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색상
전한나
우연하게 휴대폰 파일을 정리하다가 저장된 음성 파일들을 발견했다. 통화할 때 어찌하다 자동저장이 된듯한데 찍힌 날자를 보니 최초에 록음된 파일은 2014년 1월18일로서 4년 전이다. 버튼을 눌러서 확인해보니 딸애와의 통화 시 저장된 파일이다. 색이 바랜듯 약간 갈리고 울림도 없는 그레이 컬러灰色 목소리, 귀에 너무 설었다.
딸애와의 통화에 무슨 상사의 업무지시 같이 목소리를 깔고 대화한 목소리 파일도 있고 질풍노도처럼 격하게 소리치는 그레이에서 블랙 컬러로 치닫는 목소리 파일도 있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음성 파일이 나에겐 일종 충격으로 안겨왔고 그게 왜 그렇게 이상하게 들리는지 뒤늦게나마 그 소이를 대강 짐작할 만도 했다. 늘 완벽을 추구하고 승승장구하는 모습만 보고 싶어했던 나는 딸애에게 닫는 말에 채찍질하면서 늘 높은 목표를 제시하군 했었다. 단지 엄마라는 자격으로, 다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딸애한테 훈계도 하고 가끔은 다급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참 못됐다. 곁에서 조용히 지켜봐주는 여유가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마음이 여린 딸애가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서 가슴이 아릿해나면서 울컥했다.
다른 사람이랑 대화할 때, 즉 육성이 입으로부터 발성돼서 다시 귀에 전달될 때의 목소리와 휴대폰에 록음된 나의 목소리는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과 더불어 록음된 목소리가 제 목소리임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저 싫은 정도가 아니라 경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어렸을 때는 음악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노래공부를 좀 해서 지인들로부터 은방울 같은 목소리라는 칭찬을 꽤 들어왔다. 늘 목소리 하나 만큼은 자부심을 지녔던 나인데 지금 내가 듣고 있는 휴대폰 속의 이 목소리 임자는 은방울하고는 쌀의 뉘 만큼의 련관성도 없어보이는데 나의 거라고? 허나 기기는 기기다. 기기는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광주에 있을 때도 가끔씩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이상하게도 나는 신날 때보다 심한 생리통으로 침대에서 베개를 안고 뱅뱅 돌 때거나 힘들 때면 숨 넘어가는 소리나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항상 엄마를 찾아서는 통화한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요즘에도 나는 가끔 멀리 떨어져있는 딸애랑 통화하면서 딸의 잠에 취한 목소리나 기분 좋아서 해빛 찬란한 활기찬 화이트 컬러의 목소리를 금방 가려들으면서 그 분위기에 일희일비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갈수록 목소리에도 색상이 있다고 믿는다. 얼굴 본 적 없는 사람과 통화를 할 때 상대방의 목소리 톤과 억양과 리듬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보고 상상을 하게 된다. 우아한 리듬을 타고 오는 목소리, 자성磁性이 묻어나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목소리는 경쾌한 블루 컬러이다. 이와는 반대로 하이톤 목소리는 빨강색 신호등을 련상케 하기에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여지도 다분하다.
목소리는 또한 장소와 상대에 따라서 다르게 작용을 한다. 한국의 스타 강연자, 리창욱씨와 김미경씨처럼 정감이 두둑한 오렌지 컬러 목소리는 감동과 유머와 위트风趣가 넘쳐 청중들로 하여금 빨려들게 하는 마력魔力이 있다. 사랑에 빠진 커플 사이 달콤하고 깨를 볶는 핑크 컬러의 러블리한 목소리는 사랑에 자석 역할을 한다. 엄마가 부르는 연록색 자장가 소리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멜로디이다. 아직도 공공장소에서 손사래까지 치면서 대화하고 통화하는 블랙 컬러의 목소리를 가끔 만나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민페인 줄도 전혀 모르는 그런 목소리는 소음이다.
리듬이 적절하고 톤이 알맞춤한 말소리는 듣는 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나는 간절해지는 생각이 하나 있다. 나는 나의 목소리가 여유로우면서도 차분하고 따뜻한 옐로우 컬러 목소리였음 좋겠다. 그래서 대화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상대로 하여금 나의 목소리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했으면 좋겠고 나의 목소리 때문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음 좋겠다.
따스한 온도도 담고 다정한 정감과 기운찬 기분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목소리, 신났을 때 너무 시끄럽게 업调高되지 않고 기분이 다운下调됐을 때 너무 우울하지 않고 항상 여유를 잃지 않는 예쁘고 부드러운 그런 목소리를 갖고 싶다.
출처:<장백산>2019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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