤플렉스는 뭐니뭐니해도 선생 대 학생 관계에서 생긴다. 선생이 누구나? 君师父一体, 임금 君은 빛 좋은 개살구니 그만두고라도 아버지 맞잡이는 된다. 그렇다. 一日为师终身为父. 그리고 선생의  그림자는 밟아서도 안 된다. 바로 이런 선생님이기에 쳐다보기에도 아름차며 두렵다. 선생님 앞에 서면 죄인이 법관 앞에 선 것처럼 괜히 가슴이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말은 뜨덤뜨덤 거린다. 여기에 선생님이 으흠, 으흠, 두어 번 헛기침이라도 하기만 하면 심장이 멎을 것만 같다. 바로 이런 존귀한 선생님을 나는 친구쯤으로 생각하고 같이 놀자고 하다가 정말 혼쭐이 난 적이 있다. 한국에서 박사생 공부를 할 때다. 내 지도교수 되는 사람이 나보다 나이 몇 살 많지 않았다. 내 착 위에 있는 형님 또래다. 그래서 술 한잔 하고 나면 형님, 동생하고 놀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지도교수가 받아주지를 않는다. 우리 지도교수는 근엄하시다. 여기에 하느님예수를 믿는다. 그러니 술은 하지 않는다. 안 마시는 술을 자꾸 권하며 형님 하기오, 한잔 하기오 했으니 곱게 보일 리 있겠는가. 우리 형님지도교수가 나를 穿小鞋-애 먹인다. 박사논문 다 썼습니다. 한 번 보아주십시오. 아무리 공손히 내밀어도 보아주지를 않는다. 다 보았습니까하면 기다려 한 마디에 세월아, 네월아 무진장 기다리기다. 성급한  놈은 애초에 속이 타 죽는다. 결론적으로 말쌈 드리면 학생은 선생 앞에서 항상 무조건 毕恭毕敬해야 하니라. 다른 도리가 없다. 학생콤플렉스-毕恭毕敬. 선생이 아무리 이성적이고 공정하게 논다 해도 그도 어디까지나 감정동물임에라! 나는 박사생 때 지도교수와의 껄끄럼했던 비극적 관계의 경험교훈을 살려 이번 포스트닥 공부는 그런대로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포스트닥은 무슨 합작지도교수를 모시게 된다. 내 지도교수 되는 분은 전형적인 중국 남방사람으로서 학식이 원근에 자자한, 그리고 말 그대로 桃李满天下의 资深教授이시다. 그래서 이분의 강의는 항상 학생들로 꽉 찬다. 나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분이 나름대로 표준말을 구사한다고 하기는 하나 사천 특유의 톤으로 강의를 할 때는 잘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리고 나는 천성적으로 강의를 듣기 딱 싫어하는 놈이다. 그러니 학생 될 자격은 없는 놈이다. 그렇지만 나는 포스트닥인지 무언지를 위해 참고 견디며 못 알아들어도 알아듣는 척 하고 잘 안 들으면서도 잘 듣는 척 한다. 강의를 열심히 잘 듣는 척 해야 하는 것, 학생콤플렉스의 직실한 한 보기다.青出于蓝而胜于蓝, 학생이 선생보다 똑똑해지는 거, 필연적인 것. 학생은 선생의 두 어깨를 딛고 올라가니깐. 그렇다고 까불지 말아라! 선생보다 잘 난 척 하지 말아라. 선생 기분 안 좋다. 항상 제가 이렇게 큰 것은 선생님이 잘 가르치신 덕택이지요, 여부 있브니꺄! 이렇게 겸손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학생은 선생보다 언제나 못난 자세를 보여야 하니라. 내 선생보다 잘 났어하고 외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학생콤플렉스.그리고 한 번 니 선생이면 영원한 니 선생이다. 일회용 선생은 없다. 여기에는 나이 관계도 없다. 나보다 어린 놈도 나를 배워줬으면 내 선생이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깍듯이 모셔야 되는 거, 선생 모시기-한 평생 따라 다니는 학생콤플렉스.피곤하쟈, 그럼 이만 주어대자. 그럼 마지막으로 니 좋아하는 학생콤플렉스 벗어나는 비결 알려줄게. 선생 똥은 개도 안 먹어, 臭老九!하면 된다. 간단하다. 한번 따라 해봐… 크게!         2007-06-12
107    ‘打倒毛主席,邓小平上台’(우상렬107) 댓글:  조회:2626  추천:86  2007-11-02
‘打倒毛主席,邓小平上台’우상렬그 친구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지? 알고 싶다. 내 이 글은 그 친구를 위해 쓴다.소학교 5학년 때다. 1975년, 온 나라가 등소평의 右倾翻案风을 反击한다고 야단법석. 그런데 어느 하루 아침 학교에 도착하니 공안들이 삼엄한 경계망을 늘였다. 전반 학교분위기가 무시무시했다. 이상하게 여기며 종종 걸음으로 우리 반 교실 앞으로 달려가니 사람들이 욱 모여 서있다. 우리 반 교실 문 앞을 원점으로 하여 회가루로 큰 반경선을 죽 끄어놓았는데 사람들은 그 반경선을 둘러싸고 게사니목을 해가지고 교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기에는 선생도 있었고 학생도 있었다. 우리 반 흑판에 반동구호가 씌어 있다는 것이다.‘打倒毛主席,邓小平上台’, 참, 기겁을 할 일이다.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어떤 나쁜 놈이 썼지? 흰 옷을 입은 공안들이 들락날락하고 사진을 찍고 자로 재고 수첩에 적고 바삐 돌아쳤다. 우리는 내심이 기다렸다. 그 나쁜 놈을 저주하면서, 아니 빨리 잡히기를 기도하면서. 그날 우리는 온 하루 공부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한 사람 한 사람 흑판 앞에 나와 분필 글 쓰 보이기도 하고 전날 저녁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를 써내기도 하며 공안들의 안건수사에 협조했다. 공안들이 인민대중을 충분히 발동한 덕택인지, 여하튼 반동구호  쓴 범죄자를 몇 일이 안되어 쉽게 잡아냈다. 그런데 잡아내고 보니 좀 맹랑했다. 우리 반에서 말이 적고 너무도 온순한 새애기 같은 친구가 잡혀 나왔다. 자기의 죄과에 대해 순순히 승인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맹랑하다 못해 저어기  놀랐다. 공안이나 학교당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그 친구 뒤에 꼭 教唆犯이 있다고 추측했다. 그 온순한 친구가 그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 청소년범죄 뒤에 꼭 教唆犯이 있는 것으로 단정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계급투쟁의 복잡성을 이렇게 풀이했다, 하물며 천인공노할 정치범죄사건임에라! 그래서 그 친구를 성토하는 대회의 구호의 하나가 教唆犯을 교대하라, 教唆犯을 잡아내자!였다. 그런데 정말 教唆犯이 있는지 없는지, 그 친구는 教唆犯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단독범죄로 단정짓고 그 친구를 청소년노동교양소에 보내는 것으로 그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도 이 어마어마한 ‘정치범죄’사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직 세상물정을 알기에는 어리고, 더구나 복잡한 정치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기에는 한참 어린 12살 좌우의 코흘리기 나이의 그 친구가 어떻게 당시 모주석의 용인 하에 ‘4인무리’가 주도하는 反击右倾翻案风运动을 정면으로 맞받아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문제다. 이른바 반동정치구호‘打倒毛主席,邓小平上台’를 다시 한번 보자. 당시 모주석은 계속 좌적인 노선을 견지하는 데다가 인생만년에 사물에 대한 판단도 많이 흐려져 야심가들인 ‘4인무리’들한테 이용당하는 형국이 되고 있다. 그래서 한 시기 등용되어 난국을 수습하며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고 있는 등소평을 타도하는 右倾翻案风运动을 일으킨다. 그러니 이 시기 모주석은 잘 못해도 한참 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친구 반동정치구호‘打倒’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실사구시적으로 일 잘하는 등소평이 하루 빨리 올라가야 한다. 이것이 그 당시 중국 역사발전의 객관적인 요구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打倒毛主席,邓小平上台’는 잘 못된 것이 없다. 당시 시점에서 대단한 선견지명을 보이기도 한다. 그 이듬해 모주석이 서거하고 ‘4인무리’가 타도되고 등소평이 부상하면서 실제로 역사는 그와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그래 그 친구가 이 모든 것을 알고 썼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못한 감을 준다. 나는 그 친구 뒤에 ‘教唆犯’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문화대혁명말기라 등소평을 옹호하고 ‘4인무리’를 반대하는 선구자들이 실제로 역사에 등장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청명 날 천안문광장에서 인민들의 주은래에 대한 추모와 ‘4인무리’에 대한 성토는 그 집중적인 폭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教唆犯’이 코흘리기 어린이를 시켜 교실흑판에 그런 엄청난 반동정치구호를 쓰게 했다고 보기에도 여전히 석연치 않은 점이 남는다. 그런데 ‘4인무리’가 타도되고 잘 못된 것을 바로 잡는 그 시점에도 ‘教唆犯’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친구를 괴짜라고 할밖에. 그런데 그 친구의 이 반동정치구호 사건은 거저 그 친구 청소년노동교양소에 갔다 온 것으로 끝날 것인가? 그 친구 애매한 역사의 희생품으로 되고 말 것인가? 이 점 또한 석연치 않다. 2007-06-11
106    盗癖(우상렬106 댓글:  조회:4439  추천:105  2007-11-02
盗癖우상렬 인간은 일단 생물적인 존재로서 자기가 먼저 살고 보기다. 인간의 악마 같은 자사자리성은 그 극단적인 보기다. 이것이 우리의 무의식을 이루기도 한다. 바로 이런 무의식이 맹목성적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일종 병적인 盗癖에 다른 아니다. 보다시피 이것은 무의식적인 심층심리학의 문제다. 심층심리학에서 이런 盗癖은 은밀한 모험성을 동반한 짜릿짜릿한 재미 때문에 더 한층 조장되기도 한다고 한다.  지난 세기 70년대 초 내가 소학교에 다닐 때다. 우리 반에 쩍 하면 도난사건이 발생했다. 오늘 이 친구가 연필을 잃어 버렸는가 하면 내일 저 친구가 고무지우개를 잃어 버리고 모레는 다른 한 친구가 또 무엇을 잃어 버린다. 우리 반은 조용한 날이 없다. 매일 도적을 잡아내기에 바쁘다. 우리 담임선생은 나이 지긋한 여선생이었는데 이 도적안건 수사에 이골이 나 정말 福尔摩斯 뺨칠 정도의 고수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매번 잡혀 나오는 도적놈이 다름 아닌 우리 반에서 첫날 각시처럼 제일 조용한 여자애였다. 매번 잡혀나올 때마다 검토서를 읽게 했다. 우리 담임선생의 말로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뒤로 호박씨 깐다고 한단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이 여자아이는 우리 반에서 제일 잘 사는 집안의 딸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녀에게는 훔친 연필이나 고무지우개보다 훨씬 좋은 것들이 필통에 수두룩했다. 그래서 우리가 왜서 훔쳤는가고 물으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머저리, 머저리하고 말았다. 전형적인 병적인 盗癖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단순히 끝나고 만 것이 아니다. 우리 담임선생을 비롯한 학교당국에서는 결국 그녀를 청소년교양원에 보내고 말았다. 당시 그들에게는 워낙 이런 병적인 盗癖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다. 우리 반에 또 내가 소학교에 다닐 때와 비슷한 병적인 盗癖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멀끔하게 생긴 남자애가 그 주인공이었다. 학교 보위과에서 와 짜식의 농장을 뒤지니 무슨 세수수건이며 비누며 신이며, 여하튼 우리 반 남자애들이 기숙사에서 잃어버렸다고 한번쯤 투덜거린 시시껄렁한 모든 것들이 다 나왔다. 우리는 그날 무슨 신기한 보물을 보듯 그 물건들을 보며 결국 한바탕 웃고 말았다. 뛸 데 없는 병적인 盗癖. 짜식, 왜 이런 시시껄렁한 것을 훔쳐, 저 은행쯤이나 털꺼지. 우리가 이렇게 농담을 하면 그 친구 한다는 얘기가 어쩐지 아무 것이고 훔치고 나면 시원하다 말이야. 얼마 후 이 친구는 盗癖을 치료하려 한 학기를 휴학했다. 한 학기를 지나 이   친구를 보니 언제 盗癖이 있었나 싶게 전적으로 새로운 모습이었다.    2007-06-11
105    노스텔지아(우상렬105) 댓글:  조회:4853  추천:100  2007-10-26
