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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전 상서
박영화
높아진 하늘을 따라 그리움이 늘어가는 추억의 계절이 다가왔다. 머리카락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한자락에도 괜히 울컥해지는 감성 충만한 계절에 가을의 쓸쓸함과 고독을 유독 많이 담은 윤동주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읊어본다. 부끄러움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은은하게 들려주고 자아성찰과 반성이 얼마나 멋들어진 일인지를 가장 느낌 있게 전달하는 시인, 윤동주 만큼 가을에 어울리는 시인도 드물 것이다. 이름 석자만 대충 알고 지냈던 소시적에 작문선생님을 따라 무작정 윤동주 생가에 다녀온 뒤에도 마냥 이런 시인이 이런 곳에 머물렀었구나, 이 마을 사람들이 자주 모여서 무슨 일인가를 많이 했나 보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 시대의 아픔과 고뇌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평화치 않던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처럼 차분하고 분위기 있는 시를 지어낸 시인에 대한 동경도 따라서 커져갔다. 그러면서 하나의 별에 자신의 고민과, 마음과 그리고 온 우주를 담고 싶어했던 시인의 먹먹함이 조금씩 마음에 와닿았다. 그렇게 시인 윤동주는 비물이 호수에 담기듯이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에 다가와서 조용히 내 감성을 적셔주곤 했다.
들판에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들이 온통 황금빛을 자랑하는 이맘 때면 산타마냥 자식들에게 나눠줄 선물꾸러미들을 옹기종기 쌓아놓고 기다리시던 외할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 민족과 시대를 잃은 거창한 부끄러움과 그것들을 지켜내지 못한 반성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끄러움과 아픔, 그 감정들만은 시인을 꼭 닮은 채 살다 가신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난치병을 앓는 큰아들을 둔 자책감과 그에 따른 온갖 설음과 짐들을 오롯이 홀로 짊어지고 감당해내신 분이셨다. 늘 다소곳하고 조용하지만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삶의 현장을 지켜오신 외할머니는 큰아들을 앞세운 아픔의 무게를 못 견디고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났다. 처음으로 외할머니가 부재한 세상에서 살게 된 막내외손녀가 오늘은 윤동주시인의 <별 헤는 밤>의 쓸쓸함과 감동을 빌려 높은 가을 하늘에 외할머니 전 상서를 띄워본다.
외할머니한테도 아무 걱정 없이 자연을 마주한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을가. 다시 생각해보니 단 한번도 외할머니께서 어느 곳이 경치가 좋더라, 어떤 꽃이 예쁘더라고 하셨던 기억이 없다. 이곳저곳 마을 사람들과 려행을 다녀오신 뒤에도 그 사진 속에서도 외할머니의 눈빛은 늘 자연을 즐긴 사람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려행 후일담에도 자연에 대한 감상평은 없으신 채 큰외삼촌이 어느 곳을 갔는데 힘들어했다, 어디에선 좋아했다 뿐이였다. 외할머니 생활의 대부분은 큰외삼촌 챙기기로 채워져있었지만 정작 그 정성과 마음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큰외숙모가 선택한 결혼이였지만 지병이 있는 아들을 장가보내서 딸의 인생을 망쳤다는 사돈들의 눈초리는 명절 때면 더욱 심해졌고 그럴 때마다 젊은 시절 성우로 활약할 만큼 재능 많고 의젓했던 큰아들이 위축되는 게 싫어서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뒤돌아 술로 서러움을 삼키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심심찮게 보아왔었다. 그렇게 외할머니에게는 삶의 어느 모퉁이에도 숨통이 트일만한 곳이 마련되여있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라도 곁에 계셨더라면 덜했을 외로움과 서글픔들을 그 때는 너무 어려서 미처 깨닫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그림도 잘 그리고 손수 가구도 만들고 기관사로도 지낸 적이 있는 다재다능한 분이셨다고 한다. 불같이 급한 성격을 가진 외할아버지는 그 당시에도 큰 병은 아니였던 기관지염으로 고생하셨고 중병을 앓는 큰아들의 병치료만으로도 버거웠던 가정형편을 걱정하여 식음을 전페하고 약도 안 드신 채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남편을 여의고 자책감의 무게를 키워온 외할머니의 생은 한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가슴 시린 삶이였다. 그럼에도 외할머니는 끝없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감쌀 줄 아는 마음 따뜻한 분이였다. 엄마 손에 이끌려 외할머니댁에 가는 게 동년시절에는 제일 신나는 일이였고 제일 행복한 려행이기도 했다. 조금 더 커서는 틈만 나면 옷가지를 대충 챙겨가지고 혼자서 찾았던 외할머니댁은 항상 사촌들과 마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을에서 작은 가게를 했던 원인도 있겠지만 손주들은 물론이고 사돈아이들까지도 외할머니를 잘 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어린 우리들에게 류행가를 가르치고 그 당시엔 리해하지도 못하는 온갖 신기한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때론 술에 취해 춤도 곧잘 추던 외할머니댁은 우리에게 가장 큰 놀이터였고 따뜻한 쉼터였다. 