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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도
2015년 03월 20일 17시 52분  조회:3740  추천:1  작성자: 行者金文日
  오늘은 가끔씩 바람이 불었다. 어제까지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더니만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봄바람이라고는 하지만 따뜻하기보다는 쌀쌀한 기운이 더 해서 몸을 움츠리게 된다. 드디여 꽃샘추위가 시작되려나본다.
  무척 바쁜 하루 일과를 마무리짓고 사무실에서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래 쓰던 컴퓨터가 너무 속도가 느려져서 새로 하나 바꾸었는데 하드에 저장된 내용들을 옮기면서 순서가 바뀌여서 어디에 저장했는지 찾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주동안 고생했었는데 오늘 마침 시간이 있던터라 마음먹고 정리하기로 했다.
  컴퓨터를 정리하면서 보니 온갖 잡동사니 문건들이 가득하다. 오래동안 열어보지도 않은 많은 자료들을 지우면서 디지털 혁명을 통한 삶의 변화를 느낄수 있었다.
  정보화 사회이기때문에 뭐든지 너무 빠르다. 비행기도 더 빨라지고 기차도, 배도, 자동차도 다 빨라졌다. 사람들의 걸음걷는 속도도 빨라졌고 심지어 말하는 속도마저 빨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편지로서 소식을 전했기에 기다리는 마음과 그런 기다림속에서 사랑을 싹틔우거나 마음의 공간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지만 요즘같으면 지구촌이 모두 하나가 되여 휴대폰으로 번호만 누르면 여기저기서 소리가 터져나오고 인터넷만 오르면 얼굴보면서 대화를 맘대로 하니 빨라지기는 정말 빨라졌다.
  어릴적 보았던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책에서 묘사된 미래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것이다. 디카로 숱한 사진들을 찍었지만 실지 인화하는것은 한두개도 안된다. 며칠 보다가 한쪽 구석에 저장해둔다. 그러다가 필요없거나 자리가 부족하다싶으면 그냥 지워버리는데 순간순간을 소중히 사진으로 저장해두고자 했던 옛날의 그 마음이 이제는 퇴색한지 오래다.
  물질이나 풍요로움에 빠져 즐기다보면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없다. 그래서 너무 돈이 많은것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옛 성현들이 말씀하셨던것이다. 뭔가 너무 지나치면 좋지 않다.
  중용이란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知者过之,愚者不及也”라는 말이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지혜로운 자는 너무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이다. 중용의 미덕을 이야기한 말이다.
  ‘중용’(中庸)이란 사물을 보는 방법이나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일, 즉 균형을 잘 잡는다는 의미로서 유가에서 가장 존중하는 개념중의 하나이다.
  21세기인 지금은 모두가 영악하고 똑똑한척 해서 그 중도를 지키는 지혜로운 자를 찾기 어렵다. 본래 똑똑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서로 길이 다르기에 중도를 지켜야 하는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탐구심이나 호기심이 왕성해서 중요한 일은 뒷전으로 돌리고 쓸데없는 일을 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과는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이해수준이 낮기 때문에 어쨌든 미치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본래 중용이란 이처럼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너무 잘사는 대가집 자식으로 태여나는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다. 너무 풍요로워서는 자신을 찾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수 없기 때문이다.
  어릴적에 읽었던 “로빈손 크루소”라는 책의 서두에 로빈손의 아버지가 자꾸만 배를 타고 길을 떠나고자 하는 아들에게 중산계급의 좋은 점에 대해서 말하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런 부모의 부탁을 뒤전으로 하고 길을 떠난 로빈손은 조난을 당하게 되고 수십년간 무인도에서 고생해야만 했다. 자기 분수를 벗어나는 행동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는 말은 정답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물학적인 유기체이기에 생물학적인 충동을 느끼지 아니할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관능적인 유혹에 빠지거나 그런 유혹을 절대적인 믿음처럼 믿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돈을 벌고 또 벌고 잘살고 또 잘살다가 죽는것, 그것이야 말로 이 생을 잘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인양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로매진한다. 그러다가 문뜩 죽는 날이 왔을때 허무함과 아까움을 이기지 못해서 더욱 삶을 갈망하면서 고통스러워 하는것이다.
때로는 나도 그냥 훌쩍 어딘가 떠나서 아무것도 구애됨이 없고 근심도 없는 무애무우(无碍无忧) 의 생활을 해보고 싶을때가 있다. 물론 아주 가끔씩 일어나는 충동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삶이 나한테 부여한 무거운 책임을 지지 않기위한 경향일 것이고 내 마음을 찾기 위해서는 삶의 책임과 마음의 수련을 함께 해야하는것이 정답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삶의 중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억지로 어딘가에 숨어서 수련을 하거나 출가를 해서 공부를 하는것만이 깨달음을 얻을수 있는것은 아닐것이다. 깨달음이란 하늘에 있는것도 아니고 땅밑에 있는것도 아닌 바로 우리 삶속에 하나로 융합되여 있기때문이다.