노스텔지아우상렬 인간은 喜新厌旧다? 그렇다. 분명히 인간은 새 것을 좋아하고 낡은 것을 싫어한다. 남자들이 입으로 조강지처를 외우면서도 눈은 항상 다른 여자들을 여겨보듯이. 그러나 인간에게는 또한 분명 노스텔지아(nostalgia)적인 경향이 있다. 이른바 恋旧癖가 그것이다.  恋旧癖. 옛 것을 좋아한다. 거저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고 癖적이다. 그러니 가히 무의식적이라 할 수 있다. 무의식적인 恋旧癖---노스텔지아 천태만상. 인간은 시작과 끝에서 시작이 절반이라고 시작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이상적인 善始善终으로부터 도덕교훈적인 保持晚节이니,비극적인 始乱终弃, 一不做二不休에 이르기까지 끝에 포인트를 둔다. 훗날 노스텔지아적인 되돌아봄에 후회없이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처음 만남은 인연으로 풀이하면서 귀중히 여기고 마지막 헤어짐은 더 없는 아쉬움으로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일종 노스텔지아적인 애수 때문이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성공할 수 있은 것은 바로 이 ‘마지막’이 크게 한 몫 했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 호칭에 老朋友,老战友, 老同学 등 老자를 잘 넣어 부른다. 이전에 어쩌다가 피긋 만난적이 있을 뿐인데 이 老자를 넣어 불러준다. 귀 맛 좋다. 물론 여기에는 老金, 小金 하듯이 존경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겠지만 新老朋友 하듯이 老자 하나로 노스텔지아적인 친밀감을 짜 넣고 있기도 하다.우리 조선사람들 희떠운 소리 잘 한다. 그래 양반이 아니고 젊었을 때 범 잡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나와봐라. 이때는 똑 마치 우리도 이전에 잘 살았는데 하는 아Q와 사돈에 팔촌. 아Q정신은 노스텔지아를 기저에 깔고 있다.내가 대학시험에 붙기 위해 아득바득한 유일한 동기는 집을 떠나기 위해서다. 그때 집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 싫든지. 어떤 때는 엄마, 아버지조차 보기 싫었다. 그래서 대학교에 붙으니 살 것 같았다. 집을 떠나는 그 홀가분함이여, 나를 훨훨 날게 했다. 그런데 대학교에 가서 한 학기도 채 넘기지 못했는데 집에 가고픈 마음은 정말 归心似箭. 엄마, 아버지가 보고 싶고 집에 있는 모든 것이 보고 싶다.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초라할 지라도. 그래서 한 학기가 끝나기 바쁘게 집으로 막 달려갔다. 그런데 집에 가 있을라니 또 별로다. 학교에 가고픈 마음이 꿀 같다. 그래서 한 달이 채 안되어 학교로 오고 말았다. 그리고 개학이 되어 공부를 하는데 또 얼마 있지 않으니 집에 가고 싶다. 그래서 겨우 방학까지 참아 집에 가니 또 학교에 오고 싶고… 다름아닌 노스텔지아와 喜新厌旧의 이율배반적인 감정 헷갈림에 놀아났기 때문이다.  바로 이 노스텔지아 때문에 동년은 다 아름답다. 아무리 고아로 자라났다 해도 어른이 되어서 동년을 뒤돌아볼 때 동년은 이미 불행한 기억을 떨쳐버린 노스텔지아를 자극하는 심미대상이다. 떠나온 고향도 마찬가지다. 고향이 아무리 살기 어려워 떠났어도 세월이 약이라고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향수에 빠진다. 그래서 동년, 고향을 노래한 문학예술은 우리의 영원한 노스텔지아 공감대다.현대인간들은 여행을 하기 좋아한다. 여행을 하는 기본 동기의 하나가 바로 이 노스텔지아다. 유적---옛 사람, 옛 터 찾아보고 古色古香 느끼고 맛보기. 그래서 흘러간 옛 노래나 민속촌은 우리의 영원한 노스텔지아 고향이다.  골등품 수집, 별로 쓸 데도 없는 옛 것을 집안에 끌어들여 내 것으로 만들기. 옛 것을 소유함으로써 노스텔지아를 최고로 만족 받는다.패션, 옷의 유행을 주도한다. 그 유행 가운데 하나가 복고풍. 전통복장의 부활은 바로 사람들의 노스텔지아에 영합한 것이다. 개량한복은 그 전형적인 보기다.계획생육, 현재 잘 지켜지고 있는 듯 하다. 우리 조선족은 둘 낳으라는 아이도 하나밖에 안 낳는다. 모두들 달랑 하나만 낳는다. 优生优育하겠단다. 그런데 고놈 하나 달랑 있는 게 애처롭다, 불쌍하다. 이전에 우리가 클 때는 안 그랬는데… 히아, 오빠, 언니, 동생… 얼마나 화기애애하고 재미났어. 이것이 우리의 노스텔지아를 자극한다. 그래서 고놈들 애처롭고 불쌍하다. 그래서 ‘中国的小皇帝’,응석받이로 키우고 만다.  개혁개방, 참 좋다. 일단 먹을 것이 흔해 좋다. 그런데 사람들 일에, 돈에 미쳐나 제정신이 아니다. 人心不古. 이전에 안 그랬는데. 좀 못 살았어도 사람들 마음 하나만은 좋았는데. 그리고 들에 나가면 노래 소리 흘러 넘치고… 사람들 머리 절레절레 흔든다. 개혁개방 전의 노스텔지아에 빠졌다. 그래서 모택동의 초상을 새로 모시고 등소평의 1원보다는 모택동의 10전이 좋단다.문학예술도 바로 인간의 이 노스텔지아를 잘 발산하여 성공한 작품이 대단히 많다. 뿌쉬낀의 <생활이 그대를 속히더라도…>를 보자. 생활이 그대를 속히더라도/참고 견디면 우울한 날은 가고 아름다운 내일이 오리라! 대충 적어보면 이러루한 시다. 현재의 생활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이제 그것이 세월과 더불어 지나가고 나면 우리의 노스텔지아를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한 감로수가 되니 참고 견디라는 말이 된다. 이로부터 생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희망을 안겨준 명작.  노스텔지아는 일상생활이나 문학예술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심오한 사상, 철학에서도 나타난다. 공자의 周나라 대동세계, 노자의 小国寡民, 전형적인 노스텔지아적인 흘러간 옛날에서 이상향 추구하기. 노스텔지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현대는 지구촌 글로벌시대하며 세계가 하나로 되어 가며 정말 대동세계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그러니 민족적인, 지역적인 노스텔지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대두됨은 당연한 논리다. 가장 민족적인,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논리도 이 노스텔지아의 자아확보를 위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그러면 왜서 노스텔지아냐? 그것은 떨어버릴 수 없는 숙명이냐? 그렇다. 그것은 이미 우리 인간의 집단무의식이 되어 있다. 우리는 완전무결함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음. 그래서 현실은 항상 불만족스럽고 우리는 우울하고 슬프다. 바로 우리는 이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떨쳐버리기 위해 뒤로 돌아본다. 앞은 불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안겨오는 것이 없다. 바로 현재 우리가 심미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이 ‘돌아본 뒤’에 현실의 반대급부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있다. 그것이 이미 도태된 구닥다리고 한 물 간 것이어도 좋다. 그래서 노스텔지아는 감상적 센티멘탈이즘에 잘 빠지기도 한다. 이것이 문제면 문제라겠다. 그러나 우리 별 볼일 없는 촌놈들이 현실의 우울과 슬픔을 가셔줄 노스텔지아에 좀 빠지면 뭘 하냐? 하늘이 무너지냐? 우리 같이 빠져 보기오! 2007-06-11  
104    못난 콤플렉스(우상렬104) 댓글:  조회:4655  추천:54  2007-10-26
못난 콤플렉스우상렬 사람은 다 자기가 잘 났다고 생각하고 산다. 못났다는 소리를 제일 듣기 싫어한다. 못났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애초에 거부한다. 그래서 못난 콤플렉스에 싸일 확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 못난 콤플렉스에 싸여 한동안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이 세상에 와 처음에 내 스스로 잘 났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물론 내가 잘 생겼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내가 못났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여자애들이 나를 쳐다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 면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좁지는 않은 이마, 진한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 덩실한 콧마루, 키가 좀 작은 것이… 그리 못 나지는 않았는데 하면서도 결국 못난 데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나는 어떻게 된 문서인지 그때 잘 못 먹는 세월인데도 살이 질 대로 져버리 일본의 스모우 선수 모양새로 번져갔다. 그런데 그것이 콤플렉스로 확실히 자리를 잡기는 대학교에 가서다. 대학교에 가 보니 고운 처녀동지들이 참 많았다. 꿀 같은 욕심이 막 솟구쳐났다. 그런데 그 처녀동지들이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남들은 하나씩 척척 끼고 잘도 다니는데… 나의 못난 콤플렉스는 결국 여기서 결정지어졌다. 그리고 그때 설상가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뽀드라지(여드름)가 또 한 매 결정타를 가했다고 봐야겠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때 하는 일이란 결국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술 퍼 마시기. 술로써 못난 콤플렉스를 발산하자 했고 처녀동지들을 잊자 했다. 다른 하나는 책보기. 술에서 깨면 책보기. 书中自有颜如玉를 외우면서. 못난 콤플렉스 때문에 나는 사람들 앞에 서기를 대단히 꺼려했다. 사람이 없거나 안 보는 데서는  술술 나오던 말도 사람들 앞에 서면 꺽꺽 거리며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 학생간부 같은 것은 애초에 미련을 접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실습을 할 때도 중학교 교사실습을 배치하는 것을 기어코 우겨 방언조사로 땜질하고 말았다. 그런데 운명은 얄궂게도 대학졸업 후 굳이 나를 중학교 교사로 배치를 해준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에서 연구생시험을 보는 것으로 못난 콤플렉스만 쌓이는 그 지겨운 중학교 교사 노릇의 탈출구를 찾았다. 그런데 인생은 돌고 돈다고 할까, 아니면 운명의 아이러니라 할까, 나는 연구생을 졸업하고 결국 사람들 앞에 나서는 직업인 선생 노릇을 어쩔 수 없이 하고 말았다. 그때 심양의 내 짜개바지 친구들 축하해주기는커녕 한다는 얘기가 야, 니 같이 둔하게 생긴 놈이, 아니면 야, 깡패두목 같은 놈이 어떻게 대학교수 노릇 하지 하는 식이다. 이때도 못난 콤플렉스는 나를 감싸고 돌았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 앞에 설 때마다 못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송구스러운 마음이 먼저 앞섰다. 그래서 떳떳하고 당당해야 할 대학 교수가 학생들 앞에서 항상 주눅들어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어줍잖은 표정이고 모습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나다. 그때 아무리 못났더라도 젊은 연구생총각 대학교수 희소가치 때문에도 대학생 처녀동지들이 은근히 사모하고 프로포즈를 보내오기도 한 것 같은 데 물 먹은 담이 되어 내 절로 물 앉고 말았다. 해가 잠던 밤하늘에/작은 별들이 소근대는 너와 나를  훔쳐보는가봐/할가말가 망설이는 나는 못난이… 아, 운명의 신은 정말 나를 놀리는 가봐. 이제는 잘났다고 생각하는 나, 보상심리가 살아나 여자들 앞에서 좀 잘날까 해보자니 내일 모레 50고개를 바라보는 나의 아래 도리는 맥없이 축 처지고 만다. 그런대로 고만고만 살으라는 갑다.       이 못난 콤플렉스 때문에 언젠가 우리 아버지하고 싸우기도 했다. 내가 연구생 다닐 때다. 겨울 방학 때가 되면 우리 아버지 생일이 돌아온다. 우리 아버지 생일 때마다 한다는 얘기가 이놈아, 다른 사람들은 대학만 나오고도 새애기를 잘 데리고 오던데 너는 연구생 다닌다는 놈이… 다 때려치워! 