가갸거겨도 겨우 알가말가 하는 손주들을 불러놓고 일본어로 개사한 노래를 가르치며 어렸을 때 학교에서 일본어로 수업하고 일본어만 사용하게 했다는 외할머니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신기했고 깨끗하게 정돈될 틈이 없을 정도로 늘 어질러진 채로 분주했던 외할머니 집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남편에 이어 큰아들마저 앞세운 외할머니는 끝내는 슬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을 놓고야 말았다. 외할머니의 모진 인생이 더 힘들어진 것도 큰아들 때문이였지만 외할머니의 유일한 삶의 끈 또한 큰아들이였다. 남편을 잃었을 때도 큰아들을 살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꿋꿋하게 버텨오던 외할머니는 큰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마지막 한오리의 지푸라기마저 놓았던 것 같다. 손톱, 발톱이 빠지도록 큰아들을 위해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밭일을 하면서 안 좋은 심장 탓에 거친 숨을 연거푸 내쉬면서도 늘 강철마냥 탄탄해보이던 외할머니는 그렇게 한순간에 맥없이 무너졌고 더 이상 고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던 할머니의 손발은 나어린 우리 것보다도 희고 곱게 변해갔다. 늘 숨이 차서 헐떡이던 모습도 차츰 사라져 아이처럼 평온하게 잠에 들곤 하셨다. 명절에 들어오는 선물을 한달이고 두달이고 감췄다가 다른 자식들 몰래 큰아들 집에 올려가시던 외할머니는 계절마다 제철 과일도 찾고 드시고 싶은 음식도 사다달라고 했다. 그렇게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6년 동안 치매를 앓으신 외할머니는 막내딸인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늘 우리 집을 큰아들 집이라 우기셨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막내딸에 대한 미안함에서 비롯된 현실부정이겠지만 엄마도 나도 당시엔 그게 늘 서운했다. 그러면서도 전화만 받으면 내 이름만 부르곤 해서 다른 손녀들의 서운함까지 산 외할머니, 하루종일 한마디도 안하시고 그 긴 시간을 천장만 하염없이 쳐다보며 무슨 생각들을 하셨을가? 어쩌면 외할머니가 좋아하던 모든 아름다운 말들을 되뇌고 있던 건 아닐가. 언젠가 젊어서는 ‘고운 새댁’으로 불리웠던 적이 있다고 롱담처럼 하셨던 말씀 대로 외할머니에게도 밝고 싱그러운 청춘이 있었을 테니가… 그리고 어쩌면 백일홍을 그리워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언젠가 여름방학에 찾았던 외할머니댁 터밭 가장자리에 피여있던 꽃을 보며 막연하게 ‘꽃을 심을 여유도 있으시네.’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외할머니는 늘 빚을 진 자세로 힘겹게 삶을 감당해냈던 것이다. 언제 어떤 연유에서 심어진 꽃들인지는 자세히 몰라도 아마 모두가 잠든 희붐한 새벽녘에 당신의 고뇌와 아픔을 담아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희석시켜보려고 심었던 것은 아니였을가.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온 아픔들이 그 순간이나마 꽃으로 피여나고 꽃으로 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 그 꽃 하나하나에 당신의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그리웠을 어머니를 담아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때늦은 바람이라 부질없긴 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유독 오래동안 피여있는 꽃이 백일홍이기도 하다. 쉽게 피였다 쉽게 지는 여느 꽃들과는 다르게 적어도 일년에 백일 동안은 외할머니 곁을 밤낮없이 지켜줬으니 참 고마운 꽃이다. 또 어쩌면 끔찍이도 아끼고 우애가 깊었던 형제자매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젊어서 요절한 막내녀동생과 셋째동생과 고국에 남겨진 남동생과 마지막까지 의지했던 큰오빠를… 아니면 조용히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장에 씌여져있던 외할머니의 이름 석자를 보고서야 안해로 어머니로 할머니로 누이, 동생, 언니로만 살다 가신 외할머니의 고독과 외로움이 너무나도 서글프게 안겨왔으니까. 그이들을 추억할 잠간의 여유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불공평한 운명에 내버려졌던 외할머니를 위해 좋은 기억만 허락한 6년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랬으면 참 좋았을 시간이였다.
이제 내가 대신 외할머니가 좋아하셨던 그 존재들의 이름을 불러드릴가? 그러면 잠시나마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달래질 수 있을가? 외로움과 그리움과 서글픔으로 반죽된 인생을 힘겹게 견뎌온 외할머니, 이제 외할머니가 누워계신 파란 언덕에도 수많은 별빛들이 내려앉아 말동무도 되여주고 술친구도 되여주었으면 좋겠다.
아스라이 먼 별로 떠나셨지만 또 손에 닿을듯한 거리에서 별처럼 반짝이고 계시는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별에도 백일홍이 피였다가 진 시원한 가을이 왔기를, 별 하나하나에 외할머니를 추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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