도시로부터 도피하여 산속에서 홀로 사는 은자(隐者)는 아직도 여전히 환경에 끌려다니는 2류급 은자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 큰 대덕이나 은자는 오히려 시중에 숨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주위 환경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히 유유히 자기를 지키며 생활할수 있는 힘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로 돌아와 돼지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여자와 사귀나 자기 마음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대덕(大德)이고 대은자(大隐者)이고 고승(高僧)인것이다. 그래서 ‘大隐隐于市’ 라는 말이 나왔나본다.
  에치투오 강의에서 항상 이야기했던 다섯가지 성공양식을 돌아본다. 그 첫번째가 ‘마음의 자유’이다. 내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울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수 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마음의 자유가 없다면 무슨 행복을 운운할수 있겠는가?
  두번째가 ‘건강의 자유’다. 육체가 건강하고 자유로워야 비로소 삶을 꾸미고 내 자신의 속뜰을 풍요롭게 꾸밀수 있다.
  세번째는 ‘사랑의 자유’ 이다. 누군가를 사랑할수 있고 또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일수 있을때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느낄수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네번째가 ‘경제적인 자유’이다. 에치투오 리더십과정을 개발해서 처음 교재를 만들면서 썼던 말이 있다. <물은 너무 많아도 탈이요. 너무 적어도 탈이다. 돈도 그렇다.>라고 적었다. 그걸 지금까지 강의 제강으로 쓰고 있다. 물이 너무 많으면 홍수진다. ‘십년가뭄에는 살수 있어도 한번 홍수에는 망한다’ 는 옛말이 있다. 돈이 너무 많으면 그렇게 홍수처럼 우리 마음속에 겨우나 세워두고자 했던 꿈과 희망과, 노력을 통한 풍요롭고 행복한 마음을 싹 쓸어버린다.
  다섯번째가 ‘영의 자유’이다. 영이란 바로 우리의 영혼이다. 이것을 마음과 동일시 하면 큰 착오다. 우리의 육체는 영혼을 빼면 그냥 고기덩이일 뿐이다. 그때면 우리도 동물과 다름없는 동물적인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것은 더 큰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하늘과 땅사이에 인간세상이 있다는것은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그 중간에서 바른 길을 찾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 생계가 걱정될 정도로 가난하다면 우리의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면 그 마음이 깃든 육신에 그늘이 지기마련이다.
너무 좋은 집에 살지도 않고 너무 형편없는 집에 살지도 않고, 너무 화려한 옷이나 자동차를 사지 않고 그러나 또 너무 초라하지도 않게 다니며, 너무 좋은 음식을 탐하지도 않고 너무 나쁜 음식을 먹을 지경도 아니고 부모에게 바라지도 않고 자식에게 기대지도 않으며 친구도 너무 많지 않고 전혀 없지도 않으며, 술도 너무 과음하지도 않고 전혀 입에 대지 못할 지경도 아니라,미훈의 경지를 즐길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너무 잘살지도 않고 또 너무 가난하지도 않으며 너무 똑똑해서 전문가노라고 으스대지도 않고 또 너무 바보스러워서 내 자신의 속뜰을 들여다 볼줄을 모르지도 않는 그런 삶이 중도의 삶이다. 이런것을 ‘위대한 평범’이라고 말해도 좋을것이다.
논어에도 오직 한마디 뿐이지만 중용에 대해서 평한 말이 있다. ‘중용의 덕은 최고의 미덕인데 사람들은 오래 그것을 잊고 있다.’ 라는 말이다. 거기에 관련된 논어의 이야기가 있다.
  공자의 제자 중 자공(子贡)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머리가 뛰어나며 말재주가 좋아 실업가로서도 대성한 인물이였다. 이 사람은 또 인물평도 좋아한듯 싶다. 어느날 공자의 젊은 제자 자장(子长)과 자하(子夏)를 가지고서 공자의 의견을 구했다.
“자장과 자하는 누가 더 뛰어납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자장은 도가 넘치고 있고 자하는 도가 부족하다.”
자장은 요즘 현대인 같으면 앞에서 분수나 도를 분별못하고 먼저 달리는 경향이 있었던것 같다. 자하는 반대로 적극성이 없고 소극적인듯 하다. 이때 자공이 “그러면 자장 쪽이 뛰어나다는 말씀입니까?”하고 물었더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과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过犹不及)라고 한말로 유명하다.
  지나쳐서도 않되고 부족해서도 안된다. 균형잡힌 인간상이 이상형이라고 공자는 보고 있는것이다. 내 육신의 자유와 영의 자유를 위해서 해야하고 배워야 할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았다. 컴퓨터안의 쓰레기 파일을 지우듯이 내 마음속 한구석에 가득 차있는 썩은 생각들도 잘 찾아내여 깨끗이 버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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