이때마다 나는 거저 시무럭이 웃고 넘기고 만다. 그런데 어느 한번은 술이 좀 거나하게 되어서 그런지, 우리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말대구를 했다. 뭐요, 새애기 데려오라구요? 내 이 못난 놈이 어디 가 데려와요? 좀 잘 만들어주고나 데려오라 하지요! 하하하, 성낼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호쾌하게 웃으신다. 이놈아, 니가 어디 못났다고 그러냐? 이 못난이야! 쯔쯔, 남자라는게… 확실히 우리 아버지 눈에는 내가 잘 나 보였겠다. 우리 아버지는 이 아들이 있어 얼마나 대견스러워 하는 지 모른다. 아버지는 우리 육형제를 낳았는데 세상에 우리 아들이 최고라고 항상 자랑하며 어깨를 쭉 펴고 다닌다. 우리 아버지 논리대로 우리 육형제를 쭉 보니깐 내 위에 다섯 형은 그런대로 다 괜찮게 생긴 것 같다. 다 자기네들보다 낳은 새애기들을 얻어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리고 키 꼴 하나만 보아도 다 내보다 크다. 제일 큰 형님으로부터 죽 내려오면서 조금씩 작아지기는 했지만. 아마 우리 아버지도 육형제를 낳자니 점점 맥이 진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한테 와서는 1미터 70도 못 넘는 1등 残废를 만들고 말았겠지. 나는 진실로 이렇게 생각하며 내 못난 콤플렉스의 최종 근원을 결국 우리 아버지에게 돌리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일종 운명적인 비극으로 치부하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다음 세상에 가서 보자고 하면서.이 못난 콤플렉스는 나의 결혼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지난 세기 90년대 초반 내가 연구생을 졸업하고 겨우 한 숨 돌리며 그 당시 천정부지로 값이 오른 연구생 가치를 이용하여 이젠 연애도 하고 장가도 가볼까 하는데 어떤 잡아죽일 놈이 먼저 퍼뜨렸는지는 잘 모겠지만 세간에 나도는 풍문에   처녀들이 신랑감으로 선호하는 남자 키는 1미터80 이상을   표준으로 잡는다는 것이다. 이 표준에 따라 1미터 80을 넘기지 못하면 2등 残废, 1미터 70을 넘기지 못하면 1등 残废라는 것이다. 내 키가 1미터 70을 못 넘기니 1등 残废에 드는 셈이다. 그때 나는 얼마나 주눅이 들었는지 모른다. 겨우 살아난 장가 갈 욕망이 자라목처럼 도로 쏙 기어들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대학교 우리 반급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축에 속했지만 결혼은 우리 그때 장가드는 나이로는 퍼그나 늦은 30이 다 되어 제일 늦게 가고 말았다. 어쩌구려 겨우 만난 지금 내 아내 된 처녀동지가 키가 작아도 괜찮다고 하기에 허리를 쪽 펴며 겨우 결혼에 골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안깐(아내)이 얼마나 곱고 고마운지 모른다. 물론 나는 못난 콤플렉스를 떨어버리자고 노력도 무지했다. 대학교 때 어느 방학간에 집에를 갔더니 심양에 한창 남자들의 굽 높은 구두가 인기리에 팔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한테 사정하여 겨우 하나 사 신고 학교를 왔다. 한 5센치는 키가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래서 어깨가 좀 펴지며 우쭐렁 거릴가 했다. 그때 우리 반급 친구들 가운데 너도나도 부탁이다. 그래서 심양에 부탁하여 거저 다 사주었다. 장사골이 튼 지금쯤이면 한 몫 잡았겠는데, 그렇쟈? 그리고 못난 얼굴에 잘난 사람들의 흉내를 내느라고 바를 것 다 바르고 문지를 것 다 문질러보았다. 그런데 东颦效施라 별로다. 그래서 다분히 우리 절반 형님 아Q 정신승리법 맛이 풍기는 노릇도 해보았다. 잘 생기려면 누가 못 생겨? 생기기 싫어서 그렇지. 잘 생긴 놈은 다 개 아들놈이야! 그리고 우리 아버지 비법도 구사해보았다. 야, 키 크면 뭘 하냐? 하늘에 별을 따겠나? 키 작으면 차표도 절반 값 내고 영화표도 절반 값 내고 옷감도 절반 값이면 되고 오죽 좋아서. 야, 허우대 큰 놈들 다구진게 하나 없더라. 작은 고추 맵다고 작은 놈이 맥을 써! 레닌 봐라, 조그마한게 얼마나 대단해. 사회주의혁명을 혼자 다 했지 않냐? 개혁개방이 되자 등소평이 올라오니 또 등소평을 그들먹인다. 등소평 봐라, 조그마한게 중국을 쥐략펴략 하지 않냐? 누가 감히 등소평 앞에서 얼씬이나 하겠나, 어림도 없지! 참, 우리 아버지 말씀도 일리가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의 일장 연설을 듣고 나면 항상 붕 뜨는 것이 기분이 좋다. 레닌이 되고 등소평이 된 기분이다.그러나 사실 나의 못난 콤플렉스는 내가 미학을 가르치면서 냉철한 지적인 真, 善, 美의 논리로 하루 아침에 날려 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잘 나고 못 난 표준은 겉모양 허울에 있지 않다. 마음이 고와야 한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얼굴만 여쁘다고 여자냐/한 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여자가 정말 여자지… 그래서 나는 마음이 고와지려고 노력했다. 我很丑,但很善良,그런 경지를 추구했다. 열심히 책을 보며 真을 추구했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항상 인간적 동정심을 베푸는 善에 경도되었다. 마음이 고우면 못난 얼굴도 여쁘 보인다. 情人眼里出西施, 이것에 대한 좋은 주석으로 된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真, 善, 美가 통일된 이상적인 경지의 완전무결한 인간은 드물다. 가물에 콩나물 나듯 하다. 잘났으면 잘난 값을 한다고 마음이 나쁘거나  못났으면 보상심리에 마음이 곱거나 하는 아이러니가 오히려 정상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말 잘난 사람이 못되게 굴 때 얼마가 밉고 괘씸하던가. 못난 사람이 못되게 굴면 원래 그런가 하겠는데 말이다. 못나고 잘난 미학적 변증법은 바로 이렇다. 나는 못난 미학을 확실하게 세웠다. 요새 내가 머리를 중머리 비슷하게 짧게 깎기를 좋아하니 어느새 중대가리 별명이 와 붙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홀가분하다. 즐겁다. 잘 난 내 청춘을 즐긴다.               잘 나도 내 청춘, 못 나도 내 청춘, 내 멋에 사는 거야. 개성미. 그렇지만 알찬 真, 善의 경지~. 잘 난 내 인생!  2007-06-08
103    나와 바퀴벌레, 그리고 백개미(우상렬103) 댓글:  조회:5121  추천:64  2007-10-26
나와 바퀴벌레, 그리고 백개미우상렬 나는 동물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곤충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이요, 뭐요 하는 것을 볼 때는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삐죽거린다. 나는 생기기는 우악지게 생겼어도 여간한 동물이나 곤충을 보고는 일단 겁부터 먹는다. 나는 한국 유학생활에 그만 바퀴벌레와 백개미에 너덜머리가 났다. 나는 한국에 유학가기 전에 중국에서 蟑螂药하는 소리는 들었어도 바퀴벌레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 유학 가 셋방살이를 하면서 이 蟑螂---바퀴벌레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돈이 좀 딸려 어느 반지하에 둬 평 남짓한 집에 세 들었다. 바로 이 반지하집에서 바퀴벌레와 조우했다. 몇날며칠 몇시인지까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여하튼 이 첫 조우는 바퀴벌레라는 놈을 나한테 아주 징그러운 놈으로 각인시켜 놓았다. 그때 바퀴벌레를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기겁을 하여 머리칼이 쭛빗 설 정도였다. 그래서 곧 바로 슈퍼로 달려가 눈을 찔 감고 제일 비싼 바퀴벌레약을 사왔다. 그리고는 집으로 들어서는 길로 냈다 뿌렸다. 바퀴벌레들이 싹 죽는 듯 했다. 한 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튼날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들어서 보니 무슨, 바퀴벌레들이 주방이며 방이며를 들락날락하며 대잔치를 벌리다가 불청객이 들어서니 기분 나쁘게 이리저리 재빨리 피해들 갔다. 나를 왕따 시키는 건가, 여하튼 기분은 제로다. 그래서 바퀴약 스페레이를 드는 즉시 돌격총 갈겨듯이 쏴쏴--- 사방으로 뿌려댔다. 바퀴벌레들이 가뭇없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튼날 또 그 모양 그 꼴… 그래서 바퀴벌레약통을 들고 슈퍼에 찾아가 공소하기. 아저씨, 이 약 전혀 말 듣지 않네요. 왜 가짜 약을 팔아요라고 들이대니 한다는 소리가 우리 한국의 바퀴벌레는 면역이 되나서 참, 어쩌지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별수 없지. 악에 바친 나는 바퀴벌레를 보는 족족 때려잡기로 했다. 이때쯤 되니깐 바퀴벌레가 무섭고 무어고 없다. 그래서 나는 파리채를 사 들고 왔다. 탁 쳐서 배가 톡 터지며 죽는 바퀴벌레를 보는 순간 더럽고 무엇이고를 떠나 정말 깨고소해 났다. 고 톡 터지는 소리는 마치 음악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래서 공부하기 싫은 날에는 파리채 들고 바퀴벌레 때려잡기 놀이를 했다. 나한테 있어서 바퀴벌레 때려잡기는 어느새 놀이로 승화되었다. 내 스스로가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 놀이가 잘 되어지지 않았다. 바퀴벌레들이 잘 놀아주지를 않았다. 고놈들은 나만 보면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나와 주지를 않는다. 일단 나하고 숨바꼭질을 노는 거다. 그래서 내가 장판가장 자리를 뒤지면 네댓 놈, 식장을 열면 또 네댓 놈, 주방의 행주를 뒤지면 적어도 한 놈쯤은 눈에 띈다. 그리고 이놈들은 얼마나 빨리 닫는지 눈에 띄게 바쁘게 내뺀다. 이놈들 몸에는 퇴화된 날개 같은 것이 있는 듯도 했다. 굼뜬 내가 어물어물하다 보면 다 놓치고 만다. 그래도 공부하기보다 열심히 뒤지고 때려잡고 하니 내 눈치 하나 빨라졌고 동작 하나 빨라졌다. 물론 바퀴벌레 때려잡는다고 시렁에 그릇을 네댓 개 깨어먹기도 했지만. 그리고 바퀴벌레라는 놈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놈들은 햇빛을 싫어하고 꼭 음침한 곳을 좋아한단다. 그래서 해양성기후에 습기가 비교적 많은 한국기후에 바퀴벌레가 살기에는 제격이란다. 그러니 한국의 바퀴벌레약 광고도 많지. 반지하 같은 습한 곳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이 짜식들은 사람냄새를 희한하게 아는 것 같다. 집에 사람이 들어서면 숨기에 바쁘고 집에 사람이 있으면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짜식들은 낮에도 나와 다니지만 사람들이 자는 밤에는 더 극성스럽게 싸 다닌다. 자다가 일어나 전등불을 켜보면 온통 짜식들 세상이다. 잠은 안 자는지. 그리고 이 짜식들, 가만, 나는 바로 이제 말할 이 짜식들 특성 때문에 그만 기가 질리고 손 들고 말았네. 이 짜식들 생명력 얼마나 강한지 우리 인간들 이 지구에 오기 전부터 있어 왔단다. 우리 인간의 연륜이 몇 백만 년을 헤아린다면 이 짜식들은 적어도 억년은 된단다. 사실 이 자식들은 여느 곳에서나 살 수 있는 그런 적응력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짜식들은 하루 저녁에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들자식보고 더 나아가 손자손녀까지 보며 기하급수적인 번식률을 보인단다. 그러니 아무리 인간이 많다고 인해전술을 쓰며 박멸해도 그것은 不知量力의 웃기는 노릇이네. 그래서 나는 그만 그 반지하 셋집에서 도망치다시피 이사를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바퀴벌레에 대한 증오로 이가 갈렸다. 짜식들,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래 저것들, 어떻게 콱 잡아 치울 수는 없나? 과학의 번영창성을 노래하는 인간들이라는 것이 참. 다음 순간 나의 뇌리에는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별 방법이 없어. 잡아 먹기다. 바퀴벌레를! 옳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러면 그렇겠지! 뭐, 징그럽답고. 천만에 말씀, 사람들은 번데기도 잘 먹지 않냐? 그리고 저기 저 남방 어떤 곳의 사람들은 구데기를 번식시켜 식용하지 않는다던가? 문제는 可食性, 즉 먹을 수 있나가 하는 것이야. 이제 바퀴벌레가 어떻게 어떻게 영양가가 높고 어떻게 어떻게 먹으면 맛 있다는 영양학과 요리학적인 검증만 되면 일품 요리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바퀴벌레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겠는가? 같은 선상에서 우리 인간에게 백해무익하다는 모기나 파리도 이렇게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잡아먹는 황홀한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은 물러나도록 했다. 주먹을 가다듬고 끌어들이는 것은 더 힘 있게 멀리 치기 위해서다.나는 이번에는 돈을 있는 대로 다 긁어모아 햇빛이 찬란히 드는 금방 지었다는 옥상 셋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조선의 맛을 톡톡히 보는 것 같았다. 희한하게도 내가 든 옥상에는 바퀴벌레가 없었다. 살 것 같았다. 바퀴벌레와 나의 인연은 이로써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개미라는 놈이 나를 또 꼴린다. 옥상셋집에는 어느새 백개미들이 바글바글 끓었다. 아무래도 하느님이 나보고 문학박사고 뭐고 다 때리 치우고 생물학자가 되라는 모양이지. 아닌게 아니라 나는 또 백개미의 전문가가 되었다. 백개미는 말 그대로 흰 색이고 쌀의 뉘처럼 작아 상대적으로 크고 검은 색이 나는 바퀴벌레보다는 징그럽지 않다. 그런데 고 조고만한 것이 사람을 물 때면 때끔때끔 해난다. 덩치 큰 바퀴벌레는 물지는 않턴데 말이다. 역시 작은 고추가 매운 법이야. 이 백개미도 번식력은 대단하다. 바퀴벌레에는 못 미쳐도 하루 저녁에 새끼에 새끼를 친다. 이 자식들은 바퀴벌레와는 달리 찬란한 햇빛을 좋아한다. 그래서 햇빛이 쫙 비치는 쪽으로 모여든다. 바글바글, 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 자식들은 그만큼 집단적인 생활이 강하다. 곤충들 가운데 사회성이 가장 강한 종류의 하나라고 한다. 분공이 분명하다. 코치가 있고 따라주는 놈이 있고… 그런데 이 자식들은 남을 그리 의식하지 않는다. 눈치코치 면에서는 바퀴벌레하고 게임도 안 된다는 말이 되겠다. 지네끼리 바글바글 모여 노는데 존귀한 이 집 주인인 사람이 들어와도 꿈만하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자기 할 노릇을 다 한다. 마치 내 집에 내가 있는데 니가 왜 들어왔뇨 하듯이. 또는 자기 힘을 턱 대고 한번 붙어볼라면 붙어보자는 식인지. 그럴만도 했다.  이 세상에 힘 제일 센게 무엇이지 아냐? 영락없이 개미란다. 개미는 자기 체중의 몇 백배의 무게를 감당한단다. 그러나 구경은 蚍蜉撼树谈何容易. 그러니 不知量力를 알아야 한다. 개미의 치명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주제를 모른다. 개미란 놈은 단 것을 만나면 제 정신이 아니다. 정말 사탕폭탄에 잘 넘어간다. 당뇨병이 있는가 없는가를 검사하는 데는 병원에 갈 필요 없다. 아무데나 오줌을 찔 싸놓고 개미들이 모여드나 안 드나를 보면 된단다. 짜식들은 사람이 밥 먹고 난 자리나 음식물을 떨군 자리를 희한하게 알고 바글바글 모여든다. 그래서 나는 백개미에 대해 그리 신경을 안 썼다. 바글바글 모여들었을 때 내가 제일 많이 취하는 방법은 불을 확 놓는 것이다. 그러면 개미들은 오그라들면서 형체도 없이 진다. 그러다가 장판을 몇 번 태우기도 했지만 기분 나쁠 때는 스트레스도 풀고 일거양득이다. 그리고 별 볼일 없는 것에 다닥다닥 붙었을 때는 아예 그대로 밖에다 확 버리고 만다. 여하튼 말 그대로 일망타진하는 방법으로 제거했다. 개미는 티눈보다 더 작은 정말 별 볼일 없는 미물이다. 그런데도 짜식에게도 희로애락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그렇게도 많단다. 원숭이랑 곰이랑 개미를 제일 좋은 먹을 거리로 친단다. 그 덩치 큰 것들이 꽤나 야삭하게 놀쟈? 그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들을 얼마나 주어먹어야 되노? 워낙 개미가 맛 있다는 논리로밖에 풀이할 수 없다. 그런데 이들이 개미를 잡는 방법이 참 묘하다. 일단 개미둥지를 발견하면 풀대 같은 것을 꺾어 개미구멍으로 들이민단다. 그러면 안에 있는 개미들이 이 뭐고, 천당 가는 로케트우주비행선이야 하며 너도나도 매달리기에 바쁘단다. 그래 한참 있다가 그 풀대를 죽 잡아당겨서는 다닥다닥 매달린 개미들을 냠냠 입으로 죽죽 훑어먹는단다. 그리고는 다시 풀대를 넣고… 다시 죽죽… 배가 부를 때까지. 바로 그 호기심 때문에 개미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고 약삭바른 원숭이란 놈은 그런 깜직한 방법을 구사할 법한데 미련하고 우둔한 곰님은 어디서 배웠지? 아무래도 원숭이한테 배웠다 할 수밖에. 원숭이나 곰이 개미를 맛 있게 먹는 걸 봐서는 우리 인간들도 개미를 먹을 수 있겠다. 나는 또 이런 엉뚱한 생각을 굴렸다. 사실 엉뚱한 생각이 아니고, 개미는 이미 식용에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연변만 하여도 지난 80년대 한 동안 도문에서 붉은 개미술이 나와 인기리에 팔리지 않았던가? 개미술이 원기를 북돋고 남자들 정력에는 최고라고 하던데. 현재 이 사천에 와보니 식당에서 개미술을 팔던데 대단히 비싼 편이다. 우리 연변의 개미술도 새롭게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근간에 무슨 생태평형이요, 동물보호요 하며 야단들을 피우니 내 마음이 요새 알알이 아파난다. 바퀴벌레나 백개미의 원혼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바퀴벌레와 백개미를 철천지 원수 죽이듯 워낙 많이 죽인 내가 아닌가. 생태평형이나 동물보호의 거창한 얘기를 떠나 불교의 살생계도 나는 엄청나게 어긴 셈이다. 이제 윤회가 있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지리라. 그리고 바퀴벌레나 백개미의 원혼들에 의해 시달림을 받을 게다. 겁이 나기도 하다. 어쩌지? 그래도 입은 살아 나를 변호할 수밖에. 아무리 동물이나 곤충이 존귀하다 해도 사람 있고 있는 법. 그것들이 泛滥成灾할 때 정당방위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은 높이 살만하다. 그리고 인위적인 적당한 살상은 오히려 생태평형을 유지하거나 그들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됨! 여기에 견주어 볼 때 결국 바퀴벌레를 피해 도망간 나는 인간존엄에 먹칠했다. 그렇지만 살상을 멈춤셈이니 적당한 살상은 된다. 백개미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살상한 감이 없지 않으니 인간존엄은 지켰으되 적당한 살상이라는 도를 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앞으로는 경험교훈을 살려 扬长避短해야 지!  2007-06-10   
102    21세기 官场现形记(우상렬102) 댓글:  조회:4697  추천:66  2007-10-23
21세기 官场现形记우상렬 우리 아버지는 지금도 내가 한 자리 하지 못했다고 아니꼬운 눈길로 보신다. 아무런 长자라도 하나 하라는 눈치다. 내일 모레 아홉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소박한 염원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해 참 죄송스럽기만 하다. 내 주제에 한 자리 하기는 다 글렀으니 그래 우리 아버지 위안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21세기 官场现形记를 횡설수설 주어대기~ 첫째, 한 자리 하기 참 힘들다. 줄을 잘 서야 한단다. 줄을 어떻게 서야 되냐 하면 일단 위 사람 눈치 잘 보기. 여하튼 위 사람의 구미에 맞추어 기분 좋게 해주며 충실한 후계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니 林彪처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알랑방귀를 뀌도 무방하지. 한 자리 하기란 피라미트식 사닥다리 오르기다. 위에 놈 밑구멍을 보며 구린 줄도 모르고 열심히 바라 오르기다. 그런데 그 위에 놈이 나를 차버리거나 깔아뭉개지 않도록 헤헤 웃으며 기분 좋게 해줘야 한다. 官大一级压死人이 아니냐. 위에 놈 앞에서는 미워나 고워나 차렷자세하기. 그리고 허리 굽실굽실하기. 차렷자세와 굽실굽실은 기본. 그러되 약삭발라야 한다. 눈치코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가려운 데를 금방금방 알아서 슬슬 긁어주는 거야. 그것이 엉치든 어디든 관계 없이. 그리고 자네 君子들 사귐처럼 淡如水가 아니라 명절 때마다 코밑치성 잘 하여 浓酒 관계가 되어야 한다. 코밑치성은 아니아니, 그만그만의 말쌈을 잘 이해하고 神不知鬼不知, 天知地知你知我知식으로 해야 한다. 참, 그리고 위 사람이 문을 나설 때는 재빨리 문을 열어주고 승용차라도 탈 때는 그 존귀한 머리 문 위 가장자리에 부딪치지 않도록 재빨리 손을 갖다 댈 줄 알아야 한다. 출세가도 三字经을 한 마디로 개괄하면 줄 잘 서서 感情投资하기. 요새 우리 연변애들 보니까 핸드폰 착신 노래까지 전부 제 위 사람 좋아하는 걸로 했더라. 그래도 우리 연변애들이 기발한 착상이 많고 또렷또렷한 거야. 그런데 이 줄서기의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는 내가 모실 위 사람의 주제를 알아야 한다. 겨우 제 자리를 유지하거나 제 코도 닦기 힘들어 하는 주제는 안 된다. 이때는 똥오줌 버리듯이 가차없이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를 확실하게 밀어줄 파워풀한 다른 위 사람 뒤에 재빨리 서야 한다. 그리고 신주단지 모시듯 새로운 모시기를 시작하고 언제 물에 빠진 애 끌어올리듯이 머리카락 잡고 끌어올려 주기를 내심이 기다려야 한다. 소학교 때부터 줄을 잘 못 선 나, 항상 삐어져 나오기만 했으니 외목에 나기만 했으라.    둘째, 그래 하루 아침에 출세를 했다 하여 안하무인 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항상 겸손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무슨 인민의 노복이요, 머슴이요, 청지기요 하는 말들을 입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 옷도 버젓한 양복보다는 김정일동지처럼 항상 일하는 모습을 보이는 소박한 작업복이 좋다. 그러되  新官上任三把火, 반드시 위엄은 보여야 한다. 시찰, 이른바 아래에 사업 지도하려 내려가기. 물렀거라, 어른신 나가신다~ 敲锣鸣道는 기본. 아래 것들 서슬푸른 내 위풍을 알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굳이 三把火는 놓지 않더라도 杀一警百 쯤은 해야 한다. 유비가 눈물을 뿌리며 마초를 죽이는 일도 눈물이 아니라 서슴지 않고 해야 한다. 그래야 아래 것들 벌벌 떤다. 그리고 君子一言驷马难追이라고 말이 적어야 한다. 할 말만 소리 부러지게 딱딱 해야 한다. 나처럼 말이 많아서는 안 된다. 이거 해. 음, 그래. 그렇겠지… 기껏해서 할말만 하기. 농담 같은 것은 절대적인 금물. 농담을 하기 시작하면 근엄한 이미지가 흐트러지기 쉽다. 그래서 우리의 지도자동지들은 항상 근엄하시다. 얼굴이 딱딱하고 어깨에 힘을 주고 유머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어쩌다 농담 한 마디라도 하면 그 자애로움과 친절에 아래 것들은 감격에 목이 매여 운다. 그리고 싸인 위풍 살리기. 싸인은 중요하다. 니 권력행사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다. 이 싸인 하나 아래 것들 죽였다 살렸다 한다. 그래 한 자리 하는 사람들 대가리에 들은 거는 별로 없어도 싸인 잘 못 하는 거 누가 보았더냐. 다 명필 싸인이다. 말그대로 일필휘지에 명필이다. 서예시합에 나가면 다 당당히 1등할 명필들이다. 어느 크게 한 자리 하는 친구 싸인 재미에 희대의 에피소드를 만들고 말았다. 그 친구 공술 너무 많이 먹다 보니 왼쪽 뇌혈관이 터지며 오른팔을 못 쓰게 되었단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서도 열심히 연습하여 왼손으로 명필 싸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떻게 된 문서인지 이번에는 왼손이 마비되어 못 쓰게 되었단다. 그래서 그 친구 이번에는 발가락 사이에 필을 넣고 싸인하기를 연습했단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발가락으로 하는 그 싸인도 명필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그래서 모두들 이 친구 退休해도 밥은 먹겠구나 하고 안심을 했단다.셋째, 一个中心,俩个基本点 틀어쥐기.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의 사업방향이라 할까, 전략이라 할까. 여하튼 한 자리 하는 사람치고 이거 모르는 사람이 없다. 一个中心,俩个基本点을 단단히 틀어쥐자면 안계가 넓어야 한다. 집안만 바라 볼 것이 아니고 전반 사회를 내다 보아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俩个基本点은 그래도 돌출하여 틀어쥐기 좋은데 一个中心은 잘 안 보여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이고 핵심인 만큼 一个中心에 모를 박아야 한다. 요새 한 자리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 하고 있단다. 그래서 마음이 놓인단다. 넷째, 업그레이드. 이전에는 무식쟁이들이 막 한 자리도 했지만 이제는 안 된다. 적어도 컴퓨터가 무언지는 알아야 하겠지. 그리고 자꾸 무슨 졸업증이요, 학위요, 자격증 같은 것을 요구하니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따놓아야 한다. 그래야 출세가도를 빨리 달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졸업증, 학위, 자격증 같은 것들이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는 데 골치가 아프다. 지난 세기 80년대까지만해도 대학졸업증 하나만 있으면 떵떵 큰소리 치며 잘 해 먹었는데 90년대가 되니 석사쯤 되어야 하고 현재는 박사쯤 되어야 한다. 사실 이것은 별 문제 될 것이 없다. 한 자리 하는 우리 친구들은 적어도 대학을 졸업하고 그 어려운 공무원시험을 거쳐 출세했으니 다 수재들이고 천재들이다. 그들더러 박사를 하라 해도 느끈이  해 치울 수 있다. 문제는 一个中心,俩个基本点을 틀어쥐느라고 그들이 언제 시간이 있어 공부를 하며 학문(발음주의. 항문이 아니라 반드시 학문)을 닦겠나 말이다. 그래서 이해가 가기도 하고 동정도 간다. 그래서 우르륵 우리한테 몰려와서 학문 닦는 흉내를 내며 삭삭 굽실거리는 모양새를 볼 때는 아니꼽다가도 불쌍해 나기도 한다. 그들은  우리처럼 지긋이 앉아 열심히 깔끔하게 학문을 닦지는 못 하되 公과 私의 열성을 보이며 열심히 도금을 한다. 그러니 이것은  진짜 업그레이드하고는 거리가 멀고 거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박사요, 뭐요 하면서 官场에서는 버젓이 통한단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도금한다고 투자한 비용도 뽑고 관록도 오른단다. 한심하여라!다섯째, 줄을 잘 못 서 짤리우거나 별 볼일 존재로 전락되거나 退休라도 하는 날의 비극. 한 자리 하는 사람들, 이런 거 제일 무서워한단다. 가장 정상적인 退休라는 거도 그렇단다. 退休하는 날에는 한 자리 할 때 문전성세를 이루던 것이 곧 바로 도토리 개밥 신세가 된단다. 세상 인심의 冷暖을 가장 잘 맛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官场이란다. 그래서 인생 무상과 허무를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는 한 자리 하는 사람들. 그렇다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자고 무슨 일이나 좀 찾아서 하자고 하면 한 평생 해온 짓이 이래라 저래라 사람들 부려먹기가 전부였으니 官场밖에서는 무용지물이 될수 밖에. 우리네 교수처럼 늙으면 늙을수록 빛이 나는 실무적 직업이 아니니 말이다. 서글프기도 하여라! …  아, 한 자리 하기란 이렇게 힘이 들고 기형화되어야 하고 허무한 것인가? 아버지, 그래도 한 자리 하랍니까? 아니 그만둬! 싹 때리 치우고 니 좋아하는 공부나 해! 2007-06-07
101    졸업하면 되지 뭐!(우상렬101) 댓글:  조회:4353  추천:65  2007-10-23
졸업하면 되지 뭐! 우상렬고중 때하고 대학 때 무엇이 다르냐? 고중 때는 60점을 맞아서는 안되지만 대학 때는 60점을 맞아도 괜찮다. 고중 때 60점 만세를 부르면 좋은 대학은커녕 일반대학조차도 붙기 힘들다. 그래서 고중은 100점 만세다. 이것이 고중생들을 죽인다. 그러나 대학은 60점 만세 불러도 안일무사. 얼마든지 졸업한다. 대학 왜 붙냐? 졸업할려고 붙지. 그럼 홀가분하게 60점 만세를 불러버려. 성적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데. 대학은 자유를 누리는 거야. 그럼 무슨 자유냐? 공부 안 하는 자유? 물론 그것은 아니야. 내 멋대로 하고픈 공부를 하는 거야. 그럼 무슨 공부냐? 니 흥취에 따라 한다 이거야. 예컨대 전공과와 비전공과가 있다 하자. 니 아무래도 전공과에 흥취 가겠지? 무슨 정치사상교육이요, 도덕사상교육이요 하는 공통과 같은 비전공과는 진저리가 나지? 그러면 졸업할 정도의 60점 만세를 부르는 거야. 适者生存이 아니냐? 그러나 전공과는 100점 만세를 부르는 거야. 그런데 전공과 가운데도 하기 싫은 거 있고 하기 좋은 거 있지? 우리 조선언어문학 전공이라고 하자. 니는 딱 문학만을 좋아하는데 무슨 뚱딴지같이 고대조선어요, 현대조선어요 하는 것들이 또 튀어나온다 이거지? 그럼 그것도 훅 불어버리, 60점 만세로. 이런 하기 싫은 공부는 60점 만세로 상식적인 차원에서 떼우면 되는 거야. 그럼 문학 공부는 어쩌지? 그것은 100점 만세. 물론 문학 가운데도 문학사가 있을 거고 문학창작이 있을 거고 문학이론이 있을 거야. 여기에도 흥취에 따라 공부하는 논리가 적용되는 거야. 물론 이 3자는 문학의 유기적인 三足鼎立 형국을 이루고 있는 지라 어느 하나를 제멋대로 偏废해서는 안 되지. 이 세상에 절대적인 자유나 절대적인 흥취는 없는 거야. 물론 작가가 안 될 바에야, 아니 글쓰기에 흥취가 없다면 굳이 문학창작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 나는 대학교 때 문학이론과 문학사 관련 과목에 좀 미쳐났지. 문학이론 과목은 너무 좋아하여 돈이 그리 여유 있는 것 아닌데 그 당시 교수들만 주문해보는 전문잡지까지도 사사로이 주문하여 보기도 했네. 그러다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문학연구생 시험을 주로 전공과목으로 문학이론과 문학사 관련 시험을 보는 지라 연구생도 떼놓은 당상으로 붙은 셈이지. 내 자랑 같아서 좀 안 되었네. 그럼 왜 흥취를 강조하지? 흥취는 바로 니 개성과 특장과 연결되기 때문이야. 흥취는 무의식적인 것으로서 한 사람의 천성적인 개성과 특장을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내지. 물론 흥취를 후천적으로 키울 수 있겠지만 그것의 가장 치명적인 허점은 바로 그 사람의 천성적인 개성과 특장과 이탈되는 거야. 심층심리학적으로 놓고 볼 때 자기의 흥취에 맞게 몰입하다 보면 그 고유의 개성과 특장도 살아난다는 논리다. 흥취 만세를 부르는 것은 바로 자기에게 충실한 것으로 자기의 타고난 개성과 특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본 출발점. 현재 세계 최고의 갑부하면 누구지?  단연 가장 작은 규모의 회사로 가장 큰 이윤을 창출하는 빌게이츠. 그럼 빌게이츠는 어떤 사람이냐? 미국의 어느 별 볼일 없는 대학에 2학년인가 3학년에 다니다가 자기의 컴퓨터 흥취와는 전혀 맞지 않으니까 다 팽개치고 나와 친구와 남의 창고를 빌어 컴퓨터회사를 꾸려 컴퓨터매니아가 된 것이 오늘날 세계 굴지의 IBM 회사의 출발점.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흥취는 성공의 어머니야! 알았어?  흥취에 따른 대학공부, 그래 쉽고 재미나쟈? 그래 흥취에 따라 공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매니아가 되는 경우가 많아. 매니아, 자기가 좋아하는 그 무엇에 푹 빠지는 거.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이나 전공에 푹 빠지는 것도 매니아야. 매니아는 행복해. 일단 하루하루가 충실해 공허할 때가 없어.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 최고의 즐거운 일일진대 다른 그 어떤 부러운 것이 없어. 그러니 대학교 때 가장 신경이 쓰이기 쉬운 장학금의 멍에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별 볼일 없는 身外之物인 학생회 간부니 무어니 하는 데에도 초탈할 수 있다. 그러니 일종 도적인 경지야. 밥을 몇 끼 안 먹어도 별로 배고프지 않을 거야. 옷을 좀 초라하게 입어도 안 벗었으면 되었지 하는 식으로 웃어넘길 수도 있는 거야.이 매니아가 되고 보면 내가 흥취를 느끼고 좋아하는 과목은 100점이 아니라 그 이상도 맞을 수 있으며 정말 그 분야의 최고---베트랑이 될 수 있다. 몰론 그 밖의 과목 점수는 60점 만세나 그 이하로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전반 졸업 과목점수를 보면 들쑹날쑹. 어떤 과목은 여러 번 보충시험에 겨우 60점 턱걸이를 한 흔적도 역연. 그래서 100점 만세의 우수 졸업생하고는 인연이 멀다.그러나 이런 매니아 졸업생은 사회적응력이 훨씬 강하다. 사회는 이런 매니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세밀한 분공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高分低能의 ‘通才’보다는 한 곬을 깊게 판 매니아---除你莫属가 더 수요된다. 이를테면 외국어 하나만 놓고 보아도 무슨 시험점수니 자격증을 떠나서 그 나라 사람처럼 자유자재로 하는 매니아---베트랑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사회는  어중간한 一人多役보다는 바로 매니아적인 一人一专의 베트랑을 수요하고 있다. 2007-06-05
100    나도 개처럼 살고 싶다 (우상렬100) 댓글:  조회:4435  추천:73  2007-10-21
나도 개처럼 살고 싶다 우상렬 개는 먹고 싶으면 먹는다.나도 개처럼 먹고 싶다. 개는 자고 싶으면 잔다.나도 개처럼 자고 싶다. 개는 하고 싶으면 한다.나도 개처럼 하고 싶다. 한국의 어느 톡톡 튀는 교수가 쓴「나는 개처럼 살고 싶다」의 시다. 적어도 나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내 몸이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 얼마나 좋냐. 우리는 이 세상에 이 좋은 노릇을 하러 왔다. 그런데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궁회귀본능이 발동되며 배고프거나 춥다고 칭얼대면 飯來에 張口, 衣來에 伸手하게 되던 동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훌쩍 커버린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나는 요새 애들이 부러워나기도 한다. 요새 애들은 정말 개처럼 산다.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키스하고 싶으면 키스하고 갈라지고 싶으면 갈라지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한다. 개처럼 홀가분하게 산다. 도저히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사랑하고 싶어도 못하고 키스하고 싶어도 못하고 갈라지고 싶어도 못하고 이날 이때까지 이 모양, 이 대로 살아왔다. 스스로 좀 비참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모양, 이대로를 못 고칠 것 같다. 사실 나는 이 모양, 이대로로가 그리 싫지 않은 걸. 기다리고 참고 견디며 사는 내 인생도 재미가 있는 걸. 결혼 첫 날, 그 신비하고 짜릿함이여, 사랑의 정열은 봄물처럼 터지고... 그래 그 개처럼 홀가분하게 사는 너희들, 이 맛 볼 수 있느냐? 너희들은 첫날도 사랑의 정열이고 뭐고 그저 심드렁하게만 느껴지겠지? 첫날의 신비함과 짜릿함을 개처럼 사는데 다 날려버렸으니깐. 그런데 가만, 기다리고 참고 견디며 사는 것도 맥이 진하는 거야, 너무 힘드는 거야. 그리고 ‘첫날’ 같은 인생고비는 얼마 안 되고, 인생의 보다 많은 허구한 세월은 그저 그렇고 그런 과정적인 삶이라 할 때 개처럼 사는 것이 더 실속 있다하겠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개처럼 살고 싶어하는 거야. 인간은 동물성을 거부하고 인간성을 추구해왔다. 이것이 극단으로 나갈 때 다른 결벽주의가 생겨난다. 사실 인간의 동물성과 인간성은 부정과 긍정의 흑백논리로만 치닫는 것이 아니다. 부정의 부정의 변증법적 논리로 인간성의 최고경지는 보편적인 동물성으로 나타난다. 물론 그 동물성은 순화되고 승화된 것이다. 세상이 나선형으로 돌고 도는 격으로 말이다. 바로 이 순화되고 승화된 동물성이 인간성의 진정한 한 내용을 이루고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싶다’형이 아니고 ‘개처럼’ 무난히 통할 때 참 편안한 삶이 되겠다.  
99    武侯祀와 杜甫草堂 (우상렬99) 댓글:  조회:4287  추천:57  2007-10-21
武侯祀와 杜甫草堂우상렬사천 성도에는 명승고적들이 참 많다. 3국시기 蜀나라 수도의 흔적의  일단으로 武侯祀와 당나라 詩聖 杜甫가 머물었던 杜甫草堂은 그 전형적인 한 보기가 되겠다.  武侯祀, 성도시 남문 무후사대가에 위치해 있다. 蜀한 말년의 승상 武侯 諸葛亮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명초에 재건할 때 유비를 제사지내는 ‘漢昭烈廟’를 옮겨왔다. 현재 祀 내에는 蜀漢 인물조각이 47개, 碑碣이 53개가 있어 그때의 역사 현장을 떠올려준다. 이 祀는 諸葛亮의 옷과 모자를 묻었다 한다. 그리고 유비 및 그의 甘, 吳 두 부인의 합장묘가 劉備殿 서쪽 대나무숲속에 있다. 祀 내의 현재 殿宇는 청나라 강희 11년(1672년)에 재건한 것이다. 祀 내에는 唐碑 하나가 있는데 唐朝의 재상 裴度가 글을 지었고 서법가 柳公卓이 글자를 썼고 名匠 魯建이 글자를 새겨 세칭 ‘三絶碑’라 한다.杜甫草堂은 현재 성도시 1환로 밖의 浣花溪가에 있다. 杜甫草堂은 杜甫가 안사의란을 피해 유리전전하다가 성도에 왔을 때 친구 高適 등의 도움 하에 浣花溪가에 지은 것이다. 그래서 浣花草堂이라고 하기도 한다. 杜甫는 여기서 4년 가까이 지내면서 247수의 시를 지었다. 유명한 시「茅屋为秋风所破歌」는 바로 이때 지은 것이다. 현재의 杜甫草堂은 梵安寺와 梅園을 끌어들여 부지 20여만 평방미터의 규모를 이루고 있다. 시내물이 구불구불 흐르고 여름에 연꽃이 물위로 피어나고 있으며 겨울에는 매화가 오연히 피어 있고 대나무가 죽죽 뻗어있다. 그리고 亭, 臺, 樓, 榭가 갖추어져 있다. 매년 정월 초이레(人日이라고 속칭한다)에 사람들은 杜甫와 高適의 진지한 우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기에 와서 노닌다. 그리고 杜甫 詩才의 蔭德도 입겠노라고 시회도 잘 가진다. 杜甫연구소 같은 관련 기관들도 여기에 있다.武侯祀와 杜甫草堂은 깔끔하게 잘 정리되고 다듬어져 있다. 오히려 너무 잘 정리되고 다듬어져 골동품을 너무 깔끔하게 닦아놓아 고색창연함을 잃어버린 듯한 일말의 아쉬움도 남는다. 나는 武侯祀와 杜甫草堂을 거닐 때마다 생각해본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武侯祀와 杜甫草堂을 찾는 이유를! 주지하디시피 諸葛亮은 智의 화신이다. 삼국시기 주유요, 노숙이요, 방통이요 , 그리고『수호전』속의 오용이요, 공손찬이요, 하는 智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많지만 전반 중국 고대 역사를 통털어 그를 따를 자 없다. ‘草船借箭’, ‘空城計’, ‘舌戰群儒’ 등은 너무나 잘 알려진 諸葛亮의 智의 걸작들이다. 사람들은 일단 諸葛亮의 이 智에 공감한다. 그러면서 諸葛亮은 智의 神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 혹은 우리 자식들도 諸葛亮처럼 똑똑해지게 해달라고 빈다. 그래서 오늘도 향불이 끊이지 않는다. 諸葛亮의 智는 조조의 간교나 주유의 밴댕이 속궁리하고는 다르다. 그의 智는 오로지 정의를 구현하고 사악함을 징계하는데 사용된다. 前後「出師表」, 鞠躬尽瘁, 死而後已의 師表. 민족과 국가를 위한 귀감. 그리고 그의 智는 德의 감화와 연결되어 있다. 孟獲을 7번 잡아 7번 놓아주었다는 ‘七擒七縱’-德의 감화의 파노라마.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속마음을 다 털어서 감복하게 만든다. 이른바 口服心服의 경지를 창출한다. 諸葛亮은 오늘날 미스 유니버스대회의 眞, 善, 美로 볼 때 착실한 미스터 眞이 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 杜甫를 보자. 杜甫는 李白과 더불어 李杜라고 병칭되며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詩聖이라고 불린다. 그의 시는 자기 시대의 아픔을 속속들이 읊었기에 詩史라고 칭송되고 있다. 杜甫는 盛唐시기 전형적인 사실주의 시인이다. 그는 盛唐의 화려한 허상 속에 쌓여있는 사회부패를 여지없이 까밝힌다. ‘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 영원히 우리에게 사회빈부 차이나 대립의 경종을 울린다. 사실 杜甫는 ‘一饭未尝忘君’이라 충의지사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어려움에 처했어도 항상‘穷年忧黎元’을 잊지 않았다. 그가 허름한 杜甫草堂에 살 때다. 하루는 비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자기의 초가지붕을 걷어 날린다. 집안으로 비바람이 막 불어 들어온다. 그래서 절로 나온 것이‘茅屋为秋风所破歌’. 그러나 그가 생각한 것은‘安得广夏千万间,广庇天下寒士尽欢颜。’사실 杜甫는 ‘一句三年得’의 苦吟스타일이다. 어떻게 보면 시 한수를 아주 어렵게 쓰는 ‘둔재’다. 그럼 그가 문학사에 남고 사람들에게 잊어지지 않고 자꾸 외우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지? 그것은 바로 그 정의감과 더 넓은 인도주의에 다름 아니다. 杜甫은 오늘날 미스 유니버스대회의 眞, 善, 美로 볼 때 착실한 미스터 善이 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2007. 10. 5
98    부부사이 못 말려! (우상렬98) 댓글:  조회:4877  추천:61  2007-10-21
부부사이 못 말려!우상렬우리 부부 간은 싸움을 참 잘 한다. 다른 사람이 보면 저래 가지고 살겠는가 할 정도로. 그런데 참 묘하다. 한 바탕 와장창 싸움을 하고 난 뒤 우리 둘은 각 방을 쓴다. 그리고는 씩씩 열 받은 김에 옷도 벗지 않고 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튼 날 깨여보니 어느새 우리 부부는 전라의 사랑신이 되어 한데테 얽혀 있다.   또 한 바탕 와장창 싸움을 하고 난 뒤 우리는 서로 앵돌아져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튼 날 내가 씩씩 거리며 집에 들어오는 길로 밖에서 누구와 싸우고 온 흉내를 낸다. 그 새끼, 개 같은 새끼... ‘열’에 받쳐 어쩌고 저쩌고 하다나면 ‘어, 여보, 누구와 싸웠어, 어, 어떤 놈인데...’ 이렇게 어느 덧 나와 한 편이 되는 아내. 부부는 한 배를 탔어요.또 한 바탕 화장창 싸움을 하고 난 뒤 어딘가 아픈 흉내내기. ‘아~ 아, 아파 죽겠어. 당신 그 손으로 내 이 배 좀 문질러주면 안 아플 것 같애. 빨리, 빨리...’ 내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손을 들이미는 아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못 말려! 누가 부부간 아니라 할가봐.2007.10.5
97    달변과 어눌 (우상렬97) 댓글:  조회:4521  추천:56  2007-10-21
달변과 어눌우상렬나는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과 외국, 아니 외국이라 해야 기껏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인들과 비교를 좀 해본다. 사실 이런 한 자리 하는 사람이나 그런 정치인들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 다름 아니다. 각 나라 사정에 따라 그렇게 좀 다르게 불릴 뿐이다. 그리고 비교라 해봤자 구변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을 잘 하고 못 하고 그런 거.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은 구변이 참 없고 외국의 정치인들은 구변이 참 좋다는 느낌이 든다. 그 기본 표현의 하나는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은 대중연설을 할 때 꼭 이른바 연설고읽기 식으로 하는데 외국의 정치인들은 즉흥연설식이니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이 연설고를 읽어대는데 정말 진절머리가 난 반면에 외국의 정치인들이 연설고 없이 즉흥적으로 하는 연설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 레이건, 카트, 클링턴, 그리고 현재의 부시...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배우들 같은 말주변에 정말 깜박 간다. 정말 레이건은 배우 출신이니 그렇다치고 나머지 대통령은 어째서 그렇게 말을 잘 하지하고 머리가 갸웃거릴 때가 많다. 먼 미국은 그만 두고라도 가까운 한국만 보더라도 정치인들 모두들 달변이다. 대통령 출마에 나온 정치인들 보라. 우선 말을 잘 못 하면 정치인이 될 수 없고 대통령후보나 대통령은 더구나 될 수 없다.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말을 잘 못 하는 편이다. 어눌하다 해야 할지. 자기가 발언할 때가 되면 미리 준비한 장편원고를 세월아 네월아하고 내리 읽는다. 밑에 관중석의 듣는 사람들이 꺼벅꺼벅 조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 중경시에서 지도자들이 연설을 할 때 3분인가 5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제도를 내왔다는데 참 환영할 일이다. 언젠가 주용기가 총리를 했을 때 참 인기가 좋았다. 많은 인기 가운데 주용기가 연설고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스럼없이 하는 달변에 있었다. 그가 기자회견을 할 때면 유모아를 곁들인 답변이 정말 인기 절정이었다. 그럼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의 어눌과 외국 정치인들의 달변의 갈림길은 어디에 있는가? 1차적으로 학교 기초교육에 있다. 우리의 강의는 선생 중심의 주입식으로 많이 이루어져왔다. 학생은 듣는 로봇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애초에 받지 못했다. 요 근간에야 무슨 계발식이니 創新이니 하며 떠들어댄다. 좀 늦기는 했지만 반길 일. 그러나 외국에서는 오픈된 세미나나 토론식 강의를 언녕부터 많이 해왔다. 누구든지 자기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가지며 또한 꼭 해야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2차적으로 정치 형태나 행태에 있다.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은 직승비행기를 탄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거저 위 사람의 구미만 잘 맞추면 된다. 한 자리 하기란 이렇게 안일한 것일가. 선거경쟁 따위에 그리 신경을 안 써 왔다. 그러나 외국 정치인들은 끝없이 경쟁자들을 제끼고 올라오다보니 자기 의사를 정리하고 표현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이골이 튼 사람들이다. 대통령출마라도 하는 날이면 끝임 없는 연설경쟁에 사실 강연고 쓸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전반 사회적인 분위기를 보아도 정치인이라면 일반연설 같은 것은 강연고 없이 쉽게 느끗이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기본 요구사항이다.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처럼 굳이 비서진에 의뢰해 강연고 로봇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잘 못이나 실수는 내가 책임진다는 책임의식문제다.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이 강연고를 보고 읽기 좋아하는 것은 틀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 강연고는 정책, 노선, 방침이요 하는 여러 사항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사전에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 생각은 없지만 대정방침하고는 틀리지 않는 두리뭉실한 것. 그래서 누가 어쩌고 저쩌고 험 잡을 데가 없다. 그래서 강연고 대로 읽으면 문제가 적게 생기거나 안 생긴다는 우리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의 알량한 생각. 아래의 구체적 상황은 어떤지를 떠나서. 그러나 외국 정치인들은 틀리고 맞고를 떠나 어디까지나 자기의 독특한 아이디어나 생각들을 풀이해야 먹혀들어가든지, 환영을 받는 판이니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발언을 해야 한다. 여기에 지역자치제니 뭐니 하니 이런 자기 식이나 나름대로의 식이 더 돋보이는 시대가 되니 모두들 톡톡 튀는 발언을 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내 발언 내용은 진리라고 견결히 주장하며 만약 틀릴 경우에는 내가 책임진다는 식으로 밀고 나간다. 그러니 전적으로 그 누구한테 강연고를 의뢰해서 만사대길일 수 없다.    정치가의 연설은 내실을 기하지 못해도 안 되거니와 내실을 기하되 표현을 잘 못 해도 문제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의 어눌은 하지만 신중한 발언과 외국 정치인들의 달변이지만 말잔치나 겉치레가 거세되고 실속을 기한 발언이 결합되었으면 가장 이상적인 정치발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7. 10.4  
96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상렬96) 댓글:  조회:4313  추천:55  2007-10-20
만나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상렬내가 조선에 실습교원으로 있을 때다. 하루는 모모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로동신문』을 쫙쫙 잡아 찢었다. 곧바로 고발이 들어갔다. 그 유학생은 안전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왜서 신성한『로동신문』을 찢었는가 하는 질문에 그 친구 대답이 참 재미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과 자기네 나라 대표단이 만나는 뉴스를 보도하는데 굳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나주셨습니다로 표현했기 때문에 반발한 것이다고 했다. 그 친구 말 들어보니 그럴 듯 했다. 확실히 조선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이 외국 대표단을 만날 때는 꼭 신문이나 라디오, TV 같은 매체에서 ‘만나주셨습니다’로 표현한다. 어디까지나 위대한 장군님이 주체이니 만나주고 안 주고는 전적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의사에 달렸다. 그러니 만나주는 것은 하나의 대단한 恩典에 다름 아니다. 감지덕지해야 할 일, 이러루한 의미로 풀이가 되겠다. 그러니 그 유학생이 반발도 할 만 하다. 자기네 나라 대표단을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유학생 조선말을 참 잘 배운 모범생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유학생 소속국 대사관에서는 그 유학생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래서 그 ‘만나주셨습니다’ 사건은 유야무야 희미작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럼 왜 굳이 ‘만나주셨습니다’가? 그것은 극단적인 색채가 없지 않아 있지만 수령의 주체적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임금들이 전통적으로 이 눈치 저 눈치 보기에 바쁜데 우리의 수령은 당당한 주인이 되어 척 앉아 있는다. 그러면 다른 나라 대표들이 만나주시기를 바라며 너도나도 찾아뵙는다... 인민들이 보기에 얼마나 당당하고 주체적인 우리의 수령이냐! 그런 식이다.그렇다. 내가 언젠가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에 갔다가 본 김일성이 즉흥시로 읊었다는「묘향산 가을날에」라는 시 한 수가 떠올랐다.                                 로대 위에 올라서니 천하절승 예로구나묘향산 절경이야 태고부터 있는 것을전람관 여기 솟아 푸른 추녀 나래 펴니민족의 존엄 빛나 비로봉 더욱 높네 만산에 붉은 단풍 가을마다 붉었으리노동당 새 시대에 해빛도 찬란하니단풍도 고와라 더욱 붉게 물들면서산천에 수 놓누나 이 나라 새 역사를 사대로 망국으로 수난도 많던 땅에 온 세계 친선사절 구름같이 찾아 든다5천년 역사국에 처음 꽃 핀 이 자랑을 금수강산 더불어 후손만대 물려주리    이 시는 제목이 ‘묘향산 가을날에’이지만 실은 묘향산 가을을 노래한 것은 아니다. 醉翁之意不在酒. 이 시에서 김일성은 묘향산 가을날을 빌려 외국 정상이나 사절 및 저명인사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선물한 물건들을 전시한 국제친선전람관의 상징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를테면 옛날에 우리가 사대로 남에게 갖다 바치기만 했다면 오늘은 우리도 당당히 남이 갖다 바치는 것을 받는 반만년 역사에 있어서의 새 시대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5천년 역사국에 처음 꽃 핀 이 자랑을’거늘! 순화되고 세련된 말로 다듬어진 마지막 단락의 ‘온 세계 친선사절 구름같이 찾아 든다’는 바로 이러한 뜻을 한 번 더 코멘트하는 詩眼. 이 시에서 김일성은 ‘민족의 존엄을 빛내’고 ‘이 나라 새 역사를’ 이끄는 조선 현시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일국의 수령으로서의 기개가 잘 나타나 있다 하겠다. 물론 유아독존이나 자아중심의 극단으로 흘러서는 안 되겠지만 인간은 주체적인 모습이 없어서는 안 된다. 주체와 객체의 바란스와 텐션을 잘 이루어나갈 때 인간이든 정치든 제대로 설 줄로 안다.   2007. 10.4
95    만세콤플렉스 (우상렬95) 댓글:  조회:4451  추천:47  2007-10-20
만세콤플렉스우상렬노무현 대통령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만세, 만세, 만만세 소리가 아직도 귀전에 쟁쟁하다. 또 한 번 조선은 참 만세를 잘 부른다는 감이 들었다. 사실 조선만의 얘기가 아니고 한국도 만세를 잘 부른다는 감이 든다. 만세 3창이 아닌가.여하튼 우리 민족은 만세를 잘 부른다. 나는 우리 민족에게 만세콤플렉스가 있다는 감이 들었다. 만세를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콤플렉스.우리 민족은 옛날 동북아세아의 광활한 지역을 무대로 활약한 줄로 안다. 기마민족 고구려의 호령소리와 날랜 말발굽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그러다가 역사는 돌고 돌아 그 호령소리와 말발굽 소리는 저 멀리로 비껴가기만 하고. 부여, 국내성, 평양으로의 고구려 수도 천도는 어쩔 수 없이 행해진 축소일로에 다름 아니다. 고구려의 멸망과 더불어 우리네 역사는 반도 속에 꼴깍 갇힌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구려는 하나의 가실 수 없는 아, 고구려의 恨으로 남는다. 그러다가 역사는 또 돌고 돌아 근, 현대에 들어서면서 북으로는 러시아, 동으로는 왜, 서로는 청, 하는 식으로 죄여오는 대국들의 등쌀에 숨 쉬기 조차 힘든 형국이 되고 만다. 결국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역사는 또 돌고 돌아 겨우 명맥을 유지했는데 대국의 틈서리에서 숨 쉬기 힘들기는 마찬가지. 현재도 그 형국은 마찬가지.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약소민족, 주변의 대국들이 못 살게 구는 약소민족. 살아남기가 바쁘다. 반만년 역사에 그렇게 많은 동이족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되 우리가 살아남은 것만도 기적이다, 기적. 감사할 일. 그런데 앞으로도 살아남을 일, 좀 유식한 말로 하면 민족, 국가의 생사존망이 가장 큰 이슈다. 대국의 그 틈바구니 속에서. 그래서 일단 悲願 하나가 생겨난다-우리나라 만세! 이것이 만세콤플렉스로 자리한다. 대한제국 만세! 그리고 3.1운동 때의 만세소리, 8.15광복 때의 만세소리가 바로 만세콤플렉스의 발산. 이 悲願, 이 만세콤플렉스는 國歌까지도 애국가라 불러야 직성이 풀린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길이 보전하세’ 여기서는 만세콤플렉스가 ‘길이길이’의 영원함으로 승화된다. 여기에 ‘하느님이 보호하사’가 업그레이드될 때 만세콤플렉스는 확실하게 확 풀린다. 우리는 고구려가 꺾이면서 천여 년의 역사에서 대국의 속국으로 많이 전락되어 왔다. 신라는 당을 섬겨왔고 고려는 송, 원을 섬겨왔고 조선조는 명, 청을 섬겨왔다. 이른바 사대외교를 해왔다. 대국의 임금은 황제고 우리는 왕밖에 안 된다.대국 황제 자리 뒤에는 용 도안이 새겨지지만 우리 왕 뒤에는 봉황 도안밖에 새겨지지 못한다. 그러니 머리를 조아리며 조공을 해왔다. 대국 황제는 만세고 우리 왕은 천세다. 만세 소리 한 번 못 듣는 우리 임금 불상도 하지. 우리네 백성들 한 맺힌다. 자기도 모르게 쌓이는 만세콤플렉스. 그러다가 1897년 대한제국의 성립 및 고종의 황제 선언은 우리의 이 만세콤플렉스를 한방에 확 날려버린다. 그런데 好景不長이라 일제가 대한제국을 밀어내고 새롭게 군림한다. 이에 새롭게 쌓이는 것은 만세콤플렉스.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이여, 부를 수도 없는 그 이름이여. 산산이 조각난 그 이름이여... 그러다가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등장하는 조선의 수령, 만세, 만세, 만만세! 우리의 만세콤플렉스를 마음껏 발산한다. 우리에게도 만세로 통하는 수령이 있다. 우리도 러시아의 ‘우라’나 중국의 萬歲와 동등하게, 아니 그것보다 더 크게 부를 수 있다. 만세, 만세에 만만세다! 기분은 한 없이 붕 뜬다. 여기에 가족적인 분위기의 어버이가 가미되니 만세, 만세, 만만세가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고 감정적 승화를 가져오며 그 도가 배가 된다. 그래서 눈물범벅이 되어서도 만세, 만세다. 금상첨화 격이니 그럴 수밖에.이래저래 우리에게는 만세콤플렉스가 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발산 차원이 아니고 통일을 이루고 민족의 집결점을 이루며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에너지로 승화시킬 때다. 2007. 10. 4   
94    지퍼를 채워주세용! (우상렬94) 댓글:  조회:4562  추천:50  2007-10-20
지퍼를 채워주세용! 우상렬나는 싸움 한번 하지 않고 잘 산다는 잉꼬부부들 부럽다. 그런데 부부 간 싸움 한번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참 기적처럼 생각키운다. 우리 부부는 종종 싸우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도 잘 붙어산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 나한테 사랑의 비결 물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한 마디 한다는 소리가 지퍼를 채워주세용!이다.우리 집 사람은 좀 보수적인 편이다. 원피스 하나만 놓고 보아도 알만 하다. 앞이나 옆으로는 빈틈 하나 주지 않고 꽉 막히고 뒤로 지퍼를 채워는 그런 옷들이다. 결혼 20년 육박에 결혼기강이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나로서는 아내가 무슨 옷을 입든 별로 신경이 안 쓰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원피스들 때문에 불똥이 나에게로 튀니 말이다. 워낙 그런 원피스는 혼자 입기에는 불편한 옷이다. 혼자 지퍼를 기껏 채워보았자 중간 등허리 부분까지가 최고 상한선일 뿐 그 이상 최고 상한선인 목덜미 부분까지는 안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아내는 꼭 내 손을 빌린다. 자기야, 하며 무조건 등을 들이밀 때 나는 입으로 시끄럽게 굴기는 … 하면서 어쩐지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스르륵 목덜미까지 지퍼를 잘도 채워준다. 은근히 너는 내 여자야! 어떤 놈이든지 다치기만 해보라, 그저 없다하면서.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한 바탕 싸우고 난 후다. 우리 집 사람은 낯이 좀 두꺼운 편이다. 내가 뿌루퉁해서 누워있는데도 자기야, 이 원피스 … 지퍼, 코맹맹이 볼멘소리로 들이댄다. 조금은 무엇해 하는 듯하면서. 나는 누구하고 한번 싸우고 나면, 가볍게 말다툼 했을 경우에도 몇날 며칠을 앵돌아져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옹졸하다. 그런데 나는 아내의 자기야, 이 원피스 … 지퍼, 이 코맹맹이 소리만 들으면 그만 신들린 사람처럼 온 몸이 나른해지면서 돌아누웠던 몸이 절로 다시 돌아눕게 되며 언제 싸웠는가싶게 그 모양 그 본새로 지퍼를 채워주고 만다. 그러면서 또 한번 심심히 느끼는 것은 부부간 싸움 칼로 물베기. 우리 집 사람은 여기에 재미를 붙였는지 나하고 싸우고 나기만 하면 원피스 지퍼를 나한테 들이민다. 추운 겨울 원피스 입는 계절도 아니건만.요새 아내는 한 술 더 뜬다. 뒤로 지퍼를 채우도록 된 치마를 입을 때도 좀 뾰루퉁한 표정으로 자기야, 하며 그 큰 엉덩이를 나한테 들이민다. 분명히 자기 절로 채울 수 있는 지퍼건만. 나는 거저 못 이기는 척하고 그때그때 대충 채워준다. 그러면 아내의 얼굴은 삽시에 환한 밝은 표정을 짓는다. 그때마다 나는 한다는 얘기가 어떤 놈이 그런 비루먹을 옷을 만든 거야, 하고 조금은 툴툴 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지퍼를 채워주세용! 옷을 만든 ‘놈’을 참 대단하게 생각했다. 사랑의 옷, 사랑의 베트랑… 쯔쯔! 귀여운 놈. 사랑의 노벨상 탈 놈! 2007. 9.29
93    物以類聚와 人以群分 (우상렬93) 댓글:  조회:5305  추천:60  2007-10-14
物以類聚와 人以群分 우상렬 연변대학 교수현재 내가 잠간 살고 있는 중경의 이 翰林景園이라는 동네는 잘 사는 동네 같다. 景園 안에는 십 몇 층의 엘리베이터 고층아파트들이 죽죽 일어서있고 놀이터에 수영장까지 갖추고 정자 아래로 폭포수가 떨어지는 완연한 공원분위기다. 경비도 防盜門에 사람 지킴이에 이중삼중이다. 이런 것보다도 景園정문을 나갈 때면 유니폼을 입은 경비서는 총각들이 차렷 자세를 하며 경례를 착착 해주는 데는 좀 살맛이 난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도 보면 배가 좀 나오고 얼굴에 기름기가 돌고 배포유한 표정들을 지은 족속들이다. 여기 사람들 먹고 살만해서 그런지 개, 아니 애완견도 참 많이 키운다. 저녁에 산보 나오는 모양들을 보면 전부 애완견 한 마리 내지는 두 마리씩을 딸려 나온다. 사실 애완견은 여기 사람들만이 아니고 이 景園 밖의 사람들도 많이들 키운다. 景園 밖을 나서도 애완견 천지니 말이다. 한마디로 중경 사람들은 애완견 키우기를 좋아한다고 할밖에. 그런데 이 景園 주위의 동네들은 땟국이 덕지덕지 흐르는 올망졸망 초라한 단층이나 고물처럼 허줄하게 서 있는 2~3층짜리 재래식 층집들이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런 별 볼 일 없는 존재들 같다. 그리고 이 景園 정문 밖의 화단 가장자리에는 중경 특유의 막벌이군들인 棒棒軍이 죽 처져 앉아있고 길가로는 1원짜리 구두닦이들이 빼곡히 앉아있다. 이들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꾀죄죄하고 가련해보인다. 그리고 이들보다 좀 나아보이는 摩的나 일반택시들도 늘어서 있다. 인간먹이사슬의 한 광경인 것이다. 잘 사는 景園 안 사람들의 소비돈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景園 안의 사람들은 景園 밖의 초라하고 안쓰럽고 꾀죄죄한 건물이나 사람들로부터 은근히 더 없는 행복감을 느끼는 듯하다. 景園 안과 밖, 같은 푸른 하늘 아래 한 세상이건만 이렇게 다르게 돌아간다. 여름철 저녁 때 쯤 되면 景園  안의 사람들이 부부 동반으로 큰 파초 부채를 휘휘 저어며 산보하기가 바쁜데 景園 밖의 사람들은 돈 하나라도 더 벌겠다고 사구려를 외치며 아글타글 한다. 景園 안팎의 사람들은 분명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를 못하고 따로따로 놀아난다. 한번은 景園 정문 바로 들어서는 자그마한 광장에서 무슨 翰林景園 건립 10주년 기념으로 야외영화를 돌리는데 景園 안의 사람들은 광장에 놓인 걸상에 편안히 앉아 부채를 슬슬 부치며 편안히 보고 景園 밖의 사람들은 경비들이 죽 줄을 서 경비선을 늘인 정문 밖에서 게사니 목을 빼들고 우죽죽 영화관람을 하겠다고 야단들이다. 또 평시에 이 자그마한 광장에서 景園 안의 유한부인들이 저녁밥을 먹고 다이어트를 하느라고 춤을 추고 있을라면 景園 정문 밖에서는 못 먹어서 그런지, 일을 많이 하여 살 질 사이가 없어서 그런지 양 볼이 홀쪽한 아줌마들이 눈이 휘둥그래서 그 춤추는 모양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참 재미나는 것은 그 애완견들이다. 애완견들은 景園 안팎을 잘 가리는 것 같지 않다. 저녁 때 쯤 산보하러 나오는 주인들을 따라 정문 밖으로 나온 景園 안의 포동포동하고 보시시한 애완견들은 景園 밖으로 나오는 순간 밖의 여위고 꾀죄죄한 애완견들과 하나가 되어 돌아간다. 안의 애완견들이 달려 나오면 밖의 애완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 달려간다. 주인들이 달려가서 떼놓으려 해도 막무가내다. 주인한테 끌려가다가도 조금 틈만 있으면 서로 달려와 어울린다. 고 짧은 쇼타임이건만 어느새 사랑의 짝짜쿵도 놀아 배가 불어 오르는 놈도 있다. 참, 그들은 잘 살든 못 살 든, 깨끗하건 더럽건, 동양종이건 서양종이건를 관계하지 않는 듯하다. 그저 개면 되는 것 같다. 그들은 그저 개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그래서 내가 여기 와서 절실히 느낀 것 하나가 그 누가 말했던가-物以類聚와 人以群分. 조선조 말기 소설-<장끼전>, 과부가 된 까투리에게 뭇 짐승들이 청혼한다. 그러나 까투리는 그 많은 멋진 포로포즈의 유혹들을 다 뿌리치고 결국은 장끼한테 재가를 한다. 유유상종을 하겠단다-物以類聚. 인간의 무리는 꼭 적어도 빈곤층, 중산층, 부유층 하는 식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동병상린의 빈곤층과 안하무인의 부유층의 두 극단, 여기에 比下有餘, 比上不足의 그렇고 그런 중산층들 하는 식으로 끼리끼리 놀아난다. 빈곤층이 탁구를 하면 중산층은 테니스를 하고 부유층은 골프를 한다는 식으로. 이런 식이 장식이 되어 사회적으로도 알게 모르게 사람을 쪽 놓게 된다. 아무리 人不可相貌라 하지만 옷차림만 보고 입장불허가가 나고 고급차만 보면 허리 굽실거리고 부자동네, 달동네 하는 식으로 사는 지역에 따라 다른 대접을 하는 둥-人以群分.사실 이런 얘기는 인간 실존의 한 양상들인 종족, 민족이니 나라, 그리고 이런 것의 부산물인 종교니 신앙이니 하는 것들이 나타나면서 일종 전 세계적인 파노라마로 펼쳐나간다. 백인이니 흑인이니, 동양인이니 서양인이니 하며 우리는 서로 종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3.8선 하나 사이 두고 같은 민족이면서 나라가 달라 총부리 겨눈단다. 여기에 또 기독교권이니 이슬람교권이니 하며 몇 천 년의 앙숙의 역사가 펼쳐진다. 이런 비극의 역사는 현재 확장 진행형이다.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의 쪽 놓기, EU 등 일련의 블록화, 인간의 골은 깊어만 간다. WTO도 어쩌면 선진국의 횡포다. 보편적인 인류 정의의 대표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UN이 있기는 하나 그것이 무색해질 때가 많다. 나는 국경, 비자, 불법체류니 하는 것들을 인간의 가장 서글픈 한 형태로 본다. 인간이 이 세상에 왔을 때 무슨 국경이요, 비자요, 불법체류요 하는 것들이 있었겠는가? 인간은 人以群分이라 요렇게 울타리를 치고 내국인이요, 외국인이요, 합법체류요, 불법체류요 하며 한바탕 수다를 떨어야 직성이 풀리는 법인가. 나는 그 어느 나라를 입국하기 위해 비자를 받거나 통관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그 시각보다 답답하고 서글퍼날 때가 없다. 특히 턱 없이 문턱이 높은 이른바 선진국의 비자를 받거나 입국을 서두를 때는 더 그렇다. 사실 멀리 것을 얘기할 필요 없고 나는 코앞의 두만강을 대하기만 하면 그것은 아직도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밖에 안겨오지 않는다. 그러나 내 일 개인으로서는 무자비하게 해대는 그런 국가의 ‘횡포’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무정부주의자가 되고픈 충동을 자주 느끼곤 한다. 나라고 국가고 무엇이고 다 때리부시고 싶다. 나는 국가들의 ‘國歌’를 우습게 본다. 이런 ‘國歌’들이 우리나라의 우리를 각인시키면서 얼마나 매정한 비인도주의적으로 흐르게 하는지 모른다. 저 어느 곳에 국제여객항공기가 하나 추락했다. 시문기자요, 라디오기자요, TV기자요, 무릇 기자라는 놈들은 다 달려가 한다는 얘기가 ‘전원 사망’이요, 어쩌고 안쓰러운 소리를 하는 듯하다가 ‘그 속에 우리나라 탑승객은 없었다’라고 하거나 좀 더 무지막지한 놈은 한 술 더 떠 ‘다행’이라는 말꼬리까지 내뱉는다. 가장 객관적인 보도를 해야 될 기자들이 ‘우리나라’에만 기울어지니 일반 무지랭이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 인간은 동물을 우습게 보지만 분명 동물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한다. 적어도 物以類聚를 배워야 한다. 동물지간에도 왜 싸움이 없겠느냐만은 동종끼리는 절대 죽기내기 정도로 하지 않는다. 속임수를 쓰지 않는 공정한 룰 속에서 강자와 약자의 판정승일 뿐이다. 우리 인간들처럼 허망한 그 어떤 이념에 놀아나 한 번 싸운다 하면 몇 백만 내지 몇 천만이 죽어나는 그런 싸움은 아니다. 동물은 분명 우리 인간들처럼 群分이 아니라 끈끈한 동류의식 속에 서로 쪽 두지 않는 그런 類聚를 한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도 실천은 잘 안되었을망정 적어도 이념이나 이상으로 그런 ‘物以類聚’가 있어 왔다. 인간의 올된 이성이나 양지가 그렇게 시켰다. 기독교나 불교 같은 종교, 하느님이고 부처고 무어고 떠나 한마디로 말하여 사랑이다. 인간지간의 사랑이다. 바로 테러사 수녀가 헌신적으로 실천한 이 세상 가장 어려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사랑. 프랑스 19세기 낭만주의대가 빅또르 · 유고, 그가 ‘비참한 세계’에서 보아낸 것은 다름 아닌 인간 화해의 사랑의 감화, 19세기 러시아의 유명한 사실주의대가 톨스토이, 그가 ‘부활’에서 보아낸 것은 인간 개개인의 도덕적 자아완성, 杜甫, 중국 唐나라 시기 유명한 시인, 그가 ‘茅屋爲秋風所破歌’에서 보아낸 것은‘安得广夏千万间,广庇天下寒士尽欢颜。’이것을 보편적 인도주의, 아니 추상적 인도주의라해도 좋다. 오늘날 글로벌시대니 뭐니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도 人以群分의 인간소외가 심한 이 시점에서 그것은 더 없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나는 사회주의를 좋아한다. 일단 공유제 하나만이라도 자본주의 사유제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재부는 원래 우리 인간의 공동재산이거늘 거기에 무슨 놈의 이 땅이 내 것이고 저 산은 니 것이요고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서로 돕고 이끄는 인간의 화기애애한 관계가 좋다. 그리고 자기 재간 껏 일하고 수요 껏 배분한다는 인간의 대동사회로서의 공산주의사회가 좋다. 그 반면에 자본주의는 너무 돈, 돈, 돈이다. 돈이 가치판단의 모든 척도가 되고 돈에 의해 인간이 쪽 지어진다. 자본의 투자와 이윤 논리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생존경쟁 그 자체. 인간의 동질성에 기초한 따뜻한 융합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최저 생활금을 보장하고 세금 메커니즘에 의해 부유 상류층에 세금을 많이 안겨 빈곤 하류층에 풍기고 빈곤 하류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기 바쁘다. 대통령이 하는 일 가운데 이것이 주요한 일인 줄로 안다. 人以群分을 막는데 비교적 효과적인 것 같다. 그래서 사회주이고 공산주의가 이념이나 이상형에 치우치고 실천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기술적으로 막아주는 듯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서로 간의 프러포즈에 의한 제3의 길이 필요하다. 그것이 복지사회주의건 복지자본주의건 관계없다. 人以群分의 비극을 갈무리하는 융합을 가져오면 되니깐. 현재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여 그래도 희망적이다.  2007. 9. 29
92    마초이즘(machoism) (우상렬92) 댓글:  조회:4461  추천:50  2007-10-14
마초이즘(machoism) 우상렬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 남자들이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모르게 주입된 남자됨의 깡다구다-마초이즘. 남자라는 게 울기는, 아버지의 한 마디에 우리는 대뜸 눈물을 닦았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그거 떨어진다, 할머니의 한 마디에 우리는 부엌에 들여놓았던 발을 대뜸 거둬들인다.그럼 남자다움은 누구를 위한 것이지? 여자. 우리는 여자 앞에서남자다워진다. 아니, 남자다워지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무의식이 먼저 알아 그렇게 행한다. 우리는 색시를 얻어도 꼭 자기보다 한 둬서너 살 어리고 키도 자기보다 좀 작으며 학식이나 학벌, 나아가서는 집안도 자기도다 좀 못한 여자를 선호한다. 바로 이런 여자 앞에서 우리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도 남자인 내가 더 낫지, 그래서 남자인 내가 보호하고 아껴줘야지, 하는 남자다움의 깡다구가 살아난다-마초이즘.나는 미국 할리우드의 근육질이 불끈불끈 살아나고 불사조가 되어 일당백의 기세로 뚜르룩 해제끼는 영웅이 미녀를 구하는 영화나 이것을 이어받아 역시 영웅+미녀 패턴의 周潤發이나 劉德華 영화의 매력도 그들 남자다움의 깡다구-마초이즘에 있는 줄로 안다. 이런 남자다운 깡다구가 넘치는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남자다움에의 향수를 느끼고 여자들은 든든한 핵우산의 포근함을 맛본다. 그러나 현실의 마초이즘,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일종 강박관념으로 되어 우리를 죄어온다. 우리는 이 강박관념에서 홀가분해져야 한다. 마초이즘은 워낙 물리적인, 육체적인 힘의 논리가 통하는 전 근대적인 유물의 냄새가 많이 풍기거늘. 현대는 소프트시대. 마초이즘이 와그르 무너지기도 한다. 연상의 여인을 찾아 포근한 젖가슴에 안기는 마마보이 같은 애숭이들이 속출함에라! 힘든 현실에서 우리의 다른 한 무의식이 살아난다. 여기에 남자들 뺨칠 정도의 女强人도 속출함에라! 우리에게는 이제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현대는 포스트모던적인 섹슈얼크로스시대. 그러니 識時務者俊傑라 굳이 외곬으로 흐르는 원색적인 마초이즘이 아니고 유연하고 원만한 마초이즘이 필요하다.2007.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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